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xml-stylesheet href="http://blog.aladin.co.kr/blog/rss/rssUserXSL.aspx" type="text/xsl" media="screen"?><rss version="2.0"><channel><title>불타는 골방 (바라 서재) &gt; 대장정</title><link>http://blog.aladin.co.kr/vara/category/2195945</link><language>ko-kr</language><description>vitam impendere vero</description><copyright /><generator>Aladdin RSS(Alss) v0.9</generator><lastBuildDate>Sat, 26 May 2012 09:20:51 +0900</lastBuildDate><image><title>바라</title><url>http://image.aladdin.co.kr/Community/myface/pt_725516154514779.jpg</url><link>http://blog.aladin.co.kr/vara/category/2195945</link><width>100</width><height>100</height><description>바라</description></image><item><author>바라</author><category>대장정</category><title>고공농성 200일째</title><link>http://blog.aladin.co.kr/vara/4949528</link><pubDate>Mon, 25 Jul 2011 00:3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vara/4949528</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0106389&TPaperId=4949528"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91/38/coveroff/8990106389_2.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64371402&TPaperId=4949528"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1247/99/coveroff/8964371402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김진숙 지도위원은 &lt;소금꽃나무&gt;의 저자의 말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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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아직도 세상을 바꾸고 싶다. <br />
인간이 돈에 왕따당하는 이 지리멸렬의 세상은 바뀌어야 한다. 이 땅 이 강산 공장마다, 사무실마다 울울창창 흐드러지게 소금꽃을 피우며 서 있는 나무들. 그 나무들이 500년 전 남해 바다를 주름잡던 거북선을 만들었다. 배를 만들고, 차를 만들고, 길을 만들고, 집을 만들고, 기름을 만들고 ... 그야말로 세상을 만들어 온 것도 그들이고, 청소를 하고 쓰레기를 치우는 것도 그들이고, 온갖 재화를 생산하는 것도 그들이고, 그 재화를 지켜주는 것 또한 그들이다. 바다 위를 달리고, 길 위를 달리고, 하늘을 가르는 것도 그들이다. 아픈 이들에게 희망을 주는 것도 그들이고, 아이들에게 꿈을 심어 주는 것도 그들이다."&#160;&#160;
김진숙 위원을 생각하면 참 속이 끓는다. 조남호나 경찰들을 보며 분노를 느끼다가도, 또 슬픔과 부끄러움 때문에 스스로가 밥버러지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김진숙 위원의 저 강인한 모습을 보면서는 얼마나 인간의 영혼이 크고 숭고해질 수 있는가를 생각하기도 한다. 김진숙 지도위원이야말로 우리 시대의 안티고네,&#160;비극적 영웅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숭고나 영웅이라는 말로 나 스스로는 저 싸움을 그저 사물화시키고 마는 것은 아닌가. 그녀는&#160;영웅이 싫다고, 가장 경계하는 것이 영웅 놀이라고, 오직 대중과 역사만을 믿는다고 말한다. 또 한번 부끄러울 따름이다.&#160;또 희망버스라는 기획은 또 얼마나 새로운, 엄청난 기획인지. 여태 희망버스도 타지 못했고,&#160;두렵고 소심한 마음에 키보드나 두드리고 있지만&#160;부디 건강하시고 크레인에서&#160;몸소 내려오실&#160;날이 왔으면 좋겠다. 어제로서 고공농성 200일 째라고 한다....&#160;&#160;&#160;
한진중공업 파업 아카이브에 가면 관련된 여러 글들을 볼 수 있다.&#160;
http://www.jinsuk85.org/&#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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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1247/99/cover150/8964371402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64371402</link></image></item><item><author>바라</author><category>대장정</category><title>소금꽃 김진숙과 85호 트레인</title><link>http://blog.aladin.co.kr/vara/4689009</link><pubDate>Sun, 03 Apr 2011 02:2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vara/4689009</guid><description><![CDATA[김진숙, 박창수, 김주익, 곽재규, 노무현&#160;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30110330104351&amp;section=02]]></description></item><item><author>바라</author><category>대장정</category><title>삼성과 싸우지 않는 생활진보?…가짜다</title><link>http://blog.aladin.co.kr/vara/3801503</link><pubDate>Tue, 08 Jun 2010 02:4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vara/3801503</guid><description><![CDATA[<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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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지난 3월 &lt;프레시안&gt;에 "지금 당장 '삼성 불매 운동'을 제안합니다!"라는 글을 기고한 김상봉 전남대 철학과 교수다. 김 교수가 주변 지식인과 활동가, 정치인들을 상대로 삼성과의 싸움에 나서도록 호소했을 때, 그를 아끼는 독자들이 맹렬한 호기심을 느꼈던 것은 그래서였다. '삼성 불매 운동이 어떤 철학적 배경에서 나온 걸까', '철학자가 이해한 삼성 문제란 어떤 것일까' 등의 의문이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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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김 교수를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지난 19일 오후 서울시 중구 태평로 한국언론회관(프레스센터) 근처에 있는 한 찻집에서 만난 김 교수는 예상대로였다. 그가 쏟아낸 말은, 미리 외워둔 수학 공식에 대입해서 얻은 결과물 같은 상투적인 논평과 달랐다. 말에 담긴 개념은 푹 익어있었고, 맥락에서 동떨어진 낱말은 찾기 힘들었다. 그가 제안한 삼성불매운동이 그저 즉흥적인 발상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준 대화였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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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이야기를 마친 뒤, 그는 프레스센터 18층 서울외신기자클럽에서 김용철 변호사와 함께 기자회견을 열었다. 외신기자들 앞에서 그는 삼성을 비판하는 칼럼이 &lt;경향신문&gt;에조차 실리지 못했던 일화를 소개했다. 대기업에 짓눌린 한국의 민주주의를 잘 보여준 사건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이어 그는 외신 기자들 앞에서 "삼성 제품을 쓰지 않는 일, 삼성 주식에 투자 하지 않는 일에 전 세계 소비자·투자자가 동참해 달라"고 호소했다. 이날 호소에 앞서 김 교수와 나눈 이야기를 정리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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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벌과 재벌, '차별과 불평등'의 다른 표현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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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시안 : '학벌 없는 사회' 활동을 오래 했다. 이른바 'SKY' 대학(서울대·연세대·고려대)이 배타적인 기득권을 누리는 학벌 구조를 깨는 일을 해 왔던 철학자가 갑자기 삼성 문제에 뛰어든 이유에 대해 궁금해 하는 이들이 많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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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봉 : 그동안 해 왔던 '학벌 없는 사회' 활동이 일정한 성과를 거뒀다고 본다. 과거에는 학벌 문제가 교육 내부의 문제로만 여겨졌다. 일종의 문화 현상으로 봤던 게다. 그러나 지금은, 많은 이들이 사회의 권력 구조와 학벌이 긴밀히 연결돼 있다는 점을 안다. 또 스스로 학벌 권력을 포기하는 이들도 나오고 있다. 'SKY' 대학 진학을 거부하는 이들이다. '자발적 낙오자 되기', '내부로부터의 망명'을 감행한 경우인데, 이런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아직 갈 길이 멀지만, '학벌 없는 사회' 활동이 성과가 있었다고 보는 이유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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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학벌 없는 사회' 활동을 하면서 가끔 답답할 때가 있었다. 학벌 권력은 일종의 '기생권력'이다. 미국, 군부, 재벌 등 주류 권력에 기생(寄生)하는 권력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학벌 권력을 해체하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학벌 기득권층이 기생하는 숙주에 다가가야 한다. 그렇다면, 교육에 뿌리를 둔 학벌 문제와 사회의 근본적인 모순에 바탕을 둔 주류 권력의 문제를 어떻게 연결 지어야 할까. 이게 학벌 폐지 운동을 하는 이들의 오랜 고민거리였다. 학벌 폐지 운동이 결국 근본적인 사회 변화로 이어지려면, 이런 고민을 푸는 게 필수적이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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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문제에 뛰어든 것은 이런 고민의 결과였다. 학벌 문제의 근본에 도사리고 있는 게 '차별과 불평등'인데, 이것을 재생산하는 구조가 지금의 신자유주의적 사회경제체제다. 그리고 이런 구조의 정점에 있는 게 삼성 재벌과 이건희 회장 일가다. 이들이 누리는 특권은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차별과 불평등'의 다른 표현에 불과하다. 학벌에 따른 '차별과 불평등'에 분노했던 이라면, 삼성 문제를 외면할 수 없다고 본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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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벌 구조 정점에 선 서울대, 재벌 체제 정점에 선 삼성"<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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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시안 : 삼성불매운동을 &lt;프레시안&gt;을 통해 호소한 지 두 달이 넘었다. 많은 이들이 호응했지만, 한편에서는 한계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어떤 이들은 다른 재벌도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는데, 왜 굳이 삼성만 문제 삼느냐고 한다. 또 다른 이들은 삼성이라는 기업과 이건희 일가는 분리해야 하지 않느냐고 한다. 이건희 일가의 비리 때문에 삼성 직원들까지 모욕당할 이유는 없다는 게다. 불매운동의 실효성을 의심하는 목소리도 있다. 삼성 그룹 매출의 대부분이 해외에서 발생한다는 점, 대표적인 상품이 반도체라는 점 때문이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삼성 반도체가 어디에 쓰이는지를 일일이 확인하기 어렵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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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상봉 전남대 철학과 교수. ⓒ프레시안
        
    

김상봉 : 불매운동에 회의적인 이들에게 이렇게 되묻고 싶다. '그렇다면, 다른 대안이 있느냐'라고 말이다. 삼성 비리에 대해서는 사법부도, 언론도 제 구실을 못하고 있다. 이 경우, 두 가지 방식이 있는데, 하나는 노동조합이 나서서 회사의 비리를 공개하고 싸워나가는 것이다. 그러나 삼성에는 노조가 없다. 결국 나머지 하나인 소비자가 나서는 길 외에는 대안이 없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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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삼성만 문제 삼느냐는 지적은 황당하다. 학벌 체제를 무너뜨리려면, 결국 서울대를 겨냥해야 한다. 서울대가 가장 나쁘기 때문이 아니라 서울대가 기득권의 정점에 있기 때문이다. 서울대, 혹은 SKY대학을 비켜가면서 학벌 체제를 무너뜨릴 방법은 없다. 재벌 체제, 기업독재 체제 역시 마찬가지다. 이런 구조를 바꿔내려면, 정점에 있는 삼성을 먼저 겨냥할 수밖에 없다. 이런 입장을 마치 다른 기업에 면죄부를 주는 논리로 왜곡한다면, 잘못이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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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과 이건희를 분리하자는 말도 있는데, 그게 현실적으로 가능한지 모르겠다. 삼성 노동자들이 이건희의 비리에 맞서 싸울 때만 가능한 논리라고 본다. 그런데 현실은 다르지 않는가.<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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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안의 이건희' 지우지 않으면, 삼성 불매도 소용없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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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그룹 매출의 대부분이 해외에서 발생한다는 지적은 타당하다. 그러나 이런 사실이 삼성 불매운동을 부정할 근거가 될 수는 없다. 오히려 해외에서도 삼성 불매운동이 벌어져야 할 필요성을 보여주는 근거라고 보는 게 옳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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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선진국이라 불리는 나라에서라면, 노동조합을 금지하고 분식회계를 저지르는 기업에 대해 불매운동을 하는 게 당연한 일로 여겨진다. 개발도상국이라 불리는 나라 역시 불매운동이 필요하다. 삼성은 이런 나라에 공장을 둔 경우가 많은데, 대부분 노동인권 측면에서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현지 주민들이 계속 피해를 입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불매운동은 필수적이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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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그룹의 가장 큰 수입원이 반도체 판매인데, 이런 부품까지 불매운동을 해야 하느냐라고 한다면, '근본주의적 입장에 설 필요는 없다'는 대답을 들려주고 싶다. 삼성이 생산한 부품까지 쓰지 않으며 생활하기란 쉽지 않다. 불매운동의 초점은 삼성 브랜드가 찍힌 완제품 및 서비스 상품에 맞추는 게 현실적이라고 본다. 불매운동의 목적이 불매 행위 그 자체에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불매운동은 삼성 문제 해결을 위해 시민이 집단적으로 벌이는 실천이며, 동시에 우리 내면의 욕망을 성찰하는 작업이다. 삼성을 비난하는 많은 이들 역시 마음 한 구석에서는 이건희 회장을 닮고 싶어 한다. '우리 안의 이건희'를 지우지 못한다면, 제2, 제3의 이건희가 나오는 것은 필연이다. 그렇다면, 설령 삼성과 이건희가 사라진다고 한들 아무런 소용이 없다. '우리 안의 이건희'를 정직하게 들여다 보는 작업이 바로 삼성 불매운동이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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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은 현대인의 폴리스…기업 민주화 없이 주체적 삶 불가능"<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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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시안 : 소비자가 삼성 불매운동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는 정치권력, 사법부, 언론 등 공적 영역이 삼성 비리 앞에서 작동을 멈춰버렸기 때문이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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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런 현상이 지속되면, 민주주의의 가능성에 대해서도 의문을 품게 된다. 민주주의는 1인 1표의 원리를 따른다. 초등학교도 못 나온 사람이나 박사 학위 소지자나 똑같은 자격으로 공동체의 문제에 참여한다. 반면, 자본주의는 1주 1표다. 지분을 많이 가진 한 명이 적게 가진 다수를 지배할 수 있는 구조다. 작동 원리가 전혀 다른 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공존하려면, 법과 제도의 역할이 필수적이다. 소수에게 권력이 쏠리게끔 돼 있는 자본주의 원리가 민주주의의 기초까지 흔드는 일을 막으려면 적절한 규제가 이뤄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삼성 비리에 대한 정부와 법원의 태도를 보면, 자본주의와 공존하는 민주주의를 기대하기 어려워 보인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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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정부와 법원이 자본주의 원리에라도 충실한가. 역시 아니다. '1주 1표' 원리대로라면, 이건희 회장은 삼성 그룹을 지금처럼 지배할 수 없다. 가진 지분이 워낙 적기 때문이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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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이런 모호한 상황은 삼성 문제에 대해 발언하는 학자,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엿보인다. 똑같이 삼성에 대해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서 있는 이념적 기반은 다르다는 이야기다. 어떤 경우는 자본주의 자체에 부정적인 입장에서 삼성을 비판한다. 다른 어떤 경우는 자본주의 시장경제 원리에 충실하다보니 삼성에 비판적인 입장이 됐다. 삼성 불매운동을 주장하는 김 교수가 서 있는 입장이 궁금하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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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봉 : 내가 삼성 불매운동을 제안한 것은 자본주의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에 대한 생각과 맞닿아 있다. 기업의 작동원리가 민주주의와 양립하기 힘든 것은 사실이다. 진보 진영에서 오랫동안 통했던 해법은, 국가가 기업을 소유하거나 견제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런 해법은 이제 효용을 잃어가고 있다. 기업은 국가 속에서 잉태되었지만, 지금은 국가를 넘어선 존재가 됐다. '세계화' 때문이다. 기업은 인건비와 세금이 싼 나라로 공장을 옮겨 다니며 몸집을 키운다. 국가는 오히려 기업의 눈치를 본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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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해법은 기업 자체를 민주화하는 것이다. 현대의 기업은, 개인에게 있어서 고대 그리스의 폴리스(Polis)와 다름없다. 사회적 삶이 일어나는 지평이 기업이다. 따라서 기업을 민주화하지 않고서는 인간이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게 불가능하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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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을 민주적으로 운영하는 게 가능하겠느냐는 질문을 가끔 받는다. 소유권의 개념을 제대로 설정하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경영권과 소유권을 분리하는 게 핵심이다. 주식을 가진 사람이 왜 노동자를 지배할 권리까지 가져야 하는가. 이런 질문이 출발점이다. 국가의 주권이 국민에게서 나오듯, 기업의 경영권은 노동자에게서 나오는 게 맞다. 그렇다면 누가 주식에 투자하느냐고? 그래도 투자를 할 이유는 충분하다. 배당금을 받을 수 있지 않는가. 기업이 낸 이익 가운데서 어느 정도를 주주에게 배당할 것인지는 민주적 절차에 따라 정하면 된다. 배당을 너무 적게 하면, 자본 투자가 줄어들 테고 너무 많이 하면 기업에 재투자할 몫이 줄어든다. 기업 구성원이 머리를 맞대고 합리적인 균형점을 찾으면 된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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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구조가 만들어지면, 이건희 회장이 1퍼센트 수준의 지분만 갖고 삼성 그룹 안에서 황제처럼 지배하는 일은 생길 수 없다. 회사 돈을 비자금으로 빼돌리고, 자신의 잘못된 판단으로 인한 손해를 회사에 뒤집어씌운 그에게 지분에 걸맞은 배당금을 주고 내쫓으면 그만이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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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30주년, 이제 삼성독재와 싸울 때"<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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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시안 : 기업 지배 구조를 민주화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행정부, 사법부가 기업의 눈치를 보는 상황이 바뀌려면 그것으로는 부족해 보인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기업의 운영방식을 닮는 게 선진화'라는 생각이 깊이 뿌리내렸다. 공무원들을 기업에서 연수받도록 한다거나, 정치인들이 'CEO'를 자처하는 것 등이 그 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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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봉 : 한국에서 신자유주의가 득세한 뒤, 국가 위에 기업이 있는 구조가 짜여졌다. 옛 사회주의 체제에서는 국가 위에 당이 있었는데, 그보다 더 답답한 구조다. 당은 그나마 통제 가능성이 있지만, 기업을 기업 바깥에서 통제하기란 불가능하다. 기업 내부는 일종의 독재 체제로 운영된다. 그런데 이런 방식이 선진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민주주의의 퇴행에 다름 아니다. 지금의 한국 사회는 한마디로 '기업 독재' 체제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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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런 현상은 다른 나라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나 중요한 차이가 있다. '공화국' 전통의 유무가 낳은 차이다. 이런 전통이 살아 있는 나라에서는 공동체를 중시하는 '공화국' 전통과 기업 독재 흐름이 서로 맞부딪히면서 균형을 이룬다. 반면 '공화국' 전통이 없는, 국가기구가 한 번도 온전히 공공적 기관이었던 적이 없으며, 국가기구가 소수의 권력집단이 사사로운 이익을 도모하기 위해 사적으로 점유한 수탈과 억압의 도구로만 쓰였던 한국에서는 기업 독재 흐름을 견제할 힘이 없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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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시안 : 공화국 전통이 없다는 지적을 하는 지식인이 많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절망하게 된다. 민주주의를 외부로부터 이식당한 한국 사회에서 강자의 탐욕을 민주적으로 통제하는 공동체를 만드는 게 과연 가능할까라는 절망감이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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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봉 : 꼭 그렇게 절망할 필요는 없다. 우리에게는 다른 전통이 있다. 저항 공동체의 전통이다. 30년 전, 광주 시민들이 보여준 모습이 좋은 예다. 지난 18일, 진보신당 광주시당은 '삼성독재 해체 투쟁'을 선언했다. 1980년 5월 신군부에 온몸으로 맞섰던 바로 그 자리에서 나온 이런 선언은 의미가 깊다. 나는 지금 이 선언이 신자유주의 기업독재에 시달리는 세계인들에게 자유와 인권, 해방을 향한 메시지로 받아들여지기를 바란다. 그리고 이런 메시지를 외신 기자들에게도 전달할 것이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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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탄이 쏟아지는 1980년 5월 광주 금남로 거리에서 1987년 6월을 상상한 이가 있었겠는가. 아마 없었을 게다. 마찬가지다. 어떤 이들에게는 지금 광주에서 나온 선언이 뜬구름 잡는 이야기처럼 들리겠지만, 역사는 늘 꿈을 현실로 만들어 왔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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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0년은 '부정과 문학의 시대'…앞으로 30년은 '형성과 철학의 시대'<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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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시안 : 기업 독재를 막자는 목소리는 진보 진영 안에서도 미미한 편이다. 삼성 불매운동에 몸을 던지는 진보 정치인, 활동가가 많지 않다는 점에서도 드러나는 사실이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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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봉 : 나는 올해가 광주항쟁 30주년이라는 점에 주목한다. 지난 30년을 뒤로 하고, 새로운 흐름을 만드는 출발점에 서 있다고 보는 것이다. 지난 30년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부정의 시대'였다. 이런 시대에는 '멀쩡해 보이는 현실 뒤에 있는 거짓'을 드러내는 게 중요했다. 광주에서 수많은 시민을 학살했던 장본인들이 고개 들고 다니는 현실, 이런 거대한 아이러니를 폭로하는 게 지식인의 역할이었다. 그래서 나는 지난 30년은 '문학의 시대'였다고 본다. '부정의 정신', 그리고 새로운 시대를 그려내는 이미지와 환상이야말로 문학의 바탕이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나는 백낙청, 김지하, 황석영 등이 지난 30년을 대표하는 지식인으로 꼽히는 게 당연하다고 본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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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기업독재의 시대는 새로운 정신을 요구한다. 바로 '형성의 정신'이다. 신자유주의 기업독재는 인간의 삶을 총체적으로 옥죈다. 그래서 여기에 맞서는 대안 역시 총체성에 바탕을 둬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정확한 개념이 필요하다. 나는 그 작업이 철학자의 몫이라고 본다. '형성의 시대'가 될 앞으로 30년은 '철학의 시대'가 되리라고, 나는 감히 말한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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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문제 외면하는 사회과학은 '불임의 학문'"<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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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시안 : '철학자가 왜 삼성 문제에 나서느냐'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들린다. 상당수 사회과학자들이 삼성 문제에 침묵하는 것과 대조적이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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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봉 : 단언하건데, 삼성 문제에 침묵하는 사회과학은 '불임의 학문'이다. 사회과학자들은 왜 침묵하는가. 어떤 이들은 용기가 없어서이지만, 다른 어떤 이들은 제대로 해석할 능력이 없어서 침묵한다. 삼성 문제라는 구체적 현상을 총체성 속에서 보지 못하는 게다. 대신, 그들은 삼성이 저지른 일부 불법, 탈법 행위에만 주목한다. 교과서를 들이밀며, 거기서 벗어난 행위를 찾는데 그치는 게다. 그런데 나는 묻고 싶다. '그게 학문인가'라고?<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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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구체적 현상을 구체성으로만 이해하는 것은 학문이 아니다. 학문은 개념을 다루는 것인데, 진짜 개념은 총체성 속에서만 나올 수 있다. 그리고 스피노자에 따르면, 진짜 개념은 '형성'하는 것이다. 예컨대 집 짓는 설계도 역할을 못하는 것은 설계도가 아니듯, 현실을 형성하지 못하는 개념은 가짜 개념이다. 삼성 문제라는 구체적 현실에 관한 진짜 개념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사회과학을 '불임의 학문'이라고 규정한 이유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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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과학이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나는 철학에 책임이 있다고 본다. 철학이야말로 총체성을 다루는 학문이다. 그런데 철학이 그 역할을 하지 못했다. '부정의 시대'가 저물어 갈 때, 철학자들은 무엇을 했는가. 그때야말로, 이 땅의 구체적 현실을 총체적으로 인식하는 작업이 절실한 때였다. 그러나 그 귀한 시간을 철학자들은 총체성에 대한 냉소로 메워버렸다. 거듭 말하지만, 철학은 구체적 현실을 총체성 속에서 주체적으로 해석하는 일이다. 그런데 이 땅의 철학자들은 이런 작업을 포기하고, 대신 남의 개념을 수입해 폭력적으로 적용하는 일에만 골몰했다. 그건 철학이 아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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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문제에 철학자가 나선 것은 필연이라고 본다. 기업 독재의 구체적 발현태인 삼성과 싸우는 과정에서 새로운 시대를 총체적으로 인식하는 개념이 만들어질 게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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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과 싸우지 않는 진보, 결국 보수에 전용된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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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시안 : '총체성'을 강조하는 게 인상적이다. 현실 사회주의가 몰락한 뒤, 많은 지식인들이 작고 구체적인 문제에 매달렸다. 그 사이 삼성을 포함한 재벌은 통제받지 않는 권력을 갖게 됐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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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봉 : 많은 이들이 '생활 진보'를 강조한다. 좋은 말이지만, 이런 주장이 '총체성을 포기한 구체성'이라면 나는 동의할 수 없다. 현실 속의 구체적인 악(惡)과 맞설 수 없는 논리이기 때문이다. 악은 구체적으로 발현되지만, 뿌리는 총체적이다. 따라서 총체성을 포기해서는 이런 악과 맞설 수 없다. 그리고 악과 싸우지 않는 진보는 결국 보수에게 전용되기 마련이다. 물론, 총체성에 대한 집착이 구체적 현실을 외면하는 핑계가 돼서도 곤란하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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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이야기를 한마디로 정리하면, 이렇다. "지금 이곳에서, 삼성과 싸우지 않는 생활 진보는 가짜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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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현석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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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d : #newsBODY--><!--end : #fade_ad_postion-->]]></description><image><url>http://image.pressian.com/images/2010/05/25/60100525161713(0).JPG</url><link>http://blog.aladin.co.kr/vara/3801503</link></image></item><item><author>바라</author><category>대장정</category><title>어뢰 부는 사나이</title><link>http://blog.aladin.co.kr/vara/3775425</link><pubDate>Sun, 30 May 2010 17:0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vara/3775425</guid><description><![CDATA[&#160;


    
        
            전쟁반대 평화실현 10만 네티즌 시국선언을 제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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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쟁이라는 단어가 매일같이 신문에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합조단 스스로도 밝혔고 국회진상조사특위에서도 확인되었듯 5.20발표는 정밀조사와 시뮬레이션을 완료하지 못한 중간결과에 불과합니다. 그런데도 이명박 정부는 선거운동개시일에 맞춰 서둘러 ‘북의 소행’이라 발표했습니다. <br />
            <br />
            <br />
            이어지는 대통령 담화를 통해 ‘북의 군사도발’에 맞선 ‘자위권 발동’을 언급함으로써 남북관계는 일촉즉발의 전쟁국면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br />
            <br />
            <br />
            북한은 주적으로 규정되고 한미연합 대잠수함 훈련이 시작된다고 합니다. 남북교역은 전면 중단돼 남북교류협력법이 제정된 1989년 이전으로 회귀했습니다.<br />
            <br />
            <br />
            주식시장, 외환시장은 이미 살얼음판입니다. 나흘만에 달러가 100원이나 올랐습니다. 기업하는 분들은 말한 것도 없고 유학준비하고 여행 준비했던 분들은 마른하늘에 날벼락입니다. <br />
            <br />
            <br />
            여기에 더해 한반도 전쟁리스크를 이용해 한 몫 챙기려는 투기꾼들까지 가세해 우리나라 경제는 한치앞도 내다보지 못할 상황입니다. <br />
            <br />
            <br />
            우리가 왜 이런 두려움위에서 살아야하는지요. <br />
            한나라당 조해진 대변인은 필요한 비용을 치를 각오가 돼있다고 말했는데 도대체 그 비용은 무엇이고 누가 감당하라는 말입니까?<br />
            <br />
            <br />
            유시민 후보께서 그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6월 2일 받아든 투표용지는 종이로 된 총알 이라고, 우리에게 남은 권리 투표용지 한 장과 붓뚜껑 뿐 이지만 그것으로라도 전쟁을 막아야 합니다. <br />
            <br />
            <br />
            군대간 우리 친구들, 우리 동생들, 자식들을 위해 행동할 때입니다. 안보에서 실패했고 경제에서 또 실패하고 있고, 그것으로도 모자라서 이땅에 전쟁의 미친바람을 끌어오려는 전쟁불사 정권에게 분명히 말해 줍시다. 절대 전쟁은 안된다고. 전쟁을 하려면 당신들이나 하라고 말입니다. <br />
            <br />
            <br />
            제 홈페이지에 간단한 서명 양식을 만들어 두었습니다. 5월29일 3시까지 딱 10만명만 모여 봅시다. <br />
            <br />
            <br />
            5월29일은 야5당을 포함하여 평화를 염원하는 각계각층 대표자들이 함께 준비한 광화문 촛불대회가 있는 날입니다. 하나가 열을, 열이 또 백을 만들어내면 10만인 선언 금방 이루어낼 수 있습니다. 그 10만명이 한 몸 한 뜻이 되면 100만의 감동을 만들어낼 수 있고 기적을 낳을 수 있습니다. <br />
            <br />
            <br />
            2010.5.27 이정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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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운동 : http://www.heenews.co.kr/sign.html]]></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Community/mypaper/pimg_725516154558474.jpg</url><link>http://blog.aladin.co.kr/vara/3775425</link></image></item><item><author>바라</author><category>대장정</category><title>삼성은 '대학생의 친구'인가 '욕망의 친구'인가?</title><link>http://blog.aladin.co.kr/vara/3649542</link><pubDate>Tue, 20 Apr 2010 23:2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vara/3649542</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64350502&TPaperId=3649542"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629/7/coveroff/8964350502_3.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01078619&TPaperId=3649542"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181/93/coveroff/8901078619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0492408&TPaperId=3649542"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88/69/coveroff/8990492408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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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100420095324&amp;section=03&#160;
"삼성은 '대학생의 친구'인가 '욕망의 친구'인가?"<!--/DCM_TITLE--><!--KWCM_TITLE_END_1--> <br />

<h4>[삼성을 생각한다] "이 땅 젊은이에게 삼성은 무엇인가"</h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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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0-04-20 오후 12:12:38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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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rame width="547" height="84"  marginwidth="0" marginheight="0" frameborder="0" scrolling="no" bordercolor="#000000" src="http://www.aladin.co.kr/ad/over/over_articleTOP.asp?section_code=03" title="오버추어 ECM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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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 우측 광고 끝-->삼성 반도체 노동자가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한참을 울었다. 20대인 그녀는, 내가 대학생이랍시고 게으르게 뒹굴대며 음악을 듣거나 영화를 볼 때, 반도체를 검사하기 위해 끝없이 제품을 납에 넣었다 빼며 제 자신을 죽여야 했다. 처음 직장에 발을 내디뎠을 때 그녀가 가졌을 꿈을 생각하면, 한없이 부끄러워져 나도 모르게 흐느끼게 된다. 고된 노동에도 때로는 친구들을 만나 담소를 나누기도 했을 테지만, 다시 공장으로 돌아가는 시간이 될 때, 지나가버린 그 시간을 얼마나 안타깝게 그리워했을지.<br />
<br />
대학을 아직 떠나지 못한 나는 다시 등교를 한다. 도서관 전산실에 들렀는데 내 앞에는 삼성 컴퓨터가 놓여 있다. 책을 들고 강의실에 들어서자 삼성 에어콘이 눈에 띈다. 어떤 학생은 삼성 MP3 플레이어를 귀에 꽃은 채 강의실로 들어오고, 어떤 학생은 삼성 애니콜에 전화가 와서 강의실을 나가며, 어떤 학생은 삼성 노트북 센스에 강의노트를 작성할 준비를 하고 있다. 삼성이 없는 곳이 없다. 새삼 느낀 것이지만, 나는 삼성에 둘러싸여 있었다. 거기에는 나와 같은 20대의 어느 노동자의 손에서 나온 반도체가 들어있을 테지만, 학교에서는 공공물품을 거의 삼성 제품으로 구매하고, 학생들은 서비스 좋다는 삼성을 아무 생각 없이 손에 들고 있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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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정 나무 그늘에서 쉬고 있는 대학생들. 이들은 극심한 취업 경쟁으로 지쳐 있다. 대기업 취업에 성공하면, 행복한 일상이 기다리고 있을까. 삼성 문제를 푸는 것은 삶의 대부분을 보내는 일터를 보다 낫게 바꾸는 일이기도 하다. ⓒ프레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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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의 제품만이 우리 곁에 와 있는 것은 아니다. 여러 기업들이 학생들의 동아리나 모임 활동을 지원하곤 하는데, 너무나 프랜들리한 삼성은 그 지원에서 가장 앞서가며, 나아가 지원을 넘어 동아리를 대체하는 경지로 나아간다. 누추하게 잔디밭에 둘러 모여 기타치고 노래 부르기보다는 폼나게 해외 배낭여행을 떠나길 원하는 대학생들은 기업이 지원하는 모임을 선호할 수밖에 없는데, 삼성은 영삼성(youngsamsung)을 운영하여 대학 내 영향력을 넓혀가고 있는 것이다. 자본은 언제나 욕망과 친구한다. 삼성은 대학생들의 친구이다.<br />
<br />
그런데 이 친구는 누구라도 가리지 않고 친하게 지내는 모양이다. 자세한 뒷사정은 알지 못하나, 작년엔 학생회와 삼성이 손을 잡으려한 일이 있었는데, 서울 지역 '한대련'과 삼성의 합작사업이 진행되었던 것이다. 그것은 단순히 광고지면을 내주고 지원을 받는 정도의 일이 아니라, 삼성 올앳카드 회원을 학생회가 대신 모집해주고 카드 가맹점에서 할인을 받는 형태의 사업으로, 의결이 끝나고 집행을 기다리다가 몇몇 대학의 반대로 뒤집어졌다고 하는데, 그 후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아직 듣지는 못했다. 욕망을 가진 누구라도 친하게 지내는 삼성은 이정도로 대학생들의 친구이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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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와 사이좋게 지내야 한다는 말을 어릴 때부터 듣고 자라온 우리는 그래서 삼성을 멀리하지 못한다. 얼마나 좋은 친구인가. 세상과 이어주고 더위도 식혀주며 음악도 들려주고 여행도 시켜준다. 얼마나 고마운가. 삼성이 이렇게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해주다니.<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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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삼성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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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런지 대학생들에게 삼성은 선망의 대상이라고 한다. 나는 줄곧 '삼성맨'이라는 이름이 부정적인 뉘앙스를 담은 것인 줄 알고 있었는데 아니었나보다. 그러나 조금 서글퍼지지만 거기에 들어가기 전에 우선 조심해야 될 것이 있는데, 바로 삼성은 학벌을 중시한다는 것. 얼마 전에 언론에서 삼성 사장단의 학벌이 골고루 분포되어 있다고 호들갑을 떨며 삼성 임원의 꿈을 심어주기도 했는데, 대개의 기업들이 서울대 인맥을 이용하려 하기 때문에 이는 특이해 보이기도 하지만 실상은 다른 곳에 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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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철 변호사에 따르면, 삼성에서 임원이 되는 것은 로비/섭외 실력으로 이뤄진다. 그런데 로비/섭외는 서울대 인맥이 더 수월하지 않겠는가하면 그게 아니다. 뻔히 알고 있는 자기 동창에게 큰 돈을 쥐어주며 로비하는 것은 민망하기도 하고 불편할 수 있으며 나아가 일이 어긋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도리어 아예 관계가 없는 사람이 큰 돈을 챙겨주는 것이 로비에서는 훨씬 더 편할 수 있는데, 그런 까닭에 계열사 임원 중에는 비서울대출신이 많을 수 있지만, 권력의 정점인 구조본은 모두 소위 명문대 출신으로 채워져 있는 것이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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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높은 경쟁률을 뚫고 직원이 된다면 다행한 일일 수도 있겠으나, 역시 또한 주의해야 할 점이 몇 가지 있다. 누군가는 자랑스럽게 올렸을지도 모르나 그저 황당함과 경악만을 안겨주었던 동영상에서 본 매스게임을 실제로 하러 동료들과 집결해야 한다. 물론 멋진 콘도에서 삼성은 돈의 힘을 보여줄 것이고, 임원이 방문해서 삼성이라는 자부심과 함께 임원이 되고자 하는 욕망도 심어줄 것이다. 멋진 일 아닌가. 내가 삼성맨이라니. 그러나 거기에서 재미를 느끼는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그 재미가 계속되리라는 희망은 지속되기 힘들다. 이직률이 가장 높은 기업이라는 삼성에서의 재직 기간은 보통 7~8년이라고 하는데, 3~4년차 사원들이 이직률은 30%대나 된다고 한다.<br />
<br />
삼성을 발판으로 더 나은 곳으로 가려는 것일 텐데, 삼성에 계속 충성하다간 너무 일찍 묘비를 세워야 되는 불상사가 일어날 수도 있다는 예감이 들었을지 모른다. 물론 잘 견뎌낼 수도 있다. 경쟁과 성과주의는 한국에서 익숙한 것이니까. 삼성 안에서 &lt;한겨레&gt;나 &lt;경향신문&gt;을 못 보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최근 삼성에 취직한 친구의 말로는 인터넷 포털 DAUM도 눈치가 보여 접속을 못한다고 하는데, 그것도 견딜 수 있을지 모른다.<br />
<br />
그러나 노예가 아닌 한, 무작정 견디는 것은 인간에게는 적합하지 않다. 인간은 의미를 구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하는 일에 대해 막연히 긍정하며, 그 일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생각해보지 않으려 하지만, 우리는 거기에 멈춰서있어서는 안 된다. 함석헌은 사람의 사람된 점은 생각하는 데 있다고 말했다. 즉 "사람은 할 뿐만 아니라 하는 줄을 아는 것이요, 알 뿐만 아니라 아는 줄을 아는 것"이다. 그리하여 사람은 자기가 하는 일의 의미를 알 수 있어야만 하며, 그러할 때 우리의 삶은 질적으로 도약한다.<br />
<br />
사람들은 삼성의 세련된 사무실에서 잘나가는 현대인이 되고 싶을 것이다. 그렇게 당신은 이미 인천 송도만 하수처리 시설 사업권을 차지한 '삼성 베올리아 인천환경주식회사'에 취직해서 물 사유화 사업에 앞장설 수도 있다. 또는 삼성생명에 취직해서 삼성이 추진하고 있는 "정부 보험을 대체하는 포괄적 (민간 의료)보험", 즉 지금의 건강보험을 통째로 사적 의료보험으로 대체하려는 계획에 뛰어들 수도 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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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는 삼성캐피탈에 취직해서 부실 규모를 줄이기 위해 고객 도장을 몰래 만들어 불법 대환 대출을 할 수도 있다.(걱정 마시라. 금융감독원은 알고서도 처벌 하는 둥 마는 둥 했으니.)<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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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은 운이 좋은 사람은, 분식 회계 장부가 법원에 넘어가면 서류를 빼돌린 다음 어두운 밤 해운대 백사장에서 불태워버리는 낭만을 즐길 수도 있고, 2005년 공정거래위원회가 삼성 토탈(주)에 대한 가격 담합 조사를 했을 때처럼 공정위 조사관이 확보한 자료를 가로채 도망가면서 찢어버리는 액션을 즐겨볼 수도 있으며, 더 운이 좋아 압수수색과 같은 긴급상황이 벌어지면 검찰이 주는 충분한 시간동안 내부자료와 파일을 파기하는 스릴을 맛보는 기회도 누릴 수도 있을 것이다.(너무 걱정 마시라. 저런 일들은 가벼운 과태료만 내면 끝날 테니.)<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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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화끈한 일을 할 수도 있는데, 만일 사무직 노동자와는 다른 대우를 받는 생산직 노동자들이, 컨베이어 벨트의 조립라인 노동자나 반도체 노동자가 처해 있는 그런 열악한 환경과 고된 노동을 개선하려 노조라도 만들라치면, "너 하나 쥐도 새도 모르게 끌어 묻을 수 있다"는 영화 같은 대사를 내뱉고 집단 폭행을 가하는 활극을 연출할 수도 있다. 이런 일로 삼성 이미지가 나빠질까봐 걱정이 되면, 지뢰 제거 활동 홍보처럼 '글로벌 사회 공헌' 광고를 제작할 수도 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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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뒤에서는 삼성이 F15-K 전투기를 수출하고 공격형 아파치 헬기를 만들고 있겠지만, 어차피 이미지는 이미지니까. 아쉽게 이런 일을 몸소 하지는 못하더라도, 옆에서 구경할 기회는 얻을 수도 있으니, 이 또한 좋지 아니한가.(&lt;한국사회, 삼성을 묻는다&gt;에 나오는 일들이다. 더 많은 일들을 알기 원하시는 분은 이 책을 보시기를.)<br />
<br />
이런 일들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생각하는 것은 각자의 몫으로 두어도 좋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이 더 나아가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삼성이 보여주는 기술의 눈부심이다. 영화 아바타에 세계가 열광한 것은 그것이 구현하고 있는 테크놀로지 때문이겠거니와, 삼성이 생산해내는 최첨단의 반도체와 LED TV, 휴대폰 등은 우리를 매혹시키고 거기에서 눈을 떼지 못하도록 한다.<br />
<br />
그러나 잠시 시선을 거두어보자. 빛에 빼앗겨버린 시선을 조금만 돌려본다면, 그것이 어떤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지 우리는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그림자를 더 크게 만드는 일에 우리가 알게 모르게 참여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쓰는 애니콜, 컴퓨터나 노트북 센스에는 백혈병으로 숨져간 반도체 공장 노동자의 눈물이 스며있고, 손 닦는 수건도 없는 화장실에 그나마 맘대로 가지도 못하고 두 시간에 10분씩 쉬는 시간 외에는 꼼짝 없이 컨베이어 벨트에 묶여 있어야 하는(김용철, &lt;삼성을 생각한다&gt;, 122쪽) 생산직 노동자의 한숨이 녹아있다. 그리고 바로 그것으로 삼성이 우리 사회에서 갖는 유일무이한 권력이 지지되고 있는 것이다.<br />
<br />
그러니 이제, 청년들이여, 만일 새로운 시대가 요청하는 교양을 원한다면, 제품의 월등함 때문도 노동자들 임금 때문도 아닌, 임원들 보너스 때문에 비싼 애니콜이나 센스는 더 이상 아니라고 말하자. 한국 사회의 문제가 집약된 그 곳은, 정의를 위한 발걸음에 우리가 참여할 수 있는 발판이기도 하고, 알게 모르게 우리를 옥죄어 노예로 만드는 권력에 저항하는 장소이기도 하며, 이 시대에 새롭게 노동자와 연대할 수 있는 창구이기도 하다.<br />
<br />
얼마 전 한 친구가 삼성 센스 노트북을 샀다. 자본과 노동에 대한 거대담론을 자주 말하는 그는 이러한 불매와 같은 사소한 문제에는 큰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것이 사소한 문제인가? 아니다. 여기 사회의 모순이 있다. 여기 눈물이 있다. 여기 피맺힌 울음이 있고, 여기 한숨과 아우성이 있다. 자, 그러니 이제 여기를 떠나라. 그것이 교양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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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CM_BODY--><!--KWCM_CONTENT_END_1--><br />
/지훈 학생 <br />
]]></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88/69/cover150/8990492408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0492408</link></image></item><item><author>바라</author><category>대장정</category><title>대학생 문제인가 20대 문제인가</title><link>http://blog.aladin.co.kr/vara/3617894</link><pubDate>Sat, 10 Apr 2010 01:0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vara/3617894</guid><description><![CDATA[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100409091638&amp;section=03&#160;
김예슬 vs 故 박지연 vs 천안함 희생자…공통점은?<!--/DCM_TITLE--><!--KWCM_TITLE_END_1--> <br />

