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존 - 코펜하겐 삼부작 제3권 암실문고
토베 디틀레우센 지음, 서제인 옮김 / 을유문화사 / 2022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도서협찬)
바로 이 책을 읽기 위해서 앞선 두 권을 읽어야만 했던 것이 아닐지. 덴마크 작가 토베 디틀레우센의 회고록 마지막 권 <의존>. 시와 함께 어린 시절과 청춘을 견디며 이제 어엿한 작가가 된 토베.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문학을 넘어선 삶이다. 문학이 곧 삶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삶은 언제나 그렇듯 기대를 배반한다.

3부에 들어서니 건조한 문체가 새삼 돋보였다. 이혼과 임신 중절 등 한 사람의 생애에 있어 결코 작은 일이 아니었을 심각한 사건들도 별 거 아니라는 듯 간단히 서술된다. 문장과 문장 사이에 생략된 감정들도 여럿이다. 저자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가뿐하다. 그러나 때로는 담담한 서술이 깊숙히 폐부를 찌르기도 하는 법. <의존> 속 토베를 생각하면 홀로 서보려는 앙상한 나뭇가지의 이미지, 혹은 끝없이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그릇의 이미지가 계속해서 떠오른다. 남자들도, 아이들도, 소설들도 토베의 빈 곳을 채워주지 못한다. 결국 그녀가 닿은 곳은 의존의 세계 - 약물이다.

책 소개 어딘가에서 이 작품이 엘레나 페란테의 글들을 연상시킨다는 구절을 본 것 같은데, 마지막 권을 읽으면서 나 역시 페란테를 생각했다. 그러나 토베의 글은 더욱 단단하고, 건조하고, 황량하다. 자기 연민 없이 그저 곧게 뻗어나가 기어이 탈선해버리는 이야기. 이 가감 없는 리얼함이야말로 이 작품이 뒤늦게 주목 받았던 이유가 아니었을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정한 서술자
올가 토카르추크 지음, 최성은 옮김 / 민음사 / 2022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최근 읽은 비슷한 류의 책들 중 가장 좋았던 올카 토카르추크의 <다정한 서술자>. ‘읽는 기쁨이란 이런것이었지‘하고 온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깊은 사유, 통찰력, 그리고 그것을 적확하게 담아내는 문장. 나에게는 꼭 이런 문장이 필요했다. 날카로우면서도 동시에 낙관적인 문장이.



책 속에 담긴 에세이와 강연록은 저자가 작가 혹은 예비 작가들에게 건네는 말로 꾸려져있지만, ‘글쓰기‘를 ‘삶을 살기‘로 바꾸어 읽어도 무방하다. 누구나 비대해진 자아를 끌어안고 살아가는 이 시대에 어떤 글을 써야 하는가 하는 물음은 결국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와도 닿아있기에. 저자는 그 해답을 ‘다정한 서술자‘에게서 찾는다. ‘나‘에 국한되는 일인칭 서사가 아니라 연결된 전체를 아우르는 사인칭 관찰자 시점을 가질 것. ‘연민의 상상력‘을 가지고 ‘새롭고 고통스러운 방식‘으로 대상을 바라볼 것. 그리고 그것을 가능케 해주는 것은 바로 문학이라고, 저자는 거듭해서 말한다.



‘오로지 문학만이 우리로 하여금 다른 존재의 삶 속으로 깊숙이 파고 들어가서 그의 당위성을 이해하고, 그들의 감정을 공유하고, 그들의 운명을 체감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351p)



인간 중심 주의에서 벗어나 세상에 나라고 할 것이 없음을 알고,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음을 보기. 이것은 매 순간 우리의 내면에서 성취되어야 한다. <다정한 서술자>에 따르면 우리는 문학을 통해서 바로 이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관점과 시각‘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문학이 아우르는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캐릭터의 내면을 탐험하며, 신화와 우화의 세계에 발을 담그며, 우리는 우리 자신이 세상의 모든 것과 연결되어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문학을 읽는다는 건 생을 여러번 사는 것과 같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무엇보다 문학이라는 이름의 이 모든 현상에서 본질은 ‘읽기‘이므로 나는 여러분이 ‘쓰기‘가 아닌 ‘읽기‘에 몰두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187p)



결국 문학-읽기, 그것이 우리를 구할 것이다. 올가 토카르추크의 단단한 문장을 따라가노라면 정말로 그럴 수 있으리라고 믿게 된다. 나는 이 낙관적인 믿음이 너무, 너무 좋다.



www.instagram.com/vivian_books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다운 게 뭔데 - 잡학다식 에디터의 편식 없는 취향 털이
김정현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2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좋아하는 것에 대해 말하자면 처음 보는 사람과도 마치 영혼의 짝궁을 만난 것처럼 신나게 이야기할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런데 좋아하는게 한 두개가 아니라면? 우리의 대화는 시간가는 줄 모르게 끝도 없이 이어질 것이다. 바로 그 끝도 없는 대화 속으로의 초대장, 에세이 <나다운 게 뭔데>.

