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어인문잡지 삐라 2호 - 죽음
삐라 편집부 / 노트인비트윈 / 2014년 6월
평점 :
품절


그 아이들은 농담조로 말하며 제가 누구를 좋아하는지 캐내려 했어요. 그래서 저는 솔직하게 나는 아무도 안 좋아한다고 말해주었죠. 그러자 아이들은 몇 번이고 계속해서 물어보더군요. 그러는 내내 저는 닥치라고 소리 질렀고요. 마침내 그 아이들은 내가 여자를 좋아하기 때문에 누구를 좋아하는지 이야기하지 않는 거라는 결론을 내렸죠. (...) 자라면서 제가 이성애자 외에 그 어떤 것일 수 있다고 생각해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거든요.



 


??? 미친 거 아님? 나라도 그 아이들 다 버스 창 밖으로 던졌을 듯. 하지 말라는데 왜 계속 해? 죽을 때까지 해봐? 아무튼 짧지만 맨 끝에 무성애자에 관한 글이 나오는 게 인상적이었다. 퀴어잡지에 나오는 게 좀 새롭긴 했지만 그래도 반투명인간 2권을 지르지 못한 내 한이 조금이나마 풀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ㅠㅠ



생각해보니 명절날 고의 아니게 이런 책을 본다. 뭐 딱히 저항하려 하는 건 아니고 조상님께 제사도 지냈으며(...) 읽던 책 끝까지 마저 읽던 거니 괜찮겠지. 표지 글씨가 매우 작은 데다가 글씨 색채를 잘 보이지 않도록 설정해서 다른 사람들에겐 무슨 책을 읽는지 분간하지 못하도록 해 놓은 점 또한 훌륭하다. 3권 이후로 소식이 없는데, 개인적으로는 4권도 나왔음 하고 바란다.



 


지금은 좀 덜한 듯하다. 그만큼 잘 사는 세상이 된 것이다. 하지만 옛날에는 '죽는 게 차라리 더 편했겠네.'라던가, '이 고통스러운 세상 차라리 죽는 게 나았으니 잘 되었네'라던가, '고통 없이 갔으니 잘 됐네'라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아마도 세상에서 죽은 사람 가지고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란 지적이 많아져서 드물게 된 게 아닌가 싶다마는. 문제는 못 사는 사람들이 죽을 때 이런 소리를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세월호 때는 어떤가? 죽은 아이들 중 학교에서 요즘 유행하는 왕따를 주도했을지도 모를 아이들이나 왕따를 당했을 아이도 있을 거라며 잘 죽었다는 사람도 본 적이 있다. 이 경우는 좀 극단적일지라도, 정체성과 생계의 곤란 때문에 자살한 사람들에게 우리는 어떤 말을 하는가? 왕따를 가했던 당했던 간에, 인생이 괴롭던 아니던 간에 사람은 모두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죽음에 빠지기보다 살고 싶을 것이다. 어떻게 차라리 죽음을 바라는 사람의 마음을, 죽음을 두려워하는 자들이 헤아릴 수가 있단 말인가. 나는 그런 소리들이 좀 살만한 사람들 입에서 으레 나도는 갑질이라고 생각한다.

 

커밍아웃을 하는 건 솔직하게 살자는 이념과 연결된다. 그러나 다 털어놓으면 상대방에게 살해당할 수도 있는 상황에서 어떻게 솔직히 말할 수 있을까? 짝사랑은 어째서 사랑이 아니란 말인가? 잘못 고백했다가 차이고, 실망해서 짝사랑이란 개념까지 잃어버리면 어쩌란 말인가? 솔직한 사람이 좋은 사람이라느니, 커밍아웃하는 동성애자가 쿨한 부류이고 안 하는 사람은 꽉 막힌 부류라거나, 무작정 프리허그를 해와도 받아주어야 착하다느니, 이런 말을 하는 무리들이 어떤 사람인가를 확인하고 경계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자신을 이해해줄 사람이 어디에도 없을 뿐더러 어디에나 없는 그런 사람들도 있다. 그런 사람들에게 '세상의 반은 여자/남자야'라느니, 허례허식 같은 말은 필요없다. 중요한 것은 일단 그들을 만나는 것이다.

