세컨드핸드 타임 - 호모 소비에티쿠스의 최후 러시아 현대문학 시리즈 1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지음, 김하은 옮김 / 이야기가있는집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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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문처럼 시작되는 어느 가담자의 수기는 슬프다. 

소비에트 문명, 나는 소비에트 문명의 흔적을, 소비에트의 익숙한 얼굴을 서둘러 기록한다. 

모든 인간을 호모소비에트쿠스로 만들기 위한 거대한 실험이 필연적인 실패로 끝난후 알렉시예비치는 쓴다. 


우리 세대는 자유를 단순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세월이 얼마 흐르지 않은 지금 우린 자유라는 무거운 짐 때문에 등이 굽고 말았다. 왜냐하면 아무도 우리에게 자유가 무엇인지 가르쳐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배운 것이라고는 자유를 얻기 위해 죽는 방법 밖에 없었다. 

우리도 자유를 배운적이 없다. 자유를 위해 죽는 방법도 배운 적이 없다. 늘 복종을 배웠고, 대학만 가면 된다고 했지. 


자유란 알고보니 러시아에서 줄곧 모욕당해왔던 속물근성이 회생한 것이었다. 자유란 '위대한 소비전하'의 등장이었고 '어둠의 왕'의 출현이었다. 

소비에트 붕괴후 사람들은 자유롭고 행복해지길 기대했는데, 

지금은 가난한 것도 부끄럽고 취미로 운동하나 안 하는 것도 부끄러운 시대요. 한마디로 쫓아가기가 벅차지. 

구조정으로 정리해고되고 상점에는 물건이 넘치지만 돈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된다느 것을 알고 당혹스러워한다. 

그들은 우리에게 새로운 게임의 법칙을 말해주었소. 돈이 있으면 인간이고, 돈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법칙을 

호모 소비에티쿠스, 그게 자본주의예요.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두가지 이념이 있었던 세상과 자본주의만 있는 세상은 모두 비참하구나. 


사회주의는 강제노동수용소, 밀고, 철의 장막만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에요. 그 안에는 자기 주머니만 채우는 데 여념이 없는 그런 세상이 아니라 정의롭고 밝은 세상, 즉 모든 것을 함께 나누고, 약자를 불쌍히 여기고, 함께 고통을 이겨나가는 그런 세상이 있던 말이에요...... 삶은 돈과 어음으로 쌓아올린 피라미드일 뿐이고, 자유가 곤 돈이고 돈이 곧 자유라는 말들을 하지요. 그리고 우리의 삶은 10원짜리 한개의 값어치도 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저는 공산주의자였고 앞으로도 공산주의자로 남을 겁니다. 


그러면 제가 공산주의를 믿었냐고요? 거짓말 안하고 솔직히 말씀드릴게요. 저는 정의로운 삶의 방식을 구축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믿었어요. 이미 말씀그렸지만, 지금도 그러게 믿고 있어요. 


한 곳에서 어떤 물건을 산뒤 다른 곳에서 3코페이카 더 비싸게 파는 사람이 영웅이라고 아무리 설득해도 소용없다고요. 지금 사람들은 그런 생각들로 세뇌하고 있잖아요. 

이 사람들은 자본주의를 정말 정확하게 표현한다. 

소비에트 붕괴이후 태어나서 수십년을 맑시즘을 학습하고, 변증법을 받아들인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했다. 

그들이 자본주의를 어떻게 판단하고 있는지. 

프롤레타리아의 독재 대신에 정글의 법칙이 들어왔어. '너부다 약한 자를 물어뜯고 너보다 강한 자에게는 무릎을 꿇어라.' 지상에서 가장 오래된 그 법칙이......