<h4>[기고] 대학생 문제인가, 20대 문제인가</h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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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0-04-09 오전 10:00:49&#160;<br />
&#160;
&#160;
나는 현재 이른바 '20대 담론'이 한계에 다달았다고 생각한다. 그 위기는 대략 세 가지 정도로 정리될 수 있다.<br />
<br />
첫째, 명목상으로는 '20대 문제'지만 전체적인 프레임은 '대학생'을 대상으로 삼고 있으며, 그 결과 대학생이 아닌 20대가 소외되고 있다. 둘째, 그 과정에서 아직 사회적으로 미성년자 취급을 받는 대학생이 20대를 위한 일종의 '시혜적' 정책을 요구하는 쪽으로 방향이 잡혀 가고 있다. 셋째, 앞서 말한 두 가지 문제가 종합되어, '20대 담론'이 사회 보편의 문제로 인정받고 자리 잡는 일이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br />
<br />
한 가지 특징적인 사례 비교를 통해 이 지점을 살펴보도록 하자. 지난 3월 10일, 고려대학교 3학년 김예슬 씨가 학교 안 게시판에 대자보를 붙여 '자발적 퇴교'를 선언했다. 대학생이 뭔가 '젊은이'의 패기를 보여줘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사회적 수요와 맞물려 이 선언은 적잖은 파장을 불러일으켰다.<br />
<br />
&lt;경향신문&gt;은 바로 다음날 1면의 일부를 할애하여 이 소식을 보도했고, 여러 사회적 명사가 지지와 격려의 뜻을 표했다. 서울대학교 08학번 채상원 씨는 김예슬 씨의 선언에 동참해 자신도 대학과 싸우겠다는 뜻을 표했다. 이 역시 &lt;프레시안&gt;을 비롯한 여타 언론을 통해 기사화되었다.<br />
<br />
한편, 지난달 31일, 삼성전자 반도체공장에서 반도체 검수 업무를 맡았다가 백혈병에 걸린 뒤 2년간 투병 중이었던 박지연 씨가 2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삼성의 눈치를 보는 대부분의 언론은 이 사건을 다루지 않고 넘어갔지만, &lt;프레시안&gt;을 비롯한 이른바 '비판 언론'은 사태의 추이를 비교적 면밀하게 추적·보도했다.<br />
<br />
그러나 지금까지 필자가 살펴본 바로는, 박지연 씨의 문제를 '20대의 문제'로 바라보고 다룬 기사는 없는 듯하다. 박지연 씨의 투쟁과 사망을 다룰 때, 그가 23세의 나이로 숨을 거두었다는 엄연한 사실은 동정의 소재가 될 뿐이다. '꽃다운 나이에 스러진 비윤리적 기업의 희생자'로 묘사될 따름이었다.<br />
<br />
그는 '노동하는 젊은이'가 아니라 '젊은 노동자'로 다루어지고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20대에 대한 과도한 예찬과 기대와 비판에 사용되는 온갖 수사를 찾아보기란 쉽지 않았다. 대신 노동조합을 허용하지 않는 삼성에 대한 비판과, 자신의 책임을 부정하는 뻔뻔스러운 태도에 대한 보도 등이 주를 이루었을 따름이다.<br />
<br />
언론이 고 박지연 씨의 죽음을 다루고 있을 때조차 그 '젊은 노동자'는 주인공이 아니었다. 거대한 악당 삼성이 주인공이고, 박지연 씨는 순결한 희생자일 뿐이다.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고 외친 김예슬 씨가 언론에서 다루어질 때와는 사뭇 다르다.<br />
<br />
박지연 씨의 죽음에 대한 기사를 읽다보면 분명해진다. 우리 사회가, 우리 언론이 기대하는 '실천하는 20대', '사회의 부조리에 반항하는 젊은이'는 절대 노동자여서는 안 된다. 무조건 '대학생', 그것도 명문 대학교에 다니는 학생이어야 한다. 사실 박지연 씨는 단순한 '희생자'가 아니었다. 다른 산업 재해 피해자와 함께 법원에 자신의 질병을 산업 재해로 인정해달라고 소송을 걸고 있었다.<br />
<br />
박지연 씨는 싸우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누구도 박지연 씨를 '투쟁하는 20대'로 보지 않는다. 김예슬 씨의 자발적 퇴교는 '대학'이 아닌 '20대'의 문제로 받아들여지지만, 박지연 씨의 싸움과 죽음은 '20대 문제'가 아니다. 심지어 그에게 우호적이라고 스스로 생각하는 사람조차, 그것을 오로지 '삼성'의 문제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br />
<br />
(가령 4월 5일자 &lt;한겨레&gt;의 '왜냐면'에 실린 한 독자 의견은 이렇게 마무리되고 있다.<br />
<br />
"삼성 반도체 노동자 박지연 씨의 죽음은 삼성이 이 사회를 지배하는 방식과 노동자의 건강권의 문제와 그리고 우리 안에 자리잡은 '삼성'은 원래 그랬어, 그래서 어쩔 수 없다는 체념을 드러내고 반성하게 하는 중요한 사건이 되어야 한다."<br />
<br />
4월 1일 발표된 민주노동당의 논평 역시 삼성에 대한 규탄이 주를 이루고 있다. 스물세 해를 살다 떠난 젊은이의 못다 핀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는, 아무리 검색해도, 찾아볼 수 없다.)<br />
<br />
현재 우리 사회에 통용되는 '20대 담론'이 철저하게 대학생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이보다 더 잘 보여주는 사례가 과연 또 있을까? 명문대에 다니는 대학생은 자퇴만 해도 화제가 되고 저항하는 20대로 승격된다. 고등학교만 나오고 공장에서 일하다가 백혈병으로 죽은 젊은이는 죽어서도 투쟁의 주체가 아닌 산업 재해의 희생자가 될 뿐이다.<br />
<br />
김예슬 씨의 용감한 결의를 폄하할 생각은 전혀 없지만, 이것 하나만은 확실하다. 현재, 세상의 시선은 대단히 불공평하다. '세상을 바꾸자'고 떠드는 바로 우리들의 시선이 불공평하다.<br />
<br />
<br />


    
        
            
        
        
            ▲ 고 박지연 씨는 '삼성의 희생자'로 받아들여질 뿐 '투쟁하는 20대'였다는 사실은 망각된다. ⓒ프레시안(이상엽)
        
    

<br />
이렇듯 현재 논의되고 통용되는 '20대 담론'은 사실상 '대학생 담론'의 다른 이름에 지나지 않는다. 이른바 '20대 담론'의 의제가 '청년 실업 해소'와 '대학 등록금 인하'에 집중되어 있는 것은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 각각의 중요성을 부인할 수는 없고, 두 측면 모두 진지하게 다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20대의 삶과 인권이 피폐해지는 이유는 비싼 등록금과 대기업 사무직 취업난으로만 설명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박지연 씨의 죽음에서 확인할 수 있는 20대의 수많은 문제를 과연 '20대 담론'이 포용할 수 있을까?<br />
<br />
앞서 말한 박지연 씨의 죽음도 그렇거니와, 가령 이번에 침몰한 천안함 사건을 되짚어보자.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대부분의 남성들은 군대에 간다. 그 군대는 지금 우리가 확인하고 있는 바와 같이 인권의 사각지대이며 누군가가 애꿎은 생명을 잃어도 속 시원한 해명 한마디 내주지 않는다.<br />
<br />
도리어 생존한 장교들(그 중에는 다수의 20대 사관들이 속해 있다)에게 병원복을 입고 목발을 짚고 나오는 '쇼'를 강요한다. 20대 남성의 대부분이 저런 군대에서 2년간 청춘을 바치는 것이, 20대가 아파트가 없어서 모텔에 가야 하는 것보다 더 심각하고 중요한 문제 아닐까?<br />
<br />
그러나 지금까지 진행되어 온 '20대 담론'은 저런 지점을 수용할 수 없다. 세대론의 덫에 갇혀버렸기 때문이다. '386 세대가 20대의 몫을 가져간다'는 식의 괴담이 횡횡한 가운데, 정작 20대와 모든 사람들을 위해 한국 사회가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 그 운동의 과정에서 '20대'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고 해야 하는지'에 대한 진지한 논의는 사실상 실종되어버렸다.<br />
<br />
대신 20대'를 위해' 등록금도 내려야 하고 아파트도 지어줘야 하고 낮은 학점을 받아도 대기업과 안정된 사무직 직장에 취직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는 주장들이 떠돌아다닌다. 전체 사회와의 접점을 찾지 못한 세대론은 결국 정부 혹은 권력자들이 배푸는 '시혜적 정책'에 대한 요구로 빨려 들어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br />
<br />
당연하게도 그러한 형태의 20대 담론은 점점 범사회적인 공감대를 잃어가고, '너희만 힘드냐?'는 식의 비아냥거림을 불러온다. 심지어 20대, 혹은 대학생 사이에서도 그러한 상호 불신과 냉소가 그득하다. 세상을 바꾸고 세상 속에서 무언가를 달성하기 위한 운동이 아니라, 세상으로부터 무언가를 '받아내기' 위한 운동으로 스스로를 위치 짓고 있는 한 그러한 상호 불신과 전망의 결여는 필연적이다.<br />
<br />
가령 우석훈 박사는 20대 미디어 &lt;이빨을 드러낸 20대&gt;와의 대담에서 "교수를 비롯한 교직원의 급여가 너무 과다하다는 것과 제2캠퍼스나 건물 신축에 투자되는 비용이 절약 가능하다"는 것을 근거로 "연간 등록금 100만 원 이하 책정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과연 이런 주장을 통해 대학을 변화시키고 개혁할 수 있을까? 교수와 교직원의 월급을 깎아서 대학생의 등록금으로 달라는 주장을 하면서 대학 사회 내에서 폭 넓은 공감과 정치적 동의를 확보하는 일이 과연 가능할까?<br />
<br />
내 또래의 누군가는 아직 차디찬 서해 바다 속에 갇혀 있고, 또 다른 누군가는 어린 나이에 백혈병에 걸려 목숨을 잃었다. 그 속에서 청년 실업의 불안을 이야기하고 스펙 쌓기의 '무한경쟁'에 시달리는 고통을 토로하는 것을 전적으로 잘못되었다고 말하지는 않겠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딘가에서 20대 노동자가 죽어가고, 20대 군인이 학대당하고 있다.<br />
<br />
그런데 정작 20대 대학생이 '20대 문제'를 '등록금 인하'와 '청년 실업 해소'로 한정짓고 있다면, 부끄럽고 비도덕적인 일이다. 대학이 세상의 전부가 아니듯, 대학생이 20대의 전부인 것도 아니지 않은가. 기존의 '20대 담론'은 사회적 효용을 다해가고 있다.<br />
<br />
김예슬 씨와 고 박지연 씨 모두를 위해, 이제는 그 폭을 좀 더 넓히고, 더 많은 주제를 함께 다루며 싸워나갈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어야 할 때이다. <br />
<br />
&#160; <br />
<br />
<br />
<!--/DCM_BODY--><!--KWCM_CONTENT_END_1--><br />
/노정태 전 &lt;포린폴리시&gt; 한국어판 편집장  필자의 다른 기사<br />
<br />
<br />
]]></description><image><url>http://image.pressian.com/images/2010/04/09/60100409091638.JPG</url><link>http://blog.aladin.co.kr/vara/3617894</link></image></item><item><author>바라</author><category>대장정</category><title>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title><link>http://blog.aladin.co.kr/vara/3512331</link><pubDate>Sat, 13 Mar 2010 02:2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vara/3512331</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6170623&TPaperId=3512331"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617/26/coveroff/8996170623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1418074&TPaperId=3512331"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682/88/coveroff/8991418074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160;
&#160;
&#160;
&#160;
&#160;
&#160;
&#160;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br />
<br />
&#160;<br />
<br />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 둔다. <br />
<br />
G세대로 '빛나거나' 88만원 세대로 '빚내거나', <br />
<br />
그 양극화의 틈새에서 불안한 줄타기를 하는 20대. <br />
<br />
그저 무언가 잘못된 것 같지만 어쩔 수 없다는 불안과 <br />
<br />
좌절감에 앞만 보고 달려야 하는 20대. <br />
<br />
그 20대의 한 가운데에서 <br />
<br />
다른 길은 이것밖에 없다는 마지막 남은 믿음으로. <br />
<br />

<br />
<br />
<br />

이제 나의 이야기를 시작하겠다. <br />
<br />

이것은 나의 이야기이지만 나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br />
<br />

나는 25년 동안 경주마처럼 길고 긴 트랙을 질주해왔다. <br />
<br />

우수한 경주마로, 함께 트랙을 질주하는 <br />
<br />

무수한 친구들을 제치고 넘어뜨린 것을 기뻐하면서. <br />
<br />

나를 앞질러 달려가는 친구들 때문에 불안해하면서. <br />
<br />

그렇게 소위 '명문대 입학'이라는 첫 관문을 통과했다. <br />
<br />

그런데 이상하다. 더 거세게 나를 채찍질해봐도 <br />
<br />

다리 힘이 빠지고 심장이 뛰지 않는다. <br />
<br />

&#160;<br />
<br />

지금 나는 멈춰 서서 이 경주 트랙을 바라보고 있다. <br />
<br />

저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br />
<br />

'취업'이라는 두 번째 관문을 통과시켜 줄 자격증 꾸러미가 보인다. <br />
<br />

너의 자격증 앞에 나의 자격증이 우월하고 <br />
<br />

또 다른 너의 자격증 앞에 나의 자격증이 무력하고, <br />
<br />

그리하여 새로운 자격증을 향한 경쟁 질주가 다시 시작될 것이다. <br />
<br />

이제서야 나는 알아차렸다. <br />
<br />

내가 달리고 있는 곳이 끝이 없는 트랙임을. <br />
<br />

앞서 간다 해도 영원히 초원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트랙임을. <br />
<br />

<br />
<br />
<br />

이제 나의 적들의 이야기를 시작하겠다. <br />
<br />

이 또한 나의 적이지만 나만의 적은 아닐 것이다. <br />
<br />

이름만 남은 '자격증 장사 브로커'가 된 대학, <br />
<br />

그것이 이 시대 대학의 진실임을 마주하고 있다. <br />
<br />

대학은 글로벌 자본과 대기업에 가장 효율적으로 <br />
<br />

'부품'을 공급하는 하청업체가 되어 내 이마에 바코드를 새긴다. <br />
<br />

&#160;<br />
<br />

국가는 다시 대학의 하청업체가 되어, <br />
<br />

의무교육이라는 이름으로 12년간 규격화된 인간제품을 만들어 올려 보낸다. <br />
<br />

기업은 더 비싼 가격표를 가진 자만이 피라미드 위쪽에 접근할 수 있도록 <br />
<br />

온갖 새로운 자격증을 요구한다. <br />
<br />

이 변화 빠른 시대에 10년을 채 써먹을 수 없어 <br />
<br />

낡아 버려지는 우리들은 또 대학원에, 유학에, 전문과정에 돌입한다. <br />
<br />

고비용 저수익의 악순환은 영영 끝나지 않는다. <br />
<br />

'세계를 무대로 너의 능력만큼 자유하리라'는 <br />
<br />

세계화, 민주화, 개인화의 넘치는 자유의 시대는 곧 자격증의 시대가 되어버렸다. <br />
<br />

졸업장도 없는 인생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br />
<br />

자격증도 없는 인생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br />
<br />

학습된 두려움과 불안은 다시 우리를 그 앞에 무릎 꿇린다. <br />
<br />

<br />
<br />
<br />

생각할 틈도, 돌아볼 틈도 주지 않겠다는 듯이 또 다른 거짓 희망이 날아든다. <br />
<br />

교육이 문제다, 대학이 문제다라고 말하는 생각 있는 이들조차 우리에게 이렇게 말한다. <br />
<br />

“성공해서 세상을 바꾸는 '룰러'가 되어라”, <br />
<br />

“네가 하고 싶은 것을 해. 나는 너를 응원한다”, <br />
<br />

“너희의 권리를 주장해. 짱돌이라도 들고 나서!” <br />
<br />

그리고 칼날처럼 덧붙여지는 한 줄, “그래도 대학은 나와야지”. <br />
<br />

그 결과가 무엇인지는 모두가 알고 있으면서도. <br />
<br />

&#160;<br />
<br />

큰 배움도 큰 물음도 없는 '대학大學'없는 대학에서, <br />
<br />

나는 누구인지, 왜 사는지, 무엇이 진리인지 물을 수 없었다. <br />
<br />

우정도 낭만도 사제간의 믿음도 찾을 수 없었다. <br />
<br />

가장 순수한 시절 불의에 대한 저항도 꿈꿀 수 없었다. <br />
<br />

아니, 이런 건 잊은 지 오래여도 좋다. <br />
<br />

그런데 이 모두를 포기하고 바쳐 돌아온 결과는 정말 무엇이었는가. <br />
<br />

우리들 20대는 끝없는 투자 대비 수익이 나오지 않는 <br />
<br />

'적자세대'가 되어 부모 앞에 죄송하다. <br />
<br />

&#160;<br />
<br />

젊은 놈이 제 손으로 자기 밥을 벌지 못해 무력하다. <br />
<br />

스무 살이 되어서도 내가 뭘 하고 싶은지 모르고 꿈을 찾는 게 꿈이어서 억울하다. <br />
<br />

이대로 언제까지 쫓아가야 하는지 불안하기만 우리 젊음이 서글프다. <br />
<br />

<br />
<br />
<br />

나는 대학과 기업과 국가, 그리고 대학에서 답을 찾으라는 그들의 큰 탓을 묻는다. <br />
<br />

깊은 분노로. 그러나 동시에 그들의 유지자가 되었던 내 작은 탓을 묻는다. <br />
<br />

깊은 슬픔으로. '공부만 잘하면' 모든 것을 용서받고, <br />
<br />

경쟁에서 이기는 능력만을 키우며 나를 값비싼 상품으로 가공해온 <br />
<br />

내가&#160;체제를 떠받치고 있었음을 고백할 수 밖에 없다. <br />
<br />

이 시대에 가장 위악한 것 중에 하나가 졸업장 인생인 나, 나 자신임을 고백할 수밖에 없다. <br />
<br />

<br />
<br />
<br />

그리하여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 <br />
<br />

더 많이 쌓기만 하다가 내 삶이 한번 다 꽃피지도 못하고 시들어 버리기 전에. <br />
<br />

쓸모 있는 상품으로 '간택'되지 않고 쓸모 없는 인간의 길을 '선택'하기 위해. <br />
<br />

이제 나에게는 이것들을 가질 자유보다는 이것들로부터의 자유가 더 필요하다. <br />
<br />

자유의 대가로 나는 길을 잃을 것이고 도전에 부딪힐 것이고 상처 받을 것이다. <br />
<br />

그러나 그것만이 삶이기에, 삶의 목적인 삶 그 자체를 지금 바로 살기 위해 <br />
<br />

나는 탈주하고 저항하련다. <br />
<br />

생각한 대로 말하고, 말한 대로 행동하고, 행동한 대로 살아내겠다는 용기를 내련다. <br />
<br />

<br />
<br />
<br />

학비 마련을 위해 고된 노동을 하고 계신 부모님이 눈 앞을 가린다. <br />
<br />

'죄송합니다, 이 때를 잃어버리면 평생 나를 찾지 못하고 살 것만 같습니다.' <br />
<br />

많은 말들을 눈물로 삼키며 봄이 오는 하늘을 향해 깊고 크게 숨을 쉰다. <br />
<br />

<br />
<br />
<br />

이제 대학과 자본의 이 거대한 탑에서 내 몫의 돌멩이 하나가 빠진다. <br />
<br />

탑은 끄덕 없을 것이다. 그러나 작지만 균열은 시작되었다. <br />
<br />

동시에 대학을 버리고 진정한 大學生의 첫발을 내딛는 한 인간이 태어난다. <br />
<br />

이제 내가 거부한 것들과의 다음 싸움을 앞에 두고 나는 말한다. <br />
<br />

그래, “누가 더 강한지는 두고 볼 일이다”. <br />
<br />

<br />
<br />

<br />
<br />
<br />

2010년 3월 10일 김예슬<br />
고려대학교 경영학과를 자퇴하며&#160;&#160;
&#160;
&#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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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예슬씨의 선언, 당신도 보여주세요
                    
                    
                        무력한 구경꾼이 되고 싶지 않아 지지 대자보를 붙였습니다
                    
                
            
            <!-- 끝: 기사 타이틀 -->
        
        
            <!-- 시작: 시간,닉네임 --><br />
            
                
                    
                        <!-- 기사 작성시간,최종업데이트시간 -->
                        10.03.12 19:47 ㅣ최종 업데이트 10.03.12 20:00
                        <!-- 닉네임 -->
                         홍명교 (daresay) 
                    
                
            
            <!-- 끝: 시간,닉네임 -->
        
    

<!-- 끝:Top상단 --><!-- 시작: 태그 --><br />
<!-- 태그 리스트 --><br />
고대생 자퇴, 대학사회, 거부선언, 김예슬, 자퇴<!-- s: Articleview Area --> <br />

    
        
            <!-- s: article_contents--><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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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r />
                        출처 : 김예슬씨의 선언, 당신도 보여주세요 - 오마이뉴스 <br />
                        
                    
                
            
            
        
    



11일 목요일 아침 출근하는 사람들로 빼곡한 만원 지하철이었습니다. 그것은 지극히 우연이었지요. 며칠째 우울한 기분이었고 매일매일이 버거웠습니다. 그날은 제대한 지 꼭 일주일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br />
<br />

&#160;<br />
<br />

승강장에 서서 수서행 지하철이 오기를 기다리다가 가판대로 향했습니다. 온갖 무가지들, 보수언론들이 즐비한 곳이지요. 여느 때처럼 시큰둥하게 신문 헤드라인들을 훑어보았습니다. 그것이 제가 사회적인 문제들과 접촉하는 거의 유일한 통로거든요. 그런데 유독 한 신문의 머리기사가 거짓말처럼 눈에 팍하고 들어왔습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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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 일주일, 지하철에서 눈물을 흘렸습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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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 Fuction btns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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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 Fuction btns -->▲ 12일 오후 서울시 성북구 고려대학교 정경대학 후문에 자발적 퇴교를 앞둔 고려대학교 경영학과 3학년 김예슬씨의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는 제목의 대자보가 누군가에 의해 계란 투척과 빨간색 마카로 훼손되어 있는 가운데 훼손된 대자보 옆에 김예슬 학생을 응원하며 지지하는 글들이 붙어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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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예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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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 경영학과 3학년 김예슬씨의 '자발적 퇴교' 선언과 대자보에 대한 기사(&lt;경향신문&gt; 3월 11일자)였습니다. 그 600원짜리 신문을 사서는 지하철에 올랐습니다. 그리곤 바보처럼 읽고 또 읽으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사람들로 빼곡해서 옴싹달싹도 하기 힘든 만원 지하철에서 말이죠.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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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바이트 장소에 도착하자마자 저는 몰래 무언가를 마구 쓰기 시작했습니다. 김예슬씨의 선언에 대한 지지글이었습니다. 그걸 프린트하고 복사해서 고대생 친구에게 건네주었지요. 고려대학교에 부착된 김예슬씨의 대자보 옆에 그걸 붙였습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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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힘이 되지 못하겠지만 울림을 받은 자의 책임이라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선언'된 하나의 '사건', 한국사회와 20대에겐 결정적이며 시초적일 수밖에 없는 '반전'의 계기 앞에서 무력한 구경꾼이 되고 싶지 않아서입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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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고려대학교 경영대학에 입학한 저는 학교에 다닌 3~4년 내내 수업 하나 제대로 들은 적 없는 못난 대학생이었습니다. 하나의 공포가 대학 시절 내내 저를 지배했는데 현대기업경영 첫 수업날, 교수님이 하시는 이야기를 듣고 겁에 질렸던 겁니다. 그는 "고대 경영대 정도 나왔으면 벤츠나 아우디 정도는 타줘야지"라는 농담을 던졌습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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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160;나왔으면 벤츠 정도는"... 교수님 얘기에 섬뜩했습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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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들 웃었는데 왜 나는 웃지 못했는지요. 그 말이 너무 무서웠고 섬뜩했습니다. 나는 남보다 뻔지르르하게 살겠다고 수능 공부를 열심히한 게 아닌데, 고작해야 외제차 하나 타겠다고 살아온 게 아닌데 말입니다. 제대로 수업을 들을 수 없었습니다. 외무고시를 봐라, CPA를 따라, 토익을 봐라 말도 많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학사경고도 여러 차례 맞았으며, F학점 받은 게 한둘이 아닙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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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꿈 대신 수능점수에 따른 입학 가능 대학을 따져보고 대학에 왔을 뿐인 것입니다. 저 역시 그러했고, 멍청하게 학교 건물이 번지르르한 게 멋져보여서 그곳에 갔을 뿐이었습니다. 제게 대학시절은 그리 즐거운 기억이 아닙니다. 그곳이 숨 막힐 듯이 답답했으며 사람들의 우울한 표정이 싫었습니다. 제 주위에는 저와 같은 친구들이 한 둘이 아니었습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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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저는 결국 고려대학교를 졸업하지 못하고 다른 길을 위해 길을 나섰습니다. 좋은 영화를 만들겠다는 꿈을 가지고 말이죠. 제 주위에는 그런 사람들이 꽤 있습니다. 어디에나 그런 사람들은 있을 겁니다. 그러나 이런 결심은 대단한 용기가 뒤따르지요. 당신의 환상이 깨어질 수도 있습니다. 암담하고 막막한 미래가 답답하긴 매한가지일 것이며, 어딜가나 이윤중심의 풍조는 당신을 숨 막힐 정도로 괴롭힐 것입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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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에 다니던 시절 2학년 때부터 저는 과외를 할 수 없었습니다. 누군가는 저처럼 또 꿈 대신 점수만을 생각하며 대학에 들어오게 한다는 게 너무나 큰 죄악처럼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과외를 할 수밖에 없는 친구들의 처지도 이해가 갔습니다. 고려대학교의 턱없이 높은 등록금 때문에 수차례 휴학하는 사람들이 수두룩하니까요. 그건 마치 대학에 다니기 싫어도 대학에 계속 다니는 동 세대의 삶을 이해하는 것과 같습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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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의 선택을 '사건화' 한 김예슬씨, 당신도 보여주세요<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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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 Fuction btns -->▲ 11일 오후 서울시 성북구 고려대학교 정경대학 후문에 자발적 퇴교를 앞둔 고려대학교 경영학과 3학년 김예슬씨의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는 제목의 대자보가 붙어있자 지나가던 학생들이 발길을 멈추고 글을 읽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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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예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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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냉면 배달, 피자 배달, 무대 철거, 사무보조 여러 가지 일을 해볼 수밖에 없습니다. 아마도 앞으로 예슬씨도 그렇겠지요. 언제는 일용직 전시회장 철거 알바를 하며 짐을 나르다가 까만 양복을 빼입은 대기업 사원 후배를 만나기도 했습니다. 아는 체도 하기 어렵더군요. 그러나 그때 왜 인사하지 못했을까 후회도 됩니다. 당당히 인사도 못할 삶을 사는 건 아닌데 말이죠. 어느새 저는 억눌린 채로 점점 자신감을 잃어왔던 겁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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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한 영화감독이 될 수 있을까, 평생 가난하게 살게 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이 거친 세상은 우리의 자신감과 꿈을 온전히 보존하기 어렵게 만드니까요. 그러나 우리는 도망간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저들이 정해놓은 각본을 '거부'한 것입니다. 당당하게 이야기하고 떠들어댑시다. 논평하길 좋아하는 자들에게는 침묵으로 대꾸해주고, 뒷말하길 좋아하는 자들에게는 미소로 답해줍시다. 진짜 행복을 아는 사람들은 그런 사소하고 신경증적인 아웅거림들에 신경쓰지 않습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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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여러분처럼 잘날 것 하나 없고 내세울 것 하나 없는 겁쟁이 20대입니다. 그런 제가 지하철에서 우연히 예슬씨의 선언을 접한 건 정말 큰 행운입니다. 학생운동과 멀어진 이래 아주 오랫동안 저는 소심한 개인의 삶을 살아왔거든요. 저는 이 행운이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았다는데 더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슬씨는 지극히 개인적인 삶의 선택, 행로를 바꾸는 용기의 감행을 '사건화'시킨 것입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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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들은 그걸 두고도 왈가왈부 말이 많지만 저는 예슬씨가 학교를 그만둔 것보다도 익명의 무기력자들에게 그 선언을 밝혔다는 것에 더 의미를 두고 싶습니다. 그래서 저 역시 개인의 이름으로 소심한 대자보를 붙인 것입니다. 아침까지만 해도 삶 앞에 지쳐서 '하악하악'대던 저는, 예슬씨가 선언을 통해 감행한 그 '사건'으로 인해 다시 용기를 얻었으며 가슴이 뜨거워졌습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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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하나의 행동 양식입니다. 예슬씨는 이 슬프고 불쌍한 20대 개인들뿐에게만 아니라, 벅찬 저항의 과제들 앞에서 우왕좌왕하며 갈피를 못 잡던 소위 '운동권'에게도 하나의 새로운 양식을 보여주었습니다. 우리도 이제 우리들 개인 각자의 삶과 모종의 '금지된' 용기에 대해 이야기하고 선언해나갑시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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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바울은 예수의 부활 그 자체를 '선언'함으로써 무수한 뜬 소문들 중 하나에 불과했던 그것을 하나의 '진리', '사건'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김예슬씨는 자기 개인의 용기어린 선택을 '선언'함으로써 '사건'으로 보여주었습니다. 이제 공은 당신에게 넘어갔습니다. 우리는 이 사건을 외롭지 않게 만들 책임이 있기 때문입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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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하지 '않은' 모든 것은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것<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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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에게 요청합니다. 그녀로부터 큰 울림을 받았다면, 여러분은 여러분이 보여줄 수 있는 용기를 선언해주십시오. 그리고 그것들이 '사건'이 될 수 있도록 움직여주십시오.&#160;오늘(3월 12일)&#160;아침, 고려대학교 학교 당국은 예슬씨 대자보 옆에 붙어 있던 무수한 응원메모들, 소자보들을 모두 철거했다고 합니다. 저분들이 두렵기는 한가 봅니다. 이는 예슬씨를 고립시키려는 얄팍하고 치사한 수작입니다. 온전하고 멀쩡한 '대학사회'의 책임자라면 자유로운 의사 개진에 '철거'로 답하진 않습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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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 />

대학이 스스로 자신의 치졸함을 보여준 것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인터넷의 구경꾼들로 남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 사건을 만들어야 합니다. 결코 다 같이 예슬씨처럼 자퇴해야 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지 않은 모든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입니다. 이 모순덩어리 각본 앞에 계속 복종하겠습니까, 아니면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길을 택하시겠습니까? 묻고 싶습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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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br />
<br />

우리 앞에 던져진 하나의 거대한 근본적 질문을 회피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결국 그 질문을 회피한 자들은 어느새 힘 센 분들 옆에 안착한 386세대처럼 '곱상하게' 늙을 것이며, 회피하지 않는 자들은 새로운 시대의 첫 번째 입장객이 될 것입니다.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는 것이 이 대자보를 읽은 우리들의 의무이자, 예슬씨가 우리들에게 안겨준 과제입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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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br />
<br />

저 자신을 포함한 20대 모두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이제 무엇을 할 것입니까?&#160; <br />
<br />
출처 : 김예슬씨의 선언, 당신도 보여주세요 - 오마이뉴스&#160;<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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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160;<br />]]></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682/88/cover150/8991418074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1418074</link></image></item><item><author>바라</author><category>대장정</category><title>사회적 공화주의 논쟁</title><link>http://blog.aladin.co.kr/vara/3412928</link><pubDate>Fri, 12 Feb 2010 00:0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vara/3412928</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1402224&TPaperId=3412928"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244/69/coveroff/8991402224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5022474&TPaperId=3412928"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96/70/coveroff/8985022474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160;
&#160;
&#160;
&#160;
&#160;
&#160;
&#160;
벌써 2년 전이군; 우연히 발견한 이광일 - 금민 논쟁(사회적 공화주의)과 사회당 게시판에서의 최원 - 금민&#160;논쟁(루소)&#160;
진보의 재구성, ‘사회적 공화주의’에 대한 짧은 생각(이광일)&#160;
http://www.newscham.net/news/view.php?board=news&amp;nid=46000&#160;
손가락은 달을 가리키는데, 손가락을 보고 있다(금민)&#160;
http://www.newscham.net/news/view.php?board=news&amp;nid=46043&#160;
금민 씨에 대한 답변 : ‘현자와 바보’(이광일)&#160;
http://www.newscham.net/news/view.php?board=news&amp;nid=46076&#160;&#160;
사회적 공화주의, 달과 손가락(금민)&#160;
http://www.newscham.net/news/view.php?board=renewal_col&amp;nid=46131&#160;&#160;&#160;
금민 씨에게 : ‘죽은 논리학’과 ‘살아 있는 정치학’(이광일)&#160;
http://www.newscham.net/news/view.php?board=news&amp;nid=46146&#160;
‘이행의 정치학’에 대한 비판(금민)&#160;
http://www.newscham.net/news/view.php?board=renewal_col&amp;nid=46176&#160;<br />
<br />
<br />

&#160;
&#160;
&#160;&#160;이광일-금민 논쟁 촌평&#160;http://www.sp.or.kr/sp2007/bbs/board.php?bo_table=5_2&amp;wr_id=718&amp;page=2&#160;
&#160; <br />
논쟁이 대충 끝난 것 같군요. 흥미있게 봤습니다. 두 분 다 수고하셨습니다. 나중에 가서는 약간 자극적인 말들을 교환하면서 조금 말싸움 비슷하게 된 면도 없지 않아 있는 것 같습니다만, 이는 그만큼 열심히 했고, 서로 논쟁이 가열되었다는 증거이므로 꼭 나쁘게 볼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나름대로 두 분 다 자기 소신에 맞게 주장을 펼쳤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함께 참여하고 싶습니다만, 너무 바빠서 촌평만 하나 덧붙일까 합니다.<br />
<br />
저는 아직 사회당 전대표 금민 씨의 사회적 공화주의를 자세히 살펴볼 기회를 갖지 못했습니다. 또 여기 몇편의 글만으로 그 실체를 제대로 알 수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도 함께 듭니다. 그러나 글에서 제시된 금민 씨의 사회적 공화주의에 대한 약간의 설명을 읽으면서 제가 떠올렸던 것은 다름아닌 근대 정치철학자 '루소'였습니다. <br />
<br />
금민 씨의 주장은 대략 이런 것 같습니다. '허울좋은 민주공화국을 제대로 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사회적 공화국이 이루어져야 하며, 후자는 전자의 논리적 전제이다.' 사회적 공화국의 실현을 위한 자세한 정책내용까지는 제가 잘 모르겠지만, 아마도 그 핵심은 국민들에게 일정 수준의 경제생활을 보장함으로써, 일반 국민들이 배제됨 없이 민주공화국에서 능동적인 시민으로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사회적 공화국으로서의 국가가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데에 있는 것 같습니다. <br />
<br />
그리고 이러한 문제의식은 민주주의와 공화국 사이의 관계를 이해하는 데에 있어서도 매우 중심이 되는 것 같습니다. 금민씨에게 공화국이 중요한 것은 그것이 민주주의라는 '다수자 지배'와는 달리 공통의 것(res publica)을 만들어내는 데에 그 목적이 있고, 그것이 갖는 보편성이 따라서 매우 중요한 것 같습니다. 따라서 공화정은 전제이고, 이 전제 하에서 다수자로서의 데모스에 이니셔티브를 허락하는 민주적 편향 내지 경향성이 있는 것이 바로 민주공화정이겠지요(이런 식의 관점의 타당성 여부는 일단 논외로 하고 싶습니다).<br />
<br />
어쨌든 사회적 공화주의를 주장할 때 금민씨에게 중요한 것은 '공통적인 것'을 만들어내는 일인 것 같습니다. 여기서 제가 루소를 떠올릴 수밖에 없는 것은, 루소야말로 사회계약을 통해 '공통의 자아(moi commun)'를 창립하는 것을 목표로 했던 사상가이기 때문입니다. 이 공통의 자아는 물론 (단순한 산술적 의미에서의 '만인의 의지'와는 구별되는) '일반 의지'를 갖고 있는 존재로 '입법자'이자 '주권자'이기도 하지요. 금민 씨의 주장과 관련하여 더욱 더 흥미로운 것은 루소는 이러한 일반 의지를 생성시키기 위해서는 사회가 균열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고, 따라서 '일반 의지'의 기초를 마련해줄 일종의 '일반 이익'의 수립이 (논리적으로든 역사적으로든) 선행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자신을 팔 정도로 가난해서는 안되고 등등의 주장이 나오게 되지요. 제가 보기에 금민씨가 사회적 공화주의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도 정확히 이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공화국의 일반 의지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즉 민주공화국을 수립하기 위해서는) 공화국의 일반 이익을 논리적으로 먼저 만들어내야 한다(즉 사회적 공화국을 수립해야 한다). <br />
<br />
그런데, 루소에게는 바로 이런 논리가 그의 이론의 곤란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는 것을 볼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일반 의지를 위해서는 (특수 이익들을 초월하는) 일반 이익이 수립되어야 하지만, 일반 이익을 수립하기 위해서는 평등주의적 입법을 통해 그것을 해야하는데, 평등주의적 입법을 하기 위해서는 다시 주권적 일반 의지가 전제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즉 논리적 순환 또는 무한 퇴행이 발생하는 것이지요(발리바르, '인민이 인민이 되게 하는 것: 루소와 칸트', [대중들의 공포], b출판사 참조). <br />
<br />
루소는 이러한 순환을 완전히 의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에 그의 이론에 (시민종교에 관련된) 일종의 이데올로기적인 봉합이 발생하게 됩니다. 그런데 금민 씨는 이러한 논리적 순환을 자신이 의식하고 있는지가 불분명한 것 같습니다. 사실은 그래서 자꾸 논의가 헛도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도 듭니다. <br />
<br />
이광일 교수의 문제제기는 제가 제대로 이해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바로 이 특수 이익들 사이의 갈등 또는 적대라는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금민씨가 주장하는 사회적 공화주의가 실제로 실천되어야 하는 것은 특수 이익들 사이의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전쟁터에서인데, 금민씨는 그것을 평등한 입법의 문제(이러저러한 국민복지 정책의 입법)로 해결할 수 있다고 단순히 믿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는 것이지요. 이광일씨가 '정치'를 자꾸 강조하는 것은 '정치'란 (적어도 제가 이해하기로는) 공통된 것 또는 합의라기 보다는 갈등과 적대를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br />
<br />
특히 문제가 계급투쟁의 문제로 제기될 때, 우리는 루소의 정치철학에 대한 비판가로서의 맑스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는 루소의 정치적 이상을 단순하게 거부한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보다는 그것의 물질적 조건들을 사고하고, 계급적대의 문제를 회피해서는 안된다는 주장을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br />
<br />
일단 전 이광일 교수의 문제제기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이는 단순히 금민씨의 입장은 잘못되었다는 말이 아닙니다. 저는 이것이 논의의 시작이 되길 바래봅니다. 왜냐하면 맑스의 입장도 또한 곤란들을 내포하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이기 때문이지요. '이행'이라는 문제에 있어 어떻게 목적론적 사고를 그만둘 수 있는가라는 문제는 아주 중요한 문제입니다. <br />
<br />
논쟁 자체는 여기서 일단락되더라도 논의와 고민이 많은 사람들에 의해 보다 광범위하게 이루어지길 바래봅니다.<br />
&#160;&#160;
------------------------------------------------------------------------------------
&#160;To 최원
&#160;http://www.sp.or.kr/sp2007/bbs/board.php?bo_table=5_2&amp;wr_id=729&amp;page=3&#160;
“금민씨가 주장하는 사회적 공화주의가 실제로 실천되어야 하는 것은 특수 이익들 사이의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전쟁터에서인데, 금민씨는 그것을 평등한 입법의 문제(이러저러한 국민복지 정책의 입법)로 해결할 수 있다고 단순히 믿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는 것이지요. 이광일씨가 '정치'를 자꾸 강조하는 것은 '정치'란 (적어도 제가 이해하기로는) 공통된 것 또는 합의라기보다는 갈등과 적대를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최원) <br />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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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수 이익’과 ‘일반 이익’의 구별을 차용한다면, ‘사회적 공화국’은 특수 이익의 전쟁터에서 일반 이익을 형성하는 것이라는 대답을 드립니다. ‘사회적 공화국’을 단순히 ‘입법의 문제’에 불과하다고 보고 ‘정치’는 ‘입법’과 무관한 수준을 가진다고 말하는 것은 법허무주의에 불과하다고 봅니다. 물론 ‘정치’는 ‘입법’만이 아니지만, ‘입법’의 수준으로 절충 또는 완성되고, 또한 ‘입법된 제도, 국가’ 속에서 재차 전개됩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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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소를 인용하면서 말씀을 전개했지만, 지적하신 문제는 매우 단순한 문제, 혹시 ‘사회적 공화주의’가 법물신주의, 제도물신주의, 국가물신주의에 지나지 않는가라는 문제라고 봅니다. 저는 거꾸로 그러한 혐의야말로 법허무주의, 제도허무주의, 국가허무주의에서 나온다고 봅니다. ‘사회적 공화국’은 제도적 목표이고, 그런 한에서 ‘정책’ ‘제도 대안’의 형태를 가져야 합니다. 그런데 ‘사회적 공화국’을 만들기 위한 운동은 ‘제도 대안’을 내놓은 것만을 의미할 수 없고 당연히 ‘제도’를 수립하기 위한 싸움을 요구합니다. 당연한 이야기 아닙니까?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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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소를 인용하신 부분에 대해서는 아래의 메모를 덧붙입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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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권(민주주의 국가)과 ‘주권의 전제조건’으로서의 공통성(공화정)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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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 씨가 파악하신 것처럼 저는 공화국을 민주주의적 주권국가와 동의어로 보지 않습니다. 공화국은 ‘공통의 것’(res publica)이며, 주권자들의 공통성은 민주주의적 주권의 가능조건이라고 봅니다. 저의 파악 방식에서, 공화국이냐 아니냐는 민주주의(주권국가)의 논리적 가능조건입니다. 공통성이 수립되어 있느냐 아니냐는 주권의 전제조건입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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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통성과 주권이라는 (국가에 대한 이와 같은) 이원적 이해 방식은 이미 아리스토텔레스에게도 폴리테이아와 개별 정체의 이원성으로 등장합니다. 근대 자유주의 역시 공통성과 주권이라는 이원 구조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공통성은 불가침적 자유권을 누리는 주체들로서 만인의 공통성일 뿐이지 만인의 사회적 조건의 공통성이 아닙니다. 로크도 이와 같은 공통성을 주권의 전제조건이라고 봅니다. 그런데 로크적 자유주의의 문맥에서 바로 그 공통성은 주권을 완성하는 방향이 아니라 제약하는 방향으로 발전합니다. 다수자에 의해 행사되는 주권이 자신의 전제조건을 파괴할 수 없다는 논리 구조 위에서 자유권의 주권제약적 성격이 규정됩니다. 그래서 자유권은 로크에게서 주권에 대한 방어권적인 이론으로 나타납니다. 그런데 자유권이 방어권적 구조로 변모하는 이유 역시 자유권을 주권의 가능조건인 만인의 공통성으로 보았기 때문이라는 점이 중요할 것입니다. 저는 자유주의의 은폐된 심층 구조에서도 공통성과 주권의 이중구조가 발견된다고 봅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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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공화주의이든, 자유주의이든, 근대 공화주의이든, 또는 사회적 공화주의이든, 이러한 이중구조 위에서 전개되는 정치철학이라고 봅니다. 다만 공화주의적 전통은 자유주의적 전통과 달리 주권의 가능조건인 공통성을 주권의 한계를 규정하는 요소, 즉 제약 조건이 아니라 주권을 비로소 완성시키는 조건으로 적극적으로 사고한다는 점이 다를 뿐입니다. 소극적 불침해가 전제 조건의 충족인가 아니면 적극적 형성이 전제 조건의 충족인가가 다르게 됩니다. 그리고 그와 같은 차이는 주권의 전제 조건을 어디에서 구하는가의 차이에서 발생합니다. 루소와 칸트 등의 근대 공화주의는 자유권이 주권의 전제 조건임을 수용하지만 자유권의 지반으로서의 공통이익이나 일체된 정서(루소) 또는 자신의 준칙을 정언명법적으로 보편화할 수 있는 이성적 인간(칸트) 에 눈을 돌립니다. 이는 자유권적 주체와는 달리 ‘일반 의지’(루소) 또는 ‘만인의 결합된 의지’(칸트)를 형성할 수 있는 주체, 즉 주권형성적 주체로서 정치적 주체의 발견을 뜻합니다. 방어권적 주체, 저항권적 주체를 넘어서는 근대 정치적 주체가 탄생함을 의미합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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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은 근대 정치적 주체에 대한 비판은 여러 각도에서 수행될 수 있습니다. ‘사회적 조건의 공통성’이 수립되어야 비로소 주권자의 주권이 실질적일 수 있다는 주장은 이와 같은 주체 비판의 매우 소박한 한 방식일 뿐일 것입니다. 여러 사람이 이 교묘하기 짝이 없는 근대 정치적 주체의 껍질 벗기기를 시도해 왔습니다. 저는 그 중에서 87년 이후 형성기에 있는 민주공화국인 대한민국이라는 맥락 속에서 현실 정치로 전화시킬 수 있는 하나의 관점을 공화주의 담론의 틀에서 발전시켰을 따름입니다. 저는 그것이 복지 체계와 주권의 연관성을 확보하는 공세적인 담론이며, 80년대 식 사회국가의 문제점을 극복할 수 있는 사고방식일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현실 정치적 전화라는 관심을 벗어나서 말하자면, ‘사회적 조건의 공통성’에 입각한 주체 비판은 포괄적인 주체 비판의 한 요소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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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공통성, 일반성, 동일성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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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하신 문제: “일반 의지를 위해서는 (특수 이익들을 초월하는 일반 이익이 수립되어야 하지만, 일반 이익을 수립하기 위해서는 평등주의적 입법을 통해 그것을 해야하는데, 평등주의적 입법을 하기 위해서는 다시 주권적 일반 의지가 전제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즉 논리적 순환 또는 무한 퇴행이 발생하는 것이지요(발리바르, '인민이 인민이 되게 하는 것: 루소와 칸트', [대중들의 공포], b출판사 참조).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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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소는 이러한 악무한을 잘못된 방식으로 해결합니다. 공통의 정서, 시민종교, 또는 자연 등의 장치가 그렇고, 그런 장치들은 루소와 집단주의, 파시즘의 연관까지도 후대의 비판자들이 추론하게 만듭니다. 참고삼아 칸트의 경우는 이와 같은 악순환이 사라집니다. 일반적 입법자로서의 인간 공통성이라는 칸트의 출발점은 만인의 주권자로서의 공통성이 만인의 실질적 주권의 전제조건이라는 동어반복 같은 구조, 즉 실질적 참정권의 가능조건은 형식적 참정권자로서의 공통성이라는 동어반복(또는 형식주의)에 빠지지만, 이는 주권의 전제조건 문제에 관한 언설로서는 근대 공화주의의 정점이라 할 수 있고 또한 근대 공화주의의 문제 지점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줍니다. 계약론의 논증구조의 탈역사화가 시작되는 기점이 칸트입니다. 이 이야기를 더 전개하지는 않겠습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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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에 공통성, 일반성, 동일성에 대한 다음의 설명을 첨부하겠습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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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근대 민주주의 국가의 구성논리&gt;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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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공통성의 원리’로서의 참정권(선거권/피선거권): 형식적 주권자로서의 모든 국민의 공통성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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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일반성(상징)의 원리’로서 ‘대표의 원리 I’: 형식적 주권자 중의 일부는 피선거권의 실현을 통해 일반적 주권자로 등장한다. 즉 국민(A,B,C... 등의 주권)=국회의원(Z의 입법권) <br />
<br />