 

그렇다면 커밍아웃을 하지 말아야 한단 소리냐?라는 반발이 있을지 우려했지만 내가 세상을 너무 부정적으로 보는 게 아닌가 싶어 이야기를 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어떤 분이 대뜸 이야기하더라(...)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당연히 근거없이 남을 혐오하는 사람을 나는 혐오한다. 그렇지만, 성소수자에게 커밍아웃을 해야 하지 않아? 커밍아웃을 하면 좋아~라고 강요해서는 안 된다는 소리이다. 몇몇 성소수자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이유로 성소수자들에게 무언가를 요구해도 된다는 그런 근거없는 자신감이 있는 듯하다. 그러나 그 강요당하는 사람에게는 성소수자라는 정체성 말고도 수많은 정체성이 있다. 심지어 난 '성소수자인데 왜 BL물을 좋아해요?' 라는 말을 남성 동성애자에게 들은 적이 있다 하는데... 물론 BL물이 대부분 환상으로 이루어진 것은 맞다. 그러나 성소수자라서 BL물을 좋아하면 안된다는 말이 마치 내게는 '여성들이 BL물을 보니 남자친구 요도에 손가락을 꽂는 걸 좋아한다'라는 근거없는 차별처럼 들린다. 지가 결과가 좋았단 이유로 남들에게 커밍아웃을 강요하는 사람들에게 반박을 해보자면, '성소수자는 착하니까 그러면 안 되는 거 아니냐?' 그런 이야기였다.

 

그럼 어떤 만남이 진정 마음이 통하는 좋은 만남이 될 수 있을까? 어찌보면 간단한데, 그냥 '계급장 떼고' 정체를 모르는 대로 날씨나 물어보며 사람을 대하는 게 가장 상대방을 존중하는 태도가 아닌가 최근 생각 중이다. 가령 나는 사회복지 현장실습에서 지적장애인 작업장을 견학한 적이 있다. 나는 그곳의 직원의 이야기를 듣고, 그 분이 질문할 게 있냐고 물었을 때 '이 기관의 전달체계가 무엇입니까?'라고 물어본 적이 있다. 꽤 격식을 차려서 솔직하게 물어본 것 같은데 그 직원은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고, 내 슈퍼바이저는 '아무리 그래도 처음 보는 사람인데 전달체계 같은 건 미뤄두고 안부인사로 물어보지 그랬냐'라는 슈퍼비전을 남겼다. 명백히 목적이 있고, 실습생이 직원을 만나 질문을 하는 그런 자리임에도 근원적인 정체성부터 이야기하는 건 실례라는 것이다. 이렇게 사람을 만날 때 조심스러워야 함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운동가를 포함하여) 트랜스젠더가 남자인지 여자인지 수술을 했는지 안 했는지를 대뜸 물어본다. 우리는 훌륭한 일을 하는 잘난 사람들에게는 무의식 중에도 언사를 조심하지만, 정작 한없이 감정이 섬세한 소수자들에게는 언동을 경망스럽게 하지 않는 걸 쉽게 까먹는 듯하다.

 

나는 그래서 어떤 사람을 죽어서도 반드시 만날 수 있을거라 단정짓지 않는다. 솔직히 기억에서 지워버리면 대부분의 인간관계는 지워진다. 죽은 사람은 마주칠 확률이 없으니 더하다. 그러니 잊지 않으려는 지속적 관심이 필요한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남'의 죽음보다 당장 내 손이 칼에 베인 게 더 아픈 게 사람 현실이다. 이 책에서의 단점은 과도하게 죽음에 대해 생각한다는 것이다. 인간관계는 무시할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렇게 집착할 만한 면이 있지도 않다고 본다. 내가 세상을 잘 살기 위해서, 내가 사는 세상이 잘 되기 위해서 필요한 게 무엇인지를 생각하는 게 결국 궁극적인 인간관계의 목표가 아닐까?




 


한국어로 '아스톨포 웨딩드레스'라고 검색하면 안 나오는데 영어로 'astolfo wedding'이라고 검색하면 다양한 사진이 나온다. 크로스드레서이긴 하지만 이런 사소한 데서 우리나라가 젠더에 얼마나 꽉 막혀 있는지를 알 수 있었다고 할까(...)


지금 결혼이 시들해져서 어떤 퀴어들은 그에 대해 가볍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은데, 결혼할 수 있어도 안 하는 것과 결혼 못 하는 상황에서 결혼 안 하는 건 천지차이다.

