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늘 내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책 정리를 하려고 했다.

실제로 큰 마음을 먹고 실행에 옮긴 것도 여러번이었는데 그때마다 중도에 지쳐서 될대로 대라 하고 손에 잡히는 대로 쌓아 올려버려서 애초에 놓여있던 공간에 먼지만 겨우 걷어낼 정도로 끝나곤 했다. 거의 대부분의 정리가 그랬다.

 

나는 책을 이렇게 구분했다.

내 방에는 열다섯 개의 구를 가진 책장이 두개있다. 

책장 하나를 가득 채운 것은 장르 소설인데 3분의2의 SF&판타지와 3분의1의 추리&미스테리로 구성되어 있다.

일본 소설은 추리,미스테리쪽이지만 따로 분류했다.

나머지 책장은 한국 소설과 세계문학, 에세이 그리고 일본 소설로 채워졌다.

일본 소설의 절반은 미미여사이고 나머지는 하루키와 히가시노 게이고, 오쿠다히데요, 이사카고타로 등의 이름이 속해있다

한국소설과 세계문학은 각각 세개의 구를 차지하고 있다.

책상 위도 모니터 옆 공간에 역시나 책꽂이가 있는데 그 곳엔 내가 애정하여 자주 꺼내보는 책들을 꽂아두었고,

책상 아래엔 창간호부터 모아온 잡지인 스켑틱과 미스테리아를 따로 쌓아놨다.

꽤나 오래 전 부터 모으기만 해서 책장에 한 줄만 채우면 바닥에 주저 앉을 책들이 많아지기에

책장의 각 구마다 책이 앞,뒤 두 줄로 세워져 있고, 위쪽의 남은 공간도 역시 앞,뒤로 책을 겹쳐놓았다.

그래서 숨도 못 쉬게 답답한 모양새다. 

이렇게 해도 책장에 들어가지 못한 책들이 한가득이라 창문을 정면으로 보고 ㄷ자 형태로 바닥에 나머지 책을 둘러놨다.

아파트는 튼튼할테지만 쓸데없는 잔 걱정이 많은 내가 한쪽에 무게가 쏠리지 않도록 나름 신경 쓴 배치다.

 

언제나 정리는 내 기호의 우선 순위인 장르 소설쪽을 먼저 시작했다.

새로 구입해서 바닥에 놓여져 있던 책을 이리저리 치워가며 비슷한 장르와 작가별로 분류를 한다.

스티븐킹와 제프리디버와 로버트해리스, 마틴옹의 책들을 모아 앞으로 두고 시리즈가 중단된 작가는 뒤쪽으로 간다.

장르 소설의 작가별 분류가 끝나면 일본 소설로 넘어가는데 이때쯤 서너시간이 지난 시점이고, 난 지쳐있다.

그래서 세계문학과 에세이, 한국 소설쪽은 꽂힌 그대로 두고 먼지만 털어내기가 일쑤였다.

 

바닥에 쌓인 책들은 시간이 갈수록 쓰러지고, 위쪽의 책에 눌려 모양이 이그러져서

이러다간 눌린 자국을 펼 수도 없겠다 위기감을 몇 달간 느끼다가 드디어 얼마 전에 공간 박스를 샀다.

그리고 서울 여행을 떠나기 바로 전 날인 금요일에 아버지의 전동드릴을 가져온다.

 

 

     영차! 영차!

 

 

   ?????????

 

 

아니 왜 공간 박스를 9개나 조립했음에도 바닥에 책은 그대로지?

공간 박스의 너비가 생각보다 좁아서 두개의 열로 끼우지도 못하고, 눕히기도 세우기도 애매한 상태가 되어버렸다.

정리를 한 것도, 그렇다고 안 한 것도 아닌 이 어정쩡한 상태를 어찌하면 좋을까?

 

바닥에 앉아 손을 머리에 포갰다. 그리고 일어서서 장르 소설쪽으로 갔다.

구입 한지가 오래된 책들을 하나씩 뽑아서 현관문 앞에 놓아둔다.

어느새 엄마가 들어와 한쪽에 쌓인 책 무더기에 걸터 앉아 잔소리를 시전한다.

그러게 그만 좀 사라니까. 하루 종일 매달려도 다 정리도 못하고, 밥도 안 먹고, 뭐 하는 짓이니?