평범한 춤조차 우리는 저급하다고 생각했어. 춤을 춘 사람들을 심판하기 위해서 재판도 열렸고, 춤을 추고 여자친구에게 꽃을 선물한 콤소몰들에게 벌을 줬어, 심지어 난 춤 관련 재판위원회 위원장도 했다니까. 난 내가 가졌던 그 마르크스적 신념 때문에 결국 지금까지도 춤을 못 춰. 나중에는 후회를 했지. 아름다운 여성과 한번도 춤을 추질 못했다니까. 미련 곰탱이!

고상하고 우아한 사람들이다.  

내가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공산당선언을 읽고 번개를 맞은 느낌일때 1990년대 초, 소비에트는 이미 망한 후였다. 

그것이 내게 충격은 아니었지만, 내내 궁금했다. 

이 빛나는 사상을 태어나면서부터 배우고, 숨쉬어온 사람들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며, 어떻게 살까. 

유물론과 계급론으로 무장하고 역사발전의 법칙, 그이상을 신념화한 사람들이 정말 있었을까. 

모두들 독재자가 지긋지긋하고 가난이 지긋지긋해서, 불평등한 체제 따위는 쉽게 받아들여 졌을까. 

그 궁금증이 풀렸다. 

고통이었구나. 호모 소비에티쿠스, 이제 멸종을 강요한단 사람들. 


'모스크바는 말그대로 죽어가고 있습니다.' (쿠즈네초프 교수가 트로츠키에게 한 말에 대해)

'그 정도로는 배가 고픈 것이라고 할 수 없소. 티투스 황제가 예루살렘을 함락했을때 유대인 어머니들은 자기 자식을 먹었다오. 내가 당신들의 어머니들로 하여금 자기 자식들을 먹게 하거든, 그때 내게와서 배고프다 하시오.' 트로츠키, 1919

망할 인텔리겐챠같으니라고. 트로츠키. 도대체 뭘 하고 있는거니. 

어머니들이 자기 자식들을 먹게 되는 때에 너에게 간다면 배고프다고 말하러가는게 아니란다. 

네 목을 치러 가는 것이지. 


소비에트연방시절 수용소에서 어린시절을 보낸 사람들의 얘기가 가장 슬프다. 

이제 막 태어난 꼬마 아이들부터 3살까지는 엄마와 살고, 4살에는 기숙사에서 산다. 5살이되면 고아원으로 보낸다. 

엄마와 떨어진 4살아이를 어쩌면 좋으냐.  

소비에트, 어떻게 이런 짓을 한거야. 노동자계급의 이름으로. 



2. 

세르게이 표도르비치 아흐로메예프. 소련 대통령 군사고문이었던 최고위층 

크렘인에 있을때도 그는 어색해 했습니다. '고고한 학'. '뼛속까지 군인' 이었던 그는 크렘림의 삶에 길들여지지 않았어요. "사욕없는 진정한 동지애는 군대에만 있다."라고 말했었죠...... 그는 17년 동안 군복을 입고 있었습니다. 


아흐로메예프가 크렘림으로 거처를 옮긴 후, 몇매나 많아진 월급을 거절했어요. 그때까지 받아왔던 월급이면 충분하다면서요. 이쯤되면 누가 돈키호테인가요?...... 500루블 ㅇ상의 외국 선물의 경우 의무적으로 국가에 제출해야한다는 소련 공산당 중앙위원회 법령이 발표되었을때, 아흐로메예프 원수는 제일 처음 그 명령을 수행한 사람이자, 그 명령을 수행했던 몇 안되는 사람들 중 하나였습니다. 

소련이 무너지자, 아흐로메예프는 사무실에서 목메어 자살한다. 

1923년 태어나 소비에트와 함께 평생을 살아온 그는 소비에트가 아닌 나라에서 살수 없었던 것이다. 

평생을 이념을 위해 헌신하며 살았던 사람들은 그 이념이 사라지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 수가 없다. 배운적이 없으니까. 

