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xml-stylesheet href="http://blog.aladin.co.kr/blog/rss/rssUserXSL.aspx" type="text/xsl" media="screen"?><rss version="2.0"><channel><title>불타는 골방 (바라 서재) &gt; 찌라시의 문서 창고</title><link>http://blog.aladin.co.kr/vara/category/2197359</link><language>ko-kr</language><description>vitam impendere vero</description><copyright /><generator>Aladdin RSS(Alss) v0.9</generator><lastBuildDate>Sat, 26 May 2012 09:24:45 +0900</lastBuildDate><image><title>바라</title><url>http://image.aladdin.co.kr/Community/myface/pt_725516154514779.jpg</url><link>http://blog.aladin.co.kr/vara/category/2197359</link><width>100</width><height>100</height><description>바라</description></image><item><author>바라</author><category>찌라시의 문서 창고</category><title>씨알철학과 세계철학</title><link>http://blog.aladin.co.kr/vara/4151682</link><pubDate>Wed, 29 Sep 2010 02:1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vara/4151682</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313768&TPaperId=4151682"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63/40/coveroff/8932313768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5660531&TPaperId=4151682"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341/62/coveroff/8935660531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5661244&TPaperId=4151682"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341/63/coveroff/8935661244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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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봉&#160;교수의 글 일부를 가져옴.&#160;&lt;&lt;철학&gt;&gt; 102집(2010년 2월)에 실렸던 글로&#160;&#160;
전반부는 2008년 세계철학대회에서 열렸던 한국철학 세션에 대한 보고로 이루어져있고&#160;
후반부는 함석헌과 유영모 철학에 대한 간략한 소개를 담고 있다&#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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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20세기 한국의 강단철학이 끊어버리고 이어가지 못했던 한국의 철학적 역사를 보이지 않게 이어간 사람들이 바로 유영모와 함석헌이다. 그들을 통해 우리는 한국의 철학사를 실학과 최한기 그리고 동학을 거쳐 유영모와 함석헌 그리고 우리 세대로 이어지는 연속성 속에서 서술할 수 있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김흥호가 지적했듯이 유영모에게 자기인식의 실마리가 되어 준 것이 한국의 말글이었다면, 함석헌에게 그것은 한국의 역사였다. 그들은 이처럼 서로 다른 길을 통해 자기가 누구인지를 발견하고 이를 통해 현대 한국인의 철학적 자기인식의 기초를 놓았다. 철학이 방법론적으로 다른 무엇보다 자기 언어로 자기의 현실을 반성하는 데 존립하는 것이라면 스승이 한국어 속에서, 제자가 한국사 속에서 참된 자기를 찾으려 한 것은 너무도 고전적인 철학적 자기인식의 모범을 보여준 것이라 할 수 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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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조선의 철학적 전통을 이어간다는 것은 통시적으로 보자면 동양의 철학적 전통과 서양의 철학적 전통을 서로 매개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정대현교수가 정확하게 인식했듯이, 유영모와 함석헌은 전통적인 동양학문의 방법론을 계승한 철학자들이었다. 오늘날 우리 세대와 달리 그들은 서양학문의 세례를 받기 전에 조선의 전통적 학문의 기초를 먼저 닦았던 사람들이다. 다석은 노자의 도덕경을 처음으로 우리말로 번역했으며, 함석헌 역시 󰡔노자󰡕와 󰡔장자󰡕 그리고 󰡔맹자󰡕 등, 동양고전에 대한 강의를 늙도록 꾸준히 계속했다. 그들은 조선의 마지막 선비세대들이었던 것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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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그런 동아시아적 교양에 바탕하여 서양학문과 종교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서양 철학 및 종교와 동양의 철학 및 종교 사이에서 발생하는 분열과 대립을 자기 속에서 치열하게 따라체험한 뒤에, 끝내 양자의 대립을 넘어 새로운 정신의 지평을 개방했다. 그 지평은 이전의 범주로는 규정할 수 없는 것이어서, 철학인 동시에 종교이며, 종교인 동시에 정치적 실천이다. 그들의 사유 속에서 동양과 서양의 대립이 지양될 뿐만 아니라 이성과 믿음 그리고 이론과 실천의 대립이 지양된다. 그들의 정신이 한국의 제도권 철학계에서 인정받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한국의 정통 신학계에서도 마찬가지로 외면 받았던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철학계에서 보기에 너무도 종교적인 그들의 사상은 신학자들이 보기엔 너무도 철학적이었기 때문에 어느 쪽에서도 진지하게 환영받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바로 그렇게 다른 것이 만나 부딪히는 장소가 바로 오늘날 한국의 정신적 삶의 현장이니, 그들의 철학은 바로 그 타자적 만남에서 비롯된 “정신의 임신”을 통해 태어난 새로운 세계관인 것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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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철학이 만남의 철학이라는 것이야말로 그것이 지니고 있는 첫째가는 세계철학적 의미이다. 오늘날 세계철학의 가장 중요한 과제는 서양철학의 전일적 지배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세계관 곧 새로운 세계에 대한 전망을 제시하는 일이다. 현실의 파탄의 근원에는 철학과 종교의 파탄이 뿌리하고 있는 것이니, 우리 시대에 이르러 서양적 세계관에 기초한 세계가 더 이상 이대로 지속할 수 없다는 것은 조금이라도 현실을 깊이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그리하여 20세기에 이르러 서양정신과 다른 목소리를 내는 타자적 정신은 간절한 기다림의 대상이 되었다. 하지만 과연 그런 타자가 있기는 있는가, 오기는 올 것인가? 마치 기다려도 오지 않는 ‘고도’(Godot)처럼 타자의 목소리는 여전히 들려오지 않고 인류는 반신반의하며 새로운 정신을 고대하고 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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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보면 20세기에 들어 가장 먼저 철학적 서양중심주의에 대한 의미 있는 비판의 목소리는 다양한 탈식민주의(postcolonialism) 담론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비록 그것이 언제나 학문으로서 철학의 형식을 갖추지 못했다 하더라도 서양과 구별되는 타자적 자기인식으로서 제출된 것인 한에서 우리는 탈식민주의 담론에 대해 철학적 의미를 인정하는데 인색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철학이란 다른 무엇보다 자기인식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탈식민주의가 서양의 자기중심주의를 비판하고 제3세계 인민의 의식을 성찰적으로 비판함으로써 문제를 제기한 것은 커다란 공적이었으나 그것이 서양철학의 자기중심주의를 허무는 데까지 나아간 것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비서구권 학자들에 의해 주도되었지만 기본적으로 서양철학적 방법론을 통해 서양사람들을 주된 독자로 삼아 제시된 이론이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탈식민주의 이론은 뒤로 오면 올수록 현대 유럽철학의 다양한 변주라고 보아도 좋을 정도로 서양철학에 포섭되어 버려 더 이상 타자의 목소리라고 말할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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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새로이 등장한 상호문화철학(Interkulturelle Philosophie) 운동은 탈식민주의의 이런 한계와 무관하지 않다. 물론 여기서도 다양한 목소리들이 있지만, 포르네-베탕쿠르(R. Fornet-Betancourt)가 대표하는 진보적 상호문화철학운동은 탈식민주의처럼 서양철학에 속절없이 포섭되어버리는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한편으로는 유럽과 북미지역의 철학을 특수한 맥락(Kontext) 속에서 생성된 철학으로 상대화시키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저 지역 이외의 철학적 전통에 대하여 인식론적으로 동등한 가치(Gleichgewicht)를 부여하려는 노력을 쉼 없이 해 왔다. 하지만 이런 노력이 얼마나 철학에서의 서양중심주의를 실질적으로 불식시킬 수 있었는지는 여전히 남는 의문이다. 이는 다른 무엇보다 상호문화철학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서구의 학자들 가운데 적지 않은 사람들이 서양 철학이 처음부터 상호문화적이었다고 주장하는 데서 엿볼 수 있다. 그리하여 상호문화철학운동 역시 서양철학의 한 흐름으로 포섭되어버릴 위험은 언제나 상존하고 있는 것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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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철학의 세계철학적 의의는 그것이 탈식민주의담론이 시도했으나 성공하지 못했으며, 상호문화철학이 애써 찾고 있는 바로 그 타자적 목소리를 들려주고 새로운 정신의 지평을 개방한다는 데 있다. 그러나 씨철학은 서양철학과는 다른 또 하나의 자기동일적 사유체계가 아니라 그 자체로서 타자성의 지평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여기서 타자성이란 서로 무관심한 타자성이 아니라 만남 속에 있는 타자성이다. 씨철학이 개방한 이 사유의 지평 속에서 지금까지 인류가 개방해온 모든 세계들이 서로 만난다. 거기에선 노자와 간디가, 예수와 부처가, 공자와 소크라테스가, 맹자와 마르크스가 이웃이다. 이 지평에 들어서기 위해 우리는 이전과는 다른 사고방식을 지니지 않으면 안 된다. 편협한 당파성을 버리지 않고서는 누구도 이 정신의 세계에 들어갈 수 없다. 아집을 버리고 타자와 만나는 것이야말로 이 세계의 존재방식인 것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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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철학은 그 철저한 일관성의 정신으로 말미암아 도리어 정신의 만남을 방해해왔다. 대개 어느 나라의 역사에서나 비슷하게 볼 수 있는 정신의 아집은 언제나 체계적인 세계관에 뿌리박고 있었던 것이다. 씨철학의 비길 데 없는 공헌은 바로 그런 이론의 아집을 해체한 데 있다. 이것이 세계철학사적 의미에서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는 구구히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것은 인류의 평화로운 공존을 위해 절박하게 요청되는 태도변경이다. 하지만 절실하게 필요한 일이라 해서 모두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대다수 서양철학자들은 여전히 자기들의 전통 내에서 자기를 극복하려 할 뿐, 타자적 정신과 만나려 하지 않는다. 물론 가끔 가상한 시도들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예를 들어 지젝(S. Žižek)이 그다지 전문적이라 할 수 없는 지식에 기대어 “불교와 폭력 사이의 보다 깊은 유사성”에 대해 말할 때, 우리는 그가 이해하고 있는 불교의 상이 얼마나 일면적이며 또 초보적인지를 금세 알아차리게 된다. 한국의 강단 철학자들이 독일과 프랑스와 영미 철학의 섬세한 차이를 구별하듯이 서양의 철학자들이 한국불교와 일본불교와 중국불교의 차이를 이해하려면 얼마나 오랫동안 기다려야 하겠는가? 그런 것을 생각하면 유영모와 함석헌의 정신세계에서 동서양의 정신들이 깊은 상호 이해 속에서 서로 만나고 있는 것이 얼마나 독보적인 일인지 알 수 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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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양의 정신이 만나는 것은 20세기 한국 정신사의 고유한 성격이다. 왜냐하면 이 나라에서는 온갖 철학과 이념 그리고 세계종교가 공존하면서 다투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그것은 씨철학에 의해 반성되고 발효되기 전에는 한갓 무관심한 공존이거나, 정신의 분열상일 뿐이다. 이 분열상이 가장 참혹한 방식으로 현실화된 결과가 바로 6·25였다. 그리고 여전히 이 나라에서 서로 다른 세계관의 적대적 분열은 아직 끝나지 않은 일상이기도 하다. 씨철학은 그 적대적 분열과 투쟁을 만남으로 바꾸어 놓는다. 이를 통해 우리에게는 자기를 내적 분열에서 구해내어 온전한 주체로서 정립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며, 세계인류를 위해서는 만남 속에서 열리는 새로운 정신의 지평을 열어주는 것이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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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평은 자기동일적 사유의 지평이 아니라 타자와의 만남의 지평이라는 점에서 다른 지평이다. 그런데 씨철학이 이처럼 새로운 정신의 지평을 열 수 있었던 것은 단순히 20세기 한국의 지성사가 그 자체로서 만남 속에 있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런 즉자적 만남이라면 중국이나 일본이 다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중국에는 마오쩌뚱(毛澤東)이 있고 일본에는 니시다(西田)가 있지만 유영모와 함석헌은 한국에만 있다. 마오와 니시다는 각자 다른 방식으로 서양을 추종한 결과를 보여주며 동시에 서양을 나름대로 극복하려 한 결과를 보여준다. 니시다의 철학은 일본적 사유에서만 가능할 것이며 마오의 혁명론 역시 중국의 전통으로부터 생성된 철학일 것이다. 하지만 니시다도 마오도 세계철학사에서 하나의 에피소드일 뿐, 새로운 보편의 지평을 개방했다고 할 수는 없다. 그 까닭은 니시다도 마오도 자기를 포기한 철학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어쩔 수도 없는 역사의 반향으로서, 현대 일본은 물론 중국 역시 현대사 속에서 전면적인 자기상실을 경험하지는 않았다. 그리하여 그들에게는 모두 지켜야할 자기가 늘 남아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메이지 유신을 통해서든 중국혁명을 통해서든 다만 그 자기를 각자의 방식으로 근대적으로 쇄신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중국과 일본은 역사적 변화에도 불구하고 나름의 주체성을 지킬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자기를 지킨 결과 하나의 자기로 남았을 뿐, 타자와의 만남 속에서 열리는 새로운 정신의 지평을 정립하지는 못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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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마오나 니시다가 열지 못했던 새로운 정신의 지평을 유영모나 함석헌은 어떻게 열 수 있었는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유영모와 함석헌의 씨사상의 새로움은 과연 무엇인가? 그것은 어떤 주장의 새로움인가 아니면 새로운 사고방식인가? 우리가 이런 물음에 대해 명확하게 대답할 수 없다면, 씨철학의 새로움에 대한 주장은 한갓 허세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특히 씨철학의 새로움이 단순히 주의주장이 아니라 사고방식의 새로움이라는 의미에서 새로운 철학적 사유의 지평을 연 것이라 주장하려면, 우리는 과연 현재 보편적인 사유의 지평으로서 군림하는 서양적 철학 및 학문의 지평에 대해 씨철학이 어떤 관계에 있는지 대답하지 않으면 안 된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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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서양적 사유의 보편성은 본질적으로 두 가지 요소로 특징지어진다. 한편에서 그것은 대상세계 전체를 동일한 지평으로 불러들인다. 그것은 파르메니데스를 통해 존재라는 이름으로 개방되는 대상의 지평이다. 원칙적으로 보자면 존재의 지평에 단절이 있을 수 없다는 점에서 (즉 모든 것이 어떤 의미로든 있는 것이란 점에서) 그것은 하나의 일양한 보편자이다. 그리고 존재의 지평 외에 우리가 다른 대상의 지평을 생각할 수 없다는 점에서 그것은 무제약적 보편이다. 다른 한편 서양철학은 그 존재를 생각하는 방식에서 두드러진 보편성을 보여준다. 서양철학의 보편성은 그들의 생각이 그 내용에서 모두에게 진리로 받아들여진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니고, 그 표현 방식에서 생각이 보편적으로 개방되어 있고 전달될 수 있다는 데 존립한다. 생각의 제한 없는 접근가능성과 왜곡 없는 전달가능성이야말로 서양철학이 실질적 진리에 앞서 요구하는 진리의 형식적 기준인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가 서양철학에 참여할 때 그것을 통해 우리는 한편에서는 무제약적으로 개방된 보편적 존재의 지평에 그리고 다른 한편에서는 누구에게도 차단되지 않은 보편적 생각의 지평에 참여하게 된다. 이런 의미에서라면 하이데거가 ｢철학-그것이란 무엇인가?｣에서 철학이란 오직 그리스적인 유럽에서만 가능한 것이라고 말한 것도 그다지 틀렸다고 할 수도 없을 것이다. 철학이 전체로서 전체를 사유하는 데 존립하는 정신의 활동이라면 세상 어디에서도 그리스에서처럼 순수한 방식으로 그 이상이 실현된 곳이 없기 때문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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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에서 철학이 이처럼 순수히 보편적인 학문으로서 정립될 수 있었던 까닭은 그곳에서 가장 탁월한 방식으로 자유인들의 공동체가 실현되었기 때문이다. 자유인은 자기의 주인으로서 세계 속에서 자기를 능동적으로 형성하는 자들이다. 그러나 자기의 주인이 되기 위해서는 세계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서양적 자유의 이념 속에선 지배의 이념이 공속한다. 서양 철학은 그런 자유인의 공동체에서 탄생한 철학이다. 그들은 세계를 지배하기 위해 먼저 세계를 통일된 전체로 파악하려 했으며, 그 세계에 대한 인식을 누구도 독점할 수 없도록 모든 인식에 형식적인 개방성과 명증성을 요구했다. 그리스 철학에 의해 기초가 놓인 서양 철학의 보편성은 바로 그런 정치적 자유의 열매였던 것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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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서양 철학과 서양 학문이 그렇게 대상의 무제약성과 주체의 무차별성에 기반한 보편성을 지니고 있다면, 과연 어떤 의미에서 서양철학이 보여주는 보편성과 다른 보편성을 말할 수 있겠는가? 인류의 역사에 한번 세워지면 다시 허물 수 없는 영속성을 지니는 정신적 성과가 있다면, 그리스적 자유와 보편성의 이념 역시 그런 성과일 것이다.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서양 철학에 의해 열린 보편적 사유의 지평을 폐기하고 그 외부로 나갈 수는 없다. 우리는 오직 다른 지평을 그 위에 겹치게 하거나 그 지평을 확장시킴으로서 그 지평을 더 넓게 하고 더 깊게 할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것을 위해 다시 우리는 서양적 사유의 외부에서 전체를 생각할 수 있어야만 한다. 비유컨대 서양철학의 지평을 잡아당겨 더 넓히고 더 깊게 하기 위해서는 서양 철학의 지평 외부에 어떤 입각점을 지녀야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하나의 모순이다. 이미 우리는 서양적 사유의 지평에 사로잡혀 있는데 어떻게 그 보편적 사유의 지평 밖으로 나갈 수 있겠는가? 아니, 이런 형식적 모순을 논하기 전에, 그런 외부가 있기나 한가?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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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우리가 학문이나 철학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면 우리는 끝끝내 서양적 보편의 지평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어떤 대상도 있음의 지평을 벗어날 수 없으며, 어떤 생각도 보편적으로 전달가능성의 원리를 거부하면서 보편적 인정을 요구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의학은 비서양학문의 이런 곤경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그것은 서양적 개념을 통해 번역되는 한에서만 보편적인 승인을 얻는다. 그렇지 않을 때, 한의학은 그 모든 실질적 성과에도 불구하고 아직 과학이 아닌 것으로 남아 있다. 그것은 (서양)과학의 개념으로 번역되면 (서양)과학의 일부가 되어버리고, 아니면 과학이 아닌 것이 된다. (서양)과학이 아닌 다른 과학으로서의 한의학의 자리는 없다. 사정은 철학 경우에도 비슷하다. 비서양 철학이 서양철학적 개념으로 번역되면 서양철학의 일부가 되어버린다. 반대로 번역될 수 없다면, 그것은 보편적 전달가능성이 없으므로 아예 철학으로 인정받기 어려워진다. 이런 곤경은 만약 우리가 단순히 학문과 이론으로 서양 철학 외부에서 보편성의 다른 지평을 추구하려 한다면 벗어나기 어려운 곤경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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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는 도리어 안에 있다. 서양적 보편성의 지평 내부에서 그 지평을 초월하는 타자적 입각점을 확보하는 것은 오직 정치의 지평에서만 열린다. 왜냐하면 서양철학과 서양 학문 일반의 보편성의 근거가 바로 그 정치성에 있었기 때문이다. 서양철학은 대상의 보편성을 말하고 주체의 보편성을 추구한다. 적어도 명목상으로 보자면 그 보편성은 무제약적인 것이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보자면 그들이 추구한 보편성은 제약된 것이다. 왜냐하면 서양철학의 주체는 자유인들이며, 서양철학의 세계는 자유인들의 눈에 비친 세계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것이 서양철학을 규정하는 가장 근원적인―상호문화철학적 의미에서의―‘맥락’(Kontext)이다. 우리 모두가 그 자유인들이 개방한 세계 내에 이미 사로잡혀 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모두 서양 철학의 보편적 지평 내에 있다. 하지만 그리스의 폴리스에 사는 사람들이 모두 자유인들이 아니었듯이 서양철학이 개방한 세계 속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자유로운 주체는 아니다. 도리어 프란츠 파농이 말했듯이 그 세계 내에서 대다수는 “자기의 땅에서 유배된 자들” 곧 자기의 땅에서 노예로 전락한 자들이다. 즉 대다수의 인류는 같은 하나의 세계 내에서 타자이며, 내부의 외부자들이다. 하지만 자유인의 땅에서 노예로 사는 자들이야말로 자유인들이 개방한 보편적 지평 내에 거주하면서도 그 지평을 초월할 수 있는 타자적 관점을 지닌 사람들인 것이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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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는 자유인의 세계에서 인류의 노예화가 극단에까지 진행된 시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예가 철학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깨달음에 이른 사람들은 우리가 아는 한 유영모와 함석헌밖에 없었다. 아마도 그 까닭은 노예상태는 다만 벗어나야 할 부정적 상태로만 인식되었던 까닭에, 바로 거기에 기존의 보편성의 한계를 폭로하고 전복시킬 수 있는 새로운 보편성의 씨앗이 숨어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마오도 니시다도 우리의 박종홍도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남들과 같은 권력의 주체가 되기 위해 발버둥 쳤으니, 그것은 낡은 보편의 모방과 반복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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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유영모와 함석헌은 바로 그런 권력의지를 포기하고 억압받는 씨의 고통 속에 머물렀다. 바로 이 점이 그들의 남다른 점이다. 허다한 식민지 엘리트들이 지배적 주류세계에 편입되기 위해 민중적 삶을 등진 것과 달리 그들은 도리어 더 낮은 곳으로 내려가 민중의 고통에 참여함으로써 전체와 하나 되려 했다. 그들에게 철학은 지배를 위해 위에서 내려다보는 것, 곧 관조가 아니었다. 함석헌에겐 도리어 참된 “앎은 앓음”이다. 노예상태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의 수난에 참여하고, 그 보편적인 수난의 뜻을 묻는 것이야말로 씨철학의 길이었다. 플라톤의 비유를 거꾸로 돌려 말하자면, 빛을 찾아 동굴을 벗어나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보다 더 깊은 어둠 속으로 내려가는 정신의 낮아짐이야말로 씨철학의 길이었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유영모는 빛이 아니라 어둠에서 진리를 찾으려 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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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통해 유영모와 함석헌은 지배적 세계 내에서 지배적 주체의 눈으로는 결코 볼 수 없는 세계를 드러낸다. 칸트가 말했듯이 철학이 추구하는 세계는 이념이다. 하지만 어떤 의미에서 이념인가? 칸트는 그것이 오직 생각 속에서 열리는 전체인 까닭에 이념이라 불렀다. 하지만 씨철학의 입장에서 보자면 칸트의 세계론은 수정되어야 한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비트겐슈타인이 말했듯이 우리들 각자는 하나의 세계이다. 철학이란 이념 속의 세계를 현실적으로 개방하는 정신의 노동, 곧 세계화에 존립한다. 그러나 세계화의 길은 하나가 아니다. 서양철학이 개방하는 세계는 지배자의 권력의지가 개방하는 세계이다. 하지만 씨철학이 개방하는 세계는 오직 고통 받는 인간의 눈에만 보이는 세계, 능동적 관조 아래 열리는 사물적 세계가 아니라 오로지 고난의 수동성에 참여함으로써 열리는 만남의 세계이다. 외따로 떨어진 섬들처럼 낱낱의 사사로운 세계들이 하나의 보편적 세계로 이어지는 것은 너와 나의 만남을 통해 일어나는 사건이다. 세계는 만남 속에서 열리는 것이다. 하지만 언제 너와 나는 만나는가? 그것은 오직 우리가 서로의 고통에 참여할　때이다. 지배하는 정신이 개방하는 관조의 세계에서 보이는 모든 것은 인식하는 주체와 다른 차원에 존재하는 사물적 대상이다. 그러나 우리가 보다 더 깊은 고통의 심연으로 내려가 보편적인 고통을 통해 타자와 만날 때, 그 세계는 언제나 사물화되지 않는 주체들의 공동체이다. 왜냐하면 사물은 고통을 모르나, 오직 살아 있는 주체만이 고통 받기 때문이다. 아니 거꾸로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 즉, 고통의 주체만이 주체일 수 있다. 고통을 모르는 순수한 능동성 속에 있는 관조의 주체는 사실은 주체일 수도 없다. 주체성이란 고통이 있는 곳에만 일어나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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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하여 씨철학은 서양철학이 개방하는 세계와는 다른 세계화의 길을 열어준다. 그것은 사물들의 세계가 아니라 참된 의미에서 인격적 주체들의 만남의 세계이다. 그 만남의 세계는 오직 고통의 만남을 통해서만 열리는 것이니, 이 새로운 세계의 전망은 20세기 한국역사에 켜켜이 쌓인 고통의 뜻을 유영모와 함석헌이 정직하게 물었을 때 잉태되었다. 그 새로운 세계의 씨앗에 물을 주고 북돋우는 것은 이제 우리의 과제일 것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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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341/63/cover150/8935661244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5661244</link></image></item><item><author>바라</author><category>찌라시의 문서 창고</category><title>에티엔 발리바르 인터뷰: 추측과 정세 </title><link>http://blog.aladin.co.kr/vara/3134184</link><pubDate>Sun, 04 Oct 2009 12:2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vara/3134184</guid><description><![CDATA[Interview Etienne Balibar: conjectures and conjunctures, Radical Philosophy 97(September/October 1999) <br />
옮긴이 김정한 multitude@naver.com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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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티엔 발리바르 인터뷰: 추측과 정세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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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티엔 발리바르는 1960년대 초반 알튀세르를 중심으로 하는 탁월한 학생 집단의 일원이었으며, 알튀세르와 함께 {자본을 읽자 Reading Capital}(1965, 1968; 영역 1970; 국역, {자본론을 읽는다}, 두레 1991)를 저술했다. 그 후 그는 프랑스의 주요 좌파 철학자로 자리잡았다. 저서로 {역사유물론 5연구 Cinq tudes du mat rialisme historique}(1974; 국역, {역사유물론 연구}, 푸른산 1989),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대하여 On the Dictatorship of the Proletariat}(1976; 영역 1977; 국역, {민주주의와 독재}, 연구사, 1988), 최근에 영어로 옮겨진 {스피노자와 정치 Spinoza and Politics}(1985; 영역 1998; 부분 국역, {알튀세르의 현재성}, 공감 1996), {인종, 민족, 계급: 모호한 동일성들 Race, Nation, Class: Ambiguous Identities}(이매뉴얼 월러스틴과 공저, 1988; 영역 1991; 부분 국역, {발전주의 비판에서 신자유주의 비판으로 - 세계체계론의 시각}, 공감 1998), {맑스의 철학 The Philosophy of Marx}(1993; 영역 1995; 국역, {마르크스의 철학 마르크스의 정치}, 문화과학 1995), 그리고 {대중, 계급, 사상: 맑스 전후의 정치와 철학 연구 Masses, Classes, Ideas: Studies on Politics and Philosophy Before and After Marx}(1994)가 있다. 유럽 정치의 보편주의와 차이를 주제로 한 새로운 논문 선집인 {정치와 그밖의 장면 Politics and the Other Scene}은 곧 Verso 출판사에서 출간될 예정이다[2002년 5월 예정].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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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노자와 정치}에서 당신은 철학과 정치의 관계가 '서로가 서로를 포함'하는 관계라는 것을 밝혀내고자 합니다. 이것은 당신 자신의 지적 궤적으로부터 나온 것입니까?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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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습니다, 맞아요. 그 두가지는 고등사범학교의 알튀세르를 중심으로 하는 모임 속에서 밀접하게 연결되었지만, 그 전에도 이미 얼마간 예기되었던 것입니다. 나는 1942년에 태어났고, 그래서 1950년대 후반과 6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아주 어렸습니다. 당시는 청년 지식인들----영어권의 의미에서 중간계급 middle class이 아니라 프랑스적 의미에서 중위계급 class moyen에 속하는 교육받은 사람들, 다시 말해서 가족이 공무원이거나 교사였던 사람들----이 식민 전쟁의 상황 속에서 자신의 정치적 의식과 현실 참여를 형성해갔던 시기였습니다. 나의 부모는 중등학교 교사였고, 좌파였습니다. 아버지는 수학자였습니다. 그는 알제리의 프랑스 군대가 자행한 고문에 반대하는 항의운동에 참여하고 있었는데, 공산주의자였던 한 프랑스 수학자가 알제리 사람들을 돕다가 그곳에서 죽임을 당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나는 국립중고등학교를 마친 후, 사범학교 시험을 준비하는 특수반에 들어가기 위해, 1958년에 파리에 왔습니다. 그렇게 나는 가족을 떠났습니다. 파리에서, 나는 즉시 전쟁에 반대하는 시위에 참가했고 일종의 반제국주의적 의식을 갖게 되었습니다. 1962년 전쟁이 종결되던 시기에, 나는 사범학교 학생이었는데, 당시 그곳은 정치적으로 매우 활동적이었습니다. 우리 모두는 학생 연맹의 회원이었고 지속적으로 시위와 토론에 참여했습니다. 우리 대부분은 정치집단이나 정당에 속해 있었습니다. <br />
좌파는 내가 속했던 공산주의 계열----당시 아주 강력했습니다----그리고 좌파 사회주의, 즉 PSU----사회당에서 갈라져 나온 소수 정당이었습니다----로 분열되어 있었지만, 모두 식민 전쟁에 반대했고, 사회주의 정당도 선거에서 패배하기 전까지 함께 움직였습니다. 예를 들어, 나보다 몇 살 많았던 바디우와 테리는 그 집단에 속해 있었습니다. 우리는 격렬하게 싸웠지만, 중심 방향에서는 통합되어 있었습니다. 만일 내가 좀더 성숙했다면, 아마 공산당 청년조직에 참가하기가 훨씬 더 어려웠을 텐데, 1956년에 헝가리 사건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당시, 우리 대다수는 공산당이----온갖 오류와 실수, 의심스러운 측면에도 불구하고----가장 강력하고 훨씬 힘있는 좌파 조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공산당에 참가했습니다. 나는 1960년에 공산주의 학생연맹에 들어갔고 1961년에 당에 가입했습니다. 애초부터 그것은 내부의 토론과 논쟁에 참여한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나는 당이, 그리고 더 일반적으로 당을 둘러싼 조직체계가 청년 지식인이 순수하게 지적인 환경 속에 감금되지 않도록 하기를 바랬습니다. 이런 요소는 이후 아주 영향력 있는 몇 년 동안 수많은 친구들과 동지들을 마오주의로 몰아갔는데, 그 사상은 이를테면 상징적으로만이 아니라 철학적으로도, 언제나 노동계급과 함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물론 우리는 크게 상심하게 되는데, 파리 같은 곳에서 당은 부르주아적인 노동의 분할을 조심스럽게 재생산했고, 지식인들, 특히 이런저런 식으로 비판적인 지식인들을 노동계급으로부터 고립시켰기 때문입니다. <br />
철학에 대해 말하자면, 그것은 약간 뒤늦게 다가왔습니다. 사범학교에서 시험은 다학문적인 것이었는데, 이 말은 아주 완벽한 인문학 교육을 제공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나는 지금도 그로부터 혜택을 누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문학과 고대 언어, 특히 독일어, 그리고 다른 주제들과 다를 바 없이 약간의 철학을 공부했습니다. 역사는 아주 중요했고 나는 또한 수학에도 관심을 가졌습니다. 애초에, 나는 고대 역사와 고고학 사이에서 망설였는데, 그 분야는 나와 같은 청년 인문학자들에게는 극히 이름이 높고 매력적이었습니다. 나는 문학과 고대 역사 과정을 따라가기 시작했지만, 그것들이 지독히 지루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동시에 나는 철학적 정세가 너무 재미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르트르는 때맞침 {변증법적 이성 비판 Critique of Dialectical Reason}을 출간했습니다. 메를로퐁티는 콜레주 드 프랑스에서 강의를 진행하고 있었습니다(몇 년 후에 사망했지만요). 레비스트로스의 경우 우리는 그를 항상 철학자로 간주했는데, 아주 탁월한 논문들을 출간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것이 나를 강력히 끌어당겼습니다. 나는 생각했어요, 왜 안돼? 왜 나는 안돼? 하고. 당시 사범학교의 학장이, 강의도 했습니다만, 헤겔을 프랑스에 소개했던 장 이폴리트였다는 사실을 덧붙여야겠습니다. 처음 몇 년 동안 나 자신의 철학 교육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세 사람은 이폴리트, 알튀세르, 사르트르였습니다. 사르트르의 강의는 분과를 바꾸기로 결심한 직후 처음 들었지요. 얼마 후에, 소르본에 조르주 캉길렘이 있었는데, 나보다 약간 나이가 많지만 나의 친구인 피에르 마슈레는 나를 그의 세미나로 데려갔습니다. 그러나 이폴리트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았어요, 당시 나는 헤겔을 거의 이해하지 못했지만 말입니다. 나는 그게 너무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그것은 곧 도전이기도 했습니다. 처음 몇 년 동안 나는 {순수이성 비판}과 {변증법적 이성 비판}, 칸트와 사르트르를 동시에 읽기로 결심했습니다. 이것은 성공하지 못했는데, 우리는 정치적 기선을 잡는데 시간을 모두 허비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커다란 지적인 열의를 불러일으켰습니다. 나는 선택했다고 확신했지만, 오래 동안 의문이 남았습니다. 나는 내가 진짜 철학자라고 확신하지 못했습니다. 지금은 그런 의미에서라면 아무도 철학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알튀세르는 "당신은 당신의 정체성을 확신하지 못한다, 그러나 당신은 마치 그런 것처럼 행위한다"고 항상 말하곤 했습니다. 당신은 자신이 철학자임을 확신하지 못한다, 그러나 당신은 마치 그런 것처럼 행위한다, 왜냐하면 당신의 학생들은 당신에게 그런 형상을 표상하기를 요구하기 때문이지요.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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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격한 언어의 꿈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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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자신의 인문학적 배경을 이야기했지만, 초기 알튀세르 시기는 강력한 반인간주의적 과학 개념에 대한 탐구가 지배적입니다. 과학에 대한 생각은 우선적으로 공산주의 전통으로부터 유래했던 것입니까, 아니면 다른 곳으로부터, 이를테면 캉킬렘으로부터 유래했던 것입니까?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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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가지가 결합된 것이지요. '과학'이란 단어 자체가 상징적인 무게, 일종의 신비한 아우라를 지니고 있는데, 그것은 우리에게 그런 모든 측면들을 함께 결합시키는 꿈을 꾸도록 했습니다. 정치----노동계급 정치----의 과학적 기초라는 관념은 맑스주의 전통으로부터 물려받았지만, 우리 연구의 인문학적 측면 또한 아주 유효했습니다. 알튀세르를 중심으로 하는 거의 대부분의 청년 철학자들----랑시에르와 뒤뢰(우리 모임에서 극히 중요한 사람이었지만, 결코 아무 것도 출간하지 않았습니다), 마슈레, 바디우, 나 자신을 비롯한 다른 이들----은 인문학자였고, 좀더 엄격한 언어와 사유 방식을 꿈꾸고 있었습니다. 우리 중 일부는 논리학이나 수학 같은 학문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나 자신도 당시 수학과 논리학을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우리는 모든 것을 한꺼번에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내가 알랭 바디우를 존경하는 한가지 이유는 아마 그가 수학의 중요한 지류----기초 부문----에서 완벽하게 현대적인 연구를 수행했던 우리 모임의 유일한 사람이기 때문일 겁니다. 그러나 그런 점에는 확실히 상대적인 것이 있습니다. 그가 다른 누구보다 더 박식한 것은 아니지요. <br />
이것은 이른바 분석적 방법을 채택하는 '앵글로-색슨' 쪽 철학자들과 소통하기가 아주 어려운 이유를 설명해줍니다. 그것은 철학에서 과학적 이상을 갖고 있는 사람들과 단지 인문주의적이고 문학적 이상을 갖고 있는 사람들 사이의 갈등이 아닙니다. 두가지 상이한 과학 모델, 두가지 상이한 과학적 이상 사이의 갈등이지요. 그들이 아주 강경하게 경합하는 이유, 그런 오인을 불러일으키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느슨하게 말하자면, 나는 분석 맑스주의자----내 친구인 게리 코헨 같은----를 포함하는 분석 철학자들에게 우리가 염두에 둔 이른바 과학적 모델이란 것은 순수한 문학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또한 우리에게, 그들이 염두에 두는 '과학적' 모델은 중세 스콜라적인 것과 별로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우리는 공리적 이론 모델을 갖고 있습니다. 그들은 논증을 제시하는 증명 모델을 갖고 있지요. 이것은 과학에 대한 통념이 자신의 고유한 위치 외부에 적용될 수 있는 적대적인 방식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br />
우리는 과학적 분과에서 완벽한 훈련을 획득하는 데 있어서 캉길렘의 모범을 정확히 따라가지는 못했을지라도, 당신이 외부의 시각에서 본다면, 당신이 그 분과 자체에서 훈련받지 않았다면 진지한 과학 철학이라고 할 수 없는 그런 신념을 갖고 그를 따라갔습니다. 결국, 그것은 역설적인 효과를 가져다주었습니다. 나 자신의 경우, 1960년대와 70년대, 결정론 같은 인식론적 문제를 연구하려 하고 과학적 방법을 역사적이고 정치적인 문제에 적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탐구했을 때, 나는 여전히 그 개념의 정확한 의미에서 나의 과학적 훈련을 향상시키겠다고 희망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떤 계기에----그리고 맑스주의에서의, 보다 일반적으로는 정치에서의 인식론적 패러다임의 암묵적인 포기와 아마도 동시적이었을텐데----나는 그것이 실천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br />
내가 과학적 패러다임을 포기했다고 말할 때, 이것은 내가 정치 또는 철학이 자신의 방법과 자신의 결과에 있어서 과학적이라고 하는 관념을 폐기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내가 과학이나 과학적 이성을 지성의 소외 형태로 보는 자들의 진영에 참가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이것은 내가 과학적 사유를 경멸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나는 루카치나 프랑크푸르트 학파에 의해 대표되는, 포스트맑스주의나 포스트헤겔적 전통에 전적으로 반대합니다. 그것은 이른바 포스트모던적인 태도의 구성에 기여해왔고, 과학적 객관성이라는 관념이 인간성을 위한 방향을 오도하거나 무시한다고 제시하곤 합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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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인식론적 패러다임을 포기한 시기는 언제입니까?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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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가지 단계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알튀세르와 그의 소규모 학생 모임과 공유하는 것인데, 1968년 바로 그 전후의 시기였습니다. 다른 하나는 알튀세르와 무관했고, 훨씬 나중에 다가온 것으로, 1980년대의 일이었습니다. 첫 번째는 이른바 자기비판이었으며, 맑스주의 철학은 과학적 모델로부터, 일종의 '과학의 과학' 또는 모든 과학에 대한 과학적 비판으로서 발전될 수 없다는 것, 오히려 정치적 갈등의 모델로부터, 이른바 이론에서의 계급투쟁으로서 발전되어야 한다는 관념을 중심으로 조직되었습니다. 알튀세르는 철학에 뭔가 고유하게 다성적이거나 애매한 것이 존재한다는 관념을 항상 갖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과학적 이상과 정치적 이상을 결합시키기 때문이지요. 많은 점에서 이것은 플라톤적인 철학관입니다. 나는 이제 알튀세르가 이런 의미에서 플라톤주의자였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놀라고 있습니다. 그러나 특수한 순간에 그 우위성은 전도되었습니다. 철학이 과학이 되려고 하는 정치적 담론이라는 생각을 유지하는 대신에, 그것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갔습니다. 철학은 궁극적으로 그 정치적 기능을 통해 형성되고 결정되는 이론적----과학적이라는 의미에서----담론이라는 관념으로요. 이것이 첫 번째 물결이었습니다. <br />
나에게, 두 번째 물결은 내가 스피노자에 대해 저술하기 시작할 때, 또한 정체성들----내가 모호한 보편성이라고 부르는 것----과 관계를 맺는 새로운 정치적 쟁점에 관하여 사유하기 시작할 때 나타났습니다. 이것은 순수하거나 이상적인 과학적 철학 모델만이 아니라, 이론에서의 계급투쟁에 대한 협소하거나 편향적인 강조까지도 포기하도록 강제했습니다. 내가 계급투쟁을 신뢰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이론은 계급투쟁과 분리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나는 이제 이론과 실천의 관계가 더 복잡하고, 아마도 비틀려있다고 확신합니다. 그 때문에, 나는 '해석학'이나 심지어 단순히 '비판적 담론'과 같은 용어들을 사용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철학에는 아포리아적인 요소가 존재합니다. 철학은 추측----이론적 관점에서 볼 때, 추측과 정세----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과학적 공리 모델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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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공산당을 떠난 이후, 1980년대에 일어난 당신 작업의 변화를 독해하는 한 방법은 일정한 포스트 68년의 정치적 경향----크게 말하자면 자유론적 libertarian 경향----의 이론적 회복으로 보는 것입니다. 그런 경향은 PCF의 관점에서 비판받아왔지만, 지금은 좀더 이단적인 맑스주의 내에서 고유한 이론적 생명을 향유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당신이 계급투쟁을 대중 갈등의 정세적 특정화로 재배치하는 것은 수많은 사람들이 좌파 급진주의의 형태로 해석하곤 하는, 정치적 조직화의 정당 형태와 맞지 않는 방식으로 사회적 갈등의 일원적이고 이원적인 패턴들에 대해 다수성을 우선시하는 것입니다. 당신은 이런 해석을 어느 정도까지 수용합니까?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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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후반과 70년대 초반에 알튀세르를 중심으로 하는 모임은 맑스주의를 새로운 방식으로 재구축하려 했고, 단선적 인과성(맑스주의적 전통에서 단선적 목적론과 구별되지 못하는 것)을 포기하면서 중층결정, 이데올로기적 구조의 자율성 등의 관념들을 도입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이런 맑스주의는 계속해서 계급투쟁을 최종심급으로 본다는 점에서 극단적으로 정통적이었고, 당신이 언급하는 자유론적 경향과는 아주 달랐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68년을 이해했던 방식을 봅시다. 프랑스에서, 적어도 68년은 문화 내부에 판돈이 걸린 특정한 정치적 쟁점이 존재한다는 관념을 제공했습니다. 그런 관념은 아주 분명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당신이라면 그로부터 몇가지 상이한 방향으로 나아갈 수도 있을 것입니다. 당신이 자유론적 관점이라고 부른 것을 채택할 수도 있고, 아니면 상부구조에 대한 맑스주의적 통념의 발전으로 이해하려고 노력할 수도 있습니다. 처음에, 이것이 우리가 했던 일입니다. 이것이 알튀세르가 [이데올로기와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에서 하려고 했던 일이었고 내가 계급투쟁 개념을 확장시킴으로써 하려고 한 일입니다. 그것은 일반적 모델이었을 뿐만 아니라, 모든 정치적이고 이론적인 다원주의를 끌어당기는 중심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이것은 오늘날 생각하는 것만큼 그렇게 어리석은 일은 아닙니다. 그것은 착취 같은 개념을 포기하지 않고, 따라서 사회적 조화나 합의와 관련하여 사회적 갈등이 부차적이라는 관념을 수용하지 않고서는 사회적 문제를 이해하는 핵심으로서 계급투쟁 모델을 상대화시키기가 극히 어렵다는 것을 입증합니다. 나는 그에 다소간 동의합니다. <br />
두 번째로, 페미니즘 같은 다른 정치적 쟁점을 돌아볼 경우, 나는 젠더 갈등 및 사회 역사에 대한 가부장제의 중요성을 이론화하는 것이 계급투쟁 모델에 아주 많이 빚지고 있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이런 적대성은 계급투쟁 자체와는 다르지만 그만큼 보편적이고 결정적이라고, 따라서 특히 이론적으로 그와 갈등하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것을 푸코와 비교해봅시다. 그는 계급투쟁 모델을 분명히 상대화시키려는 목적으로 대안적인 모델을 진보적으로 발전시켰습니다. 그것은 갈등성 agonism 모델입니다. 적대성이 아니라 갈등성----사회 집단들보다 오히려 역사적 행위자들에 집중하는 경쟁하는 세력들과 실천들의 불안정한 관계----이지요. 그러나 그에는 한계도 존재하는데, 아주 분명히, 계급투쟁의 경우와 젠더 억압의 경우 모두에 말입니다. 그 모델은 세력관계를 단번에 확립된 것으로 보는 결정론적 시각에 대립하고, 또한 언제나 저항이 존재한다는 것----그 모델의 주요 관념----그리고 이 저항이 그 자체로 균형이 생산되는 과정의 일부라는 것을 시사합니다 그것은 헤겔적이거나 맑스적이라기보다, 마키아벨리적입니다. 그러나 오랜 기성의 지배는 이런 방식을 묘사하기가 극히 어렵습니다. 갈등적 모델로 환원될 수 없는 합리적 착취의 구조가 존재하는 것이지요.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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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오주의와 국제주의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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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우리는 마오주의의 문제를 경유하여 자유론 libertarianism의 문제에 접근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마오주의는 다른 어떤 유럽 나라보다 프랑스에서 훨씬 더 중요했던 것처럼 보입니다----마오주의의 장점의 측면이라기보다는 정치적 운동으로서, 정치적 분열을 창출하는 그 상징적 힘으로서 말입니다. 이 두가지 모두 사람들을 공산당으로부터 좀더 노동자적인 좌파 행동주의의 형태로 이동하도록 만들었고, 동시에 1970년대 동안 냉전 자유주의로 전향하는 조건을 창출하는 데 결정적이었습니다. 역사적으로, 마오주의는 두가지 아주 상이한 정치적 극단을 가리킵니다. 프랑스에서 마오주의가 그렇게 영향력이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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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뿐만이 아닙니다. 마오주의는 기존의 강력한 제도 공산당이 존재하는 모든 유럽 나라들에서 영향력이 있었습니다. 마오주의는 1960년대와 70년대 프랑스에서 강력했지만 벨기에, 이탈리아, 스페인에서도 어느 정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스페인의 경우는 독재가 붕괴하고 있었기 때문에 좀더 복잡하지만 말입니다. 공산당 자체가 강력했던 곳에서, 마오주의는 매력적이었습니다. 그것은 지식인, 학생, 그리고 필경 노동자에게도----물론 프랑스의 주요 마오주의 조직은 학생 조직이었지만----호소력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본래의 순수성을 지닌 공산주의 모델의 급진적 판본인 듯 보였기 때문입니다. 이상적인 공산당을 재창출하려는 마지막 시도였지요. 그로부터 마오주의는 사회적 민족국가 내부의 공산당에 내재된 일종의 수치스러움에서 벗어날 것을 제안했는데, 그곳에서 노동계급 조직은 혁명적 담론을 갖고 있지만 노동계급을 복지국가의 구조 내부로 통합하는 기능을 수행합니다. 복지국가 내부의 사회적 세력균형의 일부이지요. 프랑스 공산당의 전형적인 모순도 바로 이런 것이었습니다. <br />
프랑스 마오주의는 전통 부르주아 문화의 규범적 형태에 반역하는 청년 지식인 운동이었습니다. 이것은 일종의 세대론, 부모가 레지스탕스였거나 1945년 이후 주요 계급투쟁에 참여했거나, 아니면 공산당에 소속했다가 그것을 포기했거나 내던져버린 그런 세대의 이야기입니다. 그들은 국제주의적 수준에서 중국이 공산주의 운동의 영속적인 위기의 해법을 표상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에 마오주의 모델에 매혹되었습니다. 나 자신도 이상적인 중국 모델, 문화혁명에 강력히 관심을 기울였는데, 그것은 우리가 중국에 투영시켰던 것이었고, 그 실재 역사는 전적으로 무시했습니다. 되돌아보면, 우리는 아주 편파적이었고 대부분 중국에서 현실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일에 관한 잘못된 정보만을 갖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른바 문화혁명이 두가지 측면, 우리나라에서는 실질적으로 결코 통합할 수 없을 것 같은 측면들, 즉 부르주아 규범에 대한 자유론적 반역과 자본주의에 대항하는 효과적인 운동을 결합시키고 있다고 상상했습니다. 이것은 문화혁명과 홍위병에 대한 이상적인 그림으로 축약될 수 있었습니다. 포스트-니체적인 문화 반역과 맑스적인 계급투쟁의 통일을 꿈꾸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아주 수상쩍고 억압적인 조직 형태를 야기했습니다. 프랑스의 경우, 로베르 린하르 같은 사람 덕분에(그는 개인적으로 아주 비싼 대가를 치뤘습니다) 테러리즘으로까지 가지는 않았지만, 그것은 일체의 반대를 진압한다는 측면에서 공산당보다 더 나쁜 극단적인 실천이었습니다. 혹독한 모순이었지요.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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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과정에서 反베트남 운동은 어느 정도의 중요성을 갖고 있었습니까? 수많은 학생들을 마오주의로 귀의시켰던 베트남 전쟁과 관련하여 공산당의 급진주의의 결여라고 볼 수 있는 것이 있었던 것입니까?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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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당신 말이 맞을 겁니다, 그래요. 그것은 당시 가장 끔찍한 실수 중의 하나였습니다. 프랑스에서 1960년대와 70년대 초반의 급진적인 청년 공산주의자들은 대부분 소비에트 연방이 국제적인 수준에서 보수세력으로 행위하고 있다고 (올바르게)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내 친구 이매뉴얼 월러스틴은 최근 소비에트 연방이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중대한 일부인 국제적 국가체계를 안정화시키는 가장 효과적인 도구였다고 주장하기까지 합니다. 그래서 그는 전세계에 걸친 학생과 청년 노동자의 68 운동을 세계경제의 국가체계----당연히 사회주의 국가들과 공산당을 포함하는----에 대항한 반란으로 묘사합니다. 그러나 당신이 그렇게 보지 않을지라도 … 내가 기계적으로 이야기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그와 같은 정합적인 또는 체계적인 방식으로, 당시 사회주의 체계는 실제로 안정을 유지하는 보수적 요인으로 작동하고 있었습니다. 또한 그런 이유로 대개 소비에트 연방의 정치에 밀접히----정치적이고 재정적으로----의존해있던 서구 공산당도 동일한 방식으로 작동했습니다. 공산당들은 자신들이 세계의 혁명운동을 후원하고 있음을 정기적으로 선언하면서 이데올로기적 면책을 얼마간 얻어내야 했습니다. <br />
세계의 모든 혁명 그룹들의 거대한 지지자라는 중국에 관한 이상적인 그림은 우리가 베트남 동지들과 토론하던 1970년대 초에 붕괴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학생을 비롯해서 프랑스에 수천 명이 있었으며, 사태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설명하고자 했습니다. 그 다음에는, 중국의 사건이 극히 중요했습니다. 중국이 피노체트 쿠데타를 지지했던 것입니다. 그것은 개인들을 완전히 대립적인 두가지 방향으로 몰아가는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나는 전통 공산주의에 헌신하다 친중국적 열광으로, 또한 거기에서 전혀 다른 것, 냉소주의, 종교, 냉전 자유주의 등으로 전환해갔던 내 세대 사람들을 예를 들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지독히 파괴적인 효과를 갖고 있었던 것입니다. 오래 지속되지는 않았지만, 지독히 파괴적인 효과였습니다. <br />
그러나 공산주의는 맑스나 맑스주의에 앞서 존재했던 하나의 사상이었고, 운동으로서 그리고 정합적 이론으로서 맑스주의의 종언 이후에도 아마 존재할 것입니다. 따라서 포스트-맑스적 공산주의 post-Marxian communism 같은 것이 존재할지도 모릅니다. 심지어 포스트-맑스적 공산주의는 맑스적 공산주의로부터 유산을 물려받아야만 합니다. 이미 상속받고 있는 핵심 요소 중의 하나는 국제주의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국제주의는 맑스적 사회주의----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사회주의----의 이야기 속의 가장 역설적인 쟁점인데, 그것은 언제나 하나의 이상으로서 염원되지만, 현실적으로는 거의 완전히 부정되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세계에서, 탈맑스주의자들 ex-Marxists은 경계선----국가 경계선, 문화적 경계선----을 가로지를 수 있는 능력과 욕망을 가진 사람들을 대표하고 또한 일종의 진보세력의 초민족적 공동체를 지향하며 작업하는 유일한 자들이 아닙니다. 프랑스 마오주의의 전통은 국제주의에 아주 깊이 헌신하고 있습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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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과 이데올로기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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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스의 철학}의 후반부 쪽에 가면 "교의 doctrine란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인상적인 글귀를 읽을 수 있습니다. 나는 이에 대해 두가지 의문을 갖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이런 정식화가 일정한 정치적 역사, 즉 교의라는 통념에 기반한 정치적 기획에 대한 반작용을 어느 정도까지 표상하는가 하는 점입니다. 두 번째는, 이런 관념에 조응하는 철학의 개념이란 무엇인가 하는 점입니다. 이것은 맑스를 '끝없는 시작'의 철학자로 보는 당신의 관념으로 연결되는 것 같습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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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말처럼, 그 책은 {맑스의 철학}으로 출간되었습니다만, 가능하면 맑스의 '철학들' 같은 제목을 채택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맑스의 철학이란 관념은 단일한 교의 내지 통일적 철학이라는 겉포장 밑에 있는 아포리아적 방법으로 설명되어야 하기 때문인데, 그것은 맑스주의 전통에 의해 창출되었고 어쩌면 맑스 자신의 꿈이었을지도 모르지만, 완성될 수 있는 통일적인 것이란 현실적으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맑스의 운명이라는 특정한 사례와 관련되는 것인지, 아니면 좀더 일반적인 경우인지는 살펴봐야 합니다. 맑스주의의 통일성을 재구축하려는 시도들 중의 하나에 깊이 휘말려왔지만, 나는 이제 그것이 아포리아일 뿐만 아니라, 왜 상상했던 결과를 가져오지 못했는지를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단순히 알튀세르가 아팠기 때문에, 아니면 그가 정치적 헌신을 이론적 활동과 결합시키고자 했던 정세가 그가 상상했던 것처럼 극히 유리한 대신 결국 아주 힘겨웠기 때문도 아니었습니다. 본질적인 이유가 있었습니다. 나는 맑스에게 이론이란 없다, 맑스에게 철학이란 없다가 아니라, 그런 철학은 상이하고 대개 모순적인 기원들 및 개념들의 잠재적인 결합이며 여전히 그렇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나는 그것을 철학과 관련한 맑스의 한계 입장 boundary position이라고 부르는데, 이것은 부정적인 것은 아닙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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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하튼 그것은 당신이 모든 철학에 대해 보유했던 입장은 아닙니다. 그것은 철학 그 자체와는 무관하다는 것인가요?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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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더 완전하게 정교화시켜야 하는데, 왜냐하면 어느 쪽의 의미에서든 해석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문자 그대로 말해서 단지 맑스라는 특정한 경우에만 적용한다고 할지라도, 나는 그것을 좀더 폭넓게 적용하려는 시도에 반대하지 않습니다. 그런 경우에 우리는 진정한 철학자들----위대하든 변변찮든----은 교의의 체계를 건설하지 않는다는 관점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모든 진정한 철학자에게는 본래적으로 아포리아적인 요소가 존재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왜 철학의 역사상 그렇게 수많은 결정적인 책들이 완성되지 않는지, 완성될 수 없는지에 대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철학자들이 체계적이지 않다는 것, 그들이 체계를 건설하길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닙니다. 다시 말해서 철학은 철학자들이 체계를 획득하길 꿈꾸지 않는다면 존재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철학자들의 위대함은 그들이 그렇게 하는데 실패하는 방식에 놓여 있습니다. 내가 이렇게 말하면 수많은 이들이 웃을 테고, 내가 망상에 사로잡혀 있다고, 내 자신이 겪은 맑스의 경험이 내 정신을 비틀어놓았다고 말할 겁니다. 내 친구의 한 명인 알렉산드르 마트롱은 프랑스에서 가장 탁월한 스피노자 전문가인데,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매년 새로운 아포리아를 발견하고자 한다. 스피노자의 대중 개념은 아포리아적이다, 민주주의 개념은 아포리아적이다, 이런 식으로. 그건 미친 짓이다." 나는 어떤 철학적 교의의 잠재적인 통일성과 정합성을 생산하고 발현시키려는 목적을 갖는 입장에 대해 응수하는 사람이 있어야만 한다고 답변했습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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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든 그와 같은 아포리아적 철학관의 원천에 관해 상이한 설명을 상상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글쓰기, 텍스트성과 사유의 관계에 관련되는 것입니까, 아니면 좀더 폭넓게 역사, 어쩌면 정세라는 통념에 관련되는 것입니까?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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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는 오래됐지만 유용한 용어법을 고수하지 않을까요. 그것은 이데올로기와 철학의 관계에 연결됩니다. 그것은 위대한 철학자란 결코 단순하고 일관되게 자신의 이데올로기적 진영에 속하지 않는다는 사실과 관련을 맺습니다. 이것은 추상적인 원리가 아니며, 뒷받침할 증거도 존재합니다. 또한 우선적으로 주관적이거나 심리적인 요소와도 무관합니다. 위대한 철학자들이 자신의 진영에서, 주류에서 요구하는 것과 정확히 대립하는 담론을 제공하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정도는 놀라운 것입니다. 감옥에 가면서까지 군주정이나 전제정을 주장하는 플라톤뿐만이 아닙니다. 아테네의 현존하는 민주주의 개념을 귀족정과 민주주의 사이의 대립을 뛰어넘는 새로운 토대로 대체시키려 하는 아리스토텔레스만이 아닙니다. 최선의 토대는 왕의 신권이 아니라 일종의 급진적인 민주주의적 토대에서 발견되어야 한다고 영국 군주정을 납득시키려는 홉스만도 아니지요. 그보다 더 근본적인 것입니다. 그것은 모든 위대한 철학의 사후 효과입니다. 좌익 헤겔주의와 우익 헤겔주의가 존재하는 것처럼, 똑같이 좌익 맑스주의와 우익 맑스주의가 존재합니다. 모든 위대한 철학의 바로 그 핵심에는 이데올로기적 헌신과 객관적 논증의 논리 사이의 모순이 놓여 있습니다. 자의든 타의든, 철학자는 이데올로기가 봉쇄하는 쟁점을 다시 열어놓습니다. 이것은 철학자의 정치적 입장이 때때로 극단적으로 수상쩍은 이유입니다----예를 들어, 플라톤과 하이데거를 보십시오. 당신은 결코 논증의 의미를, 그것이 이바지한다고 생각되는 이데올로기적 목적으로 환원하는 데 성공하지 못할 것입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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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또한 정세라는 통념과 관련되는 것이겠지요? 당신의 작업을 관통해서 흘러가는 연속성의 실마리는 정세라는 통념인 것처럼 보입니다. 당신은 아포리아가 사고의 정세적 성격과 사유의 본성 사이의 모순으로부터 도출된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겁니다. 당신이 이데올로기에 관한 논점을 이런 방식으로 제기할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철학과 이데올로기 사이의 모순은 언제나 정세적이라는 것이지요?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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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의합니다만, 나는 여기서 내가 말하고 있는 바를 입증할만한 위치에 있지 않습니다. 그런 것들, 추측, 추정, 주관적 정당화는 철학에 관하여 글을 쓰거나 내 작업에서 철학적 통념을 사용하는 특정한 방식에 후험적인 a posteriori 것입니다. 루만의 개념으로, 이데올로기들은 복잡성-환원 기계들 complexity-reducing machines이고, 대부분의 이데올로기적 대안들의 이분법적 성격은 그런 측면에서 지독히 강력합니다. 그것은 사회과학과 인문학을 지배합니다. 그것은 온갖 기술적이고 과학적인 방법론, 그리고 실험적 지식에 대한 몰두 때문에, 사회과학은 기본적으로 이데올로기로 존재한다는 가장 강력한 지표들 중의 하나입니다. 당신은 예를 들어 개인주의와 전체주의, 아니면 행태주의와 의식의 해석학 같은 것들 가운데서 어느 하나를 선택하도록 지속적으로 재촉 받습니다. 당신이 말하는, 실천과 이론이 뒤섞이고 서로에 대해 작동하는 정세는 결코 이런 의미의 이데올로기적 대안들로 환원될 수 없습니다. 철학의 관심은 정확히 이런 방향 속에 놓여 있습니다. 대개 철학자들은 어느 한 측면을 선택합니다. 그들은 기본적으로, 예를 들어 전체주의자이기보다는 개인주의자이다, 혹은 실재론자이기보다는 명목론자이다, 이런 식이지요. 그러나 이런 입장을 일관된 태도로 정교화시키려 할 때, 그들은 대개 자신들의 초기 입장을 파괴하는 성과를 거둡니다. 이런 사례는 수없이 많습니다. 모든 철학자는 초기 철학과 그것을 파괴하는 후기 철학을 갖고 있습니다. 철학자들은 정세 속에서 그 모순을 극단까지 밀고 갑니다. 그들은 정세 속의 잠재적인 혹은 본래적인 모순에 극단적인 정식을 제시하는데, 이와 동일한 방식으로 나타나는 담론은 전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밖의 담론들은 복잡성을 환원시킬 필요성에 의해 전체적으로 제어되기 때문입니다. 그에 대한 상대물은 문학 장르처럼, 철학이란 열린 영역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종류의 글쓰기 내지 이론적 활동이 철학적인 것인지 아닌지 사전에 결정하는 질문이 존재합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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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철학적 담론의 보편성에 어떤 효과를 발휘합니까? 전통적인 맑스주의적 철학 비판은 그것이 소외된, 추상적인 정신 노동의 관념적인 보편성임을 드러냅니다. 보편들에 대한 작업에서 당신은 보편의 종류들을 구별합니다. 실재 real, 가상 fictive, 상징 symbolic으로 말이지요. 그러나 당신은 이런 구별을 특정하게 철학적인 보편성에 관한 질문과 연결시키지 않습니다. 이에 대해 두가지 상이한 입장을 상상해볼 수 있을 겁니다. 철학이란 실재적 보편성의 영역을 열망한다----철학자들은 실재적 보편을 추구하고 있다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당신의 실천과 좀더 부합하는 것이겠지만, 오히려 철학이란 경쟁하는 보편들의 다수성을 반영한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즉시 단성성의 문제로 되돌아가게 하는데, 왜냐하면 만일 당신이 보편의 다수성에 대한 담론을 갖고 있다면, 당신이 다수성에 대한 단성적 담론을 갖고 있다는 의미를 띄기 때문이지요.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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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강한 반론이고, 그래서 나로 하여금 수많은 사람들이 반대하곤 했던 입장을 채택하지 않을 수 없도록 할 것 같은데, 왜냐하면 그것은 내가 앞서 언급했던 의미에서 회의주의적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아포리아적입니다. 따라서 그것은 철학이 그런 다수성 내지 모호성을 극복하는, 보편성의 단성적 요소를 표현한다고 보는 순수하게 합리적인 철학관을 갖고 있는 사람을 납득시킬 수는 없을 것입니다. 다소간 동일한 출발점에서, 동일한 영향을 받은 우리 중의 일부는 이제 이런 점에 대한 이론적 스펙트럼의 반대쪽 끝에 있음을 발견합니다. 이곳이 바로, 예를 들어 바디우와 내가 전혀 동의하지 못하는 지점이며, 비록 우리 모두 라캉에게 암시적이고 초기 비트겐슈타인에게 명시적인, 메타언어적 수준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관념 같은 것을 받아들일지라도 그렇습니다. 나는 그에 관해 절대적으로 일관적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나에게, 철학이란 담론이며, 혹은 더 적절하게, 담론의 특정한 실천으로서, 보편성의 관념이 지닌 다성성을 탐사하는 것입니다. 철학 그 자체는 보편적인 것의 모호성 속에 휩싸여 있습니다. 물론, 당신은 한 측면 내지 다른 측면이 지배적이 되는 철학들을 발견합니다. 또한 주로 우주론인 철학들이 존재합니다. 실재적인 것, 실재적인 것의 통일성과 다수성, 과정과 연계의 효과적인 측면과 잠재적인 측면 등의 문제에 몰두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존재합니다. 바디우가 적절히 지적했듯이, 나도----수많은 들뢰즈주의자들은 반대할테지만----들뢰즈에게 나타나는 그런 요소를 파헤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실재적인 것의 다수성이야말로 들뢰즈 철학의 중심이 되는 것입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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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무한히 변별화하는 차이의 존재론이 결국 경험적으로 역사에 무관심하다는 의미에서, 당신은 들뢰즈 같은 이들이 전통적 철학자에 너무 가깝다고 보십니까? 해묵은 나쁜 의미에서 그의 '철학'이 존재하는 건가요?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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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요, 그건 비판적 전통에 의해 승인되는 것보다는 그 용어의 고전적 의미에서 철학이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해체적이거나 포스트모던한 철학적 실천 개념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지요. 그러나 그것은 사태가 흥미로워지는 지점인데, 왜냐하면 그것은 단지 외피, 말하자면 겉옷이기 때문입니다. 들뢰즈가 다시 사고하려고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는 개체성과 삶 내지 과정의 전-개체적 형태 사이의 관계를 다시 사고하고자 합니다. 나는 이와 관련하여 {천 개의 고원 A Thousand Plateaux}을 아주 높이 평가합니다. 물론 내가 모든 것을 이해한다고 확신하지는 못하지만요. 그것은 아마도 상상적 철학일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모든 철학에는 상상적 요소가 존재합니다. 들뢰즈는 근본적으로 은유적인 요소를 도입한 것이 아닙니다. 그렇지 않아요. 오히려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에서 칸트와 헤겔에 이르는, 합리주의적인 인간주의 전통이 확립시켰던 은유들의 게임, 바로 인간 개체 그 자체는 상이한 계 界에 속한다는 관념----의식 때문이든 정치적 동물이든, 아니면 다른 무엇이기 때문이든----을 완전히 포기합니다. 이것이 바로 들뢰즈가 근본적으로 논파하는 것이지요.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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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파괴를 선호합니까?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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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형이상학과 사회적 실천의 관계를 당신이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달려있습니다. 들뢰즈는 개인이 사회적 삶 속에서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도록 하는 규칙들, 또한 다른 사람의 사유와 욕구와 욕망이 그 또는 그녀의 정체성에 끼어들지 못하도록 하는----물론 이 반대도 마찬가지지만----규칙들이 얼마나 피상적이고 부서지기 쉬운 것인지를 보여주기 때문에 극히 중요합니다. 그것들은 초개인적 과정들, 프로이트가 말하곤 했던 원초적 과정들입니다. 외디푸스적 보호에서 풀려남으로써, 그 과정들이 전면에 부각됩니다. 그것들은 내가 '대중들 the masses'이라고 부르는 것과 밀접하게 연관됩니다. 그러나 당신이 스스로 의식적 개체성과 책임성의 안전과 보호를 망각할 수 있도록 하는 상황은 극히 드물고 또한 극히 위험합니다. 그래서 당신의 질문에 답변하자면, 나는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실천에 있어서, 아니면 심지어 지적인 삶에 있어서, 일관적인 들뢰즈주의자가 되기를 원하는 것인지 확신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나는 법적, 심리적, 정치적 전통 속에 구현되어 있는 것과 같은 개인의 외관상의 자율성을 근본적으로 문제삼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이라고 확신합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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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것이 상상적인 것을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달려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맑스에 대한 당신 책의 독특한 특색은 당신이 '이데올로기'부터 '물신성'에 이르는 맑스의 작업 내부의 발전을 상상적인 것에 관한 그의 개념의 전화에 입각해서 설명한다는 점입니다----'비실재적'이라는 상상적인 것에 관한 인식론적 통념에서 사회적인 것 자체를 구성하는 것으로서의 상상적인 것에 관한 생각으로 이동하는 것 말이죠. 이 후자의 개념이 전적으로 가장 초기의 것 이면에 남겨진 것이라면, 그것이 어떻게 비판적 관점을 제공할 수 있는지에 대해 의문이 솟아납니다. 비실재적인 것으로서의 상상적인 것에서 구성적인 것으로서의 상상적인 것으로 나아가는 일종의 게슈탈트 전환 Gestalt switch이 존재하는 것인가요? 아니면 전자가 후자의 내부에서 일정한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인가요?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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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입장은 두 번째인데, 만일 당신이 그것을 전통적 양상의 단순한 전도로 이해하지 않는다면 말입니다. 그것은 단지 실재적인 것의 잘못된 표상이라는 상상적인 것의 그림에 도전하는 문제만이 아닙니다. 또한 실재적인 것의 부산물이라는 상상적인 것의 관념을 거부하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만일 현대 프랑스 철학이 그 입장들 사이의 대립과 갈등에도 불구하고, 공통적인 강점을 갖고 있다면, 그와 같은 실재적인 것과 상상적인 것의 이분법을 극복하려 한다는 점입니다. 마찬가지로 또 다른 이분법, 사실과 규범의 이분법을 극복하는 데도 전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이것은 변증법적 전통을 향한 프랑스 철학의 동시적인 근접성과 거리감을 설명해줍니다. 헤겔적이고 맑스적인 변증법은 이미 대부분 바로 그런 것이었습니다. 그런 종류의 형이상학적 이원론을 극복하려는 시도였지요. 헤겔이 일생에 걸쳐 사실과 규범의 대립(오늘날에도 수많은 합리주의자들이 여전히 진지한 사고 방식의 절대적 기초라고 여기는 것)에 대항하여 투쟁했던 것처럼, 맑스는 물신성에 대한 놀라운 장에서, 실재와 상상의 이분법에 도전했던 것입니다. 이 때문에 그것은 여전히 흥미를 자극합니다. 물론, 극복의 변증법적 방식은 세 번째, 대립적 측면들을 해소시키는 합 synthesis의 개념이란 관념에 물들어 있으며, 이런 점은 현대 프랑스 철학이 염두에 두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아포리아적 요소로 되돌아갑니다. 그것은 불가역적 사건들의 형태로 이루어지는, 상상적인 것의 실재적인 것으로의 변화, 실재적인 것의 상상적인 것으로의 변화이며, 이것이 결정적인 것으로 대두합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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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노자와 대중 정치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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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는, 칸트적 이율배반론 antinomianism의 다양한 형태로 되돌아가서 변증법적 논리의 비판에 대응하려는 경향이 존재해왔습니다. 당신이 속해 있는 전통에 반하여, 스피노자로의 전환과 연관되어 있던 훨씬 강력한----좀더 형이상학적으로 건설적이라는 의미에서----대응이었습니다. 스피노자는 갈등----이율배반 없는 갈등----을 이론화하는 좀더 형이상학적으로 만족스러운 방식을 제시하는 것처럼 보이며, 그로 인해 또한 그것을 정치적으로 절대화합니다. 이에 관한 당신의 관점은 무엇입니까?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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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프랑스 전통----또한 내가 개인적으로 일정한 유보조건을 달고 귀기울이고 있는 방향----은 스피노자의 교훈과 니체의 교훈을 결합시켜왔으며, 이것은 스피노자 자신에게 일종의 비극적 요소를 도입하기 위한 것으로, 수많은 전통적인 스피노자 독해와는 전혀 무관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은 스피노자의 증후적 독해이며, 이런 측면에서는 우리들 사이에 미묘한 차이가 존재합니다. 최근에 미국에서 출판된 {새로운 스피노자 New Spinoza}라는 선집은 이 영역에서 작업하는 다양한 사람들 사이의 분기와 수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수대중 the multitude이라는 범주를 봅시다. 나는 들뢰즈-네그리의 해석과 기본적인 요소들을 공유하는 스피노자의 다수대중 개념에 관한 해석을 발전시켜서 스피노자에서의 대중들에 대한 에세이를 썼습니다만, 그것은 결국엔 거의 정확히 정반대의 결과를 생산했습니다. <br />
들뢰즈는 다수대중이라는 생기론적 개념을 정치 영역으로, 또한 개체성들을 다수대중과 접속시키는 하나의 상상으로 이동시키는데, 이것은 완전히 낙관적인 효과들을 생산합니다. 그것은 상상적인 것에 관한 아주 자연주의적인 시각이며, 그 속에서 삶과 사랑의 힘은 불가피하게 갈등, 적대와 파괴의 요소들을 극복합니다. 이것은 프로이트적 전통----{문명화와 그 불만 Civilization and its Discontents}----의 일정 부분 그리고 모호성이 구성되는 기본적인 상상적 과정에 관한 해석과 전적으로 대립하는 것입니다. 다른 한편에서, 나는 스피노자에서의 상상적인 것에 관한 교의가 그 정반대의 결론을 이끌어낸다는 인상을 갖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모든 합리적인 정치적 구성은 끊임없이 모호성 속에 붙들려 있는 다수대중의 역량 power을 발전시키는 방식이라는 것입니다. 유한성이란 요소가 존재합니다. 스피노자적 관점에서, 정치란 집단적 욕망이 전개될 수 있는 모순적 방향들과 관계 맺는 상상적인 것 속의 합리적인 구성입니다. 그런 요소들을 제거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다만 그 효과를 통제하는 것, 또한 가능하다면 그 내부로부터 통제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가장 어려운 문제는 대중들의 정치를 그 내부로부터 '문명화 civilizing'하는 것입니다. 맑스주의는 대중들의 혁명적 운동의 문명화를 그 내부로부터 실행시키는 것만이 아니라 이해하는 데 있어서도 완전히 실패했습니다. 찾아냈던 유일한 해법은 권위주의적인 것이었는데, 그것은 모든 진정한 혁명적 추동력을 파괴하곤 했습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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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규범적인 차원이란 무엇입니까?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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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범적인 요소가 존재하지만, 바라건대, 그것은 내재적인 것입니다. 규범적이지만, 억압적이지는 않습니다. 내가 사용하는 개념은, 나를 들뢰즈의 일부 정식들과 좀더 가까워지도록 하는 (하지만 네그리가 사용하는 것과는 다른) '가상 fiction'입니다. 우리가 처음에 이야기했던 것의 반대쪽에는 가상이란 요소가 존재합니다. 그것은 정치를 과학이 아니라, 예술 근처로 데려갑니다. 상상적인 것의 모호성을 조절하는 삶의 형태의 창안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진보운동이 역사 속에서 직면해왔던 아포리아는 보수적인 구조들----국가일수도 있고 종교일 수도 있는----이 규범적이고 권위주의적인 방법으로 그런 모호성을 조절하는 가장 강력한 장치라는 것입니다. 기존 질서에 대한 모든 도전은 집단적 운동을 우리가 앞서 이야기한 위태로운 구역으로 이끌어가는데, 그곳에서 당신은 의식적 개체성과 책임성의 안전과 보호를 망각합니다. 그것은 예를 들어, 유럽이 러시아 혁명과 파시즘의 발전 이후, 홉스봄이 '제2의 30년 전쟁'이라고 부르는 시기로 내던져진 구역입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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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내재적인 '문명화'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정치적 주체들과 제도들은 무엇입니까? 실제로, 그런 스피노자적 시각에서, 제도들이 현실적으로 다수대중에 대해 내재적일 수 있습니까? 우리는 사회적 교환의 초민족적 형태가 점차 지배하는 세계에 살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교환을 통치하는 기본적 메커니즘들과 동일한 수준에서 비권위주의적으로 대규모의 정치적 주체들을 구성할 개연성은 전보다 약해진 것 같습니다. 추정컨대, 이것은 네그리 같은 이들이 다수성의 철학적 존재론을 다수성의 자유론적 정치로 직접 해석하는 한 근거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당신의 정치적 입장이 아닙니다. 계급 정치를 대중투쟁의 정세적 특정화로 보는 당신의 생각이 여기에서 어떻게 하나의 대안으로 작동하는 것입니까?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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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적인 언급은 생략하겠습니다. 내가 지칭하는 실재적 보편의 합당한 후보는 시장, 세계 시장일 것입니다. 집단적인 정치적 주체로서 계급의 중요성에 관한 질문은 다음과 같은 또 다른 질문을 야기합니다. 계급은 주로 시장 구조 내지 국가 구조로부터 도출되는 단일체인가? 답변하기는 전혀 쉽지 않은데, 왜냐하면 상호작용하는 두가지 측면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계급은 그 두 구조가 결합하여 경쟁하는 접면에서 형성됩니다. 19세기에, 계급투쟁에 입각한 사회적 실재성의 묘사는 국가가 계급투쟁의 기초적 결정요인을 포괄한다고 주장할 수 없는 형식적 조직이라는 사실로부터 자신의 설명력과 설득력을 이끌어냈으며, 오히려 계급투쟁은 사람----상품의 순환만이 아니라 노동력으로서의 남성과 여성의 순환----을 포함하는 시장의 확대에 입각해 설명되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종말로 치닫고 있는 지금 시기에, 만일 계급이 정치적 영역에서 작용하는 실재적 세력으로 간주되어야 한다면, 계급은 우선적으로 국가 내부에 있는 세력으로서, 혹은 국가와 협상하는, 중앙집중적인 국가 자체에 대한 일종의 상대자 counterpart로서 간주되어야 합니다. 결국, 계급은 민족국가 구조에 기능적이었습니다. 계급의 정치적 주체성을 근거짓는 것은 공통 이해의 관념, 또는 사회의 일정한 응집적 대표체라는 관념만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또한 역사적 시간의 연속성을 구축하는 것이었습니다----이는 연속적 과정이라는 역사에 관한 표상과 유례없는 혹은 대격변을 일으키는 사건에 관한 예견의 결합인데, 그 속에서 정치적 주체는 역사의 진로를 역전시킬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br />
오늘날의 상황에서, 정치적 주체들은 필연적으로 일국적 공간보다 더 큰 공간 속에 있고 동시에 과거의 계급보다 작거나 적은 포괄성과 보편성을 갖고 있습니다. 그들은 더 이상 낡은 의미의 연속성의 견지에서 표상될 수 없는 시-공간 속에 존재합니다. 아마도 정치적 주체들은 제도들보다 연약하지만, 억압하기가 더 어려울텐데, 자신들을 영속적으로 재구성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세계적 수준에서, 영속적인 방식으로, 좀더 세계주의적이고 민주주의적인 위상을 갖는 방향 속에서 제도로서의 경계를 압박할 여지가 있는 개인들과 집단들의 통일 같은 것을 건설할 가능성에 대해 극히 회의적입니다. 반면에, 나는 문제가 회피될 수는 없다고 확신합니다. 그 자체로 더 풍부하게 토론할만한 가치가 있는 단적인 예를 하나 들어보면, 이른바 공동체주의적이거나 초-공동체주의적인 주민들의 상이한 지위는 유럽의 통합이 가속화되는 만큼 더욱더 긴급한 문제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또한 그것은 아주 강렬하고 위험한 상황을 야기할 것입니다. 나는 사회적 항의가 그런 측면에서 진보적이고 건강해져야할 이유는 없다고 봅니다. 하지만 동시에, 개인적이고 집단적인 운동을 통제하는 권위주의적인 방식으로 경계로서의 제도를 특징짓는, 내가 민주주의들의 비민주적 측면이라고 부르는 것을 억제하려는 목적을 가진 민주화 운동을 기대할 수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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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자 피터 오스본 Peter Osborne <br />
1998년 12월, 파리]]></description></item><item><author>바라</author><category>찌라시의 문서 창고</category><title>루만과 하버마스의 대립구도에 관한 하나의 이해 </title><link>http://blog.aladin.co.kr/vara/3006655</link><pubDate>Tue, 04 Aug 2009 01:2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vara/3006655</guid><description><![CDATA[루만(N. Luhmann)과 하버마스(J. Habermas)의 대립구도에 관한 하나의 이해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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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훈 (사회과학아카데미 강사)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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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160;목&#160; 차 &gt;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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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머리말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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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체계이론 대 상호주관성 이론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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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소통이론 대 행위이론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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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사회학적 계몽으로서의 비판 대 철학적·규범적 척도 제시로서의 비판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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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차이이론 대 동일성 논리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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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맺음말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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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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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머리말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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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 국가들이 몰락한 이후 현대 사회를 과학적으로 파악하면서 급진적으로 변화시키려는 지향을 가진 이들은 맑스·레닌주의 전통의 오류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서유럽의 여러 철학 및 사회과학 조류들을 받아들여 왔다. 이 과정에서 독일의 사회이론을 대표했던 것은 프랑크푸르트학파 비판이론의 2세대 대표 주자인 위르겐 하버마스(Jürgen Habermas)였다. 현대 사회의 지배적 이성인 도구적 이성을 비판하면서 소통적 이성을 내세웠던 하버마스는 흔히 이성 자체에 대한 급진적 비판을 함의하는 것으로 평가받는 푸코, 데리다 등 프랑스 철학자들과 대비되어왔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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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정작 독일 사회이론에서 반이성주의 혹은 반인본주의를 대표하면서 하버마스와 오랜 세월 대립해온 니클라스 루만(Niklas Luhmann)은 한국에 별로 소개되어 있지 않다. 일반 체계이론(general systems theory)을 사회학에 적용한 루만의 사회적 체계 이론은 하버마스가 체계와 생활세계의 2단계 사회이론으로 전환하는 데 있어서나 법이론과 정치이론에서 절차적 정당성 구상을 수립하는 데 있어서나 중요한 자극을 제공했다. 이 점에 관해서는 한국에도 하버마스 연구를 통해 어느 정도 알려져 있다. 하지만 루만의 체계이론이 가진 거대한 면모와 복잡성, 그리고 그것이 사회비판이나 사회 변화를 위한 실천에서 가질 수 있는 잠재력은 충분히 주목받고 있지 못하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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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만과 하버마스의 대립은 1960년대 말 하버마스가 ‘사회이론인가, 사회공학인가’라는 제목의 논쟁 파트너로 루만을 끌어들이면서 시작되었고(Habermas/Luhmann, 1971), 1998년 루만이 죽을 때까지 30년간 팽팽하게 지속되었다.1) 이 대립구도는 지금도 그들의 영향을 받은 학자들에 의해 ‘체계이론 대 비판이론’ 또는 ‘빌레펠트학파 대 프랑크푸르트학파’라는 구도로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한국의 지식인들, 특히 좌파 지식인들에게는 별 관심을 끌지 못했다. 이런 무관심의 원인으로는 루만이 사용하는 용어가 일반 체계이론, 사이버네틱스(cybernetics), 인지생물학 등 우리에게 낯선 학문 흐름으로부터 나왔다는 점, 그의 이론이 엄청나게 복잡하고 방대한 규모를 갖고 있어서 쉽게 접근할 수 없다는 점 등등을 꼽을 수 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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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필자는 한국에 먼저 널리 소개된 하버마스가 루만의 체계이론을 ‘사회공학’으로 간주하고 사회의 현상태에 대해 ‘옹호적(affirmativ)’인 이론이라고 비판했던 효과가 상당히 크다고 본다. 하버마스가 맑스주의를 재구성하는 다른 이론가들에 비해 정치적으로나 철학적으로나 그리 급진적인 이론으로 평가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하버마스보다 오른쪽에 있는 것으로 간주되는 루만과의 대립구도란 한국의 지식인들에게 그리 흥미로운 것이 아니었다. ‘푸코 대 하버마스’가 푸코에게 씌워져 있는 급진적 이미지로 인해 그들 사이에 별로 실질적인 논쟁이 벌어지지 않았음에도 몇 차례 소개된 반면, ‘루만 대 하버마스’는 루만이 파슨스의 보수주의적인 체계이론과 기능주의의 아류 정도로 인식되면서 별 관심을 끌지 못했던 것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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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푸코의 고고학과 계보학을 ‘비판’으로 볼 수 있다면, 정상적인 것의 비개연성과 기원의 우연성을 강조하며 권력, 진리, 화폐, 사랑 등이 역설(paradox)에 근거한다는 점2)을 드러내는 루만의 사회학적 계몽 역시 ‘비판’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파슨스의 구조기능주의 체계이론과 루만의 등가기능주의 체계이론 사이에는 헤겔과 청년헤겔학파 사이의 차별성만큼 커다란 차별성이 있다. 또한 루만의 체계/환경 차이 이론은 그 논리의 성격상 동일성과 비동일성의 비동일성을 강조하는 아도르노의 부정적 변증법과도 가깝다.3)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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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만과 하버마스의 대립구도에 ‘체계이론 대 비판이론’이라는 표제가 붙은 것은 루만에 대한 온당한 주목과 평가를 어렵게 만든다. 물론 루만 스스로가 한편으로는 자신의 이론에 대한 대표 명칭을 ‘체계이론’이라고 불렀고, 다른 한편으로는 “비판이론의 종말”을 선언하면서(Luhmann, 1991) 대립해왔다. 그래서 위의 표제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 이론 명칭들은 같은 맥락에서 대립되는 두 입장을 표현하는 말이 아니다. 하버마스도 체계를 자기 사회이론의 주요한 한 단계로 설정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루만도 그가 강조하는 이차 등급 관찰을 일종의 비판으로 간주한다는 점에서,4) ‘체계’와 ‘비판’은 서로 대립하는 말이 아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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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이 글을 통해 루만과 하버마스가 대립하고 있는 지점들을 몇 가지 골라서 그 기점들에서 어떻게 대립하고 있는지를 밝히고자 한다. 물론 이 글에서 다룰 것보다는 훨씬 많은 대립지점들이 있지만 한국에서 이들의 대립구도에 대한 이해 수준을 높이기 위해 긴급하다고 판단한 지점들만 밝히도록 하겠다. 이 글 자체는 여기까지만 진행될 것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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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글은 루만의 사회적 체계 이론과 그의 현대 사회 진단이 갖는 잠재력을 알리기 위한 서론이기도 하다. 루만은 자기 이론의 성격을 결코 진보, 혁명, 좌파 등으로 규정하지 않으며 다른 관찰자들이 루만의 이론을 그런 식으로 분류하기도 어렵다. 그는 모든 종류의 ‘-주의’가 일차 등급 관찰에 불과하다고 보았으며, 진보/보수, 혁명/반동, 좌파/우파, 비판적/옹호적 등의 구별을 이용하는 일차 등급 관찰자(first-order observer)들의 맹점을 다시 관찰하는 이차 등급(second-order)의 과학적(사회학적) 관찰자에 머물러 있고자 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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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러한 이론적 관찰은 현대 사회의 구조와 한계에 대한 거시적 통찰을 제공했던 맑스의 &lt;자본&gt; 이후 보기 드문 거대 사회이론의 구축에 이르렀다. 거대 사회이론으로서의 &lt;자본&gt;이 경제 비판에 머무른 반면, 현대 사회의 주된 구조를 기능적 분화(funktionale Differenzierung)5)로 파악하는 루만은 세계사회를 경제, 과학, 법, 예술, 정치, 종교 등의 여러 맥락에서 고찰하고 그 생태학적 합리성의 한계와 인간에게 끼치는 후과를 진단한 바 있다. 그리고 계층적 분화의 관념이 잔존하는 계급사회 이론을 거부하지만 기능체계들의 수행실적 상승을 통해 일어나는 포함(Inklusion)과 배제(Exklusion)라는 구별이 오늘날 세계사회의 메타코드(Metacode)로 강화되고 있다고 보고, 이로 인해 일어나는 양극화 및 현대성 위기의 문제상황을 진단하기도 한다.6) 이러한 진단들은 좌파의 실천을 위해서도 충분히 효과적으로 이용될 수 있는 이론적 자산이라는 것이 필자의 판단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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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체계이론 대 상호주관성 이론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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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이론이 주요한 대상으로 삼는 것이 무엇인가를 통해 그 이론의 명칭을 부여한다면 루만의 체계이론과 대비되는 하버마스 이론의 명칭은 비판이론이 아니라 ‘상호주관성 이론’이다. 루만이 사회적 관계들 혹은 사회적인 것을 ‘체계’로 파악하는 데 반해, 하버마스는 ‘상호주관성’으로 파악한다. 물론 체계와 생활세계의 2단계로 이루어진 하버마스의 사회이론을 상호주관성 이론으로 간주하기 위해서는 약간의 추가 해명이 필요하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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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마스에게는 체계와 생활세계 중에서 생활세계만이 언어를 통한 상호주관적 이해가 제한되지 않고 이루어질 수 있는 단계이다. 그에 반해 체계는 화폐와 권력이라는 비언어적인 조절매체를 통해 상호주관적 이해가 제한되는 단계이다. 하지만 이 두 단계의 지위는 평등하지 않다. 하버마스에게 생활세계는 “사회체계 전체의 존립을 정의하는 하부체계”(하버마스, 2006: 245)이며, 사회는 제도적 성격을 띠는 “생활세계의 구조적 요소”(하버마스, 2006: 224)이다. 그리고 체계의 복잡성 증가는 생활세계의 제도화, 즉 구조적 분화를 통해서만 이루어진다. 따라서 하버마스의 사회이론에서 일차적인 대상은 현상학적 사회학과 마찬가지로 상호주관성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그는 체계이론의 자극을 받아 물화(物化)된 현대 사회의 복잡성을 동시에 파악하고자 하기 때문에 체계 또한 이차적인 대상으로 다룬다. 이런 의미에서 하버마스의 사회이론은 상호주관성 이론이면서 이와 더불어 체계들도 고려하는 이론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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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마스와 달리 루만은 모든 사회적인 것을 체계로 파악한다. 그는 사회적 체계들을 상호작용들, 조직들, 사회들로 분류하며, 후기에 이르러 저항운동을 이들 세 가지로는 환원될 수 없는 독특한 종류의 사회적 체계로 간주한다. 간혹 루만이 다루는 체계들을 모두 사회적 체계들과 동일시하거나 사회적 체계들을 모두 사회의 기능체계들과 동일시하는 오해가 있기 때문에 여기서 체계 개념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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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체계이론은 체계와 환경의 차이를 출발점으로 하며, 기계들, 생명 체계들, 심리적 체계들(의식들), 사회적 체계들 등을 그것들의 환경과의 차이를 통해 다루는 이론이다. 사회적 체계들(soziale Systeme, social systems)은 사회학의 고유한 이론적 대상이며, 상호작용들, 조직들, 저항운동들, 사회들이 이런 체계들에 해당된다.7) 정치, 경제, 학문, 예술 등등의 기능체계들은 포괄적인 사회적 체계인 사회(Gesellschaft, society 혹은 societal system)가 분화되는 하나의 형식에 따라 나오는 부분체계들이다. 그리고 기능적 분화 형식은 현대 사회의 주된 구조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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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사회적 체계 이론이 모든 사회적 현상을 기능체계들의 자기생산 논리에 따라서만 파악한다고 보는 것은 오해이다. 체계이론적 사회학은 사랑하는 두 사람 사이의 친밀관계를 비롯하여 모든 종류의 사회적 접촉을 그 이론의 대상으로 삼는다.8) 반면에 하버마스가 체계이론으로부터 부분적으로만 수용한 체계 개념은 사회의 기능체계들, 특히 그 중에서도 경제와 정치에만 제한되는 개념이다. 그래서 하버마스의 체계 개념을 떠올리면서 루만의 체계이론이 이른바 조절매체들에 의해 조절되는 물화된 사회 영역만을 다룬다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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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만과 하버마스가 사회이론의 대상을 각각 ‘체계’와 ‘상호주관성’으로 삼는다는 것은 두 학자 모두 전통적인 주체 중심 철학을 극복하려 한다는 것을 뜻한다. 물론 그 극복의 방향은 매우 다르다. 루만은 상호주관성 자체를 불가능한 것으로 보며 이 패러다임이 구유럽적 인본주의(humanism)의 전제에 사로잡혀 있다고 비판한다. 반면 하버마스는 루만이 독일 관념론 전통과 밀접히 관련되어 있으며 근세 의식철학의 모나드적 주체를 작동상 닫힌 자기지시적(selbstreferentiell) 체계9)로 대체한 것일 뿐이라고 비판한다. 이러한 상호비판은 두 학자의 사상적 대립에 있어 가장 첨예한 쟁점이라고 볼 수 있다. ‘존재론과 인본주의 전통을 벗어나는 의미론’과 ‘형이상학 이후의 사유’를 각각 그 사상적 발상으로 삼는 두 사람에게 ‘너는 그 전통에서 벗어나지 못했어’라는 식의 비판이야말로 가장 큰 도발이기 때문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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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는 가장 초보적인 사회적 체계인 상호작용(Interaktion)의 창발(Emergenz, 떠오름)에 관한 루만의 견해를 살펴보면서 두 입장 간의 차별성을 밝혀보겠다. 루만은 둘 이상의 인간 의식들이 만나 소통(Kommunikation)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이 의식들과 전혀 다른 차원의 질서가 떠오른다고 보며, 이 질서는 결코 의식들로 환원되어 설명될 수 없다고 본다. 그래서 인간은 상호작용을 비롯한 사회적 체계들의 주체가 아니라 그런 체계들의 자기생산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환경의 일부일 뿐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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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만에 따르면, 의식들은 서로를 꿰뚫어볼 수 없는 암흑상자들(black boxes)이기 때문에 “내가 원하는 것을 네가 한다면, 나는 네가 원하는 것을 한다”(Luhmann, 1984: 166)는 ‘이중의 우연성(double contingency)’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렇듯 동어반복적이며 미규정적인 상황에서는 아무런 소통도 일어날 수 없다. 둘 중 하나가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다’ 또는 ‘네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한다’는 식으로 통지하면서 먼저 규정을 시도해야 한다. 하지만 이런 통지 행위에 맞추어 상대방이 맞장구를 치는 것은 아니다. 소통이 성립하려면 발신자(타아)의 ‘정보’ 선택 및 ‘통지’ 선택뿐만 아니라 수신자(자아)의 ‘이해’라는 선택이 일어나야 한다.10) 그리고 이해를 확인하는 그 다음 소통이 연결될 때만 소통이 소통을 재생산하는 자기생산(Autopoiesis)이 가능하며 하나의 상호작용 체계가 창발한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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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런 창발에 있어서 소통 관여자들의 의식들은 결코 ‘공동의’ 의식이나 상호주관성을 형성하지 못한다. 서로를 꿰뚫어볼 수 없는 이중의 우연성 상황은 그대로 지속된다. 다만 의식의 사건이 아닌 소통의 사건인 정보, 통지, 이해의 선택 단계들에서 순수한 이중의 우연성이 ‘기대 구조’의 형성을 통해 구조화된 이중의 우연성으로 바뀔 뿐이다. 여기서 ‘기대’란 의식의 기대가 아니다. 기대 구조란 하나의 소통이 다른 소통들과 연결될 수 있는 수많은 가능성들 중 특정한 것들이 선호되거나 배제되는 ‘제약’을 뜻한다. 소통에 관여하기 위해서는 이런 기대 구조에 맞춰 나가야 하는 의식은 상호작용의 주체가 아니라 그 환경에 자리 잡게 된다. 그리고 소통에서 지칭되는 인간이란 체계의 기대 구조에 따라 통지 행위가 귀속되는 동일성 지점인 ‘인격(Person)’이지 의식적 주체가 아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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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선 설명을 읽으면서 루만 고유의 생경한 개념들 때문에 이해하기 어려웠을 독자들을 위해 다소 오해의 소지가 있다 하더라도 개념어를 대폭 줄여 좀 더 쉽게 설명해보겠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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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생각한 것들 중 극히 일부만을 말할 뿐이다. 그리고 네가 말한 것들 중 극히 일부만을 나는 이해한다. 여기서 너의 의도(정보)와 너의 말(통지)을 구별하는 나의 이해가 너의 의식 속에 있는 것과 일치하는지 확인할 길은 없다. 나는 그런 이해에 기초하여 다시 너에게 내가 생각한 것들 중 극히 일부만을 말하며, 앞서와 같은 과정이 반복된다. 이 과정은 서로가 말한 것을 추리(이해)하면서 그 말 속에 들어있는 기대에 맞추어 나감(기대 구조 형성)을 통해서만 지속될 수 있다. 때로는 나의 의도와는 다른 말도 해야 하며 너의 말 속에 들어있는 오해를 묵인하기도 해야 한다. 말하는 과정에서 딴 생각을 할 수도 있다. 너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런 답답한 상황을 넘어서기 위해 생각의 일치에 우리가 도달해보자고 합의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런 일치를 확인할 길은 없으며 합의를 지키자는 약속은 소통의 실재일 뿐 의식의 실재는 아니다. 서로 약속을 지킨다고 해도 진심인지 확인할 길은 없다. 진심이라고 각자 생각하거나 진심이라고 서로 말할 수 있을 뿐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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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더 복잡한 사회적 체계들인 조직이나 사회의 기능체계 차원에 이르면 의식들 각각의 실재로부터 자립적인 소통의 실재가 더욱 뚜렷이 떠오른다. 선생님이 낸 시험 문제를 학생들이 읽고 답안지를 쓴 후 이를 선생님이 읽고 채점하는 소통 과정을 떠올려보자. 수십 명의 학생들이 한 교실에 앉아 똑같은 문제를 풀고 있는 사건, 정답을 쓰기 위해 그들의 생각과는 무관한 글을 쓰고 있는 사건, 읽고 싶지 않은 답안까지 모두 읽고 규정에 따라 채점하고 있는 사건 등등, 이렇게 극히 비개연적인 사건들의 연쇄는 이 소통 과정에 관여하는 의식들을 주체로 보아서는 전혀 해명될 수 없는 것이다. 이 과정은 우/열로 코드화된 교육체계의 기대 구조, 그리고 교육의 기능을 충족하기 위해 역할을 분배하는 학교 제도 및 조직들의 기대 구조에 의해 진행된다. 그 선생님이나 그 학생들이 주체라서, 혹은 그들 사이에 상호주관성이 형성되어서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선생님 역할과 학생 역할은 다른 인격들로 대체될 수 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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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선생님과 학생들은 시험 과정을 주제로 한 메타소통(소통 과정에 관한 소통)을 진행하면서 기대 구조를 바꿀 수 있다. 하지만 새로운 기대 구조 형성에 있어서도 이들은 결코 주체가 아니며 상호이해에 도달할 수 없다. 어떤 사회적 결정도 주체들 사이의 강제 없는 투명한 합의에 의해 이루어질 수는 없다. 그리고 구조 변동이란 그 소통 체계 자체의 진화이며, 여기서 의식들은 그 체계의 환경에서 각각 다른 강도로 자극할 뿐이다.11)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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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발상은 모든 담론에는 권력이 작용한다고 보며, 이러한 권력은 누군가가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주체 없이 행사된다고 보는 푸코의 관점과 유사하다.12) 물론 루만의 입장에서 보면 푸코의 권력은 사회적 체계들의 공고화된 기대 구조들을 뜻한다. 개념의 인플레이션을 좋아하지 않는 루만은 ‘미시권력’과 같은 종류의 용어를 사용하지 않으며, 권력을 이러한 기대 구조들에서 작용하는 범사회적 소통매체들 중 하나라고 본다.13) 루만에게 권력은 소통의 성공을 보장하는 상징적으로 일반화된 소통매체들 중 물리적 폭력과 공생하는 매체, 그래서 정치체계의 독립분화(Ausdifferenzierung)를 가능하게 한 매체이다. 어쨌거나 푸코와 루만은 담론 원칙이 “강제 없는 합의”(Habermas, 1998: 205)를 보장해야 한다고 보는 하버마스의 담론관에 반대한다는 점에서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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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의식들의 (참여가 아닌) 관여와 자극을 반드시 필요로 하지만 그로부터 자립적인 성격을 갖는 사회적 관계들에 대한 통찰은 이미 맑스에게서도 발견된다. 포이어바흐의 유적 존재와 슈티르너의 유일자에 맞서 맑스가 인간을 “사회적 관계들의 앙상블”(선집 1권: 186)로 규정했을 때, 여기서 인간은 개체의 신체나 의식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인격을 뜻하는 것이었다. 이로부터 시작된 자립적인 사회적 관계에 대한 탐구는 정치경제학 비판으로 이어졌다. 경제적 사회구성체론을 정식화할 때 맑스는 생산관계들을 “인간들이 자신들의 생활을 사회적으로 생산하는 가운데, 자신들의 의지로부터 독립되어 있는 일정한 필연적 관계들”(선집 2권: 477)이라고 표현한다. 그리고 &lt;자본&gt;의 2판 후기에서 자본가는 그 관계들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없는 “경제적 관계들의 인격화”(MEW 23: 16)로 파악된다. 또한 상품의 가치 형식이 펼쳐지는 과정은 순수한 이중의 우연성으로부터 벗어나 기대 구조를 형성하는 상품생산자들의 소통 과정, 즉 그들의 의지로부터 독립적인 사회적 체계가 떠오르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여기서 ‘가치 실체’란 구체적 유용노동의 시간으로 측정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물질적 실체가 아니며, 개인들이 생각한 대로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심리적 실체도 아니다. 실재적 추상(reale Abstraktion)을 통해 사회적 필요노동시간으로 측정되는 가치는 사회적 실체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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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루카치의 물화 이론 이후 이러한 사회과학적 인격 이해나 사회적 관계들 속에서 이루어지는 실재적 추상에 대한 파악은 자본주의 사회에만 고유한 대상성 형식으로 간주된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사회과학을 등한시한 프랑크푸르트학파는 철학 전통의 인본주의적 사회 이해로 돌아가게 되었고, 하버마스는 주체철학의 극복 방향으로 상호주관성 패러다임을 택하게 된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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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적 기체나 인간의 의식으로부터 자립적인 사회적 질서에 대한 맑스의 통찰은 뒤르켐, 파슨스 등 다소 보수주의적인 함의를 갖는 구조 중심의 사회학 전통14)에서 이어졌다. 루만은 그 자립성을 고정된 구조에서가 아니라 기능 우위의 역동적 구조를 갖는 체계 자체에서 찾음으로써, 한편으로는 선행하는 사회학 전통을 잇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 보수주의적 함의와 단절한다. 그는 기능 개념을 구조 유지를 위한 수행(performance)이 아니라 ‘문제와 문제 해결의 관계’로 정식화함으로써, 사회구조의 변화 가능성을 완전히 열어놓는 역동적 체계에 관한 이론을 수립했다. 물론 그 방향이 진보인지 퇴보인지,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등등에 관해서는 말을 아끼지만 적어도 현상태의 유지나 사회통합에 기여한다는 의미에서의 보수와는 전혀 무관한 이론을 수립한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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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소통이론 대 행위이론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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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살펴볼 대립구도는 이론의 대상을 이루고 있는 요소들과 관련된 것이다. 즉 체계로서의 사회이건 상호주관성으로서의 사회이건 사회를 이루는 요소들을 무엇으로 보는가라는 주제와 관련된 대립구도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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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이들이 하버마스의 사회이론을 ‘소통이론’이라고도 부르지만 정확히 말해 그의 이론은 책 제목 그대로 ‘소통적 행위 이론’이지 소통들을 요소로 삼는 이론이 아니다.15) 그는 베버로부터 이어지는 행위 중심 사회학의 전통에 서 있다. 그는 행위자인 주체가 객체세계와 관련을 맺는 행위를 ‘목적론적 행위’ 또는 ‘도구적 행위’로 간주하며, 주체와 주체가 서로 관계를 맺는 사회적 행위의 원본이 되는 행위를 상호이해 지향적인 ‘소통적 행위’라고 부른다. 그리고 주체가 다른 주체를 객체로 간주하는 경우를 도구적 행위와 마찬가지로 성공 지향적인 성격을 갖는 ‘전략적 행위’라고 부른다. 따라서 사회적 행위는 소통적 행위와 전략적 행위로 나뉘지만 여기서 소통적 행위가 본래적인 사회적 행위라고 볼 수 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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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소통적 행위 개념을 도입함으로써 하버마스는 행위 중심 사회학의 전통적인 합리성 개념을 대체하는 합리성 개념을 마련한다. 저 혼자 행위하는 행위자의 합리성이 아니라 행위자들 사이에 형성되는 상호주관성으로부터 나오는 소통적 합리성을 부각시킨 것이다. 이는 행위이론의 전통에 서면서도 이른바 ‘주관적 사회학’을 극복하는 하나의 길이라고 볼 수 있다.16)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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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위 개념과 구조 개념을 기본 개념으로 삼아 펼쳐져온 사회학의 역사에서 소통을 사회적 체계들의 요소로 삼고 의미(Sinn)를 이 요소들을 접속시키는 매체로 간주한 루만의 발상은 그야말로 패러다임 전환이라고 할 수 있다. ‘구조’와 이를 유지하는 ‘기능’을 강조했기 때문에 객관적 사회학으로 분류되곤 하는 파슨스조차도 사회적 체계들의 요소를 ‘단위 행위(unit act)’로 삼았다는 점을 볼 때, 소통이론으로의 전환은 전적으로 루만의 고유한 업적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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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만에 따르면, 사회적 체계들은 인간들로 이루어진 것도 행위들로 이루어진 것도 아니다. 사회를 비롯한 사회적 체계들을 정보, 통지, 이해라는 세 가지 선택에 의해서 성립하는 단위인 소통들로 이루어진 것으로 봄으로써, 루만은 주관적 사회학도 객관적 사회학도 아닌 ‘소통적 사회학’ 또는 ‘사회적 사회학’을 확립했다. 이러한 전환에 따라 행위 개념의 위상은 부차화된다. 루만은 “소통은 자기구성의 요소적 단위이며, 행위는 사회적 체계들의 자기관찰과 자기기술의 요소적 단위”(Luhmann, 1984: 241)라고 본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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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체계들의 작동(Operation) 단위인 소통은 나타났다가 곧 사라지는 사건이다. 그래서 수많은 소통들이 다른 소통들과 연결되지 못한 채 잠재화된다. 루만이 “현행화(Aktualisierung)와 잠재화(Virtualisierung), 재현행화와 재잠재화의 단위”(Luhmann, 1984: 100)라고 정식화하는 ‘의미’는 현행적으로 연결된 소통들을 ‘형식들(Formen)’로 드러내는 동시에 연결되지 못하고 잠재화된 소통들이 다시 현행화될 수 있는 가능성을 환기시키는 매체이다.17)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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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연결을 통해 소통들이 현행화되기 위해서는 그것들이 행위들로 관찰될 필요가 있다. 그 자체로는 비가시적인 정보, 통지, 이해의 세 가지 선택은 어떤 인격에게 귀속되는 ‘통지 행위’로 단순화되어 관찰될 때만 쉽게 연결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단순화는 사회적 체계들마다 다르게 일어날 수 있다. 예를 들어 교통사고는 가족에게는 체험으로 관찰될 뿐이지만 법에서는 범법 행위로 관찰될 수 있다. 뇌물로 받은 돈의 출처가 되는 인격은 법에서는 관심사가 되지만 경제에서는 관심사가 되지 않는다. 이렇듯 행위나 행위자인 인격을 자명한 사회적 실체로 간주하지 않음으로써, 루만은 복잡한 현대 사회에서 소통들의 맥락에 따라 다르게 이루어지는 행위 귀속 가능성 및 인격화 가능성을 설명한다. 이런 설명에 따르면, 하버마스가 사용하는 전략적 행위와 소통적 행위의 구별은 관찰자들의 관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친밀관계에서는 투명한 합의(상호이해지향적 행위)로 관찰되는 소통이 정치에서는 서로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야합(성공지향적 행위)으로 관찰될 수도 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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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사회학적 계몽으로서의 비판 대 철학적·규범적 척도 제시로서의 비판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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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크푸르트학파 1세대를 대표하는 호르크하이머는 ‘전통이론’을 데카르트 이래 사실을 숭배하는 조류라고 규정하고, ‘비판이론’을 “이성적이며 보편성에 상응하는 사회 조직”(Horkheimer, 2005: 229)이라는 이념을 갖는다고 규정한다. 이러한 구별법을 이어받아 하버마스는 현대 사회의 병리현상을 진단하고 이를 비판할 수 있는 척도를 제시하는 일을 비판이론의 핵심 과제로 삼는다. 그래서 현대적 사회비판의 과제는 체계에 의한 생활세계 식민지화에 맞서 생활세계의 소통적 합리성을 회복하는 일이 된다. 여기서 비판의 척도는 앞서 살펴본 행위 합리성의 구별에 의지하며, 이는 형식화용론이라는 언어철학에 의해 정당화된다는 점에서 철학적이다. 또한 행위에 있어 반-사실적(counter-factual) 규범으로 기능한다는 점에서 규범적 척도이다. 물론 이러한 척도 제시는 현대 사회의 복잡성과 체계라는 사실성을 무시하지 않는다는 면에서 사회학을 참조하는 것이긴 하지만, 하버마스에게 비판이란 기본적으로 ‘철학적 근거를 갖는 규범적 척도 제시’라고 할 수 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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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마스는 비판적/옹호적이라는 구별법을 이용하여 루만의 체계이론을 “지배에 순응하는 문제설정”, “기성의 것의 존속 유지를 위한 옹호론”(Habermas, 1971: 170), “현대 사회의 복잡성 상승을 옹호하는 태도”(Habermas, 1988: 426) 등등으로 평가한 바 있다. 하지만 이러한 평가는 기능을 구조 유지에 종속시키는 파슨스의 구조기능주의 체계이론에 대한 비판으로는 적절할 수 있어도 기능 개념을 “문제와 문제 해결의 관계”(Luhmann, 1984: 84)로 정식화하고 문제 해결을 위해 기능적 등가물을 찾을 수 있고 등가물들 간의 비교가 가능하다고 보는 루만의 등가기능주의 체계이론에 대한 비판으로는 부적절하다.18) 루만은 현존하는 구조는 언제든 비교를 통해 대체될 수 있다고 보며, 모든 것은 다르게도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사회적 사실을 다각도로 탐구하는 일과 그 사실을 숭배하는 태도는 구별되어야 한다. 물론 이러한 사실 탐구의 내용은 이데올로기 비판이나 지식사회학이 그렇게 해왔듯이 다른 관찰자들에 의해 비판적/옹호적, 진보적/보수적 등등의 구별법에 따라 평가받을 수 있지만, 탐구 자체가 이러한 구별법에 얽매여 출발할 필요는 없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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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만은 사회학이 비판적/옹호적이라는 구별로부터 출발하면 현대 사회의 문제상황에 대한 관찰에 실패하게 된다고 본다. 예를 들어 대중매체에 대한 비판적 태도로부터 출발할 경우 대중매체가 현대 사회에 제공한 기회와 위험부담을 동시에 관찰하는 일을 방해한다. 대중매체가 현실을 왜곡한다는 비판은 우리가 말할 수 있는 세계사회의 현실이란 오직 대중매체를 통해 산출되는 현실이라는 점을 간과하게 만든다. 왜곡된 현실이나 이를 비판하는 현실이나 모두 대중매체의 현실이다(루만, 2006: 106 이하 참조).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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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만은 체계와 환경의 구별을 주도적 차이(Leitdifferenz, guiding difference)로 이용하는 관찰이 현대 사회의 문제상황을 가장 폭넓게 볼 수 있도록 한다고 본다. 그리고 ‘존재/비존재’, ‘진보/보수’, ‘여성/남성’, ‘친환경/반환경’ 등 다른 구별을 주도적 차이로 이용하는 관찰자들의 맹점을 밝힌다.19) 이는 단일맥락적 세계 관찰자의 관점에서 다맥락적 체계/환경 차이 관찰자의 관점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세계를 하나의 맥락에서 두 개의 값으로만 구별하는 일차 등급 관찰자 관점에서 수많은 맥락들에서 각각 달라지는 체계/환경 구별들을 이용해 일차 등급 관찰을 다시 관찰하는 이차 등급 관찰자 관점으로 전환하는 것이다.20)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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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만은 사회학의 이차 등급 관찰자 관점에서 다른 관찰자들의 맹점을 밝히는 작업을 ‘사회학적 계몽’이라고 부른다.21) 그런데 이러한 계몽은 계몽하는 자가 계몽되는 자에 대해 어떤 인식론적 우월성도 갖지 못한다. 왜냐하면 계몽하는 관찰자 역시 다른 관찰자 관점에서 보면 일차 등급 관찰자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루만은 자신의 사회학이 스스로를 “비판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면, 이는 헤겔과 칸트가 어떻게 기술하는지를 하버마스가 관찰하고, 하버마스가 어떻게 기술하는지를 루만이 관찰한다는 식의 연쇄라는 의미에서 “삼차 등급의 입장, 그럼에도 원리적으로는 이차 등급 관찰 입장으로부터 구별되지 않는 (더 반성이 이루어진다는 점에&#160;있어서만 구별되는) 입장”(Luhmann, 1997: 1117)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반성의 연쇄는 진리를 보증하거나 동일성에 이르는 일이 아니라 차이를 산출할 뿐이다. 비판으로서의 계몽은 계속 다른 합리성들을 산출하는 일이지 세계의 진리에 도달하는 목적론적 과정이 아니다. 하나의 계몽이 갖는 설득력은 그것에 다른 소통들이 연결되어 가는 과정, 즉 개연적으로(그럴듯하게) 되는 과정에 의해서만 성립한다. 비판을 통한 변화란 필연적으로 일어나는 것도 임의적으로 일어나는 것도 아니다. 모든 변화는 비개연적인 것이 개연적으로 되는 과정이며, 그 조건은 다음 소통에 있어 마치 필연적인 듯 느껴지는 구조, 즉 앞선 비개연적 선택들이 형성한 기대의 구조들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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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만의 사회학적 계몽은 프랑크푸르트학파와는 다른 의미에서의 ‘비판(Kritik)’이다. 비판이라는 단어는 프랑크푸르트학파가 쓰는 방식보다 폭넓게 사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어 kritike는 ‘판단하다’, ‘판결하다’ 등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 단어를 근세에 철학적 개념으로 정착시킨 칸트의 이성 비판에서 비판은 이성의 ‘한계를 긋는 일’, 그 ‘월권을 지적하는 일’을 뜻하는 것이지 더 좋은 이성을 척도로 하여 더 나쁜 이성을 질책하는 것이 아니었다. 맑스의 정치경제학 비판 역시 비판의 척도가 되는 이상적 사회를 기준으로 삼아 현실을 비판하는 작업이라기보다는 정치경제학의 원리에 따라 자본주의 경제를 서술함(Darstellung)을 통해 정치경제학의 한계와 자본주의 경제의 한계를 긋는 일이었다.22) 공황은 그러한 한계를 드러내는 사건이지 공황 자체가 비판의 규범적 척도를 제공하는 것은 아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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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루만의 체계이론은 하버마스의 철학적·규범적 비판과는 다른 의미에서 ‘비판적’이며, 여기서 비판이란 사회학적 계몽 혹은 과학적 비판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비판은 다른 관찰자들의 구별이 갖는 맹점을 지적하는 동시에 자신의 맹점에 대한 계몽도 감수해야 하는 끊임없는 비판의 연쇄이다. 따라서 더 나아간 비판을 가로막을 수 없다는 점에서 그 비판의 척도를 철학적으로 근거지을 수도 규범적으로 정당화할 수도 없는 비판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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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차이이론 대 동일성 논리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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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면에서 보자면 루만의 비판과 하버마스의 비판은 프랑크푸르트학파 1세대 대표주자 두 사람 사이의 미묘한 차별성을 반영하고 있다. &lt;계몽의 변증법&gt;이라는 공동 작업에서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는 이성의 자기비판과 계몽에 대한 계몽을 강조하는 데서 그친다. 반면 그에 이은 단독 작업에서 호르크하이머는 주관적이며 도구적인 이성에 맞서기 위해 비판은 객관적 이성의 반동적 위험성을 알면서도 “객관적 이성을 강조하면서 수행”(호르크하이머, 2006: 216)할 수밖에 없다고 보았다. 여기서 호르크하이머는 ‘객관적’의 뜻을 ‘상호주관적’에 가깝게 쓰고 있다. 이런 점에서 하버마스의 소통적 이성 이론은 호르크하이머의 문제의식을 발전시킨 면이 있다. 비판의 척도가 되는 이성과 비판의 대상이 되는 이성을 구별하는 이성 이원론, 그래서 비판 척도의 동일성(identity)이 전자를 통해 확보되는 방식의 비판을 호르크하이머와 하버마스는 공유하고 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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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아도르노는 &lt;부정적 변증법 Negative Dialektik&gt;에서 진리, 화해, 구원(Erlösung), 객체의 매개(Vermittelung) 등에 관해 말하긴 하지만, 이는 끊임없는 부정 혹은 비판의 계기일 뿐이다. 비판하는 이성의 완성, 즉 주체와 객체의 매개는 실현 불가능한 일이며, 이것의 완성을 꿈꾸는 일은 또 다른 동일성 철학일 뿐이다. 이는 주체와 주체의 매개인 상호주관성을 이성으로 실체화하는 것 역시 동일성 철학의 반복이라는 것을 함축한다. “동일성과 비동일성의 동일성(Identität der Identität und Nichtidentität)”(Hegel, 1986: 74)을 핵심 명제로 하는 헤겔의 동일성 논리에 맞서 아도르노는 “개념화할 수 없는 것을 개념들을 통해 여는 것이되, 개념화할 수 없는 것을 개념들과 동일시하지 않는”(아도르노, 1999: 63-64) 사유, 즉 ‘동일성과 비동일성의 비동일성’을 부정적 변증법의 핵심으로 삼는다. 그래서 끊임없이 차이들을 산출할 수밖에 없는 아도르노의 비판이론 노선은 합의를 지향하는 하버마스의 비판이론 노선과는 상당한 차별성을 갖는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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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적 변증법의 비동일성 논리는 오히려 루만에게로 이어진다고도 볼 수 있다.23) 루만은 체계(동일성)와 환경(비동일성)의 차이(비동일성)를 출발점으로 삼으며,24) 이러한 차이들이 각 체계마다 다르게 일어난다고 본다. 그는 헤겔이 전통적 존재론의 전체/부분 도식을 ‘특수자 속의 보편자’라는 발상을 통해 보편/특수 도식으로 전환시켰다고 본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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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겔의 정신철학에서 살아있는 실체이자 참된 주체인 정신은 “자기 자신을 통해 자기가 다르게 됨이라는 매개운동(Vermittelung)”(Hegel, 2006: 14)이다. 여기서 다르게 됨이란 자연의 생성을 뜻한다. 따라서 정신은 자연과 구별되는 특수자인 동시에 자연과의 구별을 ‘자기 안에서의 반성(Reflexion in sich)’으로 고양시키는 보편자이기도 하다. 절대자를 향한 운동 속에서 정신이라는 동일성의 외부(자연, 비동일성)는 제거된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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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부분 도식과 그 변형인 보편/특수 도식의 동일성 논리에 맞서는 체계/환경 차이의 이론에 따르면, 자기지시적 체계들은 체계와 환경의 구별을 체계 안에 재도입(re-entry)함으로써 자기관찰과 타자관찰을 할 수 있다. 체계는 ‘자기 안에서의 구별’을 이용해 환경을 관찰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관찰된 자기’와 ‘관찰된 타자’는 작동상의 자기와 작동상의 타자가 아니다. 모든 관찰은 자신의 작동(Operation)인 체계/환경 구별 그 자체를 관찰할 수는 없다. 구별 자체는 관찰의 맹점이다. 그래서 관찰되는 동일성으로서의 체계와 관찰되는 비동일성으로서의 환경은 비가시적인 작동, 즉 차이에 의존한다. 이런 차이이론에 따르면, 헤겔에게서 자연을 매개하는 정신의 운동이란 결국 비(非)정신과의 차이에 의존해야 하며 이 차이를 결코 극복할 수 없다.25)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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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차이이론의 관점에서 볼 때, 주체와 다른 주체들의 차이는 결코 상호주관성이라는 동일성에 이를 수 없다. 상호주관적 합의란 합의와 불일치의 구별을 통해 각 주체 안에 다르게 재도입되는 합의(동일성)이다. 따라서 이러한 동일성은 합의에 대한 각 주체의 다른 이해를 넘어설 수 없기 때문에 상호이해(Verständigung)라고 볼 수 없다. 합의라는 재현 또는 표상은 각 주체 안에서 다르게 이루어지는 작동(차이)을 통해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체계 통합을 넘어서 생활세계의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사회적 통합 역시 불가능하며, “사회가 궁극에는 소통적 행위를 통해 통합되어야 한다”(Habermas, 1998: 43)는 목표는 동일성 철학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다. 따라서 독일 관념론과 루카치의 주체-객체 동일성 테제는 상호주관성 이론에서 주체-주체 동일성 테제로 대체된다고 볼 수 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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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일성 철학과 관련해 소결론을 내려 보면 다음과 같다. 프랑크푸르트학파 비판이론의 1세대 안에는 헤겔 이후 독일 철학에서 계속 반복되어온26) 동일성 논리와 차이이론 사이의 대립이 잠재되어 있었다. 그런데 2세대에서는 동일성 논리가 우위를 점하게 된다. 반면 부정적 변증법이 함축하고 있었던 차이이론은 오히려 루만을 통해 이어진다고 볼 수 있다.27)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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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맺음말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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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루만과 하버마스의 대립구도에 관한 ‘하나의’ 이해이다. 우선 이 글에서 밝힌 것 말고도 그들 사이의 대립지점이 엄청나게 많다는 점에서 ‘하나의’ 이해이다. 필자는 학위논문을 통해 두 사람의 언어 이해를 비롯한 매체이론상의 대립지점을 이미 분석한 바 있으며, 두 사람의 인권이론을 비교하는 작업도 준비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 글에서 다룬 대립지점들은 두 이론의 명칭 자체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지점들이기 때문에 20세기 후반 독일 사회이론의 대립구도를 이해함에 있어 핵심적인 지점들이라고 볼 수 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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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이해인 또 다른 이유는 지금까지 한국에서 이루어진 하버마스 중심의 비교와 달리 이 글은 루만 중심의 비교이기 때문이다. 대립하는 두 이론을 비교할 때 전적으로 공정한 비교란 불가능하다. 비교 자체도 이론이기 때문에 비교는 어떤 이론 안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고, 필자는 체계이론의 입장에 서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상대 입장을 왜곡하지 않기 위한 노력은 충분히 기울였다고 판단한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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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루만과 하버마스의 대립구도가 이해되어온 방식을 상당히 바꾸어보려는 이러한 시도가 한국에서 두 사상가에 대한 연구, 특히 부족한 루만에 대한 연구가 진척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비록 루만 자신은 사회학적 계몽에 머물러 있었지만, 우리는 열린 틀을 가진 이 과학적 자산을 실천적 사회비판과 대안사회의 전망 제시로도 연결할 수 있다. 필자가 볼 때 한국의 좌파 담론은 현재 ‘과학 없는 비판’과 ‘사회학 없는 정치철학’의 과잉 상태이며, 과학의 공백을 여전히 19세기의 정치경제학 비판이 메우고 있다. 다시 사회구성체론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이들이라면, 혹은 복잡한 세계사회의 작동 메커니즘을 이해하는 일이 절실하다고 생각하는 이들이라면, 루만의 체계이론적 사회학은 새로운 출발점을 마련해줄 수 있는 유력한 도구가 될 것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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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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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0;이들의 주요 저작 곳곳에는 직접 상대방을 거명하지는 않더라도 체계이론의 전제나 비판이론의 전제에 대한 반박이 깔려있다. 1980년대 이후 하버마스가 루만을 직접 겨냥해 비판하고 있는 대표적인 글로는 &lt;현대성의 철학적 담론&gt;의 열두 번째 강의와 부언 설명이 있다. 루만이 하버마스를 직접 겨냥해 비판하고 있는 글로는 "Ich sehe was, was Du nicht siehst 나는 네가 보지 않는 것을 본다", Soziologische Aufklärung 5권, "Am Ende der kritischen Soziologie 비판적 사회학의 종말", Zeitschrift für Soziologie 20호 등이 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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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60;루만은 진리를 비진리와의 구별을 이용하되 진리라는 긍정적인 값을 선호하도록 만드는 이원적 코드를 갖는 매체, 그래서 학적 소통들(Kommunikationen)이 진리값을 갖는 소통들을 수용하기 쉽게 만드는 ‘성공매체’라고 본다. 그런데 권력, 법, 화폐, 진리, 사랑 등 ‘상징적으로 일반화된 소통 매체들’이라고도 불리는 성공매체들은 그 부정적인 값, 예를 들어 비진리에 대한 선호를 봉쇄할 수 없다. 그리고 진리는 진리 자체가 진리인지 비진리인지를 확정할 수 없는 역설에 빠질 수밖에 없으며, 이 역설은 진리값과 비진리값을 할당하는 과학체계의 역사적 프로그램들에 의지해 펼쳐진다. 하지만 역설은 제거되는 것이 아니라 펼침을 통해 은폐될 뿐이며, 새로운 프로그램들과의 비교에 의해 다시 가시화된다. 더 상세한 설명은 정성훈, 2009: 141 이하 참조.<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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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60;파슨스와의 차별성 및 아도르노와의 유사성에 관해서는 4와 5에서 다룰 것이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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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60;“자신을 ‘비판적’으로 이해한다면, 사회학이 반드시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지휘를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니다 (중략) 우리가 이런 의미에서 ‘비판적’을 취한다면, 이것이 우선 뜻하는 바는 사회학이 이차 등급 관찰자의 입장을 취한다는 것이다.”(Luhmann, 1997: 1119) 루만의 사회학적 계몽과 이차 등급 관찰에 관해서는 4에서 다룰 것이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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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60;‘기능적 분화’란 사회가 그 문제들의 해결을 위한 맥락에 따라 정치, 경제, 법, 과학 등으로 분화되어 있다는 것을 뜻한다. 그 밖의 다른 분화 형식으로는 부족, 혈연 등으로 나누어지는 ‘분절적 분화’, 도시와 농촌 또는 제1세계와 제3세계 등으로 나누어지는 ‘중심/주변 분화’, 그리고 신분들에 따라 나누어지는 ‘계층적 분화’ 등이 있다. 루만의 체계분화 이론에 관해서는 크네어/낫세이, 2008: 150 이하 및 정성훈, 2009: 171 이하 참조.<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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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60;포함과 배제의 구별이라는 메타코드에 관해서는 정성훈, 2009: 215 이하 참조. 기능적 분화라는 현대성을 방어하는 법체계의 침식 경향에 대한 진단은 Luhmann, 1993: 571 이하 참조.<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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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60;루만의 층위별 체계 분류에 관해서는 Luhmann, 1984: 16의 표를 참조. 정성훈, 2009: 9 이하의 설명도 참조.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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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60;조만간 한국어 번역본이 나올 &lt;열정으로서의 사랑 Liebe als Passion&gt;은 루만의 사회적 체계 이론이 얼마나 폭넓은 사회적 관계들을 다룰 수 있는지를 입증하는 사례이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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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60;루만은 세포, 유기체, 신경체계 등의 생명 체계들, 심리적 체계들(의식들), 사회적 체계들, 그리고 사회의 분화된 기능체계들은 모두 그 환경들에 대해서 작동상의 닫힘(operational closure)을 통해 인지적으로 열려 있는(cognitive openness) 체계들이라고 본다. 여기서 작동상 닫혀 있다는 것은, 예를 들어 의식작용들은 의식작용들에만 준거(자기지시, Selbstreferenz)하지 의식 바깥의 실재와 결코 직접 접촉할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 의식은 의식(자기)와 환경(타자)의 구별을 의식 안에 재도입(re-entry)함을 통해서만 인지할 수 있다. 이런 체계들을 부르는 명칭이 자기생산(Autopoiesis)이다. 자기지시적이며 자기생산적인 체계와 모나드적 주체의 결정적인 차별성은 전자는 자기-원인이라는 의미에서의 실체가 아니라는 점, 오직 체계와 환경의 구별이라는 작동에 의해서만 - 지시된 자기밖에 볼 수 없다 하여도 자기지시란 지시되지 않은 타자와의 구별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 가능하다는 점이다. 체계 혹은 동일성은 스스로 유지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환경 혹은 비동일성과의 ‘차이’에 의해서만 유지된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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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60;루만은 소통이 타아(他我, alter ego)와 자아(ego)가 관여하는 정보, 통지, 이해의 세 가지 선택으로 이루어진다고 본다. 따라서 생각했다고(정보)뿐만 아니라 말하거나 썼다고(통지) 하더라도 소통이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 소통 개념에 관한 더 자세한 설명은 정성훈, 2009: 84 이하 및 크네어/낫세이, 2008: 114 이하 참조.<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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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60;루만을 비판하는 논자들은 간혹 루만이 초기의 논문에서 썼던 말인 “모든 것이 가능하다. 그리고 나는 아무것도 변화시킬 수 없다”라는 말을 인용하면서 변화를 거부한다고 평가하거나 실천의 의의를 무시한다고 평가하곤 한다. 필자는 이 말에서 ‘나’란 의식으로서의 나라고 본다. 따라서 이 말은 기원도 필연성도 없는 우연적인 기대 구조의 변경 가능성은 무한하게 열려 있다는 것에 대한 강조, 그리고 그런 변화의 인간 주체는 없다는 점에 대한 강조라고 본다. 그리고 그의 인격 개념과 행위 개념에 비추어본다면, ‘내가 변화시켰다’ 또는 ‘우리가 바꾸었다’라는 말에서 ‘나’나 ‘우리’는 소통의 진화를 특정한 인격이나 인격들에게 행위로 귀속시키는 관찰의 단위일 뿐이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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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60;푸코의 권력 개념에 관한 간단한 설명으로는 양운덕, &lt;미셸 푸코&gt;, 13쪽 이하 참조.<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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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60;푸코, 부르디외, 네그리 등은 권력, 자본, 계급 등의 개념을 지나치게 넓게 사용함으로써 그 개념들이 가지는 ‘구별과 지칭’(루만의 ‘관찰’)의 능력, 혹은 ‘규정된 부정’(아도르노)의 능력을 상실하게 만든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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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60;기든스는 이를 행위 중심의 ‘주관적 사회학’과 대비해 ‘객관적 사회학’이라고 부른다. 기든스, 2006: 25 참조. 하지만 사회적 대상을 다루는 이론이 의식철학의 주체/객체 도식을 이용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사회적 질서의 자립성을 강조하는 맑스나 루만의 사회학에 굳이 이런 식의 수식어를 붙이라고 한다면 ‘사회적 사회학’이 적합할 것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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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60;그래서 Theorie des kommunikativen Handelns라는 책제목을 ‘의사소통행위이론’이라고 번역하는 것은 ‘의사소통’이 곧 ‘행위’라는 착각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도구적 행위, 전략적 행위, 극적 행위 등과 구별되는 행위라는 점이 강조되기 위해서는 ‘소통적 행위 이론’으로 번역하는 것이 더 낫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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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60;행위자의 관행적(practical) 의식과 재귀적(reflexive) 행위 과정을 강조함으로써 행위자들의 구조 형성 능력을 강조하는 기든스의 ‘구조화 이론’은 행위이론을 출발점으로 하여 주관적 사회학을 극복하려는 또 다른 시도이다. 구조화 이론에 관해서는 기든스, 2006 참조. 구조화 이론과 체계이론을 비교한 것으로는 정성훈, 2009: 100-109 참조.<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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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60;형식들은 “요소들 사이의 긴밀한 접속”이며, 매체들은 “요소들 사이의 느슨한 접속”(Luhmann, 1997: 196)이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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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60;파슨스의 구조기능주의와 루만의 등가기능주의의 차별성에 관한 더 상세한 설명은 크네어/낫세이, 2008: 64 이하 및 정성훈, 2009: 36 이하 참조.<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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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60;다맥락적인 체계/환경 차이를 주도적 차이로 이용하는 이론이 다른 주도적 차이를 이용하는 이론보다 우월한가의 문제는 미리 결정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어떤 이론이건 선택할 수밖에 없는 출발점으로서의 차이는 모두 우연적인 것이며 그 차이가 가질 수 있는 설명력의 우위는 오직 그로부터 연결되는 연구의 생산성과 적합성에 의해서만 입증될 수 있다. 따라서 체계/환경 차이의 우월성은 미리 주어지는 것이거나 객관적인 것이 아니다. 그 우월성은 경제, 과학, 법, 예술, 종교, 정치, 대중매체, 저항운동, 조직, 친밀관계 등에 이르는 루만의 방대한 연구 성과와 그것이 갖는 설득력에 의해서만 입증된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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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루만은 이런 발상을 아리스토텔레스 이래의 이가(二價) 논리학을 비판하면서 다가(多價) 논리학을 시도한 고트하르트 귄터(Gotthard Günther)로부터 가져왔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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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60;루만은 자신이 쓴 논문들을 주제별로 모아 1970년부터 1995년까지 여섯 권의 &lt;사회학적 계몽&gt; 시리즈를 펴낸 바 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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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60;맑스는 라쌀레에게 보낸 편지에서 자신의 정치경제학 비판 기획을 “서술을 통한 비판”이라고 표현한 바 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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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60;필자는 논리 이외의 측면에서 아도르노와 루만을 비교하는 작업은 본격적으로 착수하지 못했다. 논리상의 유사성에 관한 더 상세한 서술은 정성훈, 2009: 259 이하 참조. 사회학의 측면에서 아도르노와 루만의 공통점과 차별성을 밝힌 독일의 연구로는 Breuer: 1995가 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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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60;&lt;사회적 체계들 Soziale Systeme&gt;의 ‘도입’에서 루만은 체계이론의 새로운 패러다임의 핵심이 “동일성과 차이의 차이(die Differenz von Identität und Differenz)”임을 뚜렷이 밝히면서 이것이 변증법 전통과 갈라서는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부정적 변증법에 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Luhmann, 1984: 26 및 각주 19 참조.<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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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160;헤겔의 보편/특수 도식을 차이이론의 관점에서 더 상세하게 비판한 글로는 정성훈, 2008: 385 이하 참조.<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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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160;헤겔의 동일성 철학에 대한 비판은 포이어바흐로부터 시작되며, 이는 슈티르너와 맑스를 거치면서 급진화된다. 물론 이들은 한편에서는 동일성 논리를 비판하면서 포이어바흐의 유적 본질(Gattungswesen) 개념이 보여주듯이 다른 방식으로 동일성 논리를 반복하는 경향을 보였다. 이에 관해서는 다른 논문을 통해 다룰 것이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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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160;그래서 1968년의 소용돌이 속에서 아도르노가 더 이상 프랑크푸르트 대학에서 강의를 할 수 없게 되었을 때 그 자리를 루만이 이어받은 일은 의미심장하다. 당시 루만이 진행한 세미나가 사랑의 사회학이었고, 여기서 작성된 습작이 발전되어 1982년 &lt;열정으로서의 사랑&gt;으로 출간된다. 이 세미나를 계기로 자극을 받은 하버마스는 독일 사회학 대회에 루만을 불러내어 두 사람의 첫 번째 논쟁이 시작된다. 루만의 제자인 디르크 백커(Dirk Baecker)가 인터넷에 올린 영문 소개글(http://projects.isss.org/Main/NiklasLuhmannByDirkBaecker)을 참조하라. 물론 프랑크푸르트에서 루만의 세미나는 일회로 끝났고 빌레펠트에서 교수직을 얻어서 빌레펠트학파가 시작된다. 또한 아직까지 필자는 루만이 아도르노와 자신의 공통점을 언급하는 경우를 본 적이 없다. 그리고 그가 프랑크푸르트학파 내지 비판이론을 언급할 때 그것은 항상 하버마스를 대표로 하는 입장이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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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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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만, 니클라스, 2006, &lt;대중매체의 현실&gt;, 커뮤니케이션북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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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스, 칼, 1991, ｢포이에르바하에 관한 테제들｣, &lt;칼 맑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저작선집 1권&gt;, 박종철출판사.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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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스, 칼, 1991, ｢정치경제학 비판을 위하여. 서문｣, &lt;칼 맑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저작선집 2권&gt;, 박종철출판사.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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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도르노, 테오도르, 1999, &lt;부정변증법&gt;, 한길사.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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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운덕, 2004, &lt;미셸 푸코&gt;, 살림.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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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훈, 2008, ｢구별, 일반화, 기능적 분석: 체계이론의 비교 연구 방법에 관한 고찰｣, &lt;철학사상&gt; 제28호, 서울대학교 철학사상연구소.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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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훈, 2009, &lt;루만의 다차원적 체계이론과 현대 사회 진단에 관한 연구&gt;, 서울대학교 철학박사학위논문.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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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네어, 게오르그/낫세이, 아민, 2008, &lt;니클라스 루만으로의 초대&gt;, 갈무리.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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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마스, 위르겐, 2006, &lt;의사소통행위이론&gt; 2권, 나남출판.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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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르크하이머, 막스, 2006, &lt;도구적 이성 비판&gt;, 문예출판사.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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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euer, Stefan, 1995, "Adorno und Luhmann. Konvergenzen und Divergenzen von Kritischer Theorie und Systemtheorie", Gesellschaft der Verschwindens, Rotbuch.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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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bermas, Jürgen, 1988, Der philosophische Diskurs der Moderne, Suhrkamp.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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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bermas. J/Luhmann, N., 1971, Theorie der Gesellschaft oder Sozialtechnologie - Was leistet die Systemforschung?, Suhrkamp.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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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bermas, Jürgen, 1998, Faktizität und Geltung, Suhrkamp.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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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gel, G. W. F., 2006, Phänomenologie des Geistes, Meiner.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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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rkheimer, Max, 2005, Traditionelle und kritische Theorie, Fischer.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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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uhmann, Niklas, 1984, Soziale Systeme, Suhrkamp.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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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uhmann, Niklas, 1993, Das Recht der Gesellschaft, Suhrkamp.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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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uhmann, Niklas, 1997, Die Gesellschaft der Gesellschaft, Suhrkamp.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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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x, Karl, Das Kapital, MEW 23권, Dietz.&#160;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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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루만과 하버마스의 대립구도에 관한 하나의 이해|작성자 차이<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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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item><item><author>바라</author><category>찌라시의 문서 창고</category><title>신자유주의 분석가로서의 푸코:미셀 푸코의 통치성과 반정치적 정치의 회로</title><link>http://blog.aladin.co.kr/vara/2955913</link><pubDate>Sat, 11 Jul 2009 02:2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vara/2955913</guid><description><![CDATA[http://www.homopop.org/log/index.php?page=3&#160;
신자유주의 분석가로서의 푸코:<br />
미셀 푸코의 통치성과 반정치적 정치의 회로 - 서동진<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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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의 시인이라는 푸코의 초상<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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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우리 눈에 부쩍 자주 띄는 푸코의 초상이 있다. 그것은 자유주의 나아가 신자유주의 분석가로서의 미셀 푸코이다. 그런데 어딘지 낯설게 들리고 또 얼마간 느닷없기까지 할 수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푸코는 실존의 미학자로서의 서정적인 어느 철학자의 모습에 가깝다. 혹은 훈육사회와 미시권력의 세계를 고발한 그 어느 자유주의자보다 더 극한적인 자유주의자의 모습을 한 푸코야 말로 우리가 알고 있는 푸코의 형상에 훨씬 근접해 보인다. 그런 우리에게 자유주의 분석가로서의 푸코, 나아가 그것의 현재 형태인 신자유주의를 면밀하게 탐색하고 그것을 우회할 수 있는 가능성을 곤구하는 푸코는, 낯설고 또 어쩐지 어색하여 보이기까지 할 수 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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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re.. <br />
less.. 그렇지만 푸코가 1970년대 후반에 진행했던 콜레주 드 프랑스에서의 세미나들이 거의 공개되고 또 출판이 이뤄지면서 우리는 그 누구보다 섬세하고 또 집요하게 자유주의를 분석했던 이론가로서의 푸코와 마주할 수 있게 되었다. 때마침 신자유주의를 어떻게 상대하고 비판할 것인가가 진보적인 지식인들 사이에서 화급한 주제로 부상한 때이기도 하다. 푸코는 1975년부터 1979년까지, 내가 푸코의 자유주의 세미나 3부작이라고 부를 세미나를 연속적으로 진행하였고, 이 세미나에서 이뤄진 강의와 대화가 묶여,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 󰡔영토, 안전, 인구󰡕, 그리고 󰡔생정치의 탄생󰡕이란 제목으로 공간되었다. 이는 󰡔감시와 처벌󰡕(1975), 󰡔성의 역사1󰡕(1976)을 출판하고 난 이후 오랜 침묵 끝에 그의 때 이른 죽음을 전후하여 나온 󰡔성의 역사󰡕 2, 3권(1984) 사이에, 과연 푸코의 관심과 작업은 무엇이었는지 헤아리는데 큰 도움을 준다. 특히 ‘지배(domination)의 분석’으로부터 갑자기 윤리의 문제, 그 스스로 즐겨 사용한 표현을 빌자면 “자기의 돌봄”이란 “주체성의 계보학”에 대한 분석으로 이론적 관심을 전환하게 된 계기가 무엇이었을까 하는 의문에 답할 수 있는 기회를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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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푸코를 둘러싸고 흔히 퍼져있는 미신적인 혐의에서 벗어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 혐의란 푸코가 모든 곳에 권력이 있다는 현혹적인 자신의 주장으로부터 반드시 따라 나올 수밖에 없는 수행적인(performative) 효과라고 할 그 것, 즉 ‘권력의 바깥’은 없다, 누구도 그 곳에 있을 수 없다는 허무주의적인 결론으로 인해 그 스스로 궁지에 다다르게 되었으며, 그로 인해 극히 퇴행적이고 심지어 유치해보이기까지 하는 ‘실존의 미학’이란 주장에 이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간헐적으로 소개된 세미나 일부 자료와 인터뷰, 강의를 제외하면 오디오 테이프 형태로만 존재하던 푸코의 세미나가 마침내 출판되면서 이런 혐의는 거의 푸코와 무관하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되었다. 한편 이 시기 푸코가 진행했던 세미나의 내용 가운데 일부와 그의 강연, 인터뷰 등과 그의 세미나에 참여했던 제자들의 연구 프로젝트가 영어권 독자들에 소개되기도 하고 또 책으로 묶이기도 하였다. 특히 푸코의 강의 요약 가운데 일부인 “통치성”을 비롯한 몇 편의 논문과 제자들의 글 가운데 일부가 영국의 포스트 알튀세르주의자들의 저널이었던 &lt;이데올로기와 의식 Ideology and Consciousness&gt; 그리고 &lt;경제와 사회 Economy and Society&gt;를 통해 영어권에 잇달아 소개되고 그것이 다시 묶여 책으로 출간되었다. 또 이를 주도했던 영국의 몇몇 이론가들은 “통치성 governmentality”이란 개념에서 비롯된 새로운 분석적 접근을 하나의 이론적 학파로까지 조직하게 되면서, 훗날 다수 경멸적인 이름이라 할 수 있을, ‘통치성 학파’로 불리게 된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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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치, 통치성 그리고 자유주의라는 정치적 이성<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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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치성이란 개념이 푸코가 진행했던 자유주의의 형성과 변모를 이해할 수 있는 주요한 개념적 탐침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것을 하나의 완결적이고 정합적인 ‘이론’으로 규정하기엔 억지스러운 점이 있다 할 것이다. 굳이 말하자면 통치성은 외려 푸코 스스로 말했던 것처럼 “근대 국가의 계보학”적 분석을 위해 도입한 잠정적인 방법 혹은 그의 접근 방식을 요약하는 이론적인 도구라고 보아야 옳을 것이다. 물론 푸코 스스로 언급하듯이 그가 착수했던 이론적인 기획은 통치, 통치성이란 개념을 중심으로 현저한 변화를 겪는다. 그것은 󰡔감시와 처벌󰡕을 출간하고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란 이름으로 묶인 세미나가 진행될 때까지 푸코가 지속했던 권력 분석에 일종의 전환이 이뤄진 것이라 할 수 있다. <br />
이즈음까지 푸코의 권력에 대한 접근은 권력에 관한 사법-정치적 담론 혹은 권력에 관한 주권적 모델로부터 벗어나려는 끈질긴 노력이라 볼 수 있다. 󰡔감시와 처벌󰡕을 전후하여 푸코가 전개한 권력에 대한 ‘바깥으로부터의 사고’라는 접근은,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는 세미나를 전후하여 이른바 “니체의 가설(Nietzsche's hypothesis)” 혹은 정복과 전쟁의 모델이란 관점으로 모아진다. 푸코가 “역사-정치적 담론”이라 부르기도 하는 이런 관점은, 주권(혹은 권리)과 법이란 관점에서 권력을 인식하는 자유주의적 정치철학(“리바이어던의 모델”)과도 거리를 두는 한편 권력의 기원적인 중심으로서 경제를 가정하고 계급지배란 관점에서 사고하는 교조적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으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이를 푸코는 “왕의 목을 자르기”라는 유명한 경구로 푸코가 표현하기도 하였다. 여기에서의 왕이란 봉건적 군주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군주이든 아니면 사법적으로 권리의 평등을 보장받은 근대적 시민이든 법률을 통해 코드화되고 또한 그를 통해 보장되거나 제재받는 권리의 주체를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왕이란 사법-정치적 담론을 압축하는, 다시 말해 권력을 사고하기 위해 언제나 선험적으로 가정되는 권력의 모델이자 정치적 주체의 이상(理想)이라 할 수 있다. <br />
그리고 푸코는 기울 권력(disciplinary power)과 “정상화(규격화) 사회(society of normalization)”란 모델에 따라 사법-정치적 담론이 가정하는 주권적인 권력/주체의 모델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길을 찾으려 하였다. 그는 18세기를 전후하여 서유럽사회는 시민의 권리를 성문화, 조직화하는 법률적인 코드와 사회적 신체를 실질적이고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훈육 메커니즘을 결합사킨, “주권적 권력”과 “훈육적 권력의 복합체”라고 주장한다. 그렇지만 이즈음 푸코의 입장은 렘케같은 이가 지적하듯이 사법-정치적 담론 혹은 그에 바탕한 권력 모델을 단순히 뒤집은 것, 혹은 그것의 반사적인 역상 속에서 권력을 사고하려는 시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통치(성)이란 관점에 서면서 푸코는 이런 모델과도 결별할 수 있는 이론적 전환을 이룰 수 있게 된다. <br />
통치(government)란 개념은 자유주의의 등장을 이해하는 데 관건적일 뿐 아니라 푸코의 권력론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도 매우 중요하다. 통치는 앞서 간단히 말하였듯이 사법-정치적 담론에 속박된 권력론으로부터 거리를 둘 뿐 아니라 그것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선택하였던 훈육 권력이란 담론으로부터도 역시 벗어나려는 시도라 할 수 있다. 무엇보다 통치란 개념은 자유주의의 역사적 변용을 이해하는데 있어서도 매우 큰 가치를 지닌다. 통치란 권력의 전략적 게임과 지배(domincation)이란 권력의 작용을 둘러싼 성층적인 형태를 이해하는데 있어서도 중요할 뿐 아니라 아울러 사법적-주권적 권력과 훈육 권력과 경합하거나 혹은 그것을 흡수하고 변형시키면서 18세기를 전후하여 서유럽 사회에 본격적으로 등장한 자유주의적 지배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도 중요한 의의를 차지한다. 푸코는 근대 사회에서 권력이 작용하는 방식을 세 가지의 성층적인 형태의 도식을 통해 설명하는데, 이 때 기존에 미시권력이라고 불렸던 일상적이고 미시적인 차원에서 행해지는 권력의 작용을 전략적 게임이라고 풀이한다. 개인이 관계 맺는 자기 자신이든 타인(들)이든, 아니면 기관, 제도, 기업같은 것이든 그 무엇이든 인간관계 안에 폭넓게 분포되어 있는 힘의 관계를 푸코는 전략적 게임이라고 부른다. 반면 그것이 상대적으로 경직되고 또 고정되면서 관계를 맺고 있는 항들 사이에 비가역적인 관계가 수립될 때 푸코는 이를 ‘지배’라고 부르고 이것이 우리가 흔히 권력이라 일컫는 그것이라 주장한다. 그리고 푸코는 ‘통치’(혹은 통치 테크놀로지)를 이 사이에 놓는다. <br />
그렇다면 통치란 무엇일까. 여기에서 통치성이란 개념은 통치가 차지하는 푸코의 권력 분석 안에서의 위치를 가늠하게 할 뿐 아니라 그것의 역사적 특성을 분별하는 데 결적인 역할을 한다. 통치성(governmentality)이란 개념은 푸코 스스로 만들어낸 신조어이다. 그것은 그 용어 자체가 보여주듯이 통치(govern/gourvener)와 사고양식(mentality/mentalite)란 두 가지 낱말을 결합한 것이다. 굳이 요약하자면 특정한 사고양식을 통한 통치를 가리킬 것이고 푸코 자신의 간결한 정의를 쫓자면 행동방식 혹은 행실에 대한 통솔(conduct of conduct)을 통한 권력의 작용을 가리킬 것이다. 그리고 이 용어는 정치 이성(political reason), 정치적 합리성(political rationality) 혹은 통치 합리성(governmental rationality)같은 개념들과 맞바꿔 쓸 수 있고 푸코는 자신의 강의와 글에서 이러한 개념들을 혼용하여 쓰고 있기도 하다. <br />
통치성이란 개념을 통해 푸코는 크게 두 가지의 차원을 겹쳐놓는다고 볼 수 있다. 하나는 지식과 권력의 관계이고 다른 하나는 주체화라고 할 수 있다. 먼저 지식과 권력은 권력이 행사되고 작용하는 표면, 즉 그 대상을 구성하고 그것을 수행하는 구체적인 장치, 절차, 계산의 형식 등을 두루 망라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매우 특정하면서도 복합적인 형태의 권력을 행사할 수 있게 해주는 제도, 과정, 분석과 반성, 계산과 전술들로 구성되는 전체(ensemble). 이러한 권력의 표적은 인구이며, 그 중요한 지식의 형태는 정치경제학이고 또한 그 본질적인 기술적인 수단은 안전기구들이다.”라고 푸코가 말할 때 가리키는 것이 바로 그것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여기에서 푸코는 근대 사회의 통치성을 구성하는 핵심적인 테크놀로지로서 안전기구(apparus of security), 그것이 작용하는 대상으로서 생물학적인 종으로서 다시 말해 생명을 가지고 자신의 욕망(desire)을 실현하고 보장하기 위해 분투하는 인간(human species) 즉 인구, 그리고 이를 사유할 수 있도록 하는 결정적인 지식의 형태로서 정치경제학을 꼽는다.<br />
다음으로 우리는 통치성을 주체화의 원리, 혹은 푸코적인 의미에서의 윤리, 개인이 자신을 권력에 예속된 주체이면서 동시에 자신의 행위를 반성하고 변형하는 능동적이고 자유로운 주체로서 살아가도록 이끄는 힘으로 볼 수 있다. 그것을 푸코는 통치하다는 것(governing)이 엄밀하게 가리키는 바로 정의하면서 상당히 꼼꼼하게 분석을 시도한다. 이것은 바로 히브리적인 전통에서 비롯되어 중세의 기독교적 서구를 경유하고 다시 근대 국가에서 통치란 형태로 변용된, 사목권력(pastoral power)이다. 이는 군주와 신민이란 관계를 목자-양떼란 관계와 결합시키면서 개인, 가족, 공동체를 비롯한 다양한 삶의 현실 안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하고 살아갈 것인지를 배려하고 관심을 기울이는 것을 말한다. 특히 푸코는 사목권력이 훗날 국가에 의한 통치, 그가 경제적 통치, 정치적 통치, 혹은 줄여 그냥 통치라고 부를, 국가를 통한 권력의 작용을 설명하는데 결정적인 의의를 가지고 있음을 강조한다. 그것은 ‘도시, 영토, 주권’같은 지고한 대상이 아니라 다수적 삶, 그가 ‘전부이면서 각자(all and each/omnes et singulatim)’라고 부르는 대상을 상정하고 또 그에 적합한 지식과 기술을 형성하기 때문이다. <br />
한편 이런 점에서 푸코가 통치성을 통치 합리성 혹은 정치 이성으로서 분절할 수 있도록 하는 이론적 계기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바로 그것이 거칠게 말해 근대 국가의 맹아라고 할 수 있는 16세기를 전후하여 서유럽에서 형성된 절대주의 국가에서의 “국가이성(raison d'Etat/ratio status/the reason of state)”과 그것을 실현하는 장치로서 “행정관리(police)”에 대한 분석이다. 국가이성이란 기존에 국가가 권력을 행사할 때 의존하던 추상적이고 선험적인 원리나 이상(이를테면 천국의 지복, 내세에서의 구원 등)과 단절하여 국가가 자기의식적으로 자신의 힘이 작용하는 대상을 분별, 조사, 관찰, 반성하면서 어떻게 작동할지를 정의하고 조정할 수 있도록 하는 권력 행사 방식 혹은 그것을 구체화하는 과학, 지식을 말한다. 다시 말해 마침내 국가는 엄밀한 의미에서 추론(reasoning)을 통해 혹은 합리성(rationality)을 통해 자신의 권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br />
한편 이는 중세의 봉건적 군주나 초기 절대주의 국가가 상정했던 목표와 그것을 실현하려는 기술, 이를테면 영토와 부(wealth)의 관리를 위해 행사하던 테크놀로지와는 전연 다른 새로운 것을 고안한다. 이것이 행정, 관리, 국책(國策) 등으로 부를 수 있을 폴리스(police)라고 할 수 있다. 시민이면서 동시에 인구인 대상을 지배하기 위해 발달한 폴리스에 관한 과학(Polizeiwissenshaft)은 푸코가 꾸준히 강조하듯이 전체화하면서(totalizing)하면서 동시에 개인화하는(individualizing) 권력으로서의 특성을 설명할 수 있도록 한다. 건강, 장수, 안전, 행복 등을 비롯한 다양한 목표를 위해 생명을 가지고 살아가는 인간 즉 인구를 돌보는 국가는 바로 행정관리를 통해 작동하기 때문이다. <br />
그런데 푸코는 국가이성이 한계에 부딪치며 18세기를 전후하여 새로운 통치성이 등장한다고 말한다. 그것은 훗날 자유주의라고 부르게 될 정치적 합리성으로의 전환이 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국가이성이 가진 목표, 즉 국가와 그것의 부의 증대를 “사회”와 그것의 경제적 진보라는 목표로 대체하는 새로운 통치성이라 할 수 있다. 푸코는 이런 통치성의 등장을 선도하고 조직한 것이 중농주의자로 대표되는 정치경제학자들이었다고 주장한다. 그런 점에서 푸코는 “국가이성은 새롭게 부상하던 영역인 경제에 의해 개조되었으며, 경제 이성(economic reason)은 국가이성을 대체하지는 않았지만 국가의 합리성에 새로운 내용과 새로운 형태를 제공했다”고 말하기도 한다. 정치경제학을 통해 마련된 통치성의 핵심적인 특성을 푸코는 크게 다섯 가지로 설명한다. <br />
하나는 “자연스러움(naturalness)”의 대상으로서 “사회”가 고안되고 자유주의의 핵심적인 가정인 사회, 시민사회 대 국가란 이분법이 형성된 것이다. 이제 국가는 시민사회를 책임지고 관리해야 하며 국가는 또한 그 시민사회가 만들어내는 움직임, 중상주의가 상정하는 교환(exchange)이란 관점에서 파악된 부가 아니라 생산하고 소비하며 그를 통해 구체적으로 자신의 생존을 이루는 인구들의 삶, 즉 사회를 상대하게 된다. 두 번째로 이러한 자연스러움으로서의 사회라는 가정으로부터 통치성의 핵심적 구성요소인 지식과 권력의 관계 역시 변용되지 않을 수 없음을 푸코는 지적한다. 이제 좋은 통치를 위해 국가는 국가이성에서와 같이 외교적인 계산이나 역학관계에 대한 고려가 아니라 자연적 대상으로서의 사회에 대한 구체적인 분석으로부터 과학적 지식을 뽑아내게 된다. 그리하여 통치 기예와 지식은 세부적으로 대응하게 된다. 그리고 이로부터 세 번째의 것, 인구란 관점에서의 혁신적인 변화가 이뤄지게 된다. 국가이성이 인구란 관념을 끌어들이고 이를 통치의 대상으로 삼았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순전히 양적 다수, 머리 숫자로만 고려된 것이었다. 국가이성에 이끌렸던 중상주의적 국가에서 관심은 군주의 부를 좌우하는 것이 인구의 숫자, 그리고 그것의 일과 순종성(docility)이었기 때문에 절대적 가치를 지닌 상품과 수량화할 수 있는 부였다면 새로운 통치성 즉 자유주의는 최대의 가치가 아니라 너무 많지도 않고 너무 적지도 않은 최적의 가치, 균형적 가치를 추구하게 된다. <br />
네 번째는 국가가 개입하는 방식이 변화한 것에서 찾아볼 수 있다. 앞서 보았듯이 새로운 통치성이 가진 전제는 국가이성에서처럼 군주 혹은 국가의 의지를 부과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적인 대상으로서의 사회의 운동을 보장하고 촉진할 수 있도록 하는 것, 다시 말해 단순히 규칙이나 규제를 통해 사람들의 움직임을 제약하는 것이 아닌 새로운 국가의 개입 방식을 만들어내게 된다. 그리하여 푸코는 다섯 번째로 자유주의가 문자 그대로 자유(liberty)에 기반을 둔 통치라고 할 수 있게 하는 그것, 즉 좋은 통치란 자유를 존중하는 것이란 점을 꼽는다. 이는 중농주의자들이 인구란 서로 다른 개인들이 모여 만들어진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하나의 전체처럼 다룰 수 있는 이유는 바로 그 모두가 하나의 행위의 동인(mainspring), 즉 “욕망(desire)”을 통해 움직인다는 점이다. 따라서 인구를 통치하기 위해서는 규제나 명령이 아닌 바로 이런 욕망의 법칙, 즉 정치경제학이 상대하는 경제적 인간 혹은 욕망을 쫓으며 살아가는 개별적이면서도 또한 전체인 인구=시민이 가진 자유를 존중하는 것이지 않을 수 없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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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략)...........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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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적 통치성인가 사회주의적 통치성인가 혹은 그것이 아니라면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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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자유주의적 통치성이 등장한 이후 그것은 어떤 변천을 겪어왔을까. 푸코가 󰡔영토, 안전, 인구󰡕 이후에 진행한 󰡔생정치의 탄생󰡕이 직접적으로 관심을 둔 것이 바로 그것이라 할 수 있다. 여기에서 이른바 신자유주의적 통치성이라고 할 만한 것을 상세하게 분석한다. 특히 푸코는 제3공화국, 나치즘의 등장을 전후하여 독일에서 등장한 프라이부르크 학파, 혹은 그들이 발간했던 저널의 이름을 따서 질서자유주의자(the Ordo-liberals)라고 불리는 초기의 신자유주의와 우리가 흔히 시카고 학파라고 부르는 미국의 신자유주의를 소개하고 이에 대한 비판적 분절을 시도한다. 여기에서 이를 상세하게 소개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여기에서는 푸코의 분석을 참조하면서 극히 간략하게 신자유주의가 기존의 자유주의의 ‘실패’를 어떻게 표상하였으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 어떤 새로운 통치성을 고안했는지 살펴보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한다. <br />
자유주의와 신자유주의 사이에 놓인 거리를 설명하기 위한 손쉬운 방편 가운데 하나는 자유주의적 통치성을 사회적 신체의 지형학(topography of social body)을 생각해 보는 것이지 않을까 싶다. 앞에서 간단히 지적했듯이 자유주의의 정치적 합리성의 핵심적인 특징은 경제적 삶의 세계와 거의 동일한 것이라고 할 ‘사회(the social)’를 고안하고 이를 국가가 상대해야 하는 대상으로 규정한다. 그런 점에서 사회와 국가의 관계, 나아가 경제 혹은 시장과 사회, 국가의 관계는 근대적 통치성, 자유주의가 변용되는 방식을 이해하는데 있어 관건적인 역할을 한다. 이는 푸코가 신자유주의로 꼽는 질서자유주의와 시카고 학파의 신자유주의가 등장하고 변형되는 방식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도 결정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시장(경제)과 국가, 나아가 경제, 사회, 국가라는 항들을 어떻게 설정하고 또 각각을 어떻게 분절하고 연관시키는가를 보면서 푸코가 시도한 신자유주의적 통치성 분석을 간단하게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br />
질서자유주의는 독일적 문제인 나치즘이라는 국가사회주의에서 출발하여 신자유주의적 사고를 정초한다. 푸코가 흥미롭게 설명하듯이 “자본주의의 비합리적 합리성”이란 베버주의적 질문에서 출발한 두 가지의 베버주의적 경향 혹은 학파가 있다. 그것은 먼저 질서자유주의이고 다른 하나는 프랑크푸르트학파라고 할 수 있다. 푸코는 양자의 차이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프랑크푸르트 학파가 자본주의의 경제적 비합리성을 폐절할 수 있는(nullifying) ‘사회적 합리성’을 모색하려 했던 반면, 질서자유주의자들은 자본주의의 사회적 비합리성을 폐절할 수 있는 경제적 합리성을 찾으려 했다는 것이다. 즉 그들은 동일한 문제를 붙잡고 씨름하였지만 정반대의 해결책을 찾아 나아간 것이다. 그리고 질서자유주의자들은 자신들의 관점을 전개하면서 자본주의와 (시장)경제, 국가를 조망하고 분석하는 매우 독특한 관점을 형성하였다. 그러나 질서자유주의가 제시했던 자유주의를 재구성하는 틀 혹은 정식은 지금 우리에게 그리 낯선 것이 아니다. 왜냐면 그들이 정식화한 자유주의의 핵심적인 질문, 즉 국가의 지나친 성장을 어떻게 막을 것인가 하는 문제는 이제 거의 상식처럼 받아들여지고 있기 때문이다. <br />
나치즘 그리고 그것에 조응하는 현상이라고 할 케인즈주의, 소비에트사회주의, 심지어 자유주의의 원산지인 영국에서의 베버리지 계획(Beveridge plan)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자본주의적 체제의 시도를 대조하고 이를 독일적 문제인 나치즘에 대응시키면서 질서자유주의는 기왕의 자유주의가 지닌 “소박한 자연주의(naive naturalism)”을 극복할 수 있는 자신들의 주장을 내놓았다. 푸코는 이를 자유방임주의에 대한 자유질서주의자들의 비판을 통해 압축적으로 설명하는데 자유방임주의의 핵심적인 주장은 시장 경제에 내재한 자연적 법칙이 있고 국가는 그것에 가능한 간섭하지 않아야 하며 그것이 실패하거나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하였을 때 개입할 수 있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반면 질서자유주의자는 그런 자연적 대상으로서의 시장 혹은 경제란 존재하지 않으며 그것은 정치적 조절을 통해 창출되고 관리되어야 하는 대상이라고 역설한다. 그것이 바로 질서자유주의자들이 “사회적 시장경제”의 요체임은 물론이다. 따라서 그들은 경제와 사회 혹은 국가가 대립적인 항으로서 상정하고 전자를 자연화시키면서 어떤 내재적 논리에 따라 움직이는 것으로 생각하길 거부한다. 그들은 자본주의란 것은 존재하지 않으며 정치적 선택과 행위, 특히 제도나 정책과 같은 것을 통해 다양한 자본주의적 ‘질서’가 역사적, 우연적으로 존재할 따름이라고 강변한다. 그들을 질서자유주의자로고 부르는 이유도 바로 자본주의 법칙 혹은 논리란 인식을 대신하여 정치적 선택의 소산으로서의 질서란 관점을 택하기 때문이다. <br />
그렇다면 미국발 신자유주의는 질서자유주의와 무엇이 다를까. 이는 역시 사회와 국가 혹은 (시장)경제와 국가 사이의 관계를 표상하고 둘 사이를 관계지우는 방식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를테면 질서자유주의자들 가운데 대표적 이론가 가운데 한 명인 뤼스토우(Alexander Rüstow)가 제안한 “생명정책(정치)(Vitalpolitik)”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것은 사회의 모든 단위, 그것이 개인, 가족이든 아니면 이웃공동체같은 지역사회이든 모두를 기업체(enterprise)로 가정하고 사회가 경제의 이름 안에서 통치될 수 있도록 하는 기획을 일컫는다. 여기에서 상기되듯이 질서자유주의자들은 사회적 영역과 경제를 구분하고 전자를 후자의 원리(경쟁)에 관점에 따라 구성하고 관리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경주한다. 이를 질서자유주의들은 사회정책(social policy)라고 부른다. 단순화를 무릅쓰고 말하자면 우리가 흔히 듣는 경구, 이를테면 물고기를 주는 것이 아니라 물고기를 잡을 수 있는 그물을 짜는 법을 알려주어야 한다는 것이 바로 이런 접근의 요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경쟁’이란 경제적 원리에 따라 ‘사회’를 관리하고 그를 위해 사회적 삶의 세계를 모두 기업체적인 정체성을 가진 대상처럼 다루는 것을 말한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는 ‘모두에게 평등한 불평등(inequality equal for all)이란 질서자유주의자의 핵심적인 명제가 압축적으로 반향 하는 것이기도 하다. <br />
그러나 질서자유주의자들의 문하생이었던 미국의 신자유주의자들은 질서자유주의자들의 주장이 흡족하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무엇보다 방금 말했던 사회와 경제 사이의 구분을 거부한다. 그들은 사회적 삶의 세계가 곧 경제적인 삶의 세계이며 사회 안에서 펼쳐지는 모든 활동을 경제적 행위로서 받아들여야 함을 역설한다. 푸코는 이를 설명하기 위해 게리 백커의 인적 자본(human capital)과 범죄에 관한 신자유주의적 접근을 다룬다. 그러나 푸코의 미국 신자유주의에 대한 설명을 굳이 상세하게 서술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것은 지금 우리 주변에서 펼쳐지는 거의 모든 것 속에 스며들어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경제개발계획이라는 개발독재 기간 동안 한국 경제를 주도했던 국가의 경제적 개입 방식이 종결되고 국가인적자원개발계획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경제기획원같은 부처를 대신하여 지식경제부같은 부처가 그 자리를 메우게 되었을 때, 학교사회에 속박된 획일적인 학생이 아니라 자기 학습권을 행사하며 자기주도적인 학습자가 되어야 한다는 교육정책이 들어설 때, 실업(자) 대신에 고용가능성(employability)란 담론이 대신할 때, 근로자나 종업원이란 말 대신에 역량을 갖춘 인재란 용어가 그 자리를 메울 때, 소득의 분배를 통해 자기의 경제적 생존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재태크’를 통해 자신의 경제적 삶을 스스로 책임지고 관리할 때, 이력서가 아니라 스펙을 완비한 포트폴리오를 준비할 때, 이 모두는 미국 신자유주의적 통치성이 어떻게 구체적인 지식, 제도, 정책, 법률, 행위방식으로 작동하는지를 여실히 보여주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는 직접적인 경제적 삶의 세계는 물론 교육, 보건, 복지와 같은 종래 사회적 삶의 세계로 생각되었던 영역을 모두 기업화(enterprising)하는 것이며 그 안에서 활동하고 살아가는 주체를 기업가적 주체(entrepreneur) 혹은 기업가적 정신(entrepreneurial spirit)에 따라 살아가는 개인, 집단, 조직, 사회체로 주체화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경제와 사회 사이에 놓인 거리는 사라진다. <br />
우리는 지금까지 푸코가 자신의 오랜 권력 분석의 기획을 통치성에 관한 분석, 그 가운데서도 자유주의에 관한 분석으로 전환하며 권력의 테크놀로지와 주체화의 윤리, 그리고 이를 구성하고 중재하는 지식의 관계를 탐색한 푸코의 이론적 궤적을 극히 간략하게 짚어보았다. 이러한 푸코의 자유주의 분석으로부터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신자유주의라는 난적을 어떻게 상대해야 할 것인가를 생각하는데 얻을 수 있는 이론적 정치적 교훈이 있을 것이다. 그것은 무엇보다 신자유주의를 특정한 이념이나 좁은 의미에서의 이데올로기로서 다루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것은 신고전파경제학이나 합리적 선택론이나 게임이론, 위험관리론 같은 다양한 ‘학술적’ 담론을 망라하고 심지어는 일상생활에서의 자기계발 담론과 그에 연관된 구체적인 언어적 생태계를 포괄한다. 그러나 이렇게 신자유주의를 단정할 때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결론은 신자유주의가 제출하는 편향적이고 이데올로기적으로 오염된 현실에 대한 표상을 넘어 진보적이고 과학적인 지식을 제출하는 것이 되고 말 것이다. <br />
한편 두 번째의 함정 역시 피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신자유주의를 언제부턴가의 역사적 시점부터 조성된 객관적이고 불가역적인 현실로서 사고하는 것이다. 그것이 세계화이든 아니면 자본의 고삐풀린 움직임이든 혹은 20 대 80의 세계이든, 신자유주의를 이러한 맹목적인 자본주의의 현실을 가리키는 또 다른 이름으로 간주한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바로 이런 잘못을 바로잡는 즉 더 많은 사회적 연대의 가치, 더 많은 공공성, 더 많은 국가의 개입 같은 것에 머물고 말 것이다. 물론 이는 희극적인 결과를 낳기 일쑤이다. 이를테면 ‘고용 없는 성장’이라는 악몽을 물리칠 수 있는 유력한 진보적 대안으로 널리 선전되었고 급기야 그를 주도했던 인물을 대통령 후보로 나서게 까지 만들었던 ‘4조2교대 일자리 나누기’라는 캠페인을 생각해보자. 이는 마치 신자유주의적 폐단을 극복할 대안처럼 여겨졌지만 그것은 노동자의 자기책임부여와 권한강화를 통해 생산적 주체를 형성하려는 지극히 신자유주의적인 실천의 한 갈래 일 뿐이다. 이는 이른바 사회운동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90년대 이후 활약했던 한국의 소문난 시민사회운동단체들이 공공성의 기치 아래 벌여온 일들은 신자유주의적 통치성을 구성하는 중요한 부분인 ‘협치(governance)’, 국가가 시민사회를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사회를 활성화하고 이를 자율화시킴으로써 시민사회가 자기 스스로 책임을 부여받고 자신의 문제를 관리하게 하는 새로운 통치 전략과 기술의 일부일 뿐이다. 따라서 ‘아름다운재단’같은 시민사회운동단체야말로 가장 탁월한 형태의 신자유주의적 통치성을 구성하는 직물의 한 씨줄인 셈이다. <br />
이런 점에서 푸코의 자유주의 분석, 정치적 합리성의 계보적 분석은 신자유주의의 정치학을 비판적으로 분절할 수 있는 가능성을 던져준다. 그것은 관념이나 지식으로서의 신자유주의적 이데올로기도 아니고, 경험적이고 실정적인 현실을 가리키는 것도 아니라 통치가능한(governable) 혹은 지배할 있는 현실을 구성하고 그와 관계 맺는 주체의 행위의 조건 혹은 행위 방식을 유도하고 평가하며 보상하는 지식과 테크놀로지, 윤리의 복합적인 결합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이를 가리키는 이름은 통치성이다. 그렇다면 신자유주의적 통치성이란 것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혹은 그것을 대신할 수 있는 통치성을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미테랑 정권의 등장을 전후하여 푸코가 개탄했던 것처럼 우리는 사회주의적 통치성이라 할 만한 것을 고안하고 구상하는 데 착수해야 할까. 그러나 이 물음 앞에서 우리는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는 지난 해 한국 사회를 뒤흔들었던 그러나 거의 믿기 어려우리만치 실종하여 버린 희귀한 정치적 사태를 생각해 보는 것에서 출발할 수 있을 것이다.<br />
미국산 수입쇠고기를 둘러싼 검역 문제에서 출발한 이른바 광우병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 시위는 어쩌면 푸코의 통치성의 정치를 둘러싼 의구를 풀어볼 수 있는 제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무엇보다 사법-정치적 문제설정 혹은 주권 담론의 주술적 유혹으로부터 벗어난 생정치적 주체를 통한 변혁의 전망을 내세우는 푸코의 끈질긴 주장을 되짚어 보는 데 아주 의미심장한 의의를 가지고 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보자. 우리는 촛불 시위에서 두 개의 대립적인 혹은 그것이 지나친 것이라면 두 개의 얼굴을 가진 하나의 정치적 주체를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를 외치며 “헌법1조가”를 부른 사법적-주권적 주체이자 동시에 시민의 생명과 안녕을 보호하고 책임질 것을 요구하는 인구-주민으로서의 주체이다. 물론 이 두 주체는 동일한 공간에서 출현하였고 어쩌면 둘은 다르지 않은 인격체 속에 깃들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둘은 전연 다른 주체의 모습이다. 이는 사회적 삶의 운명 속에 살아가는 계급 혹은 주민과 어떤 사회적 정체성으로부터 벗어나 문자 그대로의 엄밀한 의미에서 무조건적으로 평등을 주장하는 인민 혹은 민중이라는 두 가지의 이질적인 정치적 주체이다. 그렇기에 푸코보다 더 푸코적인 자크 동즐로로의 표현, “주권을 가지고서 혁명을 할 수 있지만 하나의 사회를 만들 수는 없다”는 유려하고 충격적인 단언에 대하여 이런 질문을 제기할 수 있다. “그렇다면 하나의 사회를 끝낼 수 있는 혁명은 어떻게 만들 수 있는가.” 실은 사회를 만들어내는 일이 아니라 그러한 사회를 형성하지 않을 수 없도록 이끈 그 결렬의 순간, 그 심연을 알 수 없는 공백이 더 결정적인 것 아닐까. 이를테면 동즐로 스스로 서술하듯이 프랑스 민주주의 혁명이 만들어낸 견딜 수 없는 민주주의적 평등을 자본주의 ‘사회’의 체계 속으로 길들이기 위하여 사회의 형성과 관리로 정치를 환원하는 것, 정의와 행복 사이에 거리를 만들고 정치를 안녕과 진보란 목표 속에 유폐시키는 것, 그것이 우리가 극복해야 할 일 아닐까. <br />
그렇다면 푸코가 말한 사회주의적 통치성이란 것도 혹은 신자유주의적 통치성 이후의 통치성이란 것도 결국은 푸코의 통치성이란 기획 속에서는 결국 발원할 수 없는 무엇이 되고 만다. 그런 의미에서 푸코가 근대 국가의 계보학이란 이름으로 진행한 장기적인 이론적인 기획은 놀랍게도 권력의 분석이란 이름 아래에서 권력의 영도(零度)를 끊임없이 회피하려는 몸짓으로 둔갑하게 된다. 그 권력의 영도는 인민과 인구 사이에 구분이 사라지는, 푸코의 표현을 다시 빌자면 생정치적 주체와 주권적 주체가 결합하면서 만들어내는 희귀한 정치적 계기를 가리킨다. 물론 이를 우리는 투박하게 민주주의 혁명이라고 말할 수도 있고 혹은 바디우같은 철학자의 시정적인 표현을 빌어 ‘사건’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알다시피 빵과 토지를 달라는 사회적 요구는 평등한 세계를 달라는 정치적 주장과 떼어놓을 수 없다. 둘 가운데 어느 하나 없이 민주주의는 실현될 수 없다. 그러나 푸코는 이 둘 사이의 거리를 가능한 멀리 벌여 놓는다. 그것은 혁명이라는 광란적 사태, 민주주의라는 미증유의 계기가 삭제된 즉 ‘본연의 정치’가 없는 정치의 세계를 꿈꾸는 것이다. 그런 연유로 우리는 푸코를 기꺼이 반정치적 정치의 이론가로 규정해도 무방할 것이다. <br />
그렇지만 그것을 푸코의 이론적 책임으로 돌리는 것은 부당할 것이다. 푸코로 인하여 우리는 거꾸로 다시금 민주주의적 정치의 근본적인 아포리아를 다시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정치에 관한 급진적 사유를 이끄는 주요한 사상가들이 드러나게 혹은 드러나지 않게 푸코와의 거리 속에서 사고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 않을 수 없다. 이를테면 랑시에르의 불화의 정치학은 푸코의 ‘행정관리(police)’란 개념을 정치의 존재론으로 사고함으로써 출발하지 않던가. 발리바르의 자유-평등의 정치학은 정치의 타율성을 사고한 마르크스-푸코의 짝으로부터 정치의 자율성과 정치의 타율성의 타율성을 준별하는 작업에서 비롯되지 않던가. 하물며 바디우는 어떠한가.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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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과학 2009년 봄 호에 기고한 글의 초안. ]]></description></item><item><author>바라</author><category>찌라시의 문서 창고</category><title>법원이 시민불복종을 재판할 수 있을까?</title><link>http://blog.aladin.co.kr/vara/2792793</link><pubDate>Sun, 19 Apr 2009 01:5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vara/2792793</guid><description><![CDATA[<h2>&#160;&#160;법원이 시민불복종을 재판할 수 있을까?</h2>
2009/03/21 23:25 | Posted by 몽똘 <!-- titleWrap close --><br />
<!-- 포스팅 본문이 들어가는 부분입니다. -->'인권연구소 창'이 주관하는 철학과 인권 세미나(http://www.khrrc.org/index.php)에 참여하며 미국의 정치학자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의 글을 다시 읽고 있다. 아렌트는 유대인이라는 신분으로 1, 2차 세계대전을 몸소 겪었고, 미국에서 흑인민권운동과 베트남전쟁 반대운동이 한창이던 60년대말, 70년대 초의 정치상황을 관찰하기도 했다. 아렌트가 말한 '권리를 가질 권리(the right to have rights)'라는 개념이 현대적인 인권 개념의 재구성과 관련해 주목을 받고 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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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렌트가 인권을 자기 철학의 핵심주제로 다루지는 않았지만(아렌트는 인권보다 시민권에 더 많은 관심을 가졌다) 이탈리아의 철학자 지오르지오 아감벤이 아렌트의 인권 개념을 비판하며 자기 얘기를 꺼내면서 아렌트의 사상이 자연스레 인권의 주제로 옮겨진 듯하다. 그런데 아렌트의 인권개념을 논의하는 방식이 아렌트의 사상 전체를 살피고 그 속에서 인권개념을 논의하는 자연스런 과정을 따르고 있지는 않은 듯하다. 그래서 인권활동가나 인권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아렌트의 여러 책을 함께 읽으며 그 개념의 흔적을 찾아보는 세미나를 하고 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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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와 관련해 아렌트가 쓴 [공화국의 위기]를 읽고 있다. 이 책은 60, 70년대 미국사회를 비판적으로 분석하는 글인데, 현재 우리사회가 경험하고 있는 현실과도 맞닿아 있는 듯하다. '시민불복종'이라는 글에서 아렌트는 당시 베트남전쟁을 반대하던 양심적 병역거부운동과 흑인민권운동을 벌이던 시민불복종운동을 다룬다. 아렌트는 어떤 정치적 의견이 공동체 내에서 소통되며 사람들 사이에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는 것을 정치라 보고 그런 소통과 관계의 장을 보장하는 것을 권력의 역할이라 봤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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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렌트는 어떤 사안을 개인의 문제로 환원시키는 것을 경계하는데, 가령 양심적 병역거부는 법을 어기는 행위의 정당성을 개인의 양심에서 찾기 때문에 정치적인 사안을 비정치적인 문제로 환원시킨다. 그러다보니 어떤 개인의 양심과 다른 개인의 양심이 충돌할 때(아렌트의 표현을 빌리면 흑인의 권리를 주장하는 킹 목사의 양심과 미시시피의 인종주의자의 양심이 충돌할 때), 그 주장은 타당성을 가지기 어렵다. 더구나 그런 양심이 정당화되려면 그 사람이 선과 악을 근본적으로 구별하는 능력을 가져야 하는데, 그런 능력은 자연적으로 타고날 수 없다. 이런 점 때문에 아렌트는 양심적 병역거부가 사회적인 인정을 받는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고 봤고 그 근거를 양심이 아니라 정치적인 것에서 찾기를 바랬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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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적인 거부자와는 달리 불복종 시민은 한 집단의 성원이며 싫든 좋든 이 집단은 자발적 결사를 이루는 것과 같은 정신에 따라 형성된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이 논의에서 가장 큰 오류는 우리가 개인들―그들은 자신을 주관적이며 양심에 따라 사회의 습관과 법에 도전한다―을 다루고 있다는 가정이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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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렌트는 양심적 병역거부와 시민불복종을 구분하면서 시민불복종을 중요한 정치행위로 바라본다. 왜냐하면<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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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복종 시민의 실상은 조직된 소수집단이며, 공동이익이라기보다는 공동의견에 의하여 결합되어 있고, 정부의 정책이 다수에 의해 지지받을 것을 알 경우라도 그 정책에 대해 반대하는 입장에 서리라는 결의를 갖는다. 그들의 일치된 행동은 그들의 일치된 의견에서 나온다.<br />
시민불복종은 자신의 행위가 현재의 법질서를 해치거나 다수의 상식과 반대될&#160;것이라는 점을 알면서도 여러 시민들이 힘을 모으는 정치행위이다. 특히 정상적인 방식으로는 법질서의 변화를 기대할 수 없거나 정부가 적법하고 올바르게 행동하지 않고 음모를 꾸밀 때에, 시민불복종은 변화를 이룰 유일한 수단이다. 아렌트는 당시 미국사회가 이런 상태(정부가 통킹만 사건을 조작해 베트남전쟁을 벌이고 정보기관이 은밀히 활약하는)였다고 보고 시민불복종 행위를 미국의 건국행위만큼 중요하다고&#160;본다. 왜냐하면 미국의 건국행위란 따져보면 식민지 질서를 뒤엎고 새로운 질서를 만들기 위한&#160;시민불복종이었기 때문이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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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시민불복종은 공개적으로 법에 도전하기 때문에 일종의 딜레마를 가진다.&#160;사회가 유지되고 정치가 이루어지려면 그 경계를 짓는 법이 필요한데, 시민불복종은 그 법의 경계를 넘어서려 하기 때문이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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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점에서 아렌트는 법조문보다 법의 정신이 중요하고&#160;준법정신이 입법자의 태도를 가질 때, 즉 내가 곧 법을 제정하는 사람이자 스스로 그 법에 복종하는 사람(인민주권이라고 해야 할까)일 때 가능하기 때문에 시민불복종이 정당하다고 본다. 특히 새롭게 세상에 태어나는 사람들은&#160;자신이 합의하지 않은 그 사회의 질서에 도전하고 문제를 제기할 권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160;그런 불복종은 피할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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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아렌트는 그런 불복종이 약속과 함께 진행되어야 한다고 본다. 사람의 행동이란 예측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서로 간의 합의와 약속이 필요하다. 따라서 시민은 불복종을 하는 만큼 자신이 시민으로서 따를 수 있고 따라야 하는 것을 약속하고 그 약속을 지켜야 한다.&#160;<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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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 흥미로운 내용은&#160;시민불복종이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한 판단을 법률가들에게 맡기면 안된다는 주장이다. 왜냐하면 법률가들은 이런 시민공동체의 중요한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집단적인 행동을 개인의 범죄행위로 다루기 때문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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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하면 그들은 불복종 시민을 한 집단의 성원으로 인정하기보다는 법정에서 피고가 될 개인적 범법자로 간주하기가 훨씬 쉽기 때문이다. 개인에 대한 정의의 할당에는 관심을 가지면서 다른 모든 것―피고는 다른 자들과 함께 뜻을 하며 법정에서 그를 진술하려 한다는 여론이나 시대정신(Zeitgeist)―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것이 재판절차의 위풍이다.<br />
법은 법에 대한 불복종을 정당화시키지 못한다. 그런 점에서 아렌트는 시민불복종의 권리가&#160;자유로이 단체를 만들 권리(결사의 권리)와 맞닿아 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정치제도는 불복종하는 시민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자유로이 단체를 만들도록 보장해야 한다. 아렌트는 로비스트들이 정부에 영향력을 미치는 만큼 시민불복종하는 단체들이 압력단체를 만들어 정부를 압박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고 강조한다.&#160;미국 헌법 제 1조가 보장하는 결사의 권리가 현실에서 제대로 보장되지 않기&#160;때문에 미국이 위기에 빠졌다고 아렌트는 분석한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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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분석은 지금 한국 현실과도 맞닿아 있다. 이 사회가 정상적인 방식으로는(요즘은 이런 방식이 있는지조차 의심스럽지만) 자신의 주장을 더이상 받아주지 않는다고 여긴 시민들이 곳곳에서 촛불을 들고 저항하고 있다. 정부는 이 저항을 법으로 가로막으려 하지만&#160;아렌트가 얘기하듯 촛불시민들의 불복종 행위에 대한 판단은 법원에서 이루어질 수 없다. 왜냐하면 그 정치행위는 기존의 정치질서가 가진 문제점 때문에 비롯된 것이고 시민들은 불복종의 권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적으로 해결되어야 할 과제들이 비정치적인 방식으로 다루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의 정치위기는 아주 심각하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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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이나 관료들이 중요한 사회적 의제들을 자꾸 법원으로 가져가서 해결하려 하는데, 그것 역시 심각한 문제이다. 기본적으로 법원은 그 의제를 사회와 소통하지 않고 스스로 판단을 내리려 하기 때문에 공동체의 문제를 다루기에 적절하지 않은 기관이다. 그리고 그 사법적인 판단의 잣대는 이미 낡은 것으로 새로이 나타나는 것을 규정하는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또한 한국의 사법계는 민주적인 방식으로 충원되지도 않고 그 작동과정 역시 민주적이지 않다(최근에는 아예 대놓고 판결에 개입하기도 하니).<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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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이명박 정부는&#160;이런 정치의 위기를 더욱 심화시킬 게 뻔하다. 시민불복종의 권리는 짓밟히고 그와 함께 결사의 권리, 공동체의 시민으로서 자신의 주장을 펼칠 단체를 자유로이 만들 권리도 무기력해질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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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이제 저항은 아주 근본적인 수준으로 진행되어야 할지 모른다. 권력이 정치를 포기하고 시민의 기본권을 제한할 때, 저항은 건국행위 수준의 정치행위를 지향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단순히 법에 복종하지 않고 정부에 저항하는 것만이 아니라 이 사회의 사람들이 맺을 새로운 약속, 새로운 결사들을 만들며, 그들의 국가를 버리고 우리들의 공동체를 조금씩 만드는 노력이 필요하다. 비폭력 불복종의 정신이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려는 노력으로 터져나와야 한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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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가 무기력하고 정치가 왜곡되었으니 그것을 버릴 것이 아니라 새로운 공동체, 새로운 정치를 구성하려는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이제 개인으로 흩어지지 말고 새로운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자신의 권리를 만들어가야 하지 않을까? 그런 정치행위는 국가가 보장하는 시민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응당 누려야 할 근본적인 조건이다. <br />
<br />]]></description></item><item><author>바라</author><category>찌라시의 문서 창고</category><title>미셸 푸꼬의 유명론적 인간학 </title><link>http://blog.aladin.co.kr/vara/2612917</link><pubDate>Sat, 21 Feb 2009 22:4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vara/2612917</guid><description><![CDATA[미셸 푸꼬의 유명론적 인간학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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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160;『광기의 역사』, 『말과 사물』, 『감시와 처벌』 그리고 『성의 역사』등으로 이어지는 미셸 푸꼬 (&#160;1926-1984)의 사상 대장정을 철학적 견지에서 살펴 본다면 어떤 모습으로 재구성할 수 있을까&#160;? 푸꼬 사상에 대한 이 원초적 질문에, 본고는 그의 사상이 서구 철학사적 전통 내에서 ‘유명론적 인간학’으로 자리 매김되어질 수 있다는 주장을 소략히 전개하고자 한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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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학의 이념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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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160;『광기의 역사』에서 1971년의 「니체, 계보학, 역사」까지 푸꼬의 출간된 전저작을 일독하면, 그의 ‘고고학’이 『지식의 고고학』에 이르러 방법론으로서 칸트주의적 ‘비판적 합리주의적 기술론 description critico-rationnelle’으로 귀결하고, 그의 ‘계보학’은 「니체, 계보학, 역사」에서 방금 언급된 ‘고고학’이 응용 발전되어, 모든 사변적 세계관에 맞서는 ‘유명론적 전술 tactique nominaliste’로 전화하고 있음을 우리는 알 수 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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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160;다시 말하여, 푸꼬의 ‘고고학’은 『광기의 역사』의 1961년도 초판 서문에서 이미 언급된 뒤, 『임상 의학의 탄생』과 『말과 사물』에서는 각기 ‘의학적 시선의 ‘고고학’’과 ‘인간 과학의 ‘고고학’’이라는 부제 용어로서 등장함에도, 1966년이 되어서야 푸꼬 자신을 통한 개념 정립이 이루어지기 시작한다. 내용인 즉, ‘고고학’은 ‘주어진 시대의 문서고 archive 전체의 총체적 연구 결과의 기술’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고고학 archéologie’은 연구-기술 대상의 ‘기원 archê’을,&#160; 그 여타의 것을 가능케 하는 제일 토대적 시원 origine으로서가 아니라, 창시와 변형으로 반복 점철된 상관적 단초들로서 다루는 것이다. 또한, 이 ‘고고학’은 인간 의식을 대상으로 기존의 고고학처럼 은밀히 숨겨진 뭔가를 발굴하는 것이 아니라, 담론의 표면 자체를 매개로 하여 인간 사유를 대상으로 그 실제적 제 관계를 탐구 기술하는 것이다.&#160; 한 마디로, 푸꼬 ‘고고학’은, 시대적 문서고의 언문 덩어리들에서 우리가 받아 들이거나, 거부하거나 혹은 변형시키는 것들과 관계하는 제 역사적 조건의 분석과 기술이다. 그런데, 푸꼬 자신의 해명에 따르면, ‘고고학’을 “어떤 특정 형태의 사고를 필연화하는 역사를 가리키기 위하여”&#160; 처음으로 사용한 이는, 『독일 형이상학의 진전』에서의 칸트이다 (『말과 글』1, 1089쪽). 칸트 고고학의 이념은 이성의 원리들과, 이 원리들이 그들 사이에서 지탱하는 상관 관계들의 비판적 합리주의적 추출이다. 이러한 추출에서 기원하는 합리주의적 역사 해석은 역사 현실의 비판적 분석을 수행하는 한편, 경험적 우연의 외양을 가로 질러 선험적 제 필연성을 부상시킨다. 이러한 재구성적 역사 해석은, 이성이 역사를 통괄하고 영유하는, 특히 비판적 이성과 철학사 사이의 상관 관계를 드러내는 것을 이념으로 한다. 정녕, 귀납 명제 형태 속에서 철학은 논리적으로 필연적이지 않고, 시행 착오를 통해 필연성을 담보해내고자 한다. 그러나 이는 귀납적 필연성의 부상émergence과만 관련된 것이다. 모든 선험적 판단이 불확정적인 현실을 지양하는 것이긴 하나, 이러한 판단의 보편성의 토대는 이성 자체에서만 보장되어질 수 있다. 이처럼, 칸트에게서 합리주의적 철학은 비판주의적으로만 고려될 수 있다는 점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논리적 필연성을 고양하는 합리주의적 비판 철학은 그 자체로서 일정한 체계이며, 그러므로 일련의 뒷손질을 통해 구성되어질 수 없다. 이 철학은 자신이 드러내는 합리적 명증성 속에서 자기 이해된다. 이처럼 새로운 철학사가 부상하는데, 이는 이 지점에서 철학사에 고고학적 명료성이 도입되기 때문이다. 즉, 일련의 철학에서 토대적 원리들의 연계와 정합성을 발견하면서 진정하고 혁신적인 명제들을 찾아 내는 것이 고고학이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칸트는 고고학을 도입하는데, 이는 “철학적 철학사”, 즉 경험론적 계승사와는 다르게 합리적 비판주의적 원칙들에 따라 일련의 철학들을 자기 것으로 해낼 수 있는 역사를 그려내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까지의 논의를 총괄컨데, 푸꼬의 고고학은 ‘문서고’의 합리적 비판주의적 분석 탐구와 역사적 기술로 총괄적으로 개념 규정될 수 있는데, 문서고는 일정 시대에 주어진 사회와 연동되어, 결정적으로 부상하였을 일군의 현실적 사태들로서뿐만 아니라, 작동하며 자기 전화하고 다른 담론들의 출현을 가능케 하는 일군의 실제적 언표로서 투사되는 일단의 담론을 가리킨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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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160;이러한 담론의 고고학을 푸꼬는 『지식의 고고학』에서 사상사와 분별하며 그 용법을 제시하는데, 네 가지 원리적 분별점이 중차대한 것으로 제시된다. 첫째 용법은 본원적 담론과 이의 반복된 파생물 사이의 가치상 위계 서열을 거부하는 것인데, 이로써 고고학은, 일정 담론의 실제적 출현을 조건짓는 언표적 규칙성을 세우는 데에 주력한다. 문서고를 성격 지우는, 이 규칙성은 본원적 담론에 따라 여타 파생물에 처음 한 번에 결정적으로 주어진 것으로 간주되지 않는다. 따라서, 어떤 유일한 시원적 담론의 독창성으로부터 총괄적 파생 원리를 찾지 않고, 총체적 시대 구분을 시도하지 않는 것이 고고학에서는 중요하다. 둘째로, 제 모순은 고고학상 그 자체로서 차별적으로 기술되어야 할 항목들이다. 총괄적 일원론적 모순 전개에 고고학은 다원적 모순들의 개별적 형태, 수준 그리고 기능의 분석을 대체한다. 셋째로, 고고학은 제 담론을 비교 대조할 적에, 대상 담론들을 동시성에선 맞세우고, 시간성에선 차별 지우며, 비담론적 실천성에 특정적으로 관계 지운다. 이러한 고고학적 비교 대조는 항시 제한적이며, 제 담론의 다양성을 갖가지 형태로 그려 내기를 의도하기에, 그 효과는 승수적multiplicateur이다. 넷째 마지막으로, 전형transformation의 탐지와 관계해서는, 제 담론의 뚜렷한 공시성이 중요하다. 따라서 고고학은 시간적 연속을 정지시킨다. 그런데, 이 연속 정지의 목적은 제 담론의 시간성을 성격짓고 이를 계열화하는 제 관계를 부상시키는 것이다. 따라서, 정지되는 것은 최초의 분리할 수 없는 연쇄로서의 연속이라는 테마와 담론은 단 하나의 형태와 단 하나의 연속 수준을 갖는다는 테마이다. 이들 테마에 고고학은 다양한 형태로 포개진 연속과 특정한 연속들의 연접 양식을 둘 다 부상케 하는 분석을 대치한다. 또한, 고고학은 ‘차이’를 단순화 시키길 거부한다. 따라서, 차이의 고고학은 가능 사태들로부터 수다한 담론 수준을 구분해 내며, 변동에 대한 무차별적 준거에 제 전형의 분석을 대체하고, 반복자 (동일자, 연속자)가 어떻게 분산자의 경우와 마찬가지의 동일 조건과 규칙을 따라 실제로 형성되는지를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고려하는데, 이 경우에 단절rupture은 한정된 실제성들 사이에서 상당수의 개별적 전형에 의해 특정화되는 불연속을 의미한다. 상기된 용법을 요약컨데, 푸꼬 고고학은 개별적이기 보다는 구조 체계적 독창성을 강조하고, 일괴암적monolithique 모순보다는 차별화된 제 모순을 선호하고, 승수 생산적 비교 대조를 강조하며, 불연속의 제 전형을 우선시 하는 용법으로써, 문서고의 비판적 합리주의적 탐구와 기술의 실천적 방법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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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보학의 전술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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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160;은사 이뽈리뜨Hyppolite에게 극적으로 헌정된, 「니체, 계보학, 역사」는 거의 모든 테마에 걸쳐 헤겔의 사변적 역사 철학에 맞서는 푸꼬의 선전 포고이다. 이 ‘계보학 선언’으로 푸꼬는 모든 순수 이론적 사변 철학에 맞서는, 자신의 고고-계보학적 입장을 결정적으로 취하기로 한 것으로 보인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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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160;위 소론에 의거하면, 푸꼬 계보학은 방법으로서의 고고학과 상보적으로 역사에 적용되면서 내성적 방법으로서라기 보다는 논쟁적 입장으로 본격적으로 전화하기 시작한다. 이미 『담론의 질서』에서, 이 두 접근 방식은 결코 완전히 분리 가능한 것이 아니었고, 양자의 “차이는 완전히 대상이나 영역에 관한 것이 아니라, 타격점이나 투시각 혹은 경계선에 관한 것”(68쪽)이었음에도, 구심성의 고고학은 특정 담론의 형식적 영유를 중심으로 그 형성, 요구, 이전, 제약, 전환 등등의 내적 인과율을 보여주려 하는 것으로 기술되었던 한편, 원심성의 계보학은 제 담론의 외부적 실제 형성과 관계되었다. 이제 「니체, 계보학, 역사」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니체의 철학 사상을 푸꼬가 모든 순수 이론적 사변 철학에 맞서 어떻게 자신의 것으로 본격적으로 영유 해석하는지를 보여주는 ‘계보학 선언’이자 ‘반 절대 이성주의 선전 포고’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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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160;내용인 즉, 푸꼬 계보학에서는 고증주의적positiviste 박학 다식의 문서 준거적 세밀함을 요구하는 사태적 단독성 singularité들을 탐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로써 계보학은 본질적 기원을 찾는, 이상주의적이고 목적론적인 메타역사(철)학에 맞서는데, 계보학자는 사물의 본질은 어떤 실체도 없이 하나&#160; 하나씩 구성된 것이라 본다. 이러한 계보학자에게, 장엄한 본질적 기원은 모든 사물의 창시에 그 값진 가치와 본질적 의미가 있다고 말하는 사변적 형이상학의 덧새싹surpousse일 뿐이다. 사물의 단초는 하찮고 우연적이라는 의미에서 계보학적으로 ‘낮은’ 것이다. 따라서 계보학을 한다는 것은 낮은 역사적 단초들의 불확정적 놀이에 세밀한 주의를 기울인다는 것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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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160;따라서 ‘기원’보다는, ‘출처 provenance’와 ‘부상 émergence’이 계보학의 고유한 대상이다. 사실, 자발적 생성들의 내재적 발원지로서의 ‘출처’의 분석은 일괴암적 이상체 아래에서의 제 사태의 확산에 주목하는데, 이로써 우리의 존재와 인식에는 초월적 진리와 존재가 아니라 표면적 사건들이 자리 잡고 있음을 발견하면서 지나간 사태들을 이들의 고유한 우발적 분산에서 재취하고자 한다. 다른 한편, 힘 puissance의 분출로서의 ‘부상’은 국지적 출현의 단독성을 가리키는데, 이와 관계해서 목적론적 종말은 항시 현재적인 기세의 일련의 무한 연속의 한 최종 국면일 뿐이다. 부상의 분석은 따라서 힘들이 다양한 정황에서 서로 서로 반발하는 우연의 놀이를 보여준다. 이 부상의 세계는 폭력의 규칙의 세계이며, 지배의 놀이를 끊임없이 재발진시키는 것이 이 폭력의 규칙이다. 이처럼, 인류 역사는 단계별로 점진적으로 영구 평화로까지 진전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놀이의 각 규칙에 폭력을 각인해나가면서 지배에서 또다른 지배로 계속된다. 이러한 갖가지 역사적 부상은 한 의미 전체의 승계적 전개가 아니라, 수다한 정복, 이전, 반전, 대체 등등의 역사적 효과의 결과이다. 계보학은 이러한 효과들의 역사이며, 이들을 지배적 힘의 불확정적 무대에서 단독적 사태들로서 부상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출처와 부상의 실제 역사는 어떤 초월적 실체에도 의거치 않으면서, 현존재 각각의 그 역사적 온전성에 내생적 불연속을 도입한다. 이 역사적 힘은 어떤 목적지도 어떤 기계성도 없이 상호 투쟁의 우연성만을 갖고, 실제 역사는 가장 가까운 것의 형성과 변형과 관계하여 사태 각각에 그의 척도와 강도를 남기는 것이다. 이러한 역사의 계보학은 따라서 투시적 시선이며, 당파적 장치이자, 치료적 지식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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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시 권력과 통치성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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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160;상기한 고고-계보학을 바탕으로 푸꼬는 1970년대에 권력의 문제 연구에&#160; 주력하는데, 그 문제 의식은 파시즘이나 스탈린주의로 굴절된 전통적 법률-경제주의적 권력관의 극복이다. 근대 사회 계약론에 뿌리를 둔, 이 경제주의 권력관의 내용은 ‘권력은 우리가 재화처럼 소유자일 수 있고, 따라서 법률적 계약 행위에 의해 이전커나 양도할 수 있는 권리이며, 이러한 계약 거래의 법률 행위를 모델로, 모든 개인이 보유하고, 정치적 주권 권력을 구성하기 위해서는, 양도가 가능한 것이 권력’이라는 것이다.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 14쪽) 그런데, 푸꼬는 비법률-경제주의적 권력 분석을 하기 위해, 니체의 계보학을 권력 이론에 적용해서,&#160;권력을 사회 계약론의 모델 바깥에서, 법률적 주권과 국가 제도의 한정된 장의 외부에서 연구하면서, 지배의 기술과 전술로 부터 분석할 것을 제안한 것이다. 이러한 이론적 배경하에, 『감시와 처벌』에서 기율discipline로 상징되는 푸꼬의 미시적 사회 권력론이 이해되어야 한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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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160;이 미시적 사회 권력론을 살펴 보면, 푸꼬는 17-18 세기 서구 사회에 기존의 법률-경제주의적 전근대적 군주 권력 장치와는 다른 권력 기제가 새로이 부상했다고 주장하는데, 이 기제가 ‘기율’이다. 이 새로운 권력 기제는 신체와 신체가 행하는 것을 우선 대상으로 하고, 신체의 노동과 동작 시간을 추출하며, 지속적 감시와 처벌을 통해 행사되는데, 물리적 강제의 미세한 분할 경계망을 조건으로 하면서, 예속된 생산력과 동시에 예속하는 강제력의 효과의 극대화를 작동 원칙으로 하고 개인화를 동반 효과로 하는 ‘전면적 사회 통제’이다. 푸꼬에 따르면 사실, 권력은 편재하는 것으로서 결코 누가 쥐거나 누구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다. 권력은 어떤 개인에게도 어떤 집단에게도 속하는 것이 아닌 것으로서, 분산, 연계, 네트워크, 상호 받침대, 잠재력 차이, 편차 등등이 있는 경우에만 있는 것이다. 미시 권력이 개인의 신체를 대상으로 상정하는 지점에서, 권력은 기율적 권력으로서 일정 정도 말단의 모세망이자 최종적 연계 양태인데,&#160; 이에 의거해서 일반적 정치 권력이 최종 수준에서 신체를 건드리고 몸짓, 행태, 습관, 언행, 태도 등에 간섭하면서 개인의 신체 자체를 표적으로 하향 집중하며 “두뇌의 무른 섬유질”에 작동, 변형, 지도 등을 하는 것이다. 이처럼 기율적 권력은 개인의 신체, 몸짓, 시간, 행태 등의 철두 철미한 총체적 장악인데, 한편으론 기율이 자기 검열의 습관이 될 때까지 감시와 처벌의 항시적 통제 절차를 함축하며, 다른 한편으론 기율의 증가와 완벽화를 시간적 척도를 따라 세밀화할 점진적이고도 등급화된 반복 수행을 통해 그 효과가 보장된다. 부연컨데, 이러한 기율 체제는 저절로 진행되도록 적용되는 것인데, 최고의 감독자도 개인화되고 대치 가능한 ‘기능’으로서 보다 방대한 체계 안에서는 기율화된 자로 나타난다. 기율적 권력은 예속된 신체들을 만들어 내고, 신체에 기능-주체를 정확하게 고정시키는 것이다. 다시 말하여, 기율은 권력 관계에서 개인을 표적, 동반자 그리고 상대자로서 구성하는 권력의 단말적 모세 형태이다. 그런데, 푸꼬의 이러한 미시 권력론은 작동 권력이 전략적 관계로서 이해되고, 그 파급 효과가 조처, 조작, 전술, 기술, 기능 등에 할당되며, 그 속에서 항시 긴장되고 활동적인 관계망을 우리가 식별해낼 것을 전제한다. 기율적 권력은 순전히 그리고 단순히 격려나 금지로서 피지배자들에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이들에게 직위를 부여하며, 이들을 통과하고 관통하며, 이들에 의거한다. 이러한 권력 관계가 수없이 많은 대결 지점과 불안정한 진원지를, 각각이 모두 세력 관계의 최소한 과도적인 갈등, 투쟁, 역전의 위험 부담을 포함하면서, 가로 지르며, “신체 동작의 섬세한 통제를 가능케 하며, 그 힘의 항상적 예속을 보장하고, 신체 동작에 온순함-유용성의 관계를 강제하는” 것이다. (『감시와 처벌』, 139쪽)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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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160;이렇듯, 권력의 분석의 진입로가 지배 관계라는 것이 역사적으로 자명하다면, ‘어떻게 지배 관계를 분석하며, 세력 관계의 개념으로 전환시킬 것인가&#160;?’라는 문제 의식에서 푸꼬는 ‘정치는 다른 수단에 의해 계속되는 전쟁’이라는 담론에 주목하며 이를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에서 역사적으로 고찰한 것이다.&#160; 이에 따르면, 이 담론은, 관습적으로 취해지는 철학-법률적 담론과 상당히 다른, 사회에 관한 역사-정치적 담론인 동시에, 영구적 사회 관계, 모든 권력 관계와 제도의 지울 수 없는 심층으로서의 전쟁에 관한 담론이다. 이 ‘전쟁의 담론’의 내용인 즉, ‘철학-법률적 이론과는 상반적으로, 정치 권력은 전쟁이 그쳤을 때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전쟁은 끝나지 않는다. 전쟁이 국가의 탄생을 주재했고, 권리, 평화, 법률은 전장의 피와 진흙에서 태어난다. 법은 평화화가 아닌데, 그 아래에서 전쟁이 모든 권력 기제의 내부에서 계속 맹위를 떨치기 때문이다. 전쟁이 법, 제도, 그리고 질서의 숨은 동력이다. 따라서 우리는 서로 서로에 맞서 전쟁 상태이다, 전선이 사회 전체를 지속적으로 영원히 가로지르고, 우리 각자를 어느 한 진영에 위치시키는 것이 이 전선이다. 중립적 주체란 없다. 각자는 강제적으로 누군가의 적이다. 그리고 이 전쟁을 설명 원리로 되찾는 것으론 충분치 않고 재활성화해서, 승자가 되기 위해 준비해야만 하는 결정적 전투에까지 끌고 가야 한다’라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주권과 법의 문제에 따라서 정열되는 중립적이고 보편적인 철학-법률적인 담론에 반하여, 사회에서의 투쟁의 영구성을 해독하는 '전쟁의 담론'은 본질적으로 역사-정치적인 담론, 당파적 승리를 위해 진리가 무기로서 기능하는 담론이라는 사실에 푸꼬는 주목한 것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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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160;그래서, 권력을 논함에, 푸꼬는 일정 국가에서 국민의 복종을 보장하는 제도와 장치 전체로서, 폭력에 반하여 규칙의 형태를 띨 예속의 양상으로서도, 또한 일 구성원 혹은 한 집단이 행사하며 그 파급 효과가 사회 전체를 관통하는 일반적 지배 체계로서도 권력을 다루지 않는다. 이로 부터, 푸꼬의 권력 분석은 국가 주권, 법률 형태 혹은 단일한 총괄적 지배를 출발 조건으로 하지 않는다. 그는 권력을 “행사되는 영역에 내재하고 조직적으로 구성되는 제 세력 관계의 다양성, 부단한 투쟁과 대립을 통해 제 세력 관계를 변형, 강화, 역전시키는 놀이, 이러한 세력 관계가 연쇄나 체계를 형성하는 방식으로 서로 서로를 발견하는 지지대들, 혹은 정반대로 서로 서로를 고립시키는 제 편차와 제 모순, 제 세력 관계가 그 속에서 효과를 갖고 전반적 구도와 제도적 결정화가 국가 장치들, 법률의 정식화, 사회적 헤게모니들 속에서 구체화되는 전략들”로서 이해한다. (『성의 역사 1』, 121-2쪽) 따라서, 푸꼬는 ‘유명론’적 접근 방식을 시사하는데, ‘권력은 제도도, 구조도, 혹자에게 부여될 특정 역량도 아니며, 일정 사회에서 복합적 전략 상황에 부여되는 이름이다’. (상동, 123쪽)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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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160;따라서, 「주체와 권력」(&#160;1982)에서 푸꼬가 “권력이란 어떻게 행사되는가&#160;?”의 문제에 우선 집중하는 것은, 실체론적이고 기원론적인 질문 “권력이란 무엇인가&#160;? 권력은 어디서 오는가&#160;?” 앞에서 무한정 답보 상태일 때 우리가 일군의 상당히 복합적인 권력 현실태를 놓치진 않는가를 자문하기 때문이다. 푸꼬가 분석하는 권력의 특성은 개인이나 집단의 역량 자체가 아니라 이들 사이에서의 제 관계를 문제시 한다는 것인데, 이처럼 ‘권력’은 ‘상대자들 사이에서의 제 관계’를 가리키고 이 관계는 서로 서로 유인하고 반응하는 일군의 비상징적 ‘행위’가 염두에 두어진 것이다. 고로, 권력의 행사는 단순히 ‘상대자들 사이에서의 관계’가 아니고, “특정자들의 여타 특정자들에 대한 행위 방식” (『말과 글』2, 1054-5쪽)으로서의 그것인데, 이는 물론 영구적 제 구조에 의지하는 분산된 가능성의 장에 포함될지라도 권력은 행위로서만 현존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실, 권력 관계를 규정하는 것은 ‘타자에게 직간접적으로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이들의 고유한 가능하거나 현실적인, 미래나 현재의 행위에 작용하는 행위 방식’이다. (상동, 1055쪽) 이러한 권력 관계는 “응당히 권력 관계가 되기 위해서 자신에 불가결한 두 구성원에 연결되는데, 권력이 행사되는 타자가 끝까지 행위 주체로서 인정되고 유지되면서 가능한 반응, 반작용, 효과, 창안의 한 마당 전체가 권력 관계 앞에 열리는” 것이다. (상동) ‘인도conduite’의 푸꼬적 용법이 이러한 권력 관계의 특수성을 보다 잘 포착토록 하는데, ‘인도는 타자들을 이끄는 행위인 동시에 다소간 열린 가능성의 장에서 처신하는 방식’이다. 심층적으로 말하여, 권력은 이제 “두 적 사이의 대립이나 일자의 타자에 대한 앙가주망engagement의 차원이라기보다는 ‘통치gouvernement’의 차원”이다. (상동,&#160;1056쪽) 이 ‘통치’의 개념은 정치 구조와 국가 경영만이 아니라, ‘개인이나 혹은 집단의 행위를 이성적으로 이끄는 방식’을 가리킨다&#160;: “권력에 고유한 관계 양식은 따라서 폭력이나 투쟁의 측면에서도 아니고, (끽해야 이의 도구만이 될 수 있을 뿐인) 계약이나 자발적 유대의 측면에서도 아닌, 통치라는 — 전쟁적인 것도 아니며 법률적인 것도 아닌— 단독적 행위의 양식의 측면에서 찾아져야 한다.” (상동) 이런 고려하에, 푸꼬는 —혹자가 타자의 행위를 결정하려 하게끔 하면서, 이에 타자가 그의 행위가 결정되도록 내버려 두지 않으려 하거나 역으로 상대자의 행위를 결정하려 하는— 자유 행위의 전략적 놀이와 통상적으로 권력으로 불리우는 지배 상태를 구분하고, 이 양자 사이에 통치적 기술을 배치한다. 따라서 그의 권력 분석틀에는 세 가지 차원: 전략적 관계, 통치의 기술 그리고 지배 상태가 있다. 또한 통치성gouvernementalité을 매개로 한, 권력 관계의 이성성rationalité은 복합 다중적이고 다양한 형태를 가지며 가족 관계, 일정 제도 내부, 행정 경영, 지배 계급과 피지배 계급 사이 등에서 작동하는데, 흔히 이러한 통치성의 이성적 기술을 통하여 제 지배 상태가 설정되고 구현된다. 그런데, 이처럼 권력을 연구함에, 푸꼬는 정치적 권력론을 전개한 것이 아니라, 그의 문제틀이 주체의 구성과 이성성의 기술이 둘 자체 사이에서 어떻게 관계되는지를 알아보려는 것인 차원에서 이 관계의 결정 요소의 하나로서 권력 관계를 분석하려 한 것이라 말년에 회고했다. 사실, 인간은 그에게 행사되고 그가 타자에 행사하는 “일정 상당수의 권력 관계를 통해 주체로서” 구성된다. 그리고 “나는 권력 이론을 한 것이 아니라, 그 역사를 한 것”이라고까지 그는 자신의 권력론 작업을 압축 정리했다. (상동, 1269쪽)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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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유명론의 계보학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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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160;사학자 베인느 Veyne는 「푸꼬가 역사를 변혁한다」(1978)는 논문 서두에서 푸꼬를 “완성된 역사가, 역사의 완성”이라 극찬하며 ‘최초로 완벽한 고증주의자, 유명론자, 다원주의자 역사가’로 규정하였다. 이에 대해 푸꼬는 자신의 역사 작업에서 “나는 역사적 보편자와 역사에서 유명론적 방법을 시험해야 할 필연성에 관한 폴 베인느의 사색에 의지” (상동, 819쪽)했고, “폴 베인느가 잘 봤다: 역사적 분석을 통해 그 자체로 표명되는 유명론적 비판의 역사적 지식에 관한 제 효과가 중요하다” (상동, 853쪽)라고 호응했다. 베인느의 『역사를 어떻게 쓰는가?』(1971)에 따르면, “역사는 과학이 아니고, 과학으로 부터 기다릴 것이 많지 않으며, 역사는 설명치 않고 방법이 없다” (10쪽). 달리 말하여, “역사 설명은 어떤 원리에도, 어떤 영구적 구조에도 도움을 청할 수 없는데, 모든 개별적 사건intrigue이 자신의 단독적 인과 장치를 갖기 때문이다.” (149쪽) 과학적 설명에 맞서, “역사는 일어난 것의 단순 기술로 나타나며, ‘어떻게’ 일들이 벌어지는지를 설명할” 뿐이다. (222쪽) 이처럼, 역사는 사실적 진리만을 찾을 뿐이며, “증거 자료 documents에 의한 인식”이다 (15쪽). 이처럼, 유명론적으로, “모든 분류 개념은 잘못된 것인데, 어떤 사태도 어떤 다른 사태와 유사치 않으며”, “존재와 동일성은 추상에 의해서만 있을 뿐인데, 역사는 구체자만을 알려할 뿐이기” 때문이다. (184-5쪽) 그래서 역사에서 “항시 변화하는 진리와 항시 시대와 불일치하는 개념들 사이에서, 개념과 범주는 끊임없이 재편되고, 어떤 기정 형태도 갖지 않으며, 자신들의 대상의 현실에 맞춰 모델화되어야 한다” (190쪽). 실제, 푸꼬에 있어서, 대상은 사람들이 행하는 실천의 상관 요소일 뿐이다. 따라서, ‘푸꼬는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160; ‘실천’이라 불리는 새로운 심급을 발견한 것이 아니다: 그는 사람들의 실천을 ‘실제로 있는 그대로’ 보려고 노력할 뿐이다; 그는 모든 역사가들이 말하는 것, 즉 사람들이 행하는 것 이외의 것을 말하지 않는다: 그는 단지 모호하고 고상한 용어로 말하는 것 대신에 정확하게 말하고, 첨예한 윤곽을 기술하려 할 뿐이다’ (397쪽). 그 결과, “낱말로 부터 사물을 판단하도록 권유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게, 푸꼬는 정반대로 낱말이 사물, 자연 대상, 피치자들 혹은 국가의 현존을 믿게끔 하며 우리를 속이며, 이러한 대상들은 상응하는 실천들의 상관 요소일 뿐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398쪽). 사실, 그의 고증주의적 역사 분석은 역사에 형이상학적인 실체도 본질도 없으며, 단지 일어난 제 실천의 상관 요소들만이 있다는 설정에서 출발한다. 이러한 상관자들만이 존재하기에, 그는 실천 자체가 아니라 행위, 사태 그리고 여타 상관자들을 논의 대상으로 하는데, 이는 그에게 대상 자체, 즉자, 추상 일반 등은 존재치 않기 때문이다. 푸꼬의 철학은 따라서 ‘고증주의적 유명론’이다. 또한, 베인느가 시사하듯이, 푸꼬의 역사-철학의 인식론적 근본 문제는 ‘경험 대상들의 초역사적 실재성을 부인함과 동시에, 이들이 단순 기술 대상으로서의 주관적 허구가 아닌, 객관적 설명 대상으로 남기 위해선 이들에게 합당한 객관적 실재성의 여지를 남겨야 한다는 것’이며, 궁극적으로 “푸꼬는 이 어려운 문제를 관계의 우위성의 니체 철학으로 해결하는데, 사물은 관계에 의해서만 존재하고 (…) 이 관계의 결정이 사물의 설명 자체” (413쪽)이기에, 그의 유명론은 ‘반 질료-형상설적 실체론의 ‘관계의 존재론’’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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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160;실제 『생정치biopolitique의 탄생』에서 보이듯, 그의 “통치적 실천”의 연구는 유명론적 방법 선택을 명시한 것인데, 그는 “통치적 실천을 말하거나 이에서 출발하기를 선택함에, 이는 물론 시초적이고 시원적이며 완전히 주어진 대상으로서의, 예를 들면 군주, 주권, 인민, 신민, 국가, 시민 사회와 같은 이 일정 다수의 개념들을 아주 분명한 방식으로 등한시하는 것” (4쪽)이라 말한다. 달리 말하여, ‘그 구체적 제 현상을 연역키 위한 혹은 일정 다수의 구체적 제 실천에 대한 강제적 이해 격자로서의 보편자들로부터 출발하는 대신에, 구체적 실천으로부터 출발하여 이 실천의 격자로 보편자를 걸러 내려한다’는 것이다. (상동) 주지하듯이, 유명론자 오캄은 아리스토텔레스에 의거하면서 보편자가 존재적 실체가 아니라고 주장하였다. 그런데, 이렇듯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Z, 13은 유와 종, 즉 보편자가 실제로 존재함을 분명히 부인함에도, 프레데M. Frede에 의거하면, 아리스토텔레스는 개체적 대상들만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치 않으며, 이것은 고두Goddu에 의해 설파된 오캄의 ‘개별적 자연 경험 대상만이 실체적 존재’라는 질료-형상설적 개체 존재론과 그의 존재론적 입장이 다르다는 것을 의미한다. 프레데의 논의의 일단을 요약컨데, 아리스토텔레스의 입장은 진정한 존재로서 궁극적으로 실체인 것은 형상이며, 이 형상은 자신의 동일성을 변화를 가로질러서도 유지하는 존재자의 구성 기능 역량이다. 이러한 탈 질료-형상주의의 역량적 존재 개념관과 베인느 자신의 역사 유명론의 존재론적 토대에 관한 언급 (상게서, 153쪽)은 플라톤의 『소피스테스』247d-e의 ‘뒤나미스dunamis’에 의한 존재ousia의 정의를 주목케 하는데, 이 뒤나미스는 ‘능동과 수동의 힘puissance d’agir et de pâtir ’으로 개념화될 수 있고, 이 ‘힘’의 형이상학의 전통의 궁극적 최근 담지자가 니체의 ‘힘에의 의지’ 개념과 이를 매개로 한 푸꼬의 ‘미시 권력’ 개념이다. 하이데거와 뮐러-라우터 그리고 누구보다도 니체 자신이 잘 보여 주듯이, 매 단계에 다다른 자신의 정도degré를 제어하며 행사되고 성장할 뿐이라는 힘의 구조화되고 유일한 본성을 가리키기에, 힘에의 의지는 힘의 강화와 증대인 한에서만 힘이고, 세계의 모든 동력은 힘에의 의지인데 이 힘의 본성은 모든 운동자 사이에서의 관계에서 실현된다. 이러한 힘의 통일성은 세력의 영역에서의 어떤 조직화를 의미할 뿐인데, 이러한 조직 내에서의 힘의 끓는 변전들이 한 운동자의 다수 운동자로의 분리 혹은 다수 운동자의 한 운동자로의 집중을 초래한다. 바로 이것이 힘에의 의지의 개별화individuation인데, 이러한 맥락에서 ‘개체’는 참으로 존재하기는 하나, 힘에의 의지의 재생산된 ‘개체성’으로서 각별하게 존재하는 것이다. 따라서 뒤나미스로 인해, 개체 자체는 질료-형상설적 유명론의 최후의 형이상학적 그림자로서 명목화된다. 근저에서 바라보면, 이 질료-형상의 개체는 개별적, 개별화된 혹은 개체화된 뒤나미스에 주어지는 이름일 뿐이다. 따라서 이러한 존재론적 차원에선, 오캄조차도 완전히 유명론자가 아니다. 그는 보편자 논쟁의 맥락에서 중세 아리스토텔레스주의적 형이상학의 질료-형상설적 전통을 유지하면서 보편자들을 명목화하는 데 만족했을 뿐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뒤나미스 관계의 유명론’의 관점에서, 일단의 실정적 개별자들이 “역사가 그 개별적 정황으로 인해 상당수의 변화를 가져 올 보편자들로서” 분석될 수 없음에, 이러한 실정성의 분석에서 다시 취해야 하는 것은 테마적으로 독자적인 개별성들으로서의 “제 순수 단독성singularités pures”이다. (「비판이란 무엇인가」, 50쪽). 유명론의 고고 계보학은 이제 방법론적으로 ‘어떠한 토대적 의지점, 어떠한 순수 형상으로의 도피처도 없는 순수 단독성들의 내재성의 장에서 단절, 불연속성, 단독성, 순수 기술, 부동의 도판, 무설명, 무횡단’을 재확인한다. (상동) 사실, ‘가용성acceptabilités의 제 단순 조건’에 연관되는 순수 단독성들이 의미를 가지는 한에서, “이 단독성을 효과로서 고려하는 복합적이고도 촘촘한 인과망을 세우는 것”이 중요한데, ‘여기서 단독적 실정성을 명료화하는 연관 짓기, 상호 작용과 순환 작용의 독해 그리고 혼성 과정의 증대의 고려의 필연성이 유래한다’. (상동) 요약컨데,&#160;‘다양한 결정 요소들로 부터 단독성이 효과로서 나타나는 그 출현 조건을 재현’하는 것이 유명론적 고고 계보학에서는 중요하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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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주의의 인간학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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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160;『말과 사물』(1966)에 따르면, ‘인간’은 18세기말에 서양 지식의 장에 처음으로 등장하는데, 여기서 근대 인간학의 모든 안이함이 탄생하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두 세기가 되지 않은 최근의 고안물이며 인류의 지식이 새 형태를 찾게 되자마자 사라질 것이라 푸꼬는 예측하였다. 다시 말하여, 인간의 분석학으로서의 인간학은 근대 사상에서 구성적 역할을 하였는데, 이는 경험적 종합이, ‘코기토 cogito’의 주권이 인간의 유한성에서 자신의 한계를 발견하는 지점 너머에서, 보장될 필요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를 칸트가 『논리학』에서 세 가지 질문 (무엇을 알 수 있는가&#160;? 무엇을 해야 하는가&#160;? 무엇을 희망해도 되는가&#160;?)을 ‘인간이란 무엇인가&#160;?’라는 최종 질문으로 총괄적으로 수렴하며 정식화하였다. 이 질문은 19세기 이래로 경험적인 것과 초험적인 것을 ‘혼동’하며 사상사를 완주하였는데, 바로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푸꼬는 ‘인간학적 졸음’이라 지칭하였다. 이처럼 (분석적) 인간학은 칸트 이래로 지금까지 철학 사상을 지휘 향도한 토대 규정이었을 것이나, “우리 눈 앞에선 분열되고 있는 중”이다. (352쪽) 따라서 푸꼬에겐, “인간은 인간 지식에 제출된 가장 오래되지도 않고 가장 항상적인 문제도 아니다.” (398쪽) 사실, 16세기 이래 유럽 문화를 살핀 연후, 푸꼬는 ‘‘인간’이 여기에서 최근의 고안물임과 그의 임박한 종말’을 단언하였다. 그런데, 이러한 ‘인간의 죽음’을 언급하며, 그는 “이 죽음을 우리 시대에 진행중이었던 뭔가로 제시하며 내가 틀렸다”고 자아 비판한다. (『말과 글』2, 894쪽) 자신이 두 측면을 혼동했다는 것인데, 그 첫째는&#160;‘인간이 자기 고유의 주체성을 변형 개입했던 경험으로서의 인간 과학에서, 그의 약속이 인간의 발견이었다면 이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으나, 종합적 문화 경험으로서의 이 과학은 인간 주체를 인식 대상으로 환원하며 새 주체성의 구성과 연관되었다’는 것이다. 두 번째 측면은 ‘역사상 인간은 지속적으로 자신의 주체성을 이전하면서 다양하고, 결코 끝이 없으며, 인간일 그 무엇으로 결코 자기 규정을 하지 않을, 일련의 무한하고 수 많은 주체성 속에서 자기 구성을 멈추지 않았다’는 것이며, ‘인간의 죽음’을 말하며 이 두 번째 측면을 말하려 했던 것이라고 푸꼬는 결론 짓는다. ‘인간’의 ‘지성사적 죽음’의 ‘주체학적 부활’로서의 인간학적 복귀를 푸꼬는 이렇게 스스로 추인한 것이다. 돌이키건대, 그는 ‘통치’라는 새 문제틀을 제시함에, ‘결코 정치 구조를 통치하는 것이 아니다. 통치 대상은 사람들, 인간들, 개인들 혹은 그 집합체들이다. 사람이 통치하는 것은 애초에 근본적으로 사람이다’라고 명시하였다. (『안전, 영토, 인구』, 126쪽) 이렇듯 ‘통치’의 문제틀을 새로운 정치-사회 분석틀로 제시함에, 『안전, 영토, 인구』와 『생정치의 탄생』곳곳에 걸쳐 푸꼬는 인간과 그 인간학적 파생 개념들 (민중, 인구, 경제의 인간homo œconomicus)과 접근 방식을 가지고 ‘통치성’의 역사 유명론적 분석 연구를 진행하였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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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160;그런데, 이렇듯 역사 유명론적 기술로서, 인간학적 주제 의식을 가지고 고고-계보학을 하는 것은 푸꼬 자신이 인정하듯 칸트의 비판주의 전통에 입각한 것이다. (『말과 글』2, 1450쪽) 푸꼬는 이 전통을 제한적 자세attitude limite로서의 철학적 에토스로 성격 규정하는데,&#160; 비판은 “한계들의 비판이자 이것들에 대한 사색”이다. (「계몽이란 무엇인가&#160;?」, 상동, 1393쪽) 칸트의 질문이 인식의 한계에 관한 것이었다면, 푸꼬의 질문은 이를 현재화하여 “고증적 질문&#160;: 우리에게 보편적, 필연적, 의무적으로 주어진 것들에서 무엇이 단독적이며 우연적이고 임의적 제약에 의한 것의 몫인가”로 역전하는 것이다. (상동) 즉, 푸꼬의 ‘비판’은 ‘보편적 가치를 갖는 형식적 구조의 연구가 아니라 우리를 주체로서 구성 확인토록 하는 사태들을 통한 역사적 조사’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 비판은 칸트에서처럼 초월적이지도 않고 형이상학 정립적이지도 않은데, 그 목적성에 있어서는 계보학적이며 방법에 있어서는 고고학적이다. 다시 말하여, “우리가 생각하고 말하고 행하는 것을 동일한 정도의 역사적 사태들로 결합하는 담론을 다루려” 한다는 의미에서 고고학적이고, “우리를 우리인 것이게끔 한 우연성에서, 우리이거나 우리가 행하거나 생각한 것을 더 이상 우리이거나 우리가 행하거나 생각하지 않을 가능성을 끌어낸다”는 의미에서 계보학적이다. (상동) 이런 맥락에서, 비판은 모든 실제적 변화에 “절대적으로 불가결하다”고 푸꼬는 지적하는데, “동일한 사고 양태에 머무는 변화, 동일한 생각을 사물의 현실에 보정하는 방식일 뿐인 변화는 피상적인 변화일 뿐”이기 때문이다. (상동, 999-1000쪽) 분명, 인간이 생각하는 방식은 사회, 정치, 경제와 역사에, 그러나 또한 보편적인 범주들과 형식적 구조들에 연계되어 있음에, 사고와 사회 관계는 아주 별도의 것으로 논리학의 보편적 범주들은 사람들이 실제로 생각하는 방식을 적합하게 고려하기에 안성맞춤은 아니라는 것이다. (상동, 1597쪽) 따라서, 사회사와 사고의 형식적 분석 사이의 좁은 길인 “사고의 비판사 histoire critique de la pensée”로 푸꼬는 자신의 작업을 명명하였고, “자신의 역할은 사람들에게 그들이 역사의 한 개별적 시기에 만들어진 특정 주제들을 자명하고 진리인 것으로 취하고 있으며 이러한 부당한 자명성은 비판되고 파괴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 (상동)이라 하였다. 이로써, 철학과 역사 사이에, 역사 철학의 구성도 아니며 철학적 역사 서술도 아닌 형태의 관계가 그 모습을 드러내는데, 이는 “역사에 관한 사색”이 아니라 “역사 속의 사색”으로, ‘사고를 역사 작업으로, 또한 반면에 역사 작업을 개념적 이론적 틀의 변형으로 시험하는 것’을 의미한다. (상동, 1232쪽) 이와 같은 실천적 제 경험의 역사적 반성은 자신의 초기 기획에서 “‘경험’ 개념의 정교화의 이론적 불충분성과 이 개념의 실천과의 관계의 모호성”으로 인해 불만족스러운 것이었다고 푸꼬는 회고한다. (상동, 1398쪽) 이에, 첫째 난점은 일반적 인간론에, 둘째 문제는 사회 경제적 연구에 의거하는 철학적 인간학과 사회사 사이의 딜레마의 곡예를 하느니, “경험 제 형태의 역사성 자체를 사고”하는 것이 “철학적 인간학과 이에 기댈 수 있는 제 개념의 유명론적 환원과 사회사의 영역, 개념 그리고 방법으로부터의 탈구”라는 비판적 방식을 거쳐, “경험 제 형태의 형성, 발전, 변형이 일어날 수 있는 영역, 즉 사고사 histoire de la pensée를 오늘화”하는 작업으로서 가능케 되었다고 한다. (상동) 이 고고-계보학의 부단한 현재화 작업은 “진실과 허구의 놀이를 다양한 가능 형태들 속에서 세우고, 따라서 인간을 인식의 주체로서 구성하는 것, 규칙의 수용이나 거부를 토대 짓고 인간을 사회적 법적 주체로 구성하는 것, 자기 자신과 타인들과의 관계를 세우고 인간을 윤리적 주체로서 구성하는 것” (상동)으로서의 역사 비판주의 유명론의 인간학이다. 푸꼬는 예속되는 수동자이자 자기 주체화의 능동자로서 유명론으로 파악된 인간을 연구함에, ‘절대적이며 보편적인 실체로서의 주체는 없는 것이며, 예속적 제 실천 혹은 보다 자율적인 자기 배려에 의해 구성되는 제 관계 형태로서’ (상동, 1552, 1537-8 쪽) 주체를 파악하기에, “인간에 관해서만 이제는 철학을 할 수 있을 뿐이라면, 이러한 한도에서 모든 철학은 근저에서 인간학일 것이 아니겠는가&#160;? 이러한 계기에, 철학은 그 내부에 모든 인간 과학이 총체적으로 가능한 문화 형식이 된다” (『말과 글』1, 467쪽)는 자신의 철학관을 항시 견지한 것이다. 그의 철학은 이처럼 “모든 인간 과학이 자신의 토대와 자신의 가능성을 발견하는 실정성의 장” (『칸트 인간학에의 서론』, 124쪽)을 여는 것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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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참고 문헌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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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ucault, Dits et écrits I-II, «&#160;Quarto&#160;», Gallimard, 2001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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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160;&#160;&#160;&#160;&#160;&#160;&#160;, Les mots et les choses, Gallimard, 1966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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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160;&#160;&#160;&#160;&#160;&#160;&#160;, L’archéologie du savoir, Gallimard, 1969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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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160;&#160;&#160;&#160;&#160;&#160;&#160;, Surveiller et punir, Gallimard, 1975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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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160;&#160;&#160;&#160;&#160;&#160;&#160;, «&#160;Il faut défendre la société&#160;», Gallimard/Seuil, 1997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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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160;&#160;&#160;&#160;&#160;&#160;&#160;, Histoire de la sexualité I, «&#160;tel&#160;», Gallimard, 1994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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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160;&#160;&#160;&#160;&#160;&#160;&#160;, «&#160;Qu’est-ce que la critique&#160;», Bulletin de la société française de la&#160;philosophie, 2, 1990, Armand Colin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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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160;&#160;&#160;&#160;&#160;&#160;&#160;, Sécurité, territoire, population, Gallimard/Seuil, 2004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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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160;&#160;&#160;&#160;&#160;&#160;&#160;, Naissance de la biopolitique, Gallimard/Seuil, 2004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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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ede, M., “Individuals in Aristotle”, Essays in Ancient Philosophy, Univ. of&#160;Minnesota Press, 1978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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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ddu, “Ockham’s Philosophy of Nature” in Spade (ed.), The Cambridge&#160;Companion to Ockham, 1999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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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nt, Progrès de la métaphysique en Allemagne, Œuvres philosophiques III,&#160;«&#160;Pléiade&#160;», Gallimard, 1986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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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etzsche, Œuvres philosophiques complètes I-XIV, Gallimard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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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aton (tr. Robin), Sophiste, Œuvres complètes, «&#160;Pléiade&#160;», 1950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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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eyne, Comment on écrit l’histoire, «&#160;Points/histoire&#160;», Seuil, 1996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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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blog.naver.com/jaiwonshim/120051659441<br />