3) ‘가상적 동일성의 원리’로서 ‘대표의 원리 II’: 치자와 피치자의 동일성, 즉 국회의원Z=국민A,B,C...등 <br />

&#160; <br />

'사회적 공화주의'는 1)에 대한 확장이고, 2)와 3)의 관계에 대해서 부분적 수정임(사회복지 체계의 관리에서 당사자 자치 원칙의 도입)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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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 <br />

&lt;상품세계의 구성논리&gt;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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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상품형식은 공통성의 원리: 상품A, 상품B, 상품C... 등의 사회에서 존재자의 공통성은 A, B, C...등이 모두 구체적 유용성과 관계없이 상품이라는 형식을 취한다는 사실. <br />
<br />

2) ‘일반성(상징)의 원리’로서 화폐의 수립: x량의 상품A, y량의 상품B, c량의 상품C... 등=10,000원 <br />
<br />

3) ‘가상적 동일성의 원리’로서 화폐상품: 10,000원=x량의 상품A, y량의 상품B, c량의 상품C... 등 <br />

&#160; <br />

현재까지 이루어진 수정은 모두 금지 조항임(인간의 장기나 성서비스 등은&#160;상품일 수 없다.) 상품사회에의 진입을 허락하지 않는 방식으로 상품세계 내의 내적 구성논리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음.&#160;<br />
&#160;
------------------------------------------------------------------------&#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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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민씨에게

<br />

http://www.sp.or.kr/sp2007/bbs/board.php?bo_table=5_2&amp;wr_id=730&amp;page=3&#160;
&#160;
답변 감사드립니다. 말씀드렸듯이 논쟁에 참여하고 싶은데, 개인적으로 바쁜 처지라서 그렇게 하질 못하고, 촌평만을 남겨놨었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사정은 마찬가지인데, 몇 가지 오해를 하시는 부분이 있는 듯하여 그것만 간단히 말씀드리는 것으로 답변을 대신하겠습니다. <br />
<br />
먼저 저의 입장을 "법허무주의, 제도허무주의, 국가허무주의"라고 보셨는데, 그건 저를 잘 모르시기 때문에 하신 오해인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짤막한 글에서 저의 전반적인 입장을 알아채기가 어려웠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잘 모르는 사람의 짤막한 글이었기 때문에 상대방의 입장을 상대방의 말들에 입각해서 좀 더 신중하게 판단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촌평에서 저는 제도란 무용한 것이라는 식의 주장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br />
<br />
제가 법허무주의, 제도허무주의, 국가허무주의자가 아니라는 것을 한눈에 보기 위해서는, 예를 들어, 제가 회원으로 있는 사회진보연대의 '민주노동당 관련 토론회'에 얼마전에 제출했던 저의 의견안을 보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래 링크를 쫓아가시면 됩니다.<br />
<br />
http://pssp.org/bbs/view.php?board=board&amp;id=13096&amp;page=2 <br />
<br />
<br />
제가 촌평에서 법허무주의, 제도허무주의, 국가허무주의를 주장한 것은 아니지만, '대중들의 봉기적 실천'으로서의 '정치'는 '제도적인 것'으로 환원될 수 없으며, 제도적인 것은 그러한 정치의 잠정적 결과나 수단을 이룰 뿐이라는 관점 하에서, 제도적인 것에 대한 정치의 '우위'를 우리가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 것이라고 말한다면 그렇게 읽을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제도적으로) 구성된 시민권'에 대한 '봉기적 시민권'의 우위를 주장할 필요가 있는데, 이는 당연한 말이지만 단순히 형성된 어떤 제도적 정치에 능동적으로 '참여'할 권리로 환원될 수 없습니다. '참여'를 부정한다는 것이 아니라, 봉기적 시민권은 그것을 훨씬 초과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정확히 저의 주된 논점은 아니었지요.<br />
<br />
사실 저는 루소 자신도 제도물신론자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렇기는 커녕 반대로 루소는 (사회계약의 언어로 표현되는) 혁명정치, 해방의 정치를 꿈꿨던 사람이었고, 이후 1789년에 일어난 프랑스 혁명에서 그 역사적 사례를 찾게되는 '부르주아적 공산주의'의 대표적인 이론가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자유가 곧 평등이며 평등이 곧 자유임을 명확히 주장한 최초의 이론가였지요. 그렇기 때문에 저는 앞의 촌평에서 그의 제도물신주의를 공격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평등주의적 입법'에만 의존하려는 시도를 비판했던 관점은 '공통성'인가 '적대'인가라는 질문을 통해서였지, 제도인가 제도의 무용성인가라는 질문을 통해서가 아니었다는 점을 잘 보시길 바랍니다.<br />
<br />
그러나 정확히 그렇기 때문에, 저는 루소의 이론이 여전히 하나의 모호성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을 주장하고 싶습니다. 그의 이론은 정확히 기존의 권력을 공격하는 데에 사용될 수도 있지만(이 주권권력은 국민의 일반의지에서 이탈한 권력이고 따라서 폐지되어야 한다!), 반대로 기존의 주권적 권력을 옹호하는 데에 사용될 수도 있는 것이었죠(이 주권권력은 국민의 일반의지에 기초해있으며 따라서 정당하다!). <br />
<br />
이러한 모호성은 물론 하나의 곤란임이 분명하지만, 단순한 이론적 결함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은 진정한 이론적 질문을 구성합니다. 그리고 그의 뒤를 이어나온 많은 이론가들은 이러한 그의 질문에 다양한 방식의 대답을 주려고 시도합니다. 칸트도 이 가운데 하나이고, 맑스도 이 가운데 하나라고 볼 수 있지요. <br />
<br />
맑스는 정치가 (시민이 자신의 '일반의지'를 실현하는) 자율적인 것이 아니라, 타율적인 것이라고 보면서 정치의 타자를 경제 또는 계급관계에서 찾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는 정치를 부정하려는 것이 아니라 정치를 다른 방식으로 사고하고 그것의 물질적 조건들을 분석하려는 것이었지요. <br />
<br />
이러한 분석을 통해, 아시다시피, 맑스는 정치의 핵심이 사실 '적대'에 있다는 점을 밝혀냈습니다. 사회란 인간의 공통된 본질(그것이 무엇이든 간에)에 기초해 있지 않고, 반대로 적대와 적대의 조절에 기초해 있음을 보인것이지요. 하지만 정치의 물질적 조건으로서의 계급적대를 분석함으로써 맑스는 루소가 꿈꾼 '평등한 자유'를 부정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필연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조건을 사고하려고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말하자면 루소적 '모호성'의 극복을 시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지요. '자유의 필연적(!) 생성'이란 어떻게 가능한가? <br />
<br />
<br />
제가 금민씨의 사회적 공화주의의 주장을 루소에게 연결시킨 것은 금민씨의 입장이 맑스의 변혁의 정치의 입장에 입각해 있는 것이 아니라 루소의 해방의 정치의 입장에 입각해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서였습니다. 반면 이광일 교수의 입장은 보다 맑스의 입장에서 문제제기를하려는 시도라는 점을 보여주려고 했고요. <br />
<br />
그렇기 때문에, 사실 '사람중심 탈배제경제'라는 구호가 정확히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금민씨는 그 구호가 창조한국당의 '사람중심 진짜경제'와 가치지향이 오버래핑하는 것이라고 파악하셨고 오버래핑이 문제는 아니며 구체적 정책의 차별성을 '비교'함으로써 말하자면 그 가치를 실현할 진정성을 누가 가지고 있는가를 드러내는 선거전략을 구사하는 것이 문제라고 말씀하셨지요.<br />
<br />
그런데 이광일 교수의 입장에서 보면 그 가치지향의 오버래핑 자체가 왜 일어나는지를 질문해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br />
<br />
다시 '사람중심 탈배제경제'라는 구호를 봅시다. 도대체 그 구호의 저 '사람'이란 누구를 말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지 않습니까? 적어도 우리는 계급적대를 분석하는 맑스의 입장에서는 저렇게 '사람'을 중심에 놓는 '인간주의'가 문제적으로 보일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포이에르바흐에 대한 맑스의 비판의 핵심중의 하나가 인간주의에 대한 비판임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적어도 좌파정당인 사회당의 가치지향이 문국현 자본당과 오버래핑하는 것은 단순한 선거 전술의 운용문제로 해소될 수 없는 문제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br />
<br />
그렇다면 모든 종류의 인간주의를 거부하자는 것이냐? 그렇지는 않습니다. 실천적 구호로서의 인간주의를 정세 속에서 활용할 수 있는 길은 얼마든지 열려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그렇게 정세 속에서 활용하기 위해서는 정세 자체를 분석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정세를 구조짓고 있는 적대들의 양상들을 분석해야만 합니다. 이를테면, 신자유주의적 금융세계화에 대한 분석을 해야만 합니다. <br />
<br />
더 나아가서 우리는 이러저러한 다른 종류의 적대들과 차이들을 분석해야 합니다. 계급적대 뿐만 아니라, 성적 적대, 지적적대, 인종적대 등을 물질적으로 분석해야 하는 것이지요.<br />
<br />
이 모든 이질적인 물질적 적대들을 단순히 '탈배제'라는 말 한마디로 해결할 도리는 없습니다. 각각의 적대들은 종별적으로 다른 해결방식들을 요구하고, 또 그것들의 복잡한 얽힘들은 다시 문제의 복잡한 해결들을 요구합니다. <br />
<br />
다시 말해서 복지정책 하나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지요. 복지 내지 재분배 정책이 필요 없다는 것이 아니라 말입니다. <br />
<br />
그런데 사회당의 강령을 보면, 모든 문제를 단순한 배제의 문제로 정리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고, 현재의 자본주의의 여러 관계들의 분석에 입각한 싸움의 전략 등은 전혀 없습니다. 물론 이론적 분석을 강령에서 구구절절히 하고 있으라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것은 강령을 넘어서는 것이지요. 하지만 현재의 사회당 강령은 그런 분석 없이 나온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고, 그런 면에서 정확히 문제적이라는 것입니다.<br />
<br />
<br />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리스토텔레스에서 칸트에 이르는 정치철학에서 공통성과 주권이라는 두 가지 원리가 작동한다는 말씀에 대해서는 여기서 제가 구구절절히 답변을 하기 힘들지만(정치철학 일반에 대한 논의로 번질 수 있기 때문에), 저는 다르게 생각한다는 정도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br />
<br />
특히 로크의 자유권이 주권에 대한 방어권으로 논의되는 것은 프랑스 혁명 이전에는 사실상 주권이란 왕이나 지배계급의 '특권'이었지 인민의 '권리'가 아니었고, 따라서 인민주권이라는 개념 자체가 불가능했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프랑스 혁명에 의한&#160;주권개념의 이러한 전도는 따라서 반대편에서 subject 개념의 전도를 동반합니다. 신민에서 주체로. <br />
&#160; <br />
(루소는 사실은 공화주의자가 아니라 직접민주주의자였고, 칸트야말로 공화주의자였지만, 그것의 핵심은 '법치'이고 그의 사고는 또한 능동적 시민과 수동적 시민의 구분--유산자, 백인, 남성만이 능동적 시민일 수 있다--을 재도입하는 것이었습니다. 칸트가 프랑스혁명의 열렬한 지지자였음에도 불구하고 테르미도르적이며, 칸트보다는 루소가 프랑스 혁명을 진정으로 대변하는 것은 이 때문이지요. 프랑스혁명은 민주정을 포함한 모든 정체에 대한&#160;진리로서의 민주주의를&#160;수립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때문에 전에 쓴 촌평에서 공화주의에 대한 해석에 대한 이론이 있을 수 있음을 암시했던 것입니다.)&#160;<br />
<br />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해서는 저도 할말이 많은데, 다음 기회로 미뤄야 겠군요. <br />
<br />
어쨌든 저의 주장의 요점은 맑스가 문제가 있다는 것은 분명하지만, 맑스가 문제가 있다고 루소로 후퇴하는 것은 좀 청산주의적으로 보인다는 것입니다. 이는 사회당이 과거의 대선 실패에 대응해서 이번에 들고나왔던 방식이 너무 청산주의적으로 보인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오히려 루소와 맑스를 모두 넘어설 수 있는 길을 추구해야 하지 않겠느냐 하는 것이 저의 주장인 것이지요. 그래서 더 광범위한 논의를 하면 좋겠다고 말했던 것이고요. <br />
<br />
감사합니다.&#160;&#160;&#160;
&#160;
-----------------------------------------------------------------------
&#160;
&#160;To 최원&#160;
http://www.sp.or.kr/sp2007/bbs/board.php?bo_table=5_2&amp;wr_id=742&amp;page=3&#160;
&#160;
복잡한 문맥의 지적 토론을 확산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단지 나는 루소로 후퇴했다고 생각한 적이 없으며, 루소의 사상에 대해서도 나는 루소의 주의주의, 정서의 공통성에 대하여 매우 부정적인 평가를 합니다. 공통성 중에서 가장 고약한 공통성이 정서의 공통성입니다. <br />
<br />
칸트의 능동시민/수동시민의 이중시민론, 제한선거권론의 문제는 그 사상 전체의 반동성으로 볼 것이 아니라 - 보통시민권이 실현된 경우조차 작동하고 있는 - 근대 시민의 구성조건 문제를 드러내는 근대 공화주의의 전범적인 한계로 보아야만 그 의의와 한께가 함께 드러날 것입니다. <br />
<br />
문제가 맑스의 문제라면 차라리 나는 루소고 당신은 맑스다고 허황된 대립을 만들지 말고, 당신과 나의 맑스의 문제로 좁혔으면 합니다. 나는 맑스에게서도 적대조차 공통성을 전제한다고 읽습니다.<!-- 수정 --><!-- 답변 --><!-- 테러 태그 방지용 --><!-- 테러 태그 방지용 -->
<br />]]></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96/70/cover150/8985022474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5022474</link></image></item><item><author>바라</author><category>대장정</category><title>곽노완 인터뷰</title><link>http://blog.aladin.co.kr/vara/3384214</link><pubDate>Mon, 01 Feb 2010 00:3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vara/3384214</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8101873&TPaperId=3384214"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626/46/coveroff/8958101873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 본문 우측 광고 끝-->기본소득 네트워크<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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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
&#160;
&#160;
&#160;
&#160;
&#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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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100129115332&amp;section=03&#160;
&#160;
&#160;"불안한 노후? 부동산 투기로는 해결 못 한다"<!--/DCM_TITLE--><!--KWCM_TITLE_END_1--> <br />

<h4>[인터뷰] '기본소득' 주장하는 곽노완 교수</h4>
<br />

기사입력 2010-01-31 오후 5:29:13&#160;<br />
&#160;
범죄자와 성인군자가 같은 자격으로 공동체의 의사결정에 참가한다. 간신히 글자만 깨친 사람도 노벨상 수상자와 똑같이 한 표를 던진다. 누구나 알고 있는 보통선거의 원리다.<br />
<br />
보통선거권이 민주주의의 핵심 원리라는 점은 이제 상식이어서, 이를 부정하는 사람이 오히려 이상하게 보인다. 그러나 이런 상식이 뿌리내린 지는, 채 100년도 되지 않는다. 이른바 선진국이라는 스위스조차 1971년에야 여성 참정권이 도입됐다. 100년 전에는 모든 사람이 똑같이 정치적 의사결정에 참가해야 한다는 주장이, 황당한 생각으로 받아들여지는 일이 흔했다.<br />
<br />
"누구나 투표권 갖듯, 누구에게나 기본소득 보장돼야"<br />
<br />
20세기가 보통선거권 확립의 역사였다면, 21세기는 기본소득 도입의 역사가 될 것이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지난 27일부터 29일까지 서강대에서 열린 기본소득 국제학술대회에 참가한 이들이다. 판 빠레이스 벨기에 루뱅대 교수, 수플리시 브라질 노동자당 상원의원, 블라슈케 독일 좌파당 연구위원 등 기본소득 관련 논의를 주도한 이들이 대거 참가한 행사다.<br />
<br />
기본소득(Basic income)이란, 모든 사회 구성원에게 조건 없이 일정한 소득을 보장해주는 제도다. 판단력이 부족한 사람이라 해서, 투표권을 제한하지 않는 것처럼 기본소득 역시 노동 여부와 관계가 없다. 부(富)를 창조하는 일에 전혀 가담하지 않았더라도, 평생 도박에 미쳐 지냈던 이라도 매달 일정한 소득을 보장받는다. 거꾸로, 넘치는 돈을 주체하지 못하는 갑부들에게도 매달 똑같은 돈이 지급된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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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핏 들으면, 황당하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에게 최저 생계비 이상의 소득이 무조건 보장돼야 하다는 주장은 이미 오래 전부터 나왔었다. 능력껏 일하고, 필요한 만큼 가져간다는 맑스주의자들의 주장과도 통하는 면이 있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예수의 주장과도 통한다. 예수는 아침부터 일한 사람, 저녁 늦게야 일을 시작한 사람에게 똑같이 1데나리온씩 나눠준 포도원 주인에 대해 말했었다. 생산에 덜 기여한 사람도, 기본적인 소득은 누릴 수 있어야한다는 뜻으로도 풀이되는 내용이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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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에서도 진보진영 일각에서 기본소득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관심이 크지 않은 편이다. 지난 27일부터 사흘간 진행된 기본소득 국제학술대회는 기본소득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대학생사람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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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이 기본소득을 받아야 하는 이유<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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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이들에게 최저 생계비를 줘야 한다는 주장은 이해가 된다. 그런데 굳이 돈이 필요 없는 부자들에게도 왜 똑같은 돈을 정부가 지급하지. 그 돈을 모아서 가난한 이들에게 더 많이 주는 게 낫지 않나'라는 의문도 생길 수 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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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소득 지지자들은 크게 세 가지 대답을 내놓는다. 하나는 '누가 가난한 사람인지'를 판정하는 일이 만만치 않다는 점이다. 판정 과정에 들어가는 비용이 오히려 낭비 요소라는 것. 판정 과정에서 각종 비리가 생길 가능성도 있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모든' 사람에게 기본소득을 보장하는 게 오히려 경제적이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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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는 기본소득을 받는 사람을 사회 구성원 전체가 아닌 일부로 한정하는 순간 생겨날 반발이다. 기본소득을 받지 않는 부자들 입장에서는 기본소득이 높아지는 게 못마땅할 수밖에 없다. 자신들에게는 아무런 혜택이 없는 일에 자신들의 세금이 쓰이는 셈이니 말이다. 그래서 부자들은 기본소득 수급자 수를 계속 줄이도록 압력을 넣게 된다. 이런 압력이 작동하면, 기본소득이 오랫동안 유지되기 힘들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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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편주의 복지를 택한 북유럽 국가에서 운영하는 공공병원을 예로 들면, 이해가 쉽다. 이들 국가에선 부자든, 가난한 이든 똑같은 병원을 가게 된다. 부자들이 병원 서비스에 불만을 느낀다면, 이들은 공공의료 전체를 강화하는 쪽으로 압력을 넣게 된다. 정부가 세금을 더 거둬들이는 것에 대해서도 불만을 제기하기 어렵다. 자신들만 이용하는 병원을 따로 세우는 게 불가능한 상황에서 취한 선택이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부자들만 이용할 수 있는 병원이 생겨난다면, 부자들은 공공의료 확충에 관심을 끊게 된다. 세금을 더 낼 의향도 사라진다. 결국 공공의료는 점점 축소되고, 질도 나빠진다. 기본소득 역시 사회 구성원 전체를 대상으로 하지 않으면, 같은 결과로 이어지리라는 것이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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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는 인권 차원의 접근이다. 모든 사람이 기본적인 생계를 보장받아야 한다는 것은 보편적 당위의 문제라는 논리다. 마치 선거권을 차별하지 않는 것처럼, 인간이라면 누구나 누려야 하는 권리라는 것. 따라서 어떤 식으로건 기본소득 수급자의 조건을 정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논리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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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파도 도입 주장하는 기본소득<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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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브라질 상원에서 시민기본소득법을 발의했던 수플리시 의원이 방한해 강연을 했다. ⓒ기본소득 국제학술대회 주최팀
        
    

하지만, 아직 한국에서 기본소득이라는 말은 낯선 게 사실이다. 이번 학술대회가 주목을 끈 것은 그래서다. 비정규직의 급격한 확대, 심각한 청년 실업, 그리고 누구나 느끼는 실업에 대한 공포 등에 대한 해법을 찾는 일에 힌트를 줄 수 있으리라는 것.<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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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브라질에서는 '시민기본소득법'이 지난 2002년 상원에서 만장일치로 통과된 뒤 하원을 거쳐 2004년 룰라 대통령의 승인을 받아 법적 효력을 갖게 됐다. 올해부터 점진적으로 시행될 예정인 이 법에 따르면, 브라질 국적자 외에도 5년 이상 거주한 외국인까지 모두 일정금액을 받게된다. 당시 법안을 발의했던 수플리시 상원의원은 이번 학술대회에 참가해서 "시민기본소득 제도 도입은 모든 사회 구성원이 자유롭고 존엄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가장 손쉬운 길"이라고 말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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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적인 신자유주의의 나라'로만 알려져 있는 미국에서도 기본소득이 도입된 주가 있다. 알래스카에서는 석유 매각대금의 일정액을 적립한 알래스카영구기금에서 나오는 수익을 모든 주민에게 일정하게 나눠준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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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서도 기본소득 도입 논의가 활발하다. 우파 성향을 띤 독일 기업인인 괴츠 베르너 지난 2006년부터 "소득세 등 모든 직접세를 폐지하고, 소비세를 인상하여 기본소득 재원으로 삼자"는 주장을 해 왔다. 기본소득 도입 주장이 반드시 노동자와 좌파 사이에서만 나오는 게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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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기본소득 도입을 주장하는 이들 사이에서도 다양한 입장 차이가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또 기본소득을 둘러싼 이론적 논의가 아직 충분히 성숙하지 않았다는 점도 보여준다. 실제로 일부 여성운동가들은 기본소득 도입이 성별에 따른 분업을 더 고착화 시킬 수 있다고 지적한다. 노동시장에서 여성이 겪는 차별를 없애려는 노력이 부족한 상태에서 진행되는 기본소득 도입 논의는, 자칫 가사와 육아를 여성이 전담하는 구조를 고착화시키는 효과를 낳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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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자세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 이번 학술대회를 준비한 곽노완 서울시립대 도시인문학 연구소 교수를 만났다. 경제철학은 전공한 그는 강남훈 한신대 경제학과 교수, 장석준 진보신당 상상연구소 연구기획실장, 안현호 대구대 일반사회교육과 교수 등과 함께 국내에 기본소득 관련 논의를 소개하는 데 적극적인 역할을 해 왔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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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상의료와 기본소득, 어느 쪽이 더 실현 가능성 클까"<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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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본소득 국제학술대회가 열린 서강대 다산관에서 만난 곽노완 교수. ⓒ프레시안(성현석)
        
    

프레시안 : 브라질 등에서 도입된 사례가 있지만, 기본소득은 아직 우리에게 낯선 게 사실이다. 그래서인지 실현가능성을 의심하는 이들이 종종 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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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노완 : 민주노총,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등에서 기본소득에 관심을 둔 이들이 많다. 사회당 역시 적극적인 활동을 하고 있다. 보수 진영은 물론이고 진보진영에서도 실현가능성을 의심하는 이들이 있다. 그런데 잠깐 생각을 돌려보자. 과거 대선에서 진보진영은 "무상교육, 무상의료"라는 공약을 내걸었다. 이런 공약과 기본소득 가운데 어느 쪽이 더 손쉽게 도입할 수 있을까. 당연히 기본소득이다. 모든 사람이 혜택을 누리므로, 적극적인 반발은 덜 할 수밖에 없다. 기본소득 도입을 전제로 시뮬레이션을 해보면, 전체 국민의 90% 가까이가 이익을 본다. 압도적 다수가 명백한 이익을 누리는 제도를 왜 도입하기 힘들다고 보는가.<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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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시안 : 모든 국민에게 현금으로 일정액을 나눠주는 제도가 실효성이 있으려면, 물가가 안정돼야 한다. 예컨대 서민에게 매달 100만 원을 나눠준다고 해도, 주거비나 대학등록금, 의료비 등이 덩달아 뛰어오른다면 별 효과를 거두기 힘들다. 만약 정부가 국민에게 지급된 기본소득 총액만큼 통화량이 늘리는 경우에도, 물가상승은 피하기 어렵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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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노완 : 기본소득 논의는 다양한 형태로 이뤄진다. 모든 사람에게 똑같은 돈을 조건 없이 정기적으로 나눠준다는 핵심 내용에 동의하는 이들끼리도 구체적인 실행방식에 대해서는 생각이 다를 수 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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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입장은 기본소득이 현금과 현물로 이뤄져야 한다는 쪽이다. 현물이 포함돼 있으므로 물가 인상에 따른 부담을 줄일 수 있다. 주거, 교육, 의료 등 삶을 유지하는데 필수적인 영역에 대해 공공성을 높여서 누구나 이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 역시 기본소득 논의 안에 포함될 수 있다. 실제로 일부 학자들은 국가 안보, 공교육 등을 모두 기본소득 범주 안에서 파악하기도 한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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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기본소득이 현금으로만 지급되는 경우에도 지급액을 물가와 연동해서 부작용을 줄일 수 있다. 통화량 증가 가능성에 대해 물었는데, 이 경우에도 꼭 효과가 없다고 보기는 힘들다. 정부가 국민에게 직접 돈을 지급하는 경우에 대해 시뮬레이션해보면, 국민들의 구매력이 늘어난 것으로 나온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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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들 걱정하는 게 부동산 문제다. 부동산 가격 인상으로 주거비가 폭등하면, 기본소득을 도입해 봤자 별 소용이 없는 것 아니냐는 걱정이다. 그러나 기본소득 논의를 조금만 뜯어보면, 이런 걱정은 사라진다. 기본소득을 위한 재원을 어디서 확보하겠나. 대표적인 게 부동산 투기로 인한 소득이다. 투기 소득을 세금으로 전액 거둬들이는 것은 기본소득 도입의 전제 조건이다. 기본소득 도입과 부동산 가격 안정은 서로 맞물려 있는 문제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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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분적으로 기본소득 제도를 도입해 시행 중인 브라질은 2010년부터 전 국민에게 이 제도를 도입한다. ⓒ프레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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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소득, 경제 활성화의 새로운 계기 될 수 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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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시안 : 기본소득이 도입되면, 기업가 정신도 활기를 띨 듯하다. 창업이나 발명 등 새로운 시도를 하려는 이들이 망설이게 되는 이유가 실패에 따른 부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떤 경우에도 기본적인 생계가 유지된다면, 많은 이들이 혁신을 쫓는 도전에 뛰어들 듯하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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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노완 : 물론이다.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다양한 형태의 기업이 나올 수 있다. 그래서 경제가 활성화되는 결과도 나올 수 있다. 구매력 증대로 인한 내수 활성화, 창업 증가로 인한 고용 증대, 도전 정신 고취로 인한 기술 혁신과 문화 생산 증가 등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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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밖에도 다양한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이번 학술대회에서 쟁점이 된 것 가운데 하나가 외국인에게 기본소득을 주는 문제다. 원칙상으로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기본적인 생계를 보장받아야 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제한이 불가피하다. 특정 국가에서만 거주자 전체에게 기본소득을 주다면, 몰려드는 외국인을 감당하기 어렵다. 브라질 등에서 5년 이상 거주한 외국인이라는 제한을 둔 것도 그래서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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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여기서도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얼핏 생각하면, 몰려드는 외국인에게 기본소득을 나눠주면 국가 재정 부담을 감당하기 어려울 듯하다. 그런데 제도를 면밀하게 다듬으면, 반대 결과가 나올 수 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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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선진국들이 공통적으로 겪는 문제가 저출산으로 인한 인구 부족이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정부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에서 외국인들에게도 기본소득을 개방하는 것은 인구 부족에 대한 한 해법이 될 수 있다. 또 잘만 활용하면, 국가의 위상을 높이는 데 활용할 수도 있다. 실제로 한국이 일정 기간 이상 거주한 외국인에게 기본소득을 보장한다면, 한국어와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을 크게 높일 수 있다. 이렇게 되면, 한국어 교육 등으로 인해 생겨나는 경제적 이익도 커진다. 이런 이익 가운데 일부를 다시 기본소득으로 돌리는 선순환 구조가 생길 수 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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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후 불안감 사라지면, 부동산에 집착할 이유 없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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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시안 : 문제는 재원 확보일 게다. 기본소득 도입 과정에서 반대 여론이 인다면, 결국 이 대목일 듯하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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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노완 : 부동산과 주식 등에서 생겨난 투기 및 불로소득을 거둬서 기본소득으로 나눠주는 게 핵심이다. 물론 이런 주장에 대해 소수 자산가 집단이 강력히 반대할 게다. 그러나 다수가 혜택을 누리는 제도를 소수가 반대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본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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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어떤 이들은 노후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부동산에 지나치게 집착한다. 늙고 병들어서 노동 수입이 사라진 뒤에는 불로소득이 있어야만 생활이 가능하다는 게다. 이런 이들에게 기본소득 도입은 새로운 환경을 열어준다. 늙어 죽을 때까지 기본적인 생활비가 보장되는 상황에서는 불로소득에 지나치게 집착할 이유가 없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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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현석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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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626/46/cover150/8958101873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8101873</link></image></item><item><author>바라</author><category>대장정</category><title>불매운동과 지젝</title><link>http://blog.aladin.co.kr/vara/3318911</link><pubDate>Wed, 06 Jan 2010 02:1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vara/3318911</guid><description><![CDATA[계속 바쁜 일들로 사정상 인터넷을 오래 못했더니&#160;
한창 불매운동에 관한 논쟁들이 오간 것을 뒤늦게 보게 되었다.&#160;&#160;실제로
빈곤한 주머니 사정 등으로 인해 어차피&#160;알라딘에서 책을 산지도&#160;반 년이&#160;한참 넘긴 했지만;;&#160;
기왕에 미리 알았더라면&#160;소극적인 선언일지언정 불매운동에 더 힘을 보탰으면 하는 생각도&#160;
든다.&#160;&#160;나야 뭐 알라딘의 '주요 멤버'도 아니고 해서 이런 군소리가 의미없을지도 모르지만..&#160;
내가 논쟁에 관련된 글들을 본 것은 1월 이후이기 때문에, 못 본 글들도 많고&#160;&#160;
불매운동이 흘러간 전체적인 내용도 잘 알지 못한다.&#160;&#160;
다만 로쟈님이 평소의 입장에 비추어봤을 때, 불매운동에 대한 로쟈님의&#160;&#160;
어떤 관망 또는 폄하의 반응은 별로&#160;&#160;놀랍지는 않은 것 같다.&#160;&#160;
소모적인 논쟁에 다시 불을 지필 필요는 못 느끼므로, 로쟈님에 대한 언급을 삼가면서,&#160;
로쟈님이 인용한 지젝에 대한 단상을 몇 자&#160;적어보려고 한다.&#160;
&#160;
...그러한 레닌주의적 정신에 충실할 때, 이라크 파병(연장)에 반대하는 것은 개량주의적 좌파들, 혹은 얼치기 좌파들의 행태이다(물론 반대하는 척할 수는 있다). 오히려 적극 찬성해야 마땅하다(그래야지 ‘자본주의와의 전쟁’도 빨리 끝장을 볼 게 아닌가?). 즉, 친미 수구주의자들과 같이 행동해야 하는 것. 그건 성매매 방지 법안을 놓고서도 마찬가지이다. 포주들과 같이 행동해야 하는 것. 비록 전혀 다른 이유/계산에서이긴 하지만.(해방공간에서 제출된 한반도의 신탁통치안에 대해서도 ‘반탁’에서 돌연 ‘친탁’으로 돌아선 공산주의자들의 행태도 이러한 관점에서 이해해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식의 ‘적과의 동침’은 레닌주의이건 마오주의이건 간에 A급 좌파의 기본 ‘전술’이다(수단으로서의 모든 ‘전술’을 정당화하는 건 목적으로서의 ‘전략’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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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에, 성매매/성접대에 반대함으로써 ‘접대 없는 자본주의’를 희구하는 태도는 ‘인간적인 자본주의’, 혹은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의 가능성을 용인하는 태도이다(‘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가 불가능한 만큼만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도 딱 불가능하다). 그것이 소위 개량주의적/타협적 태도이며, ‘카페인 없는 커피’처럼 ‘무해한 자본주의’(적어도 ‘덜 유해한 자본주의’)를 우리가 가질 수 있다고 믿는 태도이다. 그런 의미에서 개량주의적 좌파(가령, 제도권 정당으로서의 민주노동당)와 자유주의자(가령, 고종석) 간의 간격은 그리 크지 않은 듯하다(가령, 고종석은 ‘마약 없는 마약’ 마리화나의 합법화를 지지하며, ‘섹스 없는 섹스’ 사이버-섹스를 지지할 법하다. 민노당도 마리화나와 사이버-섹스를 지지하나?). 적어도, 근본주의적 좌파나 우파(수구반동)와 비교해본다면 말이다...&#160;&#160;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http://blog.aladin.co.kr/mramor/3306679)&#160;
&#160;
그러니까 이것이 불매운동 반대에 대한 변이 지젝의 이름을 빌어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인데,&#160;
지젝의 저런 이야기를 들을 때 의구심을 갖게 되는 것은, 과연 이런 식의 운동 방식이&#160;
현실 정치에서 가능한&#160;대안이 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160;&#160;
로쟈/지젝의 위 이야기가 갖는 맥락은&#160;아마도, 그의 말을 따르면,&#160;세계를 비난하되 자신은&#160;&#160;
거기에 빠져있는 좌파적 ‘아름다운 영혼’의 자기기만을 선택하느니,&#160;&#160;
보수주의자처럼 손에 피를&#160;묻히는 행위(act)가 낫다는 식의 이야기인 것으로 보인다.&#160;
그러나&#160;이러한 로쟈/지젝 식의 재담은&#160;어떤 '아카데믹' 좌파를 비판하는&#160;
주장이 될 수 있을지언정 현실적으로,&#160;실질적인 정치적 대안으로서&#160;
어떤 의미가 있는지&#160;나는 잘 모르겠다.&#160;&#160;
여러 사람들이 이미&#160;의문을 제기했지만, 가령 알 카에다, 탈레반의 테러와 자코뱅적 테러는&#160;&#160;
지젝에서 어떻게 구분되는가?&#160;기존의 상징적 좌표를 다시 짜는 행위와 단순한 테러는?&#160;&#160;
게다가 이라크 파병에, FTA에&#160;반대하는 것이 얼치기 좌파의 행태라면, 그것에 찬동하고&#160;
착취를 심화시켜서 자본주의와의 전쟁을 빨리 끝내는 것이 A급 좌파의 태도인가?&#160;&#160;
그런데 로쟈/지젝이 이야기하는 것이 단지 그것 뿐이라면,&#160;
지젝 식의 이야기가 낡은 파국론의 리바이벌하고 뭐가 다른 것인지, 혁명은 무지몽매한 pt들이&#160;
어떠한 개량주의와 인도주의의 환상에 속지 않도록 죽기 직전까지 얻어맞고 또 얻어맞아야만&#160;
일어나는 것인지?(인간은 엉덩이를 걷어차줘야만 비로소 일어난다!)&#160;&#160;&#160;&#160;&#160;
성매매에 찬성하고 전쟁을 찬성하며 착취의 수준을 무제한으로 끌어올렸을 때,&#160;&#160;
어떤 무환상의 '혁명적 주체'라는 것이 생겨나는 것인가? 과연?&#160;난 잘 모르겠다.
물론 김대중/노무현 같은 사람들보다 이명박이 대통령이 되었을 때 어떤 '전선'이 분명해짐은&#160;
많은 이들이 동의할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어떤 우스갯소리처럼&#160;&#160;
이명박을 하늘에서 운동권에게 보내준 천사라면서 칭송할 필요도 없다.
근본주의적 좌파와 우파가 위에서 서술된 것처럼 동맹할 수 있다고 할 때,&#160;&#160;
근본적인&#160;행위가 필요함을 주장하는&#160;위와 같은 말이&#160;&#160;
운동하지 않음을 위한&#160;알리바이로 기능하는 것은 한 순간이다.&#160;&#160;
더군다나&#160;&#160;비판보다는 긍정적인 대안이 필요하다라든지,
은행을 터는 것보다 은행을 하나 짓는 것이 낫다는 식의 이야기도,&#160;
원론적인 차원에서야 누가 반대할 게 없는 당연한 이야기이다. 그러나&#160;&#160;
이런 식의 태도는, 대안이 없으면&#160;비판하지 말라는 지배층의 논리로 변질되기 쉽고,&#160;
결국 비판 자체를 봉쇄시키는 효과를 낳기 십상이다.
알라딘 불매운동을 벌이면서, 알라딘보고 비정규직 문제 전체에 대한 해결이나, 또는 누군가가&#160;
비약하는 것처럼 자본주의 자체의 폐기를 요구하는 것은 당연히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160;&#160;&#160;
사안의 강도가 약하다든지, 아니면&#160;비교적 시급한 일이 아니라는 이유로&#160;&#160;
불매운동 자체가&#160;의미가&#160;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물론&#160;이런 전제도 매우 의심스럽지만.&#160;&#160;
아마도 운동의 단순한 실효성의 여부를&#160;넘어서,&#160;&#160;
불매운동을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환기 및 호소라는&#160;&#160;
보다 상징적인 차원으로도 받아들여야&#160;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160;&#160;
&nbsp;]]></description></item><item><author>바라</author><category>대장정</category><title>알라딘블로거 시국선언</title><link>http://blog.aladin.co.kr/vara/2993234</link><pubDate>Tue, 28 Jul 2009 10:0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vara/2993234</guid><description><![CDATA[&#160;
이명박 대통령님, 힘내세요! <br />
당신의 ‘배후’에는 우리가 있잖아요!&#160;<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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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국민들은 열렬히 기대하고 있습니다. 대운하 사업이다 4대강 정비 사업이다 외치며 죄다 땅만 파고 강만 엎는 대역사의 삽질 말고는, 시장 할머니 부여잡고 목도리 한 장 적선하거나 떡볶이 가게 순례하며 값싼 격려 인사나 던지는 휴먼 드라마와 같은 쇼 말고는, 대통령님이 우리에게 더 이상 보여주실 게 없는 건지. 우리 국민들은 오매불망 한 가지 걱정뿐입니다. 이 기막힌 쇼가 결코 끝나서는 안 될 텐데, ‘경제’를 외치면서, ‘중도’와 ‘서민’을 부르짖으면서, 정작 ‘경제’와 ‘중도’와 ‘서민’은 코빼기도 찾아볼 수 없는, 이 흥미진진한 코미디를 5년밖에 볼 수 없다는 건 너무 잔인한 것 아닐까, 우리 국민들은 노심초사 걱정하고 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님, 힘내세요! 당신의 배꼽 빠지는 개그를 응원하는 서민들과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정리해고자들이 있잖아요!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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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국민들은 매일 감탄하고 있습니다. 대통령님이 용산에서 타죽은 사람들과 떨어져죽은 사람들과 그들의 가족은 이제 ‘국민’이 아니라고, 단지 ‘불법시위자’이자 ‘범죄자’들일 뿐이라고 명확히 구분해주시니, 그 확실하면서도 공명정대한 국가정체성의 기준에, 죽은 자도 산 자도 모두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합니다. 우리 국민들은 팽팽한 긴장감을 즐기며 살고 있습니다. 언제 ‘국민’의 자리에서 ‘국민이 아닌 자’의 자리로 떨어질지 모르는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기에, 우리들의 삶이 아니라 당신들의 삶을 위한 ‘경찰국가’와 ‘법치주의’의 서슬 퍼런 짜릿함이 도처에 존재하고 있기에, 우리 국민들은 일찍이 민주주의 시대에는 미처 경험할 수 없었던 스릴을 잔뜩 만끽하고 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님, 힘내세요! 삼복더위를 싹 날려줄 당신의 납량특집을 응원하는, 너무나 무서워서 반년 동안이나 장례도 못 치르고 있는 죽은 이들과 그들의 가족이 있잖아요!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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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국민들은 불철주야 대통령님의 숙면을 기원합니다. 당신의 편안한 잠을 위해 청와대 주위를 전경 버스로 철통같이 꽁꽁 에워싸세요. 우리의 밤이야 어찌 되든 대통령님의 안온한 밤을 위해 당신의 충직한 개들을 항상 깨어 있게 하세요. 그리고 주위를 경계케 하세요. 그러면 그 개들이 당신을 대신해서 두 눈 똑똑히 보게 될 거예요, 진정 무서운 것이 무엇인지를. 그렇게 되면, 모든 충직한 개들이 그러하듯, 그들은 고개를 돌려 당신을 향해 짖게 될 겁니다. 그 안온한 숙면은 끝났다고, 주인님, 멍멍, 지금은 주무실 때가 아니에요, 그렇게 외치고 짖으면서 알려줄 겁니다, 당신이 정말로 귀하게 생각해야 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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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님, 힘내세요! 다른 사람 때문이 아니라 바로 당신 때문에 잃어버린 10년이니까요. 누가 뭐래도 당신 때문에 잃어버린 평화고 당신 때문에 잃어버린 민주주의니까요. 대통령님은 우리 국민들이 과거 죽음을 무릅쓰고 얻었던 그 모든 것들을 단 1년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거꾸로 되돌리는 기적을 보여주신 분이니까요. 이명박 대통령님, 제발 힘내세요! 당신의 ‘배후’에는, 이렇게 우리 국민들이, 든든하게 버티고 있잖아요! 타죽지도 않고 떨어져죽지도 않고, 이렇게 꺼지지 않는 촛불처럼 서서, 계속 당신을 지켜보고 있잖아요! 당신이 사랑하는 악법들보다 더 중요한 것은, 당신이 사랑하지 않는 국민들의 민심이며, 당신이 사랑하는 대운하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당신이 사랑할 수 없는 역사의 거대한 강물일 테니까요. 힘내세요, 대통령님! 당신의 ‘배후’에는 우리가, 이렇게 든든한 국민들이 있잖아요!<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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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item><item><author>바라</author><category>대장정</category><title>쌍용차 노동자 가족 죽음은 살인</title><link>http://blog.aladin.co.kr/vara/2981128</link><pubDate>Wed, 22 Jul 2009 12:5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vara/2981128</guid><description><![CDATA[http://www.newscham.net/news/view.php?board=news&amp;nid=53982&#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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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1>쌍용차 노동자 가족 죽음은 살인&#160;</h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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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2>[투고] 죽음으로 내몰리는 쌍용차 노동자들을&#160;</h2>
<h2>&#160;</h2>
<h2>&#160;더 이상 보고만 있을 수 없다</h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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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60; / 2009년07월20일 15시34분<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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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차 가대위 여성동지를 죽음으로 내몬 것은 분명 쌍용자동차 자본가계급과 정부<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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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와 쌍용자본가계급은 6명의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을 죽음으로 내몰더니, 오늘 또 다시 파렴치하게도 쌍용자동차 노동자 동지의 가족인 가대위 동지를 살인했다. 상하이자본에게 모든 기밀과 기술 및 이윤을 떠넘겼고,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이 만들어낸 1조 5천억 원이라는 이익금을 도용했던, 과거 쌍용자동차의 비리의 주범, 박용태 쌍용자본가계급은 기만적이게도 쌍용자동차 법정관리인으로 재등장하여 60일이상 목숨을 내놓고 투쟁하고 있는 노동자계급을 또 다시 기만하면서 자신의 과거의 비리를 숨기고 혼자 살아남기 위하여 수십만의 노동자들과 그 가족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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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 가대위 여성동지를 죽음으로 내몬 것은 분명 쌍용자동차 자본가계급과 정부이다. 2009년 7월 20일 아침 9시경, 박용태 쌍용자본은 ‘법’을 앞세우며 또 다시 공권력을 대동하여 공장을 진입함으로써 도장공장의 불바다의 위험속에 내몰린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을 또 다시 위협하였고, 결국, 쌍용노동자가족인 가대위동지를 죽음으로 내몰았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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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경찰은 쌍용공장위에 3개의 헬기를 띄워 검거농성중인 노동자들 위를 낮게 날면서 위협하였고, 공장정문을 비롯한 모든 출입구에 전투경찰과 사복경찰을 수겹으로 둘러싸고 공권력을 투입하겠다고 강하게 위협하였다. 사실상 이미 공권력은 공장내에 배치가 된 상태이고, 이 공권력의 비호를 받고 있는 사측은 본관건물에서 바로 그 뒷건물인 도장공장에 있는 노동자들을 향해 폭력을 휘둘렀다. 이러한 위급하고 긴급한 상황속에서 쌍용자동차 가대위 여성동지는 남편인 쌍용자동차 노동조합 정책부장 이재진을 비롯한 노동자들이 화염속에 둘러싸인 것을 보고 죽음을 택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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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자동차 가대위 동지들의 눈물겨운 투쟁<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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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쌍용자동차 가대위 동지들은 눈물겨운 투쟁을 벌여왔다. 가대위 동지들 중에는 해고당한 남편, 소위 죽은 자의 아내도 있었고, 산자의 아내도 있었다. 오늘 사망한 여성동지는 바로 노동조합 정책부장 이재진의 아내로 가대위 활동에도 열심히 투쟁하던 동지였다. 가대위 동지들은 공장점거파업 초기에는 평택시내를 돌면서 남편들의 투쟁의 정당성을 홍보했고, 평택시장을 찾아가서 호소도 하였고, 평택시를 돌며 무릎이 닳도록 삼보일배를 하면서 남편들의 투쟁을 지지하였다. 또한 전국의 투쟁사업장과 집회를 찾아다니며 남편들의 투쟁의 정당성을 호소하였다. 쌍용자동차 가대위 동지들은 지난 7월 2-3일, 공장내에 공권력이 들어오면서 공장내부에 들어오지 못하게 되자, 전국의 투쟁사업장과 집회장소를 돌면서 죽음에 내몰린 남편들의 투쟁을 돕기위해 눈물겨운 투쟁을 해왔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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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대위 동지중의 한명이 “이제 마음도 진정되고 안정이 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울면 남편들이 걱정을 하기 때문에 이제는 울지 않습니다”라고 말한 것이 바로 엊그제 였는데, 정부와 자본의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에 대한 무자비한 탄압은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가족마저 죽음으로 내몰았던 것이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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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발악을 하고 있는 쌍용 자본가계급과 정부에게 이대로 물러설수는 없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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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인면수심을 노동자의 힘으로 박살내자<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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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정부의 비호속에, 쌍용자본가계급은 왜 이렇게 날뛰는 것인가?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은 알고 있다. 바로 박영태를 위시한 비리의 주범들이 그들의 비리를 노동자들에게 덮씌우려고 강력한 노동자탄압을 선택했다는 것을 말이다. 박영태는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려 그의 비리를 가리려 하지만, 이미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고, 그를 가증스러워할 뿐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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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정부는 공권력을 투입하면서 실제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을 탄압하는 주범인데도 불구하고, 마치 소위 “쌍용자동차 사태에 관여하지 않겠다“라고 거짓말을 하고 있다. 바로 오늘 쌍용자동차 공장에 공권력이 대대적으로 투입되던날, 이윤호 지식경제부 장관은 "지금과 같이 세계 자동차 시장이 위축돼 있는 상황에서, 시장경쟁력이 떨어지는 쌍용자동차의 생존 가능성도 대단히 낮다고 보고 있다"고 하면서, "노조의 공장 점거로 생산이 중단된 현재 상황이 7월말 이후까지 계속되면 쌍용차는 파산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사측과 협력업체의 판단"이라면서 사측과 협력업체를 대동하여 정부의 인면수심을 그대로 드러내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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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7명의 사람이 죽어나가고, 도장공장의 화약고를 안고 있는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에게 모든 책임을 묻고 있으며, 정부가 나서지 않겠다는 입장만을 되풀이 하고 있는 것이다. 이명박의 인면수심이 모든 정부각료들에게 전염되었는가? 정부는 마치 한 몸처럼 이렇게 파렴치한 언행과 폭력을 자행하고 있는 것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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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정부와 자본가계급은 왜 이렇게 한편으로는 ‘파산’이니 ‘노사공멸’이니 하는 말로 노동자들을 위협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공권력을 투입하여 노동자들이 점거하고 있는 공장을 악착같이 탈환!하려고 하는가? 바로 그들의 위기 때문이다. 그들이 더 이상 갈 곳이 없기 때문이다. 정부와 자본가계급이 미쳐 날뛸수록 그들은 벼랑끝으로 다가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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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의 노동자계급 동지들이여, 지금 당장 연대의 투쟁을 시작합시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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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점거투쟁중인 쌍용자동차 공장안은 참혹하다. 음식물, 식수, 전기, 의약품이 차단되었고, 외부와의 모든 출입이 차단되었다. 정부는 쌍용 자동차 노동자들의 인권을 짓밟다 못하여 인간대우조차 안하고 있다. 모든 생필품 공급마저 끊기고 있는 쌍용자동차들에게 남은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오직 하나뿐인 노동자 자신이지만, 그들은 그들 자신들을 서로 붙들고 매고 의지하면서 자본에 대한 투쟁을 만들어내고 있다. 현재 60일이 넘는 투쟁의 과정동안 쌍용자동차 노동자계급은 자본의 온갖 협박과 회유에도 불구하고, 굳세게 투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에게 남은것은 투쟁밖에 없다. 그들은 그들의 몸을 불살라 투쟁을 하고 있는 것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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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시간에 전국의 노동자계급 동지들이 쌍용자동차로 몰려오고 있다. 그러나, 더 모여야 한다. 전국적인 연대투쟁이 매일 매일 지속적으로 거대하게 이루어져서 자본가계급과 정부를 압도하여, 그들이 굴복시켜야 한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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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전국노동자계급의 연대투쟁만이 해답이다. 이것만이 죽음으로 내몰린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을 살릴수 있는 길이다. 전국의 노동형제들이여, 점거투쟁중인 쌍용자동차 공장주변에 수십만의 거대한 노동자들의 띠를 만드는 것만이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을 살리고, 전국의 노동자들을 해방시키는 길이다.]]></description></item><item><author>바라</author><category>대장정</category><title>기만적인 비정규직법 개악 시도</title><link>http://blog.aladin.co.kr/vara/2969854</link><pubDate>Fri, 17 Jul 2009 12:5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vara/2969854</guid><description><![CDATA[
    