돈, 속물적인 삶을 경멸하며 살았던 사람들이 돈을 벌기위해 무슨 짓이든 하는 사회에서 사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우리는 탱크와 로켓에 의해 정복당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제일 강하다고 자부했던 것, 바로 우리 영혼으로부터 공격을 받아 무너진 겁니다. 체제가 썩었고 당이 부패했던 겁니다. 어쩌면 이것도 아흐로메예프가 삶을 포기한 또 하나의 이유가 될 수도 있겠군요. 


그는 사관생도에서 시작해 군의 최고봉까지 올랐습니다. 소비에트 정권은 그에게 모든 것을 주었습니다. 최고 칭호인 소련군 원수, 영웅별 훈장, 레닌상...... 부유한 상속자가 아닌 어느 지방 벽촌,평범한 농부의 집안에서 태어난 남자에게 말입니다. 소련은 그와 같은 수천 명의 사람들에게 기회를 주었습니다. 가난하고 작은 사람들에게요. 그래서 그들은 소련을 사랑했습니다. 



3. 

유대 속담에 이런 말이 있어요. '강한 바람이 불때 가장 높이 떠오르는 건 쓰레기다.'

맞네. 사회가 불안하고 변화가 많을때, 가장 높이 떠오르는 것. 

강한 바람이 불어도 떠오르지 않고 묵묵히 바닥을 지키는 사람들이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떻게 살아갈지, 
나는 실패한 소비에트의 꿈이 아직도 가치있다고 생각하므로 
나는 자본주의 사회 고통속에서 살며 사회주의를 꿈꾸는데, 아직도, 

나는 한번도 본적없는 호모소비에티쿠스 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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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우마 - 가정폭력에서 정치적 테러까지
주디스 허먼 지음, 최현정 옮김 / 열린책들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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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는 인간 사이의 연결을 침해당한 결과이다. 생존자가 단지 수동적인 목격자가 아니라, 폭력적인 살인이나 잔학 행위의 적극적인 참여자였다면 특히 더 위험하다. 전투 외상은 폭력적인 살인을 보다 높은 가치나 의미로 더 이상 합리화시킬 수 없을때 더 큰 위력을 발휘한다. 베트남 전쟁에서 승리하는 목표가 이미 불가능해 졌을때, 시신의 수를 세는 등 죽이는 그 자체가 성공의 기준이 되고 말았을때, 군인들은 뿌리깊은 혼란에 빠졌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이들이 지속적인 심리적 손상 앞에 취약해진 이유는 단지 죽음에 노출되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것은 이들이 부당하고 의미 없는 파괴행위에 가담했기 때문이었다. 

베트남 전쟁이 참전한 미국 병사들의 얘기다. 

내가 아무 이유없이 사람을 죽이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라니. 끔찍하다. 


대한민국의 베트남 참전 용사들은 여전히 베트남 전쟁에 참가했던 경험을 명예로운 일로 편집한다. 

공산주의와 전쟁의 일선에 섰다는 거지. 태극기 집회를 하고, 남북 화해의 움직임을 반대하면서 

여전히 동원되어 반공을 외치며 이용당한다. 잔인한 일이야. 


한 베트남 참전 군인은 상실된 믿음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왜 신은 선한 사람이 죽어 가도록 내버려 두는지 이해할수 없었다......나는 한명의 성직자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신부님, 나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왜 신은 작은 아이들이 죽어가는 것을 내버려 둡니까? 이게 무엇입니까. 이 전쟁, 이 빌어먹을 것이, 내 주변에 죽은 사람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그 성직자는 내 눈을 보며 말했다. '모르겠습니다. 나는 전장에 있어 본적이 한번도 없습니다.' 나는 말했다. '나는 전쟁에 대해 묻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신에 관해서 물었습니다.' "

왜 태어나서 왜 죽는걸까. 신이 뭘 알겠어. 살아본 적이 없는걸.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거라고 느끼는 사람들은 다시는 인간으로 태어나지 않기를 소망하기도 한다. 