[출처] 미셸 푸꼬의 유명론적 인간학 |작성자 심심풀이<br />
]]></description></item><item><author>바라</author><category>찌라시의 문서 창고</category><title>민주주의라는 스캔들-&lt;민주주의에 대한 증오&gt; 서평</title><link>http://blog.aladin.co.kr/vara/2371104</link><pubDate>Sun, 26 Oct 2008 20:4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vara/2371104</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418236X&TPaperId=2371104"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103/23/coveroff/897418236x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br />
민주주의라는 스캔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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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태원(고려대학교 민족문화원 연구교수)<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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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철학자 자크 랑시에르(1940~)를 동시대의 다른 철학자들과 구별시켜주는 특징 중 하나는 그의 반골 기질이다. 좌파 지식인치고 고분고분한 사람은 없겠지만, 그중에서도 랑시에르는 유독 비타협적인 태도가 두드러지는 인물이다. 그는 자신의 스승이자 󰡔자본을 읽자󰡕(1965)의 공저자이기도 한 루이 알튀세르에 대한 격렬한 비판으로 독자적인 저술활동을 시작했으며, 그 뒤에도 푸코, 부르디외, 뤼시엥 페브르, 리오타르, 하버마스 같은 동시대의 대표적인 사상가들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펼치면서 자신의 사상을 가다듬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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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랑시에르를 단순히 튀기 좋아하는 시비꾼 정도로 간주한다면, 그건 철학자 랑시에르의 이론적 위력과 중요성을 너무 과소평가하는 것이다. 오늘날 그가 서구 사상계에서 많은 주목을 받는 것은 무엇보다도 서양의 철학 고전에 대한 면밀한 해석과 다양한 분야의 문헌들에 대한 끈기 있는 천착, 사회주의 몰락 이후의 세계정세에 대한 민감한 탐색 등이 한데 어우러져 독창적인 하나의 철학적 입장으로 표현되고 있기 때문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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랑시에르의 철학, 특히 정치에 관한 그의 사유의 핵심은 놀라울 만큼 간명하다. 그것은 정치는 민주주의와 다르지 않고, 민주주의는 평등의 실천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이처럼 간명한, 심지어 허술해 보이는 주장이 그처럼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이유는 우선 그의 주장이 서양 사상의 근원인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비롯해 근현대 사상가들에 대한 깊은 성찰을 거쳐 숙성되어 나온 주장이기 때문이다. 특히 󰡔불화La mésentente󰡕(1995)나 󰡔정치적인 것의 가장자리에서Aux bords du politique󰡕(1998) 같은 그의 대표적인 정치철학 저작들은 고대 그리스 철학에 대한 급진적인 재해석이라는 점에서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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랑시에르 저작의 또 다른 호소력은 그것이 현실 정세에 대한 날카로운 평가에 기초를 두고 있다는 점에서 나온다. 가령 󰡔불화󰡕는 현실 사회주의의 붕괴 이후 헤게모니를 장악한 자유민주주의(“합의”의 정치)를 비판하고 새로운 진보 정치의 가능성을 사고하려는 노력의 결실이며, 이 책 역시 최근 프랑스 지식인들이 민주주의에 대해 제기한 비난들에 맞서 다시 한 번 민주주의, 곧 정치 자체의 가능성을 옹호하기 위해 씌어졌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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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민주주의를 옹호한다는 것은 그다지 신통한 발상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오늘날 민주주의보다 더 광범위하게 수용되는 정치 제도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소수의 예외를 제외한 대부분의 국가들이 민주주의를 정치적 원리로 삼고 있다는 사실에서 이런 사정이 뚜렷이 드러나거니와 또한 민주주의를 정면으로 거부하거나 그것에 대한 정치적 대안을 추구하는 사람들을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그러니 무엇 때문에 굳이 한 권의 책을 쓰면서까지 민주주의를 옹호할 필요가 있겠는가?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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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민주주의가 보편적으로 수용되고 있다고 해서 그것에 대한 불만이나 비판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이미 마르크스가 민주주의는 부르주아 계급의 권력을 은폐하기 위한 허울 좋은 도구라고 비판한 바 있으며, 그 밖의 다른 지식인들도 민주주의의 한계와 난점들을 고발해왔다. 민주주의는 “다른 모든 통치 체제를 제외한다면, 최악의 통치 체제”라는, 처칠류의 통속적인 정치적 지혜가 꽤 널리 운위되는 것 역시 이 점과 무관하지 않다. 요컨대 세간의 평가에 따르면 민주주의는 그것이 어떤 긍정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이 가장 덜 나쁜 제도이기 때문에 오늘날 대부분의 국가들의 정치적 원리로 수용되고 있는 셈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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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민주주의에 대한 좀더 근본적인 고발도 생각해봄직한데, 장-클로드 밀네와 베니 레비 또는 도미니크 쉬나페 같은 저명한 프랑스 지식인들이 표출하는 민주주의에 대한 증오에서 랑시에르가 발견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이들은 각각 상이한 분과학문의 전문가들이고 각자가 취하는 입장도 서로 다르지만, 현대 민주주의에서 문명의 위기를 발견한다는 점에서는 공통적이다. 이들에 따르면 오늘날의 민주주의는 무정부주의의 과잉(자유와 권리를 누릴 만한 자격이 없는 무리들의 방종)과 무제한적인 소비(재화, 향락 등을 무제한적으로 추구하려는 성향)라는 이중의 과잉으로 특징지을 수 있는데, 이는 곧 문명의 중심에 내재하는 “어떤 원죄, 어떤 도착(倒錯)”을 나타낸다. 따라서 민주주의는 이런저런 특수한 악의 명칭이 아니라, 우리를 타락시키는 악에 대한 유일한 명칭이라는 것이다. 랑시에르가 보기에 민주주의에 대한 이러한 증오, 이러한 고발은 그것이 매우 근본적이고 강렬하다는 그 이유 때문에 오히려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다. 그러한 증오의 역사적 뿌리를 더듬어보게 되면, 우리는 민주주의가 왜 처음부터 하나의 스캔들이었는지, 또 그것이 얼마나 급진적이고 단호한 이념인지 좀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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랑시에르는 민주주의의 이중적인 결함 내지 악덕에 대한 이들의 증오는 사실은 단 하나의 공포에 대한 다른 표현이라고 주장한다. 그것은 바로 평등한 무리인 인민에 대한 공포이며, 그들이 구현하는 민주주의, 곧 정치 그 자체에 대한 공포다. 플라톤 이래 서양 정치사상의 지속적인 공리 중 하나는 대중 또는 인민에게는 통치 능력이 결여되어 있으며, 이 때문에 민주주의는 위험한 정체(政體), 자칫 참주정으로, 또는 현대의 용어로 하면 전체주의로 전락할지도 모르는 정체라는 점이다. 그리고 이 때문에 대부분의 국가들에서 채택되고 있는 민주주의는 인민이 스스로 통치하는 민주주의가 아니라 위험스러운 인민의 자기 통치를 가능한 한 억제하고 그것이 낳을지도 모르는 파국을 방지하기 위한 장치를 갖춘 민주주의, 곧 자유민주주의다. 유일하게 좋은 민주주의는 “민주주의적 문명의 파국을 억제하는 민주주의”(19쪽/p. 10)인 셈이다. 따라서 민주주의에 대한 증오는 사실은 “과두제적인 통치에 대한 본성적 충동”, 곧 “인민을 몰아내고, 인민과 더불어 정치를 몰아내려는 충동”(152쪽/p. 89)의 발현이며, “인민 없는 통치” 곧 “정치 없는 통치”에 대한 열망의 표현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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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정말 민주주의는 위험한 정체인가? 이 질문에 대해 랑시에르는 단호히 그렇다고 답변한다. 하지만 이러한 긍정은 전혀 다른 근거에 기초를 두고 있다. 이 책의 가장 중요한 테제 중 하나에서 랑시에르는 다음과 같이 역설한다. “민주주의는 통치해야 할 사회도 아니고 사회에 대한 통치도 아니며, 정확히 말하면 모든 통치가 궁극적으로 기초하고 있는 이러한 통치 불가능한 것 자체다.”(97쪽/p. 57) 민주주의가 위험하다면, 그것은 민주주의가 통치의 원리나 토대란 없다는 사실, 곧 통치자와 피통치자를 선별할 수 있는 고유한 기준이나 원리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드러내기 때문이며, 통치의 원리의 부재에 기초를 둔 통치, 이러저러한 자격이나 특권을 갖지 않은 이들의 통치만이 엄밀한 의미에서 정치적이라는 사실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가 추첨제를 가장 민주주의적인 제도로 옹호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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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렇다면 민주주의는, 이미 플라톤이 비판한 것처럼, 결국 통치를 무능력한 이들에게 내맡기는 결과를 낳지 않겠는가? 랑시에르는 답변한다. 민주주의 또는 추첨제 자체는 “결코 유능한 이들보다 무능한 이들을 더 선호하지 않았다.”(84-85쪽/p. 49) 추첨제의 진정한 의미는 궁극적인 판단을 인민에게, 개인들에게 맡겨둔다는 데에 있다. 따라서 민주주의나 그것의 제도적 구현으로서 추첨이 지식과 교양, 전문적인 능력을 배척한다고 미리 염려할 필요는 없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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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설령 그렇다 해도 랑시에르의 사상은 현실에서 실행 가능하지 않다고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난 2007년 프랑스 대선에서 사회당 후보였던 세골렌 루아얄은 랑시에르가 이 책에서 가장 민주주의적인 정치제도로 옹호한 추첨제를 정책 속에 반영하기도 했다. 그러니 그것이 실행 불가능하다고 야유하는 사람은 먼저 자신이 이미 얼마나 과두제적인 사고방식에 젖어 있는지 돌이켜봐야 할 것이다. 사실 랑시에르의 저서를 읽노라면 한국 사회가 얼마나 철저한 과두제 사회인지 절감하지 않을 수 없는데, 더욱 고통스러운 것은 정작 그 속에서 살아가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러한 통치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는 점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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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랑시에르의 이 책이 갖는 최소의 의의는, 이런저런 철학자ㆍ이론가들이 미리 불가능하다고 단정한 직접 민주주의가 왜 정치의 가능성 자체와 연결되어 있는지 사고할 수 있게 해주며, 그것을 하나의 심각한 문젯거리로 받아들일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이러한 화두를 통해서만 왜 민주주의 국가에서 인민의 정치적 참여가 구조적으로 배제되어 있는지, 또 그러한 배제에 맞서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아마도 처음으로) 생각해볼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는 결코 적은 업적이라고 할 수 없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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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자로서 늘 꿈꾸는 소망 하나는 서평을 역자와 출판사에 대한 감사의 말로 마무리 짓는 것이다. 하지만 이 서평을 매듭짓는 평자의 마음은 감사는커녕 착잡함을 넘어 참담하기까지 하다. 읽어본 독자들이라면 알겠지만, 이 번역본은 오역을 찾는 것보다는 제대로 번역된 문장을 골라내는 것이 훨씬 빠를 정도로 수많은 오역으로 점철되어 있기 때문이다(아마도 역자는 자신이 무슨 오역을 범했는지 모를 수도 있겠다). 이런 번역본을 접하게 되면, 도대체 번역은 왜 하는가라는 가장 초보적인 질문을 묻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을 낸 출판사는 그동안에도 여러 차례 오역과 관련된 소란에 휘말린 적이 있는 곳인 만큼 더더욱 이런 질문이 불가피해진다. 이런 터무니없는 오역본을 출간하는 것은 수십 년에 걸친 치열한 고투 끝에 마침내 자신의 독자적인 사상의 길을 개척한 철학자에 대한 예의가 아님은 물론이거니와 난해함을 두려워하지 않고 적지 않은 돈을 들여 이 책을 산 독자들에 대한 윤리적인 배반일뿐더러, 역자 및 출판사의 존재론적 근거에 대한 자기 부정이 아닐 수 없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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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나 출판사에게 권하건대, 오역에 대한 문제제기들이 성가시고 모욕적으로 느껴진다면, 제대로 책을 번역하고 만들든가 아니면 아예 다른 일에 종사하시라. 어려운 인문사회과학 출판의 길 말고 성공과 처세에 관한 출판에 매진하는 쪽이 적어도 서로를 덜 비참하게 해줄 것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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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전: 󰡔황해문화󰡕 2008년 여름호 <br />
]]></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103/23/cover150/897418236x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418236X</link></image></item><item><author>바라</author><category>찌라시의 문서 창고</category><title>마르크스주의 이후 정치의 모험―현대 유럽의 정치철학</title><link>http://blog.aladin.co.kr/vara/2371100</link><pubDate>Sun, 26 Oct 2008 20:4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vara/2371100</guid><description><![CDATA[<br />
마르크스주의 이후 정치의 모험―현대 유럽의 정치철학<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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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태원<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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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유럽 정치철학의 흐름이 마르크스주의의 다양한 변주의 역사였다면, 21세기 벽두의 유럽 정치철학은 역사적인 종언을 고한 마르크스주의 이후에 어떻게 지배에 맞서 저항할 것인가, 어떻게 사회의 변혁을 사고할 것인가라는 화두에 대한 상이한 응답의 시도들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현대 유럽정치철학은 근본적으로 포스트마르크스주의로 특징지을 수 있는데, 이는 달리 말하면 우리가 살펴볼 3명의 정치철학자들 중 누구도 더 이상 잉여가치의 착취 메커니즘을 정치적 지배의 핵심으로 간주하지 않으며, 또한 누구도 노동자 계급이라는 정치적 주체에 근거를 둔 정치적 변혁과 대안 사회의 구성 가능성을 믿지 않는다는 점을 의미한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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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대신 이들은 모두, 근대 정치 문명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통해 마르크스주의가 공백으로 남겨두었던 문제들이나 마르크스주의 자신을 포함한 근대 정치 문명 전체에 함축된 모순들을 해명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그것은 파시즘과 홀로코스트는 역사적 우연이 아니라 근대 정치 구조의 본질에서 필연적으로 파생된 결과라는 고발로 제시되거나(조르지오 아감벤), 정치란 평등의 원리에 대한 옹호라는 급진적인 선언으로 표현되기도 하며(자크 랑시에르), 또는 모든 정치 투쟁, 모든 권리에 대한 옹호 투쟁은 인정을 둘러싼 갈등과 다르지 않다는 규범적인 원리의 정초 시도로 나타나기도 한다(악셀 호네트).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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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이들의 이론적 작업은, 마르크스주의 이후에도 여전히 비판적 사회이론이 가능한지, 또 지배자들의 질서에 맞서고 그것을 변혁할 수 있는 가능성이 남아 있는지 여부를 평가해보기 위한 좋은 시금석을 제공해준다. 현실의 가장 민감한 지점, 가장 깊고 예민한 상처를 진단하고 그 뿌리를 드러내는 것, 바로 그것이야말로 정치철학이 단지 철학의 한 하위분과에 그치지 않고, 철학과 현실의 마주침, 철학과 현실의 상호침투가 발생하는 자리로서 기능할 수 있는 바탕이라면, 이들의 작업은 오늘날 정치철학이라는 이름에 값하는 매우 드문 성과들이라고 할 수 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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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지오 아감벤과 호모 사케르의 묵시록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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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지오 아감벤Giorgio Agamben(1941~)은 국내에도 잘 알려진 움베르토 에코나 안토니오 네그리와 더불어 이탈리아가 배출한 현대의 대표적인 철학자 중 한 사람이다. 정치철학자로서 아감벤의 명성은 무엇보다도 󰡔호모 사케르Homo Sacer󰡕(1995)의 놀라운 성공에 힘입고 있다. 이 책에서 그는 서양 형이상학의 역사에 관한 하이데거의 관점과 발터 벤야민의 종말론적인 폭력의 비판을 밑바탕에 두고 󰡔전체주의의 기원󰡕에서 한나 아렌트가 제시한 인권 개념에 대한 비판, 푸코의 생명권력론, 칼 슈미트의 주권 개념 등을 비판적으로 전유하여 정치 공동체의 구조와 정치적 주체의 본성에 대한 매우 독창적인 주장을 제시하고 있으며, 이는 서양 근대정치철학의 규범적 기초 전체를 뒤흔드는 결과를 낳았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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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사케르󰡕의 핵심 테제는 아감벤 자신이 요약하고 있듯이, 다음과 같이 세 가지 정도로 요약할 수 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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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원초적인 정치적 관계는 추방/배제ban(외부와 내부, 배제와 포함이 구분되지 않는 지대로서의 예외상태state of Exception)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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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주권의 근본 활동은, 원초적인 정치적 요소이자 자연과 문화, zoē와 bios의 접합의 임계(臨界)로서 벌거벗은 생명bare life의 생산에 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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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서구의 근본적인 생명정치의 패러다임은 도시가 아니라 강제수용소에 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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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 가지 테제는 이 책 1, 2, 3부의 내용을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우선 “벌거벗은 생명”이란 벤야민이 ｢폭력의 비판을 위하여｣에서 사용한 “blosses Leben”이라는 개념에서 빌려온 것인데, 아감벤은 이를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 및 정치학의 논의와 직접 결부시켜 서양 정치철학을 관통하는 근본 개념으로 제시하고 있다. 아감벤이 주목하는 것은 한편으로 “비오스bios”와 “조에zoē” 사이의 아리스토텔레스식 구분법인데, 전자는 인간에 고유한 생명/삶을 가리키고, 후자는 인간, 동물, 신에게 고유한 자연적 생명/삶을 가리킨다. 아감벤에 따르면, 이러한 구분은 정치적 활동의 가능성은 오직 인간에게만 존재하며, 따라서 비오스에 놓여 있다는 고대 희랍인들의 사고를 보여준다. 다른 한편으로 아리스토텔레스는 “존재자로서의 존재자on hē on”를 형이상학의 대상으로 설정함으로써 제1 철학으로의 길을 열어 놓았는데, 여기서 “존재자로서의 존재자”는 바로 “순수 존재”, 곧 “온 하플로스on haplōs”와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여러 존재자들에 공통적인 삶/생명zoē을 추출해내려는 노력과 “순수 존재”를 분리하려는 노력, 곧 정치학과 형이상학 사이에는 체계적 연관성이 존재한다는 것이 드러난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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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감벤은 벌거벗은 생명의 최초의 법적 유래를, 고대 로마법에 나오는 “homo sacer”라는 표현에서 찾는다. 호모 사케르는 “희생물로 삼을 수는 없지만, 그를 죽인다고 해서 살인죄가 되는 것이 아닌” 사람을 말한다. 희생물로 삼을 수 없다는 것은 “sacer”가 종교적 의미에서 “성스러운”을 가리키지 않음을 의미하고(신의 법에서 배제), 그를 죽이는 게 살인죄가 되지 않는다는 것은 호모 사케르가 “정상적인 인간”의 범주에서 제외되어 있으며(인간의 법에서 제외), 그의 삶은 “비오스”가 아니라 “조에”에 해당한다는 것을 뜻한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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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감벤이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근대에 들어서 비로소 이 “조에”, 호모 사케르가 법적ㆍ정치적으로 보편적인 의미를 획득하게 되었으며, 호모 사케르의 “벌거벗은 생명”이 정치의 핵심 목표가 되었다는 점이다. 이를 보여주기 위해 아감벤은 푸코의 생명 권력의 문제설정과 아렌트의 전체주의 비판을 결합하여 󰡔인권선언󰡕(1789)을 새롭게 해석한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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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 따르면 󰡔인권선언󰡕이 제 1조에서 “인간은 나면서부터 자유로우며 평등한 권리를 가진다”고 천명할 때의 “인간”은 인간주의적인 전통이 해석해온 것처럼 천부인권의 담지자가 아니라 “벌거벗은 생명”을 가리킨다. 곧 󰡔인권선언󰡕은 아무런 특질도 지니지 않는 추상적 존재로서의 인간, 벌거벗은 생명체가 정치의 대상이 되었음을 공표한 선언과 다르지 않다. 그리고 시민들이 누리는 이러저러한 정치적 권리들은 우선 그들 각자가 인간=벌거벗은 생명체로서 주권자의 통치의 대상으로 포섭된 이후에 얻게 되는 특질들의 표현에 불과하다. 푸코가 말하듯 생명권력이 근대성의 문턱을 이룬다면, 그것은 바로 이러한 의미에서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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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감벤은 아렌트가 󰡔전체주의의 기원󰡕에서 수행한 “민족국가의 위기와 인권”의 관계에 대한 분석을 여기에 결부시킨다. 아렌트는 1차 대전 이후에 특히 유럽 지역에서 많은 사람들이 국가의 영역 바깥으로 밀려나게 된 상황에 주목하면서, 이러한 민족국가의 위기는 동시에 인권 개념의 한계를 보여준다고 지적한다. 왜냐하면 이처럼 국가의 바깥으로 밀려남으로써 이 사람들은 아무런 권리도 누리지 못하고 시시각각 생존의 위협에 직면하게 되었는데, 이는 인간주의적 전통에서 가정하고 있는 것처럼 인권 개념은 특정한 정치공동체에 선행하는 천부적인 권리를 가리키는 게 아니라는 점을 극명하게 드러내주기 때문이다. 오히려 “인간”, “벌거벗은 생명”으로서 인간은 주권적 권력에 포섭됨으로써만 비로소 인간으로 존재한다. 따라서 아감벤에게 󰡔인권선언󰡕은 근대 정치철학의 규범주의적 해석과는 정반대로 주권자의 생명권력에 대한 근본적인 예속의 선언을 의미한다고 말할 수 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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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바로 이런 측면에서 아감벤은 나치즘이 근대 유럽의 역사, 더 나아가 서양 역사 전체의 흐름과 전혀 무관한 돌연변이적 현상이 아니라, 그 본질적인 잠재력의 표출이라고 주장한다. 이는 주권 개념에 대한 분석과 곧바로 연결되는데, 그는 주권 개념에 대한 해석에서 슈미트의 테제, 곧 “주권자는 법질서 바깥에 서 있지만, 그럼에도 이 질서에 속해 있는데, 왜냐하면 헌정이 전면적으로 중단되어야 하는지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그에게 달려 있기 때문이다”라는 테제를 준거로 삼고 있다. 그가 이처럼 슈미트의 테제에 주목하는 것은 이 테제가 나치 독일이 수행한 생명정치의 핵심을 매우 정확히 드러내준다고 보기 때문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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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감벤은 우선 나치 강제수용소의 법적 지위의 특이성에 주목하는데, 강제수용소는 나치 시대에 처음 설치된 게 아니라, 바이마르 공화국 시기에(사실은 그 이전부터)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 단 바이마르 공화국 시기에는 강제수용소의 설치 및 운용에 관한 사항, 또는 좀더 일반적으로는 주권자가 국민들의 기본권을 잠정 중단시키고 “예외상태Ausnahmezustand”를 선언할 수 있는 권한에 관한 사항이 헌법에 명시되어 있었던 데 비해, 나치 수용소의 경우는 헌법에 아무런 규정이 없는 가운데 강제수용소를 설치, 운용했다는 점에 차이가 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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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감벤에 따르면 이는 법적인 관점에서 볼 때 매우 새로운 점이다. 우선 첫째, 이처럼 명시적인 규정 없이 기본권을 정지시키고 예외상태에 돌입함으로써, 정상과 예외의 구분이 소멸하게 된다. 바이마르 헌법이 규정하는 예외상태는 정확히 헌법이라는 정상적인 법적 규범에 따라 자신의 효력을 얻게 되는 반면, 나치 법에서는 법적 규범에 대한 준거가 없이 예외상태가 성립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둘째, 이에 따라 예외상태는 실질적으로 법질서 자체가 되는데, 이 예외상태는 바로 주권자(총통)의 결정에 따라 직접 성립하기 때문에, 이제는 단지 정상과 예외의 구분이 소멸할 뿐만 아니라 법과 사실 사이의 구분도 소멸하게 된다. 하지만 아감벤이 보기에 가장 중요한 것은 이러한 나치의 특이성, “예외성”은 사실은 전혀 예외가 아니라 서양 형이상학과 정치학의 성립 이래 존재해온 잠재적 경향의 발현이라는 점이다. 앞에서 말했듯이 그는 “조에”와 “하플로스” 사이의 내적 연관성과 고대 로마법에서 homo sacer라는 존재에 주목하고 있는데, 나치가 정상화된 예외상태 속에서 설립한 강제수용소는 이를 가장 온전한 형태로 보여준다는 것이다. 곧 주권자(총통)의 권력은 기본권-인권의 “금지”와 이질적인 존재들의 “추방”의 권력이며, 이를 통해 수용소에 갇힌 사람들은 일체의 정치적 지위와 권리를 박탈당하고 한낱 몸뚱아리로 환원되어, 그를 살해한다고 해서 살인죄가 성립하지 않는 “호모 사케르”가 되는 셈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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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아가 강제수용소란 벌거벗은 생명이 정치의 대상으로 출현하는 장소들을 모두 포함하기 때문에, 이제 수용소는 나치의 유대인수용소나 소련의 정치범수용소 같은 것에 국한되는 게 아니라, 훨씬 보편적인 현상을 가리키는 개념이 된다. 예컨대 아감벤은 프랑스 공항에 설치되어 있는 난민 신청자들을 임시로 수용하는 장소 역시 일종의 수용소로 볼 수 있다고 말한다. 공식적인 법적 기관에 넘겨지기 전까지 이 사람들은 “예외상태” 속에서 어떤 법적 지위나 권리도 지니고 있지 않은 상태에서 “벌거벗은 생명체”로서 존재하기 때문이다. 또한 얼마 전에 참사를 빚은 여수의 외국인보호소 역시 이런 의미에서 아감벤이 말하는 수용소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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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감벤의 작업은 서양 근대 정치철학의 가장 기본적인 규범적 토대인 인권의 원리에 대한 과감한 도전이자 서양 근대 문명의 가장 깊은 상처 중 하나인 홀로코스트에 대한 혁신적인 재해석이라는 점에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하지만 아감벤의 정치철학은 그가 원용하는 철학자들에 대한 해석의 타당성 여부를 둘러싼 논란들은 제쳐둔다 하더라도, 정치적 행위를 위한 규범적 기초의 여지를 지나치게 축소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가령 그는 법과 폭력을 구분 불가능한 것으로 제시하고 있고, 나치즘 같은 전체주의와 현대의 서구 자유주의를 본질적으로 등가적인 것으로 간주하며, 나치의 강제수용소와 현대의 난민 보호소 등을 동일시하고 있는데, 그럴 경우 과연 어떠한 정치적 행동이 가능할까, 또 어떤 정치적 목표를 추구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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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셀 호네트와 인정 투쟁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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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감벤이 근대성(또는 더 나아가 서양 역사 전체)의 부정적인 경험에 대한 성찰에서 출발한다면, 독일 비판이론의 제 3세대 대표자로 불리는 악셀 호네트Axel Honneth(1949~)의 “인정투쟁Kamp um Anerkennung” 이론은 반대로 근대성이 이룩한 핵심적인 성과, 곧 계몽주의 이래 서양 사회가 이룩한 합리적ㆍ도덕적 진보에 대한 긍정에 뿌리를 두고 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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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네트의 인정투쟁 이론은 하버마스가 제안한 이론적 전회, 다시 말해 주체 중심적인 철학에서 상호주관성 철학으로의 전회에서 출발한다. 곧 이들에게 주체는 타인들과의 관계 이전에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주체들과의 관계를 통해서만 형성되며, 주체가 지닌 언어적ㆍ실천적ㆍ반성적 자율성은 상호주관적 규준들을 내면화함으로써 형성된 산물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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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호네트는 하버마스의 상호주관성이 지나치게 보편적 화용론에만 의지하고 있으며, 다른 종류의 규범적 토대들을 간과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곧 주체들 사이의 상호주관적 관계는 언어적 소통을 통해서만 성립하는 것이 아니라 정서적 관계 및 구체적인 욕구들을 포함하는 주체들의 정체성의 실현 과정을 포함하고 있는데, 하버마스의 이론에는 이러한 차원에 대한 고려가 빠져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 때문에 하버마스는 구체적인 사회적 투쟁들 속에 담겨 있는 규범적 쟁점들을 충분히 해명하지 못하고 있다고 본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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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마스 이론의 이러한 난점 내지 공백을 보완하기 위해 지난 1990년대 이래 호네트는 헤겔 철학에서 유래한 인정투쟁 이론을 발전시켜왔으며, 이는 그가 하버마스의 이론적 그늘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정치철학자로 부상하는 데 중요한 발판을 마련해주었다. 호네트의 출발점은 개인이 자신의 정체성을 실현하는 데서나 사회가 성립하는 데서 주체들 사이의 상호 인정 관계가 핵심적이라는 데 있다. 곧 한 개인이 다른 사람들과 구별되는 그 개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갖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의 가치를 긍정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러한 자기 긍정은 이 개인에 대한 타인의 인정을 통해서 형성되고 또 그것을 통해 지속적으로 유지ㆍ발전될 수 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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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좀더 구체적으로 해명하기 위해 그는 인정의 세 가지 차원을 구별한다. 곧 한편으로는 엄마와 아이나 연인들 간의 사랑과 상호배려에서 표현되는 정서적 차원의 인정의 관계가 있고, 또한 사회의 구성원들이 다른 성원들을 동등한 법적 주체로서 인정하고 배려하는 법적 인정의 관계가 존재하며, 분업적으로 조직된 사회 단체 내부에서 동료들에 의한 사회적 평판이라는 인정 관계가 존재한다. 이 세 가지 형태의 인정은 각각의 개인들이 하나의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주체로서의 정체성을 실현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들이다. 그리고 각각의 주체들의 정체성 형성에는 역시 독립된 주체로서의 타인들의 인정이 필요하기 때문에, 이는 또한 상호주관적인 사회화의 조건으로서도 기능한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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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이러한 인정관계의 정치적ㆍ사회적 함의는 어떤 것인가? 호네트가 주목하는 것은 인정의 반대, 곧 무시의 경험이다. 인정이 개인의 정체성 형성 및 사회적 유대관계의 형성에서 본질적인 역할을 수행한다면, 역으로 개인이 타인들에게 무시당하는 것은 그 개인의 정체성 및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에 대한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다. 따라서 타인으로부터 자신이 기대한 만큼 또는 합당하다고 생각하는 만큼 인정받지 못하는 개인은 그에 대해 저항하게 된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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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러한 무시가 특수한 한 개인에 대해 우발적인 방식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집단에 대해 구조적이고 반복적으로 일어나게 되면, 이는 곧바로 사회적인 성격을 띠게 된다. 가령 식민지 주민들이 정복자들에게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인정받지 못하는 것이나, 소수 인종, 소수 종족들이 한 사회의 지배 인종, 종족들에게 멸시받고 차별받는 것, 또는 우리나라의 경우를 예로 든다면 조선족이나 동남아시아 출신의 외국인 노동자들이 차별 대우를 받고 무시당하는 것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그리고 이들이 이러한 멸시와 차별대우, 따돌림 등에 맞서 저항하고 투쟁할 때 인정투쟁은 정치적 투쟁으로서 나타나게 된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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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인정투쟁 이론은 피지배자들이 지배에 맞서 저항하게 되는 이유는 무엇이며, 왜 그것이 합당한 규범적 근거를 지니고 있는지 해명해줄 수 있으며, 역으로 어떤 사회가 정의로운 사회인지 아닌지를 평가할 수 있는 척도도 제시해줄 수 있다. 각각의 사회 성원들이 억압 없이 자유롭게 자신의 정체성을 실현할 수 있는 사회는 건강하고 정의로운 사회인 반면, 그렇게 하지 못하도록 억압하는 사회 또는 특정한 집단의 정체성을 기준으로 다른 집단의 정체성을 규정하고 강제하는 사회는 병리적이고 부당한 사회로 평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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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점에서 호네트의 인정투쟁 이론은 가령 영미권에서 찰스 테일러Charles Taylor나 낸시 프레이저Nancy Fraser 등이 발전시킨 “인정의 정치학”보다 좀더 규범적이고 도덕적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그의 이론은 1980년대 다문화주의와 정체성의 정치의 맥락에 따라 전개된 인정의 정치학과 달리 적절한 인정을 받으려는 인간의 욕구는 인간의 정체성 형성에 본질적이며, 따라서 이는 초역사적ㆍ초문화적인 규범적 기초라는 관점을 견지하고 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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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네트의 인정투쟁 이론은 하버마스의 화용론 중심의 상호주관성 모델을 인간학적으로 확장했을 뿐만 아니라, 무시당하고 억압받는 피지배자들의 부정적 경험을 자신의 비판이론의 원천으로 삼으면서 비판이론이 지닌 해방론적 함축을 잘 살리고 있다는 점에서도 주목할 만하다. 하지만 이러한 해방론적 함의에도 불구하고 정작 호네트 자신은 인정투쟁 이론이 지닌 정치철학적 측면들을 발전시키지 않은 채, 인정투쟁 이론의 규범적인 측면을 좀더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예컨대 호네트의 작업에서는 인정투쟁 이론이 사회구조 또는 사회제도들의 형성과 개조, 변혁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지 찾아보기가 어렵다. 따라서 인정투쟁 이론이 비판이론의 진정한 계승자가 되기 위해서는 정치적ㆍ사회적 차원에 대한 논의를 보완ㆍ확장할 필요가 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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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아가 호네트는, 스승인 하버마스와 마찬가지로 서양 근대 문명의 가장 어두운 측면, 곧 파시즘과 홀로코스트에 대한 적절한 이론적 해명을 결여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얼마간 맹목적이다. 한나 아렌트 이래 또는 비판이론의 대표자 중 한 사람인 아도르노 이래 현대 철학자들 중 상당수가 근대성에 내재한 도착성의 뿌리를 해명하는 것을 자신의 본질적인 과제로 삼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인정투쟁 이론이 정치철학으로서의 이론적 완결성을 갖기 위해서는 이 점은 반드시 보완되어야 할 것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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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크 랑시에르와 평등의 원리로서 정치<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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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를 비롯한 서구 철학계에서 자크 랑시에르Jacques Rancière(1940~)라는 이름은 오랫동안, 스승인 알튀세르에 대한 지적 반역을 감행한 인물로 기억되어 왔다. 1965년 알튀세르와 그의 제자들이 함께 저술한 저 유명한 󰡔“자본”을 읽자Lire le Capital󰡕에 공저자의 한 사람으로 참여했다가, 1974년 󰡔알튀세르의 교훈La leçon d'Althusser󰡕이라는 자신의 첫 번째 저서에서 알튀세르의 엘리트주의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것으로 “독립선언”을 했던 만큼 이러한 평판은 얼마간 불가피한 것이었다. 하지만 랑시에르는 1980년대부터 󰡔무지한 스승Le maître ignorant󰡕(1987), 󰡔불화La mésentente󰡕(1995) 같은 독창적인 저작들을 발표하면서 알튀세르의 그늘에서 벗어나 곧바로 현대 철학의 핵심 인물로 떠올랐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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랑시에르의 정치철학은 하나의 근본적인 통찰, 곧 정치는 평등의 원리에 기초를 두고 있다는 통찰에 대한 체계적인 탐구라고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랑시에르는 “정치la politique”와 “치안/통치la police”를 구별하면서 출발한다. 치안/통치는 한 사회를 위계적으로 조직하고 통치하는 구조 일체를 가리키며, 따라서 지배자와 피지배자, 지식인 내지 철학자와 대중 사이의 근원적인 불평등을 가정한다. 반면 정치는 모든 사람은 동등하며, 누구나 다 동등한 능력과 자질을 갖추고 있다는 것을 긍정한다. 심지어 지적인 능력에서도 모든 사람은 동등하다. 이런 의미에서 정치는 근본적으로 민주주의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반대로 철학은 한 사회의 구조와 성립 근거를 밝히고 그것을 가장 합리적으로 통치할 수 있는 원리를 해명하는 것, “치안/통치”를 확립하는 것, 곧 위계와 지배를 정당화하는 것을 자신의 과업으로 삼고 있다. 따라서 랑시에르는 “정치철학”이란 용어모순이며, 존재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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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정치와 “치안/통치”, 근원적인 평등의 원리와 근원적인 불평등의 질서 중에서 우선하는 것은 바로 정치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지배자와 피지배자 사이의 불평등을 가정하는 “치안/통치”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지배자는 피지배자들에게 지배자로서 인정을 받아야 하는데, 이는 피지배자들이 지배자를 지배자로서 인정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는 것, 지배자와 근원적으로 동등하다는 것을 전제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역설적이게도 근원적인 불평등을 전제하고 있는 “치안/통치”의 질서는 근원적인 평등의 원리를 자신의 존립의 기초로 삼고 있는 셈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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랑시에르는 이러한 역설적인 상황을 “잘못/왜곡tort”이라는 중의적인 개념으로 표현한다. 이것이 (도덕적으로) 잘못인 이유는 “치안/통치”의 질서는 지배-피지배 관계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만, 사실 “치안/통치”는 지배와 피지배의 구별이 근원적으로 근거가 없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평등의 원리에 근거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로 이는 또한 “왜곡”되고 “뒤틀린” 것이기도 한데, 왜냐하면 공동체의 성원들은 모두 동등함에도 불구하고, 또 그러한 동등성 때문에 비로소 “치안/통치”가 가능함에도 불구하고, “치안/통치”의 질서는 사회 성원들에게 자원과 권한을 불균등하게 배분하기 때문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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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이러한 “치안/통치”의 질서에 대해 저항하는 것, 이를 전복시키거나 변혁하는 것은 불가능한가? 이 질문에 답변하기 위해서는 제 3의 용어, 곧 “정치적인 것le politique”이라는 용어의 의미를 이해해야 한다. 랑시에르는 정치와 “치안/통치”가 조우하는 장소, 곧 “치안/통치”의 잘못과 왜곡이 드러나는 장소를 “정치적인 것”이라고 부른다. 정치적인 것은 기존의 “치안/통치”의 질서에서 배제되어 있는, 이러한 질서 속에서 아무런 몫도 갖지 못한 자들이 자신의 몫을 주장하면서 저항할 때, 자신의 목소리를 드러내면서 “치안/통치”의 균형잡힌 질서를 뒤틀고 균열을 낼 때, 그것의 잘못을 보여줄 때 나타난다. 따라서 “정치적인 것”은 고정된 불변의 장소, 위치를 지니고 있는 것이 아니라, 몫 없는 자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하면서 등장할 때마다, “치안/통치”의 도덕적 잘못을 드러내고 이로써 그 존재론적 질서의 왜곡을 보여줄 때마다 형성된다. 아니 그러한 보여줌의 사건 자체가 바로 정치적인 것의 자리라고 할 수 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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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찬가지로 랑시에르에게는 “정치적 주체” 역시 어떤 객관적인 속성에 따라 (예컨대 노동자 계급인지 여부) 정의되는 것이 아니다. 아테네의 자유 빈민들(“데모이demoï”)이 민주주의의 실시를 요구하면서 나섰을 때 그들이 곧 정치적 주체였으며, 또 1871년 파리에서 노동자들이 봉기했을 때, 1968년에 학생-노동자들이 “우리 모두는 독일의 유대인들이다”라고 외치며 거리에 나섰을 때, 그들 역시 정치적 주체들이었다. 그에게 정치적 주체란 어떤 존재론적 규정에 따라 정의되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기존의 “치안-통치”의 질서에 따라 규정된 존재론적 정체성에서 벗어나 정치적 투쟁이 전개될 때 비로소 정치적 주체가 등장하는 것이다. 바로 이런 의미에서 랑시에르는 “주체화”를 “탈정체화”, “탈분류화”의 과정이라고 부른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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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볼 때 그가 현재의 자유민주주의에 대해 비판적일 것이라는 점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실제로 랑시에르는 의회주의적인 자유민주주의를 “탈민주주의post-démocratie”라고 부른다. 곧 “치안-통치”의 “잘못/왜곡”을 드러내줄 수 있는 여지가 대부분 사라지고 정치는 다양한 사회경제적 집단들의 산술적 합의(“선거”)로 환원되는 곳, 전문가들과 정책입안자들이 통치하는 곳이 바로 현재의 자유민주주의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그가 자유민주주의(또는 근대성) 일체를 부정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아감벤이나 알랭 바디우와 달리 랑시에르는 자유민주주의 제도가 지닌 긍정적인 함의들을 인정하는데, 이는 이 제도들이 바로 과거 정치적 주체들의 투쟁의 산물이며, 그러한 투쟁을 자기 내부에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제도들 덕분에 이전에 일어났던 정치적 투쟁의 사건, 민주주의의 사건은 언젠가 다시 발생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니게 된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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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랑시에르에게 민주주의는 어떤 특정한 제도, 어떤 특정한 정치유형과 동일시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모든 정치 제도 속에 그것을 가능하게 하고 평가할 수 있게 해주는 규범적 원리로 내재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랑시에르의 정치철학이 지닌 강점은 바로 이처럼 혁명적 전통의 유산을 보존하면서 동시에 민주주의의 규범적 측면을 함께 유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반면에 정치를 사회적 질서와 대립시키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정치에 관한 사고를 실재의 객관적 조건에 대한 사회과학적 탐구와 근본적으로 절연시키고 있는 것은 랑시에르의 철학이 지닌 중대한 문제점 중 하나다. 게다가 이는 민주주의적 제도들에 대한 긍정적 평가와도 얼마간 모순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러한 평가는 제도들에 대한 객관적 규정의 가능성을 전제하기 때문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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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전: 󰡔세계의 문학󰡕 124호, 2007년 여름호.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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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item><item><author>바라</author><category>찌라시의 문서 창고</category><title>인민이냐 다중이냐(랑시에르, 에릭 알리에즈와의 인터뷰)</title><link>http://blog.aladin.co.kr/vara/2371085</link><pubDate>Sun, 26 Oct 2008 20:2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vara/2371085</guid><description><![CDATA[
http://jayul.net/view_article.php?a_no=1192&amp;p_no=1

「인민이냐 다중이냐?」(에릭 알리에즈와의 인터뷰)<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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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 "Peuple ou multitudes?", Multitudes 9, mai-juin 2002 <br />
http://multitudes.samizdat.net/spip.php?article39 <br />
■ 저자 : Jacque Rancière <br />
■ 저작권을 산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후 출판사의 요청이 있을 경우 이 게시물은 삭제될 수 있습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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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다중&gt; : 『불화La Mésentente』(Galilée, 1995)에서 당신은 (정체성에 따라 자리와 몫을 결정하는) 공동체에 대한 치안적 정체화와 “공동체의 독특한 세계들”을 여는, “자리와 몫에 관한 모든 표상을 흐트러트리고”, “감각적인 것의 동질성” 등을 뒤흔드는 “부유하는 주체들”로부터 새로운 경험의 장을 만드는 정치적 주체화 사이의 갈등에 대한 분석을 제안한다. 이 갈등을 복수의 다중 對 결집된 인민(그것의 재현/대의로 환원된 인민 주권)의 구도로 표현하기는커녕, 당신은 ‘인민’에 ‘보편성의 사례들의 국지적이고 독특한 구축’이 되는 정치적 행위를 구성하는 ‘평등의 특질’이라고 스스로 이름 지은 것을 연관시킵니다. 글쓰기의 문제 말고도, 삶정치적 다중 관념 주위로 (a)반-지구화 운동의 ‘현상학적’ 묘사와 (b)자본주의 세계 질서와 단절하는 동시대적 과정에 대한 ‘존재론적’ 규정을 이으려는 오늘날의 시도들은 당신에게 어떤 생각들을 불러일으키는가?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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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크 랑시에르 : 인민이냐 다중이냐? 어떤 단어나 어떤 개념이 선호할만한 것인지를 알기 전에, 그것이 무엇에 대한 개념인지를 알아야 한다. 나에게 인민이란 정치적 주체의 이름, 다시 말해 주민, 그것의 부분들 그리고 전체를 셈하는 모든 논리와 관련하여 하나의 보충이다. 그것은 인민을 부분들의 결집, 운동 중인 집단적 신체, 주권 안에 구현된 이상적 신체 등과 같은 것으로 보는 모든 생각과 관련하여 하나의 틈새를 뜻한다. 나는 인민이라는 말을 라이프치히 시위대들이 외친 “우리는 인민이다”의 뜻으로 이해한다. 그들은 분명 인민이 아니었지만 국가적 합체(incorporation)로부터 파열되는 인민의 언표행위를 실행했다. 이런 뜻에서 인민은 나에게 주체화 과정들 전체를 가리키는 유적인 이름이다. 주체화 과정들은 공통적인 것의 가시성의 형태들과 그것들이 정의하는 정체성, 귀속, 나눔 등을 계쟁에 부치는 평등의 특질의 효과를 낸다. 그 과정은 독특한, 일관되거나 일관되지 않은, ‘진지하거나’ 패러디적인 온갖 종류의 이름들을 연출할 수 있다. 이는 또한 이 과정들이 정치를 평등의 고안으로서 연출한다는 것을 뜻하는 바, 여기에서 정치는 어떤 ‘실제적’ 토대도 갖지 않으며 이 모든 계쟁의 장치들 속에서 현실화된 조건으로서만 존재한다. 나에게 인민이라는 이름이 갖는 이점은 모호함을 연출할 수 있다는 데 있다. 이런 뜻에서 정치란 결국 인민의 이름 아래 들어가는 것—[인민이란] 평등의 비일관성을 현실화함으로써 정치 집단들을 설립하는 차이화 작업이거나, 정치를 사회체의 특성들이나 공동체의 영광스러운 신체들의 환상으로 몰아가는 정체화 작업이거나다—을 현실적으로 식별하는 것이다. 정치는 항상 하나의 인민 더하기 다른 하나의 인민, 하나의 인민 對 다른 하나의 인민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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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중에 대한 사유는 아마도 바로 이 점을 거부한다. 몰적인 것과 그램 분자적인 것의 대립 혹은 편집증적인 것과 분열증적인 것의 대립은 분명 가리개다. 인민이 너무 몰적이라거나 일자의 환상들에 너무 사로잡혀있다는 것은 문제가 아니다. 인민은 분할의 독특한 사례들 속에서만 구성되며, 정치는 하나의 특수한 영역, 행위와 언표행위의 특정한 배치다. 다중에 대한 사유에는 부정적인 것에 대한 혐오증, ‘[어떤 것에] 반대하는’ 것으로 정의되는 정치에 대한 혐오증이 있다. 거기에는 또한 정치적이기만 한 정치, 다시 말해 평등의 특질이 가진 비일관성과 그것의 유효한 사례들의 우연적 구축 말고는 다른 어떤 것에도 기초하지 않는 정치에 대한 혐오증이 있다. 이원적 대립이 갖는 편집증적 구조에 대한 거부이기에 앞서, 다중의 입장은 어떤 분리에 의해서도 표시되지 않는 정치 행위의 주체, ‘꼬뮤니즘적’ 주체의 입장이다. 그것은 주체화 장치와 영역이 갖는 모든 특수성을 거부한다는 뜻에서 ‘꼬뮤니즘적’이다. 그것은 또한 스스로에게 작용하는 것, 존재자들을 공통으로 존재하게 만드는 것의 역량이라는 뜻에서 꼬뮤니즘적이다. 다중 개념은 인민 개념을 꼬뮤니즘적 요청에 대립시킨다. 정치는 분리된 영역이어서는 안 된다. 모든 것이 정치적이어야 한다. 다시 말해 사실상 정치는 전체의 본성, 분리되지 않는 것의 본성을 표현한다. 공동체는 공통으로 존재함, 공동체를 존재자들 일반 사이에 두는 역량의 본성 자체에만 기초해야 한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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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다중’이 ‘인민’으로부터 분리된다면, 그것은 평등 전제를 실체화하는 다음과 같은 존재론적 요구를 통해서이다. 스스로를 대립적으로, 반동적으로 구축하지 않기 위해서 정치는 그 자신과 다른 것을 원리와 목적으로 삼아야 한다. 정치적 주체들은 존재의 법칙 자체인 다자를 표현해야 한다. 이 점에서 다중에 대한 사유는 정치 철학의 전통에 등록된다. 그것은 정치적 예외성을 존재자들을 공동체에 두는 것의 원리로 끌고 가고 싶어 한다. 더 정확히 말하면 그러한 사유는 근대 시대 정치 철학에 고유한 메타정치 전통에 등록된다. 메타정치의 고유함이란 정치 무대의 불안정한 고안물들을 존재들을 공동체에 두는 내재적 역량의 진리에 호소하는 것이자 진정한 공동체를 이 진리의 이해되고 감각적인 유효성과 동일시하는 것이다. 메타정치의 역설이란 공통의 역량에 대한 긍정이 공동체가 원하지 않은 존재의 진리, 대문자 존재가 원하지 않은 존재의 진리와 스스로를 동일시한다는 데 있다. 근대 메타정치에 따르면, 공동체를 원하는 것은 대문자 존재의 토대 자체인 원하지 않은 것에 공동체를 부합시키길 원하는 것이다. 내가 보기에 문제는 정치를 ‘정초하는’ 것이 정치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것이기도 한 것이 아닌지를 아는 데 있다. 존재론이 행위의 양상으로 주문하는 것의 진짜 이름은 윤리다. [존재가] 원하지 않은 것을 원하기, 이는 특히 우연을 긍정하고, [전에] 그러했던 바를 선택하는 니체나 들뢰즈의 영원회귀 윤리가 부르짖는 것이다. 그것은 다자의 배치들의 ‘그리고... 그리고...’와 다른 목적들에 맞서 자신의 목적들을 추구하는 행위하는 의지들의 ‘이거나... 이거나...’를 대립시키는 생성의 윤리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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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자의 생성들이 다중으로 실체화되기 위해서는 다른 것이 필요하다. 대문자 존재가 긍정이라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이 긍정이 모든 부정에 내재적인 내용이어야 한다. 의지 없는 대문자 존재의 전개는 우연과 그것들의 반-실현들의 결합에 내맡겨져서는 안 되며, 내재적 목적론에 사로잡혀야 한다. ‘다중’은 공동체의 본질과 스스로를 동일시하는 과잉 존재, 바로 그 과잉을 통해 감각적 공동체의 모습으로 자신을 실현하는 데 장벽이 되는 것들을 박살내는 일을 맡는 과잉 존재의 역량을 가리키는 이름이다. 만일 정치적 주체들의 부정성이 없어져야 한다면, 긍정의 역량은 모든 지배 상태 안에 그 마지막 내용으로서 머무는 파열의 역량이자 지배의 장벽들을 부수기로 되어있는 내용이어야 한다. ‘다중’은 제국이 그것의 내용물인 내용이어야 한다. <br />
파열을 긍정하는 이 역량, ‘의지 없는’ 것에 대한 긍정적이고 궁극적인 역량은 맑스주의 이론 내에서 하나의 이름을 받았는 바, 그것은 생산력이라 불린다. 그것은 평판이 나쁜 이름이다. ‘생산적’ 그리고 ‘생산’이란 공장과 당의 낡은 시대를 떠올리게 만들 수 있다. 그것은 동시에 ‘다중’이 표현하는 사유와 삶의 집단적 역량에 비해 환원적인 노동의 윤리를 떠올리게 만들 수 있다. &lt;다중&gt; 집단 내 여러 논쟁들이 바로 이 어려움을 증언해준다. 그러나 생산에 주어진 특수한 내용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생산 개념은 너무나 폭이 넓어서 생산력의 영역에 게으름과 노동 거부를 포함하여 아무거나 집어넣을 수 있다. 근본적인 점은 공통적인 것의 존재 역량을 생산으로 규정한다는 것이며, 이는 생산을 그것의 긍정적 본질에 내재하는 목적론에 사로잡히는 힘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제국』의 저자들은 “지구화의 생산적이고 창조적인 주체성들의 복수적 다중”, 그들의 “영구한 운동”, 그 주체성들이 이루는 “독특성들의 성좌들”, 체제적인 것과 반-체제적인 것 사이의 단순 대응 논리로 몰아갈 수 없는 그것들의 “혼합 및 잡종 과정”에 호소할 수 있다[1]. 다자의 잡종 과정이 준 자유는 그 개념 자체가 가져다주는 보장보다는 덜 중요하다. 생산적 배치들이 제국 자체의 현실이라는 보장, 다중의 싸움이 한 번 더 포이에르바하적 인간이 자신의 신을 만들어냈고, 그것을 충만하게 인간적인 삶을 위한 속성들로 다시 취할 수 있게 되는 방식으로 “제국 자체를 자신의 이미지의 역으로 만들었다”[2]는 보장 말이다.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의 유효성을 갖춘 체계의 진리에 대한 메타정치적 긍정이다. ‘생산적’ 이상에 대한 망설임은 그저 존재론적 생산 개념과 그것의 경험적 화신들 사이의 틈을 증언한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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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틈은 또한 자신의 아포리아 앞에서 ‘생산력주의자의’ 단언을 재정식화하도록 제공된 자유다. 이런 뜻에서 ‘다중’ 개념은 20세기 후반 맑스주의 이론 및 운동에 깊은 영향을 미친 ‘생산력’ 개념을 확장하는 거대한 작업 속에 등록된다. 고전 맑스주의는 생산력을 정치적 그림자들을 일소할 수 있는 참의 역량으로 만들려고 했다. 레닌주의는 이러한 비전의 파산에 대한 고백이자, 생산력이 해야 했던 작업을 하기 위해 아르케-정치적 행위를 선언하고 실천한 필연적 귀결을 보여주었다. 이 아르케-정치 자체의 파산은 맑스주의의 세 번째 시대를 야기했다. 그것은 경제적 진리와 정치적 외양을, 혁명적 결정과 경제적 숙명론을 더 이상 대립시키려 하지 않는 대신 생산력 개념 안에 이러저러하게 공통적인 것을 만드는 과정들—과학적이고 기술적인 활동들이나 창조적인 지적 활동 일반으로부터 정치적 실천으로 그리고 기존 세계 질서에 대한 온갖 형태의 저항이나 도주로—전체를 통합시키고자 했다. ‘과학이 직접적인 생산력’이라고 주장하는 수정주의 이론과 문화 혁명, 학생 혁명과 노동자주의(오뻬라이즈모)는 다중 개념이 오늘날 급진화시키려하는 이 기획의 다양한 형태들이었다. 사물의 상태를 변형시키는 온갖 형태의 활동을 생산력의 계좌, 다시 말해 내용물[제국]을 폭발시키지 않을 수 없는 내용[다중]의 논리의 계좌로 이체시키려는 기획. 이런 뜻에서 ‘모든 것은 정치적이다’라고 말하는 메타정치적 언표는 ‘모든 것은 경제적이다’라는 언표와 꼭 같으며, 결국 ‘모든 사유는 주사위를 던진다’—이것은 ‘모든 주사위 던지기는 생산력이다’로 번역될 수 있겠다—라는 아르케-정치의 언표와 같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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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다중이 우연에 맡겨두는 몫은 우연 자체와 필연의 동일시보다는 덜 중요하며, 반-생산력주의는 제국(다시 말해, 결국 자본)과 그것이 ‘사슬을 풀어주는’ 힘들의 오로지 내적인 대립 속에 다중 스스로 통합되는 것보다는 덜 중요하다. [다중에 대한 사유의] 중요한 강점이자 약점은 이 ‘제국’의 무대를 유일한 무대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다중에 대한 사유는 여전히 민족-국가에 매달려 있는 인민에 맞서 실제로 세계화된 세계의 진가를 알아보고자 한다. 그 야망은 정당하다. 그것이 세계화든 아니든 50년 전에 비해 오늘날 두 배 이상의 민족-국가가, 두 배 이상의 군사, 치안 장치 등이 있음을 잊지 않는다면 말이다. 그 야망은 정당하다. 그것이 민족-국가들의 억압적 힘의 결과로서 대거 이동하는 주민들의 현실을 ‘노마디즘’이라는 꼬리표에 바치지 않는다면 말이다. “척도의 한계들을 넘어서고 부수며”, “평소와는 다른 위상학이 그리는, 포함시킬 수 없는 은밀한 리좀들이 그리는”[3] 새로운 공간들을 만들어내는 이 유목적 운동에 대한 찬미는 일을 구하러 도시에 온 브라질 농민들과 르완다 인종청소로부터 도망쳐 나온 난민 캠프 거주자들을 망명(Exils)이라는 제목으로 한 데 묶어버린 사진이 연민의 방식으로 했던 것과 똑같은 작업을 열광적인 방식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다중의 폭발적인 역량의 증거로 제시된 유목적 운동은 결국 민족-국가의 폭력이나 그들을 파산에 빠트린 절대적 비참 때문에 쫓겨난 주민들의 운동인 것이다. ‘다중’은 그만큼 문제가 있는 모든 동일시들에 종속된 ‘인민’이다. 그래서 &lt;다중&gt; 7호에서 9. 11 사태는 ‘인민’이나 ‘대중’이 ‘파시즘을 욕망했다’고 강조되던 시대에 만개한 바 있는 질문들을 다시 끌고 왔다. 알라의 이름으로 쌍둥이 빌딩의 붕괴에 갈채를 보내는 아랍 군중들은 다중인가? 모든 다중은 ‘좋은’ 다중 혹은 ‘진짜’ 다중인가? 경험적 다중들에 또 다시 ‘긍정적인’ 다중의 본질이 대립된다. 정말이지 대량으로 대륙들 사이를 이동한다거나 정보과학의 속도로 달린다고 충분한 것이 아니다. 긍정성이 시위, 거부를 함께 조직하는 사람들의 일이 되는 지점이 항상 있다. 그곳은 세계의 상징적 장소일 수 있다. 그곳에서는 세계의 지배자들의 연합에 맞서 그들의 지배에 대한 다양한 거부들에 공통된 얼굴을 부여할 필요를 경험하는 시위자들이 결집한다. 그곳은 프랑스에서 일하고 하나의 신분(identité)을 가질 수 있게 해주는 증명서를 달라고 요구하는 시위자들이 단식을 하는 파리의 예배당일 수도 있다. 『제국』의 저자들은 미증유의 위상학에 대한 찬미가 사실상 “어떻게 다중의 행위들이 정치적이게 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뒤이어 나온 것임을 긍정한 첫 번째 사람들이다. 그들은 가장 고전적인 방식으로 그 질문에 답했다. 다중의 행위는 그것이 제국의 중심에 있는 억압 작업들과 직접적으로 그리고 적합한 의식을 가지고 부딪치기 시작할 때 정치적으로 될 수 있다고. 이 의식의 증언으로 주어진 첫 번째 슬로건은 프랑스 미등록 외국인(sans papiers) 운동의 요구—“모두에게 증명서를”—에서 끌어온 “전지구적 시민권”이라는 슬로건이다[4]. 우리는 정치란 먼저 포함과 배제를 나누는 선들 위에서, 귀속의 자리를 옮기는 과정에서 이루어진다는 것보다 더 나은 표현을 모르겠다. 그러나 모든 모호함은 다음에 있다. 다른 이들의 말에 따르면, [전지구적 시민권에 대한] 이 요구는 생산의 자본주의적 국제화 스스로 주장하는 법적 지위와 경제적 지위에 대한 동의를 요구하는 것이기에 비현실적이지 않다. 그러나 우리는 이 동의를 두 가지 방식으로 불일치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 동의를 자본가의 이윤이 요구하는 생산의 ‘국제화’와 착취의 조건을 보장하는 법-국가적 질서의 ‘국가주의’ 사이의 틈에 대한 정치적 전시로, 다시 말해 세계 질서가 요구하는 것이 드러내 보여주는 모순으로서 이해하거나, 아니면 그 동의를 다중을 ‘포함하는’ 제국의 전개에 내재하는 보편성의 긍정으로 이해하거나. 다중을 정치적 주체화 과정으로 생각하고 이 과정의 장소와 형태들 사이의 관계 문제를 제기하거나, 아니면 아무 것도 원하지 않는 대문자 존재의 어떤 무의식적 의지와 그 역량을 동일시할 위험을 무릅쓰고서라도 메타정치적인 방식으로 그 다중을 모든 것을 움직이는 역량의 이름 자체로 생각하거나. 다중에 대한 사유는 정치적 주체들에 대한 사유가 일반적으로 마주치는 선택지를 피할 수 없다. (양창렬 옮김)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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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M. Hardt &amp; A. Negri, Empire, Havard University Press, 2000, p. 60. <br />
[2] Ibid., p. 394. <br />
[3] Ibid., p. 397. <br />
[4] Ibid., p. 399-400. <br />]]></description></item><item><author>바라</author><category>찌라시의 문서 창고</category><title>민주주의는 무엇을 의미하는가?(랑시에르)</title><link>http://blog.aladin.co.kr/vara/2371080</link><pubDate>Sun, 26 Oct 2008 20:2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vara/2371080</guid><description><![CDATA[http://telos.egloos.com/1470836에서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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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는 무언가를 의미하는가? Does democracy mean something?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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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160;&#160;&#160;&#160;&#160;&#160;&#160;&#160;&#160;&#160;&#160;&#160;&#160;&#160;&#160;&#160;&#160;&#160;&#160;&#160;&#160;&#160;&#160;&#160;&#160;&#160;&#160;&#160;&#160;&#160;&#160;&#160;&#160;&#160;&#160;&#160;&#160;&#160;&#160;&#160;&#160;&#160;&#160;&#160;&#160;&#160;&#160;&#160;&#160;&#160;&#160;&#160;&#160;&#160;&#160;&#160;&#160;&#160;&#160;&#160;&#160;&#160;&#160;&#160;&#160;&#160;&#160;&#160;&#160;&#160;&#160;&#160;&#160;&#160;&#160;&#160;&#160;&#160;&#160;&#160;&#160;&#160;&#160;&#160;&#160;&#160;&#160;&#160;&#160;&#160;&#160;&#160;&#160;&#160;&#160;&#160;&#160;&#160;&#160;&#160;&#160;&#160;&#160;&#160;&#160;&#160;&#160;&#160;&#160;&#160;&#160;&#160;&#160;&#160;&#160;&#160;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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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크 랑시에르 Jacques Ranciere<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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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나는 데리다에게 바쳐진 연속강연에의 나의 개입에 대한 예비적 언명에서부터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나는 데리다의 제자였거나 그의 사상의 전문가였던 적이 한 번도 없다. 그가 나의 교사였던 때-아주 옛날의 일이다-부터, 나에게는 그와 철학적인 문제를 논할 기회가 없었다. 따라서 내가 그에게 표현할 경의는 그의 저작에 대한 주석이 아니다. 그를 기리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90년대에 점점 그의 사고의 전경을 점하게 된 개념과 문제-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무엇이 의미되고 있는가-를 다루는 나 자신의 방법을 제시하는 것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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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 '민주주의의 패러독스'란 무엇인가<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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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데리다는 &lt;&lt;우애의 정치학The politics of friendship&gt;&gt;에서, 페리클레스의 것으로 여겨지고, 플라톤의 &lt;&lt;메넥세노스&gt;&gt;에서 부연되어 있는 잘 알려진 명제-'아테나이 인의 통치는, 이름은 민주주의이지만, 현실에서는 귀족제, 즉 다수자의 찬성을 얻은 최고로 뛰어난 자의 통치이다'(*주1)-에 주석을 다는 것에 의해, 이 쟁점을 전개한다. 데리다는 이 언명의 기묘함을 지적한다.(*주2) '민주주의적' 통치라는 수사 그 자체가, 이 형태의 통치에 두 개의 대립하는 이름이 부여될 수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그것은 민주주의라고 불리지만, 그러나 사실상 귀족제이다. 이 '그러나'를, 이름과 사물 사이의 이 이접離接을, 우리들은 어떻게 생각할 수 있을까. 우리들은 그것을 수사修辭 상의, 또는 통치를 위한 허위라고 보거나, 이름과 '사물' 사이의 차이에 의해, 무언가 좀 더 근본적인 것이, 민주주의를 다른 어떤 형태의 통치와도 다른 무언가로 만드는 내적인 차이가 가리켜지고 있다고 상정하거나, 둘 중 하나이다. 이 물음은, 데리다에 의한 민주주의의 아포리아적 구조의 탐구와, 내가 오히려 민주주의의 패러독스라고 부르기를 선호하는 것에 대한 나 자신의 탐구에 공통의 근거를 명확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br />
&#160;내가 '민주주의의 패러독스'라는 것으로 무엇을 말하고 싶은가를 명료하게 하기 위해, 민주주의의 이름과 현실을 다루는 현대의 두 가지 논쟁에서부터 시작하기로 하자. 첫 번째 논쟁은 중동에 민주주의를 전파하기 위한 미국의 군사작전에 관한 중요한 불일치를 품고 있다. 이라크의 선거와 레바논에서 일어난 반 시리아 저항운동 직후, &lt;&lt;이코노미스트&gt;&gt; 지의 표지에 '중동에서 민주주의가 시작'이라는 말이 춤을 췄다. 민주주의의 시작에 대한 자기-만족은, 이름과 현실 사이의 차이에 대한 두 갈래의 논증구조- '.....지만,&#160;그래도 민주주의는 시작된다' 또는&#160; '민주주의는 시작되지만, 그러나 .....'-에 따라 정식화된 것이다. <br />
&#160;'.....지만, 그래도 민주주의는 시작된다'는 어떤 이상주의자들의 논의였다-그들에게 민주주의는 인민의 자기-통치이다. 이것은 민주주의를 힘에 의해 다른 민족에게 가져다 주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환언하면, 우리들은 다음과 같이 주장할 수 있다. 즉, 민주주의에 대한 실용주의적인pragmatic 견해를 취하여, 민주주의는 '인민의 권력'이라고 하는 유토피아적인 견해를 치워 버린다면, '민주주의는 시작된다'라고. 두 번째 논의는, 민주주의는 시작되지만, 그러나 민주주의를 가져다 주는 것은 법의 지배, 자유로운 선거 등을 가져다 주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라는 것이었다. 그것은 우선 혼란을, 민주주의적 생활의 혼돈을 가져다 주는 것을 의미한다. 도널드 럼스펠드가 사담이 실각한 후 일어난 약탈에 관해 말한 것처럼-우리들은 이라크 사람들에게 자유를 가져다 준 것이며, 자유라는 것은 그런 종류의 일을 행할 가능성 또한 의미하는 것이다.&#160;<br />
&#160;그래도 론과 그러나 론은 요컨대 일관된 논리인 셈이다. 그 논리는 다음과 같은 것이다. 민주주의는 자기-통치의 목가 등이 아니기 때문에, 민주주의는 혼란에 다다를 수 있기 때문에, 민주주의는 초대국의 병기에 의해 외부에서 야기되는 것이 가능하며, 또 아마도 야기되지 않으면 안 된다. '초대국super power(=초권력)'은 절대적인 군사적 우위를 가진 나라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또한 민주주의에 의한 혼란을 통제할 수 있는 권력을 의미하는 것이다. <br />
&#160;여기서 민주주의를 넓히기 위한 군사작전을 지지하는 논의는, 우리들에게 민주주의를 전파하는 것에 대한, 지금만큼 열광적이지는 않았던 훨씬 오래된 논의를 떠올리게 한다. 실제로, 그런 논의는 30년 정도 전 삼극위원회(*일역주1)에서 행해진, 민주주의의 '위기'에 대한 두 개의 주요한 논의를 끊임 없이 바꿔 말하고 있는 것이다. <br />
&#160;삼극위원회에 따르면 민주주의의 몽상가들이 민주주의를 인민의 자기-통치와 동일시함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는 시작된다. 이런 몽상가들은 삼극위원회에서 비난된 '가치지향의 지식인'과 같은 종류의 등장인물이다. '가치지향의 지식인'은 '정책지향의 지식인'의 실용주의pragmatism에 대립하는 '적대적문화'를 조장하고 지도자와 권위에 도전하는 과잉의 민주주의적 활동을 촉진하고 있다고 비난받은 것이다. <br />
&#160;민주주의는 시작되지만, 그러나 그것과 함께 혼란도 시작된다. 바그다드에서 일어난 약탈에 대해 도날드 럼스펠드가 한 농담은 30년 전에 사무엘 헌팅턴이 행한 논의를 그대로 반복한 것처럼 들린다. 헌팅턴에 의하면 민주주의는 정부에 압력을 가해 권위의 토대를 무너뜨리고, 개인이나 집단을 자기-지배와 연결된 규율과 희생의 필요성에 저항하게 하는, 그런 요구의 증대에 다다르는 것이다.&#160; <br />
&#160;민주주의를 새로운 영토로 넓히기 위한 군사작전이, 현재 '민주주의'의 이름 아래서 이해되고 있는 패러독스를 전경화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좋은 '민주주의적 통치'라고 하는 것은 좋은 정책을 위협하는 과잉을 통제할 수 있는 통치형식을 의미한다. 이 과잉은 이름 붙여질 수 있는 것으로써, 그 이름이 민주주의이다. &lt;&lt;민주주의의 통치능력&gt;&gt;(*주3) 에 기술되어 있듯이 민주주의적 통치를 위협하는 것은 민주주의적 생활 이외의 그 무엇도 아닌 것이다. 이 위협은 완전한 이중 구속double bind으로써 나타난다. 한편, 민주주의적 생활은 인민에 의한 '자기-통치'라는 이상주의적 관점의 실시를 의미한다. 그것은, 좋은 정책의 원리와 절차, 권위, 과학적 전문지식, 실용적인pragmatic 경험을 침식하는 정치활동의 과잉을 동반한다. 그 때문에, 좋은 민주주의는 정치적 과잉의 억제를 의미할 것이다. 하지만 이 정치활동의 억제는 요망과 요구를 증대시켜, 정치권위와 시민으로서의 행동의 토대를 무너뜨리는, '사적생활' 또는 '행복의 추구'에의 권력부여에 다다른다. 그 결과로서, '좋은 민주주의'란, 민주주의적 생활의 본질에 내재한 정치에의 참가와 이기적인 행동이라는 이중의 과잉을 순치할 수 있는 통치형식을 의미한다. 현대의 '민주주의의 패러독스'를 다음과 같이 기술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즉, 사회적 그리고 정치적인 생활형식으로서의 민주주의는 통치형식으로서의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것이며, 후자에 의해 억압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라고.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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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Plato, Menexenus, 238c-238d<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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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Jacques Derrida, Polittics of Friendship (London: Verso, 1997), p93-113<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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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역주1) 삼극위원회: 1973년 10월에 미국, 일본, 유럽 세 지역의 민간조직으로서 발족. 상호의존의 심화라는 국제정세를 배경으로, 이해관계의 조정에 기울기 쉬운 정부간 관계를 보완하고, 더 넓은 시야에서 국제사회의 안정과 발전에 기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 75년에 도쿄와 교토에서 열린 연차총회에서는 중동평화 등과 함께 민주주의의 위기가 논의되었다. 본문에서 나오는 &lt;&lt;민주주의의 통치능력&gt;&gt;은 그 때 제출된 문서이며, 사무엘 헌팅턴, 미셸 크로졔, 죠지 와타누키 삼인이 각각 미국, 유럽, 일본의 민주주의 상황(정권담당자가 피치자의 요구에 얼마나 응하는 것이 가능하며, 또 피치자에게 얼만큼 정부의 권위와 정통성을 인정하게 하는 것이 가능한가)에 대해서 보고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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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Michel Crozier, Samuel P. Huntington, Joji Watanuki, The Crisis of Democracy - Trilateral Commission Task Force Report n. 8(New York: New York University Press, 1975).&#160; <br />
통치의 형식인가 사회 생활의 형식인가<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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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우리들이 이 패러독스의 이해에서 한 발 더 나아가야 한다면, 내가 앞서 언급했던 두 번째 논쟁을 일별하는 것이 유용할 것이다. 그것은 더 작은 불일치이지만, 우리들이 주요한 논쟁에 내기로 걸린 것과 민주주의의 패러독스의 핵심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br />
&#160; 미국의 병사들이 이라크에서 민주주의를 추진하기 시작한 바로 그 때, '중동의 민주주의'라는 문제를 굉장히 색다른 견지에서 제시하며, 최종적으로 '좋은' 민주주의와 '나쁜' 민주주의의 동명성(同名性)을 해체하는 짧은 저작이 프랑스에서 출판되었다. 쟝 클로드 밀네르(Jean-Claude Milner)의 &lt;&lt;민주주의적 유럽의 범죄적 경향&gt;&gt;이 바로 그것이다(*주1). 저자는 많은 이유에서 알려져 있었지만, 주로, 이른바 '공화주의' 정치 이론의 가장 영향력 있는 사상가로서 알려져 있었다.&#160;이 이론에 따르면, 시민성citizenship은 전적으로 법의 보편성, 교육, 지식의 권위를 근거로 하고 있다. 그것은&#160;온갖 형식의 다문화주의 또는 적극적차별시정조치affirmative action에 반대하고, 사회적 또는 문화적 차이가 권위와 보편성을 침식하는 것에 반대하는 것이다.&#160;<br />
&#160;밀네르가 말하는&#160;민주주의적 유럽의 '범죄'란 무엇인가? 첫째, 그것은 중동에서 평화를 추진하는 것, 즉 이스라엘-팔레스티나 분쟁의 평화적 해결을 추진하는 것에 있다. 밀네르는 이 유럽적 평화는 단 한 가지, 이스라엘의 파괴만을 의미할 수 있을 뿐이라고 논한다. 유럽의 민주주의는 팔레스티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자기 방식의 평화를 제안했다. 유럽의 민주주의적 평화는 홀로코스트의 결과였다. 민주주의적이고 평화적인 유럽, 과거의 유럽의 청산은 1945년 이후에 가능했다. 유럽은 그 시점에서, 나치가 행한 대량학살에 의해, 자신들의 꿈의 방해물이었던 사람들, 즉 유대인으로부터 해방되었던 것이다. 밀네르가 논하 듯이 '민주주의적 유럽'이란 실제로는, 정치-그 원리는 한정된 전체성에 의한 지배이다-를, 사회-그 원리는 반대로 비한정성非限定性이다-속으로 해소하는 것을 의미한다. 근대 민주주의란 이 비한정성의 법적 성취를 말하는 것이며, 이 비한정성의 법은 기술에 의해 상징됨과 더불어 그것에 의해 달성되며, 오늘날, 성별과 혈통의 법으로부터 해방되는 프로젝트에서 정점에 달한다.&#160;따라서 근대 유럽의 민주주의는 적절한 기술의 발명에 의해, 혈통과 전승을 원리로 하는 사람들을 절멸시키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160;<br />
&#160;이 논증은 편집광적으로 보일 것이다. 하지만 이 논증은, 민주주의의 치세는 점점 더 많은 요구를 행하고,&#160;개별주의와 공동체주의를 강조함으로써 정치적 행위성agency의 제諸 형식과 공동체 감각 그 자체의 토대를 허물어뜨리는&#160;나르시시스틱한 '대중 개인주의'의 치세라고,&#160;이 20년간 주장해 온 사조 전체와 획을 같이 하고 있다. 어떤 의미에서 밀네르는, 좋은 정책의 토대를 허물어뜨리는, 사회 생활에서&#160;생겨난 필요needs, 요망, 요구의 비한정성에 대해 똑같은 지적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새로움은, 이 대립을 근본화하고radicalize, 그것을 논리적인 대립으로써 제시한다는 것이다. 그가 기술하는 것과 같은 민주주의의 이론과&#160;계산 방법은 온갖 형식의 좋은 통치와 대립한다. 따라서, 민주주의의 과잉을 통제할 수 있을 좋은 통치는, 밀네르에 의해&#160;더 이상 민주주의라고 불리지 않는다. 그것은 신중하면서도 인상적인 방식으로, 사목司牧통치라고 불린다. 이 표현이 가리키고 있는 것은 모세이며, 또한 일찍이 좌파 지식인 사이에서 영향력이 있었던&#160;또 다른&#160;책,&#160;예전의 모택동주의 지도자 베니 레뷔Bernard-Henry Levy에 의해 쓰여진 &lt;&lt;사목의 살해&gt;&gt;(*주2)라는 책이다. 레뷔는 서양의 철학과 정치학의 전통이 억압했던 성서의 인물로서, 사목을 무대에 올린다. 그러나, '사목통치'는 무엇보다도 우선, 플라톤으로부터 차용된 관념이다. 레뷔는 플라톤이 &lt;&lt;정치가&gt;&gt;에서 검토한 목인牧人에 관한 그 자신의 사고에 충실하지 않았다고 비난한다. 하지만 실제로 문제는 더 복잡하다. 한 편으로, 플라톤은 사목통치를 세계가 신의 목인의 손에 의해&#160;직접 인도 되었던 신화적인 과거에 위치 짓는다.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 사목의 패러다임은 플라톤이 &lt;&lt;국가&gt;&gt;에서 조탁彫琢했던 수호자 지배라는 견해 속에서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 <br />
&#160;내가 보기에, 사목통치를 참조하는 것에 의해, 미국이 민주주의를&#160;전파하기 위해 행하는 작전과 프랑스에 의한 민주주의의 범죄고발에 있어서, 민주주의에 대해 현재 행해지고 있는 논의의 이론적 중핵이 명시되고 있다. 실용적인pragmatic 정책과 대립하는 인민의 자기-통치의 유토피아로서든, 공통의 법의 규율과 대립하는 개인적 욕망의 무질서한 소란으로서든, 민주주의의 이중의 과잉에 대한 현대의 논의는, 플라톤의&#160;민주주의의 초기설정을 다시 한 번 무대에 올린다. 한 편으로, 플라톤에게 민주주의는 변경될 수 없는 쓰여진 법의 강고한 체제이다. 이 형식의 민주주의는, 치료해야 할 병이 어떤 것이든 간에 의사라면 누구라도&#160;딱 잘라&#160;썼을 처방전(=명령, 지시)과 닮았다. 다른 한편으로, 문자의 엄격함은 인민의 완전한 자의성을 표현하고 있으며, 환언하면, 개인이 공통의 규율에 관심을 가지는 바 없이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행위하는 무제한의 '자유'를 표현하고 있다. 플라톤의 논의가 의미하는 것은 민주주의가 정책의 원리가 아니라 좋은 정책에 저항하는 생활 양식way of life이라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혼돈에 다다른다. 더욱 근본적으로 그것은 온갖 것들이 뒤집혀 버린 생활 양식이다. &lt;&lt;국가&gt;&gt; 제 8권은 온갖 자연적 관계가 전복된 국가를 묘사하고 있다. 민주제의 도시에서, 지배자는 지배하는 대신 피지배자에게 복종하고, 아버지는 아들에게 복종하고, 연장자는 젊은이를 모방한다. 여성과 노예는 남성과 주인과 똑같이 '자유'이다. 그리고, 길 위의 당나귀 조차, '최고의 자유와 존엄을 가지고 길을 양보하지 않고, 마주쳐도 옆으로 피하지 않는 온갖 사람들과 부딪혀 버린다(*주3)'는 것이다. <br />
&#160;사회적인 생활 양식으로서의 민주주의와, 그것과 연결되어 있는 민주주의적 개인주의의 위험에 대한 포스트 토크빌Tocqueville 적인 논의 전체는, 거만한 당나귀에 대한 오래된 플라톤의 농담을 반복하고 있다.&#160;이 농담의 지속적인 성공에는 뭔가 흥미를 끄는 것이 있다. 우리들은 21세기에 살고 있으며, 대국민국가, 세계시장, 강력한 기술과 같은 것들로 구성된 문맥context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이고, 그것은 여성, 노예, 외국인 배제를 자신의 자유의 기초로 하는 고대의 소규모 남성 도시와는 이미 아무런 관계도 없다는 이야기를 매일 듣고 있다. 그 결론은 우리들의 '민주주의'는 고대의 민주주의적 촌락의 통치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는 것이다. 이것이 받아 들여질 수 있다면, 고대의 반-민주주의자에 의한 민주주의적 촌락의 논쟁적인 묘사가, 주식거래, 슈퍼 마켓, 온라인 경제 등으로 이루어진 우리들의 세계의 민주주의적 개인의 진짜 초상으로서 여전히 타당하다고 하는 사실을, 우리들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이 패러독스가 시사하는 것은, 민주주의적 생활의 묘사가 민주주의의 개념화를 뒷받침하는 방식은 기만일 것이라는 것이다. 누구에게도 굴하지 않는 민주주의적인 당나귀가 일으키는 소란은 더 심각한 문제를 상징한다. 달리 말하면, 민주주의의 패러독스에 관한 표준적인 언명(민주주의는 민주주의적 통치가 억압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생활형식이다)는 훨씬 근본적인 패러독스, 즉 정치 그 자체의 패러독스의 지표이다. <br />
&#160;민주주의는 통치의 형식도 아니고, 사회생활의 형식도 아니다, 이 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민주주의는 그와 같은 것으로서의 정치의 제도화이다. 민주주의는 패러독스로서의 정치의 제도화인 것이다. 그것이 패러독스인 것은, 정치적인 것을 제도화하는 것은, 일견, 공동체를 지배하는 권력을 무엇이 근거짓는가라는 물음에 답을 줄 것 같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그 물음에 대답을 주지만, 그것은 놀랄만한 대답이다.&#160;어떠한 근거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지배권력의 근거 그 자체다, 라는 대답인 것이다.<br />
&#160;이것이야말로 플라톤이 &lt;&lt;법률&gt;&gt; 제3권 서두에서, 일순의 섬광 속에서&#160;우리들에게 깨닫게 하는 것이다. 그 구절은&#160;내가&#160;아는&#160;한 민주주의에&#160;관해 논의하는 데리다의 주의를 끌지 않았다. 내가 보기에&#160;그것은 민주주의의 '아포리아' 또는 '패러독스'의 핵심을 설명하는 것에 도움이 될 것이다. 이 구절에서 플라톤은 지배하는&#160;데 필요한 자격을 열거한다. 그는 우선 지배자와 피지배자 사이의 자연적 차이에 기초하는 여섯 개의 자격을 열거한다. 아이에 대한 부모의 권력, 연소자에 대한 연장자의, 노예에 대한 주인의, 천한 자에 대한 고귀한 자의, 더 약한 자에 대한 더 강한 자의, 무지한 사람들에 대한 교양 있는 사람들의 권력이다. 이런 자격은 사회적 위치의&#160;명백한 배분을 포함하고&#160;있다. 플라톤이 하고 있는 것처럼, '더 강한' 것이 정말로 무엇을 의미하는가라고 묻는 것은 가능하지만, 약함이 강함의 반대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연장이라는 것이 권력행사를 위한 충분한 자격인지 아닌지를 논쟁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그것은 부정할 수 없는 자격이다. 그것은 객관적인 차이이며, 이미 사회 속에서 작동하고 있는 권력 형식이다. 이런 자격은 지배를 위한 아르케arche로서 기능할 수 있다. 아르케는 시간적인 시작임과&#160;동시에 이론적인 원리이다. 원리로서의 아르케는 사회적 위치와 능력의 명백한 배분을 의미하고, 이 배분은 지배자와 피지배자 사이의 권력 배분의 근거가 된다. 시작으로서의 아르케는 지배의 사실이 지배를 위한 적성 속에서 예기預期되어 있으며, 역으로 이 적성의 명증성이 그 경험적인 작용 사실에 의해 부여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br />
&#160;통치가 성공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왜 어떤 사람들이 지배자의 입장에 있으며, 다른 사람들이 피지배자의 입장에 있는가, 그 이유를 제공하는 것인 것처럼 보인다. 최초의 여섯 개의 지배 원리는 요건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일곱 번째 원리가 있으며, 플라톤은 그것을 '제비뽑기'라고 부른다(*주4). 이것이 민주주의이며, 두개의 요건을 만족시키지 않는 체제이다. 민주주의는 역할의 선先-취取된 배분도, 권력 행사를 지배를 위한 적성에 속하게 하는 것도 아니다. '제비뽑기'는, 온갖 아르케의 부재와 같은, '자격 없는 자격'과 같은 자격의 패러독스를 제시한다. 이 '자격 없는 자격'으로부터 두 개의 다른 귀결을 이끌어 낼 수 있다. 그것이 어떤 아르케도 아니라고 결론 짓고, 그것을 통치 원리의 리스트에서 제외할 수 있다. 플라톤은 그렇게 하지 않지만, 이것을 두고 그가 민주주의에 관대하다고 비난할 수는 없다. 이것은 민주주의가 실제로 존재하고, 그 '주체', 즉 인민이 자신의 존재를 입증하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것 이상의 무언가가 있다. 아르케의 민주주의적 결여는, 적절한 아르케를 과시하는 '좋은' 자격과는 반대의 움직임을 한다. 확실히 위에 열거된 자격들은 좋은 자격들이다. 하지만 엄밀하게 말해서&#160;그것은 무엇에게 좋은 것인가. 연장자가 연장이라는 것은, 확실히 통치를&#160;근거지을 수가 있다. 그 정확한 이름은 장로제일 것이다. 교양있는 사람들의 지식은 통치를 근거지을 수 있으며, 그 이름은 에피스테모크라시epistemocracy 또는 테크노크라시technocracy가 될 것이다. 이런 식이다. 하지만 그 통치형식의 리스트에는 정치적인 통치가 결여되어 있을 것이다. 정치적인 통치가 무언가를 의미한다면, 그것은 무언가 그 이상의 것, 즉, 연장, 부성, 지식, 강함 등에 의한 통치에 추가되는 것이 아니면 안 된다. 그런 형식은, 가족, 부족, 학교, 일터에 이미 존재하고, 인간의 공동체의 더 광범위하고 더 복잡한 형식에 유형을 제공한다. 그리고 플라톤이 말한 것처럼, '천공'에서 도래하는 무언가 그 이상의 것이 없으면 안 된다. '천공'에서 도래하는 통치는 둘 뿐이다. 첫 번째 것은 사목통치, 즉 신의 목인이 인간의 무리를 직접 지배하고 있던 신화적 시대의 통치이다. 두 번째 것은 운에 의한 통치, 즉 제비뽑기, 즉 민주주의이다. <br />
&#160;얼마간 다른 방식으로 서술해 보자. 인간이 그것에 의해 지배되는 통치의 많은 유형이 있다. 출생, 부, 힘, 지식은 가장 공통적인common(=보통의) 것이다. 그러나 통치는 무언가 그 이상의 것, 지배자와 피지배자에게 공통의 대리보충적인 자격을 의미한다. 이미 신의 목인이 세계를 지배하고 있지 않다면, 자격은 이미 한 가지 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지배되는 자격도 지배하는 자격도 갖지 않는 사람들이 갖는 자격이다. 이것이 민주주의의 의미이다. '데모스demos의 권력'이란, 어떠한 아르케에 의해서도 권력을 행사하는 권한을 부여받지 않은 자의 권력을 말한다. 민주주의는 일련의 제도도 특정한 집단의 권력도 아니다. 그것은 온갖 종류의 제도, 그리고 어떠한 하나의 인민 집단의 권력을 정통화하기도 하고 그 정통성을 뺏기도 하는, 대리보충적인, 근거짓는 권력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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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Jean-Claude Milner, Les Penchants criminels de l'Europe demomcratique (Paris: Editions verdier, 2003).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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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Bernard-Henry Levy, Le Meurtre du Parteur (Paris: Editions Verdier, 2004).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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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160;Plato, Republic, book VIII, 563c-d.<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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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4&#160;Plato, The Laws, Book III, 690c. <br />