특히 운동권 중에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제도로서의 혼인은 혜택이 많은 편이다. 그건 가족규범이나 성담론 통제와는 다르다. 그쪽은 법보단 결혼문화에 좀 더 가깝다고 할까? 결혼한 사람들에게 이런저런 이점이 많다는 건 법제도 분야에서의 의미인데, '결혼한 사람들이 다 잘 사는 건 아니구만요'라고 맞받아치는 분들이 계신다. 내가 이야기하는 것과 전혀 다른 맞장구를 친다는 이야기이다. 난 분명 문화까진 이야기 안 했는데, 이들은 혼인에 알레르기라도 있는지 혼인 하면 꼭 문화를 들이댄다. 심지어 자신이 동성애자라 소개하는 사람들도 그러는데, 자신의 생각 때문에 다른 동성애자들이 결혼할 권리가 가로막혀 피해를 입는다는 걸 알아줬음 한다.

 

이에 대해 반박하는 사람이 있길래 이 주제에 대해 한마디 더. 이전 동성혼을 찬성하는 자리에서 동성혼이라도 결혼이니 안 된다라는 논박을 해서 큰 혼란이 있었다고 한다. 현재 읽고 있는 책에선 뭐, 3명이 결혼해도 상관없지 않느냐 하고 도리어 결혼의 사회제도를 깨뜨리는 형식인데 왜 안 된다고 하느냐라는 주장이 있다. 이를 무시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실제 그쪽 운동권 분들에게 물어보면 결혼을 반대하는 의외로 많더라. 아무래도 책에서의 말대로 몇몇 분들의 연설에 말려든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즉 내가 줄곧 주장해왔던 것과 책이 말하는 건 결혼이 되느냐는 문제고 사실혼도 결혼과 같은 혜택을 주는 문제와 완전히 다르다. 그런 이론을 동성혼을 논의하는데서 끌고오는 것 자체가 큰 문제란 것이다.

 

누군가를 찍어서 악인으로 몰아가는 건 쉽다.

나와 생각이 다른 자를 존중하기란 정말 어렵다. 애초에 남의 생각이 자신의 생각과 같은지 아닌지도 분별 못하는 사람이 있는 걸 보건대, 그 레벨까지 도달하기가 어려운 사람도 있긴 있는 듯하다.

자기 자신에게 솔직한 것과 다른 사람에게 막말하면서 '닥치고 내 말이나 들어'라는 식으로 행동하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다. 말하기 전에 약자 괴롭히지 말고, 무엇보다 그 자리에서 그런 말을 해도 개무시당하지 않을지 생각은 좀 하고 살자.

 

위 설명에 따르면 '백합'은 여성들 사이의 로맨틱한 우정, 동경, 연애를 모두 의미한다. 우정과 연애 어느 하나로 딱 잘라 말하기 어려운 감정과 관계들, 그 사이에 이름 없이 놓여 있던 감정과 관계까지 모두 아우른다. (그러나 본격 문학작품과 영화를 백합물이라 부르지 않고, 삼사십 대 여성들의 로맨스를 백합이라고 부르는 경우도 거의 없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결국 현재의 '백합'이란 만화와 애니메이션, 라이트노벨이라는 특정 하위문화 장르의 용어이며, 젊은 여성들 특히 십 대 여학생들의 관계를 일컫는 말로 한정된다고 할 수 있다.)

 

 위 설명에 따르면 '백합'은 여성들 사이의 로맨틱한 우정, 동경, 연애를 모두 의미한다. 우정과 연애 어느 하나로 딱 잘라 말하기 어려운 감정과 관계들, 그 사이에 이름 없이 놓여 있던 감정과 관계까지 모두 아우른다. (그러나 본격 문학작품과 영화를 백합물이라 부르지 않고, 삼사십 대 여성들의 로맨스를 백합이라고 부르는 경우도 거의 없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결국 현재의 '백합'이란 만화와 애니메이션, 라이트노벨이라는 특정 하위문화 장르의 용어이며, 젊은 여성들 특히 십 대 여학생들의 관계를 일컫는 말로 한정된다고 할 수 있다.)



 


언니 저 달나라로 1탄에서도 왠지 비슷한 주제를 다룬 적이 있는 것 같지만, 일본 여학생의 비극을 폭넓게 다루었었다. 2탄에서 아마 동반자살을 심도 있게 다룰 것 같다. 혼불에서도 나오지만, 일제강점기 때의 우리나라 만큼이나 일본 내의 운동권들과 성소수자들도 박해를 당했었다.