강렬한 분노를 조절하지 못하는 어려움 때문에, 생존자들은 통제되지 않는 자신의 분노를 표출하는 것과, 그 어떤 공격도 허용하지 못하는 양 극단 사이에서 갈팡질팡한다. 따라서 이 남자는 한편으로는 다른 사람에게 동정심을 느꼈고, 다른 이들을 보호하려 했으며, 그 누구도 해를 입는다는 것을참지 못했다. 반면에 가족을 향해서는 폭발적으로 분노를 표출하였으며 과민하였다. 이러한 불일치는 그의 고뇌의 원천 중 하나였다. 

가정폭력의 가해자들, 이런 사람들 많이 봤어. 기본적으로 비열하다고 생각해. 

자기를 망가뜨린 국가폭력에는 복종하면서 힘없는 가족들 위에 군림하여 가해자가 되다니. 

더 큰 폭력에 노출된 피해자라 해서 힘없는 사람에게 폭력을 행사하며 괴롭혀도 되는 것은 아니야. 

자기가 피해자였다면 더더욱 그 고통을 알아, 다른 누군가에게 가해자가 되지 않도록 성찰하고 노력해야, 인간이거든. 

가정폭력의 가해자가, 더 큰 폭력의 피해자라 해서 용서하기는 싫다고. 


강간범의 목적은 피해자를 공포에 떨게 하고, 지배하고, 모욕하며, 완전히 무력하게 만드는 데 있다. 그러므로 강간은 그 특성상 심리적인 외상을 불러일으키려는 의도적인 계획이다. 


외상 경험을 다른 이들과 나누는 것은 세계가 의미 있다는 느낌을 회복하기 위한 필수 조건이다......사람이 해를 입었다는 사실이 사회적으로 인정되면, 공동체는 반드시 해악에 대한 책임을 분담하고, 상처를 치료하기 위한 행동을 취해야 한다. 인정과 배상이라는 이 두가지 반응은 세계에는 질서가 있고 정의가 있다는 생존자의 느낌을 재건하는 데 꼭 필요하다. 

그러나 참전병사를 위로하는 기념비는 있지만 강간 생존자들을 위한 사회적 기념비는 없다. 

피해가 사회적으로 인정되지 않는 것이다. 인정되지 않음으로 배상하지도 않는다. 오로지 그녀의 몫이다. 


피해자가 탈출할 수 있을 정도로 자유롭다면, 두번의 학대는 일어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피해자가 포로일때, 도망칠 수 없을 때, 그리고 가해자의 통제 아래 있을 때, 외상은 반복된다. 이러한 상황은 감옥, 강제수용소, 강제노동수용소 안에 부명히 존재한다. 또한 컬트 종교 집단, 성매매 집결지화 같은 조직화된 성적 착취 기관, 가정 안에도 존재한다. 

두려운 일이야. 


한 남성의 가정은 그의 성역이고, 그 가정이 여성이나 아이들에게는 감옥일 수 있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한 근친상간 생존자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시커면 정액으로 가득차 있다. 만약 내가 입을 열면 그것이 쏟아져 나올 것이다. 뱀이 번식하는 하수구의 진흙탕이 바로 나이다."

숨이 막혔다. 오래된 그녀의 고통이 막막하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걸까. 



2. 

모르던 것을 새로 알게 되었다는 느낌보다는 잘 알던것의 의미를 교통정리 했다는 느낌이다. 