폴리스, 정치, 정치적인 것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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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이 거만한 당나귀가 불러 일으키는 불쾌의 이유이다. 좋은 정책에 방해가 되는 것은, 이른바 대중 민주주의와 개인주의에서 유래하는 요구의 과잉이 아니라, 민주주의 자신의 근거인 것이다. 정치적인 것은, 그것을 기초 지음과 동시에 그 기초를 철거하기도 하는, 대리보충적인 '인민의 권력'에 입각한다. 근거 짓는 권력과 파괴하는 권력 간의 이 합치는, 내가 보기에 민주주의의 '자기-면역auto immunity'이라는 데리다의 개념보다도 근본적인 것이다. 이 자기-면역에는 두 가지 측면이 있다. 그것은&#160;우선, 민주주의에 내재하는 제한 없는 자기-비판, 반-민주주의적인 프로파간다에도 권력을 줄 수 있는 수용력capacity을 의미한다.&#160; 다음으로 그것은 민주주의의 적이 민주주의와 싸우기 위해 민주주의적인 자유를 이용할 때, 그 적으로부터 민주주의를 보호하기 위해 민주주의적 통치가 민주주의적인 권리를 제한&#160;또는&#160;허공에 매달아 버릴 가능성을 의미한다. 데리다의 관점에서는&#160;두 경우 모두에서 민주주의는 Autos 또는 자기의 검토될 수 없는 권력에 여전히 집착하고 있다. 민주주의가 결여하고 있는 것은 타자성이다. 그것은 외부에서 도래하지 않으면 안 된다. 따라서 데리다는 코라Chora(場)의 순수한 수동성으로부터 타자 또는 신참자-그들을 포함하는 것이 '도래할 민주주의'의 지평을 정한다-에게로 실을 연결하는 것으로, 자기의 원환圓環을 파괴하는 것에 착수하는 것이다. <br />
&#160;나의 이론異論은 아주 단순한 것이다. 타자성은 외부에서 정치에게로 도래해서는 안 된다. 정치는 그 자신의 타자성을 가지며, 그 자신의 이질성 원리를 갖는다. 민주주의라는 것은 실로 이 원리인 것이다. 민주주의는 자기의 권력이 아니다. 반대로, 민주주의는 무언가 그와 같은 권력의 붕괴이다. 민주주의는 아르케arche의 원환성의 붕괴를 의미한다. 정치가 어찌됐든&#160;존재하기 위해서는, 이 무질서의 원리가 전제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원리는 정치의 자기-근거 지음을 가로 막고, 정치를 분할의 대좌로 바꾼다. 나는 시험삼아, 폴리스police, 정치politics, 정치적인 것political이라는 세 개의 말의 이접離接관계에서 그 분할을 개념화했다.<br />
&#160; 연장자, 더 현명한 자, 더 부유한 자 등이 있기 때문에-또는 더 정확히 하면, 그런 역할을 연기하기 때문에-타자를 지배하는 인간이 있다. 자격, 장소, 역량의 이런저런 배분에 근거하는 지배의 유형과 절차가 있다. 이것이 폴리스의 논리라고 내가 부르는 것이다. 그러나 연장자의 권력은 장로제 이상의 것이어야만 하고, 교양 있는 사람들은 무지한 사람들 뿐만 아니라 부유한 사람과 빈곤한 사람 또한 지배하지 않으면 안 된다, 무지한 사람들은 교양 있는 사람들이 그들에게 하도록 명령하는 것을 '알지' 않으면 안 된다, 병사는 병기를 스스로를 위해 사용하는 대신 지배자에게 복종하지 않으면 안 된다-만약 그렇다면, 지배자의 권력은 자기와 피지배자에게 공통의 대리보충적인 성질에 의거하지 않으면 안 된다. 권력은 정치적인 권력으로 변하지 않으면 안 된다.&#160;<br />
&#160;따라서 폴리스의 논리는 다른 논리, 정치의 논리에 의해 횡단되어 있을 터이다. 정치는 자격 없는 자의 권력에 의해 모든 자격이 대리보충 되는 것을 의미한다. 지배자가 통치하는 이유는 한 인간이 타자를 지배할 어떤 충분한 이유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배의 실천은 궁극적으로 그 자신의 이유의 부재에 입각해 있다. '인민의 권력'은 그것을 정통화하면서 동시에 그 정통성을 뺏기도 하는 것이다. <br />
&#160;민주주의democracy에서 데모스demos란 것은, 인구, 인구의 다수파, 정치체, 하위계급low class 따위가 아니다. 그것은 지배하는 자격을 갖지 않는 자-그것은 일거에 모든 사람, 누구라도 의미한다-로 이루어진 잉여의 공동체이다. '인민의 권력'은 어떠한 집단 또는 제도의 권력과도 동일시될 수 없다. 그것은 이접의 형식에서만 존재한다.&#160;한편으로&#160;그것은 국가의 제도와 지배의 실천을 정통화 하면서 그 정통성을 뻇기도 하는 내적인 차이이다. 그와 같은 것이기 때문에 '인민의 권력'은 제도의 과두제적 운영에 의해 지속적으로 횡단되고, 소멸하는 차이이다. 따라서 다른 한편에서, 인민의 권력은 역할(=할당), 장소 또는 역량의 폴리스적 배분에 도전하고, 정치적인 것의 무질서한 기초를 다시 한 번 무대에 올리는 정치 주체의 행동에 의해 끊임없이 재再-제정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이접은 아포리아가 아니라, 부동의dissensus이다.&#160; 아포리아적인 것은 정치적인 것을 그 자신의 원리에 근거 지으려고 하는 시도이다. 하지만 기초는 찢겨진다. 민주주의는 지배의 실천이 끊임없이 덮는 균열을 계속 다시 여는 것, 부동의의 실천이다. <br />
&#160;민주주의는 일련의 제도에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조금 전에 나는 말했다. 동일한 법률, 동일한 헌법이 반대의 방식으로 시행되는 일도 있으며, 그것은 법률이나 헌법이 그 내부에서 틀 지어지는 공통성 감각에 의해 결정된다. 법률이나 헌법은 정치적인 것의 영역을 획정劃定하고, 정치적 행위성을, 적절한 자격을 부여 받은 일정한 행위자의 활동으로 제한하기도 한다. 또 법률이나 헌법은 같은 텍스트에서 새로운 정치적 장소, 쟁점, 행위자를 발명하는 민주주의적인 해석과 실천에 길을 비켜 주기도 한다. 차이를 만들어 내는 것은, 일련의 제도가 아니라, 감성적인 것의 다른 배분, 다른 무대 설정,&#160;말과 말이 가리키는 사물의 종류 사이의, 또는 말과 말이 권력을 부여하는 실천 사이의, 그것과는 다른 관계인 것이다. 폴리스의 논리는 정치적인 것의 영역을 획정하는 것에 있다. 하지만 이 무대의 축소는 보통 정치적인 것의 순수함, 법의 보편성, 정치적 보편성과 사회적 개별성 사이의 구별 같은 이름 아래 실천된다. 그런 정치의 '순화'는 실제로는 그 방기放棄와 같다. 반대로 민주주의의 논리는 정치적인 것의 경계를 애매하게 하고, 이동 시키는 것에 있는 것이다. 정치적인 것의 소멸하는 조건으로서의, 모든 사람의 평등을 재-제정하는 것에 의해, 정치적인 것의 한계=경계limit를 이동시키는 것-이것이야 말로, 정치가 의미하는 것이다. <br />

두&#160;가지 정체성의 간극에서<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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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말할 것도 없이 이 실천은 도시나 국가의 통치가 단일하고 다의적일 수 없는 공동체 원리를 근거로 할 것을 원하는 자에게는 받아 들이기 어려운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민주주의의 이중 구속dobule bind, 이중성, 또는 허위에 대한 끝 없는 지탄, 플라톤에서 사무엘 헌팅턴에 이르는, 민주주의의 현실이 그 이름과 모순됨을 증명하려고 하는 지속적인 시도가 행해져 왔던 것이다. 이 지탄의 가장 잘 알려진 정식은&#160;실질적 민주주의와 형식적 민주주의 사이의 대립에서 보여진다. 이 대립은 마르크스주의의 전통에 의해 강조되었지만, 훨씬 오랜 옛날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다. 그것은 쓰여진 법의 지배로서의 민주주의와 개인적 그리고 사회적인 생활 형식으로서의 민주주의 사이의, 플라톤의 구별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차이도 있다. 플라톤의 모델에서는 민주주의자의 개인주의적 생활은 법의 엄격함에 겉보기로 참가commitment하는 것의 진짜 내용이다. 마르크스주의 전통에서 실질적 민주주의는 민주주의의 이면, 즉 착취와 불평등의 '현실 생활'을 은폐하는 형식적인 부르주아 민주주의와 대립한다. 그러나 결론은 다르다고 하더라도 논의의 구조는 동일하다. 형식적 민주주의는 불평등한 현실에 대립하는 평등의 외관이다. 이 '현실'은 다양한 형태를 취할 것이다. 플라톤에 따르면, 그것은 쾌고快苦의 계산에 종속되는 민주주의적 개인의&#160;전적인 쾌락이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그것은 사적소유와 사적이해의 현실일 것이다. 한나 아렌트가 한 것처럼, 정치적인 나타남의 영역의 반짝임, 빛남, 을 '단순한 소여성의 어두운 배경'에 대치하는 것에 의해 그 관계를 역으로 하는 것조차 가능하다. <br />
&#160;이상의 어느 경우에서든, 민주주의는 나타남(=외견)과 현실 사이의 대립이라는 필터를 통해 접근된다. 이 대립을 통해 민주주의는 묘사되고, 위장 당하고, 궁극적으로는 밀쳐내진다. 겉보기에는 대립적인 해석이 등가라는 사실의 가장 인상적인 사례는, 혁명적인 '인간과 시민의 권리'에 대한 비판 속에서 볼 수 있다. 오늘날에는, 그런 권리는 '인권'으로 발전했다. 우리들이 인권을 가지고 있는 것은, 2세기 이상에 걸쳐, 버크, 마르크스, 아렌트 처럼 다양한 저자들이 '인간과 시민의 권리'에는 무언가 그릇된 것, 즉 이중성이 있음을&#160;가리켜 왔기 때문이다. 독립한 두 개의 주체가 있는 것은 너무&#160;많은 것이며, 거기에는 무언가 착오가 숨어 들었을 것이다. 이런 논의가 이들 저자들에 의해 행해져 왔던 것이며, 최근에도 &lt;&lt;호모 사케르&gt;&gt;(주1) 속에서 죠르지오 아감벤에 의해 거론되고 있다. 마르크스가 기술한 것처럼, 시민의 권리라는 것은 실제로는 재산 소유자인 '인간'의 권리이다. 버크와 아렌트에 의하면 그런 권리는 우리들에게 딜레마를 제시한다. 그런 권리는, 시민의 권리이거나 인간의 권리이거나, 그 어느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권리는 비정치적인 개인의 권리이다. 이 개인은 그 자신의 어떠한 권리도 갖지 않기 때문에, 그런 권리는 어떠한 권리도 갖지 않는 자의 권리인 것이 되며, 이것은 무와 같다. 또는 인간의 권리는 시민의 권리, 즉 시민이 기존의 입헌국가에 귀속하기 때문에 소유하는 권리이다. 그런 권리는 권리를 갖는 자의 권리이며, 이것은 동어반복이다. <br />
&#160;이런 언설이 우리들에게 두개의 주체를 제시한다면, 그 하나는&#160;위장용 껍데기일&#160;것이다-이 논의의 핵심은 그런 것이다. 그것이 전제하고 있는 것은, 정치 주체는 하나이며 또한&#160;동일하지 않으면 안 된다, 라는 것이다. '인간'과 '시민' 중 어느 것이 '진짜' 주체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정치가 신기루이던가, 정치 주체가 헌법의 텍스트가 정의하는 것과 같은 것이던가, 그 어느 것인가인 것이다. 하지만 이와 반대로 민주주의가 의미하는 것은, 하나의 주체 따위는 없다, 라는 것이다. 정치 주체는 상이한 아이덴티티 사이, 특별히 인간과 시민 사이의 간극에 존재하는 것이다. 정치적인 주체화의 과정은, 인간의 권력도 시민의 권력도 고정하지 않고, 인간과 시민 사이의 결합과 분리의 형식을 구축한다. 이 과정에서 인간과 시민은 정치적인 이름으로서 사용되는 것이며, 이 이름의 법적인 기재가 정치적인 과정의 소산인 것이다. 인간과 시민은 또, 분쟁적인 이름, 그 외연과 내포가 경합적이며, 시험 또는 검증의 공간을 여는 이름이기도 하다. 그와 같은 방식으로 인간과 시민이라는 정치적인 이름은 민주주의의 투쟁에 있어서 사용되어 왔던 것이며, 사용되는 것이 가능한 것이다. 한편에서는 시민성citizenhip이란 인간으로서-즉, 소유주와 사회적 지배층의 권력에 종속하는 사적인 개인으로서-열등하거나 우수하거나 한 사람들 사이의 평등의 지배를 의미한다. 다른 한편에서, '인간'이란 누구라도 갖는 평등한 수용력의 긍정을 의미하고, 이것은 시민성의 제한, 즉 인민의 많은 범주를 시민성의 영역에서 배제하는, 또는 다양한 문제를 시민의 범위 밖에 두는 제한과 대립한다. 인간과 시민은 함께 배제원리에 대한 포함원리의 역할, 개별적인 것에 대한 보편적인 것의 역할을 연기한다. 민주주의가 이해의 개별성에 대한 법의 보편적인 권력으로 환원될 수 없는 것은, 폴리스의 논리 그 자체가 보편적인 것은 지속적으로 개인화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보편적인 것은 항상 상연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그런 일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보편적인 것은 새롭게 분할되지 않으면 안 된다. <br />
&#160;나는 시험 삼아, 프랑스 혁명기의 페미니즘의 저항운동의 형식에 주석을 다는 것을 통해&#160;이를 지적했다(주2). 여성의 활동은 가정생활의 개별성에 귀속하지만 시민성은 보편성의 영역이다, 라는 이른바 공화제 원리에 따라, 여성들은 시민의 권리를 부정당해 왔다. 개별적인 것의 영역에 있었던 결과, 여성은 보편적인 것에는 포함될 수 없었다, 라는 것이다. 여성은 여성 자신의 어떠한 의지도 갖지 않으며, 따라서 정치 주체일 수 없었다, 라는 것이다. 이 '자-명'한 언명에 대해, 올랭 드 구즈는 여성들은 단두대에 올라갈 자격을 부여 받았기 때문에, '집회'의 연단에 올라갈 자격도 똑같이 부여 받은 것이다, 라는 잘 알려진 이론異論을 제기했다. 그녀의 논증은 이른바 벌거벗은(裸形)&#160;생의 개별성에 수반되는 보편성을 제기하는 것에 의해, 영역의 분할을 애매하게&#160;한 것이다. 여성들은 혁명의 적으로써 죽음을 선고당해 왔으니까, 여성의&#160;벌거벗은 생은 정치적이었다. 단두대에서, 여성들은 남성과 평등했다. 죽음의 선고의 보편성은 정치생활과 가정생활 사이의 '자-명한' 구별을 던져 버렸다. 따라서, 여성은 스스로의 권리를 '시민으로서' 긍정할 수 있었던 것이다. 여성들에 의한 권리의 긍정은, 버크 또는 아렌트의 발언에도 불구하고, 여성들은 스스로가 갖는 권리를 갖지 않으며, 스스로가 갖지 않았던 권리를 갖고 있었음을 증명했다. 한편에서, 여성들은 모든 '자유롭고 평등한' 인간에 귀속하는-권리(인권) 선언에 따르면- 권리를 빼앗겼었던 것이며, 그녀들에게 부정당했던 권리를 요구했다. 다른 한편으로, 여성들은 스스로의 항의 운동에 의해 그 정치 능력을 증명했다. 여성들은 스스로 그런 권리를 제정할 수 있기 때문에, 실제로 그런 권리를 소유하고 있다는 것을 보인 것이다. <br />
&#160;두 개의 아이덴티티 사이의 간극에서&#160;주체화 형식을 창조하는 것, 보편적인 것과 개별적인 것 사이의 이중의 관계에 변화를 가함으로써 보편성의 사례를 창조하는 것, 이것이 민주주의 과정이 동반하는 것이다. 민주주의가 단순히 법의 보편성에 기초하는 것일 수만은 없는 것은, 법의 보편성은 통치행동의 논리에 의해 부단히&#160;개인화되기 때문이다. 보편적인 것은 공적생활의&#160;끊임없는&#160;개인화에 저항하는 주체화의 형식과 검증의&#160;사례에 의해 대리보충되지 않으면 안 된다.&#160;&#160;<br />
&#160;개인화는 두 가지 형식을 갖는다. 그 명료한 형식은 성적, 사회적 또는 민족적인 근거에 기초하여, 인구의 어느 부분에 정치적 권리를 부정한다. 그 암묵적 형식은, 일련의 일정한 제도, 문제, 행위자, 절차에 시민성의 영역을 제한한다. 전자가 서양에서는 시대 착오적인 것처럼 보이는 것과 반대로, 후자는 현대의 중요한 문제이다. 근대화라는 부드러운 이름 또는 신-보수주의 혁명이라는 솔직한 이름이,&#160;30년 이상에 걸쳐 노동이나 건강이나 연금과 같은 '사적 생활'의 문제를 평등한 시민성과 관련한 공공의 관심사로 바꾸는 것을 통해&#160;공공역역을 넓혀 온 민주주의의 과정을 역전시키기 위해 이용되어 왔다. '사회' 국가 또는 '복지' 국가 개혁의 배후에서 내기에 걸린 것은, 국가가 개인에게 공적으로 제공하는 서비스나 효용과 개인이 사적으로 손에 넣지 않으면 안 되는 것 사이의 균충均衝보다도 훨씬 큰 문제이다. 노동과 건강의 조정의 배후에서 내기에 걸려 있는 것은, 공동체의 '공동성common'에 관한 이해이다. 시민성의 정치적 영역과 사적인 약속이 지배하는 사회적 영역을 나누는 선은, 누가 공적인 일에 참가할 수 있으며 누가 할 수 없는가를 결정한다. <br />
&#160;1995년 겨울 프랑스에서 공공운송기관의 노동자들이 행한 상당히 긴 파업 동안, 사적이고 재정적인 이해와, 공통선共通善의 정치적인 추구와 장래 세대를 배려하는 능력을 대비하는, 많은 아렌트적이고 슈트라우스적인 논의를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파업이 진행되는 사이에 점점 분명해진 것은, 파업의 주요한 목적은 특정한 인간집단과 제도가 공동체의 장래를 결정하는 배타적인 권력을 가지고 있느냐 아니냐를 결정하는 것이란 사실이다. 정치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 사이의 규범적인 구별은 실제로는 공통의 문제와 장래에 대처하는 능력이 있다고 간주된 자와, 사적이고 직접적인 관심사를 넘을 수 없다고 간주된 자 사이의 구별인 것이다. 민주주의의 과정 전체는 이 경계선의 이동을 둘러싼 것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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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Giorgio Agamben, Homo Sacer (Stanford: Stanford University Press, 1998)<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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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Cf. Jacques Ranciere, 'Who is the Subject of the Rights of Man', 103/2 South Atlantic Quarterly, spring/summer 2004<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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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자성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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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나는 출발점으로 돌아가는 것을 통해 결론을 이야기하고 싶다. 거기서의 물음은, 민주주의를 그 자신에 대립시키는 패러독스를 어떻게 이해할까란 것이었다. 이름의 불확심함과 현실의 모순에 대한&#160;계속해서 반복되는 언명으로부터 민주주의의 자기-차이에 대한 더 근본적인 해석으로, 어떻게 이행할 것인가? 데리다는 &lt;&lt;마르크스의 유령들&gt;&gt;에서, '자유 민주주의'의 자신만만한 자기-만족의 토대에 다시 균열을 여는 것을 목표로, 자유 민주주의의 역사적 성취에 대한 후쿠야마의 테제에 주석을 가하고 있다. '어떤 사람들이 자유 민주주의의 이상理想의 이름으로 새로운 복음을 설파하려 하고 있을 때-그들은, 자유 민주주의는 인간 역사의 이상으로서의 그 자신을 드디어 실현했다고 주장한다-, 외치지 않으면 안 된다. 폭력, 불평등, 배제, 기아, 따라서 경제적 압박이 세계사와 인류사 속에서 이 정도로&#160;많은 인간 존재에 피해를 끼친 적은 없다고(주1).' 다시 균열을 열기 위해서, 데리다는 그 자신에 도달했던 또는 그 자기에 도달했던 민주주의에, 도래할 민주주의를 대립시킨다. 도래할 민주주의는 장래 도착할 일은 없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 그것은 상이한 시간 내부에서 구상된 민주주의이다. '도래할 민주주의'의 시간은, 결코 완수될 수 없지만-그리고 완수될 수 없기 때문에-지켜지지 않으면 안 되는 약속의 시간인 것이다. 도래할 민주주의는, 도래할 것에의 무한한 열림-그리고 '타자' 또는 '신참자'에의 무한의 열림-을 포함하기 때문에, 결코 '그 자신에 도달'하는 것, 그 자신을 따라잡는 것이 불가능한 민주주의이다. <br />
&#160;데리다는 다름 아닌 민주주의를 이른바 '자유 민주주의'와 대립시켜, 두 개의 시간성을 같은 시간 속에 놓고, 두 개의 공간을 같은 공간 속에 놓는다-나는 이 원리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두 개의 민주주의 사이의 대립이라고 불리는 것 속에 문제가 있다. 데리다는 한 편에는 통치형식으로서의 자유 민주주의를, 다른 편에는 신참자에의 무한의 열림을, 또 온갖 기대를 벗어나는 사건에의 무한한 기대를 놓는다. 내가 보기에 제도와 초월론적 지평 사이의 이 대립 속에서 소멸하는 것은, 실천으로서의 민주주의이다. 이 실천은 '타자' 또는 헤테론의 정치적 발명에 다다른다. '신참자'-누구의 것이든 평등한 권력을 제정하고, 소여所與의 공동세계 속에 공동체에 대한 새로운 언어를 구축하는 새로운 주체-를 계속해서 창조하는 정치적인 주체화의 과정이다. 헤테롤로지heterology(타자성, 이타적 논리)의 정치적인 권력을 무시하는 것은, 한 편에 '자유 민주주의'-이것은 실제로는, 자기의 법을 구현하는 과두제를 의미한다-, 다른 편에 '도래할 민주주의'-사건과 타자성에의 무조건적 열림의 시간과 공간이라 보여진다-라는 단순한 대립에 사로잡히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정치의 방기와 타자성의 실체화 형식과 같다. 민주주의적이라고 불리는 자기의 실체화의 거부가, 대칭적인 방식으로 '타자'의 실체화-이것은 현대의 윤리적 풍조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의 상징이다-에 이르는 것이다. 민주주의적 자율과 대비되는, 사건과 '타자성의 무한한 존중'의 참조는 현재의 윤리적 풍조에 있어서 빈번히 사용되는 수단이다. 그러나 이 참조는 상이한 방식으로 해석될 수 있고, 굉장히 다른 결론에 다다를 수 있는 것이다.&#160;&#160;예를 들어, 암네스티 인터네셔널Amnesty International의 인권에 관한 강연(주2)에서 장=프랑소와 리오타르가 제시한 '타자'의 권리 해석에 대해 생각해 보자. 리오타르에게 '타자성의 무한한 존중'이란 인간존재가 그 인질 또는 노예가 되는 '타자'-프로이트적인 사물&#160;또는 유대의 율법으로서의-의 권력에의 복종을 의미한다. 계몽과 해방의 꿈은, 타율의 법을 부정하려 하는 유해한 의지, 전체주의와 나치에 의한 대량학살의 원인으로 보는 것이 가능할 의지가 된다. 따라서, '타자'의 권리는, 궁극적으로는, 악의&#160;축에 대한 군사작전의 정당화에 이른다. 윤리, 타자성, 타자성의 무한한 존중은 일종의 '새로운 복음'이 되어, '자유 민주주의'의 실천과 이데올로기를 정통화한다. <br />
&#160;확실히 데리다는 레비나스적인 '타자'에 대한 그와 같은 해석으로부터, 윤리적 풍조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 리오타르와는 좋은 대조를 이루는 형태로 데리다는 윤리적인 명령을 해방의 지평과 결합시킨다. 그는 명백히 메시아적인 약속을 '법'에의 복종에 대비시키고 있다. 그러나 사건, 타자 또는 무한자에 관한 어떠한 선-취적인 동정同定도 피하려 하는 시도 속에서 그는, 탈구축, 말소선抹消線, 아포파시스apophasis의 끝없는 과정을 통과하지 않으면 안 된다. 타자성에 관한 이 윤리적 과대언명은 두 가지 문제의 어느 해석 사이에서 흔들리지 않을 수 없다. 탈구축은 궁극적으로 신의 병사에 의한 군사작전을 지탱하는 근저적인 타율의 법을 주장하던가, '타자'의 모든 선-취적 동정同定을 말소하는 무한의 임무를 강조하던가, 그 어느 것인가이다. <br />
&#160;데리다에 의한 개념화는 민주주의에 충분한 것을 부여하지 않음과 동시에, 너무나 많은 것을&#160;부여하고 있다. 충분하지 않은 것은, 민주주의는 국가에 의한 '자유 민주주의'의 실천 이상의 것이기 때문이다. 너무 많은 것은, 민주주의는 '타자'에의 무한한 열림 이하의 것이기 때문이다. 타자성에의 한 가지 무한한 열림 같은 것은 없으며, 타자의 분할(=열할)parts을 기재하는 많은 방식이 있다. 나는 민주주의의 실천을 어떠한 분할도 갖지 않는 자-이것은 '배제된 자'가 아니라, 누군가 또는 누구라도를 의미한다-의 분할을 기재記載하는 것으로 개념화하려고 시도했다. 그런 기재는 '신참자'인 주체에 의해, 즉, 새로운 객체가 나타나 공통의 관심사가 되도록 하고, 새로운 목소리가 나타나고 받아 들여질&#160;수 있도록 하는 주체에 의해 행해진다. 이 의미에서 민주주의는 타자성을 다루는 많은 방식의 하나이다. 민주주의에&#160;의한 주체와 객체의 발명은 부서진 시간이자 해방의 단속적斷續的인 계수繼受인 특수한 시간을 창조한다. 내가 보기에 우리들은 메시아적인 시간에 호소하는 대신, 이 부서진 시간 속에서 계속 사고하고 행위하지 않으면 안 된다.&#160;<br />
&#160;우리들은 우리의 입장의 이면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데리다는 '파괴'의 본성 그 자체가 내기에 걸리고, 다음과 같은 물음이 싹 트는 시기에, 또 그런 시대를 위해 말하고 있다. 즉, 국민국가의 내부에서 오래도록 연기되어 온 데모스의 형상은 코스모폴리탄적인 정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가라는 물음이다. 국민국가의 '소멸'은 논쟁의 대상일 수 있지만, 오늘 민주주의가 코스모폴리탄적 질서를 감수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데리다의 대답은 '새로운 인터내셔널'을 촉구하는 것이다. 이 새로운 인터내셔널의 형식은 분명하지 않다. 주요한 물음은, 그것을 정치적인 관점에서 개념화할 것인가, '윤리적인' 관점에서 개념화할 것인가이다. 그것을 정치적인 방식으로 행하기 위해서는 '타자에 대한 무한한 존중'은, '사건' 또는 메시아에의 무한한 기대라는 형식 대신에 타자성을 기재하는 다수의 형식, 변경 또는 부동의不同意의 형식이라는 민주주의적인 외형을 갖지 않으면 안 된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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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Jacques derrida, Specters of Marx (New York: Routledge, 1994), p. 85<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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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Jean-Francois Lyotard, 'The Other's Rights', in Stephen Shute and Susan Hurley (eds.), On Human Rights (New York: Basic Books, 1994)<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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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item><item><author>바라</author><category>찌라시의 문서 창고</category><title>logical revolt</title><link>http://blog.aladin.co.kr/vara/2353397</link><pubDate>Thu, 16 Oct 2008 02:4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vara/2353397</guid><description><![CDATA["logical revolt"...?<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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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서동진의 글의 일부<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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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란 사회의 가능성 혹은 불가능성의 조건을 규정하는 행위이고, 정치적 주체화란 바로 사회를 존재의 질서로서 수용하고 인정하길 거부하고 그것의 객관적이고 경험적인 보편성을 폭로하고 중지시키는 행위를 가리킨다. 그것이 주체가 아니라 주체화라고 굳이 불려야하는 이유는 사회적 주체란 특정한 집단의 속성이나 자질, 성향으로부터 나올 수 있는 것인 반면 정치적 주체란 그런 경험적 사실들로부터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디우같은 이가 즐겨 쓰는 랭보의 표현처럼 “논리적 반란(logical revolt)”이다. 그것이 논리적인 이유는 목적론적인 주장에서 말하는 것처럼 어떤 숨겨진 역사적 논리의 필연적인 자기전개로서 정치적 변화를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든 실체화될 수 없고, 어떤 특정한 주체의 자리에 뿌리를 내릴 수 없는 형식적인 지위를 가지기 때문일 것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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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권이 되지 못하는 자신이 너무 부끄러워 자살해야했던 내 대학 시절 또래의 여대생을 덮쳐누른 것은 그 무엇으로도 물리칠 수 없는 비열하고 타락한 세계를 두고 모두를 감염시키고 있던 윤리적 자명함이었을 것이다. 그것을 만들어내는 것은 당연히 투쟁이고 운동이다. 랭보의 시구에서 따온 말을 자신들의 투쟁의 좌표로 삼고 나아가 조직의 이름으로 내건 프랑스의 전직 알튀세르주의자들이 주동이 된 정치 그룹의 이름이 “논리적 반란(logical revolt)”이었다 한다. 언젠가 읽은 그의 가장 아름다운 글이라 할 어느 글에서 바디우는 프랑스의 레지스탕스에 가담했던 이들 가운데 그리고 끝까지 투쟁했던 이들이 과학자들이었음을 이야기하며 왜 그들이 그랬는지 치밀하게 설명한다. 그것은 랭보의 말처럼 지극히 논리적인 일이었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이것은 현실주의가 왜 논리적인 것의 절차를 따르는 일이지 모든 개연적인 변이를 핑계대며 비논리적인 헛소리와 망상에 빠지는 것이 아닌지를 역설하는 그의 오랜 주장을 반향한다. 그러나 아마 우리는 여기에 한 명의 반파쇼 낙천주의자로, 혹은 어떤 연민의 투사와도 거리가 먼 외로운 논리적인 투사로서 프리모 레비를 추가하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할 것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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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와 긍휼, 혹은 연민으로부터 운동을 개시하고 연장할 수 있다는 말은 헛것이다. 광우병과 관련한 촛불집회를 보면서 그것을 예찬하는 수많은 얼빠진 신문기사와 칼럼 따위를 읽으면서 나는 운동을 좀 먹는 운동으로서의 그것에 대한 환멸을 되돌리고 싶은 유혹을 느낀다. 그러나 반대 혹은 저항을 어떻게 형식화할 것인가가 말 그대로 위기에 몰린 지금, 우리가 가진 유일한 무기가 연민이라면 우리는 그저 구호기구와 자선단체 그리고 선량한 사회사업가를 가지면 충분하다. 그러나 그것으로 역사가 한 치도 바뀐 적 없으며 오히려 그것을 가로막았음을 깨달아야 하지 않을까. 미얀마에서, 케냐에서, 아니 사하라사막 이남의 모든 곳에서, 미디어의 눈길이 닿지 않는 존재하지 않는 것 같은 세계를 향해 우리가 얻는 것은 비참함의 소식과 그를 위한 구호와 사랑의 부탁이다. 역사가 멎어버린 것 같은 느낌은 그래서 더욱 생소하고 더욱 잔인하게 분명해진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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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 />]]></description></item><item><author>바라</author><category>찌라시의 문서 창고</category><title>스피노자와 알튀세르에서 이데올로기의 문제-상상계라는 쟁점 </title><link>http://blog.aladin.co.kr/vara/2353388</link><pubDate>Thu, 16 Oct 2008 02:3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vara/2353388</guid><description><![CDATA[발마스님 서재에서 펌

스피노자와 알튀세르에서 이데올로기의 문제-상상계라는 쟁점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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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라는 문제, 따라서 글쓰기/기록하기라는 문제를 처음으로 제기했던 인물인 스피노자는 또한 역사이론과 동시에 직접적인 것의 불투명성에 관한 철학을 처음으로 제시했던 사람이다. <br />
루이 알튀세르, {“자본”을 읽자}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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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노자주의 또는 후기 자본주의의 이데올로기 <br />
슬라보예 지젝, {부정적인 것과 함께 머물기}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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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이데올로기의 유령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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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0여 년 동안 서양의 인문사회과학계에서 단일한 논문으로서 과연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와 이데올로기 국가장치들｣[이하에서는 편의상 AIE 논문이라고 줄여 부르겠다.]보다 더 지속적이고 광범위한 영향력을 행사한 논문이 있을까? 지난 1980년대 말 이후 현실 사회주의 국가들이 붕괴하고 마르크스주의가 퇴조하면서 알튀세르의 저작들은 점점 더 인문사회과학 논의에서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지만[여기에는 물론 주지하다시피 지난 1980년에 발생한 알튀세르의 개인적 비극도 영향을 미쳤다.], 이 논문만큼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다양한 분야에서 활발한 토론과 응용 및 변용의 대상이 되고 있다. 어쩌면 이 논문은 바로 알튀세르의 저작들이 퇴조하기 시작한 바로 그 무렵부터 본격적인(또는 적어도 그 이전보다 더 역동적인) 이론적 생명력을 얻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슬라보예 지젝이 {이데올로기의 숭고한 대상}(1989)을 필두로 여러 저작에서 알튀세르에 대한 비판적인 고찰을 통해 이데올로기의 문제를 다시 한 번 인문사회과학의 핵심 쟁점으로 부각시킨 것이 바로 1990년대이며, 그 뒤에 주디스 버틀러Judith Butler가 젠더 이론 및 주체의 예속화/주체화subjection 이론을 전개하면서 AIE 논문을 주요한 이론적 지주로 활용하기 시작한 것(특히 Butler 1997 ｢서론｣ 및 4장 참조) 역시 1990년대의 일이다. 또 그의 제자였던 에티엔 발리바르가 호명 이론을 변용하여 “국민 형태forme nation”에 관한 독창적인 문제설정을 전개하기 시작한 것 역시 90년대 이후의 일이다(특히 Balibar 1988; 2001 1장 참조). 한 가지 놀라운 점은 이처럼 다양한 비판적 논의의 대상이 되고 또 광범위한 영향력을 미쳤음에도 이 논문은 아직도 여전히 많은 이론적 잠재력과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들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우리가 고전이라고 부르는 텍스트들에 공통적인 특징으로, 아마도 바로 이점이야말로 알튀세르의 저작, 특히 AIE 논문을 현대의 고전이라고 부를 수 있게 해주는 것일 듯하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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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튀세르의 이론적 작업 전체를 고려해봤을 때 AIE 논문에 관한 다양한 논의에서 특히 주목할 만한 점은, 이 논문에 미친 스피노자 철학의 영향이 거의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알튀세르는 여러 차례에 걸쳐 스피노자에 대해 예외적인 찬사를 보내고 있으며, 1960년대의 자신의 이론적 작업에 대해 자기비판적으로 고찰하고 있는 소책자에서는 자신이 “스피노자주의자”였음을 명시적으로 고백하고 있지만(Althusser 1997, pp. 181-189), 정작 알튀세르의 가장 중요한 글 중 하나로 꼽을 수 있는 AIE 논문의 스피노자주의적인 성격에 대해서는 거의 논의가 이루어지지 못했다[알튀세르의 이론 작업과 스피노자 철학의 관계 일반에 대해서는 Moreau 1997, Tosel 2005 등을 참조하고, 국내의 논의로는 진태원 2001; 2002; 2005 등을 보라. 외국의 주석가들 중 알튀세르 이데올로기론의 스피노자주의적 성격에 주목하고 있는 글로는 Montag 1995; 1996, Pfaller 1998 정도에 불과하다. Montag은 AIE 논문이 알튀세르의 저작 중에서도 “매우 스피노자주의적인 글”(1995, p. 65)이라고 지적하고 있지만 간략한 논의에 그치고 있다. Montag 1996은 알튀세르 이데올로기론을, 특히 홉스의 정치학과 대비되는 스피노자의 정치학과 연결시켜 흥미 있는 논의를 제시하고 있다. Pfaller 1998은 지젝의 알튀세르 비판이 지닌 관념론적인 측면을 지적하면서 스피노자 상상계의 무한성을 강조하고 있다. Locke 1996은 스피노자와의 연관성에 주목하고 있지는 않지만, 알튀세르 이데올로기론의 비(非)라캉주의적인 성격을 강조하고 있다.]. 반대로 많은 주석가들은 AIE 논문 및 그의 이데올로기론 전체를 라캉주의적인 이데올로기론으로 특징짓고 있다[너무 많은 주석가들이 이런 견해를 제시하고 있기 때문에 일일이 전거를 밝히는 것은 불필요할 것 같다. 대표적인 몇몇 경우를 지적해본다면, Barrett 1993; Eagleton 1991; Macey 1994. 국내에서는 양석원이나 홍준기 등을 들 수 있다. 이 주석가들의 특징은 구체적인 문헌학적 논거를 제시하지 않고 있을뿐더러, 지난 1993년 이래 발표된 알튀세르의 유고들을 거의 언급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특히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론을 해명하는 데 이 유고들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며, 또한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론을 라캉주의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불식시키는 데도 결정적인 중요성을 갖고 있다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진태원 2002 참조.]. 이들에 따르면 알튀세르는 라캉의 정신분석학을 수용하거나 그것을 준거로 삼아 마르크스주의 이데올로기론을 개조하려고 했지만, 라캉의 이론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기능주의에 빠지게 되었다고 한다. 이들은 AIE 논문이나 알튀세르의 몇몇 글들(특히 ｢프로이트와 라캉｣ 같은 글)에 나타난 라캉에 대한 단편적인 언급에 의지하여 AIE 논문 전체, 특히 그 논문의 후반부를 이루는 ｢이데올로기에 관하여｣라는 절을 라캉주의적 이데올로기론으로 특징짓고 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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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의 견해를 하나하나 논박하는 것은 그다지 의미가 없는 일일뿐더러 지면의 한계상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에, 여기서는 그들 중 한 사람, 아마도 가장 대표적인 인물로 꼽힐 만한 지젝의 논의를 살펴보고 싶다. 이는 이 글 전체의 구도와 관련해서도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데, 그것은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론에 대한 지젝의 비판은, 우리가 서두에 인용한 제사(題詞)가 시사하듯이, 스피노자 철학에 대한 비판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젝의 논의는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론과 스피노자 철학 사이의 관련성을 검토해보려는 이 글의 반면교사로 간주할 수 있을 것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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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 지젝의 알튀세르 비판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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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라보예 지젝은 그의 출세작인 󰡔이데올로기의 숭고한 대상󰡕(Zizek 1989)에서부터 󰡔부정적인 것과 함께 머물기󰡕(Zizek 1993/2007b), ｢이데올로기의 유령｣(Zizek 1994), 󰡔나누어질 수 없는 잔여󰡕(Zizek 1996)나 󰡔까다로운 주체󰡕(Zizek 1999/2005) 등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론을 비판하고 라캉주의적인 관점에서 이를 개조하거나 변형하려고 시도해왔다. 이처럼 그가 여러 저작에서 알튀세르를 비판하고 있음에도 그의 논점은 매우 간략하게 요약될 수 있으며, 그의 다양한 논의들은 이러한 논점의 변주에 불과하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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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가 보기에 알튀세르 이데올로기론의 핵심은 호명 이론에 있다. 곧 이데올로기는 개인들을 주체들로 호명하며, 이를 통해 자본주의 생산관계의 재생산 또는 좀더 일반적으로 말하면 지배 체계의 재생산에 기여한다는 것이 그의 이데올로기론의 근본적인 전언이다.(Zizek 1989; 1993)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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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하지만 호명 이론은 그의 이데올로기론의 가장 독창적인 부분이면서 또한 그의 이론의 근본적인 한계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호명 이론은 어떻게 지배에 대한 저항이나 지배 체계를 넘어서는 것이 가능한지 보여주지 못하며, 모든 주체는 결국 지배 체계의 재생산 메커니즘에 예속될 수밖에 없다는 숙명론으로 귀결되기 때문이다.(Zizek 1989; 1993; Dolar 1993)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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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알튀세르가 이런 한계에 부딪치는 이유는, 라캉의 욕망의 그래프 상에서 본다면 그가 첫 번째 수준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그의 이데올로기론, 그가 제시하는 호명 이론은 부유하는 기표들의 의미를 고정시켜 주는 이데올로기적 누빔점에 관한 이론에 그치고 있다. 이러한 도식 속에서는 모든 호명은 항상 성공하기 마련이며, 모든 주체는 항상 주인기표를 통해 호명된다.[“누빔점은 주체가 기표에 ‘꿰매어지는’ 지점이다. 그리고 동시에 어떤 주인기표(‘공산주의’ㆍ ‘신’ㆍ ‘자유’ ㆍ‘미국’)의 호출과 함께 개인에게 말을 걸면서 개인을 주체로서 호명하는 지점이다. 한 마디로 그것은 기표 연쇄를 주체화하는 지점이다.”(Zizek 1989, 179쪽)]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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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반면 라캉의 이론은 알튀세르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는 길을 제공해주는데, 그것의 핵심은 “환상을 가로지르기”라는 개념에서 찾을 수 있다.(Zizek 1989 2부 3장; 1993 1부 1장; 1996 pp. 165 이하; 2003 중 ｢재판 서문｣ 등 참조) 욕망의 그래프 상에서 보면 세 번째 그래프(“케보이Che vuoi?”)는 상징적 질서인 타자Autre에 의해 부여된 자신의 역할에 대해 회의하는 주체, 곧 히스테리에 걸린 주체를 나타낸다. 이처럼 자신의 동일성 내지 정체성에 대해 회의한다는 것은 바로 주체에게 전달된 호명이 실패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네 번째 그래프는 그 이전까지 일관된 것, 아무런 공백이나 균열도 없는 충만하고 전능한 것으로 간주되었던 타자 자체 내에 공백이 존재한다는 것을 드러낸다. 이러한 의미에서 욕망의 그래프의 두 번째 수준 전체(3번째와 4번째 그래프)는 “호명 너머의 차원을 지칭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Zizek 1989, 216쪽)[이하 인용문의 번역은 국역본이 있는 경우에도 대개 필자가 다소 수정했지만 일일이 밝히지는 않았다. 그리고 별도의 지적이 없는 한 인용문에 나오는 강조 표시는 모두 원문의 것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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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타자 속에 존재하는 이러한 공백 내지 균열이 그보다 아래 수준의 그래프에 위치한 주체들에게 은폐되어 있는 것은 바로 “환상phantasy” 때문이다. 곧 환상은 “케보이?”, “네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며, 정상적인 주체들은 이러한 환상을 통해 욕망하는 법을 배운다. 환상의 차원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일관된 의미의 질서, 상징적 질서는 불가능하며, 주체들 각자가 이러한 상징적 질서 속에서 자신들의 동일성을 획득하는 것 역시 불가능하다(욕망의 그래프 상에서 환상의 도식이 빗금 쳐진 주체와 대상 a의 조우로 표시되는 것($◇a)은 이를 가리킨다). 따라서 환상이 수행하는 기능은 이중적이다. 그것은 한 편으로 주체가 향락을 경험하고 자신의 일관성을 유지하게 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대타자의 공백을 메우면서 상징적 질서를 유지시켜준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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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캉에 따르면 정신분석적인 치료는 피분석자 또는 분석 주체가 분석가(타자)와의 동일시를 넘어서 분석가의 수수께끼 같은 욕망(“x로 남아 있는 분석가의 욕망”(Lacan 1973, p. 246))을 대면하고 이로써 자신의 욕망을 발견할 경우에 종결된다. 이는 다른 식으로 말하면 주체가 타자로부터 배제된 대상 a가 주체 자신의 “결핍destitution”, 공백을 메우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이러한 대상 a와 분리되어 자신의 결핍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렇게 함으로써 주체는 자신이 충만한 주체, 아무런 공백을 지니지 않은 자율적 주체가 아니라 자기 내부에 공백을 지닌 주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정신분석 임상의 차원에서 환상을 가로지르기가 뜻하는 바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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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젝은 이러한 임상적인 차원의 개념을 사회적 차원, 이데올로기론의 차원에 적용하려고 시도한다. 이 경우 환상을 가로지르기가 의미하는 것은 상징적 질서에 의해 부여된 동일성을 거부하는 것, 다시 말해 그가 “행위act” 또는 “본래적 행위”(Zizek 1999, p. 266; Zizek 2007b, 428쪽)라고 부르는 것이다. 요컨대 알튀세르는 호명 이론을 통해 어떻게 각각의 주체가 이데올로기 장치들 내지 (라캉 식으로 표현하면) 상징적 질서를 통해 상징적 동일성을 부여받고 있는지 해명했다. 하지만 그는 이러한 상징적 동일화를 넘어 그것을 가능케 하는 환상의 차원, 곧 타자 자체의 공백을 메우는 차원에 대해서는 간과하고 있으며, 이 때문에 어떻게 주체가 상징적 동일화, 호명을 넘어설 수 있는지 설명하는 데 실패했다. 라캉 정신분석학의 중요성은 이데올로기적인 상징적 동일화 배후에서 작동하는 이러한 환상의 차원을 밝힐 수 있게 해주고, 더 나아가 환상을 가로지르는 길을 보여주었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그것은 일체의 상징적 동일화를 거부하는 “본래적 행위”에서 찾아야 한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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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것은 알튀세르에 대한 지젝의 이러한 비판은 스피노자 철학에 대한 비판과 긴밀하게 결부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는 스피노자주의가 후기 자본주의의 이데올로기라는 점을 입증함으로써 제시되는데, 우리가 제사로 인용한 책(Zizek 1993; 2007b)에서 지젝은 두 단계의 논의를 통해 이를 시도한다. 우선 그는 라캉의 11번째 세미나인 󰡔정신분석학의 네 가지 기본 개념󰡕에 나오는 언급에서 출발하여 스피노자 철학의 기본 성격을 개괄한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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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캉의 용어로 말하면 스피노자는 기표 사슬의 평준화와 같은 것을 성취한다. 그는 지식의 사슬인 S2를 명령의 기표, 금지의 기표, “아니오!”의 기표인 S1과 분리시키는 간극을 제거한다. 스피노자의 실체는 주인 기표 속에서 아무런 지주도 필요로 하지 않는 것으로서, 곧 아버지의 은유의 부정화하는 절단의 개입 이전에 존재하는 “순수 실정성”의 환유적 우주로서의 보편적 지식을 가리킨다. 따라서 스피노자적인 “지혜”의 태도는 의무론을 존재론으로, 명령을 합리적 지식으로 환원하는 것에 의해, 언어행위론의 관점에서 말하면 수행문을 서술문으로 환원하는 것에 의해 정의된다.”(Zizek 1993, p. 217; 2007b; 417쪽)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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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지젝에 따르면 스피노자는 “유한성의 간극béance”은 소거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 채 “순수 실정성”의 보편적 우주에 대한 관조적 인식을 추구한 셈이다. 그 결과 스피노자는 존재와 당위, 존재론과 의무론, 사실과 가치, 서술문과 수행문 사이의 차이를 인지하지 못한 채 후자의 항들을 각각 전자의 항들로 환원시켰다. “그렇다면 영원의 관점에서 현상들을 관찰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다음과 같은 결론에 이르게 된다. 우리의 유한성의 간극을 극복하는 것을 통해 우리는 현상들을 보편적인 상징적 네트워크의 요소들로 인식한다. ... 세계에 자신의 목적을 부과하는 초월적 주권자로 이해된 “신”은 내재적인 필연성 속에서 신을 파악하지 못하는 우리의 무능력을 입증한다. 반대로 칸트는 이론 이성에 대한 실천 이성의 우위를 긍정하는데,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명령의 사실은 환원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유한한 주체들로서 우리는 우리로 하여금 명령을 서술문으로 환원시킬 수 있게 해줄 만한 관조적 위치에 이를 수 없다.”(같은 곳)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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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젝의 두 번째 논의는 이러한 범신론적인 스피노자 철학이 어떻게 후기 자본주의의 이데올로기적인 환상 속에서 재현되는지, 또는 그것의 철학적 모체를 나타내는지 보여주는 것이다. 그것은 스피노자주의에서는 주체의 책임이라는 것을 사고할 수 없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스피노자는 명령이나 의무의 요소를 자신의 철학 속에서 완전히 배제해버리고 세계를 인과적 사슬의 연쇄로 환원해버렸기 때문에, 세계에서 발생하는 사건에 대해 주체는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다. 주체에 책임이 있다면 그것은 인과 연쇄에 대한 주체의 무지에 있을 뿐이다. ““죄”는 나를 파괴적 행동으로 내몬 원인들에 대한 나의 무지를 가리키는 낡은 용어에 불과하다.”(같은 책, p. 218; 419쪽) 그런데 이러한 책임의 부재는 곧바로 타자들에게 악에 대한 책임이 모두 전가되는 것으로 변모된다. 왜냐하면 “[스피노자주의에서는] 주체가 이러한 과정의 자율적인 담지자가 되기는커녕 부분적-측면적 연계의 연결망을 위한 하나의 자리, 수동적 근거이기 때문이다. 소통은 주체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정서들 사이에서 발생한다. “나”는 정확히 말하면, 나를 규정하면서 나의 자기 동일성의 경계들을 가로지르는 이러한 부분적인 객체적 동일화-모방의 연결망을 간과하는 한에서만 나 자신을 자율적이고 자족적인 주체Subject로 인지한다.”(같은 책, p. 218; 420쪽) 이러한 메커니즘은 우리가 “탈산업적인 소비사회”라고 부르는 것에서 발생하는 바로 그것이다. 곧 “이른바 “탈근대적 주체”는 이 메커니즘에 대한 통제력을 발휘하지 못한 채 자신의 “정념들”을 규제하는 이미지들에 반응하면서 부분적인 정서들의 연결고리들에 의해 횡단되는 수동적 기반이 아닌가?”(같은 곳)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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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하자면 지젝에 따를 경우 알튀세르에게 주체들은 상징적 기표들의 연결망 속에서 부과된 동일성들에 수동적으로 호명되는 개인들인 것처럼, 스피노자주의에서도 주체들은 정서적 모방-동일시의 연결망 속에서 자신들에게 전달되는 이미지들에 수동적으로 반응하는 정념적인 주체들이다. 이런 의미에서 스피노자주의는 후기 자본주의의 이데올로기로 기능한다고 할 수 있다. 지젝 자신은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론과 스피노자 철학 사이의 긴밀한 상호연관성이라는 명확한 테제를 제시하고 있는데, 그의 논변이 과연 얼마나 설득력이 있는 것인지, 그가 과연 “독서의 마스터”라고 불릴 만한 자격이 있는지 한번 살펴보기로 하자.[뒤에서 보겠지만, 스피노자주의에 대한 지젝의 언급은 지극히 상투적이며, 우리가 보기에 프랑스의 현대 철학자들(푸코, 데리다, 들뢰즈, 발리바르 등)에 대한 그의 비판들 역시 대개 상투적이고 피상적이다. 좀 특이한 것은 지젝의 여러 저서들을 번역한 이성민 씨는 지젝을 “‘독서의 마스터’”라고 부르면서 지젝은 “무엇보다도 먼저 정교한 독서를 통해 대결한다”(Zizek 2005, 642쪽)고 찬양하고 있다는 점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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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I 알튀세르와 스피노자에서 이데올로기―상상계라는 쟁점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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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론과 스피노자 철학 사이에는 그처럼 긴밀한 연관성이 존재하는가? 분명 양자 사이에는 매우 밀접한 관계가 존재한다. 하지만 이러한 연관성은 지젝이 생각하는 것과는 상당히 다른 양상을 띠고 있다. 우리가 보기에 이데올로기론에 관한 문제에서 알튀세르와 스피노자 사이의 연관성을 해명하기 위해서는 “상상imagination” 또는 “상상계imaginaire”라는 개념에 주목해야 한다.[스피노자의 저작에서 “상상imaginatio”이나 “상상하다imaginari” 또는 “이미지imago” 같은 용어들은 매우 체계적이고 빈번하게 사용되고 있지만, 불어의 “imaginaire”에 해당하는 “imaginarius”라는 용어는 매우 적게 나타난다. 이 용어는 {윤리학}에서는 단 3 번, {신학정치론}에서는 6번 등장할 뿐이다. 더욱이 그 용법 자체도 현대적인 의미의 “상상계”라는 뜻을 담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스피노자의 상상 이론은 주 12)의 인용문에서 알튀세르가 주장하듯이, 근본적으로 “상상계”에 관한 이론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어떤 의미에서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론은 스피노자의 상상이론을 현대적인 용어들로 다시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도 있다. 아니 이렇게 말하는 것이 좀더 정확할 것이다. 곧 우리가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론의 관점에서 스피노자의 상상이론을 살펴보면, 그동안 거의 주목받지 못했던 스피노자의 상상이론이 스피노자의 철학에서 체계적인 중요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 분명히 드러나며[스피노자의 상상이론에 관한 논의는 특히 영미권 주석가들에서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Bertrand 1983은 스피노자의 상상이론을 체계적으로 재구성하고 있는데, 알튀세르의 관점과는 약간 상이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특히 그녀는 󰡔윤리학󰡕 1부 ｢부록｣과 󰡔신학정치론󰡕 ｢서문｣ 및 17장에서 볼 수 있는 스피노자의 상상계 이론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하지 않고 있다. 이는 그녀가 좀더 전문적인 주석가의 관점에서 스피노자의 상상계 이론을 체계적으로 재구성하는 데 관심을 갖고 있는 데 반해, 알튀세르는 상상계 이론과 정치 이론 사이의 연관성에 주목하는 데서 생겨나는 차이로 볼 수 있다.], 반대로 스피노자의 상상이론의 관점에서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론을 조명하게 되면 라캉주의의 선입견에 가려 있던 알튀세르의 논의들이 새로운 면모를 드러내게 된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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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알튀세르 자신이 스피노자 철학, 특히 그의 이데올로기론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것에서 출발해보자. 알튀세르는 1974년에 출간된 {자기비판의 요소들}에서 60년대 수행된 자신의 이론적 작업이 스피노자 철학에 준거하고 있었음을 고백하면서 자신이 스피노자의 철학을 어떻게 활용했는지 구체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몇 가지 사례를 들고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윤리학} 1부 ｢부록｣이다.[나머지는 스피노자의 철학 전략으로서 “신으로부터의 출발”이라는 사례, 스피노자의 반변증법적 입장, 인식의 문제에서 반초월론적 문제설정을 보여주는 “왜냐하면 우리는 이미 참된 관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habemus enim veram ideam”라는 {지성개선론}의 명제 등이다. 좀더 자세한 논의는 Althusser 1974 참조.] 특히 그가 AIE 논문에서 전개한 이데올로기론은 {윤리학} 1부 ｢부록｣ 및 {신학정치론}에서 소묘된 상상이론에 근거를 두고 있다. 그는 스피노자의 상상이론의 요점을 세 가지로 제시한다. “{윤리학} 1부 ｢부록｣ 및 {신학정치론}에서 우리는 분명 지금까지 사고된 최초의 이데올로기론을 찾을 수 있다. 그것은 이데올로기의 세 가지 특징을 담고 있다. 1) 이데올로기의 상상적 “실재성” 2) 이데올로기의 내적 전도 3) 이데올로기의 “중심”, 곧 주체라는 가상”(Althusser 1974, p. 184) [그 이외에 {윤리학} 1부 ｢부록｣에 관한 상세한 연구는 Macherey I; Sévérac 1997 등을 참조. 이 두 사람은 {윤리학} 1부 ｢부록｣ 텍스트를 매우 꼼꼼하게 분석하고 있어서, 텍스트의 논의를 파악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 우리와 분석방식이 약간 상이하고 관점에도 다소 차이가 있긴 하지만, {윤리학} 1부 ｢부록｣을 정확하게 읽기 위해서는 반드시 참조해야 할 연구들이다.] 매우 간략하기는 하지만 이 세 가지 논점은 {윤리학} 1부 ｢부록｣과 {신학정치론}을 분석하기 위한 좋은 지침을 제시해주며, 더 나아가 AIE 논문이 스피노자의 상상이론과 어떻게 이론적으로 연관되어 있는지 좀더 정확히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알튀세르가 지적한 세 가지 논점은 다음과 같은 점을 의미한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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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데올로기의 상상적 “실재성”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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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테제는 스피노자에서 상상은 감각 및 이성이나 지성과 구별되는 하나의 인식 “능력facultas”이 아니라 세계 그 자체임을 뜻한다. 여기서 세계라는 것은 인간의 삶의 공간 그 자체를 의미한다. 알튀세르는 이미 1963년 고등사범학교에서 했던 강의에서 스피노자의 상상 개념에 대해 이런 식의 해석을 제시한 바 있고[“[스피노자에서] 상상계는 데카르트에서처럼 심리학적 범주로 인식되지 않고, 세계가 그것을 통해 사고되는 범주로 인식된다. 스피노자에게 상상계는 더 이상 심리학적 기능이 아니며, 헤겔 식의 의미에서 한 요소, 곧 심리학적 기능들이 삽입되어 있는, 이 범주들이 그로부터 구성되는 하나의 전체다. ... 상상은 마음의 능력, 심리학적 주체의 한 능력이 아니며, 하나의 세계다.”(Althusser 1996c, p. 114)], 1964년에 발표되고 1년 뒤인 1965년에 {마르크스를 위하여}에 수록된 ｢마르크스주의와 인간주의｣에서는 이러한 관점을 좀더 상세하게 제시하고 있다. “데카르트주의자가 2백 걸음 떨어져 있는 달을 “보았”듯이 또는―그들이 이에 집중하지 않았다면―보지 못했듯이, 사람들은 결코 의식의 한 형태로서가 아니라 자신들의 “세계”의 한 대상처럼, 자신들의 “세계” 자체처럼, 그렇게 자신들의 이데올로기를 “살아간다.””(Althusser 1996a, 280쪽/240쪽) 매우 도발적인 이 테제는 스피노자의 철학, 특히 {윤리학}이나 {신학정치론}의 원문을 통해 정확히 입증될 수 있으며, 여기서 언급된 “2백 걸음 떨어져 있는 달을 “보았”듯이”라는 표현 자체가 이미 {윤리학} 2부 정리 35의 주석에 나오는 사례를 가리킨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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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을 볼 때 우리는 이것이 우리로부터 200 걸음 정도 떨어져 있다고 상상한다. [하지만] 오류는 단순히 이런 상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런 식으로 상상하는 중에 우리가 태양의 진정한 거리 및 이러한 상상의 원인에 대해 무지하다는 사실에 있다. 왜냐하면 나중에 태양이 지구 지름의 600배 이상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하더라도, 우리는 여전히 이를 가까이 있는 것으로 상상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태양을 이처럼 가까이 있는 것으로 상상하는 것은 우리가 그것의 진짜 거리를 모르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의 신체의 변용은 우리의 신체가 태양에 의해 변용되는 한에서 태양의 본질을 함축하기 때문이다.(Spinoza 1999a, 158~159쪽―강조는 인용자) [이 사례에 대한 좀더 상세한 분석은 진태원 2006 5장 참조]<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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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올로기가 상상적 실재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 또 스피노자에서 상상은 인식의 한 가지 “능력”이 아니라 인간의 삶의 조건 자체, 인간학적 장 그 자체라는 것은 2절에서 살펴본 스피노자주의에 대한 지젝의 언급이 얼마나 허술한 주장인지 잘 보여준다. 지젝은 멘델스존과 야코비의 논쟁 이래 독일 관념론의 기본 신조처럼 전승되어온 스피노자주의=범신론이라는 도식을 그대로 되풀이하면서 스피노자가 “유한성의 간극”은 소거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 채 순수 실정성의 보편적 우주의 인과연쇄에 대한 관조적 인식을 추구하고 있다고 비난한다. 하지만 스피노자 철학에 관해 이보다 더 상투적인 비난도 없을 것이다. 󰡔윤리학󰡕 1부 ｢부록｣이나 󰡔신학정치론󰡕이 보여주듯이 스피노자가 제시하는 인간의 삶, 인간 사회의 삶은 상상으로 가득 차 있으며, 더욱이 지젝이 주장하듯이 이러한 상상은 단순히 무지의 표현이자 인식의 진전에 따라 소멸해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위의 인용문이 보여주듯이 우리가 인간이라는 종에 고유한 변용에 따라 세계를 체험하고 살아가는 한에서 우리가 자연에 대해 얼마나 진전된 인식을 얻든 간에 우리는 여전히 세계를 “인간 신체의 변용의 질서와 연관ordinem &amp; concatenationem affectionum corporis humani”(E II P18s)”에 따라 체험하고 상상하기 때문이다. 곧 스피노자에서 자연이 “사물들의 질서와 연관ordo &amp; concatenatio rerum”으로 이루어진 것이라면, “자연의 일부”로서 인간은 이를 “변용의 질서와 연관”에 따라 경험하고 인식하는 것이다. 이는 지젝 식의 표현을 따른다면 바로 “유한성의 간극”에 대한 스피노자적인 표현과 다르지 않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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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이데올로기의 내적 전도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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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목적론이 어떻게 자연을 전도시키는가에 관한 스피노자의 분석을 가리킨다. 스피노자는 󰡔윤리학󰡕 1부 ｢부록｣에서 목적론이 모든 편견의 뿌리를 이루고 있음을 지적한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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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여기서 지적하려고 하는 모든 편견은 오직 다음과 같은 점에 의거하고 있다. 곧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모든 자연 실재들은 자신들이 그러듯이 어떤 목적을 위해 행위한다고 가정하며, 더 나아가 신 자신이 모든 것을 어떤 특정한 목적에 따라 인도한다고 확신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신이 인간을 위해 모든 것을 만들었고, 자신을 숭배하게 하기 위해 인간을 만들었다고 말하기 때문이다deum omnia propter hominem fecisse, hominem autem, ut ipsum coleret.(E I App.; G II 78―강조는 인용자)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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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목적론은 정신분석학의 용어를 사용하자면 상상적 투사(投射)projection의 형태를 띠고 있다. 스피노자는 사람들이 어떤 목적을 위해 행위한다는 것을 본성적인 사실로, 그 자체로는 해로울 것이 없는 자연적 사실로 간주한다. 문제는 사람들이 인간에 고유한(또는 특정한 생물들에게 고유한) 목적 지향적 행위방식을 다른 모든 자연 실재들에게도 그대로 적용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자연 실재들은 어떤 목적에 따라 운동하지 않으며 관성 원리에 따라 작용하고 반작용할 뿐이다. 스피노자의 관점에서는 자연에는 작용인(물론 동역학적 관점에서 파악된)만이 작용하고 있을 뿐 목적인이란 존재할 수 없으며, 자연 실재들에 대해 이를 가정하는 것은 인간의 행위 방식을 자연에 투사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리고 이러한 투사가 신에게 적용될 때, 목적론은 완결된 형태를 띠게 된다. 왜냐하면 모든 자연 실재들이 어떤 목적에 따라 행위한다면, 자연 전체를 목적론적 관점에 따라 계획하고 질서지은 어떤 존재자, 초월적이고 인격적인 존재자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자연에 대한 목적론은 필연적으로 목적론적 질서의 주재자인 어떤 신을 가정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는 스피노자 자신이 말하듯이 “자연을 완전히 전도하는 것”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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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점은 우리가 위에서 제시한 “변용의 질서와 연관”이라는 관점에 따라 달리 표현해볼 수 있다. 변용의 질서와 연관, 곧 상상계가 인간의 경험과 인식의 원초적인 인간학적 조건을 이룬다면, 이러한 상상계가 낳는 가상성은 무엇보다도 이러한 변용의 질서와 연관을 사물 그 자체의 질서와 연관으로 착각하는 데 있다. 곧 어떤 실재들의 변용 내지 이미지와 그 실재들 자체를 혼동하는 것, 다시 말해 실재들의 변용이나 이미지, 실재들의 변용의 질서와 연관을 그 실재들 자체의 질서와 연관이라고 착각하는 것에 바로 가상의 근본적인 뿌리가 존재한다. 스피노자의 고유한 용어법대로 하면, 결과를 원인으로 착각하는 것, 또는 결과만을 사고할 뿐, 그러한 결과를 낳은 원인에 대해서는 무지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배제하는 것, 바로 여기에 가상이 존재하는 것이다. 따라서 상상의 고유한 효과 중 하나는 자신을 산출한 원인을 배제하는 데 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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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튀세르의 경우는 어떨까? 이 점에 관해서도 양자 사이에는 놀랄 만한 유사성, 아니 동일성이라고 할 만한 것이 존재한다. AIE 논문의 이론적인 의의는 마르크스주의적인 이데올로기론에서 하나의 단절을 이룩하고 있다는 점에 있는데, 그것은 그 논문이 정확히 이데올로기를 기만이나 조작, 허위의식으로 간주하는 관점, 또는 포이어바흐 식으로 이데올로기의 발생 원인을 인간의 존재조건 자체의 소외 속에서 찾는 관점과 단절하고 있으며, 더 나아가 그것을 “이데올로기에 관한 이데올로기적 관점”으로 비판하고 있기 때문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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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이 모든 해석들은, 그것들이 전제하고 의존하는 테제, 곧 이데올로기에서 세계에 대한 상상적 표상 속에 반영되는 것은 인간들의 존재조건, 따라서 실재 세계라는 테제를 글자 그대로 채택하고 있는 것이다.(Althusser 1995, p. 296; 1991, 109쪽―강조는 인용자)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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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이 이는 󰡔독일 이데올로기󰡕에서 제시된 이데올로기에 대한 관점, 곧 “완전히 실증주의적인 맥락”에서 이데올로기를 “순수한 환상으로, 순수한 꿈으로, 다시 말하면 무로 이해”(같은 책, p. 294; 104쪽)하는 관점과도 정확히 단절하는 것이다. 그 대신 알튀세르는 다음과 같이 주장하고 있다. ““인간들”이 이데올로기 안에서 “서로 표상/재현/상연하는se représentent” 것[이 표현의 의미에 대한 좀더 상세한 논평은 진태원 2002, 379쪽 참조]은 인간들의 현실적인 실존조건들, 그들의 현실 세계가 아니며, 이데올로기에서 그들에게 표상/재현/상연되는représenté 것은 그들이 이 실존조건들과 맺고 있는 [상상적] 관계다. 실재 세계에 대한 모든 이데올로기적, 따라서 상상적 표상/재현/상연의 중심에 잇는 것은 바로 이 관계다(같은 책, p. 297; 109쪽)” “représenter”라는 단어의 독창적인 용법은 논외로 한다면, 스피노자의 상상에 대한 논의와 알튀세르의 주장 사이의 이론적 연관성은 더할 나위 없이 명백하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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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이데올로기의 “중심”: 주체라는 가상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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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테제는 목적론적 가상의 중심에는 자기 자신을 세계의 중심, 자연의 중심으로 간주하는 인간들의 착각이 놓여 있음을 가리킨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윤리학󰡕 1부 ｢부록｣에서 스피노자의 분석은 크게 두 가지 논점으로 이루어져 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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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스피노자는 신이 목적론적으로 행위한다는 가정의 밑바탕에는 좀더 근본적인 상상적 투사가 존재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것은 바로 신과 인간의 특별한 상호 의존 관계에 관한 투사다. 앞에서 인용한 󰡔윤리학󰡕 1부 ｢부록｣ 인용문에서 강조한 부분에서 드러나듯이 이러한 상호 의존 관계는 이중적인 형태를 띠고 있다. 첫째는 “신이 인간을 위해 모든 것을 만들었다”는 점이다. 신은 모든 피조물 가운데 인간을 특별히 총애하며, 인간을 위해 모든 것, 모든 자연 실재들을 창조했다. 이는 곧 신이 인간에게 자연 만물을 자신의 수단으로, 자신을 보존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했음을 의미한다. “이로부터 그들은 자연 만물을 자신들의 이익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만 간주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이 이 수단들을 발견하기는 했지만 스스로 이 수단들을 공급한 것은 아니라는 점을 알기 때문에, 여기에서 이러한 수단을 자기들이 사용할 수 있게 마련해준 다른 누군가가 있다고 믿을 만한 이유를 발견하게 되었다.”(E I App.; G II 78)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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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렇다면 왜 신은 이처럼 인간을 총애하는가? 무엇 때문에 인간에게 이러한 특권, 인간이 모든 것을 자신의 수단으로 사용할 수 있는 특권을 부여했는가? 그 이유는 두 번째 의존 관계를 통해 해명된다. 그것은 인간이 “자신을 숭배하게 하기 위해서”다. 다시 말해 신은 인간으로부터 숭배를 받기 위해, 공경을 받기 위해, 인간을 위해 자연 만물을 창조했으며, 또 인간에게 그것들을 수단으로 사용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했다. 여기서 당연히 다음과 같은 의문이 들게 된다. 그러나 왜 신이 인간의 숭배, 인간의 공경을 필요로 하는 것일까? 왜 무한한 신, 지고하게 완전한 신이 유한하고 불완전한 인간의 숭배, 인간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것일까? 스피노자는 󰡔윤리학󰡕 1부 ｢부록｣에서 이 질문에 답변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아예 질문 자체를 제기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스피노자는 그 이전에 목적론 자체를 가상으로 간주하고 있으며, 따라서 이 목적론을 타당한 것으로 전제했을 때에만 의미 있게 주고받을 수 있는 이러한 질문과 답변을 불필요한 것으로, 신학자들의 가상, 심지어 “착란delirare”에 불과한 것으로 가정하고 있기 때문이다.[이는 물론 스피노자가 이러한 목적론적 가상이 지니는 실제적인 효력을 무시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다만 여기서 스피노자의 목표는 이러한 가상의 효력을 부각시키는 게 아니라, 가상을 낳는 인간학적 원인을 분석하는 데 있을 뿐이다. 사실 스피노자는 󰡔신학정치론󰡕 5장과 17장, 특히 17장에서 히브리 백성들이 모세의 중개를 통해 야훼와 맺는 계약, 다시 말해 우리가 방금 말한 신과 인간의 특별한 상호 의존 관계의 원형을 이루는 신과의 계약에 대한 분석을 제시하고 있다. 이 점에 관해서는 뒤에서 다시 다루겠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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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그 대신 그는 관점을 바꿔서 목적론적 가상을 낳게 만든 원인이 무엇인지 질문하고 있으며, 이런 관점에서 신과 인간의 특별한 상호 의존 관계를 설명하려 하고 있다. 이를 위해 먼저 스피노자는 목적론을 낳는 본질적인 인간학적 특성을 지적하고 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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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는 모든 사람이 인정해야 하는 것, 곧 모든 인간은 실재의 원인에 대해 모르고서 태어난다는 것, 그리고 모든 인간은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려는 충동을 지니고 있으며 이러한 충동을 의식한다는 것을 기초로 삼는 것만으로 충분하다.(E I App.; G II 78) [“satis hic erit, si pro fundamento id capiam, quod apud omnes debet esse in confesso; nempe hoc, quod omnes homines rerum causarum ignari nascuntur, &amp; quod omnes appetitum habent suum utile quaerendi, cujus rei sunt conscii.”]<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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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노자는 이 문장에서 두 가지 본질적인 점을 대비시키고 있다. 하나는 인간은 실재의 원인에 대해 모르고 태어난다는 것, 따라서 인간에게는 본유 관념과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며, 다른 하나는 인간은 본성적으로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려는 충동을 지니고 있고, 또 이러한 충동을 의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 첫 번째 논점은 상상 개념 자체에서 따라 나온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스피노자에게 모든 인식은 항상 신체의 변용의 질서와 연관을 통해서 이루어지며, 단지 외부 실재만이 아니라 더 나아가 인간 자신의 신체 및 인간 자신의 정신에 대한 인식까지도 이러한 변용의 질서와 연관에 의해 가능하기 때문이다(2부 정리 19와 정리 23 참조). 그런데 이러한 신체의 변용의 질서와 연관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신체의 역량의 정도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으며(2부 정리 14), 신체의 변용들을 인식하는 정신의 소질, 능력도 그에 따라 변화한다. 하지만 스피노자에게 아이 또는 유년 시절은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매우 취약한 상태를 가리키기 때문에[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은 아마도 󰡔윤리학󰡕 5부 정리 39의 주석일 것이다. 스피노자의 인식론 및 윤리학을 이해하는 데서 매우 중요한 문제임에도 스피노자에서 아이/유년시절의 문제에 대해 다루고 있는 연구는 매우 드물다. 정리 39의 주석에 대한 논평은 Macherey V, pp. 184-85를 참조하고, 아이/유년시절의 문제에 관한 최근의 좋은 논의는 Zourabichvili 2002 2부 참조.], 인간이 탄생의 시점에 가까이 있으면 있을수록 인간의 신체적, 정신적 능력은 취약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본유관념 같은 것은 생각할 수 없으며, 인간은 “실재의 원인에 대해 모르고서 태어난다”고 할 수 있다.[이 점에서 스피노자는 경험론자들, 특히 홉스와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반대로 스피노자에게 인간의 본질은 충동 또는 욕망이기 때문에, 인간은 무지한 채로 태어나지만 본성적으로 어떤 충동을 지니고 있으며, 또 이 충동을 의식하고 있다. 그러므로 인간의 인간학적 조건에서 비롯한 이 양자의 괴리가 좁혀지지 않는 상태에서는(이는 인간이 신체적, 정신적 능력을 향상시킴으로써만 가능하다) 인간은 목적론적 가상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고, 이를 자연 현상들에 대해 투사할 수밖에 없다. 이런 의미에서 목적론적 가상을 비롯한 인간의 모든 가상은 한편으로 원인에 대한 무지와 다른 한편으로 결과(충동)에 대한 의식 사이의 괴리에서 유래한다고 할 수 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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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튀세르에서 이데올로기의 중심, 곧 주체라는 가상은 주지하다시피 “호명” 테제를 통해 제시된다. 지젝을 비롯한 많은 라캉주의 주석가들은 적어도 호명 테제에서만큼은 알튀세르가 라캉에게 분명한 이론적 빚을 지고 있으며, 더 나아가 라캉의 이론을 잘못 해석해서 활용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점에서는 그들의 이야기도 일리가 있는데, 왜냐하면 호명 테제에 나오는 몇몇 표현들, 특히 대문자 주체와 작은 주체들 사이의 “거울 관계” 내지 “거울 구조”라는 표현은 라캉의 용어법에서 기원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가령 알튀세르의 표현법은 라캉의 11번째 세미나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문장을 차용했다고 볼 수도 있다. “주체는 타자Autre의 장에 예속됨으로써만 주체일 뿐이다.”(Lacan 1973, p. 172) 단 라캉은 대문자 주체 대신 대문자 타자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하지만 용어법 자체는 라캉에서 유래했다고 하더라도 그 내용 자체는 라캉적이라기보다는 스피노자적이라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다. 이는 우선 알튀세르가 호명 테제를 예시하기 위해 들고 있는 것이 다름 아닌 모세가 신과의 계약을 맺고 이를 바탕으로 히브리 국가를 구성하는 사례라는 점에서 알 수 있다. “따라서 신은 “주체Subject”이고 모세 및 신의 백성인 수많은 주체들은 신의 대화자-피호명자, 곧 그의 거울들이고 반영들이다. 인간들은 신의 형상에 따라 창조되지 않았던가? 모든 신학적인 성찰이 증명하듯이 신이 인간들 없이 완벽하게 지낼 “수 있다”고 하더라도 ... 인간들이 신을 필요로 하고 주체들이 “주체Subject”를 필요로 하듯이 신은 인간들을 필요로 하고 “주체”는 주체들을 필요로 한다.”(Althusser 1995, p. 317; 1991, 124쪽) 그런데 이는 스피노자가 󰡔신학정치론󰡕 17장에서 히브리 신정국가의 형성을 설명하기 위해 제시하고 있는 이중적 계약의 사례 바로 그것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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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점을 이론적ㆍ정치적 측면에서 좀더 부연하기 위해서는 약간의 우회를 해볼 필요가 있다. 우리가 제사로 인용한 󰡔“자본”을 읽자󰡕의 한 구절에서 알튀세르는 스피노자에 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이하 3절의 내용은 발리바르의 󰡔스피노자와 정치󰡕 ｢역자 해제｣ 중에서 270-276쪽의 내용을 다소의 수정을 거쳐 전재한 것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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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라는 문제, 따라서 글쓰기/기록하기라는 문제를 처음으로 제기했던 인물인 스피노자는 또한 역사이론과 동시에 직접적인 것의 불투명성에 관한 철학을 처음으로 제시했던 사람이기도 하다. (Althusser 1996b, p. 8. 강조는 알튀세르)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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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노자에 대한 알튀세르의 논의 중에서 제일 덜 주목받고 있지만, 또한 제일 놀라운 사례 중 하나로 꼽힐 만한 이 주장은 겉보기에는 매우 당혹스러운 주장이다. 사실 스피노자의 저작에서 역사에 관한 언급을 거의 찾아볼 수 없고, 또 역사에 대한 고찰이 전혀 스피노자 철학의 중심 주제가 아니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는 엉뚱한 소리로 들릴 수 있다. 더 나아가 역사철학이 18세기 말 계몽주의 이후, 특히 독일 관념론에서 하나의 철학적 주제로 등장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알튀세르의 지적은 시대착오적인 주장이라는 비난까지 받을 만하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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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여기서 알튀세르는 스피노자의 역사이론은 그것 혼자서만 따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동시에” “직접적인 것의 불투명성에 관한 철학”과 결부되어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마치 후자가 없이 전자는 존재할 수 없다는 듯이, 그리고 이 양자를 결부시켰다는 점이야말로 스피노자의 고유한 철학적 업적이었다는 듯이 말이다. 그리고 또한 그는 “읽기”라는 문제, “글쓰기/기록하기”라는 문제와도 결부시키고 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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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알튀세르는 스피노자가 거의 언급하지도 않은 그의 “역사이론”에 주목하고 있을까? 그리고 이 역사이론이 “직접적인 것의 불투명성”과 어떤 관계에 있을까? 더 나아가 이는 “읽기”나 “글쓰기/기록하기”의 문제와 무슨 관련이 있는 것일까? 이처럼 의문들은 끊임없이 생겨나지만, 알튀세르는 스피노자에 관한 그의 다른 언급들과 마찬가지로, 대담한 주장을 한 마디 던져놓은 다음, 마치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는 듯이 다른 논의로 성큼 건너뛰고 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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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이 문제들과 관련하여 발리바르는 󰡔스피노자와 정치󰡕에서 흥미 있는 통찰을 제공해주는데, 왜냐하면 그는 󰡔신학정치론󰡕에서 하나의 역사이론(“역사철학”이 아니라)을 발견하고 있기 때문이다. 곧 그는 성서에 나타나 있는 히브리 신정국가의 구성 및 전개과정을 분석하고 있는 󰡔신학정치론󰡕 17장만이 아니라 성서에 대한 역사적 비평을 시도하고 있는 전반부(곧 1장-15장)의 분석 역시 하나의 역사이론을 함축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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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그는 스피노자의 성서 비평은 “이차 수준의 역사”(또는 스피노자의 표현대로 하면 “비판적 역사”)를 구성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는 성서는 히브리 백성들의 상상에 기초를 둔 하나의 역사적 담론이며, 스피노자의 성서 비평은 이러한 역사적 담론에 대한 이차적 담론, 곧 비판적 역사라는 것을 뜻한다. 더 나아가 그는 성서는 바로 서사敍事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러한 서사는 히브리 민족의 고유한 역사적 기록/글쓰기의 관행에 기초를 두고 있음을 지적한다. 따라서 스피노자는 알튀세르의 표현대로 “글쓰기/기록”이라는 문제, 그리고 이에 대한 “읽기/독해”의 문제를 역사의 문제이자 철학의 문제로 제기한 최초의 인물인 셈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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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는 이러한 스피노자의 역사이론을, 알튀세르 식으로 말하자면 “직접적인 것의 불투명성”, 곧 대중들의 상상이라는 문제와 결부시킨다. 발리바르의 분석에서 직접적인 것의 불투명성/상상계는 두 가지 측면에서 제시되고 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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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자신들의 역사에 대한 대중들의 무지가 있다. “이러한 이차 수준의 서사는 재구성될 수 있는 한에서의 사건들의 필연적인 연쇄과정 및, 자신들을 움직이는 원인들 대부분에 대해 알지 못하는 역사적 행위자들이 자신들의 역사의 “의미”를 상상하는 방식을 자신의 대상으로 한다.”(Balibar 2005, 152쪽) 대중들의 상상은 비판적 역사의 필연적인 구성 요소인데, 왜냐하면 이러한 비판적 역사의 소재를 이루는 성서 내지 히브리 인민의 삶 자체가 상상의 요소에 따라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대중들의 삶이 상상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대부분의 인간들이 자신들의 삶의 조건을 구성하는 실제 원인에 대해 알지 못하고, 이를 상상에 따라 재구성하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가 앞서 논의한 대로 스피노자의 일반적인 인간학적 테제, “인간들은 자신들의 의욕과 욕구는 의식하고 있지만, 그들이 무지하기 때문에 그것들을 야기시킨 원인들에 대해서는 꿈에서조차 생각하지 않는다"(󰡔윤리학󰡕 1부 ｢부록｣)는 테제에서 따라 나온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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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 히브리 신정국가의 구성의 기초가 되었던 정치적 상상의 요소가 있다. 스피노자는 󰡔신학정치론󰡕 17장에서 성경에 나오는 히브리 신정국가의 구성을 분석하고 있는데, 그가 주목하는 것은 히브리 국가의 구성이 일종의 계약에 따라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그런데 이 계약은 단순한 계약이 아니라 이중적인 계약의 형식을 띠고 있다. 곧 이는 주권자와 신민들 사이에 맺어지는 정치적 계약이면서 동시에 야훼라는 신에 대한 개개의 신자들(곧 개개의 히브리인들) 사이에 맺어진 종교적 계약이기도 하다.[이 점에 관한 좀더 상세한 논의는 Balibar 1985; 진태원 2004 참조] 따라서 히브리 백성들에게 신은 종교적인 경배의 대상이면서 또한 정치적 주권자이며, 신의 계율에 대한 위반은 동시에 국법의 위반을 의미했다. “요컨대 시민법과 종교는 서로 엄격하게 구별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이 국가는 신정 국가라 불릴 수 있었다.(Spinoza 1999b 17장 7-8절, p. 546)”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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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노자 자신이 말하고(“이 모든 것은 사실이라기보다는 의견opinione magis quam re에 속하는 것이다.” Spinoza 1999b 17장 8절, 모로판, 546) 발리바르가 지적하듯이 이러한 이중적 계약이라는 것은 물론 하나의 허구다. 하지만 이러한 허구는 매우 실제적인 효과를 낳는데, 왜냐하면 이러한 허구를 통해 하나의 국가가 구성될 수 있었고, 적어도 모세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놀랄 만한 안정과 번영을 이룩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허구가 이처럼 중요한 결과를 낳을 수 있었던 이유는 신을 각 개인의 신으로서만이 아니라 또한 히브리 민족 전체의 신으로, 따라서 히브리 국가의 유일한 주권자로 만듦으로써, 각자가 신에게 바치는 절대적 헌신과 복종이 동시에 국가에 대한 헌신과 복종으로 되게 만들었다는 점에 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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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이런 질문을 던져 볼 수 있다. 왜 이러한 이중적 계약이 필요한가? 스피노자에 따르면 이는 무엇보다도 오랜 노예 생활 때문에 스스로 국가를 구성할 만한 역량을 갖추지 못한 히브리 인민들의 “미개인 같은rudis”(Spinoza 1999b 5장 10절, p. 222) 심성 때문이다. 그렇다면 하나의 허구에 기초한 히브리 신정국가는 역사적으로 유일한 국가인 것처럼, 일반적인 설명적 가치를 갖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는 발리바르가 보여준 것처럼 좀더 일반적인 함의를 갖고 있다. 곧 히브리 신정국가에 대한 스피노자의 분석은 민주주의(또는 국가 일반)에 대한 법적 관점의 한계를 보여준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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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신정의 이중적 측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신정은 한편으로 민주정과 등가적인 것으로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신과의 계약을 통해 신에게 모든 권력을 부여하고 자신들을 신의 백성으로 재인지함으로써, 히브리인들 모두는 신 앞에서 동등한 신의 백성들, 신의 시민들이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이러한 “상상적 민주정”은 민주정의 핵심인 집합적 권리, 집합적 주권을 “다른 무대”로 옮겨놓는 것을 조건으로 한다. 곧 신정에서 인민들 스스로가 동등하게 집합적 주권을 행사할 수 있다면, 이는 신이라는 진정한 주권자가 초월적인 자리를 차지하는 한에서다(곧 신의 거주지로서 신전이 특별한 경배와 존경의 대상이 되는 한에서). 따라서 신정은 집합적인 주권이 초월적인 신의 자리, 비어 있는 상징적 자리의 매개를 통해서만 실행될 수 있는 국가라고 할 수 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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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다음과 같은 발리바르의 질문이 나온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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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이제 고유한 의미의 민주정으로 되돌아가 보자. 개인들이 신과의 동맹이라는 허구(곧 주권의 상상적인 자리 이동) 없이도 명시적인 “사회계약”에 따라 직접 집합적 주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판명되면, 문제는 완전히 사라진다고 말할 수 있는가? 대중들의 미신은 차치한다 해도, 이는 분명히 그렇지 않다. 권리의 동등성과 의무의 상호성 위에 구성된 민주 국가는 개인적 의견들의 결과인 다수결 법칙에 따라 통치된다. 그러나 다수결 법칙이 효과적으로 작용하기 위해서는 주권자가 공적인 이익과 관련된 활동을 명령할 수 있고 또한 그것이 존중받을 수 있게 만드는 절대적 권리를 지니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하다. 이것 외에도 또한 야심들보다는 이웃에 대한 사랑을 선호하는 것, 곧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의 필요성에 대한 합의가 지배하고 있어야 한다.(Balibar 2005, 77쪽)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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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얼핏 보기에는 일회적인 것에 불과한 히브리 신정국가는 사실은 정치에 대해, 민주주의에 대해 중요한 보편적 교훈을 제공해준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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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첫째, 법적 제도만으로는 민주주의(또는 국가 일반)는 충분한 안정성을 확보할 수 없으며, 대중들의 정념적 삶을 조절할 수 있는 별도의 메커니즘 내지는 장치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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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하지만 정념적 삶을 조절하는 메커니즘으로서 종교는 근본적인 한계를 지니고 있다. 히브리 신정국가가 개인들의 종교적 삶과 정치적 삶을 일체화함으로써 상당한 기간 동안 정치적 통합을 이뤄내긴 했지만, 이러한 국가의 통합, 일체화는 그 자체가 정념적인 양가성에 지배받고 있다. 왜냐하면 신자들끼리의, 국민들끼리의 놀라운 유대는 신과의 동일시/정체화를 매개로 한 서로에 대한 정념적 사랑에 기초하고 있는데, 이러한 사랑의 이면은 초월적인 신의 감시와 처벌에 대한 공포와 잠재적인 적으로서 이웃에 대한 일반화된 증오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 예수는 이처럼 종교적 삶과 정치적 삶을 일체화하는 것이 아니라, 종교적 삶을 정치적, 교권적 권위로부터 분리하여 이를 각자의 믿음과 판단에 따른 윤리적 실천으로 전환시켰다는 점에서 하나의 문화혁명을 이룩했다. 하지만 이는 신자로서의 개인들을 정치적 권위만이 아니라 사회적 관계 자체로부터 분리시켰으며, 또 그에 비례하여 이웃에 대한 사랑을 핵심으로 하는 신의 말씀을 내면화된 도덕법으로 전환시켰다는 점에서 또 다른 한계를 지니고 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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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상상계가 개인의 삶 및 사회적 삶에서 구성적인 요소로 존재하는 한에서 대중들은 ‘자기 자신’(이렇게 말할 수 있다고 가정한다면)과 합치할 수 없다는 것, 곧 대중들은 온전한 자율적 주체로 성립할 수 없다는 점이다. 다른 식으로 말하면 이렇게도 표현할 수 있다. 상상계가 인간의 삶의 장소 그 자체인 한에서, 다시 말해 환원 불가능한 인간의 유한성의 조건 그 자체인 한에서, 민주주의의 근본 원리 또는 민주주의의 성립 가능성의 조건으로서 전제되어 있는 대중들의 자기 통치는 존재할 수 없다. 이것은 전적으로 부정적인 것인가? 겉보기와는 달리 반드시 그렇다고 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대중들의 자기 통치가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은 민주주의가 전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라기보다는 민주주의는 항상 경향적으로만, 갈등적인 운동으로서만 존재할 뿐이라는 점을 뜻하기 때문이다. 곧 이는 유토피아로서의 민주주의 대신 현실적인 운동으로서 민주주의에 대한 사고의 가능성을 마련해준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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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우리가 위에서 출발했던 알튀세르의 호명이론의 문제로 되돌아가보자. 지금까지의 분석은 알튀세르가 AIE 논문에서 제시한 호명이론이 외양에도 불구하고 또는 그것이 채택하고 있는 몇몇 용어법에도 불구하고 사실은 스피노자가 󰡔신학정치론󰡕에서 전개한 이론적 분석과 놀랄 만한 이론적 연관성을 지니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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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는 우선 스피노자의 상상계 이론 및 그것을 원용한 히브리 신정국가에 대한 분석은 알튀세르의 AIE 논문과 마찬가지로 직접적으로 정치적인 분석, 국가의 형성과 재생산에 대한 분석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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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더 나아가 알튀세르가 대주체와 작은 주체들(및 그 매개자로서 정치 지도자) 사이에 존재하는 호명 관계라고 부른 것은 스피노자가 히브리 신정국가의 구성 및 그것이 보여준 놀랄 만한 지속성을 설명하기 위해 제시한 이중적인 계약관계와 정확히 합치하는 것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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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히브리 신정국가에 대한 스피노자의 분석은 알튀세르의 호명 이론이 수많은 오해와 달리 상상계 내부의 관점을 표현하는 것임을 시사해준다.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론, 특히 그의 호명 이론은 기능주의적인 관점을 대변하는 것으로 널리 비판받아왔다. 다시 말해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론은 각각의 “개인들”이 “주체들”로 존재하기 위해서는 항상 이미 이데올로기에 의해 호명되어야 한다고 주장함으로써, 지배 체계에 대한 저항의 가능성을 사고할 수 없게 만든다고 비판받아왔다(이런 측면에서 보면 지젝의 비판은 종래에 제기되던 비판을 라캉 정신분석학의 관점에서 좀더 세련되게 표현한 것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가 AIE 논문이 불러일으킨 논쟁(및 오해)에 대해 해명하고 있는 ｢AIE에 대한 노트｣에서 지적하고 있듯이 이데올로기 내부에는 항상 계급투쟁이 존재하고 있다. “이데올로기 국가장치들의 기능이 지배적 이데올로기를 주입하는 것이라면 그 이유는 저항이 있고, 저항이 있는 것은 투쟁이 있기 때문이며, 이 투쟁은 결국 계급 투쟁에, 때로는 가까이에서, 그러나 대개는 멀리서 응답하는 직접적이거나 간접적인 반응이다.”(Althusser 2007, 332쪽) 그런데 계급투쟁에 대해 말하는 것은 항상 집단에 대해, 또는 더 나아가 대중들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반면 호명 이론에서는 집단이나 대중들이 아니라 항상 개인이나 주체(또는 복수로 개인들이나 주체들)가 문제가 되고 있다. 이는 알튀세르가 말하는 호명의 메커니즘은 항상 사회적 투쟁의 현실적 장이 추상된 가운데, 집단이나 대중들이 이미 개인들이나 주체들로 해체된 가운데 사고되는(또는 “상연되는représenté”) 것임을 말해준다. 물론 이는 이러한 추상이나 해체가 전혀 허구적이라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신과의 계약에 대한 상상계가 히브리인들에게 지극히 실재적이었듯이, 이데올로기의 상상계 내부에서는 이는 지극히 실재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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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이러한 의미에서 알튀세르에게 주체는 상상계에 속하는 것이지 결코 라캉적인 의미에서 상징적인 차원이나 실재적인 차원에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지젝은 알튀세르를 비판하면서 지속적으로 “상징적 동일성”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지만, 알튀세르에게 이는 용어모순과 같은 표현이다. 그에게 주체가 지니고 있는 동일성은 상상적인 차원에 있는 것이며, “동일시identification” 역시 상상적인 것이다.[이 점에 관해서는 특히 󰡔마르크스를 위하여󰡕에 수록된 ｢“피콜로 극단”. 베르톨라치와 브레히트(유물론적 연극에 대한 노트)｣ 참조. 이 글은 아마도 이 책에 수록된 글 중 가장 주목받지 못한 글이라고 할 수 있지만,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론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글이다. 발리바르는 󰡔마르크스를 위하여󰡕 ｢1996년 서문｣에서 의미심장하게도 이 글이 일종의 “도둑맞은 편지”일 것이라고 쓰고 있다. Balibar 1996 참조.] 하지만 여기서 주의할 점은 알튀세르에게 상상계란 라캉적인 의미의 상상계, 또는 좀더 그릇된 것이기는 하지만, 지젝의 의미에서의 상상계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따라서 알튀세르에게 무의식의 주체라는 차원이 없다고, 호명 이전에 존재하는 주체를 사고하지 못한다고 말하는 것은 그의 이데올로기론의 논점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거나 아니면 라캉적인 도식이나 최근에는 지젝 식의 해석을 그것에 덧씌우는 것에 불과하다. 그에게 주체는 상상적인 주체, 하지만 삶의 기반으로서 상상계 속에서 자신에게 부여된 동일성을 갖고 살아가는 주체를 가리킨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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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노자와 관련하여 알튀세르가 차이를 보이는 점이 있다면, 그것은 전자에게는 역사적으로 특수한 형식(히브리 신정)으로 나타났던 것이 후자에게는 보편적인, 초역사적인 메커니즘으로 제시되고 있다는 점이다. 발리바르가 보여주듯이 히브리 신정이 보편적인 함의를 지니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알튀세르가 이를 호명 이론으로 발전시킨 것도 무리는 아니다. 하지만 이 경우 제기되는 또 다른 문제는 알튀세르가 호명의 메커니즘을 부정적인 것으로만, 곧 지배 계급의 예속의 메커니즘으로만 사고했다는 점이다. 히브리 신정의 경우 호명은 대중들의 무능력을 전제한 가운데 이루어졌다는 점을 감안하면 가상적이고 부정적인 측면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나, 그것이 히브리 인민들의 집단적인 생존의 전략(무의식적인?)이었으며, 또 놀라운 성공을 거두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반드시 부정적인 것으로만 치부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발리바르 식으로 표현하면(Balibar 1991), 히브리 신정국가에 고유한 이데올로기적 호명은 대중들의 해방에 대한 열망의 (얼마간 가상적인) 표현이었다고 할 수 있다. 또 스피노자 식으로 표현한다면, 그것은 그 나름대로 민주주의적인 경향의 표현이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알튀세르가 스피노자의 상상계 이론에 대한 놀라운 통찰력과 응용의 능력을 보여주었음에도 불구하고 간파하지 못한 점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이 점일 것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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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는 지젝(및 다른 비판가들)이 주장하듯이 알튀세르에게 호명의 메커니즘이 “기능주의적인” 관점에서만 사고되었다는 뜻은 아니다. 알튀세르는 이미 AIE 논문 말미의 “보론”에서 이데올로기 내부에서는 항상 계급투쟁이 진행된다는 것, 곧 지배 계급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대중적인 저항이 항상 이미 존재한다는 것을 지적한 바 있고, AIE 논문이 불러일으킨 논란에 대해 답변하는 글(Althusser 1976)에서는 이 점을 좀더 명시적으로 주장하고 있다. 따라서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론, 특히 그의 호명 이론이 기능주의적이라거나 저항의 가능성을 보여주지 못한다는 비판은 적절한 것이 못된다. 다만 알튀세르는 호명은 개인들 및 대중들의 실존과 행동의 상징적 지주이면서 동시에 장애물을 이룬다는 것, 따라서 호명 그 자체가 계급투쟁 및 지배와 저항의 쟁점이 된다는 것을 충분히 해명하지는 못했다고 할 수 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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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 지젝의 난점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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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젝의 작업은 라캉의 정신분석학, 특히 그의 후기 작업의 요소들을 도입함으로써 현대 이데올로기론의 새로운 장을 열어놓았다. 지젝 이전까지 이데올로기론에서 라캉의 정신분석학은 주로 상상계-상징계라는 쌍을 통해 논의되었는데, 이는 라캉의 작업이 (옳든 그르든 간에) 대개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론, 특히 그의 호명이론을 매개로 도입되고 평가되었기 때문이다. 반면 지젝은 이전까지는 거의 주목받지 못했던 “실재계”의 차원을 과감하게 이데올로기론으로 이끌어들이면서 이데올로기론 및 알튀세르와 라캉의 관계에 대해 전혀 새로운 해석을 제시했다. 사실 라캉의 후기 작업이 RSI론[이는 각각 “le Réel”, “le Symbolique”, “l'Imaginaire”, 곧 “실재계”, “상징계”, “상상계”의 약자표시다]으로 통칭되는 삼원성(특히 실재계를 중심으로 한)에 따라 구조화되어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영미권에서 지젝 이전의 라캉 수용은 불완전하고 다소 왜곡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지젝의 진정한 독창성은 라캉의 이론(및 독일 관념론 철학)을 이데올로기론 및 사회이론으로 번역하고 있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드문 몇몇 예외를 제외한다면[드문 예외들 중 특히 장 클로드 밀네의 작업을 들 수 있다. Milner 1983.], 그 이전까지는 누구도 실재계를 포함한 라캉의 RSI론 전체를 이데올로기론과 사회이론으로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며, 또 그것이 현대 사회의 여러 현상들을 설득력 있게 설명해줄 수 있다고 기대하지도 않았다. 반면 지젝은 다수의 저작들을 통해 라캉의 정신분석학 이론이 이데올로기론 및 문화분석론으로서도 기능할 수 있다는 점을 잘 보여주고 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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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젝의 이론적 작업에 난점들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이는 특히 그가 시도하고 있는 이데올로기론에 대한 개조에서 잘 나타난다. 가령 그는 우리가 위에서 제시했듯이 알튀세르의 이론에 대해 라캉의 정신분석학이 우월한 이유를 이 후자가 호명을 넘어서는 길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찾는다. 왜냐하면 알튀세르는 특히 AIE 논문에서 호명은 반드시 성공한다는 것을 이론화함으로써, 그의 의도와 달리 자본주의적인 재생산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을 제시하지 못한 채 오히려 기능주의에 빠져든 반면, 라캉은 욕망의 그래프나 “무의식의 주체”라는 개념을 통해 상징적 질서의 공백을 드러내고 호명을 넘어설 수 있는 길을 열어주기 때문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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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지젝이 주장하듯이 라캉의 이론이 이러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우선 “환상을 가로지르기”가 단지 정신분석학의 임상적인 차원이 아니라 사회적인 차원에서 가능해야 한다는 점이다. 지젝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러나 우리는 ‘환상을 가로지르’면서 동시에 증상과의 동일시를 완수해야 한다. 우리는 ‘유대인’에게 전가된 속성들 속에서 우리의 사회체계 자체의 필연적인 산물을 확인해야 한다. 우리는 유대인에게 귀속된 ‘과잉분’ 속에서 우리 자신에 대한 진실을 확인해야 한다.”(Zizek 1989, 223쪽) 반복되는 “해야 한다”의 명령형 표현에서 볼 수 있듯이 지젝에게 “환상을 가로지르기”는 궁극적으로 윤리적 문제라는 점이 드러난다. 윤리는 물론 비판적인 지식인들이나 대중이 갖추어야 할 중요한 덕목이며, 올바른 정치적 행위를 위한 규범적 조건이기도 하다. 하지만 사회이론 또는 사회적 분석의 차원에서 윤리적 명령이 어떤 의의를 지닐 수 있을까? 특히 이데올로기론의 차원에서는 윤리적 명령이 어떤 의미에서 중요할까? 이는 “우리는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야 한다” 내지 “우리는 호명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식의 명령과 다른 의미를 지닐 수 있을까?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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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환상을 가로지르기”라는 해결책이 제기하는 좀더 중대한 문제는 다른 데 있다. 이런 질문을 던져보자. 환상을 가로지르기는 어떻게 가능한가? 우리가 “‘환상을 가로지르’면서 동시에 증상과의 동일시를 완수”하는 일은 어떻게 가능한가? 지젝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사회엔 항상 상징적 질서로 통합될 수 없는 어떤 적대적인 갈등이 가로지르고 있다. 사회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인 환상의 목적은 바로 진정으로 존재하는 사회에 대한 하나의 비전을 구축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적대관계에 의해 분할되지 않으며, 각 부분들 사이의 관계가 유기적이고 상보적인 사회에 대한 하나의 비전을 구축하는 것이다.”(Zizek 1989, 220쪽) 우선 이데올로기적인 환상의 핵심이 “유기적이고 상보적인 사회에 대한 하나의 비전을 구축하는 것”이라는 주장은 실소를 자아내는데, 과연 오늘날 누가 이처럼 아름다운 “통합주의적 관점”, “사회를 하나의 유기체적 통일체”(같은 곳)로 바라보는 관점을 믿을지, 또 과연 지배 계급이 자신들의 지배를 공고히 하기 위해 이런 식의 관점을 설파할 것인지 믿기 어렵기 때문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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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더 심각한 것은 이데올로기적 환상에 대한 지젝의 관점 자체다. 그에 따르면 이데올로기적 환상은 “하나의 비전을 구축하는 것”이다. 그는 이를 설명하기 위해 반유대주의 이데올로기에서 유대인을 하나의 물신으로 제시하는 방식을 예로 든다. 곧 유대인은 “이 통합주의적인 비전과 적대적인 갈등에 의해 분열된 실제 사회 간의 거리”를 메우기 위한 물신, “건전한 사회조직을 부패시키는 이질적인 신체, 외부적인 요소”다. 따라서 “사회적인 환상이라는 개념은 적대라는 개념에 대한 필수적인 대응물이다. 환상은 정확히 적대적인 균열을 은폐하는 방식이다. 바꿔 말해서 환상은 이데올로기가 자기 자신의 균열을 미리 고려해 넣는 방식이다.”(같은 책, 221쪽)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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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가지 질문이 제기될 수 있다. 첫째, 지젝이 말하는 사회적인 환상 또는 이데올로기적 환상이 비전을 구축하는 것이라면, 결국 환상이란 기만적인 조작 및 그것이 산출하는 허위의식과 같은 것이 아닌가? 하지만 아마도 지젝이나 지젝주의자들은 전혀 그렇지 않다고 답변할 것이다. 왜냐하면 환상이 작동하는 것은 의식 내지 담론의 수준이 아니며, 이데올로기적 효과의 최종적인 버팀목으로서 향락의 수준이기 때문이다. 곧 이데올로기적 환상은 우리의 향락 자체를 구조화하는 방식이다. 유대인의 예를 든다면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우리가 유대인을 증오하고 혐오하고 배척하는 것은 이런저런 구체적이고 합리적인 근거들 때문이 아니라, 그가 바로 유대인이기 때문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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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그렇다면, 우리가 앞서 제기한 질문이 다시 제시된다. 이러한 사회적 환상을 가로지르는 것은 어떻게 가능한가? 사회적 환상이 기만이나 허위의식의 문제라면 환상을 가로지르는 것은 원칙적으로 어려운 일이 아니다(사실상으로는 매우 힘들지 몰라도). 비판적인 분석과 대중적인 계몽으로 충분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회적 환상이 의식이나 담론의 차원이 아니라 향락의 수준에 위치하고 있다면, 곧 우리 욕망의 가장 집요하게 내밀한 차원의 문제라면, 이것을 어떻게 가로지를 것인가 하는 문제는 심각한 것이 된다. 어떻게 어제까지 그토록 증오했던 유대인들을 더 이상 증오하지 않는 일이 가능하게 될까? 유대인(또는 오늘날이라면 이주 노동자들)은 우리 사회의 타락의 원인이 아니라 사실은 가장 큰 피해자라고 일깨우면 될까? 유대인(이주 노동자들)이 실제로 우리 사회가 직면한 문제들과 무관하다는 경험적인 자료들을 축적해서 입증하면 될까? 하지만 스피노자주의에 대한 비판에서 볼 수 있듯이 정서와 인식, 욕망과 지식을 철저하게 분리하는 지젝의 관점에서 과연 이것이 가능할지 의문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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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젝의 작업에서 핵심적인 문제가 바로 이것일 텐데, 지젝은 이 문제에 대해 줄곧 윤리적 태도, 사회의 근본적인 변혁의 가능성을 믿고 또 그것을 추구하려는 윤리적 태도(그의 표현대로 하면 “행위”)가 중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가령 다음과 같은 구절이 그렇다. “버틀러와 대조하여, 라캉이 내기에 걸고 있는 것은, 심지어/또한 정치에서도, 바로 그 근본적인 환상을 ‘횡단’하는 좀더 근본적인 제스처를 성취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런 환상적 중핵을 교란시키는 그와 같은 제스처만이 본래적 행위인 것이다.”(Zizek 1999, p. 266; Zizek 2005, 428쪽; Zizek 2007a). 좋은 이야기다. 그런데 대중들의 저항 없이 어떻게 사회의 근본적인 변혁의 가능성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그리고 환상을 가로지르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지 보여주지 않고서 어떻게 대중들의 윤리적 각성 및 저항을 기대할 수 있을까?[지젝에 대한 좌파 이론가들, 특히 숀 호머의 비판을 반비판하면서 토니 마이어스는 다음과 같이 대꾸한다. “다른 한편으로, 호머는 지젝이 강조한 ‘행위’를 ‘세계를 바꾸기 위한 진실한 방법’으로 확대 해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행위가 우리의 인식 지평을 바꾼다고 할 때, 행위의 출현 이후 어떤 세계가 나타날지 안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지젝은 진술 불가능한 것을 말하기보다는 행위의 가능성 자체를 지속시키는 데 관심을 가진다. 지젝이 지적하듯이 “오늘날 정치적 공간이 구조화되는 방식은 점점 더 행위의 출현을 힘들게 한다.” 그래서 지젝은 자본주의적 삶의 지평을 끊임없이 이론화함으로써 행위를 위한 장소를 규명하는 데 자신의 에너지를 집중한다.”(마이어스 2004, 225쪽) 마이어스는 몇 가지 측면에서 기본적인 혼동을 보여준다. 우선 문제가 되는 것은 행위의 출현 이후 어떤 세계가 나타날지 아는 것이라기보다는 행위 자체가 어떻게 가능한지 아는 것이다. 지젝 혼자만의 행위가 아니라 대중의 행위가. 둘째, 혁명 이후, 그날 이후의 세계가 어떻게 될지는 누구도 모른다는 말과 혁명의 가능성, 변혁의 가능성을 위해 현재 존재하는 세계의 구조들을 분석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마이어스는 지젝이 “자본주의적 삶의 지평을 끊임없이 이론화한다”고 말하고 있지만, 사실 지젝이 하고 있는 것은 라캉의 정신분석학을 대중문화적인 현상 및 부시의 이라크 침공과 같은 정치적 현상들에 적용하여 그 현상들을 해석하는 것이 아닐까? 라캉의 정신분석학의 진리를 입증하기 위해 현상들을 예시하는 것 또는 좀더 후하게 말하면 라캉을 원용해서 현상들을 분석하는 것(이때의 분석은 아마도 정신분석학적인 의미의 분석에 더 가까울 것이다)은 세계의 구조에 대한 분석과는 전혀 다르다. 그러나 구조적인 분석이 없이 어떻게 자본주의적 세계의 근본적인 변혁을 감히 꿈꿔볼 수 있을까? 셋째, 마이어스는 지젝이 행위를 위한 장소를 규명하는 데 에너지를 집중한다고 말하고 있고, 지젝 자신은 진보 정치를 위해 수동성으로 물러날 필요성을 강조한다. 이것도 근본적인 변혁을 위한 윤리적 행위 중 하나일 것이다. 그러나 좀 냉소적으로 말하자면, 오늘날 지배 계급 중 누가 지젝의 근본적인 변혁을 위한 윤리적 행위를 두려워하겠는가? 오히려 그들은 사람들이 “지젝이 강조한 ‘행위’를 ‘세계를 바꾸기 위한 진실한 방법’으로 확대 해석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지 않을까?] 아니 지젝에게는 수동적인 대중과 다른 대중들multitudo에 대한 관점이 존재하기는 하는 것일까? 더욱이 환상의 물질적인 지주로 기능하는 각종 물질적 장치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지젝의 이데올로기론의 관념론적 성격에 대한 비판으로는 Sato 2007 5장을 참조할 수 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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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젝이 최근의 작업(특히 Zizek 2003 ｢재판 서문｣; 2005 및 여러 저작)에서 집요하게 근본적인 변혁에 대한 전망, “본래적인 행위”의 필요성에 대해 주장하면서도, 정작 실천적인 측면에서는 윤리적 명령을 반복하는 데 그치고 있는 것은 사실상 이데올로기론에서의 퇴보를 나타내는 징표가 아닐까? 이를 좀더 부연하자면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을 것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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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젝에게 상상계 또는 그가 좀더 강조하는 용어대로 하자면 환상은 스피노자나 알튀세르와 달리 그것이 지닌 가상성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 상상적인 것은 사회적 적대를 봉합하고 왜곡하고 기만적으로 쟁점을 전위시키는 것일 뿐, 개인들의 삶의 기반, 장소 그 자체로 나타나지 않는다. 더욱이 스피노자나 알튀세르에서 이데올로기적 상상은 정치적 행위의 바탕을 이루는 데 반해, 지젝에게는 지배 계급의 조작의 소재가 될 뿐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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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이데올로기론에서 알튀세르적인 단절의 지표 중 하나는 이데올로기적인 물질성에 대한 주장이었다. 이러한 테제를 통해 알튀세르는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독일 이데올로기󰡕에서 제시한 고전적인 테제, 곧 이데올로기는 사회적 의식의 문제이며 물질적인 역사와 달리 아무런 독자적인 실재성도, 역사성도 갖지 않는다는 테제와 단절을 이룩할 수 있었다. 또한 이 테제는 이데올로기 국가장치 개념으로 이어져, 어떻게 이데올로기가 사람들의 의식에 직접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물질적인 장치를 통해, 관습적인 의례와 규율 장치를 통해 작동하는지 보여줄 수 있었다. 따라서 이데올로기의 물질성에 관한 테제는 이데올로기가 역사적으로 규정된 물질적 장치들을 통해 제도화되고 변화하는 과정을 설명할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해주며, 이는 정치적 투쟁의 쟁점을 구체적으로 명시할 수 있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스피노자에서도, 적어도 󰡔신학정치론󰡕에서 상상계는 항상 물질적인 장치들이나 제도 및 의례들과 관련해서 사고되고 있다. 반면 지젝에게는 물질적인 장치들이나 제도들에 대한 분석이 거의 나타나지 않고 있으며, 사회적ㆍ문화적 현상들에 대한 분석들이 라캉의 정신분석학의 유효성을 입증하는 사례들로 제시될 뿐이다.[주목할 만한 예외가 있다면, 그것은 지젝이 처음 제시하고(Zizek 1989) 지젝 자신(Zizek 1997 3장) 및 로베르트 팔러(Pfaller 2002)가 좀더 정교하게 발전시킨 “상호수동성interpassivity”이라는 개념이다. 이 개념은 이데올로기적 장치 및 제도들을 분석하는 데 매우 효과적으로 활용될 수 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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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 결론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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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의 논의를 정리해보자. 지젝은 자신의 여러 저작에서 라캉의 정신분석학에 기반하여 알튀세르의 호명 이론의 한계를 비판해왔다. 또 󰡔부정적인 것과 함께 머물기󰡕에서는 이러한 한계가 스피노자주의의 한계 또는 후기 자본주의의 이데올로기로서 스피노자주의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론이 스피노자 철학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고 판단하는 점에서는 지젝이 전적으로 옳다고 할 수 있으며, 이 점에서 그는 대부분의 라캉주의자들의 맹목적인 비판보다 훨씬 뛰어난 통찰력을 지니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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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스피노자주의=범신론이라는 상투적인 도식에 입각한 그의 비판은 지극히 초보적인 수준의 비판일 뿐만 아니라 스피노자의 상상이론이 지니는 중요성과 독창성을 제대로 평가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심각한 한계를 지니고 있다. 이는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지젝의 생각과 달리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론은 라캉의 정신분석학과는 다른 기반, 특히 스피노자의 상상계 이론에 기초하여 구성되고 발전되었으며, 라캉의 이론이 얼마간 알튀세르에게 영향을 미쳤다면 그것은 오히려 전자의 토대 위에서 변형되고 재구성된 상태로 이루어진 것이다. 이 점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는 한 알튀세르 이데올로기론의 특성 및 그것의 정확한 강점과 난점을 이해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일 수밖에 없다.[이 글은 2008년 3월 15일 서양근대철학회 창립 10주년 기념 학술대회에서 처음 발표했으며, 3월 31일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월요모임에서 다시 발표한 바 있다. 첫 번째 발표회에서 귀중한 논평을 해주신 홍기숙 선생님께 깊이 감사드리고, 두 차례의 발표회에서 좋은 지적을 해주신 여러 선생님들께도 감사를 드린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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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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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 요약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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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는 루이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론이 어떤 의미에서 스피노자주의적 이데올로기론이라고 할 수 있는지 해명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론은 대개 라캉주의적 이데올로기론으로 알려져왔으며, 더욱이 실패한 라캉주의 이론으로 비판받아 왔다. 슬라보예 지젝은 최근 저작들에서 이러한 실패의 이유를 알튀세르와 스피노자주의의 연관성에서 찾고 있으며, 라캉 정신분석학의 관점에서 양자의 공통적인 한계를 비판하고 있다. 필자의 주장은, 스피노자와 알튀세르의 본질적인 이론적 연관성을 지적하고 있는 점에서는 지젝이 옳지만, 그 연관성의 실제 내용과 의미를 이해하는 데는 완전히 실패했다는 것이다. 필자는 문제의 핵심이 스피노자 철학에서 '상상계' 개념의 의미를 밝히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상상계 개념은 스피노자의 인간학을 정확히 이해하는 데 중요할 뿐만 아니라,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론을 새롭게 해명하는 데에도 근본적인 중요성을 지니고 있다. 더 나아가 지젝의 이데올로기론의 난점들은 스피노자와 알튀세르가 공유하고 있는 유물론적 상상계 개념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데서 생겨난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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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주제어 <br />
슬라보예 지젝, 이데올로기, 상상계, 호명, 환상, 변용의 질서와 연관, 신정국가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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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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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study aims to elucidate in what sense the Althusserian theory of ideology is a spinozistic one. It has been generally considered as a Lacanian theory, and even criticized by some commentators as a failed one. Slavoy Zizek found the reasons of its failure in the theoretical connections between the Althusserian theory and the Spinozism, and criticized their common limitations from the viewpoint of Lacanian psychoanalysis. In my thought, he was surely right to find the essential theoretical relation between Althusser and Spinoza, but he totally failed to understand its meaning and significance. I think the point is to clarify the meaning of "the imaginary" in the philosophy of Spinoza. "The imaginary" is important not only to understand Spinoza's anthropology, but also to bring a new light on the Althusserian theory of ideology. Then, I hope, one can explain the difficulties of Zizek's own theory of ideology in the light of the materialist concept of the imaginary which is shared by Spinoza and Althusser.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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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y words: Slavoy Zizek, ideology, the imaginary, interpellation, fantasy, order &amp; connection of affections, state of theocracy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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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description></item><item><author>바라</author><category>찌라시의 문서 창고</category><title>홍기빈의 인권이야기 펌(인권오름)</title><link>http://blog.aladin.co.kr/vara/1855454</link><pubDate>Tue, 22 Jan 2008 03:1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vara/1855454</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013624X&TPaperId=1855454"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90/58/coveroff/897013624x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h1 class="제목"></h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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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1 class="제목">[홍기빈의 인권이야기] </h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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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1 class="제목">소유권과 인권</h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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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기빈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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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이라는 개념은 복잡한 여러 사상적 기원을 가지고 있지만, 그 빼놓을 수 없는 것 하나로 운위되는 것이 ‘인신의 자유’(habeas corpus)라는 것이다. 이 라틴어의 원 뜻은 “내 몸은 내 것이다”(I have my body)라는 말이라 하는데, 13세기 영국에서 생겨난 소위 대헌장(Magna Carta)에서 처음으로 하나의 헌법적 위치를 가진 구절이 되었다고 한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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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말이 생겨난 구체적 맥락은 ‘인신의 자유와 영혼의 자율성’과 같은 고상하고 형이상학적이었다기보다 아주 구체적이고 물질적인 형이하학적인 것에 가까웠다. 당시 인신의 자유가 요구되었던 것은 ‘소유권’의 확립을 위한 한 장치로서 제기된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잘 알려져 있듯이, 당시 영국의 존 왕(King John)은 전쟁 등을 명분으로 하여 무척 무거운 세금을 물렸고 여기에 대해 반발한 귀족들과 부유한 상인들이 뭉쳐서 왕이 함부로 신민들의 재산을 침탈하지 못하도록 왕권을 제한하는 것이 그 대헌장이라는 것의 역사적 맥락이었다. 어째서 인신의 자유가 여기에서 관련이 되는가? 서구에서나 동양에서나 권력자가 인민에게서 재물을 뜯어내는 방법이 가렴주구(苛斂誅求) 혹은 글자 그대로 끌어다놓고 주리를 틀어버리는 것이었다. 따라서 재물을 지키기 위해서는 가렴주구와 같은 잔혹 행위를 원천적으로 방지해야 했고, 여기에서 ‘인신의 자유’라는 생각이 나왔다는 이야기가 되겠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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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과 소유권이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경우는, 바로 이러한 대헌장의 정신을 고도의 정치 철학으로 발전 승화시켰던 존 로크(John Locke)의 자유(liberty) 개념에서 보인다. 그는 자유란 다시 세 가지 즉 ‘자유, 생명, 재산’(liberty, life, property)의 권리로 구성되어 있다고 보았다. 여기에서 우리는 소유권이 ‘인신의 자유’와 동일한 정도로 인간 권리의 핵심의 자리를 차지하는 것을 보게 된다. 즉 나의 인신의 안전이 확보된 상태에서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자유가 주어진다고 해도 나의 생명을 부지할 수 있는 소유가 없다면 그것이 아무 의미도 없게 된다는 생각이다. 반대 방향으로 생각해보는 것도 재미있다. 산속에서 노상 강도를 만날 경우의 상황이란 나의 인신의 자유의 위협과 나의 소유의 위협이라는 것은 두 개로 분리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니까. 결국 내 인신을 건드리는 것은 내 소유를 건드리기 위함이요 내 소유를 건드리는 것은 곧 내 인신을 건드리는 것과 동일한 것이다. 그래서 지금도 영미권 국가들에서는 다른 이의 사유지에 무단으로 침입할 경우 엄벌을 받을 수 있으며 때때로 그 땅주인의 총알 세례(!)를 감수해야 할 경우까지 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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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소유권을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하늘로 부여받는 가장 중요한 천부 인권으로 보는 관념은 영미 세계의 정치 사회 사상에서 지배적 전통으로 남아 있다. 그런데 여기에 뭔가 논리적 맹점이 있다. 대헌장이나 존 로크의 저작이 상정하고 있는 사회 상태는 군주가 신민을, 또 인민들 각자가 서로서로 인신과 재산을 마구 노리는 늑대와 같은 상태이다. 이렇게 정글과 같은 사회 상황에서는 소유권이 인간 생존에 필수적인 하나의 ‘인권’의 차원으로 올라오는 것이 정당화될 수 있다. 그런데 질서가 정돈되고 고도로 발전된 법과 제도가 지배하는 사회에서도 과연 소유권은 ‘인권’인 것일까?<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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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루소나 칸트와 같은 대륙의 사상가들은 소유권이란 공동체 전체의 권위에 의해 개인에게 주어지는 것으로 법적 인정을 받을 때 완결되는 권리라고 보고 있다. 즉 개인이 아기로 태어날 때 옥황상제에게서 받아오는 ‘천부 인권’이라기보다 이 땅 위에 존재하는 사회 그리고 국가에 의해 주어지는 것이라는 말이다. 따라서 원칙적으로나마 공공의 이익과 권리가 우선할 경우 그 개인에게 주어졌던 소유권은 사회로 회수될 수도 있는 것으로 이들은 보고 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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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치명적인 문제가 있다. 소유의 가장 중요한 형태가 토지였던 농경 사회와 달리 고도로 발전한 산업 사회에서는 어떤 것이 누구에게 귀속되는지가 그다지 투명하게 보일 때가 많지 않다. 예를 들어 어느 기업이 올해에 예상을 뛰어넘는 순이익을 올렸다고 해보자. 이것이 주식 배당금으로 주주에게 돌아가야 하는가 아니면 직원들의 임금 상승이나 상여금으로 나가야 하는가 아니면 새로운 장비에 투자하는 쪽으로 써야 하는가 아니면 회사의 금고에 그대로 쟁여 두어야 하는가. 그리고 그 각각의 경우에 따라 국가는 어느 만큼씩 세금을 거두어야 하는가 등의 문제는 결코 “모든 이들은 인신의 자유를 갖는다”와 같은 간단명료한 문장의 원칙 하나로 풀어내기에는 턱없이 복잡한 것들이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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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소유권이 ‘천부 인권’이 아니라 사회와 공동체의 법적 제도적 질서에서 만들어지는 인공의(artificial) 권리라는 것이 분명하게 된다면 이는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엄청난 논쟁과 논의의 장으로 들어가는 판도라의 상자 열기와 같은 일이 된다. 개인은 어떤 근거에서 또 어느 정도까지 또 어떤 방식으로 소유권을 보유하게 되는가. 그가 사회에 지는 책임은 무엇인가. 프루동이 갈파했던 것처럼 어느 개인의 소유권이 타인의 ‘인권’까지 침해하는 정도로 확장되는 것을 어떻게 막을 것인가 등등. 실제 20세기 선진 자본주의 각국의 역사적 경험을 보면 이러한 복잡한 문제들을 다루는 법적 제도적 장치의 발전사가 파란만장하게 펼쳐져왔고 그 결과 나타났던 20세기 자본주의의 모습도 복잡하기 짝이 없었다. 21세기 들어와 이러한 추세가 역전되고 영미의 소위 ‘헌정주의’(constitutionalism)가 다시 기승을 부리며 소유권을 초법적인 위치의 ‘인권’의 차원으로 강조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소유권을 놓고 복잡하게 발전했던 각종 제도와 규제 장치들이 모두 사라지고 단일의 주권으로서 그것이 되살아나고 있다. 판도라의 상자 맨 밑의 ‘희망’까지 튀어나와 모든 민중들의 머리를 사로잡기 전에 재빨리 상자를 닫아야만 했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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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1 class="제목">[홍기빈의 인권이야기] </h1>
<h1 class="제목">&#160;</h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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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1 class="제목">소유권은 권력이다</h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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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인쇄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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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기빈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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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왕자는 어느 별에서 재미난 아저씨를 만난다. 그는 온종일 책상에 앉아 자기가 소유하고 있는 ‘오억 일백 육십 이만 이천 칠백 삼십 개’의 별을 세고 또 세고 있다. 어린 왕자는 그에게 묻는다. 이 별로 무얼 하느냐고. 그는 대답한다. 조그만 문서에 별의 숫자를 적어서 서랍에 넣고 잠근다고. 그러자 어린 왕자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말이야 꽃을 한 송이 소유하고 있는데 매일 물을 줘. 세 개의 화산도 소유하고 있어서 주일마다 그을음을 청소해 주고는 하지… 내가 그들을 소유하는 건 내 화산들에게나 꽃들에게 유익한 일이야. 하지만 아저씨는 별들에게 하나도 유익하지 않잖아.”<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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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짧은 우화는 소유권 개념을 둘러싼 역사적 논의의 중심 가운데 하나인 ‘사용’과 ‘타인의 접근 배제’라는 문제의 핵심을 보여주고 있다. 내가 어떤 것을 소유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어린 왕자는 내가 그것과 구체적으로 관계를 맺어 나를 위해 그것을 사용하고 또 그 와중에서 그것도 변화를 겪게 되는 ‘사용’이 소유의 의미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아저씨는 ‘자기 것’이라고 선언된 별들을 숫자로 바꾸어서 서랍에 넣고 잠가버린다. 왜 그럴까. 그런 이상한 숫자 놀음보다는 훨씬 더 중요한 사명을 띠고 우주를 헤매야 했던 어린 왕자에게는 그것을 캐물을 시간이 없었다. 하지만 지구라는 별의 땅위에 붙들린 채 몇 천 년을 살아온 우리는 그 의미를 몸으로 알고 있다. 그렇게 되면 그 종이에 숫자로서 적힌 별들에는 그 아저씨의 허락 없이는 아무도 접근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을. 결국 소유권을 적어 놓은 종이를 서랍에 넣고 잠그게 되면 우리에게는 사실상 그 모든 별들이 그 잠긴 서랍 속으로 사라져버리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을.<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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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우리가 소유권이라는 말을 놓고 이야기를 풀 때에 숱한 혼동을 낳는 지점이다. 소유권이란 그 소유자가 소유 대상을 실제로 사용할 권리를 말하는가. 아니면 자신의 허락 없이 타인들이 그 대상에 접근할 수 있는 가능성을 배제하는 권리를 말하는가. 만약 전자라면 전혀 ‘배제’없이 ‘사용’만 하는 소유자 즉 자기가 그것을 마음대로 사용할 가능성만 보장된다면 다른 사람이 얼마든지 그것을 또한 사용하도록 내버려 두는 소유자를 상정할 수 있다. 또 후자라면 전혀 ‘사용’없이 ‘배제’만 하는 소유자 즉 실제로는 그 소유 대상을 전혀 사용하지 않으면서 누구 다른 이가 혹시라도 그것에 접근하려 들면 그 즉시 발포하는 소유자를 상정할 수 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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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에서는 그래서 상당히 다양한 성격의 여러 소유 형태가 나올 수 있게 된다. 예를 들어 근대 이전 영국 농촌의 공유지(commons)와 같은 것이 있다. 그 마을에 정착하고 사는 이라면 원칙적으로 누구나 그 땅을 ‘사용’할 수 있고 아무도 다른 이가 그것을 사용하는 것을 ‘배제’할 수 없는 그 마을 전체의 소유인 것이다. 또 공유지가 아닌 경우에도 토지의 소유권이란 주로 누가 어떤 땅을 어떻게 사용할 수 있는 권리로서 정의되어 왔다. 이는 마을마다 또 땅뙈기마다 거기에 얽힌 관습과 특성 등등으로 복잡하게 정의될 수밖에 없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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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잘 알려져 있듯이, 16세기 영국에서는 중대한 변화가 일어난다. 힘을 가진 영주나 대토지 소유자들이 공유지이건 또 누가 경작하기로 되어 있는 땅이건 그 땅을 실제로 사용하던 사람들을 싹 다 몰아내어 버리고 다시는 아무도 함부로 들어오지 못하게 ‘울타리’를 처 버린 것이다. 마르크스가 공들여 설명하고 있는 대로, 이러한 ‘종획 운동’(enclosures)이야말로 자본주의적 소유권이 탄생한 순간인지도 모른다. 이제 소유란 ‘내가 그 땅을 경작할 권리’라는 뜻이 아니라 ‘아무도 그 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할 권리’로 즉 ‘사용’에서 ‘배제’로 뜻이 완전히 바뀌게 되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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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우리가 오늘날 살고 있는 바의 자본주의적 소유권의 본질이다. 즉 그것은 ‘사용’의 권리가 아니라 ‘배제’의 권리이다. 그래서 오늘날은 그나마 여기저기 남아 있는 ‘공유물’(commons)의 영역은 계속 더 줄어들고 있으며, 대신 전혀 ‘사용’을 하지 않고 ‘배제’의 권리만을 행사하는 이들-부재 지주, 기업 경영에 관심 없이 주식만 소유하는 주주들 즉 베블린이 말한 ‘부재 소유자’(absentee owners)들, 선물 옵션 시장의 거래자들 등등-은 도처에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다. 즉, 우리가 오늘날 알고 있는 바의 소유권이란 어린 왕자나 우리들이 생각하는 그런 소박한 의미가 아니다. 자기가 사용을 하건 말건 남이 사용하는 것을 배제할 수 있는 권리일 뿐이다. 그리고 이러한 의미의 소유권 개념은 결코 흔히 믿어지듯이 인류 문명의 시작부터 존재했던 ‘자연적’인 것이 아니다. 장구한 인류 역사 속에서 기껏해야 500년을 넘지 못하는 비교적 대단히 새로운 현상에 불과하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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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초 미국 철학자 모리스 코헨(Morris Cohen)은 이점을 명확하게 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구별을 행하였다. 세상에는 자기가 직접 어떤 대상을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 관계를 빌어서 생겨나는 소유권도 물론 있다. 하지만 이는 보통 ‘점유’(possession)라고 하는 것으로서 법적 사실로서 인정되는 ‘소유’(property)와는 다른 것이다. 그리고 점유가 ‘점유자와 점유 대상과의 관계’임에 반해 ‘소유’란 소유자와 소유 대상과의 관계 즉 사람과 물건과의 관계를 밝힌 것이 아니다. 그것이 사실상 정의하고 있는 것은 ‘소유자와 비소유자의 관계’ 즉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밝혀 놓은 것 뿐이라고.<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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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서 심각한 문제가 나오게 된다. 우리는 흔히 소유란 경제적 사실과 개념에 불과하므로 정치적인 것과 거리가 멀고 특히 인권 문제와는 더욱 무관한 영역이라고 생각하기에 쉽다. 그리고 우리는 지난번 칼럼에서 오히려 소유야말로 가장 기본적인 인권이라고까지 주장하는 논리와 그 모순점에 대해서 본 바 있다. 하지만 이글에서 본 것처럼 소유란 소유자와 소유 대상과의 관계에 대한 것이 아니라 사실상 ‘타인을 배제’하는 권리에 불과한 것이라면? 이는 바로 적나라한 사회적 ‘권력’에 불과한 것임이 드러난다. 아니나 다를까 그래서 코헨은 이렇게 사회적 권력으로 변해버린 자본주의에서의 소유 개념은 정치권력의 주권(sovereignty)과 다를 바가 없다고 주장한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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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이 추상적인 권리 선언에 그치지 않고 실질적인 내용을 가지려면 인간 존재에 필수적인 타인과 자연에 대한 접근이 필수적이다. 그런데 인간 사회에는 분명 그러한 ‘타인들의 접근권’을 배제하는 소유권이라는 지뢰밭이 도처에 깔려 있다. 이로써 인권과 소유권은 정면으로 모순될 가능성을 배태하게 된다.]]></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90/58/cover150/897013624x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013624X</link></image></item><item><author>바라</author><category>찌라시의 문서 창고</category><title>정세들: 마키아벨리에 대한 알튀세르의 우발론적 해석  </title><link>http://blog.aladin.co.kr/vara/1724224</link><pubDate>Mon, 26 Nov 2007 23:4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vara/1724224</guid><description><![CDATA[
    