42년이면 2차대전이 한창이고 당시 한국은 파쇼정권인 구 일본에게 점령당하고 있었다. 그랬을 뿐 아니라 당시 독일과 동맹국인데다 같은 파쇼성향이라 일본 게슈타포들이 동성애에 대한 혐오를 당시 한국인보다 더 지독하게 했을 듯했다는 예측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독일과는 좀 다른 케이스였다고 할까?

남성 중에서 간혹 나에게 '근데 백합물은 왜 다 그렇게 막장이야?'라고 물어보는 경우가 있었다. 글쎄. 애초 여성 간 동성애는 동반자살에서 드러나기 시작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 아닐까. 이 중에서 팔팔한 십 대이자 부자인 영애들의 죽음이 많이 부각되었다. 당시 매스컴을 움켜쥐었던 일본 남성들은 여성 동성애에 관심이 많았다. 언니 저 달나라로 1권을 보면 오히려 일본 여학생들에게 동성애를 적극 장려하기도 했다. 기껏해야 질에 손가락을 집어넣는 건 처녀성을 잃는 행위에서 노카운트라는 것일지. 아무튼 일본의 여학생들은 애인을 버리고 다른 남성과 사귀던지, 아님 애인과 동반자살하는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동반자살한 그들의 시체와 가족과 소유물은 매스컴에 맛깔나게 팔려나갔다. 솔직히 최근의 백합물이라고 해서 다를 게 뭔가. 소프트한 백합물은 항상 친구이상 애인미만만을 다루고 있다. 가끔 시트러스같은 하드한 백합물도 있지만, 그것 또한 연애의 첫 시작을 찍는 이야기이다. BL물에서는 가끔 연애하는 커플의 권태기를 다루고 있기도 하지만, 내가 최근 본 백합물에선 헤어져 다른 연인과 사귀어도 그녀의 앞날은 죽음뿐이더라.

또한 소프트한 백합물은 서로 좋아한다고 고백한 게 아닌데 노출은 많이 나온다. 여차하면 남자가 거기 끼어들어 3P 베드씬을 찍을 기회를 주는 게 아닌가 싶다. 실제로 난교를 배경으로 하는 동인지에서 2명 이상의 여성이 나오면 서로 키스하는 경우도 있지 않은가. 사실 그건 소프트한 백합물이라기 보단 '덮밥물'이 아닐지.

뭐 그렇다고 백합물 애니를 보지 말란 말은 아니다. 나도 바쿠온 등 몇 개 소프트물로 보고 있고(...) 단지 그런 걸 볼 땐 가끔 동성애자 생각 좀 해달라는 것 ㅎㅎ;

백합물 중에서도 반드시 등장하고 유일하게 여성 간 동성애를 찬성하지 않는 게 가족, 그 중에서도 특히 노인이다. 그들은 남녀 불문하고 여성에게 자식을 출산하고 길러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 책임을 지운다. 현재는 1인 가구의 유행으로 인해 그런 것도 사라진 듯하지만, 나이가 들었거나 이미 결혼한 여성은 동성애가 아직 상당히 위험하다. 임신할 시기도 놓친데다가 이미 사랑하는 사람이 여성이라 결혼도 안 하는 여성은 국가에 쓸모가 없을 뿐더러 가문에 수치를 안겨 줄 뿐이다. 이용가치가 없으니 죽음만이 있을 뿐이다. 하기사 최근 내가 사는 아파트 단지에서 50대 여성이 연인에게 살해당했다 하니 어떻게든 죽는 건 변함이 없을 것 같지만.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싶겠지만, 저들은 사랑하니깐 죽일 수 있다.

 

나야 뭐 나이가 들어도 어차피 빨리 죽고 싶어서 상관은 없다만, 험하게 죽지 않았음 좋겠는데 말이다. 나한테 초등학교 전부터 죽고 싶다고 계속 이야기하던 친구가 생각난다. 클램프를 추천해주며 동성애를 거론했던 친구였다. 난 딱히 그 친구를 좋아하지 않았던지라 관계는 금방 깨졌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 오빠와 어머니가 가정학대를 했던 게 아닐까 싶은데, 그 땐 어려서 잘 몰랐다. 살아는 있을까. 여성과 소수자는 언제나 힘들게 살아가고 있다. 두 개가 겹쳐지면 말할 나위도 없지.