트라우마가 어떤 병이고, 어떻게 병으로 이름붙이게 되었고, 왜 사회가 책임져야 하는지 

전쟁으로 인한 고통이 가정안에서 어떻게 발생하고 있는지 

주디스 루이스 허먼에게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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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의 역사 에코 앤솔로지 시리즈 2
움베르토 에코 지음, 오숙은 옮김 / 열린책들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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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니그로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니그로> (미국초판, 1798)

니그로. 호모펠리니그라. 인간 종 가운데 한 변종을 일컫는 이름, 몸 전체가 검은색을 띠며, 열대 기후에서도 아프리카의 남북 회귀선 내의 지역을 중심으로 발견된다. 흑인의 피부색은 저마다 색조가 다양하다. 그러나 니그로는 피부색은 말할것도 없고얼굴의 모든 특징에서 나머지 인간들과 크게 다르다...... 가장 악명높은 악덕들은 이 불행한 인종의 몫으로 보인다. 게으름, 배신, 복수심, 잔인한, 뻔뻔스러움, 도둑질, 거짓말, 불경스러움, 방탕함, 추잡함, 무절제 등등 이른바 자연법칙의 원리를 소멸시켰고, 양심의 꾸지람을 침묵시켰다고 일컬어지는 악덕들을 지니고 있다. 

추의 역사는 편견의 역사이고, 인간 어리석음의 역사이며 욕망의 역사이기도 하다. 

어리석음은 가끔 반전의 해학도 있고, 욕망은 가끔 아름답기도 하지만 편견이야말로 진정 추하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이 백인 인텔리들을 위한 사전이라는 것을 잊지 않으려고 

니그로의 악덕에 대한 저 저주스런 나열은 사실 모두 성서를 손에든 백인들에게 어울린다. 

백인들이 실은 자신들이 추하다는 걸 아는것 같아. 


사탄의 모습이 서서히 중화되는 동안, 적을 악마화하는 경향은 커져서 적이 사탄의 특성을 부여받게 되었다...... 고대 이후로 적은 항상 타자, 외국인이었다. 적의 모습은 우리가 생각하는 미의 규범에 맞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고, 그의 식습관이 다르면 사람들은 그의 냄새를 싫어했다. 

전쟁을 피해 제주도에 왔다가 온갖 혐오와 모욕을 경험해야 했던 난민들 생각이 나네. 


만약 흡혈귀가 송곳니에서 피를 뚝뚝 흘리는 박쥐의 형태로 나타난다고 해도, 그것이 하는 일이라고는 겁주는 게 전부이기 때문에 이경우는 그다지 불안하지 않다. 그러나 우리 중 누군가가 흡혈귀하는 이심 -확신이 아니라- 이 들때에 불안감은  훨씬 커진다. 

추는 방대하다. 아름답지 않는것은 모두 추인 가봐. 

추의 역사는 무엇이 아름다운것인가에 대한 관념의 역사이기도 하다. 

공포도 추다. 그래서 죽음도 추함의 한 주제다. 

그러고보니 죽은자들의 세상, 혹은지옥에 대한 상상이 많기도 하다. 


사르트르의 시대에 오면 드디어 영원히 고문당하는 것이 아니라, 문이 닫혀 있고 항상 전등이 켜진 호텔방에서, 전에 한번도 서로 만난적 없는 세사람이 영원히 같이 지내야 하는것이 지옥이다. 

교도소의 조건과 비슷하다. 

"붉게 달군 포락은 전혀 필요 없군.  지옥이란 다름아닌 타인들이야."

현대의 지옥, 사르트르에게 동의한다. 



2. 

인류가 기록을 남기기 시작한 이후부터 추의 역사를 서술하며 각각 페이지마다 그 특성에 대한 예의 작품들, 

문학과 그림, 조각 등등을 인용해 놓았다. 

시원한 도판, 두꺼운 책장, 원작의 작품들을 보여주기에 적합하게 편집되어 화려하다. 


무엇보다 감탄스러운 것은 책을 읽고 분류하기 좋아하는 에코, 자신이다. 

근대, 계몽주의, 백과사전파의 후예 인가봐. 

고전부터 자본주의 현대까지 망라하는 방대한 독서력에 놀란다. 


박학다식한 에코는 평생을 자기가 흥미롭다고 생각하는 주제를 연구하고 공부했다. 