        
            정세들: 마키아벨리에 대한 알튀세르의 우발론적 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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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코 라흐티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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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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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세(政勢). 모든 정치적 행위자와 활동가는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정세를 분석하고 그 판단에 입각하여 행동한다. 그러나 정작 정세가 무엇인지,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정세라는 문제설정을 받아들이는 것이 정치적 사고와 행동에 어떤 변화를 초래하는 것인지에 관한 문제는 충분히 숙고되지 않는다는 느낌이다.<br />
                        예컨대 스스로를 활동가로 자처하는 많은 이들은 이론과 구조를 폄하하면서 실천과 주체가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이들은 실천과 주체의 '철학', 심지어 '형이상학'이나 '종교'로 미끄러진다. 실천과 주체라는 '유물론적' 외피를 쓰고 있지만, 절대적으로 근원적이고 기본적인 원리(原理)를 정립하려 한다는 점에서 자신이 비판하는 문제설정과 정확히 동일한, 아니 '이론주의'와 '구조주의'에 대한 비판에 기초한다는 점에서 스스로는 이런 편향에서 절대적으로 자유로우며 자신에 대한 비판은 이 같은 편향을 충분히 '숙정'하지 못한 탓이라는 식의 논리를 내세우는 더욱 폐쇄적이고 독단적인 결과에 이르는 것이다. 마치 현재의 국가를 '전인민의 국가'라고 규정함으로써 그에 대한 비판을 '인민의 적'으로 간주한 스탈린주의처럼.<br />
                        이론과 실천, 구조와 주체라는 이 허구적 대립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 주는 가장 유효한 문제설정이 바로 정세다. 즉 문제는 정세와 무관하게 정립되는 실천과 주체가 아니라, 정세에 부합하는 실천 그리고 정세를 변화시키기에 적합한 형태로 스스로를 변화시키는 주체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이론과 구조 역시 정세의 심문 앞에서, 정세에 대한 구체적 분석으로서 이론, 정세를 규정하는 물질적 역관계에 대한 가늠으로서 구조로 재규정된다. 이렇게 각각의 범주들을 근원적으로 변화·재배치하면서, 정세의 문제설정은 이론과 실천, 구조와 주체의 통일이라는 저 오랜 난문을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한다.<br />
                        이와 함께 정세는 정치(적 사고와 행동)의 고유성을 사고할 수 있게 해 준다. 정치는 모든 사태가 종결된 후 그 원인과 구조를 사후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황혼녘에 날개를 펴는 '미네르바의 올빼미'가 아니다. 정치는 사태가 한창 진행 중이고 그 원인이 완전히 파악되지 않은 '정오의 칠흑' 속에서 벌어지는 '결단'일 수밖에 없고, 그런 한에서 용기와 대담함을 필요로 한다. 한 편 이 같은 결단은 그 불완전성으로 말미암아 잘못된 판단과 전혀 의도치 않은 역효과 등 많은 위험부담을 필연적으로 동반하게 된다. 이처럼 결단에 구조적으로 따라붙는 위험부담 때문에, 정세와 무관한 주체를 중심에 놓는 윤리 곧 (정세적 변화와 무관하게 진행되는 주체적 역량의 선형적 확대·축적에 대응하는) '일관성'의 요청과 전혀 다른 '책임'(responsibility) 윤리 곧 의도와 판단과 예상을 벗어나는 효과에 '응답'(response)하는 능력(ability)이 정치의 관건이 된다. 결단과 책임, 대담함과 (변)덕이라는 외견상 대립된 태도의 통일. 이것이 정세라는 문제설정이 초래하는 또 다른 효과다.<br />
                        지난 『사회운동』 69호부터 시작한 정치 이념 기획을 일단락하면서 정세를 다룬 글을 선택한 것은, 이처럼 정세라는 문제설정의 채택이 정치적 사고와 행동을 쇄신하는 데 핵심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다소 난해한 논의였는 데다, 생소한 '최신'의 이론들을 다룬 까닭에 어려움이 커졌지 않았나 싶다. 변명을 덧붙이자면, 현실 사회주의의 붕괴라는 대사건 이후 동시대인들이 어떤 식으로 기존의 이념을 반성하고 이 문제를 재정식화하며 나아가 나름의 좌표를 제시하는지 함께 사고하고 토론하고 싶었다. 마르크스주의로 대표되는 전통을 폐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것을 다시 현재화하기 위해서, 동시대 결국 현 정세 안에서 벌어지는 사고와 쟁점을 파악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직 부족한 역자들 때문에 본래의 취지가 제대로 전달되지 못했을까 두렵다. 이 점에 관해서 어떻게 '책임'을 질지 더 깊이 고민하겠다는 말로 변명을 마칠까 한다. 그 동안 많은 관심을 보내 준 독자들께 감사드린다. 또 이번 기획에 음으로 양으로 도움을 주신, 이 자리에서 다 이름을 밝히지 못하는 많은 분들께도 감사드린다. 다음 호부터는 마르크스에 관한 학습을 도울 수 있는 기획을 시작할 예정이니, 많은 관심 부탁드린다.<br />
                        '이론과 실천의 통일'이라는 위대한 이상이 실현되는 듯 했던 87년, 그러나 20년이 지난 지금 신자유주의 하에서 이론과 실천의 분할은 더욱 심각해지고 지적 위계는 한층 강화되고 있으며 그만큼 대중의 자기해방은 억압당하고 있다. 이에 맞서 이론과 실천의 통일이라는 깃발을 다시 치켜들되, 실천과 활동가의 편에서 그렇게 하기 위해서 무엇을 할 것인가. 정세와 정치를 우위에 둔 사고와 행동을 전진시키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 끊임없이 되물어야 할 이 질문에 실마리를 주는 한 마르크스주의자에게 귀 기울이는 것으로 우리의 답변을 대신하고자 한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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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에 16세기 초 이탈리아의 정세를 분석하는 텍스트가 있다. 그 정세는 이탈리아의 국민 통일의 문제를 분명한 역사적 과제로 제기한다. 또한 그것은 군주와 그의 정치적 실천을 그러한 주요 목표를 성취하는 수단과 동일시한다. 나는 이렇게 문제를 제기하는 방식, 그 정치적 문제설정의 본질적인 결과가 이론 속에서 작동하도록 하는 이론의 배치와 전형적인 양상을 근원적으로 재편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을 지적했다. (…) 그러한 정치적 문제설정과 새로운 배치를 동원하고 전개시키는 텍스트는 어떻게 자신이 전개시킨 정치적 실천의 문제설정의 공간 속에 자기 자신을 배치하는가?<br />
                        최초의 유혹은 정확히 그 텍스트를 어떤 공간이든 그에 외재하는 것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계몽주의의 테제이다. 빛처럼, 진리는 어디에도 정주하지 않는다. 그것은 진실의 유효성을 통해 발생하고 작동하며, 진실의 본질은 계몽을 통해 효과를 발휘한다. (…) [그러나 마키아벨리가] '진리'의 유효성의 이론으로 타락한 것은 결코 아니다. 마키아벨리는 현실적인 것 이외에 진리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 즉 진리는 진리 효과에 의해 나타나고, 그 효과 밖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진리의 효과는 언제나 사람들의 활동에 녹아들어 있다는 것, 또한 정치적으로 말해서, 세력들간의 대결, 당파들간의 투쟁 속에서만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br />
                        (…) [마키아벨리의 텍스트는] 이데올로기적이고 정치적인 문헌의 세계에 속하는 텍스트이며, 그 세계 속에서 편을 들거나 입장을 취하는 텍스트이다. (…) 그것은 규격을 맞춘 담론의 배치만이 아니라, 그 작성법까지도 재편하기에 충분하다. 『선언』은 새로운 저술 형태로 쓰일 것을 요구한다. 이것은 그람시가 『군주론』의 구성과 문체에 감탄한 이유를 설명해 준다. 새로운 군주에게 호소하기 위한, 겨우 80쪽에 달하는 새로운 구성과 명쾌하며 간결하고, 활기차고 열정적인 새로운 문체.<br />
                        왜 열정적인가? 자신이 해법을 제시하는 정치적 문제의 이론-정치적 배치의 구성에서 부단히 한쪽 편을 들었으며, 언제나 여러 세력들의 갈등에 입각하여 정세를 사고했던 마키아벨리는, 자신의 저작들 속에서 스스로의 당파성을 공개적으로 언명해야 하고, 자신의 대의에 여러 일파를 설득하는 데 필요한 온갖 수사법과 열정의 자원들을 갖고 그렇게 해야 하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첫 번째 의미에서 그의 텍스트는 선언이다. (…) 이탈리아를 구원할 군주가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수단들에 관한 이론을 텍스트를 통해 정교화시켰던 마키아벨리는, 자신이 공표하고 참여하는 투쟁에서 자신의 텍스트가 하나의 수단으로서 보탬이 되도록 하여, 자신의 텍스트를 차례차례 그리고 동시에 그 수단들 가운데 하나로 취급한다. 텍스트를 통해 새로운 군주를 널리 알리기 위해서, 그는 자신이 방송하는 뉴스에 적합한 방식, 아주 새로운 방식으로 글을 쓴다. 그의 글쓰기는 새롭다. 그것은 정치적 행위이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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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루이 알튀세르, 오덕근·김정한 옮김, 『마키아벨리의 가면』, 이후, 2001, pp. 50~52<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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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세를 다시 사고한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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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티엔 발리바르(Etienne Balibar)는 과잉결정과 과소결정 각각의 시각들에 관해 흥미로운 논평을 한다. 그에 따르면 여기서 "문제는 더 이상 정세를 구조의 생애에서의 짧은 순간이나 혹은 구조의 연속적 단계들 사이의 이행으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구조라는 현실은 정세들의 예측할 수 없는 연속일 뿐이며, 역으로 정세란 구조의 일정한 배치로 결정될 따름이기 때문이다."1)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발리바르가 가리키는 것은 경제적 토대와 그 주요 모순이 동질적이고 총체적인 구조가 아닌 방식인데, 여기서 부차 모순들이나 국내적 정황들은 엄격한 의미에서의 정치 정세들의 일종으로 고정된다. 이와는 반대로 토대와 상부구조, 또는 국제적·국내적 요소들은 결합하여 복합적인 정세를 이루며 이는 시간에 따라 변화한다. 이런 식으로 '정세' 개념은 경제적 심급의 효과가 나타나는 영역을 가리킨다.<br />
            발리바르는 정세와 구조가 하나라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구조들은 일반적으로 말하자면 주어진 정세를, 고유한 경향과 모순적인 생산관계 등을 갖는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방식으로 특징짓는 배치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구조들은 독자적인 실존을 갖지 않으며, 그들이 실존하거나 존속하고 역사적 형상을 얻는 것은 순전히 정세적이다.2) 발리바르는 구조와 정세라는 대립항의 이 같은 폐기를 지나치듯이 언급한다. 그의 말을 빌자면 "이 변화는 잠재적 결과를 갖는다. 곧 역사적 '이행'(그리고 더욱 심원하게는, 더 이상 단일한 지속을 갖는 연속적 질서로 표현할 수 없는, 역사적 시간)이라는 전통적 문제에서 완전한 전환으로 이어지는 것이다."3)여기서 우리는 새로운 입각점의 출현을 얻게 된다. 우리는 더 이상 총체적이고 선형적으로 진보하는 구조나 사회구성체를 목격하지 않는다. 대신 우리는 모순들이 관통·심화되며 구조가 역사적 형상을 얻는 과잉결정과 과소결정의 정세적 과정들을 감지한다.<br />
            이 맥락에서 발리바르는 알튀세르의 학생들 발리바르 자신을 포함하여 이 하나의 구조에서 다른 구조로의 이행이라는 변혁을 연구하는 데 과잉결정과 과소결정이라는 알튀세르적 개념들을 적용하기 위해 기울인 '필사적' 노력들을 언급한다. 그렇게 하면서 사실은 시기구분의 고전적 모형을 따랐으며 구조와 정세의 분할을 포기한다는 "이 모든 것의 진정한 의미를 거의 깨닫지 못했다."4) 이 자기비판의 노선은 알튀세르의 추종자들이 헤겔적 총체성에 입각한 사고에 사로잡혀 있었다는 것을 함축한다. 그들은 헤겔의 표현적 총체성과 마르크스의 지배소를 갖는 구조(structure in dominance) 사이의 차이점에서 파생되는 이론적 문제들을 완전하게 깨닫지는 못했던 것이다.<br />
            발리바르가 정확히 지적한 것처럼, 알튀세르 자신이 추구했던 역사적 시간에 관한 구상은, 심지어 당시에도, '역사적 이행'에 대한 측정법과 다른 것이었을 수 있다.5) 나라면, 여기서 [대문자] '보편사'(Universal History)와 '다양한 역사들'의 관점들을 구별할 것이다. 정세들은 역사의 어떤 '일반 시간'과도 어울리지 않는데, 왜냐하면 역사에는 그런 것이 없기 때문이다. 각각의 정세는 고유한 시간표에 따라 전개되고 지속한다. 이는 과잉결정과 과소결정의 특징을 갖는 과정들에서 분명해지는데, 여기서는 모순들이 전위되고 응축되거나, 정세들이 특정한 방향으로 절합된다.<br />
            이하에서는 알튀세르의 '정세적 역사'라는 구상을 간략히 설명함으로써, 이 구상이 정치적 실천을 '정세적 실천'으로 이해하는 길을 열어줄 것이라는 기대를 납득시킬 것이다. 여기서 마키아벨리의 역할은 결정적이다. 알튀세르에게 있어, '피렌체의 서기장'은 탁월한 정치적 실천의 이론가였다. 알튀세르에 따르면 "발본적인 방식으로" 마키아벨리가 주목했던 것은 '모든 정세의 우발적 사실성(factuality)'이다. 역사를 정세적으로, 정세를 우발적 현실들로 보는 것은 정치적 행위나 개입의 가능성을 이론적으로 논할 수 있게 해 준다. 또는 알튀세르가 「아미엥에서의 주장」(1975, 「철학에서 마르크스주의자가 되는 것은 쉬운 일인가?」로 일부 영역된)7)에 적어 넣었듯이, 역사에 대한 헤겔적 구상은 이론적 궁지에 도달한다. "내가 지나가면서 언급했던 것처럼, 헤겔에서 영감을 받은 정치란 아직껏 세상에 나타난 적이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원 안에 사로잡혀 있는데 어디서 원을 움켜쥘 수 있겠는가?"8)<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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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세적 역사<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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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리바르의 용어법에서, 정세는 더 이상 '구조들의 세계사'에서 '지방적'이거나 사소할 뿐인 문제가 아니다.9)역사 자체가 이제 '정세적'이다. 이 관점에서 보면 자본주의 세계경제는 전제적이고 전능한 중심을 갖지 않는다. 대신 지구적인 자본주의 체계는 국내적·국제적 정세들에 따라 형성된 '복합적 전체'나 '지배소를 가진 구조'의 일반적 틀 또는 '배치'다.<br />
            중심을 갖지 않는다는 것이 과잉결정하는 매우 강력한 요소들과 지배적인 경향들의 결여는 아니다. 그것은, 정세적 시각에서 볼 때, 진화하는 자본주의가 단순히 '세계 질서'의 '총체사'에 관한 것이 아니라는 뜻일 뿐이다. 그것은 특정한 추상과 일반성의 수준에서, 자본주의 세계 경제 또는 자본주의의 제국주의 단계라고 불릴 수 있는 것을 형성하는 데 기여하는 서로 다른 국내적·국제적 정세들에 관한 것이다. 즉 우리는 자본주의가 거기 존재하는지 여부를 묻지 않는다. 우리가 묻는 것은, 이른바 자본주의 곧 자본주의 생산양식과 생산관계, 그리고 모순들 의 서로 다른 시간들과 장소들에서 어떤 종류의 역사적 형상들이나 유형들이 출현하는가 이다.<br />
            만일 과잉결정과 과소결정이 유일하고 반복할 수 없는 특성들을 가진 사건들이나 사례들의 복합적 계열들로 이루어진다면, 즉각 절대적 역사의 지평을 떠나 사뭇 정반대의 무대로 떠나려는 유혹이 생겨난다. 현실은 불가해한 혼돈, 헤아릴 수 없는 이유들과 모순들과 연속들이 원인이 되는 순전한 '연접'(連接, conjunctions)들에 불과한 것으로 판명될 것이다. 현실화되는 모순들은 본성상 사건들의 개별적이고 우연적인 계열들로 판명될 것이며, 여기서는 언급할 만한 지속성을 가진 어떤 구조적 요소들이나 경향들을 알 수 있는 방법이 없고, 따라서 이 모순들을 유형화하고 식별할 수 있는 토대를 발견할 수 있는 방법도 없을 것이다.<br />
            알튀세르가 1980년대 초반에 시작되어 사후에 출판된 그의 후기 작업에서 대답하려고 했던 것이 바로 이 필연성과 우연성(contingency)이라는 질문들이다. 그러나 이 고찰들 역시 나름의 역사가 있다. 이들은 예컨대 알튀세르가 1969년에 쓴 「모순과 과잉결정」 영역본 보론에서 그 전조를 발견할 수 있다. 그는 엥겔스가 '최종심급'이라는 관념을 활용한 방식에 관해 말하자면 비판적으로 논평했고, 이 논평은 우연(chance)과 필연이라는 쟁점을 다루는 길을 열었다.10) 많은 점에서 알튀세르의 엥겔스 비판은 자세하게 읽을 만한 가치가 있다.11) 특히 중요한 점은, '최종심급'라는 관념뿐만 아니라 토대와 상부구조라는 개념이, 무엇보다도 우선 이론적 수단이라는 관점이 등장한다. 이를 갖춘다면 어떤 주어진 시간에 놓인 토대와 상부구조의 당면한 역사적 형태들에 대처할 수 있게 되고, 과잉결정과 과소결정이라는 특징을 갖는 역사적 과정들을 파악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렇게 해서 역사적 형태들이나 사건들은 '불가사의'나 미시적 원인들의 위태로운(hazardous) 혼돈으로 보이지 않게 된다. 이른바 혼돈을 모순의 역사적 전개라는 시각에서 이해하고 명확히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겨난다.<br />
            '이해'는 역사 철학들에서처럼, 세계에 대한 사변적 설명(관념론 체계의 설계자가 말하는 '이야기')을 가리키지 않는다. 반대로 이해는 사회 형태들에 대한 구체적이지만 이론적인 기초가 있는 분석을 얻기 위해 노력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분석은 과잉결정과 과소결정의 과정들에 집중하고, 여기서 경제적 요소들('경제적 심급')은 중심적 역할을 하는데 단 이미 다른 요소들로 전위되거나 응축되어 '불순'해지고, 특정한 시간과 공간에 묶여 있는 상태로 그렇게 한다. 이로부터 '최종심급'이란 사회 형태들의 역사적 전개 배후에 있는 보증자가 아니라는 결론이 나온다. 대신 그것은 하나의 이론적 출발점, 곧 변화하는 사회 형태들 및 관련된 토대-상부구조의 특정한 형태들을, 적어도 일정한 정도까지, 이해하고 설명할 수 있게 해 주는 지점으로 나타난다. 이런 식으로 '최종심급'은 상부구조의 정치 형태들과 그 '미세한 사건들'을 넘어서는 경로를 개방한다.<br />
            여기서 마주치게 되는 것은 무엇인가? 한 편으로, 경제적 모순들이 정치 제도 및 실천의 구성체에 미치는 과잉결정적이고 과소결정적인 효과들이다. 다른 한 편으로, 이 제도와 실천이 생산양식과 생산관계의 역사적 형태에 역으로 미치는 영향이 있다. 현실은 항상 복합적 정세이지만,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그 결론이 인식론적 공백이고/거나 '경제'가 궁극적 관리자/보증자라는 주장에 이르는 것은 아니다. 과잉결정과 과소결정의 문제는 복합성을 감출 필요 없이 사회에 대한 이론적 분석에 활용될 수 있다. 이들은 복합적인 것을 이론적으로 포착할 수 있게 해 준다.<br />
            그렇지만 알튀세르가 복합적 과정들에서 작동하는 각각의 모든 모순들(그리고 다른 구성적 요소들)을 추적할 수 있고 그 효과들을 예상할 수 있다고 주장한 것은 전혀 아니라는 점을 반드시 덧붙여야 한다. (마찬가지로 프로이트 역시 꿈에 관하여 이런 류의 주장을 전혀 하지 않았다.) 또 알튀세르는 역사적 사건들을 확실하게 예측할 수 있다고 가정하지 않았다. 모순에 대한 분석은 불가피하게 불완전한 상태에 머물 수밖에 없는데, 그 이유는 분석의 대상이 되는 어떤 모순도 항상 알려지지 않은 '결여된 원인들'의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br />
            현실은 주체들에게, 분석가와 행위자들에게 투명하지 않고 불분명하다.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이 과정들이 모든 분석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꿈은 신비한 밤의 현상이라거나 "그것은 꿈일 뿐이었어"라는 대사로 족한 낮의 잔여물에 불과한 것으로 다뤄져서는 안 된다.) 한 편으로, 예컨대 경제의 주요 모순이 주어진 모순에 대해, 과잉결정적인 방식으로, 어떻게 영향력을 행사하는가라는, 만성적으로 설명되지 않거나 예견되지 않은 본성의 문제 앞에서 완벽함과 확실성을 포기하는 것과, 다른 한 편으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종심급'이라는 테제가 이 모순 자체에 삽입된 경제적 요소들을 분석가가 조사하는 데 도움을 준다는 점을 깨닫는 것은 별개의 일이다.<br />
            따라서 '복합성'은 미시적 원인들의 '혼돈'으로 번역되지 않는다. 복합성은 '미시적 원인들'이 나타나는 역사적 형태들의 전개라는 복합적 과정에 속한다. 그러나 이제, 이 과정들이 제공하는 맥락들을 통해, 표현적 총체성 및 그 추상적 도식의 사고에 묶여 있지 않은 이론적 포착을 얻을 수 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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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헤겔적 유형의 필연과 헤겔적 본질의 발전이 기각되어야 한다는 사실이 우리가 주관성의, '다원주의'의, 우연성의 이론적 공백 속에 있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정반대로, 헤겔적 전제들로부터 우리를 해방시키는 조건하에서만 우리는 진정으로 이 공백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된다. 과정의 전개와 이 전개의 모든 전형적 측면들을 실제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은, 그 과정이 복합적이고 하나의 지배소를 갖는 구조를 갖기 때문이다.12)<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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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세적 정치(마키아벨리)<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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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튀세르의 엥겔스 비판은 그가 1980년대에 우발성에 관해 쓴 작업을 보다 쉽게 평가할 수 있게 해 준다. 이 작업들에서 그는 무엇보다 연접들, 사건들과 정세들의 문제를 논한다. 이 (예비적) 연구들에서, 정세의 '예기치 않음'과 '응고'가 나온다. 비록 정세들이 항상 어느 정도 응고되거나 고정되거나 정돈되어 있더라도, 아주 발본적인 종류의 놀라움들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 갑작스런 전환들과 함께, 지배적 '상수들'은 의문에 부쳐지거나 부쳐질 수 있다.<br />
            두 종류의 필연성. 알튀세르가 그 밖에 무엇을 해 왔든 간에, 그는 또한 변화하는 정세라는 문제에 대처하려 노력했다. 그는 마키아벨리의 도움으로 이를 해 냈다. 행동의 기준과 조건을 설정하는 정세 안에서 살아가고 행동하는 이들의 시각에 특별한 주의를 기울였다. 마키아벨리는 여기서 '실천의 이론가' 또는 '실천의 철학자'로 그려지는데, 이는 실천의 일반 이론(또는 '실천 철학')을 제시한다기보다는, 그 자신과 그의 작업을 특정한 정세 안에 위치지운다는 의미다. 더욱이 마키아벨리는 행위자의 정치적 기획이라는 목표에서 시작함으로써 정치적 실천의 문제를 정치적 행위자에게 제시할 수 있게 해 주는 방식으로 이를 해 냈다.<br />
            여기서 혹자는, 이로부터 과거나 현재의 역사적 사건들이 법칙 없는(no law-like) 상수들의 지배를 받아 자의적으로 발생할 수 있다는 결론이 따라 나오지 않느냐고 물을 것이다. 즉, '우발적'과 '자의적'(또는 우연(chance)이나 운(hazard))은 동일한 의미인가? 알튀세르에게서 직접적인 부인이나 긍정을 기대하지 않아야 한다. 그는 필연적/자의적(그리고 확정적/불확정적)이라는 대립항을 가지고 작업하지 않는다. 그는 필연성을 해석하는 두 가지 종류를 구별한다.<br />
            첫 번째 해석은 우연이나 운, 우연성이나 예외가 필연성의 양상들로 나타나게 하는 것이라고 묘사할 수 있다. 이들은 헤겔주의자들이 주관적인 '중재'일 뿐이라고 쉽사리 비난하는 '규칙에 대한 예외', 또는 안개와 아지랑이와 광택일 수 있다. 알튀세르는 이 노선에 따른 필연성 해석을 호되게 비판한다.<br />
            두 번째 해석은 우발적 필연성을 그려낸다. 이 관점에 따르면, 필연성들은 우연성의 양상들이다. 주요한 것은 우연적인 것이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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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말해, 우연성을 필연성의 양상 또는 필연성의 예외로서 사고할 것이 아니라 필연성을 우연적인 것들의 마주침의 필연적 생성으로 사고해야 한다."13)<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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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연성에 대한 첫 번째 구상은 현실이 취할 수 있는 모든 형태들 에피쿠로스의 응고된 세계 같은 것 은 목적론적이거나 인과적인 법칙의 귀결들임을 함축한다. 두 번째 구상은 사전에 존재하는 이 법칙들, 그리고 그것에 의존하는 모든 인과적이거나 목적론적 설명들과 모형들을 의문에 부친다.<br />
            그러나 이 같은 수를 둔다고 해서 반드시 역사의 과정이 자의적이며 영원히 신비적이라고 결론내리는 것은 아니다. 역사적 발전이 인과적이거나 목적론적인 발전 법칙으로 환원될 수 없다- 그것들이 이 같은 법칙을 표현하지 않는다- 는 것은, 역사적 사건들이 이해불가능하고 인간 행위자가 예상치 못한 사건·사고와 관련될 뿐이라는 주장이 아니다. 상황들에 대한 설명이나 분석들은 완전함에 미달한다. 그것들은 불완전한 채 머물지 않을 수 없다. 사건(coincidence)들은 복합적 과정이다. 사건을 완전하게 설명한다는 것은 둘 또는 그 이상의 사물들의 연접에 대해 모든 원인들의 계열들을 설명한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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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주침은 원인들의 여러 계열들의 결과로 나오는 존재들의 계열들 사이에서만 존재한다."14)<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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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발성이라는 쟁점은 정치적 행위에 결정적이다. 자신의 날개로 날아오르는 미네르바의 올빼미에게 허락된 철학적 기다림과 주의란 존재하지 않는다. 정치적 행위자들은 정의상 무엇이 됐든 해야 하며, 모든 입수할 수 있는 정보에 기초한 최선의 가능한 방식으로 행동해야 한다. 활동가(man of action)- 또는 활동가 집단- 이 행동하는 방식과 그들이 반드시 지켜야만 하는 규칙들에 관한 (아무런 위험부담(risk)도 없는) 절대적으로 확고한 지침들은 존재하지 않는다. (알튀세르는 활동가가 캘러미티 제인(Calamity Jane) 같은 여성, 서부영화에 나오는 외로운 '우발적' 주인공일 수도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어지는 장에서 '활동가'라는 주제에 관해 논할 때 이 점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우발성은 행위자들이 오늘을 움켜쥐고 나름의 수를 쓰는 데 성공하거나 실패하는 개방된 기회들과 호기(그리스어의 카이로스(Kairos))를 의미한다. 분명 기회들은 위험부담을 수반한다. 그것을 통제하기 위해 사람들은 무언가를 해야 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행동에 기준과 조건을 부과하는 하나의 동일한 우발적 상황을 바꾸기 위해 노력할 수 있다.<br />
            활동가는 그/녀가 하는 것 또는 그/녀의 행동이 '선언하는' 것을 완전히 깨달을 수 없는 상황에 사로잡혀 있다. 그의 현재 상태에서, 그는 미래가 무엇을 가져다 줄 것이며, 그 자신의 행위가 어떻게 차이를 만들어낼지 또는 그렇지 않을지를 알 수 없다. 또 그는 지나간 일에 기초하여 다가올 일을 예측할 수 없는데, 왜냐하면 어제의 법칙이 내일도 계속 적절하리라는 점을 보장하는 것은 아무 데도 없기 때문이다. 그에게 미래란, 주어진 팀이나 선수의 이름이 없고, 사전에 그어진 규정된 공간이나 선이 없으며, 단번에 선포된 정당하거나 부당한 수에 대한 기성(旣成)의 의미가 없이, 각각의 방향에 열려 있는 경기장이다.<br />
            군주적 실천 - 우발적 현실. 마키아벨리의 군주 같은 활동가는 자기 사례의 특수성들을 고려해야 하며, 행동할 때 이 점을 명심해야 한다. 이 같은 정치적 판단의 학(學)과 기예는 유효한 정치적 행동에 사활적이 된다. 마키아벨리는 정치적 행동의 우발적 논리를 이해하는 시각을 그의 작업에 도입함으로써, 스스로를 여느 활동가와 구별해 냈다. 비록 마키아벨리가 젊은 외교관으로서뿐만 아니라 책의 저자로서 활동가이긴 했지만, 우리는 그의 작업이 여전히 '충분히 이론적'이라고 말하는 알튀세르에 동의할 수 있다. 어떤 특정한 정세와 그 개별성들 안에서 성공하기 위한 투쟁과 유기적으로 연관되는 앎과 조사의 종류를 예시하는 충분한 이론이 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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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편들(따라서 마찬가지로 모순들)에 대해서는 이 정도로 해 두자. 하지만 무엇보다도, 여기서 이론적 배치는 보편적인 것이 개별적인 것을 지배하는 고전적 수사학의 습관과 단절한다는 것을 드러내 준다.<br />
            그러나 이러한 개작(改作)도 여전히 '이론적인' 것이다. 아마도 사물의 질서는 '변화'해 왔을 것이고, 특수한 정치적 문제의 정식화와 고찰이 대상의 일반적 지식을 대체해 왔을 것이다."15)<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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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튀세르는 "거의 주목받지 않은 채 지나갔으며 장차 발전시켜야 할"16) 종별적 논리에 관해 썼다. 그의 마키아벨리 해석, 특수한 것이 일반적인 것 앞에 놓이는 이 '우발적 논리'에 따르자면 이는 어떤 종류의 것인가?<br />
            여기서 '우발적'이라는 형용사는 사건/사례 및 그 과정이 어떤 하나의 일반 법칙이나 이론으로 환원될 수 없고, 그것이 이들로부터 도출될 수 없다는 점을 가리킨다. 사건/사례는 어떤 일반 법칙이나 이론 하에 포섭될 수 없고 되어서도 안 된다. 활동가의 관점에서 보자면 이는 사건/사례의 과정을 일반 법칙이나 이론, 또는 정적인 사회적 유토피아로 예측하거나 통제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마키아벨리의('마초벨리적'(machoveiilan)) 개념들을 빌어 말하자면 각각의 사건은, 느닷없이, '운명의 꼬임으로' '심지어 가장 신중한 사람'에게도 등을 돌릴 수 있는 변화무쌍한 운(Fortuna, 포르투나) 또는 변덕스러운 운명의 여신의 영향을 받는다. 알튀세르는 다음과 같이 논평한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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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듯 모든 것은 계속해서 불안정하게 운동하고 있으며, 예측불가능한 필연성에 종속되어 있다. 이런 필연성은 운명의 여신이라는 신화적 개념의 형상에 의해 표상된다."17)<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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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덕스럽거나 예기치 않은 운[명]은 각각의 사건에서 일어나는 것에 뜻밖이고 위태로우며 우연적이고 예측할 수 없는 요소들, 이유들, 사건들의 낙인이 찍혀 있다는 것을 드러낸다. 예비적 방식으로 말하자면, 이 요소들이 독특하고 예기치 않은 '사건들'을 설명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각각의 사건은 유일한 특성을 갖는데, 왜냐하면 사물들은 둘이나 그 이상의 사례에서 동일한 방식으로 조직되거나 결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비록 인간들이 통상 어떤 식으로 행위하고 행동하는 경향이 있는지 말할 수 있을지라도, 각각의 종별적 사례에서 그들의 행동들은 다른 사례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벌어진다. 사건들이 복합적 정세들인 것은 이 때문이다. 사건들은 원인들의 수많은 계열들의 연접들이다. 사건들은 접합 또는 마주침들이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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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세(conjoncture)는 그 자체가 접합(jonction), 연-접(con-jonction)이요, 항상 변화하긴 하지만 응고된 이미 일어난 마주침, 스스로 자신의 무한한 선행원인들을 가리키는, 즉 선행원인들의 무한한 연속에 이 선행원인들의 결과, 예컨대 보르지아(Cesare Borgia)와 같은 어떤 특정한 개인인 이 결과를 돌려보내는 마주침이다."18)<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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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인-결과의 추론에 기초한 논리는 사건들을 분석하는 데 적절치 않은데, 왜냐하면 이런 종류의 논리를 사용하게 되면 분석 과정에서 원인들에서 결과들로 움직이는 선택지나 그 반대 방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는 다음으로 함축을 통한 추론을 요구하며, 이 같은 추론의 가능성은 인과 관계 및 관련 법칙에 대한 실재적이거나 상상된 지식에 있기 때문이다. 인과적 추론이 정확하려면 추론이 완전하고 체계적이어야 할 것이다. 이는 사건을 다룰 때 가능하지 않다. 그러므로 사건에 관한 추론은 위험하고 불완전하며 가설적이다. 알튀세르에 따르면, 이런 류의 '약한 논리'(weak logic)는 마키아벨리에게서 만날 수 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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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플라톤적, 아리스토텔레스적 전통과 반대로 마키아벨리는 원인-결과의 귀결 속에서 사고하지 않고, '만약'(if)과 '그렇다면'(then) 사이의 사실적 계기(繼起, consecution) 속에서 사고한다. (…) 이 경우에 문제는 더 이상 원인(또는 원리, 또는 본질)의 결과로의 귀결이나 논리적 도출이나 논리적 함축이 아니고, 단지 조건들의 계기이다. 여기서 '만약'은, 실제의 조건들이 주어졌다면, 기원적 원인이 없는 이 사실적 정세를 뜻하고, '그렇다면'은 그 결과 정세의 조건들 속에서 관찰할 수 있고 그 조건들에 연결할 수 있는 것을 지시한다."19)<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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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다가<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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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마사 논고』는 다름 아니라 실제 정세의, 즉 (변)덕(virt )과 운의, 이 매우 특별한 '논리'가 이미 작동하고 있던 역사적 사례들에 대한 조사이다."20)<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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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튀세르에 따르면 플라톤적이고 아리스토텔레스적인 사고방식 모두에서, 각각의 사건에 대한 원인, 본질이나 원리를 제시하는 것은 항상 가능하다. 사건들은 이것들로부터 파생되고 이것들을 표현하거나 이것들의 지도 아래 발전하는 것으로 사고된다. 아리스토텔레스적인 목적인(目的因, telos)는 물론 근대적인 논리적·인과적 사고의 의미에서라면 원인이 아니다. 그러나 알튀세르는 그것이 여전히 '일반적'이거나 '보편적'인 것의 일종이고, 그에 따라 정세의 사건들을 설명하고 이해하거나 정당화할 수 있는 것, 사건들이 그것으로 환원될 수 있는 류의 것이라고 주장한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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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기초를 모든 본질(Ousia, Essentia, Wesen)의 철학, 즉 이성(Logos, Ratio, Vernunft)의 철학, 따라서 기원 및 목적의 철학(여기서 기원은 이성 또는 최초 질서 속에서의 목적의 예상, 따라서 합리적 질서이든 도덕적, 종교적 또는 미학적 질서이든, 질서의 예상일 뿐이다.)을 근본적으로 기각하는 것 (…), 전체와 모든 질서(Ordre)를 거부하고 분산(데리다라면 자신의 용어로 '산포'(散布, diss mination)라고 할 것이다.)과 무질서의 편을 드는 철학을 위한 이 기각 (…)."21)<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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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키아벨리적인 방식으로 행위와 행동의 가능성을 판단하는 것은 정세에서 감지된 기준과 조건에 따라 사고하는 것에 기초한다. 이것들은 정세를 변화시키기 위한 기회들과 대안적 행위들의 가능성의 종류를 평가할 수 있게 해 주는 기초를 이룬다. 그들 자신의 행위를 분석하는 인간들은 항상적인 불안정성과 불확실성의 상태 안에 있다. 그들 행위의 성공을 보장해 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데, 왜냐하면 그들의 사건 분석과 행동 전략이 불안정한 기초 위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어떤 요소들이 포함되어 있었고 포함되어 있으며 포함될 것인지를 확실히 알 수는 없다. 불안한 분석은 사건 속에서 예견되고 할 수 있는 것에 기초해야 한다.22)<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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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관적'이고 '객관적'인 우발성<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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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활동가가 보유한 지식에 관한 알튀세르의 관점은 우발성과 우연의 해석에 관한 일련의 질문들을 내놓는다. 사건들은 그 자체로 '객관적으로' 우발적인가, 아니면 다만 행위자의 무지, '주관적' 우발성의 사례일 뿐인가? 누구의 또는 어떤 시각에서 사건들이 우발적으로 보이는 것인가, 아니면 모든 시각에서 그런 것인가? 만일 사건이 모든 관점에서 우발적이라면, 그렇게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발성은 사건의 '객관적'인 속성인가, 아니면 아는 주체 혼자서는, 우발적 요소들과 사건의 과정이 단지 지식의 결여에서 유래할 뿐임을 보여줄 만한 포괄적 이론이나 지식을 증명할 수 없다는 사실에서 나오는 것일 뿐인가?<br />
            말할 필요도 없이, 이 같은 '객관적'이고 '주관적'인 통념들은 너무 일반적이다. 마키아벨리와 그의 해석자들이 지적하는 방식대로 이 속성들을 더 자세히 살펴보면, 제3의 대안이 출현한다. 우발성은 현실의 주관적 특성일 수도, 객관적 특성일 수도 있다.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계속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 이렇게 하면 우발성의 '존재론적'이고 '인식론적'인 지위가 변화하고 동요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제3의 선택지의 도움으로 마키아벨리의 우발성이 주관적/객관적이라는 대립항(또는 주체와 대상의 분할)을 적용하기에 상당히 부적합한 관념이라고 간주할 수 있게 된다.<br />
            어떤 일반 이론도 다가오는 연접들을 예견할 수 없다. 이 같은 발견은, 그 자체만으로는 종종 주체들에게 있어 사뭇 분명하게 '놀라움들'이거나 '사건들'인 뜻밖의 우연적 요소들이 주체의 관점에서 그럴 뿐이라는 가정을 논박할 수 없다. 만일 주체가 더 잘 알았다면, 즉 만일 주체가 우연한 사건 안에 포함된 모든 요소들을 알게 되었다면, 사건들은 주체 편에서의 믿음에 불과한 것으로 판명될 수 있을 것이다. 사건들이 우발적이라는 알튀세르의 주장은 주관적 시각에서만 옳다고 할 수 있다. 반면, 보편적 원리들과 필연성들이라는 관념에 기초한 플라톤적이고 아리스토텔레스적인 전통은 자신의 편에 객관적 진리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br />
            최종 분석에서, 사건들과 그것들이 취하는 과정이 어떤 본질이나 기원적 전제 또는 목적인 이 사건들이 환원될 수 있는 에 의해 예정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알튀세르는 기원적인 원인, 역사 법칙이나 본질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가? 이 질문은 역전될 수 있다. 어떻게 기원적 원인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는가? 주체를 놀라게 하는 것들이 실은 기원적 원인이나 발전 법칙 또는 본질에 의해 초래된 것임을 어떻게 보여줄 수 있는가? 이런 주장은, 주장하는 사람이 '우연에 의해' 일어났다고 하는 사건이 실은 특정한 판별적인 인과 관계의 논리적이고 필연적인 결과로 산출되었음을 어떻게 설명할지 알 것을 요구하지 않는가?<br />
            앞서 인용한 구절에서,23) 알튀세르는 사건에 관한 지식이 원인과 결과에 따른 설명에 기초할 수 없다는 관점을 분명히 한다. 대신 이 같은 지식은 항상 우발적 논리와 구별되는 '약한' 추론의 결과다. 분명 어떤 활동가에게 있어서도, 적어도 그가 사건 안에 위치해 있다면, 그의 사건의 과거와 현재와 특히 미래는 (그가 이 점을 부인한다 하더라도) 불분명하다. 만일 그가 그의 사건과 역사의 현재 상태를 깨닫지 못한다면, 어떻게 그 미래를 예견할 수 있겠는가?<br />
            그러나 다시, 만일 그가 그 사례의 역사와 그 현재 조건을 완벽하게 안다면 어쩔 것인가? 그렇다면 아무 것도 그를 놀래키거나 '사건'처럼 느껴지지 않고, 사건이 더 이상 본성적으로 우발적 사건이지 않도록 미래를 예견할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한 알튀세르의 답변은 어느 정도 긍정적이다. 그는 사건을 아는 것이란 원인들 사건은- 이것의 연접이다- 의 모든 계열들을 제시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24) 적어도 여기서 알튀세르는 '심지어 원인이 되는 것도 다른 원인의 결과이다'라는 페트로니우스적 진술을 부인하는 데 힘쓰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 류의 재구성은 인간에게 불가능하고, 사건이나 정세 안에 있는 활동가에게는 더더욱 불가능하다. 사건의 과거, 현재, 미래를, 한 번에 또는 지적인 통찰로써 알고 이를 철저히 해석하는 데까지 나아가기 위해서는 분명히 전능한 신이 될(또는 신의 계획을 완전히 알)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인간 주체의 입각점에서 우발적인 것은 신적 입각점에서는 비(非)우발적이다.<br />
            반면, 아리스토텔레스적 전통의 대표자들이 이런 류의 신적 지식을 더 많이 갖고 있는지는 의문인데, 그들 역시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들을 방어하기 위해서 헤겔의 미네르바의 올빼미를 언급하고, 만일 이 같은 역사 철학들이 가능하다면, 그들의 시간은 오직 사후(事後)에, 사후적으로(post festum)에 올 것이다 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발성의 문제는 마키아벨리적 부류의 활동가에 국한될 것이다. 문제가 되는 것은 주어진 순간에 그가 입수할 수 있는 불충분하고 결여된 지식에 기초해 결정을 내려야만 하는 활동가일 뿐이다. 그는 땅거미가 지는 것을 기다릴 수 없다. 그는 '정오의 칠흑' 안에서 행동해야만 하는 것이다.<br />
            그렇다면 우발성을 현실의 객관적 특성으로 다룰 필요가 없다. 이는 주체의 상황과 그것이 일으키는 믿음에 관한 것이 될 것이다. 사람들은 우발적 추론을 가지고 위험부담들과 유쾌하지 않은 놀라움들에 대비할 수 있지만 그것을 제거할 수는 없다. 신의 눈에는 우연이 아닌 것이 활동가의 관점에서는 대부분 사건이 된다.<br />
            그러나 알튀세르가 이 '주관주의적' 관념을 받아들이는 것으로 만족할까? 우발성을 혼란스러운 인간들과 결코 당황하지 않는 신의 구별로 이끄는 방식에 만족할까? 여기서 다시 알튀세르의 답변은 예와 아니오 모두이다. 우연은 '정세 안에서의' 앎이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되는 어떤 것이다.25)직분을 다하는 철학자나 전능한 신과는 달리 활동가는 위험부담을 감수해야 하며 유쾌하거나 유쾌하지 않은 놀라움들에 직면해야 한다. 마키아벨리의 저작이 이 문제적 영역을 가로지르는 길을 가리키는 까닭은, 다름 아닌 마키아벨리가 특정한 종별적 사건 안에서 행위하는 데 주로 관심을 가졌기 때문이다.<br />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적 철학자 역시, 현실과 그 법칙을 아는 문제에 이르면, 확실성을 결여한다.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그들은 우연에 좌우되는 상태에 머문다. 그들이 헤겔의 충고에 유의하여 황혼을 기다린다손 치더라도, 그들은 이 늦은 시간에조차, 왜 사건의 과정이 그런 식이었는지를 분명하고 논란의 여지 없이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플라톤적이고 아리스토텔레스적인 전통은 우선 사회의 본성이나 사물의 본성적 질서와 발전을 정의하는 것에 따라 구축되는 철학 체계를 제공한다. 알튀세르에게 있어 이 체계들은 인간들이 '사물 안에서 작동하는 진리'에 기초하여 말할 만한 것에서 멈출 수 있을 만큼 겸손하지 않다. 이 체계들은 비록 존재론적이거나 도덕적인 공준(公準)으로 제시된다 할지라도, 상상의 산물에 불과한 것으로 밝혀진다.26)<br />
            『마키아벨리의 고독』에서 알튀세르는 마키아벨리가 궁극적으로 격리된 것은 바로 이 상상들을 폐지했기 때문이었다고 쓴다. 그에 따라 그는 그 귀결을 견디지 않으면 안 된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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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것이 아마도 마키아벨리의 고독에 있어서 궁극적인 지점일 것이다. 그가 정치사상의 역사에서, 한 편으로 그가 발본적으로 기각한 도덕적, 종교적, 관념론적인 정치사상의 오랜 전통, 다른 한 편으로 모든 것을 침잠시켰으며 신흥 부르주아지가 자아상을 발견했던 자연법이라는 정치철학의 새로운 전통 사이에 있는 유일하고 불안정한 장소를 점유했다는 사실 말이다."27)<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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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키아벨리는 현실을 증명하는 다양한 존재론적, 도덕적, 또는 여타 본질주의적 방식에 대한 관계에 있어서 '발본적 기각'을 대표한다.28) 그가 자신의 시대가 아닌 사례를 살펴볼 때조차, 그의 분석은 그 자신이 '사물 안에서 작동하는 진리'라 부른 것에 기초한다. 이것이 등장하는 것은 유명한 『군주론』 15장의 이름난 문단에서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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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나는 이 문제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유용한 것을 쓰고자 하기 때문에, 이론이나 사변보다는 사물의 실제 진리에 관심을 경주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들이 현실 속에 결코 존재한 것으로 알려지거나 목격된 적이 없는 공화국이나 군주국을 상상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이 어떻게 사는가'는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와는 너무나 다르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행해지는 바를 행하지 않고 마땅히 해야 하는 바를 고집하는 군주는 권력을 유지하기보다는 잃기가 십상이다. 어떤 상황에서나 선하게 행동할 것을 고집하는 자는 많은 무자비한 자들에게 둘러싸여 몰락을 자초할 것이 불가피하다. 따라서 권력을 유지하고자 하는 군주는 필요하다면 부도덕하게 행동할 태세가 되어 있어야 한다."29)<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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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주 명시적으로 알튀세르는 우발적 유물론의 관점에서 사실이나 기성 사실(faits accomplies), 그리고 결과들은 원인을 갖지 않는다고 주장한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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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인 없는 결과, (변)덕과 운의 (에피쿠로스적인) 우발적 마주침으로부터, 즉 우연한 기회로부터 태어나는, 우발적이기 때문에 원인이 없는 결과 말이다. 결과의 철학은 결코 선행원인이나 선행본질의 기성사실로서의 효과의 철학이 아니라, 전혀 반대로 우발적인 것[우발성]의, 즉 그 결과가 사실적 표현인, 그리고 달라질 수도 있었던 주어진 조건들의 주어진 결과인, 그러한 우발적인 것의 철학이다."30)<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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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는 원인없음이 알튀세르 생각에 순전한 환상이라는 관념을 가리키지 않는가?(그리고 그는 환상들에 찬성하지 않는다!) 그보다 알튀세르에게 있어 원인없음은 현실의 객관적 특성이 아닌가?<br />
            알튀세르는 우발성이, 기성 사실의 결과란 '우연히' 또는 '순전히 뜻밖에' 즉 자의적인 방식으로 그런 것임을 의미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마키아벨리를 언급하면서 그는 '우발적 연접'은 (변)덕과 운세의 호기이거나 연-접(con-join)을 포함한다고 말한다.31) 사건의 조건들, 그 정황들, 그 모든 복합성을 지닌 기준과 요구들은 해야 할 일과 정세가 형성되는 방식의 한 원인이 된다. 결정적인 속성은 '사실적'인 것이다. 라틴어 팍툼(factum, 사실)의 본래 의미는 행위와 사건, 사실과 결과다. 사실적 사건은 수많은 행위들과 사실들의 결과이며, 이로부터 뒤따르는 사건들과 행위들, 사실들의 조건들이 형성된다.<br />
            실존하는 사건들과 그 계기에 관해서, 어떤 단일하고 종별적인 본질을 정의할 수 없다. 이는 다양한 방식으로 서로 절합되어 있는 사실들과 행위들의 헤아릴 수 없는 합의 문제다. 사건의 유효한 요소들은 원인과 결과(그리고 이를 서술하는 일반 법칙)의 동일하고 (선형적인) 인과 연쇄의 일부가 아니다. 그보다 사건은 행동의 조건과 정황들이 뒤얽힌 구조물의 일종이라는 특징을 갖는다. 이 안에서 서로서로 다르게 들러붙는 무수한 원인들과 결과들이 뒤섞인다. 그 결과는 그 탄생을 둘러싼 정황들의 '사실적 표현'이며, 이 정황들의 본성은 사실적이다.32) <br />
            알튀세르는 '중심의 부재'를 말한다. 이 관념은 그의 헤겔적 총체성 비판에서 그려지는 '복합적 전체', 그리고 원소들을 관통하는(inter-elementary) 과잉결정들과 과소결정들로 특징지어지는 복합적인 상호관계를 떠오르게 한다. 사례들의 높은 수준의 복합성 때문에, 행복한 사건들이 발생한다. 행운은 일반 법칙을 통한 예감이나 설명을 넘어서는데, 왜냐하면 유일한 연접들은 이전이나 다른 곳에서는 결코 발생한 적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서로 다른 사례들(이나 사건들) 또는 한 사례의 서로 다른 순간들 사이에서 상수들을 감지할 수 있다. 이는 주관적 우발성의 수준을 감축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어떤 일반 이론을 가지고 '상수들'이나 '일반적 경향들'이 결합할 수 있는 모든 가능한 방식들을 포괄하는 것은 어떤 주어진 사례나 사건에서도 불가능할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br />
            즉 상수들, 규칙들, 지배적이고 비(非)지배적 경향들을 발견함으로써 사례들에 대한 이해를 촉진하고, 따라서 애초에 '사례'(나 '사건')에 관해 말하기 시작하는 것이 가능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연접들이 독특하기 때문에, 어떤 사건도 일반적인 것을 예시하지는 않는다. 이는 사례들이 일반 이론을 (반증하거나 확증하는 식으로) 시험하는 역할을 하는 포퍼(Karl Popper)적인 반증 관념이 사건에 대한 마키아벨리의 구상을 이해하는 데 맞지 않다고 말하는 것이다. 알튀세르에 따르면, 스피노자와 그의 '3종의 지식'에 관해서도 동일하게 말할 수 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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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여기서 다만, 내가 스피노자에게서 배운 가장 귀중한 것이 '3종의 인식', 개별적인 동시에 보편적인 사례의 지식의 본성이라는 점을 말하고 싶다. 이에 관해 스피노자는 탁월하지만 종종 오해받은 예시를 제시하는데, (그의 『신학정치론』에 실린) 개별 인민의 역사, 개별 유대 역사가 그것이다. 나의 '사례'는 이 질서 중 하나로서, 그 개별성 안에서 인정되고 다뤄진 의학적·역사적·분석적인 모든 '사례들'과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 개별적 사례가 보편적이라는 점 이는 각 사례에서 반복되는 상수들(따라서 포퍼의 확증가능하거나 반증가능한 법칙들이 아니라)을 제시하며, 개별적 사례들에 대한 이론적·실천적 취급의 도입을 허용할 것이다. 마키아벨리와 마르크스는 거의 주목받지 못한 채 지나갔으며 장차 발전시켜야 할 이 논리와 다르게 사고하지 않는다."33)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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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퍼적인 반증의 시각은 역사적, 의학적, 또는 (정신)분석적 사례들(알튀세르 자신의!)에 맞지 않는데, 왜냐하면 이들은 이론에서 제시된 어떤 이상적 사례의 예시가 아니기 때문이다. 관련된 일반 이론에 포함되지 않는 사건이 발생하거나, 사건들이 이론에서 지시된 법칙들에 따르지 않는 사례가 발생하면, 이는 포퍼적 의미에서라면 이 일반 이론의 반증이거나 예외적 사례를 의미할 것이다. 이는 옳지 않다. 알튀세르가 「모순과 과잉결정」에서 이미 말한 것처럼, 모든 사례들은 '예외들'이다.34)예시적 사례들이나 여기서 벗어나는 사례들이란 존재하지 않는데, 왜냐하면 각각의 사례는 특별한 사례이고 어떤 사례도 표준적 사례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기는 하지만 알튀세르는 인용된 구절에서 보편적인 것이 개별적인 것을 이론적이고 실천적으로 연구할 수 있게 해 준다고 쓴다. 비슷하게, 그는 이미 자기비판적인 언급에서, 구체적 대상에 대한 구체적 연구는 '보편성의 최소치'를 필요로 한다고 말한다.35)<br />
            그러나 '보편적'인 것은 보편 이론을 가리키지 않는다. 이는 다만 특정한 상수들이 한 사례에서 다른 사례로 되풀이된다는 의미일 뿐이다. 만일 사례가 본성적으로 완전히 유일하다면, 그것은 다른 사례들과 아무런 관계도 갖지 않을 것이고, 따라서 그것을 사례로 인식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질 것이다. (사실 상, '사례'라는 관념 자체가 공허한 수다가 될 것이다. 사례라고 한다면 적어도 어떤 측면에서 다른 (이전의) 사례들과 유사해야 한다는 점, 특정한 상수들이 한 사례에서 다음 사례로 되풀이되어야 한다는 점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비록 각각의 사례가, 유대민족의 역사나, 10월 혁명에서 무르익은 러시아 역사에서처럼, 다른 사례들에서 발생하지 않는 우연적이고 개별적인 특성들을 포함하긴 하지만 말이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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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례들을 다루기<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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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에서 다룬 사고의 흐름을 명료히 하려면, 활동가의 사례를 재평가하는 것이 중요하다. 사건 안에서의 활동가의 행동을 규정하는 본질적 기준과 조건 중에는 행위자에 고유한 (변)덕이 있다.<br />
            마키아벨리의 사례에 관해 논평하면서, 알튀세르는 (변)덕과 운의 마주침을 말한다.36) (변)덕을 가진 행위자는 행위자에게 영향력을 발휘하는 정황들 안에서 차이를 만들어낼 수 있다. 마키아벨리에게 있어 운은 행위자들의 삶에 아무튼 외적으로 작용하는 신비한 힘(forza del destino)이 아니다. 행위자의 (변)덕은 적어도 일정한 수준까지는 행위자의 운을 틀지우는 데 일정한 결정권을 가질 수 있다. 점성술에서와는 달리, 인간 세계의 정세는, 마키아벨리의 설명을 따르자면, 내재적이고 현세적이며 세속적이다. 아주 확실하게, 인간 정세는 별도의 체계로서 현세적 삶의 질서에 외적 효과를 행사할지도 모르는 천체(天體)의 '천상적' 성좌(conjuncture, 정세)가 아니다.<br />
            이로부터 행동을 취함으로써 행위자가 행동의 정세적 기준과 조건의 한 원인이 되고 이를 틀지울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비록 이 시도가 바로 그 기준과 조건이라는 토대 이외에 아무런 다른 토대 위에서도 발생할 수 없지만 말이다. 따라서 알튀세르는 여기에서 산출된 정세와 운이 신비한 설명력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가 보듯이, 마키아벨리의 기획은 오히려 '실제로 작동하는 진리'를 가지고 정세와 운을 합리적으로 설명함으로써 그것들의 신비로움을 벗겨내는 것이다.37)<br />
            사태를 조금 연장하면, 원인과 결과가 뒤얽힌 직물 전체가 어떤 보이지 않거나 숨겨진 기원적 원인 또는 원리의 표현이라고 말하는 것이 여전히 가능할 수 있다. 그러나 모든 입증 너머에 있는 이 같은 믿음은 행동해야 하는 이에게는 아무런 쓸모가 없다. 즉, 임박한 사건에 대해 우주론적-형이상학적-신학적 시각을 취하는 것은 여기에서 무익하다. 더 나쁜 것은, 그 숙명론적 교리가 수동성을 유도할 수도 있다는 점인데, 왜냐하면 이 교리는 정황들을 분석하고 적절한 수단들을 취할 것을 북돋는 대신 행동의 가능성들을 축소하기 때문이다.<br />
            분명, 각각의 사건마다 활동가들이 있다. 누구는 성공하고, 다른 누구는 실패한다. 잘 알려져 있듯이, 마키아벨리는 그 누구의("당신은 영원히 지속하는 공화국을 세울 수 없다") 성공도 보장되거나 영속적이지 않다는 의견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는 하지만, 활동가는 그것(국가의 지속, cf. 『마키아벨리와 우리』, p. 40)에 관해 무언가를 할 수 있다. 성공은 '신의 손'에 있거나 '별자리에 쓰여 있거나' '타고난 능력'에만 있지 않다. 그것은 인간이 이용하거나 이용하지 못하거나 하는 사실적 가능성과 기회다.<br />
            인간의 행복이나 불행이 처음부터 예정되어 있다고 또는 디드로의 숙명론자 자크가 생각했던 것처럼 위대한 책들에 쓰여 있다고 가정해 보라. 활동가의 관점에서 보면 이는 사물들의 의미를 박탈할 것이다. 어쨌든, 그것은 행위할 수 있는 그/녀의 능력이나 힘을 망칠 것이다. 여기서 다시, 철학자는, 우주론적이고 형이상학적이며 신학적인 근거에서, 행동을 방해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어떤 본원적인 원인이나 법칙, 또는 원리의 표현이라고 생각할는지 모른다. 다음으로 점성술사는 현세적 정세들이 단지 천체적 성좌의 결과일 뿐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런 류의 주장은 결코 원리들의 숨겨진 법칙들을 적합하게 서술해 내지 못한다. 그것이 틀림없이 어려운 까닭은, 이 같은 법칙이 사건의 과정에서 발생하는 가장 미세한 사건들조차 망라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br />
            활동가의 시각에서, 우주론적-형이상학적-신학적 관점은 무용할 뿐만 아니라 해롭기까지 하다. 이는 자신의 시대의 종교에 관해 마키아벨리가 가졌던 견해였다. 철학자들의 주장은 아마 사실이 아니라고 증명할 수 없겠지만, 이는 그것들이 정의상 입증 너머에 있기 때문이다. 일찍이 데이비드 흄(David Hume)이 말한 것처럼, 그들은 아무런 실천적 소용에도 쓰이지 않을 것이다.38) 이 모두는, 주관적인 것과 객관적인 것의 이원론에 기초한 관점에서 우발성을 보는 것에서 벗어나야만 한다는 결론에 이른다. 우연의 '객관성'이나 '주관성'에 관해 다투는 것은 악순환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이와 같은 비생산적인 논쟁에서 벗어나려면 마키아벨리에 대한 알튀세르의 우발론적 해석이 가지고 있는 더 큰 명료함을 추구할 필요가 있다. 이를 더욱 발전시키는 것은 주관적이고 객관적인 우발성 너머로 감히 나아가는 것이다.<br />
            이는 활동가의 위치와 시각에 집중할 것을 요청한다. 적어도 마키아벨리의 문헌에서는 이 불완전한 위치는 (무지 따위를 의미하는) 부정적 범주만이 아니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행위를 도울 수 있는 인지적이고 동적인 입장이나 시각을 가리킨다. 1) 상상과 유토피아를 비판하고 2) 철학적이거나 우주론적인 체계를 극복하며 3) 행동을 취하기 위한 사실적 기준과 조건, 가능성을 판단하고 활용하는 것이 그것이다.<br />
            <br />
            주관적/객관적 이분법을 넘어서<br />
            <br />
            마키아벨리에게 있어, 운이나 정세는 인간 삶에 외적으로 영향을 행사하는 초월적인 것이 전혀 아니다.39)그것은 주관적인 것과 객관적인 것 사이의 해석적 분할을 기각하도록 강력하게 촉구하는 것이다. 그들 자신의 '주관적' 관점에서 우연을 볼 때 인간들은 어떤 외부적 체계를 보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그들 자신이 자신들의 행동으로써 참여하거나 결합하는 사건 또는 정세를 보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두 가지 차이점이 분명해진다. 첫째, 한 편으로 자연과학자들이 우연을 분석하는 전통적인 방식과, 다른 한 편으로 마키아벨리의 우발적 운 사이의 차이가 있다. 둘째, 한 편으로 과거에 일어난 일(또는 기성 사실)을 설명하는 역사가와, 다른 한 편으로 자신을 미래로 내던지는 활동가 사이의 차이가 있다.<br />
            자연과학에서의 운. 자연과학자가 가스 분자들의 운동을 관찰하고 있다고 가정하자. 그는 이 운동에 참여하지 않으며, 적어도 연구 대상에 자신의 측정 수단이나 그녀 자신이 미치는 어떤 영향도 제거하려고 노력한다. 그가 무언가를 변경하더라도, 분자들을 지배하는 법칙이나 가능한 편차의 원인은 여전히 연구자 가 아닐 것이다. 자연과학자들은, 비록 완전하게 작동하지 않을지라도, 실험의 타당성과 신뢰성을 최고 수준으로 유지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마찬가지로, 우연에 관심을 가진 자연과학자들이 관찰하는 가스 화합물은 그녀에게 있어 유일하고 역사적인 '가스 화합물의 사례'로서 의미를 갖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특정한 가스 분자가 어떤 화합물에서 임의로 움직이는 방식에 관한 비역사적이거나 역사외적인 사례로 나타난다. 연구의 대상이 되는 바로 그 화합물에서 어떤 종류의 무작위성이 나타나느냐는 연구의 목적에 있어 전혀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다. (물론 동일한 화합물의 서로 다른 표본과 각각의 분자 운동을 비교하여 관찰된 무작위성을 설명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법칙을 찾기 위한 것이 요점이 아니라면 말이다.)<br />
            활동가의 경우에는 사정이 달라진다. 활동가는 자신이 조사하고 있는 사건의 일부이고 일부가 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그의 사건은 그에게 있어 유일한 역사적 사례다. 그것은 자신의 삶과 미래의 도가니다. 반면, 과학적 실험은 반복가능해야만 한다 즉 다른 과학자들이 다른 시간에 다른 곳에서 그것을 수행할 수 있어야만 한다. 그들과 달리 활동가는 사건의 과정에 대한 그의 영향력을 최소화하는 것이 아니라 최대화, 적어도 증진시키려고 노력한다. 따라서 그는 그의 사례의 '주체'이자 '대상'이며, '원인'이자 '결과'이다. 그가 사건의 과정을 판단하고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이 많을수록, 그는 그의 정세 안에서 더 잘 행동할 수 있다(비록 이를 위해 가끔 수동적으로 기다리고 사태를 그대로 내버려 두는 것이 필요할 때도 있지만 말이다.).<br />
            이는 활동가가 자신의 정황을 분석할 때 우발성을 기각해야 한다는 것을, 자신의 정치적 재치와 기예 안에서 놀라움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힘을 다해 '주체적'인 동시에 '객관적'으로 개입하려 노력함으로써 우발성이나 놀라움들을 가장 명확하게 고려한다. 그가 제기하는 핵심 질문은 과거형인 "무엇을 했는가?"도, 보편적 시간인 "무엇을 할 것인가?"도, 심지어 미래학적인 "무엇을, 일반적으로, 할 것인가?"도 아니다. 그것은 "무엇을 지금 여기에서 할 것인가?"라는 개인적이고 날카로운 질문이다. 알튀세르에 따르면, 이 '정치적' 질문은 마키아벨리에게 중추적이었고, 심지어 그가 과거 사건들의 과정과 당시 내려진 결정들(마찬가지로 많은 모의실험을 포함했던)을 분석(하고 모의실험)할 때조차 그랬다.40)<br />
            이제, 우발성을 주관적인 방식으로 바라보는 것은, 활동가가 자신의 상황을 분석하면서, 가능한 한 최대한으로, 그의 사례와 활동의 사실적 기준과 조건, 정황들을 정하려고 노력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서 그는 일정한 형태로 한 사례에서 다른 사례로 되풀이되는 상수들을 아는 것에서 이익을 얻는다. 이로써 그는 그의 무지를 감축하거나 주관적 임의성의 요소를 줄일 것이다. 그러나 활동가는, 자신이 무지, 알려지지 않은 이유들과 예견할 수 없는 결과들을 완전히 제거할 수 없다는 점을 안다. 인간이 사건 안에서 작동하거나 그것에 기여하는 요소들 전체를 도표로 그린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즉 모든 놀라움들을 그 위험부담과 함께 제거하고 사례를 주권적인 방식으로 통달하는 것, 그러니까 지상의 신이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br />
            한 사건의 원인들은 현세적일 것이지만, 현세성은 복합성의 부재나 통달의 약속을 가리키지 않는다. 활동가는 그 자신의 행동이 사건들의 과정에서 일정한 역할을 한다는 점을 안다. 더욱이 그는 그의 행동이 다른 행위자들의 행위, 그리고 또 사건의 다른 기준과 조건들과 연접하면서 의도치 않은 결과를 낳는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활동가는 사건 속에 개입하려고 노력하기 때문에 또한 그 과정에 개입하여 성가신 놀라움들을 피할 수 있고 위험부담들을 제거할 수 있도록 노력한다.<br />
            활동가가 이를 달성하는 데 완벽함이란 없다. 그렇다고 해서 활동가가 인간적으로 가능한 수준의 우발성에 영향력을 가질 수 없는 것은 아닌데, 이는 ⅰ) 특히 그 자신의 사례와 ⅱ) 더 일반적으로 그 수준의 변화의 한 원인이 되는 것 양 쪽에 걸쳐 있다.<br />
            ⅰ) 활동가는 사건과 정세를 틀지어 '유쾌하지 않은 놀라움'들이 그 자신에게보다는 그의 적수에게 벌어지게 하는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 그는 사건에 연관된 다른 행위자들보다 더 우수하고 더 능숙하게 우발성을 이용하고 통제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마키아벨리에게서 가장 흥미로운 구절들 중 하나는 자신의 적수들에게 불운한 걸림돌을 배치하고 그것을 최대한 이용하는 방법에 관한 것이다.<br />
            ⅱ) 활동가가 자신의 정세를 틀지을 수 있기 때문에, 그는 또한 사건의 우발성의 수준에 개입할 수 있다. 그는 정세의 기준과 조건을 틀지어 그 사건들이 다른 경우에 그랬을 것처럼 위태롭지 않게 할 수도 있다. 사실상 우발성의 수준에 관해 할 수 있는 일이 있기 때문에, 우발성은 이 점에서 분명 주관적 무지와 다른 것이 아니면 안 된다. 우발성은 이런 의미에서 '인간적으로 객관적'이다. 비록 상상된 신의 관점에서 볼 때는 사건과 그 안의 활동가가 '객관적으로 비-우발적'일지라도.<br />
            알튀세르의 마키아벨리 해석에서 우발성이라는 쟁점을 이해하려면, 주관적 이해와 객관적 이해의 분할이 말하자면 상상된 신의 시점에서의 일반적 이분법이나 절대적 용어로 제시되지 않는다는 점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우발성은 인간의 입각점에서 보아야 한다. 그럴 때에만 인간적인 객관적 우발성들과 주관적 우발성들을 구별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인간적으로 객관적인 우발성은 어떤 인간 이론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복합적인 사건들에 관련된 것이다(왜냐하면 각각의 이론이, 관련 법칙과 함께, 속이거나 부서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은 비록 주어진 보장이 없고 잘못된 순서들이 많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복합성들에 대한 스스로의 자각을 높이(고 우발성의 주관적 수준을 감축하)는 동시에 사건들이 그들에게 더 적은 놀라움을 초래하게 틀지음으로써(즉 우발성의 인간적으로 객관적인 수준을 감축함으로써) 차이를 만들어낼 수 있다. 전능한 신은 이 같은 연구와 변경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완전한 존재는 가장 복합적인 상황에서조차 지배적인 법칙들에 대한 완전한 지식을 소유하고 있는데, 비록 이것들이 인간적 입각점에서 판단할 때 우발성에 대한 통제를 넘어선다 할지라도 그렇다.<br />
            역사에서의 운. 역사가들과 달리 활동가의 과거 분석의 특징은 이미 발생했거나 완결된 것(기성 사실)을 설명하거나 이해하는 노력에 있지 않다. 혁명적 지도자 레닌처럼 활동가가 상황을 분석하는 것은 행동 전략을 계획하기 위해서다. 이들은 반드시 현재에서 미래로 기투(企投)된 자신들의 기획의 필요에 봉사해야 한다.<br />
            어떤 역사가들은, 역사의 특징이 필연성이 아니라 우발성의 우위라는 알튀세르적 관점에 동의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연구하는 역사는 여전히 돌이킬 수 없이 있는 그대로의 기성 사실의 일종이다. 게다가 역사가들은 더 이상 예컨대 민족의 탄생을 사건들의 필연적인 목적론적 계열들의 결과로 신비화하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연구하는 사건은 (비록 다양한 해석을 허락하긴 하지만) '응고된' 과거의 일부다. 반면 활동가들에게 있어 우발성이 갖는 의미는 피해야 하는 과거와 현재의 위협이자 이용해야 하는 약속이다. 그들 자신의 사건은 모두 미래에 열려 있는 수많은 좋고 나쁜 현재적 가능성들의 경기장으로서의 의미를 갖는다. 활동가가 (변)덕을 갖는 것은 그가 이미 발생한 일에 대해 탁월한 설명을 제시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니다. 그가 (변)덕스러운 것은 자신의 앎과 수단을 가지고 우발성을 통제할 수 있으며, 다른 이들보다 더 그것을 잘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는 놀라움들을 예견하고 심지어 다른 보다 덜 (변)덕스러운 행위자들에게 손해를 입히기 위해 그것을 조작함으로써 우발적 상황들을 다룰 수 있다.<br />
            활동가가 점하는 위치는, 역사가의 위치와 비교할 때, 유혹적인 동시에 두렵다. 역사가들이 부러움을 느끼곤 하는 것은, 활동가의 위치가 사건들의 과정에서 자기발명의 가능성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이는 알튀세르의 우발적 유물론에서 근본적인데, 예컨대 혁명적 지도자로서 레닌의 모습처럼 정치적 행동의 진정한 가능성들을 분석하는 데서 그렇다. 1917년 러시아에서 벌어진 사건의 과정에서, 레닌은 분명하게 이야기했지만, 정세의 어떤 것도 볼셰비키가 수행한 혁명적 행동이 효과를 거둘 것이라고 보장하지 않았다. 반면, 그들의 성공에 절대적인 장애물도 없었다. 볼셰비키의 성공은 우발적인 가능성, 기회였으며, 이를 이용하려면 상황에 대한 적절한 분석뿐만 아니라 적기(適期)에 이루어지는 행동 역시 필요했다.<br />
            활동가의 위치 안에 있는 위협적 측면이란, 그의 운이 영리한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못 쓰게 변할 수 있다는 점이다. 만일 그의 행동이 그의 계획을 부수고 자신을 망치는 의도치 않은 결과를 초래하는 식으로 결합된다면. 이는 체자레 보르지아(Cesare Borgia)에게 생겼던 일인데, 그는 가능한 최대 수준의 (변)덕스러운 활동가였지만, 결정적 순간에 병에 걸렸고, 마키아벨리에 따르면 로마냐의 주도권 하에 북부 이탈리아를 통일하는 기회를 잃었다. 알튀세르의 논평은 다음과 같다.<br />
            <br />
            <br />
            
            "마키아벨리는 원자화한 이탈리아에서 이 마주침이 일어나기만을 바랐을 뿐이다. 그의 뇌리에는 분명히 체자레가 항상 떠나지 않았다. 무에서 시작하여 로마냐 지방에서 공국을 이루었고 율리우스 2세에 거역하여 그를 면직시키기 위해 로마로 진격하던 중 결정적인 시점에서 레반나의 습지에서 병에 걸려 쓰러지지 않았더라면 피렌체를 장악한 후 북이탈리아 전체를 통일했을 저 체자레 말이다."41)<br />
            <br />
            <br />
            비록 활동가가 사건의 과정에 차이를 만들어낼 수 있지만, 그는 사물들이 진행되는 방식을 통제하는 중심이 아니다(중심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발성은 우여곡절을 일으키며, 현실의 약속들은 새로운 종류의 인간 인물과 개인, 정세와 국가의 탄생을 위한 가능성이다. 이렇게 말하면서 알튀세르는 파국의 선택지를 잊지 않는다. 공개적으로 제시된 것은 역사가 스스로를 시작도 목적도 없는 위협과 가능성의 유희로 제시하는 파노라마다.<br />
            <br />
            <br />
            
            "그리하여 다음과 같은 것, 즉 이들 세계의 인물들, 개인들, 정세들 또는 국가들을 주어진 전제들의 필연적인 결과로서 고려하고자 하거나 어떤 목적의 잠정적 예상으로 고려하고자 하는 사람은 방황하게 되리라는 것이 아주 명백하다. 왜냐하면 그는 이 잠정적 결과들이 다음과 같은 이중의 이유에서 잠정적 결과들이라는 것, 즉 그것들은 지나가 버릴 것이라는 점에서뿐만 아니라, 또한 그것들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으리라는, 또는 만약 그것들이 상당한 운, 이 형태가 (우연히) 주재하게 된 서로 결합한 요소들에 '지속'의 '기회를 부여하는 상당한 운의 알맞은 토대 위에서 일어나지 않는다면 오직 하나의 '짧은 마주침'의 효과로서만 일어나리라는 점에서 잠정적 결과들이라는 이 사실을 부정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 통하여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것들을 알게 된다. 즉 우리는 무 속에 있는 것, 무 속에 사는 것이 아니며, 역사의 의미(역사의 기원들에서부터 역사의 종료에 이르기까지 역사를 초월하는 목적)는 없지만 역사 속에 의미가 있을 수 있다는 것, 왜냐하면 이 의미는 그 자신 역시 의미를 지니고 있는 유효한 그리고 유효하게 알맞은 마주침 또는 파국적인 마주침으로부터 태어나기 때문이라는 것 말이다."42)<br />
            <br />
            <br />
            그러나 역사의 의미는, 인간의 삶에서 발생하고, 인간이 살아가면서 만들거나 야기하는 이 사건들 안에서만 은폐된다. 예컨대 민족 국가의 탄생은 역사의 절대적 의미(Meaning)를 표현하는 목적론적 과정이 아니다. 그것은, 그 우발성 안에서, 사건들의 복합적이고 우연적인 계열들이며, 표현된 절대적 의미 따위로 사후적으로 설명해서는 안 된다. 역사란, 역사의 연속적 단계들 안에서 살아가는 인간들에게 열려 있으며, 그들의 행동을 통해 그들에게 의미를 갖게 되는 과정으로, 그리고 미래에 열려 있고 그 개방성 때문에 불분명한 지평 안에서 벌어지는 행동들의 산물로 이해해야 한다.<br />
            <br />
            <br />
            1)Etienne Balibar, Structural Causality, Overdetermination, and Antagonism. In Postmodern Marxism and the Future of Marxism. Essays in the Althusserian Tradition, p. 115. Edited by Antonio Callari and David F. Ruccio. Wesleyan University Press, Hanover and London 1996.본문으로<br />
            <br />
            2)<br />
            위의 책.본문으로<br />
            <br />
            3)<br />
            위의 책.본문으로<br />
            <br />
            4)<br />
            위의 책.본문으로<br />
            <br />
            5)<br />
            위의 책.본문으로<br />
            <br />
            6) Louis Althusser, L'avenir dure longtemps, p. 213. dition tablie et pr sent e par Oliver Corpet et Yann Moulier Boutang. STOCK/IMEC, Paris 1992.[국역: 돌베개, 1993]본문으로<br />
            <br />
            7)Louis Althusser, Is it Simple to be a Marxist in Philosophy? In Essays in Self-Criticism, pp. 165~207. Transl. Graham Lock, New Left Books, London 1976.[국역: 루이 알튀세르, 「아미엥에서의 주장」, 『아미엥에서의 주장』, 솔, 1991]본문으로<br />
            <br />
            8)위의 책, 182.본문으로<br />
            <br />
            9)Balibar, 위의 책, 115.본문으로<br />
            <br />
            10) Louis Althusser, Contradiction and Overdetermination. In For Marx, pp. 117~128. Transl. Ben Brewster. New Left Books, London 1977.[국역: 백의, 1997, pp. 137~151]본문으로<br />
            <br />
            11)나의 책 Niccol Machiavelli ja aleatorinen materialismi. 특히 이 주제를 자세히 다루는 10장을 보라.본문으로<br />
            <br />
            12)Louis Althusser, For Marx, p. 215.[국역: p. 257]본문으로<br />
            <br />
            13) Louis Althusser, Le courant souterrain du mat rialisme de la rencontre. In crits philosophiques et politiques, tome 1, p. 566. Textes r unis et pr sent s par Fran ois Matheron. STOCK/IMEC, Paris 1994.[국역: 루이 알튀세르, 서관모·백승욱 편역, 「마주침의 유물론」, 『철학과 맑스주의 - 우발성의 유물론을 위하여』, 새길, 1996, p. 79]본문으로<br />
            <br />
            14) 위의 책, 566.[국역: p. 78]본문으로<br />
            <br />
            15) Louis Althusser, Machiavel et nous. In crits philosophiques et politiques, tome 2, p. 58. Textes r unis et pr sent s par Fran ois Matheron. STOCK/IMEC, Paris 1995. / Louis Althusser, Machiavelli and Us, p. 16. Transl. Gregory Elliott. Verso, London - New York, 1999.[국역: 루이 알튀세르, 오덕근·김정한 옮김, 『마키아벨리의 가면』, 이후, 2001, p. 59]본문으로<br />
            <br />
            16)L'avenir dure longtemps, p. 234 / The Future Lasts a Long Time, p. 242. Transl. Richard Veasey. Chatto &amp; Windus, London 1993.<br />
            본문으로<br />
            <br />
            17)Machiavelli and Us, p. 80.[국역: 71]본문으로<br />
            <br />
            18)Le courant souterrain du mat rialisme de la rencontre, pp. 565~566.[국역: p. 78]본문으로<br />
            <br />
            19)Louis Althusser, L'unique tradition materialiste. In Lignes, 18, janvier 1993, p. 99.[국역: 루이 알튀세르, 「독특한 유물론적 전통」, 『철학과 맑스주의』, p. 179]본문으로<br />
            <br />
            20)위의 책, pp. 100~101.[국역: p. 181] virt 를 '(변)덕'이라고 옮긴 이유에 관해서는, 월간 『사회운동』 71호(2007. 1/2) 「책 속의 책」 각주 33을 보라.본문으로<br />
            <br />
            21)Le courant souterrain du mat rialisme de la rencontre, p. 561.[국역: p. 70]본문으로<br />
            <br />
            22)L'unique tradition materialiste, p. 99본문으로<br />
            <br />
            23)위의 책.본문으로<br />
            <br />
            24) Le courant souterrain du mat rialisme de la rencontre, pp. 565~6.본문으로<br />
            <br />
            25) 예컨대 Machiavel et nous, p. 59.본문으로<br />
            <br />
            26) L'unique tradition materialiste, p. 99~101; Le courant souterrain du mat rialisme de la rencontre, p. 546.본문으로<br />
            <br />
            27) Louis Althusser, Solitude de Machiavel, p. 34. Futur ant rieur, Ⅰ, 1990 / Machiavelli's Solitude, p. 124. Transl. Ben Brewster. In Machiavelli and Us [국역: 루이 알튀세르, 「부록: 마키아벨리의 고독」, 『마키아벨리의 가면』, p. 208]본문으로<br />
            <br />
            28)L'unique tradition materialiste, pp. 99~100.본문으로<br />
            <br />
            29)Il principe, ⅩⅤ.[국역: 니콜로 마키아벨리, 강정인 옮김, 『군주론』, 까치, 1994, pp. 106~107]본문으로<br />
            <br />
            30) L'unique tradition materialiste, p. 105.[국역: pp. 186~187]본문으로<br />
            <br />
            31)L'unique tradition materialiste, pp. 100~1; Le courant souterrain du mat rialisme de la rencontre, p. 545.본문으로<br />
            <br />
            32)L'unique tradition materialiste, p. 105.본문으로<br />
            <br />
            33)L'avenir dure longtemps, pp. 233~234; cf. Le courant souterrain du mat rialisme de la rencontre, p. 552 and Essays in Self-Criticism, p. 136.본문으로<br />
            <br />
            34)For Marx, p. 104.본문으로<br />
            <br />
            35)Essays in Self-Criticism, p. 112, note 8.본문으로<br />
            <br />
            36)L'unique tradition materialiste, p. 100; cf. Machiavel et nous, p. 80 and p. 126.본문으로<br />
            <br />
            37) Machiavel et nous, p. 80본문으로<br />
            <br />
            38) David Hume, Enquiries concerning Human Understanding and concerning the Principles of Morals, p. 103. Edited L.A. Selby-Bihgge. Third edition. Clarendon Press, Oxford 1977.본문으로<br />
            <br />
            39)이 쟁점은 위에서 언급한 나의 책 5.2 &amp; 5.3절에서 다루어진다.본문으로<br />
            <br />
            40)Machiavel et nous, p. 59.본문으로<br />
            <br />
            41)Le courant souterrain du mat rialisme de la rencontre, pp. 544~545.[국역: p. 44]본문으로<br />
            <br />
            42)Le courant souterrain du mat rialisme de la rencontre, p. 567.[국역: pp. 79~80]본문으로<br />
            <br />
            <br />
            <br />
            
            
        
        <!--덧붙이는글/sitelink1/sitelink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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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핀란드 탐페레(Tampere) 대학 정치학과 조교. 이 논문은 알튀세르의 우발적 유물론과 그의 마키아벨리 해석에 관한 나의 책에 기초를 두고 있다. Mikko Lahtinen, Niccol Machiavelli ja aleatorinen materialismi. Louis Althusser ja Machiavellian konjunktuurit ["Niccol Machiavelli and Aleatory Materialism. Louis Althusser and Machiavelli's Conjunctures"]. Acta Universitatis Tamperensis, Tampere 1997. 300p.
                                
                            
                        
                        
                    
                
            
            
        
    
]]></description></item><item><author>바라</author><category>찌라시의 문서 창고</category><title>시민과 계급 - 87년 이후 한국 정치의 이념과 주체 </title><link>http://blog.aladin.co.kr/vara/1454685</link><pubDate>Sat, 28 Jul 2007 23:0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vara/1454685</guid><description><![CDATA[저번에 있었던 소통/연대/변혁 사회운동포럼 사회운동시민강좌의 일환이었던 2강의 
강연문이다. 이런 강연이 있었는지도 이제 알았는데 요새도 하고 있다. 관심있는 분들은
http://www.pssp.org/bbs/view.php?board=issue&amp;id=462에 가보시면 될 듯.&nbsp;&nbsp;


시민과 계급 - 87년 이후 한국 정치의 이념과 주체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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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수의 보편적 적대들의 절합을 사고하기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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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서관모(충북대)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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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민운동 담론의 계급적 성격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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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사회운동에서 80년대에 번성하던 계급 담론은 90년대에 들어 쇠락하였고, 계급적대의 문제설정은 주변화하였다. 목하 시민사회 담론은 세계적으로 번성하고 있지만, 그 번성은 특히 미국에서 두드러지는 현상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현대의 시민사회 담론의 발생지로서 70, 80년대에 그 담론이 만개했던 동유럽에서는 1990년대 중반에 이르면 비판적인 시민사회 담론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90년대에 시민사회 담론이 폭발한 곳은 다름 아닌 미국이었다. 미국에서 &ldquo;시민사회 개념은 지식인, 언론인, 전문가, 정치가, 종교지도자, 노동조합원 그리고 최고경영인들 모두의 관심을 끄는 부분이 되었다&rdquo;(에렌버그, 2002: 23; 365).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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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와 달리 한국에서 &lsquo;시민사회의 확산을 요청&rsquo;한 것은 정치지도자들이 아니라 &lsquo;시민운동&rsquo;이라는 사회운동의 활동가와 지식인이며, 따라서 시민사회 담론의 성격을 주로 결정하는 것은 이 시민운동들의 성격이라 할 수 있다. 이 시민운동에서 통용되는 시민사회 담론들은 미국식의 (신)자유주의적 시민사회 담론으로 환원되지 않는 진보적인 요소들을 내장하고 있다. 그러나 시민운동들이 제도화되어 가고 국가에 포섭되어 가면서 한국의 시민사회 담론도 자연히 미국식의 자유주의적 시민사회 담론에 수렴해 왔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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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시민의 힘이 세상을 바꿉니다&rdquo;(참여연대).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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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세상을 바꾸는 시민은 누구인가? 한국의 시민운동은 처음부터 &lsquo;신사회운동들&rsquo;도 얼마간 포괄하고 있지만, 그 주요부분은 구미에서는 많은 경우 정당들을 비롯한 정치조직들에 의해 수행되어 온 운동들을 포함한 전통적 사회운동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리하여 이 시민운동의 주요부분은 미완의 부르주아 혁명(&lsquo;시민혁명&rsquo;)의 과제를 정당정치적 운동이 아닌 방식으로 완수하고자 한 60년대 이래의 일본의 市民運動과 통하는 바가 있다. 일본의 市民運動은 본래 부르주아 민주주의 즉 자유민주주의를 제대로 달성하자는 운동이었고 이러한 이념적, 정치적 기조 위에서 여러 영역으로 확장되어 온 운동이라 할 수 있다. &ldquo;&lsquo;시민[bourgeois]혁명&rsquo;을 거치지 않고 하루아침에 &lsquo;신민[subject]&rsquo;에서 &lsquo;시민[citizen]&rsquo;이 되어버린 일본국민이 진정한 &lsquo;시민&rsquo;으로 거듭나는 것은 곧 서구의 &lsquo;시민혁명&rsquo;과도 같은 의미를 지니는 것으로 여겨졌다&rdquo;(한영혜, 2001) 한국의 시민운동의 기조도 이것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시민운동이 이렇게 정치적으로 자유민주주의를, 경제적으로 합리적 자본주의를 추구하는 데 &lsquo;시민사회&rsquo; 개념이 꼭 필요한 것은 아니다. 다만 특정한 정세 속에서 계급운동과 구별정립하기 위하여 시민운동이 이 용어를 활용한 것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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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운동은 스스로를 &lsquo;시민들의 운동&rsquo;으로 이해한다. 그런데 한국과 일본에서 &lsquo;시민&rsquo;은 다의적인 용어이다. bourgeois, civic/(of) citizen, civil이 구별되지 않고 모두 &lsquo;시민&rsquo;으로 지칭되니 혼란을 낳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이 시민들의 사회를 &lsquo;시민사회&rsquo;로 이해하니 혼란은 극에 달한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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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tizen은 &lsquo;정치적 주체&rsquo;, 즉 정치에 대한 보편적 권리의 소유자, 정치체의 구성자이다. 시민운동이 이 &lsquo;citizen으로서의 시민&rsquo;의 운동이라면, 그것은 예컨대 자유, 평등, 소유 등을 비롯한 &lsquo;시민의 권리&rsquo;(rights of citizens, civic rights/droits du citoyen)를 위한 정치적 운동, 즉 국가영역 외부의 운동이 아니라 정확히 국가영역 내부의 운동이 된다. 한국의 &lsquo;시민운동&rsquo; 진영은 &lsquo;시민사회&rsquo;를 &lsquo;시민들의 사회&rsquo;로 파악하고, 따라서 자신을 국가 외부의 시민사회의 운동, 비정치적 운동, 초계급적인 운동인 것처럼 규정한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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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파 시민운동을 대표하는 경실련은 &ldquo;지금까지의 재야운동이 설정해 왔던 주체와 운동방식이 달라져야 한다&rdquo;고 종래의 &lsquo;민중운동&rsquo; 내지 &lsquo;민족민주운동&rsquo;을 비판하면서 &ldquo;특정한 계급, 계층이나 집단의 이기주의를 떠나서 공공선을 추구하는 시민&rdquo;들이 &ldquo;주체&rdquo;가 되는 운동을 표방하였다(신철영, 1995). 즉 운동의 성격을 그 운동의 &lsquo;주체&rsquo;의 속성을 통하여 규정한 것이다. 이렇게 민중운동을 계급 이기주의적 운동으로, 자신을 초계급적인 공공선을 추구하는 운동으로 규정하는 시민운동의 담론은 정확히 부르주아적 담론, 맑스와 엥엘스가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의 지배적 형태로 간주하는 &lsquo;법적 이데올로기&rsquo;에 입각한 담론, 그것도 극도로 반동적이고 퇴행적인 담론이다. 법적 이데올로기의 핵심은 사회계약의 이데올로기요, 자유ㆍ평등ㆍ소유 등 인권의 이데올로기이거니와(발리바르는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의 지배적 형태를 경제의 자동성 관념을 핵심으로 하는 &lsquo;경제적 이데올로기&rsquo;라 보지만, 이것은 일단 논외로 한다), 시민운동의 담론은 이러한 부르주아 인권 담론조차 퇴행시키고 축소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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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운동, 농민운동을 비롯한 민중운동과 &lsquo;시민운동&rsquo;이 그 운동의 이른바 &ldquo;주체&rdquo;(운동의 현실적 및 잠재적 참여자)의 계급ㆍ계층적 소속에 따라 계급적 성격이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근본적으로, 계급은 계급성원들의 합이 아니다. 계급(의 동일성)은 계급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계급적 실천의 효과이다. 민중운동의 &lsquo;민중&rsquo;은 계급적 범주이지만 시민운동의 &lsquo;시민&rsquo;은 계급적 범주가 아니기에 두 운동의 &ldquo;주체들&rdquo;의 계급ㆍ계층귀속이 확연히 구분될 수도 없다. 중요한 것은 각 운동의 노선의 계급적 내용이며, 각 운동을 장악하고 있는 이데올로기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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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운동의 주체로서의 &lsquo;시민&rsquo;, 즉 시민운동 참여자나 잠재적 참여자로서의 &lsquo;시민&rsquo;(&lsquo;시민&rsquo;①)은 정치적 주체로서의 시민(시민②)과 동일한 범주가 아니다. 대한민국 국민은 모두 시민이며, 정치적 권리의 형식적 제한과 관련하여 이른바 프랑스 혁명 이후 분류되던 &lsquo;능동적 시민&rsquo;과 &lsquo;수동적 시민&rsquo;의 법적 분할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시민운동 진영의 담론에서 시민운동의 주체로서의 &lsquo;시민&rsquo;과 정치적 주체(권리 주체)로서의 시민이라는 범주적으로 전혀 다른 시민이 같은 &ldquo;시민&rdquo;으로 취급되며, 자신의 필요에 따라 왔다갔다하며 사용된다. 이러한 용어법 속에서 시민운동의 주체(참여자)로서의 &lsquo;시민&rsquo;(&lsquo;시민&rsquo;①)이 정치적 주체로서의 시민, 시민성(citizenship[시민권])의 담지자로서의 시민(시민②)과 사실상 동일시된다. 그리하여 노동운동의 &lsquo;주체&rsquo;로서의 노동자는 시민운동의 &lsquo;주체&rsquo;가 아니라는 이유로 사실상 &lsquo;시민&rsquo; 자체가 아닌 것으로 된다. 시민운동 참여자를 뺀 민중 일반에게서 시민권/시민성이 사실상 박탈되는 것이다. 이것은 부르주아적 한계를 벗어나는 사회운동들은 물론이고, 부르주아적 한계 내에 있지만 그 한계와 항상 충돌할 수밖에 없는 사회운동들의 &lsquo;시민권&rsquo; 박탈, 즉 정치적 권리 박탈을 뜻한다. 적어도 이러한 면에서는, 그러한 시민운동 담론은 구자유주의의 기준에도 미달하는 퇴행적인 것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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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시민운동 담론은 심대한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효과를 낳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한국사회에서 노동자, 민중의 시민성/시민권을 억압하는 효과, 민중운동을 억압하는 효과를 낳는다. 시민권/시민성 개념의 확장이 사회운동의 근본적인 과제의 하나가 되는 현재의 정세에서 이러한 시민 개념을 둘러싼 투쟁은 첨예한 계급투쟁의 요소이다. 그러한 &lsquo;시민&rsquo; 개념을 구사하는 시민운동 담론은 구자유주의적 기준에도 미달하지만, 독점 부르주아지의 첨단의 신자유주의적 기획의 관철에 대단히 유효하게 복무한다. (cf. RB, LB, PtB 개념).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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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러한 효과의 상당부분은 언어적 제약에 의한 비의도적, 비의식적인 것일 수 있다. 부르주아적 운동을 &lsquo;시민&rsquo;의 운동과 동일화하고 민중과 민중운동의 시민권을 박탈하는 것이 적어도 시민운동 지도부의 본래의 의도에 의한 것이 아니라, bourgeois와 citizen을 함께 &lsquo;시민&rsquo;으로, bourgeois와 civic을 함께 &lsquo;시민적&rsquo;으로 표기하는 용어법에 의한 것일 수 있다는 말이다. 이 점에서 책임은 시민운동 진영에만 돌아가지 않는다. &lsquo;시민&rsquo;이라는 용어가 이렇게 터무니없이 착취되도록 허용한 민중운동의 책임과 역량의 문제를 인정해야 한다. 단, 새로운 개념을 발명하고 통용시키지 못한 책임의 주된 부분은 진보적 지식인들에게 돌아간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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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시민사회 용어법의 기만과 의의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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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 80년대 동유럽 반체제이론가들에게 시민사회는 &ldquo;그 안에서 자주관리와 민주주의가 작동할 수 있고 국가로부터 자율적인 사회활동 공간&rdquo;이었다. 그러나 1989년 이래 동유럽에서 부활한 것은 그러한 시민사회가 아니라 자본주의였고, 그리하여 진보적 시민사회 담론은 자연히 소실되었다. 1989년 이후 시민사회의 개념적 지위는 더 이상 국가권력에 항거하는 &ldquo;민주적 참여의 본거지&rdquo;가 아니라 &ldquo;자유민주주의의 단순한 보조역&rdquo;으로 달라졌다. 시민사회의 역할은 이제 &ldquo;자유민주주의 정치체제와 자유시장경제를 구성하고 보존하는 것&rdquo;으로 된 것이다(베이커, 2000: 220-221). 시민사회는 이제 주로 여러 가지 비국가기구를 묘사하는 용어로 사용되고 있다. 1980년대 말 이래 번성해 온 미국의 시민사회 담론에서도 이와 흡사한 시민사회 개념이 사용된다. 여기서는 &ldquo;국가와 시민 사이에 존재하는 중간조직(intermediate organization)&rdquo;으로 이해되는 토크빌주의적 시민사회 개념이 사용된다(에렌버그, 2002: 13).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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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의 동유럽이나 미국의 경우와 유사하게, 한국의 시민운동 진영도 시민사회를 사실상 시민운동 조직들로, 시민운동 참여자나 잠재적 참여자들의 집합체로 이해한다. 시민사회(civil society)를 말하자면 특정한 시민들(시민 일반이 아니라 &lsquo;시민운동&rsquo;에 참여하는 시민들)의 집합체로 이해하는 것이다. 동시에 다른 한편에서는 자율적 행위의 &lsquo;영역&rsquo;이라는 전통적인 시민사회 개념이 사용된다. 행위자로서의 시민사회 개념과 행위영역으로서의 시민사회 개념이 동시에 사용되는 것이다. 이렇게 시민사회를 행위영역으로만 이해한다면, 이 시민사회에서 시민운동들, 시민운동 참여자들이 특권적인 지위를 갖기 어렵다. 시민사회를 집합적 행위자로, 즉 일종의 &lsquo;시민들의 사회(집합체)&rsquo;와 같은 것으로 규정함으로써 시민운동 진영은 자신에게 사회의 대표자라는 특권적 지위를 부여하고, 동시에 시민사회를 비국가적이고 따라서 비계급적인 자율적인 행위 영역으로 규정함으로써 자신들에게 초계급적 보편성을 부여한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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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사회를 집합적 행위자로, 즉 시민운동 단체들, 시민운동 참여자들의 의미로 사용하면 시민사회에는 자연히 자율성, 공공성 등 긍정적인 &lsquo;시민적&rsquo; 속성 내지 덕목이 지배하는 것으로 이해되게 마련이다. 다수의 시민사회론자들은 &lsquo;시민사회&rsquo;를 이렇게 긍정적인 것으로 만든 다음에 슬그머니 이 시민사회 개념을 행위영역으로서의 시민사회 개념에 결합시킨다. 그리하여 예컨대 국가영역, 경제영역과 구분되는 저 행복한 시민사회 영역, 즉 자유, 평등, 자율, 공공성이 지배하고 이해대립도, 강제도, 적대도 없는 영역이 발명된다. 자본주의 국가와 경제가 불가불 얼마간 문제가 있는 것이라 해도 이러한 시민사회가 있으니 세상은 살 만한 곳이 된다. 이러한 이중적, 양의적인 시민사회 개념은 계급대립을 가리는 효과적인 장치가 된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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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시민사회 개념에 앞서 80년대 한국의 진보학계에서는 그람시의 시민사회 개념이 소개되었다. 이어 80년대말 시민운동, 시민사회 담론이 민중운동, 민중운동 담론과 구별정립하며 등장할 때 널리 수용된 시민사회 모델이 &lsquo;국가/시민사회/경제&rsquo;의 3분법을 채택하는 코언(J. Cohen)과 아라토(A. Arato)의 모델이다. 시민사회 개념의 수요자인 시민운동 진영이 추구한 것이 쇄신된 자유주의, 자본주의였기 때문에 동유럽 시민사회 이론의 초기 유형인 &lsquo;사회주의적 시민사회론&rsquo;은 자연히 관심대상이 되지 못하였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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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사회에 대한 이론적 논의에서 당초에 미국식의 시민사회 개념(&lsquo;국가와 시민 사이에 존재하는 중간조직&rsquo; 내지 &lsquo;비국가기구&rsquo;)이 처음부터 자리잡지 못한 이유는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시민사회 개념이 일정하게 진보적인 시민운동과의 관련 속에서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민운동의 제도화, 우경화 과정에서 미국식 시민사회 개념이 지배적인 것으로 되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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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시민운동 진영 내에서 좌파에 속하는 논자들, 즉 좌파 시민사회론자들은 대부분 코언ㆍ아라토류의 국가/시민사회/경제의 3분법을 채택한다. 코언ㆍ아라토는 이러한 이론틀은 &ldquo;경제적 자유주의냐 국가주의냐라는 양자택일을 벗어난다&rdquo;고 주장한다. 그러나 주장은 주장일 뿐이다. 스스로를 민중운동과 구별정립하려 한 한국의 시민운동이, 다시 말해 맑스주의 이론과 사회주의 이념에 대해 선을 긋지만 단번에 신자유주의로 넘어갈 수도 없었던 시민운동의 활동가들과 이론가들이 이러한 &lsquo;3분법적 이론틀&rsquo;에 매료된 것은 자연스런 일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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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적인 시민사회 개념은 홉스와 로크(정치사회로서의 시민사회), 스미스(경제사회로서의 시민사회), 헤겔(욕구의 체계로서의 시민사회), 초기 맑스, 특정 시점의 그람시(헤게모니의 장소로서의 시민사회), 하버마스, 킨, 코언․아라토 등 그 누구의 경우에도 사회적 영역을 지시하는 것이지 행위자, 세력을 지시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한국의 시민운동 진영의 시민사회론자들은 이러한 행위자로서의 시민사회 개념을 일반적으로 사용한다. 시민사회를 행위자로 파악할 경우 민주화의 전략으로서의 &lsquo;시민사회의 발전, 활성화&rsquo;라는 것은 &lsquo;시민운동의 발전, 활성화&rsquo;와 같은 의미가 된다. 한 걸음 나아가 &lsquo;시민사회의 활성화&rsquo;는 &lsquo;비정부기구(NGOs)의 활성화&rsquo;와 동일한 것이 된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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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te/civil society의 2분법 속에서든, state/civil society/economy의 3분법에서든 정치적 주체로서의 citizen이 속한 곳은 city(civitas), 즉 state(civitas)이다. state는 city의 다른 이름이다. 그리고 정의상 우리의 시민사회론자들은 반대로 시민, 시민세력을 시민사회(civil society)에 귀속시킨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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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운동 진영이 왜 집합적 행위자로서의 시민사회, 즉 &lsquo;특별한 시민들의 단체로서의 시민사회&rsquo;라는 미국식 개념을 수미일관하게 쓰지 않고, 그 개념과 전통적인 civil society 개념 사이를 편의에 따라 오가는 곡예를 부리는 이유는 자명하다. 그것은 앞에서 말한 대로 시민운동을 단지 &lsquo;국가로부터도 자유로울&rsquo; 뿐 아니다 또한 경제로부터도 자유로운 운동&rsquo;, 즉 &lsquo;공동선&rsquo;을 지향하는 초계급적 운동으로 이상화시키기 위함이다. 민중운동이 계급적, 당파적임에 비해 시민운동은 초계급적, 초당파적임을 주장하는 데 시민사회 개념의 이러한 이중적 사용은 더할 나위 없이 유용하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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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용어법 상의 기만(의도 여부와 무관한 현실적 기만)은 체제내 포섭의 진전에 따라 부분적으로 약화되어 간다. 시민사회를 국가 및 경제와는 별도의 영역으로 범주화시키는 것은 자본주의 국가 및 경제에 대하여 얼마간은 문제를 제기한다는 것을 뜻한다. 시민운동이 점점 더 신자유주의에 포섭됨에 따라 그러한 문제제기는 약화되어 가며 따라서 국가/시민사회/경제라는 도식 자체가 점차 불필요하게 된다. 그리하여 논리상 문제가 있는 종래의 양의적인 시민사회 개념 대신에 시민사회를 &lsquo;국가와 시민 사이에 존재하는 중간조직&rsquo;으로 설정하는 미국식 시민사회 개념이 점차 지배적이게 된다. 즉 시민사회가 &lsquo;저항적, 자율적&rsquo;일 필요가 없게 됨에 따라 시민사회는 사실상 NGO와 같은 의미로 이해된다. 이 과정이 진전될수록 시민사회 담론은 더 이상 진보와 무관한 것으로, 신자유주의적 담론으로 된다. 다만 기만적 필요에 따라 영역으로서의 시민사회 개념이 계속 착취될 뿐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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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사회 개념이 여전히 진보진영에서 사용될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 경우 그 개념은 근본적인 의미 전화, 문제설정의 전환을 거쳐야 할 것이다. 그람시의 예가 그 중 하나이다. 맑스 자신은 초기에 &lsquo;국가/시민사회&rsquo;의 장소론(토픽)을 사용하다가 곧 &lsquo;토대/상부구조&rsquo;라는 장소론으로 이행한다. 시민사회라는 용어는 더러 사용했지만 &lsquo;국가/시민사회&rsquo;의 토픽 자체는 기각한 것이다. 그람시는 맑스의 도식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하여 헤게모니의 문제설정을 도입하여(헤게모니=강제+동의) 국가 개념을 확장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고전 맑스주의자 중에서 가장 나아간, 사실상 유일하게 나아간 그람시의 헤게모니의 문제설정 자체가 여전히 &lsquo;의식의 철학&rsquo;과 따라서 &lsquo;주체의 철학&rsquo;에 머물러 있음에 비해 알튀세르는 무의식적인 것으로서의 이데올로기의 문제설정 위에서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 개념을 도입한다)1).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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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한국에서 몇 명 남지 않은 좌파 시민사회론자들은 다른 각도에서 시민사회 개념의 비판적 의의를 찾는다. 그들은 시민사회가 계급적대로부터 자유로운 영역이 아니라고 파악한다는 점에서 출발점에서는 자유주의적 시민사회론자들과 준별된다. 그들은 맑스주의의 계급적대의 총체화(사회적 관계들의 계급관계로의 환원)를 비판하고 사회적 적대들 내지 갈등들의 복수성을 파악하기 위한 수단으로 시민사회 개념을 사용한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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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적 맑스주의의 맹목이었던 이러한 현실을 파악하고자 한 그들의 의도 자체에는 훌륭한 점이 있다. 문제는 그들이 이러한 갈등들의 발생의 영역을 시민사회로 국지화시키고, 따라서 시민사회를 그 해결의 영역으로 특권화시킨다는 데에 있다. 그 결과 갈등들의 해결을 위한 운동들은 시민사회 내의 운동들, 시민운동들이 된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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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시민사회는 경제로 환원될 수 없는 다양한 사회적 관계들을 내포하고 있다. &hellip; 시민사회는 단순히 계급적대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쟁점들을 둘러싸고 다양한 세력들 간의 다양한 적대들 ― 예를 들어 지역, 환경, 성, 민족, 소수자 등 -― 이 형성되어 있다는 점에서 계급환원론적 시각으로 포괄하기 어려운 복합적인 영역이다.&rdquo;(조희연․정태석, 2001)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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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hellip; 시민사회는 내적으로 다양한 적대와 갈등을 내포하고 있는 다원적이고 복합적인 시민적 삶의 공간이다. &hellip; 다양한 적대의 존재는 시민사회에서 다양한 사회운동을 발생시키며 민주주의 의식과 계급의식 등의 발전을 통해 다양한 방식으로 사회를 변화시킨다고 할 수 있다&rdquo;(조현연․조희연, 2001: 358).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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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스주의가 이들의 이러한 문제제기의 긍정적인 측면에 답변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여기에 답한다는 것은 계급적대를 총체화시키지 않으면서, 다시 말해 보편적인 적대의 복수성을 승인하면서 계급적대의 문제설정을 견지한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의 이론구조를 단순히 비판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사회적 관계에 대한 이들의 이해는 고전적인 맑스주의에도 현저히 미달하기 때문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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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주장은 경제가 계급관계만을 내포하고 따라서 계급운동만을 발생시킴에 비해 시민사회는 계급적대와 함께 여타의 다양한 사회적 적대를 내포하므로 다양한 사회운동을 발생시킨다는 것이다. 이 다양한 사회운동이란 결국 &ldquo;시민사회의&rdquo; 이러저러한 사회운동들, 즉 &ldquo;시민운동들&rdquo;을 지칭한다. 요컨대 그들은 계급적대를 부정하지 않지만, &ldquo;시민사회에서 전개되고 있는&rdquo; &ldquo;운동정치&rdquo;, 즉 &ldquo;시민운동의 정치로서의 시민정치&rdquo;를 특권화시키기 위하여 이러한 시민사회 개념을 사용하는 것이다. 이렇게 시민사회에 국지화되는 운동은 결국 퇴행적인 자유주의적 시민운동 진영이 그리는 시민운동과 수렴하게 된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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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다양한 적대들은 시민사회에만 &lsquo;형성되어&rsquo; 있고 반면 경제에는 계급적대만이 형성되어 있는가? 가령 성별 적대는 국가 영역, 경제 영역에서는 작동하지 않는가? &lsquo;지역, 환경, 민족, 소수자&rsquo;와 관련된 적대들 역시 시민사회에서만 작동할 뿐 국가 영역, 경제 영역에서는 작동하지 않는가? 그리하여 다양한 방식으로 사회를 변화시키는 다양한 사회운동은 시민사회에서 시민운동으로서만 발생하고, 국가 영역, 경제 영역은 이러한 사회운동이 발생하지 않는 영역인가? 계급관계, 성별관계, 소수자-다수자관계, 지역 및 환경과 관련이 있는 사회적 관계 등은, 따라서 계급적대를 위시한 사회적 적대들 내지 갈등적 관계들은, 사회 전영역을 가로지르며 전영역을 통하여 작동하는 것이지 국가, 시민사회, 경제와 같은 사회의 어떤 부분영역에서 작동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사회운동들은 사회 전영역에서 일어나는 것이지 예컨대 시민사회라는 사회의 특정 영역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시민운동들을 시민사회에 국지화된 운동으로 사고할 수 있는 것은 첫째, 그들이 사회적 관계는 사회의 전영역을 가로질러 형성된다는 것을 무시하거나 몰이해하기 때문이고, 둘째, 그들이 시민사회를 행위 영역으로서 파악하면서, 동시에 그것과 양립불가능하게, 행위자로서 파악하기 때문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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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쉽게 말해 보자. 국가/시민사회/경제이든, 경제/정치/이데올로기이든, 이들은 사회적 행위의 일정한 기준에 따라 구획해 놓은 영역들이다. 모든 개인은 이중 특정 영역의 행위만을 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영역의 행위를 한다. 누구나 경제적 행위, 정치적 행위, 이데올로기적 행위를 수행한다(노동자-자본가, 여자-남자, 유식자-무식자, 동성애자-이성애자, 한국민-이주민 등등). 즉 어떤 개인은 경제영역에 속하고 어떤 개인은 정치영역에 속하고, 어떤 개인은 이데올로기적 영역에 속하는 것이 아니다. 가령 한국의 5천만 인구중 1천만명은 국가영역에, 1천만명은 시민사회 영역에, 3천만명은 경제영역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5천만명 모두가 이들 영역 모두에 속하다. 마찬가지로 사회적 적대 내지 갈등의 관계는 이들 구분된 특정 영역에 한정되어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이들 전영역을 관통하여 형성되고, 적대와 갈등은 이들 전영역에서 발생한다. 한국의 시민운동, 시민사회 담론은 행위영역과 행위자라는 기본적인 구분을 지키지 않고 자의적으로 양쪽을 오간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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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스의 정치경제학 비판의 핵심을 이루는 사상의 하나는 자본주의적 생산관계가, 따라서 계급관계가, 무구별하게 &lsquo;경제적&rsquo;이고 &lsquo;정치적&rsquo;인 관계라는 것,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에서 수용되고 있는 의미에서라면 &lsquo;경제적&rsquo;이지도 &lsquo;정치적&rsquo;이지도 않다는 것이다. 계급관계가 곧 착취관계라 할 때 이른바 &lsquo;정치적&rsquo;인 지배와 교직(交織)되어 있지 않은 순수히 &lsquo;경제적&rsquo;인 착취과정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계급관계는 &lsquo;경제적&rsquo; 관계가 아니며, 계급투쟁은 &lsquo;경제&rsquo; 영역에서만 벌어지는 것이 아니다. 계급관계는 경제적이며 동시에 정치적, 이데올로기적인 관계이며, 계급투쟁은 경제투쟁이며 동시에 정치투쟁, 이데올로기투쟁이다. 시민사회 영역을 따로 설정한다 하더라도 계급관계, 계급투쟁은 마찬가지로 이 영역을 관통한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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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트 간의 계급관계/계급투쟁은 자본가와 노동자 사이에서만 벌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부르주아 정치인들과 일반 민중 간에, 부르주아 정치세력과 좌파 정치세력 간에, 자유주의적 지식인과 사회주의적 지식인 간에, 운동권 학생과 반운동권 학생 간에, 개발업자와 급진적 환경운동가 간에, 보수적 언론과 그에 저항하는 구독자들 간에, 엘리트주의적 문인과 민중주의적 비평가 간에 형성된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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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찬가지로 예컨대 성별관계 및 따라서 성별적대는 시민사회에서만 형성되고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영역에 걸쳐서 형성되고 작동한다. 그리하여 예컨대 여성운동은 사회 전영역에서 발생하는 것이지 시민사회에서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또한 환경문제와 관련된 사회적 적대들도 사회 전영역에 걸쳐서 작동한다. 성적 소수자에 대한 억압 역시 시민사회만이 아니라 국가, 경제를 포함한 사회 전영역에 걸쳐서 이루어진다. 이렇게 시민사회를 영역으로 이해하면, 그것은 시민사회는 계급운동 이외의 사회운동들의 특권적 영역이 될 수 없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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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로 시민사회를 행위자(들의 조직으)로 수미일관하게 이해하고(토크빌식, 미국식 시민사회 이해), 그리고 이들의 운동을 시민운동으로 이해할 경우에도, 그러한 시민사회/시민운동은 진보진영에게 전혀 특권적 지위를 갖지 못한다. 오직 시민사회의 두 개념 사이를 자의적으로 왕복할 경우에만 그것들에 특권적 지위가 부여될 수 있다. 말할 것도 없이 이러한 시민사회론/시민운동론은 계급적대 이외의 사회적 적대들도 부르주아 국가와 자본주의 경제의 전화(변혁) 없이는 변혁될 수 없다는 진실을 억압하며, 사회적 관계들을 전화시키고자 하는 진보적인 사회운동들을 억압한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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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컨대, 맑스의 독창적인 사회적 관계 개념(적대에 의해 구조화되는 사회적 관계, 사회 전영역을 관통하는 사회적 관계)에 입각할 때에 근본적으로 부르주아적인 국가/시민사회라는 도식 또는 국가/시민사회/경제의 도식에서 벗어나 계급적대와 여타의 사회적 적대들의 절합(節合)을 올바로 이해할 수 있다. 발리바르는 &lsquo;국가/시민사회&rsquo;의 이원론이 &ldquo;프롤레타리아 정치의 무덤&rdquo;이라고 말한 바 있다. 우리는, 그것은 또한 급진적인 여성운동, 환경운동, 소수자운동 등 모든 사회운동들의 무덤이라 덧붙일 수 있다. 국가/시민사회/경제의 삼원론도 본질적으로는 마찬가지이다. 이 삼원론이 곧장 나쁜 국가ㆍ경제와 좋은 시민사회의 이원론으로 환원되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게 환원되지 않는 삼원론이 있는데, 그것은 부르주아 국가와 자본주의 경제를 개량하자는 자유주의적 삼원론이다. 그 자유주의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이 3분도식의 일정한 긍정성을 부인하면 안 된다. 반동적 자유주의와 개량적 자유주의를 같이 취급할 수 없다. 한국의 좌파 시민사회론자들이 영역으로서의 시민사회 개념을 수미일관하게 사용하면서 이러한 3분도식을 사용한다면 사회발전에 기여하는 바가 클 것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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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시민성(citizenship)의 개조와 해방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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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세력이 추구하는 것은 사회적 관계들의 근본적 전화(변혁)이다. 계급적 입장에 따라 사회적 관계를 보는 관점, 다시 말해, 사회적 존재론은 달라진다. 부르주아 진영의 자유주의와 보수주의, 프롤레타리아 진영의 맑스주의의 사회적 존재론을 다음과 같이 간단히 대비시킬 수 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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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주의의 사회적 존재론: 개인주의individualism/원자론atomism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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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nbsp;개인이 사회를 구성. 개인들이 先在하고 이들이 맺는 것이 사회적 관계.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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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nbsp;주체(subject) 개념: 개인 (자유로운 인식자ㆍ행위자ㆍ소유자)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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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nbsp;&nbsp;(인간 개인의 근본적 변혁은 불가능하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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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주의의 사회적 존재론: 유기체론organicism/전체론holism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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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nbsp;개인은 사회의 산물.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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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nbsp;사회가, 즉 사회적 관계가 先在하며, 개인은 이 관계 속에 들어간다.&nbsp;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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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nbsp;주체 개념에 대립하는 유기적 전체 개념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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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nbsp;&nbsp;&nbsp;(사회의 본성상 근본적 변혁은 불가능하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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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스의 사회적 존재론: ① 관계의 존재론, 또는 관(貫)개체성(trans-individuality)의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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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존재론 - &ldquo;인간의 본질이란 사회적 관계들의 앙상블&rdquo;.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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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② 적대의 존재론(사회적 관계는 적대에 의해 구조화된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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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ldquo;계급의 동일성은 계급투쟁의 효과&rdquo;(알튀세르)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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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nbsp;&nbsp;&nbsp;&nbsp;주체는 주체화(종속화)과정의 산물(cf. 맑스의 법적 이데올로기 비판)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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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nbsp;&nbsp;&nbsp;&nbsp;&nbsp;(역사적 변혁은 필연이다.)&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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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스는 인간사회란 일반적 이익에 토대를 두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적대의 조절에 토대를 두고 있다고 본다(적대의 존재론). 사회적 관계를 사회적 유대로 파악하는 종래의 모든 관점에 대립하여 사회적 관계를 적대적 내지 갈등적 관계로 파악한다. 이 관점은 역사를 만드는 것은 엘리트가 아니라 대중이라는 맑스의 혁명적 입장의 논리적 근거가 된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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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왜 이러한 이론에 준거한 실천 즉 대중정치가 반대물로 전화했는가, 단적으로 프롤레타리아트의 독재가 프롤레타리아트에 대한 독재로 귀결하였는가 하는 것이다. 이론적 요인만 본다면, 대중정치를 봉쇄하고 맑스주의를 파국으로 이끈 이론의 문제는 총체화론적, 목적론적 역사관의 문제로 집약된다. 맑스는 사회적 관계, 사회적 적대를 계급관계, 계급적대로 환원시킨다. 물론 그 반대 경향이 있지만, 지배적인 것은 전자이다. 계급투쟁 내지 계급적대를 총체화시킴으로써, 그는 화해불가능한 적대라는 자신의 구조적 사상의 전개를 스스로 봉쇄한다. 그의 역사변증법 속에서 모순들 또는 적대들은 &lsquo;부정의 부정&rsquo;의 법칙에 따라 공산주의 속에서 최종적으로 화해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로부터 진리/허위의 반정립과, 그것에 토대를 둔 이른바 &lsquo;당의 목적론&rsquo;이 도출된다. 당이 계급투쟁의 정세적 조직형태가 아니라 본질적 조직형태로 간주되는 것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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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의 보편적 적대의 존재와 그것들의 절합을 이론화시키지 못한 맑스주의 이론의 무능력의 귀결이 유럽에서 반맑스주의적 신사회운동론의 에피소드였다면, 한국에서는 기이한 반이론적 시민사회론/시민운동론의 에피소드라 할 수 있다. 그러한 이론화를 시도한 이론가가 에티엔 발리바르이다. 그는 계급적대와 전혀 다른 유형의 보편적인 모순들 혹은 분할들로서의 성의 차이와 지적인 차이라는 근본적인 인간학적 차이를 식별하고, 이 차이들과 계급적대의 절합을 사고하고자 한다.2)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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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스로 하여금 계급적대를 총체화시키도록 한 것은 그가 고전 정치철학으로부터 물려받은 &lsquo;노동의 인간학&rsquo;이라는 철학적 인간학이다. 노동의 인간학은 노동을 인간의 본질적 실천으로 간주하는 관념이다. 맑스는 노동을 인간과 사회적 관계들의 본질로, 유일하게 적대를 결정하는 근본적 실천으로 간주하기를 멈추지 않음으로써 계급투쟁을 총체화시키기에 이른다. 前期 알튀세르는 모든 &lsquo;철학적 인간학&rsquo; 또는 &lsquo;이론적 인간주의&rsquo;를 비판하고 거기에 &lsquo;인식론적 단절&rsquo; 이후의 맑스의 이론적 반인간주의를 대립시킨다. 그에 의하면 이론적 인간주의는 경제주의(발리바르가 말하는 경제적 이데올로기에 근사한 것)와 짝을 이루어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의 핵심을 이룬다. 이러한 입장에 설 경우 문제는 노동과 관련된 적대 즉 계급적대에 맑스주의가 부여하는 특권적 지위가 이론적으로 해명할 수 없다는 데에 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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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리바르는 철학적 인간학의 문제를 다시 제기한다. 노동의 인간학은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로부터 물려받은 것이지만, 그러나 그것 없이 맑스주의의 계급적대의 문제설정(노동본질주의+적대의 사상)은 있을 수 없다. 반대로 거기에 머무르면 계급적대의 총체화로 나아가게 된다. 발리바르는 맑스의 노동의 인간학을 기각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스피노자적인 &lsquo;교통의 인간학&rsquo;(인간의 본질=교통communication)으로 보완함으로써, 맑스적 생산양식의 이론과 스피노자적 주체화양식의 이론을 결합함으로써 계급적대의 총체화를 피하면서 계급적대의 문제설정을 유효화시키는 역사이론을 구성하고자 한다. 그것은 경제적 적대와 이데올로기적 적대의 절합 위에 구성되는 새로운 역사유물론 내지 역사적 인과성의 도식이다. 여기서 경제(부르주아적 경제 개념이 아니라 정치와 통하는 것으로서의 일반화된 경제 개념)와 이데올로기(일반화된 이데올로기 개념)는 각각 상대편을 통하여 작동하는, 정치의 두 개의 토대가 된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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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스와 스피노자의 결합의 가능성의 토대는 양자가 공유하는, 관계의 존재론의 하나로서의 사회적 관계의 존재론과 적대 내지 갈등의 사상이다. 이것들은 &lsquo;정치에 관한 대중의 관점&rsquo;의 전제조건이다. 스피노자에게서 사고는 교통과정 안에서만 이루어지며, 진리와 개인 및 대중의 동일성은 이 교통과정 속에서 형성된다. 따라서 지적 해방(진리의 인식)과 관련된 스피노자의 분석의 대상은 사회적 관계가 된다. 그것은 &ldquo;자신들의 감정들을 통한 개인들의 교통관계&rdquo;이다. 스피노자에게 사회생활은 교통의 활동인데, 이 교통은 무지의 관계, 미신의 관계, 곧 이데올로기적 적대의 관계에 의해 구조화된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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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리바르는 적대들에 대한 통합적 이론의 구성이라는 무망한 시도를 하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두 개의 보편적 적대의 절합 위에, 계급모순과 지적 차이의 절합 위에 맑스주의를 확장 내지 &ldquo;일반화&rdquo;시키고자 한다.&nbsp;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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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서 한국의 시민운동들의 실천 내에서 사회주의 이념과 맑스주의 이론이 본질적으로는 맹목이었던 부분들에 대해 성찰해 보자. 이들 여러 운동은 종래 제기되지 못했던 다양한 인권들의 문제를 정치의 영역으로 끌어들인다는 중요한 긍정성을 보인다. 예컨대 여성, 이주민, 성적소수자, 에이즈환자의 권리 등등. 이들의 인권을 위한 투쟁은 맑스가 말하는 &lsquo;사회계약, 인권 등등의 이데올로기&rsquo;로서의 부르주아 법적 이데올로기에의, 하물며 부르주아적 실천에의 종속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중요한 것은 인권들에 대한 추상적 선언 자체가 아니라, 인권들을 정치적 공동체 속에서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 따라서 정치적 공동체를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정치적 실천의 차원에서도 &lsquo;인권의 정치&rsquo;라는 것 자체는 아무 것도 아니다. 그것은 부르주아지가 수세기 동안 실천해 온 것이다. 중요한 것은 혁명적인 &lsquo;인권의 정치&rsquo;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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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공동체 속에서 실현되는 인권, 시민으로서 누릴 수 있는 인권, 그것이 citizenship이다. 그러나 그러한 시민권을 누리기 위해서는 먼저 정치적 공동체의 구성원, 시민이어야 한다. 이것 역시 citizenship이라 불린다. 시민됨 내지 시민자격과, 시민으로서의 권리라는 두 차원을 포괄하기 위해 citizenship을 &lsquo;시민권&rsquo;으로 번역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lsquo;시민권&rsquo;이라는 우리말은 이미 시민인 자의 권리라는 뜻을 지니기 때문이다. 가령 &lsquo;시민성&rsquo;과 같이 양자를 포괄하는 개념이 사용되어야 하고 그리하여 citizenship을 &lsquo;시민권&rsquo;으로 축소이해하도록 하는 용어법을 지양해야 한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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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권리 개념을 무제한 확장하는 것, 이렇게 이해된 권리를 정치적 공동체 속에서 유효하게 실현하는 것, 즉 시민성을 무한히 확장하는 것, 다시 말해 &lsquo;민주주의의 경계의 무한한 확장&rsquo;, 이것이 바로 해방(liberation)의 내용이요 공산주의의 다른 이름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실제로 사회주의 이념의 주요한 구성요소의 하나가 시민성에 대한, 즉 정치에 대한 보편적 권리에 대한 발본적으로 민주주의적인 이해이다(부르주아적 헌정들에 의해 법률적으로 혹은 사실적으로 그러한 권리로부터 배제되는 사람들에게까지 확대되는 그러한 권리).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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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인권선언(｢인간의 권리들과 시민의 권리들의 선언｣, 1793)은, 적어도 선언적으로, 인간과 시민을 동일화시킨다. 이 동일화 속에서 모든 인간이 구별 없이 시민성(정치에 대한 보편적 권리)을 갖는다. 그러나 우선 민족국가들로 구획된 현실에서 citizenship은 nationality의 틀에 즉각 갇혔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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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세계에서 계급은 무엇보다도 민족에 의해 과잉결정된다. 근대 정치의 이데올로기적 구도는 한편 추구되는 소유형태에 따라, 다른 한편 추구되는 공동체에 따라 다음과 같이 편성된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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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nbsp;부르주아&nbsp;&nbsp;&nbsp;&nbsp; 진영 : 자유주의(자본 소유)&nbsp;&nbsp;&nbsp;&nbsp;&nbsp;&nbsp;&nbsp; + 민족주의(민족적 공동체)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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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nbsp;프롤레타리아 진영 : 사회주의(노동에 의한 노유) + 공산주의(계급적 공동체)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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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의 역사에서 사회주의는 공산주의라기보다 오히려 민족주의와 결합하였고, 민족주의에 복속하였다. 사회주의자들이 이러한 문제를 인식하지 못한 것은 전혀 아니며, &lsquo;국제주의인가, 야만인가&rsquo;라는 슬로건은 1960년대에 새로 등장한 것이 아니다. 민족적 틀 내에 갇힌 시민성을 해방하여 권리의 영역에서 인간과 시민의 동일성을 실현하는 것, 이것은 지금도 변함없이 사회주의의 근본과제이다. 이와 관련하여 사회주의가 자유주의와 공유해 온 국가주의와 일국중심주의의 문제(월러스틴), 경제주의와 민족주의 등 이데올로기에 대한 관념론적 이해의 문제(알튀세르, 발리바르)와 같은 근본적인 이론적 쟁점이 제기된다. 이 두 가지 거대한 이론적 문제를 맑스주의는 전혀 해결하지 못하였다. 이것만으로도 맑스주의를 포함한 종래의 변혁의 이론들은 환골탈태의 개조를 요한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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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프랑스 혁명이 선언한 그 자체로 혁명적인 &lsquo;평등한 자유&rsquo;(인간과 시민의 동일화와 짝을 이루는 평등과 자유의 동일화)라는, 권리에 대한 근대정치적 이념만으로는 부족하다. &ldquo;근대 정치를 괴롭히는 억압된 모순들&rdquo;, &ldquo;평등의 확립에 의해 폐지될 수 없는 차이(모순)&rdquo;로서의 성적 차이, 지적 차이가 권리 개념에, 시민성 개념에 각인되어야 한다. 해방(자유화)의 내용은 이제 권리의 평등 속에서의 차이의 무화가 아니라 &lsquo;평등 속에서의 차이의 권리&rsquo;의 생산으로서 전진해야 한다고 본다. 권리 개념의 이러한 전화는 인간학적 차이를 부정하거나 형식적으로 중화시키는 시민성이 아니라 그러한 차이에 의해 과잉결정되고 그러한 차이를 전화시키는 명시적 경향을 갖는, 새로운 시민성 개념을 요구한다. 물론 시민성의 개조에서 적대들을 구성하는 성적 차이와 지적 차이만이 문제인 것은 아니다. 부차적일지라도 중요한 다른 인간학적 차이들이 권리 개념에, 시민성 개념에 각인되어야 한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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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리 개념과 따라서 정치 개념이 이렇게 재구성될 때 계급 개념, 더 정확히 말해서 계급적대의 문제설정은 그 변치 않는 생명력을 실현할 것이다. 그럴 때에만 시민 개념, 시민성 개념 역시 부르주아 정치의 협소하고 억압적인 제약을 벗어나 해방의 정치의 유효한 무기가 될 것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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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item><item><author>바라</author><category>찌라시의 문서 창고</category><title>알튀세르 맑시즘에 관한 새로운 정치윤리적 독해의 시도(홍준기)와 반론</title><link>http://blog.aladin.co.kr/vara/1261810</link><pubDate>Sun, 10 Jun 2007 16:2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vara/1261810</guid><description><![CDATA[<!--StartFragment-->선악 이분법으로 동료 학자들을 비난하는 사람은 누구인가&#160; <br />
&lt;진보평론&gt;가을호 알튀세르·들뢰즈 국내 수용 비판 논문을 읽고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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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2008년 10월 13일 (월) 15:06:19 진태원 고려대·철학&#160; editor@kyosu.net&#160;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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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진보평론&gt; 2008년 가을호에 발표된 홍준기 서울시립대 교수(철학)의 「알튀세르 맑시즘에 관한 새로운 정치· 윤리적 독해의 시도:라깡/들뢰즈, 헤겔/스피노자 논쟁 구도의 맥락에서」는 국내의 알튀세르· 들뢰즈 수용에 이의를 제기한 논쟁적인 글이다. 홍 교수의 논문에 대해 진태원 고려대 교수(철학)가 반박문과 함께 홍 교수의 논문을 간략히 요약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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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160;&#160;&#160; <br />
&#160; 진태원 고려대·철학&#160;&#160;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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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기 교수가 이 글에서 보여주려는 바는 두 가지로 요약될 수 있을 것 같다. 첫째는 『자기비판의 요소들』(1974) 이후에 알튀세르는 스피노자주의자라기보다는 오히려 헤겔주의자가 됐으며, 라캉의 정신분석학적 관점과 『일맥상통』(&lt;진보평론&gt; 37호, 288쪽―앞으로 이 글에서 인용할 경우 쪽수만 기입하겠다)하게 주체 개념을 재도입한다. 둘째는 알튀세르에 비해 들뢰즈는 “‘하나의 존재의 모습’, 즉 빈 공간 없는 ‘충만한’ 세계만을 허용하는 세계관을 기준으로 정치적 판단을 내리”고 있으며, 이 때문에 “정치적 오류는 물론 생산적인 학문적 토론을 방해하는 장애물로 기능할 수 있다”(291쪽)는 것이다. 이 글에서는 홍 교수의 알튀세르 논의에 관해 몇 가지만 검토해보겠다.&#160;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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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지적할 수 있는 점은 알튀세르가 “점차적으로 스피노자로부터 멀어지고 헤겔 철학에 다가서고 있다”(278쪽)는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 홍 교수가 의거하는 텍스트 상의 논거는 두 가지뿐이며, 설득력도 부족하다는 점이다. 하나는 『자기비판의 요소들』에서 “스피노자에게는 헤겔이 마르크스에게 준 것, 곧 모순이 항상 결여돼 있다”(Solitude de Machiavel et autres textes, PUF, 1998, p. 188)고 말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미래는 오래 지속된다』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다. “나는 『신학정치론』에서 ‘세 번째 유형의 인식’, 즉 개별적인 동시에 보편적인 대상을 파악하게 하는 가장 높은 형태의 인식에 대한 가장 명백한, 그러나 가장 잘 알려져 있지 않은 해석의 예를 발견했다(나도 인정해야 했듯이 그것은 스피노자에 대한 헤겔적인 해석이었다).”(홍 교수의 글 279쪽에서 재인용)<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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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논거의 경우 홍 교수의 생각과 달리 알튀세르가 스피노자를 포기하고 헤겔의 입장을 대신 택했다는 뜻으로 이해하기는 어렵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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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알튀세르는 『미래는 오래 지속된다』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스피노자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 기원도 종말도 없는 이 사상보다 더 유물론적인 것은 없다. 나는 훗날 바로 이 사상에서, 역사와 진리를 목적도 없고 (……) 주체도 없는 (……) 과정이라고 한 나의 명제를 끌어내게 됐다. 왜냐하면 목적을 근원적 원인으로(근원과 목적이 거울에 의해 반사되는 것으로) 파악하기를 거부하는 것, 그것이 바로 유물론적으로 사고하는 것이기 때문이다.”(『미래는 오래 지속된다』, 247쪽) 알튀세르에게 스피노자가 중요하다면 그것은 그가 엄밀한 의미의 유물론적 사상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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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어떤 유물론일까? 알튀세르는 홍 교수가 준거하는 『자기비판의 요소들』 다음 해에 발표된 「철학에서 유물론자가 된다는 것은 쉬운 일인가?」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나는 사실 맑스주의 변증법의 문제는 유물론의 우위에 대한 변증법의 종속이라는 조건 하에서만 (……) 제기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 그[헤겔]는 (……) “변증법을 신비화했다.” 그런데 사실 헤겔의 신비화는 그 자체 에피쿠로스 이후 또는 아마도 그 이전부터 항상 나타났던 유물론(존재가 됐든 주체 또는 의미가 됐든 간에 일체의 기원의 철학과 거리를 둠으로써만 정립될 수 있는) 과 변증법 간의 항상적인 관계를 입증하고 있다.”(『아미엥에서의 주장』, 147쪽―번역은 수정) 알튀세르에게 유물론은 기원(과 목적)의 철학에 대한 거부를 통해서만 정립되며, 이것이 바로 그가 스피노자에게서 발견한 것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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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튀세르는 이른바 유고들에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유고들의 핵심 주제 중 하나는 이른바 ‘우발적 유물론’ 또는 ‘마주침의 유물론’에 관한 사고다. 그리고 알튀세르에게 이러한 유물론은 “주체(……)의 유물론이 아니라, 지정할 수 없는 목적이 없이 자기 발전의 질서를 지배하는 (주체 없는) 과정의 유물론”(『철학에 대하여』 동문선, 1996, 40쪽)이다. 심지어 그는 한 대목에서는 마르크스의 최종 심급 개념을 재해석하면서 변증법과 우발성을 대립시키고 있다. “마르크스는 『정치경제학 비판 서설』에서, 논리적으로 선행하는 형태들이 역사적으로 선행하는가 여부를 검토하면서, “경우에 따라 다르다 a d e、-pend”고 썼어요. 경우에 따라 다르다, 이것은 우발적인 말이지 변증법적인 말이 아닙니다.”(같은 책, 45쪽―번역은 수정) 따라서 「유물론의 유일한 전통」(1993)이 스피노자와 마키아벨리 두 사람에게 절반씩 할애돼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런데 홍 교수는 어떤 근거로 알튀세르가 “점차적으로 스피노자로부터 멀어지고 헤겔 철학에 다가서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일까.&#160;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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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논거의 경우에 대해서는 여유가 없으므로 한 마디만 지적해두자. 제 3종의 인식의 문제에서 알튀세르가 보편적 개별성이라는 범주를 가지고 사고하고 있으며, 이 점에서 그는 헤겔의 관점을 채택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것이 그가 스피노자로부터 멀어지고 있다고 단언할 수 있는 근거는 되지 못한다. 그것은 알튀세르가 줄곧 강조해왔던 것처럼 인식의 문제에서 스피노자와 헤겔은 데카르트와 칸트의 초월론적 문제설정에 맞서 공통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는 점을 다시 한 번 입증해주는 사례일 뿐이다.&#160;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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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증의 빈곤함도 문제이긴 하지만 이 글의 더 큰 문제점은 단순한 이분법적 논리와 자의적인 재단이 다수 엿보인다는 점이다. 가령 홍 교수는 “교조적인 맑스주의자들이”(251쪽) 자신과 다른 입장에 대해 “무조건적으로 비판했던 오류를 범했던 것”을 준엄하게 꾸짖으면서 “생산적인 학문적 토론”(291쪽)을 위해서는 선/악이라는 이분법에서 벗어나 좀 더 공정하고 관대한 태도를 가질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 대목을 읽고 있노라면 홍 교수는 관대하고 공정한 학자가 아닐까 기대하게 된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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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바로 다음 대목에서 홍 교수는 “알튀세르와 정신분석을 무관한 것으로 간주하려는 이러한 입장은 알튀세르 이론을 ‘정치편의주의’로 축소시킬 뿐만 아니라, 알튀세르와 같은 기품 있는 철학자를 ‘정치꾼’으로 만드는 오류를 범하고 있”(253쪽)다고 신랄하게 비난하고 있다. 요컨대 “알튀세르와 정신분석을 무관한 것으로 간주하려는 이러한 입장”은 학문보다는 정치편의주의에 몰두하는 정치꾼과 다르지 않다는 것, 다시 말해 생산적인 학문적 토론의 적이라는 것이다. 참으로 관대한 태도가 아닐 수 없다. <br />
그런데 도대체 누가 “알튀세르와 정신분석을 무관한 것으로 간주”하려 했을까. 홍 교수는 그 당사자로 필자를 지목하면서 각주에서 필자의 논문 368쪽을 참조하라고 해놓았다. 문제의 페이지를 참조해보면 독자들은 이러한 전가가 얼마나 엉뚱한 것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홍 교수가 제시한 「라캉과 알튀세르」(김상환ㆍ홍준기 엮음, 『라깡의 재탄생』, 창작과비평, 2002)라는 글에서 필자의 논점 중 하나는 라캉과 알튀세르 사이의 관계를 일방적인 적용이나 차용의 문제로 보아서는 안되며 “알튀세르의 이니셔티브”를 존중해야 하고 “라캉과 알튀세르의 관계는 일차적으로 알튀세르의 이론작업의 맥락 내에서 평가돼야”(앞의 책, 358쪽) 한다는 것이었다. 이런 관점에서 필자는 알튀세르의 ‘과잉결정(surd’etermination)’ 개념은 프로이트의 ‘다중결정(Uberdeterminierung)’을 “직접 적용한 것이 아니라, 이 개념[다중결정]에 새로운 개념 규정들을 보태서 이 개념을 대체하는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같은 책, 370쪽)낸 것이라고 주장한 것이고, 또한 “알튀세르는 상상적 왜곡의 측면에서 라캉의 문제설정, 라캉의 개념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지만 이러한 “활용을 지휘하고 있는 것은 역시 스피노자-마르크스적인 문제설정”(같은 책, 385쪽)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어떤 식으로 이해하든 이는 알튀세르가 라캉과 무관하다거나 정신분석과 무관하다는 뜻으로 읽을 수는 없을 것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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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그는 마슈레와 들뢰즈에 대해 “다만 한 가지 안타까운 점은 헤겔 철학의 대안으로서 특히 초기에 스피노자 철학을 원용한 알튀세르에 의해 영향 받은 알튀세르의 제자들(특히 마슈레) 그리고 들뢰즈의 영향으로 ‘모순’이라는 범주를 불필요하거나 ‘부차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국내의 프랑스 철학 연구자들 사이에 생겨나는 경향이 있다”(257쪽)고 일갈하면서 다음과 같이 덧붙인다. “과연 스피노자 철학은 ‘무조건 좋은’ 철학이고 헤겔 철학은 ‘무조건’ 나쁜 철학인가?”(같은 곳) 필자로서는 이런 식의 발상이 어떻게 가능한지 잘 알 수가 없다. 마슈레의 『헤겔 또는 스피노자』는 어떤 의미에서도 “무조건 좋은” 스피노자와 “무조건 나쁜” 헤겔을 구별하려는 책으로 읽을 수는 없다. 제목에서 쓰이는 “또는”이라는 단어(불어로는 ou 영어로 하면 or)는 마슈레 자신이 설명하듯이 일차적으로는 양자택일이 아니라 동일성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곧 스피노자와 헤겔은 특히 인식에 대한 법적ㆍ초월론적 문제설정을 비판하는 데서 공통적이며, 유한과 무한 사이의 단순한 대립을 넘어서려고 한다는 점에서도 공통적이다. 두 사람 사이의 차이 및 상이한 입장은 이러한 공통성 위에서 비로소 식별 가능한 것이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단순한 양자택일을 좋아하는 홍 교수의 눈에는 이것이 “무조건 좋은” 스피노자와 “무조건 나쁜” 헤겔을 선택해야 하는 문제로 보이는 것 같다. <br />
그러니 도대체 선/악 이분법에 사로잡혀 동료 학자들을 정치꾼과 다를 바 없는 사람으로 만드는 이는 누구인가.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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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태원 고려대·철학<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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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서울대에서 스피노자에 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했다. 주요 논문으로는 「스피노자 정치학에서 사회계약론의 해체」등이 있다.&#160;<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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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튀세르 맑시즘에 관한 새로운 정치․윤리적 독해의 시도: 
라깡/들뢰즈, 헤겔/스피노자 논쟁 구도의 맥락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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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기 (한국정신분석상담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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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문제 상황: 정신분석과 들뢰즈, 그리고 알튀세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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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160;&#160;필자는 들뢰즈의 글 혹은 들뢰즈에 관한 특히 국내 저자들의 글을 읽을 때 종종 당혹감을 느끼게 되는데 그 이유는 들뢰즈 철학이 갖는 엄청난 매력과 혁명성, 다수성에 대한 열정적 옹호에도 불구하고 많은 경우에 그의 이론은 선/악이라는 이중적 구도를 전술적으로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지배자 담론’의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 없기 때문이다. 필자가 보기에 이러한 선/악 구도에 입각한 들뢰즈 이론은 ‘혁명적 외관’을 띠고 있지만 자신과 다른 존재론적 입장에서 출발하는 ‘민주주의’의 동지들을 과도하게 폄하 혹은 비판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 결국은 사실상 그러한 동지들을 ‘주적’으로 만들 수 있는 오류를 범할 수 있다. 과거에 사회주의가 융성하던 시절에 교조적인 맑스주의자들이 자신의 존재론적, 철학적 입장과 다른 이론 혹은 실천에 대해 열린 마음을 갖지 못하고 무조건적으로 비판했던 오류를 범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필자의 이러한 생각은 들뢰즈에 대한 무지와 오해에서 비롯된다는 반론을 즉각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보다 설득력 있는 들뢰즈 비판을 제시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알랭 바디우의 『질 들뢰즈―존재의 함성』 정도의 깊이와 통찰력을 가진 논증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들뢰즈 철학과 같은 방대한 철학을 다루기 위해서는 이렇듯 폭넓은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 
&#160;&#160;&#160;제한된 지면에서 이러한 방대한 작업을 할 여유가 없으며, 이러한 작업은 이 글의 직접적 목표가 아니므로 여기에서 필자는 이 글의 주제인 정신분석과 맑시즘, 알튀세르의 정신분석 이해, 그리고 스피노자와 헤겔 이해를 중심으로 논의를 진행하고자 하며, 이러한 논의를 진행해 나가면서 위에 언급된 문제들에 대해 부수적으로 접근하는 방식을 취하고자 한다. 들뢰즈가 철저하게 비판하고자 했던 정신분석은 사실 역사적으로 본다면, 임상 실천이라는 좁은 틀을 넘어, 다양한 진보적인 이론과 결합해 사회변혁적인 패러다임 중 하나로 자신의 학문적 의의를 입증해왔다. 정신분석을 자신의 중요한 학문적 기초로 수용해 맑시즘을 혁신하는 데에 일생의 노력을 기울여 왔던 알튀세르가 대표적인 예 중의 하나로 꼽힐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국내외의 맑스주의자 혹은 스피노자주의자 중 상당수는 여전히 알튀세르 철학은 라깡 이론과 아무 상관이 없다는 입장을 취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필자는 이들이 결국 라깡 이론을 배제한 채 맑스주의 혹은 철학을 건설하려고 노력하고 있을 뿐이라는 인상을 피할 수 없다. 굳이 이러한 배타적인 입장을 취하고자 하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인가? 어쨌듯 알튀세르와 라깡의 결합을 부인하고자 하는 논자들은 알튀세르가 라깡을 원용하고자 했던 경우가 있을지라도 이는 내적인 본질적 이유에서가 아니라, 오직 정치적으로 ‘이용’했을 뿐이라는 지극히 정치적인 결론을 내린다. 사실 이러한 입장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고 국내에서 80년대 때부터 제시되던 전형적인 입장이다.1) 하지만 알튀세르와 정신분석을 무관한 것으로 간주하려는 이러한 입장은 알튀세르 이론을 ‘정치편의주의’로 축소시킬 뿐만 아니라, 알튀세르와 같은 기품있는 철학자를 ‘정치꾼’으로 만드는 오류를 범하고 있으며, 더 나아가 알튀세르 철학을 체계적으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문제가 있다.2) 필자는 이러한 맥락에서 필자는 알튀세르에 대한 ‘비정신분석적’ 해석은 물론 방금 언급했듯이 정신분석을 보수주의적인 이론의 전형으로 간주하는 들뢰즈의 욕망이론에 대해 의구심을 갖게 된다. 왜 들뢰즈는 민주주의의 동지일 수 있는 인접 이론들을 굳이 ‘주적’ 중의 하나로 간주해야 하는가? 들뢰즈가 특히『반오이디푸스』, 『천개의 고원』등 에서 정신분석 비판에 그렇게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는 사실은 우리를 놀라게 한다.3)&#160; 들뢰즈는 정신분석을 자본주의적 영토화의 ‘결정적인’ 매개로 간주한다. 하지만 이러한 비판은 과연 타당한가? 왜 들뢰즈는 마치 정신분석이 인간의 욕망과 자유, 해방을 가로막는 ‘진정한 주적’이라는 듯이 정신분석을 비판하는 것에 그렇게 많은 에너지를 소비했는가? 잘 알려져 있듯이 들뢰즈에 따르면 라깡 이론은 ‘결여’와 ‘환상’을 먹고 사는 패배적이고 보수적인 이론이며, 오이디푸스라는 가족 삼각형에 모든 것을 가두어 놓는 폐쇄적인 이론이다. 하지만 ‘적어도’ 정신분석의 라깡적 버전에서 정신분석은 곧 사회, 정치이론이며, 라깡에 따르면 오이디푸스의 너머, 즉 분석의 끝, 혹은 ‘오이디푸스 너머’라는 개념이 확고하고 분명한 형태로 존재함에도 불구하고4) 왜 들뢰즈 및 들뢰즈 수용자들은 이에 대해 침묵하는가? 왜 들뢰즈 연구자들은 라깡의 욕망과 향유 이론, 환상 이론, 사회이론을 ‘선의’를 갖고 연구하지 않은 채 정신분석의 ‘해악성’에 대해 그토록 강하게 비판하는가? 예컨대 우리는 들뢰즈가 집중적으로 비판한 바 있는 라깡의 개념인 ‘결여’라는 개념이 들뢰즈의 주장과는 달리 인간은 ‘결여’ 속에서 만족하며 고통 속에 살아야 한다는 것을 함축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결여란 라깡에게 다양한 의미를 갖는 개념이다. 라깡적 관점에서 본다면 예컨대 억압이란 타자가 주체에게 ‘자유의 공간’을 허용하지 않고 너무 많은 향유를 획득하고자 하는 것에 있다. 예를 들면 망상증적 정신병자는 타자와의 이자관계 속에 머물러 있는 주체이며, 이러한 병리적 이자관계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주체와 타자 사이에 결여가 도입되어야 한다. 
&#160;&#160;&#160;이러한 맥락에서 알튀세르의 유고인 「마주침의 유물론이라는 은밀한 흐름」, 「독특한 유물론적 전통」5)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그리고 필자의 이 글 역시 알튀세르의 이 유고들을 출발점으로 삼아, 알튀세르와 정신분석의 관계, 그리고 들뢰즈, 스피노자, 헤겔에 대한 새로운 해석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것에 있다. 이 유고에서의 알튀세르의 은유적 표현을 빌려 말한다면 라깡이 말하는 결여란 ‘자유의 빈공간’을 의미하며, 따라서 주체는 오히려 이 결여―자유의 빈공간―속에서 ‘기쁜’ 마음(스피노자)으로 삶과 자유를 향유(라깡)할 수 있다. 이렇듯 라깡에게 결여란 흔히들 비판하듯이 단순히 만족의 결핍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주체와 타자 사이에, 그리고 주체 속에 주체를 억압하는 타자로부터 거리를 제공하는, 주체의 자유의 공간을 의미한다. 알튀세르는 이러한 ‘빈곳’이라는 은유를 이데올로기와의 ‘단절’, 인식론적 ‘단절’과 같은 개념과 결부시켜 활용한 바 있다. 반면 ‘충만함’이란 은유는 경우에 따라서 알튀세르에게 이데올로기라는 연속적 공간(즉 ‘상상적’ 충만함)을 의미한다. 물론 “충만한 말(parole pleine)”이라는 라깡의 용어에서 볼 수 있듯이 ‘충만함’이라는 단어가 알튀세르에게 무조건 ‘나쁜’ 의미만을 갖는 것은 아니다. 알튀세르 역시 라깡의 ‘충만한 말’이라는 용어를 이데올로기적인 “공허한 말(parole vide)”와 대비시켜 긍정적 의미를 부여해 사용한 바 있다.6)&#160; 
&#160;&#160;&#160;반면 들뢰즈는 『반오이디푸스』에서 결여와 충만함을 대립시키며 후자를 지지하는 존재론의 관점에서 정신분석을 비판한다. 들뢰즈가 원용하는 철학자들의 존재론, 예컨대 스피노자의 존재론에는 ‘빈공간’이 존재하지 않는다. 들뢰즈는 이러한 ‘특정한’ 존재론적 입장을 절대화해, 이제 ‘빈곳’을 말하는 모든 이론은 결여 속에서 만족하고자 하는 패배적 이론이라는 논지로 ‘확대 해석’하는 듯한 논의 방식을 취한다. 여기에서 우리가 제기할 수 있는 비판은 들뢰즈는 어떤 ‘특정한 존재론’을 절대화시켜 다른 존재론적 입장을 무조건 잘못된 이론으로 몰아간다는 것이다. 필자는 존재론 혹은 자연철학 혹은 형이상학적 담론을 ‘직접적으로’ 정치, 사회철학에 적용하는 이론은 ‘특정한 세계관’을 직접적으로 정치적으로 해석하는 ‘성급한 정치화의 오류’를 범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와 반대로 라깡은 ‘특정한’ 세계관을 특권화하는 이론이야말로 가장 이데올로기적일 수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160;&#160;&#160;다시 알튀세르에 대해 언급하자. 알튀세르는 유고에서 철학에 ‘공백’, 즉 빈공간‘을 도입한 사람들을 “철학에서의 진정한 유물론 전통”7)을 도입한 사람으로 간주하며 이러한 유물론을 도입한 사상가들을 다수 인용한다. 데모크리토스, 에피쿠로스, 마키아벨리, 홉스, 파스칼, 클라우제브츠, 칸트, 스피노자, 헤겔, 맑스, 레닌, 그람시, 데리다, 들뢰즈, 하이데거, 비트겐슈타인, 그리고 프로이트 등. 알튀세르는 유고의 여기저기에서 이들 모두를 유물론의 사상가로 (물론 경우에 따라서는 비판을 가하기도 하면서) 스스럼없이 언급한다. 하지만&#160; 보통의 경우 사람들은 이들을 서로 양립할 수 없는 사상가로 간주하지 않는가? 어떻게 들뢰즈가 빈공간을 말하는 철학자일 수 있으며, 헤겔과 들뢰즈가 서로 양립할 수 있는가? 알튀세르의 이러한 논의 방식이 그의 철학적 무능력 혹은 혼합주의에서 기인한다고 섣불리 판단하지 말자. 관념론자이든 유물론자이든, 공산주의자이든 그렇지 않든지 상관없이 “자유”라는 “빈공간, 장애가 없는 공간 속에서 이루어지는 개개의 코나투스의 전개”를, 그리고 “극단에서, 한계적 상황에서” 운[우연]과 공백을, “운의 공백 자체”를 “사고한 인물”8)은 알튀세르에게 모두 유물론자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알튀세르의 ‘정치적 윤리학’이, ‘하나의 존재의 모습’, 즉 빈공간 없는 ‘충만한‘ 세계만을 허용하는 세계관을 기준으로 정치적 판단을 내리는 들뢰즈 철학과 달리 열린 태도를 취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160;&#160; 
&#160;&#160;&#160;그러므로 이제 여기에서 스피노자 철학과 정신분석(혹은 헤겔 철학)에 대한 알튀세르의 입장에 대해 언급할 필요가 있다. 알튀세르의 입장은 현대 프랑스 철학의 흐름과 관련해 일종의 분수령을 이룬다. 잘 알려져 있듯이 알튀세르는 스피노자의 존재론과 헤겔 철학(혹은 정신분석) 사이에서 동요한 바 있다. 이러한 동요는 알튀세르가 맑스주의를 재정립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겪어야 했던 동요로서, 과연 맑스 철학이 스피노자를 경유해 완성될 수 있을 것인지 아니면 라깡(혹은 헤겔)을 통해 완성될 수 있을 것인지라는 질문에서 정점에 달한다. 알튀세르는 『맑스를 위하여』, 『자본론 읽기』등에서는 헤겔 철학이 단 하나의 모순만을 허용하는 목적론적 철학이므로 헤겔 철학의 관점에서는 ‘복잡한 전체’를 사고할 수 없다고 비판한 바 있다. 하지만 헤겔에 대한 알튀세르의 입장은『자기비판의 요소들』에서 변하기 시작하며 이와 더불어 스피노자 철학에 대해서 거리를 두기 시작한다. 또한 『레닌과 철학』에서 알튀세르는 헤겔 논리학 서두에서 존재가 무로 이행하는 것에서 ‘기원이 스스로를 무화하는’ 비목적론적 철학을 읽어내며 이로써 헤겔 철학을 ’비목적론적으로‘ 해석해야 할 것을 촉구한다. 『자기비판의 요소들』에서 알튀세르는 스피노자 철학의 관점에서는 “모순”을 사유할 수 없으므로 “모순”을 사유할 수 있는 헤겔 철학은 맑스주의의 혁신을 위해 필요불가결한 철학임을 주장한다. 더 나아가 유고에서 알튀세르는 ’유물론적 전통‘ 속에 헤겔을 포함시킬 뿐만 아니라 맑스주의 창조적 재구성을 위해서 과거에 자신이 원용했던 정신분석의 타당성을 다시 한번 확인하며, (들뢰즈의) 스피노자로부터 거리를 둔다.9) 그러므로 자신의 이론적 작업을 다시 한번 총결산하는 ‘유고’에서 알튀세르는 이렇게 말할 수 있었다. “‘공산주의란 소비에트 더하기 전력화 더하기 정신분석이다’라고 한 우리 친구 자크 마르탱의 날카로운 말과 곧바로 만난다.”10) 
&#160;&#160;&#160;맑스주의의 재정립을 위해서는 모순 범주가 필요하다는 알튀세르의 언급은 사실 너무 당연한 말이어서 더 이상 언급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헤겔 철학에 대한 알튀세르의 재해석은 내용적으로 그다지 풍부하지 않으므로 과연 헤겔이 말하는 모순이 무엇이며 어떤 철학적, 실천적 의미를 갖는지 별개의 상세한 연구가 필요하며 이러한 작업은 현실에 대한 철학적 개입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한 가지 안타까운 점은 헤겔 철학의 대안으로서 특히 초기에 스피노자 철학을 원용한 알튀세르에 의해 영향받은 알튀세르의 제자들(특히 마슈레) 그리고 들뢰즈의 영향으로 ‘모순’이라는 범주를 불필요하거나 ‘부차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국내의 프랑스 철학 연구자들 사이에 생겨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이다. 이들은 특히 헤겔 논리학에 대한 철저한 내재적 연구 없이 헤겔은 목적론을 주창한 형이상학자다라는 주장을 반복할 뿐이다(아마도 프랑스에 헤겔 연구자들의 수가 적다는 사실도 이러한 상황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이들이 말하듯이 과연 스피노자 철학은 ‘무조건 좋은’ 철학이고 헤겔 철학은 ‘무조건 나쁜’ 철학인가? 하지만 알튀세르가 문제를 제기했듯이 스피노자의 철학은 ‘모순’을 사유할 수 없지 않은가? 사실 스피노자 철학에 따르면 ‘모순’이란 결코 존재하지 않으며 반면 헤겔은 ‘모순’ 혹은 ‘부정성’을 본질적 범주로 간주한다. 이러한 입장의 차이를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앞에서 언급했듯이 알튀세르는 ‘모순’ 범주에 우선성을 부여함으로써 다시 헤겔을 복원하려고 시도한다. 그렇다면 알튀세르에게 헤겔 철학은 보다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를 가지며, 스피노자 철학과 는 어떤 관계가 있는가? 알튀세르에게 헤겔과 스피노자 철학이 갖는 의미는 과연 무엇인가? 본 논문은 알튀세르 맑시즘에서 스피노자와 헤겔 철학이 갖는 의미를 설명하고, 더나아가 모순 개념이 프랑스 현대철학에서 왜 중요한 쟁점이 되는지를 밝히고자 하며, 이를 바탕으로 정신분석이 알튀세르에서 갖는 의미를 재조명함으로써 단순한 정치철학으로서 알튀세르 맑시즘이 아니라 정치윤리학으로서의 알튀세르 철학의 의의를 재조명고자 하는 목표를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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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 알튀세르의 스피노자와 헤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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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알튀세르의 ‘자기비판’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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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160;&#160;특히 스피노자와 헤겔과 관련해 알튀세르의 맑시즘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1974년에 출간된『자기비판의 요소들』의 논의를 명확히 파악할 필요가 있다. 필자의 관점에 따르면 알튀세르는 『자기비판의 요소들』의 한 장인 「스피노자에 관하여」에서 자신의 과거의 오류를 스스로 지적하는 가운데 자신을 스피노자주의자였다고 선언한다. “우리는 스피노자주의자였다.”11) 이러한 선언이 갖는 의미는 무엇인가? 많은 논자들은 알튀세르의 이러한 선언을 알튀세르의 정신분석학과 헤겔 철학으로의 단절이라는 관점에서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국내외의 다수의 알튀세르주의자들은 ‘우리는 스피노자주의자였다’는 알튀세르의 이 언급을 과도하게 배타적으로 확대해석해, 알튀세르 이론은 스피노자주의적으로 설명되어야지 결코 정신분석, 그리고 헤겔 철학의 관점과 연결시켜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취하고자 하는 것이다.12) 뿐만 아니라 들뢰즈를 포함한 스피노자를 연구자들 역시 스피노자 철학의 우위를 주장하는 가운데 헤겔 철학이나 정신분석학을 보수적이고 무의미한 이론으로 ‘손쉽게’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알튀세르를 오직 스피노자의 관점에 의존해 해석하기 전에 알튀세르의 『자기비판의 요소들』에서의 “우리는 스피노자주의자였다”는 선언의 의미가 무엇인지 명확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160;&#160;&#160;우선 알튀세르의 ‘자기비판’은 『자본론 읽기』, 『맑스를 위하여』 등 초기의 저작들에서 자신이 범한 과도한 이론주의, 합리주의를 비판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진리/오류라는 대립 속에서 사유한다는 것은 사실 합리주의적이다. 하지만 과학 자체(der Wissenschaft)와 이데올로기 자체(der Ideologie), 그리고 그것들의 차이에 관한 보편적 이론 속에서 받아들여진 진리/거부된 오류라는 대립을 사유하고자 하는 것은 사변(Spekulation)이다.”13) 그렇다면 보다 구체적으로 알튀세르가 과거에 범했다고 고백하는 합리주의, 그리고 사변주의의 내용은 보다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그것은 다름 아닌 인식론적 단절(바슐라르)이라는 개념을 통해 과학적 맑스주의를 재구성하는 가운데 알튀세르가 범한 오류(더 정확히 말하면 편향)이다. 쉽게 말하면 맑스 철학의 ‘과학성’을 과도하게 강조한 나머지 과학과 이데올로기, 진리와 오류라는 이분법적 사고 속에서 맑스 철학을 재해석했다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합리주의적 편향을 범하던 시기에 알튀세르는 마치 맑스 철학은 ‘학문의 여왕’이며, 따라서 맑스주의 철학은 과학으로서의 맑스주의와 이데올로기로서의 부르주아 이론을 구분해주는 어떤 확고하고 영원한 준거점을 갖고 있다는 듯이 맑스주의 철학을 정의하는 편향을 범했다는 것이다. 알튀세르 스스로가 인정하고 있듯이 이는, 그가 거부하고자 했던 부르조아적 관념론 혹은 경험론의 관점에서 맑스철학을 재해석한 것에 지나지 않으며 이러한 관점은 『자기비판의 요소들』에서 수정된다. 과거에 알튀세르는 철학, 즉 유물론적 변증법을 “이론적 실천들의 이론”14)으로 정의했으나 이제 알튀세르는 자신의 새로운 관점에 따라 맑스주의 철학을 “실천에 관한 (새로운) 철학이 아니라 철학의 (새로운) 실천”15) 혹은 “이론에서의 계급투쟁”16), 이론에서의 정치”으로 정의한다. 물론 여전히 『자기비판의 요소들』에서 알튀세르는 자신이 스피노자에 철학에서 자신이 빌려온 내용 혹은 영감 받은 부분이 무엇인지 언급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목적론의 거부17), 둘째, 주체 이데올로기 비판(스피노자의 반데카르트주의)18), 셋째, 진리의 기준 제시라는 거짓 문제의식의 거부19), 넷째, 유명론자(Nominalist)로서의 스피노자20). 다섯째, 헤겔에게 알려지지 않은 변증법을 스피노자에게서 발견함.21) 
&#160;&#160;&#160;이 시기에 알튀세르가 헤겔에 대해 비판한 내용으로부터 논의를 시작하자. 사실 『자기비판의 요소들』에서의 알튀세르의 헤겔 비판은 그가 이전에 헤겔에 대해 비판했던 내용과 대동소이하다. 즉 당시의 알튀세르의 헤겔 비판은 사실 헤겔에 대한 엄밀한 연구에 근거한 것이라기보다는 당시 프랑스나 혹은 현재 혹은 과거 헤겔 철학에 대해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갖고 있는 의견(혹은 편견)과 일치하는 견해를 보여줄 뿐이다. 알튀세르에 따르면 헤겔은 예컨대 목적론의 철학자이며, 헤겔 변증법은 “자기 자신의 질료를 생산하는 변증법”으로서 그것이 제시하는 논제는 “정확히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에 상응하는 논제이다. 헤겔 변증법은 “자본은 (자본가의) 노동에 의해 생산된다”22)는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를 지지하는 이론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요컨대 헤겔 철학은 타자를 일자로 흡수하는 ‘동일성의 철학’이라는 것인데, 여기에서 우리는 정말 헤겔 철학을 반드시 그렇게 해석해야하는가라는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어쨌든 알튀세르에 따르면 반면 맑스주의의 변증법은 모든 것을 하나의 축으로 환원시키는 헤겔 변증법과 달리 “실재적 구분”을 가진 여러 영역들의 존재를 허용하며, 이를 사고하기 위해 토픽(Topik) 모델을 제시하는 반면 헤겔에게는 이러한 토픽 모델이 존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하위의 토픽(심급)은 그것의 “진리”인 상위의 토픽(심급)으로 “지양”되기 때문이다. 알튀세르가 맑스주의의 혁신을 위해 스피노자에게서 발견한 내용들이 다름 아닌 헤겔에게 존재하지 않는 것이며, 따라서 알튀세르는 이러한 스피노자의 입장에 따라 헤겔 철학을 비판했던 것이다. 
&#160;&#160;&#160;하지만 문제는 이렇게 간단하지 않다. 헤겔을 비판하는 알튀세르가 경제결정론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독단적 관점에 빠진 것은 아닌지? 실제로 알튀세르는 경제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개념틀을 제공하는 맑스주의 변증법의 핵심적 내용으로 간주했던 중층결정과 관련해 “최종 심급의 고독한 순간은 오지 않는다”23)고 선언하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항상 최종 심급에서는 경제가 결정한다는 경제결정론적 논제24)를 제시한다. 알튀세르의 이러한 모순적 언급은 알튀세르의 이론 전체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심각한 문제점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최종 심급의 고독한 순간이 오지 않는다는 것은 경제 결정론에 대한 비판을 의미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튀세르는 또한 최종 심급에서는 경제가 결정한다고 말하고 있지 않은가? ‘각 심급의 상대적 자율성’을 인정하면서도 ‘최종심급에서의 경제에 의한 결정’을 어떻게 근거지울 수 있는가? 바로 여기에서 알튀세르는 스피노자 철학을 원용하며 “구조적 인과성” 개념을 도입함으로써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 이러한 인과성 개념은 라깡에 따르면 헤겔에게서 발견되지 않는 개념이기도 하다. 이제 이에 대해 살펴보자. 
&#160;&#160;&#160;우선 『자본론 읽기』에서의 알튀세르의 논의에 대해 언급해보자. 여기에서 알튀세르는 인과성에 대한 세 가지 모델에 대해 언급한다. 첫째 모델은 “이행적 인과성(transitive causality)”이고 두 번째는 표현적 인과성(exprsseve causality), 세 번 째 모델은 “구조적 인과성(structural causality)”25)이다. 이행적 인과성 모델은 갈릴레이와 데카르트에서 연원하는 것으로 이행적 인과성은 직선적 인과성을 의미한다. 쉽게 말하면 이는 당구공이 다른 당구공에 영향을 미치듯이 한 물체가 다른 물체에 대해 직선적 혹은 이행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인과성 개념을 의미한다. 알튀세르에 따르면 기계적 체계는 이렇듯 인과성을 이행적 효과에 국한시키므로 전체가 그것(전체)의 요소에 미치는 효과를 사유할 수 없다.26) 반면 표현적 인과성은 전체의 요소들에 미치는 전체의 효과를 사유할 수 있도록 해준다. 알튀세르에 따르면 표현적 인과성 개념은 라이프니츠에서 유래했으며 헤겔에 의해 차용되었고 헤겔 사유를 지배하는 사유체계이다. 표현적 인과성 개념은, 전체는 내적 본질로 환원되며, 부분의 요소들은 이 내적 본질의 현상적 형태들에 지나지 않는다고 가정한다. 그러므로 본질의 내적 원리는 전체의 각 지점(계기) 속에 현존한다. 즉 표현적 인과성 원리에 따르면 경제, 정치, 법, 문학, 종교 등 각 요소는 전체의 본질의 내적 원리와 동일하다. 전체는 전체의 부분으로서 각 요소들이 전체를 표현한다는 ‘정신적’ 특성을 갖는다. 요컨대 “라이프니츠와 헤겔은 요소들 혹은 부분들에 대한 전체의 효과(영향)이라는 범주를 사용했지만 이는 이 전체가 구조가 아니라는 조건 하에서였다.”27) 
&#160;&#160;&#160;그러므로 알튀세르는 표현적 인과성이 가정하는 통일성과는 다른 유형의 통일성을 가진 전체, 즉 구조지어진 전체를 사유할 수 있는 구조적 인과성 개념을 제시한다.&#160; 표현적 인과성 개념은 ‘구조에 의한 요소들의 결정’을 사유할 수 없으며, 따라서 그는 스피노자를 원용해 맑스의 인과성 개념을 설명할 것을 제안한다. 구조적 인과성이란 “그것[구조]의 효과 속에 구조가 존재함”, 달리 말하면 “효과는 구조의 외부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즉 “구조는 효과들 속에 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바로 여기에서 알튀세르는 스피노자를 인용하며 “구조의 전체적 존재는 그것의 효과로 구성되어 있다”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구조적 인과성과 표현적 인과성의 차이는 무엇인가? 구조적 인과성에 대한 알튀세르의 설명에서 알 수 있듯이 표현적 인과성(그리고 이행적 인과성) 개념은 원인과 그것의 효과들이 서로 외재 적이라는 것을 함축하며, “현상과 본질 사이의 고전적 대립”에 근거하고 있다.28) 
&#160;&#160;&#160;하지만 스피노자로부터 원용한 구조적 인과성 개념으로써 알튀세르는 ‘각 심급들의 상대적 자율성’과 ‘최종 심급에서의 경제에 의한 결정’을 설명할 수 있는가? 사실 알튀세르는 단지 “구조는 경제적 현상 외부의 본질이 아니다”라는 말로써 경제적 심급에 대해서 언급할 뿐, ‘상대적 자율성’과 ‘최종 심급에서의 경제에 의한 결정’이라는 문제를 스피노자와 연관시켜 명확히 해결할 수 없었다. 이러한 문제를 스피노자의 존재론과 관련해 보다 명확히 언급한 곳은 「담론이론에 관한 세 메모」29)이다. 여기에서 알튀세르는 라캉이 단 하나의 보편이론(기표의 보편이론)만을 받아들이고 사적 유물론의 보편이론을 수용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라캉을 환원주의적이라고 비판한다.30) 그리고&#160; 알튀세르는 라캉과 반대로 사적 유물론의 보편이론이 기표의 보편이론을 결정한다고 주장하면서, 자신의 주장이 환원주의적이 아님을 보여주기 위해 자신의 주장은 결코 기표의 보편이론을 사적 유물론의 보편이론으로 포섭, 혹은 흡수하는 것은 아니라고 덧붙여 말한다.31) 여기에서 알튀세르는 자신의 주장이 환원주의적이지 않음을 설명하기 위해 스피노자의 존재론을 원용한다. “다양한 속성들은 단지 하나의 같은 실체의 속성들이다”32) 이러한 스피노자의 존재론에 근거해 알튀세르는 “정신분석학적 대상의 국지이론은 사적 유물론의 보편이론이 기표의 보편이론으로 특수하게 접합된다는 것을 보편이론으로 갖는다는 사실 속에서, 기표라는 속성과 역사라는 속성 사이의 변별적 접합의 존재의 사례 중 하나를 우리는 확증한다”33)고 말한다. 쉽게 말하면, 알튀세르에 따르면 라깡 정신분석의 핵심인 기표이론이라는 보편이론34)은 사적유물론이라는 보편이론에 접합(흡수)되는 것이 보편이론이라는 것인데, 이러한 주장은 물론 (경제결정론적 함의를 갖는) 사적 유물론이 모든 것을 다 설명하는 보편이론의 가치를 갖는다는 사실을 함축하는 주장이며 여기에서 우리는 알튀세르가 경제환원주의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35)&#160; 
&#160;&#160;&#160;요컨대 우리는 여기에서 알튀세르가 말하는 기표라는 속성과 역사라는 속성 사이의 변별적 접합은 스피노자의 존재론에서의 속성들의 결합 방식과는 다르다는 것을 지적하고자 하는 것이다. 스피노자에서 속성들은 서로 대등하지만, 알튀세르의 스피노자주의적 해석에서는 역사라는 속성이 기표라는 속성에 대해 우위를 갖는다. 알튀세르는 기표의 보편이론에로 사적 유물론의 보편이론이 특수하게 접합된다는 사실을 보편이론으로 간주하고 있지 않은가? 여기에서 알튀세르는 역사라는 속성을 기표라는 속성보다 우위에 놓고 있다. 이 점에서 그는 자신이 방금 인용한 스피노자 존재론을 잘못 적용하고 있음을 우리는 알 수 있다. 즉 알튀세르는 한 특정한 속성을 다른 속성의 우위에 둠으로써, 속성들간의 비환원적인 변별적 접합을 말하는 스피노자의 철학을 환원주의적 맑스주의의 관점으로 해석하고 있다다. 
&#160;&#160;&#160;다시 『자본론 읽기』의 논의로 되돌아가자. 여기에서 알튀세르의 스피노자주의적 맑스 해석은 인식대상과 실재대상의 구분 및 전자의 후자에 대한 우위이라는 논제로 등장한다. 알튀세르는 스피노자 철학을 원용해, 관념과 대상의 일치로서의 진리라는 “데카르트적 관념론의 독단적 경험론” 혹은 “헤겔의 혼동”을 극복하고자 한다. 이에 대해 다양한 인식론적 논의가 필요하겠지만 우리의 문맥에서 중요한 점만을 언급하면, 알튀세르는 스피노자 철학을 ‘실재 혹은 대상의 질서에 대한 관념의 질서의 우위’라는 논제로 재해석했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알튀세르가 말하고 있듯이 맑스의 대상은 실재적 대상이 아니라 ‘사유 속에서 구성된 총체’라는 점에는 물론 필자도 동의하지만 문제는 알튀세르는 이렇게 구성된 관념들을 궁극적으로 맑스주의를 오류로부터 구분해주는 ‘진리의 기준’으로 작동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즉 “과학적 지식―즉 대상에 관한 개념인, 적합한 관념들의 체계―은 그 자체의 기준일 뿐만 아니라 또한 비과학적이거나 이데올로기적인 지식(즉 부적합한 관념들)의 기준이기도 하다.”36) 여기에서 볼 수 있듯이 알튀세르는 스피노자 이론을 상상적인 것과 진리를 구분해주는 ‘기준’이 되는 이론으로 받아들인다.37) 이렇게 본다면, 알튀세르가 비록 『자기비판의 요소들』에서 스피노자 철학을 원용한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진리의 기준 제시라는 거짓 문제의식의 거부”라고 말했지만, 사실 ‘본의 아니게’ 알튀세르에게 스피노자 철학은 ‘진리와 거짓을 구분하는 기준’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아이러니를 우리는 발견할 수 있다. 앞으로 다시 간략히 논의하겠지만 스피노자의 2종과 3종의 인식은 각각 이성과 직관을 통해 ‘필연적으로 진리인 지식’을 산출한다. 지금까지 논의에서 드러났듯이 초기 알튀세르에게 스피노자는 진리와 오류를 구분하는 기준을 제시하는 철학(혹은 최종심급에서의 경제결정론을 근거지워주는 철학)으로서 받아들여졌으며, 앞에서 언급했듯이 알튀세르는 『자기비판의 요소들』에서 자신의 이러한 합리주의적 혹은 사변주의적 편향을 스스로 비판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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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알튀세르의 새로운 헤겔과 스피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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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160;&#160;이제 현대의 알튀세르 해석에서 논자들이 거의 주목하지 않는 ‘새로운 모습의 헤겔’에 대해 살펴보자. 필자가 아는 한 유고에서 비로소 등장한 새로운 헤겔 해석은 알튀세르 맑시즘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제시해줄 수 있는 단초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자기비판의 요소들』에서 알튀세르는 자신이 스피노자주의자였음을 천명했다. 이러한 천명이 갖는 변별적 의미를 너무 축소(혹은 확대)해석해 알튀세르가 스스로를 헤겔 철학 혹은 정신분석에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니라 ‘오로지’ 스피노자 철학에만 영향 받았다는 ‘고백’으로 이것을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지적한 바 있다. 
&#160;&#160;&#160;우선 『자기비판의 요소들』에서 알튀세르는 자신의 기존의 헤겔 비판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내용을 다시 언급을 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 하지만 우리는 여기에서 알튀세르가 스피노자주의자였음을 선언하면서도 실제로는 스피노자와 거리를 두기 시작하며, 역으로 그가 오랫동안 비판해왔던 헤겔에게 한 걸음 더 다가서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이러한 방향전환을 가능케 한 것이 다름 아닌 모순 범주이다. 알튀세르는 말한다. “맑스주의자는 물론 아무런 대가를 치루지 않고서는 스피노자를 통해 우회할 수 없다. 왜냐하면 모험은 위험하고, (....) 스피노자에게는 헤겔이 맑스에게 전달해준 어떤 것, 즉 모순[개념]이 항상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38) 이러한 작은 차이는 사소한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알튀세르에게 헤겔이 사유하고자 했던 모순 범주는 ‘갈등의 학문’인 맑시즘의 재구성을 위해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범주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알튀세르는 모순 범주를 강조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기비판’ 이전에는 ‘이데올로기 속에서의 계급투쟁’에 대해 논의하지 못하고 과학(학문)/이데올로기라는 대립항으로 사유하는 이론주의의 오류(편향)을 범했다고 스스로 비판했던 것이다.39) 
&#160;&#160;&#160;이제 여기에서 우리는 흥미로운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왜 모순범주를 무시한 것이 ‘이데올로기 속에서의 계급투쟁’을 간과하는 결과를 낳았다고 알튀세르는 말하는가? 모순이 아니라 ‘차이’ 혹은 ‘긍정’만을 말하는 철학, 혹은 모순범주를 배척하는 철학은 자신도 모르게 진리를 완전히 알고 있다는 오류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즉 과학(학문)은 과학이고 이데올로기는 이데올로기라는 대립항으로만 사유하기 때문에 과학이 곧 이데올로기일 수 있다는 ‘모순적 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알튀세르가 명확히 말하지는 않았지만 여기에서 우리는 알튀세르가, 스스로를 진리를 보증하는 과학이라고 자처하는 맑스주의는 이미 그 자체로 이데올로기이며, 진정한 맑스주의적 투쟁은 부르주와 이데올로기에 대한 투쟁에서뿐만 아니라 맑스주의 자체의 (상상적) 이데올로기와 투쟁해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고 우리는 해석할 수 있다. 
&#160;&#160;&#160;알튀세르에 대한 이러한 필자의 해석은, 들뢰즈의 영향으로 ‘모순’이라는 범주를 불필요한 것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국내의 프랑스 철학 연구자들 사이에 존재한다는 점에서 현대 프랑스 철학, 특히 들뢰즈 철학과 관련해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해준다. 여기에서 상세히 논의할 여유가 없으므로, 헤겔을 비판하는 입장을 취하는 현대 프랑스철학자의 논의 방식이 과연 적절한가라는 문제만을 제기하고자 한다. 이들은 특히 헤겔 논리학에 대한 철저한 내재적 연구 없이 헤겔은 목적론을 주창한 형이상학자다라는 주장을 반복할 뿐이다(아마도 프랑스에 헤겔 연구자들의 수가 적다는 사실도 이러한 상황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이들이 말하듯이 과연 스피노자 철학은 ‘무조건 좋은’ 철학이고 헤겔 철학은 ‘무조건 나쁜’ 철학인가? 하지만 알튀세르가 문제를 제기했듯이 스피노자의 철학은 ‘모순’을 사유할 수 없지 않은가? 사실 스피노자와 들뢰즈에 따르면 ‘모순’이란 결코 존재하지 않으며 반면 헤겔은 ‘모순’ 혹은 ‘부정성’을 본질적 범주로 간주한다. 이러한 입장의 차이를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스피노자는 (절대적) 실체의 본질에 대한 해명을 시도하며, 헤겔 역시 절대자에 관한 변증법 철학이라는 점에서 모두 절대적 실체에 대한 철학적 설명에 관심을 갖는다. 그렇다면 이 두 사상가의 입장이 달라지는 이유는 무엇인가? 필자는 (들뢰즈적) 스피노자의 철학은 ‘신의 관점’에서 사유하는 철학이며, 헤겔 철학은 비록 역시 절대적 실체에 관해 사고한다는 점에서 스피노자와 동일하지만 헤겔은 절대적 실체를 ‘인간의 관점’에서 사유하기 때문에 이러한 입장의 차이가 발생한다고 생각한다. 알기 쉽게 말하면, 스피노자 혹은 들뢰즈에게 ‘모순’ 범주가 존재할 수 없는 이유는 ‘신의 관점’, 즉 “영원의 관점”(스피노자)에서 사유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신이 보기에 인간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양태나 개별적 존재 간의 관계는 연속적이거나 기껏해야 ‘차이’만이 있을 뿐이지 결코 모순일 수 없다. 신의 눈에 인간사의 대립이란 하찮은 일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반면 ‘인간적 관점’에서 철학적 사유를 전개하는 사람에게는 모순은 본질적 범주일 수밖에 없다. 알기 쉬운 예를 들어보자. 포스트모더니스트들도 모순이 아니라 ‘차이’의 관점에서 사고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타자의 ‘다름’을 강조하는 입장을 취한다. 하지만 사실 이러한 입장은 집단 혹은 개체들간에 존재하는 진정한 (대립 혹은 억압의) 문제를 ‘은폐하는’ 이데올로기적 역할을 한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국내의 외국인 노동자들은 우리와는 ‘다른’ 사람들이다, 혹은 여자는 남자와 다르다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단순히 다르다고만 말할 때 생기는 문제는 이러한 사회적 약자들이 사회적 강자들에 의해 배척되고 억압당하고 있다는 것, 즉 사회적 강자와 대립 혹은 모순 관계에 있다는 것을 은폐할 수 있다는 위험이 있다. 하지만 반대로 헤겔은 『대논리학』에서 차이라는 범주가 어떻게 대립 범주, 그리고 더 나아가 모순 범주로 전개되는지를 서술한다. 단순히 차이라고 간주되는 것이 헤겔에 따르면 모순으로 규정될 수 있다는 것이다. 요컨대, 가장 형이상학적이고 종교적인 철학이라고 비판받는 헤겔 철학에서 맑스가 요청했듯이 ‘형이상학적 외관’을 벗기고 나면 진정으로 유물론적이며 인간적인 철학의 모습이 들어날 수 있으며, 외관상 유물론적으로 보이는 스피노자 철학이 사실은 가장 ‘신학적’ 혹은 ‘전체주의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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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I. 알튀세르와 헤겔, 그리고 들뢰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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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160;&#160;사실 헤겔에게 모순이란 유한자에게만 귀속되며, 절대자는 모순적이지 않다. 왜 그러한가? 절대적 실체에게 모순이 귀속될 수 없다는 것은 어떻게 본다면 ‘동어반복적인’, 당연한 말이다. 어떻게 신이 모순을 가질 수 있겠는가? 이 점에서 스피노자와 헤겔 철학은 입장을 같이 한다. 헤겔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모순 그 자체가 인간 혹은 신이 추구하는 ‘목표’라는 ‘부정적인’ 논제가 아니다. 오히려 반대로 헤겔 철학은 이러한 모순을 극복한 긍정의 상태, 즉 절대자의 상태에 도달해야 함을 말하고 있다. 스피노자와 마찬가지로 헤겔 역시 소외된 상태에서 소외를 극복한 상태41)로 진전해야 하는 인간의 윤리적, 정신적 과제에 대해 말한다. 헤겔에 따르면 이러한 소외를 극복하고 자기완성에 도달한 실체가 곧 주체이다. 헤겔이 말하는 실체는 자신의 내부에 부정성(즉 부정성은 들뢰즈가 말하듯이 초월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을 내포하고 있으므로 부정성(모순, 대립)을 이데올로기적으로 부인하고 ‘충만함’만을 강조하는 들뢰즈 철학의 실체와 달리 부정성과 더불어만 혹은 부정성을 ‘통과함으로써만’ 자신을 ‘긍정’할 수 있는 실체이며, 이러한 존재론적 속성을 갖는 실체가 다름 아닌 주체라는 것이다. 
&#160;&#160;&#160;헤겔의 모순 개념과 관련해 이 맥락에서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에 대해 좀더 언급해보자. 헤겔은&#160; ‘모순적인 것은 존재할 수 없다고 비판한 올레르트(Ohlert)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저자[올레르트]에게 세계, 자연, 그리고 행위와 충동(Treiben) 속에, 그리고 인간 사유 속에 아직 모순이 제시되지 않을 때, 자신 스스로와 모순되는 존재자들이 제시되지 않을 때 그는 행복하게도 칭송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는 모순은 스스로를 지양한다고 옳게 말한다. 하지만 이로부터, ‘모순이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결론이 도출되는 것은 아니다. 모든 오류와 마찬가지로 모든 범죄, 아니 모든 유한한 존재와 사유는 모순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이렇게 말해야 한다. 모순―하지만 스스로를 지양하는 모순―이 그 속에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42) 여기에서 볼 수 있듯이 헤겔은 모든 유한한 존재는 모순을 갖고 있으며, 이 모순은 모순이기 때문에 해소되고, 스스로를 지양해야 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헤겔이 모순에 대해 말할 때 비합리적으로, ‘이것은 연필이며 연필이 아니다’라는 비합리적인 모순적 언표를 무조건 옳은 명제라고 주장하고자 한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한 한에서 헤겔 역시 모순률을 인정하는 철학자이다. 하지만 형식논리학적 관점만을 취하는 철학자와 달리 헤겔은 모든 유한한 존재 혹은 범주는 그 자체가 모순적이라는 사실을 지적한다는 점에서 형식논리학을 넘어선다. 헤겔이 오성적 사유라고 비판하는 형식 논리적 사유에 따르면 어떤 주어진 사태 혹은 범주 혹은 존재는 결코 모순적일 수 없다. 하지만 헤겔은 오성적 사유가 불변의 것으로 간주하는 범주 혹은 이 범주에 의해 규정된 존재자는 범주 자체의 불완전성으로 인해 그 반대의 것으로 규정될 수 있다. 예컨대 A=A라는 언표는 형식논리적으로 본다면 긍정 명제이지만, 사실 동어반복적 언표에 지나지 않으므로 A에 대해 아무 것도 말해주는 것이 없다는 의미에서 A=-A이라는 부정적 명제를 내포하고 있다. 다른 예를 들면, (순수)존재는 어떤 규정성도 갖고 있지 않으므로 (순수)무라고 말해도 역시 마찬가지로 옳은 말이다. 헤겔이 『대논리학』의 서두에서 “순수존재와 순수무는 동일한 것이다”43)라고 말할 수 있던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이다. 헤겔의 모순 개념은 어떤 특정한, 미리 주어진 범주를 영원불변의 것으로 간주하는, 혹은 어떤 주어진 범주의 의미가 처음부터 완전히 고정된 확고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간주하는 오성적 사유, 혹은 이데올로기적 사유를 비판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160;&#160;&#160;하지만 무한한 절대자에서는 모순이 해소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 글의 논지와 관련해 중요한 점 몇 가지를 지적하고자 한다. 
&#160;&#160;&#160;첫째, 유한자는 어떤 모순적인 규정과 대립하고 이러한 모순적 규정을 견딜 수 없으므로 이를 배제하고자 한다. 하지만 헤겔이 말하듯이 어떤 규정은 그 반대의 것과 무조건적으로 일치하므로 사실 그 모순적인 규정은 유한한 존재 자신의 규정이기도 하다. 예컨대 인간과 비인간은 서로 모순되는 규정이지만, 사실 인간은 동시에 비인간적인 존재이기도 하므로 그러한 의미에서 인간과 비인간이라는 규정은 일치한다(같은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또한 자신 속의 비인간을 배제하고자 한다. 헤겔이 말하는 모순이란 이렇듯 궁극적으로 동일한 것이지만 이 동일한 양규정이 서로를 배제한다는 것, 혹은 역으로 모순되는 규정은 서로를 배제하지만 사실은 동일한 것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160;&#160;&#160;둘째, 하지만 무한한 절대자는 ‘정의상’ 모든 것을 자신 속에 포함하고 있다. 이 무한한 절대자는 모순과 배타성, 갈등으로 얼룩진 유한성을 극복해 자기완성에 도달한 실체이어야 하므로 이 절대자는 서로 모순적인 규정들이 빠져 있는 모순의 상태에서 벗어나도록 함으로써 ‘화해’에 도달한다. 그렇다면 서로 모순적인 규정들이 어떻게 ‘화해’할 수 있는가? 무한한 실체, 즉 절대 이념 혹은 신은 자신과 대립 혹은 모순 관계에 놓여 있는 타자성을 자신이 스스로 산출해낸 타자로 인식함으로써 타자와 대립(모순) 없는 화해에 도달할 수 있다. 달리 말하면 타자조차 자신이 산출한 것이라는 인식에 도달함으로써 유한한 주체는 절대적 주체, 즉 개념(Begriff)이 된다는 것이다. 잘 알려져 있듯이 헤겔의 『대논리학』은 존재론, 본질론, 개념론으로 구분된다. 대논리학의 마지막 부분인 개념은 다름 아닌 모순과 대립, 유한성을 극복한 존재, 절대적 실체(즉 주체)를 의미한다. “이러한 완성은 더 이상 실체 자체로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보다 좀더 고차원적인 것, 다시 말해서 개념이며, 주관, 주체인 것이다.”44) 완성된 주체(실체로서의 주체)는 앞에서 말했듯이 자신의 타자(다른 주체 혹은 실체)를 스스로 산출한 것으로 인식하는 절대자이다. 좀더 정확히 말하면 서로 대립하고 있는 두 실체가 서로를 자신 스스로가 산출한 타자로 인식할 때 모순이 극복되어 개념의 단계에 도달한다. 헤겔은 말한다. “그리하여 개념 속에서는 자유의 왕국이 열리게 된 것이다. 여기서 개념이 곧 자유의 왕국일 수 있는 것은 오직 실체의 필연성을 이루는 즉자대자적 동일성이 동시에 지양된 것이면서 또 피정립성, 피정립태로서 있는가하면 다시금 이 피정립성마저도 어느덧 자기자신과 관계한다는 점에서 바로 이 동일성과 다름이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럼으로써 인과관계 속에 놓여 있던 두 실체 상호간의 애매하고 복잡한 성격은 사라지게 되는 바, 왜냐하면 각기 독자적으로 존립해 있던 두 실체의 근원성은 이제 다같이 피정립태로 이행함으로써 그 불투명했던 근원성이 자기자신을 투명하게 드러내주는 명료함을 지니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이제 근원적 사상(事象)은 오직 이것이 다름아닌 자기자신의 원인, 자기원인이라는 점에서만 근원적 사상일 수가 있으니, 또한 이것이야말로가 스스로가 개념으로 해방된 실체이기도 한 것이다.”45) 여기에서 볼 수 있듯이 대립하는 실체 각각이 자신을 단순히 무조건적 일자(동일성)로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즉자대자적 동일성이 지양된 것”으로 파악하며, 동시에 자신을 피정립성―타자에 의해 정립되어 있음―으로 파악할 때 개념으로의 이행이 시작된다. 달리 말하면 각 실체가 자신의 피정립성―타자에 의해 정립되어 있음―을 자기자신의 정립으로 파악할 때, 즉 “피정립성마저도 자기자신과 관계한다는 점”을 파악할 때 각 실체는 자신이 ‘결여’하고 있는 “동일성”을 다시 획득하고 자기원인으로서의 개념, 즉 절대적 실체가 됨으로써 자신을 긍정한다. 달리 말하면 두 개의 실체가 있다고 할 때 각 실체가 자신의 타자를 독립적인 것으로 간주하면서도 자신이 정립한 것으로 상호 승인함으로써 자신의 타자와 더 이상 대립하지 않을 때, 즉 이렇게 모순을 극복하고 ‘화해’함으로써 각 실체는 자신의 타자와 더불어 절대적 실체가 되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왜 「본질론」의 말미에서 논의된 바 있는 상호작용이라는 범주에서 개념으로의 이행이 일어나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상호작용하는 두 실체 각각이 서로의 원인이며 결과라는 것이라는 사실을 함축하는 상호작용이라는 범주는 두 실체의 독립성을 인정하면서도 서로가 서로의 원인이며 결과라는 관계성을 동시에 사유할 수 있게 한다. 이렇듯 개념은 일자와 타자와의 모순을 해소하고 타자를 자신의 산출물이며 동시에 독립적인 실체로 인정하는 새로운 관계성을 형성한 실체이다. 달리 말하면 개별적 실체는 독자적으로만 존재하는 것으로 생각했으나 궁극적으로 각 개별적 실체들은 타자(다른 실체)와 절대적 관계성 속에 있다는 새로운 인식을 통해 개념, 즉 절대적 실체(주체)으로의 이행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헤겔에서 절대적 실체, 신이란 초월적으로 피안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전지전능한 신이 아니다. 그것은 지금까지 논의한 바 있는 새로운 관계성에 도달하고 이를 인식하고 실천하는 각 개별적 실체(주체)이며, 이러한 개별적 실체(주체)가 곧 절대적 실체(개념)이다. 이제 여기에서 우리는 비로소 개별자는 곧 보편자라는 헤겔의 논제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헤겔 철학은 개별자를 보편자로 흡수한다고 말하지만 사실 지금까지 논의했듯이 헤겔은 『대논리학』에서 어떻게 개별적 실체가 보편자로서의 위치를 취할 수 있는가를 설명하고자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유한한 인간이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전지전능한 신이 된다는 의미, 혹은 보편적인 신이 개별적 인간을 자신에게로 흡수한다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타자와의 새로운 관계 설정과 이에 대한 인식,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러한 인식에서 유래하는, 아니 이러한 인식을 발생시키는 (타자에 대한) 윤리적 태도를 통해 개별자는 보편자(신)가 된다는 의미에서 헤겔 철학은 개별자를 중시하는 철학으로 해석해야 한다.&#160; 
&#160;&#160;&#160;셋째, 여기에서 우리는 다시 한번 들뢰즈의 헤겔 비판이 정당하지 못함을 볼 수 있다. 들뢰즈는 헤겔 변증법은 두 개의 규정을 ‘배타적’ 관계로 파악하는 이접적 종합(disjuctive synthese)만을 알고 있다고 비판하지만46), 들뢰즈의 이러한 비판은 헤겔의 논의를 전적으로 오해하고 있는 잘못된 비판이다. 왜냐하면 앞에서 언급했듯이 헤겔은 서로 동일하면서도 배타적인 두 규정이 배타적, 모순적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공존하는 상태인 개념으로 이행해야 할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이접적 종합’의 배타적 사용을 넘어서서 “포함적인‘ 관계로서의 이접적 종합으로 나아가야 할 것을 먼저 주장했던 사람은 들뢰즈가 아니라 헤겔이었다. 이렇게 본다면 여기에서 오히려 모순 범주를 부정하는 들뢰즈 철학의 한계가 드러난다. 모순 범주는 각 규정들이 동일하면서도 서로 배타적일 것을 요구하는데, 들뢰즈는 모순 범주를 인정하지 않으므로 그에게는 현대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갈등과 투쟁, 모순적 상황을 분석할 수 있는 개념적 도구가 존재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들뢰즈는 모순이 아니라 차이 범주만을 인정하므로 서로 대립하는 현실적 갈등 상황을 무시한 채 ’막연한 공존‘을 이야기하는 현실순응적, 관념론적 견해와 일맥상통할 수 있다. 반면 헤겔은 모순들이 존재하는 상황과 이것들이 극복된 상황을 모두 이야기한다. 헤겔은 모순과 대립이 존재하는 상황, 그리고 서로 대립할 수도 있는 규정들을 공존, 화해시키는 절대자 개념 양자 모두를 제시함으로써 들뢰즈 철학의 은폐된 관념론을 능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60;&#160;&#160;넷째, 앞에서 말했듯이 유한자에서 무한한 실체(주체), 즉 절대이념으로의 이행은 따라서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전지전능한 신이 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무한한 절대적 주체(실체)가 된다는 것은 자신의 타자를 독립된 주체이며 동시에 자기의 산출물로 인정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헤겔 철학이 타자를 일자로 흡수하는 동일성의 철학이 아니다. 주체와 타자 사이의 상호승인이 발생함으로써 개념으로 이행하기 위해서는 어떤 새로운 특별한 ‘지식’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개념으로의 이행은 어떤 실정적인 내용을 덧붙여 절대적 지식을 소유한 주체가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실체가 자신의 타자와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관점’의 획득을 의미한다. 달리 말하면 자기원인으로서의 개념은 ‘독립적인’ 타자의 타자성을 능동적으로 긍정한다는 것을 뜻한다. 왜냐하면 절대적 주체는 자신의 진정한 타자를 스스로 산출하는 무한한 자기운동성 그 자체에 다름 아니며, 이러한 무한한 운동을 통해 자신을 긍정하는 주체이기 때문이다. 헤겔에 따르면 “타자 속에서의 자기 자신과의 이러한 동일성이야 말로 유한성의 실제적 부정, 즉 무한성이다.”47) 또한 언급해야 할 중요한 것으로서, 들뢰즈는 헤겔은 부정과 결여만을 알고 있는 부정 신학에 불과한 것으로 끊임없이 묘사하고 있지만, 사실 헤겔은 부정만을 말하는 철학자가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유한자는 모순과 대립 때문에 자신은 물론 타자도 긍정하지 못하는 부정의 상태에 처해있다고 할 수 있지만 이 대립과 모순을 극복한 무한자의 상태에서 실체(주체)는 자신과 타자를 긍정하는 긍정의 상태로 이행한다는 것이다. 앞에서 말했듯이 모순은 유한자에게만 적용되고 따라서 모순 상태를 벗어난 무한자는 모순 개념이 함축하고 있는 규정들의 ‘상호배척’ 상태를 벗어나므로 절대자에게서는 각 규정들이 서로를 승인하는 긍정의 상태에 도달하며, 이를 통해 절대자 자신도 자신을 긍정한다. 헤겔은 이렇게 말한다. “그러므로 어떤 것(Etwas)의 타자로의 이행에서 그것[어떤 것]은 단지 자기 자신과 일치하며, 이행과 타자 속에서의 자기 자신과의 관계가 진정한 무한성(wahrharfte Unendlichkeit)이다.”48) 진정한 무한자의 내부에 존재하는 어떤 것은 물론 자기 자신[어떤 것]과 일치한다(A=A). 그리고 그것[어떤 것]이 타자로 이행해도 자기 자신[어떤 것]과 관계한다(A=B. 하지만 A=B는 곧 A=A이기도 하다). 어떻게 이러한 논리가 가능한가? 어떤 것이 진정한 무한자가 될 때 이것이 가능해진다. 무한자는 외부를 갖지 않기 때문에, 자신의 한 계기(어떤 것]이 타자가 되어도 그것은 곧 자기 자신과의 관계인 것이다. 어떤 것과 타자의 관계는 곧 진정한 무한자의 자기 관계이며, 이러한 자기 관계에 도달함으로써 절대자는 (그리고 절대자 내부의 각 계기는) 이제 자기 자신을 긍정한다. “무한자는 긍정적인 것이며, 단지 유한자만이 지양된 것이다.”49) 
&#160;&#160;&#160;다섯째. 그러나 여기에서 지적해야 할 또 하나의 중요한 점이 있다. 헤겔이 말하는 긍정은 들뢰즈가 말하는 긍정과 달리 결여를 인정하는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긍정이라는 것이다.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절대자란, 타자와의 차이를 인정하면서도 그 타자를 자신과 동일한 것으로 간주하는 절대자의 상태이다. 헤겔 철학이 말하는 긍정의 상태는 차이, 즉 결여를 함축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들뢰즈는 헤겔이 부정성, 차이 혹은 결여라는 개념을 사용한다는 이유만으로 헤겔 철학을 목적론적 철학, 부정신학의 변종에 불과한 것으로 간주한다. 하지만 과연 헤겔 철학이 그런 철학에 불과한가? 소위 부정신학에서는 모든 존재가 지향하는 완벽한 실체(신)가 있고, 모든 불완전한(결여를 가진) 존재자는 이 완벽한 존재자를 지향한다고 말한다. 이에 따르면 또한 이 완벽한 존재자는 유한한 존재자의 인식 범위를 벗어나 있으므로 완벽한 존재자는 부정적으로만 정의된다. 그리고 유한한 존재자는 불완전하므로 결여를 가지고 있다. 결여를 가진 이 불완전한 존재는 완벽한, 하지만 부정적으로만 정의된 이 완벽한 존재(신)을 추구한다. 따라서 부정신학에 따르면 신은 영원이 도달될 수 없으므로 인간의 결여는 영원히 만족될 수 없으며, 이러한 인간은 패배주의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부정신학에 대한 들뢰즈의 이러한 비판은 물론 타당한 것이고 이러한 비판은 비단 들뢰즈가 아니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행하는 비판이기도 하다. 문제는 헤겔 철학이 부정신학의 일종으로 간주할 수 있는가라는 점이다. 
&#160;&#160;&#160;우선 헤겔의 절대자는 유한자 외부에 있어 유한자가 결코 도달할 수 없는 피안에 있는 신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러한 무한자를 헤겔은 악무한(惡無限, Schlechte Unendlichkeit)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우리가 살펴보았듯이 헤겔은 유한자가 절대자 내부에 포함되어 있는 무한자를 진정한 무한자(진무한)로 간주한다. 이러한 헤겔의 논의는 이미 부정신학에 대한 비판을 포함하고 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모든 것을 포함하고 있는 절대적 실체는 무조건적으로 자신을 긍정하는 것이 아니라 결여, 즉 타자와의 차이를 긍정함으로써 자신을 긍정한다. 바로 이것이 헤겔 철학이 갖고 있는 장점이다. 절대적 실체는 차이, 부정성 없이 ‘모든 암소들이 검게 보이는 밤’이 아니다. 하지만 들뢰즈 역시 차이를 말하는 철학자가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들뢰즈가 말하는 차이가 과연 헤겔이 말하는 의미의 차이와 같은 것인지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 여기에서 들뢰즈가 말하는 차이가 무엇인지 문헌학적으로 모두 정리하기란 불가능하며, 이 맥락에서는 그러한 작업이 그다지 필요해 보이지도 않는다. 우리는 들뢰즈의 헤겔 비판 그리고 라깡 비판에서 그가 말하는 차이가 무엇인지 ‘증상적으로’ 추론해볼 수 있다. 결국 들뢰즈가 말하는 차이란 연속성 속에서의 차이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왜 들뢰즈가 진정한 단절 혹은 차이를 도입하는 상징계를 거부하고 실재만을 일방적으로 강조했겠는가? 하지만 들뢰즈와 달리 진정한 단절, 차이를 강조하는 라깡에게 상징계는 없어서는 안 될 본질적 범주이다. 이를 헤겔식으로 표현하면 실체(즉 실재)는 자신의 완성에 도달하기 위해 스스로 자신의 ‘내부’에서 내적 분화와 단절을 경유해야 한다(상징화). 실재(실체)는 이러한 내적 분화와 단절을 경유하고, 모순과 대립을 극복한 후 자신을 절대적 실체로 긍정하고 진정한 주체가 된다. 이렇듯 헤겔 철학은 실체의 주체화 과정에 대한 서술에 다름 아니다. “긍극적 진리는 실체로서뿐만이 아니라 이에 못지않게 주체로 파악되어야만 하며 또한 그와같이 표현되어야 하리라는 것이다.”50) 이렇게 본다면 헤겔이 말하는 부정성, 혹은 결여는 주체가 불만족과 결핍의 상태에서 자족해야 한다는 보수적이거나 패배주의적 견해를 함축하는 것이 아니라 주체가 진정한 주체가 되기 위해 가져야 할 ‘초연’의 상태를 의미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알튀세르는 이를 은유적으로 ‘자유의 빈 공간’이라고 표현한 바 있다. 그렇다면 주체를 진정한 주체로 만드는 결여를 병리적 주체의 결여와 구분해야 할 것이다. 예컨대 라깡에 따르면 불만족으로서의 결핍 자체를 향유하는 주체가 다름 아닌 신경증자로서 우리는 이러한 결여는 분석의 끝에서 주체가 발견하는 결여(결여의 기표)51), 혹은 모순을 극복한 절대자가 포함하고 있는 차이(헤겔), 혹은 자유의 빈공간(알튀세르) 등과는 구분해야 한다. 들뢰즈는 주체의 ‘자유의 빈 공간으로서의 결여’ 개념을 주체를 소외시키는 결여와 구분하지 않은 채 헤겔 철학 혹은 라깡 정신분석 해석하는 오류를 범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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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 알튀세르와 정신분석, 그리고 스피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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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160;&#160;이제 마지막으로 스피노자의 3종의 인식에 대한 알튀세르의 해석을 살펴보자. 필자는 앞에서 알튀세르는 점차적으로 스피노자로부터 멀어지고 헤겔 철학에 다가서고 있다는 알튀세르 해석론을 제시한 바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알튀세르가 스피노자를 배제한 채 헤겔만을 중시했다는 의미가 아님은 물론이다. 중요한 점은 알튀세르는 스피노자 철학의 근본 사상을 계속 받아들이면서도 스피노자 철학에서 가장 논란의 여지가 많은 ‘3종의 인식’ 개념을 해석함에 있어 헤겔 철학으로부터 영감을 얻고 있다는 사실이다. 자서전 『미래는 오래 지속된다』에서 알튀세르는 이렇게 말한다. “특히 나는 『신학정치론』에서 ‘세 번째 유형의 인식, 즉 개별적인 동시에 보편적인 대상을 파악하게 하는 가장 높은 형태의 인식에 대한 가장 명백한, 그러나 가장 잘 알려져 있지 않은 해석의 예를 발견했다(나도 인정해야 했듯이 그것은 스피노자에 대한 헤겔적인 해석이었다).”52) 
&#160;&#160;&#160;스피노자에 대한 일반적인 해석과 달리 알튀세르가 스피노자에게서 발견한 것은 다름 아닌 “공백”이었다. 알튀세르에 따르면 스피노자가 말하는 신(절대적 실체)에 대한 최고의 인식(3종의 인식)은 신에 대한 ‘충만한’, ‘완벽한’ 인식이 아니다. 신은 “그 너머에는 아무것도 없는 그것 (....) 실존하면서 그 자체가 아무것도 아닌 것”53)이다. 알튀세르는 또 이렇게 말한다. “‘나는 신에서 시작한다’고 또는 전체(le Tout)에서 또는 유일독특한(unique) 실체에서 시작한다고 말하는 것과 ‘나는 그 어느 것에서도 시작하지 않는다’라고 말하는 것은 결국 동일한 것이다. 전체와 아무것도 아닌 것(rien)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는가? 전체 외부에는 아무것도 실존하지 않는 것이니 말이다.”54) 여기에서 우리는 신에 대한 최고의 인식에 대한 해석이 헤겔적 해석이라는 알튀세르의 언급이 적확한 표현임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헤겔에서 (존재) 전체란 곧 무에 지나지 않으며, 외부가 없는 신은 헤겔의 진무한을 연상시키지 않는가? 알튀세르의 흥미로운 스피노자 해석은 계속된다. “우리는 연장과 사유라는 두 속성만을 인식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또한, 사유에 대하여 욕망에 의해 사유되지 않은 그 역능을 인식하지 못하듯이 신체에 대하여 그 모든 역능들을 인식하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알튀세르는 이러한 언급을 통해 스피노자에 대한 ‘독단주의적 해석’, 즉 실체를 ‘완전하게’ 알수 있다는 ‘합리주의적 해석’으로부터 거리를 취하며, 오히려 ‘인식의 한계’에 관한 이론을 스피노자에게서 발견한다. 그러므로 “이 자연[신]은 이제 더 이상 신에 대해 말할 일이 없도록 만들 뿐만 아니다.” 물론 이러한 알튀세르의 언급이 단순한 ‘회의주의적 혹은 불가지론적 태도’가 아님은 분명하다. 알튀세르가 스피노자 철학과 실체에서 ‘무’와 ‘공백’을 발견함으로써 말하고자 하는 것은 진리를 보증하는 인식론 혹은 목적론에 대한 비판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알튀세르는 이 점에서 스피노자와 헤겔 철학을 연결시킨다. “스피노자에게는 ‘코기토’가 없고 (....) 헤겔에게는 선험적 주체가 아니라 과정으로서의 주체가 있다(나는 그의 (내재적 목적론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겠다). 스피노자에게는 인식 이론(즉 진리와 그 과학적, 사회적, 도덕적, 정치적 효과에 대한 선험적 보증)이 없었고, 헤겔에게도 인식 이론은 없었다. (...) 스피노자와 헤겔은 가능한 진리의 모든 지각 또는 모든 경험의 보증 또는 기반으로서의 초험적 또는 선험적 주체성이라는 환상의 정신을 제거하기에 이르렀다.”55) 
&#160;&#160;&#160;그렇다면 “신에 대한 직관적 인식‘을 의미하는, 스피노자가 말하는 제3종의 인식을 알튀세르는 어떻게 해석하는가? 우선 스피노자가 말하는 1종의 인식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감각을 통하여 손상되고 혼란스럽고 무질서하게 지성에 나타나는“56) 상상, 즉 ”의견 또는 표상“이다. 알튀세르는 이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제1종의 인식은 “1)(인간) 주체를 모든 지각과 행동, 목표, 그리고 의미의 중심과 기원에 두지만, 2) 바로 그렇게 함으로써 사물의 실제 질서를 전도시킨다. (...) 즉 원인을 목적으로 전도시키는 하나의 장치”에 지나지 않는다. “상상의 세계는 원인들을 목적들로 전도시키는 장치 속에서 체험된 생활세계이다. 그것은 주체성의 환상의 원인들을 목적으로 전도시키는 장치이다.”57) 여기에서 볼 수 있듯이 알튀세르는 혼란스러운 억견, 직접적으로 체험된 세계에 대한 인식(즉 상상)인 제1종의 인식에서 기원과 목적을 말하는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의 핵심 개념인 주체 개념을 발견한다. 2종의 인식은 “사물의 성질에 대하여 공통 관념과 타당한 관념을 소유하는 것으로부터” 나온다. “그리고 나는 이것을 이성 그리고 제2종의 인식이라고 부를 것이다.”58) “이 두 가지 종류의 인식 이외에 내가 다음에 제시하게 될 또 다른 세 번째의 것이 있는데, 이것을 우리는 직관지라고 부르게 될 것이다. 이러한 종류의 인식은 신의 한두 가지 속성인 형상적 본질의 타당한 관념에서 사물의 본질의 타당한 인식으로 나아간다.”59) 바로 이것이 제3종의 인식이다. 
&#160;&#160;&#160;이제 여기에서 알튀세르는 통상적인 스피노자와 상이한, 헤겔주의적 해석을 제시한다. “‘3종의 인식’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결코 새로운 대상이 아니라 단순히 제1종의 인식 이후 항상-이미 거기에 있는 대상의 영유관계의 새로운 형태”이다. 스피노자에 따르면 “두 번째와 세 번째 종류의 인식은 필연적으로 참이다.”60) 하지만 알튀세르는 제3종의 인식이 의미하는 것이 스피노자 철학에서 분명하지 않다고 반론을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스피노자에 따르면 제3종의 인식을 소유함으로써 우리는 신의 본질에 대한 타당한 관념에서 사물의 본질의 타당한 인식으로 나아간다고 말하고 있지만 과연 유한한 인간이 신의 본질에 대한 타당한 관념을 소유한다고 말할 수 있는가라는 반론인 것이다. 이러한 ‘독단주의적’ 혹은 ‘합리주의적’ 해석을 거부하고 알튀세르는 제3종의 인식이란 “보편적 개별성”61)에 대한 직관으로 이르는 이행으로 설명한다. 왜냐하면 알튀세르에 따르면 “이해하기 힘든, 유명하지만 모호한 ‘제3종의 인식”, 이 직관적 인식에 대해서는 어떤 구체적 예도 제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62) 그러므로 알튀세르는 제3종의 인식을 개별적이면서 동시에 보편적인 것의 존재에 대한 직관, 즉 “상상이라는 생활세계 속에서 보편적이고 개별적인 개체성”63)에 대한 인식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이러한 알튀세르의 해석은 상상이라는 생활세계, 즉 주체와 목적, 기원의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힌 총체성으로서의 상상계에 균열을 야기하는 상징계, 혹은 실재 개념(라깡)을 연상시키지 않는가? 알튀세르가 위 인용문에서 말하고 있듯이 제3종의 인식이란 “상상이라는 생활세계 속에” 있는 진정한 존재자, 즉 상상계적 일관성에 균열을 가하는 보편적인 개별성에 대한 인식이기 때문이다. 
&#160;&#160;&#160;바로 이 점에서 알튀세르의 스피노자 해석은 들뢰즈의 스피노자 해석과 달라진다. 들뢰즈 역시 3종의 인식을 신에 대한 ‘총체적 인식’, ‘합리주의적’ 인식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64) 그러므로 들뢰즈는 신에 대한 3종의 인식을 윤리적 관점에서 해석할 것을 촉구하지만 들뢰즈의 스피노자 해석은 ‘궁극적으로’ 신에 대한 총체적 인식의 관점을 취한다. 들뢰즈에 따르면 “2종의 인식은 [공통 개념에 근거하므로] 특징적 관계들의 합성에까지 상승한다.” 하지만 “3종 인식만이 영원한 본질들에 관련된다. 신의 본질에 대한 인식과 신 안에 존재하는 신에 의해 사고되는 특수한 본질에 대한 인식 (...) 말이다.”65) 3종 인식에 의존하는 “3종의 기쁨들은 우리 자신의 본질에 의해 설명되며, 언제나 그 본질에 대한 적실한 관념을 ‘수반한다’. 다른 모든 사물들의 본질과 신의 본질을 포함하여 3종으로 우리가 이해하는 모든 것을, 우리는 우리가 우리의 본질을 영원성의 형태로 사고한다는 사실로부터 이해한다.”66) 들뢰즈에 따르면 우리가 우리의 본질에 대한 적실한 관념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우리의 본질을 “영원성의 형태로” 사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요컨대 들뢰즈는 스피노자 철학을 통해 인간으로 하여금 영원의 관점, 즉 신의 관점을 취하도록 이끌어간다. 유고에서의 알튀세르는 이러한 ‘합리주의적’ 스피노자 해석과 거리를 취하기 위해 헤겔을 다시 원용하는데, 알튀세르가 직접적으로 언급하고 있지는 않지만 이러한 알튀세르의 해석은 라깡이 말하는 분석의 끝, 즉 대타자의 비존재, 또는 대타자 속의 결여의 기표에 대한 인식과 일맥상통하는 개념이다. 제3종의 인식을 말했던 알튀세르가, “원인도 없고 호소할 수도 없는 상실들”67)과 같은 표현을 사용했다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비록 알튀세르는 이러한 표현을 말브랑슈를 읽을 때 생각해냈다고 말하고 있지만 사실 그것은 라깡이 즐겨 사용하던 개념 아닌가? 물론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알튀세르가 스피노자를 완전히 떠났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알튀세르가 “나는 스피노자와 결별하지 않았다”68)말하고 있듯이 말이다. 하지만 또한 알튀세르는 이렇게 말한다. “이렇게 나는 내 환상을 거치고, 스피노자와 마키아벨리를 거쳐서 내 첫째가는 관심사가 아니었던 적이 없던 프로이트와 맑스에게로 힘들게 나아갔다.”69) 여기에서 알 수 있듯이 맑스주의와 정신분석을 결합하고자 하는 것이 자신의 오랜 학문적, 실천적 과제였음을 최종적으로 밝힌다. 스피노자와 헤겔, 혹은 스피노자와 정신분석을 대립시켜 사유하고자 하는 현대 프랑스 철학의 어떤 경향과는 철저히 다른 사유 방식을 취하고 있음을 우리는 여기에서 다시 한번 확인한다.70)&#160;&#160;&#160; 
&#160;&#160;&#160;여기에서 언급할 만한 또 하나의 흥미로운 것은 알튀세르는 제3종의 인식에 대해서 “‘3종의 인식’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결코 새로운 대상이 아니라 단순히 제1종의 인식 이후 항상-이미 거기에 있는 대상의 영유관계의 새로운 형태”라고 말하고 있는 대목이다. 이러한 언급 역시 신에 대한 지적 직관에 신의 본질에 대한 총체적 지식을 제공해주는 것이 아니라 단지 이미 이데올로기적으로 파악되던 세계와 신에 대한 관점의 전환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관점의 전환이란 정신분석치료의 핵심으로 알튀세르는 이렇게 말한다. “스피노자의 경우에 감정들의 제어는 감정들의 부정적 효능의 ‘지적’ 해방으로 해석될 수 없다. 반대로 감정들의 제어란 ‘슬픈 감정’으로부터 ‘즐거운 감정’으로의 내적인 전위를 통하여 감정들이 서로 결합하여 하늘에 오르기라도 하는 것과 같은 좋은 감정으로 됨으로써 이루어진다. 나중에 프로이트의 경우에 어떤 환상도 결코 사라지지는 않지만 지배적 지위에서 종속적 지위로 전위되는 것―이것이 치료의 효과이다― 처럼, 마찬가지로 스피노자의 경우에도 어떤 감정도 결코 사라지지는 않지만 ‘슬픈’ 지위에서 ‘즐거운’ 지위로 전위된다.”71) 여기에서 상세히 논할 수는 없지만, 그리고 라깡이 말하는 정신분석의 끝에 대해 보다 상세한 논의가 필요하겠지만, 여기에서 우리는 적어도 스피노자가 말하는 제3종의 인식이 정신분석이 말하는 분석의 끝과 상통한다는 것을 알튀세르가 긍정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알튀세르가 말하듯이 ‘공산주의란 소비에트 더하기 전력화 더하기 정신분석인 것이다.’ 
&#160;&#160;&#160;또한 역시 상세히 논할 여유는 없지만 알튀세르는 정치적 지도자, 혹은 혁명가가 취해야 할 위치를 분석가의 위치와 같은 것으로 본다는 사실이다. 알튀세르에 따르면 ‘군주’는 “자신으로부터의 거리, 자신의 욕망들과 욕동들과 충동들로부터의, 따라서 그 시대의 언어를 쓰자면, 감정들로부터의 거리”72)를 취해야 한다. 달리 말하면 지도자는 자신의 “역전이”73)를 잘 통제해야 한다는 것인데 바로 이것이 분석가가 취해야 할 태도 혹은 위치가 아닌가? 알튀세르가 스스로 “우스꽝스러운 논문”이라고 불렀던, 「전이와 역전이에 관하여」라는 논문을 쓴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160;&#160;&#160;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알튀세르는 스피노자가 말하는 제3종의 인식이란 보편적이며 동시에 개별적인 개별성에 대한 인식이며, 알튀세르는 이러한 해석을 헤겔에게서 발견한다고 말함으로써 헤겔 철학을 다시 복권시킨다. 그렇다면 알튀세르가 말하는 이 개별적인 보편성 혹은 보편적인 개별성은 헤겔 철학의 어디에서 나타나는가? 
&#160;&#160;&#160;그것은 앞에서 말했듯이 개념(Begriff), 혹은 더 정확히 말하면 (절대적) 이념(Idee)이다. 이념이란 “객관적 세계 속에서 자기자신을 통하여 스스로에게 객관성을 부여함으로써 자기를 완수시키고자 하는 목적”74)이다. 헤겔에서 개념이란 피안에 존재하는 초월적 원리가 아니라 사물과 현실 자체 속에 내재하는 내재적 원리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헤겔 『대논리학』의 방법론에 대해 간략히 언급할 수 있을 것이다. 헤겔의 『대논리학』은 존재로부터 출발해 개념에 도달하는데, 이는 인식론적 관점에 따른 절차이다. 하지만 인식론적 관점에서 볼 때 나중에 도출된 개념이 사실 존재와 현실의 질서를 구조짓는다는 점에서 개념은 존재론적 관점에서 본다면 우위성을 갖는다. 또한 개념이 자신을 완전히 실현한 것이 절대 이념, 혹은 신, 실체라는 점에서, 이러한 헤겔의 존재론적 관점은 자기원인으로서의 신으로부터 출발하는 스피노자 철학의 방법론과 일치한다. 이제 여기에서 간과해서는 안 될 중요한 점은 사람들이 흔히들 말하듯이 헤겔은 개별자를 보편자로 흡수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는 철학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오히려 정반대로 헤겔은 보편자는 오직 개별자로서만 존재한다고 주장함으로써 개별자를 보편자로 흡수하는 것을 비판하고자 한다. “왜냐하면 추상은 (...) 개별성, 즉 개체성과 인격성의 원리를 떨쳐내 버림으로써 아무런 생명이나 정신도 없는, 그리고 색깔이나 내용도 없는 보편성에 다다를 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념의 통일은 도저히 불가분적인 것이기 때문에 아무리 이상과 같은 추상의 소산이 개별성을 배제해야만 한다고 할지라도 그 자체로는 오히려 개별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75) 
&#160;&#160;&#160;여기에서 볼 수 있듯이 헤겔은 개별적 사물들로부터의 추상이라는 경험주의적, 상식적 보편성 개념을 비판하고 있다. 그리고 헤겔이 말하는 개념(혹은 이념)이란 주어진 직관을 통일시키는 주관적 개념(칸트)이 아니라 객관성, 혹은 현실을 구조짓는 내적 원리이다. 칸트에 따르면 ‘객관이란 그의 개념 속에 어떤 주어진 직관의 다양한 것들이 통합되어 있는 것’이다. 헤겔은 이원론적 함정에 빠져 물자체에 대한 불가지론적 인식론으로 빠져들 수밖에 없었던 이러한 칸트의 견해를 극복한다. 개념은 사물 외부에서 사물에 형식을 부여하는 주관적 개념이 아니라 항상-이미 사물과 현실을 구조짓는 객관적 개념이므로 개념 속에서 우리는 사물에 대한 적합한 인식에 도달한다.76) 하지만 이러한 헤겔의 인식론이 독단적 합리주의가 아닌 까닭은 개념의 실현, 그리고 개념의 실현체인 사물은 필연적으로 개념의 형식을 벗어나는 우연성을 허용하기 때문이다. 이 우연성은 실체의 규정들의 필연적 인과관계로부터 도출되었다는 점에서, 달리 말하면 필연성이 우연성을 정립했다77)는 점에서 우연성과 필연성은 일치한다. 
&#160;&#160;&#160;왜 개념은 필연적으로 우연적인 것을 포함하는가? 추상화된 보편성이 아닌 헤겔적 의미의 보편적 개념은 단순히 개념의 형식적 통일성이 아니라 ‘진리’를 문제 삼기 때문이다. 오성적 의미의 개념(칸트) 혹은 공허한 추상으로서의 개념은 형식적 동일성에 지나지 않지만 헤겔은 이러한 ‘주관적 개념’―개별자들로부터의 추상으로서의 보편적 개념―의 개념을 넘어서 주관과 객관의 통일, 혹은 개념과 객관성과의 통일로서의 개념78)의 개념을 설명하고자 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단순히 개념의 형식뿐만 아니라 개념의 내용도 논의에 포함된다는 사실이다.79) 예컨대 ‘나무’라는 개념의 실현(설명)을 위해서는 나무의 개념을 설명하는 혹은 나무의 개념이 전개되는 술어들(즉 다른 개념들)이 요구되며 따라서 ‘나무’라는 개념의 형식적 동일성은 나무라는 개념의 구체적 내용과 불일치할 수밖에 없다.80) 이렇듯 개념의 형식과 내용의 불일치하므로 개념이 그 운동원리를 이루는 현실 자체도 자기 자신과의 불일치하며, 이로부터 개념의 실현인 사물에서 개념에 외재적인 우연성이 도출된다. 우연성과 필연성의 일치라는 헤겔의 논제는 따라서 개념은 우연성을 자신의 필연적 규정으로 갖는다는 사실을 함축한다. 개념은 자신의 내용의 완전한 실현 불가능을 자신의 실현조건으로 갖는다는 것이다. 개념이 형식과 내용의 불일치를 개념의 속성으로 갖는 까닭은 개념 스스로가 부정성을 경유함으로써만 자신의 완성에 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개념은 이제 자신의 객관성과 일치하는 것으로서, 자기 자신 속에 결여를 가지며 따라서 자신을 더욱 이끌어 나가야 하는 충동을 갖고 있다.”81) 하지만 여기에서 헤겔이 결여라는 개념을 사용한다고 해서 이것이 개별적 사물이 도달해야 할 어떤 초월적 원리가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개념은 구체적 개별자의 내적 원리라는 점에서 헤겔 철학에서 보편자는 개별자로서만 존재하며, 따라서 개별자가 추구해야 할 초월적 원리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완성된 개념은 이제 자신의 실현을 방해하는 우연적인 것들, 즉 자신에 대립되는 것들을 자신의 규정으로 받아들이고 이를 극복함으로써―우연성이라는 타자성을 개념의 내적 규정으로 승인함으로써―개념으로서 자신을 완성하며 긍정한다. “실로 이념은 개념이 그 속에서 획득하는 자유로 인해서 그 자체내에 가장 극심한 대립을 잉태하기 마련이다. 그리하여 결국 평온한 상태에 다다른 이념이 참다운 의미의 안정과 확신을 누릴 수 있는 것은 오직 이 이념이 영원토록 그와같은 대립을 산출하면서 동시에 이를 영원히 극복해나가는 가운데 바로 그 대립 속에서 자기 자신과 일체가 되는데서만 가능한 것이다.”82) 개념이란 “자기의 타재성 속에서 자기자신을 회복시킨 개념으로서의 존재”83)인 것이다. 그러므로 “변증법은 한갓 부정적, 소극적인 결과를 초래한다고 보는” “근본적 편견”84)을 불식시킬 필요가 있다. 
&#160;&#160;&#160;지금까지 우리는 알튀세르의 스피노자, 특히 3종의 인식과 관련해 이것은 보편적 개별성에 대한 인식을 의미하며, 어떤 의미에서 이것이 헤겔적 해석이라는 알튀세르의 언급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일 수 있는지 추적해보았다. 이제 정신분석, 특히 라깡 정신분석과 관련해 보편적 개별성이라는 논제가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그것은 알튀세르가 과거에 이데올로기적 개념으로 거부했던 주체 개념을 다시 도입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점에서 알튀세르는 주체 범주를 재해석해 새롭게 도입한 라깡과 일맥상통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한 새로운 주체 개념은 라깡이 말하듯이 탈중화된 주체라고 말할 수 있는데, 그렇다면 이러한 주체는 정확히 어떤 주체인가? 그것은 필자가 다른 곳에서 제안한 바 있듯이 ‘과정으로서의 주체’이다.85) 앞에서 언급한 바 있듯이 개념으로서의 실체는 현실을 구조짓는 운동원리로서 주체에 다름 아니다. 알튀세르가 말하는 3종의 인식처럼 흥미롭게도 헤겔은 바로 이러한 주체를 정확히 보편적 개별자로 규정한다. “나는 지금까지 전개된 개념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되며 동시에 그에 대한 이해를 좀더 용이하게 할 수 있는 한 가지 사실만을 지적해두는 것으로 그치고자 한다. 말하자면 개념이 이제 그 자체에 있어서 자유로운 실존의 상태에 까지 다다른 이상 오직 이것은 자아이거나 또는 순수한 자기의식 이외에 그 어떤 것일 수도 없다.”86) 헤겔에 따르면 이러한 “자아는 곧 보편성”이며 동시에 “개별성”87)이다. 헤겔이 말하는 자아, 즉 주체는 “개별성”이며, “개체적 인격성”88)이지만, 아직 절대적 주체가 되지 않은 한에서, 즉 자아(주체)란 유한한 정신인 한에서 “타자를 배척하는 절대적 피규정자이다.”89) 이러한 유한한 주체가 이제 절대적 주체(실체)로 변화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더 필요한가? “자신의 타자 속에서 자기 자신의 객관성”을 발견하는 것이다. 유한한 주체에서 절대적 주체로의 이행은 알튀세르가 말하듯이 어떤 ‘새로운 인식’을 첨가하는 것이 아니라 ‘관점의 전환’이다. 자신의 본질을 제한하는 자신의 타자 속에서, 타자의 타자성을 폐기하지 않으면서도 자신을 발견하는 것, 즉 “모든 것 속에서 자기자신만을 발견하며 또 인식하고자 하는 이성의 가장 고귀하도도 유일한 충동”이야 말로 이성이 가진 “최고의 힘”90)인 것이다. 이러한 전환을 통해 주체는 자신을 대타자에 의존하는 소외된 주체에서 ‘자기원인’으로 전환된다. 정신분석의 끝과 관련한 논의에서 라깡은 타자인 대상 a를 주체와 동일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행위’를 정신분석적 행위로 간주한다. 라깡에 따르면 분석의 끝에서 주체는 “대상 a의 즉자성”으로 “환원된다.”91) 라깡의 분석의 끝을 ‘주체적 궁핍’으로 설명하지만, 분석의 끝으로서의 주체적 궁핍은 존재의 상실이 아니라 오히려 존재의 획득이다. 주체적 궁핍이란 상징계에 의한 소외 속에서 누리던 주체의 극복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분석의 끝에서 주체는 상징계 속에서 상실되었던 자신의 고유한 존재를 다시 획득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주체적 궁핍은 탈존재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 존재를 만든다는 것을 이해시키는 일이다.”92) 여기에서 우리의 논제와 관련해 흥미로운 것은 헤겔 또한 라깡과 마찬가지로 이념의 완성을 인식과 행위의 융화로 설명한다는 것이다. 분석에 끝에 관한 라깡의 설명이 헤겔과 접목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신은 마침내 이 이념을 자기의 절대적 진리로서 즉자대자적으로 있는 진리로서 인식하기에 이른다. 즉 이것은 ‘무한’의 이념으로서, 이 속에서는 인식과 ‘행위’가 융화를 이루는 가운데 마침내 이념이 자기자신의 절대지에 다다르게 된다.”93) 절대지란 자신의 타자와의 대립의 극복에 다름 아니며, 따라서 헤겔의 절대지는 단순히 인식론적 차원에서만이 아니라 윤리적, 실천적 차원, 즉 “자유로운 실존으로의 고양”94)과 타자성의 긍정과 화해로 이해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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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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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160;&#160;만족과 결여의 변증법을 보지 못하고 만족만을 강조하는 들뢰즈의 존재론은 정신분열증, 망상증, 도착증, 신경증 등 인간 주체가 처할 수 있는 다양한 실존 방식 중에서 ‘오직’ 정신분열증만을 특권화하는 것으로 귀결된다. 사실 라깡 정신분석에 따르면 정신분열증은 주체와 타자의 분화가 일어나지 않은 상태를 의미하며 따라서 ‘결여 없는 만족’만이 존재하는 주체의 특징이라는 점에서 정신분열증에 대한 라깡의 견해는 사실 들뢰즈와 다르지 않다. 그런데 왜 그리고 어떻게 들뢰즈는 이러한 병리적 정신분열증 상태를 ‘특권화’할 수 있었는가? 이제 여기에서 흥미로운 점은 들뢰즈는 자신이 말하는 정신분열증이란 임상적 의미에서의 정신분열증이 아니라고 말한다는 사실이다. 정신분열증자가 누리는 결여 없는 만족이란 사실 ‘치명적인 향유’이며, 따라서 들뢰즈가 이렇듯 파멸과 죽음의 불안을 체험하는 임상적 의미의 정신분열증자를 우리가 본받아야 할 ‘최고의 모델’로 간주할 수 없었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들뢰즈가 말하는 해방된 분열증자는 임상적 의미가 아닌 다른 의미에서의 분열증자이다. 바로 이러한 들뢰즈의 논의는 난점에 부딪치며 독자를 혼란에 빠뜨린다. 한편으로는 임상적 의미의 분열증자를 소외로부터 벗어난 해방된 주체로 간주하면서, 동시에 자신이 말하는 진정한 자유인은 임상적 의미의 분열증자가 아니라고 말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들뢰즈는 『반오이디푸스』에서 슈레버를 정신분열증자로 해석하면서 그를 자신의 영웅으로 묘사한다. 하지만 슈레버는 사실 임상적 의미의 정신분열증자95) 아닌가? 왜 한때의 영웅이 다시 소외된 인물로 폄하되어야 하는가? 사실 들뢰즈가 말하는 ‘비임상적’ 분열증자는 라깡이 철저히 탐구한 바 있는 오이디푸스의 너머에 도달한 사람, 즉 소외로부터 벗어난 진정한 자유인, 즉 분석의 끝에 도달한 사람이 아닌가? 물론 들뢰즈는 이러한 라깡적 결론에 결코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본다면 라깡의 견해에 동조할 수도 있을 들뢰즈 이론이 외관상으로 완전히 다른 입장을 취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개인적, 정치적 상황 등 여러 가지를 고려할 수 있겠지만 앞에서 언급했듯이 어떤 특정한 존재론적 입장을 특권화한 것에 그 원인이 있지 않을까 한다. 어떤 특정한 철학적 존재론을 직접적으로 ‘정치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독단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으며, 이는 민주주의의 동지를 ‘주적’으로 간주하는 정치적 오류는 물론 생산적인 학문적 토론을 방해하는 장애물로 기능할 수 있다. ‘신에 대한 지적 사랑’은 그러한 사랑의 불가능성에 대한 깊은 통찰이 함께 할 때에만 우리에게 진정한 해방과 기쁨의 원천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바로 이것이 알튀세르가 ‘죽음보다 더 깊은 잠’에서 깨어난 후 맑스로 되돌아가는 설레이는 귀향길(Heimweg)에서, 정신분석과 헤겔을 경유하는 우회로(Umweg)을 거치며 다시 발견한 자신의 ‘새로운 맑시즘’의 메시지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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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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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0;알튀세르와 정신분석의 ‘무관성’이라는 이러한 옛 입장을 다시 한번 반복한 예로서는 예컨대, 진태원, 2002, 특히 368면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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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60;이에 대한 필자의 반론을 포함한, 알튀세르와 정신분석학에 관한 새로운 논의로는 홍준기, 2003, 121면 이하를 참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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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60;여기에서 상세히 논의할 수는 없지만 정신분석 혹은 라깡에 대한 들뢰즈의 극단적인 비판적 입장은 『반오이디푸스』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그러므로 이 저서 이전에는 라깡 이론이 들뢰즈 철학의 비판 대상이 아니라 오히려 반대로 들뢰즈가 참조했던 결정적인 준거점 중의 하나였다. 반면 헤겔 철학에 대한 비판적 입장은 들뢰즈 철학 초기부터 후기까지 일관되게 유지된다. 따라서 보다 상세한 논의를 위해서는 시기별로 들뢰즈 입장을 면밀히 검토해야 할 것이나 이러한 상세한 검토는 이 글의 범위를 넘어서므로 여기에서 집중적으로 다룰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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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60;지면의 제약 때문에 이 글에서 필자는 정신분석의 끝에 관한 라깡의 논의에 대해 상세히 설명할 수 없었다. 이에 대해서는 홍준기, 2002, 26면 이하를 참조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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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60;루이 알튀세르, 1996, 25면 이하, 그리고 145면 이하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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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60;이에 대한 보다 자세한 문헌적 고찰로는 또한 F. Matheron, 1997, p. 23ff. 그리고 만족과 결여의 변증법을 중시하는 라깡 관점에서의 들뢰즈의 욕망이론에 대한 비판으로는 홍준기, 2005a, 20이하를 참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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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60;알튀세르, 1996, 18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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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60;같은 책, 182면. 강조는 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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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60;이에 대해서는 이하에서 보다 상세히 논의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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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60;알튀세르, 1996, 193면. 강조는 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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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60;L. Althusser, 1975, 7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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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60;예컨대 알튀세르의 제자였던 피에르 마슈레, 에티엔느 발리바르 등이 이러한 입장을 취하는 대표적인 저자이다. 이러한 입장에서 쓰여진 스피노자 해설 중 국내에 소개된 것으로는 피에르 마슈레, 『헤겔 또는 스피노자』, EJB, 2001(진태원 번역) 등이 있다. 물론 마슈레는 헤겔을 스피노자에 이어서 부차적으로나마 필요한 철학자로 받아들이고 있으며 부차적으로 모순 개념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있지만, 앞으로 살펴보겠듯이 주로 스피노자에 의존하는 마슈레 이론은 적어도 알튀세르 자신의 입장과 큰 차이를 보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알튀세르가 중시하는 모순 범주를 진지하게 사유하기 힘들다는 문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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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60;L. Althusser, 1975, 61면, 각주 19. 강조는 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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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60;L. Althusser, 1986, 169면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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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60;L. Althusser, 1993, 7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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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60;L. Althusser, 1975, 9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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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60;L. Althusser, 1975, 73면 이하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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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60;같은 책, 7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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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60;같은 책, 7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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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같은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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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60;같은 책 79면 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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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60;같은 책, 8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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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60;L. Althusser, 1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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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60;예컨대, L. Althusser, 1975, 7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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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160;L. Althusser, 1970, 18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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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160;같은 책, 180면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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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160;같은 책, 18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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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160;같은 책, 19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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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160;L. Althusser, 1993c, 111면 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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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160;L. Althusser 1993, 149-150, 151면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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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160;같은 글, 149면 참조. 하지만 알튀세르는 사실상 기표이론을 사적 유물론에 포섭, 흡수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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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160;같은 글, 150면. 강조는 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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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160;같은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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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160;물론 기표이론이 라깡 이론의 전부가 아니라는 점에서 알튀세르가 라깡 이론을 기표의 보편이론으로 규정한 것 자체가 이미 오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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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160;이에 대해 상세한 논의로는 홍준기, 2003, 133면 이하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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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160;엘리어트, 1992, p. 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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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160;L. Althusser, 1970, 16-17면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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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160;L. Althusser, 1975, 82면. 강조는 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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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160;같은 책, 82-83면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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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160;물론 필자가 스피노자의 철학을 진리와 오류를 구분해주는 근거를 제시하는 독단적이고 ‘사변적인’ 철학이라고 주장하려는 것은 물론 아니다. 헤겔 철학의 ‘신비적 외피’를 벗기고 나면 합리적인 변증법의 ‘핵’이 드러나듯이, 우리는 스피노자의 철학을 알튀세르가 요청했듯이 ‘사변주의적’, ‘형이상학적’ 방식 혹은 들뢰즈적 방식이 아니라 달리 해석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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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160;스피노자에 따르면 인간이 예속을 극복하고 자유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신에 대한 지적인 사랑’, 즉 3종의 인식을 가져야 하듯이, 헤겔 철학에서 인간 자유의 실현이란 곧 절대적 이념에 도달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듯 스피노자에서 신에 대한 지적인 사랑이 단순히 인식론적 문제가 아니었듯이 헤겔에게 절대적 이념의 문제역시 단순히 형이상학이나 인식론의 문제가 아니라 윤리적인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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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160;Hegel, 1818-1931, 472면(V. Hösle, 1988, 163면에서 재인용, 강조는 원문).
<br />