        
            기만적인 비정규직법 개악 시도
        
        
            노동신축화와 경제위기 책임전가를 위한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이전투구
        
        
            <br />
            정책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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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명박 정권의 비정규직법 개악 시도<br />
            <br />
            7월 1일 오후 한나라당이 기습적으로 환경노동위원회(환노위) 전체회의를 열어 비정규직법 개정안 상정을 시도했다. 그러나 이날 회의는 환노위 위원장을 포함한 야당의원의 불참한 가운데 이루어져 법안상정의 적법성 논란이 되고 있다. 비정규직법 개정안은 일단 6월 30일 국회에서 처리되지 못함에 따라 7월 1일부터 기존의 비정규직법이 예정대로 시행된다. 한나라당, 민주당, 선진과창조의모임은 30일 밤늦게까지 합의를 시도했으나 최대 쟁점인 법 시행의 유예기간을 두고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br />
            <br />
            2006년 11월 30일 노무현 정권 당시 여당인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은 비정규직법을 합의해서 처리했다. 일반적으로 비정규직법이라고 하면 이때 제․개정한 「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기간제법)과 「파견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을 함께 일컫는다. 2007년 7월 1일부터 비정규직 사용기간(2년) 제한을 내용으로 하는 기간제법이 시행되었다.<br />
            <br />
            그런데 이명박 정권에 들어서 비정규직법 개정 논의가 정부에서부터 불붙기 시작했다. 2008년 10월 이영희 노동부 장관이 비정규직법이 시행되면 “2009년 7월부터 100만 명이 넘는 근로자가 불안한 상태에 들어간다”고 말하며 고용대란설을 설파했다. 올해 3월 12일에는 노동부가 &lt;비정규직 고용안정 대책&gt;을 발표하여 현행 개정안이 윤곽을 드러냈고, 3월 13일에 비정규직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3월 30일에는 기간제와 파견제 사용기간을 2년에서 4년으로 연장하는 비정규직법 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했고, 4월 1일 국회에 제출되었다. 4월 임시국회에서 여야 간의 이견으로 상정이 무산된 비정규직법 개정안은 6월 19일 환노위 3당 간사와 민주노총, 한국노총이 참여하는 비정규직법 5인 연석회의에서 논의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연석회의는 6월 29일까지 9차례 열렸으나 아무런 성과 없이 결렬되었다. <br />
            <br />
            한나라당은 이 과정에서 기간제 사용기간 연장 대신에 법 적용을 유예하는 안을 당론으로 확정하고 제시하였다. 한나라당은 법적용 유예기간을 초기에는 3년으로 정했다가 협상이 진행되면서 2년으로 변경하였다. 협상 마감시한이 코앞에 닥친 6월 30일에는 선진과창조의모임에서 낸 절충안(300인 이상 사업장은 현행법 즉시 시행, 300인 미만 200인 이상 사업장은 법 시행 1년 유예, 200인 미만 5인 이상 사업장은 최대 1년 6개월까지 법 시행 유예)까지 수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한나라당이 7월 1일 환노위에 기습 상정한 것은 비정규직법 시행을 3년 유예하는 기존의 안이다.)<br />
            <br />
            민주당은 기존법 시행 및 보완을 주장했다. 보완책으로는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기금 대폭 증액을 내세웠다. 하지만 협상이 진행되면서 비정규직 차별시정제도 강화 등 법 시행을 위한 제도적 보완을 위해 ‘6개월의 준비기간’을 둘 수 있다고 밝히며 사실상 6개월 유예로 입장을 정리했다. 또한 노동계의 동의를 전제로 5인 이상 300인 미만 사업장의 경우 1년 유예도 가능하다고 밝혔다. <br />
            <br />
            연석회의에 참가한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은 유예를 전제로 한 회의였다면 애초부터 참석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여야 3당을 비판했다. 한국노총은 기존법의 시행 및 보완을, 민주노총은 근본적인 개정을 요구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비정규직법 시행 유예를 골자로 하는 개정안을 강행해 통과시킬 경우 즉각 총파업에 돌입하겠다고 밝혔다. <br />
            <br />
            <br />
            비정규직법 논란이 계속되는 이유<br />
            <br />
            2009년 7월 비정규직법 시행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무엇보다 2007년 7월 이후 근로계약을 체결한 노동자를 “2년을 초과하여 기간제 근로자로 사용하는 경우 그 기간제 근로자는 기간을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을 체결한 근로자로 본다”는 조항 때문이다. 즉 이들은 정규직이나 무기계약직으로 자동 전환되어 7월부터 계약기간이 2년이 넘은 노동자를 일방적으로 해고할 경우, 근로기준법상 부당해고로 간주된다. 기간제법의 사용기간 2년 제한이 처음으로 적용되는 것이 올 7월부터인 것이다. 그런데 정부는 이러한 조치가 시행될 경우 경제위기 상황에서 정규직 채용에 부담을 가진 기업들이 동일인을 정규직으로 전환해 채용하기보다는 계약 만료 후 다른 비정규직을 고용함으로써 대량 해고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고 강조하고 있다. 정부는 구체적으로 2009년 7월 기준으로 2년을 초과하는 비정규직의 규모를 100만 명 내외로 추산하고 이들의 고용대란을 강조하며, 이를 비정규직법 개정의 주요한 근거로 삼고 있다.<br />
            <br />
            운동진영은 정부의 이러한 우려를 법제정 당시부터 예견했다. 우리는 비정규직법이 2년마다 기간제 노동자들의 주기적 해고를 가져오고 2년 한도 내에서 기간제 노동자를 무제한 사용할 수 있는 ‘비정규직양산법’, 즉 비정규직보호법이 아니라 비정규직악법이라고 비판했다. 사용사유 제한이 아니라 사용기간 제한을 골간으로 비정규직법이 만들어지면서 실질적인 비정규직 양산 억제와 정규직 전환이 불가능한 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당시 기간제법은 ①관행으로 인정되었지만 비정상적인 고용이었던 비정규직을 정상적인 고용형태로 인정하였다, ②사용사유 제한이 아니라 사용기간 제한으로 해고 후 재고용이나 파견 및 용역과 같은 간접고용으로의 전환을 통해 비정규직 양산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 ③광범위한 적용 예외사유를 두어 법망의 사각지대에 있는 노동자들의 경우 어떠한 보호도 받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파견법의 경우 ①파견대상업무를 대폭 확대하였다, ②파견기간을 2년까지로 연장하고 고령자의 경우에는 이마저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였다, ③불법파견의 경우에도 2년을 넘기지 않으면 직접고용의무가 없어 사실상 불법파견을 조장한다는 등의 문제가 지적되었다. 따라서 2006년 당시 기간제법 제정과 파견법 개정으로 구성된 비정규직법 제․개정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보다는 비정규직의 사용을 공식화, 일반화해 노동신축화를 제도화하고 이에 대한 일부 보완조치를 마련하는 데 초점을 맞춘 것이었다.<br />
            <br />
            비정규직법의 문제점은 경제상황이 급변하면서 더욱 부정적인 방향으로 드러나고 있다. 이미 경제위기로 비정규직의 해고가 광범위하게 발생하고 있다. 자영업자와 임시 일용 노동자의 실직이 늘고 있으며, 중소제조업체에 대한 고용유지지원금 지원규모도 크게 증가했다. 한계 상황에 부딪힌 쌍용자동차, GM대우 등의 대기업에서도 강제 휴업으로 사실상의 비정규직 우선 해고가 발생했다. 소리 소문도 없이 해고가 진행되는 영세사업장의 경우 그 정도가 더 심하다. 한편 정부가 운영을 책임지는 공공기관과 공기업의 경우도 공기업선진화나 경영효율화를 내세우며 비정규직 해고에 앞장서고 있다. KBS는 경영효율화를 이유로 비정규직 노동자 420명 중 18명에 대해 6월 30일 계약해지를 통보했으며, 331명을 자회사로 이관하고 89명에 대해 계약해지할 계획이다. 한국토지공사는 6월 30일 145명에 대해 계약해지를 통보했고, 한국산재의료원(28명)과 보훈병원(23명)도 최근 계약해지를 통보했다. 정부의 역행적 정책기조와 유례없는 경제위기 속에서 기간제 사용기간 제한이 실제로 적용되는 올 7월 이후 비정규직의 연이은 해고사태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한 연구에 따르면 2009년 7월 사용기간 2년 제한조항이 적용되는 기간제 노동자가 최대 3.2만 명으로 추산되고, 7월 이후 매달 최대 3~4만 명이 해당될 것이다.<br />
            <br />
            <br />
            노동신축화와 비정규직 문제 책임 전가<br />
            <br />
            그렇다면 이명박 정권이 비정규직법의 개정을 추진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먼저 현 정권은 기간제 사용기간 제한을 무력화함으로써 기간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비정규직을 사용할 수 있게 해달라는 자본의 손을 들어주려고 한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나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와 같은 자본가 단체는 비정규직 문제가 정규직 노동시장의 경직성에서 비롯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정부는 정규직 노동시장에 대한 개혁, 즉 노동신축화는 추진하지 않은 채 비정규직의 사용기간만을 제한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정규직에 대한 ‘과보호’를 완화하고 임금 및 고용의 신축성을 제고할 것을 가장 근본적인 대책으로 요구하고 있다. 이에 더해 기간제 사용기간 제한은 폐지하거나 최소한 계약당사자의 합의로 연장할 수 있도록 개정할 것을 요구한다. 자본은 비정규직의 자유로운 사용과 정규직의 고용안정에 대한 공격을 핵심적인 과제로 삼고 있는 것이다. <br />
            <br />
            7월 1일부터 기간제 사용기간 제한이 적용되기 때문에 여야뿐만 아니라 민주노총 등 운동진영도 이 문제에 집중해 온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정부의 &lt;비정규직 고용안정 대책&gt;(2009.3.12)을 보면 파견법 개정을 통해 파견근로의 고용기간도 4년으로 연장하고, 파견법 시행령 개정을 통해 파견대상 업무를 확대할 계획이다. 또한 기간제법 시행령을 개정하여 단기간 노동자의 기간제한 예외사유도 확대할 예정이다. 국회에서 관련 법률 개정이 여의치 않더라도 손쉬운 시행령 개정을 통해 비정규직의 사용을 확대하고 제도화하겠다는 것이다. 이 중 노동권의 불모지대인 파견제를 확대하려는 시도는 매우 심각한 문제다. 즉 현재 기간제를 쟁점으로 하는 비정규직법 개정은 이명박 정권의 노동신축화 정책 중 하나일 뿐이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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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이명박 정권은 비정규직법을 개정하지 않으면 대량해고가 발생한다고 협박함으로써 여론을 선도하고 국민적 압박 수단으로 삼았다. 노동신축화라는 본질을 숨겼다. 또 해고를 막기 위해서 기간제 사용기간 제한을 연장하거나 유예해야 한다는 프레임을 설정함으로써 비정규직의 사용 자체는 당연시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용기간이 연장되면 사용자는 계약해지를 통해 그 기간 안에 비정규직을 자유롭게 사용하고 해고할 수 있다. 오히려 제도적으로 비정규직의 사용을 고착화하는 결과가 발생한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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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용기간 연장이나 적용유예 조치를 하지 않을 경우 비정규직의 고용대란이 발생할 가능성을 강조함으로써 이명박 정권은 앞으로 벌어질 비정규직 고용문제의 책임을 떠넘길 수 있는 유리한 입지를 선점했다. 이미 한나라당은 비정규직법이 노무현 정권 때 여야합의로 도입된 법이라는 것을 강조함으로써 민주당을 압박하고 있으며, 대안 없는 비판으로 향후 벌어질 비정규직 해고에 대해 책임을 져야한다고 강조한다. 또한 현행법의 사용기간 제한 연장이나 유예를 반대하는 민주노총에 대해서도 비슷한 입장을 취할 수 있다. 실제로 조선일보는 7월 1일자 기사에서 “양대 노총 조합원 중에서 비정규직 비율은 소수에 불과하며, 따라서 비정규직 문제가 양대 노총에게는 '발등의 불'이 되지 못한다. … 결국 비정규직 문제의 근본 원인은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는 정규직 노조'라는 것이 정설이다”며 노동계에 비판의 화살을 돌렸다. 지배세력과 자본은 이러한 논리를 동원해 현재 벌어지고 있는 경제위기의 책임을 다른 세력에게 떠넘기고 자신은 양의 탈을 쓰려고 한다. 즉 지금과 같은 구도에서 이명박 정권은 비정규직법 개정을 통해서 현재 벌어지고 있는 해고와 실직 실태를 호도하고, 노동신축화를 확대하는 일거양득의 결과를 얻을 수 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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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정규직법 논란의 맹점을 넘어서자<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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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다면 비정규직법 개악저지를 외치며 강경저항의 자세를 취한 민주당의 태도는 어떻게 봐야 하는가. 심지어 환노위 위원장인 추미애 의원은 노동계와의 합의 없이는 어떤 법안도 상임위를 통과시키지 않겠다고 밝혔다. 먼저 노무현 정권 때 그들이 비정규직법 논의를 주도적으로 제기하고 여야합의하에 통과시켰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당시의 수많은 우려와 비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법안을 강행통과 시켰던 세력이 지금에 와서 악어의 눈물을 흘리면서 노동계와 비정규직의 벗인 양 핏대를 세우고 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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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당의 이러한 태도변화는 무엇 때문인가. 무엇보다 민주당은 비정규직법 대응을 통해 노무현 사망 이후 이른바 개혁세력을 결집시키는 데 필요한 사회적 이슈를 선점할 수 있다. 특히 이명박 정권 들어서 노정 대화 통로가 완전히 차단된 민주노총을 이용하여 공조 모양새를 취함으로써 노동계와 비정규직 노동자를 대변하는 서민 민생 정당이라는 이미지를 얻을 수도 있다. 민주당은 이러한 행태를 작년 광우병 촛불집회나 그 이후 민생민주국민회의와의 활동, 그리고 최근 ‘MB악법’ 대응과정에서 이미 여러 번 연출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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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민주당이 실제로 비정규직법 협상 과정에서 보여준 태도는 정략적이고 기만적일 뿐이다. 사용기간 연장이나 유예는 절대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 돌연 6개월 유예 수용으로 바뀌었고, 노동계의 입장을 들먹이며 1년까지도 경우에 따라 수용가능하다고 밝혔다. 마치 자신은 공평한 사회적 합의를 추구하는 세력으로 묘사하면서 정치적인 부담은 노동계에 떠미는 꼴이다. 더 근본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이번 비정규직법 논란 과정에서도 민주당은 기존 비정규직법에 대한 문제제기를 인정하지 않고 현행유지와 정규직전환기금 증액으로 문제를 무마하려고 했다. 그러나 사용사유 제한 없는 사용기간 제한으로는 비정규직의 반복적인 해고와 외주 용역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결국 민주당은 2006년의 입장으로 되돌아갔고 다만 여당에서 야당으로의 상황변화에 따라 자신의 포지션을 바꿨을 뿐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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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정규직 문제에 맞서기 위해서는 ‘현행법의 개악’이라는 구조에 갇혀서는 안 된다. 자본과 정권이 던져놓은 조삼모사에 빠지는 꼴이기 때문이다. 비정규직법 개악 저지를 넘어서 현재 광범위하게 자행되고 있는 해고와 계약해지를 막고, 고용 유지를 위해 정부에게 실질적인 대책 마련을 요구해야 한다. 구체적으로 첫째, 쌍용자동차 투쟁과 같은 정리해고 저지를 위한 싸움, KBS 등 비정규직에 대한 계약해지와 해고에 맞선 싸움 등 현재 벌어지고 있는 투쟁의 공간에서 유의미한 성과를 남길 수 있어야 한다. 실제로 자행되고 있는 해고와 노동권 박탈을 사회적 이슈로 만들고 막아야 한다. 둘째, 취약 부문부터 시작되어 확산되고 있는 해고에 맞서기 위해서 ‘한시적 해고중단 및 고용안정 특별법’과 같은 제도적 요구를 내걸고 전 노동자의 고용안정을 위한 투쟁 전선을 형성해야 한다. 이러한 싸움이 결합될 때 이명박 정권의 노동신축화, 노동권 박탈, 경제위기 책임전가에 맞서 투쟁전선을 세우고 비정규직법의 개악 시도를 막아낼 수 있다.<br />
            
        
    
]]></description></item><item><author>바라</author><category>대장정</category><title>빈곤층 소득보장 정책의 쟁점과 대응과제</title><link>http://blog.aladin.co.kr/vara/2969835</link><pubDate>Fri, 17 Jul 2009 12:4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vara/2969835</guid><description><![CDATA[
    