그래서 다산선생처럼 지식의 편력을 분류하고 총화하여 계보를 만드는것에 몰두한 것으로 보인다. 

그에게 흥미로웠던 작업이 나에게도 흥미로우니 고마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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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자 - 상
오타 아이 지음, 김은모 옮김 / 엘릭시르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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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슈지는 그런 자신에게 화가 났다. 과거의 상처를 극복하지 못하고 마음을 닫은 인간, 마치 얼굴 가득 굵은 글씨로 "날 내버려둬. 하지만 도와줘." 라고 써놓은 듯한, 그런 성가신 인간이 슈지는 푸른빛이 도는 고등어 초절임보다 더 싫었다. 

책장을 열면 한꺼번에 우루루 인물들이 쏟아져 나오는데, 캐릭터가 선명해서 좋다. 

슈지와 소마, 그리고 야리미즈 

주요 캐릭터들이 상처가 있는 사람들이라 서로 냄새를 아는 것처럼 공감한다. 


경찰관료사회의 모두가 묵인하는 관례화된 비리에 동참하지 않아 왕따인 소마 

원칙을 신주단지처럼 모시니 가끔 답답하고 무뚝뚝하지만 유능한 경찰이다. 


슈지또한 죽마고우들 사이에서 발생한 폭력과 불행이 왜 내게 온것이냐고 

내가 왜 소년원을 가고 죄인이 되어야하냐고 분노하지 않는다. 피해를 당한 친구에게 매달 돈을 보내며 묵묵히 일한다. 

어릴때 불운을 당해 세상에 대한 신뢰가 없기 때문에 오히려 융통성과 순발력이 있고 의연하다. 

유별난 냉정함과 도를 벗어난 무모함, 이라고 소마는 슈지를 판단한다. 


늘 진지한 소마와 슈지에 비해 아리미즈는 가볍다. 무거운 분위기를 밝게 해주는 날라리 탐정스타일의 캐릭터

방송국출신답게 재치있고 감각이 좋다. 무엇보다 두뇌회전이 빠르다. 

이 세사람의 팀풀레이가 스토리를 잘 받쳐준다. 


긴 이야기가 지루하지 않아. 

이윤을 위해 사람의 안전도 외면하고 문제가 발생하자 은폐하며 사람도 죽이는 거대기업과 

그 기업에서 커미션을 받은 거물 정치인, 스스로 부패의 주체인 경찰관료사회 

살인사건을 통해 이 모든 것을 하나하나, 천천히, 자연스럽게 원인과 결과를 추적해 나간다. 

여러 사람의 입장에서 번갈아 서술해서 다면적인 사실확인을 하고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구성해 무겁고 진지하고 긴 이야기가 지루하지 않다. 

산업폐기물 문제, 질병의 책임을 개인에게 전가하는 문제, 사람들의 편견과 언론의 문제등 

자칫하면 오히려 산만할 수 있는데, 오타는 선수다. 말끔하게 정리하며 벽돌을 쌓는다. 

인간적인 캐릭터와 적절한 구성이 잘 어울려있다. 재미가 없을 수가 없다. 

이런식의 정신없는 반전은 확실히 영화 스타일이야. 


소마가 창문을 열자 창문에서 활짝 열어둔 문으로 햇볕 냄새가 실린 바람이 불었다. 

빛 속에서 봄망초가 흔들렸다. 

착한 사람들의 착한 추리소설이다. 



2. 

"세상에는 두 종류의 인간이 있습니다. 유능한 인간과 무능한 인간이죠. 유능한 인간이 사회의 틀을 만들어 경제를 움직이고 무능한 인간이 톱니바퀴로서 단순한 노동에 종사합니다. 어느 시대든지 변함없는 진리예요."

5명의 목격자에 대한 청부살인을 결정하며 핫토리가 말한다.  

자기는 유능하니까 무능한 인간 따위는 죽여도 된다는 거지. 