43)&#160;헤겔, 1997a, 76면. 강조는 원문.
<br />

44)&#160;헤겔, 1997b, 24면. 강조는 원문.
<br />

45)&#160;같은 책, 27-28면.
<br />

46)&#160;예컨대 G. Deleuze, 1977, 75면 이하 참조.
<br />

47)&#160;Hegel, 1969, 148면.
<br />

48)&#160;Hegel, 1970, ζ 95, 201면. 강조는 원문. 
<br />

49)&#160;같은 책, ζ 95, 202면.
<br />

50)&#160;헤겔, 1983, 72면, 
<br />

51)&#160;물론 라깡이 분석의 끝을 결여로서만 정의한다는 것은 아니다. 라깡은 궁극적으로 헤겔과 마찬가지로 분석의 끝을 존재의 획득, 즉 긍정성의 획득으로 정의한다. 이에 대해서는 이 글의 말미에서 다시 논하기로 한다.
<br />

52)&#160;알튀세르,&#160; 1993a, 245면. 
<br />

53)&#160;알튀세르, 1996, 51면.
<br />

54)&#160;같은 책, 50-51면. 강조는 원문.
<br />

55)&#160;같은 책, 152-3면.
<br />

56)&#160;스피노자, 1990, 특히 108면.
<br />

57)&#160;같은 책, 155 면.
<br />

58)&#160;같은 책, 108면. 강조는 원문.
<br />

59)&#160;같은 책, 108-109면.
<br />

60)&#160;같은 책, 109 면.
<br />

61)&#160;알튀세르, 1996, 164면.
<br />

62)&#160;스피노자, 앞의 책. 156 면 참조. 하지만 실제로는 하나의 예를 『에티카』에서 발견할 수 있는데 그 예는 지극히 평범하므로 신에 대한 직관지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하는 데 사실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스피노자가 드는 예는 비례수의 예로서 1과 2, 그리고 3이라는 수가 주어졌을 때 제4의 비례수는 6이라는 것이다.
<br />

63)&#160;알튀세르, 1996, 156 면. 강조는 원문.
<br />

64)&#160;들뢰즈, 2003, 408면 참조.
<br />

65)&#160;같은 책, 409면.
<br />

66)&#160;같은 책, 401-2면.
<br />

67)&#160;Althusser, 1992, 210면.
<br />

68)&#160;알튀세르, 1996, 163면.
<br />

69)&#160;같은 책, 178면. 강조는 필자.
<br />

70)&#160;보다 상세한 논의로는 홍준기, 2003, 특히148면 이하 참조.
<br />

71)&#160;알튀세르, 1996,, 177면. 강조는 원문.
<br />

72)&#160;같은 책, 174. 강조는 원문.
<br />

73)&#160;같은 책, 176면. 
<br />

74)&#160;헤겔, 1997b, 393면. 강조는 원문. 물론 여기에서 목적이라는 단어가 나왔다고 해서 헤겔 철학을 단순히 목적론이라고 비판해서는 안 될 것이다. 스피노자 역시 형상적 원인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데, 이 때문에 스피노자를 단순히 아리스토텔레스적 목적론에 매여 있는 철학자라고 말할 수 없듯이 말이다.
<br />

75)&#160;같은 책, 87면.
<br />

76)&#160;같은 책, 31-32면 참조.
<br />

77)&#160;C. Taylor, 1975, 294면 참조.
<br />

78)&#160;Hegel, 1970, ζ 162.
<br />

79)&#160;헤겔, 『대논리학 III』, 71면. “개념이 지니는 추상적 제규정은 다면 형식면에서만 영원한 진리일 뿐, 결코 그의 내용마저도 그러한 형식에 합치되는 것은 아니다.”
<br />

80)&#160;이에 대한 예로서는 홍준기, 2002, p. 참조.
<br />

81)&#160;H. F. Fulda, 1989, p.&#160; 139. 강조는 원문.
<br />

82)&#160;헤겔, 1997b, 306면.
<br />

83)&#160;같은 책, 218면. 강조는 원문. 여기에서 개념의 ‘객관성’으로의 이행이 일어난다.,
<br />

84)&#160;같은 책, 423면.
<br />

85)&#160;이에 대해서는 홍준기, 2003, 148면 이하 참조.
<br />

86)&#160;헤겔, 1997b, 29-30면. 강조는 원문.
<br />

87)&#160;헤겔, 1997b, 30면. 강조는 원문.
<br />

88)&#160;같은 책, 30면.
<br />

89)&#160;같은 곳.
<br />

90)&#160;같은 책, 414면. 강조는 필자.
<br />

91)&#160;J. Lacan, 1984, 18면.
<br />

92)&#160;J. Lacan, 1970, 21면.
<br />

93)&#160;헤겔, 1997b. 307면. 작은 따옴표에 의한 강조는 필자. 이글에서는 지면의 제약상 분석의 끝으로서의 ‘정신분석적 행위’에 관해 상세하게 논의할 수 없었다. 이에 대해서는 홍준기, 2004를 참조하기 바란다. 
<br />

94)&#160;헤겔, 1997b, 442면.
<br />

95)&#160;프로이트와 라깡에 따르면 사실 슈레버는 분열증자가 아니라 망상증자이다. 여기에서 역시 자세히 논의할 여유는 없지만 슈레버의 자서전을 면밀히 검토해보면 슈레버는 다름 아닌 스피노자적 세계관을 갖고 있었음이 분명히 드러나며, 바로 그 때문에 들뢰즈는 슈레버를 정신분열증자로 해석하고자 했을 것이다. 하지만 한 개인이 망상 속에서 스피노자의 세계관을 옹호했다고 해서 그가 정신분열증자가 될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님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임상적으로’ 본다면 슈레버는 체계화된 망상을 발전시킨 망상증자였으며,&#160; ‘망상적 은유’(라깡)을 통해 자신을 구원한 ‘해방된 망상증자’였다. 이 점에서도 필자는 분열증과 망상증을 대립해 후자를 폄하하는 들뢰즈의 입장에 문제가 있다고 본다.&#160; 
<br />]]></description></item><item><author>바라</author><category>찌라시의 문서 창고</category><title>문화의 타자, 정치 -  서동진</title><link>http://blog.aladin.co.kr/vara/1122446</link><pubDate>Thu, 24 May 2007 10:0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vara/1122446</guid><description><![CDATA[
<H1>&nbsp;</H1>
<H1>문화의 타자, 정치</H1>








Several Circles (Einige Kreise)<BR>1926. Oil on canvas, Vasily Kandinsky민주화 이후의 문화 그리고 문화와 진보를 생각하며<BR><BR>
“인간이란 말의 힘을 통해 스스로를 자연적 목적에서 벗어나도록 하는 <BR>문학적 동물이기에 정치적 동물이다” <BR>- 자크 랑시에르<BR><BR><BR>민주화 이후의 문화 <BR><BR>87년으로부터 우리는 20년의 시간적 간격을 가지게 되었다. 그 간격에 놓인 번다한 역사적 사태를 어떻게 정의하고 분별할 것인가를 두고 분주한 이야기들이 있었다. 지금까지 우리에게 주어진 입장은 대개 이렇게 나눌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먼저 우리는 한편에서 “근대화의 완성”으로서 “민주화 이후”를 정의하고 또한 세례하는 목소리를 듣는다. 나는 그것이 민주화 이후를 규정하는 자유주의적 담론이라 생각한다. 이런 주장은 “민주화 이후”를 어떻게 규정하고 판별할 것인가를 둘러한 담론 투쟁에서 헤게모니를 장악하였다고 할 수 있다. 이 주장을 간단히 요약하자면 이런 것이지 않을까. <BR><BR>
more.. 
less.. <BR>우리는 적어도 “성공적인, 압축적인, 기적적인, 토건국가적인, 개발지상주의적인” 등등의 자본주의적 경제체제를 이룩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그것에 조응하는 민주주의를 결여하고 있었다. 그러나 87년 이후 우리는 민주화를 이룩하였고, 그것은 불완전한 근대화를 완성하였다. 경제적 근대화에 뒤지는 후진적 민주주의, 그리고 민주화를 통한 근대화의 보충과 완성. 따라서 우리는 충분하고 온전한 근대화에 도달하였다, 운운. 이런 논리는 나아가 “민주화”란 “정상화”이며 “성숙”이라는 결론을 내놓는다. 이것이 전후 냉전 체제에 형성된 “근대화” 담론을 되풀이하는 것이거나 아니면 최신의 “동아시아 민주화 담론”을 쫓는 것이든, 아니면 “민주화 이후”를 이끌었던 “시민사회” 담론이 내걸었던 정치적 프로그램, 즉 “민주주의의 (재)민주화”, “민주주의 공고화”, “민주주의의 사회화” 등등에서 나타나는 것이든, 그 입장들 사이에 놓인 차이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BR><BR>그리고 조금 놀라운 일은 이른바 한국 사회에서 보수와 진보를 아우르는 입장들이 바로 이 “근대화의 완성”으로서의 민주화 이후라는 담론에 동의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최근 성업 중인 “뉴 라이트”이든 아니면 민중운동 이후 시민운동으로 변신한 “뉴 레프트”이든, 대개의 정치적 주장들은 민주화 이후를 민주주의의 성취라고 생각한다는 점에서 이견이 없다. 따라서 구태의 보수주의로는 변화된 민주주의 체제에 적응할 수 없기에 변신을 꾀하여야 한다는 뉴 라이트나, 민주주의가 현실화된 이후 민주주의적 절차와 제도, 법률을 보다 확장하고 견고히 하기 위하여 시민의 협치(governance)를 제도화하여야 한다는 주장을 쫓아온 뉴 레프트나, 결국은 87년 이후의 역사적 현실을 민주주의의 현실화라고 간주한다는 점에서 다를 바 없다. <BR><BR>물론 그것은 거의 이견이 있을 수 없는 주장처럼 들린다. 87년 이후를 민주화 이후라고 부른다는 것은 거의 흔들림 없는 자명한 결론 아닌가. 여기에서 민주화 이후를 둘러싼 두 번째 입장을 상기할 수 있다. 사회주의적 경향이라고 할 그런 입장은 민주화 이후를 “신자유주의화”란 틀 속에 묶고 분석한다. 여전히 존속하고 있는 국가보안법으로 상징되는 분단체제, 신경제 체제로의 이행과 더불어 현실화된 노동 없는 축적 체제의 등장, 이른바 신국제질서라는 이름의 세계체제로의 통합 등, 우리는 “민주화 이후” 민주화란 이름에 값하는 아무 것도 얻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민주화는 기만이며 그것은 오직 신자유주의화라는 새로운 정치적 프로그램으로 이행하는 것에 불과하다. 결국 민주화 이후는 곧 신자유주의화의 다른 이름이며, 민주화는 절대 이루어진 바 없으며 여전히 중단 없이 추구되어야 하는 기획이다. 최근 이런 입장은 민주화 이후를 둘러싼 반성 속에서 사뭇 설득력을 얻어왔고 나는 그 주장을 액면대로 받아들일 때 전적으로 옳다고 생각한다. <BR><BR>사회와 정치의 거리<BR><BR>그러나 나는 후자의 입장이 민주화 이후를 성찰하는 데 있어 “민주화” 혹은 “민주주의”를 사고하는 데 있어 충분히 생각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민주화 혹은 민주주의라는 “정치”를 그것의 사회적 내용으로 환원한다. 따라서 민주주의란 최악의 경우 사회적 불평등을 위장하는 기만적인 허울이거나 아니면 그것은 단순히 부가적이고 외재적인 형식이어서 그것의 실정적인 내용, 즉 그것이 “사회적” 삶의 현실을 분석함으로써 분별하고 평가하여야 한다고 여겨진다. 따라서 “신자유주의화”로 민주화 이후를 평가하려는 주장은 안타깝게도 민주화 혹은 민주주의 자체를 질문하지 않는다. 신자유주의화라는 틀 속에서 민주화와 민주주의란 정치는 사회적 삶을 관리하고 규제하는 통치(government) 혹은 행정관리(police)로 환원되고 만다. 그러나 정치는 통치와 구분되어야 옳다. 물론 사회적 삶의 관리와 규제로서의 정치, 흔히 통용되는 “민생정치”란 용어가 상기시켜주듯이, 국민 혹은 인구(population)의 삶을 돌보고 향상시키는 정치가 근대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이데올로기였다는 점을 무시할 수는 없다. 이런 생각의 귀결은 한마디로 줄여 말하자면 “정치의 사회로의 흡수”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주장은 사회를 규제하는 초월적인 항으로서의 정치를 거부하라는 주장이며 사회의 다양한 실제적인 삶, 즉 인민 혹은 시민의 실제적인 욕구와 이해, 삶의 질 혹은 안녕을 살피고 관리하는 행위로서의 정치만이 존재할 수 있을 뿐이라는 입장이라 할 수 있다. <BR><BR>물론 많은 좌파들이 이에 동의하였으며 이의 가장 세련된 형태는 이른바 “제3의 길” 혹은 “참여정부” 따위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정치적 삶”과 “사회적 삶”(다시 푸코의 말을 빌자면 행복, 건강, 장수, 안전, 부를 추구하는 생물학적인 삶) 사이에 놓인 근본적인 차이를 지운다는 것은 곧 사회적 삶의 문제를 규정하는 체계를 선택하고 결정하는 행위가 있을 수 있음-우리는 이것을 민주주의의 본질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을 배제하는 것이다. 단적으로 말하여 “어떤 체제에 살 것인가”를 규정하는 것, 즉 어떤 의미에서 “우리가 사는 지금 여기의 사회가 전부이다, 역사는 끝났다, 그러므로 우리가 찾을 수 있는 효율과 계산뿐이다”가 아니라 “여기의 바깥이 존재한다, 지금 여기에서 자명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 사회적 규칙은 보편적 섭리가 아니다, 그러므로 단절적인 변화가 가능하다”라고 주장하는 것, 그리고 그런 주장을 물질화하는 것이 정치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그것이 현재의 사회적 삶의 내용으로부터 연역될 수 없는 행위란 점에서 비사회적이지만 또한 동시에 그것이 사회적 삶의 내용을 규정하는 좌표 전체를 바꿈으로서 사회적 삶을 재구성한다는 점에서 사회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BR><BR>그러므로 우리는 “민주화 이후”에 대한 두 가지 대조적인 입장을 뛰어넘을 필요가 있다. 민주주의를 실체화함으로써, 혹은 근대성의 규범적인 이상을 이루는 것으로 간주함으로써 민주주의를 형식적인 제도와 절차로 축소하는 것(즉 착취의 사회적 삶을 고려하지 않는 실체화된 대상으로서의 정치)과 반면 민주주의를 사회적 삶의 내용을 은폐하는 외재적인 허울이나 사회적 삶 자체의 파생물로 축소하는 것(즉 착취를 정치의 본질로 환원하면서 정치의 자율성을 부정하는 정치) 말이다. 정치는 자율적이지만, 또한 동시에 언제나 계급적대에 의해 규정된다는 점에서 타율적이다. 나아가 이는 “민주화 이후”의 문화를 반성하는데 있어서도 결정적인 의의를 가지고 있다. “민주화 이후”의 정치에 대한 물음을 문화에 해당시키면 어떻게 될까. 굳이 줄여 말하자면 “민주화 이후”의 문화는 무엇이었을까. 그런데 “민주화 이후”를 규정하는 문화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묻는 일은 거의 희박한 것 같다. 90년대 이후 “문화의 시대”란 유행어가 범람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시류에 대한 캐리커처를 넘어서지 못한 듯 보인다. 그것은 “민주화 이후”의 문화를 반성하는 물음이 “민주화 이후”의 정치를 반성하는 물음과 언제나 외적인 것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BR><BR><BR>- 중략 - <BR><BR><BR>예술의 타자, 정치<BR><BR>그러므로 고진이 &lt;트랜스크리틱&gt; 이후 생산의 입장, 노동자계급의 입장에서 벗어나 유통의 입장, 소비자/시민의 입장에서 자본주의를 개조하자고 주장하며 그것이 자본주의에 저항하는 가장 유효한 입장이라 역설할 때, 우리가 그를 미심쩍게 여기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결국 그는 유통의 입장에서 가능한 정치, 즉 경제의 입장에서 도출된 정치를 생각하자고 강변한다. 그런 입장에 대하여 마르크스주의<BR><BR>가 오랜 동안 사용해 온 정당한 개념이 있다. 물론 그것은 경제주의이다. 나는 그의 주장과 달리 생산의 입장에 선 정치, 그러나 이번에는 경제로서의 생산이 아니라 경제와 정치를 단락시키는 계기로서의 생산이라는 입장에 선 정치를 생각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말하는 생산이란 물리적 행위로서의, 경제적 재생산의 계기로서의 생산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그 생산이란 당연한 말이지만 생산-유통-생산의 순환 속에 존재하는 하나의 계기로서의 생산이 아니라 바로 그 순환 자체를 가능케 하는 조건 자체를 생산하는 것으로서의 생산일 것이다. 전체 순환의 흐름 속(이를테면 생산-유통-생산의 사슬)에서는 그저 하나의 부분인 것처럼 보이지만 조금만 엄밀하게 생각해보자면 그것의 실현을 위해 가능한 계기, 즉 생산 자체의 조건으로서의 생산이 있다. 그리고 사실 모든 생산은 바로 그 생산의 조건 자체의 생산과 경제적 계기로서의 생산 자체와 동시적이다. <BR><BR>그것이 바로 자신의 착취의 조건을 끊임없이 생산함으로써만 생산이 가능하며, 그것을 가리키는 이름이 정치라는 마르크스의 주장에서의 핵심일 것이다. 물론 그것은 문화와 예술에도 어김없이 연관된다. 문화와 예술이 진보한다는 것은 오직 한 가지 의미에서일 뿐일 것이다. 즉 그것은 예술이 정치화되는 것, 예술이 가용한 원천인 상상력 자체를 생산하는 것이다. 이는 유행과 추세로부터 벗어날 수 없음을 인정하고 현존하는 감성의 생산과 분배를 유일한 질서로 수긍하며, 기호학적 저항, 전복적 재전유 혹은 수행적(performative) 반복 따위를 통해 차이를 만들어내는 것에 만족하기를 거부하는 것이다. 만약 이 같은 문화예술에 해당하는 정치가 있다면 그것은 앞에서 말한 통치로서의 정치, 사회적 관리로서의 정치일 것이다. 반면 상상력 자체를 생산한다는 것이 그로부터 벗어난 정치, 본연의 정치와 대응할 것이다. 문화예술과 정치 사이에서 어떤 외재적 관계를 수립하고 둘 사이에서 재현과 반영의 규범을 외삽하여 이를 규제하는 것은 기실 상상력과 상관없다. 그것은 상상력 혹은 근대적인 민주주의가 만들어낸 감성 혁명 이전에 존재하던 것에 불과하다. <BR><BR>상상력이란 지성화된 감성이고 또한 감성화된 지성일 것이다. 따라서 그것은 자신에게 외적인 지성의 감독을 받으며 재현적 진실을 추궁 받을 이유가 없다. 이것이 아마 랭보와 말라르메 그리고 러시아 혁명기의 예술가 등등을 지배했던 시점이었을 것이다. 결국 문화예술을 정치화한다는 것, 그리고 그것들을 진보라는 이상과 결합하는 것은 새로운 상상력을 생산하는 것일 수밖에 없다. 또한 그것은 근대 문화예술의 진보를 규정하는 논리, 문화예술은 정치와 무관함 속에서 그것과 관계한다는 논리를 확인하는 것이 될 것이다. 다시 말해 문화예술과 정치가 각각 자율적인 실체로서 독립적으로 추구하지만 그런 비관계 속에서 언제나 함께 관계하는 것, 문화예술은 지금 여기에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것의 한계에 있는 부정성을, 정치는 지금 우리가 인식할 수 있는 것의 한계에 있는 부정성을 상대한다. 결국 요점은 양자가 모두 부정성과 관계한다는 점에서 같은 것이라는 점이다. 그것이 예술의 정치화이고 또한 정치의 예술화일 것이며, 또한 문화예술의 진보에 상당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런 부정성을 답파하는 것은 어떻게 나타날까. <BR><BR>정치라면 지금 여기에 존재하는 사회가 전부가 아니며 그것을 관리하는 일이 정치가 아니라는 것을 확언하고, 그리고 그것이 존재하기 위해 억압되어야 하는 부정성을 조명하는 일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문화예술 쪽에서도 그런 부정성과의 관계를 생각해 볼 수 있다. 그것이 문화와 진보의 관계를 사유하는 길이자, 또한 지금 “민주화 이후”의 문화에서 민주주의와 문화의 관계가 무엇이었는지를 해석하는 논리가 되어야 한다는 것 역시 물론이다. <BR><BR>- [문학과 사회] 2007년 여름호에 기고하 글. <BR>]]></description><image><url>http://www.homopop.org/log/attach/0514/070514161705097686/500066.jpg</url><link>http://blog.aladin.co.kr/vara/1122446</link></image></item><item><author>바라</author><category>찌라시의 문서 창고</category><title>예외로서 신자유주의, 신자유주의의 예외-아이와 옹</title><link>http://blog.aladin.co.kr/vara/1113103</link><pubDate>Wed, 09 May 2007 00:0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vara/1113103</guid><description><![CDATA[<!--StartFragment-->&nbsp;





예외로서의 신자유주의, 신자유주의의 예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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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와 옹 | UC 버클리 인류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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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호 &lt;책속의 책&gt;에서는 아이와 옹(Aihwa Ong)의 『예외로서의 신자유주의: 시민권과 주권의 변이들』(Aihwa Ong, Neoliberalism as Exception: mutations in citizenship and sovereignty, Duke University Press, 2006)의 서문인 「예외로서의 신자유주의, 신자유주의에 대한 예외」(Neoliberalism as Exception, Exception to Neoliberalism)를 싣는다.<BR>신자유주의는 대개 국가 권력의 통치 범위를 제한하는 경제 학설, 시장 이데올로기로 간주된다. 하지만 신자유주의에 대한 이런 한정된 이해에는 한계가 많다. 이런 식으로 따지자면 예컨대 최근 제시되고 있는 사회적 투자, 사회 자본에 대한 강조나 인간의 얼굴을 한 세계화, 포스트 워싱턴 컨센서스 등은 신자유주의가 아니라는 식으로 생각할 수 있는데, 왜냐하면 이들은 어쨌든 ‘시장지상주의’를 나름대로 비판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위와 같은 사례를 들어 자본가 계급이 신자유주의를 버렸고 따라서 반신자유주의가 아닌 다른 전선을 고민해야 한다고까지 말한다.<BR>그러나 신자유주의는 애초부터 (이른바 ‘시카고 학파’로 대표되는) 신보수주의에 대한 비판에서 출발했으며, 양자의 핵심 쟁점은 처음부터 ‘통치성’이었다. 즉 신자유주의는 ‘정책 무용론’이 아니라 ‘정책 개혁론’이며, 위기와 인민의 관리라는 화두로 국가를 개조함으로써 오늘날 세계를 지배하게 된 것이다. 그런 점에서 최근의 다양한 사회투자, 사회 자본의 흐름들은 신자유주의의 논리를 벗어나는 것이기는커녕, 신자유주의의 본래 정신을 가장 충실하게 계승해 자신의 통치성을 강화하려는 기도로 보아야 할 것이다.<BR>이 글에서 옹은 신자유주의는 단순한 경제 학설에 그치는 것이 아니며, ‘최적화’를 위해 통치와 자기 통치를 합리화하는 능동적 방식이라고 주장한다. 이에 따라 통치와 피통치, 권력과 지식, 주권과 영토성 사이의 관계가 재형성된다. 즉 각각 다른 체제를 가진 공간들에 적용되면서 신자유주의는 상이한 노동&#8228;생활의 환경을 구성한다. 이 과정에서 신자유주의의 통치성을 유지하는 포섭과 배제의 메커니즘이 작동한다. 기존의 시민권, 주권의 개념들은 이 속에서 시장 가치라는 기준에 의해 변화한다. 예를 들어 중국에서는 사회주의 경제 내부에 경제특구가 창설되며, 곳곳에서 NGO, 기업들의 간접적 영향력이 기존에 국가가 행했던 권리의 보호를 담당한다. 시민들에게는 자기 관리, 자기 경영, 자기 통치에 이르는 일련의 경제적 효율성과 더불어 자기 책임이라는 윤리적 주장이 제기되면서 기존의 시민권의 틀이 변화한다. 시장에 대한 계속된 강조 속에서 정부와 제도들은 신자유주의의 통치성 유지의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그리고 신자유주의적 가치의 내면화를 강조하는 이런 주체화 기술의 변화는 신자유주의에 맞서는 주체의 형성이라는 문제에 있어서도 중요한 쟁점을 형성한다. 또 푸코(주의)에 고유한 ‘실증주의’는 신자유주의를 둘러싼 문제에 관해 많은 생각꺼리를 제공할 것이다.<BR>하지만 물론 옹의 주장이나 논증에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녀가 인도주의적 개입이나 NGO식 사회 정책을 비판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때때로 이를 옹호하는 듯한 느낌의 논리를 전개한다. 이는 궁극적으로 그가 보편주의적 정치 이념, 그리고 이를 매개로 한 집단적인 정치적 주체화의 가능성에 다소 회의적인 시선을 보내기 때문일 것이다. 이론적으로 보자면 이는 그녀가 중요한 이론적 준거로 삼는 푸코를 다소 우경적으로 해석하기 때문일 것이다(물론 이는 단순한 ‘편향’이 아니고 푸코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순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푸코의 작업에 관한 최근의 비판적 소개로는 『문학과 사회 75호』(2006. 가을)에 실린 ‘생명정치’ 특집을 보라.).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하고 아마도 더 뼈아픈 문제는, 과거 사회주의 운동에 비할 정도의 보편주의적 정치 이념과 집단적 주체화가 재개되지 못하고 있다는 정세와 관련될 것이다. 그렇다면 그녀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기의 비판’을 진전시키려는 우리의 노력이 아닐 수 없다.<BR><BR>* 지면 관계상 서문에서 책의 각 장에 대한 설명 부분은 생략했으며, 내용 주가 많지 않아 지면에는 싣지 않고 『사회운동』 홈페이지, www.movements.or.kr에 올리는 것으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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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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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외로서 신자유주의, 신자유주의의 예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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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는 관점에 따라 다른 의미를 가지는 것처럼 보인다. 세계 대부분 지역에서 신자유주의는 미국의 도가 지나친 권력의 약호가 되었다. 아시아의 정치인들과 전문가들은 “미국의 신자유주의”를 국제통화기금(IMF)과 같은 매개를 이용하여 소규모 경제를 억지로 열어젖히고 이 국가들의 현재와 미래의 경제 복지를 파괴하는 무역정책에 노출시키는 시장 지배 전략으로 본다. 예를 들어 아시아 경제가 부상한 10년 간 (1980년대~1990년대), 아시아의 지도자들은 미국의 신자유주의에 대해 “아시아는 노(No)라고 말할 수 있다.”고 공언했다. 이런 수사들은 1997~98년의 “아시아 금융위기” 이후에 더 요란스러워졌다.1) 또한 대중적 담론에서 신자유주의는 국가 통화와 생활 조건을 위협하는 탈규제된 금융 흐름을 의미했다. 강요된 경제 구조조정 때문에 일자리를 잃은 한국의 반신자유주의 시위대는 “IMF는 나는 해고됐다는 뜻이다!”(IMF means I'M Fired!)고 쓰인 티셔츠를 입었다. 라틴 아메리카에서 미국의 시장개방과 사유화 압력은 “야만적 신자유주의”라고 불렸다. 이라크 침략 이후, 미국은 대기업들이 석유자원을 확보하도록 정복전쟁을 할 만큼 비열하다는 인식이 신자유주의 비판에 포함되었다. 이와 같이 전 세계 대중들의 상상 속에서 미국식 신자유주의는 점차 무법성과 군사행동에 의존하는 발본화된 자본주의적 제국주의로 여겨진다. 아래에서 볼 것처럼, 이런 광범위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아시아 정부들은 경제 구역을 창설하고 시민권에 시장 기준을 강요하는 신자유주의적 형태들을 선별적으로 채택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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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은 의미의 신자유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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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는 대조적으로, 미국에서 신자유주의가 학계 밖 대중적 담론의 일부가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오히려 시장 중심 정책들과 신보수주의가 사회복지 폐지와 대자본의 이익 증진을 추구하는 사고와 전략 전체를 약호화하는 토착적 범주다. 자유는 정치적 자유주의보다는 “자유로운 경제 활동”을 가리키는 더러운 단어가 되었다. 다소 넓게 말하자면, 민주당이 족쇄가 풀린 시장 주도 정신의 과잉에 반대하는 개인의 권리와 시민적 자유의 옹호자라고 스스로를 공언하는 반면, 공화당은 무수한 사회적 문제에 대한 개인적 해법이라는 신자유주의(신보수주의로 읽히는) 담론에 의존한다 할 수 있다. 두 종류의 자유주의 모두 정부의 기본 원리와 목표로 자유로운 주체에 초점을 맞추지만, 민주당원이 개인과 시민의 자유를 강조한다면, 공화당원은 자립과 자기관리라는 개인적 의무를 강조한다. 예를 들어, 보수적 칼럼니스트 윌리엄 새파이어(William Safire)는 “공화당원의 두뇌는 공동체 의존보다는 자립을, 고립보다는 개입을, 사회 규제보다는 자기 규율을, 즐거움을 찾기 위해 일하는 것보다는 일에서 즐거움을 찾는 것을 포함하는” 가치들을 선택한다고 쓴다.2) 정치 생활에서 두 종류의 자유주의의 합리성들은 자주 겹쳐지고 융합되지만, 공화당은 (정치적) “자유주의”를 “비(非)미국적인” 것으로 만듦으로써 미국에서 신자유주의의 지속을 강화했다. 사실 이런 당파적 논쟁들은 민주주의라는 정치적 자유주의의 이상과 개인의 책임과 운명이라는 신자유주의의 원리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는 균열을 강조했다. 
재선에 성공하면서 조지 부시(George W. Bush) 대통령은 미국에서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정치적 “지침”을 주장했다. 다수의 새롭게 제안된 “시장 중심 정책들”에서 그는 뉴딜 이래로 제도화된 미국 자유민주주의의 근본적 측면들을 해체할 것을 제안했는데, 이는 사회보장과 보건의료의 사유화에서 진보적 세법 폐지에 이른다.3) 부시는 자신의 새로운 전망을 “소유권 사회”라고 불렀는데, 이는 자신의 감시 하에 미국의 시민권이 자산의 소유자만을 포함하는 시민권에 대한 초기의, 좁은 전망으로 바뀔 것임을 명시적으로 주장하는 것으로, 여기서 특권화되는 것은 경제적 자기 이익을 고립적으로 추구하는 “독립적이고 이기적인 개인”이다.4) 두 번째 취임연설에서 부시 대통령은 “모든 시민들을 그 혹은 그녀의 운명의 행위자로 만듦으로써… 국민들이 자유 사회에서 삶의 도전을 준비할 것”이라고 명백하게 말했다.5) 또한 시민권에 대한 이런 신자유주의적 관점은 기독교 복음주의 집단의 도덕적 지지를 받았다.6) 
그러나 정치를 시장화하고 시민권을 재설계하려는 대통령의 시도들이 반대 없이 진행되지는 않았다. 절반에 가까운 시민들이 이런 사유화 정책들에 반대했다. 십여 년간 수없는 저항운동들이, 몇 개만 언급하자면 죄수, 노동자, 여성, 동성애자, 소수자, 외국인의 시민적 권리에 대한 끊임없는 침식을 방어해 왔다. 그들은 개인의 자유와 민족의 유산을 보호하기 위해 계속 싸울 것이라고 약속한다. 그러나 부시 정부는 신자유주의적 이성을 내세우지는 않더라도 그 정신에 따라 다른 정책들 중에서도 빈곤퇴치 계획, 의료보험 혜택, 환경 보호, 식품 안전을 계속해서 역전시키려 한다. 이 같은 신자유주의적 논리, 종교, 권리, 윤리 다발은 미국 시민권의 문제 공간이 되었는데, 그 결과가 무엇인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서 언급한 것처럼 1970년대 이래로 “미국식 신자유주의”는 해외에서 다양하게 수용되고 비판받은 세계적 현상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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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와 예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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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주장은 정치적 최적화의 새로운 양식인 신자유주의가 통치와 피통치, 권력과 지식, 그리고 주권과 영토권 사이의 관계를 재형성하고 있다는 것이다. 신자유주의는 종종 국가 권력과 부정적 관계에 있는 경제 학설로, 통치의 범위와 활동을 제한하려고 하는 시장 이데올로기로 논의된다. 그러나 신자유주의는 그것을 통해 통치 활동들이 기술적 해법이 필요한 비정치적&#8228;비이데올로기적 문제로 개작되는 통치와 지식 사이의 새로운 관계로 개념화될 수도 있다.7) 실제로 통치 기술로 간주되는 신자유주의는 “최적화”를 위해 통치와 자기 통치를 합리화하는 매우 능동적인 방식이다. 따라서 통치 기술로서 신자유주의 계산의 확산은 상황적인 정치적 구도를 불균등하게 절합하는 역사적 과정이다. 민족지적 관점은 막 출현하려고 하는 노동과 삶의 구별되는 환경을 상호적으로 구성하는 시장 합리성, 주권, 그리고 시민권의 특정한 정렬을 드러낸다. 
나는 예외로서의 신자유주의가 주권적 지배와 시민권 체제를 절합하는 비서구의 맥락에서 신자유주의의 능동적이고, 개입주의적인 측면에 초점을 맞춘다. 물론 예외로서의 신자유주의와 신자유주의에 대한 예외들 사이의 차이는 특정한 조사 환경에서 “규범적 질서”가 무엇인가에 따라 정해진다. 이 책은 신흥 국가들에서 예외들의 상호작용에 초점을 맞추는데, 이곳에서 신자유주의 자체는 통치 기술의 일반적 특징이 아니다. 우리는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의 자유민주주의에서뿐만 아니라, 탈식민주의, 권위주의, 탈사회주의적 상황에서도 신자유주의 개입을 볼 수 있다. 따라서 예외로서의 신자유주의는 시장 주도 계산이 특정 공간의 주민들과 행정의 관리에 도입되는 변화의 장소에 도입된다. 신자유주의적 예외, 시민권, 그리고 주권의 절합은 일련의 가능한 인류학적 문제들과 결과들을 낳는다.8) 
동시에 신자유주의에 대한 예외들이 정치적 결정들 속에서 발동되어 신자유주의적 계산과 선택에서 주민들과 장소들을 배제한다. 신자유주의에 대한 예외들은 사회안전망을 보호하는 양식일 수도 있고 모든 형태의 정치적 보호들을 없애는 양식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러시아에서 도시예산 집행에 신자유주의적 기술들이 도입될 때에도 주택보조금과 사회적 권리들은 보존되었다.9) 동시에 동남아시아에서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예외들이 이주노동자들을 시장주도 정책들이 창출한 생활기준에서 배제했다. 다시 말해서, 신자유주의에 대한 예외들은 시민들을 위한 복지 혜택을 보존하는 동시에 자본주의 발전의 혜택에서 비시민들을 배제할 수 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적 예외들과 시장 계산에 대한 예외들의 작동에는 중복되는 것이 있다. 신자유주의적 기술들의 통치를 받는 주민들은 신자유주의적 고려에서 배제된 다른 사람들에게 의존한다. 신자유주의적 규범에 종속된 주민과 공간을 이런 규범의 시연(試演) 외부의 것들과 절합하게 되면 윤리적 딜레마가 구체화되고, 사회적 평등과 공동의 운명이라는 기본적 가치들이 뒤바뀔 것이라는 위협이 생겨난다. 이어지는 장들은 예외들, 정치들, 윤리들의 상호작용이 진동하는 관계의 장을 구성하는 다양한 민족지적 환경들을 제시할 것이다. 통치와 피통치의 새로운 형태들, 그리고 인간이 된다는 것의 의미에 관한 새로운 관념들이 곧 출현하게 된다. 
이런 접근법에서 나는 다른 사람들이 따로따로 다룬 ― 신자유주의와 예외라는 ― 두 개념을 합할 것이다. 통치기술로서의 신자유주의는 시민권과 통치 영역에서의 계산적 선택과 기술들에 의지한다. 푸코(Michel Foucault)에 따르면 “통치성”은 일상적 행실의 체계적&#8228;실용적 지도와 규제에 관한 지식 및 기술의 배열을 가리킨다.10) 푸코가 말하듯, 통치성은 “개인들이 서로를 상대할 때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전략들을 구성하고, 정의하고, 조직하고, 도구화하는” 일련의 실천을 포함한다.11) 신자유주의적 통치성은 시장 주도의 진리들과 계산들이 정치의 영역으로 침투하는 데서 비롯한다. 오늘날 신자유주의적 합리성은 많은 체제의 행동을 고취하고, 규율, 효율성, 그리고 경쟁력이라는 시장 원리에 따라 자기 관리를 유도당한 자유로운 개인들의 통치를 고취하는 개념을 제공한다.12) 
정치적 예외란 칼 슈미트(Carl Schmitt)의 정식화에서 사법 질서와 일반적 규칙 외부에서 내려진 정치적 결정이다. 슈미트는 “주권자가 총체적인 상황을 만들고 보증한다. 그는 이 최종 결정에 대한 독점권을 갖는다. 여기에 국가 주권의 본질이 있고, 이는 강제나 지배의 독점권이 아니라 결정의 독점권으로 사법적으로 정확히 정의되어야만 한다.”고 주장했다.13) 따라서 예외의 조건은 정치적 경계성, 일반화된 정치적 규범성에서 벗어나는, 지배와 피지배의 논리에 개입하는 비상(非常)한 결정이다. 슈미트적인 예외는 전쟁 상황에서 적과 친구를 그리기 위해 발동된다. 지오르지오 아감벤(Giorgio Agamben)은 예외를 사법 질서 내의 시민과 사법적-정치적 보호를 박탈당한 외부자 사이의 분할에 입각한 주권적 지배의 근본 원리로 사용한다.14) 
대조적으로 나는 예외를 더 폭넓게, 즉 배제로도 포함으로도 전개될 수 있는 정책의 비상한 출발로 개념화한다. 통상적 이해에 따르면 주권의 예외는 보호를 거부당한 배제할 수 있는 주체들을 구획한다. 그러나 예외는 신자유주의 개혁과 관련된 “계산적 선택과 가치 지향”15)의 대상으로 선택된 주민들과 공간들을 포함하는 실정적 결정일 수도 있다. 나의 정식화에서는, 예외로서의 신자유주의와 신자유주의에 대한 예외들 사이의 이음매를, 통치와 규율, 포함과 배제, 인간 행실에 가치를 부여하거나 부인하는 기술들 사이의 상호작용을 탐색할 필요가 있다. 세계화 시대 예외의 정치는 통치와 경계설정의 변화된 기술에서 포함된 자들과 배제된 자들 모두에게 우려스러운 윤리정치적 함의가 있다. 이 책은 어떻게 예외의 시장 주도적 논리가 다양한 민족지적 맥락과 윤리적 위험, 가동된 질문들 속에서 전개되면서 시민권과 주권의 확립된 실천들을 뒤흔드는지를 탐구할 것이다. 
예외들, 정치들, 그리고 시민권 사이의 상호관계는 현대 생활의 문제를 결정하며, 이들은 또한 오늘날 인간이 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에 대한 윤리적 논쟁들을 틀짓는다. 예를 들어, 신자유주의적 예외들은 아시아적 배경에서 다양하게 발동되어, 시장 주도 선택과의 관계에서 공간들을 재정의하고, 경제 활동을 다시 도덕적으로 설명하며, 시민권의 사회적 기준을 다시 계산했다. 이런 절합들은 사전에 예측할 수 없는 우연적이고 모호한 일련의 결과들을 낳았다. 신자유주의적 결정들은 새로운 형태의 포함을 창출하여, 몇몇 시민 주체들을 떼어 놓고 비상한 정치적 혜택과 경제적 이득을 향유할 수 있는 새로운 공간들을 창출했다. 슈미트적 예외는 특정한 주민들을 버리고 그들을 정치적 규범성의 외부에 둔다. 그러나 신자유주의적 예외들과 신자유주의에 대한 예외들 사이의 절합은 다양한 인간 범주에 배정된 도덕적 요구들과 가치들의 가능성을 증가시킴으로써 정치적으로 배제된 자들을 위해 다양한 정도의 보호가 협상될 수 있게 한다. 
내 생각에 신자유주의와 예외의 결합은, 신자유주의적 이성과 메커니즘의 절합 및 탈구 속에서 시민권과 주권이 어떻게 변이되는지를 이해하는 데 다음과 같은 함의를 갖는다. 먼저, 신자유주의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통치와 시민권 사이의 연관에 대한 우리의 사고를 엄격한 사법적&#8228;법률적 관계로 바꿔 놓을 것이다. 신자유주의적 기술에서 생명정치적 통치 양식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 중요한데, 이는 개인과 주민―통치 체제가 이용하거나 관리할 수 있는 살아 있는 자원으로서―의 역량과 잠재력에 중심을 둔다. 여기서 사용된 신자유주의는 두 종류의 최적화 기술에 적용된다. 주체성(subjectivity)의 기술들은 혼란스러운 시장 조건에서 시민들이 선택들, 효율성, 경쟁력을 최적화할 수 있도록 자기 고취와 자기 통치를 유도하는 전문가 체계와 지식의 배열에 의지한다. 이런 최적화 기술들에는 보건 체제 엄수, 기술 습득, 기업가 정신의 개발, 그리고 다른 자기 공학과 자본 축적 기술들이 포함된다. 종속(subjection)의 기술들은 점차 시장의 힘에 관여하는 공간적 실천들을 통해 최적의 생산성을 위해 주민들을 다르게 규제하려는 정치 전략들을 지시한다. 이런 규제들은 도시 공간의 요새화, 여행 통제, 그리고 성장의 중추(hub)에 특정 종류의 행위자들을 채용하는 것을 포함한다. 
최적화의 개입으로서 신자유주의는 행정 전략들과 시민권의 실천을 바꾸는 조건들을 만들기 위해 지배 체제와 시민권의 체제에 상호작용한다. 이는 시장 논리가 정치에 침투하면서 민족 국가에 뿌리내린 법적 지위이자 무국적의 조건에 대한 뚜렷한 반대로서의 시민권의 관념을 개념적으로 뒤흔들린 결과다.16) 게다가 신자유주의적 예외는 경우에 따라 민족 영토 이하의 또는 반대로 민족 경계를 넘어서는 정치적 공간들에서 시민권의 요소들을 절합한다. 
시민권을 창출하는 데 동반된다고 우리가 생각하는 요소들―권리들, 자격들, 영토권, 민족―은 시장의 힘들이 가동시키는 힘들에서 탈구되고 재절합된다. 한편으로 자격, 혜택과 같은 시민권의 요소들이 점차 신자유주의적 기준들에 연관됨으로써 인적 자본이나 전문 지식을 소유하고 있는 기동적 개인들의 가치가 더 높이 평가되고, 다양한 장소에서 유사시민적(citizen-like) 요구를 할 수 있다. 동시에 이처럼 매매할 수 있는 능력이나 잠재력을 갖고 있지 않다고 판단된 시민들은 평가 절하되고 따라서 배제의 실행에 공격받기 쉬워진다. 다른 한편, 시민권의 영토권, 즉 모국의 민족적 공간은 부분적으로 세계 자본주의의 영토권에 그리고 비정부기구(NGO)의 개입으로 지도에 나타나는 공간들에 배태된다. 이런 예외의 중복된 공간들은 시민권의, 혹은 인권의 보편적 체제의 관습적 통념에 깔끔하게 들어맞지 않는 인간 가치의 다양한 요구를 위한 조건들을 창출한다. 요컨대 시민권의 구성요소들은 새로운 공간과 개별적 연계들을 발전시켰고, 이로써 다양한 장소 및 윤리적 상황과의 연관 속에서 재절합되고, 재정의되고, 재상상되었다. 시민권의 구성요소들, 행위자들, 그리고 공간들의 이 같은 탈궤(脫軌)와 재접궤(再接軌)는 시장 전략들, 자원들, 행위자들의 분산과 재편성 때문이었다. 
둘째로, 예외로서의 신자유주의는 정치적 개별성으로 오랜 기간 개념화되었던 국가 주권에 대한 연구를 세련되게 한다. 하나의 관점은 국가를 민족의 지형 전체를 평평하게 만들거나, 결국 하나의 단일한 국가 관료제를 강요하려 드는 기계로 본다.17) 실제에 있어서 주권은 다양한 요구들 및 논쟁과 마주치고, 다양하고 우발적인 결과들을 낳는 다중적이고 때로 모순적인 전략들로 나타난다. 나의 주장은 세계 시장과 규제 제도들의 상호작용 과정에서 주권적 지배가 새로운 경제적 가능성들, 공간들, 그리고 인민을 통치하는 기술들을 창출하는 예외들을 야기한다는 것이다. 신자유주의적 예외는 민족 국가의 공간을 쪼개고 확장하는 방식으로 일정한 주권의 유연성을 가능케 한다. 예를 들어, 동남아시아와 동아시아에서, 구역화(區域化, zoning) 기술들은 시장의 힘과 연관된 집단들을 규제하는 전략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특별한 공간들을 만들었다. 전략적인 정치&#8228;경제&#8228;사회 조건의 공간적 집중은 해외 투자, 기술 이전, 그리고 국제적 전문 지식을 특정한 고성장 구역에 끌어들인다. 시장 주도적인 공간 분단 전략은 다양한 범주의 인적자본에 대한 세계 자본의 수요에 대응함으로써, 이에 따라 인접하지 않은, 별도로 관리되는 “단계적” 혹은 “다채로운 주권”의 공간 유형을 낳는다. 게다가 기업들과 NGO들이 서로 다른 정치적 규모의 다양한 주민들에게 간접적 영향력을 행사함에 따라, 우리는 중복된 주권들이 출현하는 상황에 처해 있다. 
예를 들어, 최적화 기술들은 대도시들을 자원과 행위자 네트워크를 등록하는 중추에 재입지(立地)시켜, 대도시들을 별도의 생태계의 중추로 만든다. 사스키아 사센(Saskia Sassen)은 세계적 순회(巡廻)를 떠받치는 핵심 기능과 서비스를 통제하는 몇몇 “세계 도시들”―뉴욕, 런던 그리고 도쿄―라는 영향력 있는 모형을 제안한다. 이 초민족적 도시 체계는 “세계적 위계에서 주로 중간 범위에 속하는 남반구의 도시들”을 지배한다.18) 상하이, 홍콩, 그리고 싱가포르의 폭발적 성장은 신자유주의적 예외가 유발하는 다른 종류의 시공간적 상승 작용이 높아짐을 시사한다. 시장 주도 계산은 내외적 요소를 결합&#8228;재결합하는 새로운 가능성을 창출하여 이 도시들을 출현과 새로운 순환의 장소로서 재입지시킨다. 
전략적 지식, 자원, 그리고 행위자의 상황적 동원은 진동하는 상호작용의 망을, 즉 초고속성장 지역의 범위를 확대하는 시공간적 “생태계”를 형성한다. 이 생태학으로서의 통치성(govermentality-as-ecology) 전략은 신흥 아시아 중심들을 기존 초민족적 도시 체계에 맞추려고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논리는 집(hometown, oikos)을 특정한 물질과 사회적 가치의 전략적 생산을 위해 다양한 요소들 사이에서 자체적으로 자아낸 공생관계 망에 재입지하는 것이다.19) 이 마이크로소프트 식 접근은 생태계의 다른 성원들이 각자의 성과를 높이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플랫폼”―“서비스들, 도구들, 혹은 기술들”20)―을 창출한다. 이것은 관습적인 도시 기능을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장소의 미래와 얽히게 되는 국제 기업, 연구 기관들과의 혁신적 협력을 위해 관계를 강화하기 위해 자본을 사용하는 중추 전략이다. 
셋째로, 개방된 시장의 계산된 메커니즘은 민족적 경계를 가로지르는 자본, 지식, 그리고 노동의 새로운 배열과 영토화를 절합한다. 마이클 하트(Michael Hardt)와 안토니오 네그리(Antonio Negri)의 영향력 있는 저서인 『제국』은 경제적 세계화가 단일한 세계 노동 체제를 만들었다고 주장한다.21) 그러나 다양한 구역들과 특정한 네트워크들 사이의 복잡한 상호작용은 노동 규제의 통일된 전망에 대한 강력한 주장에 도전한다. 오히려 나는 자본의 다른 방향들이 노동 규제와 노동 규율이라는 서로 다른 축들을 조정하는 예외의 공간들―“씨줄”―을 만든다고 주장한다. 횡방향 생산 체계는 통치성의 늘임뿐만 아니라 다수의 장소를 가로지르는 강제적 노동 체제를 가능케 한다. 따라서 위도의 공간들은 광범위한 지역들에 걸쳐 노동권을 거의 고려하지 않고 작용할 수 있는 규제적&#8228;감금적 노동 체제의 혼성 혼합물에 의해 형성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씨줄적 통제는 다양한 장소들 사이로 노동이 이동하는 것에서 간헐적으로 생기는 뜻밖의, 자발적인 도전의 영향을 받는다. 
넷째로, 자기 통치의 정신으로서 신자유주의는 특정한 맥락에서 다른 윤리 체제와 마주치고 절합한다. 개인주의와 기업가주의를 장려하는 시장 합리성은 시민권의 규범과 인간 삶의 가치에 대한 논쟁을 낳는다. 예를 들어, 동남아시아의 이슬람 공적 영역에서 신자유주의적 예외는 여성적 미덕에 대한 논쟁을 촉진한다. 울라마들(Ulamas)은 일하는 여성들의 새로운 자율성을 반대하는 반면 페미니스트들은 이슬람의 한계 내에서 일종의 성 평등을 요구한다. 초민족적 인도주의가 상황적 윤리들을 대체했다는 견해와 달리, 신분과 도덕의 문제들은 경제적 합리성, 종교적 규범, 그리고 시민권의 가치에 의해 형성된 특정한 환경에서 문제화되고, 해결되었다. 
실제로, 정치적으로 주변화된 사람들의 서로 다른 정도의 정치적&#8228;도덕적 요구들은 논리와 힘이 변화하는 연결점에서 협상될 수 있다. 정상화된 시민권과 헐벗은 삶을 단순히 대립시키는 모형들에는 개념적 한계가 있다. 지오르지오 아감벤은 사법법률적 권리를 향유하는 시민들과 “구별불가능성의 지역”에 거주하는 배제된 집단들 사이의 현저한 대조를 묘사한다.22) 그러나 특정 상황들에 대한 민족지적 연구는 정치적으로 배제된 자들을 위한 협상들이 불명확하거나 모호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것을 드러낸다. 실제로 이것이 특정 환경의 도덕적 문제들과 요구들을 확인하고 절합하기 위해 모든 곳에서 NGO들이 하고 있는 복잡한 작업이다. 때때로 시민권 혹은 유사시민권적 보호를 빼앗긴 사람들의 단순한 생존을 추구하면서 심지어 기업 합리성이 발동될지도 모른다. 인도주의적 개입들은 일률적 방식으로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종횡하는 관계의 변하는 장을 협상해야만 한다. 
예외로서의 신자유주의는 서로 환원되지 않는 구성적 관계의 배열을 절합한다. 오히려 민족지적 탐구는 이를 통해 문제들이 해결되는 시공간적 상호관계의 상황적 실천들과 시장 주도 메커니즘 사이의 새로운 상호작용을 드러내 준다. 자기 통치의 기술들은 시민권의 요소들을 절합하고, 자기 경영적 가치들은 이동가능한 사회적 자격으로 번역되고, 기동적인 기업가 주체들은 다양한 장소들에서 유사시민권적 혜택들을 요구할 수 있다. 동시에 통치의 신자유주의적 예외는 다르게 규제되고 세계적 순회에 연계되는 정치적 공간들을 구성한다. 이런 사회 공학(engineering)과 자기 쇄신(reengineering) 같은 반영적 기술들은 다양한 윤리 체제와 상호작용하면서, 시민권과 윤리적 생활에 대한 현대의 문제들을 결정한다. 
이 서문의 나머지 부분은 다음과 같은 절로 나뉜다. 첫째로 나는 신자유주의의 이론들을 개관하고 왜 통치 기술로서의 신자유주의가 시민권과 주권의 현대적 변이에 대한 민족지적 연구에 유용한 개념인지를 논의할 것이다. 둘째로, 나는 시장 중심 합리성과 탈궤 및 재접궤할 수 있는 요소들의 집합이라는 시민권 개념을 제안한다. 셋째로, 신자유주의적 예외는 규범성과 예외의 단순한 대립이나 개별성이 아니라 안전, 삶, 그리고 윤리를 구성하는 이질적인 계산들, 선택들, 예외들의 변하기 쉽고 유연한 집합으로서 주권을 다시 생각하는 데 결정적 분석이다, 마지막 절은 어떻게 신자유주의 기획들과 도덕 경제들의 절합이 인간에게서 시민권을 빼앗을 뿐만 아니라 헐벗은 삶을 보호한다는 이익을 위해 재편성되는지를 논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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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의 양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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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으로서 신자유주의의 계보를 짧게 개관해 보자. 신자유주의에 대한 분석적 논의는 20세기 초 자유 시장 메커니즘이 인간과 지구의 운명의 유일한 지도자가 되도록 내버려 두는 것에 대한 칼 폴라니(Karl Polanyi)의 경고로 시작해야 한다. 폴라니의 유명한 주장은 근대사회의 특징이 “이중 운동”이라는 것인데, 여기서 자본의 자유로운 순환은 대항력을 만난다. 현대의 삶에 자유 시장이 미친 파괴적이고 분열적인 효과에 맞서는 자기 보호의 정치적 요구가 그것이다.23) 폴라니는 국가의 입법이 시장을 규제하고 이로써 사회를 보호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폴라니의 적수들은 법과 사회적 규범들이 사회에서 자원이 최선으로 사용되도록 보장한다는 것에 회의적이었다. 오스트리아 철학자인 프리드리히 폰 하이에크(Friedrich von Hayek)는 대안적 경제 이론을 주관적 수준에서 제안했는데, 이 이론은 자기 이익의 극대화를 목적으로 하는 개인적 행동들을 공적 자원들이 효율적으로 배분될 수 있게 보장하는 핵심 메커니즘으로 간주한다. 하이에크의 자유주의의 핵심은 경제적 인간(Homo economicus)으로, 이는 시장 경쟁의 활기찬 조건에서 만들어진 도구주의적 형상이다.24) 하이에크의 관념은 1960년대 신자유주의 시카고 학파의 선도적 제안자였던 밀턴 프리드먼(Milton Friedman)25)과 게리 베커(Gary Becker)26)에게 영향을 끼쳤다. 이 학설은 1980년대 신자유주의의 첫 번째 물결인 대처리즘과 레이거노믹스와 연관되게 된다. 국내에서 신자유주의 학설은 “큰 정부”와 관료적 복지 국가를 공격하는 데 이용되었다. 기업화와 사유화를 늘리고 “효율성”을 도입하기 위해 국가의 공적 부문을 개혁하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졌다. 해외에서는 해외 시장 접근을 개방하기 위해 경제 자유화가 증진되었다. 이런 정책들은 동구권에 수출되었을 때 “워싱턴 컨센서스”라고 불리었는데, 이는 사회주의 경제들을 경제 경쟁으로 끌어들이도록 개혁하는 일련의 “조정” 전략이었다.27) 해외에서 이런 사유화와 개방경제 정책들은 “미국식 신자유주의”, 혹은 경제적 세계화라 불리었는데, 즉 무역 블록의 형성을 통해 민족에서 지역 수준으로 경제 계획의 국제적 변화를 지지하는 정책이다.&nbsp; 
1990년대에 신자유주의는 프란시스 후쿠야마(Francis Fukuyama)와 제프리 삭스(Jeffey Sachs)와 같은 새로운 세대의 경제학자들에 의해 시장 경제의 진화에서 불가피한 종점으로서 이해되었다. 조지프 스티글리츠(Joseph Stiglitz)와 위르겐 하버마스(J&uuml;rgen Habermas) 같은 유명 인사들은 경제 세계화의 사회적 결과들을 비탄했고 자유롭게 배회하는 시장의 파괴에 반대하는 정치적 방어를 역설했다. 그러나 논쟁들이 신자유주의에 대한 찬반을 심사숙고하는 동안, 대부분이 신자유주의가 “특정한 종류의 진보적 근대화의 표현”이라는 데 동의했다.28) 이 신자유주의의 두 번째 물결에서는 신자유주의적 특성들의 개인적 내면화가 강조되었는데, 이는 새로운 방식의 주체화 기술에 기반을 둔 것이었다. 클린턴 정부 하에서 “개인에게 책임지우기”는 보건과 교육처럼 이전에 보조금이 지급되던 영역의 새로운 규범이 되었으며, “근로연계복지” 사업의 원리로서 이용되었다.29) 요컨대 정치철학으로서 신자유주의의 주요 요소들은 (1) 공적 자원의 분배에 있어서 국가보다는 시장이 낫다는 주장과 (2) “‘경쟁적’&#8228;‘소유적’인, 그리고 종종 ‘소비자 주권’의 학설에 의해 해석되는 개인주의의 초기적 형태”로의 회귀다.30) 신자유주의의 추론이 경제적(효율성)이고 윤리적(자기 책임)인 주장 양자에 기반을 둔다는 것이 중요하다. 
인문과학에서는 신자유주의가 현대 생활의 다른 측면들을 평가하는 최고의 힘이 되었다는 것에 대한 광범위한 동의가 있다. 그러나 여전히 시장 합리성의 범위, 조직 그리고 지식-권력의 차원에 대한 불일치가 있다. 사회 현상으로서 신자유주의는 민족적&#8228;세계적 수준에서의 구조 변화와 계급 이데올로기라는 마르크스주의적 개념들의 재구성을 통해 주로 연구되었다. 신좌파의 비판은 신자유주의를 영국과 같은 선진 자유주의 국가에서 복지 국가를 공격하는 계급에 기반을 둔 이데올로기로 본다.31) 더 넓은 수준에서 신자유주의는 자본주의의 구조적&#8228;헤게모니적 세계 지배의 최종 단계로 개념화된다. 예를 들어 스티븐 길(Stephen Gill)은 신자유주의가 민족 국가와 초민족적 기관들 사이의 관계에 대한 준법률적 재구조화에 의지하는 획기적인 질서라고 주장한다. 그는 이 국제 규율 체제가 “시장 문명”과 관련된 사회적 위계와 불가피한 진보라는 헤게모니적 개념을 동반한다고 주장한다.32) 
이런 양상들은 신자유주의적인 북반구 대 포위당한 남반구라는 구조를 만드는 인류학의 두 학파를 낳은 것으로 보인다. 첫 번째는 북반구의 “신자유주의 문화”가 초자연적 경제, 메시아주의 운동, 그리고 다른 사회적 격변을 포함하는 남반구의 대응을 낳았다고 본다.33) 두 번째 관점은 “신자유주의 국가들”이 “세계적 수준에서” 자본을 집중하고 권력을 독점한다고 본다. 데이비드 하비(David Harvey)는 “신자유주의 국가”를 이상적 유형으로 내세우고 이에 따라 의식하지 못한 채 국가를 개별적인 실체로 제시한다. 이런 접근은 세계에서 경제적으로 가장 역동적인 지역인 동아시아와 대면할 때 개념적 문제에 마주친다. 하비는 “중국의 이상한 경우”를 언급하는데, 이는 명백히 중국의 사회주의적 구성체와 열광적인 자본주의 활동의 공존을 조정하는 분석적 어려움 때문이다.34) 앞으로 볼 것처럼 신자유주의적 개입들과 아시아 정치 문화의 역동적이고 새로운 결합은 단순한 지정학적 남-북 축, 혹은 민족 국가의 유형학에 기반을 둔 유형학적 접근에 도전한다. 우리는 지배적 국가들에서 시작해 소규모 국가들에 이르는 맹렬한 시장 주도 현상의 조류로 신자유주의를 다루는 것보다는, 다양한 기술들로 쪼개 보는 것이 더 유익할 수 있다. 주권적 실천을 허용하는 정치적 예외나 기존의 규범에서 벗어난 주체화 기술 같은 종류로 말이다. 동아시아 환경을 절합하는 신자유주의적 형태들은 대개 지방 문화적 감수성 및 민족적 동일성과 긴장 관계에 있다. 기술관료들이 기업 의제들을 채택하고 인간 재능과 자기 경영의 이상을 정당화하는 동안, 많은 일반인들은 시장 기준 및 그것이 집단적 가치와 공동체의 이익에 가하는 공격에 대해 계속 양면적&#8228;회의적이다. 민족지적 연구가 마주한 도전은 “적절한” 행동 규모―민족이나 세계 또는 지방―를 찾는 것이 아니라 신자유주의적 예외가 낳는 변이의 변동선을 조사할 수 있게 해 주는 분석적 각도를 식별해 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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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치기술로서 신자유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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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학자로서, 우리들은 거대 이론에 회의적이다. 우리는 현대 생활의 이질적 상황들에 대한 상황적 민족지 연구의 프리즘을 통해 커다란 문제들을 제기한다. 몇 년 전, 클리포드 기어츠(Clifford Geertz)는 해석적 접근에는 “지반에 좀 더 가까이 머무르는 이론이 필요하다. … 오직 짧게 번뜩이는 추론만이 인류학에서는 효과적인 경향이 있다. 더 긴 것은 형식적 대칭 속에서 학술적 멍함과 논리적 꿈에 빠져드는 경향이 있다.”고 썼다. 오늘날 우리의 질문은 “우리의 주제들이 살고 있는 개념적 세계”를 넘어서지만,35) 우리 접근은 여전히 저공비행이라는 특징, 담론적&#8228;비담론적 실천들에 가까이 머무르는 분석적 관점이라는 특징을 갖는다. 우리의 목표는 다양한 인간 상황의 변이에서 관찰할 수 있는 현대 인간 현상을 중간범위에서 이론화하는 것이다. 우리는 조사의 장소나 대상을 구성하는 구도들 안에서, 요소들을 탈구하고 재절합하는 변동선을 포착하려고 한다. 따라서 신자유주의를 “문화”나 “구조”가 아니라 원래의 자원에서 탈맥락화할 수 있고, 상호 구성적이며 우연적인 관계들의 구도들 안에서 재맥락화할 수 있는 기동적인 계산적 통치 기술로 연구하는 것이 적절할 것 같다. 이 환경은 문제와 그 해결의 장소인 중간적 공간이다.36) 
신자유주의적 통치성은 “생명권력”이라는 푸코의 개념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데, 이는 근대적 통치 양식으로 “생명과 생명의 메커니즘을 정확한 계산의 영역으로 만들고 지식/권력을 인간 생활을 변형하는 행위자로 만든다.” 생명의 관리에 집중하는 이 정치적 기술은 발전의 양 극 사이에서 동요한다. 한 극이 집중하는 것은 “기계로서의 신체다. 곧 신체의 규율, 신체 능력의 최적화, 그리고 그 힘의 강탈”이다. 다른 극이 초점을 맞추는 것은, 생물학적 기계장치이자 집단적 복리와 재생산의 기초인 종(種)으로서의 신체다.37) 따라서 생명정치는 생명력을 이용하고 추출하기 위해 주민들과 개인들에게 행해지는 일련의 규제적 통제들을 가리킨다. 신자유주의는 인간의 삶을 통치하는 이런 기술들의 가장 최근의 발전에 지나지 않는다, 즉 근대 인간의 정치적 실존을 끊임없이 문제삼는 종속과 주체 형성의 정치를 위해 시장 지식과 계획에 의지하는 통치성일 따름이다. 
영국의 통치성 학파는 신자유주의를 개인의 능동적 자유의 조건을 논리로 갖는 통치 기예로 보는 이론을 제안한다.38) 이들의 관점에서 볼 때 신자유주의는 일반 경제 학설이 아니라 “자유로운 인간, 시민, 주체의 자활적인 능력을” 근대 통치의 정언명령의 근거로 삼는 기술이다.39)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경험적 기획에서 어떻게 신자유주의―자유로운 정치 질서의 기초로서 경제적 인간이라는 하이에크의 처방40)―가 다양한, 현대적 상황들에서 번역되고, 기술혁신되고, 작동되는지에 대해 조사하려고 한다. 
니콜라스 로즈(Nikolas Rose)는 “자유를 통한 통치” 양식으로서 신자유주의가 영국과 다른 선진 자유민주주의에서 지배적 통치 양식이 되었다고 주장한다. 국가를 “축소시키는” 신자유주의 정책들은 사회적인 것과 시민 주체들을 개조하는 기술의 확산을 동반한다. 따라서 신자유주의적 논리는 주민들이 일상생활의 서로 다른 영역에서 ― 보건, 교육, 관료제, 직업 등 ― 자유롭고, 자기 관리적이며, 자기 경영적인 개인들이 될 것을 요구한다.41) 따라서 신자유주의적 주체들은 국가에게 요구하는 시민이 아니라 “그/녀 자신의 기업가”가 되도록 강요받는 자기 경영적인 시민 주체다.42) 예를 들어, “제 3의 길”이라는 깃발 아래에는 공동체 수준의 책임, 그리고 개인적 주체들이 스스로를 책임져야 한다는 새로운 요구들에 대한 새로운 강조가 있다.43) 신자유주의적 기술은 통치, 자기 통치, 그리고 정치적 공간들 사이의 연관을 재조직하여, 세계화된 불확실성과 위협에 기술적&#8228;윤리적으로 응답하는 조건을 최적화한다. 
정치적 합리성으로서의 신자유주의가 선진 자유민주주의의 환경에 국한되지 않는 것이 분명하지만, 북대서양의 상황 외부에서는 거의 조사되지 않았다. 실제로 “경제적 세계화”는 복수의 세계적 장소들을 가로지르는 신자유주의의 합리성이 이렇게 탈배태되고 재배태되는 것을 가리킨다. 
예외로서의 신자유주의는 탈식민주의, 권위주의, 그리고 탈사회주의처럼 다양한 정치적 환경에서 전개된다.44) 신자유주의적 계산과 선택의 확산을 부추긴 것은 신흥 국가들에게 “정치적 기업가주의” 따위를 처방한 세계은행 같은 국제 기관들이었는데, 이 나라들에서는 평생 학습과 전문지식 담론들이 시민들이 국제지식시장에서 자기 관리하고 경쟁할 것을 권장했다.45) 삶을 최적화하는 데 집중하는 기술들의 배열로서의 신자유주의는 곳곳으로 이동하며, 이 과정에서 대대적인 “신자유주의”의 단일한 국제적 조건들의 사례로 분석적으로 환원할 수 없는 다양한 배치들과 상호작용한다. 그렇다면 시민권의 윤리와 변화하는 형태를 우리가 사고하는 데 ― 예외로서의, 그리고 이에 대한 예외인 ― 신자유주의 통치 양식들의 개념적 함의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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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권의 절합과 탈구((Dis)Articulation of Citizensh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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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생활 위를 맴도는 분석의 관점은 계속되는 사회적 힘들과의 관계에서 윤리의 끊임없는 조정&#8228;재조정을 찾아낸다. 특히 시장 주도의 강요는 서로 다른 방식들로 시민권의 요소들을 재편성하면서, 한편으로 시민권의 통일된 모형을, 다른 한편으로 시민권 요구의 민족적 틀에 도전한다. 시민권의 시간적 차원이 우리가 이전에 생각했던 것보다 덜 고정적이라는 것이 점차 명확해지고 있으며, 관념들과 사람들의 흐름이 시민권 보호를 감소시키며, 요구들의 새로운 절합이 새로운 정치 공간들에서 출현한다. 
지금까지 시민권의 유력한 개념들은 민족 영토에 뿌리내린 시민권의 권리들과 민족 국가 외부의 무국적 조건 사이의 이항대립에 근거하고 있었다. 이 정치적-사법적 개념은 오직 민족 국가만이 인정된 정치적 소속을 통해 요구된 보호와 시민권의 자격을 부여할 수 있다는 실제 현실에 근거하는 것이다.46) 실제로 정치적 지위로서의 시민권은 망명자와 난민들에게 계속해서 대단히 중요한 것이 되었는데, 이들에게 망명하는 국가에서 시민권을 얻는 것은 근대적 인간으로 인정받는 가장 기본적인 조치다.47)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본과 이주자의 현대적 흐름은 한때 단일한, 영토화된 전체 속에서 얽혀 있던 시민권 요구를 풀기 위해 복잡한 방식으로 주권과 권리 담론에 상호작용해 왔다. 
많은 사람들이 썼던 것처럼 형식적 시민권만으로는, 투표를 하고 정치 생활에 참여할 수 있다거나(정치적 권리들), 혹은 법 아래서 평등한 대우를 받을 수 있다는(시민적 권리들) 것이 좀처럼 보장되지 않는다. 따라서 마샬(T. H. Marshall)은 평등한 시민들로서의 지위를 하락시키는 여성, 빈민, 소수자, 그리고 성적&#8228;계급적&#8228;인종적 차별 때문에 공격받기 쉬운 여타 사람들에 대한 사회적 보장의 필요성을 묘사하기 위해 사회적 권리라는 단어를 새로 만들어냈다.48) 이 20세기 초의 시민권 개념은 ― 상상된 정치적 동일성으로서, 평등한 권리에 대한 권리로서 ― 민족 국가가 상대적으로 안정적이고, 민족 영토에 고정된 일반시민을 통제한다는 가정에 근거하고 있다. 
최근 권리 담론은 세계화의 흐름과 분란을 통합함으로써, 민족 국가의 범위를 넘어 시민권이 공유되는 공간을 개방하는 전략을 도입했다. 이 개방은 유럽연합(EU) 내의 지방적&#8228;지역적 수준에서 다양한 시민권 요구에 대한 논쟁을 가능케 했다. 권리옹호 운동들은 권리들과 혜택들의 다른 묶음으로 시민권이 “해체”되고, 이에 따라 유럽 국가들이 다양한 비(非)유럽 이주자들과 비(非)시민들을 다르게 통합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49) 혹자는 제한된 혜택들과 시민의 권리들이 부분적 시민권의 형태, 혹은 이주 노동자들을 위한 “탈민족적” 정치 소속을 구성한다고 주장해 왔다.50) 이런 탈민족적 시민권 주장들은 형식적 시민권 없이 이주자들이 얻은 이득들을 과장했을 수 있다.51) 또한 지배적 권리 담론에도 불구하고, 부정적인 해체 과정 역시 진행 중이라고 덧붙일 수도 있을 것이다. 세계 시장에 대응하면서 (특히 독일에서) 복지 국가가 축소된 것처럼 마샬적인 사회적 권리는 파괴되었다. 유럽에서는 이주자에게 유리한, 또 노동자들의 이익에는 반하는 권리와 혜택의 해체 과정이 진행 중이다. 
나는 시민권의 탈구와 재절합을 다르게 생각한다. 시민권 요소들의 새로운 정렬이 근본적으로 기동적인 신자유주의적 통치와 자기 통치의 기술들이 낳은 역동적이고 다양한 조건들에 연계되어 있다는 것이 나의 주장이다. 족쇄가 풀린 자본주의의 기술들과 시민권의 요소들 사이의 분리와 재연결에는 시&#8228;공간적 차원이 있다. 첫째로, 이전에 시민권에 묶여 있던 구성요소들―권리들이나 자격들, 또 민족과 영토―은 서로 탈구되고 있으며, 타자들이 아니라 주체들의 특정 범주를 정의&#8228;평가&#8228;보호함에 있어 경제적 논리를 조장하는 통치 전략에 재절합되고 있다. 일부 환경에서, 신자유주의적 예외가 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계산적 실천들 그리고 우선적 시민으로서 자기 통치적 주체들이다. 동시에 주민의 다른 부분들은 신자유주의적 기준에서 제외되고 이에 따라 시민과 주체에서 배제할 수 있게 된다. 개인적 능력 혹은 시장 기술 수행의 차이는 기존의 사회적&#8228;도덕적 불평등을 강화하는 한편 민족과 외국 주민들 사이의 정치적 차별을 흐리게 한다. 
세계적 순회에서, 교육받고 자기 추진적인 개인들은, 심지어 영토화된 시민들을 희생하면서까지, 유사시민권적 자격과 혜택들을 요구한다. 국외로 이주한 인재들은 형식적 시민권 없이 움직일 수 있는 자격의 형태를 구성한다. 심하게 자기만족적이거나 혹은 신자유주의적 잠재력이 부족한 것으로 간주되는 시민들은 가치가 떨어지는 주체들로 다루어질 수도 있다. 저숙련 시민들과 이주자들은 신자유주의 메커니즘에 대한 예외가 되고, 수송 중인 배제가능한 인민들로 구성되어, 성장 지역의 내외를 왕복한다. 우리는 특정한 권리들과 혜택들이 시장성이 높은 재능 보유자들에게 분배되고, 이런 능력이나 잠재력이 부족한 것으로 판단되는 사람들에게는 부인되면서, 정치적 소속과 민족 영토에서 자격들이 분리되는 것을 볼 것이다. 신자유주의적 예외는 법률적 시민 신분에서 분리할 수 있는 분배적 정의의 도덕화된 체계와 동맹을 맺고 있다. 시민권의 요소들, 기업가적 특성, 그리고 세계적 순환 사이의 절합은 우리가 오랫동안 시민권의 통일된 공간들과 동질적 집단성이라고 생각했던 것을 쪼갠다. 신자유주의와 신자유주의에 대한 예외의 기술들, 그리고 시민권 요소들의 탈구와 재절합에 개념적 초점을 맞추면 시민권과 가치부여적인 기준에서의 변이들을 조사하는 문제 공간을 식별할 수 있게 된다. 
둘째로, 절합들은 담론적 실천들을 전위의 조건 안에서 계속되는 시민권의 협상으로서 지시하기도 한다. 개념적 시간성으로서의 절합은 시장 합리성, 정치, 그리고 윤리의 특수한 배치 안에서의 우연적인 출현으로서 요구들을 탐구할 수 있게 해 준다. 정세적 공간 내의 모순적 요소들의 번역이나 담론적 협상에 대한 강조는 요소들 사이의 예정된 반대나 적대적 입장을 슬쩍 비껴나지만, 예상치 못한 가능성들과 해법들에 대한 개념적 개방성을 유지한다. 호미 바바(Homi Bhabha) 역시 권력의 역류에서 새롭게 전유되고 재해석되면서 문화적 의미의 불안정성을 유지하는 “언표행위의 모순적이고 모호한 공간”에 대해 언급한다.52) 맥락 특수적인 질문들은 어떻게 대립하는 해석들과 요구들이 신자유주의적 논리들과 주도권들을 방해하고, 늦추며, 빗나가게 하고, 협상할 수 있게 하는지를 포착하게 해 준다. 이 변동하는 공간의 전달, 번역, 그리고 협상의 시간성은 정치적 정교화, 우연성, 모호성으로 가득 차 있다. 
이질적 사건들과 힘들의 교차지점에서 있는 언표행위의 시간성은 세계시민적 시민권의 전면적인 요구들에 신중해야 하는 이유가 된다. 예를 들어, 위르겐 하버마스는 탈규제된 시장의 맹공격과 그것이 공적 생활에서 “민주주의의 결핍”을 만드는 것을 탄식했다.53) 그는 사회 보장, 공적 사회 서비스, 성적&#8228;계급적 규범, 사형제도 폐지 등과 같은 소중한 이상들을 방어할 수 있는 유럽 전체 수준의 공적 영역과 헌법의 창설을 요청했다. 유럽 문명과 공유된 정치적 민주주의 문화에 대한 이런 요구들은 증가하는 세계시민주의 사고와 감정들, 세계시민주의 시민권 담론의 출현을 반영한다. 유럽의 논평자들은 국제연합(UN)과 인권기구들과 같은 다자적 기관들의 활동에서 새로운 세계적 공적 영역을 지목해 왔다.54) 그러나 더 큰 포괄성과 연대의 감정은 세계시민주의 제도들의 실질적 창설과 융합할 수 없다. 실제로 일부 관찰자들은 칸트의 세계시민주의에서 영감을 얻은 다원화된 세계 공동체들은 여전히 현실보다 훨씬 이상적이라고 주장한다.55) UN은 자신의 많은 인권적 수단들을 집행할 힘이 부족하며, 인도주의적 개입들을 주창하는 ― 혹은 군사적 침략을 개시하는 ― 선도국들의 영향력에 매우 크게 좌우된다. 실제로 미국의 이라크 선제공격은 세계시민적 권리라는 이상에 심각한 타격을 입혔으며, 어떻게 UN이 모든 인류를 위해 이야기한다는 잃어버린 권한을 회복할 것인지는 불투명하다. 게다가 세계시민주의의 가치들―개인주의, 보편성, 그리고 일반성―은 역사적으로 비-유럽 사회들의 정복과 변형에 연관되기도 했다.56) 세계시민주의의 담론들은 제국주의의 문명화 사명의 결정적 일부였고, 따라서 이전에 식민지 경험을 겪은 나라의 인민들은 이를 회의적으로 대했다.57) 따라서 우리의 시민권 분석에서 중요한 것은, 예정된 불가피성의 목적인에 의지하지 않고 시&#8228;공간적 상호관계의 장 안에 있는 언표행위의 상황적 본성을 특정하는 것이다. 지정학, 시장 논리, 예외들, 그리고 윤리 담론의 상황적 얽힘은 우연성, 양가성, 불확실한 결과들에 대해 개념적으로 열려 있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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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권과 예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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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몇 년 동안 주권의 공간성은 근대 권력의 본질에 대한 질문에서 핵심 쟁점이 되었다. 한 입장은 “신 국제 관계” 학파다. 존 러기(John Ruggie)는 세계화가 국가 권력을 약화시킨다는 주장에도 불구하고, 주권이 “영토적으로 정의되고, 고정되며, 적법한 지배의 상호 배제적 비지(飛地)”의 속성이라고 단언한다.58) 이 단일한 공간성과 대조적으로, 포스트식민주의적 관점은 도시-농촌 분할에 기반을 둔 “이원적 국가”의 식민지 유산이 아프리카의 주권 지배를 계속 구조화한다고 주장한다.59) 아프리카의 주권에 대해 더 미묘한 관점은 수도에 고립된 국가 장치들, 요새-창고, 법인 비지, NGO가 관리하는 공간들에 대한 묘사를 포함시킨다.60) 나의 관심은 이것들과 중복되지만, 나의 개념화는 이전의 식민지 분할 통치, 군국주의적 축적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약탈자들, 혹은 “세계 자본”과 NGO들의 침략 안에서 공간적 동역학을 찾지 않는다는 점에서 다르다. 
그보다 내가 초점을 맞추는 것은 한편으로 신자유주의적 예외의 선택적 배치이며, 다른 한편으로 주권의 공간화하는 실천에서 도구화되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예외다. 신자유주의와 그 예외들에 의해 절합되는 이 공간화의 동역학은 동아시아의 환경에서는 다른데, 여기서는 아프리카의 약하고 분산된 정치 구성체와 비교할 때, 국가가 더 강건하고 집중화하는 경향이 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국가 주권에 대한 슈미트의 관점은 정치적 규범성에 대한 예외에서 야기되는 위기 및 도전에 대응하는 전략적&#8228;상황적 권력 행사에 기반을 둔다. 그는 “모든 법은 ‘상황의 법’”이라고 주장한다.61) 예외의 우발적인 이용―신자유주의적 기술이나 신자유주의의 배제처럼―은 몇몇 아시아적 맥락에서 능숙하게 적용된다. 
예를 들어 중국이 세계 무대에 재등장할 때의 특징은 “경제특별구역”(SEZS, 경제특구)과 “행정특별구역”(SARS, 행정특구)의 창설이었다. 이 새로운 공간들은 노동시장의 특별한 공간들, 투자 기회, 그리고 상대적인 행정적 자유를 구획하는 메커니즘과 절차에서 제도화된 계산적 선택의 기술에 의해 출현했다. 이 공간들을 구역으로 약호화하는 계산적 메커니즘은 특별과세와 투자 계획, 도시 예산, 기간산업 개발, 그리고 어느 정도의 자율적 통치를 포함한다. 이 경우 예외의 논리는 집중화된 사회주의 생산의 위기에 대응하고, 국가의 나머지 지역들과 근본적으로 맞지 않는 공간과 조건들을 만들어 낸 시장 개혁을 시작하기 위한 것이다.(4장) 
아시아의 환경에서 예외의 선택지는 국가가 그들의 영토를 분할해서 세계 시장에서 더 잘 종사하고 경쟁할 수 있도록 한다. 신자유주의적 계산들은 인간 영토권의 실천, 혹은 지정학 공간의 재기입을 통한 주민의 통제에 적용된다.62) 중국의 사례가 예증하는 것처럼, 구역화 기술은 경제적 자유와 기업가 활동의 실험을 위한 대안적 영토성을 부호화한다. 예외의 논리는 세계적 순회의 특정하고 다양하며 우연적인 관계의 형성을 위해 인간 영토권을 분할한다. 이에 따른 단계적 혹은 다채로운 주권의 유형은 국가가 세계적 도전에 맞서는 동시에 질서와 성장을 확보하는 양자를 할 수 있도록 보장한다. 예외의 논리를 통해 산출된 이런 전략들이 자유 시장 이데올로기, 근대 정치적 자유주의, 그리고 참여적 시민 주체들의 “계몽”에서 일괄적으로 벗어나 있다는 것에 주목하는 점 역시 중요하다. 국가가 형식적 주권을 계속 유지하는 동안, 기업들과 다자적 기관들은 특별 구역에서 주민들의 생활&#8228;노동&#8228;이주 조건에 대해 사실상의 통제를 빈번하게 행사한다. 주권 국가에서 융합되었던 행정적 통제, 시민권, 영토성이 따로 떨어져 작동하는 것에서 우리는 사실상 중복하는 주권들을 보게 될 것이다. 따라서 신자유주의적 예외는 주권과 시민권 사이의 솔기를 억지로 열고, 이 과정에서 자신들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국가 너머를 보아야만 하는 저숙련 시민들과 이주자들의 연속적 수준의 불안전을 낳는다.63) 
따라서 예외는, 서로 구별되는 경제 활동이 복수의 단계를 지닌 구성체 안에서 뒤섞인다는 정도의 관점에서 제시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는 혁신적 공간 행정을 제도화할 수 있게 해 준다. 어떤 사람들은 경제적 세계화의 공간을 조사하는 적절한 규모가 지방, 도시, 주, 국가, “지역 경제”와 같은 기존의 행정 단위라고 본다.64) 다른 관점은 국제적 힘들의 효과가 개인, 도시, 민족, 그리고 지역적 규모에 따라 동요한다고 생각한다.65) 그러나 규모의 언어는, 그 자신을 너무 곧이곧대로 믿을 위험이 있는 개념적 구조물을 투영한다.66) 이 규모의 이미지는 우리가 공간을 “끊임없이 변하는 것으로” 보고, “물질성을 끊임없이 출현하는 과정으로 재묘사”해야 할 때, 시장적 계산은 정치적 전망의 경제학적 구조화에 관심을 갖는다는 점을 시사한다.67) 예외 공간의 논리는 공간들이 항상 이전의 정치적 경계들에 의해 정의되는 것이 아니라 자원과 흐름의 신중한 동원이 제공하는 기회들과 관련지어 인간 영토권을 분리하는 신자유주의 계획들에 의해 출현한다. 
예를 들어, 주권의 예외는 “외부” 공간들과 주민들 모두에 대해서 더욱 유연해졌다. 아시아의 어떤 맥락에서는 유동적 “생태계”라는 용어로 외부 환경의 탄력적 가능성을 기술정치적으로 재개념화한다. 민족 국가는 고정된 영토권이라는 식의 개념에서 벗어나서, 기업가적 통치성은 광범위한 자원들에서 전문가, 지식, 그리고 기술들을 입수해 온다. 최적화의 논리와 상호작용의 밀도에서 오는 공생적 상호의존 및 상승작용이라는 생태적 원리 사이에는 흥미로운 수렴점이 있다. 기술관료들이 아시아의 도시들과 도시의 외부 환경을 재설계함에 따라, 민족적 영역은 특화된 마디들로 분할되고, 세계 자본주의의 “활발한 생태계”에 배태된 집(oikos)으로 확장된다. 예를 들어, 싱가포르의 기술관료들은 생명기술 연구의 미개척분야를 활기 있게 개발하기 위해 지식 자본, 연구 기관, 그리고 과학자들을 모으고 있다. 생명 형태의 임계질량 사이에서 벌어지는 상승 작용, 공생, 적소 형태, 양성 등 생태적 원리는 생명정치적 상호관계로 탈구, 재절합되는 초민족적 공간에 모국을 재입지하려는 정치적 전략을 고취시킨다. 
우연적 공간화는 예외의 논리가 초민족적 생산 네트워크의 규율적&#8228;규제적 체제를 혁신적으로 결합할 수 있게 해 준다는 것을 드러낸다. 한편으로 경제적 세계화의 지도제작법은 국제적&#8228;민족적&#8228;거대도시적&#8228;지방적 수준의 위계적 도식이라거나, 규제적 서구 사회 대 규율적 아시아 사회로 분할되지 않는다. 다른 한편, 하트와 네그리는 질 들뢰즈(Gille Deleuze)를 통해서 우리가 규율 사회에서 통제 사회로 이행하고 있다는 획기적인 주장을 했는데, 후자에서 통제의 “메커니즘”은 특정한 규율 기술의 작동을 통하기보다는, 더 “민주적”이 되고 “시민들의 두뇌와 신체를 통해 분배된다.” 통제 체계는 “부유적”(浮游的)이고 본성상 조절적이며, “탈약호화되고 탈영토화된 흐름들의 고른 공간”을 산출한다. 노동 체제가 세계적으로 단일하다는 가정에 힘입어 하트와 네그리는, 생산력의 “탈지역화”가 노동 착취를 탈맥락화하고 “비배치가능하게”(non-placeable) 만든다고 주장한다.68) 설사 이 정식화를 성급하게 받아들인다 해도, 유연한 초민족적 네트워크를 비규율적 노동과 연관시키는 것은 잘못인데, 왜냐하면 민족지적 연구가 보여 주듯 초민족적 생산체계는 노동 통제의 감금적 양식을 계속해서 활용하기 때문이다. 
세계 자본주의의 예외의 논리는, 통치성의 체계와 노동 감금 체제의 조정에 의해 형성되는 홈이 파인 공간들―혹은 “씨줄들”―을 새겨 넣는 초민족적 네트워크 안에서 노동과 관리 체제가 결합할 수 있게 해 준다. 게다가 연구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노동 전술과 반란들은 몹시 맥락 특정적인 경향이 있으며, 이들은 세계적 시민권이라는 약속을 가지고는, 세계적 대중운동 혹은 다중들과 쉽게 합체되지 않는다. 요컨대 기업 경영의 실행이 매우 기동적일지라도, 다양한 구역들에서 이를 전달&#8228;번역&#8228;실행하는 것은 항상 상황적이며, 정치적 가능성 면에서 다양하고 우연적인 제도화된 노동 실천들의 배열에 의존한다.(5장) 
예외로서의 신자유주의와 신자유주의에 대한 예외 사이의 동요는 또한 윤리적 지리학과 자칭 NGO가 행정을 담당하는 공간을 출현시킨다. 예를 들어, 포함과 배제의 정치가 교차하면서 국외로 이주한 인재들이 전형적인 이상적 시민으로 통합되는 반면, 노동력 착출을 위해 들여온 저숙련 이주자들은 정치적으로 배제되는 상황들이 창출된다. 이런 비시민들이 이주 노동자나 외부인자로서의 자신들의 권리를 보호해 달라고 흔히 호소하는 대상은 국가가 아니라, 비정부 기관들이다. 여기서 이주 노동자, 밀입국한 개인들, 그리고 망명자들을 위한 요구를 NGO가 절합하는 것은, 신자유주의에 대한 예외의 공간들을 그려낼 수 있는 규범적 메커니즘에 점점 더 많이 의존하게 된다. 이 공간들은 이주 노동의 순환과 이들의 착취의 분배에 의해 암시된다. 정치적으로 배제된 자들의 생명지도학을 그려냄으로써 NGO들은 이주 노동자와 밀입국한 개인들에 대한 도덕적 책임이라는 초민족적 의미를 놓고 다양한 정부들 및 문화적 권위와 협상한다. 요컨대 출현하는 요구들의 지리학은 시장도 국가도 아닌, 이 양자와 절합하는 새로운 정치 체계들에 의해 그려진다.(9장) 따라서 시민권과 윤리의 문제는 공간들, 노동, 그리고 삶을 관리하는 다양한 제도의 교차 속에서 뒤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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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벗은 삶: 윤리의 예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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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적 세계화의 기술들은 다소간 가치 있는 주체들, 실천들, 생활양식, 그리고 좋은 것의 시각에 대한 도덕적 계산을 지니게 된다. 여기서 사용되는 윤리는 특정한 존재 양식을 얻기 위한 자기 돌봄의 규범적 기술, 혹은 자기의 실천이라는 고대 그리스-로마의 의미다.69) 따라서 윤리 체제는 특정한 윤리적 목표에 일치하는 자신을 구성하기 위해 주어진 가치들을 따르는 생활양식으로 해석할 수 있다. 종교들은 ― 내 생각에 페미니즘, 인도주의 혹은 다른 덕의 체계들도 마찬가지다. ― 특정한 형태의 자기 행실과 좋은 생활의 전망을 촉진하는 윤리적 체제들이다. 시민권의 윤리적 개념들은 특정한 민족의 핵심 가치들을 표현하는 주체들의 존재 양식, 민족 정신의 표현을 포함한다. 민족 국가의 형성에서, 민족 문화, 인문학, 그리고 종교들은 “상상의 공동체”, 곧 공공선의 공유된 전망을 형성하는 데 상호작용해왔다.70) 
시민권에 관한 더 넓은 개념들은 공유된 인간성이라는 계몽주의의 이상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는 난민과 무국적의 사람들로 가득 찬 유럽의 한 가운데서 우리의 “인간의 조건”이라는 질문을 제기했다. 우리의 인간의 조건이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은, 우리가 종사하는 세 종류의 근본적 인간 활동을 통해서라고 그녀는 주장했다. 생물학적 생명 형태, 노동하는 존재, 정치적 행위자가 바로 그것이다.71) 이 통일된 인간의 조건 개념은 무국적자들이 시민권에 대한 권리를 국제적으로 요구하는 근거가 되었다. 다시 한 번 이주자들이 넘쳐나는 유럽에서 아감벤은 아렌트의 인간의 조건이라는 관념을 개작한다. 민족적 시민권으로부터 배제되었기 때문에, 미등록 노동자, 망명자, 그리고 전쟁 피난민들은 “헐벗은 삶”이라는 비인간적 조건으로 떨어진다고 그는 주장한다. 따라서 주권 국가는 시민들에게 보호를 제공함으로써 근대적 인간성을 생산함과 동시에, 비시민들에게 이를 부인함으로써 헐벗은 삶을 생산한다. 오직 (정치체로서) 인민/국민(People)과 (배제된 신체들로서) 인민/민중(people) 사이의 분할을 삭제하는 것만이 시민권을 거부당해 온 세계적으로 배제된 이들에게 인간성을 회복시켜 줄 수 있다고 그는 단언한다.72) 따라서 민족 국가가 부여하는 단순한 권리로서 시민권을 논의하는 것으로부터, 비시민들과의 보다 넓은 연대로 전환하게 되는데, 자신들이 인류에 포함되어야 한다고 그들의 요구는 세계화된 세계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우리 자신의 윤리적 질문의 일부분이다. 
따라서 아감벤은 인간성의 보편적 규범을 생활 조건에 관한 유일한 분석적이고 윤리적인 척도로서 제시한다. 또한 예외의 논리는 정치적으로 배제된 사람들에 맞서서만 발동된다는 지각도 있다. 주민들이 법적이고 단순하게 둘로 나뉜다는 것에만 배타적으로 초점을 맞추게 되면 두 가지 개념적 문제가 발생한다. 먼저 이 축은 대안적인 인간성의 윤리 규범을 제기하는 다른 보편화적 도덕 담론―특히 위대한 종교들―의 유효성을 평가절하한다.73) 예를 들어 이슬람교에는 초민족적 덕목에 대한 고유한 시각이 있으며, 여기에는 인권의 견지에서만 배타적으로 표현되지 않는 윤리들에 관한 고유한 내적 투쟁들이 동반된다. 1장에서 나는 이슬람 공동체―움마(umma)―가 어떻게 윤리적 주체 형성과 영적 소속의 절합을 보편화하는 도식인지를 논의할 것이다. 세계화된 초고속 성장의 장소들 역시 인권 담론과 상호작용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상황적인 윤리 체제들을 절합한다. 권리가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으로 인류를 보편적으로 분할하는 아감벤식 도식을 엄격히 고집하게 되면, 작용하고 있는 다수의 윤리 체계의 풍부한 가능성들과 복잡함을 놓칠 수 있다. 
인권 이외에도, 좋은 삶에 대한 다른 비전들 역시 주어진 생활 영역 내에서 덕의 수행에 대한 윤리적 요구와 규범적 지침을 제공한다. 생명정치와 기술적 이성의 상호작용은 현대 생활의 윤리적 문제들에 형태를 부여하며, 인간의 삶이라는 문제에 대한 다양한 해법들이 이 변화하는 모체 내부에 제기된다. 스티븐 콜리어(Stephen Collier)와 앤드류 레이코프(Andrew Lakoff)는 “생활 체제”라는 용어를 만들어냈고, 이를 “문제적 상황에서 가능한 행동 지침을 제공하기 위해 발동되고 재작동되는 도덕적 이성의 상황적 형태”라고 정의한다.74) 만약 현대 생활 체제들이 신자유주의적 논리와 점점 더 많이 상호작용하게 된다면, 윤리적 주체 형성은 보편화된 인간 관념에 연동되기보다는, 요소들의 특정한 구도에서 만들어질 것이다. 
따라서 영속적인 예외 상태의 헐벗은 삶이라는 아감벤의 근본적 준거점은 영토화된 시민권이 없는 사람들을 위한 요구의 복잡한 협상 가능성을 무시한다. 시민권 외부에 있는, 모든 비시민들은 “내부와 외부, 예외와 지배, 합법과 불법이 구별되지 않는 구역으로 떨어지는데, 여기서 주관적 권리와 사법적 보호의 개념들 자체는 더 이상 아무런 의미도 없으며 … 권력은 아무런 매개도 없이 순수한 삶에 지나지 않는 것을 대면하게 된다.”75)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러나 이 엄격한 이항대립에서 아감벤은 도덕적 보호와 적법성의 요구를 지지할 수 있는 복합적 구별이나 비-권리적 매개의 가능성을 제외해 버리는 것 같다. 포로수용소를 근대 주권의 규범으로 표현하는 것은 정치적으로나 민족지적으로 부정확할 뿐더러 위험하기까지 하다. 변화하는 인간성의 법률적&#8228;도덕적 영역은 무한히 더 복잡해진 것이다. 
경제적 세계화는 어마어마한 숫자의 세계적으로 배제된 이들과 연관되어 있다. 일부 국가의 법률적 시민권에도 불구하고, 최소한의 생존의 끈만을 붙잡고 있는 수백 만 명의 이주 노동자, 난민, 밀입국자들은 훨씬 더 위태롭고 포착하기 어렵다. 법률적 시민권이 인간 보호의 다만 한 가지 형태일 뿐이라는 점은 명확하다. 주변화된 사람들이 권리의 환경에서 배제되는 이유는 그들이 자주 숨겨져 있거나 “실패한 국가들”에 살거나, 실향유민인 까닭에 일단 이동하면 사실상 권리들을 빼앗기기 때문이다. 이런 인도주의적 위기 상황에서, 법률적 시민권은 단지 인간성을 (재)정리하고 (재)평가하는 다수의 도식들 중 하나에 불과하다. 
점차 다양한 다자적 체계들 ― 다국적 기업들, 종교 조직들, UN 기관들, 그리고 다른 NGO들 ― 이 학대받고, 헐벗으며, 그리고 금이 간 신체들의 특정하고 상황적이며 실천적인 문제들을 다루기 위해 개입한다. 배제된 인간성의 비국가적 행정은, 불연속적이고, 어긋나 있으며, 우연적인 특성을 띠기는 하지만, 새로운 초민족적 현상이다. 콜리어와 레이코프는 이런 상황들을 “헐벗은 삶의 대항 정치”로 묘사한다. ― “살아 있는 존재로서의 요구라는 견지에서” 주장할 수 있도록 헐벗은 삶을 다양한 방식으로 모으는 상황적인 도덕적 추론의 형태로서 말이다.76) 실제로 헐벗은 삶은 자체로 고유한 도덕적 정당성이 있으며, 윤리와 노동에 대한 헐벗은 삶의 관계는 항상 예외로서의 신자유주의에 열려 있다. 인간의 비참에 대한 해법은 항상 까다롭고, 불만족스러우며, 힘겹지만, 정치적으로 배제된 사람들의 문제는 우리의 세계적 양심을 짓누르며, 현실적으로 국가와 도덕 경제, 시장 제도들의 논리와 결합되어 왔다.77) 
예를 들어, 아프리카 지역에서 가난한 시민들은 질병과 기아, 전쟁 때문에 더욱 정치적으로 배제되었다. 그러나 건강은 국가가 아니라, 제약 회사들에게 대해 요구를 제기하는 “치료받을 수 있는 시민권” 담론과 절합되면서, 인간 지위의 필요조건이 되었다.78) 생물학적 생존에 기초를 둔 집단적 요구의 또 다른 사례가 동남아시아에서 나타나고 있는데, 여기서 노동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수많은 여성 이주자 주민들은 해외에서 심한 학대에 노출되어 있다. 이런 경우 외부자의 지위와 인종에 기초를 둔 생물학적 타자성은 국가가 아니라 인력을 도입한 사회의 도덕 경제를 대상으로 하는 생물학적 복지의 요구들에 의해 역전될 수도 있다.(9장) 
요컨대 헐벗은 삶은 구별불가능한 구역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지방 공동체, NGO들, 그리고 심지어 기업들의 개입을 통해, 도덕적으로 바람직한 인간성이라는 다양한 범주들로 전환되고 재조직된다. 이런 기술윤리적 상황들은 힘을 가진 자들과의 잠재적 제휴, 우선적인 이익, 특수한 요구 등과의 연관 속에서 인간성의 등급을 매기는 인도주의-기업 복합체의 권력이 증가했음을 가리키는 지표다. (치료받을 수 있는 시민권, 생물학적 복지, 그리고 도덕 경제 등) 도덕적 요구의 절합은, 아마 인권에 호소하는 것보다 더 빈번하게, 위압당한 인간적 문제에 대한 임시변통적이거나 일시적인 해결책을 틀지울 것이다. 상황적인 NGO의 개입들은 그들이 현장에서 마주치는 정치적&#8228;윤리적 힘들의 연결망에 의해 자주 결정된다. 요컨대 생존의 대항정치들은 생명정치, 노동시장, 그리고 덕의 체계의 상호작용을 통해 현실화된다. 이런 윤리적 문제화는 인권이나 시민권을 우회하여, 우연적이고 모호한 인간의 윤리적 지평을 반영하는 해법들에 의지하게 될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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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예외로서의 신자유주의 및 신자유주의에 대한 예외들과의 관련 속에서 변모하는 시민권의 모든 측면들을 다룰 수는 없다. 아시아 태평양은 극적인 변화를 겪고 있으며, 빠르게 변화하는 환경들은 서로 융합되었던 것들 ― 동일성, 자격, 영토권, 그리고 민족성 ― 이 어떻게 신자유주의적 기술들과 주권의 예외들에 의해 혁신적인 관계와 공간들로 갈라지고 재편성되는지를 탐색할 수 있는 장소들을 제공한다. 신자유주의 형태들, 주권의 실험, 그리고 시민권 체제들의 새로운 절합은 현실화되는 것들과 인간이 되는 것의 정치적&#8228;공간적 가능성들을 발본적으로 변화시켰다. 특정한 통치와 자기 통치 기술들은 책략, 협상, 그리고 윤리적 의심의 다양한 의미와 공간들을 산출한다. 명확해 보이는 것은 예외로서의 신자유주의가, 신흥 경제에 대한 특공대식 습격이건, 통치 이성에 대한 비밀스러운 잠식이건, 자기 혁신과 자기 경영의 기술이건 간에, 통치와 시민권에 대한 전통적 사고에 도전하고 있다는 점이다. 권리들, 자격들, 그리고 요구들은 이제 NGO의 개입과 지식 흐름, 통치의 시장 주도적 양식에 의해 배열되는 역류와 힘의 장에 쉽게 순응하고 종속된다. 예외의 논리에 의해 생겨나는 무수한 탈구와 재절합은 우리가 통일된 시민권 개념과 연관시키곤 했던 요소들을, 점차 다양해지고, 파편적이며, 우연적이고, 모호하지만, 그러나 윤리정치적 비판에 영속적으로 종속된 인간성에 놓인 가치들로 변형시킨다. 