소설에서 재현한 게이, 즉 인간 면역 결핍 바이러스HIV에 노출된-여성스러운-약물과 섹스에 탐닉하는-가족과 불화하는-게이는 출판사와 평론계가 부각하는 대로 "루저 중의 루저인 정크족"의 대표 격이 될 법하다. 특히 마케팅 과정에서 부각된, 직접 동성애자들을 인터뷰하고 보건소에서 에이즈 검사를 받았다는 작가의 취재 경험과 주인공을 게이로 설정한 이유로 "특히 청년 게이는 청춘 중에서도 더욱 힘든 삶을 살게 마련"이라 답한 작가의 취재 '이력'은 소설 주인공과 같은 '게이들의 힘든 삶'에 대한 증명처럼 받아들여질 위험이 있다.


 


아니 시벌 그래 다 좋은데 보건소에서 에이즈 검사 받는 거 뭔데 걍 보건소에 들어가서 물어보면 될 거 아냐. 저게 뭐라고 마케팅까지 했냐? 이성애자들에게 성매매 하는 사람들도 에이즈 검사 받는다.



여태까진 페미 혐오 남성들이 페미니스트를 히키코모리에 타자칠 줄 밖에 모르는 살집 있는 여자로 생각하는 이유에 대해 줄곧 생각해왔다. 그 결과 미러링과는 확실히 다른 것 같다. 이들은 정말로 여성을 차별하는 공간 속에 살기 때문에, 페미니스트가 사회 생활을 하지 못할 거라 생각하고 또 실제로 페미니스트를 멋대로 해고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페미니스트인데도, 그럭저럭 돈 벌며 잘 살고 있다. 그러나 자기들이 비난할 구실을 찾기 위해서인지, 그럭저럭 잘 산다는 나의 말을 그들은 귀담아 듣지 않는다. 어차피 승진이 어려운 직장에 취직하고 있지? 그래도 취직이 힘든 자격증을 따려고 하고 있지? 여전히 트집을 잡을 구실을 찾으려 한다. 자신의 색안경을 벗을 생각은 안 하고 고집을 부리는 것이다.

이런 상황은 동성애자도 마찬가지이다. 일단 생각해보자. 정말 운이 없어서 이성애자를 좋아하지 않는다면야 동성애자인게 동성애 혐오자들에게 들킬 염려는 없다. 에이즈를 완화시킬 수 있는 여러 약도 존재해서 돈만 있음 손에 넣을 수 있고, 레즈비언들은 애초에 에이즈 염려가 없다. 그런데 왜 동성애 혐오자들은 동성애자들이 사회생활을 못할 거라 극단적으로 생각할까? 이는 동성애자가 인정받지 못하는 사회를 과시하는 행위라 생각한다.

요새 동성애를 다루는 순문학이 많아지고 있는데, 동성애 혐오자들의 꼰대적인 시각을 가지고 오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그들은 왜 색안경을 벗지 못하는 것일까? 오만하기 때문이라고 난 생각한다. 나는 그들이 동성애자를 걱정하는 척하면서 동시에 자극적인 소재를 채용하려 애쓰는 게 역겹다. 진심으로 동성애자의 인권에 대해 걱정한다면, 동성애자들을 상처입히지 않을 방법에 대한 이론적 공부부터 하는 게 옳지 않을까. 순리대로라면 그 다음이 동성애자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일 것이다. 근데 정말 내 주변에 나보다 잘 사는 동성애 커플이 얼마나 많은데.. 흑흑 양성애자 솔로 울어양.

 

아까 했던 이야기에서 좀 더 확장하자면 사회생활 많이 하고 돈 많이 쓰는 게 뭐가 좋은지 이제는 단정지어 이야기 할 수가 없다. 이건 내 환경이 좋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책 많이 살 수 없는 건 아쉽지만 대체물로 집에 도서관이 있고, 이렇게 아픈 곳 없이 일 안 하면서 여유잡고 공부만 할 수 있고, 어차피 돈 많아도 이젠 성인병 무서워서 밥 많이 먹을 수 없게 되었고. 내가 다니는 대학교 비웃어도 그냥 무념무상하게 되었다. 문제는 취업이야 등신대들아... 뭐 어느 학교는 안 뽑아준다고 하지만 그게 뭔 대수라고. 붙으면 장땡이다. 모두들 가난해지고 중산층이 흔들리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사는 게 다 비슷해지는 건 사실 같다. 차별하고 혐오해봤자 이제 더 의미가 있을까? 솔직히 그렇게 하는 사람만 비웃음 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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