모리무라는 도리어 기가 탁 막혔다. 

이런 쓸모없는 인간들이 자신을 파멸로 몰아넣을 비장의 카드를 쥐고 있다니...... 무능한 인간이 떼지어 유능한 인간의 인생을 망가뜨리려 하고 있다. 그런 짓은 너무나 부당하고 터무니 없이 교만한 행위다. 

모리무라의 인생을 망가뜨린건 5명의 목격자가 아니라

식품회사를 운영하며 사람보다 돈을 먼저 생각하는 위험하고 무능한 스스로의 판단이다. 참 뻔뻔해. 


정말 이럴것 같아. 

대한항공의 조씨, 아시아나항공의 박씨, 삼성의 이씨,  현대의 정씨, 조선일보의 방씨  

이 사람들은 자기네가 유능해서 무능한 노동자들에게 뭔짓을 해도 된다고 생각해. 

실제로 이 분들은 뭔짓을 해도 처벌받지 않더라고 

대법원이 대통령과 거래하고, 별짓을 다하니 그 밑에 판사들은 대기업 범죄자들에게 돈 받고 눈감아 주고 그러는 거지. 

돈이 많아 법위에서 노니 무능할 수가 없다. 대통령이 바뀌어도 비슷하것 같아. 


오타 아이는 직설화법으로 말한다. 

"그렇겠지. 하지만 네 사정은 달라져. 내 샘플은 내가 죽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만 '사사키 구니오'가 이어받을 거야. 그 '사사키 구니오'를 죽여도 그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고 다음 '사사키 구니오'가 나타날 거고, 마자키가 죽었음을 알고 우리가 '사사키 구니오'를 이어받은 것처럼 말이야. 네가 아무리 죽여도 '사사키 구니오'는 죽지 않아."

이말을 하기 위해, 사사키 구니오의 바보 같은 신념을 말하기 위해 두권으로 된 소설이 필요했다. 

정의에 대한 이런식의 솔직한 신뢰는 촌스럽고 비현실적인데, 읽다가 울컥 했네. 

오랜만에 재밌는 일본산 범죄소설을 보았네. 


오타 아이를 더 찾아서 읽어봐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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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데우스 - 미래의 역사 인류 3부작 시리즈
유발 하라리 지음, 김명주 옮김 / 김영사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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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사독 쌤들과 단톡방에서 총균쇠를 본후 인류의 미래에 대한 전망을 읽다. 

총균쇠만 못하다. 

다이아몬드에게 있는 사피엔스 종에 대한 신뢰가 하라리에게 없는 까닭이다. 

유발 하라리, 효율적인 사고에 익숙한 사람의 명쾌한 의견을 잘 들었다. 

피할수 없는 일이 생겨 로쟈쌤의 특강을 못들은 것은 아쉽네. 



2. 

역사상 처음으로 너무 많이 먹어서 죽는 사람이 못 먹어서 죽는 사람보다 많고, 늙어서 죽는 사람이 전염병에 걸려 죽는 사람보다 많고, 자살하는 사람이 군인, 테러범, 범죄자의 손에 죽는 사람보다 많다. 21세기 초를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은 가뭄, 에볼라, 알카에다의 공격으로 죽기보다 맥도날드에서 폭식해서 죽을 확률이 훨씬 높다. 

확률에 대한 신뢰는 근대 서구 학자들의 특징이다. 공리주의의 습관이기도 하고. 

팩트를 정확히 보는데 효율적이고 설득력을 갖기 쉬운 방식이라 의미 있다. 

그러나 확률을 또렷이 본다고 성찰이 깊어지는 것은 아니다. 


2012년 전 세계 사망자 수는 약 5,600만 명이었는데, 이 가운데 62만 명이 폭력으로 죽었다(전쟁에서 죽은 사람이 12만명, 범죄로 죽은 사람이 50만명이었다). 반면 80만명이 사망했고, 150만 명이 당뇨병으로 죽었다. 현재 설탕은 화약보다 위험하다. 