1)&nbsp;Ong, Flexible Citizenship, chap. 7<BR>
2)&nbsp;Safire, "Inside a Republican Brain."<BR>
3)&nbsp;"Bush Pledge Broad Push."<BR>
4)&nbsp;자산을 소유한 부르주아에게 독점적으로 주어진 시민권의 초기 개념에 대한 계급에 기초한 비판은 Marx, "Jewish Question," 33~34를 보라.<BR>
5)&nbsp;Bush, "Inaugural Address."<BR>
6)&nbsp;어빙 크리스톨 같은 몇몇 보수주의자들은 극단적인 시장 합리성이 미국 민주주의의 도덕을 파괴한다고 주장한다. 신자유주의에 대한 신보주의의 이런 주장이 페미니스트 웬디 브라운에게 어떻게 반향을 가져왔는지에 대한 논의는 Cruikshank, "Neopolitics."를 보라.<BR>
7)&nbsp;Rose and Miller, "Political Power beyond the State."<BR>
8)&nbsp;Collier and Ong, "Global Assemblages, Anthropological Problems."<BR>
9)&nbsp;Collier, "Spatial Forms and Social Norms."<BR>
10)&nbsp;Foucault, "Governmentality."<BR>
11)&nbsp;Foucault, "Ethics of the Concern for Self," 300.<BR>
12)&nbsp;Barry, Osborne, and Rose, Foucault and Political Reason.<BR>
13)&nbsp;Schmitt, Political Theology, 13.<BR>
14)&nbsp;Agamben, Homo Sacer, 26~28.<BR>
15)&nbsp;Collier, "Spatial Forms and Social Norms."<BR>
16)&nbsp;Arendt, Human Condition.<BR>
17)&nbsp;예를 들어 Scott, Setting Like a State; and Ferguson, Anti-Politics Machine.를 보라.<BR>
18)&nbsp;Sassen, Global City, and "Local Cities," 2.<BR>
19)&nbsp;이 생태학의 정식화는 “국제 도시-지역”모델과는 개념적으로 다르다. A.J. Scott, "Globalization and the Rise of City-Regions," Research Bulletin 26, July 19, 2000.을 보라. www.lboro.ac.uk/gawc/.<BR>
20)&nbsp;Insiti and Levien, "Strategy as Ecology," 69.<BR>
21)&nbsp;Hardt and Negri, Empire.<BR>
22)&nbsp;Agamben, Homo Sacer, 170.<BR>
23)&nbsp;Polanyi, Great Transformation.<BR>
24)&nbsp;Nishiyama and Leube, Essence of Hayek.<BR>
25)&nbsp;Friedman, Capitalism and Freedom.<BR>
26)&nbsp;Becker, Human Capital.<BR>
27)&nbsp;신자유주의 정책들에 대한 위의 요약은 Peters, "Neoliberalism."에 의거한 것이다.<BR>
28)&nbsp;Pabst, "Immanence, Region, and Neo-liberalism."<BR>
29)&nbsp;1996년에 민주당 대통령 빌 클린턴은 “Personal Responsibility and Work Opportunity Reconciliation Act."를 승인했다. 이는 복지 수급자들이 “노동복지” 프로그램에 참가할 것을 요구함으로써 “우리가 알고 있는 복지”를 끝냈다. <BR>
30)&nbsp;Peters, "Neoliberalism."<BR>
31)&nbsp;Hall, Hard Road to Renewal.<BR>
32)&nbsp;이 관점은 Gill, "Globalization, Civilization, Neoliberalism."에서 잘 제시되어 있다.<BR>
33)&nbsp;Comaroff and Comaroff, "Millennial Capitalism."<BR>
34)&nbsp;Harvey, "Neoliberalism," Ⅱ; 강조는 인용자.<BR>
35)&nbsp;Geertz, Interpretation of Culture, 24.<BR>
36)&nbsp;Paul Rainbow (Anthropos Today, 16~17)는 “문제와 그 해결의 장소는 문제적 상황이다.”라고 쓴다.<BR>
37)&nbsp;Foucault, Introduction, 143, 139.<BR>
38)&nbsp;Barry, Osborne, and Rose, Foucault and Political Reason; and Rose, Powers of Freedom.을 보라.<BR>
39)&nbsp;Barry, Osborne, and Rose, introduction to Foucault and Political Reason, 64.<BR>
40)&nbsp;Von Hayek, Political Order.<BR>
41)&nbsp;Rose, Powers of Freedom, 27~28.<BR>
42)&nbsp;Gordon, "Governmental Rationality," 43~44.<BR>
43)&nbsp;Rose, "Governing 'Advanced' Liberal Democracies," 56.<BR>
44)&nbsp;신자유주의 계획들이 리시아에서 어떻게 탈사회주의적 관리 시행을 절합하는지에 대한 분석으로는 Collier, "Spatial Forms and Social Norms."블 보라.<BR>
45)&nbsp;World Bank, World Development Report.를 보라.<BR>
46)&nbsp;Arendt, Human Condition.<BR>
47)&nbsp;예를 들어 Bhabha and Coll, Asylum Law.를 보라.<BR>
48)&nbsp;Marshall, Class, Citizenship, and Social Class.<BR>
49)&nbsp;예를 들어 Benhab, Claims of Culture.를 보라.<BR>
50)&nbsp;Soysal, Limits of Citizenship.<BR>
51)&nbsp;Castles and Davidson, Citizenship and Migrant, 18~19.<BR>
52)&nbsp;Bhabha, Location of Citizenship, 37.<BR>
53)&nbsp;Habermas, "Why Europe Needs a Constitution"; Delanty, Citizenship in a Global Age.<BR>
54)&nbsp;이것은 Held 외, Global Transformation에서 제시된 세계시민주의 질서 출현의 증거다.<BR>
55)&nbsp;예를 들어, Delanty, Citizenship in a Global Age.를 보라.<BR>
56)&nbsp;세계시민주의의 한계와 위험에 대한 논의로는 Bowden, "Perils of Global Citizenship."을 보라.<BR>
57)&nbsp;Ong, introduction to Flexible Citizenship.<BR>
58)&nbsp;Ruggie, Constructing the World Polity, 180.<BR>
59)&nbsp;Mamdani, Citizen and Subject, 16~18.<BR>
60)&nbsp;Roitman, "Garrison-Entrepot"; Ferguson, "Seeking Like an Oil Company."<BR>
61)&nbsp;Schmitt, Political Theology, 13.<BR>
62)&nbsp;Sack, Human Territoriality.<BR>
63)&nbsp;Linklater, "Idea of Citizenship."을 보라.<BR>
64)&nbsp;몇몇 이론가들은 세계화의 분석 공간이 지역이라고 주장한다. Ohmae, End of Nation State.를 보라.<BR>
65)&nbsp;Kelly and Olds, "Question in a Crisis“<BR>
66)&nbsp;개념적 경고의 필요성은 Brenner, "Limits to Scale?"에서 볼 수 있다.<BR>
67)&nbsp;Harrison, Pile, and Thrift, Patterned Ground, 36, 40.<BR>
68)&nbsp;Hardt and Negri, Empire, 23, 328~29, 332, 210.<BR>
69)&nbsp;Foucault, "Ethics of the Concern for Self," 282.를 보라.<BR>
70)&nbsp;Anderson, Imagined Communities.를 보라.<BR>
71)&nbsp;Arendt, Human condition, 7~9<BR>
72)&nbsp;Agamben, Homo Sacer, 177, 180.<BR>
73)&nbsp;Rainbow, "Midst Anthropology's Problems," 47~48을 보라.<BR>
74)&nbsp;Collier and Lakoff, "Regime of Living," 23.<BR>
75)&nbsp;Agamben, Homo Sacer, 170~171.<BR>
76)&nbsp;Collier and Lakoff, "Regime of Living," 29.<BR>
77)&nbsp;Cohen, "Operability, Bioavailability, Exception."<BR>
78)&nbsp;Nguyen Vinh-kim, "Antiretroviral Globalism."<BR>]]></description></item><item><author>바라</author><category>찌라시의 문서 창고</category><title>오래된 이론과 새로운 자본주의-제라르 뒤메닐, 도미니크 레비</title><link>http://blog.aladin.co.kr/vara/1105017</link><pubDate>Wed, 25 Apr 2007 11:0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vara/1105017</guid><description><![CDATA[



오래된 이론과 새로운 자본주의&nbsp;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의 현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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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라르 뒤메닐, 도미니크 레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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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윤종희·박상현 (과천연구실)<BR><BR>서론<BR><BR>그렇다, 자본주의는 끊임없이 변형된다. 장기적인 대위기에 빠지고 나서도 그것에서 벗어날 수 있는 자본주의의 능력은 무한한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파동은 자본주의의 구조 및 동역학의 어떤 측면들을 혁신함으로써 발생한다. 자본주의의 연속성과 단절, 이 두 측면 중에서 어떤 것이 더 놀라운 것인가? 오늘의 자본주의는 자본주의가 존재한 이래 그것을 규정해온 기본적인 성격들을 이전의 어떤 국면보다도 훨씬 더 분명하게 보여준다. 즉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 소득과 자산의 집중, 민족적·국제적 착취, 소수자의 특권을 영속화하는 방향으로 전개되는 동역학 등과 같은 성격들 말이다. 그러나 또 다른 관찰은 대규모의 변화를 강조한다. 즉 새로운 생산기술과 금융제도, 소유형태 및 관리양식의 변모, 선진 자본주의 나라들에서 노동자계급의 쇠퇴, 새로운 중간계층의 형성과 오래된 계급간 경계의 해체 등이 발생한다. 우리가 이미 자본주의 너머에 도달한 것은 아닌가?<BR>자본주의의 연속성과 변화의 역설적인 공존을 지양하고 이러한 진화의 핵심에 도달하기 위해서 우리는 어떤 분석 도구들을 활용할 수 있는가? 여기서는 19세기 중반에 마르크스―자본주의에 대한 [과학적] 이론가로서 마르크스―가 규정한 도구들이 낡기는커녕 아직 그 모든 잠재력을 소진하지도 발현하지도 않았다는 테제를 지지할 것이다. 그렇지만 이 글의 목적은 회고적인 방식으로 [마르크스에 대한] 경탄을 불러일으키려는 것이 아니라 [그의] 분석틀의 혁신에 기여하려는 것이다. <BR>오래된 것에 근거하여 새로운 것을 사고하려는 온고지신을 위해서는 두 가지 규칙이 요구된다. 첫째, 역사적 관점에서 최근의 사건들을 이해하라. 둘째, 일석이조라는 말처럼 하나의 동일한 과정 속에서 도구의 활용과 완성을 통합하라. 마르크스가 우리에게 물려준 분석적 개념과 메커니즘이 오늘의 세계를 해명할 열쇠를 제공하기에 가장 적합하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또한 그것들의 공백과 불완전성―그리고 보충과 재구성의 필요성―을 인정할 줄도 알아야 한다.<BR>이러한 프로그램은 1894년에 &#985172;자본&#985173;의 마지막 권이 출판된 이래 아주 부분적으로만 수행되었을 뿐이다.1) 여기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다. 선진 자본주의 나라들에서 마르크스주의적 분석은 [신고전파 경제학이나 케인즈파 경제학에 대해서] 항상 종속적인 위치에 있어 왔고 또 오늘도 전에 없이 더욱 그렇기 때문에 그것의 발전 수단이 박탈되었다. 반면 마르크스주의적 분석이 지배적인 곳[역사적으로 존재했던 사회주의 나라들]에서는 그것이 도구화되어 정당이 혁명과정을 지도하거나 권력을 장악할 수 있도록 봉사했다. 게다가 명심할 것은 [히포크라테스의 말처럼] 기술(art)이란 어려운 것이다! 마르크스주의 이론을 더욱 복잡하게 만드는 성격 중 하나는 사회적 과정들을 매우 일반적인 방식으로 파악한다는 것인데, 이는 마르크스주의 이론에 고유한 것이다. 경제이론이 자신의 개념들(상품·가치·자본·잉여가치·가격 등)에 의해 분명히 정의되는 것이라고 해도, 사실적 분석 속에서 그 개념들을 작동시키는 것은 전통적으로 사회학 또는 정치학의 영역으로 정의되어온 것[계급과 계급투쟁]으로 우리를 반드시 인도하게 된다. <BR>아래의 두 장은 다음과 같은 주제를 전개시킨다. 첫째, 지난 10-20년 동안 세계자본주의에서 나타난 경향과 메커니즘은 주요한 분석적 도전을 제기한다. 둘째, 19세기에 마르크스가 창안한 개념들이 이러한 분석을 위한 열쇠를 제공하는데, 그 개념들의 활용은 분석의 심화를 요구하고 또 지휘한다. <BR><BR><BR>자본주의의 새로운 국면 <BR><BR>자본주의의 현재적 과정의 성격을 해명하기 위해서는 그 주요 특징들을 통해 그 본질로 곧장 접근해야 한다면, 다음 두 가지를 명심해야 한다. 첫째는 기술진보 및 분배의 새로운 경향과 관련된다. 둘째는 민족적인 성격(피지배계급에 대한 엄격한 규율과 지배계급에 대한 봉사)과 동시에 국제적인 성격(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국면과 그것의 금융적 무질서)에서 드러나는 자본주의의 신자유주의적 과정과 관련된다. 우리는 이것들을 차례로 검토할 것인데, 이 분석에서는 종종 암묵적으로 미국과 프랑스의 사례를 특권화할 것이다. <BR><BR>기술진보와 자본수익성<BR><BR>1970-80년대의 구조적 위기는 자본수익성[이윤율]의 하락에 따른 것인데, 자본수익성의 하락 그 자체는 기술진보의 조건들의 점진적 악화를 표현하는 것이다. 이러한 악화를 가장 분명하게 드러내는 것은 노동생산성 상승의 점진적인 감속이다. 그렇지만 자본에 대한 생산물의 비율, 즉 자본생산성(그러나 이 개념이 자본의 생산 능력을 함의하는 것은 아니다)이 [노동생산성보다] 훨씬 더 분명한 지표인데, 자본생산성은 절대적으로 하락했다. 동일한 생산물을 위해 점점 더 많은 자본이 필요해졌던 것이다. 이처럼 [기술진보에] 불리한 경향이 처음 나타났을 때부터 그리고 실업의 파고가 높아지기 시작하면서, 곧바로 임금의 운동이 다시 문제시되었다(또 분명한 제도적 이유로 인해 사회보장 급여금의 증가에 따른 분담금의 증가와 관련된 더욱 곤란한 문제도 제기되었다). 노동비용[임금률]의 상승이 감속함에도 불구하고, 자본수익성은 1980년대 중반까지 계속 하락했다. <BR>중요한 사실은 이러한 경향이 이제는 역전되었다는 것이다. 이윤이 절대적 크기[이윤량]에서 증가할 뿐만 아니라 투하된 자본에 대한 상대적 크기(이윤율)에서도 상승한다.2)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조건은 자본에게 유리하다. 한편으로 노동생산성이 아직 느리게 상승함에도 불구하고 이제 자본생산성은 상승한다. 다른 한편으로 노동비용의 상승은 계속 억제된다. 그러한 운동이 지난 15년 동안 계속되었기 때문에, 그것이 자본주의의 새로운 국면의 윤곽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BR>이러한 과정이 발생한 것은 처음이 아니다. [미국 자본주의에서] 시계열 자료가 허용하는 시점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우리는 이윤율이 하락하는 두 개의 국면(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그리고 전후의 시기[더 정확히 말하자면 1960년대 중반]부터 1980년대 중반까지)과 이윤율이 상승하는 두 개의 국면(20세기 전반기[더 정확히 말하자면 1960년대 중반까지의 시기], 그리고 1980년대 중반 이후)을 식별할 수 있다. 각각의 국면은 수십 년 동안 지속된다. 많은 점에서 유사한 첫 번째와 세 번째 국면은 마찬가지로 유사한 구조적 위기, 즉 19세기 말의 위기와 1970년대에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위기로 귀결된다. 이러한 위기는 주로 자본축적의 감속과 그에 따른 경제성장의 감속, 실업의 증가, 그리고 불안정성의 증가(즉 경기침체의 심화)로 발현된다. 1929년의 위기는 [이윤율이 상승하는] 두 번째 국면을 [일시적으로] 중단시키는 것으로 본성상 [구조적 위기와] 다른 것이다.3) <BR>19세기 말의 위기는 자본주의의 거대한 변형을 촉진했다. 경쟁의 위기(이로 인한 독점의 시기)라는 맥락에서, 현대적 [법인]자본주의의 제도들, 즉 현대 금융에 의해 지지되는 거대주식회사―소유와 경영[페욜에 따르면 넓은 의미에서의 관리]의 분리라는 제도적 형태―가 나타났다. 대기업은 [직위와 그에 따른 업무, 즉 직무에서] 매우 위계적인 관리직과 사무직으로 구성된 수많은 직원에 의해 경영[관리]되었다. 경영자혁명―넓은 의미에서의 관리자혁명4)―이 자본의 가동에서 대규모의 효율성 상승의 기원이 되었다. 또한 공공부문의 관리직과 사무직[즉 기술관료]도 증가함으로써, 이러한 진화는 20세기 자본주의를 특징짓는 새로운 사회의 모습을 만들어냈다. 격렬한 계급투쟁의 맥락에서, 이러한 진화는 노동자의 구매력의 현저한 상승으로 귀결되었다. <BR>지난 15년 동안 나타난 기술진보의 새로운 경로의 기원을 분석할 때, 19세기 말의 구조적 위기로부터의 탈출과 비교하는 것이 아주 유용하다. 기술과 조직의 새로운 경향, 특히 정보혁명 또는 신경제로 종종 지칭되는 것은 세기 전환기의 변형과의 연상을 강화한다. 지난 20년 동안의 변화도 매우 넓은 의미에서의 관리자혁명으로 해석될 수 있는데, 정보·통신기술이 바로 관리자혁명에 적합한 기술인 것이다.5) 약간 도식화하면, 20세기 초에는 관리가 생산과 상업·금융을 변형시켰고, 오늘에는 자기 자신을 변형시켜 그 자신의 효율성을 증대시키고 비용을 감소시킨다고 주장할 수 있다. <BR>이러한 자본수익성의 회복과 함께 경제성장이 재개된다. 신자유주의적 정책에 의해 미국보다 더 많은 페널티를 받은 (즉 과거의 실천으로부터 더 많이 이탈한) 유럽은 경제성장의 경로에서 약간 뒤쳐지는데, 이 때문에 실업의 흡수가 지연된다. [그러나 실업의 지속으로 인한 임금률 상승의 감속 때문에 이미 지적한 것처럼 미국보다 유럽에서 자본수익성의 회복은 약간 빠르다.] 지구상의 방대한 지역이 여전히 [경제성장의 경로로부터] 멀리 뒤떨어져 있다는 것이 이러한 비교표의 주요한 특징이지만, 이 표는 물론 더욱 부연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새로운 국면이 가져온 이익의 세계적 분배는 별로 평등한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BR><BR>신자유주의·신자유주의적 금융세계화·미국의 헤게모니<BR><BR>신자유주의는 금융의 권력, 즉 (소유와 관리가 분리된 자본주의에서) 자본가적 소유자의 권력을 다시 긍정하는 것에 해당된다. 이는 주주가 노동자 및 국가와 거의 마찬가지로 관리자의 파트너가 되었던 케인즈주의 시대와 뚜렷이 대조된다. 1929년의 위기 이후 국가장치만큼이나 기업 내에서도 자율성을 크게 증대시켜 온 관리자는 소유자[주인]에 의해 이윤율 또는 주가를 최대화하는 대리인의 기능으로 복귀했다. 이것이 이른바 기업의 지배구조에서 발생한 중요한 전환이다. <BR>금융의 권력은 미국계 금융의 지휘 아래 이루어진 지속적 행동과 결연한 투쟁의 결과로 복귀했다. 게다가 미국계 금융은 이 기회를 이용해서 자신의 우위를 강화했다. 대중투쟁은 소련 및 세계공산주의의 위협이 퇴조하는 상황에서 패퇴되었다.6)<BR>소득과 자산의 측면에서 이러한 대격변의 결과를 측정하기 위해서는 통계적 시계열의 미궁을 진정으로 해명해야 한다(Dum&eacute;nil et L&eacute;vy, 1999b). 지배계급의 금융소득은 1970년대 동안 크게 감소했다(마이너스의 실질 이자율, 빈약한 배당금, 침체된 주식시장). 상황은 급격하게 역전되었다. 위기가 아직 끝나지 않았고 노동자의 구매력이 침체되었음(심지어 어떤 범주의 경우는 감소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신자유주의는 지배계급의 거대한 부의 축적을 초래했다. 과거의 불평등이 다시 나타났을 뿐만 아니라 더욱 증가했다. <BR>신자유주의 시대의 성격은 금융활동의 거대한 발전, 요컨대 금융화다. 이는 금융거래와 금융부문, 심지어 기업의 금융활동 등의 폭발적 증가를 의미한다. 우리는 이것이 1980년대 초부터 동반 성장한 여러 선진국 주식시장에 미친 효과를 알고 있다. 이러한 구조가 자본주의 경제에 1929년의 붕괴를 야기했던 그러한 위험을 초래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BR>이러한 사건의 진행 속에서 자본의 국제화가 지속된다. 신자유주의는 2차 세계전쟁 말에 브레튼우즈에서 형성된 질서를 파괴하고 당시에 설립된 국제기구들(국제통화기금과 세계은행)을 자신의 이익에 맞게 변형시킴으로써 이러한 국제화에 금융적 차원을 부여하는데, 그것의 주요 특징은 자본의 자유로운 순환([주식]시장의 세계화)이다. 이러한 자본운동의 자유가 우리가 알고 있는 금융적 불안정성의 씨앗을 뿌린다. 이러한 진화를 심도 깊게 조사한 어떤 연구는 미국계 금융의 헤게모니적 지위와 주도적 역할을 드러낸다. 금융·상업·외환·산업의 메커니즘이 문제가 되는 만큼, 우리는 새로운 형태의 제국주의, 새로운 [금융의] 헤게모니에 대해 말할 수 있다.7) <BR>이러한 금융의 헤게모니는 처음이 아니다. 20세기 초 현대적 금융의 출현은 지금과 비견될 만한 과정을 동반했고, 1929년의 위기에 의해 중단되었다. 그러므로 역사는 아주 거대한 규모에서 반복된다. 기술진보에 유리한 새로운 경로(이는 넓은 의미에서의 관리자혁명에 의해 주도된다)와 금융활동의 폭발적 증가 및 금융적 불안정성으로 말이다. 현재의 시기가 두 가지 특징을 결합하고 있기 때문에, 경제성장의 재개와 위험스러운 금융적 불안정성은 서로 모순적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보완적인 것으로 판단해야 한다. [아리기의 벨 에포크 개념은 특히 이 점을 강조한다.]<BR>신자유주의가 금융 헤게모니의 복귀를 분명히 표현하고, 그래서 자본주의의 주요 성격들(소유자의 권리와 이윤)을 다시 긍정한다고 해도, 그러나 역시 현재의 변형은 모호함으로 가득 차 있다. 관리자혁명은 관리직과 사무직의 발전을 또다시 촉진하면서 자본가와 노동자의 분리의 경계를 다시금 혼란시킨다. 20세기 초에 나타난 새로운 소유형태는 주주와 기업 사이에 간격을 형성하면서 생산수단의 소유라는 관념을 비틀었다. [챈들러를 따라] 어떤 사람들이 제도(institutionnel)자본주의라고 규정하는 오늘의 자본주의는 전문가들에 의해 관리되는 거대한 연·기금[이른바 기관(institutionnel)투자가]에 자본이 집중되는 것을 목격한다. 자본가적 소유자의 지위는 계속 유지되고 또 자신의 우위를 다시 주장하지만, 이는 다양한 위임기구를 증대시킴으로써 그것의 유지와 우위를 일정한 방식으로 해체하는 제도적 변모를 통해서일 따름이다. <BR><BR><BR>분석 도구들<BR><BR>이러한 관찰에 대한 설명과 관련하여, 우리는 마르크스주의 이론의 도구들의 적합성을 다양한 관점에서 증명할 수 있다. 물론 여기서 완벽한 증명을 주장할 수는 없을 것인데, 그러한 시도는 다른 많은 곤란들에 부딪히게 된다. 주요한 곤란은 상이한 분석들 사이의 관계와 연관되어 왔다. 예를 들어 가치론과 같은 이론의 의미는 다른 이론적 영역들을 관통하는 기나긴 우회로를 거친 후에야 비로소 이해될 수 있다. 다음과 같은 10개의 주제가 검토되어 왔다. ① 가치론, ② 경쟁과 집중, ③ 역사적 경향, 특히 이윤율의 하락 경향, ④ 구조적 위기와 자본주의의 국면들, ⑤ 경기순환(과열과 침체의 교체), ⑥ 자본주의적 축적의 법칙과 실업, ⑦ 자본주의적 무정부성, ⑧ 금융, 그리고 실물경제와의 관계, ⑨ 계급과 계급투쟁, ⑩ 전통적 개념의 설명적 가치를 지양할 수도 있는 생산관계의 변모가 그것들이다. 이 모든 주제는 앞 장에서 언급했던 오늘의 자본주의의 변형 및 경향에 대한 분석과 관계가 있다. 주제에 따라 그 관계는 직접적일 수도 간접적일 수도 있고, 긴밀할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어서, 우리는 이 주제들을 불균등하게 다룰 수밖에 없다. <BR>여기서 우리는 오늘의 세계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적 개념들의 설명적 가치를 해명하는 데 만족할 것이므로, 지배적인 신고전파 경제학을 비롯해서 다른 이론들에 대한 비판과 관련되는 설명은 최소한으로 제한할 것이다. 그밖에 사회주의에 대한 분석도 차치할 것이다[각주 25 참조]. <BR><BR>가치론<BR><BR>마르크스의 노동가치론은 그 시대의 지배적인 사상, 즉 자신의 고전파적 선배들(스미스와 리카도)의 사상에서 직접 유래한 것으로, 우리 시대의 관점에서 보면 매우 특이한 것으로 보인다. 끝없는 역사적 논쟁 후에 많은 마르크스주의자들은 가치[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 화폐적 형태로서 단순가격]의 생산가격으로의 전형과 관련된 논쟁을 폐기했는데,8) 그들은 그 논쟁과 관련된 생산적 노동이라는 협소한 관념(이는 오늘의 자본주의에서 착취에 대한 더 넓은 시각과 대립된다)에 의해서도 곤란을 겪어왔다. 즉 마르크스주의자들이 당면한 장애는 이론적이고 정치적인 이중의 장애다. <BR>사실 이 문제는 마르크스주의 이론의 아주 특수한 논점이다. 즉 가격론과 구별되는 가치론은 생산적 노동의 착취(잉여가치의 착출)에 대한 이론으로 인도된다. 마르크스는 두 유형의 노동, 즉 잉여가치가 착출되는 가치의 창조자로서 생산적 노동과―자본(자기증식하는 운동 속에 포섭된 가치)의 운동에 의해 똑같이 정당화되는―다른 성격의 노동, 말하자면 비생산적 노동을 매우 엄격하게 구별한다. 마르크스는 자본의 유통비용(예를 들어, 상업노동에 종사하는 사무직의 임금)과 같은 비생산적 노동에 대해 중요한 설명을 할애한다. 그러나 우리는 마르크스가 그러한 설명을 주변적 위치, 즉 자신의 이론체계에서 핵심을 차지하는 생산적 노동보다 훨씬 멀리 떨어진 위치에 제한시킨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비생산적 노동의 기능은 이윤율의 최대화다. 도식적으로 말하자면, (생산적) 노동과정을 구상·조직·감독하는 것[노동관리와 생산관리], 그리고 자본을 회전시키는 것(생산수단의 구매[생산관리]·생산물의 판매[마케팅관리] 및 재고관리[생산관리]·재무관리[및 회계관리])이 문제다.9) 기능자본가의 업무일 수도 있고 임금노동자에게 위임될 수도 있는 비생산적 업무는 우리가 오늘 관리―넓은 의미에서의 관리, 마르크스적 의미에서의 관리―라고 부르는 것에 해당한다. <BR>생산노동과 관리노동을 이렇게 구별하는 것이 오늘의 자본주의의 분석과 관련하여 과연 적절한가? 관리업무의 양적 발전과 질적 변형(지속적으로 혁신되는 관리업무의 형태와 그 효과들...)을 고려하는 한, 매우 적절하다. 마르크스가 19세기적 상황에서 관리업무를 주변적인 위치에 제한했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태도는 20세기 말에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것을 해체하고 혼합시킨다거나 이론체계를 너무 성급하게 폐기하는 것이 문제는 아니다. 전혀 의심할 바 없이 자본주의적 착취에 대한 이론은 생산적 노동자의 잉여노동의 영유(더욱이 이제 세계적 차원에서 수행되는 착취)에 준거한다. 그러나 새로운 사회적 범주가 나타나서 마치 마르크스가 그것의 분석과 관련하여 우리에게 제공한 이미 상당한 정도의 요소들을 부각시키는 것처럼 보인다. <BR>이것이 중요한가? 문제가 되는 것은 바로 새로운 착취형태, 생산관계의 변모, 경향과 반경향, 오늘의 자본주의에서 소득의 형성, 특히 금융 소득의 형성 등을 이해하는 것이다. 우리는 곧 이것들에 대해서 검토할 것이다. <BR><BR>경쟁과 집중<BR><BR>마르크스는 경쟁과정에 대한 분석, 즉 경쟁을 통한 생산가격의 형성에 대한 이론 역시 고전파로부터 원용한다. 이러한 분석을 자본의 집중에 대한 마르크스의 테제와 결합해야 한다. 의심할 여지없이 마르크스는 누구보다도 자본주의의 집중 경향을 잘 알고 있었는데, 이것이 오늘의 자본주의 및 자본의 세계화와 맺는 관계는 아주 분명하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자본의 집중 경향을 인정하면서도 결코 경쟁과정에 대한―매우 고전파적인―자신의 분석을 문제삼지 않았다.10) 규모와 성과 면에서 이질적인 기업들은 그 생산물이―재화든 서비스든―대체재로 사용될 수 있는 한(기업의 생산물들 사이의 대체관계 때문에 산업의 부문들이 구별된다), 경쟁에 참여함으로써 시장에서 대결한다. 자본가들은 다양한 정도로 이러한 기업들(따라서 부문들)에 자본을 투자하고 획득된 이윤율을 비교한다(사람들은 자본의 부문간 이동에 대해 말한다). 이러한 최대의 수익성 추구가 [부문 내에서 초과이윤의 존재로 인한] 기업간 이윤율의 격차를 유지하면서도 부문간 이윤율의 균등화 경향을 초래하고, 또한 구매력 있는 수요에 대한 공급의 비례를 조정한다. 경쟁적 투쟁은 집중과정을 촉진하고 성과가 나쁜 기업의 퇴출을 촉진한다. <BR>19세기 말 경쟁의 위기 이후 이 이론의 설명적 가치가 소멸했다는 부당한 주장이 마르크스주의자들을 열광시켰고, 이것은 [미국식 수직통합이 아니라 독일식 수평통합을 특권화하는] 독점자본주의 테제로 귀결되었다. 힐퍼딩과 레닌 이래 이 테제의 다양한 변종들이 존재한다. 이 테제는 오늘의 자본주의와 어떤 관계가 있는가? 우리가 볼 때는 기업들의 규모가 확대됨에도 불구하고 이윤율의 균등화 경향이 항상 작동한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이 본질적으로 중요하다(Dum&eacute;nil et L&eacute;vy, 1999c). 금융 제도와 메커니즘도 기업과 마찬가지로 그 규모와 효율성이 증가하여 자본의 부문간 이동을 촉진하고, 그래서 자본은 이윤의 기회를 가장 빠른 속도로 포착한다. 그러므로 20세기 말의 자본주의의 운동에 대한 설명은 다른 곳에서 찾아야 하며, 경쟁의 격화보다는 완화에 초점을 맞추는 독점자본주의 테제는 신중하게 재검토되어야 한다. 바란과 스위지(Baran and Sweezy, 1966)의 테제와는 달리 독점적 경향은 결코 이윤율의 하락 경향을 잉여가치율의 상승 경향으로 변형시키지 않았다. 또 브레너(Brenner, 1998)의 테제와는 달리 경쟁의 격화가 이윤율의 하락을 설명하는 것도 아니다.<BR><BR>이윤율의 하락, 다른 경향들, 그리고 반경향들<BR><BR>어떤 경제 이론가도 마르크스가 그랬던 것처럼 자본수익성, 즉 이윤율을 자본주의의 동역학에 대한 해석의 중심에 놓은 적이 없었다. [이윤율을 이자율과 혼동한] 신고전파 이론도 [이윤율을 이자율과 구별하면서도 이윤율 대신 투자의 한계효율을 특권화한] 케인즈파 이론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 특히 경험적 분석에서 이 변수를 고려할 때조차도 부차적인 지위만 부여한다. 그렇지만 이윤율은 자본주의의 장기적 운동과 구조적 위기를 이해할 때, 특히 1970-80년대 동안 [현대적 법인자본주의의] 경향의 역전을 이해할 때 핵심적 논점이다. 두 가지 유형의 문제가 쟁점이 된다. 이 절에서 검토하는 경향들과 반경향들 및 다음 절에서 검토할 이윤율 운동의 결과들이 바로 그것이다. <BR>마르크스는 &#985172;자본&#985173; 3권에서 자신이 자본주의의 역사적 경향들(기술진보·분배·자본축적·생산·고용의 경향들)이라고 부른 것에 대한 아주 정교한 분석을 우리에게 남겨주었다. 우리가 아는 한에서, 그는 자본과 노동 또는 생산물의 비율의 상승(이는 강력한 기계화의 표현이다)과 연관된 생산과 고용의 성장의 궤도들(여기서 기술진보의 성과의 감소는 이윤율의 하락으로 표현된다)을 인식한 유일한 사람이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는 그러한 궤도들을 마르크스적 궤도들이라고 부른다. 자본주의가 그러한 궤도들 위에 놓인다는 성향은 대체로 이미 정형화된 사실(stylized fact)이다. 특히 2차 세계전쟁 이후 이윤율의 하락 국면은 수많은 연구의 대상이 되었다.11) 마르크스는 그러한 매우 복잡한 분석을 완성하지 않았고,12) 게다가 그렇게 할 수 있는 경험적 자료도 갖고 있지 않았다.<BR>우리는 자본주의가 그러한 궤도들 위에 놓이게 되는 경향을 기술진보과정의 어떤 결함과 연결한다. 이러한 곤란은 의심할 바 없이 (고비용의 활동으로서) 연구와 혁신의 사적 성격, 그 결과의 사적 영유의 한계를 입증한다. 기업간 협력, 그리고 무엇보다도 국가가 연구프로그램과 과학교육에 관여한다는 사실은 부분적으로―그렇지만 단지 부분적으로만―이 한계를 극복한다. 그렇지만 이러한 메커니즘을 좀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분석해야 할 것이 아직 많다.13) <BR>마르크스는 이윤율 하락 경향에 대해 반작용하는 반경향에 중요한 설명을 할애했다. 반경향은 성격이 다양하다. 주식회사의 발전과 같은 반경향은 더 낮은 이윤율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 체계가 계속 유지될 수 있는 능력을 설명하는데, 이는 고유한 의미에서의 반경향보다는 적응과정과 관련된다. 잉여가치율의 상승이나 자본의 상대가격의 하락과 같은 반경향은 이윤율 하락 경향의 단순한 완화나 역전에 해당한다. 20세기 전반기에 자본주의가 새로운 유형의 궤도에 진입한 것은 다음 두 가지 진화와 관련된다. 첫 번째는 법인혁명(주식회사의 발전)이고, 두 번째는 관리자혁명이다. <BR>경향과 반경향에 대한 분석은―기술진보의 마르크스적 성격에 대한 긍정과 부정이라는 의미에서―동일한 이론적 영역에 속한다. 두 유형의 국면이 교체되는 것에 대한 우리의 해석은―처음에는 아마 의외라고 생각될지도 모를 방식으로―앞 절에서 검토한 가치론과 생산적·비생산적 노동의 구별에 준거한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이윤율을 최대화하는 업무(비생산적 노동)의 발전이 역사적으로 이윤율 하락에 대한 주요한 반경향으로 부각된다.14) 그리고 이는 우리가 이미 지적한 것처럼 관리에 의한 혁명과 관리 내부에서의 혁명이라는 이윤율 회복의 두 국면 각자를 표현하는 성격들을 갖고 있다. <BR>그러므로 여기서 가치론과 경향론이라는 두 가지 기본 이론의 접합이 중요한 이유를 알 수 있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접합이 이론의 확장의 필요성을 느끼게 하는 결정적으로 중요한 논점 중 하나다. 잉여가치를 생산하는 노동과 이윤율을 최대화하는 노동이라는 두 유형의 노동이 공존한다. 관리자혁명은 20세기 전반기에 두 번째 유형의 노동의 상대적으로 경이로운 발전을 표현한다. 그러나 그것은 그 외연과 효율성에서 모두 완료되었다. 그 결과로 발생한 이윤율 하락의 새로운 국면은 그때까지는 관심 밖이었던 다른 영역(예를 들어 연·기금의 재무관리)으로의 관리자혁명의 새로운 확장과 ([시장 거래비용의 절약을 초과하는 기업 조직비용의 증가로 나타나는] 관료제화 경향에 반대되는 방향으로 진행되는 조직형태의 혁신과 정보·통신기술에 의한) 효율성의 새로운 향상으로 서서히 이어졌다. <BR><BR>구조적 위기, 반경향의 발생, 그리고 자본주의의 국면들<BR><BR>경향에 대한 마르크스주의 이론의 또 다른 측면은 이윤율의 실제적 하락의 효과들과 관련된다. 마르크스는 이 점과 관련하여 간략하지만 단호한 입장을 취한다. 이윤율의 하락은 자본축적을 감속시키고 경제위기[공황] 및 금융적 곤란(금융활동의 과도한 팽창, 투기 등)을 심화시킨다. <BR><BR>반면, (자본의 가치증식이 자본주의적 생산의 유일한 목적인 것과 마찬가지로) 자본의 가치증식률, 즉 이윤율이 자본주의적 생산의 자극제인 한, 이윤율의 하락은 독립적인 신규자본의 형성을 감속시킬 것이므로 자본주의적 생산과정의 발전에 대한 위협처럼 보인다. 또 이윤율의 하락은 과잉생산, 투기, 경제위기, 그리고 과잉인구와 동시에 과잉자본의 형성을 조장한다(Marx, 1965, 15장, 254-5쪽).<BR><BR>우리는 그러한 곤란[경제위기와 금융위기] 전체를 구조적 위기라고 부른다. 앞 절에서 묘사한 이윤율의 실제적 하락의 두 국면은 결과적으로 구조적 위기의 시기로 귀결된다. [참고로, 신자유주의 시대에는 경제위기 및 금융위기에 외환위기가 추가된다.]<BR>사실 &#985172;자본&#985173; 3권에는 그 관계가 결코 명시적이지 않은 두 가지 관념이 공존한다. 하나는 이윤율의 실제적 하락의 시기가 구조적 위기로 이어진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윤율의 하락이 반경향의 발전에 의해 반작용된다는 것이다. 구조적 위기가 반경향들―적어도 어떤 반경향들 또는 그것들의 확립의 강세―의 출현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마르크스의 분석을 넘어서는 것이 별로 아니다. 그러한 주장에서 우리는 역사의 산파로서 폭력이라는 마르크스주의의 거대한 주제로 되돌아온다. 마르크스는 종종 자본주의에서의 생산력의 강력한 발전을 ‘역사적 사명’이라고 언급하면서 (반복되는 대위기를 대가로 획득되는) 변화의 격동적 성격을 강조한다. <BR>일정한 통계적 측정이 가능한 100년 이상의 시기에 걸친 [미국] 자본주의에 대한 관찰과 경제사에 대한 수많은 연구는 [마르크스의] 이러한 직관이 구체화되는 형태를 보여준다. 자본주의의 역사에 대한 우리의 해석의 핵심에는 [마르크스의] 이러한 분석틀이 있다. 여기서 우리는 [콘드라티에프와 슘페터에게서 비롯되는] 장기파동 개념을 특권화하는 문제설정과 다시 만난다.15) 이러한 해석은 너무도 빈번하게 기계적인 입장을 채택한다. 확실히 자본주의의 역사에는 불안정성이 반복적으로 기입된다. 그러나 강력한 교란의 국면과 이 국면이 촉진하는 변화는 본성상 매우 다양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여기서 자본주의적 관계에 내재적인 순환성을 발견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 원인과 결과에서 1929년의 위기는 특히 19세기 말 또는 20세기 말의 위기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또한 아리기 식으로 말하자면, 45-60년 주기의 장기파동이 아니라 100년 이상(‘장기세기’) 주기의 축적체계와 세계헤게모니가 문제가 된다.]<BR>이러한 방법론적 신중함을 유지한다면, 경향, 구조적 위기, 반경향, 국면 등에 대한 분석틀은 자본주의의 역사적 동역학과 그 시기구분을 설명하는 데 매우 적합한 것으로 보인다.16) 1980년대 중반 이후 우리가 진입한 국면은 역사적 동역학과 시기구분의 새로운 표현이다. <BR><BR>경기순환<BR><BR>이윤율 하락과 경제위기[공황]의 관계는 결국 상대적으로 장기적인 불황기라는 개념으로 인도하는데, 우리는 그러한 시기를 구조적 위기라고 불렀다. 구조적 위기는 경기순환 상의 침체[또는 순환적 위기]와 구별되어야 한다. 한편 마르크스도 역시 경기침체를 이윤율 하락과 독립적으로 검토하는데, 이윤율 하락은 구조적 위기의 과정에서 경기침체를 심화시키는 요인일 따름인 것이다. <BR>19세기 초부터 자본주의 나라들의 경제활동은 확장과 수축, 과열과 침체에서 기인하는 반복적인 교란에 종속되었다. 당시에는 산업순환이라고 불렀고, 20세기 이후에는 경기순환이라고 부른다. 그렇지만 그러한 운동은 정확히 말하자면 순환적[주기적]이라기보다는 반복적[비주기적]이다. 물론 경기순환의 진폭 그 자체는 19세기 이후 점차 축소되었지만, 거시적 경제활동 수준의 불안정성은 최근 수십 년 동안의 자본주의에서도 언제나 중요한 사실이다. [이른바 신경제 이후] 이에 대한 설명이 다시 한번 논쟁되고 있지만 말이다. <BR>어떤 사람들은 마르크스가 결코 분명하고 일관된 하나의 해석을 제시하지 않았다고 비난하는데, 그들의 비난에도 일리는 있다. 이 점과 관련하여 마르크스가 전개한 풍부한 논의들에 대해 다음과 같은 논평을 제시할 수 있다. <BR>첫째, 마르크스(Marx, 1975)의 용어법에 따르자면, 부분적[미시적] 위기들도 존재할 수 있지만,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일반적[거시적] 위기다. 그러한 위기는 다양한 부문들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모든 부문들 내에서 생산의 동시적 감소). 마르크스의 관점은 케인즈의 관점과 마찬가지로 거시경제적이다. <BR>둘째, 그는 거시적 경제활동 수준의 불안정화에 대한 단일한 이론만을 제시한 것이 아니다. 실물적 메커니즘(경제활동의 정점에서 임금률의 상승)과 화폐적 메커니즘(이자율의 상승 또는 금융의 총체적 취약성)이 문제가 된다. 케인즈가 불완전고용 균형[특히 그 존재]을 묘사하는 데 몰두한다면, 마르크스는 균형의 안정성과 불안정성에 주목하는 현대적 분석에 훨씬 더 가깝다. <BR>셋째, 우리는 구조적 위기에 대해 검토하면서 그 위기의 빈도와 규모가 자본주의의 대경향(이윤율 하락)과 관계된 더 심층적인 진화에 의해 강화된다고 지적했다. <BR>이러한 논평의 불충분성에도 불구하고, 어떤 현대적 이론도 최근 몇 십 년까지의 경제활동의 변동을 마르크스보다 더 잘 설명할 수 없다는 사실을 강조해야 한다. <BR>마르크스가 다음 두 가지를 결합한다는 점을 확인해두는 것이 유익할 것이다. 첫째는 자본의 이동 및 다양한 부문들 사이의 이윤율 균등화 경향의 메커니즘의 효율성에 관한, 그리고 수요가 있는 상품의 시장에 대한 공급에 관한 이론이고, 둘째는 경제활동의 거시적 수준의 불안정성에 관한 이론(또는 그 단편들)이다. 바로 이것이 마르크스의 분석의 강점이며, 그 분석의 현실 적합성 및 현대성은 이것을 기초로 한다. 그의 과제를 완수하는 것은 마르크스를 원용하는 경제학자들의 몫이다. 우리는 마르크스가 남겨 놓은 지시들에 충분히 부합하는 방식으로 모형을 구성하고, (자본의 배분, 상대가격의 형성, 상대적 생산량의 결정 등과 관련된) 자본주의의 비례적[미시적] 안정성이 (경제활동의 거시적 수준의 반복적 변동으로의 경향과 관련된) 그 규모적[거시적] 불안정성과 현저한 대조를 이룬다는 것을 보여준 바 있다(Dum&eacute;nil et L&eacute;vy, 1996). 또한 우리는 이러한 이중적 성격이 기업 행동 및 신용창조 메커니즘(19세기 미국에서처럼 거대민간은행에 의해 통제되든 또는 현대적 통화정책에서처럼 중앙은행에 의해 공적으로 통제되든)의 성격 그 자체에서 기인한다는 것을 보여준 바 있다. <BR>불비례성에 대한 이론은 리카도의 이론이었고, [힐퍼딩과 레닌 이래] 수많은 마르크스주의자들, 즉 부분적 위기(앞에서의 논의 참조)에 대한 마르크스의 특정 구절들을 구실로 해서 재생산표식에서 자본주의적 위기론을 발견하려고 했던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이론이었다.17) 우리는 그러한 문제에 대해 아주 단정적으로 말할 수 있다. 1970-80년대의 대규모 경기침체는 경제활동의 불비례성, 즉 필요한 방향으로 생산을 조정하지 못한 무능력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마르크스(Marx, 1967, 145쪽)가 “대중의 궁핍과 소비의 제한”을 “위기의 궁극적 원인(der letzte Grund)”으로 규정한 유명한 공식으로 인해, [카우츠키와 로자 이래] 수많은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자본주의의 위기―구조적인 것이든 순환적인 것이든―를 과소소비 또는 더 일반적으로 말하자면 시장의 불충분성이라는 관점에서 파악하는 아주 광범위한 해석으로 나아갔다.18) 그러나 [조절이론이 주장하는 것과는 달리 1929년의 위기 또는] 1970년대의 위기는 임금의 부족으로 인해 야기된 것이 아니며, 거의 마찬가지지만 이윤의 과잉으로 인해 야기된 것도 아니다. [1920년대 동안 이윤은 작았고 또] 1970-80년대의 위기는 기술진보의 성과가 장기적으로 악화되는 운동에 의해 예정된 이윤율의 하락에서 기인했다. [따라서 사회적 축적구조론이 주장하는 것과는 달리 1970-80년대의 위기가 이윤압박으로 인해 야기된 것도 아니다.]<BR><BR>자본주의적 축적의 법칙, 자본의 과잉축적, 그리고 실업<BR><BR>마르크스는 케인즈보다 훨씬 앞서서 실업의 원인을 어떤 가격(임금률)조정의 봉쇄가 아니라 경제활동의 거시적 수준의 변동에서 찾는 실업에 대한 분석을 발전시켰다. 케인즈가 유효수요의 수준이라는 관점에서 자신의 분석을 전개하는 데 반해 마르크스는 자본축적의 부침을 강조하지만, 두 사람의 아이디어는 동일한 것이다. <BR>마르크스의 분석 장치의 핵심에는 그가 자본주의적 축적의 일반적 법칙이라고 부르는 것이 존재한다(Marx, 1967, 25장). 역사적 경향들을 검토하는 과정에서 도입되는 자본의 과잉축적에 대한 연구는 그것을 완성한다(Marx, 1965, 15장). 우리는 자본주의적 축적의 법칙을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자본축적은 단기적으로 노동에 활용할 수 있는 인구의 부족이라는 한계에 부딪힐 때까지 고용을 증가시키며, 따라서 임금률의 반복적 상승 압력을 발생시킨다. 그러한 긴장을 극복할 수 있게 해주는 다양한 유형의 메커니즘들, 즉 더욱 자본주의적인 기술의 사용(자본구성의 상승), 경기침체의 효과 등은 자본가치를 부분적으로 파괴하고 실업자들을 재창조한다. 이것이 산업예비군에 대한 이론인데, 산업 예비군은 고용으로부터의 (일시적인 또는 거의 최종적인) 배제의 정도에 따라 다양한 분파로 나뉘고, 확대와 축소의 계기들을 겪게 된다. 이 이론은 실업이 자본주의의 우연한 사건도 아니고 개인의 부적합한 행동의 결과도 아니라, 자본주의의 영속화를 보증하는 장치의 주요 부품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실업이 임금률의 통제에 기여하기 때문이다. <BR>이러한 틀은 오늘의 자본주의에서 실업의 순환적 요소(이는 경기순환의 변동에 상응한다)에 대한 분석에 여전히 완벽하게 부합하는 것으로서 결코 낡지 않았다. 그렇지만 실업의 또 다른 요소, 즉 구조적 요소에 대한 명시적 분석이 추가되어야 한다. 중심부 나라들에서 확대되고 있는 실업의 물결은 그 자체 이윤율의 하락에 의해 야기된 자본축적의 감속에 기인한다. 구조적 실업의 증가는 순환적 실업과 동일한 메커니즘(단지 규모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을 통해 임금비용을 통제하는 본질적 요인인 것이다. <BR><BR>자본주의적 무정부성<BR><BR>마르크스주의와 사회주의운동의 역사에서 자본주의의 필연적 지양이라는 관념은 언제나 자본주의 체계에 고유한 무정부성에 대한 비판에 근거한다. 그러한 사고방식은 이미 &#985172;공산주의자 선언&#985173;의 핵심에 위치했다. 즉 자본주의는 생산력의 전례 없는 발전을 야기하지만, 자신이 그 족쇄를 풀어놓았던 생산력을 통제할 수 없음이 드러나는데, 이 때문에 경제위기[공황]가 증폭되고 격화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종종 그 책임을 시장에서 찾고 또 계획화(사회적 수준에서의 의식적 조직화)만이 시장을 극복할 것이라고 생각한다.19) <BR>자칭 사회주의 나라들의 붕괴 이후에는 그러한 유형의 분석이 상당히 퇴조한 것이 분명하다. 그렇지만 최근 실업의 지속과 국제적 금융위기로 인해 그러한 담론이 현재성을 갖는 주제로 주기적으로 부활한다. 우리는 여기서 신자유주의에 대한 분석의 핵심 요소에 접근한다. <BR>시장경제로서 자본주의라는 성격 규정이 종종 협소한 인식 또는 명백한 오류의 징후라고 할지라도, 그러나 그러한 논쟁은 자본주의의 기본 성격에 준거하여 제기되는 것이다. 자본주의에 고유한 분권화와 의사결정의 사적 성격은 자본주의의 주요한 성격들 중 하나를 규정한다. 자본주의에서는 여러 문제들이 상당한 정도 사후적으로 해결되며, 이러한 조정은 폭력적일 수도 있다. 이 점과 관련해서 우리는 사후주의(ex-postisme)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그렇지만 이러한 사실 확인이 타당하더라도 즉각 정정이 요구되는데, 자본주의가 (발생 가능한 [시장의] 실패와 퇴행을 고려하는) 사전적인 집합적 조정의 새로운 과정들을 촉진하면서 역사적으로 진화하기 때문이다.20) <BR>사전적 결정과 사후적 결정의 관계는 복잡하다. 사전적 조직화는 자본주의가 먼저 기업 내에서 달성하고 이어서 사회 전체 수준에서 달성하는 더 높은 수준의 생산력의 사회화를 필요로 한다. 따라서 집권화되든 또는 분권화되든 자본주의 이후의 경제에서 사후적 조정을 파괴하는 것은 어떤 경우에서든 오류일 것이다. 문제는 대규모 기능장애와 그 결과를 제한하는 것이다. 모든 [사전적] 조정의 결여는 가장 정교하게 조직된 사회에서조차 반드시 [사후적] 수정을 요구한다. 자본주의에서는 그러한 수정이 장기적인 구조적 위기를 통해서 과잉 작동하며, 그 비용은 대체로 피지배계급들과 종속국들에 의해 부담된다. 비판되는 것은 사후적 수정의 필연성이 아니라 바로 자본주의에 고유한 폭력과 불평등성이다. <BR>우리가 이미 지적한 바와 같이, 이 문제들과 관련하여 단지 시장에만 준거하는 것은 매우 제한된 인식인데, 그것은 &#985172;자본&#985173; 1권 1부로 제한된 특정한 마르크스주의적 인식이다. 다음과 같은 또 다른 과정들이 고려되어야 한다. <BR>첫째, 자본주의가 자본의 배분(투자의 부문간 비례)과 시장에서 상품의 공급(생산[의 부문간 비례])을 조절하는 분권화된 [미시적] 메커니즘은 대체로 불균형에 대한 반작용을 통해, 즉 사후적으로 작동한다. 만약 너무 많은 상품이 공급된다면, 생산[따라서 투자]은 축소될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자본주의는 효율적이며, 사후주의는 무정부성과 동일한 것이 아니다. <BR>둘째, 경제활동의 거시적 수준에 대한 통제도 마찬가지로 사후적으로 작동한다. 충분하지만 그러나 과잉은 아닌 수요의 수준을 보증하는 것이 바로 거시경제적 정책들의 기능이다.21) 불안정화의 위험은 과열과 침체의 교체 속에서 대규모로 드러난다. 마르크스가 경제위기[공황]라고 부른 것은 잘못 통제된 경기침체에 다름 아니다. 19세기 말과 20세기 말의 역사는 이 문제와 관련하여, 특히 [기관투자가의 안락사(금융 억압)와 투자의 사회화(적자 재정)를 목적으로 하는] 케인즈주의혁명 이후에 달성된 진보를 입증한다. 그러나 그러한 진보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아직도 무질서에 대해 말할 수 있는데, 왜냐하면 경제활동의 거시적 수준의 안정성이 완전히 통제되지는 않기 때문이다.22) 신자유주의[반혁명]는 안정화의 사회적 과정을 강화하여 지배계급에게 봉사하게 만드는―완전고용보다는 물가안정[탈인플레이션]―동시에 새로운 수준의 세계적 무정부성을 부활시킨다. <BR>셋째, 거대한 역사적 경향들과 축적의 리듬은 오늘의 세계에서 그러한 자본주의적 무정부성의 원리적 요소다. 자본주의는 기술진보의 성과를 유지하는 데 내재적 곤란을 드러낸다. 게다가 특권, 특히 소유자의 특권의 보존과 연관된 주저와 침묵(소유관계, 더 일반적으로 말하자면 생산관계의 변형에 대한 주저와 침묵)이 여기에 추가된다. 따라서 거대한 변화도 구조적 위기의 뒤를 이어서 사후적으로 발생한다. 이윤율의 하락과 회복이라는 계기적 국면들 속에서 바로 그러한 매우 복잡한 동역학이 드러나는데, 자본주의의 최근의 과정은 그것의 새로운 표현이다. 축적이 그러한 운동의 희생자가 된다. 그것은 복잡한 금융적 순환과 그 행동들(자본 소유자의 행동과 주식시장에서 기업가치를 최대화하려는 기업의 행동)에 의해 점점 더 지배되기 때문이다. <BR>생태론은 자본주의에 고유한 그러한 동역학이 극적인 결과를 낳고, 나아가 훨씬 더 많이 낳을 수 있는 주요 영역인데, 이에 대한 예측이 시급히 필요하다. 그러나 그러한 연구 영역은 우리의 분석을 넘어서는 것이다.23) <BR><BR>금융과 실물경제의 관계<BR><BR>화폐―상품화폐에서 가치표장까지, 가치척도에서 화폐 그 자체, 즉 구매력의 저장수단까지―에 대한 마르크스의 분석은 매우 뛰어난 것이다(Brunhoff, 1973 [윤소영, &#65378;브뤼노프의 신자유주의 비판&#65379;, &#985172;알튀세르를 위한 강의: ‘마르크스주의의 일반화’를 위하여&#985173;, 공감, 1996 참조]). 그 분석은 오늘의 자본주의에 고유한 메커니즘들을 분명히 이해할 수 있게 해주지만, 정확하게 식별할 수 있는 종별적 지표를 제공하지는 않는다. 게다가 현대적 의미에서의 신용창조에 대한 분석의 필요성이 절실하게 제기된다. <BR>금융과 실물경제의 관계는 필연적으로 신자유주의에 대한 분석의 핵심에 위치하게 된다. 가치와 자본에 대한 마르크스주의 이론은 그러한 주제들에 대해 엄밀한 함의를 갖는다. 생산적 노동과 잉여가치 개념은 금융활동의 성격을 비생산적인 것으로 규정하도록 만든다. 상업과 마찬가지로, 은행과 같은 금융기관에서 실현된 이윤은 실물부문에서 영유된 총잉여가치의 일부가 실현된 것으로 간주된다. 마르크스는 마치 ‘배나무에서 배가 열리는 것처럼’ 이자를 낳을 수 있다는 화폐의 능력에 대해서 야유한다. 따라서 마르크스주의자들은 금융활동과 부의 창조를 아주 직접적으로 연결하려는 유혹에 대해서 특히 잘 저항한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 확인이 금융활동이 무용하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금융활동은 일반적 맥락에서는 아니지만 분명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와 관련되는 [특수한] 유용성을 갖는다). 마르크스가 &#985172;자본&#985173; 3권에서 금융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한 것에 대해 여기서 간략하게 논평해두자. <BR>첫째, 그러한 분석들 중 일부는 화폐자본, 생산자본, 상품자본이라는 세 가지 형태들을 통한 자본의 변형에 준거한다. 은행은 상업자본과 마찬가지로 자본의 순환이 요구하는 일정한 업무에 전문화된 것으로 나타난다. [상업자본 및 상품취급자본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화폐취급자본이 문제인 것이다. 그것의 유용성은 자본의 일반적 순환에, 따라서 궁극적으로는 (자본주의적인) 사회적 생산에 기여하는 것이다. <BR>둘째, 금융은 또한 애초부터 다른 경제활동으로부터 분리된 채 비금융부문에 자본, 더 정확히 말하자면 자금을 공급하는 활동이다. 마찬가지로 이것은 생산관계와 관련되는 체계의 일반적 기능에 대한 또 다른 기여다. 이러한 자본이 대부자본인데, 여기에는 고유한 의미에서의 신용[회사채 포함] 외에도 주식이 포함된다. 이렇게 신용과 주식에 투자된 자본은 [화폐자본·생산자본·상품자본이라는] 세 가지 형태로 기업에 투자된 자본[경제학의 용어로는 현실자본, 회계관리의 용어로는 자산]의 대응물 또는 이차적 표현이다. 이러한 이중화로 인해 [현실자본과 대조되는] 가공자본이라는 관념이 출현한다. 그 자본[가공자본]을 기업의 실물자산[생산자본 및 상품자본]·화폐자산[화폐자본]으로 기입해서는 안 된다. [생산자본 및 상품자본과 화폐자본은 대차대조표 왼쪽인 차변에 자산으로 기입해야 하고, 신용과 주식은 대차대조표 오른쪽인 대변에 각각 부채와 지분자본(또는 자기자본)으로 기입해야 한다.] 또 종속기업[자회사]의 지분자본은 지배기업[모회사]에 의한 그것의 소유를 표현하므로 회계관리의 관점에서는 기업간 대차대조표를 연결·통합할 필요가 있다. 게다가 기업의 자산을 대표하지 않는 국채와 같은 [주식 이외의 또 다른] 증권의 존재로 인해 가공자본이라는 관념은 더욱 강화된다. <BR>마르크스는 또한 화폐적·금융적 메커니즘들과 제도들의 증식에 대해 묘사하면서 그것들이 기생적이고 투기적인 성격을 띤다고 낙인찍고 또 그러한 성격에서 체계의 안정성에 대한 위협을 발견한다. <BR>화폐와 금융에 대한 마르크스의 이론적 구성물에서 우리에게 신자유주의적 형세[세력관계]를 기적적으로 이해시켜줄 수 있는 어떤 계시도 출현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러한 분석틀은 여전히 매우 적합하고 특히 그 일반성이라는 측면에서 가장 큰 적합성을 가지기 때문에, 수많은 표류의 가능성을 막아준다. 여기서 보완의 필요성이 감지된다. <BR>이자율에 대한 이론은 특히 신자유주의에 대한 시의적절한 분석에서 마르크스의 분석의 타당성과 현대성의 훌륭한 사례를 제공한다. 우리는 그 중에서 다음과 같은 측면들을 강조할 수 있다. <BR>첫째, 마르크스는 이윤율과 이자율을 엄격하게 구별한다. 양자를 균등화하는 어떤 메커니즘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윤율과 이자율의 괴리는 생산관계의 징후이다. 기업과 자본가적 대부자는 분명하게 구별되는 (그렇지만 특정한[신자유주의적] 형세 속에서는 서로 결합되는) 두 행위자다. <BR>둘째, 이에 상응하여 마르크스는 이자율을 결정하는 ‘경제법칙’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단언한다. 신고전파 이론은 이자율을 다른 가격과 동일한 하나의 가격으로 취급하고 케인즈주의 이론은 그것을 유동성에 대한 수요와 연결하는 반면, 마르크스는 이자율에서 (비록 경기순환에 의한 유동성의 조건에 따라 변동하기는 하지만) 사회적 관계, 말하자면 세력관계를 발견한다. 그러한 분석은 비록 모호한 점이 있기는 하지만 오늘의 자본주의에서의 이자율 운동에 완벽하게 부합한다. 1979년에 실질 이자율의 갑작스러운 상승은 신자유주의로 귀결되는 정부 및 중앙은행의 의도적 선택으로서 그러한 세력관계의 아주 확실한 표현인 것이다.24) <BR><BR>계급투쟁<BR><BR>마르크스의 모든 분석은 계급투쟁에 대한 함의를 내포하고 있다. 자본가와 프롤레타리아의 대결은 &#985172;자본&#985173;을 관통하고 있으며, 그것은 그러한 대결에 대한 많은 열쇠들을 제공한다. 마르크스의 경제학적 저작들과 정치적 저작들을 결합함으로써 우리는 자본가와 토지소유자, 산업자본가와 금융자본가, 소생산자, (임금노동자로서) 관리자 등으로 분석틀이 확대되는 것을 알 수 있다. 국가는 사람들이 종종 묘사해온 그러한 자율적 행위자는 결코 아니고 지배계급들의 권력 행사 및 타협과 직접적으로 관련된다. <BR>그러한 권력과 투쟁을 추상할 수 있는 역사에 대한 진정한 독해는 없다. 20세기 초의 현대적 [법인]자본주의의 제도들의 출현이든, 20세기 전반기의 사적·공적 관리자주의 및 그와 동시에 진행된 사회적 타협[완전고용 및 실업보험을 비롯해서 대중교육 및 사회보험(특히 의료보험)]의 발전이든, 또는 신자유주의에 고유한 새로운 형세든, 체계의 모든 변모는 노동자운동의 강력함 또는 취약함과 소유자들(금융)의 전투성 등을 포함하는 투쟁 속에서 이루어진다. 특히 케인즈주의에서 신자유주의까지의 정책들은 그러한 투쟁의 직접적 표현이다. <BR>우리가 제안한 바 있는 자본주의 시기구분에서 기술진보와 분배의 경향 및 구조적 위기에 부여된 역할에서 결코 경제주의라는 인상을 받아서는 안 된다. 우리는 두 가지 관점, 즉 경향을 특권화하는 관점과 투쟁을 특권화하는 관점 사이의 악무한적 딜레마에 사로잡히지 않는다. 20세기 초 자본주의의 변형은 투쟁에 의해 야기되었고, 그 투쟁에서 노동자운동의 세력은 지배계급들 내부의 모순들(예들 들어, 한편으로는 금융자본가와 새로운 관리자사회의 책임자, 다른 한편으로는 낡은 [산업]자본가 사이의 관계)과 접합됨으로써 상당한 역할을 수행했다. 마찬가지로 신자유주의에서 소유자 권력의 재긍정은 장기적 대결의 결과 또는 소수자의 특권을 유지하는 경향이 있는 영속적 투쟁의 단계일 것이다. 오직 그러한 다양한 요소들의 결합을 통해서만 그러한 거대한 역사적 운동들을 인식할 수 있다. 마르크스주의는 그러한 사고방식에 가장 적합한 분석틀이다(또는 그러한 분석틀이 될 것이다). <BR><BR>자본주의를 넘어서 변혁을 사고하자<BR><BR>우리는 앞의 절들에서 일군의 개념, 법칙, 또는 메커니즘의 설명적 가치를 강조했다. 그러나 그러한 설명적 가치의 궁극적 지양을 인식하려는 사람들도 많이 존재한다. 우리가 몇 가지 사례를 제시한 어떤 경우에 문제는 분석의 특정한 한계를 넘어서 그 분석을 연장하는 것이다. 다른 경우에는 분석 도구의 불완전성이 아니라 현상 그 자체의 질적 변화에서 곤란이 발생한다. 이 점에 대해서 약간 부연해둘 필요가 있다. <BR>예들 들어, 우리는 첫 번째 절에서 마르크스가 제시한 가치와 착취에 대한 분석이 특정한 유형의 노동, 즉 생산적 노동을 특권화하면서 이윤율의 최대화와 관련되는 또 다른 노동, 즉 우리가 관리라는 이름으로 재발견한 노동을 이차적 지위로 추방한다고 지적했다. 우리 시대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는 이 노동에게 정당한 지위를 부여하는 것과 생산적 노동 및 비생산적 노동의 구별의 경향적 해체를 탐구하는 것(이것은 결국 마르크스주의의 위대한 개념들로부터 상당한 거리를 두는 것이다)은 전혀 별개의 일이다. 산업노동자[생산직]의 생산 업무와 예를 들어 상업노동자[판매를 담당하는 사무직]의 판매 및 현금출납 업무를 융합해야 하는가? 만약 그러한 선택을 한다면, 고위 관리직에 대해서는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하는가? 이론화의 관점에서 가장 손쉬운 해법은 우리 경제와 사회의 그러한 새로운 복잡성들을 낡고 옹색한 방으로, 즉 자본주의의 전통적 범주로 집어넣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것이 가장 적합한 선택인가? 사실 마르크스는 주요한 사회적 관계, 즉 특수한 규정들을 따르는 자본가와 프롤레타리아의 대결을 중심으로 자신의 전체계를 확립하고자 결심했다. 어떤 사람은 그러한 개념들을 폭파시키고 체계의 엄격성을 해체하지만, 그러나 용어법은 보존함으로써, 그의 사고방식을 따를 수 있다. 따라서 그 사람은 새로운 노동자나 프롤레타리아, 새로운 자본가, 아니면 새로운 프티 부르주아지(Poulantzas, 1974)에 대해 말하면서도, 마르크스가 생산적 노동과 잉여가치에 부여한 정의를 망각하거나 그것을 포기해야 한다고 공개적으로 선언한다. 가장 힘든 사고방식은 그 분석틀을 쇄신하는 데 있다. 그것은 생산적 노동이라는 개념을 폐기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 설명적 가치의 점진적 지양을 승인해야 하는데, 왜냐하면 변화하는 세계에서는 그러한 것이 정상적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새로운 것을 사고해야 하는 것에는 변함이 없으며, 새로운 것과 오래된 것의 공존을 승인해야 하는 것에도 변함이 없다. 오늘의 자본주의에 대한 분석에서 우리는 그러한 도전에 대면하게 된다. <BR>우리는 결국 어디에 이르게 되는가? 우리가 볼 때, 이러한 변형 과정은 하위 범주의 노동(생산직과 사무직의 노동)의 단지 부분적인 융합보다 훨씬 거대하다. 임금노동자로서 직원에게 위임된 관리업무는 양극화의 대상이 되는데, 그 양극화의 정확한 윤곽은 실행 업무(사무직 부분)와 구상·조직·감독 업무(관리직 부분) 사이에서 아직도 정의되고 있는 중이다. [마찬가지로 기술직의 업무도 엔지니어와 테크니션 사이에서 양극화되고 있다.] 이러한 새로운 계급적 모순―왜냐하면 이러한 모순은 새로운 생산관계에 뿌리를 내리기 때문이다―은 자본가와 프롤레타리아의 전통적 모순에 변증법적으로 중첩된다(Dum&eacute;nil, 1975; Dum&eacute;nil et L&eacute;vy, 1993). [즉 마르크스가 &#985172;자본&#985173;에서 분석하는 계급모순의 양극화를 &#985172;공산주의자 선언&#985173;이 부당 전제하는 계급모순의 단순화와 구별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한 운동이 지속되어 사무직의 업무와 생산직의 업무의 일정한 융합으로 귀결된다. 신자유주의 이전까지, 관리직을 포함하는 이러한 임금노동자 집단들의 통일성은―비록 계급적 통일성은 아니라고 할지라도―대체로 보존되어 왔다. 반대로 신자유주의는 소유자의 특권을 영속화하기 위해 임금노동자의 고위 분파와 자본의 특정한 형태의 연합[이른바 ‘20:80 사회’에서 1%의 자본가 및 임원과 19%의 관리직의 연합]을 지향한다. <BR>자본주의적 소유도 노동의 변형에 비견될 수 있는 변형의 대상이 되고, 신자유주의는 그것에 대한 분석을 아주 복잡하게 만든다. 왜냐하면 신자유주의는 오늘의 경제와 사회에 기본적인 몇몇 자본주의적 성격들, 적어도 자본 소유자의 권력에 대한 재긍정을 표현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언급했던 자본주의적 소유(생산수단의 소유)의 최초의 거대한 변화는 19세기에서 20세기로의 전환기에 소유와 관리의 분리, 나아가 금융으로 소유의 집중 및 기업으로 관리의 집중과 함께 발생했다. 소유관계는 이완되었다. 임금노동자의 특정 분파[관리직]와 그러한 자본주의적 권력의 연합을 고려하면, 신자유주의는 이전의 사례를 연장하는 발전, 즉 연·기금으로의 자본의 집중의 기원을 형성한다. 어떤 사람들은 그러한 변형의 이면에서 자본주의적 사회관계의 지양을 막연하게 예감하면서 그것을 제도자본주의[챈들러], 또는 포스트자본주의(Drucker, 1993), 또는 심지어 사회주의(Blackburn, 1999)라고 부른다. <BR>우리의 해석은 관리 업무의 위임 속에서 관리직과 사무직 및 생산직 사이의 양극화에 대한 강조로 나아간다. 우리는 여기서 새로운 생산관계와 새로운 계급관계를 발견한다. 이 때문에 우리는 우리가 자본가적인 동시에 관리자적인 사회라고 부르는 잡종적 사회에 대해 말하게 된다. 신자유주의는 권력과 소득의 관점에서 전통적인 자본가적 분파의 우위를 유지하려고 노력하지만, 그러나 생산관계의 변형을 중단시키지는 못할 것이다. 아마도 신자유주의는 그러한 변형을 지연시킬 수 있을 것이며, 분명 그것을 왜곡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변혁을 사고하는 것, 그리고 세력관계를 사고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대면하게 되는 분석적 도전이다.25) <BR><BR><BR>참고문헌<BR><BR>Achcar, G., &eacu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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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BR><BR>1) Howard and King (1989; 1992)의 훌륭한 종합을 참조하시오. [또는 김석진 엮음, &#985172;자본주의의 위기와 역사적 마르크스주의&#985173;, 공감, 2001에 실린 박상현·윤종희·김숙경의 글과 윤소영, &#985172;마르크스의 ‘경제학 비판’&#985173;, 공감, 2001(개정판, 2005)을 참조하시오.] 본문으로 <BR>2) 이윤율의 상승 경향은 지난 15년 동안 적어도 미국과 유럽 주요국들에서 나타났다. 이 경향은 미국보다 유럽에서 더욱 현저하다(Dum&eacute;nil et L&eacute;vy, 2000). 본문으로 <BR>3) [1929년의 위기가 구조적 위기가 아니라는 이러한 해석은 미국의 사례를 특권화하는 뒤메닐에게 고유한 것이다. 반면 영국에서 미국으로의 축적체계 및 세계헤게모니의 이행에 주목하는 아리기는 1929년의 위기가 1873년 이후의 ‘징후적 위기’에 뒤이어 발생한 1896년 이후의 ‘벨 에포크’를 종결짓는 ‘최종적 위기’라고 해석한다. Giovanni Arrighi and Jason Moore, "Capitalist Development in World Historical Perspective", in Albritton et al. (2001) 또는 윤소영, &#985172;일반화된 마르크스주의와 역사적 자본주의 분석&#985173;, 공감, 1998; &#985172;신자유주의적 ‘금융 세계화’와 ‘워싱턴 콘센서스’: 마르크스적 비판의 쟁점들&#985173;, 1999를 참조하시오.] 본문으로 <BR>4) 이러한 변화는 (엄밀한 의미에서의) 기술을 조직과 결합한다. 이동조립공정[즉 컨베이어 벨트를 이용한 일관작업공정]이 그것의 전형을 제공하지만, 사실 상업적 관리[마케팅관리]와 금융적 관리[재무관리 및 회계관리] 전체가 변형된다. [참고로, 고정자본을 절약하여 이윤율 하락에 반작용하는 데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는 테일러주의(‘과학적’ 노동관리)를 구체화한 포드주의(노동관리뿐만 아니라 생산관리를 포함하는 이동조립공정)이고, 둘째는 슬론주의(규모의 경제와 범위의 경제를 결합함으로써 생산비용으로서 고정자본뿐만 아니라 유통비용으로서 거래비용을 절약하는 수직통합 및 다사업부제)다. 이 중에서 미국의 법인자본을 특징짓는 것은 포드주의가 아니라 슬론주의인데, 포드주의는 기계제대공업을 특징짓는 자본에 의한 노동의 실질적 포섭의 발전이고, 또 일본의 재벌(그룹)을 특징짓는 도요타주의도 포드주의의 변형일 따름이기 때문이다. 또한 법인자본의 초민족화와 재벌의 국제적 하청계열화를 구별짓는 것도 포드주의가 아니라 슬론주의다.] 본문으로 <BR>5) 이는 생산관리뿐만 아니라 전자상거래 및 새로운 기술에 의해 지배되는 금융거래를 포함한다. 새로운 기술은 특히 초민족기업, [세계]시장, 그리고 연·기금[연금기금 및 투자기금]의 성격을 규정한다. 이제 이 모든 제도들은 지구적 차원을 갖고 있다. 본문으로 <BR>6) 예를 들어, 제3세계에 마이너스의 실질 이자율로 외채를 제공한 1970년대의 정책은 반공투쟁의 일환으로 이루어진 것이었고, 마찬가지로 이 나라들로서는 견딜 수 없는 수준으로 이자율을 인상시킨 1979년의 결정 역시 공산주의의 위협의 퇴조에 의해 가능해진 것이었다(Toussaint, 1998). 본문으로 <BR>7) Dum&eacute;nil et L&eacute;vy, &eacute;ds. (1999a)에 실린 셰네(F. Chesnais), 카스텔(O. Castel), 제르비에(B. Gerbier)[또 세르파티(C. Serfati), 브뤼노프(S. de Brunhoff)]의 글과 Actuel Marx (2000)에 실린 아슈카르(G. Achcar), 촘스키(N. Chomsky), 포르티스(L. Portis), 아리기(G. Arrighi), 고완(P. Gowan), 제임슨(F. Jameson), 코언(J. Cohen), 비데(J. Bidet)의 글을 참조하시오. 또 Amin (1996)과 Chesnais (1997)도 참조하시오. [참고로, 뒤메닐의 제국주의 개념은 힐퍼딩이나 레닌이 아니라 로자에게서 비롯된다는 점에서 아리기의 그것과 친화성을 갖는다. 그러나 뒤메닐은 아리기에게 고유한 축적체계 및 세계헤게모니의 위기로서 금융화라는 개념은 인정하지 않는다.] 본문으로 <BR>8) Dum&eacute;nil (1980), Foley (1982), Lipietz (1982), Dostaler (1985), Ehrbar and Glick (1986), Freeman (1996). 또 Jorland (1995)[또는 덩컨 폴리, &#65378;노동가치이론의 최근동향&#65379;(1997), 김석진 엮음, 앞의 책에 실림]가 작성한 논쟁의 비교표도 참조하시오. 본문으로 <BR>9)우리는 여기서 기존의 기술과 조직이 주어진 상태에서 이윤율을 최대화하는 업무와 새로운 생산물의 획득과 효율성의 제고(이것의 판단 기준은 항상 자본수익성이다)를 목적으로 하는 혁신적 업무(이것을 위해서는 지식의 습득이 우선적이다)를 구별할 수 있다. [참고로, 노동과정에 직접 또는 간접으로 참여하는 기술직으로서 엔지니어와 테크니션은 생산적 노동자로서 집합노동자의 일부를 구성한다. 경영학의 용어로 말하자면, 엔지니어와 테크니션은 생산직과 함께 종적 조직으로서 라인을 구성하고 관리직과 사무직은 횡적 조직으로서 스탭을 구성하여 그것을 지원한다.] 본문으로 <BR>10) Marx (1965, 10장). 경쟁과정의 메커니즘의 현재적 재정식화와 관련해서는 Political Economy (1990)과 Bidard (1984)를 참조하시오. [참고로, 뒤메닐은 집적(concentration)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문맥상으로는 집중(centralisation)이라고 말하는 것이 옳다.] 본문으로 <BR>11) 특히 Moseley (1992; 1997), Wolff (1992), 그리고 우리의 최근 작업인 Dum&eacute;nil et L&eacute;vy (1996; 1999d)를 참조하시오. 또 Shaikh (1992)와 Husson (1999)도 참조하시오. [남한의 경우는 윤소영, &#985172;이윤율의 경제학과 신자유주의 비판&#985173;, 공감, 2001을 참조하시오.] 본문으로 <BR>12) [부문내 경쟁을 통해] 초과이윤의 획득을 가능케 하는 새로운 기술의 도입과 평균이윤율에 대한 효과, 그리고 이러한 기술이 생산자 전체로 일반화되는 과정 등에 대한 마르크스의 묘사는 중요한 논쟁을 촉발했다(Okishio, 1961). [이른바 오키시오 정리에 대한 소개와 비판은 &#985172;자본주의의 위기와 역사적 마르크스주의&#985173;에 실린 김숙경의 글을 참조하시오.] 본문으로 <BR>13) [예를 들어, Dum&eacute;nil et L&eacute;vy, "The Three Dynamics of the Third Volume of Marx's Capital", Contribution to the Conference 'Karl Marx's Third Volume of Capital: 1894-1994', http://www.jourdan.ens. fr/~levy/, 1994; "Technology and Distribution: Historical Trajectories &agrave; la Marx", http://www.jourdan.ens.fr/~levy/, 2000 &amp; Journal of Economic Behavior and Organization, Vol. 52, 2003 또는 윤소영, &#985172;마르크스의 ‘경제학 비판’&#985173;, 앞의 책; &#65378;이윤율의 경제학: 헨릭 그로스만(1881-1950)을 위하여&#65379;, &#985172;이윤율의 경제학과 신자유주의 비판&#985173;, 앞의 책을 참조하시오.] 본문으로 <BR>14) 이윤율을 최대화하는 것은 자본의 생산비용 및 유통비용을 최소화하는 것, 그리고 자본의 다양한 구성 요소에 투하된 자본의 총계를 최소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각주 4에 추가된 역주 참조.] 반대로 모즐리(Moseley, 1992)는 관리비용의 증가 속에서 이윤율 하락의 주요한 요인을 발견한다. 본문으로 <BR>15) 만델(Mandel, 1999)은 마르크스주의적 분석틀에서 이윤율 하락과 관련하여 장기파동을 특권화한다. 또 Kleinknecht, Mandel, and Wallerstein (1992)도 참조하시오. 본문으로 <BR>16) 자본주의의 시기구분에서 우리는 역사적 경향, 구조적 위기, 제도적 변화, 생산관계 등 다양한 기준을 특권화할 수 있다. 사실 중요한 것은 이 기준들을 일정한 방식으로 결합하는 것이다(Dum&eacute;nil et L&eacute;vy, 2001). [또 Dum&eacute;nil et L&eacute;vy, "Neoliberal Dynamics - Imperial Dynamics", http://www.jourdan.ens.fr/~levy/, 2003도 참조하시오.] 예를 들어 조절이론은 우리와 다른 방식으로 이 기준들을 결합한다(Aglietta, 1976; Lipietz, 1979; Boyer, 1986). [그람시에게 영감을 받아 조절이론이 특권화하는 포드주의 개념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각주 4에 추가된 역주를 참조하시오. 참고로, 과소소비설을 계승하는 조절이론과 달리 보울즈(S. Bowles), 고든(D. Gordon), 웨이스코프(T. Weisskopf)의 사회적 축적구조론은 이윤율 하락에도 주목한다. 다만 울프(Wolff, 1992)처럼 이윤압박을 그 원인으로 제시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웨이스코프는 이윤압박을 자본생산성 하락과 절충하고 고든은 이윤압박을 장기파동과 절충한다. T. Weisskopf, "A Comparative Analysis of Profitability Trends in the Advanced Capitalist Economies", in Moseley and Wolff, eds. (1992); D. Gordon, "Inside and Outside the Long Swing: The Endogeneity/Exogeneity Debate and the Social Structures of Accumulation Approach", Review, Spring 1991 참조.] 본문으로 <BR>17) [&#985172;자본&#985173; 2권 3부의 대상인] 재생산표식은 국민계정의 핵심을 이루는 생산, 소비, 투자와 같은 거시적 집계변수들 사이의 몇몇 관계를 해명한다. 그러나 재생산표식은 공급과 수요의 부문간 비율을 조정하는 [경쟁] 메커니즘을 고려하지 않는다(이는 &#985172;자본&#985173; 3권 10장의 대상이다). 본문으로 <BR>18) 그러나 마르크스 스스로 [시스몽디에게서 유래하는] 이 테제를 반박한다. “구매력 있는 소비 또는 지불능력 있는 소비자가 부족하기 때문에 위기가 발생한다고 말하는 것은 순수한 동어반복에 불과하다....”(Marx, 1960, 63쪽). 본문으로 <BR>19) 공장[또는 오히려 기업] 내부의 조직화와 시장의 무정부성을 대립시키면서 엥겔스가 제시한 것[그리고 카우츠키와 (신경제정책 이전의) 레닌이 계승한 것]은 바로 자본주의적 무정부성에 대한 그러한 시장적 분석이다(Engles, 1955, 3장). 본문으로 <BR>20) 개인적[사적] 계약과 중앙집중적[공적] 계약 사이의 관계 및 (그것과 다양한 측면에서 상호 연루되는) 조직과 시장 사이의 관계는 비데(Bidet, 1999)의 저작에서 핵심을 이룬다. 본문으로 <BR>21) 중앙은행은 통화정책을 통해 경제 내에서 화폐와 신용, 따라서 수요(가계·기업·국가의 수요)의 양을 얼마간 효율적으로 통제한다. 화폐와 신용의 공급이 이자율의 하락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 차입자를 발견하지 못하게 되면, 국가가 그것을 차입해서 지출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경제활동이 크게 위축되는 국면에서의 재정정책의 기능이다. 본문으로 <BR>22) 사실상 사적 관리와 금융 메커니즘의 진보는 새로운 불안정성의 맹아를 담지하므로 경제정책은 역사적으로 더 효율적인 것이 되어야 하는데, 이는 중요한 제도적 변형을 함축한다. [미시경제적 안정성을 추구하는] 기업 및 금융부문의 사적 행위자들이 거시경제적 안정성에 대해 가하는 항상적 압력을 우리는 경향적 불안정성이라고 부른다(Dum&eacute;nil et L&eacute;vy, 1996, 12장). [또 케인즈파에 대한 ‘신고전파적 종합’이 아니라 ‘고전파적 종합’에 대해서는 Dum&eacute;nil et L&eacute;vy, "Being Keynesian in the Short Term and Classical in the Long Term: The Traverse to Classical Long-Term Equilibrium", The Manchester School, Vol. 67, 1999 &amp; http://www.jourdan.ens.fr/~levy/를 참조하시오.] 본문으로 <BR>23) 이 절에서 우리는 자본주의가 야기한 손해들에 대한 일반적 목록을 작성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한 손해들은 [생태뿐만 아니라 인간 자체에 대한 손해를 포함하므로] 훨씬 더 막대하다. [생태위기·보건위기·교육위기·가족위기에 대해서는 제이슨 무어 외, &#985172;역사적 자본주의 분석과 생태론&#985173;, 공감, 2005(예정); 비센테 나바로 외, &#985172;보건의료: 사회·생태적 분석을 위하여&#985173;, 공감, 2005(예정); 윤종희·박상현 외, &#985172;대중교육: 역사·이론·쟁점&#985173;, 공감, 2005; 권현정, &#985172;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의 현재성&#985173;, 공감, 2002; 이미경, &#985172;신자유주의적 ‘반격’ 하에서 핵가족과 ‘가족의 위기’: 페미니즘적 비판의 쟁점들&#985173;, 공감, 1999를 참조하시오.] 본문으로 <BR>24) 예를 들어 그러한 세력관계의 표현은 (사실과 반대로) 이자율의 상승이 재정적자의 결과라고 주장하는 변호론적인 담론들을 반박한다(Dum&eacute;nil et L&eacute;vy, 2000, 10장). 본문으로 <BR>25) [자본가적-관리자적 사회 개념의 원천에 있는 (자본주의나 공산주의와 구별되는 종별적 계급사회로서) 관료제적 집산주의라는 리치의 개념은 마르크스가 말하는 부정적 통과점으로서 법인자본(또는 국가자본)에 대한 특권화 또는 오해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마르크스가 말하는 긍정적 통과점으로서 평의회의 관점에서 제시되는 관료제적 집산주의에 대한 비판은 Paresh Chattopadhyay, "Bureaucracy and Class in Marxism", in Garston, ed. (1993); 윤소영, &#985172;역사적 마르크스주의: 이념과 운동&#985173;, 공감, 2004를 참조하시오. 뒤메닐이 제2의 관리자혁명과 동시에 (신자유주의에 의해 해방된 금융을 또다시 억압할 수 있는) 제2의 케인즈주의혁명을 통해 미국의 축적체계와 세계헤게모니가 부활할 수 있다고 부당 전제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이러한 문제와 관련되는 것 같다. <BR>[그러나 이 점을 제외한다면 자본가적-관리자적 사회 개념은 생각처럼 특이한 것만은 아닌데, 관리직과 사무직 또는 엔지니어와 테크니션의 양극화는 결국 지식노동자와 육체노동자의 분할과 관련되기 때문이다. 발리바르 식으로 말하자면, 자본가적-관리자적 사회는 자본가와 프롤레타리아 사이의 모던한 계급적 모순(적대)과 지식노동자와 육체노동자 사이의 포스트모던한 비계급적 모순(마찬가지로 적대)에 의해 비동시대적으로 과잉결정된다. 다만 발리바르의 지식노동자는 관리자 및 엔지니어보다는 오히려 이데올로그(이른바 인문학적 지식인)를 더욱 강조하는 개념이다. 에티엔 발리바르, &#65378;‘인간의 권리’와 ‘시민의 권리’: 평등과 자유의 현대적 변증법&#65379;, &#985172;‘인권의 정치’와 성적 차이&#985173;, 공감, 2003; 윤소영, &#985172;일반화된 마르크스주의 개론&#985173;, 공감, 2005(예정) 참조.] 본문으로 <!--덧붙이는글/sitelink1/sitelink2-->
















[역주]G&eacute;rard Dum&eacute;nil et Dominique L&eacute;vy, "Vieilles th&eacute;ories et nouveau capitalisme: Actualit&eacute; d'une &eacute;conomie marxiste", in Jacques Bidet et d'Eustache Kouv&eacute;lakis, &eacute;ds., Dictionnaire Marx contemporain, PUF, 2001 (본문과 각주의 [ ]는 독자의 편의를 위해 역자가 삽입한 것임). 마르크스적 관점에서 제기되는 신자유주의 비판의 쟁점들에 대한 더 자세한 설명은 G. Dum&eacute;nil et D. L&eacute;vy, Economie marxiste du capitalisme, La D&eacute;couverte, 2003을 참조하고, 전후 프랑스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에서 뒤메닐과 레비에 대한 평가는 Thierry Pouch, Les &eacute;conomistes fran&ccedil;ais et le marxisme: Apog&eacute;e et d&eacute;clin d'un discours critique (1950-2000), Presses Universitaires de Rennes, 2001을 참조하시오. 남한에서 프랑스를 비롯한 서구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을 최초로 소개한 것은 지난 9월 24일에 작고한 정운영 교수의 &#985172;노동가치이론 연구&#985173;(까치, 1993)인데, 이 책에는 특히 1970년대까지 전개된 이윤율 하락 논쟁을 총괄하는 박사논문(벨기에 루뱅대학교, 1981)이 실려 있다. 정 교수에 대한 평가는 R. Miller, "Book Review", Review of Radical Political Economics, Summer &amp; Fall 1984; 이우진, &#985172;잉여가치율&#8231;이윤율 추계를 통한 한국의 자본축적과정 분석 시론: 1970-1986&#985173;, 서울대학교 국제경제학과 석사논문, 1989; 김숙경, &#65378;마르크스주의 위기이론과 이윤율의 경제학&#65379;(서울대학교 경제학과 박사논문), &#985172;자본주의의 위기와 역사적 마르크스주의&#985173;, 공감, 2001을 참조하시오. 정 교수를 추모&#8231;추도하는 윤소영의 &#65378;정운영 선생을 추억하며&#65379;는 사회진보연대 게시판의 삶의 소리 2692번과 대자보 7232번으로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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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05년10월14일 14:39:57 ]]></description></item><item><author>바라</author><category>찌라시의 문서 창고</category><title>[퍼온글] 프로메테우스의 모험: 현대 과학기술의 철학적 의미</title><link>http://blog.aladin.co.kr/vara/1083315</link><pubDate>Tue, 20 Mar 2007 18:4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vara/1083315</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904720X&TPaperId=1083315"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59/42/coveroff/898904720x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
&nbsp;
<!--StartFragment-->&nbsp; 월간 [사회운동] 3월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혹시 공적으로 인용하거나 논의하시고 싶다면,
[사회운동] 3월호를 기준으로 해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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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nbsp;작년 11월부터 3개월 가까이 나라 전체를 뒤흔든 황우석 스캔들은 이제 검찰의 수사결과 발표를 앞두고 진정 국면에 접어든 것으로 보인다. 이 사건을 굴절시키고 증폭ㆍ확대하는 데 큰 역할을 수행한 인터넷 여론이나 신문 방송이 더 이상 이를 비중 있게 다루지 않고 있다는 점이 이를 잘 말해준다. 하지만 법적인 처리가 이 사건의 종결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 사건이 제기하는 문제들에 대한 인식과 해결책의 모색은 지금부터 시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황우석 팀의 논문 조작과 언론 플레이, 그리고 노무현 정권의 천박한 과학기술 정책에 대한 엄정한 책임 추궁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하지만,1) 황우석 스캔들은 그것으로 환원될 수 없는 다양하고 복잡한 쟁점들을 품고 있다. 우리가 소개하려는 르쿠르의 책은 이 사건이 제기하는 문제들 전체를 정확히 해명하고 해결할 수 있게 해주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생명공학의 철학적ㆍ윤리적 함의들을 좀더 깊이 있게 파악할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서 매우 시의성 있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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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nbsp;도미니크 르쿠르(Dominique Lecourt, 1944-)라는 이름은 알튀세르의 사상에 친숙한 사람들에게는 낯설지 않은 이름이다. 그는 국내에 잘 알려진 에티엔 발리바르나 피에르 마슈레와 함께 알튀세르의 주요 제자이자 공동 연구자였던 사람이다. 발리바르가 역사유물론과 정치철학 분야를 담당하고 마슈레가 문예이론과 철학사 연구에서 많은 업적을 남겼다면, 르쿠르는 과학철학과 과학사 또는 현대 인식론 분야에서 많은 공헌을 했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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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nbsp;특히 그는 약관 20대에 바슐라르에서 시작하여 캉귈렘을 거쳐, 푸코와 알튀세르로 이어진 프랑스의 인식론 전통에 관한 고전적인 연구로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3) 이 작업이 알튀세르의 초기 문제설정에 따라 역사유물론의 한 분과로서 인식론을 체계화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바로 뒤에 출간된 &#985172;하나의 위기와 그 쟁점: 철학에서 레닌의 입장에 대한 시론&#985173;4)이나 &#985172;뤼센코. “프롤레타리아 과학”의 실제 역사&#985173;5) 같은 저작들은 “이론 안의 계급투쟁”이라는 알튀세르의 철학에 대한 새로운 정의에 따라 과학사 안에서 작동하고 있는 이데올로기적ㆍ정치적 쟁점을 분석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그리고 국가박사학위논문인 &#985172;질서와 유희L'ordre et les jeux&#985173;6)에서는 논리실증주의와 칼 포퍼, 비트겐슈타인에 대한 비판적 분석을 통해 “과잉유물론Surmat&eacute;rialisme”이라는 결론을 이끌어낸다.7) 이는 정통 마르크스주의에서 볼 수 있는 철학에 관한 이중의 테제, 곧 변증법(방법)에 대한 유물론(존재론)의 우위, 역사유물론에 대한 변증법적 유물론의 우위라는 테제 대신, 마르크스주의 철학의 핵심을 (이론에 대한 실천의 우위에 근거를 둔) 철학의 새로운 실천에서 찾으려는 알튀세리엥들의 시도를 집약적으로 표현해주는 개념이다.8)&nbsp;&nb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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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nbsp;알튀세르가 공적인 이론 무대에서 퇴장한 1980년대 이후에도 르쿠르는 이러한 관점에 입각하여 과학철학과 윤리학 분야에서 빼어난 저작들을 산출했다9). 90년대 이후 그는 주로 생명과학 분야의 비약적인 발전이 제기하는 이론적ㆍ윤리적ㆍ정치적 쟁점들을 다루는 데 몰두하고 있다. &#985172;공포에 반대하여&#985173;나 &#985172;다윈과 성경 사이에 있는 미국&#985173; 또는 &#985172;생명윤리와 자유&#985173; 등은 이러한 경향을 잘 보여주는 책들이다. 이러한 저작들 이외에도 그는 &#985172;과학철학과 과학사 사전&#985173;이나 &#985172;의학사상사전&#985173; 같은 집단 저작을 감수했는데10), 이 책들은 2000년대 프랑스 철학계가 배출한 주요한 성과 중 하나로 꼽을 만한 것들이다.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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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nbsp;20여권에 이르는 르쿠르의 저작 중에서 국내에 소개된 것은 &#985172;프랑스 인식론의 계보&#985173;와 &#985172;유물론, 반영론, 리얼리즘&#985173;(백의, 1996), &#985172;진보의 미래&#985173;(동문선, 2001) 정도니까, 충분히 소개되었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12) 이런 상황에서 르쿠르의 최근의 이론적 관심을 살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는 &#985172;인간복제논쟁&#985173;은 독자들의 아쉬움을 얼마간 덜어줄 수 있을 것 같다.&nbsp; 
&nbsp;&nbsp;&#985172;인간복제논쟁&#985173;은 2003년 프랑스에서 출간된 책으로13), 국내에서는 매스컴에 널리 소개되지 못했지만 르쿠르의 이론적 역량을 잘 보여주는 중요한 책이다. 원서로는 불과 150쪽 정도이고, 여백이 여유 있게 편집된 번역본으로도 180쪽 남짓한 이 책은 분량으로 평가할 수 없는 중요한 통찰을 여럿 제시해주고 있다. 특히 1990년대 이후 비약적인 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생명공학과 관련된 과학철학적ㆍ윤리학적 성찰을 담고 있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하지만 국역본 제목이 시사하듯이(책의 제목을 이렇게 붙인 이유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이 책이 ‘인간 복제’라는 한정된 주제를 다루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생명체 복제”, “인간 복제”라는 과학적인 현상을 소재로 삼되, 이러한 현상이 함축하는 철학적ㆍ정치적ㆍ윤리적 쟁점들을 포괄적으로 검토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nbsp; 
&nbsp;&nbsp;이 책에서 르쿠르가 제시하는 논점은 세 가지로 집약될 수 있다. 첫째, 생명공학을 비롯한 현대의 첨단과학과 연루되어 있는 이데올로기의 정체를 드러내는 것이다. 르쿠르는 첨단과학에 대한 과도한 공포나 열광은 사실 기독교 신학의 오래된 두 극단의 표현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둘째, 이러한 이데올로기의 이론적 기초로서 기술과 인간 본성이라는 개념을 해명하는 일이다. 기술에 대한 도구적 관점과 규범의 절대적 기초로서 인간 본성이라는 관점은 특정한 시기에 특정한 입장에 따라 형성된 관념들을 자명한 사실로, 또는 초역사적인 개념으로 오인하게 만듦으로써, 과학 및 기술의 역할과 의미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게 만든다. 셋째, 현대 과학에 대한 이러한 이데올로기적 왜곡과 오용이 낳는 윤리적ㆍ정치적 폐해를 막기 위해 적절한 윤리적 관점을 제시하는 일이다. 르쿠르는 관개체론(貫個體論)에 입각하여 규범의 발명이라는 해결책을 제시한다.&nb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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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현대의 기술신학: 생명 파멸론과 기술 낙관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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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nbsp;서론격인 &#65378;프롤로그&#65379;와 유나바머에 관한 부록 이외에 4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이중의 비판적인 목표, 이중의 투쟁 전선을 설정하고 있다.(하지만 이것들은 실제로는 하나의 동일한 대상이라는 점이 곧 드러난다.)&nb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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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nbsp;한편으로는 저자가 “생명 파멸론자들”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묵시록적인 관점에서 현대 생명공학은 결국 인간 본성을 파괴할 파멸의 길로 인도할 것이라고 고발한다. 이들은 심지어 생명공학 연구에 대해 뉘른베르크 재판에서 생겨난 “반인륜적 범죄”라는 개념을 동원하여 극단적인 비판을 제기하기까지 한다. 이들이 생명공학, 특히 인간 복제 연구를 두려워하고 그것에 분노하는 이유는 이러한 연구가 자연적인 생명의 질서를 파괴할 뿐만 아니라, 인간을 마음대로 조작하고 복제할 수 있는 사물의 수준으로 타락시킨다고 보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어떤 이들은 인간 복제는 한 개인과 동일한 사본, 동일한 클론들을 만들어냄으로써, 인간의 정체성과 인격의 동일성 자체를 혼란에 빠뜨리게 될 것이라고 우려한다. 가톨릭 교회나 다양한 분파의 생태론자들, 프랜시스 후쿠야마 같은 보수적인 정치학자만이 아니라 심지어 하버마스 같은 비판 철학자들까지도 공유하고 있는 이러한 관점은 생명공학이 낳을 수 있는 여러 가지 파멸적인 결과들에 관한 공포의 담론을 조장하면서, 절대적인 윤리적 가치를 통해 이를 통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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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nbsp;반대쪽에는 “기술 낙관론자들”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인공 지능 연구자들이나 로봇 공학자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는 이들은 생명 파멸론과는 정반대로 정보통신기술과 생명공학의 발전에서 인류 구원의 희망을 발견한다. 컴퓨터와 로봇 공학의 발전은 “인간에게 내재한 동물성과 우리 육신에서 비롯되는 죽음”(78쪽)의 한계를 극복하고 인간의 진정한 본질인 지능에 영생을 부여할 수 있는 방법을 제공해주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수학적으로 정의된 가상적인 생명체가 등장할 수 있는 인공적 조건을 창조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 인공 생명 연구자들은 멀지 않은 장래에 자기 자신을 조직화하고 복제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주위 환경에 다양하게 반응하는 “포스트 휴먼”으로서 로봇 종(種)을 만들어내리라는 기대에 부풀어 있다. “결국 2099년에 이르면 ‘인간의 사유는 인간이 만들어낸 지능을 가진 기계의 세계와 융합될 것이다. 인간이라는 개념조차 심각하게 변화할 것이다.’”(82쪽)&nbsp;&nbsp;&nbsp;&nb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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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nbsp;이 두 가지 관점은 인간의 장래에 대해 정면으로 대립하는 전망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전혀 상이한 뿌리에 근거를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르쿠르에 따르면 이 두 가지 관점은 실제로는 동일한 한 가지 경향을 보여준다. 그것은 바로 기독교 신학 전통, 더욱이 천년 왕국설에 자신의 이데올로기적 뿌리를 두고 있는 기술-신학적 운동이다. 생명 파멸론이 생명공학에서 신의 고유한 권능에 도전하는 인간의 무모하고 어리석은 “오만”(hybris)를 발견한다면14), 기술 낙관론은 오히려 신의 영광의 표현 및 원초적인 낙원으로 회귀하는 길을 본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전통 종교와 무관해 보이는 첨단 과학들이 실은 그 중에서도 가장 극단적인 천년왕국설의 이데올로기와 내밀하게 결합되어 있다는 인식은 이 책이 제시해주는 중요한 통찰 중 하나다.&nb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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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두 가지 쟁점: 기술과 인간 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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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nbsp;이 두 가지 관점이 생명공학을 비롯한 첨단 과학을 적합하게 인식하고 활용하는 데 큰 장애물이 된다는 점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러한 극단적인 기술신학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는 그리 만만한 과제가 아닌데, 왜냐하면 이는 이 두 가지 관점의 이데올로기적인 지주를 이루는 두 가지 통념, 곧 기술과 인간 본성이라는 통념에 대한 근본적인 쇄신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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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도구로서의 기술 대 구성적 조건으로서의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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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nbsp;르쿠르는 이러한 기술 신학은 기술에 대한 특정한 관점, 곧 도구로서의 기술이라는 관점에 의거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19세기의 실증주의 이래 오늘날 과학-기술에 대한 지배적인 관점을 형성하고 있는 이러한 입장은 인간과 기술의 관계가 외재적인 양상을 띠고 있다고 본다. 여기서 기술은 인간이 지닌 목적을 실현하는 수단이거나 과학적인 지식을 응용하기 위한 도구로 파악된다. 수단 내지 도구로서의 기술은 온전하게 통제할 수 있다면 아무런 문젯거리가 되지 않지만, 생명공학(및 정보공학과 로봇공학)의 발전은 기술이 인간의 통제를 벗어날 뿐만 아니라 심지어 인간 자신의 본성을 변형하고 파괴할 지경에까지 이르도록 만들었다.15) 그렇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이러한 기술의 반란, 도구의 반역을 저지하기 위한 반테크놀로지 혁명을 수행하는 길이다. “유나바머”로 더 잘 알려진 시어도어 카진스키가 실행한 일이 바로 이것이다.(&#65378;부록&#65379;) 르쿠르는 유나바머 사건은 증상으로서의 가치를 지닌다고 평가한다. 이는 두 가지 극단적인 기술 신학의 충돌이 어떤 결과를 빚을 수 있는지 잘 웅변해주기 때문이다. 더욱이 기독교 종말론에 근거를 둔 이러한 기술 신학이 또다른 종교적 극단, 예컨대 이슬람 근본주의와 충돌한다면, 그것은 훨씬 더 치명적인 결과를 낳게 될 것이다(이는 실제로 진행되고 있는 일이다).&nbsp;&nbsp;&nbsp;&nb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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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nbsp;르쿠르는 도구로서의 기술이라는 관점에 맞서 구성으로서의 기술이라는 관점, 곧 기술은 인간과 외재적인 관계를 맺지 않고 인간이 인간으로 성립하기 위한 조건 자체를 구성한다고 보는 관점을 옹호하고 있다(3장). 사실 구성으로서의 기술이라는 관점은 앙드레 르루아-구랑(Andr&eacute; Leroi-Gourhan)이나 질베르 시몽동(Gilbert Simondon) 같은 기술철학의 대가들이 제창한 이래 장 클로드 본(Jean-Claude Beaune)이나 베르나르 스티글러(Bernard Stiegler) 등과 같은 기술철학자들이 발전시켜온 프랑스 철학의 독특한(그리고 강력한) 전통 중 하나다.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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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nbsp;르쿠르가 본론에서 자세히 논의하고 있지 않지만, 이러한 관점은 인류의 발생에 대한 고고학적 증거 및 인간과 기술의 공진화 과정에 대한 분석과 더불어 인간의 개체화에 대한 존재론적 고찰에 의해 뒷받침된다. 르루아-구랑이 체계화한 고고학적 논의에 따르면 호미니드(hominid)가 유인원에서 분화하고 다시 호미니드에서 현생인류(homo sapiens)가 분화되는 과정에서 기술이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했으며, 이는 이후 인류의 문화가 진화하는 과정에서도 지속적으로 반복되었다.17) 다른 한편으로 질베르 시몽동은 개체화 이론을 통해 인간과 기술의 구성적 관계를 보여준다. 곧 인간은 주변 환경과 무관하게 미리 형성된 존재론적 단위가 아니라 다른 생물체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환경과의 끊임없는 교섭 작용에 의해 분화되고 개체화된다. 이러한 교섭에서 기술은 인간적인 환경을 구축하는 데 본질적인 수단이 될 뿐만 아니라, 그 자체로 그러한 환경을 이루고 있다. 따라서 기술적인 대상 역시 인간과의 상호 작용을 통해 독자적인 개체화 양식을 지니게 된다.18) 요컨대 구성으로서의 기술이라는 관점에 따르면 인간은 항상 이미 기술적 환경 속에서 실존해왔고 또한 앞으로도 계속 기술과 더불어 공진화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입장이 인간과 기술의 외재성을 상정하는 도구적 관점만이 아니라 그것에 함축되어 있는 인간 본성에 대한 관점 역시 거부할 수밖에 없으리라는 것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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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인간 본성론인가 관개체론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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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nbsp;또한 기술 신학은 인간 본성에 대한 특정한 관점 또는 인간 본성이라는 개념의 자명성을 전제하고 있다. 생명 파멸론이든 기술 낙관론이든 간에, 기술신학은 기술의 발전을 인간 본성의 문제와 결부시킨다. 전자는 과학기술의 발전이 (그대로 방치될 경우에는) 인간 본성을 파괴할 것이라고 믿는 반면, 후자는 인간 본성의 해방을 가져다줄 것이라고 믿는다는 점이 다를 뿐, 양자는 과학기술을 평가하기 위한 본질적인 척도로 인간 본성이라는 개념을 전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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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nbsp;사실 인간 복제 기술에 대한 비판가들, 특히 생명 파멸론자들의 역설은 극단적인 유전자 결정론에 입각하여 생명공학 및 인간 복제 연구를 비판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이 생명공학 및 인간 복제에 대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이러한 기술적 발전이 인간의 자연적 본성을 훼손할 뿐만 아니라 한 개인과 동일한 복제 인간을 만들어냄으로써, 결국 인간의 동일성을 치명적으로 파괴할 것이라는 점이다. 그러나 이는 복제 기술로 생겨난 사본이 원래의 인간과 정말로 동일하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으며, 이는 다시 유전적인 정보로 식별되는 한 개인의 유전적인 동일성이 그의 인간적인 동일성 전체를 규정한다는 점(또는 양자가 동일하다는 점)을 전제한다. 돌리의 탄생 이후 미디어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는 아인슈타인을 복제한다거나 죽은 가족의 성원을 그대로 복제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 역시 이러한 환상에 기초를 두고 있다.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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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nbsp;기술 낙관론자들 역시 인간 본성이라는 관념, 따라서 인간에 대한 본질주의적이고 환원주의적인 관념을 가정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인간은 동물과 하등 다를 바가 없으며 동물과 마찬가지로 유전자의 작용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 흔히 이야기되듯이 “침팬지의 유전자와 인간의 유전자는 99%가 똑같다”. 좀더 세련된 형태의 환원론은 사유를 컴퓨터의 모델에 따라 이해하기도 한다. 이는 두뇌의 모든 기능을 수학적 모델에 따라 원하는 정도의 과학적 정확성으로 설명하고, 이를 인공적으로 대체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하려는 인공 지능 이론가들에서 찾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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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nbsp;하지만 문제는 인간과 침팬지가 유전적으로 거의 동일하다는 것이 아니라 그처럼 유전적으로 유사함에도 불구하고 왜 인간과 침팬지는 그토록 다른 것인지를 설명하는 일이다. 인간 본성이라는 개념은 이러한 차이를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문제를 극단적인 두 가지 방식으로 해소시켜 버린다는 점에서 생명공학 및 첨단과학이 제기하는 쟁점들을 정확히 다루는 데 장애를 이룰 뿐이다. 다시 말해 이 개념에 의거할 경우 한편으로 인간 본성을 인간 종에게 부여된 선험적 자질로 간주하든가 아니면 이를 유전적 동일성으로 환원시켜 버리는 결과를 낳게 된다.&nb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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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nbsp;그러나 르쿠르가 잘 지적하고 있듯이 인간 본성이란 자연적인 사실이 아니며 초역사적인 보편성을 지닌 자명한 개념도 아니다. 오히려 이 개념은 전형적인 근대적 개념으로서, 중세의 신학적 기초를 대신하여 인간 행위의 규범적 기준을 제공해준다. 문제는 이 개념이 인간의 특성에 대한 과학적 인식과 부합하지 않을 뿐 아니라20) 가치나 규범에 대한 절대주의적 태도를 조장한다는 데 있다. 르쿠르는 생명윤리에 관한 담론들이 부정적이고 규제적인 방향 일변도로 진행되는 근본 이유를 바로 여기에서 찾고 있다.21)&nb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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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nbsp;이러한 관점에 맞서 르쿠르는 인간에 대한 관개체론적 관점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있다.22) 사실 기술에 대한 구성적 관점은 개인 또는 개체 일반에 관한 관개체론적 관점을 전제할 수밖에 없다. 관개체론의 요점은 다음과 같이 정리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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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nbsp;(1) 개체는 개체화 과정 이전에 독립적으로 성립하지 않으며 항상 개체화 과정의 (잠정적인) 결과로서 실존할 뿐이다. 따라서 선험적인 인간 본성과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으며, 자연적인 본성을 인공적인 또다른 본성으로 대체하는 것이 문제일 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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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nbsp;(2) 개체는 그의 환경을 이루는 다른 개체들과의 관계를 통해 비로소 하나의 동일성을 갖춘 개체로 성립하며, 바로 이 때문에 타자들을 자신의 동일성의 본질적인 구성 요소로 지니고 있다. 이러한 타자들은 반드시 인간 타자들로 국한되지 않으며, 자연적인 타자들이나 심지어 인공적인 타자들, 곧 기술적인 존재자들도 포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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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nbsp;(3) 가치 규범들은 환경과 교섭하는 인간의 생물학적 규준/규범에 뿌리를 두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생물학적 규준은 선험적이거나 불변적인 것이 아니라 환경과의 교섭 과정에 따라 변화하며, 따라서 절대적인 가치 규범들은 존재하지 않는다.&nb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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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nbsp;인간에 대한 관개체론적 이해는 과학적인 연구를 통해 밝혀진 인간의 가변성과 역동성을 인간에 대한 정의 속에 포함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불변적인 인간 본성을 가정하고 있는 기술 신학적인 관점보다 더 정확하게 인간의 위치를 개념화할 수 있게 해준다. 또한 선험적이거나 절대적인 가치 규범(예컨대 선의지라든가 타인에 대한 존중 같은)을 가정하지 않고서도 첨단 과학이 제기하는 윤리적 문제들에 대해 적절한 규범적 대응을 가능하게 해준다는 점도 관개체론적인 관점의 강점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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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생명공학 시대의 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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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nbsp;관개체론에서 인간은 욕망하는 존재로 나타난다. 하지만 이 때의 욕망은 선험적인 인간 본성을 옹호하는 사람들이 고발하듯이 탐욕이나 이기주의적인 본성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환경과의 상호 작용을 통해 실존하고 진화해가는 인간의 특성을 가리킨다. 르쿠르는 드니 디드로 대학(파리 7대학) 교수답게 18세기 프랑스 유물론의 대표자 중 한 사람이었던 디드로(Denis Diderot)의 사상에서 이러한 형태의 인간관을 발견하지만, 사실 이는 스피노자의 철학에도 완벽하게 부합하는 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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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nbsp;스피노자가 모든 자연 실재의 본질을 “코나투스”(conatus)로, 그리고 특히 인간의 본질은 “욕망”(cupiditas)로 정의한 것은 아도르노나 호르크하이머 등이 주장하듯이 일종의 소유적 개인주의를 옹호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또한 이는 들뢰즈/가타리가 1970년대에 제안한 프로이트 마르크스주의 모델이나 네그리의 스피노자 해석의 영향 아래 일부 이론가들이 주장하듯이 인간이 지닌 능동적 역량을 부각시키기 위해 제안된 것으로 보기도 어렵다. 이러한 두 가지 관점은 서로 대립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욕망으로서의 인간의 본질을 환경과 분리하여, 개인이 다른 개인들과 맺고 있는 구성적인 관계와 분리하여 사고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공통적이다. 곧 이기주의적인 탐욕으로 간주되든 능동적인 역량의 표현으로 해석되든 간에 두 가지 관점에서 욕망은 정의상 개인의 욕망으로 이해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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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nbsp;하지만 발리바르를 비롯한 최근의 스피노자 연구가 잘 보여주듯이23), 스피노자의 욕망에 대한 정의는 그의 철학의 관계론적 관점과 분리되어 이해될 수 없다. 다시 말해 인간의 본질이 욕망으로 정의된다면, 이는 우선 본질 개념에 대한, 그리고 개체의 개념에 대한 본질주의적 이해에서 탈피할 것을 전제하고 있다. 이 경우 욕망은 인간이 환경과 주고받는 영향의 인간학적 표현으로 이해할 수 있다. 스피노자 철학의 어휘로 말한다면, 인간을 비롯한 모든 실재, 모든 생명체는 자신의 환경으로부터 “변용되며affici”(영향받고), 또한 이러한 변용되기를 바탕으로 환경을 “변용한다afficere”(영향을 미친다)고 말할 수 있으며, 인간의 욕망은 일차적으로 이러한 변용되기/변용하기의 관계망의 표현이다. 그리고 이러한 변용(affectio)의 관계는 욕망과 기쁨, 슬픔, 사랑과 증오, 희망과 공포 등과 같은 정서들(affectus)로 변이되며, 이를 통해 각각의 개인은 자신의 동일성, 자신의 개성을 얻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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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nbsp;따라서 모든 개인은 존재론적 개체로 성립하는 과정에서 타자와의 변용 관계를 필연적으로 함축한다는 점에서 관계론적 또는 관개체적인 본성을 지니게 되며, 더 나아가 항상 이미 타인들과의 관계를 전제하고 있는 정서적 관계망(누구도 혼자서 기뻐하고 혼자서 슬퍼할 수 없으며, 더욱이 혼자서 사랑하고 증오하고 희망하거나 공포를 느낄 수는 없다)을 통해 자신의 동일성 내지 개성을 얻는다는 점에서, 가장 개인적이고 가장 내면적인 모습에서도 타인의 흔적을 포함하게 된다. 그렇다면 불변적이고 자연적인 인간 본성이라는 관념에 의거하여 생명 공학의 발전에 공포와 불안을 느끼거나 그것이 기존의 본성을 전혀 새로운 인공적 본성으로 대체시켜 줄 것이라고 환호하는 것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일인가 쉽게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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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nbsp;따라서 르쿠르는 인간 본성이라는 관념에 기초를 두고 있는 기존의 생명윤리 대신 관개체론에 입각하여 “규범의 발명”이라는 새로운 윤리적 관점을 제안한다. 이러한 관점은 인간의 고유한 능력, 곧 “자신이 고유한 인간으로 존재하는 방법을 끊임없이 재발견하는 능력”(64쪽)에 기초를 두고 있다. 물론 그가 제안하는 규범의 발명이라는 주장은 자의적으로 이런저런 윤리적 규범들을 만들어내자는 뜻은 아니다. 그보다 이는 윤리적, 사회적 규범들이란 어떤 초월적이거나 절대적인 기초에 근거를 두고 있는 것이 아니라 생명체로서 인간이 지니고 있는 생물학적 규준에 의거하고 있으며, 이러한 규준의 변화에 맞춰 변화될 수밖에 없고 또 변화되어야 한다는 점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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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nbsp;그렇다고 해서 이러한 관점이 생명 공학에 대한 낙관적 전망에 기초를 둔 일방적인 윤리적 승인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관개체론적인 관점에 따를 경우 인간 개인은 항상 이미 자기 안에 타자성을 포함하고 있으며, 이것은 정의상 양가성을 띠고 있다. 곧 이것은 인간에게 해롭고 악한 것일 수도 있고 유용하고 선한 것일 수도 있다. 따라서 윤리적 규범과 가치 판단의 문제는 외부 대상에 대한 규제나 금지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 내부에, 각각의 개인 내부에 존재하는 비인간적인 요소, 악의 요소를 어떻게 규제하고, 또 유용하고 긍정적인 요소들을 어떻게 발전시킬 것인가의 문제가 된다. 선과 악, 좋음과 나쁨은 그것들이 인간의 존재 자체와 동연적이라는 점에서 절대적인 관점에서는 제대로 해명되거나 해결될 수 없다. 악은 선과 마찬가지로(또는 폭력은 정의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존재 조건 자체의 일부인 것이다. 
&nbsp;
&nbsp;&nbsp;따라서 규범의 발명이라는 테제는 생명공학이 불러올 수 있는 치명적인 문제점들을 경계하고 대비하도록 요구하지만, 그에 앞서 인간의 특성 및 규범의 문제를 좀더 자연적이고, 좀더 적극적인 관점에서 파악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인간 복제 및 인공 지능 또는 인공 생명의 과학적 전망이 제시되는 시기에 이러한 관점은 과학기술과 윤리의 내재적 관계를 정확히 파악하기 위한 이론적 지주로 삼을 만하다.&nbsp;&nbsp; 
<BR>
4. 이론적 과제와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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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nbsp;내가 볼 때 이 책의 첫 번째 장점은, 생명공학 기술의 발전을 17세기 과학혁명 이래 서양의 기술ㆍ과학적 발전의 과정 속에 위치시켜 고찰하고 있으며, 왜 그러한 고찰이 이 문제를 
정확히 파악하는 데 결정적인 중요성을 지니고 있는지 잘 보여준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국내에 소개된 생명 복제나 인간 복제에 관한 대부분의 저술들은 현재의 맥락에서 전개되는 쟁점들을 다루고 있으며, 이에 따라 피상적인 현상 기술에 그치든가 아니면 맹목적인 편들기(가령 생명공학은 과학기술 발전의 신기원인가 인류의 재앙인가, 인간은 유전자에 의해 결정되는가 아니면 환경적 요인에 의해서도 영향을 받는가, 또는 본래적인 자유의지를 갖는가, 배아는 인격체인가 아닌가, 인간은 다른 동물들과 마찬가지로 본능적인 존재일 뿐인가 인격의 존엄성을 가진 존재인가 등)를 부추기는 경향이 있다. 반면 이 책은 넓은 역사적 시야와 신선하고 깊이 있는 철학적 성찰로 문제를 조망하면서 현재의 문제가 어떻게 오래된 신학적ㆍ철학적 쟁점들과 결부되어 있는지 보여준다.&nbsp;&nbsp; 
&nbsp;
&nbsp;&nbsp;더 나아가 이 책은 이 문제를 적절한 방향에서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기술이나 인간 본성에 대해 지니고 있는 익숙한 관념들이 개조되어야 하고 특히&nbsp; 윤리에 대한 우리의 관점이 바뀌어야 한다는 점을 설득력 있게(물론 내가 볼 때) 보여주고 있다. 생명윤리에 대한 대개의 논의가 이러한 존재론적ㆍ인간학적 기초에 대한 검토 없이 특정한 윤리적 관점에 의거하여 규제적이거나 금지하는 대안들을 내놓는 데 그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르쿠르의 제안이 얼마나 대담하고 파격적인 것인지 잘 알 수 있다. 이는 과학철학과 과학사 분야에서 오랫동안 연구하고 이를 윤리적ㆍ정치적 문제와 결부시켜 사고해온 저자와 같은 사람이 아니라면 쉽게 제기할 수 없는 주장이다.&nbsp;&nbsp;&nbsp; 
&nbsp;
&nbsp;&nbsp;그동안 국내에는 소개되지 못했던 프랑스 과학철학 및 기술철학의 한 가지 관점을 엿보게 해준다는 점도 이 책이 지닌 또다른 미덕이라고 할 수 있다. 마르크스주의 연구자들에게 기술의 문제는 그동안 이론적 공백으로 남아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기계에 관한 마르크스의 언급에 주목하는 연구자들이 있었지만, 대개의 경우는 프랑크푸르트 학파를 중심으로 전개된 소외론 또는 도구적 합리성의 관점에서 (부정적으로) 취급되거나 아니면 경제사회학이나 경제사 분야의 부차적인 논의 주제로 간주되어 왔다.24) 가령 과학기술혁명(이른바 “극소전자혁명”)이 생산구조와 노동자 계급의 지위를 어떻게 변화시키고 있는가를 둘러싼 논쟁 같은 것이 한 가지 사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반면 이 책은 구성적 기술론에 입각하여25) 기술이 사회구조 및 인간의 진화에서 차지하는 역할을 좀더 적극적으로 인정하고 있는데, 첨단 과학기술에 대한 좀더 정확한 논의를 위해서는 꼭 필요한 태도라고 평가하고 싶다.&nbsp;&nbsp; 
&nbsp;
&nbsp;&nbsp;하지만 르쿠르 책은 (적은 분량의 저작에서는 불가피한 일이기는 하지만) 몇 가지 공백을 남겨놓고 있다. 우선 &#985172;인간 복제 논쟁&#985173;에는, 한 논평자가 지적하듯이, 현대 과학의 본질적인 특징 중 하나인 사회 경제적 조건에 관한 논의가 빠져 있다.26) 특히 생명공학과 관련된 핵심 쟁점 중 하나가 특허권을 둘러싼 국가들 사이의, 거대 기업들 사이의 경쟁이며, 이에 따른 자본에 대한 과학연구의 예속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는 간과해서는 안될 공백이다. 
&nbsp;
&nbsp;&nbsp;하지만 이러한 공백은 단순한 부주의로 보기는 어려우며, 좀더 내재적이고 심층적인 또다른 공백과 연결되어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이는 근대 과학기술에 고유한 발전(또는 “진화”)의 동역학과 자본주의의 경제적 동역학 사이의 연관성은 무엇인가라는 문제다. 마르크스주의 전통에서 과학기술은 대개 생산력의 일부로 간주되었을 뿐, 자신의 고유한 발전 내지 진화의 메커니즘을 갖춘 체계로 인식되지 않았다. 하지만 기술이 존재론적 차원에서 인간의 존재 자체의 구성적인 조건을 이루고 있고 인간의 진화 과정과 긴밀한 상호연관 속에서 함께 진화되어 왔다면, 기술은 단순히 도구나 수단으로 간주될 수 없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경제의 종속 변수 내지 생산력의 일부로 치부되기도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면 기술의 메커니즘과 자본주의 경제의 동역학이 맺고 있는 관계는 어떤 것인가? 이는 분명 쉽게 답변하기 어려운 질문이지만 또한 과학과 기술, 경제가 맺고 있는 상호연관성을 이론적으로 인식하기 위해서는 우회할 수 없는 쟁점이라는 것은 분명하다.27)&nbsp; 
&nbsp;
&nbsp;&nbsp;또한 르쿠르의 작업은 생체정치(biopolitique)의 문제설정으로 보충될 필요가 있다. 르쿠르는 이 책을 명시적으로 생체정치 또는 생체권력의 문제설정과 연결시키고 있지만(26쪽), 이를 구체적으로 이론화하지는 않고 있다. 푸코가 자신의 후기 작업, 특히 콜레주 드 프랑스 강의록들에서 발전시킨 생체권력28) 개념은 규율권력이 개인의 신체를 대상으로 하는 데 비해 대중으로서의 인구 또는 “종(種)으로서의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권력을 의미한다. 따라서 생체권력 또는 생체정치는 미시적인 차원에서 수행되는 규율권력의 실행공간을 마련해주는 (일종의) 거시권력으로 볼 수도 있다. 생체정치는 생명체로서의 인간들의 생명을 규제하는 것을 자신의 고유한 과제로 삼는다. 건강과 질병의 문제나 공중위생 같은 보건복지 및 의료정책에 관한 일만이 아니라 인구조사 및 출산율과 사망률, 평균 수명 등과 같은 인구정책 전반이 생체정치의 주요 과제가 된다. 이런 의미에서 생명공학의 문제가 함축하는 윤리적ㆍ정치적 쟁점들은 생체정치의 문제설정에서 다룰 필요가 있다.&nbsp;&nbsp;&nbsp;&nbsp;&nbsp;&nbsp; 
&nbsp;
&nbsp;&nbsp;우리가 지적한 이러한 공백들은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쟁점들이며, 생명공학을 비롯한 첨단과학들의 문제를 좀더 포괄적이면서 구체적으로 다루기 위해서는 상호 연관성 속에서 취급되어야 할 문제들이다.29) 이렇게 볼 때 르쿠르의 책은 좀더 진전된 연구를 위한 일종의 “서론”으로 읽는 게 마땅할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이 책이 지니는 가치가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좀더 폭넓은 역사적ㆍ철학적 관점에서 생명공학을 비롯한 첨단과학이 제기하는 문제들을 인식하고 싶어 하는 독자들에게 &#985172;인간 복제 논쟁&#985173;은 귀중한 길잡이가 되어 줄 것이다. 조만간 좀더 많은 르쿠르의 저서들이 번역되고 그의 연구가 앞으로 좀더 체계화되길 기대하는 것이 필자 혼자만은 아닐 것이다.&nbsp;&nbsp;&nbsp;&nbsp;&nbsp;&nb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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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nbsp;&#985172;진보평론&#985173; 26호(2005년 겨울)는 황우석 스캔들의 초기 쟁점이었던 난자제공의 윤리적 문제와 연구 윤리 문제를 중심으로 “생명공학과 민중운동의 새로운 과제”를 특집으로 다루고 있고, &#985172;인물과 사상&#985173;은 “한국 사회를 발가벗긴 황우석 신화”라는 제목 아래 PD수첩 보도를 통해 드러난 한국 언론의 과학보도 관행의 문제점을 조명하고 있다.&nbsp; <BR>
2)&nbsp;1983년 사망한 미셸 페쇠는 담론 분석과 이데올로기의 관계를 해명하는 작업을 수행했다. La v&eacute;rit&eacute; de la Palice, Maspero, 1975; (avec Fran&ccedil;ois Gadet), La langue introuvable, Maspero, 1983.&nbsp;
3)&nbsp;이 연구는 국내에도 번역되어 있다. &#985172;프랑스 인식론의 계보&#985173; 박기순 옮김, 새길, 1995 참조. 그 외에도 그는 바슐라르의 과학철학과 시학 사이의 이론적 모순을 해명하고 있는 &#985172;바슐라르, 낮과 밤Bachelard, le jour et la nuit&#985173;, Grasset, 1974라는 책을 펴내기도 했다.&nbsp;
4) Une crise et son enjeu: Essai sur la position de Lenine en philosophie, Maspero, 1973; 국역본은 &#985172;유물론ㆍ반영론ㆍ리얼리즘&#985173; 이성훈 편역, 백의, 1996의 1부에 수록되어 있다.<BR>
5) Lyssenko: Histoire r&eacute;elle d'une “science prol&eacute;tarienne”, Maspero, 1976.
6)&nbsp;Grasset, 1980.&nbsp;
7)&nbsp;여기서 “과잉sur-”은 교의나 이론으로 고착화된 종래의 철학적 실천에 맞서 이론(으로서의 유물론)에 대한 실천의 우위를 강조하기 위해 사용된 일종의 대체보충이다. 이 개념은 또한 바슐라르의 “surrationalisme”, 곧 “과잉합리주의”에 준거하면서 동시에 그것이 함축하는 관념론적 한계를 정정하려는 시도로 간주될 수도 있다.
8)&nbsp;D. Lecourt, “Pour une philosophie sans feinte(Vers le sur-mat&eacute;rialisme)”, in L'ordre et les jeux; P. Macherey, “Sur l'histoire de la philosophie consider&eacute;e comme lutte des tendances”, in Histoires de dinosaure: Faire de la philosophie 1965-1997, PUF, 1997; E. Balibar, Lieux et noms de la v&eacute;rit&eacute;, Aube, 1994 참조.&nbsp;
9)&nbsp;르쿠르는 &#985172;인간 복제 논쟁&#985173;에서도 여전히 이러한 철학적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137쪽 참조.
10) Dictionnaire d'histoire et philosophie des sciences, PUF, 1999; Dictionnaire de la pens&eacute;e m&eacute;dicale, PUF, 2004.&nbsp;&nbsp;
11)&nbsp;그 외에 르쿠르는 “디드로 포럼Forum Diderot”이라는 대중교양강좌를 주재하면서, 다른 전문가들과 함께 생명과학 분야의 쟁점들을 대중에게 소개하는 작업도 진행하고 있다. 특히 Faut-il vraiment cloner l'homme?, PUF, 1998; La bio&eacute;thique est-elle de mauvaise foi?, PUF, 1999; Les m&eacute;decins doivent-ils prescrire des drogues?, PUF 2000 등 참조.&nbsp; 
12)&nbsp;하지만 &#985172;진보의 미래&#985173;는 최악의 번역본 중 하나로 꼽을 수 있을 만큼 번역이 엉망인 책이므로 주의하기 바란다.&nbsp;&nbsp;
13)&nbsp;이 책의 원제는 “Humain, posthumain: La technique et la vie”이고, 르쿠르 자신이 감수하는 “과학, 역사, 사회Science, Histoire et Soci&eacute;t&eacute;”라는 총서의 한 권으로 프랑스대학출판부(PUF)에서 출간되었다.<BR>
14)&nbsp;이는 17세기 이래 또는 19세기 말이래 과학-기술 복합체를 형성해온 근대 과학에 대해 지속적으로 제기되어온 비판이다. 르쿠르는 이전 저작에서 파우스트(악마와의 계약)와 프랑켄슈타인(괴물의 발명)이라는 문학적 형상을 통해 과학에 대한 공포의 상상적인 기초를 검토한 바 있다. D. Lecourt, Prom&eacute;th&eacute;e, Faust, Frankenstein, Synth&eacute;labo, 1996 참조.&nbsp;&nbsp;&nbsp;&nbsp;&nbsp;&nbsp;
15)&nbsp;기술에 대한 이러한 관점은 “도구적 이성” 개념을 발전시킨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전통에서도 볼 수 있다. 
16)&nbsp;이들의 저작은 국내는 물론이거니와 프랑스 바깥에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은데, 데리다와 스티글러의 대담집에서 이러한 기술철학 전통의 면모를 약간이나마 살펴볼 수 있다. 자크 데리다ㆍ베르나르 스티글러, &#985172;에코그라피&#985173; 김재희ㆍ진태원 옮김, 민음사, 2002 참조. 르루아-구랑의 연구는 초기 데리다의 작업, 특히 &#985172;그라마톨로지에 관하여&#985173;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nbsp;
17)&nbsp;Andr&eacute; Leroi-Gourhan, Le Geste et la Parole, tome 1-2, Albin Michel, 1964-65; B. Stiegler, La technique et le temps, tome 1, Galil&eacute;e, 1994 참조. 
18)&nbsp;Gilbert Simondon, Du mode d'existence des objets techniques, Aubier, 2001 참조.&nbsp;&nbsp;&nbsp;
19)&nbsp;이러한 오류에 대한 비판으로는 르원틴의 글에 필적할 만한 것이 없다. 리처드 르원틴, &#65378;복제에 관한 혼동&#65379;, 그레고리 펜스 엮음, &#985172;인간 복제, 무엇이 문제인가&#985173; 류지한 외 옮김, 울력, 2002.&nbsp;
20)&nbsp;생명공학을 비롯한 현대의 첨단 과학들이 사람들에게 불러일으키는 두려움이나 당혹감은 이러한 괴리의 한 가지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nbsp;<BR>
21)&nbsp;&#985172;인간 복제 논쟁&#985173;에서는 “규제하고 금지하는 규율”로 이해된 생명 윤리의 불모성을 지적하는 데 그치고 있으나, 2004년에 출간된 악셀 칸과의 대담집에서는 이 문제에 관해 좀더 부연하고 있다. Axel Kahn &amp; Dominique Lecourt, Bio&eacute;thique et libert&eacute;, PUF, 2004 참조.<BR>
22)&nbsp;시몽동에서 유래한 “관개체론”(transindividualisme)에 대해서는 에티엔 발리바르, &#65378;스피노자에서 개체성과 관개체성&#65379;, &#985172;스피노자와 정치&#985173; 진태원 옮김, 이제이북스, 2005 참조.&nbsp;&nbsp;
23)&nbsp;발리바르, 앞의 글 참조. 우리는 프랑스를 중심으로 한 현대 스피노자 연구를 비판적으로 검토하면서 관계론적인 관점에서 스피노자 철학을 해석하려고 시도한 바 있다. 진태원, &#985172;스피노자 철학에 대한 관계론적 해석&#985173;(서울대학교 철학과 박사학위 논문, 2006) 참조.&nbsp;<BR>
24)&nbsp;그러나 미국의 기술철학자인 앤드류 펜버그는 서구 마르크스주의 전통과 프랑스 기술철학의 전통(특히 시몽동의 작업)을 접목시키려는 흥미있는 시도를 전개하고 있다. Andrew Feenberg, Critical Theory of Technology, Oxford University Press, 1991; Alternative Modernity: the Technical Turn in Philosophy and Social Theory,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1995 등 참조.&nbsp;&nbsp;
25)&nbsp;이는 80년대 이후 프랑스 출신의 브뤼노 라투르나 미셸 칼롱 및 영미의 과학/기술 사회학자들을 중심으로 제시된 이른바 과학과 기술의 “사회적 구성론”(social constructionism)과는 약간 다른 입장(양자가 대립한다고 볼 수는 없겠지만)이다. 
26)&nbsp;Axel Kahn &amp; Dominique Lecourt, Bio&eacute;thique et libert&eacute;, op. cit., p. 51.&nbsp;&nbsp;&nbsp;
27)&nbsp;이 점과 관련하여 가장 앞서 있는 사람은 베르나르 스티글러다. 특히 B. Stiegler, De la mis&egrave;re symbolique, tome 1-2, Galil&eacute;e, 2004; M&eacute;cr&eacute;ance et discr&eacute;dit: tome 1, La d&eacute;cadence des d&eacute;mocraties industrielles, Galil&eacute;e, 2005 참조.&nbsp;&nbsp;&nbsp;
28)&nbsp;&#985172;“사회를 보호해야 한다”&#985173; 박정자 옮김, 동문선, 1998; S&eacute;curit&eacute;, territoire, population: Cours au Coll&egrave;ge de France (1977-1978), Seuil, 2004; Naissance de la biopolitique: Cours au coll&egrave;ge de France (1978-1979), Seuil, 2004 참조. 이에 관한 평주로는 특히 Jean-Claude Zancarini ed., Lectures de Michel Foucault, ENS Editions, 2000 참조.
29)&nbsp;또는 역으로 이러한 고찰을 통해서만 생체정치의 문제설정 내에 존재하는 이단점들에 대한 좀더 정확한 인식이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가령 기술(적 진화)에 대한 관점의 부재에서 생체정치와 관련된 아감벤 작업의 이론적 한계 내지 공백 중 하나를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는 그가 하이데거를 철학적 준거로 삼고 있다는 점과도 무관하지 않다. G. Agamben, Homo Sacer, Stanford University Press, 1997 참조.&nbsp;]]></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59/42/cover150/898904720x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904720X</link></image></item><item><author>바라</author><category>찌라시의 문서 창고</category><title>[퍼온글] 스피노자 철학에 대한 관계론적 해석 - 철학논구 </title><link>http://blog.aladin.co.kr/vara/1083306</link><pubDate>Tue, 20 Mar 2007 18:3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vara/1083306</guid><description><![CDATA[이 글은 서울대학교 철학과에서 내는 [철학논구]라는 학술지에 실린 글입니다.
[철학논구]는 사실 뭐 엄밀한 의미로 보면 학술지라고 하기는 좀 어렵고,
대개 석박사 학위 논문의 요약문을 많이 싣는 간행물이죠.
실질적인 학술지는 [철학사상]이라는 다른 학술지구요. 
이 글은 제 학위논문의 서론과 결론 내용을 대충 요약해서 만든 글입니다.
원고 마감일을 깜빡 했다가 하룻 저녁에 부랴부랴 만들었으니, 
사실 독립적인 논문으로 볼 수 없는 글입니다.
그런데 왜 이걸 올리냐구요? 어떤 학생이 이 글을 돈 주고 인터넷에서 다운받았다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검색해보니까 KSI라는 국내 학술 데이터베이스에서
3천원 넘는 가격으로 팔고 있더군요. 다른 사람들도 혹시 비싼 돈 주고 다운 받을까봐
겁나서 여기 올립니다. 
돈 주고 다운받지 마세요. ^^;
&nbsp;
&nbsp;
철학논구, 33권, 단일호, 시작쪽수 83p, 전체쪽수 26p<BR>
<!--StartFragment-->&nbsp; 
스피노자 철학에 대한 관계론적 해석 <BR>
<BR>
Ⅰ. 스피노자 철학에 대한 전통적 해석: 범신론 
<BR>
다른 모든 철학들과 마찬가지로 스피노자의 철학 역시 해석의 역사, 그 영향의 역사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어떤 의미에서 스피노자의 철학은 그 해석의 역사, 영향사 안에서만 식별되고 존립할 수 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스피노자 철학에 대한 연구, 더욱이 그의 체계를 포괄적으로 재구성해보려고 시도하는 연구는 반드시 그 해석의 역사에 대한 재해석과 평가를 포함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그 연구가 주장하는 관점의 독자성은 사실은 주관적인 오해와 착각에 머무르거나 아니면 이전에 제시되었던 이러저러한 해석을 진부하게 되풀이하는 함정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우리가 이 논문에서 스피노자 철학에 대한 관계론적 해석을 제안하면서, 범신론적 해석과 역량론적 해석이라는 스피노자 철학에 대한 두 가지 주요한 해석의 흐름에 대한 비판적 분석을 우리 논문의 본질적인 일부로 삼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전통적으로 스피노자의 철학은 범신론 철학으로 알려져 왔다. 곧 스피노자는 유대-기독교 전통에서 볼 수 있는 인격적인 초월신 개념을 거부하고 그 대신 자연 중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들과 신을 동일시하는 철학 체계를 구축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범신론pantheism”이라는 용어를 고안하고 스피노자 철학을 범신론 철학으로 규정한 것은 18세기 초 영국의 종교개혁가였던 존 톨랜드John Toland였지만1), 이러한 규정은 레싱이 스피노자주의자인지 아닌지를 둘러싸고 전개된 프리트리히 하인리히 야코비Friedrich Heinrich Jacobi와 모제스 멘델스존Moses Mendelssohn의 논쟁을 통해 철학사적 영향력을 획득하게 된다.2) 야코비는 스피노자의 철학을 옹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것을 철학 일반과 동일시하고 다시 이를 기계론적 숙명론/허무주의/무신론과 동일시함으로써, 구원을 위해서는 철학이 아닌 신앙에 의지해야 한다는 점을 역설하기 위해 스피노자의 철학을 활용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야코비의 저서는 스피노자의 철학을 독일 철학의 중심부로 도입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했으며, 야코비가 규정한 스피노자의 범신론과의 대결은 이후 독일 관념론의 중심 화두 중 하나가 되었다. 그리고 이렇게 해서 형성된 범신론으로서의 스피노자 철학이라는 관점은 독일 관념론의 영향력에 편승하여 19세기 이래 서양 철학사에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했다.3) 
범신론적 해석은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스피노자 연구가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미쳤지만, 20세기 후반에 들어서는 그 이론적 영향을 상당히 상실했다. 범신론적 해석은 스피노자 철학에 대한 내재적이고 엄밀한 연구에 기반을 두고 있다기보다는 헤겔을 비롯한 몇몇 대가들의 (얼마간 편파적인) 독해에서 발원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러한 영향력의 쇠퇴는 어떻게 보면 당연한 귀결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관점이 여전히 대중적인 영향력을 지니고 있는 데다가 우리가 뒤에서 살펴볼 역량론적 관점은 전체적으로 볼 때 범신론적 해석과의 대결을 통해 자신의 입장을 형성해왔기 때문에, 역량론적 해석의 이론적 입장을 좀더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범신론적 해석의 주요 특징을 검토해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스피노자 철학에 대한 범신론적 해석은 세 가지의 이론적 특징을 지니고 있다. 
<BR>
1. 실체의 부동성 
범신론적 해석은 스피노자의 실체를 철학사에서 보기 드문 절대자에 대한 사변적 표현으로 간주한다. 곧 자신과 다른 타자들을 갖고 있지 않으며 다른 어떤 것으로부터 생산되지 않고 자기 자신에 의해 산출되는 자기원인으로서 스피노자의 실체는 순수한 실정성positivity의 개념 그 자체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처럼 실체를 절대적으로 실정적인 존재자로 제시함으로써 동시에 그 대가로, 실체를 아무런 운동도 인과작용도 수행하지 않는 정태적 존재자로 간주하게 된다. 운동은 변화를 상정하며 변화는 타자성과 부정성을 전제하고 있는 데 반해, 이러한 실체는 절대적으로 실정적이라는 그 이유 때문에 아무런 타자성과 부정성도 지니고 있지 않으며, 이는 결국 실체를 정태적인 것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따라서 실체는 절대적으로 실정적이면서도 아무런 운동, 아무런 변화도 수행할 수 없는 부동적이고 불활성적인 존재자라는 자기모순에 빠져 있다.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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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유출론적 체계인 스피노자 철학 
범신론적 해석은 이처럼 실체가 태초에 정립된 부동적인 절대자이기 때문에 스피노자 철학은 또한 유출론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고 간주한다. 이미 절대적으로 완성되고 충만한 실체가 존재하므로 남은 것은 이러한 실체로부터 내려오는 존재론적 하강의 운동뿐이라는 것이다. 가령 헤겔은 &#985172;윤리학&#985173; 서두에 나오는 실체(자기원인), 속성, 양태들에 대한 정의는 이러한 하강의 운동이 이루어지는 순서를 가리킨다고 주장한다. 곧 자기원인인 실체가 절대적으로 충만한 존재자를 가리킨다면, 속성들은 실체의 본질을 표현하는 주관적 관점(따라서 이미 실체에 대해 외재적이고 부차적인 관점)을 지칭하고, 양태들은 다시 이것들보다 훨씬 더 존재론적인 실재성을 결여한, 사실은 거의 아무런 실재성도 지니지 않는 존재자들을 나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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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양태의 비실재성과 주체성의 부재 
이처럼 양태들이 존재론적 실재성을 지니고 있지 않기 때문에 스피노자 철학에는 아무런 주체성의 여지도 존재하지 않으며, 인간을 비롯한 개별 존재자들은 자유는커녕 실재성을 박탈당하고 만다. 스피노자 철학에는 이중적인 측면에서 주체성이 부재한다. 우선 실체는 내적 부정성의 계기를 결여한 부동적인 존재자이기 때문에 주체로 간주될 수 없다. 또한 인간들은 자연의 필연적 질서의 일부에 불과하므로 자유의 가능성을 부정당하고 주체성도 결여하게 된다. 따라서 스피노자 철학은 데카르트의 사유와 연장, 정신과 신체의 이원론을 실체의 일원론을 통해 극복하려는 이론적 시도의 산물이지만, 데카르트가 확립해 놓은 주관성의 철학을 거부한 대가로 능동성과 자유의 여지를 전혀 남겨놓지 못한 것으로 간주된다.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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Ⅱ. 범신론에서 역량론으로: 현대 스피노자 연구의 한 경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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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노자 연구의 역사에서 20세기 후반은 매우 뜻깊은 시기로 평가할 만하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스피노자 저작의 고증본 전집들이 출간되면서6) 왕성하게 전개되었다가 2차 대전을 거치면서 거의 고사 직전에 이르렀던 스피노자 연구는 1960년대 이후 양적인 측면에서만이 아니라 질적인 측면에서도 비약적인 발전을 이룩했다. 이는 일차적으로 마르샬 게루Martial Gueroult나 질 들뢰즈, 알렉상드르 마트롱Alexandre Matheron 같은 스피노자 연구의 대가들이 1968년-69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잇달아 스피노자 연구에서 한 획을 긋는 대작들을 출간하면서 가능해진 일이다. 이들은 각자 상이한 이론적 스타일을 지니고 있고 연구 주제에서도 차이를 지니고 있긴 하지만7), &#985172;윤리학&#985173;을 비롯한 &#985172;신학정치론&#985173;과 &#985172;정치론&#985173;같은 성숙기의 대표작들을 중심으로 스피노자 철학에 대한 엄밀한 학문적 독해의 전통을 확립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이들의 선구적인 작업은 1980년대 이래 좀더 심화된 문헌학적ㆍ분석적 연구들로 계승되었고 더 나아가 새로운 스피노자 고증본 전집의 출간8)의 이론적 촉매 역할을 담당했다는 점에서 현대 스피노자 연구의 기념비적 업적으로 널리 인정받고 있다. 범신론과 대비해 볼 때 이들의 이론적 특징은 다음과 같이 집약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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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역동적 원인인 실체 
우선 이 관점은 스피노자의 신 또는 실체를 부동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범신론과 달리, 실체는 본질적으로 역동적이라고 주장한다. 이들에 따르면 이는 &#985172;윤리학&#985173;이 “자기원인”에 대한 정의에서 시작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미 잘 드러난다. 더욱이 신은 무한하게 많은 실재들을 무한하게 많은 방식으로 생산한다는 점을 증명하고 있는 1부 정리 16이나 신의 본질과 신의 역량을 동일시하는 1부 정리 34에서 신 또는 실체의 동역학적 본성은 좀더 뚜렷하게 나타난다. 따라서 범신론적 해석은 관념론과 어깨를 겨룰 수 있는 역동적인 실체의 철학인 스피노자 철학의 잠재력에 대한 (무의식적인) 두려움의 발로이자 체계적인 왜곡이라는 것이 이들의 평가다.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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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유한 양태들의 존재론적 근거인 실체의 역량 
그러나 이러한 신의 절대적 역량 때문에 양태들, 특히 독특한 실재들로서의 유한 양태들은 아무런 내재적 역량이나 능동성을 지닐 수 없는 것 아닌가? 범신론적 해석은 이런 이유로 스피노자의 철학을 유출론 철학으로 해석했다. 하지만 들뢰즈, 마트롱, 마슈레 등과 같은 새로운 스피노자 연구의 대표자들은 이러한 해석을 정면으로 거부한다. 왜냐하면 스피노자를 유출론의 철학자로 간주하기 위해서는 실체와 속성, 양태 사이에 상호 외재적인 관계가 성립해야 하지만, 스피노자 철학에서 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곧 속성들은 실체의 본질을 (객관적으로) 표현하며, 그런 한에서 실체와 외재적인 관계를 맺을 수 없다. 마찬가지로 양태들은 실체 안에 존재하며, 바로 그런 이유로 실체에 대해 외재적이지 않다. 
그리고 이들은 실체가 절대적인 인과역량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이 유한 양태들의 능동성이나 인과적 역량을 배제하기는커녕 오히려 그것의 존재론적 기초를 제공해준다고 주장한다. 가령 우리가 이 논문에서 여러 차례에 걸쳐 다루게 될 들뢰즈는 스피노자의 철학을 “표현주의”로 규정하면서 이러한 해석의 가능성을 옹호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실체는 “자기 자신을 표현하는 것”, 원초적이고 절대적인 역량을 아무런 제약 없이 표현하는 것이며, 각각의 양태들은 이러한 실체의 본질을 양태의 수준에서 이어받아 다시 표현한다. 곧 양태들은 각자 원인으로서 어떤 결과들을 생산해낸다(E I, p.36). 양태들이 지닌 이러한 능동성, 원인으로서의 역량은 그것들이 실체의 절대적인 역량을 표현한다는 사실에 존재론적으로 의거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실체의 절대적 역량, 원초적인 자기 표현은 양태들의 능동성을 배제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가능하게 해준다는 것이 들뢰즈를 비롯한 역량론적 주석가들의 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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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윤리적ㆍ정치적 실천의 기초로서 역량 
유한 양태에 속하는 인간의 윤리적ㆍ정치적 실천 역시 이러한 실체의 절대적 역량에 근거를 두고 있다. 범신론적 해석가들이 지적하듯이 스피노자에서 인간을 비롯한 모든 개별 실재들은 유한한 양태라는 지위를 부여받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유한) 양태는 다른 것 안에 존재하고 다른 것에 의해 인식된다는 점에서(E I D5) 존재론적으로 비자립적이다. 하지만 범신론적 해석에서 생각하듯이 존재론적 비자립성이 실존과 행위의 차원에서 양태들의 자율성과 능동성의 여지를 박탈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러한 존재론적 비자립성, 의존성은 양태들의 역량의 원천 자체가 된다. 
들뢰즈와 마트롱을 비롯한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연구자들은 스피노자의 저작, 특히 &#985172;윤리학&#985173; 3, 4, 5부 및 &#985172;신학정치론&#985173;과 &#985172;정치론&#985173; 등에 대한 세심한 분석을 통해 이 문제에 체계적으로 답변하려고 시도했다. 이들의 논의의 요점은 인간은 자연적인 실존 조건 속에서는 수동적이고 예속적인 삶을 살아가지만, 원초적으로 부여받은 본질, 곧 자기 보존의 역량(스피노자의 “평행론” 또는 심신 동일성론에 따를 경우 이는 신체의 행위역량이면서 동시에 정신의 인식역량이다)에 의거하여 이러한 조건을 개선해나갈 수 있다는 점이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이 주석가들은 우리의 행위 역량을 증대시키는 기쁨이라는 정서와 이러한 역량을 능동적인 역량으로 구성할 수 있게 해주는 “공통 통념notio communis”이라는 개념에 큰 중요성을 부여하고 있다. 
요약하자면 1960년대 말 이후 새롭게 전개된 스피노자 연구는 이전의 범신론적 해석에 맞서 스피노자는 범신론 철학자가 아니라 “역량의 철학자philosophe de la puissance”10)라는 점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런 점을 감안하여 우리는 이들의 입장을 “역량론puissantialisme”으로 부르고자 한다. 역량론이라는 명칭은 우리가 고안해낸 것이 아니라 프랑스의 스피노자 연구자인 앙드레 토젤Andr&eacute; Tosel이 최근 한 논문에서 사용한 것이다. 그는 근대 초기 신학-정치론의 구도를 소묘하고 이러한 구도에서 스피노자의 입장이 지닌 독창성을 해명하는 과정에서 스피노자 철학의 입장을 역량론이라고 부르고 있다. 그에 따르면 스피노자의 역량론은 신인동형론에 기초를 둔 인격신 개념을 해체하면서 무한하게 많은 무한한 속성들로 구성된 자기원인으로서의 실체 개념을 이론적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11) 토젤은 역량론을 스피노자 자신의 철학적 입장으로 간주하고 있지만, 이는 사실은 1960년대 말 이후 전개된 새로운 스피노자 연구의 관점을 반영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역량론적 해석은 지난 30여년 동안 스피노자 철학 전반에 걸쳐 매우 탁월한 이론적 성과를 배출했다. 게루와 들뢰즈, 마트롱 같은 역량론적 해석의 창시자들 이외에도 피에르 마슈레, 에티엔 발리바르, 모로, 안토니오 네그리12) 같은 후배 연구자들이 80년대와 90년대에 걸쳐 이들의 작업을 좀더 정교하게 가다듬고 확장해왔으며13), 90년대 이후에도 재능 있는 신세대 연구자들이 계속 이들의 연구를 이어받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역량론적 해석은 스피노자주의의 역사에서 새로운 단계를 열어놓았다고 평가할 수 있다.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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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역량론적 해석의 난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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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러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역량론적 해석은 몇 가지 중요한 이론적 난점들을 지니고 있으며, 바로 이 때문에 자신이 공언하고 있는 것과 달리 스피노자 철학의 고유성을 충분히 해명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다. 여기서는 세 가지 측면에서 간략하게 지적해두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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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초월성의 위험 
역량론의 첫 번째 문제점은 스피노자의 실체 개념에 대한 해석에서 볼 수 있다. 역량론은 범신론에 맞서 실체의 역동성을 강조한다. 여기서 실체는 무한하게 많은 방식으로 무한하게 많은 실재들을 생산하는 절대적인 역량을 지닌 것으로 나타난다(정리 16). 따라서 역량론이 &#985172;윤리학&#985173; 1부에서 자기원인(정의 1), 무한하게 많은 무한한 속성들로 구성된 실체(정의 6과 정리 11), 실체의 역량(정리 16과 정리 34) 등에 주목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하지만 여기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 보자. 자기원인에서 자기란 무엇인가? 자기 스스로 자신의 원인이 된다고 할 때, 이 자기는 어떻게 성립하는가? 이러한 자기는 자신의 의지에 따라 자신의 행위를 제어하는 존재자인가? 그러나 그렇다면 자기원인인 실체의 행위가 자의적이지 않게 해주는 것은 무엇인가? 스피노자가 강조하는 실체의 행위의 필연성은 어떻게 성립하는가? 이러한 질문은 실체의 본질을 절대적 역량에서 찾을수록 더욱더 심각하게 제기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실체가 절대적인 역량이라면, 따라서 실체가 아무런 제약도 받지 않는 것이라면, 실체의 행위는 그만큼 자의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실체는 역량론적 해석가들의 주장과는 달리 일종의 초월적 존재자가 아닌가? 스피노자의 실체, 스피노자의 신은 외양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초월적인 신이 아닌가? 이러한 신은 유대-기독교 전통의 신 또는 데카르트의 신과 어떻게 다른가? 
이러한 질문에 정확히 답변하기 위해서는 우선 스피노자에서 자기원인 개념의 의미와 기능이 무엇인지, 그것의 용법이 스콜라철학과 데카르트의 자기원인 개념의 용법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 해명되어야 한다. 하지만 역량론적 해석가들은 실체의 역동성, 실체의 절대적 역량에 너무 주목한 나머지 이러한 문제에 대해 제대로 주의를 기울이지 못하고 있다. 
이는 실체와 속성들 사이의 관계라는 문제와도 연결되어 있다. 역량론자들은 속성에 대한 주관적 해석가들과 달리 속성의 객관적 실재성을 긍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 경우 표현과 구성의 관계라는 문제가 제기된다. 스피노자는 한편으로 속성들은 실체의 본질을 표현한다고 말하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 실체를 구성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표현과 구성의 관계는 무엇인가? 속성은 어떻게 실체를 구성하면서 또한 실체의 본질을 표현하는가? 들뢰즈나 마트롱 같은 역량론적 해석가들은 실체의 표현성, 곧 실체의 역동성을 구성적 측면보다 더 중시한다. 그러나 이 경우 실체의 자의성, 실체의 초월성이라는 문제가 다시 제기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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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스피노자에게 인과관계는 이중적인가? 
실체 개념에 대해 제기되는 이러한 의문은 실체와 양태들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도 유사하게 제기될 수 있다. 역량론자들은 실체에 대한 양태들의 존재론적 의존성이야말로 양태들이 지닌 능동성, 원인으로서의 역량의 근거를 이룬다고 강조한다. 1부 정리 18(“신은 만물의 내재적 원인이지 타동적 원인이 아니다”)이나 정리 25의 따름정리(“신은 자기원인이라는 것과 같은 의미에서 또한 만물의 원인이라고 말해야 한다”) 또는 정리 36(“그 본성으로부터 어떤 결과가 따라 나오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등에서 이를 잘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양태들이 실체에 의존하는 존재론적 양상은 어떤 것인가? 어떤 관계, 어떤 메커니즘에 의해서 양태들의 존재론적 의존성이 양태들의 실천적 역량을 낳는 근거가 되는가? 이 문제에 대해 역량론자들은 상당히 모호한 태도를 보여준다. 그들은 1부 정리 18에 나오는 두 가지 원인 개념, 곧 내재적 원인과 타동적 원인 개념에 의지하여 스피노자의 인과성 개념을 이중적인 것으로 해석한다. 먼저 신과 양태의 본질 사이에 존재하는 내재적 인과성이 존재하며, 다른 한편 양태들 사이에, 양태들의 실존 사이에서 성립하는 타동적 인과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후자가 양태들 사이에 존재하는 수동적, 갈등적, 예속적 관계의 존재론적 뿌리를 이룬다면, 전자는 이러한 수동성에서 벗어나 능동성을 얻을 수 있게 해주는 존재론적 기초가 된다. 
하지만 이러한 해석은 한편으로 너무 편의적인 해석이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우선 이 경우 스피노자의 내재적 인과성과 데카르트의 인과성 사이의 차이점이 정확히 드러나지 않는다. 데카르트 역시 피조물들의 행위의 제일 원인은 신이며 피조물들은 신의 역량에 의해서만 운동을 수행할 수 있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데카르트는 스피노자와 달리 물체들의 내재적인 인과 역량을 부정하고, 이를 오직 신에게만 돌리고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스피노자의 양태들, 특히 연장에 속하는 물체들은 자신들의 고유한 인과 역량을 지닐 수 있는가? 신과 양태적 본질들 사이에는 내적 인과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라는 답변은 순환논법 그 이상일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내재적 인과성과 타동적 인과성(곧 양태들 사이의 작용 인과성)을 구분하고 양태들의 본질과 실존을 분리하는 역량론적 관점에서는 이러한 답변을 넘어설 수 없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이러한 해석은 스피노자의 철학과 갈릴레이-뉴턴이 확립한 근대 물리학과의 이론적 관계를 제대로 고려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해석에 따르면 운동의 상대성은 순전히 타동적인 인과성을 구현하기 때문에, 이러한 이론에 기초를 둘 경우 운동의 동역학적 원인을 사고하는 게 불가능해진다. 하지만 &#985172;데카르트의 철학원리&#985173;나 &#985172;윤리학&#985173; 2부 정리 13 이하에 나오는 자연학에 관한 논의를 꼼꼼히 검토해보면, 스피노자는 정확히 운동의 상대성 개념에 기초를 둔 동역학적 인과성 개념을 제시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스피노자의 내재적 인과성 개념은 아리스토텔레스주의적 자연학과 단절하는 운동의 상대성 또는 외재적 인과성과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을 전제할 경우에만 가능한 것임에도, 역량론적 관점은 이 두 가지 개념 사이의 내적 연관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난점은 개체의 개체성에 대한 관점에서도 나타난다. 가령 들뢰즈는 개체의 본질을 구성하는 “운동과 정지의 관계” 이외에 또다른 본질인 “역량의 정도”(신의 본질의 양태적 표현)가 존재한다고 말한다. 곧 전자가 본질의 양적 측면을 나타낸다면 후자는 질적 측면을 (또는 전자와 후자는 각각 외연량과 내포량을) 나타낸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경우 양자 사이에는 정확히 어떤 관계가 성립하는가? 들뢰즈는 “양태의 본질은 하나의 관계 속에서 영원하게 표현된다” (Deleuze 1969, p.191)고 말하고 있을 뿐, 어떻게 본질과 관계 사이에 서로 상응이 이루어질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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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예속에서 벗어나 자유를 얻는 것은 어떻게 가능한가? 
실체 개념에 대해, 또한 실체와 양태 사이의 관계에 대해 역량론이 보여주는 모호성은 인간학과 윤리학의 영역에서도 나타난다. 여기서는 두 가지 점만 지적해두자. 
첫째, 역량론적 해석은 수동성에서 능동성으로의 이행이라는 문제를 충분히 해명하지 못하고 있다. 역량론은 이러한 이행을 설명하기 위해 존재 역량의 증대를 나타내는 기쁨이라는 정서와 적합한 인식의 일종인 “공통 통념”을 강조하고 있는데, 이는 충분히 동의할 수 있는 점이다. 문제는 그보다 좀더 기초적인 데서 생겨난다. 우선 역량론적 해석가들은 스피노자가 말하는 능동과 수동 개념의 특성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스피노자에서 능동과 수동은 각각 적합한/전체적 원인과 부적합한/부분적 원인으로 정의되고 있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원인의 두 양상 내지 두 측면을 가리키며, 유한 양태들은 외부 물체와 맺고 있는 변용하기/변용되기의 관계를 통해 역량을 획득한다. 따라서 스피노자에게는 수동=변용되기, 능동=변용하기가 아니며, 능동과 수동은 변용을 조직하는 두 가지 관계의 양상들이다. 
하지만 역량론자들의 가정에 따르면 양태들은 수동력과 능동력이라는 별개의 힘을 갖고 있는데, 이는 그들이 인과성을 내재적 인과성과 타동적 인과성으로 분리하기 때문에 생겨나는 귀결이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수동력은 우리의 능동적 힘 자체의 유한성이나 제한에 불과하며, 그 자체로는 아무것도 긍정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는 곧 그들이 변용=수동은 아닐지 몰라도 적어도 변용되기=수동이라는 생각에 여전히 사로잡혀 있음을 말해준다. 그러나 그렇다면 능동은 외부 실재들과 아무런 변용의 관계를 맺지 않는다는 것, 또는 외부 실재들로부터는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고 다만 우리만이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의미하는가? 아니면 외부의 규정 없이 자기 스스로 원인이 되어 모든 것을 결정하고 실행한다는 것을 의미하는가? 그러나 이 경우 능동성은 자연적 인과관계에서 벗어남 또는 그것을 초월함을 의미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이러한 능동성은 스피노자가 가상 중의 가상으로 간주하는 “자유의 가상”과 어떻게 다른가? 이처럼 능동과 수동 개념에 대한 정확한 해명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수동에서 능동으로의 이행이라는 문제에서도 불명료함과 애매성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 
둘째, 또한 이 때문에 역량론은 왜 스피노자에게 자유는 본질적으로 관계적인 형태를 띨 수밖에 없는지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역량론적 해석에 따르면 각각의 개인들은 관계와 독립적인 본질을 지니고 있으므로, 원칙적으로 개인들의 자유 역시 타인들과의 관계에서 독립적으로 얻어질 수 있다. 물론 각 개인의 자유가 다른 사람들의 자유와 양립할 수 있고 더 나아가 다른 사람들의 자유를 촉진할 수 있다면 더 좋은 일이겠지만, 다른 사람들의 자유가 각 개인의 자유의 본질적인 구성 요소가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스피노자는 &#985172;윤리학&#985173; 3부 정리 59의 주석에서 “굳건함animositas”과 “관대함generositas”을 정신의 힘, 곧 정신의 능동성의 본질적인 요소로 제기한 이래, 각 개인의 자유와 지복은 항상 다른 사람들의 자유와 지복을 수반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역량론적 관점에서는 왜 자유와 지복이 이러한 관계적 형태를 띨 수밖에 없는지 충분히 해명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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Ⅳ. 관계론적 해석의 요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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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역량론적 해석은 그것이 이룩한 업적과 여러 가지 장점들에도 불구하고, 또한 여러 가지 해석상의 난점들을 지니고 있다. 더 나아가 이러한 난점들은 단지 이런저런 이론적 보충이나 정정을 통해 해소할 수 있는 것들이라기보다는 스피노자 철학 전체를 해석하는 관점으로서 역량론이 지닌 내적 한계와 결부되어 있다. 따라서 역량론이 이룩한 이론적 성과를 보존하면서 그것이 지닌 난점들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역량론과 또다른 해석의 관점이 필요하다. 우리는 이 논문에서 이러한 관점을 관계론이라는 명칭 아래 제시해보려고 시도했다. 우리가 제시한 논점들은 다음과 같이 집약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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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스피노자의 존재론에 대한 관계론적 해석 
우선 관계론적 해석은 스피노자의 철학, 특히 그의 존재론은 사람들이 보통 생각하듯이 실체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관계들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이를 입증하기 위해 우리는 자기원인과 실체, 속성, 양태 및 인과성과 개체성 같은 스피노자 존재론의 주요 개념들이 어떻게 관계론적으로 해석될 수 있고, 또 해석되어야 하는지 보여주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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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스피노자 존재론의 탈실체론적 성격: 자기원인, 실체, 속성 
스피노자에서 존재하는 것은 신이라는 유일한 실체일 뿐이며 나머지 모든 것은 이 유일한 실체의 양태들에 불과하다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이유로 스피노자를 실체론의 철학자로 간주하는 것은 잘못이다. 정반대로 이는 근본적인 탈실체론적 (반실체론이라고 할 수는 없을지 모르지만) 테제로 이해해야 한다. 왜냐하면 오직 신만이 유일한 실체이며, 오직 실체만이 존재한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실체는 하나의 존재자로 간주될 수 없으며, 이는 아리스토텔레스에서 데카르트 또는 라이프니츠에 이르는 실체론의 공통적인 논점, 곧 존재하는 모든 것(그것이 개체이든, 유한한 실재이든)은 실체들로 간주되어야 한다는 것을 성립 불가능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자기원인은 스피노자 철학의 이러한 탈실체론적 성격을 잘 보여주는 개념이다. 이 개념은 전통적으로 스피노자 철학의 실체론적 성격을 대표하는 상징처럼 간주되어 왔다. 범신론적 해석은 이 개념이야말로 스피노자의 실체가 부동적이고 실정적인 절대적 일자라는 것을 잘 보여준다고 간주한 반면, 역량론적 해석은 여기에서 스피노자 철학의 역동성의 근거를 발견한다. 하지만 이 두 가지 입장은 자기원인을 궁극적인 근거로 간주한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그러나 &#985172;윤리학&#985173;의 텍스트를 꼼꼼히 검토해보면 이 개념은 스콜라철학이나 데카르트의 경우와는 달리 비신학적인 맥락에서 사용되고 있으며, 더 나아가 자연의 인과 작용을 “자기”의 재귀적 구조와 분리시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자기원인은 초월적이거나 외재적인 근거를 요구하지 않는 자연의 자립성을 넘어 있음 그 자체로서의 자연의 익명적인 인과성을 가리키는 개념이다. 
스피노자의 실체 개념 역시 탈실체론적이며 비재귀적인 성격을 보여준다. 실체에 대한 해석의 근본 쟁점은 실체와 속성의 관계를 어떻게 이해하느냐의 문제다. 속성의 주관성과 실체의 단순성을 주장하는 범신론과 달리 역량론은 속성들의 실재성을 긍정하며, 속성들을 실체의 본질을 객관적으로 표현하는 것으로 간주한다. 하지만 역량론(특히 게루와 들뢰즈)은 속성들과 실체 사이에 존재론적 위계 관계를 설정함으로써, 여전히 실체를 속성들을 통합하는 일종의 기체로 간주하고 있다. 
하지만 스피노자의 실체가 초월적인 것이 아니라 내재적인 것이라면, 이러한 실체의 내재성은 실체가 무한하게 많은 무한한 속성들로 구성된다는 사실에서 성립한다. 곧 신 또는 실체는 속성들의 집합, 속성들의 관계 전체와 다르지 않으며, 속성들보다 존재론적으로 상위의 실재가 아니다. 신 또는 실체는 속성들 전체와 다르지 않다는 스피노자의 주장은 바로 이런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스피노자의 실체가 함축하는 이러한 구성적 성격 또는 관계론적 특성을 간과할 경우, 역량론이 강조하는 실체의 절대적인 역량, 실체의 자기원인적 특성은 실체의 초월성 또는 적어도 실체의 재귀성(再歸性)(따라서 실체의 주체성)의 이론적 알리바이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스피노자의 존재론이 내재론적이라면, 이는 그것이 관계론적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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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실체와 양태의 관계: 변용과 연관의 인과이론 
실체와 양태들 사이의 관계에서도 이러한 관계론적 특성은 관철된다. 스피노자에서 실체-양태 관계는 일의적으로 인과관계로 표현되며, 따라서 이 관계에 대한 해석의 쟁점은 인과성을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달려 있다. 내재적 인과성과 타동적 인과성을 분리하는 역량론적 해석과 달리 관계론적 해석은 내재적 인과성과 타동적 인과성을 대립시키거나 분리해서는 안되며, 양자 사이에는 이론적 연속성이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스피노자의 인과이론은 갈릴레이가 정초한 운동의 상대성 개념을 전제하고 있으며, 이를 양태들의 인과 역량과 결합시킴으로써 새로운 동역학을 위한 형이상학적 토대를 제공해준다. 
스피노자의 인과이론을 떠받치고 있는 두 가지 핵심 개념은 “연관”(connexio 또는 concatenatio)과 “변용affectio”이라는 개념이다. “연관”은 스피노자 저작에서 널리 사용되지 않기 때문에 그동안 연구자들에게 별로 주목받지 못한 개념이지만, 스피노자 인과이론의 관계론적 특성을 해명하는 데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 개념이다. “연관”은 스피노자의 인과성은 고립된 개체들 사이의 관계에 기초를 둔 인과성이 아니라, 처음부터 다른 실재들과의 관계를 함축하고 있는 개체들 사이에서 작용하는 인과성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곧 인과계열의 최초의 항을 전제하고 있는 목적론이나 기계론과 달리 스피노자의 인과성은 항상 이미 다수의 항들을 전제하고 있다. 
“변용” 개념은 (유한) 양태들 일반을 가리키는 존재론적 명칭이면서 (유한) 양태들이 실존하고 작용하는 방식들을 가리키는 행위론적 개념이기도 하다. “변용”은 유한 양태들이 지닌 인과 역량은 “변용하기afficere”의 역량의 표현이며, 변용하기의 역량은 “변용되기affici”의 능력을 전제한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따라서 스피노자의 인과이론에서 변용 개념의 중요성은 역량론적 관점이 주장하는 것과 달리 유한 양태들의 인과 역량은 관계와 독립적인 개체들의 내적 본질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양태들이 다른 양태들과 맺고 있는 관계들로부터 비로소 형성된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연관과 변용 또는 변용의 연관이라는 개념은 역량론적 해석에 비해 스피노자의 인과성 개념이 지닌 일의성을 좀더 정확히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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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관계로서의 개체 
스피노자의 개체론 역시 관계론적 해석이 지닌 이론적 우월성을 잘 보여준다. 스피노자의 개체 개념 및 개체화 이론의 가장 큰 특징은 (“개체”의 어원의 함축과 달리) 개체를 분할될 수 없는 원초적인 실재로 간주하지 않고 관계를 통해 성립하는 합성체로 간주한다는 점에 있다. 
역량론적 주석가들은 스피노자의 개체 개념의 이러한 특성을 비교적 충실하게 이해하고 있으나, 인과이론에서 볼 수 있는 것과 유사한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게루나 마트롱, 들뢰즈 또는 마슈레 같은 역량론의 대표자들은 한편으로 스피노자에서 개체는 운동과 정지의 관계를 통해 구성된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가장 단순한 물체들”을 일종의 원자와 같은 실재의 가장 기초적인 단위로 이해하거나 아니면 개체의 본질은 양적 측면(곧 “관계”)만이 아니라 또한 질적 측면(“역량의 정도”)을 지니고 있음을 주장하고 있다. 따라서 역량론적 주석가들은 인과성만이 아니라 개체에 대한 해석에서도 개념의 일의성을 유지하지 못하고 있다. 
스피노자에서 개체들은 부분들 사이에서 작용하는 운동과 정지의 관계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개체들은 이러한 운동과 정지의 관계 이외의 다른 본질을 갖고 있지 않다. 코나투스 내지 욕망으로 표현되는 인간 개인들의 본질 역시 관계로 구성되어 있다. 따라서 인간을 비롯한 유한 양태들은 다른 양태들과의 관계를 통해서 비로소 자신의 개별성, 자신의 본질을 얻으며, 이러한 관계를 통해서 실존한다. 
개체들을 구성하는 부분들 사이의 관계 및 개체들이 다른 개체들과 맺는 관계 이외에 별도의 개체의 본질을 설정하게 되면, 스피노자의 인과론과 개체론 사이의 내적 연관성이 제대로 해명되지 않을뿐더러 개체들이 지닌 실존과 행위 역량의 원천이 무엇인지, 그리고 이것이 어떻게 수동성에서 능동성으로 이행하는 데서 실천적 동력으로 작용하는지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 따라서 스피노자의 존재론과 인간학, 윤리학 사이의 이론적 일관성을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서는 개체를 관계론의 관점에서 이해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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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스피노자의 인간학에 대한 관계론적 해석 
1부에서 전개된 이러한 논의는 자기원인과 실체에서 개체에 이르는 스피노자의 존재론이 일관되게 관계론적 관점에 입각해 있음을 잘 보여준다. 2부에서 우리는 어떻게 관계론이 인간학의 영역에서도 관철되고 있는지 해명하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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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상상적 관계: 스피노자 인간학의 모체 
상상적 관계라는 개념은 2부 전체의 논의에 대해 이론적 모체를 제공해준다. 스피노자의 인간학은 상상적 관계 또는 (라캉의 용어를 사용하자면) 상상계에 기초를 두고 있으며, 그의 윤리적 기획의 핵심을 이루는 수동성에서 능동성으로의 이행은 상상적 관계의 양면성에 근거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스피노자의 인간학의 가능성에 주목하지 못한 범신론적 해석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인간학에 관한 논의에서 역량론적 해석의 맹점 중 하나는 스피노자에서 상상 개념이 지닌 중요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스피노자의 상상 개념은 동시대의 철학자들과 비교해볼 때, 인간의 삶 전체의 외연을 설정해주는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그 특징과 독창성을 찾을 수 있다. 곧 스피노자에게 상상은 단순히 인식론적인 기능(그것도 부정적인 기능)만을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일차적으로 자연 안에서 인간의 고유한 세계를 형성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스피노자에게 상상은 특정한 인지적 능력facultas을 형성하기 이전에 집합적인 관계의 의미, 곧 상상계의 의미를 가진다. 
집합적인 관계로서 상상계는 이중적인 특징을 지닌다. 이는 한편으로 인간의 삶의 자연적 조건을 구성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목적론적 편견과 미신의 인간학적 뿌리를 이룬다. 상상의 자연성은 그것이 우리의 신체의 변용의 질서와 연관에 기초를 두고 있으며, 따라서 우리가 인간으로서 존재하는 한 벗어날 수 없는 삶의 조건을 이루고 있다는 점에 근거를 두고 있다. 반면 상상의 가상성은 자신의 욕구는 의식하되 그러한 욕구를 산출한 원인들에는 알지 못하는, 자기 자신에 대한 인간의 무지에서 유래한다. 하지만 상상이 인간의 자연적 조건에 근거를 두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가상성은 단순히 오류로 치부할 수는 없으며, 여기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인간의 삶의 조건 및 정서적 구조를 개조해야 한다. 그리고 이는 스피노자의 윤리적 실천의 핵심 목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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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인식과 정서: 수동에서 능동으로 
이러한 상상의 양면성 위에서 스피노자의 인간학과 윤리학에 대한 논의가 진행된다. 스피노자에게 관념과 정서는 인간의 심리적인 활동의 두 축을 구성하며, 이는 수동성에서 능동성으로의 이행이라는 윤리적 기획에 따라 진행된다. 이 때문에 스피노자에서 독립적인 인식론을 찾으려고 하는 것은 그릇된 시도다. 스피노자에서 인식의 문제는 부적합한 인식에서 적합한 인식으로의 이행이라는 과제, 곧 능동화라는 윤리적 기획의 일부로서만 존재한다. 
이러한 이행의 핵심 계기를 공통 통념들의 형성에서 발견한다는 점에 들뢰즈를 비롯한 역량론 주석가들의 공적이 있다. 하지만 들뢰즈의 논의는 이중적인 한계를 지니고 있다. 우선 그는 상상과 이성의 관계, 또는 1종의 인식에서 2종의 인식으로의 이행을 정확히 설명하지 못하고 있는데, 이는 그가 공통 통념들은 상상적인 지각 능력에 기초를 두고 있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통 통념들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여러 실재들을 동시에 지각할 수 있는 상상의 능력에 기반하여 자연의 통상적 질서에서 벗어나 실재들 사이의 일치와 대립, 차이를 인식해야 한다. 
둘째, 들뢰즈는 수동에서 능동으로의 이행에 대한 설명에서도 난점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그가 기쁜 정념의 역할을 강조할 뿐, 사람들을 수동적인 상태 속에 고착되게 만드는 정념적 구조에 주목하지 않기 때문이다. 스피노자는 놀람이라는 데카르트의 개념을 변형시켜 이러한 고착이 일어나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들뢰즈 해석의 한계는 궁극적으로 그가 스피노자의 수동과 능동 개념의 의미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다. 스피노자에서 수동은 변용 그 자체와 동일시될 수 없으며, 또한 능동은 외부 물체들에 의한 변용으로부터의 탈출로 간주될 수도 없다. 수동과 능동은 모두 일종의 원인이며, 문제는 부분적이고 단편적인 원인인 수동의 상태에서 전체적이고 유기적인 원인인 능동으로 이행하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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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자유 개념에 대한 관계론적 해석: 신을 향한 사랑과 신의 지적 사랑 
이렇게 해서 우리는 스피노자 철학의 궁극적인 주제인 윤리적 문제에 도달한다. 자신의 필생의 저작에 &#985172;윤리학&#985173;이라는 제목을 붙인 데서 알 수 있듯이 스피노자에서 윤리의 문제는 부차적인 주제가 아니라 철학적 기획 전체의 방향을 규정하는 쟁점이다. 특히 자유는&nbsp;&nbsp; &#985172;윤리학&#985173; 5부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윤리적 실천의 중핵을 이룬다는 점에서, 스피노자 철학에 대한 관계론적 해석이 해명해야 할 주요 개념 중 하나로 간주될 수 있다. 
스피노자 철학의 근본적인 윤리적 지향을 강조하고 이를 체계적으로 해명하려고 했다는 점에서 역량론적 해석의 중요성과 강점을 찾을 수 있다. 하지만 들뢰즈나 마슈레 같은 역량론 해석가들은 스피노자의 자유 개념을 정확히 해석하지 못하고 있으며, 2종의 인식과 3종의 인식의 관계, 신을 향한 사랑과 신의 지적 사랑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도 충분한 설명을 제공해주지 못하고 있다. 
스피노자의 자유 개념은 개인의 주체적인 행위라는 관점으로는 충실히 설명될 수 없다. 각각의 개인의 자유는 다른 사람의 자유를 조건으로 하기 때문이다. 이는 모든 개체는 자신의 부분들 사이의 운동과 정지의 관계 및 다른 개체들과의 관계를 통해서 비로소 성립한다는 그의 존재론적 원리에서 일관되게 따라 나오는 결과이자, 자유를 저해하고 인간을 수동적이고 예속적인 조건에 묶어두는 가상적 조건들이 상호 개인적 구조를 지니고 있다는 인간학적 조건의 귀결이기도 하다. 
자유를 향한 스피노자의 윤리적 기획은 이중적인 형태를 띠고 있다. 우선 2종의 인식을 통해 각각의 개인들의 실존과 행위를 제약하는 상상적인 조건들을 해체하고 이를 신을 향한 사랑으로 대체하려는 운동이 존재한다. 하지만 이는 원인으로서의 신과 인간 사이의 분리를 전제한다는 점에서 충분치 못한 활동이다. 윤리적 기획이 온전히 완수되기 위해서는 각각의 개인의 윤리적 주체화의 활동을 다른 개인들과의 관계 맺음의 활동과 내적으로 연결시켜 주는 3종의 인식 및 신의 지적 사랑이 필수적이다. 신의 지적 사랑은 전통적인 신비주의 신학으로의 회귀가 아니라, 이러한 개인화와 사회화, 또는 주체화와 탈주체화의 이중적인 운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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Ⅴ. 논문의 실천적 함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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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우리 논문의 실천적 함의에 대해 몇 가지 지적해두기로 하자. 범신론적 해석과 역량론적 해석의 차이점은 단순히 이러저러한 주제들에 대한 해석상의 차이로 환원되지 않으며, 스피노자 철학의 전체적인 성격 및 지향에 대한 관점의 차이를 함축하고 있다. 범신론적 스피노자 해석이 윤리적 실천이나 사회적 문제들에 무관심한 사변적이고 신비주의적인 스피노자 상을 만들어냈다면, 반대로 역량론적 해석은 스피노자를 (마르크스 또는 그 이외의 다른 몇몇 이단적인 철학자들과 더불어) 가장 전복적이고 혁명적인 철학자들 중 하나로 제시한다. 이 점에서는 특히 안토니오 네그리가 가장 일관적이고 철저한 입장을 보여주고 있지만,15) 사실 그 이전에 이미 알튀세르나 들뢰즈 또는 알렉상드르 마트롱 등과 같은 철학자들 역시 스피노자 철학을 혁명적인 철학으로 제시했다. 곧 스피노자는 철학사에서 보기드문 이론적 혁명을 수행한 철학자일 뿐만 아니라 혁명적 실천에 영감과 동력을 제공해준다는 점에서도 혁명적이라는 것이다.16)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마슈레가 스피노자 사후 3세기에 걸친 스피노자주의의 역사를 개괄하면서 20세기의 스피노자주의를 “정치적 스피노자주의”라고 부른 것은 일리가 있는 평가라고 할 수 있다.17) 
우리가 이 논문에서 제시한 관계론적 해석 역시 그 나름대로의 실천적 함의를 지니고 있다. 물론 관계론은 역량론이 제시하는 비판적이고 실천적인 스피노자의 상을 거부하지 않으며, 그것을 온전히 긍정하고 수용한다. 다만 관계론은 역량론적 해석이 함축하는 막연한 낙관주의와 그것이 자칫 빠져들기 쉬운 이론적 인간주의의 위험성을 경계할 뿐이다. 스피노자의 철학이 현재의 이론적 작업에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다면, 이는 스피노자가 자율적인 지적ㆍ정치적 역량을 갖춘 혁명적인 주체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든가 욕망과 기쁨의 무조건적 긍정성을 주장했다든가 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실체나 주체, 인과성, 개체, 상상, 합리성과 비합리성, 능동과 수동, 자유 등과 같은 근대 철학의 주요 범주들과 더불어 이러한 범주들에 기초를 두고 있는 국가, 사회계약, 주권, 대표, 복종, 지배와 예속, 시민, 민주주의 등과 같은 정치학의 개념들을 쇄신할 수 있는 이론적 기초, 곧 관계론적 관점을 제공해주고 있다는 점에서 스피노자 철학의 독창성과 현재성을 찾아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가 소묘해본 스피노자 철학에 대한 관계론적 해석은 지난 1960년대 이래 좌파의 이론적 작업과 정치적 방향설정에 많은 영향을 끼쳐온 역량론적 해석에 대한 자기비판과 자기쇄신을 위한 이론적 모색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여기서는 관계론이 함축하는 실천적 의미들 중 몇 가지 주요 측면만을 지적해두기로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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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관계론적 해석은 스피노자 철학에서 사회적 관계에 대한 설명을 위한 한 가지 이론적 모델을 발견한다. 지난 1960년대 이래 알튀세르나 들뢰즈, 또는 네그리 같은 철학자들은 이미 스피노자 철학을 원용하여 현대 사회를 분석하는 독창적인 이론적 작업을 수행한 바 있다. 이러한 작업은 많은 이론적 성과를 배출했고 현재에도 사회과학 분야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관계론적 해석은 이들의 작업을 계승하되, 이를 좀더 일관된 관계론의 기초 위에서 정정하고 확장할 수 있는 길을 제공해줄 수 있다. 가령 알튀세르의 구조 인과성 개념은 스피노자의 철학, 특히 그의 존재론의 범주들에 직접 의지하고 있는 개념이며, &#985172;자본론&#985173;에 대한 이해나 자본주의의 구조에 대한 분석에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었다(Althusser et al. 1996 참조). 하지만 이 개념은 전체와 부분 또는 구조와 요소들 또는 구조와 정세 같은 구조주의적인 통념들에 많이 의존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인과성 자체에 대한 이해에서도 상당한 모호성을 보여주고 있다. 관계론적 관점에서 이 개념을 다시 해석하고 정련한다면, 구조인과성 개념이 지닌 이론적 잠재력을 좀더 풍부하게 드러내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구조주의 철학의 이론적 핵심을 새롭게 사고할 수 있는 길이 열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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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현대 스피노자주의의 주요 경향 중 하나는 욕망을 결핍으로 간주하는 관점에 맞서 스피노자를 긍정적인 욕망의 옹호자로 동원하는 데 있다. 특히 들뢰즈(ㆍ가타리)나 네그리 계열의 이론가들에서 볼 수 있는 이런 경향은 스피노자 철학을 역량론적 관점에서 해석하는 것에 기초를 두고 있다. 하지만 이는 이론적으로 충분치 못하며 생산적이지도 못하다. 무엇보다도 이는 스피노자의 철학을 또다른 주체의 철학, 관념론적 전통이나 라캉 계열의 정신분석학적 전통에 맞설 수 있는 유물론적 주체의 철학으로 간주하게 될 위험을 안고 있다. 그러나 이는 결국 스피노자 철학을 일종의 프로이트-마르크스주의를 위한 이론적 전거로 활용하려는 시도를 낳을 뿐이다. 
스피노자가 욕망의 긍정성을 옹호했다면, 이는 원리나 전제로서가 아니라 과정이나 결과로서 그런 것이다. 곧 스피노자가 옹호하는 욕망의 긍정성이나 능동 정서는 인간, 더욱이 “개인”으로서의 인간(이는 실제 개인 주체일 수도 있고 집단적인 개인 주체일 수도 있다)이 선험적으로 보유하고 있는 본질이 아니라, 개인적인 실천과 집합적인 투쟁의 상호 관계 속에서 형성하고 획득해야 할 목표를 의미한다. 또는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스피노자의 윤리적 실천에 고유한 특징인 개성화와 사회화의 이중운동이 지닌 한 가지 형태를 가리킨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욕망이나 정서의 긍정성 또는 능동 정서의 가능성에 대한 옹호는 욕망이나 정서 일반에 대한 관계론적 인식과 분리되어서는 안된다. 관계론적 관점에서 욕망과 정서 개념을 이해할 경우에만, 심리적인 범주들을 개인의 차원에 한정하지 않고 구체적인 제도적 관행이나 상호개인적(또는 “관개체적(貫個體的)transindividual”) 행위의 차원과 결합하여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도 역량론은 관계론으로 대체되거나 적어도 보충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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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정치철학적인 관점에서 스피노자 철학에 대한 관계론적 해석의 의미는 반계약론적 정치철학의 가능성에 대한 모색으로 표현될 수 있다. 스피노자는 사회계약론을 국가를 사고하기 위한 이론적 모델로 받아들이지 않은, 서양 근현대 정치철학 전통에서 매우 드문 철학자 중 한 사람이었으며, 이는 그의 철학의 관계론적 특성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이는 &#985172;신학정치론&#985173;이나 &#985172;정치론&#985173;에서 모두 나타나는 경향이지만, 특히 &#985172;윤리학&#985173;의 이론적 성과를 반영하고 있는 &#985172;정치론&#985173;에서 좀더 원숙하게 표현되어 있다.18) 
네그리는 이런 점에 주목하여 스피노자를 (마키아벨리와 더불어) 반자유주의적인 정치이론을 위한 이론적 지주로 삼고자 했으며, 이를 대표하는 것이 유명한 “다중multitudo”이라는 개념이다. 그의 관점에 따르면 다중 개념은 독특하고 자율적인 개인들의 연합 또는 공통의 연관망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제국에 맞서 해방의 정치, 혁명의 정치를 사고하기 위한 이론적 기초를 제공해준다. 그러나 &#985172;신학정치론&#985173;의 정치적 분석이 잘 보여주듯이 스피노자는 혁명적 정치가 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이러한 정치를 뒷받침해줄 수 있는 주체(개인적 주체이든 집단적 주체이든)라는 범주를 알지 못했다. “다중” 또는 “대중들”19)이라는 개념 역시 집합적 주체를 가리킨다기보다는 국가의 법적 구성의 존재론적 한계를 가리키거나 또는 정치적으로 양가성을 지닌 국가의 자연적인 기초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따라서 관계론적 관점에서 볼 때 스피노자 정치학의 의미는 그가 새로운 정치적 주체를 제시했다거나 국가 바깥에 존재하는 혁명적인 정치적 실천의 공간을 보여주었다는 데 있지 않다. 오히려 스피노자 정치학의 중요성은 계약론에 의거하고 있는 자유주의적인 정치나 반계약론적이되 혁명적인 주체의 가능성에 의지하고 있는 (고전) 마르크스주의적인 정치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는 이론적 가능성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찾아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법적 이데올로기에 근거를 두고 있는 계약론적 모델에 맞서 관계론적 문제설정을 제안하고 있는 미셸 푸코의 몇몇 저작20)이나 알튀세르의 몇 가지 지적들은 스피노자 철학의 반계약론적 성격을 현대 사회에 대한 분석에 원용할 수 있는 중요한 실마리들을 제공해준다는 점에서, 좀더 보완하고 발전시킬 만한 가치가 있는 작업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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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sel, Andr&eacute;(2001), “Quel devenir pour Spinoza?,” in Lorenzo Vinciguerra ed., Quel avenir pour Spinoza?, Kim&eacute;. 
_____________(2005), &#65378;스피노자라는 거울에 비추어본 마르크스주의&#65379;, &#985172;트랜스토리아&#985173; 제5호. 
Vaysse, Jean-Marie(1994), Totalit&eacute; et subjectivit&eacute;, Vrin. 
Zac, Sylvain(1989), Spinoza en Allemagne, Klincksieck. 