        
            빈곤층 소득보장 정책의 쟁점과 대응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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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유진 | 조직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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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사회 빈곤 현황<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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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MF 이후 대량 해고와 비정규직화는 절대적 빈곤인구의 증가와 더불어 ‘일해도 가난한’ 노동빈곤층의 증가로 이어졌다. 이에 가난의 문제가 특정한 소수의 문제로 머물 수 없게 되면서 빈곤 문제가 전사회적 과제로 떠올랐다. 초유의 경제위기를 맞는 지금, 실업 증가와 임금 하락 추세와 함께 빈곤율도 증가하고 있다. 2007년에 보건사회연구원과 노동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절대빈곤율, 즉 한 달 소득이 최저생계비에 미치지 못하는 절대빈곤가구의 비율은 2003년 10.2%에서 2006년 11.36%로 증가했다. (절대빈곤율은 2006년에 발표된 통계가 가장 최근 것이다.) 또한 도시지역 상대빈곤율, 즉 OECD 기준에 따라 중위소득 50%에 미치지 못하는 가구의 비율은 2000년 13.51%에서 2006년 16.42% 기록했다. 도시 이외의 가구들까지 포함하는 2006년 전국가계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국 상대빈곤율은 18.45%에 달했다. 2007년 도시가구 기준 상대빈곤율이 17.5%로 또 증가했으니 현재 전국적으로는 5명 중에 1명꼴로 상대적 빈곤상태에 처해 있다고 추정할 수 있다. 최근 상황을 보여주는 몇 가지 통계를 살펴보자면, 올해 5월 소득분배 불균형수치인 지니계수가 0.325로 증가했다. 이는 수치 발표 이래 최고 수준이다. 또 2009년 1분기 소득 5분위 배율(최상위층과 최하위층의 소득 격차)이 8.68배로 2000년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br />
            지난 5월 기획재정부는 고용불안과 자산 감소로 인해 앞으로 빈부격차는 더 심해질 것으로 예상했다. 일차적으로는 임시 일용직 등 비정규직의 대량해고, 영세 자영업자의 도산으로 서민층의 근로소득이 급감하는 것이 원인이다. 그런데 격차를 더욱 확대하는 것은 근로소득보다는 금융소득이다. 대출금이 많은 서민층이 작년 말 주식, 부동산 등 자산시장이 급락하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자산을 내다 팔아 손실을 확정한 반면 상위층은 연초 저점에서 주식과 부동산을 매입해 자산증식 효과를 보게 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br />
            비정규직, 실업, 영세자영업자의 실질소득 감소와 일자리 상실은 갑자기 빈곤의 상태로 내몰리는 인구의 증가로 이어진다. 주로 어린이, 한부모 가정, 노인, 장애인 등 소득수준이 낮거나 노동 능력이 없는 취약 계층은 가장 큰 어려움에 처한다. 민중을 빈곤의 벼랑으로 내모는 해고와 구조조정을 중단하고 긴급한 어려움에 대해 최소한의 소득을 보장하라는 것은 생존권적 요구다. 이명박 정부도 인정한 것처럼 경제위기로 인한 신빈곤층 증가에 대한 대책이 시급하다. 하지만 ‘일할 수 있는 사람에게는 일자리가 복지’라는 이명박 정부의 ‘능동적 복지’는 생산 감소와 기업 도산 등 경제위기의 여파로 인해 일자리도 제공하지 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긴급 추경예산 편성을 통한 지원 이외의 아무런 대책도 내놓지 않고 있다. <br />
            더구나 기존 소득보장정책의 광범위한 사각지대와 엄격한 심사 기준 문제가 여전히 남아 있는 상황에서 한시적이고 제한적인 긴급 지원책들은 신빈곤층만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빈곤층의 문제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이명박 정부의 재정정책 역시 큰 우려를 낳는다. 2008년 복지 지출의 비중이 낮아졌고 집행률도 낮아졌을 뿐만 아니라 향후 예산편성에서도 사회복지 지출 구성비가 더 낮아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br />
            이 같은 상황에서 사회운동은 현행 소득보장 정책의 현황과 문제점을 짚어보고 요구를 마련해야 한다. 이 글은 빈곤층에 대한 소득보장 정책으로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와 기초노령연금의 현황과 요구를 중심으로 살펴보고, 최근 빈곤대책으로 제기되고 있는 복지재정 확대와 기본소득 보장 등 운동진영의 요구들을 검토할 것이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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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득보장 정책 현황과 쟁점<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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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에서 빈곤문제의 부상과 소득보장 정책<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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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에서 빈곤층 소득보장 정책의 필요성이 제기된 것은 외환위기 이후다. 대량 실업, 노숙 급증, 신용카드 남발로 인한 금융채무불이행자(신용불량자) 500만 명 양산 등 빈곤 문제의 사회적 충격이 정부의 책임 있는 정책을 강제한 것이다. 빈곤문제가 강력한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한국의 사회안전망 부실이 심각하다는 OECD의 문제제기가 맞물려 김대중 정권 시절인 2000년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가 시행되었다.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는 빈곤선 아래에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소득을 보장해 주는 제도로 소득보장 정책의 주요 틀이 되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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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존의 생활보호법(1961년 12월 제정, 2000년 폐지)이 빈곤을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고 시혜적 태도를 취했던 데 비해 기초생활보장제도는 ‘국민이 빈곤에 대한 권리로서 최저 생활을 보장받아야 한다’는 수급자의 법적 권리를 보장하는 제도이자 한국에서 ‘빈곤선’을 공식적으로 표명했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의의가 있다. 하지만 비현실적인 최저생계비 수준과 엄격한 선정기준, 소득발생유무와 관계없는 추정소득부과 등으로 소득보장효과가 미미하고 광범위한 사각지대가 존재하는 등 문제가 매우 많다. 특히 조건부 수급 조항을 두어 최소한의 생활도 불가능한 일자리를 조건으로 수급권 여부를 결정한다. 이는 단순히 이 제도만의 문제가 아니다. 질 낮은 일자리 창출과 각종 노동유인정책을 통해 노동의 질을 저하시키고 사회정책의 위상을 낮추려는 노동연계복지가 신자유주의 사회정책의 핵심방향이기 때문이다. 먼저 빈곤층 소득보장 정책의 가장 기본적 틀인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문제점을 구체적으로 살펴보고 개선 요구와 발전방향을 검토해보자.<br />
            <br />
            빈곤층 소득보장정책으로서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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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는 연령, 근로능력과 관계없이 가구소득 및 재산 환산액이 최저생계비 이하인 가구에 대하여 소득을 보전해주는 정책으로 노동시장 정책이 혼합되어 있다. 급여 내용은 생계급여, 주거급여, 의료급여, 교육급여, 해산급여, 장제급여, 자활급여 7종이 있고, 급여액과 수급자의 소득인정액 총합이 최저생계비 이상이 되도록 하는 것이 급여의 원칙이다. 또 근로능력이 있는 수급자에게는 자활사업 참여를 조건으로 생계급여를 지급하며 부양의무자가 있는 경우에는 부양의무자에 의한 보호가 선행되어야 한다. 다른 법령에 의해 보호받을 수 있는 경우 타 법령에 의한 보호가 선행되어야 한다. 현재 이 제도가 포괄하고 있는 인구 범위는 국민의 2~3%인 153만 명 수준이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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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문제점<br />
            <br />
            ① 비현실적인 최저생계비 수준과 폭넓은 사각지대<br />
            최저생계비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수급자 선정과 지원수준이자 의료급여, 모부자가정 선정기준, 노인장기요양보험의 무료대상자 기준 등 여타 사회복지서비스에서도 기준이 되는 ‘한국의 공식적인 빈곤기준선’이다. 현재 최저생계비는 절대빈곤개념의 계측방식인 전물량방식으로 3년 주기로 계측한다. 비계측년에는 기존 최저생계비에 물가상승률을 반영해 갱신한다. 2009년 최저생계비 수준은 아래와 같다. <br />
            <br />
            1988년부터 계측되고 1999년부터 실제 공적부조에 적용된 최저생계비의 상대적 수준은 점차 낮아지고 있다. 1999년 근로자가구 소득(4인 가구)의 38.2%였다가 2008년 30.2%로 하락했다. 최저생계비는 대부분의 사회복지서비스 선정기준으로서 작용하기 때문에 최저생계비가 낮은 수준으로 계측되는 것은 사회복지 대상의 축소와 폭넓은 사각지대의 존재를 의미한다. 책정 방식에 있어서도 전물량방식의 문제점, 연구자의 자의적 판단 문제, 계측을 하고 나서도 예산에 맞춰 재조정할 수 있는 문제 등 최저생계비 수준을 하락시키는 요인들이 많다. 최저생계비 수준이 낮아지면서 절대적 빈곤율은 상대적으로 낮게 측정되고 있다. 이로 인해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보장수준은 2000년 시행 이후 2007년까지 2.8~3.2% 수준에 머물러, 절대빈곤층조차 보장하지 못하고 있는 수준이다. 상대적 빈곤율과 소득격차가 점점 커지고 있고 경제위기 하에서 늘어날 빈곤층의 문제를 고려한다면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보장 수준과 대상 확대가 중요한 시점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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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② 부양의무자 부양능력 판별기준의 문제<br />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사각지대를 만드는 주요 문제 중의 하나는 부양의무자 기준과 재산기준이다. 현재 최저생계비 미만의 조건에 있지만 재산기준 및 부양의무자 기준으로 수급을 받지 못하는 비수급 빈곤층이 3.7%로 수급자 2.8~3.2%보다 많다. 현재 부양의무자 기준은 수급자의 1촌 직계혈족(부모, 자녀)과 직계혈족의 배우자(며느리, 사위)로 규정되어 있다. 수급신청 탈락자 가구 중 25.7%가 부양의무자 기준에 의해 탈락되지만 이들 중 56.2%는 부양의무자로부터 사적이전소득을 전혀 받지 못하고 있으며 이들 대부분이 장애인, 노인, 한부모 가정, 소년소녀 가정 등 취약계층인 것으로 나타났다.<br />
            <br />
            ③ 재산기준 및 자동차기준의 문제<br />
            재산기준 및 자동차기준도 수급권 박탈의 주요 사유다. 현행 제도에서 기본재산액 기준이 2004년 수준대로 동결되어 있기 때문에 생활수준 및 물가상승률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또 수급자의 생활수준 파악을 위해 도입한 소득 인정책제도(소득+재산의 소득환산액)는 전세금, 통장, 자동차 등이 모두 포함되어 수급권이 박탈되는 문제가 있다. 특히 다른 기준에 부합하더라도 자동차가 있으면 수급권을 박탈당하는 상황이 허다하다. 몇 달 전 화제가 되었던 ‘봉고차 모녀’가 바로 그 사례다. 보육료 지원, 장애수당, 의료보장, 사회서비스 지원, 시설지원 서비스 등에도 자동차기준은 똑같이 적용되고 있다. 한국 전체 가구의 59.4%가 자동차를 보유하고 있는 점에서 자동차를 일반재산이 아니라 보고 과도한 소득환산율을 적용하는 것은 현실에 맞지 않다. <br />
            <br />
            ④ 추정 소득의 문제<br />
            추정소득은 수급자들의 실제소득 발생여부와 상관없이 소득파악이 용이하지 않은 가구원(일용직, 파트타임, 노점 등)에게 부과하는 것이다. 실업상태에 있는 수급자는 물론 근로조건유예자(근로경험 있는 중증장애인, 3세 미만의 유아를 탁아소에 맡긴 경험이 있는 한부모 가정의 부모) 등에게도 자활을 강요하거나 추정소득을 부과하며, 경제 불황으로 인해 실업상태인 수급자들에게 추정소득을 부과해 이를 생계급여에서 제외하고 지급한다. 실제 수급당사자가 임금활동을 하고 있는지, 소득수준이 얼마인지 고려하지 않고 임의로 추정소득을 부과해 수급권을 박탈하거나 생계급여를 낮추는 것이다. <br />
            <br />
            ⑤ 노동을 강제하는 조건부과 및 노동자의 노동권 박탈 문제<br />
            조건부과 기준은 사회복지사가 연령, 외형상의 건강상태, 전직 및 자격 등을 기준으로 책정하는 것으로, 자의적인 근로능력판단으로 노동할 수 없는 수급자에게 노동을 강제하거나 추정소득을 책정해 생계급여를 낮추는 문제가 심각하다. 만성질환이 있어도 진단서를 제출할 수 없거나, 정신장애와 같이 장애진단을 받을 수 없는 경우, 3세 이상 미취학 아동의 부모 등에게도 노동을 강제하는 것이다. 또 사회적 일자리나 공공서비스 일자리와 같은 수준의 노동을 하지만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행사하지 못하도록 법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br />
            <br />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개선을 위한 요구<br />
            <br />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대상선정과 지급기준이 되는 최저생계비는 그 비현실성으로 인해 ‘국민이 건강하고 문화적인 생활을 유지’라는 말이 무색하게 광범위한 사각지대를 형성하고 있다. 지금까지 많은 운동세력들이 이에 대한 개선을 요구해왔는데, 핵심은 애초 법의 취지대로 보장성 확대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이다. <br />
            장기적으로는 상대적 빈곤선을 도입하고 그에 동반하여 최저생계비 인상해야 하며(중위소득 50%, 평균소득 50% 등 여러 기준이 제기되고 있다), 그와 연동해 기초법 대상자를 확대하고 수급액을 인상해 절대 빈곤층조차 포괄하지 못하고 있는 제도의 보장성을 확대해야 한다. 단기적으로는 절대 빈곤 상태에 놓여있지만 부양의무자 기준, 재산기준, 추정소득 조항으로 인해 발생한 사각지대를 해소하기 위해 독소조항을 폐지, 완화해 가야 한다. <br />
            ‘근로연계복지’라는 방향 하에서 생계급여 수급 조건으로 자활사업 참여가 강제되는 문제, 즉 조건부 수급 조항은 폐지되어야 한다. 자립지원의 원칙에 근거한 조건부 수급 제도는 생계급여를 줄이려는 시도에 그칠 뿐 실제 자활을 통해 적정한 소득을 얻기 어렵고 자활 참여 이후 수급자의 자립을 위한 기반이 전혀 없는 현실에서 그저 강제에 그칠 뿐이다. 나아가 복지와 노동을 연계해 노동시장 신축화에 부응하고 수급 대상을 줄여 재정을 절약하고자 하는 시도에 반대하며 제대로 된 일자리와 사회정책의 확대를 요구해야 한다. <br />
            덧붙여 기초법은 수급대상이 되면 7가지 급여를 모두 받을 수 있고, 탈락되면 아무 것도 보장받을 수 없는 구조다. 운동진영은 그간 급여 분리, 선별적 확대를 요구해 왔는데, 노무현 정부 시절부터 정부 차원에서 급여분리를 시도하고, 자활급여는 별도의 법이 제정되기도 했다. 사각지대 해소와 보장성 확대를 위한 운동진영의 취지와는 달리 정부의 급여분리는 생계급여를 긴축적으로 운영하려는 의도가 다분하기에 그간의 요구를 재정비하기 위한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br />
            <br />
            노후소득보장으로서 국민연금과 기초노령연금<br />
            <br />
            한국의 노인 빈곤현황은 매우 심각한 수준이다. 한국 노인 가구의 상대적 빈곤율은 2006년 기준 45%로, OECD 국가 평균인 13%에 비해 3.5배다. 최근 보도에 따르면 2009년 한국의 노인자살률이 OECD 회원국 중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의 65~74세의 자살률은 64.9명으로 가장 낮은 그리스의 4.9명에 비해 13배나 많은 수치이며 나이가 들수록 자살률은 더욱 상승하는 양상을 보였다. 한국의 정년퇴직 연령이 선진국보다 낮고 연금과 같은 복지 혜택도 상대적으로 미흡한 것이 그 주요 원인이다. 또 노동을 통한 소득 이외에 생존을 위한 사회보장이 취약한 현실에서 노인 부양의 책임을 전담해왔던 가족(여성의 이중부담)이 위기에 처하자 사태는 더욱 심각해진 것이다. 경제위기가 노인 인구에게 더욱 가혹한 영향을 미치는 만큼 노후 소득보장정책으로서 국민연금과 기초노령연금의 현황과 발전방향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 <br />
            현재 노후 생활의 보장과 소득재분배의 역할을 하는 공적연금으로서 국민연금의 발전방향 논의는 ①사각지대에 대한 대안 ②기초노령연금과 국민연금을 통합적인 노후소득보장체계로 발전시켜나가기 위한 논의로 정리해볼 수 있다. 이명박 정부는 ‘국민연금과 기초노령연금의 통합 및 재구조화 논의를 위한 소위원회’를 꾸리고 기초노령연금의 발전방향과 국민연금 관계설정에 관한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주된 내용은 ①기초노령연금을 기초연금화하면서 국민연금을 소득비례로 전환하는 방안 ②기초연금 급여율을 높이고 대신 국민연금 급여율을 낮추는 방안 ③기초노령연금의 보험료를 동결시키는 방안 등이라 한다. 이는 지금까지의 연금개혁 흐름을 이어가는 논의라 볼 수 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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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적연금으로서 국민연금의 문제점<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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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민연금은 전 국민의 가입을 원칙으로 하지만 실제 사각지대는 광범위하다. 전체 노동자 중 50% 가량이 고용형태(불안정노동층, 자영업자, 전업주부, 비공식부분 노동자 등) 상 제한으로 가입하지 못하거나, 보험료 부담으로 가입을 꺼리고 있다. 또 가입이 가능해도 소득이 낮아 납부하지 못하는 실질적 사각지대는 전체 가입자의 42%(2007년)에 달하며, 특히 지역가입자의 절반이 이에 해당한다. 국민연금의 50% 급여율은 모두 40년 가입을 조건으로 하는데, 불안정한 고용기간으로 실제 보장수준은 20%에 그치며 제한된 수의 노인만이 수급자가 되면서 보편적 사회보장정책으로서의 의미가 무색하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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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 논의되고 있는 연금개혁 방향에 따라 소득에 따른 비례적 보장 형태로 연금 체계가 변화되면 국민연금이 가졌던 소득재분배 기능이 소멸하고 나아가 연금 민영화의 길이 넓어지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이는 공적인 노후소득보장정책으로서 국민연금의 기능을 없애는 것이다. 또 현재 쌓여있는 기금의 크기가 거대해 기금 운용을 둘러싸고 논란이 일고 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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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초노령연금의 현황과 문제점<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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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초노령연금은 2003년 연금개혁 국면에서 한나라당의 당론으로 제시되면서 등장했다. 이는 공적연금의 위상을 낮추고 노인인구의 지지를 획득하기 위한 전략이었다. 사회운동은 기초노령연금의 기초연금으로의 발전이라는 입장을 제시했다. 2007년 연금개혁 국면에서 정부는 고령화, 재정안정화 등을 근거로 기초노령연금을 도입하면서, 국민연금의 보험료는 높이고 보장성을 낮추는 방향의 연금개혁을 단행했다. 기초노령연금의 도입에 따라 현재 65세 이상 노인의 70%를 대상으로 월 8만 4천 원 가량의 급여를 지급하고 있으며 기금의 규모는 3천억 가량이다. <br />
            기초노령연금 도입이 노인인구라는 사각지대를 해결할 수 있는 교두보를 마련하였고 공적연금의 효과가 조기에 발휘되어 국민연금의 안정적 지지기반 마련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기대가 있다. 하지만 2007년 당시 국민연금에 대한 대중적 지지도와 운동의 열세로 기초노령연금 도입은 국민연금의 후퇴를 동반했다. 앞으로 진행될 연금개혁 방향도 기초연금 확대 과정에서 국민연금의 소득재분배 기능을 약화시키는 맞바꾸기식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이에 대한 사회운동의 대응에는 다층적인 고민이 필요하다.<br />
            현행 기초노령연금의 가장 중요한 문제점은 광범위한 사각지대와 낮은 보장성 문제다. 국민연금급여가 노후의 소득에 반영되었을 경우 노인 빈곤율은 41.1%, 기초노령연금까지 반영되었을 경우 36.2% 수준에 머물러 현재 급여수준은 노인 빈곤을 해결하는데 크게 기여하기 어렵다. 기초노령연금이 국민연금 A값의 10%로 상향된다고 하더라도 노인 빈곤율은 크게 줄지 않는다. 노인의 상당수가 매우 빈곤한 상태에 있기 때문에 급여수준을 상향해도 노인의 생활상태를 일부 개선하는데 그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국민연금 퇴직연금 등 사적연금의 성숙에 따라 기초노령연금은 장기적으로 수급비율을 축소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노인인구의 증가에도 불구하고 기초노령연금의 수급비율은 오히려 축소될 전망이다. <br />
            기초노령연금 수급자격 선정에 있어서도 개선이 요구된다. 기초노령연금의 수급자격 선별요건은 소득 및 자산에 근거하는데 실제 소득을 가지고 있는 노인의 비율은 매우 낮기 때문에 수급자격 결정의 가장 중요한 요인은 자산이 될 것이다. 여타 사회보장제도와 마찬가지로 생활에 직접적 도움이 될 수 없는 자산 때문에 수급 받을 수 없는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소득조사가 주요 선별요건이 되어야 한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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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초노령연금의 쟁점과 발전 방안<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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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 기초노령연금 발전전망에서 주된 쟁점은 급여수준보다는 급여 대상이다. 기초노령연금을 향후 노인 100%에 제공하는 ‘보편적인’ 공적연금-기초연금으로 발전시키자는 요구가 진보신당, 여성운동계 등에서 제기되고 있다. 기초연금으로의 발전 문제에 있어서 한정적 재원을 어떻게 운용할 것인가는 중요한 쟁점이다. 노인 인구 100% 대상 기초연금으로 발전시키자는 주장의 근거는 장기적으로 공적연금의 혜택과 정당성을 확대하자는 것이다. 각종 감세정책 철회, 재정기조 변경을 통한 재원마련으로 현재 ‘용돈’ 수준으로 지급되고 있는 기초노령연금 보장수준도 높이자는 안이다. 하지만 현재 한국의 취약한 노후소득보장제도의 상황, 경제위기 하 정부 재정적자 위험 가능성, 또 부자감세나 4대강 정비사업 등 정부의 재정정책 방향을 철회하기 위한 투쟁의 형성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 한정된 재원을 모든 노인인구에게 나누어 주기는 어렵다. 용돈 수준의 급여를 모든 노인에게 제공할 것이 아니라 현재 기초노령연금의 문제점 개선을 통해 더 빈곤하고 필요한 이들에게 집중하는 전략이 고려될 수 있다. <br />
            또한 기초연금으로의 발전 요구가 지금까지의 연금개혁 과정과 현재 이명박 정부의 개혁 방향에 대한 정세적 대응인지 검토해야 한다. 연금개혁 과정에서 기초노령연금 대상범위 확대, 기초연금으로의 전환이 국민연금의 소득재분배 기능 삭제, 소득비례연금으로의 전환 등 국민연금의 위상을 사적 보험으로 전락시키는 방안과의 맞바꾸기가 현실적으로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장기적으로 소득재분배 기능을 소멸하는 국민연금 제도의 근본적 전환이기 때문에 단순한 제도적 변화를 넘어서는 문제다. 지금처럼 진행된다면 빈곤층 노인의 급여수준 하락, 고소득층의 급여 수준 상승, 제도 간 중복수급을 금지한다는 단서로 인해 빈곤할수록 각 제도들을 통해 받게 되는 급여의 총합이 감소하는 등 전반적인 빈곤층의 소득보장 정책이 후퇴되는 심각한 문제들이 발생할 것이다.<br />
            국민연금과 기초노령연금의 통합적 운영(이를 통한 공적연금의 후퇴)에 문제를 제기하고 현재 국민연금과 기초노령연금이 실질적인 노후 소득보장 기능을 할 수 있도록 요구를 마련해 가야 한다. 현재적으로는 2028년까지 합의된 급여수준(A값의 10%) 상향을 앞당기자는 요구를 통해 위기에 처한 노인 인구에 대한 보장성을 확대해가며, 이미 지적된 문제들의 개선 요구를 통해 공적 연금의 소득재분배 기능의 강화하자는 요구가 그 출발점이다. 공적연금으로서 국민연금의 정당성(소득재분배 기능) 강화라는 방향성 하에 제도적 보완 또는 이행도 고민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현재 ‘의회전술’이 압도적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 연금관련 대응에서 공적연금 강화를 위한 사회운동의 실천방안들(논의주체 형성을 위한 의제설정, 일상적 소재와 매개의 계발)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또한 국민연금 기금 운용에 있어 위험성을 높이는 금융투자원리의 연기금 활용방안에 대한 문제제기와 함께 공공부문, 사회복지부문에 대한 투자 확대, 부과방식으로의 장기적 전환 등 제출된 방안을 검토하고 공동의 투쟁을 형성하는 과정을 통해 공적연금의 전망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조직해야 한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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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 시기 소득보장정책(기본생활보장)에 관한 운동세력의 요구와 쟁점<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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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제위기로 인한 빈곤문제의 확산에 대해 많은 요구가 제출되었다. 민주노총을 비롯한 운동세력의 요구 중 해고금지 및 고용보장, 사회서비스 등 공공분야 일자리 창출, 실업급여 확대 등은 경제위기 하 노동자의 생존 보장을 위한 공통적 요구다. 또 최저생계비 인상과 기초생활보장제도의 개선, 연금개악 저지를 통해 기존 소득보장 제도의 사각지대를 해소하고 보장성을 확대하는 문제에 있어서도 공감대가 있다.<br />
            소득보장 관련 운동세력의 요구안 중 쟁점을 형성하고 있는 것은 과감한 재정 방안을 제출한 진보신당의 요구, 일하지 않아도 생존할 권리로서 기본소득 보장을 제시하는 사회당의 요구다. <br />
            진보신당은 2008년 12월 &lt;1,008만 명 기본생활 보장을 위한 3대 개선안&gt;을 발표하여 기초연금 도입(모든 노인에게 월 30만 원 지급), 장애연금 도입(중증장애인 월 25만 원, 경증장애인 월 12.5만 원 보장),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개선(재산기준 완화와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로 372만 명 추가해 509만 명 보장, 중앙정부 부담률을 77.38%에서 100%로 확대) 세 가지를 주요하게 요구했다. 여기에 필요한 재원은 총 38조 6,110억 원이다. <br />
            사회당은 모든 국민에게 일정한 기본소득을 보장하라는 요구를 제출했다. 연령별로 차등을 두어 계산했을 때(1인당 연 400만 원~1,000만 원) 2009년 필요한 기본소득 합계는 284조 원인데 재원은 각종 부가세, 이자소득세, 배당소득세, 지대소득세 등을 인상하고 국방비 절감으로 마련하자는 제안이다. <br />
            경제위기 하에서 빈곤의 심화가 사회복지 확대를 공격적으로 요구할 수 있는 계기이므로 과감한 재정 확충과 제도 신설을 요구하자는 주장이 있다. 하지만 운동 주체의 형성이 부족하고 조직된 노동자운동의 투쟁이 부재한 상황에서 원칙적인 확대 요구는 자칫 선명성 경쟁에 그칠 수 있다. 요구는 있으되 운동은 없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또한 ‘기초노령연금 도입 과정에서 국민연금의 후퇴’와 같이 지배세력에 활용된 경우가 많다는 점에서 우려가 크다. 실제로 경제위기 하에서 재정 확충은 제약이 큰 문제인데다 정부 재정기조를 바꾸는 것 또한 운동이 부재한 상황에서 요구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문제라는 점에서 한계가 존재한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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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본소득 어떻게 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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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량실업이 자본주의의 구조적이고 필연적인 문제이자 결과라는 분석에서부터<br />
                        ‘일하지 않는 자의 먹을 권리’‘, 노동으로부터 분리된 소득’이 1980년대 이후 유럽<br />
                        좌파의 중요한 화두로 부각되었다. 기본소득 전략은 완전고용의 불가능성, 수준 낮은 공공부조와 실업급여의 한계, 강제노동 등에 대한 대안으로 제시되었으며 노동연계복지의 강화 속에서 노동과 소득을 분리시키는 전략으로 제기되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실제 기본소득 정책은 신자유주의자들에 의해 시행되었다. 기존의 복지제도 대부분을 철폐하고 대신 일정한 소득한계를 정해 그 이하의 소득자들에게 보조금을 지급해 복지국가의 비효율, 재정적자를 극복하는 방안으로 관철된 것이다. 독일이 관련해 가장 많은 논의와 활동이 벌어졌고, 또 신자유주의자에 의해 유사한 제도가 도입된 사례다.<br />
                        기본소득이라는 아이디어는 분석마르크스주의의 대표자인 반 파레이스의 주장에서 비롯되었다. 그의 주장은 공산주의로 이행하는‘ 자본주의적 길’로서 생산력 발전을 통해서 기본소득을 실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네그리의 경우는 현재의 생산력수준에서 공산주의로의 이행이 이미 가능하다고 보아 사회임금론을 주장하는데 이러한 주장은 노동거부의 인식을 전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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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히 기본소득의 경우 ‘노동하지 않아도 생존할 권리’를 요구한다. 한국에서는 사회당과 연기금 사회주의 연구자 등이 구체적인 재정 계획을 세우고 선전활동을 벌이고 있지만 주체형성과 실행방안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이는 ‘대안사회에 대한 논의 촉발’, ‘사회주의를 거치지 않고 공산주의로 이행하는 경로’ 등의 ‘이념형’ 제시에 그칠 수밖에 없다. 현행 소득보장 정책에서도 복지의존에 대한 비난과 증세에 대한 대중적 반발을 극복하는 공감대 형성이 쉽지 않고 사회보장 확대를 위한 운동이 미미한 조건에서 사회정책의 근간을 전환하자는 주장은 그 실행방안이 제시되지 않고 있다. 대중 이데올로기의 전환을 위한 주체형성과 이행의 구체적 경로에 대한 논의 없이 재정계산으로 실현 가능성을 주장하는 것은 무망한 일이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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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빈곤층 소득보장을 위한 사회운동의 요구<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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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자유주의와 함께 전 세계의 복지기조로 자리 잡은 노동연계복지는 복지의존성 공격을 통한 재정지출 축소, 광범위한 산업예비군 형성을 통한 노동신축화를 목표로 하기 때문에 신자유주의 하 복지 확대 요구는 단순한 재정확충과 적절한 분배 문제에 그칠 수 없다. 사회보장정책은 자본주의 생산관계와 사회 유지를 위한 노동 통제전략이자 피지배계급의 저항으로 달성된 기본적 생활 보장이라는 양면성을 지닌다. 따라서 경제위기 하 급증하는 빈곤층의 생존권적 요구도 단순히 재정측면에서의 가능성을 넘어서 사회복지의 방향성을 바꿔내기 위한 장기적 전망, 현실의 심각한 빈곤문제의 해결을 위한 구체적 요구와 공동의 투쟁 형성, 노동자운동의 인식 확장과 주체 형성 문제가 핵심이다. <br />
            이명박 정부의 사회정책 기조가 더욱 공세적이고 적극적인 시장화라는 점에서 우리의 요구는 사회보장의 확대에 그치지 않고 시장화 정책에 대한 비판, 제대로 된 일자리 창출의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 또한 현존하는 빈곤층 소득보장정책이 실제로 민중의 생존권 방어를 위한 매개가 될 수 있도록 구체적 요구를 정돈하고 운동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경제위기에 직면한 이명박 정부의 빈곤과 실업 대책은 기존 제도의 소폭 확장과 한시적이고 제한적인 지원방안에 그치고 있으며 앞으로도 진전된 대책을 기대하기 어렵다. 이에 빈곤층 소득보장제도로서 기초생활보장제도, 노후소득보장제도이자 공적연금으로서 국민연금, 기초노령연금에 관해 사각지대 해소와 보장성 확대의 요구 등 지금까지 제기된 요구들을 제기하면서 긴급한 대응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사회정책 시장화에 반하는 장기적 발전방안을 그려갈 수 있어야 한다. 또한 무엇보다도 경제위기 책임전가에 맞선 노동자운동의 투쟁과 맞물려 인간다운 삶을 위한 소득보장과 제대로 된 일자리 요구로 나아가는 운동의 주체형성을 동반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description></item><item><author>바라</author><category>대장정</category><title>6.9 작가선언</title><link>http://blog.aladin.co.kr/vara/2905408</link><pubDate>Sun, 14 Jun 2009 21:0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vara/2905408</guid><description><![CDATA[이것은 사람의 말&#160;&#160; 6.9 작가선언<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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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들이 모여 말한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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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이념은 사람이고 우리의 배후는 문학이며 우리의 무기는 문장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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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다만 견딜 수 없어서 모였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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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눈물은 똑같이 진하고 모든 피는 똑같이 붉고 모든 목숨은 똑같이 존엄한 것이다. 그러나 권력자와 그 하수인들은 극소수 특권층의 이익을 위해 절대 다수 국민의 눈물과 피와 목숨을 기꺼이 제물로 바치려 한다. 우리는 지금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사실이 수치스럽고 고통스럽다. 본래 문학은 한계를 알지 못한다. 상대적 자유가 아니라 절대적 자유를 꿈꾼다. 어떤 사회 체제 안에서도 그 가두리를 답답해하면서 탈주와 월경을 꿈꾸는 것이 문학이다. 그러나 문학 본연의 정신을 되새기는 것이 차라리 사치가 되어버린 시대를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우리는 다급한 마음으로 1987년 6월을 떠올린다. 박종철의 죽음이 앞에 있었고 이한열의 죽음이 뒤에 있었다. 그 죽음들의 대가로 민주주의를 쟁취했고 힘겹게 그것을 가꿔왔다. 우리에게는 이 모든 것을 기억해야 할 의무가 있다. 아니다. 우리에게는 이 모든 것을 망각할 권리가 없다. 이명박 정권 1년 만에 대한민국은 1987년 이전으로 후퇴해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각자가 하나의 정부인 작가들이 이 자리에 모였다. 조직도, 집행부도, 정강도 없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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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 <o:p></o:p><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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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특정한 이념에 기대어 발언하지 않는다. 이명박 정부가 아무런 이념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이 내세운 ‘중도실용주의’라는 가짜 이념은 집권 1년도 못 돼 폐기해야 할 대상이 되어버렸다. 우리는 도처에서 헌법 위에 군림하는 독재의 얼굴을 본다. 용산 철거민들의 생존권을 짓밟는 와중에 여섯 명의 무고한 목숨을 앗아가고도 이명박 정부는 끝내 사죄하지 않았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강행하여 국민적 저항에 직면했지만 저들이 행한 일은 위선적인 사과와 광범위한 탄압이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언론 장악을 기도했고 도심 광장과 사이버 광장에 차벽을 치고 철조망을 세웠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한국예술종합학교 사태는 이 정부가 시대착오적인 색깔론과 천박한 관료주의로 문화예술의 토대를 위협하고 있음을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전직 대통령을 겨냥한 사상 최악의 표적수사와 비열한 여론몰이는 그를 벼랑에서 투신하게 하였다. 민주주의의 가치는 매장되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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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 <o:p></o:p><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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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일에 적극 가담한 정치검찰과 수구언론을 우리는 민주주의의 조종(弔鐘)을 울린 종지기들로 고발한다. 살아있는 권력에는 굴종하고 죽은 권력에는 군림하면서 영혼을 팔고 정의를 내던진 정치검찰들, 증오와 저주의 저널리즘으로 민주화의 역사를 모독하고 민주주의의 가치들을 조롱하는 수구언론에 우리는 분노한다. 우리가 저들과 같은 모국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에 참혹해진다. 저들을 여전히 검찰과 언론이라고 불러야 하나. 곰팡이가 온 집을 뒤덮었다면 그것은 곰팡이가 슨 집이 아니라 집처럼 보이는 곰팡이일 뿐이다. 저 권력의 몸종들과 함께 민주주의의 일반 원리와 보편 가치를 무자비하게 짓밟으면서 달려온 이명박 정권 1년은 이토록 참담하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권력자와 그 하수인들에게서 우리는 깊은 절망을 느낀다. 저들은 수치를 모르고 슬픔을 모른다. 수치와 슬픔을 아는 것이 사람이고, 사람됨이라는 가치에 헌신하는 것이 문학이다. 우리는 문학의 이름으로 이명박 정부를 규탄한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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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 <o:p></o:p><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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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아우슈비츠다. 민주주의의 아우슈비츠, 인권의 아우슈비츠, 상상력의 아우슈비츠. 이것은 과장인가? 그러나 문학은 한 사회의 가장 예민한 살갗이어서 가장 먼저 상처입고 가장 빨리 아파한다. 문학의 과장은 불길한 예언이자 다급한 신호일 수 있다. 아우슈비츠의 생존자 프리모 레비는 이렇게 적었다. “우리가 노예일지라도, 아무런 권리도 없을지라도, 갖은 수모를 겪고 죽을 것이 확실할지라도, 우리에게 한 가지 능력만은 남아 있다. 바로 그들에게 동의하지 않는 것이다.” 과연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다면 그래야만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아직 종이와 펜이 있다. 그러니 동의하지 않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끝내 저항할 것이다. 민주주의의 정원을 갈아엎고 있는 눈먼 불도저를 향해, 머리도 영혼도 심장도 없는 권력자와 그 하수인들에게 저항할 것이다. 가장 뜨거운 한 줄의 문장으로, 가장 힘센 한 문장의 모국어로 말할 것이다. 사람의 말을, 사람만이 할 수 있고 사람이니까 해야 하며 사람인 한 멈출 수 없는 그 말을. 아름답고 정의로운 모든 문학의 마지막 말, 그 말을.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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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이 존중되고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는 땅에서, 우리는 살아야 한다. : 강경희<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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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이곳은 눈먼 자들의 도시가 아니다. 우리는 장님이 아니다. 우리는 보고 느끼고 표현할 것이다 : 강성은<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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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각자 흘린 눈물이 같은 맛을 낼 때, 분노는 만인의 양식! : 강정<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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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살아 있었구나, 너희 6월의 불씨들이여! : 강진<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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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반성이 멈추는 순간 우리의 말은 오물이 되고, 민주주의가 멈추는 순간 우리의 삶은 허깨비가 된다. : 고나리<br />
<br />
&#160;활짝 핀 민주주의 꽃내음에 흠뻑 취하고 싶어라! : 고명철<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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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이제 우리에게 금지된 것을 요구해야 한다. : 고봉준<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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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국민을 잠재적 폭도로 여기는 정권은 민주주의의 적입니다. : 고인환<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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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우리에겐 마감의 힘이 있다. 너희의 마감을 보고야 말겠다. : 고찬규<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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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촌스러워서 살 수가 없다. : 곽은영<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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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눈먼 망나니 제 칼에 죽는다. : 구효서<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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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주사위는 던져졌다! 내 기어이 너희들의 최후를 보고야 말리라! : 권온<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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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민주주의는 공기와 같아서, 숨쉴 수 없게 된 후에야 그것의 소중함을 알았습니다. : 권혁웅<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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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절명으로 살아나는 연두! 연두! 연두! 함부로 파묻지 마라, 봄눈(目), 따뜻한 심장. : 권현형<br />
<br />
&#160;모든 버려진 약속과 빛바랜 희망을 위해 병문안 가는 길입니다. 조심하세요, 우리의 병문안은 지금 너무 뜨겁습니다. : 권희철<br />
<br />
&#160;부끄러움은 나의 몫이고, 패배는 당신들의 것입니다. : 김경인<br />
<br />
&#160;사람이 말하는 자유를 믿지 않기 위해 나는 당신의 눈을 들여다보지 않는 습관이 있다. : 김경주<br />
<br />
&#160;새가 쫓겨난 광장에 피 묻은 돌이 날아듭니다. : 김경후<br />
<br />
&#160;눈 닫고 귀 막고 거대한 짐승의 아가리로 너희가 내 말의 피와 살을 발린대도, 끝끝내 사람이고자, 펄펄 뛰는 사람의 말이고자. : 김근<br />
<br />
&#160;이 세상의 어떤 광물(狂物)로 벽을 쌓더라도 깊이 흐르는 것들은 막을 수 없을 것입니다. : 김나영<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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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우리의 혀를 자르면, 우리는 목을 내밀 것이다. : 김남극<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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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문학이 우리에게 가르쳐준 것은 경제발전 운운하는 거창한 지식이 아니라 그 지식 아래 억압된 정직한 욕망이다. : 김남혁<br />
<br />
&#160;아가리를 벌린 악의 상처들을 이 문장으로 기워가리라. : 김대성<br />
<br />
&#160;불법 폭력이 문제라고? 맞다. 늘 그게 문제다. 대한민국 민주주의는 그렇게 두들겨 맞아 시퍼렇게 멍들고 피 흘리며 죽어간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것이다. : 김명기<br />
<br />
&#160;마감을 늦춰달라고 해야겠다. 거리로 나가느라 글 쓸 시간이 없다. : 김미월<br />
<br />
&#160;장벽이 높아질수록 모일 것입니다. 이것은 자발적이고 구체적인 목소리들이 만나는 순간의 파열음입니다. : 김미정(평론가)<br />
<br />
&#160;나는 정치를 모른다. 다만 치정의 끝을 알 뿐. 그리하여 우리가 여긴 모인 이유, 되돌려놓자는 얘기다. 우리 모두가 다 아는 그 처음으로, 아름다움으로, 진실로! : 김민정<br />
<br />
&#160;모든 것을 기억할 것이다. 필요하다면 이백 살까지 살아남겠다. : 김사과<br />
<br />
&#160;귓구멍 막힌 사오정들의 후예들이여, 작가들의 송곳을 감사히 받으라! : 김사람<br />
<br />
&#160;웃음을 돌려줘, 꿈을 돌려줘! 어깨동무하고 맞짱뜨러 가자. : 김사이<br />
<br />
&#160;나는 당신과 함께 호흡할 것이다. 당신의 문장은 영영 절명하지 않을 것이다. : 김산<br />
<br />
&#160;이것은 살아 있는 자들이 어두운 밤을 쫓는 노래. 무덤 속의 당신들에게 드리는 선물입니다. : 김선재<br />
<br />
&#160;권력의 상상력이 상식을 구금하는 것이라면 우리의 상상력은 너희를 포위할 것이다. : 김성중<br />
<br />
&#160;당신이 도대체 사람입니까? 스스로에게 던져오던 이 질문을 비로소 세상에 내놓습니다. : 김소연<br />
<br />
&#160;봉쇄되어 말과 의미를 속박한 광장은 백지이디. 그 백지 위로 나는 미래를 쓸 것이다. 인간의 자유와 존엄으로. : 김안<br />
<br />
&#160;이날을 오래 기억할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그리고 우리는 부끄럽지 않다. : 김양선<br />
<br />
&#160;거짓된 빛의 세계, 새는 깃 속 어둠으로 난다. : 김애란<br />
<br />
&#160;나로서는 익숙하지 않은 일을 자꾸 하게 해줘서 고맙다. 이 고마움을 어떤 식으로든 보답해야 하지 않겠나. 인간이라면. : 김언<br />
<br />
&#160;이제 더는 하소연할 길조차 없는 억울한 사람들을 때리지 마라. : 김연수<br />
<br />
&#160;나는, 부끄러운 손으로, 내 삶의 길들여진 부위만을 잘라, 쥐불 놓는다. : 김요일<br />
<br />
&#160;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 : 김윤환<br />
<br />
&#160;역사여 입을 열어라, 그 속에 우리의 목소리를 퍼뜨리겠다. : 김이강<br />
<br />
&#160;나는 여전히 살아 있다. 싸늘하게 스러진 그 대신에 이제 내가 뜨거워질 차례다. : 김이은<br />
<br />
&#160;텅 빈 백지를 슬픔과 분노로 가득 채운다. : 김이정<br />
<br />
&#160;누구나 어리석은 당나귀를 원하진 않는다. : 김자흔<br />
<br />
&#160;자유와 민주만이 너를 평안케 하리니, 더 이상 폭력의 벽을 쌓지 말라. : 김재영<br />
<br />
&#160;잘못 뽑아 개고생, 평생 두고 후회한다! 잠깐 실수 후회 말고, 미리 살펴 재난 막자! : 김정남<br />
<br />
&#160;역사는 기억할 것이다. 부끄러운 오늘을. : 김정란(소설가)<br />
<br />
&#160;여기에 멈춰선 절망의 발자국들을 보아라. : 김지녀<br />
<br />
&#160;침묵이 암묵적 동의가 되지 않는 사회를 위하여, 무거운 입을 연다. : 김지선<br />
<br />
&#160;오래 전 노무현이라는 이름 위에 내 꿈을 얹어놓은 적이 있다. : 남상순<br />
<br />
&#160;나를 잠들 수 없게 하는구나, 위기의 시대여. : 맹문재<br />
<br />
&#160;무능한 정권, 썩은 검찰, 역겨운 언론- 적출대상 3종세트. 아차, 나도 문제야. : 명지현<br />
<br />
&#160;밥상도, 민주주의의 원탁도, 다 엎은 자여. 이제는 당신이 고꾸라질 때. : 문동만<br />
<br />
&#160;컨테이너 요새의 몰이꾼, 간 데 없는 표적을 향한 저격수의 총구에도, 어쩌면 담장을 넘어 파고드는 6월의 덩굴장미, 그 붉은 덩굴손! : 문혜진<br />
<br />
&#160;우리야말로 故人이었으되, 당신의 죽음이 우리를 살렸으니 우리의 삶은 당신을 살려내리라. : 박대현<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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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이명박 정권은 문화와 민주를 파괴하는 광기의 야만을 국민 앞에 사죄하고 물러가라. : 박민규(시인)<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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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정책이 비문(非文)이다. 언론의 맞춤법은 작위적이고, 미친개들은 국민에게 오타를 남발한다. 당신들의 언어는 번역이&#160;안 된다. 암울한 시국의 문장을 견딜 수 없다. 오래된 생각이다. : 박상<br />
<br />
&#160;나는 분노한다. 국가가 없을 때 당할 고통을 국가 때문에 당한다는 것에. 나는 비참하다.&#160;그 국가를 내가 만들었다는 것에. : 박상수<br />
<br />
&#160;더 이상 갉아먹지 마라. 쥐는 벽을 잊어도 갉아먹힌 벽은 쥐를 잊지 못하는 법이다. : 박성원<br />
<br />
&#160;"내 노래가 거치럽게 되는 것을 욕하지 마라!" 당신의 자리가 권력 아닐 때까지, 시인의 노래가 황홀해질 때까지. : 박수연<br />
<br />
&#160;미숙하고 서투른 나 차가운 광장에서 서성거린다. 희망을 위해. : 박슬기<br />
<br />
&#160;당신이 낸 구멍들이 모여 깊고 거대한, 결코 감길 수 없는 눈이 될 것입니다. : 박시하<br />
<br />
&#160;피리 부는 사나이여 이 쥐떼를 다 데려가, 우리에게 노래를 허락하길. : 박연준<br />
<br />
&#160;너를 인정한다. 거절의 대상으로, 동정의 대상으로. 그러므로 우리는 만나야 한다. : 박정석<br />
<br />
&#160;부끄러워, 돌멩이와 꽃을 움켜쥡니다. : 박창범<br />
<br />
&#160;오늘 침묵하는 자는 영원히 침묵할 것이다. : 박형서<br />
<br />
&#160;우리는 굴복하지 않는 시와 인내심 있는 과학을, 투쟁하는 사랑과 사려깊은 정치의 씨앗을 심는다, 시장의 수사와 독재의 법전, 관료의 행정이 땅과 물길을 파헤치기로 손잡은 폐허 아래, 삶을 목숨으로 만들기로 합의한 심연 위에. : 복도훈<br />
<br />
&#160;너를 지울 수 없다. 민주주의여! : 박형숙<br />
<br />
&#160;가장 깊은 어둠 속에서 벼랑에 머리를 부딪히며 새날의 아침을 시작하는 뜨거운 죽음을 보아라, 상처가 길을 낸다 민주주의여. : 박형준<br />
<br />
&#160;저기, 지나가는 사람들, 이제 함께 갑시다. : 박혜상<br />
<br />
&#160;우리가 죽인 민주주의, 우리가 되살린다! : 방현희<br />
<br />
&#160;어떤 두려움도 없이 뒷걸음질치는 봄을 향해 걸어갈 것이다. : 배영옥<br />
<br />
&#160;작별을 고함. 그다의 말, 치욕과 모욕의 반복이여! 복수를 고함! 우리의 말, 두 손 가득 진실과 정의로부터. : 백가흠<br />
<br />
&#160;자유와 민주, 한때 가졌다고 믿었던 것이 한 번도 없었던 일이 될 수는 없기에. : 백지은<br />
<br />
&#160;폭풍전야, 이제 항쟁은 시작되었다. : 서성란<br />
<br />
&#160;눈 감고 귀 막아 과거로 얼굴을 돌린 자여, 들리는가! 어둠을 걷어내는 뜨거운 목소리가! : 서안나<br />
<br />
&#160;그 귀 진실이 뚫을지니, 잘 가라 비명이여! : 서영식<br />
<br />
&#160;우리 지금 마감하러 간다. 마침표 찍고 나면 후회해도 소용없을 걸? : 서영인<br />
<br />
&#160;겁주고 피한다고 망각될 시간들이 아니다. 사람답게 살기 위한 외침, 거대한 알람소리가 된다. : 서효인<br />
<br />
&#160;이것은 법이 아니다. 이것은 언어가 아니다. 이것은 정부가 아니다. 이제, 신념의 시신에서 흘러나온 피로 긴 싸움의 선언을 적는다. : 서희원<br />
<br />
&#160;들쥐들의 교묘한 협잡 더는 못 참겠어 울화의 향불이 지글지글 타올라 가만 못 있겠어. : 성기완<br />
<br />
&#160;근조 대한민국을 조국으로 둔 시인의 슬픈 격문을 이 한줄에 담는다. 누구도 더는 죽이지 마라. : 손세실리아<br />
<br />
&#160;우리의 영혼이 고통스러운 건 민주주의가 우리의 본성인 까닭입니다. : 손흥규<br />
<br />
&#160;이제 죽음이 아닌 삶으로, 촛불이 아닌 횃불로 싸우기를. : 송경아<br />
<br />
&#160;기록 : 망각에 저항하지 않음으로써, 민주의 죽음이 선고된 날(07.12.19) : 송기영<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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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아름다움과 반성, 내 언어의 피스톤을 작동시키는 힘의 원천, 민주주의. : 송승환<br />
<br />
&#160;광장을 열차로 하자. 열차를 문으로 하자. 문(門)으로 욕망의 입을 열자. : 송중원<br />
<br />
&#160;술 마시고 깨어보니 역사를 몽땅 훔쳐가버렸네. 일어나자, 친구야. 도둑 잡으러 가야지! : 신용목<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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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공기 속에서 온통 비린내가 납니다. 없는 문이라면 그려서라도 열어젖혀야겠습니다. : 신해욱<br />
<br />
&#160;그 누가 내 사랑을 파괴하면 그가 신이어도 나는 그를 파괴할 것이다. 나는 민주주의의 애인이다. : 신형철<br />
<br />
&#160;괴물들이 주인인 시대여, 얼마나 더 끔찍한 결말을 바라는가. : 신혜진<br />
<br />
&#160;우리가 영혼을 가졌다는 증거는 셀 수 없이 많다. 오늘은 그 중 하나만 보여주마. 그리고 내일 또 하나. 그렇게 하루에 하나씩. : 심보선<br />
<br />
&#160;이 시대에 다시 찾아온 어둠이여, 골방을 밝히고 글을 쓰던 촛불을 들고 다시 거리로 나서게 한, 기필코 하나둘 지워질 살진 어둠이여. : 안상학<br />
<br />
&#160;우리는 당신이 알고 있는 것보다 더 자유롭고, 자유는 우리가 믿고 있는 것보다 더 강하다. : 양윤의<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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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만세 만세, 민주주의여 만세!!! : 양진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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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소통을 바라는 것은 헛된 소망이 아니므로. : 여태천<br />
<br />
&#160;언어의 속삭임이 시작됐다. 민주주의는 침묵을 뒤집고 의연히 흐르리라. : 오창은<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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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사람의 마을에는 사람이 살아야 한다. 그 곳에도 사람이 지나갑니까? : 우대식<br />
<br />
&#160;쓰고 말하고 행동하겠다. 우리의 이름이 비루해지지 않도록. : 원종국<br />
<br />
&#160;문학은 불온한 산소, 기어이. : 원종찬<br />
<br />
&#160;세상 이야기가 다 쓰여지고 난 뒤에도 새로운 이야기가 지금 다시 쓰여지고 있듯, 세상 사람들 다 죽어 흔적 없이 사라진다 해도 새로운 생명은 어디선가 꿈틀 일어서듯, 당신의 참말은, : 유용주<br />
<br />
&#160;민주주의의 뇌, 더 이상 손상시킬 수 없다. : 유정이<br />
<br />
&#160;푸르게 날이 선 6월의 잎사귀로 썩어버린 심장을 찌릅니다. 굿 바이 MB. : 유형진<br />
<br />
&#160;뱀의 눈으로 읽으라, 나는 지금 희극과 비극을 쓴다. : 유홍준<br />
<br />
&#160;저것은 이 세상에서 가장 후진 이야기. 어떤 작가도 생각하지 않는 플롯. : 윤성희<br />
<br />
&#160;한 손엔 곤봉 한 손엔 삽, 머리엔 떡찰 가슴엔 악법, 썩은 입술로 산자를 물어뜯는 괴물, 누가 광장에 MonsterB를 풀어놨는가! : 윤예영<br />
<br />
&#160;사랑이나 꿈 때문에 절망해볼 권리를 달라. 돈 때문이 아니라. : 윤이형<br />
<br />
&#160;이 한 줄은 내 눈엣가시가 되어 바로 보게 하고, 내 입엣가시가 되어 침묵하지 않게 할 것입니다. : 윤지영<br />
<br />
&#160;반칙과 특권 없는 사회, 그 꿈까지 허공에 던질 수는 없습니다. : 이경재<br />
<br />
&#160;보라, 우리에겐 밤을 뚫는 천 개의 눈동자가 있다. : 이기성<br />
<br />
&#160;이제 내 모든 주어와 동사는 광장에서 씌어질 것이고, 광장에서 교정될 것이다. : 이기호<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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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그의 서재에 떨어져 뒹구는 혁명의 금빛 단추 하나를 나는 몰래 주워 가졌소. : 이덕규<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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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민주주의는 중심의 옹호가 아니라 중심의 괴로움을 사유하는 데서 시작됩니다. : 이도연<br />
<br />
&#160;시민은 폭도가 아니다. 단지(斷指), 민주주의일 뿐이다. : 이동욱<br />
<br />
&#160;하느님, 우리가 이 정권을 무너뜨리지 못하여, 총명하고 선량한 제 딸아이가 커서 감옥 갈 확률만 높아지고 있습니다. : 이만교<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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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이 미래를 나는 기억할 것이다. 근본적으로, 구체적으로, 지속적으로! : 이문재<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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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광장의 벽에 부딪혀 새들은 추락했다. 우리는 검은 합창을 시작한다. 우리의 목소리를 찾을 때까지 불멸의 전염병이 될 것이다. : 이민하<br />
<br />
&#160;꽃잎처럼 동동 떠다니는 서러운 얼굴, 아 민주주의여! : 이상섭<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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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이 말이 생긴 이래 단 한 번도 역사는 이 말에 이르지 못했으니 단 한 번도 우리는 폐기한 적 없으니, 더 이상 짓밟지 마라! 우리 가슴에 새긴 민주주의라는 네 글자. : 이선우<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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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그날 내 마음 깊은 곳에서 고요한 정원이 무너져내렸다. 입 있는 자여, 이제 말하자. : 이성미<br />
<br />
&#160;작가의 지성과 상상력으로 우리, 민주주의를 만들어갑시다. 다시, 민주주의여 만세! 사랑이여 만세! : 이성혁<br />
<br />
&#160;이보다 더 무자비한 정권은 있었지만 이보다 더 비열한 정권은 없었다. 얼마나 더 많은 목숨을 벼랑으로 몰아야 당신의 국정이 완수되는가? 이제 그만 물러나길...... : 이순원<br />
<br />
&#160;2009년 6월, 무엇이 그를 우리들의 가슴에 불러모으는가? 그것은 바로 인간의 모습을 잃지 않은 민주주의다. : 이시영<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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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우리는 자유를 빼앗기지 않는다. 우리는 자유를 창조한다. : 이신조<br />
<br />
&#160;내 이웃이 헌법적 자유와 권리를 빼앗기고 모멸을 삼키며 죽어갈 때, 나는 어디에 있었나? : 이안<br />
<br />
&#160;죽은 것들이, 죽지 않는다. 여전히 농성 중이고 투신 중이고 신음 중이다. 나는 울고 일어나, 귀신들과 더불어. : 이영광<br />
<br />
&#160;너희가 모든 것을 무너뜨려도 끝까지 남아 있는 하나. 선얺나 피의 말- 자유! : 이영주<br />
<br />
&#160;막음이 없고, 막힘이 없는 곳. 그곳이 구름 위가 아니라 이 지상이기를. 저 헐벗은 창문들과 함께 원한다. : 이용임<br />
<br />
&#160;역사는 뼈보다 희고 무겁다. 나는 이미 가벼워졌다. 너도 필히 가루가 될 것이다. : 이용헌<br />
<br />
&#160;결국, 우리의 모든 말들이 "씨"가 되리라. : 이은림<br />
<br />
&#160;죽은 이들의 뒷모습으로 우리는 수많은 정면을 이루기로 하자. 무수하고 다양하게, 거대한 하나의 얼굴로. : 이장욱<br />
<br />
&#160;아직도 자유는, 아름답지만 피흘리는 5월의 신부. 닫힌 광장에서 구출해야겠습니다. : 이진희<br />
<br />
&#160;몸이 아프다. 저 먼 곳, 부엉이바위로부터 우리들의 명치 끝으로. : 이찬(평론가)<br />
<br />
&#160;너무 어둡지 않은가? 너무 비좁지 않은가? 너무 희박하지 않은가? : 이현승<br />
<br />
&#160;너 어쩌자고 그렇게 사는가? : 이현우(로쟈)<br />
<br />
&#160;"목소리 없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권력자들을 잠들지 못하게 해야 한다" - 피에르 신부. 목소리, 목소리여...... : 이혜경<br />
<br />
&#160;가도 가도 끝없는 무덤 속이다. 스스로 구원하리라. : 이혜미<br />
<br />
&#160;말과 글, 표현의 무덤을 지켜볼 수 없다! : 임수현<br />
<br />
&#160;사람 사는 세상에 대한 꿈꿀 권리조차 짓밟아버리는 비정한 권력이여, 인간을 저버리고 물신을 숭배한 너의 야만은 역사의 심판을 받을 것이다. : 임영봉<br />
<br />
&#160;나의 꿈은 분노 없이 나와 세상을 사랑하는 것. 그러나 오늘은 분노의 촛불을 켜기로 합니다. : 임지연<br />
<br />
&#160;모퉁이를 도니 꽃은 떨어져서 피어나고, 모두 눈을 뜨고 있습니다. : 장무령<br />
<br />
&#160;그대들의 야욕과 폭력, 간교에 분노한다. 이 분노는 함성이 되어 자유의 광장에 울려퍼질 것이다. : 전도현<br />
<br />
&#160;저 우악스런 권력의 발악은 아무것도 통하지 않는 무력함의 격렬한 표현일 뿐이다! : 전성욱<br />
<br />
&#160;시인이 깨어 있으면 독재자는 잠들지 못한다. : 전성태<br />
<br />
&#160;구멍이다. 그 구멍 뚫고 자유와 인권이 그대의 동공에 선 피로 맺히리라. : 전형철<br />
<br />
&#160;쎄스코에 전화히기 전에, 냉큼 물러가라! : 정여울<br />
<br />
&#160;시대적 박약아들에게 우리의 문장이 약이 될 것이다. : 정영효<br />
<br />
&#160;저 시퍼렇게 일렁이는 슬픔의 연대를 보라, 총칼보다도 강하다. : 정우영<br />
<br />
&#160;이성은 행동하지 않는다. 너의 울고 있는 말들을 보여줘. : 정은경<br />
<br />
&#160;청계천은 그럴 듯해 보이지만 살아 있는 물이 아니다. 이대로 모두가 유령이 될 순 없다. : 정주아<br />
<br />
&#160;우리에게 영웅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의 삶 자체이다. 우리는 모든 종류의 죽음의 위협과 싸울 것이다. : 정한아(시인)<br />
<br />
&#160;'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정신. 우리의 말은 솟구치고 터져서 광장에 스밀 것이다. : 정혜경<br />
<br />
&#160;한밤중 정동까지 이어진 말없는 행렬을 지나며 느꼈던 부끄러움, 오래 기억하고 싶다. : 정홍수<br />
<br />
&#160;꿈이 흐려진 자리에는 언제나 미래의 얼굴이 나타난다. : 조강석<br />
<br />
&#160;부끄러움을 관통한 아픔이 선연히 떠오르는, 치욕의 날들이다. 잊을 수 없는, 치욕의 순간이다. : 조동범<br />
<br />
&#160;우리, 끝내 이기리라. : 조성면<br />
<br />
&#160;꿈마저 빼앗긴 절망만큼 아픈 것은 없습니다. 아픔을 모르는 자들이 우리를 아프게 합니다. : 조연정<br />
<br />
&#160;나는 의문이 죄가 되지 않는 고요한 세계를 원한다. : 조연호<br />
<br />
&#160;사람 사는 세상으로 가는 이정표를 우리가 다시 일으켜세워야 합니다. : 조용숙<br />
<br />
&#160;나는 동료들의 입술을 바라보았다. "비천한 권력을 멸시한다"고, 사랑의 말들이 흘러나왔다. : 조원규<br />
<br />
&#160;"몸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 말고 몸도 영혼도 지옥에서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 하여라."(마태 10:28) : 조윤<br />
<br />
&#160;시인, 모국어라는 지우개로 독재라는 오자를 지운다. : 조정<br />
<br />
&#160;우리의 문장은 모든 것을 기억한다. 그것은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이다. : 조해진<br />
<br />
&#160;악이여, 혁명이 우리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 조형래<br />
<br />
&#160;들을 귀 없는 권력자여, 이 성경 구절을 기억하는가? "온 공동체가 소리 높여 아우성쳤다. 백성이 밤새도록 통곡하였다."(민수기 14:1) : 조효원<br />
<br />
&#160;너희들이 뽑아낸 머리카락들의 무덤을 보아라. 여기 스르르 살아 움직이는 무덤을. : 주영중<br />
<br />
&#160;우리의 갈비뼈 하나를 뽑아 진실을 만드세요, 하느님. 그녀와 손잡고 거리로 나가겠습니다. : 진은영<br />
<br />
&#160;사과는 필요없다, 약속은 이미 깨어졌으니. 이 슬픔을 흐르게 하라, 다른 세상이 그 안에 고여 있으니. : 차미령<br />
<br />
&#160;사람 사는 세상과 민주주의를 무참히 짓밟은 너! 네 무덤까지 쫓아가 침을 뱉으리라. : 채은<br />
<br />
&#160;뱉지 않고 삼키지요, 뜨거운 이 불덩이. 벌거숭이 이 마음엔 부엉이 붉은 울음소리가 날지요. : 천운영<br />
<br />
&#160;불미(不尾)스러운 일은 꼬리가 있는 동물에게도 일어난다. 이따금 천둥, 번개가 자네를 불미스럽게 만들 걸세. : 천수호<br />
<br />
&#160;정치에 소질 없는 CEO가 국가폭력을 남용하니 천년왕국은커녕 곧 망하겠구나. : 최성각<br />
<br />
&#160;결국 민주주의가 이긴다. : 최진영<br />
<br />
&#160;촛불 밝히는 손은 세상의 풍경입니다. : 최창근<br />
<br />
&#160;해가 뜨지 않는다면 해를 그리지요. 탈색하는 피가 아닌 잉크의 푸르름으로. : 하성란<br />
<br />
&#160;산 이름이 죽은 이름이 되고, 죽은 이름이 산 이름이 되는. 여기는 없었던 나라. 나는 이 나라의 국민입니다. : 하재연<br />
<br />
&#160;결핍과 부재의 자리에서 더욱 단단해지는 문장의 순도(純度)를 나는 믿는다. : 한세정<br />
<br />
&#160;민주여! 사랑과 가난과 죽음의 힘으로 우리는 네게로 간다! : 한용국<br />
<br />
&#160;권력이 권리인 줄 아는, 자본이 자유인 줄 아는 이들에게, 부끄러움을 돌려드립니다. 본디 저들의 것이었습니다. : 한지혜<br />
<br />
&#160;Mad Bomb 자폭해라! : 함기석<br />
<br />
&#160;율법에 갇힌 자들, 얼굴 없는 노래에 둘러싸이게 되리. : 함돈균<br />
<br />
&#160;인권을 말하면 인권이 보장되고 자유를 말하면 자유가 실현되는, 지킬 건 지키는 세상을 원합니다. : 해이수<br />
<br />
&#160;이것은 사람 사는 세상으로부터 온 목소리니, 너희는 두려운 마음으로 이 말들에 답하라. : 허병식<br />
<br />
&#160;자유와 사랑을 원합니다. : 허윤진<br />
<br />
&#160;촛불은 더욱 거세게, 다시 타오를 것이다! : 허정<br />
<br />
&#160;어두운 곳 저 멀리서 소쩍 울음 들려온다. 붉은 피 토해내며 제 억울함 알리는 거다. : 홍기돈<br />
<br />
&#160;폭력과 폭력 사이로 빛나는 촛불을 본다. : 홍준희<br />
<br />
&#160;이제야 숨통이 좀 트이는 듯합니다. 이명박 정권은 국가권력이 조폭일 수 있다는 걸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단결된 힘만이 이에 맞서는 유일한 길일 것입니다. : 황광수<br />
<br />
&#160;우리는 당신이 지금껏 한 일을 잘 알고 있다! : 황규관<br />
<br />
&#160;법이문(법)의 목을 죄고, 시민도 시인도 적이 되는 땅. "아, 입이 없는 것들", 비명만이 말이 되는 땅. : 황호덕<br />