사실 나는 엉성한 추론을 반복하며 근거를 제대로 제시하지 못하는 주장을 더 싫어한다. 

정확한 팩트의 확인은 그 자체로 현실을 정확히 보게 해주는 미덕이 있다. 


근대성은 일종의 계약이다. 우리 모두는 세상에 태어나는 날 이 계약에 서명하고, 죽는날까지 이 계약의 통제를 받는다.

미국과 유럽 백인 남성의 계약이지. 한국여성의 계약은 아니다. 

매우 불평등한 당신들의 계약이 나의 삶에 영향을 준다는 것에 동의한다. 


근대에 어떤 모토를 붙인다면, 그것은 '개같은 일들이 일어나기도 한다'가 될 것이다. 

맞아. 이런 문장이 재밌다. 시원시원해. ^^  


실제로 오늘날에도 미국 대통령들은 성경에 소을 얹고 취임선서를 한다. 마찬가지로 미국과 영국을 포함한 전세계 많은 나라에서 법정에 서는 증인들 역시 성경에 손을 올리고 오직 진실만을 말할것이며 진실이 아닌 것은 어떤 것도 말하지 않겠다고 맹세한다. 허구, 신화 그리고 오류가 넘쳐나는 책에 대고 진실을 말할 것을 맹세하다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가 없다. 


초인적 지능을 지닌 사이보그가 살과 피를 지닌 보통 사람들을 어떻게 대할지 알고 싶은가? 그렇다면 인간이 자기보다 지능이 떨어지는 동물 사촌들을 어떻게 대하는지 보면 된다. 

그 방식은 나찌의 유대인 학살과 매우 닮았다. 

농장에서 키우는 가축화된 동물들의 운명을 특히 사납게 만드는 것은 단지 죽는 방식이 아니라, 그 동물들이 사는 방식이다. 

그러니까, 아우슈비츠에 끌려가 노동하던 사람들의 사는 방식말이지. 


"경험하면 기록하라. 기록하면 업로드하라. 업로드하면 공유하라."

ㅎㅎㅎㅎㅎ 

학습하라. 선전하라. 조직하라. 가 낡은 구호라는 것을 이보다 더 잘 알려주는 슬로건이 있을까. 



3. 

건강, 행복, 힘을 추구하는 인간은 더이상 인간이 아니게 될 때까지 자신들의 모습을 한번에 하나씩 점진적으로 바꿔나갈 것이다. 

마침내 죽음과 노화를 극복하여 신이 될 때까지. 

전지구적 자본주의 사회 인류의 미래다. 

참으로 근대적이고 백인남성적인 미래전망이다. 

신이된 인간, 혹은 사이보그가 지배하는 미래에서 다수의 인간은 동물처럼 사육될 것이라는 말이지.

아마도, 그럴수 있겠다. 이미 그런 목표 거대 자본은 신이되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는 말이다. 


순전히 우연으로 진규선배가 추천해준 반전의 시대(이병한, 서해문집) 를 함께 읽었다. 

자본주의 이후 인류 문명에 대한 전망까지는 아니고, 다만 근대의 패러다임이 풍미하던 시대가 지고 있으니 

새 시대를 준비하는 새 논리로 동방의 옛 질서에서 미래의 대안을 찾자는 제안이다.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았는데, 그럴듯한 제안이라고 생각했다. 

중국, 인도, 인도네시아를 비롯한 동방의 인구가 인류의 다수다. 

유발 하라리가 계약한 근대는 이 사람들의 동의를 받고 있지 않다. 


그리하여, 아직 사피엔스인 나는 질문한다. 

정말, 인간이 데우스가 될까? 

백인남성들의 전망 말고, 한국여성인 나의 전망은 무엇을 목표로 해야 마땅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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