시간이 있어서 하는거지. 이런 거 정리하라고 주말이 있는거야. 내 대답에 엄마는 눈을 흘긴다.

그만 째려보고 나 커피 좀 줘. 내 부탁에도 엄마는 도통 방에서 나갈 생각이 없어 보인다.

현관 앞에 책들은 왜 내 놓은거냐? 팔거야. 내가 무뚝뚝하게 대답을 하자 엄마가 헛웃음을 켠다.

애써서 사서 이젠 판다고? 제 값도 못 받고 아까워서 어째.

돈 벌려고 파는 거 아냐. 엄마가 나를 빤히 쳐다본다. 나 역시 엄마를 힐끔 쳐다보며 책을 또 하나 빼낸다.

이미 읽었고, 다시는 안 볼것 같은 책을 꺼내 수건으로 먼지를 살살 털어낸다. 그리고 말했다.

새 책으로 채울 공간을 확보하려고 파는거야. 엄마가 한숨을 쉬며 일어섰다.

나 커피 줘. 난 엄마의 뒷 모습에 대고 다시 한 번 말했지만 대답 없이 방문이 닫혔다.

지친다. 바닥에 어질러진 책을 한쪽에 밀어넣고, 대충 쌓아올리기 시작했다.

 

일요일에 남동생은 일찍 집으로 왔다.

직장이 천안인 남동생은 반나절만 머물수 밖에 없고, 자는 것 말고는 하는 일이 없음에도 굳이 본가에 왔다.

난 남한산성을 머리맡에 두고 잠든 남동생을 흔들어 깨워 집 근처에 새로 생긴 알라딘 서점에 갔다.

막상 팔려고 하니 그마저도 아쉬워 몇권은 두고 나왔음에도 제법 묵직한 두개의 쇼핑백을 카운터에 쿵하고 올려 놓는다.

남동생은 직원이 책을 하나하나 들어 먼지를 닦고, 분류하는 작업에 지루 했던지 서가를 돌며 구경 중이었고,

난 가만히 서서 그 과정을 지켜보고 있었는데 막 지루함이 들기 시작할 때쯤 직원이 고개를 든다.

안경을 썼고, 검은색 티를 입었는 데 손에 낀 하얀 목 장갑이 튀지도 않고 잘 어울리는 차림이었다. 

확인 할게요. 직원이 말했다. 여기서 빼낼 책은 없는 건가요?

없어요. 내 대답이 너무 빨리 나가서 스스로 놀라워하고 있을때 직원이 책을 들어 바코드를 찍기 시작한다.

그 와 동시에 내 책들이 나를 떠나가기 시작했다.

소장한지 십년이 넘어서 색도 바래고 윗쪽에 먼지도 쌓여있던 책들은 최저가로 균일한 금액이 찍히고 있었다.

열두 권째가 찍힐 때쯤 이 가격에 파는 거면 그냥 가져가는 게 나은 걸까? 생각이 잠시 들었다.

하지만 난 그 과정을 중단시키지 않고, 지켜 보기만 한다.

서점에 책 보유랑이 풀이어서 팔아줄 수 없다며 아홉권의 책을 돌려 받았다.

그나마 제일 상태가 좋았고, 최근의 책이었는데 서점에 들른 대다수의 사람을은 소장과 비소장의 구분이 나와 비슷한가보다.

갑자기 웃음이 나왔다.

 

총 23권이고 19600원입니다. 직원이 말하며 다시 한번 묻는다. 빼낼 책은 없는 거죠?

없어요. 이번에도 대답은 빨랐다. 알라딘 예치금으로 넣어주세요.

남동생이 다가와 내 손에서 되 돌려 받은 책이 든 쇼핑백을 받아간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남동생에게 나의 이상한 기분을 털어놓았다.

무언가 서운한 감정이 들면서도 딱히 그 책들을 다시 내 방으로 가져 올 마음은 들지 않았노라고

이렇게 파는게 현명한걸까? 이 질문에 그렇다라고 대답을 못 하면서, 아니라고도 말을 못하겠다고.

생각이 좀 뒤죽박죽인 상태인데 눈물도 날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한다.

 

그럼 팔지 말지. 그냥 그대로 두고 왔냐? 동생의 말에 아마도 이렇게 책을 파는게 처음이어서 그럴꺼야. 내가 대답을 한다.