우리는 작가입니다.<br />
<br />

우리는 각자의 말을 합니다.<br />
<br />

우리는 각자의 글을 씁니다.<br />
<br />

우리는 각자의 나라를 가졌습니다.<br />
<br />

&#160; <o:p></o:p><br />
<br />

하지만 우리에겐 공통점이 있습니다.<br />
<br />

우리가 쓰는 글의 바탕에 언제나 인간이 있다는 것입니다.<br />
<br />

우리는 이념이 아니라 사람의 편에 섭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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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 <o:p></o:p><br />
<br />

우리는 모였습니다. <br />
<br />

참혹한 오늘을 불러온 것도 우리이지만<br />
<br />

참다운 내일을 만드는 이도 우리이기 때문입니다.<br />
<br />

우리는 정권의 야만에 분노합니다. <br />
<br />

사람의 설 자리가 사라진 현실에 분노합니다.<br />
<br />

&#160; <o:p></o:p><br />
<br />

우리는 보고 싶습니다.<br />
<br />

이견을 두려워하지 않고 국민과 소통할 줄 아는 정치가의 얼굴을.<br />
<br />

우리는 듣고 싶습니다.<br />
<br />

아첨과 왜곡의 목소리가 아니라 공정하고 진실된 언론의 발언을.<br />
<br />

우리는 느끼고 싶습니다.<br />
<br />

이 땅의 주인은 국민이며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확신과 자부를.<br />
<br />

우리는 되찾고 싶습니다.<br />
<br />

본래 우리 것인 광장과 집과 대지, 스스로 흘러 생명일 수 있는 강물을.<br />
<br />

우리는 꿈꾸고 싶습니다.<br />
<br />

그 어떤 권력에 의해서도 사람이 죽어나가지 않는 사회, <br />
<br />

양심과 이성이 죄가 되지 않는 세상, <br />
<br />

자유와 평등은 원래 사람의 것이라 믿고 자라날 수 있는 아이들의 미래를. <br />
<br />

&#160; <o:p></o:p><br />
<br />

우리는 입을 엽니다.<br />
<br />

이것은 사람의 말입니다. <br />
<br />

&#160;<br />
<br />

&#160;<br />
<br />

&#160;<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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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줄선언' 참가자 명단<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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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br />
<!--StartFragment--><br />

강경희 강성은 강 정&#160; 강&#160;진 고나리 고명철 고봉준 고인환 고찬규 곽은영 구효서 권 &#160; 온 권혁웅 권현형 권희철 김경인 김경주 김경후&#160;김 &#160;근 김나영 김남극 김남혁 김대성 김명기 김미월 김미정 김민정 김사과 김사람 김사이 김&#160; &#160;산 김선재 김성중 김소연 김&#160;&#160; 안 김양선 김애란 김&#160;&#160; 언 김연수 김요일 김윤환&#160;김이강 김이은 김이정 김자흔 김재영 김정남 김정란(소설가) 김지녀 김지선 남상순 맹문재 명지현 문동만 문혜진 박대현 박민규(시인)&#160; 박&#160; &#160;상 박상수 박성원 박수연 박슬기 박시하 박연준 박정석 박창범 박형서 복도훈 박형숙 박형준 박혜상 방현희 배영옥 백가흠 백지은 서성란 서안나 서영식 서영인 서효인 서희원 성기완 손세실리아 손홍규 송기영 송승환 송종원 신용목 신해욱 신형철 신혜진 심보선 안상학 양윤의 양진오 여태천 오창은 우대식 원종국 원종찬 유용주 유정이 유형진 유홍준 윤성희 윤예영 윤이형 윤지영 이경재 이기성 이기호&#160;이덕규 이도연 이동욱 이만교 이문재 이민하 이선우 이성미 이성혁 이순원 이시영 이신조 이&#160;&#160; 안 이영광 이영주 이용임 이용헌 이은림 이장욱 이진희 이&#160; 찬(평론가) 이현승 이현우(로쟈)&#160; &#160;이혜경 이혜미 임수현 임영봉 임지연 장무령 전도현 전성욱 전성태 전형철 정여울 정영효 정우영 정은경 정주아 정한아(시인)&#160;&#160; 정혜경 정홍수 조강석 조동범 조성면 조연정 조연호 조용숙 조원규 조&#160; &#160;윤 조&#160; &#160;정&#160; 조해진 조형래 조효원 주영중 진은영 차미령 &#160;채&#160; &#160;은 천운영 천수호 최성각 최진영 최창근 하성란 하재연 한세정 한용국 한지혜 함기석 함돈균 해이수 허병식 허윤진 허&#160; &#160;정 홍기돈 홍준희 황광수 황규관 황호덕&#160; 총188명<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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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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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 />]]></description></item><item><author>바라</author><category>대장정</category><title>한 편의 희극이 비극으로 끝나다</title><link>http://blog.aladin.co.kr/vara/2871945</link><pubDate>Fri, 29 May 2009 02:3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vara/2871945</guid><description><![CDATA[살아 있는 권력’과 ‘죽은 권력’이라는 대당의 허상 <br />
<h2>[기고] 한 편의 ‘희극’이 ‘비극’으로 끝나다</h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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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 />
이광일(성공회대)&#160; / 2009년05월26일 10시54분<br />
<br />
다소 긴 글을 시작합니다. 어느 분들에게는 듣기 싫은 소리일 수도 있겠지요.<br />
누군가가 죽는다는 것은 정말 슬픕니다. 넉 달 전쯤 40년 지기를 먼저 보내고 묘 주변에 잠시 혼자 남아 진정 삶과 죽음이 함께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다 내려왔는데, 노무현 전대통령 또한 이 세상을 등지며 ‘삶과 죽음이 하나 아닌가!’라는 말을 남겼다고 합니다. 글을 쓰다가 혹은 길을 걷다가 나이 50이 되기도 전에 몹쓸 병에 걸려 혼자 깊은 밤을 보내며 죽어갔을 친구의 실존을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이 흐릅니다.<br />
<br />
<br />
설상가상 죽음에 관해 더 많이 생각하게 된 것은 그 즈음에 일어난 용산학살이라는 구조적 폭력 때문이었습니다. 정말 저렇게 불에 타 죽어야할 사람들이 아닌데, 살릴 수 있었던 선량한 사람들을 죽음으로 내몬 것도 모자라 테러리스트라는 딱지를 붙이고 진실을 밝히라는 사람들을 감옥에 가두고 수배, 연행하고, 조문하겠다는 사람들 길을 가로 막고. 그래서 하도 기가 막혀 이명박씨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며 살까라는 부질없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렇기에 덕수궁 앞에서 노무현전대통령의 추모대열을 경찰이 막는다는 뉴스가 흘러나와도 그저 덤덤할 뿐입니다. <br />
<br />
<br />
그런데 뒤돌아보니 20대의 젊은 시기에도 이런 생각을 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5.18민중항쟁 시기에 죽임을 당한 평범한 시민들의 처참한 주검을 담은 사진들을 처음 접한 후 매일 TV에 나와 아무 일 없다는 듯 ‘정의구현사회’를 반복하는 전두환씨를 보며 그랬던 적이 있었습니다. 뒤돌아보면 그 역시 부질없는 짓이었지요. 이 두 사람을 보면 그저 “피는 속일 수 없다.”는 말만이 떠오를 뿐입니다. 이런 그들도 과연 삶과 죽음이 하나라고 생각할까요. <br />
<br />
<br />
그래도 말단에서 정치학을 공부한다고 사람들이 확인 겸 해서 종종 묻습니다. “이명박정권 등장이후 정치가 실종되었다고 말하는데, 제가 생각하기에는 그게 이명박식 정치 아닌가요!?” 번득이는 질문에 “그렇지요, ‘정치’지요. 현실 속의 정치는 하나로 존재하지 않거든요. ‘하나인 것처럼 보이는 이 사회’는 여럿의 정치가 서로 모순과 긴장, 적대와 갈등 관계를 유지하면서 전체적인 모습을 끊임없이 만들어 가지요. 하나의 정치를 말하는 것은 이데올로기입니다.” 이런 ‘뻔한 대답’을 하면서 이제 이 변변치 않은 지식을 가지고 누군가를 가르치는 것도 얼마 남지 않았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도 노무현 전대통령도 괜히 했다고 후회한 정치, 진정 ‘정치란 무엇입니까?’라는 자문을 하게 되니 이 무슨 조화인가요. <br />
<br />
<br />
잠시 과거를 더듬어 봅니다. 전두환정권은 정규군을 투입하여 5.18민중항쟁을 유혈 진압한 후 불순분자, 폭도들이 소요, 폭동을 일으켜 나라의 운명을 바로잡기 위해 그 죽임이 불가피했다고 말했습니다. 이제 모든 것이 안정됐으니 국민여러분은 생업에 전념하라고 했지요. 지금 이명박정권은 또 어떤가요. 경찰특공대를 투입하여 철거민들을 학살하고 ‘이제 여기 용산은 더 이상 문제될 것이 없으니 모이지 마세요, 배회하지 마세요.’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아무 일 없다.’면서도 경찰력을 동원하여 거리를 막고 무엇이 두려운지 4호선 신용산 역 바로 옆의, 학살현장 남일당 건물을 철통같이 ‘경호’하고 있습니다. <br />
<br />
<br />
이에 대해 80년대의 양식 있는 사람들은 어땠습니까. 처음에 “광주에서 이런저런 일이 있었다는데...”라며 소곤소곤 말했지요. 평온해졌다고 하는데도 그 곳에 시선을 주고 귀를 쫑긋했습니다. 전두환정권의 총칼이 두려웠지만 ‘전두환시리즈’, ‘이순자시리즈’라는 것을 만들어 그들을 희화하고 조롱하다가 결국 목소리를 모아 마침내 “거기에서 학살이 있었어요~”라고 큰소리로 진실을 말했지요. “파쇼타도”를 외치며 싸웠지요. 지금 용산은 어떤가요. 많은 사람들이 잊었다 하지만 철거민들이 학살된 것을 잘 알기에, 광주에서와 마찬가지로 그들은 선량한 사람들이기에 양식 있는 사람들은 죽은 자들을 대신하여 그 가족과 함께 억울함을 널리 알리고 거기에서 얼마나 반인륜적인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고발하고 있습니다. 거기에 있든 그렇지 않든 항상 그 곳을 염려하고 걱정하면서요. <br />
<br />
<br />
진정 정치란 무엇인가요. 바로 여기에 ‘그들의 정치’와 ‘우리의 정치’가 어떻게 다른지, 그 비밀 아닌 비밀이 간직되어 있습니다. 파시스트의 계보를 지닌 그들은 예나 지금이나 장밋빛 꿈만 말하며 매사에 큰 문제가 없다고 말하지요. 그렇기에 그들은 지금 죽어가는 사람,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는 사람들일수록 더 매몰차게 몰아댑니다. 그렇기에 선량한 사람들을 죽여 놓고도 아무 일 없으니 그냥 관심 끄라는 투의 말을 눈 한번 꿈적 하지 않고 할 수 있는 것이겠지요. 자기와 상이한 목소리들은 모두 막아버리고 수색, 압수하여 갖다 버리고 가두어 차단하면 되지요. 이게 ‘그들의 정치’인데, 그것은 다름 아닌 ‘공안(치안)’입니다. 그들과 우리 사이에는 화해할 수 없는 넓고 깊은 강이 있습니다. 왜냐구요? 그들은 자신들이 임의로 그어 놓은 경계를 벗어나고자 하는 우리의 목소리와 삶 자체를 애초 인정하려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말은 ‘주권자’라고 하면서요. 단 한 치의 공간도 내주려하지 않습니다. <br />
<br />
<br />
그렇다면 ‘우리의 정치’는 무엇인가요. 오히려 “여기에 어그러짐, 차이, 긴장과 갈등이 있어요.”라고 밖으로 외치는 것이지요. 80년 새벽 광주에서도 신군부파시스트의 ‘공식적인 말’과는 달리 “여기 우리 죽어가요. 제발 살려주세요.”라고 그 누군가가 소리쳤습니다. 그 한마디에 이후 많은 사람들이 죄책감에 괴로워하면서 젊은 청춘을 보냈습니다. 그것을 생생히 다룬 임철우의 소설 ｢봄날｣을 기억하시죠. 용산에서도 “여기 사람이 있어요. 제발 생존할 수 있는 공간만은 허용해주세요.”라고 절규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들도 결국 비참하게 죽임을 당했습니다. 이 외침 때문에 또 많은 이들이 자책하며 잠 못 이루고 눈물을 흘립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아니 알아주기를 원치 않는 이들이야 말로 진정 ‘이 시대의 바보들’이지요. 바로 여기에 ‘우리의 정치’가 있습니다. 고통 받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그들이 말할 수 있게 하는 것, 그들이 말할 수 있는 시공간을 함께 만드는 것이 ‘우리의 정치’입니다. 그것이 아무리 작은 공간일 지라도요. 왜냐구요? 말을 못하면 결국 시들어 죽으니까요. 어떻게 보면 노무현전대통령이 몸을 던진 ‘부엉이바위’ 또한 그런 공간을 상징하는 것 아니던가요. 그렇기에 거기에서는 삶과 죽음이 하나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br />
<br />
<br />
‘정치’에 대해 이처럼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데, 어찌 자본과 부당한 권력이 그 애절한 삶의 목소리들에 관심을 보이겠습니까. 사람의 관계를 비용 대비 생산성, 이윤의 문제로만 치부하는 자본에게 그런 외침은 그저 어느 가을날 무수히 땅에 떨어져 이리저리 구르는 낙엽소리만도 못한 것이겠지요. “비즈니스 플랜들리”를 말하는 이명박정권의 귀에 어찌 그 소리가 들리겠습니까. 국가성장동력의 창출이라는 ‘거대프로젝트’를 방해하는 이음(異音)은 그저 빨리 제거해야 할 ‘무능한 인간쓰레기들의 소음’ 정도로만 취급될 뿐입니다. 이제 왜 그들이 죽어가는 사람,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는 사람들일수록 더 무시하고 몰아붙이는지 그 이유가 분명해 집니다. 그들은 오직 추가비용으로만 계상되기 때문입니다. <br />
<br />
<br />
상황이 이래서 그런가요. 요즘 많은 저널리스트들, 학자들이 ‘살아 있는 권력’과 ‘죽은 권력’의 관계에 대해 자주 언급합니다. ‘살아 있는 권력’인 이명박정권이 ‘죽은 권력’을 상징하는 노무현정권을 탄압, 조롱하였고 노무현전대통령은 그 상징적 희생양이라는 평가도 들립니다. 물론 이런 대당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모르는 바 아니지만, 이것은 주권자를 대상화, 수동화시킨다는 점에서 그 이데올로기의 혐의를 벗어날 없습니다. 왜냐구요? 어떤 사회이건 민주주의를 표명하는 한 ‘살아 있는 권력’은 오직 ‘자기지배를 실현하고자 하는 주권자’에게만 붙일 수 있는 이름이기 때문입니다. <br />
<br />
<br />
그렇다면 어떻게 이런 것이 가능한가요. 그것은 이들 두 정치세력들이, 언론이,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정치를, 민주주의를 대리주의 토대 위에서만 사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들 모두가 그저 주권자를 투표하는 기계쯤으로 생각하는 것이지요. 그렇기에 ‘살아 있는 권력’과 ‘죽은 권력’이라는 대립구도 속에서 그들을 제어할 수 있는, 살아 있어야 할 주권자의 모습을 볼 수 없는 것은 자연스럽습니다. 다만 거기에는 ‘살아 있는 권력’과 ‘죽은 권력’이라는, 즉 ‘집권 엘리트’와 ‘집권하지 못한 엘리트’ 사이의 이런저런 파워게임, 음모와 계략만이 존재할 뿐입니다. 그렇기에 이런 대당 속에 감추어져 있는 진실은 바로 살아 있어야 할 주권자들이 죽어 있다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그 주권자가 오히려 위임권력에 지배당하고 있는 ‘벌거벗은 주권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말해줄 뿐입니다. <br />
<br />
<br />
그렇기에 묻습니다. 지금 ‘살아 있는 권력’, 그리고 지금 ‘죽은 권력’이나 과거에 ‘살아 있는 권력’의 지배 속에서 당신은 주권자로서 살아 있었던 적이 있나요. 직설적으로 묻습니다. 과거 노무현정권은 ‘살아 있는 권력’이 아니었나요. 여전히 착취, 수탈, 배제, 억압, 차별의 관계 속에서 고통 받는 무수한 대중이 존재하는데, ‘민주주의의 대강이 완성되었다.’고 말했던 그 노무현정권은 ‘살아 있는 권력’이 아니었습니까. <br />
<br />
<br />
민주주의, 즉 ‘자기지배의 실현’을 담보해야 할 주권자로 살아 있다는 것은 지금 이 사회의 다양한 관계 속에 똬리를 틀고 있는 온갖 착취와 수탈, 억압과 배제, 차별의 경계를 넘어 나아가는 크고 작은 실천에 연결되어 있음을 의미합니다. 선거를 통해 자유주의적 민주정권이 한두 번 들어섰다고 해서 그 민주주의가 완성될 수 있나요. 선거가 민주주의인가요. 오직 보수정치(학)만이 그렇게 역설할 뿐입니다. <br />
<br />
<br />
자본이 지배하는 시장으로 권력이 넘어가 이른바 ‘삼성공화국’이 존재하는데, 그리하여 그것을 문제 삼은 변호사, 기자, 정치인은 여전히 고통을 받고 있는데, 또한 국가권력이 자신들의 오랜 상표였던 중립성의 언술조차 부정하고 ‘비즈니스 플랜들리’를 외치며 자본과 직접 거래하겠다고 공공연히 말하는 이 시대에, 그리하여 삶과 죽음을 가로지르는 장벽들은 더욱 높아지고 그 와중에 가난한 이들은 저토록 억울하게 죽어나가고 있는데, 아무리 뼈가 빠지게 일해 생산력을 높여놓아도 빈부격차는 줄어들기는커녕 더욱 심해지는데, 그것들을 문제시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자기지배의 실현’이, 민주주의의 대강이 완성되었다고 말할 수 있나요. 이런 썩을 대로 썩어 문드러진 구조들, 관계들을 덮어둔 채, 이른바 깃털인 ‘박연차 리스트’를 들이대며 ‘살아 있는 권력’과 ‘죽은 권력’들이 도덕성, 법치 운운하고 있으니 이것이야말로 본말전도 아닌가요. 이것이야말로 정녕 웃기는 한 편의 코미디 아닌가요. <br />
<br />
<br />
그렇기에 진정 노무현 전대통령의 죽음이 안타까운 이유는 그의 인식, 의도 여부와 무관하게 그가 이처럼 웃지 않을 수 없는 코미디의 주연임을 자임하며 그것을 비극으로 전환시켰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진정 막후의 검은 손들은 엄숙주의로 가장한 채 지금 이 추모의 순간에도 그의 죽음을 앞세워 ‘국가경쟁력강화’니 ‘국민단합’을 외치며 어떻게 하면 대중을 더 착취, 억압할까를 궁리하면서 저렇게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는데 말입니다. <br />
<br />
<br />
그의 재임 시기에 이런 부당한 구조들, 사회관계들이 낳아지지 않았는데, 그의 민주주의는 도대체 어떤 것이기에 그 대강이 완성되었다고 말 할 수 있었을까요. 그것이 완성되었다고 말하자마자 그 코미디는 더욱 극단화되었고 그의 민주주의조차 생명력을 잃게 되었으며 바로 그것이 그를 죽음으로 몰아갔다는 그 ‘살아 있는 권력’의 토대가 되었다고 말한다면 너무 과도한 해석인가요. 하지만 죽은 자는 말이 없습니다. <br />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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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에 자연인 노무현이 아니라 사회관계의 결절점으로서의 노무현정권에 대한 비판자였기에 그 지지자들에게 묻습니다. ‘정치인 노무현’을 지지했던 이유가 무엇인가요. 과거 그를 지지했던 어느 배우처럼 “사람이 사람 좋아하는데 무슨 이유가 있냐?”고 반문한다면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겠습니까. 저 또한 이 시대의 재산과 교양을 지닌 분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노무현의 직설화법을 좋아했지요. 항상 가난을 끼고 살아서 그런지 몰라도 가난한 자들의 고상치 못한 문화, 민중적 부대낌을 여전히 좋아합니다. 문득 정치인 노무현에게서 그런 면모를 볼 때, 그 누구보다도 친근감을 느낀 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저런 무책임한 발언을 하며 그 누구를 정치적으로 지지하지는 않습니다. 누군가를 정치적으로 선택한다는 것은 결국 나의 삶과 죽음뿐만 아니라 타자의 삶과 죽음을 결정하는 것이기에 그렇습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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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지지하든 그렇지 않든 조금이라도 정치인 노무현에 시선을 준 적이 있다면 아마도 그것은 그가 민주주의의 진전을 가로막는 그 어떤 경계들을 넘어 나아가고자 하였기 때문 아닌가요. 안 그런가요. 그렇다면 아쉬울 수도 있겠지만 그가 그것을 멈추는 순간, 민주주의의 대강이 완성되었다고 말하는 순간 정치인 노무현을 내팽개치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것 아닙니까. 민주주의를 좀 더 진전시키라고 탄핵으로부터 구해주고 그 정치세력을 의회의 다수당으로 만들어 준 것이지 ‘대연정’하라고 그렇게 한 것은 아닙니다. 또 다른 경계들과 대결하는 것을 포기한 순간 이미 ‘시대의 아이콘으로서의 정치인 노무현’은 죽은 것입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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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가당치않게도 그의 반연고주의, 반지역주의, 반특권의 정치적 행보가 좋아 지지한다는 사람들이, 그것도 자칭 지식인이라는 자들이 과거 그와의 인연, 이런저런 회한을 드러내며 추모하는 것을 넘어 그의 죽음을 앞세운 채, 민주주의의 의미를 호도하고 진보세력에게까지 어줍지 않은 ‘분노의 화살’을 돌리는 언술, 행태가 눈에 보이는 것은 어찌된 일인가요. 그와 같은 행태는 추모라는 이름으로 해서는 안 될, 진정 ‘인간 노무현’조차 죽이는 일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자들이나 하는 짓입니다. 그것은 최소한 ‘사람을 좋아한다.’는 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모르는 자들의 맹종일 뿐입니다. 그것은 ‘정치인 노무현’을, ‘민주주의자 노무현’을 다시 살리는 것이 아닙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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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 그를 살리고 싶습니까. 그렇다면 이제 그로부터 벗어나라고 감히 말씀드립니다. 죽은 자를 추모하는 것은 과거를 기억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 그 무엇인가를 버리는 의식이기도 합니다. 진정 민주주의자로서의 그의 어떤 모습을 기억하여 그것을 다시 살리고 싶다면, 그를 추모하는 동안 격한 감정을 드러내기보다 진정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이을 것인지 성찰하는 것이 필요할 것입니다. 그것이 지성인의 자세입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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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정치인 노무현’을, ‘민주주의자 노무현’을 살리는 것은 어떻게 가능한가요. 그것은 과거에 그가 그랬던 것처럼 지금 여기에 가로 놓여 있는 그 어떤 부당한 장벽들, 경계들을 비판하고 그것에 저항하면서 그것을 허물고 새로운 삶의 관계들을 만들어나가는 것을 통해서만 가능해집니다. 민주주의는 과거의 경력을 불러내는 것이 아니라 오직 살아 움직이는 지금 이 순간의 부당한 관계들을 문제시하고 그것을 넘고자 하는 실천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죽은 노무현을 잡고 그를 기억하는 것에 멈추는 것이 아니라 지금 살아 고통 받는 용산을, 특수고용노동자들을, 이주노동자들을, 소수자를, 수탈 받는 환경과 생태의 아픔을 안고 함께 싸우는 것이 진정 그를 살리는 유일한 길입니다. 민주주의, 즉 자기지배의 실현은 그 어떤 지도자들에게 자신의 꿈을 투사하여 이룰 수 있는 것이 결코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아는 자들만이 “이제 저를 버리라.”고 한 ‘대통령 노무현’의 말을 제대로 독해하는 사람이고 그를 넘어섬으로써 그를 살리는 참다운 지지자가 될 것입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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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지 마십시오. ‘정치인 노무현’이 꿈꾸었을 그 어떤 세상이 진정 특권을 지닌 세력들이 지배하는 세상이 아니었다면, 그리하여 “이미 권력이 시장으로 넘어갔다.”는 ‘대통령 노무현’의 말이 자신의 개혁을 막고 있던 거대자본과 특권의 힘 앞에서 더 이상 어떻게 해볼 수 없는 자조와 한탄의 그것이었다면, 그의 꿈은 결코 개혁자유주의자들의 힘으로 이루어질 수 없는 과제라는 것을요. 그리고 개혁자유주의자들이 꿈꾸는 ‘아름다운 세계’는 오직 그것을 넘어 나아가고자 하는 진정한 민주주의자들에 의해 실현되어져 왔다는 역사를 부정하거나 잊지 마십시오. ‘노무현의 꿈’은 열성지지자들인 당신들이 진정한 민주주의자, 진보주의자로 거듭날 때만 가능해진다는 사실을 정말 잊지 말길 바랄 뿐입니다. 그래서 ‘바보 노무현’을 추모하는 저 촛불이 지금 그의 죽음을 함께 슬퍼하는 용산의 착한 이들과 가난한 자들의 삶 속으로 자연히 이어질 때만이, 진정 ‘이 시대의 또 다른 바보들’과 어깨를 할 수 있을 때만이 그 또한 살아날 수 있다는 것을요. 이제 당신들의 몫입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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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실존의 문제인 죽음은 모든 이들을 슬픔으로 몰아넣습니다. 그런데 여기 학살당한 지 130일 넘게 장례도 치르지 못하고 냉동고에 보관되어 있는 용산의 가난한 주검들이 있습니다. 호혜적 삶과 관계를 희구하다 결국 스스로 목을 매 삶을 마감한 특수고용노동자 박종태의 주검이 있습니다. 진정 살아 있는 주권자여야 할 그들은 여전히 자본과 권력에 의해 존재 자체를 부정당하고 조롱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저편에 한 시대의 정치지도자이자 대통령이었던 노무현의 죽음이 있습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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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받지 않는 주검들의 세상을 꿈꾸며 이들 모두의 명복을 진심으로 빕니다.<br />]]></description></item><item><author>바라</author><category>대장정</category><title>2009년판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title><link>http://blog.aladin.co.kr/vara/2541123</link><pubDate>Wed, 21 Jan 2009 00:4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vara/2541123</guid><description><![CDATA[<br />
<h1>세월가도 변함없는 경찰과 건설자&#160;</h1>
<h1>&#160;</h1>
<h1>본의 철거폭력</h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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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2>60년대 밤섬 폭파부터 80년대 상계동, 97년&#160;</h2>
<h2>전농동, 2003년 청계천, 2009년 용산까지 똑&#160;</h2>
<h2>같다.</h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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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꽃맘 기자&#160;iliberty@jinbo.net / 2009년01월20일 18시05분<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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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7월 25일 저녁 6시 포크레인 3대가 주민들이 있는 철탑 쪽으로 접근하자 이를 저지하기 위해 5층에 있던 주민 5-6명이 포크레인을 향해 돌을 던졌다. 동시에 한쪽에서는 철거반원들이 철탑에 있는 주민들을 향해 최루탄을 발포했다. 잠시 후 '쿵'하는 소리와 함께 철탑 입구의 2중문 중 바깥쪽 문이 부서졌다. 그리고 인화 물질 등으로 인해 철탑은 삽시간에 불길에 휩싸이게 되었다. 이윽고 더 이상 불길을 피할 수 없게 된 주민들은 5층 철탑에서 뛰어내렸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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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같다. 위 글은 12년 전인 1997년 전농동에서 이주대책을 요구하며 싸우던 철거민 박순덕 씨가 18m 철탑 위에서 떨어져 사망한 그날의 상황을 기록한 것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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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5월부터 이주대책을 요구하며 싸움을 벌인 용산4구역 철거민들이 한강로변 건물 옥상에 망루를 쌓은지 채 25시간만의 살인진압 과정에서 6명 불에 타 숨졌다. 테러와 맞서는 경찰특공대가 컨테이너 박스를 타고 하늘에서 내려왔다. 망루 꼭대기로 몰린 철거민들은 경찰특공대의 등장에 공포에 질렸고 불이 났다. 망루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4명의 철거민은 그 자리에서 죽었고 또 다른 한 명은 살인진압을 피해 망루 꼭대기에서 뛰어 내렸다가 끝내 숨졌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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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년이 지나도 변한 것은 하나도 없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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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bsp;&nbsp;--><!-- [출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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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 갔다 온 김종률 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백동산 용산경찰서장이 서울지방경찰청에 경찰특공대 투입을 요청하고 경찰청장으로 내정된 김석기 서울지방경찰청장이 최종 지시를 내렸다고 한다. 김종률 의원은 “촛불 때부터 강경진압을 지시해 왔던 김석기 서울지방경찰청장이 진두지휘한 것”이라고 말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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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의 과잉진압은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금은 서강대교 밑에 풀만 무성한 밤섬은 60년대 초까지만 해도 여의도보다 인구가 많이 사는 섬이었다. 당시 여의도는 말이나 키우는 곳이었다. 밤섬엔 40여 세대의 주민 150여명이 사는 섬이었다. 박정희 쿠데타 세력이 집권한 직후 김현옥 서울시장이 밤섬이 홍수때 한강 범람의 주범이라며 다이너마이트로 섬을 모두 폭파해 버렸다. 사라진 섬 위로 다시 모래톱이 쌓여 지금의 모습을 만들었다. 당시 서울시는 홍익대 옆 산비탈로 밤섬 주민들을 강제이주시켰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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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초엔 전두환 정권이 88올림픽에 방해가 된다며 상계동 주민들을 무더기로 내쫓았다. 주민들은 겨우내 언 땅을 파고 비닐을 깔고 거적을 위에 덮고 이주대책 마련을 요구하며 버텼지만 소용없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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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흘러 2005년 농민집회에서는 전용철 씨가 경찰에 머리를 맞아 사망했다. 2006년 포항에선 하중근 씨가 경찰에 맞아 사망했다. 얼마 전 법원은 전용철 씨에 대해 국가 책임을 인정했다. 하중근 씨 사건은 재판 진행중이다. 그럴 때마다 경찰은 요구에 못 이겨 재발방지를 약속하지만 지켜진 적은 없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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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거민 투쟁에선 ‘깡패’라 불리우는 철거전문 용역직원의 폭력은 일상이 됐다. ‘도시및환경정비법’에 따라 재개발조합의 조합원 절반만 찬성하면 내려지는 ‘합법적’인 관리처분에 따라 강제철거는 시기를 가리지 않는다. 최소한의 인간 생존권을 위해 한겨울 철거는 못하도록 국무총리령으로 못박은 ‘동절기 강제철거 금지’는 이들에게 휴지조각이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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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른 재개발을 위해 건설사는 철거전문 용역직원을 고용해 강제철거한다. 시간이 돈이니까. 깡패들의 폭력에 경찰은 눈을 감거나, 아니면 용산 사건처럼 먼저 나서서 철거를 자행한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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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타운으로 지정된 상도동. 지난해 10월 상도 4동에는 건설회사에서 고용한 용역직원들이 밀어닥쳤다. 사람이 살던 집 세 채는 그날 모두 사라졌다. 집안에 소화기를 뿌리며 등장한 용역직원들은 지붕을 넘어 창문으로 들어왔다. 그 집에 살던 사람들은 소리를 지르며 끌려 나오는 것 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이날 30여 명의 철거민이 병원에 실려갔다. 상도5동에서도 같은 일이 일어났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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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달 용산 5가에선 두 아이의 엄마가 경찰에 의해 강제연행됐다. 건설사가 업무방해로 신고했다는 이유였다. 남은 두 아이를 돌봐 줄 사람은 없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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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폭력사태는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장 시절 청계천을 국민에게 돌려주겠다며 했던 청계천 일대 철거과정에서도 반복됐다. 지난 2003년 11월 30일. 그때도 겨울이었다. 당시 서울시는 경찰과 공무원, 용역직원 등 1만8천여 명을 동원해 이주대책을 요구하는 노점상 700여 명을 강제로 몰아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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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철 강제철거가 금지 되어 있음에도 갈 곳 없는 철거민들을 몰아붙인 건설자본에 의한 살인이며, 생존권과 주거권을 위해 저항하는 철거민들에게 경찰특공대까지 투입해 강제진압을 자행한 공권력에 의한 살인이다" -용산철거민살인진압대책위 성명 中&#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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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1>2009년판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160;</h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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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1>은공</h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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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2>[기자의눈] 탐욕이 낳은 도심 난개발, 사람을&#160;</h2>
<h2>죽였다.&#160;</h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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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호 기자&#160; / 2009년01월20일 14시45분<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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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난장이었다. … 우리 다섯식구는 지옥에 살면서 천국을 생각했다. 단 하루도 천국을 생각해 보지 않은 날이 없다. 우리의 생활은 전쟁과 같았다. 우리는 그 전쟁에서 날마다 지기만 했다.”&lt;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공'에서&gt;<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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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mp;nbsp;&amp;nbsp;--><!-- [출처: ]-->
        
    

도시빈민의 삶을 통해 경제성장의 그늘에 대한 아픔을 그려냈던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공'은 도시재개발로 살던 곳에서 쫓겨난 가족의 운명. 끔찍한 주변 상황과 비극적 죽음을 그렸다. 소설은 절망 속에서도 지켜가는 사랑에 대한 믿음을 그리고 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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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조세희 선배는 부끄럽다고 했다. 2002년 12월 한강의 찬바람이 몰아치는 여의도 바닥, 죽창을 든 농민들의 집회 현장에 낡은 카메라를 들고 선 60대의 조세희 선배는 시위 농민들보다 더 많이 물대포에 맞아 흠뻑 젖은 몸으로 카메라를 챙기면서 "부끄럽다"고 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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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소공이 나온지 30년이 됐는데도 가난한 이의 삶이 하나도 변하지 않았기 때문에. 당시 난소공은 인쇄만 100쇄를 넘겨 단행본 소설로는 기록적인 100만 부 판매를 앞두고 있었다. 그래서 EBS 지식채널e는 '부끄러운 기록'이란 이름으로 조세희 선배의 난소공 100쇄를 재조명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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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 6월 첫 출간된 이 소설은 1996년 4월 100쇄, 2005년 11월 200쇄를 넘겼다. 2007년 9월 100만부, 2008년 11월까지 통산 105만부가 팔렸다. 잡지사 기자였던 조세희는 도시재개발로 철거를 앞둔 달동네 서민을 찾아 나섰다. 판자집에서 마지막 밥을 먹던 가족 위로 철거용역들의 포크레인이 내리찍히는 현장을 목격한 조세희는 참혹한 현장을 사진으로 찍은 뒤 동네 문방구로 가 대학노트 한 권을 샀다. 공원 벤취에 앉아 대학노트에 미친듯이 써 내려간 것이 '난소공'이 됐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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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0;&#160;20일 오전 7시경 서울 용산동 4가 한강대로변 재개발지역의 불이 붙은 건물에 철거민들이 매달려 있다 [출처: 빈곤사회연대]
        
    

오늘도 경찰은 영하의 겨울 강바람이 몰아치는 용산에서 살인진압을 자행했다. 건설회사도, 경찰도, 서울시도, 심지어 언론조차도 보상금 더 받으려고 화염병에 짱돌을 든 폭도라고 말한다. 경찰 진압으로 사람이 죽기 직전 20일 새벽 방송사들은 전날 농성 철거민들의 새총과 화염병과 짱돌에 집중했다. 경찰은 농성자들이 시너를 뿌린 뒤 진압해오는 경찰에게 화염병을 던져 불이 났다고 말한다. 그래서 진압이 불가피했다고 말한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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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현장감식도 채 끝나기 전 20일 낮 12시에 용산경찰서장은 기자들 앞에 공식브리핑을 열어 사망자가 &lt;경찰 1명, 농성자 4명&gt;이라고 했다. 불과 2시간만에 불타 버린 옥상에서 싸늘한 농성자 시신 한 구가 더 나왔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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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이 사건 직후 수사본부를 차리고 21명의 수사관을 동원해 수사에 들어갔지만 "농성자의 화염병 투척이 발화 원인"이라는 경찰의 20일 발표에 실체적 진실을 보탤 수 있을까. 경찰이 특공대원을 태운 무게 10톤의 컨테이너를 들어 올리면서 농성자들이 설치한 망루와 충돌한 것이 화재 원인이라는 현장의 시민들 목격담을 얼마나 추적해볼지.<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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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원인은 건물주와 땅주인에게만 혜택이 돌아가는 재개발 정책이다. 서울시가 19일에도 한강변에 초고층 아파트 건설계획을 대대적으로 발표했다. 바람 길과 조망권까지 고려한 개발을 하겠다고 했다. 지금의 저층 아파트 밀집상태를, 초고층 아파트를 뛰엄뛰엄 지어 조망권을 확보하겠다고 했다. 서울시는 '뛰엄뛰엄'에 방점을 찍었지만, 이 나라 부동산 역사는 언제난 '초고층 아파트'에 찍은 방점대로 흘러왔다. 도심 난개발이 국민 6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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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거민은 '몇푼의 보상금'을 노리고 화염병을 들지 않는다. 어떤 바보라도 그렇게 하진 않는다. 화염병 처벌은 몇푼의 보상금보다 훨씬 무겁기 때문에 계산이 안 나오는 장사다. 이번 용산의 세입자 상인들은 철거 건에 임시 주거와 생계를 위한 임시 시장이라도 만들어 달라고 했다.]]></description><image><url>http://www.newscham.net/data/news/photo/5/45157/2.JPG</url><link>http://blog.aladin.co.kr/vara/2541123</link></image></item><item><author>바라</author><category>대장정</category><title>국민 촛불, 겨울 국회에 머문다. </title><link>http://blog.aladin.co.kr/vara/2487866</link><pubDate>Mon, 29 Dec 2008 00:1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vara/2487866</guid><description><![CDATA[http://www.newscham.net/news/view.php?board=news&amp;nid=51021&#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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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1>국민 촛불, 겨울 국회에 머문다.&#160;</h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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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2>MB악법 강행에 맞서 28일부터 긴급비상국민&#160;&#160;</h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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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2>행동 돌입</h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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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종현 기자&#160;maleal@jinbo.net / 2008년12월28일 21시27분<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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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이 국회로 갔다. 1천 여명의 시민들이 초읽기에 들어간 한나라당의 85개 ‘MB악법’ 강행처리를 막기 위해 국회 앞에 모였다. 시민들은 28일 오후 4시부터 30일 오후까지 48시간 악법 저지 긴급 비상국민행동에 들어갔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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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생민주국민회의(준)와 한미FTA저지범국본 등은 28일 오후 4시 국회가 보이는 서울 여의도 국민은행 앞에서 1천여명이 모여 ‘한미FTA국회비준, 신문법·방송법 개악, 반민생·반민주 MB악법 저지 비상국민행동’을 열었다. 비상국민행동은 29일 새벽 한나라당의 법안 강행처리 가능성이 높아지자 당초 일정보다 하루 당겨 비상행동에 들어갔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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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헌 민주화운동가족협의회 양심수 후원회장은 “유신시대를 능가하는 완전 새로운 독재의 망령이 되살아나고 있다. 총칼만 들지 않았을 뿐이지 이것은 쿠데타”라고 현 상황을 설명했다. 권오헌 회장은 “이명박 정부 1년 동안 20년 넘게 쌓아올린 민주질서를 뿌리채 뽑으려는 한나라당의 반민주반민생악법을 반드시 막아내자”고 말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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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권 민주노총 부위원장은 “IMF 이후 10년만의 위기 앞에 정권과 자본은 책임을 전가하기 위해 최저임금제 개악, 비정규직 기한 연장 등 악법을 준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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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재 언론노조 위원장은 “신문법과 방송법이 통과돼 정권이 언론을 장악하면 가난하고 힘없는 노동자 농민 서민의 삶은 더 이상 보도하지 않을 것이고 나라는 소수 1%를 위한 사회가 되는데도 국민들은 그것조차 모르고 살 수도 있다”고 말했다. 최 위원장은 “30일 파업에 참여한 언론노조 조합원들과 KBS사원행동, YTN, CBS, EBS의 언론노동자가 반드시 악법을 저지하겠다”고 밝혔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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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미 한국여성단체연합 공동대표는 “1년 내내 국민들을 못살게 군 게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인데 그 사실을 이명박과 한나라당만 모른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언론이 더 일찍 MB법안이 국민의 삶에 어떤 악영향을 미칠지 제대로 보도했다면 국민들이 그냥 넘어가진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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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 민주노동당 의원은 “점거농성밖에 할 게 없어 부끄럽고 죄송하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반드시 막겠다. 함께해달라”고 호소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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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범구 민주당 대외협력위원장은 무대에 올라 국회 안 상황을 간단히 설명했다. 정 위원장은 약 200여명의 민주당, 민주노동당 의원과 당직자 등이 국회의장석과 본회의장, 문방위·정무위·행안위회의장과 국회의장실·본회의장에서 농성중이고 본회의장과 국회의장석을 점거한 의원은 몸에 사슬을 묶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 위원장은 “한나라당이 쪽수로 밀어붙이겠다는데 한나라당 쪽수가 국민보다 많은가, 국민 여러분이 쪽수로 막아달라”고 호소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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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비상국민행동에는 민주노동당, 사회당, 민주당 등 정치권과 민주노총 공공노조 참여연대 범민련남측본부 다함께 사회진보연대 나눔문화 한국청년단체협의회 등 노동시민사회단체, 한국대학연합 한국대학생문화연대 고려대총학생회 등 학생단체, 안티이명박 아고라 명박퇴진 등 네티즌 단체들이 함께했다. 이날 저녁 6시께 집회를 마친 참가자들은 같은 자리에서 촛불문화제를 계속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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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저녁 6시 30분께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인권운동사랑방 등 인권단체 연석회의 회원 30여명이 한나라당사 앞에서 ‘MB법안’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려했으나 경찰이 갑자기 달려들어 인권단체 회원들을 둘러싸고 마이크를 뺏고 기자의 촬영을 막는 등 불법행위를 저질렀다. 인권단체 회원들은 경찰에 격렬히 항의하며 기자회견을 이어갔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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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단체 연석회의는 기자회견문에서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의 경제살리기라는 법안들은 사실 경제위기 심화 법안”이라고 밝혔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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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밤 여의도 국민은행 앞에서는 노동조합, FTA 반대 농민단체, 시민사회단체, 대학생, 누리꾼 등 300여명이 남아 노숙농성에 들어갔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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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국민행동은 29일 낮 1시 여의도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시작으로 2시 농민대회, 5시 국민대회, 7시 시국기도회를 이어간다. 오는 30일에는 오후 2시 각 부문별 대회에 이어 5시 국민대회, 7시 시국법회 등을 예고했다.]]></description><image><url>http://www.newscham.net/data/news/photo/8/44952/sKY8H3352.jpg</url><link>http://blog.aladin.co.kr/vara/2487866</link></image></item><item><author>바라</author><category>대장정</category><title>강남 아줌마와 현대차 조합원, 뭐가 다릅니까?(프레시안)</title><link>http://blog.aladin.co.kr/vara/2403209</link><pubDate>Fri, 14 Nov 2008 00:5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vara/2403209</guid><description><![CDATA[

    
        
            &#160;
            "강남 아줌마와 현대차 조합원, 뭐가 다릅니까?" 
        