가식없이 솔직하고 유쾌하며 열렬하기까지한 저자의 취향 고백은 속도감 있게 읽힌다. 마치 경쾌한 실로폰 연주처럼. 그러니까 이 책은 취향 편식 없는 에디터가 부르는, 좋아하는 것들을 위한 찬가다. 사실은 유명해지고 싶고, 뛰어난 창작자들을 질투하고, 좋아하는 것엔 과하게 열정적이고. 이런 솔직한 마음도 사실은 너무 진심이기에 나오는 것들 아닌가. 몇 번이고 ‘아 저도 그래요!‘하면서 맞장구 치면서 읽었다. 취향의 시대를 사는 사람으로서, 좋은 콘텐츠를 만드는 이들을 부러워하는 사람으로서 동지를 만난 기분으로. 눈 앞에 앉아있는 사람과 대화를 나누는 것처럼 물흐르듯 재미있게 읽힌다는 점도 좋았던 포인트.

공감가는 구절이 정말 많았는데, 하나만 꼽자면 ‘다 내려놓고 싶어질 때 나를 어디로 데려가야 할지 알고 있다는 건, 정말 든든한 자산이다(145p)‘라는 문장. 기분이 다운될 때 찾는 카페, 미술관, 음악, 책 등등 나를 비호해줄 취향의 리스트를 끝도 없이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서 이런 마음을 정말 정확히 그려내는 문장이라고 생각했다. 이것도 저것도 좋아하는 드넓은 취향의 스펙트럼은 응급시에도 도움이 된다. 취향의 세계를 누비다보면 금방 행복해지니까. 내 취향을 안다는 것은 결국 내가 좋아하는 것을 안다는 말이고, 이것은 곧 나 자신을 안다는 말과도 같다.

최근에 너무나 좋아하는 웹소설(!) 이야기를 하다가 상대로부터 눈이 반짝거리고 목소리에 생기가 느껴진다는 말을 들었었는데, <나다운 게 뭔지>를 읽으면서 상대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정말로 좋아하는 것에 대해 말할 때, 그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행복과 즐거움이 이 책에서도 느껴졌으니까. 읽는 동안 즐거움을 보장해주는 책. 좋아하는 것들이 많은, 취향 수집가 동지들에게 특히 추천.

+ 책 속에 소개된 천 번 봐도 천 번 우는 마법의 영상, 절대 안 울려고 했는데 역시나 감동받은 나머지 무한반복 중. 궁금하신 분들은 책으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청춘 - 코펜하겐 삼부작 제2권 암실문고
토베 디틀레우센 지음, 서제인 옮김 / 을유문화사 / 2022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도서협찬)



토베 디틀레우센의 코펜하겐 삼부작 중 두번째 <청춘>. <어린시절>에 이어 시인이 되기를 갈망하며 보낸 저자의 청년기가 담겨있는 책이다. 대개 청춘은 인생의 봄, 즉 고통스럽지만 아름다운 시절로 포장되지만 저자의 청춘은 그와는 거리가 멀다. 저자는 여러 직장을 전전하며 생계유지형 일자리를 얻고, ‘여자는 빨리 결혼해서 가정을 꾸려야 한다‘는 시대적 가치관 아래 갈등한다. 그런가 하면 이 시기는 히틀러의 집권기와도 맞물려 정치적 불안에 휩싸인 시기인지라, 저자 또한 시대적 흐름의 영향 아래 무관하지는 않다. 건조하게 묘사되는 ‘당장이라도 없애버리고 싶은 하나의 결함이자 방해물‘인 저자의 청춘에도 유일하게 붙잡을 것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시다.