1)&nbsp;톨랜드의 생애와 사상에 대해서는 Champion 2003 참조.
2)&nbsp;“범신론 논쟁Pantheismusstreit”이라고 불리는 이 논쟁의 주요 텍스트들을 묶은 선집으로는 Scholz &amp; M&uuml;ller 2004(초판은 1916)를 참조. 이에 관한 주석으로는 Zac 1989를 참조할 수 있다.
3)&nbsp;헤겔을 비롯한 독일 관념론 철학에서 스피노자 수용에 대한 상세한 연구로는 Vaysse 1994; Macherey 2004 등을 참조할 수 있다.
4)&nbsp;독일 관념론에서 스피노자 수용이 물론 이러한 범신론적 해석으로 모두 환원되는 것은 아니다. 가령 셸링은 다른 철학자들에 비해 스피노자 철학, 특히 실체 개념을 중심으로 한 그의 존재론에 대해 훨씬 호의적이었고, 또한 훨씬 세심한 독해자였다. 이러한 경향은 초기 저작인 &#985172;철학의 원리로서 자아&#985173;에서부터 말년의 저작인 &#985172;계시의 철학&#985173;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관철되고 있다. 어떤 의미에서 셸링의 스피노자 해석은 우리가 뒤에서 말할 역량론적 해석의 이론적 원천 중 하나를 이루고 있다고 할 수도 있다. 셸링과 역량론적 해석 사이의 이론적 연관성에 대한 검토는 매우 흥미있는 주제이지만, 이는 별도의 논의에서 다루어볼 생각이다. 셸링의 스피노자 해석에 대해서는 특히 Vaysse 1994를 참조할 수 있다.
5)&nbsp;한편 관념론적인 입장과 달리 유물론의 노선에서 스피노자의 범신론은 “은폐된 유물론” 내지 무신론의 한 형태로 간주되었다. 그리고 유물론자들은 스피노자의 정치철학에서 나타나는 민주주의적인 경향을 높이 평가했다. 유물론의 역사에서 스피노자에 대한 평가에 대한 고찰로는 Tosel 2005 참조.
6)&nbsp;Van Vloten &amp; Land. ed., Benedict de Spinoza Opera quotquot reperta sunt. La Haye, 1883-1884; Carl Gebhardt ed., Spinoza Opera. Heidelberg, 1925.
7)&nbsp;게루는 &#985172;윤리학&#985173; 1부와 2부에 대한 매우 정밀하고 풍부한 주석서 두 권을 남겼으며, 철학사 연구의 학문적 규범에 가장 충실한 사람으로 평가할 수 있다. 반면 들뢰즈는 스피노자 철학의 문자에 충실하면서도 매우 독창적인 입장(“표현주의”로서 스피노자 철학)에 따라 체계 전체를 재구성하고 있다. 마트롱은 두 사람과 달리 스피노자의 정치학에 대한 “구조주의적” 독해를 통해 스피노자의 정치학과 철학 체계 전체의 관계를 엄밀하게 연역해내고 있다.
8)&nbsp;Pierre-Fran&ccedil;ois Moreau의 감수 아래 간행되고 있는 새로운 스피노자 전집은 8권으로 기획되었으며, 2005년 현재 &#985172;신학정치론&#985173;과 &#985172;정치론&#985173; 2권이 출간되었다(PUF 출판사).
9)&nbsp;이 점에 대해서는 특히 Macherey 2004 참조.
10)&nbsp;이 표현은 피에르-프랑수아 모로에 의해 처음 사용되었지만(Moreau 1975), 이들의 공통적인 지향을 표현하는 데 적절한 용어라고 볼 수 있다.
11)&nbsp;Tosel 2001 참조.
12)&nbsp;네그리는 이탈리아 출신의 이론가지만, 프랑스 주석가들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며 또한 그 자신이 프랑스에서 활동하면서 역으로 프랑스 연구자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는 점을 감안하면, 다른 프랑스 주석가들과 한데 묶어도 무방할 것이다.
13)&nbsp;물론 이들의 작업을 “역량론”이라는 명칭으로 모두 포괄하는 것은 무리다. 이들이 매우 다양한 관심과 입장을 보여주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들 중 일부 주석가들은 역량론적 관점을 비판하고 이를 넘어서기 위한 이론적 노력을 기울이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역량론적 관점과 관계론적 관점이 갈등 상태에서 혼재되어 있다고 보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14)&nbsp;20세기 후반 프랑스 스피노자 연구의 동향에 대해서는 진태원 2001; 2004a를 참조하기 바란다.
15)&nbsp;이는 네그리의 주요 스피노자 연구서의 제목들에서 상징적으로 드러난다. 유럽의 스피노자 연구에 큰 영향을 끼친 그의 주저의 제목은 &#985172;야생의 별종L'Anomalia selvaggia&#985173;(1981)이었으며, 그 이후에 출간된 또다른 스피노자 연구서의 제목은 &#985172;전복적 스피노자Spinoza sovversivo&#985173;(1992)였다.
16)&nbsp;알튀세르는 &#985172;“자본”을 읽자&#985173;(1965)에서 스피노자를 “철학사에서 전례없는 이론적 혁명”을 이룩한 철학자이며, “마르크스의 직접적인 선조”로 간주될 수 있는 유일한 철학자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어떤 의미에서 &#985172;마르크스를 위하여&#985173;와 &#985172;“자본”을 읽자&#985173;는 이러한 주장을 증명하기 위한 시도로 간주될 수 있다. 또한 들뢰즈는 &#985172;스피노자와 표현의 문제&#985173; 뒷면 소개글에서 스피노자를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철학에 대한 통상적인 정의들은 스피노자에게 제대로 적용되지 못한다. 그는 루크레티우스나 그 이후의 니체 말고는 견줄 만한 사람이 없을 정도로 철학을 근본적인 해방과 탈신비화의 기획으로 인식했으며, 파문과 증오를 불러일으킨 고독한 사상가였다.” 마트롱은 &#985172;스피노자에서 개인과 공동체&#985173;에서 제 3종의 인식에 의해 가능해진 지적ㆍ윤리적 공동체를 “현자들의 공산주의”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다.
17)&nbsp;Macherey 1992 참조.
18)&nbsp;스피노자 정치학의 반계약론적 입장에 대해서는 진태원 2004b; 2005 참조.
19)&nbsp;이는 “multitudo” 개념에 대한 두 가지 가능한 번역어들이다. 네그리의 입장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multitudo” 개념을 “다중”이라고 번역해서 사용하는 반면, 발리바르는 이 개념의 가장 좋은 불어번역어로 “masses,” 곧 “대중들”이라는 용어를 제시한 바 있다.
20)&nbsp;이 문제와 관련해서는 특히 &#985172;사회를 보호해야 한다&#985173;가 중요한 작업이다. 또한 &#985172;감시와 처벌&#985173;이나 &#985172;성의 역사 1권&#985173;의 몇몇 언급들도 시사적이다.
&nbsp;]]></description></item><item><author>바라</author><category>찌라시의 문서 창고</category><title>폭탄돌리기 - 배태섭</title><link>http://blog.aladin.co.kr/vara/1079076</link><pubDate>Wed, 14 Mar 2007 10:3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vara/1079076</guid><description><![CDATA[


폭탄 돌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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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태섭 | 진보교육연구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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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엔 누구나 다 아는 공공연한 비밀이 몇 가지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명문대학 진학을 보장하는 '특별한' 학교의 배제성이다. 즉 그런 학교의 존재 자체보다, 누구에게나 입학의 기회를 주지 않는다는 데에 문제의 핵심이 있다. 초등학교 6학년을 대상으로 영어면접과 에세이로 신입생을 선발하는 청심국제중학교 학생들은 부모의 직업부터 남다르다. 우리 사회의 경제활동인구 가운데 의사의 비율은 약 0.7% 가량인데 비해, 청심국제중학교 학생의 학부모 가운데 의사의 비율은 15%에 가깝다. 민족사관고를 비롯한 자립형사립고의 경우엔 학부모 중 의사의 비율은 10%로, 평균적으로 봐도 이 특별한 학교 학생들은 보통 이상의 집단임을 알 수 있다. 서울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신입생 아버지의 직업분포를 조사한 결과, 관리·전문직의 비율이 50%에 육박하여, 우리 사회 전체 관리·전문직 비율의 3배에 가깝다. 이 불온하기 짝이 없는 조사결과를 놓고 저마다 이러쿵저러쿵 입방아를 찧어댔으니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처럼 누구나 쉬쉬하는 비밀 아닌 비밀이 되어버렸다. <BR>그 덕분인지 아니면 나름의 위기감의 발로였던지, 지난 한 해 정부 개혁정책의 모토는 '양극화 해소'였다. 그 실체조차 불분명한 양극화를 잡겠다고 빈곤대중들에겐 독 묻은 사탕을, 고소득층에겐 각종 혜택을 베풀던 꼴사나운 모양을 보아왔던 마당에, 대선을 앞두고 있는 올해 역시 양극화가 인기 있는 이슈로 각광받을 생각을 하니 심사가 여간 뒤틀리는 게 아니다. 양극화가 통상 중간층의 해체와 빈곤층의 확대를 의미한다면, 중간층 기대심리를 활용한 표심(票心) 잡기를 위해서 뿐만 아니라 사회 불안요소를 잠재우기 위해서라도 대선주자로선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을 게다. <BR>그 양극화 호들갑이 교육분야에서도 예외 없이 나타나고 있는 바, 지난 한 해 몇몇 언론들이 교육양극화 현상을 다루면서 사회적 문제로 부각되기도 하였다. 그도 그럴 것이 최근 몇 년 동안 학계에서 교육양극화나 불평등의 실태를 보여주는 실증적 연구물이 많이 생산되었고, 덕분에 항간에 나돌던 '개천의 용'이 한낱 꿈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그야말로 까발려졌기 때문이다. 개인의 능력이 아니라 좋은 환경에서 태어나고 자라야 이것도 능력이라면 할 말 없지만 성공한 인생을 보장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대중들 스스로 잘 알고 있다. 부모의 학력이 높고 전문직에 종사하며, 거주 지역 내에서 질 좋은 교육정보망과 인맥을 가꾸며 아이들과 상시적으로 상담과 대화를 하며, 아이들로 하여금 높은 포부수준을 꿈꾸게 할 때 '명문대'에 들어갈 확률이 높다는 것은 이제 상식에 속한다. 대중들은 '능력에 따른 기회의 평등'이란 교과서적인 문구를 이제 더 이상 믿고 따르지 않는다. 못난 부모 탓을 하며 그토록 혐오해왔던 (육체)노동자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아이들이 있는 반면, 잘난 부모 덕에 남들보다 앞서 출발하여 먼저 결승점에 다다르는 아이들도 있다. <BR>왕자가 왕자가 되고 거지가 거지가 되는 이유는 개인의 능력이 아니라 부모를 비롯한 환경 때문이라는 사실을 &lt;왕자와 거지&gt;는 이미 19세기에 풍자하고 있다. 중세시대를 지탱해온 순수 혈통 이데올로기가 치기 어린 소년들의 장난 앞에서 깡그리 무너져 버리지만 역설적으로 타고난 핏줄이란 관념이 인생의 향방을 결정한다는 의미심장한 통찰을 던져준다. 한번 상상해보라. 만일 왕자와 거지가 서로 역할을 뒤바꾸지 않았다면, 그들은 자신의 미래가 온전히 자신의 능력 여하에 달린 것이 아니라 부모 탓이라고 생각이나 했겠는가. <BR>왕자가 왕자가 되고 거지가 거지가 되던 당시에는 가족과 교회가 그랬겠지만, 근대 이후 개인을 사회적 존재로 호명하는 역할을 담당한 기구는 단연 학교다. 누구나 신분, 인종, 성(性)에 관계없이 교육기회가 주어지고 능력에 맞게 사회적 역할을 부여한다는 믿음은 적어도 100년 동안은 큰 흔들림 없이 유지되어왔다. 하지만 그 믿음이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는 지금은 분명히 이데올로기 국가기구가 위기에 처해있는 상황이다. 경제적 불안과 더불어 국가기구의 위기는 대중들을 상당한 불안과 고통으로 내몰지만, 이는 오로지 사적(私的)인 문제로 환원되어 대중들이 더욱 격한 경쟁에 뛰어들게 만든다. 분노의 화살은 교사와 학교의 실패로 돌려지며, 모순의 폭발은 봉합·지연된다. 지배계급의 입장에서야 이 시한폭탄과 같은 문제를 최대한 지연시키며 다른 사람에게 넘기거나 아예 기폭장치를 해체하고 싶을 터. 저쪽에서 폭발을 최소화하거나 무장해제하기를 기다릴지, 대중들이 능동적으로 폭파 스위치를 누르게 될지, 문제는 이미 던져진 셈이다. <BR>월간 사회운동(http://www.movements.or.kr/main/index.php)]]></description></item><item><author>바라</author><category>찌라시의 문서 창고</category><title>'호모 사케르' 미등록 이주노동자 /고병권</title><link>http://blog.aladin.co.kr/vara/1075286</link><pubDate>Thu, 08 Mar 2007 14:4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vara/1075286</guid><description><![CDATA[[시론] '호모 사케르' 미등록 이주노동자 /고병권<BR><BR>&nbsp; <BR><BR>이탈리아 미학자 조르지오 아감벤은 주권의 본성을 잘 드러내는 존재로 '호모 사케르(Homo Sacer)'에 대해 말한 적이 있다. 호모 사케르란 말 그대로는 신성한 인간을 뜻하지만, 실제로는 범죄를 저질렀거나 어떤 불결함을 지녔기에 신성한 제단에 바칠 수 없는 존재였다. 로마 시대의 기록에 따르면 '호모 사케르를 희생물로 삼는 것은 합법적이지 않지만 그를 죽이는 자가 살인죄로 처벌받는 건 아니다'라고 되어 있다. 호모 사케르를 죽이는 건 종교적으로든 정치적으로든 권장되지 않지만, 그들을 죽였다고 처벌받는 건 아니다. 그래서 호모 사케르는 그 사회가 시민에게 부여하는 어떤 보호도 받지 못한 채 단지 숨 쉬는 생명체로, 날것의 인간으로 살아간다.<BR><BR>불행히도 우리 사회에 이런 호모 사케르들이 존재한다. 대표적인 예가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이다. 현재 전체 이주노동자의 반인 20만 명 정도가 불법체류자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 중 상당수는 어떤 범법 행동을 해서가 아니라 합법적으로 부여된 시간(3년)이 넘었거나, 지정된 공간(작업장)을 이탈했기 때문에 불법 신분이 된 사람들이다.<BR><BR>사실 산업체에서는 이들 노동력을 필요로 한다. 게다가 오래된 이주노동자일수록 한국어가 능하고 숙련도도 높기 때문에, 불법인 줄 알면서도 이들을 고용하고 있다. 그런데 산업적 신분으로는 엄연히 존재하는 이들이 정치적 사회적 신분으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 자체가 불법이기 때문에, 이들은 어떤 시민권도 보장받지 못한다. 임금 체불을 당해도, 작업장에서 폭력을 당해도, 이들은 경찰서나 노동부를 찾아갈 수 없다. 그랬다가는 출입국관리사무소로 넘겨져 강제 추방될지 모르기 때문이다.<BR><BR>작년 여름에 만난 어느 미등록 이주노동자는 내게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가구공장에서 일하던 동료가 사장에게 심한 폭행을 당한 뒤, 살겠다며 경찰서로 뛰어들었다. 경찰은 그와 함께 사장을 찾아갔다. 그런데 사장은 그가 불법 체류자임을 폭로했고, 결국 경찰은 그를 출입국관리사무소에 넘겨 버렸다. 임금체불과 폭행을 일삼은 사장은 별 처벌도 받지 않았다고 한다. 이런 게 호모 사케르다. 이들에게 폭력을 행사해선 안 되지만 행사해도 큰 처벌을 받지 않는 것이다.<BR><BR>지난 11일 여수의 외국인보호소에서 끔찍한 참사가 일어났다. 화재로 이주노동자 9명이 숨졌고 18명이 부상당했다. TV 화면에 공개된 보호소는 그곳이 이름과 달리 쇠창살로 된 감옥임을 말해준다. 강원도에서는 실제로 '불법체류자'들을 감옥에 수용해왔다. 하지만 이들은 재판을 받고 복역하는 그런 범죄자들이 아니다.<BR><BR>이들의 불법성은 대부분 법과 제도가 정한 시간과 공간을 지키지 않은 데서 기인한다. 그래서 이들의 불법성은 이들의 행위보다는 법과 제도에 더 크게 좌우된다. 실제로 산업연수생제를 운영했던 2002년의 경우 불법체류자의 비율은 80%에 육박했다. 그러나 2003년에 35%로 감소했다. 그것은 이들 행동에 어떤 변화가 있어서가 아니라, 고용허가제로 제도가 바뀌면서 이들의 신분이 합법 체류자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고용허가제에서도 불법체류자 비율은 계속 늘어 현재 50% 정도로 추산되고 있다. 고용허가제 자체도 재검토할 시간이 된 것이다. 엄연히 존재하는 고용 현실을 손바닥으로 가리고, 이런저런 법과 제도로 '불법'이라는 낙인을 찍는 일은 이제 무의미해지고 있다. 사실 세상 어디에도 그 자체로 불법인 존재는 없다. 존재의 어떤 행위를 불법으로 볼 수는 있으나 존재 자체를 그렇게 볼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 사회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은 행위가 아닌 존재 자체가 불법 취급을 받고 있다.<BR><BR>아감벤은 호모 사케르라는 예외적 존재가 권력의 정상적인 작동을 폭로한다고 생각했다. '예외가 정상이다'. 우리 사회의 예외적 존재인 미등록 이주노동자들 역시 우리 사회의 정상성이 무엇인지를 폭로한다. 그들에게 가해지는 폭력이 바로 우리 얼굴, 우리의 야만이다.<BR><BR>수유&amp;너머 연구위원]]></description></item><item><author>바라</author><category>찌라시의 문서 창고</category><title>[퍼온글] 갈등주의적 페미니즘을 향하여-한나 아렌트와 동일성의 정치</title><link>http://blog.aladin.co.kr/vara/1064547</link><pubDate>Tue, 20 Feb 2007 16:3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vara/1064547</guid><description><![CDATA[[월간 사회운동] 12월호에서 퍼옵니다.
아래 주소로 가시면 다른 기사들도 읽을 수 있습니다. :-)
http://www.movements.or.kr/bbs/view.php?board=journal&amp;id=1653





&nbsp;
갈등주의적 페미니즘을 향하여 


한나 아렌트와 동일성의 정치 
&nb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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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니 호니히 | 노스웨스턴 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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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주: 한나 아렌트는 20세기 이후 정치 철학에서 매우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인물이다. 그러나 마르크스주의자들과 아렌트는 그리 편치 않은 사이였다. 그 이유로는, 아렌트가 『전체주의의 기원』에서 나치즘과 스탈린주의를 한 데 묶어 ‘전체주의’로 평가했다는 점, 『인간의 조건』에서 노동을 체계적으로 평가절하했다는 점, 그리고 『혁명론』에서 사회 혁명이자 민중 혁명이라는 이유로 프랑스 혁명을 부정적으로 평가했다는 점 등을 들 수 있다. 사실 우리로서는 아렌트가 제기한 쟁점 중 많은 부분을 여전히 받아들일 수 없다. [이 중 아렌트의 ‘전체주의’ 개념에 대한 체계적 비판은, Domenico Losurdo, Towards a Critique of the Category of Totalitarianism, Historical Materialism, volume 12:2, 2004를 참고하라.] 게다가 아렌트적 문제설정, 발리바르 식의 구분법을 사용하자면 ‘해방의 정치’를 주목하는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변혁의 정치’로서의 사회주의에 대한 대체물로 여긴다는 점도 우리가 볼 때 문제가 많은 접근이다.<BR>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렌트가 정치 및 해방에 관해 매우 많은 시사점을 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아렌트와 함께 아렌트에 맞서’ 그녀를 읽는 호니히의 작업은, 아렌트의 탁월한 통찰을 남김없이 취하면서도, 그 통찰에 따라 아렌트를 내부에서 ‘해체’함으로써 변혁의 정치와 양립가능하게끔 아렌트를 개조하는 비판적 독해의 전범을 보여 준다. 특히 이 논문에서 호니히는 (어떤) 페미니즘에 입각해서 아렌트를, (어떤) 아렌트에 따라 페미니즘을 각각 개조하는데, 우리는 특히 전자와 같은 접근이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고 생각한다. 이는 페미니즘이 보편적 이념 아래 종속된 특수한 분야가 아니라, 보편적 이념의 난점을 극복하고 그것을 한층 보편화하는 데 필수적일뿐더러 대체불가능한 지적&#8228;정치적 자원이라는 점을 실천적으로 입증하기 때문이다.<BR>이 논문은 본래 Feminists Theorize the Political, ed. Judith Butler and Joan Scott (New York: Routledge, 1992)에 수록되었다가, 갈등주의에 대한 페미니즘적 비판에 대응하기 위한 새로운 후기를 포함하기 위해 상당히 개정되고 확장되어, Feminist interpretations of Hannah Arendt(Re-Reading the Canon), ed. Bonnie Honig (Pennsylvania State University Press, 1995)에 재수록되었다. 이 번역본은 재수록본을 옮긴 것이다.


<BR><BR>페미니즘 정치의 자원을 넓히려고 애쓰는 사람이 한나 아렌트라는 인물을 주목하는 것은 뜻밖이거나 심지어 거북스런 일이다. 엄격한 공/사 구별로 악명 높은 아렌트는, 그녀 식 정치의 독특한(sui generis) 성격과 공적 영역의 순수성을 보호하기 위해 사회 정의와 성별 쟁점들의 정치화를 금지한다. 이 같은 종류의 업무는 정치가 아니라, 아리스토텔레스가 이론화한 것처럼 전통적인 가사 영역에 속한다[는 것이다]. 요컨대, 아렌트는 자신이 “여성 문제”라고 부른 것들을 정치적으로 제기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생각했다.1)<BR>그렇다면 왜 아렌트를 주목한단 말인가? 내가 아렌트를 주목하는 것은 그녀가 성별 이론가라거나 여성이어서가 아니라, 페미니즘 정치에 크게 이로울 수 있을 갈등주의적(agonistic)[역주: 'agon'은 본래 고대 그리스에서 운동&#8228;음악&#8228;극 따위의 각종 경연이 벌어지는 장소를 가리키는 말로서, ‘갈등’이나 ‘분투’, ‘논쟁’, ‘고뇌’ 등의 의미를 갖고 있다. 또 고희극(古喜劇)에서 주요 인물들이 서로 대립되는 주장으로 갈등하고 언쟁하는 부분을 의미하기도 한다.]이고 수행적인 정치의 이론가이기 때문이다. 내가 아렌트를 주목하는 것은 그녀가 정치에 대한 자신의 관점에 포함시키는 것 때문일 뿐더러, 그녀가 정치에서 배제시키는 것(에도 불구하고가 아니라) 때문이기도 하다. 이 같은 배제에서 활용되는 용어들은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의 견고한 구별을 다루는 페미니즘 정치에게 유익하다. 아렌트가 공/사 구별에 집요하게 기대기는 하나, 그것을 정치화할 수 있는 자원들은 정치와 행위(action)에 관한 그녀의 설명 안에 제시되어 있다. 아렌트 정치의 갈등주의적이고 수행적인 충동에 기반하여 아렌트를 읽으려면, 바로 그 정치를 위해, 증대(augmentation)와 수정(amendment)이 미치지 않는 공/사 구별의 선험적 결정에 저항해야만 한다. (증대와 수정의 가능성을 영속시키려는) 이 저항 자체가 아렌트가 설명하는 정치 및 정치적 행위의 중요한 구성 요소다.<BR>나는 (반드시 저항이라고 할 수는 없는) 저항력(resistibility)이 아렌트 정치의 필수불가결한 조건(sine qua non)이라는 점을 논하는 것으로 시작하고자 한다. 그런 다음, 정치 영역에서 신체를 배제할 때 아렌트가 사용하는 용어들을 간략히 검토할 것인데, 우선 아렌트가 이론화하는 바와 같은 신체의 일의적&#8228;전제적&#8228;불가항력적(irresistible) 성격에 초점을 맞춘 다음, 수행적 화행(話行, speech-acts)을 통해 정치적으로 쟁취된 동일성(identity)―아렌트는 이를 [높이] 평가한다―을 획득하는 행위하는 자아(acting self)의 다중성(multiplicity)을 조명할 것이다. 아렌트의 설명에서 동일성은 수행적 산물이지 행위의 본질이나 표현적 조건이 아니다. 아렌트 작업의 이 같은 특성이 작업 배치의 토대가 되는 공/사 구별과 결합되면서, 아렌트에 대한 페미니스트 비판자들이 그녀가 여성 및 여성들의 쟁점에 호의적이지 않은 정치를 이론화했다고 비난할 여지를 주었다.2) 하지만 내가 볼 때 페미니즘 정치에 대한 아렌트의 가치는 그녀가 표현적이고 동일성에 기반을 둔 정치를 기각한다는 바로 그 점에 있다. 문제는 아렌트의 이러한 기각이, 성별과 같은 사적 영역의 동일성들을 잠재적인 정치화의 장소들로 대하는 것에 대한 거부에 입각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나는 아렌트가 그녀의 유대(Jewish) 동일성과 그 동일성에 동반되는 책임의 문제를 놓고 게르숌 숄렘(Gershom Scholem)과 벌인 유명한 논쟁에 주목하는데, 이는 그녀가 (이른바) 사적 동일성들을 “전(前)정치적” 영역에 가두는 데 실천적으로 실패했음을 예증하며, 동일성의 정치와 보다 직접적으로 연루되기 때문에 더욱 고무적인 저항과 재의미화(resignification)의 대안 전략이 필요하다는 점을 가리킨다.<BR>나의 결론은, 성과 성별을 이원적이고 구속적인 동일성의 범주로 구축하고 정치 공간을 공적&#8228;사적 영역으로 이원적으로 분할하려는 지배적 흐름에 (수행적이고 갈등주의적으로) 대항하려는 페미니즘에게 아렌트의 정치가 유망한 모형을 제시한다는 것이다. 아렌트 자신은 이처럼 그녀의 작업을 급진화하려는 것에 틀림없이 반대했을 테지만, 나는 이 같은 시도가 그녀의 (정초적) 문헌들을 증대시키는 것인 만큼, 그녀의 정치를 매우 잘 따르는 것이라고 믿는다.<BR><BR>정치적 행위와 저항력<BR><BR>아렌트가 정치와 행위에 대한 자신의 관점을 가장 간명하면서도 예리하게 논하는 것은 『미국 독립 선언』 독해에서다. 아렌트 설명의 모든 기본 요소들이 여기 다 나와 있다. 독립 선언은 정치적 행위이자 권력 행위인데, 왜냐하면 그것은 새로운 일련의 제도를 정초하고 새로운 정치 공동체를 구성/입헌(constitute)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 이전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어떤 것을 낳”고, “새로운 관계를 확립하며 새로운 현실을 창출한다.”3) 그것이 정치적 행위의 “완벽한” 사례인 까닭은 그 본질이 “‘행위를 옹호하는 논증’에 있다기보다는” 말 속에서 출현하는 행위(an action that appears in words)에 있기 때문이다.4) 이는 수행적 언표이자 화행으로서, 공적 영역의 대등한 이들(equals) 사이에서 그리고 그들 앞에서 수행된다.<BR>“우리는 이 같은 진리가 자명하다고 생각한다”(We hold these truths to be self-evident)는 유명한 문구에 초점을 맞추면서 아렌트는, 새로운 정체(政體)의 권력과 권위가 자명한 진리에 대한 진술적/확인적(constative) 지시 관계(reference)가 아니라 “우리는 생각한다”는 수행문에서 나온다고 주장한다.5) 극적인 동시에 비지시적인 수행문은 새로운 정치 공동체를 낳는다. 그것은 “우리”를 구성한다. 이 화행은 모든 행위와 마찬가지로 그것이 언표(되고 반복)되는 순간(들)에 행위자들을, 말하자면 탄생시킨다.<BR>“우리는 생각한다”는 수행문과는 대조적으로, 자명한 진리에 대한 진술적 지시 관계는 자유로운 합류가 아니라 강박과 필연에 대한 고립된 묵종(&#40665;從)을 표현한다. 자명한 진리에는 “동의가 필요치 않다.” 그것은 “논쟁적 증명이나 정치적 설득 없이 강제한다.” 그것은 “어떤 점에서 ‘전제 권력’만큼 강제적이다.” 진술문은 “불가항력적”이다. 그것들이 “우리에 의해 견지(held)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것들에 의해 견지된다.”(OR 192~93). 자유로운 정치적 행위를 위해 아렌트가 독립 선언과 그 정초에서 숙정하는 것은 그 폭력적이고 진술적인 순간들, 신과 자명한 진리, 그리고 자연법이라는 불가항력적인 정박점이다. 이 같은 함(doing) 배후에는 어떤 “~임”(being)도 존재하지 않는다. 함, 수행이 전부다.6)<BR>아렌트의 설명에 따르면 새롭게 정초된 공화국 권위의 진정한 원천은 진술적 순간이 아니라 수행적 순간이고, 고립된 묵종이 아니라 공동 행위(action in concert)이며, 자명한 진리가 아니라 “우리는 생각한다”이다.7) 그리고 공화국 권위의 진정한 원천은 이제부터 그 유지 방식, 재정초와 재구성/입헌에 대한 개방성이 될 것이다. “따라서 헌법의 수정은 미국 공화국의 기원적 정초를 증대하고 확장한다. 물론 미국 헌법의 권위 자체는 수정되고 증대될 수 있는 그 본래적 역량에 있다.”(OR 202, 강조는 필자) 헌법적 수정과 증대, 재정초에 이처럼 우호적인 성향을 지닌 정체는 신과 자연법, 그리고 자명한 진리라는 정초적 정박점을 반드시 기각해야 하는데, 왜냐하면 알다시피 신은 증대를 허용하지 않고, 또는 신은 증대될 필요가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신, 자연법, 자명한 진리 이 세 가지 모두는 불가항력적이고 완전하다. 이 문장(紋章)들은 권력을 굳게 만든다. 이들이 수행문을 진술문으로 사물화(事物化, reification)하면 재정초와 증대가능성이 감소함으로써 정치의 공간이 폐쇄되고 정체의 권위가 박탈된다. 저항력, 개방성, 창조성, 그리고 미완성성은 이 정치의 필수불가결한 조건이다. 아렌트가 공적 영역에 신체를 허용하지 않는 것이 필요하다고 고집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BR><BR>단순하고 일의적인 신체<BR><BR>인간 신체는 한나 아렌트에게 있어 순수 과정의 결정과 필연성, 불가항력, 모방성의 주문(主文)이다. 아렌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BR><BR>자신의 내부를 들여다 볼 때 깨닫게 되는 가장 강력한 필연은 생명 과정으로, 이는 우리의 신체에 고루 미치고 신체를 항상적 변화 상태로 유지하거니와, 그 운동은 우리 자신의 활동과 독립하여 자동으로 진행되고 불가항력적이다 ― 즉 압도적으로 집요하다. 우리 자신이 하는 것이 적어지고 우리의 능동성이 낮아질수록 이 생물학적 과정이 더욱 강력하게 나서면서 그 본래적 필연을 우리에게 강제하게 되고, 모든 인간 역사의 기저에 깔린 단순한 발생의 운명적인 자동 운동으로 우리를 위압한다. (OR 59; 강조는 필자)<BR><BR>그렇다면 공적 영역의 행위가 [필요한] 이유 중 하나는 사적 영역에서 노동하고 일하며 (무엇보다) 궁핍화된 존재들을 괴롭히는 순수 과정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다. 적어도 『혁명론』에서 아렌트가 말하는 것은 이런 식인데, 여기서 그녀는 프랑스 혁명의 막대한 실패를 기록하면서 그 책임을 “신체의 필요에 떠밀린 빈민들이 무대로 난입하여” “사회 문제”를 정치적 고려의 중심으로 만듦으로써 정치 공간을 실질적으로 폐쇄한 사실에 돌렸다(OR 59). 굶주리거나 가난한 신체를 대변하는 요구가 공적으로 만들어지면, 인간이 소유한 개성화하고(individuating) 능동화하는 능력은 침묵하게 된다. 난폭할 정도로 절박할 뿐더러 불가항력적이기까지 한 신체의 필요가 만족되기 전까지는 어떤 발화도, 어떤 행위도 있을 수 없다.<BR>다른 저서인 『인간의 조건』에서 아렌트의 강조점은 달라진다. 여기서도 “사회적”인 것을 정치적으로 고려하는 것에 대한 그녀의 적의는 약해지지 않지만, “사회적인 것의 부상”은 행동주의(behaviorism)나 대중 사회, “가사적인”(housekeeping) 용무의 관리가 정치 영역을 찬탈한다는 견지에서 이론화되는데, 이런 것들은 신체의 집요함보다 그 압박이 덜하진 않지만, 불가항력 면에서 보자면 덜 집요해 보인다. 여기서 사회적인 것은 무대에 부상하긴 해도, 난입하진 않는다.<BR>『혁명론』과 대조적으로 『인간의 조건』은 신체를 직접 논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신체의 문제가 다뤄질 경우 그 강조점은 신체의 불가항력보다는 그 모방성(imitability) 쪽에 놓인다.8) 아렌트의 말을 예로 들자면, 인간을 구별 짓는 정치적 발언과 행위에서 인간이 “전달(communicate)하는 것은 스스로이지, 단순한 무언가―목마름이나 굶주림, 애정이나 적의나 공포 따위―가 아니다.”(HC 176) 목마름이나 굶주림이 “단순한 무언가”인 까닭은 그것이 우리의 생물학적 실존의 공통적이고 공유된 특성이며, 그 자체로는 우리와 다른 이들을 어떤 의미 있는 방식으로도 구별 지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 같은 공통성(commonality, 평범함)은 근대에 들어 과대해지는데, 사회적인 것이 극히 순응적인 일련의 배치로 발전하여 “셀 수 없이 다양한 규칙들을 부과함으로써 … 경향적으로 그 구성원들을 ‘정상화/표준화’(normalize)하고 그 행실을 바로잡으며 자발적 행위나 걸출한 성취를 배제”(HC 40)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행위해야 하는 이유는 신체를 벗어나 그 집요함에서, 일시적으로, 자유로워지려는 필요성에 있지 않다. 대신 아렌트가 초점을 두는 것은 정치와 행위의 해독성 있고 독특한 소용(sui generis goods)을 통해 사회적인 것의 정상화/표준화하려는 충동에서 벗어나거나 그를 억누르려는 필요성이다. 행위해야 하는 이유는 행위만이 특유하게 갖는 개성화의 역량, 그리고 구별 및 개성화, 걸출한 성취를 향한 자아의 갈등적인(agonal) 열정에 있다.<BR>그들이 행위할 때, 아렌트의 행위자는 다시 태어난다(HC 176). 혁신적인 행위와 발언을 통해 그들은 “자신들이 누구인지를 보여주고, 자신들의 특유한 개인적 동일성들을 능동적으로 드러내며, 이로써 자신들을 인간 세계에 출현시킨다.”(HC 179) 그들이 공적 영역에서의 행위에 순간적으로 참여할 때 동일성들이 생겨나는데, 이는 그들을 목격한 목격자(spectator, 관객)들이 그들의 영웅적 수행에 관해 말하는 이야기 속에 영원히 새겨진다. 행위 이전에 또는 행위와 떨어져서는 이 자아는 동일성을 갖지 않는다. 그것은 파편적이고 불연속적이며 불분명할뿐더러 무엇보다도 전혀 흥미롭지 않다. 생명을 떠받치고 심리적으로 결정되어 있으며, 시시하고 모방가능한 사적 영역의 생물학적 피조물인 이 자아가 동일성을 얻는 것은 ― “누구”(who)가 되는 것은 ― 행위를 통해서다. 그것이 될 수도 있는 “누구”를 위하여, 자아는 근본적으로 우연적인 공적 영역의 위험을 무릅쓰는데, 여기서는 무엇이든 일어날 수 있고, 행위의 결과가 “무한하고” 예견할 수 없으며, “생명이 아니라 세계가 쟁점이 된다.”9) 이렇게 함으로써 그것이 내버리는 것은 “무엇임”(what it is, 현재의 본질)이라는 안락한 안전함, 사적 영역에서 그것을 정의(하고 심지어 결정)하는 역할과 특성들, “그것이 내보이거나 감추는 특징들, 재능들, 솜씨들과 단점들,” 그리고 그 작인(作人)을 특징짓는 의도와 동기, 목표다.10) 그렇기에 아렌트의 행위자들은 결코 자기-주권적이지 않다. 사적 영역에서 신체들(과 심리들)의 전제주의에 추동되는 그들은, 마찬가지로 공적 영역에서도 자신들이 하는 것을 결코 실질적으로 통제하지 못한다. 행위자로서 그들이 용감해야만 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행위는 자발적이고, 무에서 솟아나거니와, 가장 혼란스러운 점은 그것이 스스로를 놀라게 한다(self-surprising)는 점이다. “타인들에게는 그렇게 뚜렷하고 틀림없이 나타나는 ‘누구’는 그 개인 스스로에게는 숨겨진 상태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11)<BR>우리가 “무엇”인가("what" we are)에는 흥미롭거나 별다른 것이라고는 없으며, 심리적이고 생물학적인 자아에도 주목할 만한 것이 없다. 사적 자아의 특성은, 우리의 장기와 마찬가지로 “전혀 특유하지 않다”(HC 206). 아렌트는 생물학적 자아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만일 이 내부가 드러난다면, 우리는 모두 비슷하게 보일 것이다.”12) 여기서 아렌트가 가치를 두는 수행적 화행과 대비되는 침묵은 난폭할 정도로 집요한 신체적 필요가 유발하는 묵언(muteness)보다는 차라리 엄격하게 (의사)전달적이고 극히 지시적인 ― 발화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지시적인 ― 일종의 진술적 말하기이자 말없는 (의사)전달이다. 여기서 “발화는 부차적인 역할을 노는데, 그 역할이란 (의사)전달 수단이거나 말없이도 성취될 수 있는 무언가에 대한 부산물이다”(HC 179). 사적 영역에서 언어의 초점은 (신체의) “즉각적이고 동일한 필요와 부족을 전달”하는 것이므로, 이는 의태적으로 수행될 수 있다. 이 단순하고 일의적인 신체는 발언의 도움 없이 이 일을 처리할 수 있다. 아렌트는 “기호와 소리면 충분할 것”(HC 176)이라고 말한다.<BR><BR>다중적인, 행위하는 자아<BR><BR>유일하고 일의적인 신체와는 대조적으로, 행위하는 자아는 다중적이다. 이 갈라진 자아는 진술적인 면과 수행적인 면으로 갈라진 독립 선언의 구조 위에 겹쳐진다. 진술문과 신체는 모두 전제적이고 불가항력적이며 일의적이고 창조성이 없다. 양자 모두 분란을 일으키며(disruptive), 무대에 부상하거나 난입하여 정치 공간을 폐쇄시키겠다고 늘상 으르렁댄다. 이 항존하는 위협 때문에 우리는 신체적이거나 진술적인 강박의 침입에 맞서 공적 영역, 수행성의 공간을 방심하지 않고 경계(警戒)해야 한다.<BR>행위하는 자아는 선언의 수행적 순간과 유사하다. 그것은 자유롭고 (자기)창조적이며 변혁적이고 모방할 수 없다. 아렌트의 수행문들은 복수성(plurality, 다원성)을, 그 행위자들은 다중성을 상정한다. “우리는 생각한다”는 수행문의 힘은 구별되고 다양한 개인들에 의해 현행화되는데, 이들은 행위 이전까지는 세계에 대한 관심과 구별을 향한 갈등적(agonal) 열정을 제외한다면 별 다른 공통점을 갖지 않는다(OR 118 곳곳). 마찬가지로 아렌트의 행위자들이 행위하는 것은 그들의 이전 본질(what they already are) 때문이 아니며, 그들의 행위는 사전적인 안정된 동일성을 표현하지 않는다. 그들은 불안정하고 다중적인 자아를 전제하는데, 이 자아가 추구하는 것은 기껏 해 봤자 행위에서의, 그리고 행위의 대가인 동일성에서의 일시적인 자기실현이다.<BR>아렌트는 이 다중적인 자아를 투쟁의 장소로 특징짓는데, 이 투쟁은 자아가 행위하는, 그리고 수행적 산물인 동일성을 쟁취하는 각각의 순간에 일시적으로 진정된다. 투쟁은 사적인 자아와 공적인 자아 사이에서 벌어지는데, 전자가 위험을 기피하는 폐인(stay-at-home)이라면 후자는 우연적인 공적 영역에서 활동하는 용감한 심지어 경솔한 행위자다. 이 같은 사적&#8228;공적 충동의 갈라짐이 자아에 새겨지지만, 자아의 파편성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사적 영역에 홀로 있을 때에도 이 자아는 세 가지 구별되고 경합하며 양립불가능한 정신 능력들―사고, 의지, 판단―에 고취되어 서로 갈등하는데, 이 각각의 능력 또한 내적으로 쪼개지고 “반사되며” “스스로에게 다시” 되튕겨진다. 아렌트는 항상 “이 같은 내적 저항이 남아 있다”13)고 말한다. 자율성이 부과된 구축물이라고 아렌트가 주장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것은 파편적이고 다중적인 자아에게 일의성을 부과한다. 그것은 “스스로의 자아에 대한 지배와 타인들에 대한 통치에 의존하는 정복”을 포함한다. 그것은 아렌트가 설명하는 자아가 그것에 대해 저항하는 구성체(formation)다(HC 244). 이 자아는 결코 하나가 아니다. 그것은 그 자체로 아렌트가 (때때로) 정치라 부르는 갈등주의적인 투쟁의 장소다.14) 그리고 아렌트는 이를 찬성하는데, 왜냐하면 니체와 마찬가지로 그녀는 이 같은 자아의 내적 다중성이 그 힘과 활력의 원천이자, 창조적인 수행적 행위의 조건 중 하나라고 보기 때문이다.15)<BR>일의적 신체와 다중적 자아 간의 이 같은 갈라짐은 개별적 자아들의 속성으로 제시되지만, 그러나 그것들은 아렌트가 친애하는 모형인 고대 그리스에서 일부 자아들을 타인들과 구별 짓기 위해 실제로 작동한다. 여기서 행위의 경험은 극히 소수에게만 허용된다. 신체의 판에 박힌 일상과 집요함은 『인간의 조건』에서 암묵적으로 ― 고대 그리스에서 명시적으로 그랬던 것처럼 ― 여성과 노예(그리고 또한 아이들, 노동자들, 그리고 폴리스의 모든 비-그리스인 거주자), 곧 “신체적 기능과 물질적 용무들이 숨어 있어야 하는”16) 사적 영역에서 신체와 그 필요에 전념하는 노동하는 신민들(subjects, 주체들)과 동일화된다. 이들 사적 영역의 주민들은 신체와 본성이 그들에게 강요하는 요구, 그리고 그들을 재산으로 소유하는 가구(household)의 주인이 그들에게 지시하는 명령에 수동적으로 종속(subject)된다. 지루할 정도로 뻔하고 반복적이며 순환적인 본성의 과정 및 가구의 전제주의 양 쪽에 희생당하는 그들은, 아렌트가 공적 영역에서의 행위와 동일시하는 자유를 행할 수 없게끔 결정되어 있다. 반면 자유로운 시민은 사적 영역에서의 자신들의 사적 필요를 돌볼 수 있지만(그보다는 신민들이 돌보게 만들 수 있지만), 그런 다음 이 숙명적이고 생명을 떠받치는 용무를 뒤로 하고 자유와 발언과 행위의 공적 영역에 입장할 수 있다. 사실 이 용무를 뒤로 할 수 있는 그들의 능력이야말로 그들이 행위할 능력이 있다는 표지다. 정치에서는 어쨌거나 “생명이 아니라 세계가 쟁점인 것이다.”<BR>자유로운 시민들이 이처럼 사적 영역에서 공적 영역으로 주기적으로 통행하는 것을 보면, 이 두 영역의 간극이 협상 불가능한 것은 아님을 알 수 있다(HC 24). 그러나 이는 오직 시민들에게만, 그러니까 자신들의 신체화(embodiment) 조건과 본질적으로 동일화되지 않는 이들에게만 적용된다. 이는 실질적으로 그들의 시민권을 측정하는 기준이다. [반면] “타자들”, 그러니까 그들의 동일성이 그들의 신체화와 동일하다(이것이 그들의 야만을 측정하는 기준이다)는 본성 자체 때문에 결코 시민이 될 수 없는 이들의 경우 공/사의 불통(不通)을 협상할 여지가 없다.<BR>이처럼 문제점이 많은 정치적 행위를 아렌트가 폴리스에 귀속시키는 것은 틀림없지만, 이를 아렌트 자신에게 귀속시키는 것이 옳을까?17) 분명 아렌트는 그녀 식의 사적 영역과 거기서 일어나는 노동 및 작업 활동들이 특정 계급의 인민이나 신체, 또는 특히 여성과 동일화될 수 있는 것처럼 말하곤 한다. 그러나 한나 피트킨이 지적하듯, 경우에 따라 사적 영역과 노동 및 작업 활동들은 특정한 계급이나 집단보다는 “공적 영역이 반드시 경계해야 하는 특정한 태도(들)”을 표상한다.18) 예를 들어 노동, 곧 “인간 신체의 생물학적 과정에 조응하는 활동”이라는 하나의 양태 안에서는, 생명의 숙명론적 본질과 특정한 종류의 합리성의 도구적 성격이 우리를 너무나 철저하게 지배하는 나머지 정치의 자유 및 특유의 생성적인 수행성이 떠오를 수 없다(HC 7). 노동 및 작업에 관해 아렌트가 정말로 근심한 것은 그것들이 행위를 방해하거나 파괴하는 특수한 감성들(sensibilities)을 요구하고 일으킨다는 것이기 때문에, 피트킨은 다음과 같이 제안한다. “아마도 ‘노동자’는 그의 생산 방식이나 빈곤이 아니라 그의 ‘공정’(工程, process) 지향적인 관점에 따라 식별되어야 할 것이다. 아마도 그가 필연에 떠밀리는 것은 객관적인 것이 아니고, 그가 스스로를 행위할 능력이 없이 떠밀리는 존재라고 간주하기 때문일 것이다.”19)<BR>또는 차라리 정치적 행위에서 배제되는 것은 아마도 노동하는 감성일 텐데, 이 감성은 활동으로서의 노동에 특징적인 것으로 간주되지만, 어떤 특정 노동자의 사고를 특징지을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거니와, 이 감성은 노동자가 노동할 때 표현되는 노동하는 본성이나 본질을 신호하는 것으로 간주돼서는 안 된다. 이 함 배후에는 어떤 “~임”도 없다. 동일한 분석이 작업에도 적용된다. 이 설명에서는 정치적 행위에서 배제되는 개인들의 명확한 계급이란 없다. 대신 정치는 다양한 감성들, 태도들, 성향들, 그리고 접근들로부터 보호되는데, 이 모두는 모든 자아들과 주체들을 일정한 정도로 구성하고, 자아를 지배하기 위한 투쟁에 참여하며, 아렌트가 가치를 두는 행위의 이해(들)과 양립할 수 없다. 요컨대 노동, 작업, 행위를 감성들로 해석함으로써 그것들을 탈본질화하거나 탈자연화(denaturalize, 변성(變性))할 수 있다. 각각은 스스로를 수행적 산물로, 즉 어떤 계급이나 성별의 진정한 본질의 표현이 아니라 개인들과 사회들, 그리고 정치적 문화들의 행위와 행실, 규준, 그리고 제도적 구조들의 항상 (침전된) 산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20)<BR>노동과 작업과 행위를 이처럼 (경합하는) 감수성들로 읽는 것은 자아를 다중성으로 보는 아렌트의 관점과 양립할 수 있다. 그리고 이는 신체를 진술의 폐쇄와 모방성, 불가항력의 주문으로 취급하는 아렌트의 견해를 부드럽게 전복하는 길을 가리킬 것이다. 아렌트의 설명에서 노동은 결국 신체적 기능일뿐더러 신체에 전념하는 양태, “생명 과정 자체에 필요한” 사물들에 몰두한 양태가 되는 것이다. 만일 노동(모든 것을 때때로 떠미는 결정적 감성)이 수행적 산물일 수 있다면, 신체 자체는 왜 안 되겠는가? 노동, 작업, 행위를 감성으로 보는 이 같은 독해는 신체를 탈본질화하고 탈자연화하고, 아마도 복수화하며, 어쩌면 심지어 그것을 아렌트적인 의미에서 수행적 산물, 행위가 가능한 장소로 보게 하는 방향으로 우리를 밀고 가지 않겠는가?<BR><BR>공과 사를 구별하기<BR><BR>이렇게 아렌트의 설명을 급진화하는 데 방해되는 것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내가 수행문과 진술문이라는 표제 아래 함께 모아 둔 일련의 구별들에 아렌트가 의존한다는 점이다. 아렌트는 이 구별들을 협상할 수 없고 겹치지 않는 이원적인 대당으로 다루며, 그것들을 그녀 작업의 (움직이는) 중심에 놓여 있는 (역사적으로 매우 불평등한) 공/사 구별 위에 배치한다. 물론 앞으로 밝혀질 것처럼 방해가 되는 것은 하나 이상인데, 왜냐하면 아렌트가 다층적인 체계로써 자신의 공/사 구별을 확고히 하기 때문이다. 이 구별은 수많은 이원성을 낳는데, 각각은 그 이전 것에 덧붙여진 새로운 층의 보호막이며, 이들은 아렌트가 그것에 할당한 존재론화하는(ontologizing) 기능에 저항하는 구별을 더 견고하게 지키려는 의도를 갖는다. 수행문 대(對) 진술문, “우리는 생각한다” 대 “자명한 진리”, 다중적 자아 대 일의적 신체, 남성 대 여성, 저항가능한 대 불가항력적인, 용감한 대 위험회피적인, 발언 대 묵언적 침묵, 능동적 대 수동적, 비범한 대 평범한, 개방적 대 폐쇄적, 권력 대 폭력, 자유 대 필연, 행위 대 행실, 비범한 대 평범한, 모방불가능한 대 모방가능한, 분란 대 반복, 빛 대 어둠, 요컨대 공 대 사.<BR>왜 이렇게 많은가? (선)긋기가 아렌트적 의미에서 비범한 행위긴 하지만(그것은 새로운 관계들과 새로운 현실들을 창조할 수 있는 힘을 갖는다), 이 구별을 긋는 것 자체에서 아렌트는 불안한 반복의 순환에 사로잡힌다. 이 모두를 필요로 할 정도로 희박한 구별이 침식당하는 것에 저항하려는 영웅적 노력 안에서, 이원적 구별과 형용사적 쌍들은 서로의 위에 덧쌓인다. 참으로 희박하지 않은가. 아렌트의 설명에서 이 같은 구별들이 서로 침투하는 수많은 사례들이 있다. 아렌트는 공적 영역이 사적 영역에 너무나도 쉽사리 식민화되고 사회적인 것으로 전환된다는 사실에 관해 아주 솔직하다.(그녀가 『인간의 조건』과 『혁명론』에서 대답하는 것이 바로 이 문제다.) 그녀의 솔직함 때문에 우리는 이 구별들을 긋는 것이 다른 무엇보다 사적 영역의 제국주의에서 공적인 것을 보호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그 역도 성립한다. 아렌트에게 마찬가지로 중요한 것은 사적 영역의 신뢰성, 일의성, 그리고 평범함을 행위와 정치의 분란에서 보호하는 것이다.21) 요컨대 아렌트는 행실뿐만 아니라 행위 자체도 길들인다. 그녀는 행위에게 근거지라 부를 만한 장소를 부여하고, 행위에게 그것이 속해야 하는 이곳에 머무르라고 말한다. 그러나 물론 행위는 이를 거부한다.<BR>행위의 진정한 위험은 바로 여기, 이 거부에 있다. 스스로를 놀라게 하는(self-surprising) 행위의 특성은, 행위가 항상 그것에 대한 우리의 의도대로 되어 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에 제한되지 않는다. 또한 행위자로서의 우리가, 우리 자신으로 된 것이 “누구”인지에 대해 완전히 확신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제한되는 것도 아니다. 행위가 스스로를 놀라게 하는 것은 또 다른 의미, 곧 그것이 우리에게 일어난다(it happen to us)는 의미에서다. 우리는 수행할 것을 결정하고 난 후에 공적 영역에 입장하여 그 영역을 특징짓는 우연성에 우리의 수행을 종속시키는 것이 아니다. 종종, 정치적 행위는 우리에게 도래하며, 신중하다거나 계획적이라거나 의도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우리를 휘말리게 한다. 행위는 그 행위자들을 생산한다. 우연적이고 일시적으로(episodically, temporarily) 우리는 행위의 갈등주의적 성취다. 아렌트의 설명에서 미국 혁명은 미국 혁명가들에게 일어난 것이었다. “그러나 혁명으로 이끈 운동은 부주의(inadvertence)라는 점을 제외하고는 혁명적이지 않았다”(OR 44). 그리고 때때로, 특히 그녀가 의지를 설명할 때, 행위는 원래 사적 영역에서, 사적인 자아에게 일어난다.<BR>아렌트는 의지를 행위의 선행항로 간주하지만, 그것이 실은 행위를 지연시킨다는 점에서 기묘한 종류의 선행항이다. 반사적이고, 내적이며, 원함과 원치 않음(willing and nilling)의 잠재적으로 영원한 동역학에 사로잡혀 있고, 이 동역학을 저지할 능력이 없는 의지는 구원을 기다린다. 그리고 구원이 도래할 때, 그것은 행위라는 형태 자체로 온다. 행위는 의지의 강박적인 반복에 분란을 일으킴으로써, 의지의 마비적 “우려와 근심”에서 자아를 해방한다. 행위는 사적 영역에, 말하자면 진입한다(come in). 그것은 아직 채비를 갖추지 못하고 완전히 의지를 굳히지 않은(왜냐하면 또한 여전히 원치 않기 때문에) 사적 영역의 주체에게 일어난다. 쿠데타처럼 행위는 “벨레(velle, ‘원한다’는 뜻의 라틴어)와 놀레(nolle, ‘원치 않는다’는 뜻의 라틴어) 간의 갈등을 중단”시키고 의지를 구원한다. “즉 의지(Will)가 구원받는 것은 의지하기를 그치고 행위하기 시작함으로써이며, 중지가 의지하지 않을 의지(will-not-to-will)의 행위에서 비롯할 수 없는 것은 이것이 또 다른 의지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22)<BR>공/사 영역의 이종교배 사례들은 넘쳐 난다. 그것들은 이종교배의 불가능성, 도착(倒錯), 기괴함을 설명하게 되어 있는 구별들만큼이나 다양하다. 그렇다면 성/성별 수행성을 다룬 한 페미니스트 이론가처럼 “신체 자체에 수행성을” 적용하지 못할 이유가 무엇인가?23) 무엇이 공/사 구별의 희석을 금지하는가? 사적 영역의 진술적 동일성들이 실제로는 개인들, 사회들, 그리고 정치적 문화들의 규준들과 제도적 구조들, 행실들, 행위들의 (침전된) 산물이라는 것을 폭로하는 것에 대한 벌이 무엇인가? 내기에 걸린 것은 무엇인가?<BR>아렌트에게서 내기에 걸린 것은 행위 자체의 상실, 행위가능한 것(actionable, 기소할 수 있는)이 허용되는 영역의 상실이다. 이것이 근심의 진정한 원인이며, 특히 사회적인 것의 “헤아릴 수 없이 다양한 규칙들”이 정상적이고 행실 바른 주체들을 생산하는 데서 거둔 놀랍고 불편한 성공을 감안한다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그것을 허용하기 위해 아렌트는 공적 영역에서 거의 모든 내용을 비워 버린다. 내용을 가진 것들은 어쨌거나 진술문이고, 아렌트의 이론화에서 폐쇄의 장소이며, 수행문에 대한 불가항력적인 장애물이다. 한나 피트킨이, 저 시민들은 “저 광장(agora)에서의 끝없는 회의(palaver)에서 [무엇에] 관해서 함께 얘기하는가”라고 어리둥절하게 여기는 것은 이 때문이다.24) 아렌트가 행위를 사실상 형식화하는 것, 협상불가능한 공/사 구별로써 행위를 보호하려고 시도하는 것은, 사회적인 것의 그 어떤 부상보다, 표면적으로는 불가항력적인 신체들의 그 어떤 난입보다 더 행위를 상실하고 폐색하는 원인이 될 수 있다.<BR>공/사 구별의 침투성, 부정확성, 모호성은 그것을 포기할 이유가 되지 못한다. 그보다는 희석의 가능성을 시사한다고 해야 할 것이다. 불가항력적으로 새겨진 아렌트 자신의 공/사 구별을, 모래 위에 그어진 선, 그 자체로 부당한(illicit) 진술문, 구성적인 표식이나 문헌, 반박&#8228;증대&#8228;수정되기를 갈등주의적으로 호소하는 것으로 여긴다면 어떻겠는가? 그리고 우리가 공과 사의 지리적이고 독점적인 은유를 없애는 것으로 시작한다면 어떻겠는가? 아렌트의 공적 영역을 고대 그리스의 아곤과 같은 특정한 장소가 아니라, 행위를 일으킬 법한 ― 지형(학)적인(topographical) 동시에 개념적인 ― 다양한 (갈등주의적) 공간들의 은유로 대한다면 어떻겠는가? 우리에게 남는 것은 사건으로서의 행위, 평범한 사물의 질서에서 새로움과 구별로의 길을 여는 갈등주의적 분란, 불가항력적인 것에 대한 저항의 장소, 다양한 행실을 구성하고 통치하며 통제하려는 정상화/표준화하는 규칙에 대한 도전이다. 그리고 우리는 훨씬 더 광범위한 진술/확인의 정렬 안에서 정치적 행위의 장소들을 식별할 수 있는 위치에 설 것인데, 이 정렬의 범위는 신이나 자연, 기술, 자본 등의 자명한 진리에서부터 동일성, 성별, 인종, 종족성 등에 이를 것이다. 이렇게 우리는 행위할 수 있는 위치에 서게 될 것이다 ― 사적 영역에서 말이다.<BR>아렌트는 물론 그녀의 설명을 이처럼 수정하는 것이 지나친 정치화라고, (낸시 프레이저가 아렌트를 대변해서 쓰듯) “모든 것이 정치적일 때, 정치적인 것의 의미와 종별성은 희미해진다.”25)고 염려할 것이다. 프레이저가 볼 때 정치에 대한 아렌트의 이론화는 하나의 역설에 빛을 비춘다. 만일 정치가 모든 곳에 있다면, 그것은 아무 데도 없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수정된) 설명에서 모든 것이 곧 정치적이지는 않다. 그것은 단지 정치화로부터 존재론적으로 보호받는 것은, 필연적으로나 자연적으로나 존재론적으로 정치적이지 않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할 뿐이다. 공과 사의 구별은 정치 투쟁의 수행적 산물로서, 어렵사리 획득되고 항상 일시적인 것으로 간주된다. 물론 이 역설은 역전될 수 있다. 정치적인 것과 비정치적인 것의 분할을 정초적으로 보존하려는 충동은 정치적인 것의 보존을 염려하는 것이라고 표명되지만, 그 자체는 반정치적인 충동이다. 아렌트는 이를 알았다. 독립 선언의 진술적이고 정초적인 토대를 그녀가 비판할 때 기초로 삼은 것이 바로 이것이다. 선언의 자명성에 수행성을 적용하도록 그녀를 자극한 것도 이것이다. 그리고 동일한 충동이 아렌트의 공/사 구별 자체에 수행성을 적용하도록 자극할 수 있다.<BR>이 같은 갈등의 분산은 아렌트가 이론화한 정치의 또 다른, 사뭇 상이한 계기에 의해 정당화될 수도 있다. 아렌트는 상황의 긴급함 때문에 정치가 지하에서 움직이도록 강제되는 시간이 있다는 것을 이해했다. 그녀는 점령 프랑스의 지하 정치에 유의하면서, 저항의 장소, 전복적인 정치 행위의 네트워크가 증식하는 것에 가치를 부여했다.26) 아렌트가 “사회적인 것의 부상”과, 틀에 박히고 관료적이며 관리적인/행정적인(administration) 정체(政體)에 의한 정치의 전위라고 묘사한 것을 점령이라는 용어로 불러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제도적 장소가 부재할 때 페미니즘 정치는 지하에 숨어들면서, 개인적이면서도 제도적인 동일성들의 틈과 균열에서 조심스럽게 스스로의 거처를 정하고, 새로운 관계들과 현실들을 확립한다는 희망을 품고 수행적이고 갈등주의적이며 창조적으로 그렇게 할 수 있다.<BR><BR>사적 영역에서 행위하기<BR><BR>사적 영역의 자명성 안에 위치한 갈등주의적인 수행성의 정치라는 이상의 개념을 탐색한 것은 주디스 버틀러인데, 그녀는 특히 성과 성별의 구축 및 구성에 초점을 둔다. 버틀러는 사적 영역의 진술―아렌트가 자연 순환의 무심하고 지루하며 완벽하고 억압적인 반복이라고 서술한 것―의 가면을 벗기고, 일상적으로 성/성별 동일성을 (재)생산하는 수행성으로 이들을 재서술한다. 이 같은 수행들은 “이성애적 계약”에 의한, 그리고 그것에 중심을 둔 이원적인 성별 구성의 규제적 실천의 강제적 산물이라는 것이 버틀러의 주장이다. 그러나 이 행위들은 “내적으로 불연속적이다.” 그것들이 생산하는 동일성들은 “이음매가 없지”(seamless) 않다. “지시대상[자아]의 다중성과 불연속성은 기호[성/성별]의 일의성을 조롱하고 이반한다.” 이 조롱(mockery)과 반란의 공간들, “이런 행위들 간의 자의적 관계 안에, 다른 식으로 반복할 가능성 안에” “성별 변혁의 가능성들”이 있다.27) 전복적인 반복은 대안적인 성/성별 동일성들을 수행적으로 생산할 것인데, 이 동일성들은 증식할 것이고 이 같은 증식(과 전략적 전개) 속에서 지금 성/성별 동일성들을 규제하고 남김없이 구성하려 드는 사물화된 이원성들에 대항하여 저항할 것이다.<BR>그렇다면 이 전략은 동일화주의적인(identitarian) 관리, 규제, 표현에 저항하거나 거기에서 벗어나는 공간들을 식별함으로써 동일성들을 수행적 산물로 탈권위화&#8228;재서술하고, 성공적인 진술문을 열망하는 동일성들의 가면을 벗기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아렌트의 용어를 빌자면 이 전략은 “우리가 생각하는” 성/성별 동일성들이 행위를 통해 다양한 방식으로 수정되고 증대될 수 있다는 믿음에 의지한다. 정치 이론의 과제는 새로운 시작들을 환대하는 (긴장과 결정불가능성, 그리고 자의성의) 공간들을 넓힘으로써 (재)정초의 실천을 돕고 북돋는 것이다.28) 이들은 정치의 공간, 수행적 자유의 (잠재력 있는) 공간들이다. 여기서는 사적 영역에서 행위가 가능해지는데, 왜냐하면 사회적인 것과 그 정상화/표준화의 장치들은 아렌트가 지나치게 속단한 것과 달리 완벽한 폐쇄를 획득하는 데 시종일관 실패하기 때문이다. 사회적인 것의 야망이 이처럼 실현되지 못한다는 것은 정치를 마비시키는 응고되고 딱딱하며 사물화되고 자연화된 동일성들과 정초들을 전복할 수 있다는 것, 행위가능한 것의 영역을 넓힐 수 있다는 것, 수행적 행위들을 진술적 진리들로 침전시키는 것에 저항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정치와 동일성의 문제에서는 그것을 바로 잡는다거나(get it right) 완전히 끝장내는 것이 가능하지 않다는 신념을 견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불가능성은 아렌트의 공적&#8228;사적 영역의 필요와 억압을 구조화한다. 그리고 이는 어떤 동일성의 정치라도 문제시하고 저항할 수 있는 훌륭한 이유를 제공해 준다.<BR>한나 피트킨은 이익, 그리고 공유된 물질적 필요 및 용무의 재현/대의(representation)의 재판정이나 실천으로 정치를 이론화할 것을 거부하는 아렌트를 열렬히 비판한다.29) 아렌트의 정치가 아무런 함의나 내용도 없을 만큼 형식적일 수 있다는 것을 근심한다는 점에서는 그녀가 옳다. 그러나 피트킨은 아렌트가 제시한 전망의 유망함(promise, 약속)을 헤아리는 데는 실패한다. 정치적 행위가 우리가 “무엇”인지를 ― 즉 우리의 사물화된 사적 영역의 동일성들을 ― 재현/대의하는 장소가 되는 것을 허용하지 않으려는 아렌트의 태도에 유망함이 있다. 아렌트의 관점에서 재현/대의의 정치는 부과적이고 어긋나는(ill-fitting) 이익들과 동일성들의 그릇된 공통성을 투사한다. 더욱이 그것은 중요한 대안을 차단한다. 그 대안이란, 우리가 “무엇”인지를 재생산하고 재-현(re-present)하는 대신, 우연적으로(episodically) 새로운 동일성들을 생산함으로써 우리가 “누구”인지를 갈등주의적으로 낳는 수행적 정치인데, 이 동일성들의 “새로움”은 “행위하는 인간들/여성들([wo]men)에 의해 ― 비록 의식한 것은 아니더라도 ― 시작되고, 그들의 후손에 의해 널리 상연되고 증대되며 오래 간직되는 새로운 이야기의 시작”이 될 것이다.30)<BR><BR>동일성의 정치<BR><BR>아렌트의 행위 이론에서 수행성이 중심성을 차지하는 것은, 성별이나 인종, 종족성 또는 국적(nationality, 민족성) 같은 공유된 (공동체) 동일성들을 표현하는 것으로 정치를 바라보려는 시도에 아렌트가 반대하는 데서 비롯한다. 수행성과 갈등주의는 아렌트의 설명에서 우연의 일치로 연결되는 것이 아니다. 아렌트의 정치가 항상 갈등주의적인 것은 그것이 표현주의의 매력에 저항하기 때문인데, 이는 자아를 그 동일성들이 항상 수행적으로 생산되는 복잡한 다중성의 장소로 보는 그녀의 관점을 위한 것이다. 이 갈등주의는 주체성의 무엇-임(what-ness)의 자기만족적 친숙함을 삼가고, 행위와 새로운 관계 및 현실들을 발생시킬 수 있는 상쾌한 역량을 위해 사회적인 것의 유혹적인 안락을 거절한다.<BR>아렌트의 시각에서 볼 때, 선재적(先在的)이고 공유되며 안정된 동일성의 기초 위에 스스로를 구성/입헌하는 정치 공동체는, 정치의 공간을 폐쇄하고 정치적 행위가 상정하는 복수성과 다중성을 동질화하거나 억압할 위험이 있다. 아렌트는 복수성이나 다중성을 극복하려는 시도가 반드시 “공적 영역 자체의 폐지”와 “모든 타인들에 대한 자의적 지배,” 또는 “실재적 세계를 이 타인들이 아예 존재하지 않을 상상적 세계로 교체”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한다(HC 220, 234). 이 같은 교체를 방지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정치 공동체들의 비동일성과 이질성들로써, 그리고 또한 정상화/표준화적 주체성의 구축과 자율성의 부과에 대한(또한 성/성별 동일성들을 남성과 여성, 남성적인 것과 여성적인 것의 이원적 범주로 형성하려는 것에 대한) 자아의 저항으로써 정치 공간들을 보호하는 것이다. 자아를 정의하려 드는 사회적, 심리적, 사법적 범주들에 대한 자아의 갈등주의적 어긋남은 권력 발생의 원천이자, (대안적) 수행성(들)을 발생시키는 장소가 있다는 신호다.<BR>아렌트가 민족 국가에 적의를 품었던 것은 이처럼 정치와 행위의 조건으로 차이와 복수성을 염려하기 때문인데, 민족 국가의 혐오스러운 “결정적 원칙”은 그것의 “과거와 기원에 대한 동질성”이다(OR 174). 그리고 이것은 또한 그녀가 페미니즘 정치라는 주제에 침묵한 이유를 설명해 줄 것이다. 아렌트는 “여성의 경험”이나 “여성의 앎의 방식” 안에서 동질성을 선포하려는 어떤 시도에 대해서도 굉장히 경계했었을 것이다. 그녀는 저 (이른바) 동일성의 경계 내부의 중요한 차이와 복수성들―또는 심지어 [동일성의 경계]에 대한 저항―을 숨기(거나 금지하거나 처벌하거나 침묵시키)는 보편성을 함축한다거나 그것을 열망하는 여성 범주에 의지하는 어떤 페미니즘 정치에 대해서도 비판적이었을 것이다.<BR>이 같은 의견은 추리한 것인데, 왜냐하면 아렌트가 자신의 이론 작업에서 페미니즘이나 페미니즘 정치라는 쟁점을 다루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 자신은 그동안 아렌트에게 직접적으로 성별 문제를 제기하길 꺼려했는데, 왜냐하면 아렌트에 대한 페미니즘적 비판자들이 이 문제를 도덕주의적인 방식으로 제기하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아렌트가, 여성으로서, “여성 문제”를 제기하거나, 적어도 여성을 염두에 두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정치를 이론화할 책임이 있다고 가정했다. 그녀가 그렇게 하지 못했다는 사실 때문에 그녀는 부역자(collaborator)로 규정된다. 이 같은 고발을 가장 쌀쌀맞고 강력하게 제기한 것은 아드리엔느 리치인데, 그녀는 『인간의 조건』이 “거만하고 불구적인 책”이고 “남성 이데올로기로 길러진 여성 정신의 비극”을 보여 준다고 묘사한다.31) 나는 여기서 가정하는 책임에 대해 별로 확신하지 않기에, 이 질문들을 제기하되 이런 방식으로는 제기하지 않을 것이다. 즉 이런 책임을 할당하거나 함축하지 않을 것이다. 사실 나는 아렌트가 한 패(joiner)가 되기를 거부한 것에 대해, 동일성 정치와 동일성 공동체에 소속되는 것을 그녀가 경계한 것에 대해, 로자 룩셈부르크에 대해(뿐만 아니라, 내 생각에, 그녀 자신에 대해) “그녀 세대의 모든 다른 여성들과 정치적 신념들이 불가항력적으로 이끌린 여성해방운동에 대해 그녀가 보인 혐오는 중요한 것이었다. 여성 참정권론자(suffragette) 식 평등의 면전에서 그녀는 ‘작은 차이 만세’(Vive la petite diff&eacute;rence)라고 대답하고 싶었을 것 같다.”32)라고 말하게 한 놀라운 외고집에 대해 얼마간 존경심을 느낀다. <BR>괴짜스런 논평이다. 그 정치적 헌신을 정치가 아닌 “운동”과의 “불가항력적인” 동일화의 산물로 기각당한 여성 참정권론자들에게는 확실히 부당할 것이다. 그렇기는 하지만 흥미로운 논평이긴 하다. 이 룩셈부르크가 찬사를 보냈다고 아렌트가 상상하는 이 작은 차이란 무엇인가? 이는 성적 차이가 아니다 ― 이는 차이이며, 전혀 작지 않다. 작은 차이란 (비록 아렌트의 의미심장한 어법 선택으로 그 자체 성별화되긴 했지만) 성/성별-내적인 차이다. 그것은 룩셈부르크와 여타 여성들을 구별하는 차이다. 아렌트가 룩셈부르크에게서 존경한 것은, 아렌트 자신이 얻으려고 분투한 자질이다. 소속의 거부, 특정한 종류의 평등보다 차이나 구별의 선택이 그것이다.33) 그녀가 이 절에서 얘기하는 “여성 참정권 평등”은 이 여성들이 여전히 얻으려고 분투하는 남성 유권자들과의 공민적 평등이 아니다. 그것은 여성 참정권론자들 사이의 평등, 공동의 대의에 대한 그들의 헌신인데, 이 대의의 명목 하에 그들 간의 차이가 말소된다(고 아렌트는 주장한다). 아렌트가 구성하고 찬사를 보내는 로자 룩셈부르크는, “외부자”이자, “그녀가 혐오했던 나라의 폴란드계 유대인”이며, “그녀가 곧 경멸하게 되는 [정]당”의 구성원이자, “여성,” 곧 여성운동의 “불가항력적” 꾐에 저항하고, 다른 투쟁들을 자신의 것으로 삼으며, 이로써 동질성이 아닌 구별의 동일성을 혼자 힘으로 쟁취한 탁월한 유형의 여성이다.<BR>동일성의 정치에 대한 동일한 감정들, 동일한 거리두기의 기술과 혐오가 게르숌 숄렘과 아렌트의 서신교환에서 분명하게 나타나는데, 이 서신교환은 아이히만(Eichmann)에 관한 아렌트의 논쟁적 책을 대상으로 삼는다는 명목을 내세웠지만, 실은 또는 마찬가지로 아렌트의 (자칭 사적 영역의) 유대인으로서의 동일성이라는 용어에 관한 논쟁이었다.34) 이 짧은 서신교환은 동일성의 정치에서 계발적이고 도발적인 연구다. 아렌트에게 보낸 숄렘의 편지는 동일화와 정치화를 행사한다. 그는 아렌트에게 그녀의 책이 “신자의 확신”을 거의 담고 있지 않고, “허약함”과 “비열함, 그리고 권력욕(power-lust)”을 표출하며, “독자(one)에게 … 편집자에 대한 … 신랄함과 치욕의 느낌을 남긴다”고, 그는 그녀에게 “깊은 존경심”을 갖고 있으며, 그녀의 책에 흐르는 “냉혹하고” “거의 냉소적이고 악의가 느껴지기까지 하는 어조”에 그녀의 주의를 환기시켜야만 하는 것은 이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는 그녀(“친애하는 한나”)에게서 어떤 “아하바트 이스라엘(Ababath Israel, 이스라엘을 사랑하라는 히브리어), ‘유대 민족을 사랑하라’”의 “흔적을 거의” 찾을 수 없고, 이 같은 부재는 “독일 좌파 출신의 수많은 지식인들에게” 전형적이다[고 말한다]. 무엇이 숄렘에게 이 모든 것들을 말할 수 있게, 그리고 그것들을 도덕적 결점으로 낙인찍을 수 있게 허가하는가? 그것은 그가 아렌트를 “전적으로 우리 민족의 딸로만 [여길 뿐], 다른 식으로는 전혀” 여기지 않는다는 사실이다.35)<BR>아렌트는 두 가지 전략적 거부로 대응한다. 첫째, 그녀는 그녀가 “전적으로” 유대적일 뿐, 차이들이나 다른 동일성들에 의해 갈라지거나 구성되지 않는다는 그의 주장에 이의를 제기한다. 둘째, 그녀는 유대적 동일성이 표현적이며, 공적 효과를 갖고 특정하고 분명한 책임들을 동반한다는 숄렘의 가정에 이의를 제기한다. 그녀는 특정한 종류의 행위, 언표, 그리고 감정이 그녀가 유대인이라는 사실로부터 필연적으로 따라 나와야 마땅하다는 주장에 저항한다. 그러나 시종일관 그녀는 숄렘과 마찬가지로 유대적 동일성이 (그녀의 다중적이지만 사적인 동일성의 다른 사실들처럼) “논의의 여지가 없고” 일의적이며 진술적인 “사실”이며 “논의”나 “논쟁에 열려 있지 않다”고 가정한다. 그렇기에 그녀는 그녀에 관한 숄렘의 많은 진술들이 “단순히 틀렸으며” 그녀가 그것을 교정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그녀는 “‘독일 좌파 출신 지식인들’ 중 한 명이 아니다.” 만일 아렌트가 “‘어딘가에서 온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면, 그것은 독일 철학의 전통에서다.”<BR>숄렘이 “나는 당신을 전적으로 우리 민족의 딸로만 [여길 뿐], 다른 식으로는 전혀 여기지 않는다.”라고 말하는 것에 대해, 아렌트는 퉁명스럽게 대답한다. “진실은, 내가 나 자신인 것 이외에 어떤 다른 식이라거나 다른 무언가인 척 해 본 적이 결코 없으며, 그런 방향으로는 유혹조차 느껴본 적 없다는 것이다.” 요점은 그녀가 유대 민족의 “딸”과 다른 무언가인 척 해 본 적 없다는 것이 아니다. 그녀는 단지 그녀임(what she is)과 다른 무언가인 척 하지 않았을 뿐이다. 그러나 아렌트는 그녀가 무엇인지(what she is)에 관해 결코 말하지 않으며, 스스로를 긍정적으로 식별하지 않는다. 그녀가 말하는 전부는 “나 자신과 다른 … 무언가[인 척 하는 것은] … 내가 여자가 아니라 남자라고 말하는 것과 같았을 것이다 ― 말하자면 약간 제정신이 아닌 것이다.” 다시, 그녀 자신에 대한, 이 경우에는 여성으로서의 긍정적 식별이 없고, 단지 그 역을 주장하는 것은 “제정신이 아니”라는 주장이 있을 뿐이다.(그것을 긍정적으로 주장하면 어떻게 될까?)36)<BR>숄렘이 그녀를 “전적으로 우리 민족의 딸로만 [여길 뿐], 다른 식으로는 전혀” 여기지 않는 곳에서, 아렌트는 그녀 자신의 “유대성(Jewishness)을 내 삶의 논의의 여지가 없는 사실적 소여(所與, data) 중 하나”로 “항상 여겨 왔다.” 그녀는 자신의 유대성이 숄렘이 투사하는 것처럼 [스스로를] “전적으로” 구성하는 동일성이라고 여기지 않는다. 아렌트는 다른 “사실들”에 의해서도 구성되는데, 그녀가 여기서 언급하는 것은 그 중 두 가지다 ― 성/성별, 그리고 독일 철학을 수업한 것이 그것이다.37) 그렇기에 아렌트는, 그녀가 “전적으로” “우리 민족의 딸”이라는 숄렘의 묘사는 그가 그녀에게 “붙이고 싶어 하는” “꼬리표”이지만, 그것은 “과거에 들어맞아 본 적이 없고, 현재에도 들어맞지 않는” 것이라고 말한다.38) 이는 어긋난 채 들러붙어 있는 꼬리표인데, 왜냐하면 아렌트의 유대성은 복잡하고 갈등적인 동일성의 파편이기 때문이다.<BR>아렌트가 볼 때, 그녀가 이해하는 식의 유대성이라는 사실에서는 아무 것도 따라나오지 않는다. 그녀의 유대성은 사적 문제인데, 왜냐하면 그것은 사실이며, 전혀 행위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점, 그 사실성에 아렌트는 감사함을 느낀다. “있는 그대로의 모든 것에 대한 기본적 감사 같은 것이 있다. 주어졌던 것이지 만들어지지 않았고 만들어질 수 없는 것에 대한, 퓌세이(physei, ‘자연적’이라는 뜻의 희랍어)이지 노모이(nomoi, ‘인위적’이라는 뜻의 희랍어)이지 않은 것에 대한,” “토론이나 논쟁 너머의” 것들에 대한 [감사]. 그녀의 종족적, 종교적, 문화적 동일성이 주어진 것이자 사적 사실, 만들어지거나 행위할 수 없는 것이라는 이 같은 단언은 숄렘에게 보내는 아렌트의 편지에 구조적으로 형상화되어 있다. 아렌트는 그녀의 사적 동일성이라는 사실들에 대한 토론으로 편지를 시작하는데, [이 토론은] 그녀가 사실적 오류라고 간주하는 것들을 겨냥한 일련의 정정으로 제시된다. 이 같은 사실에 관한 문제는 흥미롭지 않으며, “논쟁에 열려 있지 않다.” 아렌트는 편지를 전(前)정치적인 전문(前文)으로, 뒤따르는 정치적 논쟁과 분리된 것으로 제시한다. 오직 후반부만이 발언과 “토론할 가치가 있는 문제들”을 다룬다. 그녀는 이 구별을 강조하기 위해, 동일성에 중심을 둔 예비 단계가 끝나고 정치적 논쟁이 개시된다는 점을 표시하는 다음 문구로 문단을 시작한다. “요점으로 들어가자면.”<BR>그러나 이 편지에서 아렌트가 감사해 한 바로 그것이야말로, 이 대립에서 숄렘이 그녀에게 용인하지 않으려는 것이다. 숄렘은 그녀의 유대적 동일성을 사적 사안으로 대하지 않으려 한다. 숄렘이 볼 때, 식별가능하고 논란의 여지가 없는 특정한 공적 책임들과 함의들이 아렌트의 유대성이라는 논의의 여지가 없고 일의적인 사실에서 따라 나온다. 이것이 아렌트가 숄렘의 포함에 저항하는 이유고, 그가 유대 민족의 “전적으로 딸로만” 그녀를 기록하는 것에 저항하는 까닭이다. 그녀는 숄렘이 유대인에게 귀속시키고 요구하는 평등이나 동일성보다, 차이 심지어 작은 차이를 소중히 여긴다. 그녀는 그의 동일성의 정치에서, 행실이 동질화되게끔 통제하고 독립적 비판을 침묵시키는 음험한 자원을 본다.<BR>유대적 동일성의 사적 자유, 곧 숄렘의 고발 및 매우 공적이고 극히 정치화된 이 동일성 논쟁에 의해 이미 문제화된 사적 자유를 고집하는 대신, 아렌트는 유대성을 동일성으로 구성하는 숄렘의 용어에 더 잘 대항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전략은 아렌트가 쓸 수 없는 것이었는데, 왜냐하면 그녀는 가장 중요한 지점에서 숄렘과 일치하기 때문이다. 그녀와 숄렘 모두 유대 동일성을 일의적이고 진술적인 사실로 간주한다. 그들이 의견을 달리 하는 것은 그것이 공적인 사실이냐 사적인 사실이냐 여부,39) 그것에서 행위를 위한 요구나 지침이 따라 나오느냐 여부일 뿐, 양쪽 모두 유대성이 “만들어질 수 없고”, 더욱이 말소(unmade)될 수 없는 사실이라는 점에 동의한다. 그것은 행위자가 하는 일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숄렘이 아렌트를, 그녀가 쓴 모든 것들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외양상의 어떤 “아하바트 이스라엘”의 완전한 결여에도 불구하고, “전적으로” “우리 민족의 딸”이라고 간주할 수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아렌트는 그녀가 무엇을 하든 유대인으로서의 그녀의 진정한(authentic) 동일성을 부인하거나 전복할 수 없었다. 이 점에 관해서 아렌트는 완벽하게 일치한다. 그녀의 방어 전략은 숄렘의 비난의 기본적 전제를 흉내 낸다. 그녀가 행한 그 무엇도 그녀의 유대성이라는 논의의 여지가 없고 진술적 사실을 의문시하거나 전복할 수 없다.<BR>유대적 동일성을 진술성으로 간주함으로써, 아렌트는 유대 동일성에 수행적으로 개입하거나 심지어 전복할 기회, 그 역사성과 이질성을 탐색할 기회, 일의성에 대한 그것의 열망을 몰아내거나 좌절시킬 기회, 그 분화된 가능성들을 증식시킬 기회들을 포기한다. 이 때문에 아렌트에게는, 이론의 여지가 없는 특정한 책임들을 함축하고 충성을 요구하는 동질적이고 알의적인 동일성으로 유대성을 묘사하는 숄렘에게 비판적으로 응답할 수 있는 어떤 자원도 남지 않게 된다. 좋은 유대인과 나쁜 유대인을 구별하는 숄렘의 진술적 기준은 본래대로 남아 있다. 건강한 여성과 불구화된 여성을, 충성스러운 여성과 배신한 여성을 구별하는 아드리엔느 리치의 전략에도 동일한 논리가 적용될 것이다. 그녀가 아렌트를 “전적으로 (여성으로) [여길 뿐], 다른 식으로는 전혀” 여기지 않기 때문에, 그녀는 (독일 철학의 수업 같은) 아렌트의 다른 구성적 동일성들이 아렌트의 ― 여성으로서의 ― 진정하고 일의적인 동일성에 대한 배신이라고 간주할 수 있는 것이다.<BR>숄렘이나 리치, 나아가 모든 동일성의 정치에 맞선 보다 강력하고 고무적인 방어책은 불가항력적인 것에 저항하는 것인데, 그 수단은 그것을 사유화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가 되는 자칭 불가항력적이고 동질적이며 진술적이고 일의적인 동일성의 가면을 벗겨, 그것이 수행적으로 생산된 것이고, 다중적인 수행과 행실의 균열되고 파편적이며 어긋나고 미완성적이며 침전되어 있고 이음매로 가득한 산물이며, 헤아릴 수 없는 반복과 강제의 자연화된 산물이라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것이 독립 선언의 “자명한 진리”의 강제적 폭력에 맞서 그 문헌의 “우리는 생각한다”에 힘을 불어 넣은 아렌트의 전략이다. 이 고무(鼓舞)의 전략을 전유하여, 어떤 유대적이고 페미니즘적인 동일성의 정치가 가정하는 일의성과 자명성의 폭력적 폐쇄를 폭로하고 개입하며 전복하거나 저항한다면 어떻겠는가?<BR>여기서의 전략은 기성의 동일성들을 중단시키는 것, 그리고 동일자(sameness)의 평등을 위해 차이를 말소하지 않는 페미니즘과 동질화하지 않는 유대성을 이론화하고 실천하는 것이다. 여기서의 전략은 차이들을 사물화하기보다 그것들을 증식시키고 탐색하는 것이며, 그 결과는 자신의 유대성을 (행)하는(do one's Jewishness) 수많은 길, 자신의 성별을 (행)하는 수많은 길이 있다는 고무적인 발견이나 강조가 될 것이다.40) 어떤 (이른바) 사적 영역 동일성이 갖는 동질화하는 효과는 약화될 것이고, 이는 “동일성들” 자체의 틀 내부에서 더 많은 분화와 대항가능성을 허용할 것이다.<BR>이 중단의 전략은 아렌트가 찬사해 마지않았던 국외자(局外者, pariah, 최하층민)이라는 개념 및 국외자의 관점에 대한 중요한 대안을 구성한다.41) 아렌트는 (로자 룩셈부르크를 비롯하여 아렌트가 존경했던 다른 이들로 상징되는) 의식적 국외자의 외부자(outsider)적 위치를, 그 곳에 있는 이가 독립적인 비판과 행위 그리고 판단에 필수적인 거리를 확보할 수 있는 특권적인 장소로 간주한다. 그러나 아렌트가 국외자 위치를 입지(location)하는 것은, 형성된 동일성들 내부에서는 어떤 비판적 지렛대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그녀의 문제적인 가정에 힘입는다. 아렌트가 국외자의 외부자적 지위에 찬사를 보내는 것은, 동일성들이 성공한다고, 그들이 분명 이음매 없음(seamlessness)과 폐쇄를 획득한다고, 그들은 필연적으로 동질화적이라고 그녀가 믿기 때문이다. 내가 여기서 전개하고 탐색한 갈등주의적인 수행성의 정치는 그 대신에 동일성들이 결코 이음매가 없지 않다는 것, 기존 동일성들의 단절, 부적합성, 그리고 어긋남들 내부에 비판적인 지렛대의 장소가 있다는 것을 가정한다. 그것은 따라서 국외자의 위치는 그 자체로 불안정하다는 것, 국외자는 결코 실제로 외부자가 아니라는 것, 그리고 그것의 장소들은 다중적이라는 것을 가정한다. 이 다중적인 장소들은 아렌트적 정치의 특권화된 공적 공간을 탈중심화하고 행위의 장소들을 단일한 공적 영역 너머로 증식시킴으로써 잠재적 권력과 저항의 보다 광범위한 공간들을 탐색한다.42)<BR>이 갈등주의적 페미니즘은 또한 갈등주의를 일종의 공동 행위(action in concert)로 가정함으로써 아렌트의 국외자에 함축된 개인주의에서 벗어난다.43) 갈등주의적 페미니스트들이 개입하는 동일성들은 공유되며, 공적 실천들은 그저 개인적 개성들의 표지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어떤 특정한 갈등주의적 행위가 한 명이나 여러 명의 행위자들에 의해 수행될 수도 있겠지만, 행위의 요점은 다른 이들이 자신의 차례에 각각 탐색하고 증대하며 수정할 수 있는 개성화와 정치의 새로운 공간들을 개방하고 정초함으로써 사회적인 것의 정상화/표준화하는 효과를 상쇄하는 것이다. 이 페미니즘 정치가 전제하는 것은 “여성”이라는 이미 알려지고 통일적인 동일성이 아니라, 갈등주의적이고 차별적이며 다중적인 비동일화된/식별되지 않은(nonidentified) 존재들로서, 이들은 항상 생성 중이며 항상 증대와 수정을 요청한다. (어떤 동일성의 표현적인 열망에 저항하지만 마찬가지로 항상 감응하는) 갈등주의적이고 수행적인 이 정치는, 새로운 관계들과 새로운 현실들을 창조할뿐더러 낡은 것들을 수정하고 증대하고자 한다 … 심지어 사적 영역 안에서도 말이다.<BR><BR>후기: 갈등주의 대 연합주의?44)<BR><BR>정치 이론가들과 페미니스트들은 특히 아렌트 정치의 갈등주의적 차원을 들어 아렌트를 오랫동안 비판해 왔는데, 그 죄목은 갈등주의가 남성주의적이고, 영웅주의적이며, 폭력적이고, 경쟁적이고, (단순히) 심미적이며, 또는 필연적으로 개인주의적 실천이라는 것이다.45) 이 이론가들에게 갈등주의적 페미니즘이라는 통념은 기껏 해야 형용모순이거나 최악의 경우에는 혼잡하든지 아마 위험한 관념일 것이다. 실라 벤하비브는 그들의 시각을 사실상 승인하는데, 그녀는 최근 일련의 유력한 논문들에서, 페미니즘에 적합한 아렌트를 구출하려는 시도의 수단으로써 그녀의 사고에서 갈등주의를 도려내려 한다.46) 벤하비브는 갈등주의를 “연합주의”(associationism)와 병렬하면서 이들이 두 가지 양자택일적인 “공적 영역의 모형”47)라고, 그리고 이들 중에서 연합적 모형이 우위를 점하는데 이는 그것이 “더 근대적인 정치 인식”일 뿐더러 페미니즘에게도 더 나은 모형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벤하비브는 페미니즘에 대한 갈등주의의 의미와 가능성들을 재평가하기보다, 갈등주의를 남성 행위의 기원으로 [보는] 앞선 페미니스트의 성별화를 받아들이고 심지어 상술한다. 그녀는 개인들이 각자와 공동으로 행위하는 연합적 모형을 특권화하면서, 모든 공동 행위의 필연적으로 갈등주의적인 차원에 대한 절실한 평가를 페미니즘에게서 박탈하는데, 이 차원에서 정치적으로 연루된 개인들은 서로서로 함께 그리고 맞서서(both with and against) 행위하고 투쟁한다.<BR>“페미니즘 이론과 한나 아렌트의 공적 공간 개념”에서 벤하비브는 갈등주의와 연합주의를 완벽한 거울상으로 구축한다. “도덕적으로 동질적이고 정치적으로 평등주의적인, 그러나 배타적인 공동체”를 전제하는 아곤과 달리, 근대 공적 공간은 이질적이다. “그것에 대한 접근이나 토론의 의제는, 도덕적이고 정치적인 동질성의 기준에 따라 미리 정의될 수 없다.” 아곤이 안정적인 공적 공간에 자유를 위치 짓는 반면, 연합적 모형은 공간이 아닌 실천으로 자유를 다룬다. 그것은 그것이 발생하는 모든 장소와 모든 시간에 “공동 행위에서 출현”한다. “아곤적인 공간은 협력보다는 경쟁에 기초”하며, 이는 공동 행위가 아니라 “위대함, 영웅주의, 그리고 탁월함”에 초점을 둔다. 그것은 그들을 함께 묶기보다는 “그것에 참여하는 이들을 개별화(individuate)하며 그들을 서로서로 분리시킨다.”48)<BR>[갈등주의의] 반대항으로 가정된 연합주의 편에서 이처럼 갈등주의를 기각하는 것은, 논란의 여지가 있는 일련의 문제적인 정의와 생략에 기초한다. 첫째, 갈등주의는 엄격하게 고전적인 용어로 정의되는 반면, 연합주의는 근대성에 맞게 개정되고 갱신된다. 이처럼 아렌트적 아곤을 본질적이고 필연적으로 고전적인 영웅적 개인주의의 장소로 그리는 것은, 갈등주의를 공동 행위의 실천으로의 아렌트 자신의 재의미화 앞에서 비산(飛散)한다.(아렌트는 자신이 설명하는 행위는 ― 그것의 가장 아곤적인 형태에서조차 ― 항상, 항상 공동적(in concert)이라는 점을 아주 분명히 한다.)49) 그런 다음 벤하비브는 아렌트적 연합주의를 개정하고 갱신하는 방향으로 계속 나아가는데, 이는 그녀가 승인하고 싶어 하는 공적 영역의 보다 근대적인 인식을 생산하기 위해서다. 벤하비브는 아렌트가 “그녀 자신의 연합적 모형과 양립할 수 없는 방식으로 그녀의 공적 영역 개념을 제한한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아렌트의 연합주의를 수정하여 아렌트가 반정치적인 것으로 기각한 용무들을 포함하도록 하고(갈등주의의 경우에는 이 같은 수정이 진척되지 않는다.), 다시 한 번 아렌트 자신의 설명에 반하여, 연합주의를 공적 담론의 “실체적이지 않고 절차적인” 모형과 동일화함으로써 이 양립불가능성을 완화한다.50)<BR>문제는 벤하비브가 아렌트의 설명을 수정한다는 것이 아니다. 그녀는 “아렌트와 함께 아렌트에 맞서(with Arendt against Arendt) 사고”51)함으로써 진행되는 것이 자신의 기획이라는 입장을 아주 분명하게 취한다. 문제는 그녀가 아렌트의 다중적인 정치 행위의 전망을 두 개의 구별되고 분리되며 상호 배타적인 공적 공간 유형으로 가른다는 점, 우리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고 그녀가 역설한다는 점, 그 쌍을 비대칭적으로 간주함으로써 특정한 선택을 유도한다는 점, 그리고 (이 시점에서는 별로 놀라울 것도 없지만) 연합주의가 두 가지 통념 중 더 근대적이기 때문에 더 좋은 것이라고 그녀가 결론을 내린다는 점에 있다.<BR>다른 논문인 “한나 아렌트와 서사의 구원적 힘”에서 아곤은 다시 한 번 평가절하되는데, 이번에는 담론적인(연합적인) 공적 공간과의 대조를 통해서다. 벤하비브는 다시 한 번 비대칭적으로 나아가면서 아렌트적 행위의 담론적인 계기를 은유화하지만 그 갈등주의적 이면은 내버려 두는데, 이 때 갈등주의적인 공적 공간은 “위상학적이거나 제도적인” 장소라고 주장하는 한편, 아렌트의 보다 “근대적인” 통념인 담론적인 공적 공간은 “사람들이 함께 공동 행위하는 경우라면 언제 어디서든 출현한다”고 역설한다.52) 이 같은 은유화의 한계는 그러나 자의적이다. 다양한 다소 갈등주의적이면서 연합주의적인 공적 공간에 대한 아렌트의 설명 중에서, 후자가 전자보다 벤하비브가 추구하는 분산에 더 호의적(amenable)이라고 시사하는 것은 없다. 만일 우리가, “아렌트와 함께 아렌트에 맞서,” 인민들이 함께 공동 행위할 땐 언제나 연합적인 공적 공간이 출현한다고 말한다면, 인민들이 공동으로 각자와 함께 그리고 [각자에] 맞서(with and against each other) 행위하고 투쟁할 땐 언제나 갈등주의적인 공적 공간이 출현한다고 말할 수도 있지 않겠는가?<BR>벤하비브는 최근 논문 “국외자와 그녀의 그림자: 한나 아렌트의 라헬 파른하겐(Rahel Varnhagen) 전기”에서 갈등주의/연합주의 이항을 한층 성별화하여, 남성적인 갈등주의적 공간과 이제 명시적으로 여성화된 연합주의를 병렬하는데, 여기서 후자는 살롱으로 모형화된다. 벤하비브는 낭만주의 시대 유대계 독일 살롱 여주인(hostess)에 대한 아렌트의 초창기 전기(傳記) 『라헬 파른하겐』을 과감하게 끌어들이면서, 연합과 친교, 대화와 우정, 그리고 여성 작인(作人, agency)을 북돋는 연합적이고 여성 지배적인 준(準)공적 공간으로 살롱을 옹호한다. 반면 아곤적인 공간은 여성을 배제하고 투쟁과 경쟁을 일으키는 곳으로 언급된다.53)<BR>그러나 살롱이 지지하는 것은 벤하비브의 여성화된 연합주의보다는, 벤하비브가 보존하려는 대당들 예컨대 갈등주의와 연합주의 간의 대당이랄지, 공적 공간의 남성친화적 모형과 여성친화적인 모형 간의 대당들을 약화시키려는 (나 자신과 같은) 시도들이다. 여성들은 분명 다른 공적 영역들에서보다 살롱에서 더 많은 권력을 가졌지만, 그 권력은 공적이고 사적인 가부장 권력에 의존했다. 여성들이 주인 노릇을 한 살롱은 일시적으로 부재한 아버지들과 남편들의 소유였다. 라헬의 살롱이 거둔 짧은 성공은 부분적으로, 대학이나 의회, 궁정 따위의 경쟁하는 남성적 문화 중심지가 우연적&#8228;일시적으로 부재한 데서 비롯됐다.54) 더욱이 살롱은 우정과 교통, 친교뿐만 아니라 험담, 음모, 경쟁, 투쟁 등을 낳은 것으로도 유명했다. 사람들은 거의 … 갈등주의라고 말하고 싶을 것이다.<BR>벤하비브는 이 모두를 인정하지만, 그녀의 연합적 이상에 대한 살롱의 표상이 갖는 이 같은 결점은 문제될 것이 없다고 주장하는데, 왜냐하면 그녀의 관심은 살롱 그 자체를 복원시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연합주의의 “전조(前兆)”로, “그 미래 잠재력의 일부를 과거에 보유한 존재”로 다루는 데 있기 때문이다.55) 꽤 공평한 평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화된 연합주의의 모형으로서 살롱이 갖는 결점은, 살롱을 갈등주의/연합주의 이원항을 성별화하려는 수단적 형상으로 활용하는 벤하비브의 견해에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가?56) 갈등주의적 차원과 연합주의적 차원을 복잡하게 결합하는 살롱은 아마 벤하비브가 살롱의 사례를 근거 삼아 제시하는 상호 배타적인 대당을 (지지하기보다는) 동요시킬 것이다.<BR>이 논문에서 탐색한 유형의 갈등주의는 벤하비브가 기각한 갈등주의와 같지 않다. 이는 그녀의 이원항에 저항하거나 그것을 초과하는 공동 행위의 일종이다. 영웅적 개인주의라거나 합의에 기초를 둔 연합주의가 아닌 이 갈등주의는, 항상 투쟁의 장소이기도 한 공동 행위, 차이와 복수성이 새겨지고 갈라진 세계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항상 동료들과 함께 그리고 맞서 있는 공동의(concerted) 페미니즘적 노력의 모형을 만든다. 이 갈등주의가 출발점으로 삼는 것은 아렌트의 재의미화된 갈등주의지, 고전적인 폴리스 경험이 아니다. 그것은 어떤 남-녀 대당에도 깔끔하게 들어맞지 않는다. 그것은 이 관습적인 대당을 적으로 삼는다. 그리고 그것은 수월성(秀越性, excellence)이나 극적 자기과시가 아니라, 동질화와 정상화/표준화를 배경으로 하는 개성화 및 구별을 향한 탐험에 중심을 둔다. 벤하비브가 볼 때 갈등주의란, 행위자들이 “구별과 수월성을” 다투는 실천이다.57)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갈등주의의 구별-수여적(distinction-awarding) 효과를 명성이나 수월성에 대한 갈망과 즉각적으로 동일시하는 그녀의 견해는, 고전적 갈등주의에도 적용될 뿐더러 보다 (탈)근대적인 차원을 가질 수 있는 “구별”에 대한 대안적 독해를 박탈한다. 아렌트의 이론적 설명을 움직였던 구별에 대한 갈등적(agonal) 열정은 또한, 개성화 및 구별된 자아로서의 출현을 향한 투쟁으로 읽힐 수도 있다. 아렌트의 용어를 빌자면, “무엇”이라기보다는 “누구”, 명성 그 자체가 아니라 개성을 소유한 자아, 그것을 정의하고 고정하려 드는 (사회학적, 심리학적, 사법적) 범주들에 의해 결코 소진되지 않는 자아 말이다.<BR>고전적인 아곤만이 수여할 수 있었던 명성과 수월성에 더 이상 속박되지 않을 때, 이 열정을 갈등적(agonal) 열정으로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여기서 승인된 페미니즘 실천들이 갈등주의적인 까닭은 그것들이 투쟁에 묶여 있기 때문이다. 특히 성/성별을 지배하는 실천들을 (재)정초하고 증대하고 수정하려는 정치적 투쟁에 [묶여 있기 때문이다.] 아곤의 전투원들이 공적으로 지지되는 타자(Other)와 함께 그리고 맞서 투쟁하는 관계 안에서 스스로를 개성화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갈등주의적 페미니스트들은 동료들과의 투쟁을 지지하여 다양한 페미니즘들, 성/성별의 지배적 실천들과 동일성들, 그리고 그것들을 실천하고 강제하는 타인들과 함께 그리고 맞서 스스로를 개성화하고 위치 짓고자 한다.58) 갈등주의적 페미니스트들은 관습적인 성/성별 실천을 중단시키고 관습적인 성/성별 이원항들의 자칭 우선성을 탈중심화함으로써 개성화와 구별을 획득하고 북돋는다.59) 이 개성화 과정은, 비록 일련의 행위들과 수행들을 누군가가 목격할 수도 있겠지만, 청중(audience, 관객)을 위해서 수행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녀와 같은 타인들과 제휴하여 개성화를 얻는 자아, 그리고 비록 항상 갈등적일 테지만, 이 공유된 지지와 투쟁의 실천들을 통해 동일한 것을 할 수 있게 되는 타인들을 위한 것이다. 갈등주의적 개성화는 정치적인 또는 페미니즘적인 행위의 목표가 될 필요는 없다. 아렌트가 잘 알았던 것처럼, 개성화는 차라리 정치적 참여의 부산물 중 하나로 얻어지는 경향이 있다. 정치적인 공동 행위의 신고(辛苦)한 시험을 통해 아렌트적 행위자들은 자신들이 누구인지를 발견한다. 이 같은 자기발견이나 변혁을 단순히 유치한(boyish) 태도로 회피할 필요는 없다. 그것은 또한 현세적인 장치 안에서 특성과 개성의 발전을 신호하는 것으로 간주될 수도 있다.<BR>갈등주의적 페미니즘이 공동의 정치 행위에 참여하는 효과로 얻어지는 개성의 발전을 강조하는 것은, 갈등주의와 연합주의를 한 동아리로 묶는 아렌트의 본래 시도를 복원한다.60) 이 복원은 현 시점의 동시대 페미니즘들에게 중요한데, 왜냐하면 “여성”이라는 동질화적이고 규율적인 범주를 일부 페미니즘들이 활용하는 것에 대응하기 위해 근래 우리가 차이와 복수성에 초점을 두다 보니, 일부 사람들이 통일적 동일성, 대의 또는 토대가 부재하는 가운데 어떻게 미래의 페미니즘이 공동의 행위를 추동할 수 있겠는가 하는 의문을 제기해 왔기 때문이다. 아렌트는 동일성이 아니라 차이와 복수성을 토대로 놓는 갈등주의적인 공동 행위를 이론화함으로써 (특별히 페미니즘을 위해서는 아니겠지만) 우리가 그 질문에 대답할 수 있게 돕는다. 그녀는, 주체성의 무엇-임(what-ness)을 행위의 출발점으로 삼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함으로써, [여성의] 형상이 항상 이미 알려진 동일성을 의미하게 만들기보다는 “여성”을 의문시하려고 노력하는 페미니즘들을 위한 (의식하진 않았겠지만 귀중한) 모형을 제공한다. 아렌트는 (행위의 동작주(動作主, agents) 내부 그리고 사이에서) 차이들로 갈라진 공동 행위를 이론화함으로써, 공동 행위를 타인들과 “함께”일 뿐만 아니라 항상 동시에 “맞서는” 관계들에 우리를 연루시키는 (재)정초, 증대, 수정의 실천으로 생각하게 해 준다. 요컨대, 일단 우리가 갈등주의와 연합주의를 상호 배타적인 양자택일로 생각하기를 그만둔다면, 우리는 “아렌트와 함께 아렌트에 맞서” ― 페미니스트들이 항상 탈중심화하고 저항하며 초월하고자 노력했던 ― 지배적인 성/성별 이원항을 단순히 재활용하기보다는 그것에 개입하기에 좋은 위치를 점하는 갈등주의적이고 페미니즘적인 정치 행위의 (증대되고 수정된) 전망을 전개할 수 있는 권한을 갖게 될 것이다.61)<BR><BR><BR><BR>1) Rahel Varnhagen: The Life of a Jewish Woman, rev. ed., trans. Richard and Clara Winston (New York: Harcourt Brace Jovanovich, 1974), ⅹⅷ. 본문으로<BR>2) 가장 적대적인 비난은 Adrienne Rich의 On Lies, Secretes and Silences: Selected Prose, 1966~1978 (New York: Norton, 1979)과 Mary O'Brien의 The Politics of Reproduction (Boston: Routledge and Kegan Paul, 1981). 나는 리치의 비난을 아래에서 간략히 논하고 이 논문의 마지막 절에서 갈등주의에 대한 페미니즘적 기각을 둘러싼 쟁점들을 취급할 것이다. 본문으로<BR>3) The Human Condition (Chicago: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58), 155, 200[국역: 한길사, 1996]; 이하 HC로 인용. 본문으로<BR>4) On Revolution (New York: Penguin Books, 1963), 130[국역: 한길사, 2004]; 이하 OR로 인용. [역주] 아래에서 필자는 아렌트의 정치 이론을 설명하기 위해 몇 가지 언어학적 개념을 사용한다.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간략한 설명을 덧붙인다.<BR>우선 기표(記表, signifier), 기의(記意, signified), 지시대상(referent)에 대해 알아보자. 기표란 우리가 말하거나 기록하는 시각적&#8228;음성적 물질성이고, 기의는 기표가 의미하는 개념이며, 지시대상은 기표나 기의가 지시하는 현실 속의 대상이다. 예를 들어 ‘집’이라는 글자, 그리고 우리가 ‘집’이라고 발음할 때의 음성적인 물질성이 기표고, 이 기표가 의미하는 내용인 ‘사람이 들어서 살 수 있게 만든 것’이 기의이며, 현실에 존재하는 건물이 지시대상이다. 한 편 기표와 기의가 결합된 것이 기호(記號, sign)이고, 이 결합 과정을 ‘의미작용’(signification)이라고 부른다.<BR>또한 필자는 영국의 언어철학자인 존 오스틴에서 유래한 진술문과 수행문의 구별을 체계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진술문이란 예를 들어 “당신은 나의 아내다.”처럼 참과 거짓을 따질 수 있는 문장이며, 수행문이란 “이 쪽으로 와라.”와 같은 명령, “당신은 누구인가?”와 같은 질문, “이 달 말까지 재산을 양도하겠다.”와 같은 약속, 그리고 “이로써 폐회를 선포한다.”와 같은 선언 등, 발화 자체가 하나의 행위인 문장을 의미한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진술문과 수행문의 경계가 모호하다는 점이다. 위에서 예로 든 “당신은 나의 아내다.”의 경우 참/거짓을 가릴 수 있다는 점에서 틀림없는 진술문이지만, 이 언표를 발화함으로써 부부 사이의 위계 관계를 (재)확립하고 아내로서의 의무를 암묵적으로 강제하는 효과가 수반된다는 점에서 수행문이기도 하다. 요컨대 여기서 중요한 것은 진술문과 수행문을 엄격하게 나누고 그 중 어느 한 쪽을 특권화하는 것이 아니라, 진술문 안에 내재한 수행적 계기, 수행문 안에 내재한 진술적 계기(또는 차라리 수행문이 진술적 계기를 요청할 수밖에 없는 까닭)를 추적하고 폭로하여 다른 가능성을 개방하는 것이 된다. 본문으로<BR>5) 이하에서 나는 J. L. 오스틴(John Langshaw Austin)의 용어인 수행문과 진술문이 나의 아렌트 독해에서 필수적 역할을 놀게 할 것이다. 내가 다른 곳에서 논증했듯, 오스틴의 구별은 정초적 문헌의 두 계기 ― “우리는 생각한다” 대 “자명한 진리” ― 간의 부당한(illicit) 긴장에 관해 아렌트 자신이 만들어 낸 논증들을 유용하고 적절하게 예시한다. 이 긴장은 (“우리는 생각한다”는 수행문에 유리하게 그것을 해결하려는 아렌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궁극적으로 제거할 수 없는 것인데, 제도들이 스스로를 “앞으로 내내”(all the way down) 정당화하려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아렌트는 그것에 응답하기 위해 권위를 비정초적이고 정치적인 증대와 수정의 실천으로 훌륭하게 이론화할 때, 그 불가능성을 사실상 긍정한다. 나는 여기서 이 실천은 또한 내가 갈등주의적 페미니즘과 동일시하는 동일성의 개입과 중단들을 망라한다고 주장한다.<BR>내가 오스틴의 구별을 활용하는 것은, 실라 벤하비브(Seyla Benhabib)가 주장하듯, “언어적” 구별을 사용하여 정당성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도 아니고, “모든 권력의 궁극적인 자의성이라는 데리다의 테제”(그런데 이는 전혀 그의 테제가 아니다.)를 방어하는 것으로 귀결되지도 않는다. 만일 그것이 벤하비브에게 그런 식으로 보인다면, 이는 그녀가 정치적 정당성의 문제가 반드시 이론의 영역 내부에서 해결되어야 한다고 가정하기 때문이다. 그런 시각에서 볼 때, 나 자신의 기획이 정당성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실패한 시도로 나타나거나 정당성의 문제는 해결불가능하다(혹은 이 경우에서처럼 어쨌든 둘 다 일 것이다)는 이론적 주장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벤하비브의 시각이나 기획은 나와 다르다. 내가 오스틴과 데리다에게 도움을 받아 아렌트의 독립 선언 독해에서 끌어낸 교훈이란, 정당성 문제의 해결 자체는 진행 중이고, 끝없는 정치적 작업의 기획이자, 민주적 증대와 수정의 영속적 실천이지, 해결되어야 할 철학적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철학적 수준에서 정당성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또는 그것이 철학적으로 해결될 수 있다는 믿음)는 그 정신 면에서 분명히 비(非)아렌트적이며, 정치를 전위시키려는 정치 이론이 갖는 일반적으로 문제적인 경향의 징후다. 더 요점으로 들어가 보자면, 정당성이 정치적이라기보다는 철학적 문제라는 벤하비브의 가정은 자신의 진단적 선택지를 별 도움이 되지 않는 단 두 가지로 제한한다. 완전한 정당성과 완전한 자의성이 그것이다. 내가 볼 때 권위를 정치적 증대의 실천으로 이론화하는 아렌트의 주된 매력은, 그것이 이 이원항을 벗어나고 동요시킨다는 데 있다. Seyla Benhabib, "Democracy and Difference: Reflections on the Metapolitics of Lyotard and Derrida," Journal of Political Philosophy 2 (1994): 11 n. 24를 보라; 그리고 Bonnie Honig, "Declarations of Independence: Arendt and Derrida on the Problem of Founding a Republic," American Political Science Review 85 (1991): 97~113. 정치를 전위하려는 정치 이론의 경향에 관해서는, 나의 Political Theory and the Displacement of Politics (Ithaca: Cornell University Press, 1993)를 보라. 본문으로<BR>6) 나는 니체를 빌어 말하고 있는데, 아렌트는 그에게, 비록 양가적이기는 하지만, 이 점에 관해 크게 빚지고 있다. Friedrich Nietzsche, On the Genealogy of Morals, ed. Walter Kaufmann, trans. Walter Kaufmann and R. J. Hollingdale (1887; New York: Vintage Books, 1969), 1, ⅹⅲ[국역: 책세상, 2002]. 본문으로<BR>7) 나는 나의 글 "Declarations of Independence"에서 아렌트의 독립 선언 독해에 나타나는 이 같은 본질주의적 구성 요소를 비판하고 수정하면서, 자크 데리다를 따라, 독립 선언의 성공은 사실 그것의 실제적인 수행적 성격보다는 그것의 구조적 결정불가능성, 이 정초적 화행이 수행적 언표인지 진술적 언표인지 여부를 우리가 확실하게 말할 수 없다는 사실에 의존한다고 논증한다. 여기서 나의 주장, 즉 갈등주의적 페미니즘이 자칭 진술적 동일성들을 수행문으로 재서술함으로써 나아가야 한다는 주장이 겨냥하는 바는, 모든 동일성들이 쉽게 손에 넣을 수 있는 것이라거나 손쉽게 재(再)제정할 수 있다는 것이 아니다. 그게 아니라 요점은, 모든 정체(政體)들과 동일성들, 정초들에 개입하지만, (자연과 신체, 또는 신의) 순수한 진술로 은폐되고 가장된 (진술문과 수행문 사이의) 결정불가능성을 되찾는 것이다. 이 구조적 결정불가능성은 증대와 수정의 공간이다. 그것은 자유롭게 부유하는 수행의 집합이 아니라, 진술과 자연화의 상당한 힘에 대한 일련의 정치적 개입과 투쟁을 가능케 한다. 본문으로<BR>8) 한나 피트킨(Hanna Pitkin) 역시 이 차이에 유의한다. 그녀의 "Justice: On Relating Public and Private," Political Theory 9 (1981): 303~26을 보라. 그렇기는 하지만 그녀는 그것을 다르게 읽는데, 그녀는 『혁명론』이 “더 솔직하”고, 신체와 사회적인 것에 대한 아렌트의 진정한 관점을 아마 보다 진정하게 표현한 것이라고 주장한다(334). 그러나 이 같은 결론은 부당한 것이다. 그것은 『인간의 조건』이 얘기를 삼간다는 것을 함축하는데, 이는 전혀 아렌트답지 않은 것이다. 더욱이 피트킨이 신체에 대한 아렌트의 설명 중 하나를 다른 것들에 대한 얇은 베일로 간주하는 것은, 아렌트가 다른 것 위에 다른 하나를, 신체의 구별되는 특징화를 층층이 쌓는다는 점을 모호하게 만든다. 더 최근 논문인 "Conformism, Housekeeping, and the Attack of the Blob: The Origins of Hannah Arendt's Concept of the Social"(이 책의 3장)에서 피트킨은 덜 본질주의적인 접근을 택하는데, 여기서 그녀는 아렌트의 몇몇 문헌들을 가로지르는 그 복잡한 전환을 추적하면서 아렌트의 사회적인 것 개념을 탈자연화하려고 한다. 본문으로<BR>9) Hannah Arendt, "What is Freedom?" in Between Past and Future, enl. ed. (New York: Penguin, 1977), 156[국역: 푸른숲, 2005]. 본문으로<BR>10) Arendt, HC 179; 그리고 "What is Freedom?" 151~52. 아렌트는 이 같은 작인(作人, agency)의 속성들을 행동적으로(behaviorally), 그 자유를 타협하는 행위의 원인들로 읽는다. 본문으로<BR>11) Arendt, HC, 179. 나는 “스스로를 놀랍게 하는”(self-surprising)이라는 용어를 조지 카텝(George Kateb)가 아렌트를 다룬 Hannah Arendt: Politics, Conscience, Evil (Totowa, N.J.: Rowman and Allanheld, 1984)에서 빌려 왔다. 본문으로<BR>12) Hannah Arendt, Thinking, vol. 1. of The Life of the Mind, ed. Mary McCarthy (New York: Harcourt Brace Jovanovich, 1978), 29[국역: 푸른숲, 2004]. 이 주장은 분명히 잘못되었다. 아렌트가 의미했던 것은 모든 “내부들”이 동일하게 보인다는 것이 아니라 생물학적 차이들은 흥미롭거나 중요치 않다는 것, 신체로서 우리 모두는 비슷하다는 것이었으리라. 본문으로<BR>13) Hannah Arendt, Willing, vol. 2. of The Life of the Mind, 69. 아렌트는 이 주장을 특히 의지하기와 관련지어 제기하지만, 이는 정신 능력 세 가지 모두에 영향을 미치는 되튐에 특징적인 것이다. 본문으로<BR>14) 내가 말하려는 것은 아렌트가 갈등주의적인 투쟁의 현상을 “정치적”이라고 이름붙였다는 것이지, 아렌트 자신이 이 내적 투쟁들을 묘사하는 데 “정치적”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려 했을 것이라는 것이 아니다. 그녀는 그러려 하지 않았을 것이다. 본문으로<BR>15) 엘리자베스 영-브루엘(Elisabeth Young-Bruehl)은 아렌트적 자아의 다중성에 유의한 유일한 아렌트 독자이지만, 그녀는 자아를 다중성으로 본 이 같은 관념과, 행위를 표현적인 것이 아닌 수행적인 것으로 본 아렌트의 접근을 연관시키려 하지는 않는다. 또 영-브루엘은 이 다중적 자아를 갈등주의적 투쟁의 장소로 보지도 않는다. 반대로 그녀는 “개인 내부에 존재하는 견제와 균형”에 준거하는데, 이는 이 맥락에서는 적절하지 않은 모든 것에 우선하는(overarching) 통일성을 함축한다. Elisabeth Young-Bruehl, Mind and the Body Politics (New York: Routledge, 1989), 23을 보라. 본문으로<BR>16) Arendt, HC 73. 『인간의 조건』에서 아렌트는 “‘그들의 신체로 삶의 신체적인 필요를 보살피는’[여기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론』 1254b25[국역: 박영사, 2006]를 인용하고 있다] 노동자들과, 자신들의 신체로 종의 물리적 생존을 보장하는 여성들”(72)을 묘사한다. 본문으로<BR>17) 아렌트는 종종 그녀의 폴리스의 아곤(agon)적인 정치의 실천에 대한 (탄복스럽기 그지없는) 묘사와 그녀 자신의 정치 전망을 분명하게 구별짓는 데 실패한다. 그리고 그녀의 비판자들은 종종 전자를 후자로 오해한다. 예를 들어 피트킨은 행위에 대한 아렌트의 설명이 “개인주의적”이라고 적는데, 그러나 피트킨의 인용구는(HC 41) 아렌트가 폴리스의 갈등을 묘사한 것이다. 아렌트가 자신의 정치 관점을 묘사하는 곳에서, 심지어 『인간의 조건』같은 초기 저작―혹자는 이 역시 너무 갈등적이라고 말한다―에서조차 그녀는 그것이 항상, 항상 “공동적”(in concert)이라고 말한다. 본문으로<BR>18) Pitkin, "Justice," 342. 본문으로<BR>19) Pitkin, "Justice," 342. 나는 “감성들”이라는 용어를 쉬라 도사(Shiraz Dossa)에게서 빌려오는데, 그는 피트킨과 아주 유사한 경우다. 그와 피트킨 모두, 노동, 작업, 행위가, 감성으로서 모든 자아들을 특징짓는다고 주장하는 데까지 이르지 못한다. The Pubilc Realm and the Public Self: The Political Theory of Hannah Arendt (Waterloo: Wilfred Laurier University Press, 1989), 3장; 그리고 도사에 대한 나의 서평은 Political Theory 18 (1990): 322를 보라. 본문으로<BR>20) 노동과 작업과 행위를 탈자연화함으로써 그것들의 효과를 우리 자신의 하기(doing)의 산물로 보라는 이 같은 요청은, 이 책에 실린 한나 피트킨의 논문에 담긴 입장과 유사하다. 피트킨은 아렌트가 사회적인 것에 할당한 믿을 수 없는 힘에 어리둥절해한다. “우리에게 우리의 힘을 가르치는 것―우리는 우리의 곤란의 원천이고 우리가 현재 하는 것을 멈춰야 한다―에 주되게 노력한 사상가에게서, 사회적인 것을 블롭(Blob, 유명한 SF 공포영화에 나오는 우주생명체)이라 보는 공상과학적인 전망[“우리를 장악하려는 목적으로, 우리의 자유와 정치에 달려든다.”]이 나오는 것은 참으로 당혹스러운 일이다”(53). 본문으로<BR>21) 아렌트는 정치“의 모든 영역"이 “제한”되어야 하고, 그것은 “인간과 세계 실존 전체를 포괄”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Arendt, "What is Freedom?" 264). 본문으로<BR>22) Arendt, Willing, 37~38, 101~2; 강조는 필자. 나는 다른 곳에서 아렌트의 설명에서 의지는 자기산출적이면서 동시에 그 고유한 활동을 멈추게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Arendt, Identity, and Difference," Political Theory 16 (February 1988): 81. 그러나 이 글에서 강조한 문구 때문에 나는 아렌트가 후자의 특성을 의지에 부여한 것이 아니라 행위에 부여했다는 점을 납득하게 됐다. 본문으로<BR>23) Judith Butler, "Performative Acts and Gender Constitution: An Essay in Phenomenology and Feminist Theory," in Performing Feminism, ed. Sue-Ellen Case (Baltimore: Johns Hopkins University Press, 1990), 273. 본문으로<BR>24) Pitkin, "Justice," 336. 본문으로<BR>25) Nancy Fraser, Unruly Practices: Power, Discourse, and Gender in Contemporary Social Theory (Minneapolis: University of Minnesota Press, 1989), 76. 본문으로<BR>26) Arendt, "Preface," in Between Past and Future, 3~4. 본문으로<BR>27) Butler, "Performative Acts," 276, 271, 280, 그리고 271. 본문으로<BR>28) 이론의 고유한 사명은 정치 제도들의 포괄적인 정당화를 제공하는 데 있다는 관점에 맞서, 위와 같이 정치 이론의 과제를 바라보는 관점을 옹호하는 나의 견해는 각주 5를 보라. 본문으로<BR>29) Pitkin, "Justice," 336. 본문으로<BR>30) Arendt, OR 47. Cf. Judith Butler, "Performative Acts," 274. 본문으로<BR>31) Adrienne Rich, On Lies, Secrets and Silence, 211~12. 아렌트의 독자들은 한 동안 이 인용문을 재유통시켰다. 리치의 논문 "On the Coditions of Work" 역시 아렌트의 『인간의 조건』, 어쨌거나 “불구적”인 책까지는 아니더라도 “거만한” 책에서 인용한 문구로 시작한다는 사실은 자주 언급되지 않았다. 본문으로<BR>32) Hannah Arendt, Men in Dark Times (New York: Harcourt Brace Jovanovich, 1968), 44[국역: 문학과지성사, 1983]; 이하 MDT로 인용. 아렌트는 정치적으로 능동적인 여성들이 여성 참정권 활동에 이끌린 이유가, 그 운동이 당시 여성에게 개방된 몇 안 되는 활용가능한 정치적 행위의 기회였기 때문이라는 가능성은 결코 고려하지 않는다. 본문으로<BR>33) 이 얘기는 출처가 상당히 의심스럽지만, 아렌트는 미국 정치 과학 협회 여성 간부 회의에 출석하기를 거부하면서, “나는 스스로를 여성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고 알려져 있다. 본문으로<BR>34) 아렌트의 Eichmann in Jerusalem[국역: 한길사, 2006]의 출판을 둘러싼 논쟁은 Dagmar Barnouw의 Visible Spaces: Hannah Arendt and the German-Jewish Experience (Baltimore: Johns Hopkins University Press, 1990)에 잘 기록되어 있다. 본문으로<BR>35) Gershom Scholem, "'Eichmann in Jerusalem:' An Exchange of Letters between Gershom Scholem and Hannah Arendt," Encounter (January 1964): 51~52(강조는 필자). 이하 숄렘에서의 모든 인용문은 51~52에서다. 이 절에서 아렌트의 모든 인용문은 53~54에서다. [역주] 번역하기 아주 까다로운 이 문장의 원문은 다음과 같다: The fact that he regards Arendt "wholly as a daugher of our people and in no other way." 본문으로<BR>36) 그녀가 스스로를 “독일 철학의 전통”과 동일화할 때조차, 이는 조건부다. “만일 내가 어딘가에서 온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면, 그것은 독일 철학 전통에서다.” 더 넓게 보자면, 이 같은 어법은 아렌트가 그녀의 기원이라는 문제가 단순히 발언의 주제가 아니기를 선호했으리라는 점을 시사한다. 즉, 그녀는 “어딘가에서 온 것이라고 말해지길”(강조는 필자) 원치 않은 것이다. 본문으로<BR>37) 그리고 숄렘 또한 마찬가지로 그의 유대주의와 시오니즘 이외의 차이들과 동일성들에 의해 구성된다. 아렌트는 그에게 이 사실을 상기시키는데 ― 그리고 그녀의 동일성을 그가 투사한 것에 대해 같은 방식으로 보복한다 ― 그 방법으로 그녀는 숄렘이 그녀에게 보내는 편지에 서명할 때 그의 히브리 이름 “게르숌 숄렘”을 사용하는데도 “친애하는 게하르트(Gehard)”라는 호칭을 쓴다. 본문으로<BR>38) 나는 숄렘이 이 맥락에서 “딸”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은 아렌트가 성/성별 차이에 의해 구별되게 구성되어 있다는 것에 대한 인정이라기보다는, 가부장적 형상, “우리 민족”에 대한 의무감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수단이라고 간주한다. 요컨대 숄렘의 문구에서 “딸”이라는 용어는 아렌트의 성/성별을 그녀의 유대 동일성 안으로 문제 없이(unproblematically) 동화시키려 든다. 본문으로<BR>39) 동일성이 하나의 사실이라는 아렌트의 주장은 변하지 않는다. 그것이 사적 사실이라는 주장은 그러나 맥락에 따라 분명히 달라진다. 그녀는 누군가가 “공격당하는 동일성의 견지에서” 스스로를 방어해야만 하는 시간이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다른 경우에는 스스로를 자신의 동일성의 견지에서 위치 짓는 것은 겉치레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이 책에 실린 Dietz, 48 n. 106을 보라). 이 전략의 맥락의존성 때문에, 누군가는 항상 상황을 진단하고 행위의 공간에서 동일성의 (아렌트에게는 불운한) 적절성에 동의할 것인지 아니면 그 사적 자유나 부적절성을 고집할 것인지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이 진단에 관한 토론은 페미니즘이 주기적으로 대면하는 것이다.) 나의 주장은, 숄렘과 서신을 교환했던 이 경우에는, 아렌트가 상황을 잘못 진단했다는 것이다. 그녀는 공격당하는 동일성, 유대인이 되는 그녀의 고유한 방식의 견지에서 대응했어야 했다. 나는 그녀가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이 부분적으로는, 그녀와 숄렘이 둘 다 유대인이기 때문에 그녀의 유대 동일성은 공격당하는 것일 수 없고 마찬가지로 대응을 기초 짓는 근거가 되는 것도 아니라는 그녀의 동일화주의적 가정에서 기인한 것이 아닌가 의심한다. 본문으로<BR>40) 나는 “자신의 성별을 (행)한다”라는 통념을 Judith Butler, "Performative Acts," 276에서 빌려 왔다. 본문으로<BR>41) Hannah Arendt, The Jew as Pariah, ed. Ron H. Feldman (New York: Grove, 1978). 본문으로<BR>42) 나는 아렌트의 설명에서 정치적 공간의 다중적인 장소들을 Political Theory and the Displacement of Politics, 116~17에서 추적한다. 본문으로<BR>43) 사실, 아렌트의 국외자 관점에 함축된 개인주의는 숄렘과의 관계에서 그녀의 지위를 약화시키는 데 기여한다. 숄렘은 자신이 배신자라고 간주하는 아렌트에게 회복시키고자 하는 유대 민족의 공동체적 형상을 되풀이해서 호소한다. 아렌트는 이 용어들을 받아들이고 그 틀 내부에서 대응한다. 그러나 그녀는 그렇게 할 필요가 없었다. 그녀는 그녀의 견해에 동감했을 만한 (과거나 현재의) 타인들과 동맹을 맺을 수도 있었고, 유대 공동체에 대해 그녀 자신을 유대 내적 비판이라는 대안적인 유대 역사의 일부로 위치 지을 수도 있었다. 아렌트는 이 마지막 전략을 그녀의 레싱 연설에서 활용하는데 ― 리사 디쉬(Lisa Disch)가 주장하듯(이 책 12장) ― 이 때 아렌트는 독일 계몽주의 전통에서 레싱을 재생시켜 그녀 자신이 그 상속자인 대안적인 지적 계보의 일부로 그를 위치 짓는다. 본문으로<BR>44) 이 절의 초안에 논평해 준 것에 대해 린다 제릴리(Linda Zerilli)와 모리스 캐플런(Morris Kaplan)에게 감사를 전한다. 본문으로<BR>45) 예를 들어 한나 피트킨은 아렌트의 정치적 행위자들이 “유치하게 젠체하며” “낭만주의적”이고 “갈등주의적인 남성 전사”의 동호회에 소속되어 있다고 비난한다("Justice"). 또한 Patricia Springborg, "Hannah Arendt and the Classical Republican Tradition," in Thinking, Judging, Freedom, ed. G. T. Kaplan and C. S. Kessler (Sydney: Allen and Unwin, 1989)를 보라; 그리고 Wendy Brown, Manhood and Politics (Totowa, N.J.: Rowman and Littlefield, 1988). 본문으로<BR>46) 요컨대 벤하비브는 1970년대와 1980년대 초반 논쟁들을 사실상 되풀이하는데, 이들은 아렌트가 팔로스중심주의적(갈등주의적)이거나 여성중심적(연합주의적)인 사상가라고 비난했다. 벤하비브의 혁신은 아렌트 사상의 이 같은 차원들의 한 쪽 면으로 그녀를 배타적으로 동일화하는 것을 거부하고, 아렌트적 도식 안에 양자가 존재한다는 것을 그녀가 인정한다는 데 있다. 그러나 앞선 페미니스트들처럼 그녀는 이 두 가지 차원들을 대립적이고 위계적으로 위치 지으면서, 우리가 그것들 중에서 하나를 택해야만 한다고 고집하는 식으로 나아간다. (아렌트에 대한 앞선 페미니즘적 수용에 관한 보다 상세한 논의는 나의 "The Arendt Question in Feminism,"과 Mary Dietz의 "Feminist Receptions of Hannah Arendt," 이 책의 1장과 2장을 보라.) 본문으로<BR>47) Seyla Benhabib, "Feminist Theory and Hannah Arendt's Concept of Public Space," HIstory of the Human Sciences 6 (1993); 97~114. 본문으로<BR>48) 위의 책, 103~4, 102. 본문으로<BR>49) 각주 18을 보라. 벤하비브가 아렌트에 의한 갈등주의의 재의미화를 무시한 것은 이 맥락에서만이다. 다른 곳에서 그녀는 그것의 한 차원에 분명히 주목하면서, 아렌트는 “호메로스적 전사-영웅을 진압하고, 그렇다, ‘길들여’ 아리스토텔레스적인 신중한 시민을 낳는다.”(위의 책, 103; 강조는 원문)고 주장한다. 본문으로<BR>50) 위의 책, 104, 105. 본문으로<BR>51) 위의 책, 100. 본문으로<BR>52) Seyla Benhabib, "Hannah Arendt, and the Redemptive Power of Narrative," Social Research 57 (1990): 193~94. 본문으로<BR>53) "The Pariah and Her Shadow," 이 책, 94~95, 97~100. 본문으로<BR>54) 위의 책, 87~88, 93, 97. 파른하겐의 살롱이 거둔 매우 일시적인 성공, 그리고 그것이 가부장적 제도 권력이 겪은 이 같은 우연하고 일시적인 공백에 의존했다는 사실이 시사하는 이 사례의 진정한 교훈은, 연합주의를 옹호하려는 이들은 이 같은 귀중한 대안적인 행위의 공간을 국가와/나 가부장적 공적 영역의 헤게모니적 열망에 맞서 보존하기 위해서라도 갈등주의를 배우고 긍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본문으로<BR>55) 위의 책, 104 n. 23. 본문으로<BR>56) 요컨대 여기서 나의 목표는 연합적이거나 페미니즘적인 공적 공간의 모형으로서 살롱의 장점을 토론하는 것이 아니라 갈등주의와 연합주의를 이원적 대당으로 위치 짓고 ― 성별화하여 ― 합의적인 정치 모형과 담론의 공통 기반에 합치할 수 있는 아렌트와 페미니즘을 발전시키려는 벤하비브의 더 큰 노력 안에서 살롱의 역할을 간략하게 기록해 두는 것이다. 본문으로<BR>57) "Feminist Theory and Hannah Arendt's Concept of Public Space," 103. 본문으로<BR>58) 아곤을 공동 행위와 동시에 투쟁의 장소로 설명하는 것에 관해서는, 나의 "The Politics of Agonism," Political Theory 21 (August 1993): 528~33을 보라. 본문으로<BR>59) 이 같은 (변모하는 동맹적) 실천의 몇몇 사례에 관해서는, 이 책 14장에 있는 멜리사 올리(Melissa Orlie)의 논문을 보라. 올리는 성/성별의 정치가 또한 항상 인종, 계급, 성욕의 정치와 겹쳐 있는 방식을 소중하게 부각한다. 본문으로<BR>60) 이 갈등주의가 아렌트의 그것과 갈라지려는 목적이, 그녀의 행위가능한 영역을 넓히고 이른바 사회적인 용무들과 이른바 진술적 사실들을 포함하는 데 있는 한에서, 갈등주의는 (이 책 36의 매리 디에츠와 반대로) 동일성을 그것의 필수적으로 중심적인 용무로 간주하는 것으로 여겨져서는 안 된다. 그것은 다만 이 논문에서만 그럴 뿐이다. 만일 이 갈등주의가 항상 얼마간 동일성의 정치에 관심을 갖는다면, 이는 동일성―특히 (사법적이거나 사회적) 법 아래서 주체성의 형성과 생산―이 항상 사회-정치-사법적인 질서의 하나의 효과나 수단이며, 따라서 정치적 개입의 필수불가결한 하나의 장소라는 점을 갈등주의가 알기 때문이다. 본문으로<BR>61) 특히 이 문구 “함께 그리고 맞서”는 벤하비브가 독자로서 아렌트에 대한 자기 자신의 관계를 묘사하기 위해 사용하는 것이다("Feminist Theory and Hannah Arendt's Concept of Public Space," 100). 그렇게 하면서 그녀가 갈등주의적 관계를 묘사하는 것은 적절하다. 그녀의 아렌트 독해는 벤하비브 자신의 입장을 동시에 개성화하는 공동 행위다. 또한 벤하비브 자신이 일시적으로나마 갈등주의와 그녀의 연합주의의 변종이 실제로 상호 배타적이지 않다는 점을 인정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에도 유의해야만 할 것이다. “구별과 수월성을 겨룬다는 의미에서 모든 진정한 정치와 권력 관계들이 갈등주의적 차원을 포함하는 한편, 갈등적 정치는 또한 설득과 함의의 힘에 기초한 연합적 차원을 포함한다. 이런 의미에서 이들 두 모형 간의 날카로운 분화는 완화될 필요가 있다”(103). 이렇게 말했으면서도 벤하비브는 계속 이 대당의 용법을 상술하고 그것을 완화시키기 위해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식으로 계속한다. 본문으로 <!--덧붙이는글/sitelink1/sitelink2--><!--덧붙이는글/sitelink1/sitelink2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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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12월12일 19:00:40 <!--작성일끝--><!--쓰기/수정메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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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item><item><author>바라</author><category>찌라시의 문서 창고</category><title>[퍼온글] * 후기 알뛰세 사상의 진화에 관한 노트 </title><link>http://blog.aladin.co.kr/vara/1048159</link><pubDate>Fri, 26 Jan 2007 01:1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vara/1048159</guid><description><![CDATA[* 자율평론 19호 / 후기 알뛰세 사상의 진화에 관한 노트 
<BR>- 안또니오 네그리 - 
■ 오래 전에 발췌된 것이긴 하지만 이미숙 님이 요약한 네그리의 글(http://myhome.naver.com/skreds/sourcekor/althusser_hm91_negri.htm)이 있어 참고할 자료로서 여기에 옮겨 놓았다. 아직 요약자의 허락을 구하지 못했다.원문출처가 밝혀져 있지 않지만 아마도 Postmodern Materialism일 것으로 짐작한다.(편집자) <BR>--------------------------------------------------- <BR><BR><BR>안또니오 네그리 <BR><BR>"Somthing Has Snapped" <BR><BR>노동운동의 위기는 스탈린주의의 해악으로만 돌릴 수 없다. 노동운동의 위기, 투쟁, 모순을 만드는 것은 운동 그 자체의 성격과 관계가 있다. 문제는 위기가 건설적 영향을 산출하지 못하고 오직 파괴적 영향만을 산출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스탈린주의를 탄핵하는 것 외에, 공산주의적 사고의 형성과정, 그 사고 내에서 위기의 창조적, 건설적 기능에 대해 이론적 분석이 행해져야 한다. <BR><BR>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맑스의 담화의 중심점들-특히, ①잉여가치론과 착취론, ②국가론과 경제투쟁과 정치투쟁의 변증법적 관계를 살펴본다. ①의 경우, 알뛰세는 맑스가 "양적quantitative" 잉여가치론을 수립, 착취와 이데올로기의 기능, 사회에 대한 복잡한 자본주의적 포섭을 이해하고 비판하기에 불충분한 정치적 결론을 도출했다고 말한다. ②의 경우, 맑스이론은 심각하게 결핍되어있다.- 물론 유로코뮤니스트들과 보비오자들이 말하듯, 부르조아국가에 대한 비판의 요소들을 사회적 민주주의 국가의 건설로 돌릴 수 없다는 의미에서는 아니다. 알뛰세의 주장은 국가에 대한 맑스의 비판과 레닌의 가르침이 부르조아 국가에 대한 급진적 비판이 대중의 실천 속에서 권력의 재구성의 관점,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일탈에 대한 방어적 비판, 국가의 파괴와 새로운 사회질서의 건설 사이에 놓여있는 대중적 정체구성에 대한 창조적 전제를 수반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BR><BR>이 외에도 철학적 개념에도 위기가 발생. 철학 외부, 위에서 "무언가 기대하지 않은 것", "우연적인 aleatory" 요소가 대규모로 개입했다. 이 새로운 요소는 우연적이지만 절대적으로 현실적인 것으로 철학적 실천의 연속성을 깨트렸다. 위기의 방향이 변하였다. 우연적 요소가 노동운동의 파괴를 가져왔다. 이것에 대한 알뛰세의 사고는 징후적 사고, 시기상조의 분석, 질적 도약을 통한 발전으로 특징지워진다. 위기가 현실의 발전의 열쇠이듯이, 불연속과 시기상조는 이론적 실천의 영혼이다. <BR><BR>The Solitude of Machiavelli <BR><BR>-마키아벨리에 대한 알뛰세의 사고 <BR><BR>처음에는 정치가로 간주했으나, 나중의 분석에서 철학적 측면이 부각(1978,"The Solitude of Machiavelli"). 이런 분석을 뒷받침해주는 원리는 역설의 발견이다: "조건의 완전한 부재 속에서 새로운 것을 사고하는 것." 마키아벨리의 정치적 선택은 영역의 선택이다: 지금까지 불가해한 것은, 국가의 정치적 삶에 참여할 때 제기된 문제를 실천 속에서 풀 수 없는 데도 시기상조적 특성인 권력을 사고했다는 것이다. 봉건적 장애를 제거한 새로운 통일된 국가, 오래 지속되고 팽창할 수 있는 국가에 대한 이론가로 간주했다. De Sanctis와 Gramsci에 거슬러 올라가는 이런 전통적 해석을 복구한 후, 알뛰세는 그것을 전도시킨다. 중요한 것은 국가수립계획이 아니라, 마키아벨리의 사고로 표현되는 급진주의이다. 그 사고는 계획실현의 불가능성에 반대한다: 모든 조건, 또는 모든 가능성의 부재 속에서 새로운 것에 대한 사고이다. 통일된 국가와 새로운 군주에 대한 갈망은 존재론적으로 대중 속에서만 존재하지만, 국가구성의 혁명적 과정이 사고 속에서만 일관되게 일어남. <BR><BR>따라서 마키아벨리의 과학적 사고는 분리되고 고립됨. 전적으로 비목적론적 지평위에서 역사성, 우연성에 급진주의의 극대화 부여. 마키아벨리의 사고를 특징짓는 것은, 권력의 현실적 숭배인 "사자"가 아니라 "여우"- 주어진 조건에서 받아들여질 수 없는 혁명적 진실을 언제나 상기시키는 금지되고 제한된 진리이다: 그것은 불가능성에 대한 침해이고 동시에 가능성에 대한 지속적 이론적 정의이다. 알뛰세의 이전의 이론적 분석인 구조적 틀과는 달리 이론은 분열, 역설, 공허(조건의 부재)와 위기이다. <BR><BR>[미래는 오래 지속된다](1992)에서 알뛰세는 마키아벨리에 대한 해석에서 그람시와 단절. "suprise"와 "impossible encounter"를 성취한다. "여우"에 대한 사고는 새로운 일관성 획득. "여우가 된다는 것"-"사자"가 되는 하나의 조건-은 이제 정치적 영역의 권력 보다 신체의 권력, 대중의 권력과 관계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치권력 차원에서는 폭력에 기초하지 않는 모든 결정요소들이 부재한 것처럼 보이지만, 대중들 속, 사회 속에서는 미시적 차원의 대항권력이 존재. 알뛰세는 이런 다양성을 공산주의적 경향의 지속에 근거한 주체의 특징으로 드러내는데 관심을 가짐. 마키아벨리의 시기상조는 어제는 불가피하게 열망을 존재론적으로 정의하는 것이었지만, 오늘은 제압할 수 없는 공산주의에 대한 정의에 기초한다. <BR><BR>Margins, Interstices <BR><BR>조건의 완전 부재 속에서 새로운 것을 사고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첫째, 철학에 대한 전통적 사고의 역전, 즉 현실에 대한 추정적 사고를 의미한다. 인식론과 이상주의, 엄격하게 명목론적 관점을 취하지 않는 모든 유물론에 대한 거부. "이론적 실천"의 기초에 있는 태도의 회복과 재확인. 새롭게 요구되는 것은 "reason with body". 둘째, thinking with the body를 의미. 사색적 실천 거부. 맑스 자신이 취했던 길이다. <BR><BR>어떤 상황의 우연적 사실에 대한 급진적 고려하는 마키아벨리의 정치에 대한 관념에서 더 논의를 진전시키는 것은 스피노자이다. 그것은 신학에 대한 탈신비화, 명목론의 복구와 재확인, 몸과 즉각적 생활세계론에 의해서이다. 알뛰세의 이전 저작에서, 스피노자는 구조적 유물론의 기초자, 주체 없는 과정의 주요한 설명자로 나타났다. 여기에서 스피노자의 몸이론은 몸과 영혼의 통일, 조건 없는 권력, 개인성과 보편성 간의 관계가 이론적 실천 내부에서 주어지는 세계로 우리를 이끄는 긍정적 충동의 예측으로 해석된다. <BR><BR>스피노자에 있어서 "세번째 종류의 지식"에 대해 광범위하게 논의. 알뛰세의 "몸을 통한 사고"라는 개념에 많은 시사를 줌: 현실을 이해할 때, 경향적으로 실제적 보편성이 아닌 명목적 지평 위에서 주체의 권력의 가장 최고도를 전개시키는 사고 방식이다; 언제나 한계를 창조, 실제적 구체적 존재와 추상적 비존재가 서로 부딪치고, 가깝게 그리고 멀게 언제나 새롭게 재구축된다. 알뛰세에게 스피노자의 "사랑"은 실천이 되고, 신에 대한 지성은 유한한 희망, 실천속에서 이해되고 경향적으로 실현되는 보편성이 된다. <BR><BR>맑스가 기술한 생활노동의 단순성과 추상적 자본과 국가의 지배 간의 관계는 이전처럼 상호작용하는 것으로 간주될 수 없다. 이데올로기가 현실 전체에 대한 지배권을 광범위하게 확대했다. 세계는 자본에 포섭되었다. ISAs는 다양한 기구를 통해 기계적으로 단일하게 지배를 산출. 포콜트의 경우처럼 알뛰세도 ISAs 권력의 포스트모던적 팽창은 저항(몸의 저항) 없이는 진행될 수 없다. 자본에 의한 전사회의 포섭 하에서 어디에서 어떻게 실천이 가능한가? 자본주의 지배의 틈새에서 대중이 스스로를 조직하는 곳, 공동체적 관계가 살아있고 저항이 "시장관계가 지배하지 못하는" 곳, 즉각적 생활세계에서이다. 이곳에 공산주의가 존재론적으로 존재. <BR><BR>오늘날 공산주의는 거대한 계획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저항, 대항권력, 특이성으로 드러난다. 국가, 자본, 정당에 대항해서 대중운동, 대중운동 자체가 제시하는 창조적 방법에 의존하는 것이 필요하다. 대중운동만이 자유를 산출할 수 있고 지배의 논리에 대항한 고립된 저항과 권력적 한계성을 통합할 수 있다. <BR><BR>Althusser's Kehre <BR><BR>후기 알뛰세에 있어서 사고의 전환점 발생. 계속적 요소와 혁신적 요소가 서로 얽힘, 그러나 혁신적 요소가 헤게모니 획득. 알뛰세의 사고의 계속성은 특히 그의 방법론에서 드러나는데, 실제(텍스트와 사건들)에 대한 징후적 독해, 즉 개념과 논리를 논리적으로 구성하는 요소뿐만 아니라 그것의 질서를 해체하고 약화시키는 요소도 중요시하는 독해가 그것이다. 혁신은 매우 강력하다. 여기에서 유물론의 정의 자체가 수정된다. "생산관계"에 대한 비판에서 새로운 "생산력"의 구성적 과정으로 관심이 이동한다-몇 가지 중요한 결정적 결과를 수반: ①"생산력"과 "생산관계" 사이에 놓여있는 관계에 대한 열린, 더 이상 구조적이지 않고 더 이상 현상학적이지 않는 고찰; ②역사발전의 주체적 요소에 대한 강조; ③사건의 "우연성aleatory"을 주체의 구성적 개입에 대한 열린 가능성으로 고찰할 것을 강조. <BR><BR>방법론적 해석학적 관념인 징후적 독해에서 역사적 과정을 이해하는 열쇠로서 '위기'와 현실 변형의 동력으로서 '힘'이라는 존재론적 관념으로 관점 변화. 힘이라는 개념에 이론상 계급투쟁도 이데올로기상 이론적 실천도 더 이상 없다. 오히려 이 모든 것이 존재하는데, 함께 이론을 구축하고 투쟁을 할 수 있는 열린 주체성에 대한 탐색, 즉 실천 속의 철학이라는 개념이 있다. <BR><BR>알뛰세는 ISAs의 개념을 변형시킨 것을 맑스주의 이론에 대한 그의 근본적 공헌이라고 생각. ISAs개념에서 "하부구조-상부구조"관계는 결정적으로 전도된다. 알뛰세는 "포스트모던"개념을 ISAs의 전체주의적 기능totalitarian functioning의 지속적 팽창과 확대라고 정의한다. 확대에 확대를 거듭한 끝에 질적 도약이 일어난다. 현재 ISAs라는 새로운 적을 맡은 계급투쟁은 이데올로기적 힘을 강화해야 한다. 따라서 주체성에 대한 호소는 자본주의의 재구조화에 대한 필수적 투쟁영역을 규정하는 것이다. 새로운 주체성을 정의하는 것과 더불어, 생산력의 새로운 속성, 사회적 노동의 비물질적, 추상적, 협동적 특성에 담화가 덧붙여져야 한다. 여기에서 주체성이 다시 형성되고 혁명에 대한 열망이 되살아난다. <BR><BR>"단절된 것"은 직접적 투쟁의 가능성. 자본주의에서 국가와 사회가 동일시되어 국가는 빈 지점이 되고, 오직 사회만이 권력에 완전히 재흡수된 영역과 동시에 우연성aleatory의 폭발이 가능한 영역으로 남게 되었다. 이 지점에서 폭발은 계급노선을 넘어서 모든 사회적 행위자들의 의식적이고 주체적 차원으로 진행된다. 사회주의적 "이행"이라는 개념에 대한 비판은 알뛰세의 사고에서 전형적인 목적론적 관점에 대한 거부를 의미한다. 알뛰세의 사고에서 새로 나타난 것은 혁명과정의 "다른 것으로의 이행passage to something else", 즉 공산주의로의 우연적 이행이다. 사회주의의 마지막 가능성 상실: 오직 공산주의만이 실제이다. <BR><BR>Aleatory Materialism <BR><BR>대립하는 두 가지 철학적 전통은 "aleatory materialism"과 그 나머지 것들이다. 하나는스탈린주의가 승인한, Power를 정당화하고 State를 숭상하는 전통(권력에 대한 이상주의적 정당화)이고, 다른 하나는 power에 기초하고 power와 이데올로기를 실천적으로 비판할 수 있는 이상주의적idealistic or spiritualistic 철학사고(aleatory materialism)이다. <BR><BR>마키아벨리는 근대성을 위해 aleatory materialism을 기초. 스피노자에게 aleatory materialism은 자연, 즉 "인간"과 역사에 대한 전반적 관점. aleatory materialism의 근본적 특징은 모든 목적론의 파괴- 그래서 사건의 논리를 실증적으로 주장하는 것. 마키아벨리는 "if...., then..."의 구조로 사건과 역사성의 개념을 제시. 인과성은 표면의 우연적 속성에 따른다;스피노자에게 있어서, 오직 영향effect만이 원인에 정당성을 부여한다는 단순한 이유로, 인과성은 전적으로 표면에서 실현된다.-인과성의 모든 내적 필연성은 제거되고, 모든 목적은 무시된다. 알뛰세는 보다 급진적으로 변증법과 휴머니즘과 역사주의를 비판한다. 변증법은 이상주의의 표상 이상이 아니며, 역사주의는 상대주의가 가장한 것에 불과하다; 휴머니즘은 부르조아 문화의 산물이므로 파괴되어야 한다. <BR><BR>aleatory materialism은 역사를 구체적 역사로서 제공하고, "인간"을 역사의 주체가 아니라 역사 속의 주체로서 제시한다. aleatory materialism은 ①"completely naked" materialism으로, 현재의 지평으로 생각할 수 있다. ②역사성에 대한 주장 ③그 틀은 전적으로 개방적, 목적이나 필연성이 존재하지 않고 모든 우연적 사건에 이용가능하며 이것에 기초해서 적절한 실천을 수립한다. <BR><BR>"과정에서 모든 결정은 현존하는 경향적 불변성 중에서 우연적 변수들로서 나타난다." 발생한 모든 결정이 이론적 실천으로 간주된다면 알뛰세의 이런 주장은 전적으로 이해될 수 있다: 만약 우연적 변수가, 표면의 열린 자유 속에서, 확신에 찬 역사적 행위로 간주되고, 경향적 불변성이 역사 속에서 주체의 자유를 풍부하게 해주는 공산주의적 존재론적 내용으로 간된다면. 이런 이론의 뒤틀림 속에서 우리는 철학과 정치의 우선성을 재확인. 전적으로 비목적론적, 우연성 안에서, 틈새 또는 가장자리에 위치한 대중의 이데올로기적·정치적 운동의 중요성을 설명할 수 있다. <BR><BR>이행에 대한 신화를 제거하면, 존재의 우선성, 즉 실천으로 존재하는 공산주의의 우선성을 도출할 수 있다. 근본적 사실(경제와 정치로부터 이데올로기로 계급투쟁의 이동)이 발생했으므로 이런 이론적 실천은 가능하다. <BR><BR>The Power of the Negative <BR><BR>실제 존재의 조직에서 "가장자리margins"와 "틈새interstices"의 기능 고찰. 부정의 힘-포스트모던 전체주의적 권력은 모든 변증법의 가능성을 제거.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합리성의 유일한 근거로서 이데올로기의 실현은 완전한 무의미에 집중, 어떤 저항도 비합리성으로 밀어버린다. 이것은 이론적 실천, 저항, 힘power이 존재의 경계, 공허의 경계에서 자신을 드러낼수 있는 상황이다. <BR><BR>부정성에서 어떻게 저항이 가능한가? 알뛰세가 철학을 하던 상황에서,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오직 이론적일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알뛰세가 이런 질문들에 대해 실천적 해답 또한 제싱하려고 노력. 이를 위해 그는 남미의 해방신학을 연구. 해방신학에서 그는 부정의 힘에 들어맞는 많은 이론적 전제들을 발견. <BR><BR>해방신학에서 그는 ①직접적 유물론, "completely naked materialism" 발견. ②실천적 전제는 행동의 긴급성을 드러내는 주체로서 빈곤에 대한 정의 주위에서 규정된다. 알뛰세의 관점에서, 주체가 관여되는 한, 이것은 비형이상학적 입장. 새로운 주체는 부르조아적 합리성 바깥에서, 주체의 필요와 실천에 의해 정의된다.postmetaphysical. ③방법에 관계되는 한, 가난한 대중의 실천은 더 이상 구원의 신학 내에서 정의될 수 없고, 해방에 대한 실천적 관점-비판적, 구체적, 혁명적 실천에 의해 정의된다. 이론적 실천이, 새로운 가능성의 조건 안에서, "void of a detachment"의 위치와 발전으로서 자신을 드러낸다고 알뛰세는 강조한다. <BR><BR>여기에서 aleatory materialism은 이론적 대안이 아니라, 전복된 전체성의 실천적 위치로서, 강력한 행동의 유일한 원천인 거리distance와 가난의 극단적 긴장으로서 설명된다. <BR><BR>Machiavelli the Philosopher, or le Jet de I'Etre <BR><BR>알뛰세에게 새로운 철학을 가능하게 하는 새로운 단어는 alea. 결정은 우연적이고 변증법적이 아니다. 먼저 결정된 것도, 목적도 없다. 공허 속에 무한한, 현실 파괴와 지배이데올로기의 파괴 가능성이 있다. 동시에 무한한 혁명적 실천의 가능성이 있다. 철학은 언제나 순수하고 단순하게 정치였다. 철학을 Kampfplatz로서, 즉 다양한 우연적 속성들이 전개되는 기초로서 정의함으로써만, 변증법적 유물론은 극복될 수 있다. 국가, 정당 등은 이데올로기가 만드는 빈 공간으로 투쟁이 발생할 수 없다. 중심을 둘러싼 주변, 가장자리에서 ISAs의 부단한 통일이 산출하는 포스트모던 사회의 존재를 기록할 수 있다. 가장자리(사회, 재생산 영역)는 throws of Being으로 구성되었으므로 필수적 공간이다. 가장자리는 저항의 틈새와 고립된 공산주의를 통해 중심에 압력을 가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가장자리의 문화 재구축의 자유로운 운동은, 착취와 정치적 압력을 넘어서, 공산주주의의 계기를 연다. 철학은 사람들에게 되돌려지고 새로운 주체를 형성한다. <BR><BR>여기에 철학자로서의 마키아벨리의 가르침이 존재한다. 알뛰세는 마키아벨리의 철학에서 정의된대로 정치를 재구축한다. ISAs의 기능으로 빽빽한 이데올로기 사회가 된 포스트모던 사회에서는 변증법이라는 허구가 존재할 여지가 없다. 이 사회, 역사의 종말의 사회는 공허하고 무의미하고 전적으로 부정적이다. 이런 사회구조의 존재론적 특징은 우연적이다. 그 경계 넘어에서 새로운 저항과 힘이 발전한다. <BR><BR><BR>]]></description></item><item><author>바라</author><category>찌라시의 문서 창고</category><title>(서평)백승욱, 『자본주의 역사 강의』, 그린비(2006)-정희찬 </title><link>http://blog.aladin.co.kr/vara/1032104</link><pubDate>Wed, 03 Jan 2007 15:5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vara/1032104</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6829670&TPaperId=1032104"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85/31/coveroff/8976829670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StartFrag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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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진보연대에서 발행하는 월간 사회운동에서&#160;펌.&#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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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욱, 『자본주의 역사 강의』, 그린비(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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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희 찬 ｜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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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체계 분석으로 본 자본주의의 기원과 미래 
21세기 첫번째 10년의 중반을 넘어선 지금 두드러지는 것은 돌이킬 수 없는 자본주의의 위기다. 외채상환을 빌미로 강제된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실업과 빈곤 속에서 점증하는 대중적 분노와 원한의 정치, 만성화된 종족간․인종간 갈등과 내전 등은 남반부 대부분의 지역에서 대부분의 인구를 생존의 벼랑 끝으로 몰아가고 있다. 케인즈주의적 사회-복지국가 모델의 폐기와 금융시장 부양을 위한 정책적 지원이라는 중심부 국가에서의 신자유주의 반혁명은 극소수 금융자산자들에 의한 부의 독점을 조장하고 있다. 또한 2003년 미․영 연합군의 이라크 침공을 계기로 본격화된 미국의 예방전쟁․선제공격이라는 독트린은 오히려 더 큰 폭력과 무질서의 혼란을 야기하며 미국의 무능력을 노출하고 있다. 『자본주의 역사강의』(백승욱, 그린비, 2006)는 바로 이러한 정세 속에서 “세계체계 분석과 역사적 자본주의라는 시각”을 택하면서 “우리가 통념으로 가지고 있었던 많은 사고들을 재검토”(p.8)하고자 한다. 
세계체계 분석(world-system analysis)에 들어가기에 앞서 제기되는 것은 남한에서 1980년대 사회성격논쟁의 한계와 기존 사회주의관이 현시점에서 지니는 난점이다. 사회성격논쟁의 경우, 신식민지국가독점자본주의론이 기반을 두고있는 레닌의 제국주의론이 20세기 이후 새롭게 나타난 미국 자본주의 변화를 포괄하고 있지 못하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즉 19세기 말 이후 영국 자본주의 모델이 위기에 처하면서 그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독일의 국가독점자본주의 모델, 즉 금융과 산업자본 카르텔 등 수평적 통합을 통해 결합한 국가 주도적 자본주의가 등장한다. 한편 이와 경합하는 다른 자본주의 모델, 즉 법인기업을 중심으로 수직적 통합을 통해 거래비용을 내부화하는 미국의 자본주의가 동시에 출현했던 것인데 레닌의 제국주의론에는 결국 승리한 미국 자본주의가 반영되지 못했던 것이다. 
또한 현실사회주의 국가에 대한 평가의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국유화를 내세우며 결국 소비에트나 평의회 등 대중운동을 부차화 내지 억압하게 된 역사적 경험이나 최근 중국의 급격한 자본주의 발전을 살펴보면,&#160; 16~17세기 영국과 프랑스가 네덜란드를 따라잡기 위해서 구사한 일종의 중상주의적 전략과 현실사회주의 국가들의 노선이 매우 다르기는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 효과의 차원에서 보자면 굳이 다르다고 볼 수만은 없다는 것이다.1) 왜냐하면 중상주의란 자국의 생산구조를 고도화하여 세계경제에 더 나은 조건으로 편입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데, 중국이나 소련의 사회주의는 결국 반주변부로 진입하기 위한 전략의 일환으로 종결된 것이며, 따라서 사회주의 국가들을 자본주의 역사의 ‘외부’로 치부할 수만은 없는 것이다. 세계체계 분석은 이처럼 20세기 새로운 자본주의의 등장을 둘러싸고 혼란을 노정 했던 마르크스주의 분석을 보완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러한 세계체계 분석이 정립되기까지는 브로델(F. Braudel), 폴라니(K. Polany), 월러스틴(I. Wallerstein), 아리기(G. Arrighi)의 기여를 우회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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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체계 분석의 전사: 브로델과 폴라니 
세계체계 분석은 다른 누구보다 브로델의 연구성과를 상당 부분 계승한다. 브로델은 주저 『물질문명과 자본주의』(국역: 까치, 1997)에서 자본주의를 장기지속의 시간대에 위치 짓고, 삼층도식의 최상층에 자리잡은 독점의 영역으로 파악한다. 
장기지속은 “구조의 시간”, 즉 “구조가 지속되는 시간”으로서, ‘먼지’에 불과한 사건의 단기 시간대 및 지속기간이 너무 길어 시간의 의미가 사라지는 초장기지속과 구분된다. 『물질문명과 자본주의』에서 다루는 시간대는 바로 이 장기지속의 시간대이며, 장기지속은 다시 복수의 콩종크튀르(conjoncture)와 맞물려 복합적인 시간대를 형성한다. 브로델에게 장기지속의 시간대는 13세기 북부 이탈리아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와 더불어 브로델은 자본주의를 삼층도식으로 파악하는데 1층은 물질문명, 2층은 시장경제, 3층은 자본주의가 자리잡고 있다. 여기서 독특한 점은 시장경제와 자본주의를 상호 대립적인 관계로 파악한다는 것이다. 시장경제는 투명한 완전경쟁시장으로서 C-M-C'의 원리, 즉 자본이 축적되지 않는 교환의 영역이다. 자본주의는 바로 경쟁을 배제하고 독점을 통해 이윤을 축적하는데, 레닌이 경쟁의 상부구조로서 독점을 언급했듯이 자본주의는 처음부터 독점의 영역이었다는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독점의 사례는 원거리 무역을 독점한 유럽의 대상인인데, 바로 이들이 초기 자본주의 역사의 주역들이다. 독점을 향한 경쟁은 반드시 국가의 지원을 조건으로 하고 있으며 그 공간적 범위는 세계시장으로 확대된다. 브로델의 자본주의관은 국가 없는 독점(자본주의)의 불가능성, 세계경제(world-economy)로서의 자본주의의에 대한 이해, 자본운동의 범위로서 생산 뿐 아니라 금융과 유통의 영역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독창적인 함의를 지닌다. 하지만 브로델에게 자본주의가 생산의 영역에 자리잡고, 상부구조에 자리잡게 된 19세기 이후에 나타나는 변화에 대한 분석은 공백으로 남는다. 이와 관련하여 시장경제의 자기조정적 변화와 이에 대한 사회의 ‘자기보호’ 기제의 작동을 분석하는 폴라니의 작업이 주목된다. 
19세기 영국이 자본주의를 선도하게 되면서 나타나는 주된 특징은 자본이 생산의 영역으로 진출했다는 것, 즉 자본에 의한 노동의 포섭이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19세기는 유럽에 한정된 자본주의 세계경제가 비로소 전지구적으로 확산된 시기이기도 하다.2) 폴라니의 『거대한 변환』(국역: 민음사, 1997)이 다루는 것이 바로 19세기 자본주의의 변화에 대한 분석이다. 폴라니의 분석은 자기조정적 시장경제의 모순에서 시작된다. 19세기 말 영국 헤게모니가 위기에 처하자 그동안 헤게모니를 지탱해왔던 금본위제는 내부로부터 사회를 붕괴시키는 기제로 작동한다. 금 1온스당 1파운드라는 가치를 유지하고 파운드를 국제적인 건전화폐로 유지하기 위해 인플레이션을 유발할 수 있는 인위적인 경기부양책은 불가능한데, 이러한 금본위제를 정당화한 것이 이른바 자기조정적 시장경제의 이데올로기였다. 자기조정적 시장경제에 대한 신앙은 전국시장의 형성과 동시적인 과정이다. 전국시장은 16~17세기 네덜란드를 따라잡기 위한 영국과 프랑스의 중상주의적 국가전략에 의해 추동되는데, 전국시장이 형성되려면 국가간섭과 더불어 값싼 생필품의 대량공급을 뒷받침하는 생산의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 이로부터 자본의 생산영역으로의 진출이 시작되며 그 과정에서 토지, 노동력, 화폐 등의 허구적 상품이 등장한다. 바로 이 허구적 상품이 등장하는 과정에서 사회의 자기보호 기제가 작동하는데(이중운동) 그 대표적인 것이 초기에 농촌 공동체를 수호하고 빈곤과 기아의 위험으로부터 노동자를 구제하려는 스핀햄랜드법이다. 그러나 이는 보조금에 의존하는 빈민을 창출했을 뿐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이후 등장한 신구빈법은 빈민들에게 극악한 구빈원 생활과 공장노동 사이의 양자택일을 강요하면서 ‘기아의 규율’을 통해 오히려 노동력의 상품화를 촉진하였다. 또한 경제의 파국을 막기 위해 중앙은행이 등장하지만 이 역시 19세기 말 점차 괴리되어 가는 자유무역과 금본위제의 안정에는 실패한다. 
그 결과 20세기 자기조정적 시장경제에 대한 사회의 자기보호 기제는 파시즘, 사회주의, 뉴딜이라는 세 가지 형태로 등장한다. 시장경제의 위기에 대한 사회의 자기보호는 사회주의처럼 급진적 대안의 형태일 수도 있고 파시즘과 같이 반동적인 형태로 나타날 수도 있는 것이다. 이처럼 이중운동, 즉 자기조정적 시장경제에 대한 사회의 자기보호 기제의 작동이라는 분석틀은 노동력의 상품화과정에서 국가의 억압적 역할을 조명하고, 전지구적 차원에서 19세기 및 20세기로 넘어가는 과정 중 나타나는 전반적인 변화를 파악하는 데는 긍정적인 기여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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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러스틴과 아리기의 세계체계 분석 
1970년대 등장한 세계체계 분석은 앞선 시기부터 제기된 지적운동의 연장선상에 자리잡고 있다. 세계체계 분석의 이론적 계기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대표적인 것이 종속이론과 자본주의 이행논쟁이다. 
종속이론은 제3세계의 저발전과 후진성을 근대화의 ‘과소’가 아니라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불균등 발전의 결과로 파악하고 핵심적으로 ‘종속’이라는 문제를 제기한다. 이로부터 중심과 주변이라는 용어가 등장하는데, 종속이론은 점차 근대화된 사회와 그렇지 않은 사회를 비교하는 요소론으로 경도되면서 국가중심적 사고로 회귀한다. 종속이론의 또 다른 판본인 생산양식 접합론에서는 제3세계를 자본주의 생산양식과 전(前)자본주의 생산양식의 접합이라는 틀로 분석하는데 여기서 자본주의 생산양식은 서구 자본주의와 동일시되고 근대화론의 기본 발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 하지만 중심과 주변의 자본주의 발전이 상이한 경로로 분기한다는 종속이론의 문제의식는 이후 세계체계 분석을 통해 심화․발전된다. 
돕(M. Dobb)과 스위지(P. Sweezy) 사이에 벌어진 자본주의 이행논쟁은 봉건제에서 자본주의로의 이행에 대한 역사적 경험이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공산주의로의 이행에도 적용될 수 있음을 함축하고 있기 때문에 이론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중요한 논쟁이다. 봉건제에서 자본주의로의 이행의 원동력을 둘러싼 돕과 스위지의 논쟁은 ‘내인론’과 ‘외인론’이라는 구도를 형성한다. 돕은 영국을 분석하면서 농민층의 분해와 여기서 비롯된 부르주아 계급의 형성에서 이행의 동인을 참고자 하였고(내재적 발전론), 스위지는 전 유럽을 분석하면서 북유럽과 여타 유럽을 잇는 원거리 무역에서 나타나는 독점을 중시한다. 스위지는 여전히 자본주의를 19세기 근대 공업체계로 규정한다는 점에서 불충분한 측면이 있었지만 일국적 차원에서 생산양식의 교체가 일어난다는 돕의 논지를 비판한다는 점에서 세계체계론의 문제의식과 친화적이다. 
월러스틴과 아리기는 일국적 차원에서 자본주의의 역사를 분석하는 기존의 지배적인 인식을 비판하며 세계체계로서 자본주의의 역사적 전재과정을 추적하기 시작한다. 둘 사이에는 근대세계체계로서 역사적 자본주의라는 문제설정 속에서 중요한 쟁점이 자리잡고 있으며 특히 아리기의 작업은 미국 헤게모니하의 현대자본주의를 분석하는 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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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자본주의 기원: 16세기 농업 자본주의 vs 13세기 상업 자본주의 
자본주의의 기원과 팽창을 분석하면서 월러스틴은 자본주의에 대한 기존의 진화적이고 목적론적인 해석을 비판한다. 일단 자본주의 등장에 대한 월러스틴의 설명은 “정세론”이다. 즉 근대자본주의의 기원은 필연적인 것이 아니라, 영주제의 위기․국가의 위기․교회의 위기․몽골의 몰락이라는 정세적 조건 속에서 자본주의가 세계체계로 성장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시장경제를 정치적․이데올로기적으로 억압하던 영주․국가․교회가 위기에 처하면서 자본주의의 거점이 성장하기 시작했으며 이 흐름을 장악할 만큼 강한 집단이 아직 형성되지 않은 권력의 공백 상황에서 세계 각지를 정복해가던 몽골의 돌연한 유럽정복 중단이 유럽에서 자본주의 등장을 가능케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리기가 보기에 자본주의 출현에 대한 월러스틴의 ‘정세론’은 단지 조건에 불과할 뿐이며 자본주의의 메커니즘 속에서 해명되지 않기 때문에 불충분하다. 아리기는 또한 월러스틴이 자본주의 기원을 16세기로 설정하는 것을 비판하며 이는 농업 내부의 기축적 분업에 의한 분화에 초점을 맞춘 나머지 장소만 바뀌었을 뿐 돕이 영국을 대상으로 ‘내재적 발전’을 도출했던 것과 다르지 않다고 지적한다. 아리기는 자본주의 등장을 경쟁과 혁신이라는 틀로 설명한다. 여기서 자본주의 기원은 13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동방과의 원거리 무역을 통해 자본을 축적한 이탈리아의 도시국가들이, 당시 치열하게 벌어지던 국가들 간의 경합에서 금융자본을 지원하고 비로소 북부 이탈리아와 북부 유럽의 세계경제가 유럽의 세계경제로 통합되면서 자본주의 역사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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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근대세계체계의 구조: 중심-주변의 기축적 분업구조 vs 체계적 축적순환으로서 헤게모니 순환 
『근대세계체계론』(국역: 까치, 2000)에 나타나는 월러스틴의 세계체계 분석에서 핵심적인 것은 중심과 주변을 가르는 기축적 분업(axial division of labor) 구조다. 이러한 분업구조 속에서 노동력은 임노동자나 노예 등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고, 인종주의와 성차별구조에 따른 위계구조가 중첩되면서 세계 노동계급 내부에 성적․인종적 분할을 각인한다. 또한 국가간체계는 이 기축적 분업의 구조 속에서 제도화되며 영토주의적 논리에 따라 팽창하는 세계제국의 등장을 봉쇄함으로써 자본축적을 보호한다. 기축적 분업구조 속에서 재생산되는 계급적 불평등, 중심-주변의 불평등에도 불구하고 근대세계체계가 재생산될 수 있었던 것은 세계체계를 합리화하는 지배이데올로기로서 자유주의 덕분이다. 
1789년 프랑스혁명의 의의에 대해 월러스틴은 귀족과 부르주아의 계급투쟁으로 파악하거나 봉건제에서 자본주의로 넘어가는 계기로서 이해해왔던 기존의 이해방식을 부인하고 20세기까지 서로 수렴․경합해왔던 세 가지 근대정치이데올로기(보수주의․자유주의․사회주의/급진주의)의 발생이라는 관점에서 설명한다. 자유주의는 기회의 평등을 내세우며 능력주의/성과주의(meritocracy)를 통해 불평등한 위계구조가 부정되지 않도록 기능한다. 또한 전문가에 의한 점진적인 개혁, 즉 엘리트에 의해 통제되는 국가를 통해 이루어지는 진보를 선호함으로써 보수주의의 반동을 제어하는 한편 도시 프롤레타리아, 식민지 인민 등의 ‘위험계급’에 대한 포섭을 시도한다. 그 포섭의 기제는 국내적으로는 보통선거권과 민족동일성을 바탕으로 한 사회복지국가, 국제적으로는 민족자결권의 수용과 발전주의다. 이 포섭의 기제가 강력한 흡인력을 발휘했고 자유주의 이외의 이데올로기, 특히 사회주의마저 수렴될 정도였다. 
반체계운동이 처한 모순은 다름 아닌 정당형태를 매개로 국가권력을 장악한 이후 혁명이 중단되었다는 것이며, 이에 대한 불만이 유럽의 사민주의 국가들, 동유럽의 사회주의 국가들, 제3세계 신생독립국 등 전 세계에서 동시에 터져나온 것이 1968년이다. 1968년 기존의 반체계운동에 대한 공격이 가장 격렬하게 이루어진 것은 중국의 문화대혁명이었으며 이조차도 인민해방군의 무력진압과 지식인에 대한 공격이라는 비극적인 형태로 막을 내린다.3) 월러스틴의 반체계운동에 대한 분석은 현실사회주의의 역사와 한계를 지나치게 단순화한 측면이 있지만 기존 반체계운동의 실패에 대한 평가와 반성이라는 차원에서 가벼이 여길 수 없는 문제제기이기도 하다. 
아리기는 주저 『장기 20세기』4)에서, ‘체계적 축적순환’을 중심으로 헤게모니 순환의 역사를 설명한다. 아리기는 콩종크튀르를 콘드라티에프 곡선을 통해 설명하는 브로델과 월러스틴을 비판하며, 콘드라티에프 곡선은 장기적 가격변동의 경험적 산물일 뿐 그 자체로 이론적 함의는 없으며 자본의 이윤과 가격의 등락이 일치하는 것만은 아니기 때문에 근대세계체계 설명의 유용한 도구가 되기에는 한계적이라고 지적한다. 또한 아리기는 중심-주변의 구도를 배제하고 국가를 매개로 한 거대 자본들 사이의 헤게모니를 향한 경쟁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러한 아리기의 시도는 계급분석의 결여, 정치경제학 문제의식의 부재라는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중심-주변이라는 구도를 중심으로 모든 정세를 체계 전체의 문제로 환원하는 월러스틴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시도로 볼 수도 있다. 
주저의 제목 “장기 20세기”에서도 드러나듯이 아리기의 세계체계분석에서 분석의 주된 대상은 20세기 자본주의다. 이러한 점에서 아리기의 작업은 1840년대 이후 근대세계체계 이후 분석이 중단된 월러스틴에 비해 현대자본주의 분석이 훨씬 정교할 뿐 아니라 19세기 말 수정주의 논쟁 이후 마르크스주의 역사에서 끊임없이 반복되어 온 자본주의 위기를 둘러싼 논쟁들의 한계를 보완한다.5) 
아리기의 작업은 체계적 축적순환과 국가간체계의 모순적 결합으로서 역사적 자본주의를 설명한다는 점에서 특징적이다. 헤게모니 국가는 전지구적인 체계적 축적순환을 선도하는데 수익성과 이윤율의 하락에 따라 자본주의 세계체계는 새로운 헤게모니 국가가 선도하는 새로운 체계적 축적순환으로 대체된다. 역사적으로 네덜란드, 영국, 미국은 세계헤게모니로서 체계적 축적순환을 선도하였던 국가들인데 이들은 각각 보호비용의 내부화(internalization), 생산비용의 내부화, 거래비용의 내부화를 통해 ‘조직혁명’을 달성하고 상대적 우위를 차지함으로써 세계적 축적구조를 혁신하게 된다. 하지만 축적체계의 세계적 확장을 위해서는 반드시 국가간체계라는 매개를 거쳐야한다. 국가간체계는 세계적 축적의 안정적 지속을 위한 상부구조로 볼 수 있는데 일례로 영국의 경우에는 영토제국주의 열강 사이의 국가간체계, 미국의 경우에는 냉전으로 표상 되는 국가간체계의 수립이 세계헤게모니로 부상하는 데 관건적이다. 세계헤게모니를 효율성의 상대적 우위로 규정하는 월러스틴과 달리 아리기의 세계헤게모니는 다른 국가들에게 ‘발전의 길’을 제시하고 이를 따르게 하는 능력, 즉 보편성의 이상이라는 점에서 체계 전반을 재구성하는 지도력을 의미한다. 각각의 체계적 축적순환은 세계경제에서 투자와 고용의 영역에서 확대가 일어나는 실물적(물질적) 팽창국면과 이윤율이 하락하는 가운데 실믈적 팽창이 중단되고 급속한 금융화가 진행되고 기존의 세계헤게모니가 쇠퇴하면서 새로운 헤게모니 국가를 둘러싼 국가간 경쟁이 이루어지는 금융적 팽창 국면으로 구성된다. 금융적 팽창국면은 벨 에포크(belle époque: 불어로 ‘좋은 시절’이라는 의미) 시기로서 고도금융이 성장하면서 실물적 팽창의 중단에 따른 징후적 위기(signal crisis)를 극복하고 이윤율을 회복하지만, 이는 일시적인 것으로서 기존의 축적순환과 국가간체계가 붕괴하는 최종적 위기(terminal crisis), 즉 체계의 카오스가 발생한다. 새로운 축적양식이 등장하지 않는다면 이는 세계체계 자체의 붕괴로 이어질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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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자본주의의 성립과 위기: 미국 헤게모니의 등장과 금융세계화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사실상의 ‘30년 전쟁’)을 통해 미국은 헤게모니 국가의 지위를 놓고 경쟁하던 독일을 물리치고 새로운 헤게모니 국가로서 새로운 체계적 축적순환을 이끌어가게 된다. 지정학적으로 유럽대륙과 떨어진 해양국가라는 점, 유럽 열강들과의 충돌을 야기하는 외부의 식민지 개척이 아니라 프런티어(frontier)라는 사고방식 속에서 내부의 식민지 개척을 추진할 수 있었던 점, 라틴 아메리카를 배후지로 둔 점 등은 독일에 비해 미국이 지닌 이점이었다. 
미국 자본주의 내적 특징은 이종산업의 통합, 즉 연관 부문의 수직적 통합을 통한 법인기업(corporation)이다. 법인자본주의의 등장으로 미국 자본주의는 거래비용을 내부화함으로써 수익성을 제고할 수 있게 되었을 뿐 아니라 자본회전 속도의 가속화, 대량생산과 대량유통의 결합에 따른 규모의 경제 출현, 소유자와 경영자의 분리에 따른 전문경영인의 등장과 노동과정을 통제하는 테일러주의와 포드주의, 즉 노동에 대한 실질적 포섭 등의 변화를 겪게 된다. 법인기업은 식민지의 독립 이후에도 투자의 자유를 바탕으로, 적극적인 해외진출을 모색하면서 시장을 개척할 수 있었다. 미국이 헤게모니 국가로서 자신의 위상을 정립하고 전후 세계 자본주의 질서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해결해야 했던 것이, 첫째 1929년 대공황의 교훈으로서 고도금융에 대한 통제, 둘째 복지국가와 소비주의6)를 매개로 한 노동계급의 체계 내 포섭, 셋째 발전주의를 매개로 한 제3세계 민족해방운동/국가의 포섭이라는 문제였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관건적인 것은 미국의 능력의 부족이 아니라 의지의 부족이었다고 할 수 있을 텐데, 새로운 세계질서의 수립에서 미국의 적극적이고 주도적인 역할에 대한 정치적인 합의가 아직 충분치 않았기 때문이다. 한국전쟁을 계기로 본격화된 ‘냉전의 발명’은 미국을 따라잡으려는 국가들이 두 진영으로 나뉘어 사회주의적 발전주의와 자본주의적 발전주의로 경합하는 국가간체계로 정착된다. 그러나 1967/73년부터 미국 헤게모니는 정점에 도달하고 금융적 팽창국면이 시작되는데 오늘날 금융세계화가 전개되는 것이다. 
베트남전쟁을 기점으로 쌍둥이 적자(무역적자와 재정적자)에 시달리던 미국에 의해 금-달러 가치를 고정하던 브레턴우즈 체제가 1960년대 말과 1970년대 초에 걸쳐 무너지고, 이후 변동환율제 시행, 자본이동 자유화, 공공채무의 증권화 등의 조치가 뒤따른다. 이로부터 금융화 국면이 시작된다. 그런데 20세기 말 금융화는 영국 헤게모니가 몰락하던 19세기 말 금융화와는 몇 가지 점에서 차이가 있다. 첫째 국채시장이 팽창하면서 세계 대부분의 국가가 채무상태에 놓여 채권자(기관투자자)로부터 정책적 자율성을 갖기 어렵다는 점, 둘째 노동에 대한 포섭이라는 정치사회적 조건으로 인해 자본주의 위기의 양상이 인플레이션으로 나타난다는 점, 셋째, 자본과 군사력이 미국으로 집중된다는 점, 넷째, 외향적이지 않는 미국경제의 특성상 제3세계에서 배제된 지역(제4세계)이 늘어난다는 것, 다섯째 과거의 민족해방운동이나 사회주의운동에 비견될만한 조직화된 (대중적) 저항이 부재하다는 점, 여섯째 동아시아의 비중이 커지면서 헤게모니의 지위를 넘보고 있다는 점 등이 그것이다. 
무엇보다 외양적으로는 헤게모니의 쇠퇴라고 생각되지 않을 만큼 자본과 군사력이 미국으로 집중된다는 점이 주목된다. 미국은 엄청난 재정적자와 무역수지 적자에도 불구하고 안정적인 경제를 유지하고 있는데, 이는 외부로부터의 엄청난 자본이 유입되어 부족분을 상쇄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은 이라크전쟁 비용의 증가, 외국인의 미국 내 자산보유, 달러에 대한 동아시아 국가들, 특히 중국의 발언권 증가, 경상수지 적자 등의 요인으로 인해 굉장히 불투명하다. 또한 국가간체계를 유리하게 재편하려는 미국의 정치․군사적 전략은 오히려 이라크에서 볼 수 있듯이 상황을 더욱 악화시켜 ‘제국’의 지배를 불안정하게 할 뿐이라는 점에서 자본주의 미래, 자본주의의 생존 가능성에 대한 의문은 어느 때보다 더욱 증폭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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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의 쟁점 
『자본주의 역사강의』는 세계체계 분석을 통해 앞서 언급한 것말고도 상당히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마지막으로 그 중에서 몇 가지 눈에 띠는 쟁점을 간단히 정리하고 글을 마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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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동아시아 자본주의 
세계체계 분석에서 동아시아는 다른 지역과 구분되는 매우 독특한 함의를 지닌다. 동아시아는 유럽연합(EU)과는 달리 여전히 100여 년 전에 존재했던 두 개의 거대한 세력이 대랍하고 있으며, 1950년대 이후 냉전 시대 현실사회주의 국가들과 최전선에서 대립하고 있는 지정학적 조건으로 인해 아프리카나 라틴 아메리카와는 달리 일본의 부흥과 신흥공업경제(NIEs)의 고도성장으로 나타나는 발전국가의 모델이 등장했으며, 1980년대 이후에는 사회주의권이 세계경제에 편입되어 성장하면서 일본의 다층적 하청구도가 동아시아 전역으로 확대되고 있다. 특히 냉전 시기 동아시아의 지정학적 조건은 남미가 “경제의 과잉”이라고 한다면 “정치의 과잉”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데, 탈냉전 시기에도 한반도를 둘러싼 미국과 북한의 갈등은 미국과 중국, 미국과 일본, 중국과 일본의 상호 관계와 맞물리며 복잡한 대립과 협력의 계선을 만들어 내고 있다. 우리의 입장에서 보자면 이러한 동아시의 지정학적 조건은, 특히 최근 북한 핵실험에 대한 운동진영의 이른바 ‘용인론’과 관련하여, 한반도를 둘러싼 역내 국가들간의 복잡한 함수 관계와 구분되는(혹은 단절하는) 사회운동의 역할은 무엇이며, 활동영역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제기한다. 
아리기는 중국의 부상을 염두에 두고, 금융중심지인 제노바가 제국적 팽창의 군사적 중심인 이베리아 제국과 결합했던 역사적 경험이 반복될 것인가 하는 질문을 제기하는데, 본서에 언급된 대로 양자 사이에 융합(fusion)이 아니라 분기(fission)가 일어날 가능성도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미국이 동아시아를 중요한 전략적 거점으로 판단하여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확보․한국과 일본의 이라크 파병단행․일본의 평화헌법 개정 지지 등 한미동맹 및 미일동맹을 전지구적 차원으로 확대하려는 시도를 보이고 그에 비례하여 각 지역의 반전평화 운동의 대응이 거세지는 만큼 융합이든 분기이든 그 과정은 상당한 갈등과 진통을 수반할 수밖에 없다. 또한 자본주의의 구조적 위기 국면에서 동아시아 자본주의 역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지적할 필요가 있다. 시간이 흐르면서 생산과 금융의 중심이 동아시아로 이동하고 있다지만 이를 과연 새로운 체계적 축적순환이라고 볼 수 있는지는 확실치 않기 때문이다.7) 오히려 한국의 주식시장이 초민족적 자본에 의해 좌우된다는 점에서 드러나듯이 상당히 취약한 토대 위에 자리잡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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２) 자기비판된 사회구성체론의 복권과 노동자운동의 전망 
저자는 곳곳에서 사회구성체론의 복권을 언급한다. 이는 한국 사회성격 논쟁으로부터 강의를 시작하는 것이나(pp.20~28), 세계체계 분석이 자본의 재생산과 관련된다면 사회구성체론은 지배관계의 재생산, 노동의 구체성이라는 차원에서 연관성이 있다는 지적(pp.40~3), 그리고 아리기의 세계체계 분석을 다루는 부분에서 사회구성체론의 복권 필요성을 제기하는 데서도 드러나고 있다(pp258~64). 여기서 저자가 언급하는 사회구성체는 자기비판된 것으로서 반드시 기존의 민족국가를 단위로 하는 것이 아니라 더 큰 단위일 수도 있고 더 작은 단위일 수도 있다. 어쨌든 그것은 세계경제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자본의 재생산과는 달리 더 낮은 단위에서 이루어지는 이데올로기의 재생산을 가리키며 그 기본단위는 매우 달라질 수 있다. 이데올로기의 재생산은 알튀세르도 지적했듯이9) 자본주의 생산양식에서 결정적인 노동력의 재생산과 직결되는 문제다. 
관련하여 본서에서는 근대적 주체의 생성이라는 차원에서 폴라니의 문제의식이 강조되고 있다. 그에 따르면 근대적 노동자의 재생산에서 발생한 단절점은 ‘기아의 규율’을 통한 작업장으로의 강제동원이 이루어지는 가운데 근대 자유주의 국가에서의 파편화된 정치적 주체가 형성되는 과정에 다름 아니었다. 노동자들은 근대 이후 보통선거권을 획득하기는 했지만 사회로부터 고립되고 원자화된 개인에 불과하며 그 자체로는 역설적으로 아무런 정치적 의사를 형성할 수 없는 존재들로 전락한다. 이처럼 노동의 상품화는 사회로부터 뿌리뽑힌/탈구된(disembedded) 노동자를 구성하는데 이는 상품화 초기스핀햄랜드법이나 신구빈원법에서 드러나듯이 전반적인 삶의 파괴과정이다. 그러나 이에 대응하는 스미스적 기획은 시장에서 발생하는 적대를 분배의 문제로 협소하게 인식하며, 그 결과 노동자운동에서 노동조합의 결성은 오히려 노동력의 상품화를 촉진하는 방향에서 임금인상을 목표로 하게 된다. 이후에도 운동의 주류적 흐름은 임금제도를 철폐하는 운동의 방향으로 전개되지 않았다. 또한 20세기 들어 대표적 산업인 자동차 산업의 경우 작업장에 기반한 교섭력이 커지면서 19세기 공동체의 여러 조직들을 매개로 발휘되었던 연대와 연합적 힘을 대체하고 오히려 노동자운동이 사회로부터 격리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20세기 후반 마르크스주의 위기와 금융세계화의 영향으로 작업장 교섭력에 기반한 조직노동자운동이 약화되고 기존의 조직으로 포괄되지 않는 여러 비정규적 형태의 노동력이 출현하면서 19세기 연합적 힘에 기반한 노동자운동의 전통이 복원될 필요성이 제기된다. 
마지막으로 덧붙이자면 자기비판된 사회구성체론의 문제의식은 무엇보다 국제주의의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조건들에 대한 탐색이라는 맥락 속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이데올로기적 주체의 재생산과 대응양상은 저자의 지적처럼 단지 세계경제로 환원할 수 없는 국지적 차별성, 즉 정세의 차별성을 지니고 있다. 중요한 것은 바로 이 차별성 속에서 지난 1세기 동안 세계혁명을 꿈꾸던 혁명가들에게 강력한 양심으로 남아있으면서 결국 무기력하게 좌초한 국제주의의 재개를 위한 조건을 보다 구체적으로 분석하고 사고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10) 19세기 연합적 힘에 기반한 노동자운동을 20세기의 노동자운동과 비교하면 무엇보다 전자가 민족주의가 대중화되기 이전의 시기, 즉 마르크스가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고 호기롭게 외치면서 전유럽적 차원의 인터내셔널을 결성하던 시기였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20세기 자유주의 이데올로기가 세계의 반체계운동을 포섭하는 매개가 민족국가였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오늘날 국제주의라는 쟁점은 운동이 기존의 반체계운동의 한계를 넘어서는 데 매우 핵심적인 지위를 부여받을 수 있다. 
더군다나 노동자운동의 주류가 의존해왔던 사회복지국가와 (반)주변부의 발전주의는 신자유주의적으로 변모하거나 한계에 봉착해 있다. 이러한 정세적 조건에서 노동자운동의 국가주의적․민족주의적 경향은 자칫 미국의 AFL-CIO가 중국의 WTO 가입을 반대하면서 보였던 국수주의적이거나 인종주의적 논리로 빠질 수 있을 뿐 아니라 세계화에 대한 불만이 세계 각지에서 종교적․종족적 이데올로기에 의해 정당화되는 극단적인 저항폭력의 형태로 수렴될 가능성이 존재한다. 요컨대 1세기 전 “사회주의인가, 야만인가”라는 질문이 오늘날 “국제주의인가, 야만인가”라는 질문으로 되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1)&#160;이러한 세계체계 분석의 사회주의 평가를 마르크스주의 내에서 이루어진 국가자본주의 논쟁의 맥락에서 독해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소련을 둘러싼 국가자본주의 논쟁에 대해서는 윤소영, 『마르크스의 경제학 비판과 소련 사회주의』, 공감, 2002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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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60;홉스봄(E. Hobsbawm)은 『자본의 시대』(국역: 김동택, 한길사, 1997)에서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팽창과 자유주의 및 부르주아의 성장을 분석하면서 1848~75년 사이 시기를 ‘자본의 시대’로 명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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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60;당과 국가를 관통하는 대중노선의 모순, 즉 스탈린주의를 극한적으로 작동시킴으로써 역설적으로 스탈린주의의 한계를 실천한 마르크스주의자로서 마오에 대해서는 에티엔 발리바르, 「마오 : 스탈린주의의 내재적 비판?」; 윤소영 편역, 『맑스주의의 역사』, 민맥, 1992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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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60;Giovanni Arrighi, The Long Twentieth Century - Money, Power and the Origins of Our Times, Verso,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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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60;이와 관련하여 박상현, 「자본주의 구조적 위기와 서구 마르크스주의 위기이론」; 김석진 외, 『자본주의의 위기와 역사적 마르크스주의』, 공감, 2001. 김숙경, 「마르크스주의 위기이론과 이윤율의 경제학」; 같은 책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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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60;19세기 말 20세기 초 미국 노동운동의 급진적인 노동시간 단축운동은 뉴딜과 2차대전을 거치면서 ‘더 많은 임금, 더 많은 소비’를 획득하는 것으로 귀결되면서 결국 체계 내로 포섭된다. 관련하여 안정옥, 「소비적 근대성과 사회적 권리 : 미국 헤게모니의 사회적 기원과 한계」; 백승욱 외, 『미국의 세기는 끝났는가? - 세계체계 분석으로 본 미국 헤게모니의 역사』, 그린비, 2005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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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60;‘체계적 카오스’를 지난 500년 간 유지된 자본주의 체계 전반의 위기라는 맥락에서 사용하는 월러스틴은 일본 및 동아시아가 미국 이후 세계 헤게모니로 등장할지 여부에 대해 부정적이다. 동이사아 자본주의의 미래 역시 현재 자본주의&#160; 구조적 위기와 무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매뉴얼 월러스틴, 「동아시아의 부상, 21세기의 세계체계」 및 「이른바 아시아의 위기 - 장기지속 내의 지정학」, 『우리가 아는 세계의 종언 - 21세기를 위한 사회과학』(백승욱 옮김, 창작과비평사, 2001)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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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60;2004년 12월 현재 외국인 투자자들은 한국 주식시장의 42%를 차지하고 있으며 수익률도 상당히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국제투자대조표에서 드러나는 바, 지분성 직접투자와 증권투자를 포함하면 한국의 순국제투자는 2004년 말 903억 달러 적자(GDP 대비 13.3%)로서 이는 자본이 탈에 의한 경제위기가 상존함을 의미한다. 박하순, 「신자유주의적 금융세계화와 한국경제의 전망, 그리고 불안정노동」; 박하순․장귀연 외, 『신자유주의에 맞서는 노동운동 - 불안정노동 철폐를 위하여』, 도서출판 사회운동,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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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60;루이 알튀세르, 「이데올로기와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국역: 『아미앵에서의 주장』, 솔,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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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60;이와 관련하여 앞서 소개했던 세계체계 분석에서 동아시아 자본주의의 이례적인 발전과정에 대한 분석이 지니는 의의는 크다고 할 수 있다. 본서에서는 「8강 동아시아와 세계체계」에서 그 내용을 소개하고 있다. 
<br />]]></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85/31/cover150/8976829670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6829670</link></image></item><item><author>바라</author><category>찌라시의 문서 창고</category><title>자본주의와 기독교-김규항</title><link>http://blog.aladin.co.kr/vara/1013770</link><pubDate>Wed, 06 Dec 2006 16:0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vara/1013770</guid><description><![CDATA[<H3 class=title>자본주의와 기독교</H3>