        
            &#160;
            [길에서 책읽기] &lt;청계, 내 청춘&gt; 
        
        
            &nbsp;
        
        
            &#160;
            2008-11-13 오전 7:44:49
        
    



11월 13일, 사랑과 평화의 날<br />
&#160;&#160;<br />
&#160;&#160;다시 11월 13일입니다. 옅은 잿빛 구름이 하늘을 덮고 있던 1970년 11월 13일. 그날을 겪었던 사람들은 해마다 11월 13일만 돌아오면 가슴이 찢어지는 산고를 겪습니다. 무고한 생명을 살리기 위해 한 방울의 이슬이 되었던 어느 청년 노동자의 생생한 절규가 아직도 귓전을 후려치기 때문입니다.<br />
&#160;&#160;<br />
&#160;&#160;전태일은 그저 단순한 항의나 분노의 표현으로 자신의 몸을 불태운 것이 아닙니다. 그는 노동하는 이웃이 단순한 기계가 아니라 온전한 사람이라고, 노동자는 노예가 아니라 스스로 사람임을 선언해야 사람다운 사람이 된다고 소리쳤습니다. 그는 평화시장의 나이 어린 노동자들이 시들어 가는 것을 그냥 방관하고 있는 것은 자신의 목숨을 시들게 하는 것과 같다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몸과 마음을 던져 자신의 몸과 마음인 평화시장의 어린 노동자들 곁으로 갔습니다. 사랑과 진리의 책을 쓰는 대신 사랑과 평화의 공동체를 꿈꾸며 횃불을 들었습니다.<br />
&#160;&#160;<br />
&#160;&#160;전태일의 헌신과 투쟁은 바로 사랑의 극한이었습니다. 진심에서 우러나온 절절한 사랑과 평화의 정신이 있었기에, 사랑의 결실인 수많은 전태일들이 1970년대 내내 가슴을 찢고 태어났습니다. 전태일로 다시 태어난 수를 헤아릴 수 없는 생명체들이 전태일이라는 모태신앙을 바탕으로 자신의 목숨을 던져 노동운동에 뛰어 들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도 눈 맑고 귀 밝은 깨닫고 실천하는 자 전태일들이 사람을 사람으로 바로 세우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전국 방방골골에서 자신의 몸과 마음을 던지고 있습니다.<br />
&#160;&#160;<br />
&#160;&#160;이처럼 11월 13일은 단순히 어떤 청년 노동자의 항의 분신을 기념하는 날이 아닙니다. 11월 13일은 다름 아닌 사랑과 평화의 날입니다. 사랑을 확인하고 우리가 사람임을 선언하는 날입니다.<br />
&#160;&#160;<br />
&#160;&#160;전태일 이후 비로소 한국 노동운동은 반공 정신 병동이었던 박정희 독재 체제의 철벽을 뚫고 그 푸르른 잎을 피울 수 있었습니다. 한국전쟁 이후 빨갱이 운동으로 금기시되었던 노동운동이 비로소 개화할 수 있었습니다.<br />
&#160;&#160;<br />
&#160;&#160;전태일이 분신의 십자가를 메고 산화한 지 1년 뒤인 1971년 11월 22일 우여곡절 끝에 조합원 516명의 가입원서를 받아 연합노조 청계피복지부가 결성되었습니다. 이로써 파란만장한 청계피복노동조합의 투쟁과 1970년대 민주노조운동의 서막이 올랐습니다.<br />
&#160;&#160;<br />
&#160;&#160;이어서 1972년 5월에는 인천에 있는 동일방직에서 최초의 여성지부장 탄생과 함께 기존의 어용 노조가 민주노조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8월에는 서울의 한국모방(원풍모방) 지부가, 1973년에는 콘트롤데이타지부가, 1974년에는 반도상사 지부가, 1975년에는 YH무역 지부가 신규 민주노조로 속속 결성되었습니다.<br />
&#160;&#160;<br />
&#160;&#160;1970년대 민주노조운동은 오늘날과 같이 수많은 노동조합이 참여하는 총파업을 벌이거나 수십만이 모이는 집회를 개최한다거나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민주노조라고 부를 수 있는 노동조합의 숫자는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을 만큼 소수에 불과했습니다. 그럼에도 70년대 민주노조운동을 한국 노동운동의 원형이라고 평가하는 것은 그 운동의 질과 내용이 대단히 풍부하고 창의력 있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br />
&#160;&#160;<br />
&#160;&#160;사망 선고 직전의 한국 노동조합운동<br />
&#160;&#160;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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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태일은 1970년 11월 13일 스스로 '불꽃'이 돼 위대한 역사를 만들어냈다. 마석 모란공원의 묘. ⓒ프레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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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160;그런데 오늘날 38번째 생일을 맞이하는 한국 노동운동은 겉으로는 번듯한 양복을 입고 얼굴은 멀쩡한 듯 보이기도 합니다만, 그러나 참으로 삭막하고 처참하기만 합니다. 또다시 1970년 그 시절의 전태일처럼 외롭고 쓸쓸하고 고독하게 결단을 요구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1970년대부터 시작된 민주노동운동이 여름날의 나뭇잎처럼 푸르기만 해야 하는데, 실상은 암세포가 전신에 퍼져 사망 선고를 받기 직전의 환자로 전락해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기 때문입니다.<br />
&#160;&#160;<br />
&#160;&#160;얼마 전 금속노조 현대차지부 대의원대회에서는 비정규직에게 노조 문호를 개방하는 규칙 개정안이 예상대로 부결되고 말았습니다. 규칙 개정을 위해서는 대의원 3분의 2 찬성이 필요한데, 찬성표는 절반도 넘지 않았습니다. 영구 임대 아파트 사이에 바리케이드를 치고 차량통행조차 막거나 아예 임대 아파트가 들어서지 못하도록 시위하는 강남의 일반 아파트 주민들과 하나도 다를 바 없는 행위였습니다. 이들이 어찌 자신은 점심을 굶으면서 도시락을 싸오지 못한 시다들에게 차비를 털어 풀빵을 사주었던 전태일 앞에 설 수 있는지 참으로 민망하기만 합니다.<br />
&#160;&#160;<br />
&#160;&#160;어쩌다 한국 노동운동이 이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었습니까.<br />
&#160;&#160;<br />
&#160;&#160;우리는 이 시점에서 진실로 겸허하게 근본에서부터 다시 한국 노동운동을 성찰할 필요가 있습니다. 왜 노동운동을 하며, 노동운동의 궁극 목표가 무엇인지 곰곰이 다시 따져보아야 합니다. 임금이 오르기만 하면 노동자의 해방이 실현되는 것인지 되물어야 합니다. 너무나 자주 들어 이제는 아무런 감흥조차 나지 않는 상투어, 노동자가 해방되는 세상이란 도대체 어떤 세상인지 진지한 재검토가 필요합니다. 한마디로 한국 노동운동은 전태일 앞에서 재탄생해야 하며, 불가피하게 비정규직을 중심으로 다시 일어서야 합니다.<br />
&#160;&#160;<br />
&#160;&#160;우리는 늘 근본과 원형으로 다시 돌아가고자 하는 '처음처럼'의 비판의식을 갖고 있어야 건강함을 잃지 않게 됩니다. 한국 노동운동의 에너지 재충전은 전태일과 1970년대 민주노조운동의 역동성과 활기, 그리고 초발심으로 되돌아가야 합니다. 농촌에서 올라와 그야말로 '자유로운' 노동자로 홀로 공장에 내팽개쳐졌던 노동자들이 노동 공동체를 형성하는 순간 역사는 바뀐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 몇 천 명에 지나지 않았던 노동자들이 강한 인간관계와 연대로서 뭉치는 것을 넘어서 공동체를 조직하는 순간 철벽처럼 거대한 박정희 군사독재정권의 권력과 맞설 수 있을 정도의 힘을 갖게 된다는 사실을 다시 학습해야 합니다.<br />
&#160;&#160;<br />
&#160;&#160;1970년대 민주노동조합은 사람과 사람의 진정한 결합이야말로 그 어떤 총칼과 권력 자원의 힘보다 강하다는 사실을 새삼 각성하게 해 줍니다. 1970년대 민주노조운동에 몸담았던 수많은 노동자들이 그 이후 노동운동의 주역으로 활동했을 뿐만 아니라 오늘날까지도 생활 속의 민주주의 운동과 지역자치운동, 여성운동과 소수자 인권운동 등 우리 사회 각 분야에서 의미 있는 삶을 살고 있는 사실에서 알 수 있듯 1970년대 민주노조운동은 깊은 강물처럼 저류로서 흐르고 있는 현재 진행형의 공동체 사회운동이기도 했습니다.<br />
&#160;&#160;<br />
&#160;&#160;지금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은 다름 아니라 바로 이같은 1970년대 민주노조의 전태일 정신과 그 공동체입니다.<br />
&#160;&#160;<br />
&#160;&#160;노동운동의 재탄생, 공동체 노동운동<br />
&#160;&#160;<br />
&#160;&#160;잘 알려져 있다시피 자본주의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사람들의 공동체를 해체해야만 가능한 제도였습니다. 노동조합은 이처럼 해체된 공동체 성원들인 모래알같은 노동자들이 다시 새롭게 만든 공동체였습니다. 노동조합은 자본주의의 착취와 억압에 맞서는 노동자들의 조직이었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사회를 열어가는 공동체운동의 씨앗이기도 했습니다.<br />
&#160;&#160;<br />
&#160;&#160;1970년대 민주노동운동을 관통하고 있던 가장 주요한 노동운동 이념은 그 근본 바탕이 공동체 이념이었습니다. 노동조합은 새로운 인간관계의 마당이자 새로운 공동체였습니다.<br />
&#160;&#160;<br />
&#160;&#160;청계 노동자들과 동일방직 노동자들이 이구동성으로 증언하고 있는 것처럼 노동조합의 소모임은 그 어떤 거창한 이념 학습의 조직이 아니었습니다. 그냥 일상의 희로애락을 함께 하고, 자신이 하나의 살아 있는 인격체로서 인정을 하고 인정을 받는 기초 공동체였습니다. 그에 바탕을 둔 노동조합이 노동자들의 가장 중요한 공동체로 발돋움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습니다.<br />
&#160;&#160;<br />
&#160;&#160;대부분의 1970년대 민주노조 조합원들이 가장 강하게 기억하고 있는 것은 이같은 공동체 정서입니다. 1987년 이후 울산의 현대 노동자들이 경험한 것도 이같은 노동공동체였습니다. 산업선교회와 가톨릭청년노동자회에 노동자들이 그렇게 몰려들었던 것도 이처럼 소모임이라는 새로운 인간관계, 새로운 공동체가 있었기 때문입니다.<br />
&#160;&#160;<br />
&#160;&#160;자본은 절대로 단순하거나 무력하지 않습니다. 자본은 국가도 무력화시킬 만큼 엄청나고도 막강한 힘을 행사하는 리바이어던(Leviathan)으로 변신해 있습니다. 자본은 끊임없이 노동자 조직을, 새로운 공동체의 싹을 무자비하게 잘라버립니다. 지구상의 모든 공동체는 이미 해체되었거나 해체되어가고 있는 중입니다.<br />
&#160;&#160;<br />
&#160;&#160;그런 자본에 대항해서 새로운 공동체를 형성하는 작업은 사실 고통스럽고 지난한 일임에 틀림없습니다. 1970년대 민주노조의 노동자들은 그런 지난한 일을 처음부터 너무나 큰 기쁨과 각성으로 가득 차서 시작했습니다. 공동체 속에서 노동자는 비로소 사람다운 대접을 받을 수 있었고 사람다운 삶이 무엇인지 스스로 터득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br />
&#160;&#160;<br />
&#160;&#160;노동공동체가 퇴색되거나 사라져버린 서구의 노동조합은 그야말로 노동운동의 무덤일 뿐입니다. 노동조합이 새로운 공동체로서 자유로운 인간들의 상호부조 사회로 바꾸는 근거지 역할을 수행하지 못한다면, 노동자들이 자신의 삶을 자유롭게 누리고 또 평등과 사회정의가 확립되는 새로운 사회의 맹아가 되지 못한다면, 사회구조를 배우고 사회를 바꾸기 위한 학교가 되지 못한다면, 그 노동조합과 노동자들은 결국 노예의 노동조합과 노예노동자일 뿐입니다. 초기 노동조합의 공동체운동 이상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수많은 서구의 노동조합은 그저 운동경기 팀처럼 하나의 사업체, 눈앞의 임금과 노동조건만 챙기는 이익단체일 뿐입니다. 그리고 한국의 노동조합도 어느새 그런 노예의 노동조합으로 변질되어 가고 있는 중입니다.<br />
&#160;&#160;<br />
&#160;&#160;1970년대 중앙정보부 제2국은 노동청과 경찰, 행정부서와 사용주까지 배후에서 조정하고 심지어는 고문까지 자행하며 민주노조의 활동을 정권 차원의 문제로 다루고 있었습니다. 중앙정보부는 한국노총 위원장과 사무총장뿐만 아니라 각 산별 위원장까지 사실상 하수인으로 삼아 노동자들의 움직임을 일일보고 형식으로 보고받았습니다. 산별노조 위원장급은 중앙정보부로부터 한 달에 3~4000원의 기밀비를 별도로 지급받았습니다(당시 쌀 한 가마는 2000원 정도였습니다). 중정 요원은 한국노총의 각종 회의와 산별노조 회의에도 참석하여 주요 문건과 성명서 등을 사전에 검토하였고 위원장 선거에도 개입하여 중정과 밀착 관계에 있는 하수인들이 당선되게끔 조작하기도 하였습니다.<br />
&#160;&#160;<br />
&#160;&#160;지금 이명박 정부가 역사를 거꾸로 돌리고 있습니다. 한국노총은 다시 1970년대의 어용 한국노총으로 복귀하고 있습니다.<br />
&#160;&#160;<br />
&#160;&#160;전태일, 새로운 공동체 노동운동의 오래된 미래<br />
&#160;&#160; <br />

    
        
            
        
        
            ▲ &lt;청계, 내 청춘&gt;(안재성 지음, 돌베개 펴냄, 2007). ⓒ프레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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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160;이 시점에서 우리는 전태일이 오늘의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가슴에 손을 얹고 다시 성찰해야 합니다. 한국의 노동운동뿐만이 아니라 민주화운동, 시민사회운동도 어느새 사랑의 정신과 공동체 정신을 잃고 말았다는 사실을 다시 깨달아야 합니다.<br />
&#160;&#160;<br />
&#160;&#160;역사가 우리의 삶을 성찰하게 하고 자신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거울이라면 우리는 전태일과 1970년대 민주노조운동의 거울을 다시 꺼내 들어야 할 때에 이르렀습니다. 한국 노동조합이 노동운동 조직으로서 거듭나려면 무엇보다도 전태일과 1970년대 민주노조운동을 다시 배우지 않으면 안 됩니다. 1970년대 민주노조가 그렇게 당연히 실천했던 공동체 운동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노동자들의 새로운 인간관계와 새로운 모임으로서 노동조합이 재정립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노동조합이 협동조합을 비롯해 공제조합 등등 다양한 노동자 조직의 산실이 되어야 합니다. "자본은 노동의 하인이 되어야 한다"는 신념 아래 펼쳤던 협동조합운동과 노동조합운동은 형제의 운동입니다.<br />
&#160;&#160;<br />
&#160;&#160;1970년대 민주노조운동은 한 사람의 노동노예를 자유인으로 변혁시켰던 인간해방의 운동이었습니다. 억압과 착취의 인간관계를 사랑과 평화의 평등한 인간관계로 바꾸는 사회해방의 운동이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공동체가 해체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애와 협동의 새로운 공동체를 형성했던 공동체 운동이었습니다.<br />
&#160;&#160;<br />
&#160;&#160;1970년대 민주노동조합의 역사를 다시 소환해야 할 가장 중요한 지점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소모임에서부터 시작해서 노동 공동체를 스스로 만들어 나갔던 전태일과 1970년대 민주노조의 역사는 우리가 다시 그 씨앗을 뿌려야 할 가장 중요한 역사의 자산입니다.<br />
&#160;&#160;<br />
&#160;&#160;전태일과 1970년대 민주노동조합이 오늘의 노동운동, 나아가 개인의 삶과 이 사회에 던지는 의미는 무엇이겠습니까. 오늘에 던지는 절절한 호소문은 무엇이겠습니까.<br />
&#160;&#160;<br />
&#160;&#160;비정규직의 깊고 깊은 한숨과 절망의 외침이 가슴을 찢는 오늘날 한국 노동운동은 다시 옷깃을 여미고 새롭게 태어나야 합니다. 전태일과 1970년대 민주노조는 한국 노동운동이 앞으로 반드시 지향해야만 하는 공동체운동의 오래된 미래입니다. <!---- //기사 본문 끝 ----><!---- 관련링크 기자 시작----><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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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0;<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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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승옥/전태일기념사업회 운영위원<br />
            
        
    