저자의 모든 초점은 시에 맞춰져 있다. 시를 쓸 시간을 확보하는 것, 시를 읽어줄 사람을 찾는 것, 자기만의 방에서 시를 쓰는 것, 시인이 되는 것. 저자가 법정 성인이 되어 집에서 독립할 날만을 기다리는 이유도 홀로 시를 쓰고 싶기 때문이며, 저자가 끌리는 남자들은 그에게 시인이 되는 법을 인도해줄 수 있을 것만 같은 이들이다. 저자에게 시는 유일한 숨구멍이자 구원이며 그 앞에서는 생계형 일자리도, 연애도, 가족도 전부 부차적인 것들로 보인다. 저자는 시인이 되고자 하는 꿈에 어떻게 닿을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언젠가는 꼭 닿을 수 있으리라 믿으며 청춘을 견뎌나간다.



‘왜 그토록 간절한지는 모르겠지만 어둡고 구불구불한 길을 지나 다가가고 있는 목표‘. 책의 말미에 이르러 시집을 출간하며 끝끝내 그 목표에 성큼 다다른 저자의 모습은 그 자체로 아름답게 느껴진다. 기적을 바라는 사람들 중에 그것을 구체적으로 꿈꾸는 사람은 적고, 행동하는 사람은 더 적다. 구체적으로 꿈꾸고 행동하는 사람이었던 저자가 결국 큰 기적을 마주하게 된 건 당연한 일이다. 시인이 되고자 하는 꿈이 어떻게 이루어질지는 몰랐지만, 언젠가는 이루어질 것을 믿었기에.









www.instagram.com/vivian_books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의 차가운 일상 와카타케 나나미 일상 시리즈
와카타케 나나미 지음, 권영주 옮김 / 내친구의서재 / 2022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색다른 탐정 캐릭터를 만나고 싶다면. 와카타케 나나미의 일상 시리즈 두번째 <나의 차가운 일상>. 큰 사랑을 받은 전작 <나의 미스터리한 일상>에 이어 국내에 처음으로 소개되는 작품이다. 전작이 사보에 단편 소설이 하나씩 게재되는 형식이었다면 이번 작품은 와카타케 나나미가 탐정으로 전면에 나서 사건을 해결하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작가 와카타케 나나미의 초기 걸작들 중 하나다.

<나의 차가운 일상>은 주인공 와카타케 나나미가 친구 다에코의 자살 미수 사건을 둘러싼 진실을 파헤치는 여정을 그리고 있다. 예리하고 차가운 분위기의 사건과 진상을 알아내고자 우당탕탕 고군분투하는 주인공의 면모가 뒤얽히는데, 무척 흡입력있다.

사건이 진행될수록 드러나는 건 인간의 복잡미묘한 감정들이다. 소설 속에서는 회사 내에서의 따돌림, 연애, 불륜, 질투 등등이 생생하게 그려진다. 그야말로 알 수 없는 것이 인간의 마음. ‘당신이 뭘 알죠? 알 수 있다고 생각은 하겠죠. 하지만 실제로는 아무것도 몰라요.‘ 하는 작중 인물의 말이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사건의 퍼즐을 맞춰나가는 주인공 역시 감정적인 고뇌를 반복하는 인물니다. 왜 이들은 이런 일을 벌였을까? 생각하며 진실을 밝혀나가는.

즉, 이 작품의 매력포인트는 단연 주인공이자 탐정 역할을 하는 와카타케 나나미 캐릭터다. 어딘가 허술해서 더 인간적인 탐정. (<나의 미스터리한 일상>에 이어 작가의 이름을 딴 인물이 전면에 등장!) 그는 사건을 해결하고자 무턱대고 회사에 잠입하지만 이내 초조해하고 불안해한다. 피곤해하고, 출근하기 싫어하는 등의 현실적인 모습을 가감없이 드러내는 탐정이다. 기존의 탐정 소설에서 찾을 수 있는 냉정하고 이성적인 류의 탐정들과는 전혀 다른 캐릭터다. 소설을 읽는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아서 더 정이 가는 캐릭터. 그래서 주인공이 손을 뗄까 말까 고민하면서도 끝끝내 사건을 해결해가는 여정을 따뜻하게 지켜볼수밖에 없게 된다.

단편들을 야금야금 읽다가 큰 그림으로 맞춰보는 재미가 있었던 전작 <나의 미스터리한 일상> 그리고 그보다 조금 더 서늘하고 어두운 분위기의 장편소설 <나의 차가운 일상>. 부담없이 쭉쭉 읽기 좋은 탐정 소설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곁에 두고 싶어지는 류의 소설!

www.instagram.com/vivian_books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