중세 교회는 봉건 지배체제의 일부였습니다. 교회는 엄청난 땅을 소유했고 평민들에게서 세금을 걷고 사법권의 상당 부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교회는 이렇게 설교했습니다. “하느님이 준 권력인 국왕과 하느님의 대리인인 교회에 복종해야 한다” “현실은 죄로 물든 고통스러운 것이며 인생의 진정한 목적은 천국에 가는 것이다.”
그럴싸한 말이지만, 이 설교에 따르면 모든 현실적 욕망(부도덕한 탐욕뿐 아니라 인간 해방의 욕망 같은 정당한 것까지 포함한)은 사악하고 부질없는 것입니다. 교회는, 그 자체로 봉건체제의 지배이데올로기였습니다. 성직자와 귀족을 제외한 전체 인구의 95%가 넘는 사람들이 그런 신앙의 사슬에 묶여 수입의 8할 이상을 귀족과 교회에 바치며 평생 죽도록 일만 했습니다. 죽어서 천국에 가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러나 현실적 욕망을 사악한 것이라 설교하는 교회는 현실적 욕망에 가장 충실했습니다. 토지와 돈에 대한 교회의 탐욕은 그야말로 끝이 없었고 평민들의 불만도 점점 높아갔습니다.
상공업이 발달하고 도시가 생기면서 상황이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중세 사회는 성직자와 귀족이 제3신분인 평민들을 착취하는 사회였지만 평민들 가운데 일부가 새로운 중간계급을 이루기 시작했습니다. 이른바 부르주아가 출현한 것입니다. 부르주아들은 한편으로 저술가, 의사, 교사, 변호사, 판사들이었고 다른 한편으로 상인, 제조업자, 은행가들이었습니다. 부르주아는 무능한 귀족과 타락한 교회와 대결하기 시작했습니다. 부르주아들은 경제에서 자유방임, 사회적으론 ‘이성의 지배’를 표방하며 성장했고 자신들에게 마지막 남은 제약, ‘신분’을 해결합니다. 그게 바로 시민혁명입니다. 
시민혁명은 프랑스 혁명, 영국혁명, 이렇게 일컬어지는 사건이지만 봉건사회가 부르주아에 의해 점령되는 수백 년에 걸친 과정이기도 합니다. 종교개혁은 그런 과정의 제1막입니다. 흔히 종교개혁을 타락한 교회에 대한 정당한 저항이라고 하지만 그것은 종교개혁의 의미를 기독교라는 카테고리 안에서만 보는 것입니다. 종교개혁은 부르주아가 봉건 지배체제로서 교회를 자신들의 체제로 변화시키는 사건이었습니다. 종교개혁을 통해 교회는 달라졌지만, 교회가 지배체제의 이데올로기라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봉건시대의 교회는 부를 더러운 것이라 설교했지만 종교개혁가들은 부는 하느님의 축복이라 설교했습니다. 칼빈은 최초의 기업정신을 만듭니다. “사업으로 얻는 소득이 토지 소유로 얻는 소득보다 많아서는 안 되는 이유가 뭔가? 상인의 이윤이 그 자신의 근면과 성실에서 오는 게 아니라면 대체 어디에서 온단 말인가?” 

막스 베버는 칼빈이 말한 근면과 성실, 그리고 금욕으로 요약되는 이른바 ‘프로테스탄트 정신’이 자본주의를 만들었다고 했습니다. 돈을 축적하는 일은 죄가 아니라 하느님이 축복하는 선한 일이 되었기 때문에 자본주의적 축적이 가능했다는 것입니다. 반면에 맑스주의는 생산력이 발달하고 자본주의 생산관계가 만들어지면서 그에 조응하는 정신적인 가치들이 생겨났다고 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프로테스탄트 정신이 어떻게 생겨났는가가 아니라 그 정신이 현재 우리에게 무엇인가, 입니다. 프로테스탄트 정신이 봉건사회에 대한 저항으로서 갖는 개혁적이고 진보적인 의미보다는 그 정신을 담은 자본주의 사회가 어떤 사회인가가 더 중요합니다. 
부의 축적은 칼빈이 말한 대로 여전히 근면과 성실, 그리고 금욕으로 이루어지고 있는가? 물론 성공한 자본가들은 자신이 정당하게 부자가 되었다는 걸 강조하기 위해 그런 선전들을 많이 합니다. 우리는 김우중 씨의 안경다리가 20년 된 것이라느니 정주영 씨가 근검절약이 몸에 밴 사람이라느니 하는 이야기들을 수도 없이 듣습니다. 그들이 ‘안경다리’가 아닌 개인 용도에 상상하기 어려운 돈을 쓰기도 한다는 점에서 그들의 근검절약은 그들의 호사 취미일 뿐입니다. 그러나 좀 더 본질적인 문제는 그들의 부가 근검절약으로 축적된 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평생 모은 돈을 대학게 기부하는 김밥 할머니가 아닙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가가 부를 축적하는 원리는 어디까지나 노동자의 잉여 노동입니다. 즉 노동자의 100원어치 노동을 60원에 사 40원을 먹는 데서 나오는 것입니다. 
교회가 사회적 불평등에 참여하는 전통적인 방법은 이른바 자선입니다. 미국의 자본가들은 자선 사업에 기부함으로써 사회적 영웅 대접을 받습니다. 그러나 자선은 두 가지 문제를 갖습니다. 하나는 그 대상이 되는 사람들을 ‘불쌍한 인간’으로 만드는 것인데 이것은 전혀 신앙적이지 않습니다. 둘째는 자선이 가난의 부당함과 가난을 만드는 사회적 모순을 은폐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든 어떤 노동이든 사람이 일주일에 40시간 이상 노동을 하면 먹고 살 수 있고 얼마간의 인간적인 여가를 즐길 수 있어야 합니다. 문제는 아주 많은 사람들이 그렇지가 못하다는 것이고 우리는 그런 불공정한 상태를 고쳐내야 합니다. 자선은 바로 그것을 값싼 눈물과 감동으로 차단합니다.
우리는 워낙 반공주의 경향이 강한 나라에서 살다보니 흔히 자본주의는 다 같은 줄 알지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이를테면 미국은 우리보다는 나은데 유럽은 또 미국과 전혀 다릅니다. 우리 기준으로 보면 유럽 나라들은 사회주의 사회에 가깝습니다. 근래 미국의 제국주의적인 정책에 열심히 따른다고 비난을 받는 영국만 보더라도 의료와 교육이 전액 무료입니다. 독일이나 프랑스의 사회복지는 말할 것도 없고 북유럽 쪽의 사회복지는 서유럽보다 더 높은 수준입니다. 몇 해 전에 노키아의 부회장이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가 과속으로 걸려서 범칙금으로 1억 3천만원을 냈다는 이야기는 잘 아실 겁니다. 그런데 작년 말엔 같은 핀란드의 27살짜리 부자가 자동차 과속으로 2억 5천만원을 냈습니다. 우리는 이건희가 과속을 하건 40대 무주택 가장인 김 아무개가 과속을 하건 똑같이 3만원을 내는 걸 공정하다고 생각하지요.
그런데 유럽에서 기독교는 뚜렷하게 쇠락하고 있습니다. 현대 신학의 중심지라는 독일의 교회는 노인들만 몇몇 앉아서 예배를 봅니다. 반면에 미국이나 한국처럼 자본주의적 모순이 좀 더 노골적인 나라에선 교회가 차고 넘치지요. 이것은 현재 기독교의 정신이 자본주의적 모순이 좀 더 노골적인 사회에 부응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기독교 정신이 인류의 미래에 전혀 전망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유럽 사회의 사회복지는 본디 자본주의적인 개념이 아닙니다. 그 사회들은 러시아보다 더 먼저 사회주의 나라가 될 뻔 했고 그걸 막기 위해 사회주의자들과 타협을 했던 것입니다. 물론 사회주의는 유물론을 기초로 하고 유물론자들은 대개 하느님의 존재에 관심이 없습니다. 그런데 하느님을 부인하는 사람들이 하느님을 떠받드는 사람들보다 훨씬 더 사람답게 살고 있는 것입니다. 기독교인들은 부끄러워해야 합니다.
기독교의 본래 정신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기독교의 본래 정신은 프로테스탄트 정신도 종교개혁의 정신도 아닌 예수의 정신입니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받아들이는 건 기독교인에게 당연하고 아름다운 일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만 강조하여 예수가 우리에게 가르친 삶의 방식을 외면하는 건 종교체제로서 기독교나 교회에 사로잡혀 예수를 다시 한번 팔아먹는 행위라는 것을 되새겨야 합니다. 예수는 단 한 번도 새로운 종교를 만들려고 한 적이 없습니다. 예수는 단지 어떻게 사는 게 사랍답게 사는 것이고 하느님을 섬기는 삶인지 몸소 보여주었습니다. 교회는 그런 삶을 실천하고 전하기 위한 조직입니다. 
기독교 정신의 가장 위대한 지점은 ‘하느님 앞에서 모든 사람이 형제자매’라는 것입니다. 백인이든 흑인이든 여성이든 남성이든 어른이든 아이든 부자든 가난뱅이든 배운 사람이든 못 배운 사람이든, 심지어 기독교인이든 불교신자든 이슬람교도든 모든 사람은 하느님 앞에서 형제자매입니다. 예수는 바로 그 사실을 몸소 보여줌으로써 유대인의 신으로 여겨지던 하느님이 온 인류의 신임을 가르쳐주었습니다. ‘하느님 앞에서 모든 사람이 형제자매’라는 건 참 무서운 이야기입니다. 그 정신은 어떤 형태의 차별이나 착취도 불가능하게 합니다. 사회주의가 분배의 공정함을 목표로 한다면 기독교 정신은 분배의 공정함을 이룬 다음에도 남는 ‘내 형제에 대한 염려’입니다. 
기독교인에게 남보다 더 좋은 것을 입고 먹는 일은 바로 헐벗고 가난한 내 형제에 대한 배신입니다. 8억이 넘는 사람들이 굶주림에 허덕이고 그 가운데 3억이 어린 아이들입니다. 기독교인은 바로 지금 자기마치 3억 명의 제 새끼가 굶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오늘은 어떤 맛있는 걸 먹을까 찾아다니고 돈을 들여가며 비만을 치료하고 지역마다 음식 쓰레기를 맡지 않겠다고 싸웁니다. 이역만리 어느 곳에 부당하게 고통 받는 사람이 단 한명이라도 있다면 기독교인은 편하게 잠을 이룰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바로 ‘내 형제’인 것입니다. 우리는 바로 이 사실에서 기독교가 사회주의를 훌쩍 뛰어넘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회주의는 공정한 분배체제를 만들 수는 있었지만 사람들에게 그런 마음을 키워내는 데는 실패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그것을 할 수 있습니다. 아니 그런 마음에서 출발합니다. 교회는 그런 마음을 키우고 실현하는 공동체입니다.
예수는 지난 2천년 동안 단 한 번도 제대로 이해받지 못했습니다. 그 중요한 원인은 예수의 정신이 너무나 현대적이었다는 것입니다. 예수의 정신엔 사회주의, 여성주의, 생태주의, 아동인권을 비롯한 인류가 현대에 들어서야 깨달은 여러 소중한 정신들이 이미 들어 있습니다. 이를테면 예수의 일행엔 언제나 여성들이 여럿 포함되어 있습니다. 인류 역사의 어떤 현인이나 종교 창시자도 여자를 일행에 포함시킨 일이 없습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여자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는 2천년 전에 여자들과 동행했고 여자 가운데서도 가장 천한 성매매 여성과 인격적으로 교우했습니다. 예수의 그런 행동이 사람들을 얼마나 당혹스럽게 만들었을지 사회에 얼마나 큰 충격을 주었을지 잘 생각해보십시오. 오늘 기독교인은 과연 어떤 행동으로 사회에 당혹감과 충격을 주고 있습니까?
기독교는 예수의 정신을 되찾아야 합니다. 이기심과 사적 소유를 기반으로 한, 땀 흘려 같이 일하고도 남보다 수천 수만배의 돈을 벌어들이는 사람이 찬미되는, 계급적 착취와 제국주의적 착취가 공공연한, 사랑이나 존경까지도 돈으로 매매되는 자본주의는 기독교인에게 말 그대로 악마의 사회체제입니다. 이른바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진행되면서 자본주의는 초기 자본주의의 야만으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80년대 말 자본주의의 강력한 경쟁자이던 동구 사회주의들이 몰락하면서 더 빠르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지금 인류를 나락으로 떨어트리고 있습니다. 빈부격차는 급속하게 벌어지고 이윤을 차지하기 위해선 공공연한 침략전쟁도 불사합니다. 그런데 교회는 그런 현실에 대응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대응하기는커녕 오히려 그에 부응하고 있습니다. 그런 현상이 가장 강한 교회가 바로 한국의 교회입니다. 한국 교회가 이렇게 된 배경은 흔히 미국식 근본주의 기독교, 말하자면 지금 부시 일당이 믿는 그런 기독교가 들어왔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맞는 얘기지만 보다 더 결정적인 배경은 세계 교회사에서 유례가 없다는 이른바 ‘한국교회의 놀라운 부흥사’와 관련이 있습니다. 한국교회의 놀라운 부흥은 주로 박정희 개발 파시즘 기간 동안의 일입니다. 물론 그건 시간상의 우연한 일치가 아닙니다. 한국교회는 개발 독재의 가장 충직한 선전선동 장치였습니다. 
“믿으면 받는다” 라는 한국 교회의 설교는 “하면 된다” 라는 개발 독재의 구호와 일치했습니다. 한국 교회의 무조건적 반공주의는 민주주의적 의견을 빨갱이로 몰아붙이는 독재의 의도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습니다. 또한 교회는 사람들의 자연스런 저항의식을 배설하게 하는 공간이었습니다. 관제 행사가 아니라면 여럿이 모이는 일조차 불편하던 시절, 교회는 사람들이 마음껏 소리치고 교제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었습니다. 특히 파시즘이라는 사회적 억압에다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식의 전근대적 가부장제에 시달리던 여성들에게 교회는 그야말로 해방의 공간이었습니다. 게다가 믿으면 남편도 자식도 잘된다는데 당시 여성들에게 그보다 더한 가치가 어디 있겠습니까. ‘아줌마’들은 교회 부흥의 돌격대가 되었습니다. 
‘한국 교회의 놀라운 부흥사’는 그렇게 씌어졌고 오늘 한국 교회는 세계에서 가장 저급한 신앙관을 자랑하게 되었습니다. 90년대 이후 우리 사회는 파시즘이 물러나고 민주화와 개혁이 진행되었지만 파시즘이 있던 자리를 대신 자본이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자본의 지배는 파시즘의 지배처럼 폭력이나 억압을 통한 게 아니라 사람들에게 자본의 달콤한 욕망을 심어주어 스스로 복종하게 하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서 돈이면 뭐든 다 된다는 생각을 심어주어서 사람들이 돈 앞에 무릎 꿇게 만드는 것이지요. 인간적이고 품위 있는 세상에 관심을 갖기 보다는 부동산과 통장 잔고에 집착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교회는 새로운 지배자에게도 ‘준비된’ 선전선동 장치입니다. 
제가 한국 교회를 욕하고 있지만 한국 교회에는 예수의 삶을 본받으려는 세계 교회사에 중요하게 기록될 만한 소중한 실천들도 존재했습니다. 70년대와 80년대 초에 모든 사회운동의 중심에 진보적인 교회가 있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런 정신을 갖는 교회는 이제 거의 없습니다. 이젠 거의 모든 교회가 하느님 대신에 돈을 섬깁니다. 오늘 대개의 한국교회는 교회가 아니라 교회를 가장한 상점들일 뿐입니다. 그 살벌하던 파시즘 시절에도 살아있는 교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젠 거의 없습니다. 파시즘보다 ‘자본의 신’이 기독교인에게 더 무서운 적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 사회는 예수가 살던 2천년 전 유대사회처럼 단순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차별과 착취는 언뜻 알아보기 어려운 복잡한 구조로 되어있고, 신문이나 방송 같은 주류 미디어와 여론을 가장한 온갖 이데올로기 공작, 특히 지배체제의 손바닥 안에서 놀아나는 네티즌의 활약은 그 복잡한 구조를 한 번 더 덮어 버립니다. 깊고 뜨거운 신앙심이나 영적 신령함이 그 구조를 자동으로 보여주진 않습니다. 자본주의를 들여다볼 수 없다면 예수의 삶을 실천할 방법도 없습니다. 오늘 기독교인에게 자본주의에 대해 공부하는 일은 성경 공부만큼이나 중요합니다. 부동산이나 주식 같은 공부를 말하는 게 아니라 이놈의 자본주의가 대체 사람들의 피를 어떻게 빨아먹고 있는가, 우리의 신앙을 어떻게 파괴하고 있는가를 공부하는 것입니다.
기독교인은 예수가 정치적 박해를 받았다는 사실, 예수가 당대 지배체제와 대결했다는 사실에 정직해야 합니다. 그 대결의 방식에서 나타나는 비폭력성만을 편의적으로 발췌하여 예수의 급진성을 모호하게 만들어선 안 됩니다. 교회가 다 돈을 섬기게 되었다고 말했는데 돈 대신에 다른 걸 섬기는 교회도 있습니다. 바로 ‘내 마음’을 섬기는 교회입니다. 그런 교회의 목사님과 신도들은 다 온화하고 도사들 같습니다. 수염 이렇게 기르고 개량한복 입고 조용히 앉아서 “부시나 라덴이나 똑같다” 말합니다. 그들은 예수 흉내를 내지만, 그 폭력의 현실과 내 형제의 고통을 ‘초월’하고 있다는 점에서 역시 예수를 팔아먹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예수가 단 한 번도 현실을 떠나거나 초월한 어떤 가치를 말한 적이 없다는 것을 되새겨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가 이 천박한 자본주의 세상에 살았다면 어떻게 했을까 늘 고민해야 합니다. (평신도 아카데미 강의)<BR>]]></description></item><item><author>바라</author><category>찌라시의 문서 창고</category><title>인간 시민권의 철학은 가능한가-발리바르</title><link>http://blog.aladin.co.kr/vara/995685</link><pubDate>Wed, 08 Nov 2006 22:5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vara/995685</guid><description><![CDATA[최원님 홈피서 펌. 나중에 한가해지면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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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lt;사회운동&gt; 11월호에서 퍼옵니다.<BR>-------------------------------------------<BR><BR>인간 시민권의 철학은 가능한가? <BR><BR>기사인쇄 <BR><BR>에티엔 발리바르 | &lt;번역&gt;장진범 | 정책편집부장 <BR><BR><BR><BR>[역주: 지난 호까지 연재한 『책 속의 책』 페미니즘 기획을 마치고, 이번 호부터 정치 비판 및 정치 이념에 관한 새로운 기획을 시작한다. 1991년 현실 사회주의가 최종적으로 몰락하면서, 지난 150여 년 동안 노동자운동을 비롯한 사회운동들의 가장 강력한 이념이었던 마르크스주의 역시 청산의 대상으로 전락한다. 마르크스주의 이념에 대한 회의는 이념 일반에 대한 회의로 이어졌고, 자본주의의 틀을 받아들이는 한에서 실용주의적 개혁을 추진하는 것 이외의 모든 발본적 모색은 '거대담론'에 대한 시대착오적 집착으로 억압되었다.<BR>하지만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 및 그에 맞서는 사회운동의 (재)출현은 정치 이념 문제를 긴급한 의제로 올려 놓는다. 이는 두 가지 의미에서다. 한 편으로 신자유주의와 세계화는 근대의 지배적 정치 형태를 근거 짓는 이념이었던 자유주의와 민족주의의 모순이 낳은 결과다. 따라서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맞서기 위해서는 그 원인 중 하나로서 기존 이념을 반성하고 변혁하기 위한 모색이 당면한 과제 중 하나로 나선다. 다른 한 편으로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다면적으로 벌어지는 대중 투쟁들을 더욱 확산시켜야 할 뿐 아니라, 이들을 새로운 대안 세력으로 묶어 내는 과제가 제기된다. 이는 정치 이념의 문제를 돌파하지 않고서는 결코 해결될 수 없는 문제다. 우리가 정치 비판 및 정치 이념의 문제로 돌아올 수밖에 없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BR>이번 호에서는 그 시작으로 프랑스 마르크스주의 철학자 에티엔 발리바르의 「인간 시민권(Human Civic Rights)1)의 철학은 가능한가? 평등한 자유에 관한 새로운 반성」을 싣는다. 이 글은 근대 정치 이념의 시초가 되는 평등과 자유, 인권과 시민권의 관계에 관한 그의 기왕의 논의를 정교화하는 한편, 민주적 헌법을 기초 짓는 핵심 원리로 각각 기본권과 인민 주권을 특권화하는 지배적 논쟁 지형에 개입하여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이는 직접적으로 유럽 헌법 조약을 둘러싼 논쟁을 겨냥한 것으로, 실제로 발리바르는 이 글 이후 유럽 헌법 조약의 문제점 및 새로운 헌법이 담아야 하는 핵심 원리를 적극적으로 발언한다(유럽 헌법 조약 당시 발리바르의 입장에 관한 소개로는, 강국, 「유럽헌법조약 부결과 정치이념 논쟁」, 월간 『사회운동』 2005. 7/8월호(통권 56호)를 참고하라.). 뿐만 아니라 이 글에서 발리바르는 근대 정치의 가장 중요한 제도적 쟁점인 '소유'와 '공동체' 문제가 항상 이율배반적인 것으로 나타난 까닭은 각각을 정당화하기 위해 사용되었던 인간학 그의 표현을 따르자면 '개인'의 인간학과 '주체'의 인간학 의 이율배반에 있음을 밝히면서 이러한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배제를 배제하는' '정치적 인간학'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 같은 주장은 앞으로 정치 이념에 관한 논의를 해 감에 있어 매우 중요한 준거점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다.]<BR><BR><BR><BR>1)역주 여기서 '시민(적)'이라고 새긴 'civic'은 통상 '공민(적)'이라고 번역하는데, 현재 한국어 용법에서 '공민권'이라는 말이 너무 낯설기 때문에 부득이하게 이렇게 번역했다. 최근 발리바르는 예컨대 'civil disobedience'(시민 불복종)이라는 말을 'civic disobedience'라고 바꾸어 부른 바 있고, 'civic right'라는 표현 역시 각주 2에서 보듯 토론회 제목으로 제시된 'civil right'라는 표현과 선을 긋기 위해 제시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현재 'civil'이라는 단어가 국가/시민사회, 집단/개인, 공/사 등의 이분법을 받아들인 채 후자의 영역에 국한되어 사용되는 것을 비판하기 위해서인 것 같다. 즉 발리바르가 'civil right'가 아니라 'civic right'라는 표현을 통해 제기하는 것은, 시민권이 이미 구성된 체계의 일부인 시민사회 안에서 주어진 권리를 향유하는 권리가 아니라, 말 그대로 새로운 체계를 (탈)구성하여 새로운 권리를 (탈)구성하는 권리라는 점이다. 이렇듯 발리바르의 '시민권' 개념이 기존의 시민권 개념에 대한 비판을 함축하고 있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본문으로 <BR><BR><BR><BR><BR>인간 시민권(Human Civic Rights)의 철학은 가능한가? 평등한 자유에 관한 새로운 반성<BR><BR>나는 여기서 평등한 자유(아이쿠아 리베르타스, aequa libertas)라는 통념에 관한 "새로운 반성들"을 제시하고 싶은데, 이 통념은 고대(키케로)부터 존 롤스와 아마르티아 센의 작업을 둘러싸고 벌어진 당대 논쟁들에 이르는 공화주의 정치 전통 전체에 걸쳐 존속해 왔으며, 나는 이전의 연구에서 이 통념을 평등한 자유(equaliberty, galibert , igualibertad, Gleiche Freiheit, or Gleichheit/Freheit 등)라는 압축된 혼성어 형태로 제시한 바 있다.2) 이 반성들을 통해 정치 철학의 고전적 문제 곧 시민권(rights of the citizen)의 민주적 정초(定礎, foundation)를 토론하는 데 기여하려는 것이 나의 의도다. 철학에서 정초는 원리 특히 구성(構成, constitutive) 원리의 해명을 뜻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시민권" 자체가 입헌(入憲, constitutional) 질서의 핵심이자 목표를 이룬다 성문적이든 불문적이든, 형상적이든 질료적이든, 규범적이든 구조적이든 고 상정할 때 여기서 문제는, 우리 역사에 깊이 뿌리박힌 철학적-정치적 언어유희를 따라 말하자면, 헌법의 구성(constitution of constitution) 같은 것이다(하지만 언어마다 외양은 다양하다: 프랑스어로는 constitution de la constitution이지만, 독일어로는 Konstitution der Verfassung이다.). 여기서 나는 이 구성의 구성을 '해체'(deconstruction, 탈-구축)의 정신에 따라 다루고 싶은데, 이는 파괴라거나 순전한 자격박탈이 아니라 탈-구축(Ab-bau)3), 전제에 대한 비판적 분석으로 이해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해체는 문제적인 요소들과 부정적, 이율배반적 또는 아포리아적 측면들을 끌어냄으로써, 개작이나 전위 심지어 역전(나는 결론 부분에서 이런 제안을 하고 싶은데, 이는 한나 아렌트의 일부 고찰에서 나름대로 영감을 얻은 것이다.)의 필연성을 이해할 수 있게 해 준다.4)<BR>우리가 다루고 있는 문제를 파악하기 위해서 내가 간략히(그리고 희망컨대 논란의 소지가 없는 방식으로) 상기하고 싶은 것은, 본질적으로 민주주의적인 근대 시민권(citizenship)에 내재한 철학 혁명을 구성하는 것은 무엇이며, 그것이 왜 원리상의 난점을 제기하는가 하는 점이다. 근대 시민권, 곧 고전주의 시기에 시작하여 17~19세기의 인민 봉기와 헌법 개혁을 통해 이루어진 정치 변혁에 의해 전진적으로 설립되었으며, 무한한 과제를 구성한다고 널리 인정받는 근대 시민권을, 고대, 중세, 그리고 르네상스의 시민권과 구별 짓는 것은 사실 민주주의 원리의 발명이 아니다. 아리스토텔레스와 키케로가 이미 말했듯, 폴리테이아(polliteia, 정치체)나 키비타스(civitas, 도시국가)의 원리는 본질적으로 민주주의적인 이우스 코뮤니스(ius communis, 공동의 법)와 콘센수스 포풀리(consensus populi, 인민의 동의)에 준거했다. 근대 시민권을 뚜렷하게 특징짓는 것은, 적어도 권리상 또는 원리상으로 본다면, 시민 지위의 보편화다. 즉 시민 지위는 특권이기를 멈추고 대신 정치에 대한 보편적 권리, 보편적 접근의 견지에서 파악되기에 이른다. 정치적 권리에 대한 권리(아렌트가 말했듯 "권리를 가질 권리")일 뿐만 아니라, 실질적인 정치 참여에 대한 권리가 바로 그것이다.5)<BR>우리 근대인에게는 이론의 여지가 없는, 하지만 또한 동시에 불편한, 근대성의 유산을 대표하는 이러한 관점에서 쟁점이 되는 것은 우선 외연적(extensive) 보편성이다. 즉 세계정치적(cosmopolitical) 지평이 그것으로, 다양한 민족적, 연방적 시민권들, 또는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민족적 시민권과 국제법의 절합이 상이한 정도로 이러한 지평에 근접하고 있다. 하지만 내가 내포적(intensive) 보편성이라 부르려는 것이 훨씬 중요한데, 이는 공통의 인간성, 헤겔이나 포이어바흐 식으로 말하면 가퉁스베젠(Gattungswesen) 또는 "유적(類的) 존재"인 특성 없는 인간 고유성(properties)을 결여한 인간이라고까지 말할 수는 없겠지만 을 정치 참여의 지주 또는 "주체/기체"(基體, subject)로 제시한다. 이 내포적 보편성은 조건이나 지위, 본성을 이유로 한 시민권의 부인을 금지하고, 배제를 배제한다. 우리는 보편성의 개념화에 본래적인 이 부정성 또는 "부정의 부정"의 요소에 주목해야 한다.<BR>근대적 시민권은 이상적으로(또는 이렇게 말하길 원한다면, 규범적으로) 인간성이라는 술어와 시민성이라는 술어의 동연성(同延性, coextensivity), 두 관점의 상호성, 등식을 설립한다. 유명한 철학 정식을 빌려 말하자면, 호모 시베 키비스(Homo sive Civis, 인간 즉 시민)다. 정치적 근대성을 기초 지었으며 우리의 헌법 전문 대부분에서 그 흔적이 발견되는 위대한 선언들에, 진술적이면서 동시에 수행적으로 표현되어 있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내가 다른 학자들을 따라 다른 곳에서 논증한 것처럼 이들 선언의 핵심 골자는, 이보다 시기적으로 앞서고 영미권의 입헌 전통에서 유사한 위치를 차지하는 『권리 장전』과 마찬가지로, 평등한 자유(equal liberty) 또는 "평등 자유"(equaliberty) 명제로 구성되어 있음이 밝혀진다.6) 이 명제는 특유의 이중 부정 또는 동시 부정 형태로, 평등은 자유 없이 불가능하고 자유 역시 평등 없이 불가능하다는 점, 따라서 자유와 평등은 상호 함축 관계에 있다고 정립한다. 그리하여 이 명제는 유적(類的) 인간과 시민권을 원리상 동치로 만들며, 이는 "인간의 권리"와 "시민의 권리"의 법적 일치(adequation)를 함축한다. 따라서 이는 근대에 전형적인 보편주의적 관점에 따라 헌법을 민주적으로 구성하는 원리라 할 수 있다.<BR>그렇다면 난점은 어디에서 비롯하는가? 집요하고 해결 불가능하기 십상인 난점, 민주적 보편주의를 포기하거나 와해시키는 방향으로 가서는 안 되며, 민주적 보편주의의 구성에 대한 비판을 발전시키는 방향으로 인도해야 할 그 난점은 어디서 나오는가? 내가 볼 때 이러한 난점을 낳는 이유들의 원천 또는 집합을 최소한 세 가지 정도는 제시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나는 민주주의적 헌정을 구성하는 명제 자체를 재고하거나 재정식화할 수 있게 해 주는 방식으로 이것들을 소묘해보고 싶다.<BR>첫째(여기서 나는 물론 독창성을 주장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 이 난점들은 민주주의적인 권리 구성/헌정(democratic constitution of rights)이라는 관념을 이중적으로 해석하는 데서 나오는데, 이는 기본권(게랄트 슈트르츠(Gerald Stourzh)의 주저 제목에서 환기된 기본권 민주주의(Grundrechtsdemokratie))라는 통념과 인민 주권 또는 입법적이고 입헌적인 "일반 의지"라는 통념 사이의 경합에서 표현된다.7)<BR>둘째 나는 이 측면이 사실 첫 번째 측면과 무관하지 않을뿐더러, 추상적으로 규범적인 관점과 역사적·정치적으로 구체적인 관점 간의 대립보다 훨씬 더 만족스러운 해석을 제공해 줄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싶다 난점은 보편주의적 정초가 준거하는 인간 개념이 근본적으로 다의적인 개념이라는 사실에서 온다. 우리는 우주론적(cosmological)이거나 신학적인(또는 우주신학적인) 관점을 인간학적인 관점으로 바꾸는 역사적 대체 이는 근대성을 고유하게 특징짓는 대체다 의 결과 과거 신이나 세계로 형상화되던 최종적 준거점의 지위를 차지하게 된 인간이라는 용어가 두 가지 대립된 의미작용 또는 이해방식으로 즉시 분할된다는 "형이상학적 사실"을 상기함으로써 이를 표현할 수 있다. 공동체적 인간은 소유자로서의 인간과 동일하지 않으며, 내가 도입하고 싶은 용어법에 따르자면 "주체"로서의 인간은 "개인"으로서의 인간과 동일하지 않다. 비록 양자 모두 유적이며, 둘 다 시민과 일치하고 시민의 권리 구성을 내부로부터 결정하게 되어 있지만, 그렇다고 양자가 동일한 것은 아니다. 현실에서 이 이중성은 정치를 실질적으로 민주화하려는 또는 평등한 자유를 제도적으로 실현하려는, 항상 갈등적인 시도와 절차들 안에서 한 시도 그치지 않고 작동해 왔다.<BR>셋째, 마지막으로 난점은 "정초"는 그 관념만이 아니라 과정 자체가 본질적이고 돌이킬 수 없이 이율배반적이라는 사실, 즉 자기 자신과 모순을 빚고 그 자신이 설립하는 원리를 부정할 수밖에 없다는 데서 온다. 여기서 나는 얼마간 구성/입헌 권력(constituent power)이라는 통념의 고전적 이율배반을 염두에 두고 있는데, 잘 알려진 것처럼 그 신학적 뿌리는 법이나 질서를 설립하는 궁극적 지점이 또한 필연적으로 모든 질서와 적법성이 해소되는 지점, 법질서의 보편성에 관한 예외 지점이자 그 법적 제약에 관한 해방의 지점 역시 표상하게 만든다는 데 있다(이 문제에 관해서는 후술하겠다). 하지만 내가 또한 염두에 두고 있는 점은 보편화 자체가 배제, 또는 심지어 내적 배제 절차와 분리할 수 없어 보이는 것 같다는 점이다. 이는 원리를 실현하는 데서 겪게 되는 우연한 난점들이나 역사적 상황에 따른 원리들의 단순한 경험적 제한 내지 특수화 같은 것들과는 사뭇 다른 것을 표상한다. 이는 구성/입헌이나 [헌법의] 재정초라는 관념 그 자체를 내부로부터 변용한다.<BR>여기서 우리가 반드시 제기해야 하는 질문은 명백히 역설적인 것으로서, 이는 보편성 자체에 고유한 "유한성"의 종류는 무엇인지, "민주주의" 또는 "시민권"이라는 정치적 이름을 지닌 해방 과정의 무한한 또는 미완적 성격에 고유한 "유한성"은 무엇인지 하는 질문이다. 내가 방금 환기시킨 각각의 점들을 도식적이고 부분적으로나마 다시 살펴보기로 하자. 이 세 가지 경우에서 내 목표는 우리가 지도 원리로 삼는 권리의 민주적 구성/입헌이라는 관념에 본래적인 아포리아적 요소들을 각각 다른 관점에서 강조하는 것이 될 것이다.<BR>내가 환기시킨 첫 번째 난점은, 모두 알다시피 정치적·철학적 담론과 분리할 수 없는 메타법적인 담론 안에서, 민주적 구성/입헌 질서의 지속적인 "정초"가 어떻게 가능한지, 따라서 그러한 질서에 대한 보증이 어떻게 제공될 수 있는지 그려볼 수 있는 두 가지 전망[기본권의 관점 대 인민 주권의 관점] 사이의 긴장과 관련된다.<BR>여기 있는 여러분 모두가 잘 알고 있는 역사적 이유 때문에 이 난점은 1945년 이후 독일의 상황에서 특히 뚜렷하고 명료한 형태로 정식화되었다. 또한 우리는 그것이 제기하는 문제가 오늘날 각별한 함의를 지닌다는 점 역시 알고 있는데, 왜냐하면 권력과 공적 권위에 관한 입헌적 전망, 가능하다면 민주주의적인 구성/입헌의 전망을 탈(post)민족적이거나 상위(supra)민족적 공간, 특히 유럽 공간으로 확장하는 문제를 우리가 직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실을 말하자면 이 두 측면(외연적 측면 상위민족체로의 이행 과 내포적 측면 공적 권력들의 민주화)은 분리할 수 없다.<BR>나는 두 명의 동시대 독일 저자들에게서 몇 가지 정식화를 빌려올 생각인데, 그 중 한 명은 철학자 위르겐 하버마스(Jurgen Habermas)고, 다른 한 명은 법학자 에른스트-볼프강 뵈켄회르데(Ernst-Wolfgang B ckenf rde)로, 이들은 이러한 난점을 서로 다른 방식으로 해결하지만, 적어도 내 생각에는, 상당히 비슷한 용어로 이러한 난점을 제기하고 있다.<BR>최근작인 『사실성과 타당성』의 핵심 장에서 하버마스는, 정치 질서를 내적으로 규제하는 "권리 체계"는 두 방향 중 하나로 "재구성"될 수 있다고 제안한다. 그는 "실정법이라는 수단에 따라 자신들의 공동의 삶을 규제"8)할 것을 합법적으로 지향하는 시민들 사이의 상호 인정 과정 안에서 작동하는 [권리 체계의 두 방향 사이의] "내적 긴장"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이 "양가적인 법적 타당성(validity)"을 한 편으로는 루소주의적인, 다른 한 편으로는 칸트주의적인 계보에 따라서 (이 점이 중요하다) 자율(성)의 원리를 이해하는 두 가지 서로 다른 방식에 철학적으로 준거 짓는다(여기서 논쟁을 벌일 수는 없지만, 사실 이는 하버마스에게는 루소와 칸트의 담론이 서로에 대해 단순히 외재적이지 않음을 의미한다). 권리 체계의 토대에 관한, 따라서 법적 측면, 도덕적 측면(주체적인 자기결정과 주체성들 사이의 상호 인정이라는 관념과 연결되어 있는)과 고유하게 정치적 측면 간의 내적 관계에 관한 하버마스의 논의 전체는 그가 관점들 사이의 "암묵적인 경합" 관계라고 부르는 것 쪽으로 나아가는 경향이 있는데, 여기서 두 가지 경합하는 관점은 입헌 질서가 기본권(Grundrechte)으로 간주되는 인권에 기초한다고 보는 관점과, 인민 주권 원리에 기초한다고 보는 관점이다.9) 하버마스는 이 두 가지 관점이 "근대 법을 정당화할 수 있는 유일한 관념들"이라고 본다.10) 과연 이 두 관점은 그것을 수단으로 합의, 또는 하버마스의 인상적인 정식화를 따르자면 "일인칭 복수"(us, nous, wir)11) - 이는 자기결정이나 권리들의 상호 인정이라는 실질적 과정에 의해 전제된다 - 를 생산함과 동시에 그것에 규범을 주거나 조절할 수 있는 유일한 두 가지 관념이다.<BR>하지만 이 두 가지 관념은 보완적이기보다는 경합적인데, 특히 민주주의에 관한 "자유주의적"이고 "시민 공화주의적"(civic republican) 개념화 사이에서 되풀이되는 토론이 잘 보여주거니와, 이 두 관념은 각각 도식적으로 칸트주의적 표상(비록 나 자신은 로크주의적 요소를 강조해두고 싶지만)과 루소주의적 표상으로 귀속될 수 있다. 전자는 주관적 권리들12) 사이의 상호성과 합의, 또는 이러한 상호성의 본질적 내용을 이루는 평등한 자유를 규범의 보편성 위에 기초 짓는 경향이 있는데, 이러한 보편 규범은, 고유한 의미의 정치-법률 질서의 "상류"(upstream)에서, 즉 개인들이 이상적으로 서로서로를 대체할 수 있고 따라서 견해의 차이나 이해의 갈등을 중화할 수 있는 도덕적 영역에서 발견되어야 한다. 후자는 보통 "일반 의지"라 불리는 평등주의적 규범을 구체적(하버마스는 이를 "실존적"이라고까지 부른다.13))인 정치 행위 안에 통합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 정치 행위는 개인들의 사회화를 실현한다. 즉 개인들을 역사적 사회의 제도들 안에 통합시키는데, 이 때 국가의 강제력을 동원하거나 동원하지 않으면서, 개인에게 다시 한 번 적어도 이상적으로는 일반적인 공적 이해 안에서 사적이고 특수한 이해를 초월하도록 강제하기까지 한다.<BR>주지하듯이 하버마스가 이 딜레마 그에 따르면 이는 근대 입헌 전통 전체와 동연적이다 에 대한 답변으로 제시하는 해법은 초월론적 형태를 취하는데, 여기서 그는 도덕화나 정치화의 방향으로 옮겨가지 않으면서도 정확히 권리 구성/입헌의 수준에 머무를 수 있게 해 주는 제 3의 통념을 도입한다. 하버마스는 이 용어가 "의사소통"(communicational) 영역 또는 "의사소통 행위의 영역"에서 발견된다고 보는데, 여기서는 "상호 이해를 지향하는 언어 사용의 발화수반적(illocutionary)인 구속력이 이성과 의지를 화합시키는 데 봉사하며," 이는 "합리적 담론의 참여자로서 공동의 법주체들은 논란이 되는 규범이 그것에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있는 모든 이들의 합의에 부합하는지, 또는 부합할 수 있는지 여부를 검토할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14) 따라서 평등한 자유는 단순히 강제되거나 또는 준칙화되지 않으며, 그것을 자신의 주권성의 표현으로 보는 어떤 정치체(body politic)에 의해 도구화되지도 않는다. 우리는 자연히 이러한 "해법"이 실제로는 순환적이지 않은가 하는 의문을 가질 만한데, 왜냐하면 의사소통 절차는 사실 상호 인정이나 "합의"의 원천이라기보다는 효과인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우리는 하버마스의 해법이 실제로는 인민 주권이나 집단의 자율성이라는 견지에서 [법·정치 체계] 정초를 바라보는 공화주의적이고 루소주의적인 전망보다는, 기본권이나 개별적인 권리 보장의 보편화의 견지에서 정초를 보는 칸트주의적인 도덕적 전망에 훨씬 가깝다는 느낌을 가지게 된다.<BR>에른스트-볼프강 뵈켄회르데가 제시하는 관점에서는 사태가 사뭇 달라지고, 실천적 목적 면에서 본다면 정반대가 된다.15) 여기서 자세하게 논의할 수 없는 것이 유감스럽지만, 뵈켄회르데가 민주주의 전통에 본래적인(사실은 그 전통에 고유하게 속하는) "구성/입헌 권력"이라는 관념의 난점들과 기본권(Grundrechte) 또는 개인의 근본적 자유의 즉각적 타당성이라는 관념이 제기하는 문제들을 차례로 검토한다는 점을 상기시켜두고 싶다(기본권의 즉각적 타당성이라는 관념은, 인민 주권의 표현이 약소자들을 말살하거나 심지어 배제하게 되는 근대성의 보편주의와 합리주의에게는 치명적인 점이지만 가능성을 설명하고 그에 맞서기 위해 탈(脫)전체주의 헌법들이 다시 한 번 크게 힘주어 강조했던 점이다).<BR>구성/입헌 권력이 완전한 의미를 갖는 것은 오직 그것이 주권을 기초 지음에 있어, 직접적인 정치 참여를 통해, 특히 해방적 봉기의 고유하게 구성적/입헌적인 순간에 능동적으로 구성되는, 집합적 전체로 간주되는 "인민" 뿐만 아니라, 뵈켄회르데가 미조직 인민이라고 부르는 이들, 권리 보장 및 헌법적 통제 체계로 온전히 통합되지 못한 채, 또는 이렇게 말하는 편이 더 낫다면 (예컨대 보통 선거권의 행사에서 볼 수 있듯이) 헌정의 단순한 한 기관으로 변형되지 못한 채 항상 그 아래에 머물러 있는 이들까지 자신의 토대로 삼는 한에서다.<BR>다른 한 편, 기본권의 즉각적 타당성이라는 관념은 모든 시민들 사이에서 이 권리들을 분배한다는 관념, 그리고 이 분배의 실질적 실현이라는 관념과 분리할 수 없어 보인다. 나 자신은 이 후자의 관념 안에서 평등한 자유라는 관념의 강력한 표현을 읽고 싶다. 이제 이 분배라는 문제가 가동시키는 것은, 정치적 권리를 사회적 권리와 동일시하는 경향 뵈켄회르데는 이 양자 사이의 일치라는 질문이 불가피하게 제기될 것임을 인정하면서도 이 같은 경향을 명시적으로 거부한다 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기본권에 대한 규범적 개념화가 제도에 관한 또는 가치론에 관한 이론이나 개념화를 향해 나아가게 만드는 통제할 수 없는 운동(말하자면 "전방으로의 탈출(fuite en avant)"16)이다. 뵈켄회르데는 이 과정을 "기능적 민주주의"(functional democracy)라고 부르는데, 여기서 권리 및 의무의 분배를 지배하는 것은 추상적 규범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정치적인 과정으로서 민주주의적 과정 자체다.17)<BR>결국 뵈켄회르데가 두 가지 정초 그 역시 두 가지가 존재함을 인정한다 간 반정립의 초월을 파악하는 방식은 하버마스와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거니와, 이는 그가 도덕적 차원에 비해 정치적 차원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이 정치적 차원을 인민의 구성/입헌 권력의 자기 규제 또는 자기 제한 과정으로 파악한다. 이 때문에 그는 "권력"(또는 "에너지"18)의 단계에서 규범(norm)과 정상성(normativity)의 단계로 이동할 수 있는데, 이는 정확히 그가 구성/입헌 권력 행사의 규칙 또는 조건에 관한 자신의 정의 안에 (그리고 그 행사 안에) "기본권"의 견지에서 정식화된 처방과 보장을 통합하는 한에서이며, 이는 최종 분석에서 보편주의적인 문화 전통에서 유래한다.19) 따라서 우리는 여기서 다시 두 가지 원리 사이의 균형의 탐색, 또는 (인민적) 구성/입헌 권력이라는 민주주의적 관념과 "기본권"이라는 (전자와는 약간 다른 의미를 지닌) 민주주의적 관념 간의 상호 한정에 대해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상호 한정에서 구성/입헌 권력 또는 인민 주권이라는 관념은 우선권을 보유하면서 결정적인 역할을 계속하는데, 이는 시민권의 민족적 성격20), 즉 시민권과 인류 사이의 차이에 관한 그의 고찰에서 특히 잘 나타난다. 그에 따르면 이러한 차이는, 추상적 개인주의나 세계시민주의에서 정식화될 수 있는 것처럼, 자신들이 선택한 권위에 통치 받고 그 권위의 통제 아래 있겠다는 요구의 단순한 담지자로서 개인들 다수(multitude)로 인민이 해체되지 않고, "인민"이나 더 나아가 "미조직" [인민이] 계속 정치적 주체로 남아 소속의 공동체를 이루기 위해서는 실제로 반드시 존속해야 한다. <BR>내가 널리 알려진 이러한 입장들을 자세히 설명한 것은 이중의 가설을 제시하기 위해서다. 한 편으로, 고유하게 법적인 수준에서는 민주적 질서 또는 내가 평등한 자유라 부른 것을 일의적으로 정초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설사 평등한 자유가 의심의 여지없이 법적인 개념 내지 관념, 하나의 "권리 형태"라고 할지라도 그렇다. 하지만 어떤 의미에서 이는 조금도 놀라운 사실은 아닌데, 왜냐하면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바로 법질서가 자신을 정초할 수 있을 만한 "형이상학적 점"을 지정할 수 있는 가능성이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모든 자기정초는 내부로부터 불가피하게 타자성의 출현, 권리의 본질적인 불순성을 초래하거니와, 이는 반드시 도덕적이거나 역사-정치적인 기원에 따라 뒷받침되어야 하며, 양자 모두 어느 정도 불가피하게 이상화된다. 우리가 민주주의 질서를 고찰하고 있다고 해서 난점이 사라지지는 않으며, 오히려 이는 이러한 난점을 순수한 형태로 제시하여 그것과의 대결을 피할 수 없게 만든다. 이런 의미에서 뵈켄회르데처럼 "구성/입헌 권력"은 한계 개념이라고 말해야 할 뿐만 아니라, "기본권" 역시 어느 모로 보나 한계 개념이며, 따라서 항상 규정된 내용과 공식화를 찾아내야 한다고 말해야 옳을 것이다. 이 같은 한계들의 한계는 바로 이 두 가지 전망들의 합치 내지 일치다.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 원리의 문제로 간주될 경우 이러한 일치는 엄밀히 말해 획득할 수 없는 것이라면, 또는 무한한 탐색의 대상이라면, 귀결 문제로 간주된다면, 이는 즉각 주어진 것으로, 곧 평등한 자유 그 자체로 나타난다. 평등한 자유는 서로에 대한 배제 없는 인민 주권과 자율성에 대한 요구와 다르지 않으며, 이는 그것이 보편적 상호성의 원리 또는 규칙에 따라 생겨난다는 것을 함의한다.21) 평등한 자유가 요구하는 것은 정치 참여와 의사 결정에 대한 개인들의 기본권의 실현이며, 구체적으로 본다면 여기에는 바로 표현과 양심의 자유라는 권리, 법적 보장만이 아니라 심지어 교육과 직업적 지위에 대한 "사회적 권리"도 포함된다. 이런 의미에서 평등한 자유는 이중 구속의 이름이다. 평등한 자유는 해방의 관념 또는 민주주의 관념의 서로 다른 표현[곧 인민 주권과 개인의 기본권] 사이에서 선택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것의 이름일 뿐만 아니라, 개인과 공동체 간의 정치적 연결을 해체시키지 않고서는 개인과 공동체 양자 사이에서 선택하는 것을 부당하게 만드는 것의 이름이기도 하다. 그것은 인류의 지평 내부에서 정립(되고 선언)된 원리들의 보편성과 동시에 "인민 주권"으로 설립된 결정의 자율성을 지칭한다.<BR>내가 예고했던 마지막 두 가지 점에 관해서는 훨씬 소략하게, 심지어 전보를 치듯이 논해야만 할 상황이라서, 개략적인 정식화로 논의를 국한하도록 하겠다.<BR>첫째(이것이 나의 두 번째 테제였다), 나는 이 두 가지 "정초적" 담론들의 감축할 수 없는 이원성과 근대적인 "인간" 문제의 역사 전체와 동연적인 철학적 이원성을 관련지어 볼 수 있다고 믿는다. 최소한 우리는 두 가지 이원성을 활용하여 서로를 해명하려고 시도해 볼 수 있다. 각각의 담론들, 또는 차라리 민주주의 담론의 두 측면인 "자유주의적"이고 "공화주의적"인 측면, 또는 원한다면 "개인주의적"이고 "공동체주의적"인 측면은, 어떤 의미에서 자신의 고유한 인간학을 함축한다. 다시 루소가, 그리고 칸트보다는 로크가 여기서 준거점의 역할을 할 수 있으며, 로크는 문제의 기원에, 루소는 문제의 이행점에 각각 자리 잡고 있다. 한 편에는 주체의 인간학 쪽으로의 경향이 있는데, 그 지평은 공동체를 "간주관성"으로 구성하는 것이며, 그 중심 문제는 루소의 작업에서 눈부실 정도로 분명한 것처럼 법에 대한 관계의 문제로서, 이는 뗄 수 없이 개인적이면서 집단적이고, "특수"하면서도 "일반"적인 문제다. 만일 모든 "세속화"에도 불구하고 주권이라는 신학 정치적 개념의 지울 수 없는 흔적이 근대 인간학의 한 복판에 남아 있다면, 이는 정치의 내재성 안에 법의 초월성을 통합하려는 처음 보기에는 불가능해 보이는 기획, 또는 [근대적] "주체"가 그 자신은 복종에서 면제되어 있는 외적이고 절대적이며 숭고한 권위22)에 종속된 수브&#50697;투스(subjectus, 신민)나 수브디투스(subditus, 예속자)이길 그치고 그/녀 자신의 입법자이자 자기 자신의 구성/입헌적 권위가 되게 만든다는 기획 안에 근본 물음이 놓여 있기 때문이다. 알다시피 루소는 권리의 공동체 또는 일반 의지를 평등주의적이고 절대적으로 상호적인 방식으로 구성함으로써 이 딜레마를 해결하려 했다. 이제 시민은 더 이상,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에서 그랬던 것처럼, "통치"와 "복종" 사이에서 양자택일하는 것이 아니라23), 항상 동시에 통치하면서 복종하거니와, 민주적인 법 개념이 시민을 그/녀 자신에 대한 구성적인 "이중적 관계"에 위치 짓는 방식에 따라 "수직성의 감축"이 초래된다.24) 다른 한 편에는 개인의 인간학, 또는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동작주(動作主, agent)와 작인(作人, agency)에 관한 "개인주의적" 인간학 쪽으로의 경향이 존재한다. 개인의 자율성을 정초하려면 자신의 행동에 대한 책임, 책임성(accountability)을 동시에 정초하는 것이 필요하다. 로크, 그리고 그를 따르는 모든 전통이 이를 결정적인 방식으로 성취할 수 있었던 것은, "자기에 대한 배려"와 "보존"과 같이 오이케이오시스(oikeiosis)25)가 지닌 오래된 관념을 쇄신함으로써 "개인적 소유"(property in one's person)(훗날 자기 소유로 "번역된")라는 근대적 관념을 창출하고자 했기 때문이다.26) 로크가 창시한 인간학적 문제설정은 집단적이고 공동체적인 차원을 무시하지 않지만 분명 그것을 이차적인 것으로 간주하며, 이를 본질적으로 "교류"(commerce)의 견지에서, 개인들의 자율적 사업과 이익에 기초를 둔 교환과 교통의 사회적 유대로 개념화한다.<BR>마지막으로 (이것이 나의 세 번째 질문이었다), 이 두 가지 인간학적 정초 각각이 "정초" 자체의 이율배반이나 아포리아라고 불러야 할 것을 그 자신 안에서 재생산하는 것은 아닌지 물어볼 만하다. 나는 그렇다고 생각하며, 민주주의적 구성/입헌의 부정적 차원이라는 질문을 돌파함으로써 이를 증명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이 같은 부정적 차원 중 하나가 "저항권"이나 "봉기에 대한 권리" 같은 한계 개념의 "필연적 불가능성"으로 대변되는데, 이는 어떤 의미에서 법적인 국가 질서 그 자체 내부에 이 질서 자체의 폐지 또는 예외의 순간을 기입한 것이다. 현 시점에서 훨씬 중요한 연구 대상은 아마 인권 보편주의의 본질적으로 정치적인 함의를 정의하는 모든 절차에 본래적인 배제 형태(시민권에서의 배제, 심지어 "인간의 조건" 그 자체에서의 배제)일 것이다. 이와 같은 것이 루소에게는 "자유를 강제하기"27)라는 관념을 통해 나타나는데, 이는 분명 특정한 사회체의 정상성을 부과한다. 로크에게는 범죄자를 인류 바깥으로 배제하여 그를 시민권과 입법 권력에서 배제하려는 것이 유사한 역할을 한다. 그들의 인간 본성, 즉 그들의 인격을 저버리거나 상실하는 자들은 그리하여 그들 자신의 행위에 따라 노예 신분이나 공공의 적의 지위라는 운명에 처하게 된다.28)<BR>아렌트가 - 『인간의 조건』보다는 『전체주의의 기원』에서 - 제시한, "인간"과 "시민"의 역사적·이론적 관계의 역전에 기초한 권리의 무제한이라는 전망, 어떻게 인간이 시민권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시민권이 인간을 만드는지를 설명함으로써 정초라는 관념을 해소시키고, 평등한 자유(또는 역사에 의해 "내던져진" 모든 곳에서의 "정치에 대한 보편적 권리")의 문제설정을 배제된 자의 포함이라는 문제설정 또는 배제의 배제라는 문제설정과 본래적으로 결합시키는 전망이 우리가 볼 때 극히 많은 면에서 결정적이고 불가피한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BR><BR><BR>2) 이 소론은 원래 2002년 6월 베를린의 마르크 블로흐 센터에서 "Droits de l'homme, Civil Rights, Grundrechte"[인권, 시민적 권리, 기본권]이라는 이름으로 개최된 학회 토론회에서 발표됐다. [발리바르가 평등한 자유라는 용어를 도입한 것에 관해서는, tienne Balibar, "'Rights of Man' and "Rights of the Citizen,'" in Masses, Classes, Ideas: Studies on Politics and Philosophy before and after Marx, trans. James Swenson (New York: Routledge, 1994), 39~59 [국역: 발리바르 외, 『인권의 정치와 성적 차이』, 공감, 2003]를 보라.] 본문으로<BR><BR>3) [역주] Abbau는 독일어로 "해체, 철거, 해고" 등을 의미하는 단어이며, 분철하면 Ab-bau, 곧 "탈-구축"을 가리킨다. 하이데거는 서양 형이상학을 해체, 재구성하는 자신의 작업을 지칭하기 위해 이런 의미로 이 단어를 사용하기도 했다. 이런 측면에서 데리다가 사용한 "d construction"이라는 단어와 종종 비교되기도 한다.본문으로<BR><BR>4) [역주] 여기서 발리바르는 'foundation'(定礎, 주춧돌을 놓다), 'constitution'(構成, 얽어 이루다), 'constitutive'(入憲, 헌법을 세우다), 'construction'(構築, 얽어 쌓다) 등의 단어가 모두 '건축'의 뉘앙스를 갖고 있다는 점을 체계적으로 활용한다. 예컨대 '헌법의 기초'를 논한다면, 헌법 자체가 법 질서를 기초짓는 법이라는 점에서, '기초짓는 것을 기초짓는 것'이 된다. 이 언어 유희를 통해 발리바르는 근원적 기초가 되는 원리(原理, 근원 이치)를 이론적으로 규명하려는 시도는 필연적으로 무한퇴행에 빠질 수밖에 없으며, 따라서 전혀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는 점을 재치있게 표현하고 있다.본문으로<BR><BR>5) Hannah Arendt, Imperialism, book 2 in The Origins of Totalitarianism, 2nd ed. (San Diego: Harcourt, 1968), 294를 보라.본문으로<BR><BR>6) [역주] 발리바르, 앞의 책 참고.본문으로<BR><BR>7) Gerald Stourzh, Wege zur Grundrechtsdemokratie: Studien zur Begriffs- und Institutionengeschichte des liberalen Verfassungsstaates (Vienna: B hlau Verlag, 1989)를 보라.본문으로<BR><BR>8) Jurgen Habermas, Between Facts and Norms: Contributions to a Discourse Theory of Law and Democracy, trans. William Rehg (Cambridge: The MIT Press, 1996), 82 [국역: 나남, 2000]를 보라.본문으로<BR><BR>9) 위의 책, 94.본문으로<BR><BR>10) 위의 책, 99.본문으로<BR><BR>11) 위의 책, 97. 이는 Phenomenology of Spirit 4장 [국역: 한길사, 2005] 초입에 등장하는 헤겔의 놀라운 정식화를 떠오르게 한다. "'나', 곧 '우리', 그리고 '우리' 곧 '나'"[Ich, das Wir, und Wir, das Ich ist](G. W. F. Hegel, Phenomenology of Spirit, trans. A. V. Miller [Oxford: Clarendon Press, 1977], 110). 역주 "us, nous, wir"은 각각 영어, 불어, 독어의 일인칭 복수 표현이다. 본문으로<BR><BR>12) [역주] "주관적 권리subjective rights"란 객관적인 법체계와 구분하여 법적 주체들이 지니고 있는 권리들을 가리킨다. 때로는 정치적, 공적 권리와 구분되는 사적 개인들의 권리를 가리킬 때도 있다. 본문으로<BR><BR>13) Habermas, 앞의 책, 102. 본문으로<BR><BR>14) 위의 책, 103~4. 본문으로<BR><BR>15) Ernst-Wolfgang B ckenf rde, Le Droit, l'Etat et la constitution democratique: Essais de theorie juridique, politique et constitutionnelle, ed. Olivier Jouanjan (Paris: Bruylant L. G. D. J., 2000)을 보라. 본문으로<BR><BR>16) '전방으로의 탈출(fuite en avant)'은 "위험하지만 필요하다고 판단된 (정치적, 경제적) 과정을 가속화시킴"을 뜻하며, 심리학에서는 "두려워하는 위험 속으로 스스로를 내던지도록 내모는 무의식적 메커니즘"을 지칭한다. 본문으로<BR><BR>17) 위의 책, 268. 본문으로<BR><BR>18) 위의 책, 214. 본문으로<BR><BR>19) 위의 책, 222. 본문으로<BR><BR>20) 위의 책, 284~85. 본문으로<BR><BR>21) 프랑스 주권주의 전통이 평등의 이름으로 보여 준 "기본권"에 대한 경멸을 한탄할 때 게랄드 슈투르츠가 이의로 제기한 점이 바로 이것이다. 본문으로<BR><BR>22) [역주] "그 자신은 복종에서 면제되어 있는 외적이고 절대적이며 숭고한 권위"는 근대 이전까지, 심지어 루소 이전까지 통용되던 주권 개념의 의미였다. 본문으로<BR><BR>23) Aristotle, The Politics and the Constitution of Athens, ed. Stephen Everson, trans. Benjamin Jowett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6), 1277b. 본문으로<BR><BR>24) Jean-Jacques Rousseau, Of the Social Contract, book 1, chapter 7 in The Social Contract and Other Later Political Writings, ed. and trans. Victor Gourevitch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7), 51 [국역: 서울대학교 출판부, 2002]. tienne Balibar, "Apories rousseauistes: Subjectivit , Communaut , Propri t ," Les Cahiers philosophiques de Strasbourg 13 (Spring 2002): 13~36을 보라. 본문으로<BR><BR>25) [역주] "oikeiosis"는 "보존", "동일성", "전유" 등으로 번역될 수 있는 희랍어로, 근대의 "economy" 개념의 어원을 이룬다. 본문으로<BR><BR>26) 자기 소유라는 표현은 로버트 노직이 Anarchy, State, and Utopia (New York: Basic Books, 1974) [국역: 문학과지성사, 1997]에서 도입했고, 그 후 G. A. 코헨이 Self-ownership, Freedom, and Equality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5)에서 채택했다. 반면 "소유적 개인주의"에 관한 토론을 개시한 작업인 The Political Theory of Possessive Individualism: Hobbes to Locke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1962) [국역: 박영사, 2002]에서, C. B. 맥퍼슨은 로크의 본래 용어법을 보존한다: "개인적 소유", "개인의 소유자." 본문으로<BR><BR>27) Rousseau, Of the Social Contract, book 1, chapter 7 를 보라. "따라서 사회계약은 유명무실한 형식이 되지 않기 위해서, 일반 의지에 복종하기를 거부하는 자는 누구를 막론하고 전 단체에 의해 그것을 따르도록 강요되어야 한다는 약속을 암암리에 내포하고 있다. 우선 이 약속이 있어야만 다른 약속들도 효력을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개인이 자유롭게 되도록 강요한다는 것 외에 다른 의미가 없다." 본문으로<BR><BR>28) Second Treatise on Civil Government 4장(22~24절)에서 로크는 노예제를 정당화하는데 이는 기본적인 인권으로서 "자기 소유"와 모순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여기서 기준이 되는 것은 노예의 종별적 "본성"이 아니라 범죄적 행실이다. "실로 자신의 과실로, 죽어 마땅한 어떤 행위로 자신 자신의 삶을 박탈하는 것. 그 자에게서 생명을 박탈한 자는 (그 자를 자신의 권력 아래 두고 있을 때) 그 자의 생명을 앗아가는 것을 미룰 수 있고, 그 자가 자신에게 봉사하도록 이용할 수도 있거니와, 이런 행위는 그 자에게 아무런 해도 입히지 않는 것이다."(John Locke, Two Treatises of Government, ed. Peter Laslett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88], 284 [국역: 까치글방, 1996]). 본문으로<BR><BR><BR><BR>]]></description></item><item><author>바라</author><category>찌라시의 문서 창고</category><title>[퍼온글] {자발적 가난과 코뮨}</title><link>http://blog.aladin.co.kr/vara/991130</link><pubDate>Thu, 02 Nov 2006 23:0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vara/991130</guid><description><![CDATA[


자발적 가난, 코뮨의 현재를 살아가기 

가난과 자본주의








2006년 10월 31일 (화) 02:28:40
채희철  kikibar@naver.com





[연세대 대학원신문 / 채희철&nbsp;자유기고가]
“공통적인 것은 가난과 사랑의 창조적 관계로부터 탄생할 때에 활력을 띠며, 주체적 규정을 받는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공통적인 것의 욕망을 양성하기 위해서는 가난해야 하거나 아니면 스스로를 가난하게 만들어야 한다. -안토니오 네그리”
‘자발적 가난’은 ‘성장을 멈추어라’는 무성장론과 함께 짝을 이루는, 경제제일주의로 치닫고 있는 현대 자본주의에 대항하는 생태주의적 삶-담론이다. 경제적 무성장론이 자본제적 생산과정과 방식에 대한 문제제기라면, 자발적 가난은 자본제적 소비과정과 그 방식에 대한 문제제기다. 
삶에 대한 불안을 먹고사는 자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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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이 체제는 우리 경제가 보다 세계화되면 고용은 안정될 것이라거나, 불안정 노동과 저임금 그리고 고강도의 노동을 감수하지 않으면 세계화에 뒤쳐져 결국 경쟁에서 패배하게 될 것이라는 막연한 불안과 막연한 기대를 우리의 몸과 뇌에 주입하고 있다. ‘결핍’되어 있으니 그것을 보상받거나 채우라는 체제의 명령 앞에 누구랄 것도 없이 복종하게끔 한다. 욕망의 기능은 결핍을 채우는 것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다시금 욕망을 하게끔 하는 것에 그 목적이 있다는 라캉의 언명은 정확하게 바로 자본체제의 무의식이다. 삶은 이 결핍(생산과 소비 모두에서)을 보상받으려는 자본제적 원환운동으로 전환되고야 만다. 
비비안느 포레스테는 『경제적 공포』에서 자본주의는 경제제일주의를 조장하고 사람들의 마음속에 경제적 공포를 심어놓음으로써 삶을 통제하는 체제라고 말한다. ‘성장이 있으면 고용이 있을 것’이라는 신화는 사실이 아니며(실제로 ‘고용 없는 성장’이 가능한 현실이 문제가 되고 있다), 모두가 완전고용의 시대가 오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신화를 믿는 척 한다. 가난한 사람들은 사회적 주체가 아니라 염려와 불안 그리고 공포의 대상으로 전락한다. 사람들은 그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해 보험을 들며, 그래서 자본주의에 물을 대는 보험 산업은 날이 갈수록 번창한다. 불안한 영혼은 자본에 물을 댄다. 그렇기에 체제의 무의식을 폭로하고 원환의 고리를 깨뜨리는 것, 그것이 자발적 가난이다. 
가난한 사람들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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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가난한 사람들이 처음 역사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대체로 12세기경이다. 물론 그 이전에도 가난은 있었지만 그 가난은 특화되지 않는 가난이었다. 12세기의 가난은 십자군 전쟁, 도시의 성장과 상업과 수공업의 발전, 분열되어있던 왕국들의 통합과 국가의 성립, 유럽전역을 휩쓴 대량의 이주자들과 더불어 탄생했다. 이때 가난의 문제는 농민도 아니고, 상인도 아니고, 귀족도 아닌 특정하게 ‘가난한 사람들’이라는 존재의 문제로 등장하게 되었다. 도시의 성문은 통치의 안과 밖을 구분하는 공간적 배치였으며, 이에 따라 가난은 직접적으로 체제의 바깥영역으로 가시화되고 구획되었다. 말하자면 12세기는 중세시대에 불어 닥친 세계화였던 셈이다. 그리고 의미심장하게도 이 시기에 프란치스코 공동체와 도미니코 수도회로 대표되는 ‘자발적 가난’이라는 ‘무소유’와 ‘공유’운동이 전개되었다. “가난은 모든 덕의 여왕이다(St. Francesco d’assisi).”
물론 오늘날의 가난은 도시 외곽이나 제3세계만의 문제가 아니며, 가난한 사람들이 통치체제의 바깥에 머물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이론 및 정치이론에서 가난한 사람들이 주목받은 사례는 극히 드물다. 통상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은 산업예비군으로 개념화되거나 도시빈민이라는 주변적 이름을 가지며 ‘비생산적’인 존재로 규정된다. 어떻게 표현되든 그 주체성은 체제의 부덕한 잔여물(잉여인간)로 전락한다. 특히 가난한 사람들 중에서도 가장 부덕하고 체제를 위협하는 이들은 도둑, 거지, 부랑자, 매춘부, 건달, 광인들이었다. 
피에르 파졸리니는 『폭력적인 삶』에서 전통적 노동계급이 아니라, 바로 이 가난한 사람들에게서 보다 더 전복적이고 혁명적 주체성을 발견하고자 했다. 왜냐하면 노동계급은 지배계급과 닮은꼴의 욕망을 지녔기 때문이다. 가난한 사람들은 훨씬 더 벌거벗은 삶의 원초적 폭력에 노출돼 있지만, 화폐와 임금노동을 매개로 한 지배체제와의 공모로부터 더 멀리 벗어나 있다. 즉, 가난한 사람들은 지배체제로부터 탈주할 수 있는 잠재성과 가능성을 노동계급보다 더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아마도 이러한 생각의 단초를 더욱 밀어붙여 정치이론화한 것이 이탈리아의 자율주의일 것이다. 그들의 ‘노동거부’전략은 가난한 사람들의 주체성과 맞닿아있는 것이며 전통적(혹은 근대적) 노동계급과 주변적 주체성간의 탈구축적 연대를 표현하고 있다. 이러한 탈구축적 연대 그 자체가 새롭게 탄생할 탈근대적 프롤레타리아트인 것이며, 그 이름은 (네그리에 따르면)‘사회적 노동자’에서 ‘다중’으로 변화해왔다. 안토니오 네그리와 마이클 하트는 『제국』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코뮤니즘적인 전투성의 미래 삶을 조명해 줄지도 모를 고대 전설로,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의 전설이 있다. 그의 작업을 생각해보라. 다중의 빈곤을 고발하기 위해서 그는 그러한 공통 조건을 채택했고, 거기에서 새로운 사회의 존재론적 힘을 발견했다.” 
미래의 코뮨이 아니라, 코뮨의 현재를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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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자발적 가난은 과연 대안적 삶의 전망을 열어갈 수 있는 것인가? 체제에 의한 훈육을 거부하고 모든 존재와 자연과 더불어 즐거운 삶을 제시하는 음유시인으로서의 존재는 가능한가?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무성장과 자발적 가난을 일종의 삶의 퇴행적 반동으로, 그리고 결핍의 집단적 게토로 삶을 이끌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무성장과 자발적 가난을 말하는 사람들의 어떤 편향과 관계되어 있다. 생태적이고 자율적 삶에 대한 전망들이 중농적 상상력에 갇혀 있거나, 이반 일리치처럼 자족적 생산(생계유지적 생산)과 기계시스템이나 작업도구의 제한이라는 원시적 상상력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생산을 위한 생산’을 거부하고 무성장과 자발적 가난을 받아들이면서도 그것을 욕망의 억제나 생산의 제한으로 받아들이는 전망을 거부하는 생각은 펠릭스 가타리에게서 찾아볼 수 있다. 가타리는 “자치라는 전망, 자신의 신체, 자신의 감각·감수성·성애의 재전유라는 전망은 어떤 종류의 정치적, 경제적, 생산적인 제한도 가져오지 않는다.”(『욕망과 혁명』)고 말한다. 무성장과 자발적 가난을 자족이나 퇴행과 동일시하는 것에서 벗어나 자율적 생산, 대항생산의 다양성으로 인식해야 한다. 자발적 가난은 ‘필요’를 축소하거나 금욕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필요의 화폐적 가치에 맞서 필요의 공유를 확대하고, 필요에 대한 경제적 독재에 맞서 욕망적 필요의 다양성을 증진하는 것이다.&nbsp;&nb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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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kyosu.net/news/articleView.html?idxno=11607]]></description></item><item><author>바라</author><category>찌라시의 문서 창고</category><title>지식인과 대중의 경계들-최원(강연노트)</title><link>http://blog.aladin.co.kr/vara/963462</link><pubDate>Sat, 07 Oct 2006 13:2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vara/963462</guid><description><![CDATA[지식인과 대중의 경계들<br />
전국학생연대회의 강연을 위한 노트 (2005년 여름)<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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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 (시카고 로욜라 대학, 철학과)<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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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1} 32장에서 맑스는 공산주의적인 소유를 집단적 소유가 아닌 생산수단들의 공유에 기반한 개인적 소유라고 규정한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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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적 생산양식으로부터 나오는 전유(appropriation)의 자본주의적 양식은 자본주의적 사적 소유를 생산한다. 이것이 재산 소유자의 노동 위에 기초하는 것으로서의 개인적 사적 소유(individual private property)의 첫 번째 부정이다. 그러나 자본주의적 생산은 자연적 과정의 냉혹함과 함께 그 자신의 부정을 낳는다. 이것이 부정의 부정이다. 이 부정의 부정은 사적 소유를 재수립하지는 않지만 그것은 진정 자본주의 시대가 달성한 것, 즉 협동(co-operation) 및 토지와 노동 그 자체에 의해서 생산된 생산수단의 공유를 기초로 개인적 소유(individual property)를 수립한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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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우에 따라 여기서 맑스가 말하는 개인적 소유란 단지 소비물품을 개인적으로 소비할 것을 의미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어쨌든 맑스는 협동 및 생산수단의 공유를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한 편으로는 맑스가 일종의 주식회사와 같은 형태를 사고함으로써 생산수단은 공동으로 점유하지만 그 생산물들은 개인적으로 배당을 받게 된다는 식으로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다. 송태경씨가 예전에 이런 입장을 취했었는데, 이도 결국은 유사한 이야기인 셈이다. 결국 소비물품들의 소비는 개인적으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맑스를 일종의 바보로 만드는 말이다. 소비물품의 소비가 개인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어찌보면 너무나 당연한 말이라서 거의 동어반복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런 동어반복적인 말을 자본의 결론이라고 볼 수 있는 32장의 마지막 부분에 배치해 놨다고 믿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더 나아가서, 왜 맑스는 그렇다면 생산수단의 공유에 기초한 사적 소유라고 말하지 않고 개인적 소유라고 말하는 것일까? 사적 소유와 개인적 소유의 차이란 무엇인가? 따라서 맑스를 맑스답게 대접하고 맑스의 결론을 결론답게 대접하기 위해서, 맑스가 자본 1권을 통해서 발전시킨 논의들과의 연관 속에서 ‘개인적 소유’로서의 공산주의라는 말을 재고해야할 것이다. <br />
맑스는 32장 앞부분에서 사적 소유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사적 소유는 사회적, 집단적 소유의 안티-테제로서 오직 노동수단과 노동의 외적 조건이 사적 개인에게 속한 곳에서만 존재한다.” 하지만 곧바로 그는 기본적으로 사적 소유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는데, 하나는 노동자를 위한 사적 소유이고, 또 하나는 비-노동자를 위한 사적 소유이다. 후자는 소수의 자본가들의 손에 생산수단들이 사회적으로 집중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하고, 전자는 생산수단들이 개인 노동자들 사이에 흩어져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맑스는 후자는 “소규모 산업의 기반이고, 노동자 자신의 자유로운 개인성의 필요조건”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맑스가 공산주의 소유를 전자본주의적인 소규모 생산의 “사적 개인적 소유”의 부정의 부정으로서 “개인적 소유”라고 주장하는 한에서, 진정한 질문은 어떻게 공산주의적 소유가 자본주의에 의해 파괴되었던 “개인성” 그 자체를 복원할 수 있게 되는가가 된다. 따라서 또한 중요한 것은 {자본}에서 맑스는 자본주의에 의한 개인성의 파괴를 어떻게 사고하고 있는가를 살펴보는 것이 될 것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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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생각해 보는데에는, “기계와 대규모 산업”이라고 제목이 붙어있는 {자본}의 15장에 있는 “공장”에 관한 절에 나와 있는 논의가 크게 도움이 된다. 맑스는 거기에서 두 가지 상이한 종류의 생산성을 구별한다. 어떻게 자본주의에서 기계가 노동자를 특화된 기계의 일부로 변형시키기 위해서 활용되어지는가를 논하면서, 맑스는 이렇게 말한다. “여기서도 다른 곳에서처럼 우리는 생산의 사회적 과정의 발전에 힘입어 증가된 생산성과 그러한 발전을 자본가들이 착취함으로써 증가된 생산성을 구별해야만 한다.” 따라서 맑스는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개인 노동자를 기계의 일부로 환원하고 그의 개인성을 소비함으로써 달성되는 생산성이 있다면, 다른 한 편 개인 노동자의 개인성 그 자체의 실현을 통해서, 그리고 그가 가지고 있는 노동의 자기 확장능력에 대한 온전한 승인을 함으로써 달성되는 생산성이 있는 것이다. <br />
그런데, 다시 두 가지 종류의 생산성에 대한 이러한 구별은 소규모 산업 노동의 성격과 대규모 산업 노동의 성격의 구별과 함께 가는 것이다. 맑스는 계속해서 이렇게 말한다. “수공업과 매뉴팩쳐에서는 노동자가 도구를 사용하지만, 공장에서는 기계가 노동자를 사용한다. 전자의 경우에는 노동도구의 운동이 그로부터 연원하지만, 후자의 경우에 그는 기계의 운동을 따라가야만 한다. 매뉴팩쳐에서는 노동자들이 살아있는 메커니즘의 부분들이다. 공장에서는 노동자들에게서 독립적인 생기 없는 메커니즘이 있고, 노동자는 그것의 살아있는 부속물로 거기에 통합된다.”<br />
이렇게 놓고 보면, 앞서 마르크스가 논한 전자본주의적인 소규모 생산에서 발견할 수 있는 개인성이란 바로 도구와 기계 사이의 차이에 관련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br />
하지만 노동자의 개인성을 파괴하는 노동자와 기계간의 이러한 관계의 전도는 반드시 직접적인 노동과정 내에서 발생하는 하나의 “독점”에 핵심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즉, 자본가와 관리자 계급에 의한 지적 능력(혹은 노동의 지적 측면)의 독점 말이다. 따라서 우리는 노동자의 개인성의 파괴라는 것은 일차적으로 그의 지적 능력의 파괴에 기인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해서, 맑스는 두 가지 다른 종류의 생산성이 있다고 말한 직후에, 공장 그 자체에서 제도화되는 노동의 지적 분할을 깊이있게 논한다. <br />
맑스는 이렇게 말한다. “핵심적인 분할은 기계에서 실제로 일하도록 고용된 노동자들과 단지 기계를 돌보는 노동자들 사이에 있다. 이러한 두 계급들에 추가로, 수적으로만 보면 미미한 집단이 있는데, 이들의 직업은 전체 기계를 관리하고 때로 그것을 수리하는데, 이들은 엔지니어, 미케닉스, [공정들의] 결합자로 이루어져 있다. 이들은 과학적으로 교육되어졌고 기술적으로 수공업에서 훈련된 노동자들의 상층 계급이다.” 나중에 맑스는 {자본}의 잃어버린 6장이라고 부르는, “직접적 생산과정의 결과들”이라는 부록에서 이러한 지식의 기계로의 축적 내지 기입과 이를 담당하는 위계질서의 수립을 공장내 전제정 내지 노동과정 내의 자본가 권력의 수립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볼 것이다. <br />
이렇게 봤을 때, 맑스가 결론적으로 제시한 공산주의적 소유로서의 개인적 소유라는 것이 궁극적으로 노동자들의 지적 능력들의 회복과 발전에 핵심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다음과 같은 점을 생각케 하는데, 계급투쟁의 기반에는 이러한 지적 분할이 끊임없이 작동하고 있으므로, 집단 내지 실체로서의 부르주아 계급을 사라지게 한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곧바로 계급투쟁의 종말을 의미할 수는 없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집단적 실체로서의 부르주아 계급이라는 것은 이러한 지식노동/육체노동 분할이 지속적으로 작동하고 있는 한은 지속적으로 다시 나타날 것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적어도 계급적대가 무엇보다도 노동과정 그 자체의 구조의 문제인 한에서 말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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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리바르는 다음과 같이 공산주의 개념을 정의한 바 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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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됐든 이런 조건들 속에서 노동자투쟁의 지평은 다음과 같은 3중의 의미에서, 곧 노동자들(또는 더 정확히 말하자면 노동자들로서 시민들)의 정치권력, 정치투쟁에 의한 노동형태의 전화, 노동력의 확장능력의 정치적 승인에 의한 ‘통치’ 형태의 전화(이와 반대로 노동력의 확장능력을 억압하는 생산력주의에 반대하여) 라는 3중의 의미에서 오직 노동의 정치로서만 정식화될 수 있다(이것이 공산주의 개념, 또는 공산주의로의 경향 개념의 가장 정확한 의미이다). (“맑스의 계급정치 사상, {역사유물론의 전화}, 240쪽)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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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노동력의 확장능력을 억압하는 생산력주의라는 것이 바로 자본주의적인 생산성 개념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보자. 반대로 노동력의 확장능력의 승인이라는 것은 지적 차이의 전진적인 극복을 통한 공산주의 사회에서의 개인성의 복원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보자. 혁명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혁명을 단순히 권력의 장악이라는 측면에서만 본다면, 공산주의는 단지 위의 정의 가운데 첫 번째 측면에서만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현존 사회주의의 역사에서 볼 수 있듯이, 두 번째와 세 번째 측면을 수행하지 못한다면 결국 혁명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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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략하게 지식노동/육체노동의 분할 문제가 마르크스주의 내에서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를 살펴보자.<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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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마르크스에서 지적 차이의 문제, 지식노동과 육체노동의 분할이라는 문제가 계급문제와 결부되어 중심적으로 제기되었던 것은 {독일 이데올로기}에서다. 육체적이며 지적인 생산성이 각각의 개인들에게서 통일되어 있는 상태로서 이는 이후에도 {자본1}에서 마르크스가 교육에 관해서 말하는 동안 “전인”내지 “총체적 인간”이라는 표현을 통해 등장하는 것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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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는 {독일 이데올로기}가 마르크스 생전에 출판된 바가 없다는 점을 잊고 있다. 과학의 직접적 생산력으로의 전화에 대해 언급하는 강요의 귀절들도 몇 가지 암시를 제외하면 마찬가지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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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의 곤란 두 가지.<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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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노동 그 자체(사회적 착취로서 뿐 아니라 자연적 제약으로서)로부터의 해방인가, 아니면 노동의 변형/전화 내지 변모인가 (고타강령비판: 노동이 인간의 제 1의 욕구가 됨). 노동계급의 노동에 대한 태도의 근원적 양면성이 있음(노동을 혐오의 대상으로 봄 vs 노동을 자신의 개인성 확인, 자아실현의 수단으로 보면서 그렇게 전화시키려고 함.).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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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노동자 운동 내부에서의 지위와 관련된 곤란. 혁명적 이론의 지성과 노동자적 실천들 간의 관계를 분석한다는 것이 곤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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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노동과 육체노동의 분할 문제는 그 중심적인 지위를 상실하고 전화되고, {자본론}에서 정확해지지만 제한된 구체적 분석들의 대상이 됨(산업노동의 사회학의 구성과 테일러주의의 비판을 예상).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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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제 2, 3 인터. 이 문제는 정치의 지반에서 불연속적으로 다시 출현. 로자에서 판네쿠크에 이르는 평의회 공산주의 등이 이 경우에 해당하고, 특히 레닌도 같은 경우에 해당함. 자생성 개념(지식인들의 자생성, 노동자들의 자생성)의 거부를 통해 그가 사고하려고 했던 것은 지적 차이의 영속화나 지적 위계의 창조가 아니라, 대중들과 지식인들의 융합의 문제설정이면서 동시에 그렇게 전화된 노동대중들에 의한 권력장악 및 권력행사가 문제다....“요리사들이 국가를 통치하게 되면” 지배를 위한 “특수한 기계”로서의 “고유한 의미에서의 국가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국가와 혁명}) 그의 반성은 국가의 관료화와 혁명당의 국가화에 대한 예방책으로서의 대중적 “문화혁명”의 강령에서 절정에 이름({좌익소아병}). 그런데 많은 실험과 토론 등은 스탈린 시대로 넘어가면서 질식되어 버렸음.<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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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오의 문화혁명: 지노/육노 분할 문제를 마르크스주의적 문제설정의 중심으로 되돌려 놓게 되는 계기--정통파를 전복시키고 그 계급 개념을 다시 가공함으로써(프롤레타리아트 부르주아 구분 자체를 생산수단 내지 사적 소유의 수단 여부로 보려는 공산당 내 실권파 관료세력들에 대해서 개인의 의식 내지 계급적 입장을 통해서 재규정하려는 방식으로 움직임--후자와 같이 사고했을 때, 과거의 피지배계급은 혁명이후 지배계급으로, 과거의 지배계급의 자녀들은 피지배계급으로 나타나게 됨....홍위병 내지 조반파 내에서 이 문제를 둘러싼 싸움들이 진행되었음). 소련의 기술자, 지식인, 간부의 자본주의적 양성방식 비판....문화혁명이 테일러주의/포드주의의 노동조직양식의 일반적 위기와 일치,.....문화대혁명의 60년대 세계적인 확산 지식인 청년대중의 이데올로기적 반역을 키워냄....실현되지는 못했지만(특히 마이스너에 따르면 베틀렘의 문화혁명에 대한 평가는 과장되어 있음), 자신의 효과로서 여러가지 공과가 있었음. 노동의 인간학, 노동과정 및 국가장치 분석에서 이론적 문제들의 출현/재정식화를 촉진했음<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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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이렇게 문화혁명을 계기로 노동분할과 계급분할 간의 최초의 관계는 다시 중심적이 되었지만, 그 관계는 변증법화되어 이 두 개념 사이의 단순한 동일성은 없고 필연적 접합만이 있게 되었다. 즉 이 두 개념은 복잡하게 접합된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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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노/육노의 경계 자체가 전위됨...어떤 노동도 순수한 육체노동과 순수한 지식노동은 없다. 육체노동과 지식노동의 분할 및 대립은 계급사회에서 일어나지만 이는 절대적일 수 없고 그 내용이 고정될 수 없다(전위된다). “인간황소” “파편화된 노동”의 인간기계(테일러) .... 지식의 기계화(컴퓨터 등의 등장)에 의해 포위되어 있음. 즉 지노/육노 경계가 소멸하지는 않지만 전위되어, “상호교환가능한 노동자들”과 “개인화/전문화된 노동자” 사이의 경계로 되는 경향이 있음.<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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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테크놀로지: 자본주의에만 고유한 것이다. 탈숙련화와 과잉숙련화(연구원 노동자)를 야기함. 상대적 잉여가치 생산. 생산력주의. 지식노동을 생산수단 자체에 편입시키는 방식을 취함. 지적 노동을 육체 노동에 대립시키고 육노를 탈가치화/통제하려고 함. .... 아까 이야기했듯이 계급분할과 지적분할이 밀접한 관련을 맺기 때문에,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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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맑스가 말하는 생산적 노동/비생산적 노동(경제학자들한테 빌려온 개념)....물질성에 대한 제한된 철학적 이해만을 가지고 있었음. 그런데 국가의 역사는 한편으로는 낡은 유기적 지식인들을 없애고 다른 한편으로 새로운 지식인들을 출현시키며, 대중의 교육양식 및 포섭 양식을 수정하려는 정치혁명들을 통한 이러한 분리/분할의 계속과 재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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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지식인의 상(지배 이데올로기 관련).<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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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의 대중적 학교교육과정: 생산의 위계들의 재생산과 정치적 능력들의 재생산을 정확하게 결합시킨다. 이런 식으로 그것은 사회적 적대와 불평등들을 일반화하는 기술적으로 형식화된 하나의 망과 동시에 통일화의 형식을 구성하는데, 자본주의 사회만큼이나 현존 사회주의 국가에서도 계급적 차이가 영속화된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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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혁명(의 효과)에 대해 우리는 양면적 자세를 갖게 된다. 하지만 동시에 이는 혁명이 목표가 아니라, 혁명속에서 어떤 목표들을 이룰 것인가, 또 혁명에는 어떤 장애들이 있는가(혁명의 유한성)를 구체적으로 사고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점을 가르쳐 준다. 마오주의자들이 “우리에겐 반역할 이유가 있다”(마오)고 썼는데, 이를 본 기앙코티는 그 밑에 이렇게 썼다. “그러나 인식하라”(스피노자).<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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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근대의 대중적 학교교육과정, 혹은 단적으로 학교라는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가 그러한 생산의 위계와 정치능력들의 위계를 재생산/변화시키는 근본적인 지점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들 내에서의 지식인들의 활동을 우리가 분석하지 않을 수 없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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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람시: 권력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기능의 결합에 의해서 작동한다. 강제와 동의, 물리적 제약과 지능, 공권력과 지식인의 장치들. 폭력과 헤게모니. 지식인은 바로 헤게모니 편에 있다고 생각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지식인들이 폭력에 가담하고 있다는 것을 은폐하는 알리바이가 될 수 있다. 반면, 알튀세르는 이것의 장치적 성격을 강조함으로써 분석을 연장했음(그람시보다 더 도구적이지만 덜 기능주의적임).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들과 억압적 국가장치가 근본적으로 완전히 분리될 수 없다는 점을 보여줬다. 이것의 가장 중요한 지점이 파스칼적 테제(무릎꿇고 기도를 해야 믿는다)를 취한다는 점인데, 이 점에 관해서 지젝은 자신의 이론적 혼란으로 인해서 알튀세를 잘못 읽고 비판함.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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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게모니 <br />
&lt;논리적 계열&gt;<br />
총체적 이데올로기(헤게모니는 무엇인가를 설명할 것). 다원주의. 견해들, 차이들의 양립가능성 및 교통가능성의 공간의 구축. 따라서 이는 전체주의가 아니다. 하지만 거기에는 전체주의로 나아갈 수 있는 가능성이 또한 각인되어 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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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법은 법이다. 신은 신이다. 권력의 동어반복적 테제. 스타니슬라스 브레통. 알튀세르(나는 나다). ----&gt; 나중에 이에 관한 대안이 무엇일 수 있는가를 이야기해보겠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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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러한 진리의 이러한 동어반복적인 성격은 동시에 반대방향으로 읽는 것도 가능하다. 예컨대 신(초월적, 초역사적, 추상적)으로부터 왕(역사적 권위, 구체적 인격)이 권력을 부여받았다고 말했을 때, 또 다른 개인 또 다른 세력이 그러한 신으로부터이 권력을 자신이 받았다고 말함으로써 기존의 왕(권위)에 도전할 수 있게 된다는 점. 또 다른 원칙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동일한 원칙에 호소함으로써, 동일한 원칙을 원용함으로써 역사적 권위와 구체적 인격들에게 도전할 수 있다는 것.<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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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인간학적 계열&gt;<br />
지배 이데올로기 내지 헤게모니라는 것은 일종의 허구인데, 실제적인 허구이며, 위로부터의 가치의 강제가 아니라 아래로부터의 가치들(평민들과 대중들의 것인)의 반송이다. 지배 이데올로기는 피지배자들의 상상의 특수한 보편화. 일차적 소속으로부터 개인의 해방과 이차적 소속의 구성. 지식인들의 출현, 전문화된 지적 기능의 발생을 요구하는 것이 바로 이러한 거리화인데, 이것은 시민들의 지성이라는 공통지성을 구성하기 위해 그 기능을 제도화할 뿐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이는 영속적으로 폭력의 경계에 위치한다는 점, 또는 개인적 해방 또는 보편적인 것에 대한 개인의 교육에 대한 상관물로서 그것이 내포하는 규준화적 제약이 얼마간의 폭력, 의무교육의 역사에서 보는 바와 같은 육체, 언어, 정신의 훈육을 함의한다는 점에도 주목하자. ..... (정상성의 공간을 만들어 내기...그것으로의 통합)<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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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해서 읽어볼만한 발리바르의 글의 일부("폭력: 이상성과 잔혹" 중 학교교육관련에 관한 논의)<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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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어떤 글에서 피에르 부르디외(Pierre Bourdieu)는 토마스 베른하르트(Thomas Bernhard)의 소설 『옛 거장들(Maîtres anciens)』로부터 어떤 구절을 인용하는데, 거기에서 국가교육과 국가폭력은 그렇게 동일한 것으로 나타난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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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는 국가의 학교이고, 그곳에서 젊은이들은 국가의 피조물, 즉 국가의 앞잡이에 불과한 자로 만들어진다. 내가 학교에 들어갔을 때, 나는 국가에 들어갔던 것이며, 국가가 사람들을 파괴하므로, 나는 사람들을 파괴하는 권력조직(établissement)에 들어갔던 것이다. (…) 국가는 그 밖의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나를 강제로 자기 안으로 들여보냈으며, 나를 자기(즉 국가)에게 순종하게 만들었고,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나를 국가화된 인간, 규율화되고 등록되어 있으며, 훈련되어 학위를 받은, 타락하고 사기 저하된 사람으로 만들었다. 사람들을 볼 때, 우리는 그들에게서 국가화된 사람들, 국가의 노예들만을 볼뿐이다. 일생동안, 국가에 봉사하고, 그러므로 일생동안, 반-자연(contre-nature)에 봉사하는 사람들을 말이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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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기초적인 교육의 과정이란 모두 내가 도입부에서 언급했던 “헤게모니”의 구조 내로 개인들을 통합(intégrer)하는 방식이다. 그것은 단지 주체들을 정상화(normalisation)하는 일 뿐 아니라, 사회의 가치들과 이상들을 전파함으로써 주체들의 개인성을 조작(fabrication)해내는 일로 이루어져 있다. 지적인 수단들에 의해 작동할지라도, 이는 고전적인 경험주의와 자유주의의 살가운 상상처럼, 순수한 견습(apprentissage)과정, “백지상태(table rase)”에 쓰여지는 역량, 지식, 관념 따위의 습득이 전혀 아니다. 그것은 정반대로, 존재하는 개인성의 해체(déconstruction)이며, 새로운 개인성의 구축임에 틀림없다. <br />
감히 다음과 같은 표현을 시도해보자. 이는 정신의 재통합(remembrement)이나 재주조가 일어날 수 있도록 만드는 분해(démembrement, 사지(四肢)의 절단)임에 틀림없다(정신이 또한 하나의 “육체”처럼 존재할 수 있는 것은 정확히 그것이 분해되고 재통합되는 한에서인 것이다). <br />
이를 종교적인 언어로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모든 교육은 “개종(conversion)”이다. 이는 우리로 하여금, “사람들을 강제로 들어오게 하라”(compelle eos intrare)는 성 누가(Luc)와 성 어거스틴(Augustin,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말(이 말은 군사적으로 응용되어 왔지만, 우리는 그것이 본질적으로 정신적인 의미를 갖는다는 것을 안다)로부터 근대의 의무교육 및 그것의 위기(그것이 “권위주의적”인 형태이든 아니면 “자유주의적”인 형태이든 간에)에 이르기까지 긴 역사를 참조하게끔 한다. 게다가 “자유주의적”인 형태들이 현실적으로는 가장 폭력적인 경우도 있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어린아이 자신이 스스로의 외과의사, 수리자(mécanicien), 형(刑)집행자가 될 것을 요구하면서 분해와 재통합의 짐을 어린아이 자신에게 떠넘기기 때문이다. 다시 여기서 우리는, 폭력과 이상성으로 이루어진 Gewalt의 변증법 내에, 인지되건 인지되지 않건, 항상 잔혹의 심연 위에 유예된 채로 남아 있다가 잔혹 쪽으로 돌아설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질문을 제기해야 한다. 그리고 앞서 부르디외를 인용한 바 있으므로, 다음과 같이 제안하기로 하자. 즉, 교육적 성공이라는 측면에서 봤을 때 가장 “유리(avantageuse)”하다고 그가 묘사했던 상황, 즉 학교가 요구하는 “사전-지식”을 가족이 암묵적으로 [입학 전에 아이들에게] 갖추어 주는 부르주아 “상속자들”의 상황마저도 전적으로 가장 모호한 것일 수 있다고 말이다. 이러한 상황은 아마도 사회적으로 유리한 상황일 테지만, 초자아(surmoi)의 잔인함(férocité)과 각자 자신이 [내적으로 혼자] 행하는 협상들에 있어서까지 그러한 상황이 역시 잘 “보호(protégée)”되는지는 확실치 않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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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발리바르에 따르면, 논리적 계열에서건 인간학적 계열에서건 항상적으로 지식이 권력과 맺는 관계가 항상 이중적이라는 점을 볼 수 있다. 즉 정상화에 기여하는 힘이 동일하게 정상성을 공격하고 해체하는 데 기여한다. .... 이는 권력의 신성화와 권력의 비판이라는 전통적인 지식인들의 두 가지 역할을 설명해주기도 하지만 동시에 이것이 동일한 과정의 갈라짐(혹은 다시 만남)이라는 문제라는 점에서(권력/폭력...게발트) 그 두 가지가 궁극적으로 분리될 수 있는 것인지를 의문시 해야한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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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 그람시. 모든 인간은 철학자다.<br />
전문화된 지식인의 기능을 대중의 지성과 재결합시키는 교육의 벡터를 역전시킬 필요가 있다. 대중들의 지식의 의지(이는 매우 양가적이다: 인종주의의 문제)에 입각하여 인민을 교육시킨다는 민주주의 사회의 역설이 재발견되며, 이러한 역설은 또 다시 민주사회의 현실적/관념적 봉기적 기초의 지울수 없는 흔적 때문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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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언권의 문제. 저항에서 봉기로 나아가는 변증법. 말할 수 없는 폭력에 대해 말하기. 침묵의 덮개를 파괴하는 발언행위. 안티고네의 봉기 행위. 근대에는 노동자들, 식민지/탈식민지 인민들, 여성들이 그렇게 했음. 말할 수 없는 폭력에 대해 말하기, 볼수 없고, 말할 수 없는 폭력에 이름을 붙이고 그렇게 함으로써 보이게 만든다(‘구경거리’로 만드는 것이 아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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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기본적으로 하이데거적인 의미에서의 포이에시스의 문제인데, 랑시에르는 정치를 이러한 미학적인 과정이라고 사고한다. 랑시에르 자신은 부인할 수 있지만, 여기서 지식인들의 역할이 매우 중요할 수 있다. 스피박과의 쟁점에 대해서--스피박은 표상이나 재현보다는 정치적 대표라는 문제를 제기하고 대표로서의 지식인들이 타자의 침묵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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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겔이 여기서 다시 도움이 되는데, 발언권을 가지고 있지 않은 자들의 말이 집약적으로 보편주의적인 것은 바로 그것이 부정의 부정을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보편성은 주어진 규준이 아니라 쟁취된, 강제된 규준이다. 아리스토텔레스, 칸트, 하버마스는 이점에서 잘못되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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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원주의 문제. ---&gt; 투쟁의 다원주의. 지식, 예술, 경제활동 등에 있어서 다양한 이해관계들의 조직화. .... 동일성으로 환원되지 않는.... 동일성을 긍정하는 것이라기 보다는 보편주의를 실현하는 것으로 사고해야 함.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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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동시에, 대중들의 사고할 수 있는 능력 그 자체를 고양시키는 것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지 이미 만들어진 지식들의 일종의 햄버거 버전을 대중들에게 공급하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이는 기본적으로 과거의 학술운동 등의 폐해를 반복해선 안되며, 다양한 사상적 입장들, 맑스를 넘어서, 심지어 알튀세르와 발리바르의 논의도 넘어서, 다른 사상가들의 것으로 나아가야 한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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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가지...지적 재산권 관련해서 예전에 이야기한 것이 있었는데, 도서관 운동. 출판 운동. 지식인들의 지적 작업들, 교육과정 자체에 개입하려는 움직임 등이 동시적으로 서로를 고양시켜 나가지 않는다면 힘들 것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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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공부를 하려고 하는 분들께. 어떻게 공부할 것인가? 발리바르의 글을 읽으면서, 또 알튀세르의 글을 읽으면서 주요한 참조문헌들, 특히 원전들을 읽어보고 발리바르가 말하는 것이 거기 정말 나와있나 확인해 보고 그러는 것이 공부법. 이를 위해선 외국어 공부할 필요가 있음. 적어도 영어공부를 해야 함....<br />]]></description></item></channel></rs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