갑자기 예전 생각이 났다. 한참 폴 오스터에 빠져 있을 때 인상적으로 봤던 책. 

페이지 빼곡히 적힌 글들이 무섭게 찌르며 다가왔던 그의 책들은 한권을 다 읽고 나면 큰 일을 치룬 듯 뿌듯했었다.

그 책에서 주인공이 그랬는데 돈이 없어서 책을 내다 팔고 그랬거든. 내 말에 동생이 무슨책? 이라고 묻는다.

 

 

 


 

  포그의 어머니는 갑자기 죽었다.

  어머니는 미끄러진 버스에 깔려 죽었고, 아버지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보상은 대학생활과 그 후에도 얼마간을 지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그를 보살피던 외삼촌의 죽음으로 그런 계획이 모두 틀어지고 만다.

  그렇게 그에게 경제적으로 힘든 시기가 찾아온다.  

  외삼촌에게 물려받은 책을 가구 삼아 문학 위에서 잠을 자고, 식사를 하던 그는

  어느날 봉인 된 상자를 풀고, 책을 꺼내 읽기 시작한다.

  그에게 새로운 책도 있었고, 이미 읽은 책도 있었지만 그는 상관 없었다.

  외삼촌만의 방법으로 분류된 책 상자에서 빼낸 책을 차례로 읽고나서 한쪽에 쌓아 올린다.

  그리고 그렇게 쌓아둔 책을 들고 헌 책방으로 가서 판다.

 

 

나는 그 책들을 읽음으로써 어떻게든 그에게 진 빚을 갚았고, 

이제는 돈이 너무 궁해진 만큼 다음 단계를 밟아 책을 현찰로 바꾸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일로 보였다

 

서점에 갈 때의 두 손의 무게만큼 무거운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온 나는 아직도 바닥에 내 마음처럼 흐트러진 책들을 본다.

난 번번히 책 가짓수를 줄이려고 노력 했지만 그때마다 망설임을 반복해서 뜻을 이루진 못했다.

드디어 책을 팔게 된 오늘. 난 평소보다 단호했고, 확실했다. 예전에 정말 망설임이 있었는지도 의심스러웠다.


책 정리를 할때 페터회의 뒤쪽으로 다니엘페낙과 함께 자리 잡고 있던 폴 오스터가 생각났다.

손가락과 걸레로 책 위쪽의 먼지를 슬슬 닦아낸 것도 기억났다.

포그는 생활비를 위해 책을 팔았지만 난 아니었다. 하지만 포그와 내가 공통적으로 가진 것이 있다. 

죄책감이다. 포그는 책을 팔기 전에 다 읽음으로써 책을 물려 준 외삼촌에 대한 죄책감을 덜어냈다. 

내가 가진 죄책감은 책들에 향해 있다. 우스운 건 그 죄책감이 어느 상황에서 오는 것인지 확신 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오랜 시간 내 책장에서 먼지만 쌓여있던 책들이 어떠한 사람의 손에 들려 다시 한번 제 기능을 하게 해 주는 것이 맞는 것인지. 그렇다고 한다면 너무 오래 책장에 가둬둔 것은 아니었는지. 아니면 언젠가는 다시 읽으리라 다짐했지만 결국엔 먼지만 묻힌 채 내 곁을 떠나게 한 것에 대한 미안함인지. 그것도 아니면 그저 내 물건에 대한 강한 애착으로 발생한 아쉬움인지.

모두 다 아니면 내가 있는 공간은 포화 상태였고, 조금의 틈이 필요했고, 새로운 걸 채워놓고 싶은 마음에 헌 책을 떠나보냈을 뿐인 단순함에서 오는 것인지. 


문득 포화 상태인 것은 내 방만이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나에게 필요했던 조그마한 틈이 과연 책 때문일까?


나는 오늘 책을 팔았다. 나는 이 결정을 잘 내렸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난 이상하리만큼 서운하고, 씁쓸하고, 아쉬웠다. 당분간은 계속 그럴터였다.

 

이젠 다른 이야기를 해보자. 줄거리가 희미함에도 달의 궁전을 다시 보고 싶은 마음이 들진 않는다.

내 기억에 그의 사람들은 늘 끝에 몰려있다. 작가는 책 속의 인물들을 감탄하리만큼 잘 쓰여진 글자로 위협했다. 

또다시 그 부분을 읽고 싶지가 않다. 지금 당장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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