]]></description><image><url>http://www.pressian.com/images/2008/11/13/60081112100718.jpg</url><link>http://blog.aladin.co.kr/vara/2403209</link></image></item><item><author>바라</author><category>대장정</category><title>맑스주의 위기론과 신자유주의 금융위기(김성구) </title><link>http://blog.aladin.co.kr/vara/2353395</link><pubDate>Thu, 16 Oct 2008 02:4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vara/2353395</guid><description><![CDATA[맑스주의 위기론과 신자유주의 금융위기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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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구 (한신대 국제경제학과)&#160; / 2008년10월13일 19시10분<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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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사태에서 비롯된 금융충격으로 국내외적으로 위기와 공황에 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8500억 달러의 구제금융 법안이 미 상하원을 모두 통과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금융시장이 과연 안정될 것인지, 금융시장의 위기가 실물경제의 위기로 발전하는 건 아닌지 금융시장에서는 비관적인 전망이 우세한 실정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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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당면한 위기와 공황을 논하기에 앞서 그것이 도대체 어떤 위기인지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맑스주의 위기론에 입각한 여러 논자들조차 위기의 원인과 성격을 혼란스럽게 말하기 때문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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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스의 주기적 과잉생산공황<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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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맑스가 위기를 말할 때, 그것은 10년마다 찾아오는 주기적 과잉생산위기(=주기적 과잉생산공황) 또는 주기적 과잉축적위기를 지칭하였다. 이미 &lt;공산당선언&gt;에서 맑스는 이 위기가 주기적 과잉생산위기라는 것, 세계적 규모에서 발생하는 위기라는 것, 그리고 근대적 생산력과 부르주아적 생산관계와의 모순의 표현이라는 것임을 분명히 하였고, 그런 점에서 체제적 위기와의 관련을 포착하였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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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맑스에게 주기적 과잉생산위기는 자본주의의 기본모순의 표현이며 자본주의 체제의 위기와 이행을 표현하는 것이지만, 동시에 그것은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위기였다. 이 점이 위기에 관한 맑스의 관점을 반성, 변화시킨 지점이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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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스는 전자의 관점에서 사회혁명은 새로운 위기의 결과로서만 일어날 수 있다고 믿었고, 이러한 공황관이 그로 하여금 정치경제학비판과 공황의 연구에 몰두하게 만든 주요 요인이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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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맑스도, 엥겔스도 만년에는 이러한 공황관과 혁명관을 반성하고 방기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경제적 위기와 정치적 변혁 간에는 그렇게 단선적인 관계가 아닌, 정치적 실천이 매개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맑스와 엥겔스의 생전에 반복되는 주기적 위기는 이러한 반성의 현실적 토대였을 것이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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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를 이렇게 파악하면,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로 새로운 위기가 임박하고 있다면, 이는 우선 새로운 주기적 과잉생산위기가 임박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현재의 경기순환은 미국에서 2001년 공황으로부터 시작하였는데, 이 순환이 조만간 새로운 공황으로 끝을 맺을 것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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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상 10년 주기는 순환에 따라 다소 단축될 수도 있고 또는 늘어질 수도 있는 만큼 새로운 공황을 정확히 예측할 수는 없지만, 작년 4/4분기 이래 점차 악화되고 있는 미국의 실물경제 지표를 감안하면 금융충격이 실물경제의 위기로 끝날 것임은 점점 더 부정하기 어렵게 되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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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적 위기 또는 구조적 위기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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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스는 주기적 과잉생산위기를 이미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 또는 위기의 표현으로 이해하였지만, 이 모순 또는 위기는 주기적 공황 자체를 통해 극복되고 새로운 순환이 반복되는 것임을 분명히 하였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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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순환의 반복은 단순한 반복이 아니라 보다 높은 생산력 수준에서의 모순의 전개를 의미하며, 이렇게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관계는 순환의 반복 하에서 심화되는데, 그 모순의 심화는 다름아닌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법칙에 표현되어 있다. 자본주의 축적의 모든 동인이 이윤의 획득에 있는 한, 평균이윤율의 경향적 저하는 자본주의 체제의 위기를 표현하는 것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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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위기는 주기적 과잉생산위기와 달리 경향적, 장기적 위기를 의미한다. 주기적 위기를 주기적 위기를 통해 극복해간다 하더라도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로 인해 자본주의는 장기적으로 성장이 둔화되고 그 체제가 불안정해진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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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의 무제한적 확대와 대중소비의 제한, 즉 주기적 과잉생산의 모순에서 폭발하는 10년 주기의 위기와 달리 이 위기는 생산력의 고도화, 유기적 구성의 고도화에 따른 잉여가치 생산의 상대적 저하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여기서 상론할 수는 없지만, 김수행, 정성진, 윤소영 교수처럼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법칙으로 직접 주기적 과잉생산공황을 설명하려는 시도는 맑스의 방법론을 잘못 이해한 것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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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는 반대로 작용하는 상쇄력의 동원을 동반한다. 따라서 평균이윤율은 단선적으로 하락하지 않고, 상쇄력의 여하에 따라 그 자체 변동하는데, 그 변동이 바로 자본주의의 장기성장과 장기하강을 가져온다. 즉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가 관철하는 경우 자본주의는 장기하강에 빠지고 구조적 위기에 직면하게 되며, 강력한 상쇄력이 작용하면 이윤율 조건을 개선하여 자본주의의 장기성장을 이끌게 된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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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으로 보면, 이렇게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가 관철하면서 3번의 구조적 위기가 발생하였는데, 그 최근의 구조위기가 다름아닌 브레튼우즈 체제의 붕괴를 가져온 1970-80년대의 제3차 구조위기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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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위기 시에도 10년 주기의 경기순환이 반복, 진행하지만, 구조위기 시의 경기순환들은 대체로 호황의 상대적 약화와 공황의 상대적 심화로 특징지워진다. 따라서 성장의 둔화는 필연적인 귀결이다. 구조적 위기는 주기적 위기와 달리 상부구조를 포함하여 자본주의 체제의 일정한 구조재편을 요구하는 성격의 위기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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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적 국가독점자본주의의 위기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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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이래 현대자본주의는 국가독점자본주의의 신자유주의적 재편을 통해 이 구조적 위기를 극복하고자 하였다. 신자유주의적 재편의 핵심은 케인스주의의 해체 위에서 자유화, 세계화, 금융화, 투기화, 유연화를 실현하는 것이었는데, 주지하다시피 이 전환과 재편은 케인스주의의 위기를 극복한 것이 아니라 오리려 성장의 둔화와 대량실업을 고착, 심화시키고 위기를 세계화시켰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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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사태에서 비롯된 금융위기만이 아니라 1990년대 이래 파상적으로 전개된 국제금융위기와 외환위기는 이러한 전환이 가져온 새로운 성격의 위기임을 인식하지 않으면 안 된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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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현대자본주의의 현재의 위기는 제3차 구조위기의 지속이라기보다는 신자유주의적 국가독점자본주의의 고유한 위기이며, 이는 제3차 구조위기로부터 등장한 신자유주의적 국가독점자본주의가 이전의 구조위기들에서와 달리 새로운 장기성장으로 전환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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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점에서 다가오는 새로운 위기란 신자유주의적 국가독점자본주의의 고유한 위기를 배경으로 전개되는 2001년 순환의 종료 즉 새로운 주기적 과잉생산공황을 말하는 것이다. 이 공황을 단순하게 맑스의 주기적 과잉생산공황으로만 이해하는 것은 신자유주의적 금융화와 증권화에 의해 특징지워지는 이 순환의 특징을 간과하는 게 된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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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맑스주의 위기론은 월러스틴이나 아리기같은 장기파동론자들의 위기론과 본질적으로 상이하다. 또한 현재의 경제정세의 판단도 맑스주의 위기론과 장기파동론은 서로 상반된다. 예컨대 월러스틴은 현대자본주의가 대체로 1990년대 말 또는 2000년대 초 이래 새로운 장기성장의 국면으로 전환되며, 새로운 장기하강은 2025-2050년에 전개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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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이들이 새로운 위기를 운운한다면, 그것은 기껏해야 소위기 즉 주기적 위기의 도래일 뿐인데, 장기성장 국면에서의 주기적 위기는 별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들의 경제학에 기반하고 있는 윤소영 교수가 다가오는 새로운 위기에 심대한 의미를 부여한다면 그건 앞뒤가 맞는 주장이 아니다. 근본적으로 윤 교수는 구조위기와 주기적 위기의 관련을 이해하지 못하고 극도로 양자를 혼동하고 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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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개입과 공적자금 투입의 모순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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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 금융위기에 대해 국가가 공적자금의 투입으로 개입하는 것은 일견 모순되지만, 신자유주의 하에서도 국가개입은 결코 철폐되지 않았음을 직시하면 하등 모순이 아니다. 국가는 여전히 총자본과 총독점자본의 기관이며 그 이윤을 보장하기 위해 위기에 개입한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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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오히려 공적자금 투입의 모순적 효과에 있다. 시장의 위기는 과잉자본의 청산을 요구하는 것인데, 오늘날 시장기제를 통한 기업의 도산과 과잉자본 청산은 자본주의 자체를 청산할 위험이 높기 때문에 국가개입과 공적자금 투입이 불가피하지만, 이런 위기관리 방식은 과잉자본의 청산을 지연시켜 경제회복과 새로운 성장을 어렵게 하기 때문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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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적자금을 동원하는 손실의 사회화, 국영화, 자본주의적 사회화는 이렇게 모순적이어서 결코 위기의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진정한 해결책은 진보적 사회화뿐이며, 여기에는 부실기업의 대주주와 경영자, 채권자, 증권소유자 등 자본가계급에게 최대한 부실 책임을 전가하는 것이 전제되어야 한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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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한편에서 과잉자본 청산에 기여하고 다른 한편에서 공적자금 투입을 최소화시킬 것이다. 궁극적으로 진보적 사회화는 국가독점자본주의를 넘어가며 사회화된 기업에서 시장경쟁과 이윤추구를 지양함으로써 자본주의 위기의 근원을 없애 나갈 것이다.]]></description></item><item><author>바라</author><category>대장정</category><title>미국경제위기 어떤 상태인가?(박하순)</title><link>http://blog.aladin.co.kr/vara/2353367</link><pubDate>Thu, 16 Oct 2008 02:1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vara/2353367</guid><description><![CDATA[<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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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1>미국경제위기 어떤 상태인가?</h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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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2>[칼럼] 구조적 위기 또는 심각한 공황으로 이</h2>
<h2>어질 가능성 커</h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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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하순(노기연/사회진보연대)&#160; / 2008년08월04일 15시46분<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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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미국 제 5위 투자은행 베어스턴스가 몰락할 무렵 신용경색과 경제위기 공포가 최고조에 달했다가, 미 연방준비위원회의(연준) 지원 아래 제이피모건체이스 은행이 베어스턴스를 인수하고 금융시장이 어느 정도 안정을 되찾았었다. 그래서 대공황 전문가로서 미 연준 의장을 맡고 있는 벤 버냉키는 6월에 "미국 경제의 실질적인 하강 위험이 줄어들었다"고 언급하였고, 앨런 그린스펀 전 연준 의장은 "신용위기 최악의 상황은 이미 끝났거나 곧 끝날 것"이라 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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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것이 채 한 달이 지나지 않아, 민영화되었으나 정부가 일정하게 지원하는, 합해서 모기지 시장의 반 정도를 점유하는 거대 주택금융(모기지) 업체인 패니메이(Fannie Mae)와 프레디맥(Freddie Mac)의 부실 소식으로 다시 금융시장이 요동을 쳤다. 미 정부는 재무부로 하여금 양 기관에 대한 신용공여한도를 각각 22.5억 달러씩 향후 18개월 동안 증액하고 필요할 경우 양 기관으로 대표되는 정부지원 모기지업체 발행 주식을 매입할 수 있는 권한을 재무부에 부여하는 법안을 제출하여 의회의 승인을 얻었다(그린스펀은 최근 양 기관의 국유화를 주장하였고, 벤 버냉키도 최후의 카드로 이를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시장은 다시 어느 정도 안정을 되찾았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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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금융시장이 위기감에 휩싸이고 뒤이어 중앙은행의 금리인하 및 유동성 공급과 정부의 경기진작책 및 공적자금 투입 발표가 있으면서 시장이 상대적인 안정을 되찾는 식의 교대가 2007년 중반 비우량(서브프라임) 주택담보대출 사태가 발발한 이후 1년간 계속되고 있다. 올해 들어서는 미국경제의 이런 불안한 행보에 유가 변수까지 가세하게 되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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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미국경제는 현재 어떤 상태에 있는가? <br />
최근 발표된 속보치(나중에 수정될 수 있다)에 따르면 미국경제는 2/4분기에 연율로 환산하여 1.9% 성장한 것으로 나타났다. 9.2% 증가한 상품 및 서비스 수출(1/4분기에는 5.1% 증가하였다)과 6.7% 증가한 정부지출(1/4분기에는 5.8% 증가하였다)이 이 정도의 성과를 내는 데 상당한 기여를 하였다. 그리고 국내총생산의 약 70%를 차지하는 소비도 1.5% 증가하여(1/4분기에는 0.9% 증가하였다) 경제성장률이 더 악화하지 않는 데 기여하였다. 경기침체를 막기 위해 미 정부가 4월부터 1,680억 불에 이르는 소득세를 환급해 주었고 이것이 소비지출을 어느 정도 늘리는 데 기여하였을 것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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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금융시장 주변에서는 2.3% 정도의 성장률을 예측하였는데 이에는 약간 미치지 못한 것이다. 그리고 1.0%로 발표되었던 1/4분기 경제성장률은 0.9%로 수정되었고, 0.6%로 발표되었던 2007년 4/4분기 성장률은 -0.2%로 수정되어 발표되었다. 대체로 2분기 이상 마이너스 성장을 하는 경우로 정의되는 경기침체가 시작되었는지 아닌지, 시작되었다면 언제 시작되었는지에 대해 그동안 논란이 있었는데 논자에 따라서는 미국의 경기침체의 시작시점을 2007년 4/4분기로 이야기할 수 있게 된 상황이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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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최근 발표한 고용통계를 보면 7월 실업률은 4년 만에 최고치인 5.7%를 기록하였고, 고용규모는 7개월 연속 감소하였다. 4월까지만 해도 실업률은 5%였는데 그 사이 무려 0.7%포인트가 증가한 것이고 6월 실업률 5.5%보다 0.2%포인트가 상승한 것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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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하더라도 아직은 경착륙이나 공황을 이야기할 상황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불안불안하게 금융위기 상황을 헤쳐 나오고 있는 중이다. 그러면 미국경제는 앞으로도 약간의 어려움은 있겠지만 최악의 상황은 피할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은 우선 주택가격 하락이 얼마나 더, 언제까지 하락할 것인가에 달려 있어 보인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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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불거진 미국경제의 위기적 양상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대출 부실에서 시작하였다. 신용이 썩 좋지 않은 사람들이 모기지 은행에서 주택 자금 대출을 받아 주택을 샀는데(사실 이런 연유로 주택가격이 계속 오르고 주택부문의 성장도 과도하게 진행되었다. 즉 주택시장에 커다란 거품이 형성된 것이다), 이자부담이 늘고 소득이 감소하자 이들 중에 그 원리금을 제 때에 상환하지 못한 주택구매자들이 많아졌다.(이자부담이 왜 늘어났는가? 2000년대 초반 정보기술부분에서의 거품붕괴를 막기 위해 대폭 낮아진 기준금리는 2004년부터 오르기 시작했고, 많은 모기지들이 초기 2-3년은 낮은 이자율, 이후 7-8년은 높은 이자율을 지불하는데 2000년대 초중반 급격히 늘어난 서브 프라임 모기지들은 2000년대 중후반부터 높은 금리를 지불해야 했다. 소득은 왜 감소하였는가? 자동차 공업 부진 등으로 이들 지역의 실업이 늘어났고 당연히 소득이 감소하였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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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기지 은행에서 다른 금융기관으로 넘겨진 주택대출자산을 근거로 하여 채권(MBS, ABS)과 이보다 더 복잡한 채권들(CDO)이 발행되었는데(주택대출자산의 유동화) 이들의 가격이 하락하고, 이런 채권들을 보유한 각종 금융기관들(투자은행, 헤지펀드, 상업은행 등)이 부실해졌다. 물론 원리금을 못 갚은 주택소유자들의 주택은 값싸게 처분되고 주택가격은 하락하였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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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주택가격이 오르고 있을 때에는, 원리금을 갚지 못할 사람들이 오른 주택가격에 기초해 다시 대출을 받아 문제를 연기할 수도 있었고 받은 현금을 다른 용도로도 사용할 수 있었는데, 일단 주택가격이 내리기 시작하면 이것이 불가능하게 되고 하락한 주택가격은 대출금에 미달해 주택을 팔아 이 문제를 해결할 수도 없게 되어, 연체율은 더욱 높아지게 되고 결국 주택은 금융기관으로 넘어가 처분된다. 즉 연체는 주택가격 하락의 원인이기도 하지만 주택가격 하락으로 인해 연체가 늘어나기도 한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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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에서 주택건설 축소 및 해당부문에서의 생산 및 소득의 감소, 금융기관의 부실 및 해당부분의 손실 확대, 신용경색으로 인한 금리상승과 이로 인한 소비 및 투자 축소나 주식시장의 부진, 그리고 이로 인한 소비 축소가 일어나게 된 것이다. 여기서 주택가격 하락은 현재의 위기의 크기나 깊이의 척도가 된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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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가격은 이전 최고치에서 30% 내외의 하락이 있을 것이라는 게 관련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관측이다. 대도시 20개 지역의 주택가격을 재는 케이스쉴러지수(S&amp;P/Case Shiller Home Price Indices)로는 지난 5월까지 최고치 대비 20% 약간 못 미치는 주택가격 하락이 있었다. 금융시장이 약간 안정을 찾은 시기여서인지 몰라도 5월의 주택가격 하락은 전월 대비 0.9%가 하락하여 약 2%가 하락했던 3월, 4월에 비하면 약간 둔화되긴 했지만, 여전히 앞으로도 10% 이상 주택가격이 하락할 것이다. 그리고 그 하락은 2009년까지 계속될 것이라 한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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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될 경우 보유자산의 상각을 계속 해나가고 있고, 딱히 영업상황도 개선될 기미가 없는 메릴린치나 리먼브라더스같은 미국 3, 4위 투자은행의 경우 베어스턴스의 길을 뒤따르지 말란 법이 없어 보인다. 그리고 상업은행 4위 와코비아나 심지어는 자산규모 기준 1위 씨티은행의 안전한 운행도 장담할 수 없다. 이것은 이번 금융위기의 규모나 파장을 가장 정확히 예측하고 있어 이름을 드높인 뉴욕대학의 루비니 교수의 진단이다. 한 발 더 나아가 루비니 교수는 8,500개 대소규모의 은행 중 8% 정도가 파산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이렇게 된다면 파산한 은행 예금 중 개인당 1억 한도 안에서는 보장을 해 주어야 할 책임이 있는 연방예금보험공사(FDIC)에 정부의 공적자금이 투입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앞에서 이야기한 패니메이나 프레디맥의 재국유화 가능성도 있고, 쓰러진 거대은행들에도 직간접적으로 공적자금이 투입될 것이어서 미 정부의 부담은 크게 늘어날 것이다(‘부실의 사회화’).<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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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경제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는 주택시장 거품문제만은 아니다. 지금껏 지속적으로 구조조정을 해 오고 있던 3대 미 자동차업체(지엠, 포드, 크라이슬러)는 또다시 고유가의 직격탄을 맞고 빈사상태에 놓여 있다. 고유가는 자동차 업계 전체를 위기에 몰아넣고 있는데 이들 업체는 픽업트럭, SUV, 대형차 등 고유가에 특히 취약한 차들을 생산해 와 그 타격이 특별히 크다. 미국자본주의가 세계헤게모니로 등장한 데는 자동차산업의 발전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는데 이들 업체들의 부진은 매우 상징적이라 하겠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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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경제의 앞날에 또 다른 변수는 미국을 제외한 세계 다른 국가나 지역의 경제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경제와 여타 경제는 상호 밀접한 영향을 주고받고 있기 때문이다. 지표에 따르면 유럽연합, 일본, 영국 등 거대경제권의 성장이 매우 미약하다. 몇몇 나라는 경기침체에 들어갈 가능성도 농후하다. 영국, 스페인, 포르투갈의 주택시장 거품도 붕괴하고 있다. 뉴질랜드는 2008년 1분기에 마이너스 성장을 하였고 2분기도 마이너스 성장을 할 것으로 예측이 되고 있어 경기침체에 들어섰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호주, 남아공 경제상황도 좋지 않다. 중국, 베트남, 인도는 주가가 폭락하고 있으며, 베트남, 인도, 필리핀 등은 대외 불안 요소를 가지고 있다. 즉 세계 다른 많은 지역이나 국가의 경제도 거품붕괴나 부진한 성장, 혹은 대외 경제 불안 요소를 안고 있다. 최근 미국경제의 성장을 그나마 지탱해 준 수출도 부진해질 가능성이 높다. 또한 사태가 장기화한다면 이들 지역이나 국가들의 미국 내 투자자산에 대한 환수 가능성도 없지 않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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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혹은 2010년까지 계속될 것이라는 미국의 금융위기의 양상은 거대금융기관의 부실, 거대 자동차업체나 항공업체의 부실, 세계 여타지역의 경제위기나 개도국의 외환위기 등으로 인해 앞으로도 위기와 상대적 안정이 교차되는 싸이클을 지속할 것이다. 이런 와중에 기존 제도들이 위기의 부담을 감당해내지 못하고 무너져 위기가 경제 전반으로 확산되는 시스템 리스크를 경험할 수도 있어 보인다. 이는 당연히 구조적 위기 내지 심각한 공황으로 이어질 것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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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사 공황까지는 가지 않을지라도 대규모 공적자금 투입을 통한 부실의 사회화와 이로 인한 재정적자 심화 등으로 미국경제는 최소한 지지부진한 모습을 보일 것이다. 어떤 양상이든 임금억제, 실업률 및 비정규-단시간 노동의 증가, 물가인상 등으로 노동자 민중의 생존권과 노동권은 심각히 훼손될 것이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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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율 추이를 통해 본 미국경제 위기<br />
이윤율 추이를 소묘해 보면서 이야기를 마무리하자. 이윤율 대용으로 비금융법인자본 수익률(이윤과 이자 등의 자본소득 ÷ 생산 자산[=고정자산+재고자산])을 이용하자.<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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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경제의 이윤율은 65년까지 상승을 하다가 1982년까지 하락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물론 그 사이 작은 등락들이 있는데 새로운 정점들은 그 이전 정점들에 비해 더 낮고 새로운 저점들은 그 이전 저점들에 비해 더 낮다. 그리고 1997년까지 이윤율은 완만한 기울기로 다시 상승하다가 97년 이후 2007년까지는 이윤율이 다시 하락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82년부터 97년까지 작은 등락들의 정점들은 계속해서 높아지고 있고 97년 이후의 새로운 정점인 2004년의 정점은 97년보다는 낮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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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82년 이후 가장 높은 이윤율을 보이고 있는 97년의 이윤율도 65년의 이윤율에 비하면 70% 정도에 불과하다. 윤소영(『이윤율의 경제학과 신자유주의 비판』, 2002)에 따르면 미국경제는 69-70년 순환적 위기, 73-75년 구조적 위기, 80년 순환적 위기, 81-82년 구조적 위기, 90-91년 순환적 위기를 경험한다. 구조적 위기란 이윤율 추세선이 하락하는 가운데 이윤율이 급격히 하락할 때 발생하는데 이는 공황으로 연결된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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널리 알려진 대로 미국자본주의는 70년대 중반 징후적 위기가 발생한다. 이를 계기로 하여 미국자본주의는 성장기에서 불황기로 진입한다. 그러나 8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의 이익을 향유하면서 5-60년대 황금기에는 현저히 미달하지만 일정한 호황을 구가한다. 90-91년 순환적 위기를 한차례 겪었을 뿐 97년까지 이윤율이 추세적으로 상승한다. 이윤율이 상승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제국주의 그룹들 중 최정점에 위치하면서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의 편익의 대부분을 영유할 수 있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 결과 국내 노동자의 노동권과 개도국의 발전의 권리가 희생되었다. 97년 이후 이윤율은 다시 하락 추세를 보이고 있는데 미국자본의 해외부문으로부터의 수익률은 아직도 증가하거나 유지되고 있는 반면에 국내에서의 수익률이 감소하면서 나타나는 현상으로 보인다. 그런 점에서 97년 이후를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 후반부라 일컬을 만하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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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설명 틀에서라면 2001년의 위기는 구조적 위기라 할 수 있을 것이고, 2009년 혹은 2010년까지 지속될 것으로 예상이 되는 현재의 금융위기의 결과는 2001년 위기를 능가할 것으로 보인다. 이윤율도 2001년의 이윤율보다 더 낮아질 것이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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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소영(『마르크스의 경제학비판』, 2005)은 미국자본주의의 최종적 위기를 2010년대로 예상하고 있는데, 2009년 혹은 2010년 이후 또 다른 회복국면이 있을지라도 이때의 이윤율은 2004년의 이윤율보다 더 낮을 것이고 이 정점 이후 이윤율 하락은 81-2년의 수준을 하회할 것이다. 미국노동자들이 자신들의 노동권과 공적자금 투입기관들에 대한 사회적 통제를 둘러싼 투쟁을 완강하게 전개할 수 있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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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1>미국경제위기 어떤 상태인가? (2)</h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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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2>[칼럼] 거대한 거품과 그 붕괴는 더 큰 규모로</h2>
<h2>돌아올 것</h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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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하순(노기연/사회진보연대)&#160; / 2008년10월10일 15시44분<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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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불수단으로서의 화폐의 기능은 하나의 직접적인 모순을 내포하고 있다. 여러 지불이 상쇄되는 한에 있어서는 지불수단으로서의 화폐는 계산화폐 또는 가치척도로서 오직 관념적으로 기능할 뿐이다. 현실적인 지불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안 되는 한에 있어서는, 화폐는 유통수단, 즉 상품교환의 단지 순간적인 매개물로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노동의 개별적 화신, 교환가치의 독립적 존재형태, 일반적 상품으로서 등장하는 것이다. 이 모순은 산업 및 상업의 공황 중에서 화폐공황으로 알려진 국면에서 폭발한다. 이 화폐공황은, 지불들의 연쇄와 지불결제의 인공적 조직이 충분히 발전된 경우에만 일어난다. 이 메커니즘에 전반적 교란이 일어날 때, 그 교란이 어떻게 해서 생겼건 간에, 화폐는 계산화폐라는 순전히 관념적인 모습으로부터 갑자기 그리고 직접적으로 경화로 변해 버린다(칼 마르크스,『자본』3권, 김수행 역).<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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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공황으로 ‘화폐기근’이 발생할 때 은행신용이 일반적 등가물로서 화폐를 대체할 수 없다는 사실이 극적으로 확인된다(윤소영, 『마르크스의 ‘경제학 비판’』).<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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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한 지불일이 붙어있는 지불의무의 연쇄는 도처에서 끊어지는데, 이것은 신용제도(자본과 함께 발전하여 왔다)의 동시적 붕괴에 의하여 더욱 격화된다. 이 모든 것들이 격렬하고 첨예한 공황, 갑작스럽고 강력한 가치감소, 재생산과정의 현실적 정체와 교란, 그리고 재생산의 현실적 축소를 초래한다(칼 마르크스,『자본』 3권, 김수행 역).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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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머리에: 대규모 구제금융안 통과<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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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기지 시장 거의 반을 점유하는 두 거대 모기지 업체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의 국유화와 2000억 달러 구제금융 이후에, 제 4위 투자은행 리만브라더스의 파산보호신청(법정관리)을 계기로 미국 내에 그리고 국제적으로 신용경색 현상이 심각해지자 미국 정부는 부실자산 구제(TARP; Troubled Asset Relief Program)를 골자로 하는 긴급 경제안정법안(EESA)을 제출하였다. 구제금융 자금으로 7,000억 달러의 미 국민의 세금이 지출되어야 하는 법안이다. 자유시장원칙에 어긋난다는 공화당 의원 다수의 반발과, 국민들은 주택을 차압당하고 쫓겨나고 있는데 국민들의 세금으로 월가를 구제할 수 없다는 민주당 좌파의 반대가 더해져 하원에서 한차례 부결된 이후, 이 구제금융 법안은 공화당 의원을 달래기 위해 감세안이 추가되고, 예금보험 한도를 한시적으로 2009년까지 10만 달러에서 25만 달러로 올리는 내용을 삽입하여 상원과 하원을 통과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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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경색을 해결하기 위한 조치는 이 뿐만이 아니다. 미 연방준비위원회(중앙은행 격;연준)는 기간입찰대출(TAF) 규모를 1천5백억 달러에서 9,000억 달러까지 늘려 자금을 공급하고 있다. 그리고 미 연준은 기업어음을 매입하여 직접 기업에 자금을 제공하겠다고 했다. 더 나아가 전 세계 주요 국가 중앙은행들과 공조하여, 심지어는 중국 중앙은행까지 참여하여 금리를 내렸다. 가장 최근에는 영국의 예를 따라 크거나 작거나, 건강하거나 부실하거나 간에 금융기관들의 우선주 매입 형태로 자본금 확충에 구제금융 자금을 투입한다는 계획까지 세워지고 있다. 즉 부분적인 국유화를 단행하겠다는 것이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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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그 전에 3위 투자은행 메릴린치의 제이피모건체이스로의 인수합병, 1위 보험회사 AIG의 국유화, 1, 2위 투자은행 골드만삭스와 모건스탠리의 (겸업)은행으로의 전환, 저축대부조합 1위 워싱턴 뮤추얼의 제이피모건체이스로의 인수합병 등의 사건도 있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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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신용경색에서 자유롭지 않은 유럽 각국도 긴급자금을 투입하기도 하고, 예금보장 한도를 전액으로 늘리기도 하고, 공적자금을 투입해 이름도 다 기억할 수 없는 많은 대형 금융기관들을 국유화하거나 보다 건강한 금융기관에 인수합병시키는 등 신용경색을 해소하기 위한 제반 조치를 필사적으로 취하고 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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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되고 심화되는 신용경색<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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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신용경색과 은행파산이 극심했던 1930년대 대공황에 대한 전공자이자 전문가 미 연준 의장 버냉키와 금융기관의 이익을 가장 잘 옹호할 것 같은, 최대 투자은행 골드만 삭스 회장 출신 폴슨 재무장관 주도로 진행된 구제금융안 통과와 이런 일련의 조치에도 불구하고 신용경색은 가실 기미가 전혀 안 보이고 신용경색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TED 스프레드(1)는 4를 넘나들고 있다. 사실 2007년 초 이번 위기 발생 이후 미 정부나 연준의 이러저러한 정책, 즉 자금 공급, 금리인하, 세금환급을 통한 경기부양, 구제금융 제공 등의 정책이 취해지면 일시적으로 금융시장이 안정을 되찾아 자금경색이 풀리곤 했는데 이번엔 온갖 초대형 정책을 연일 쏟아내 놓아도 신용경색은 더욱 심해지고 있다(&lt;그림 1&gt; 참조).<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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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0;&#160;이 숫자가 커질수록 신용경색이 심해지는 것을 의미한다. 평상시는 이 TED 스프레드는 0.5 정도를 나타낸다고 한다. <!-- [출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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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제금융안 통과와 이런 일련의 조치에도 불구하고 왜 경제주체들은 금융기관들에 신뢰를 보내지 않고 자금인출과 현금보유에 열을 올리고 있을까? 그래서 신용경색이 지속되고 있을까?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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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기본적으로 이런 조치에도 불구하고 어떤 금융기관이라도 지급불능에 빠질 수 있다고 경제주체들이 의심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의심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지극히 정당해 보인다. 우선, 경제주체들이 금융 시스템이 고장이 나 있다는 것을 자각하고 있는 상황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모기지 기반 채권이나 각종 파생 금융상품 등 부실자산을 어떤 금융기관이 보유하고 있는지, 얼마나 가지고 있는지, 그래서 각각의 금융기관들의 재무구조가 얼마나 취약한 상태에 있는지 아무것도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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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현재의 부실상태도 모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장래에 각 금융기관들의 부실상태가 더 대체로 악화될 것은 뻔하지만 각각의 금융기관들이 어느 정도 악화될 지를 또한 전혀 모른다는 데 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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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장래에 왜 상태가 악화될 것인가를 좀 살펴보기로 하자. 우선, 이번 위기의 도화선이 된 주택가격의 하락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그리고 그 하락 정도가 애초 예상한 25%(6월 현재 18% 하락)를 넘어 30% 혹은 40%에까지도 이를 수 있다는 예측들이 나오고 있다. 주택가격 하락률이 이렇게 커진다면 비우량(서브 프라임) 주택담보대출의 연체율도 애초의 예상보다 높아지고 프라임(우량) 담보대출의 부실도 더 커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주택가격 하락이 몇 달 안, 즉 단기간에 진행되지 않는다는 점도 문제인데 그 기간이 길어진다면 단기간 안에 깔끔한 문제 해결은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즉 부실자산을 정부에 매각한 이후에도 금융기관의 새로운 부실은 몇 차례 계속해서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단 한 번의 조치로 해결 불가능한 “느린 동작의 붕괴”가 문제라는 것이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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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신용경색으로 상징되는 현재의 금융위기는 공급관리자협회(ISM) 제조업지수, 9월 취업자수, 자동차 판매 대수(2)등을 보건데 실물경제 위기로 이어지고 있다. 이는 주택부문의 불황을 지속시킬 뿐만 아니라 신용카드, 자동차 할부, 학자금 융자 등 소비자 금융의 부실, 일반 기업들이 발행한 회사채의 부실도 낳게 될 것이다. 이런 금융자산을 보유한 금융기관들의 부실은 당연히 심화될 것이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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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앞에서 열거한 이유들로 인해 금융기관들은 자금인출 요구에 직면하고 있다. 이에 따라 금융기관들은 도산을 모면하기 위해 자산매각, 대출 기피 등으로 대응하고 있는데, 이런 행위 자체가 자산가격의 추가적인 하락 및 영업축소와 이로 인한 추가적인 부실이라는 악순환을 낳고 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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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주택거품 붕괴가 여전히 진행되는 가운데 지속되고 있는 실물경제 위기는 금융기관의 추가적인 부실을 낳고, 추가적인 금융기관 부실은 신용경색을 지속시키고, 신용경색 지속은 다시 추가적인 실물경제위기를 낳게 된다는 것이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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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미 정부의 대책이 현재까지 발생한 문제들에 대한 대응이라는 측면이 큰데, 현재의 문제도 구체적으로 정확하게 드러나 있지 않아 정확한 대응책이 되고 있지 못할 뿐만 아니라 장래에 발생할 큰 문제들에 대해서는 더더욱 유효한 대책이 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신용경색은 ‘백약이 무효’인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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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경색의 국제적 성격<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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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경색은 현재 국제적으로 벌어지고 있는데 그 이유를 좀 살펴보기로 하자. &lt;그림 2&gt;는 미국 이외 세계 전체의 미국내 투자자산(이하 다 잔액이다)과 미국계 자본의 대외 투자자산을 각각 미국 이외 세계 전체의 총생산 대비 비중의 추이를 보여주고 있다. 두 수치 다 90년대 중반 20% 미만에서 그 이후 급격히 증가하여 2007년의 경우 4-50%에 이르고 있고(미국의 국내총생산에 비해서는 각각 145%와 128%에 해당한다), 2007년 말 그 가액은 각각 약 20조 1천억 달러와 약 17조 6천억 달러에 이른다.(3) 이런 미국과 미국 이외 세계 사이의 투자자산의 급증은 금융세계화로 인하여 실제 투자자산의 유량(플로우)이 증가한 측면도 있고 기존 투자자산의 시장가치가 상승한 데서 온 측면도 있다. 특히 미국의 대외 투자자산 가치의 증가는 2008년 중반까지 진행된, 달러가치에 비한 여타 세계 통화 가치의 상승에서 연유한 측면이 크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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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0;&#160;미국의 대외 투자자산 가치의 증가는 2008년 중반까지 진행된, 달러가치에 비한 여타 세계 통화 가치의 상승에서 연유한 측면이 크다. <!-- [출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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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유야 어떻든 이렇게 비중이 커진 투자자산으로 인해, 미국 내 투자자산의 가치 감소는 이들에 투자하고 있는 여타 세계의 금융기관이나 기업을 부실로 몰아갈 수 있고, 반대로 여타 세계의 금융기관이나 기업의 부실은 이들에 투자하고 있는 미국 금융기관들이나 기업들을 부실로 몰아갈 수 있을 것이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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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미 상무부 산하 경제분석국의 자료를 통해 구체내역을 보면 2007년 잔액 기준으로 미국 이외 세계전체의 미국 내 투자자산은 각종 채권 3조 3천억 달러(전체의 약 16.4%), 주식 투자 2조 8천억 달러(14.1%), 직접투자 2조 4천억 달러(12.1%) 등이다. 채권도 자산가치 변동을 하지만(특히 모기지 관련 채권), 이 채권을 제외한다 하더라도 보유자산의 26.2%(5조 2천억 달러)가 자산가치 변동의 위험을 안고 있다. 미국의 해외 투자자산은 각종 채권 1조 5천억 달러(전체의 약 8.4%), 주식 투자 5조 2천억 달러(29.3%), 직접투자 3조 3천억 달러(18.9%) 등이다. 역시 채권을 제외하고도 보유자산의 48.1%(8조 5천억 달러)가 자산가치 변동의 위험을 안고 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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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에서 주택거품의 붕괴로 모기지 기반 각종 채권들의 부실화나 가치하락은 이런 채권을 가진 미국 및 다른 나라 금융기관의 부실화 및 주식가치 하락과 채무불이행 위험을 증가시키고 이는 연쇄적으로 반응을 일으켜 다시 전 세계 금융기관의 자산가치를 감소시키게 된다. 그래서 세계 각국의 금융기관을 부실에 빠지게 한다.(4)<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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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2007년 말 미국 이외 세계 전체의 미국으로의 은행대출과 미국 채권 매입액 잔액의 합계는 약 7조 3천억 달러(36.4%)이고, 미국의 미국 이외 세계로의 은행대출과 이들로부터의 채권매입 잔액의 합계는 5조 3천억 달러(30.1%)인데, 결국 금융기관의 부실은 국제적인 은행 대출과 채권매입의 축소나 중단을 야기할 것이므로 세계적인 신용경색은 자연스럽게 뒤따를 것이다. 또한 이는 다시 자산의 헐값 매각 등을 야기하여 금융기관들의 추가적인 부실의 원인이 될 것이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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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가격 폭락과 세계적인 은행의 실패 가능성<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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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주택가격 하락과 모기지 관련 채권들의 부실에서 시작하였지만 현재 세계적인 주식가격 하락과 이로 인한 금융기관들의 부실에서 오는 신용경색도 심각하다. 세계 각국의 주식시장의 하락률이 30%대-60%대에 이르고 있는데 미국 이외 지역의 주가하락률이 더 높다는 것을 감안하면 미국의 대외투자 자산 가치 감소가 특별히 크다고 할 것이다. 더구나 최근에는 엔화를 제외한 모든 통화에 비하여 달러가치가 상대적으로 상승하고 있는데(즉 여타 국가들의 통화가치가 하락하고 있는데) 이로 인한 손실까지 고려한다면 미국의 금융기관들과 기업들의 자산가치 감소는 상당하다고 하겠다.(5)<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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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현재로서는 금융기관들이 보유하고 있는 모기지 관련 채권들과 주식을 포함한 투자자산들을 시가로 평가한다면 미국과 주요 국가의 세계적인 금융기관들이 거의 모두 자본잠식 상태에 들어가지 않았을까 추측이 된다. 이는 자금인출이 계속된다면 결국에는 만기불일치로 인한 지급불능이 아니더라도 부채총계가 자산총계보다 커서 지급불능에 빠진다는 의미이다.(6)<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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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년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을 분리했던 글래스-스티걸 법의 폐지 이전부터 상업은행은 투자은행 기능을 겸해 겸업은행으로 변해왔고 이번 위기 과정에서 위기에 빠진 투자은행들을 인수했는데 이런 은행들이 위험에 빠질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씨티은행, 미국은행(BOA), 제이피모건체이스, 그리고 스위스계 거대은행 UBS, 영국계 거대은행들 등. 또한 투자은행 기능만 하다가 이번 위기에 예금수신을 하겠다면서 겸업은행으로 ‘화장만 고쳐’ 변신을 선언한 골드만삭스와 모건스탠리의 위험은 이들보다 훨씬 더하다고 하겠다. 그리고 이들 위험해진 금융기관에 참여한 일본은행들의 실패도 예상이 된다. 이런 세계적인 거대은행의 실패가 현실화한다면 신용경색은 더욱 심화될 것이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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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적인 거품’에 의존해야 생존 가능한 세계자본주의의 모순<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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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또 다른 거품이 필요하다” <br />
미국 주택시장 거품이 붕괴하면서, ‘화폐기근’으로 금리가 치솟고 거대 금융기관들이 쓰러지고 증권시장이 하락하면서 미국경제가 위기로 빠져들자 몇 개월 전 어느 금융관련 종사자가 내뱉은 말이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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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 보면 1990년대 말 정보기술산업(IT)에서도 거대한 거품이 만들어졌다가 정보기술산업 주식(나스닥)이 폭락을 했고, 따지고 보면 아시아 위기도 ‘아시아 태평양 시대’가 열렸다면서 태국, 인도네시아, 한국 등으로 자본이 몰려들면서 형성된 거품이 붕괴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미국경제에서의 80년대 90년대 ‘저축 대부 조합’ 사태도 마찬가지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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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는 과잉축적-이윤율저하를 주기적으로 경험한다. 자본주의에서 개별자본은 자본간의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노동자들을 더 효율적으로 착취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노동절약적인 생산수단을 경쟁적으로 도입한다. 이는 필연적으로 과잉축적으로 이어지고 결국 거대한 거품이 형성된다. 이윤율이 하락하면서 거품은 붕괴된다. 경제위기가 도래하는 것이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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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미국의 경제위기는 2006년 4/4분기부터 시작된 이윤율저하로부터 시작된다. 이런 이윤율 저하의 효과는 과잉생산 과소소비의 모습을 띤다. 과잉생산 과소소비의 정도는 업종마다 다를 것인데 이번 위기에서 주택부문의 과잉생산 과소소비의 정도는 특히 심하다. 현재는 이미 팔린(실현된) 것으로 기록된 주택 상품이 연체 차압의 형태로 반품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과잉축적과 주택부문의 붐은 전 세계 자본의 미국으로의 유입으로 가능해졌다. 미국은 거대한 경상수지 적자를 내게 되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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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동안 미국경제는 성장률을 어느 정도 유지하면서 순항하는 듯 보였다. 거대한 거품이 만들어지고 있다고 일부에서 비판하면 그린스펀은 별 문제가 안 된다고 손사래를 쳤다. 이제 역사상 전대미문의 거대한 거품이 붕괴하면서 세계적으로 신용경색이 발생하고 있다. 제사(題詞)에서 언급된 ‘화폐기근(신용경색)’은 비단 상품시장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직접금융(채권, 주식)의 팽창, 신용의 증권화 등으로 한껏 부풀어진 세계의 자산시장 전체에서 신용경색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조만간 거대한 금융기관도산 위기로 이어질 것이다. 이런 사태에 직면하여 크루그먼 등 새 케인즈주의자들은 국제적인 공조 아래 은행들의 (일시적인) 국유화, 예금 보장, 거시경제적 경기부양을 위기타개책으로 제시하고 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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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의 대안에 외채위기나 환율위기를 겪을 개도국의 문제나 (특히 이주노동자의) 노동권 문제 등은 아예 시야에 없다는 것을 잠시 제쳐놓는다면, “시장에 맡겨라”를 주문처럼 되뇌는 공화당 의원들에 비하면 이들의 대안은 진일보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이것이 일정하게나마 성공을 할 수 있기 위해서는, 금융기관들이 자본잠식 상태에 있고 이들에 대한 불신이 극도에 달해있기 때문에 어마어마한 규모의 자본금 확충이 있어야 할 것이고, 현재 하강하고 있는 경기를 되돌리기 위해서 장기에 걸친 대규모 경기부양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현재 세계 경제 전체가 동조화현상을 보이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이런 정책은 세계적인 차원에서 시행이 되어야 할 것이다. 즉 일정한 성공을 한다 하더라도 상당한 시간과 어마어마한 재정지출과 치밀한 국제적인 협력이 요구될 것이라는 것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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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의 대안이 일시적으로 일정하게 성공을 거둔다 하더라도 그 부정적인 후과(재정적자 급증, 지지부진한 성장) 역시 만만찮을 것이다. 물론 보다 중요한 문제점은 이들의 대안이 ‘지속적인 거품’에 의존해서만 생존이 가능한 미국 주도 세계자본주의의 모순을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수단이 아니라는 것이다. 즉 거대한 거품과 그 붕괴는 더 커다란 규모로 다시 돌아올 것이라는 것이다. 아니면 1930년대 대불황에서처럼 손쉬운(?) 해결책으로 전쟁이 모색될 지도 모르겠다. 이런 과정에서 노동자 민중의 생존권이나 노동권을 이야기할 수 있겠는가! 바야흐로 노동자 민중의 대안을 본격화해야 할 시기가 아닐까? 그것도 전국적이고 세계적인 차원에서.<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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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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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LIBOR(런던 은행간 금리)와 미 재무성 증권 3개월 물(안전자산)의 수익률의 차이. 자금경색이 발생하면 LIBOR 금리는 오르는 반면 안전자산으로 여겨지는 미 재무성증권으로 자금이 몰리면서 가격이 오르고 가격과 반대로 움직이는 수익률은 떨어지게 되어 이 둘 사이의 차이가 커지게 된다. 즉 이 숫자가 커질수록 신용경색이 심해지는 것을 의미한다. 평상시는 이 TED 스프레드는 0.5 정도를 나타낸다고 한다.<br />
            <br />
            <br />
            2) 포드의 자동차 9월 판매대수는 전년 동월 대비 34.6%가 하락하였고 지엠이나 크라이슬러 심지어는 도요타 자동차 판매대수도 현저히 줄었다. 자동차 3사의 운명은 그야말로 경각에 달려 있다.<br />
            <br />
            <br />
            3) 미국의 순 국제투자 자산 잔액(=대외 투자자산 잔액 - 외국인투자 자산 잔액)은 그래서 -2.4조 달러이고 그 절대 규모는 미국 국내총생산에 비해 17.7%를 차지한다.<br />
            <br />
            <br />
            4) 미국의 채권을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는 나라는 영국과 벨기에 및 룩셈부르크이고 그 다음 많은 나라는 일본이다. 일본과 중국은 안전자산인 재무성증권을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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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지금처럼 지속적으로 달러가치가 상승한다면 미국의 대외자산 가치를 급격히 하락시켜 순 국제투자 잔액은 급격히 그 마이너스 규모가 증대할 것이다. 이는 가까운 장래에 다른 나라들의 달러자산의 급격한 매각으로 이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최근년 미국의 대규모 경상수지 적자의 지속에 비해 순 국제투자 잔액의 마이너스 규모는 별로 증가하고 있지 않은데 이는 2008년 중반까지 지속된 달러가치 하락 때문이다. <br />
            한편 현재는 그 방향이 바뀌어 달러가치가 상승하고 있는데 유럽이나 여타 국가의 경제사정이 미국에 비해 썩 낫지 않다는 것이 그 이유이다. 그런데 금융세계화가 심화된 현재 환율의 상승 혹은 하락과 그 정도는 도대체 종잡을 수 없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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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이번 미국의 구제금융안에는 금융기관 보유 자산을 시가로 평가하는 것을 유예할 수 있도록 했다. 금융기관의 자본잠식 실상을 보여주지 않겠다는 것인데 이것이 오히려 혼란을 더 부추기지 않을까?
        
    

]]></description><image><url>http://www.newscham.net/data/news/photo/14/43902/pp.jpg</url><link>http://blog.aladin.co.kr/vara/2353367</link></image></item><item><author>바라</author><category>대장정</category><title>미국발 금융위기, 서브프라임 사태의 끝은 어디인가</title><link>http://blog.aladin.co.kr/vara/2334392</link><pubDate>Sun, 05 Oct 2008 02:1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vara/2334392</guid><description><![CDATA[<br />
<h1>미국발 금융위기, 서브프라임 사태</h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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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1>의 끝은 어디인가</h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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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2>부시정부의 구제금융 요청과 금융화의 계급적</h2>
<h2>&nbsp;</h2>
<h2>&#160;본질</h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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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진보연대&#160; / 2008년09월27일 15시58분<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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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금융위기의 최근 양상<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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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5일 미국 4위 투자은행인 리먼브라더스가 뉴욕 파산법원에 파산보호를 신청하고, 3위 투자은행인 메릴린치가 뱅크오프아메리카에 인수되면서 미국 금융시장의 불안이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미국 최대 보험사인 AIG 역시 자금난에 빠져 미국 정부가 850억 달러의 구제금융을 공급하여 지분의 80%를 인수하면서 파산은 면하였으나 공적관리 하에 놓이게 되었다. 5위 투자은행이었던 베어스턴스는 이미 작년에 심각한 자금난을 겪고 올해 3월 16일 JP모건체이스에게 헐값으로 인수되었다. 또 9월 21일에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골드만삭스와 모건스탠리가 제출한 은행지주회사로의 기업구조 변경신청을 승인했다. 이로써 6개월 만에 미국의 1~5위 투자은행이 모두 사라지게 되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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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먼브라더스의 파산규모(6,139억 달러, 약 679조 원)는 2002년 엔론과 더불어 회계조작 사건으로 유명한 월드컴의 파산금액(419억 달러)의 15배에 달하는 역대 최고규모이다. 부동산 거품에 편승하여 주택대출상품에 올인했던 리먼브라더스는 주택가격이 하락하면서 주가가 무려 94.25% 떨어져 21센트(180원)의 휴지조각으로 변했다. 130개국에 진출한 미국 최대의 보험회사 AIG도 주식가격이 80% 가까이 하락하면서 정부의 구제금융을 받아 가까스로 파산을 면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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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9월 6일 양대 모기지 대출 업체인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의 부실을 막기 위해 2,000억 달러의 공적자금을 투입한데 이어 리먼브라더스 파산 후 이틀에 걸쳐 1,400억 달러를 투입했다. 또 유럽중앙은행 300억 유로(427억 달러), 영국 중앙은행인 잉글랜드은행 50억 파운드(90억 달러), 일본중앙은행 1조5,000억 엔(142억 달러) 등 각국 중앙은행도 사태의 확산 방지에 주력하고 있다. 미국 재무부는 9월 19일에 금융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사상 최대 규모의 구제금융안을 발표했다. 7,000억 달러(약 800조원)의 공적자금을 투입하여 금융기관의 부실을 떠안을 공적기구를 설립하고, 금융기관의 부실자산을 인수하겠다는 것이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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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브프라임 위기와 부채의 증권화<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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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사태 이후 금융위기의 전이과정은 단계적으로 진행되었다. 주택가격의 하락으로 인한 모기지시장의 부실화 → 모기지 관련 업체 및 보증기관의 부실자산 증가 → 대형은행 파생상품 가격 하락 → 대형은행 및 금융기관 부실 및 파산. 한편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과 연관된 경제주체는 다음과 같다. 모기지차입자 → 모기지대출회사 → 자산유동화회사 → 채권보증회사 → 투자은행 → 투자자.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기업들은 투자은행이나 투자자들로 모기지 부실에 연계된 최종단계의 주체들이다. 베어스턴스, 메릴린치, 리먼브라더스는 투자은행이며, AIG는 투자자의 역할을 담당한 보험회사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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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위기가 서브프라임 모기지 연계사슬의 최종단계까지 전개됐다는 사실이 위기의 끝을 알려주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위기가 모든 금융주체에게 확산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고, 이로써 실물경제에 대한 위협이 더욱 높아졌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초기에는 중간의 어느 단계에서 위기의 전이가 중단될 것이라고 예상했으나 결국 관련된 모든 경제주체들이 위기에 노출됨으로써 미국경제 전반과 세계경제에까지 위기가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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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 거품이 꺼진 이후 발생한 서브프라임 모기지의 부실에서 시작된 위기가 이렇게 여러 단계로 확산된 것은 부채의 증권화 때문이다. 증권화는 이전에 유통되지 못했던 부채자산을 거래 가능한 증권으로 변경시켜 자본시장에 판매하는 것이다. 예컨대 은행이 채무자에게 자금을 빌려주었다면 은행의 자산계정에는 대출이라는 부채자산이 나타나게 되며, 이 대출자산은 약정된 이자와 원금을 회수하기 이전에는 은행의 대차대조표에 묶여 있는 비유동적 자산이다. 그러나 채무자에게 원금과 이자를 받을 이 권리, 즉 대출자산을 누군가에게 판매하면 대출 회수 이전에 은행은 대출을 현금화할 수 있게 되고 또 다른 누구에게 추가로 대출을 해줄 수 있게 된다. 이렇게 전통적으로는 은행이 발행하고 보유했던 비유동적 대출(부채자산)을 증권시장에 판매하고 유통시키는 행위를 증권화라고 한다. 증권화 과정에서 은행 등이 매각한 기초자산인 주택담보대출(모기지)은 유사한 종류의 다른 대출과 함께 재구성되어 이를 담보로 주택담보부증권(MBS), 부채담보부증권(CDO) 같은 일종의 구조화된 채권이 발행된다. 이렇게 해서 증권화는 은행의 자산 및 부채구조에 영향을 주게 된다. 또한 증권화는 은행의 수익구조에도 영향을 미치는데, 은행이 이제 전통적인 예대업무에서 발생되는 이자수익보다는 부채를 가공해 만들어낸 증권을 발행하고 판매할 때 발생하는 수수료를 주요한 수입수단으로 삼게 된다. 미국 상업은행의 영업수입 중 비이자수입의 비중이 1980년대 20%에서 지속적으로 상승하여 45%에 접근하고 있으며, 그 중 많은 부분이 증권화와 관련되어 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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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브프라임 모기지의 부실을 금융전반의 위기로 확산시키고, 투자은행의 파산을 몰고 온 주범이라 할 수 있는 증권화로 투자은행은 막대한 수수료 수입을 챙겼다. 중요한 것은 이 증권화 과정이 한 차례로 끝난 것이 아니라 2차, 3차로 확대되고 증폭되었다는 것이다. 서브프라임 위기 확산의 주범이 2차 증권화 과정에서 새롭게 발행된 CDO의 부실이다. 1차 증권화 과정에서 발행된 MBS에 카드대출, 자동차대출, 기업대출, 학자금대출 등을 담로로 발행된 다른 증권을 혼합하여 만든 것이 CDO다. 투자은행들은 CDO를 발행하고 매각할 때 막대한 수수료 수입을 얻을 수 있어서 앞 다투어 CDO의 발행과 인수, 판매에 뛰어들었다. 또 투자은행들은 이 CDO를 다른 자산담보부증권(ABS)과 섞어 3차 증권을 발행했다. 이렇게 여러 차례의 증권화 과정을 거치면서 원자산인 서브프라임 모기지의 위험이 은폐되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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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고수익 추구는 필연적으로 높은 위험을 수반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CDO를 발행, 인수, 판매한 투자은행들은 CDO의 채무불이행 위험에 대비하여 채권보증회사(모노라인)와 일종의 보험계약을 체결했다. 이것이 바로 신용파산스왑(CDS)계약이다. 투자은행이 채권보증회사에 보험료를 내면, CDO에 채무불이행 위험이 발생했을 때 채권보증회사가 원리금의 지불을 보증한다. 따라서 CDO의 원자산인 서브프라임 모기지에서 부실이 발생하여 채무불이행이 발생하면, 채권보증회사의 원리금 지불 보증금액이 증가하여 결국 채권보증회사의 부실이 늘어난다. 채권보증회사의 보증능력에 대한 불안이 고조됨에 따라 그 회사의 신용등급이 하향조정되고, 채권보증회사와 계약했던 CDS 계약의 가치가 재평가되어 결국에는 손실로 계상된다. 이것이 바로 CDS의 평가손이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에서 유발된 금융위기에서 가장 우려스러운 대목은 아직도 주요 금융기관들에서 CDS 같은 신용파생상품의 평가손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예기치 못한 금융기관의 추가부실과 도산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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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브프라임 위기의 전개과정<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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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서브프라임 위기의 메커니즘을 바탕으로 지난해부터 지금까지의 사태 전개과정을 1~6차의 위기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서브프라임 사태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던 미국의 주택거품은 2001년 미국 FRB의 급격한 금리인하 이후 5년간 지속되었다. 하지만 FRB가 2004년부터 2006년 중반까지 여러 번에 걸쳐 기준금리를 1%에서 5.25%로 인상시키자 주택거품은 폭발했다. 주택판매, 주택건설, 모기지 대출, 주택가격이 모두 급락하기 시작했다. 2007년 2~3월 모기지 대출회사의 부실화와 파산 위기라는 서브프라임 발 금융위기의 태풍이 형성되기 시작했고, 서브프라임 모기지에 대한 이자율 상향조정의 첫 번째 물결이 강타했다(1차 위기).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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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8월 9일 프랑스계 투자은행 베엔뻬 빠리바가 서브프라임 관련 두 종류의 펀드에 대한 환매를 중단하자 세계적 연쇄반응이 일어났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대출채권을 유동화한 파생금융상품의 가격폭락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2차 위기). 먼저 MBS 시장이 사실상 소실되었고, 이는 모든 층위의 CDO 시장을 동결시켰다. CDO 시장이 급격히 위기에 전염되자, 거래규모가 급격히 축소되었고 추정 가치의 약 80%가 하락했다. CDO에 투자한 헤지펀드, 보험회사, 연금, 은행 등이 줄줄이 손실을 입게 되었다. 메릴린치와 시티뱅크는 대규모 자산상각이 불가피해졌고, 2007년 10월 말 각각 80억 달러와 110억 달러의 손실을 발표했다. 또한 메자닌 트랑시(고수익고위험 등급) 이하 신용등급에 대한 투자 비중이 높았던 헤지펀드는 대규모 손실을 입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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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위기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2007년 11월, 투자은행들이 고수익 자산에 투자할 목적으로 세운 구조화투자회사(SIV)를 중심으로 하는 3차 위기가 발생했다. 이제 은행은 갑작스럽게 고객의 즉각적인 유동성 투입 요구에 직면했다. 이러한 자금 소요는 은행간시장(inter-bank market)에서 폭발했다. 2007년 8월 세계적으로 조직된 은행간시장이 급속도로 무질서해지자, 전 세계의 중앙은행들(특히 유럽중앙은행과 미국 연방준비이사회)은 몇 주 동안 대규모 긴급자금을 투입해야 했다. 최고 중앙은행, 즉 ‘최종대부자’의 개입은 선례가 없었던 것이다. 이는 9월 18일 미국 연방준비이사회의 갑작스러운 대규모 이자율 인하(0.5%)에 뒤따른 것이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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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금융위기는 계속해서 다른 위기로 이어졌다. 2008년 1월 채권보증회사들(모노라인)의 위기가 현실화되었다(4차 위기). 모노라인은 신용파산스왑(CDS) 계약을 통해서 헤지펀드나 투자은행 등으로부터 특정기간 동안 주기적으로 일정 수준의 신용보증수수료를 받는 대신, 채권에 대한 원금과 이자지급을 보증했다. 그러나 서브프라임 사태가 눈덩이 불어나듯 커지자 채권보증회사들의 부실이 커졌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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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미국 정부가 보증하는 최대 모기지 회사인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으로 위기가 확산된 것이다(5차 위기). 13조 달러에 달하는 미국의 주택 모기지 중 5조 5,000억 달러를 공급하는 두 기관은 민간금융기관들의 주택 모기지를 재매입하여 MBS를 발행했다. 이들은 2005년까지만 해도 비우량 MBS에는 손을 대지 않았지만 비우량 MBS가 폭발적인 수익률을 거두고, 이에 대한 규제와 감독이 느슨해진 틈을 타서 2,000억 달러가 넘는 비우량 MBS를 구입했다. 여기에다 미국 주택 가격이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모기지 연체율이 상승해 모기지 부실이 서브프라임을 넘어 프라임 부문으로 확산되자 두 업체도 사실상 지급불능 사태에 빠진 것이다. 이에 미국 재무부는 뉴욕연방은행을 통하여 두 업체에 2,000억 달러의 자금을 지원해 사실상 국유화하게 된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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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후 투자은행의 부실 심화로 투자은행의 파산가능성이 높아지면서 미국 5대 투자은행이 며칠 사이에 모두 사라졌다(6차 위기). 서브프라임 관련 자산의 부실이 시간이 지나도 줄어들지 않고, 금융경색으로 자금동원과 지분매각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투자은행 등 금융기관의 부실화와 파산은 자금경색 및 이자율 상승을 초래하여 주택가격의 추가적인 하락을 가져오고, 이는 다시 더 많은 금융기관의 부실을 유발하는 악순환을 초래하고 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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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식 금융모델과 투자은행의 몰락?<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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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사태로 인해 미국식 금융모델, 특히 투자은행의 향방에 대한 관심이 높다. 7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지고 있고, 1980년대 이후 금융세계화를 이끌어오던 미국 5대 투자은행이 6개월 만에 모두 사라졌다. 이런 사태를 보고 미국식 금융모델의 위기, 투자은행의 몰락을 진단하는 목소리가 높다. 더 나아가 신자유주의의 종말을 예견하기도 한다. 하지만 독립 투자은행의 몰락이 곧 바로 금융자본의 몰락을 야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 미국 투자은행의 역사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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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는 1929년 주가대폭락과 그 이후의 대공황을 계기로 J.P.모건이라는 겸업은행이 미국의 주요 대기업을 지배, 통제하는 일종의 금융자본주의가 붕괴했다. 이를 대신하여 경영자-뉴딜관료-조직노동자 간의 불완전한 타협에 기초하여 금융자본(고도금융)을 일정하게 제어하는 관리자 자본주의가 성립했다. 관리자 자본주의에서 금융시스템은 금융당국에 의해 규제되고 통제되었다. 1933년 미국의 은행법(일명 글래스-스티걸법)은 금융자본의 과도한 영향력을 제어하기 위해서 상업은행의 증권업무와 인수업무를 금지함으로써 투자은행과 상업은행을 완전히 분리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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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동시에 1930년대 초 미국은 다른 어느 나라보다 일찍 투자은행의 주 활동무대인 자본시장의 제도를 정비했다. 다른 주요 선진국들의 자본시장이 1~2차 세계대전과 대공황으로 만신창이가 되었던 데 비해 미국의 자본시장은 전쟁과 대공황의 혼란 속에서도 발전할 수 있었다. 미국은 1933년 증권법, 1934년 증권거래소법, 1939년 신탁증서법, 1940년 투자회사법 등의 조치를 통해 자본시장을 안정화하고, 자본시장에 대한 신뢰를 형성했다. 또 2차 대전 직후에는 월가를 중심으로 한 금융자본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신구헤게모니국가(미국과 영국) 간의 불완전한 타협(특히 케인즈의 요구가 부분적으로 반영)으로 각 국민국가들이 자유로운 국제적 자본이동에 대해 일정한 규제와 통제를 가할 수 있게 되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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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런 체제는 본성상 완전한 자유화와 고도의 유동성을 추구하는 금융자본과 양립하기가 어려웠다. 미국 금융자본은 1930년대 이후 70년 동안 케인즈주의 타협으로 가능했던 각종 금융규제를 대부분 해체하고 변형함으로써 자신의 수익성과 유동성을 회복하고 강화시켰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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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투자은행은 1960년대 중후반까지만 하더라도 파트너십 형태의 소규모 자본에 머물러 있었다. 초기 투자은행의 경우 주된 업무가 암묵적 지식과 정보에 의존하기 때문에 인적 네트워크의 형성이 아주 중요했다. 그러나 1970년대 들어서 이윤율이 하락하고 오일머니가 유입되면서 자금이 자본시장 쪽으로 몰리자 파트너십 형태의 소규모 투자은행으로는 급속히 커져가는 자본시장 업무를 감당할 수가 없었다. 또한 컴퓨터 기술이 발달하고 정보통신기술이 금융부문에 응용되면서 대규모 거래의 주문체결과 결제가 용이해짐에 따라 대규모 소매거래에서 규모의 경제를 누릴 수 있는 대규모 투자은행이 필요했다. 1914년에 소매증권사로 출발하여 인수합병 등을 거쳐 거대 종합투자은행으로 발돋움한 메릴린치가 대표적인 사례다. 메릴린치는 1971년에 비로소 기업공개를 했으며 1973년 업계 최초로 금융지주회사체제로 전환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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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월스트리트가 생긴 이후 200여 년 동안 주식매매 중개수수료가 고정적으로 유지되어 왔는데, 이런 관행도 1970년대 주식거래의 폭발적 증가로 더 이상 지속될 수 없었다. 마침내 1974년 미증권거래위원회(SEC)에 의해 주식매매 중개수수료가 전면적으로 자유화되었으며, 파트너십의 소규모 투자은행들도 주식회사형태로 전환하면서 대형화를 추구하기 시작했다. 때마침 등장한 정보통신기술이 금융에 접맥되면서 대규모 거래와 결제가 전례 없이 빠르게 이루어질 수 있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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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이후 미국 가계의 예금, 적금에 대한 수요가 급감하는 대신 가계의 간접적인 주식보유가 크게 증가했다. 이런 여건에서는 전통적인 상업은행이 기존의 업무영역에서 높은 수익을 올리는 데에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었다. 따라서 지주회사형태의 거대상업은행은 은행지주회사의 자회사 방식으로 투자은행의 자본시장 업무영역으로 진출하려고 했다. 따라서 1980년대를 지나오면서 상업은행은 은행지주회사를 통해 증권업무, 자산관리업무, 보험업무 등 비은행업무로의 확대를 지속해서 추진했다. 1990년대까지 존재했던 은행의 겸업화와 대형화에 대한 걸림돌은 1999년 금융서비스현대화법(그램-리치-블라일리법) 제정을 계기로 거의 사라졌다. 이 법의 제정은 1930년대 만들어져 미국 금융시스템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글래스-스티걸법을 허무는 최종 조치이기도 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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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서비스현대화법의 제정으로 2000년 이후에는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의 경계선이 사실상 모호해졌다. 몇 가지 제한 조치가 남아있기는 하나 은행, 증권, 보험회사 간 합병이 가능해지면서 금융기관의 대형화가 급속히 진행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다. 이미 1990년대 중반 이후 거대금융기관 간 합병인수의 결과로 소수의 거대은행들의 금융지배력이 더욱 커진 상황에서 이러한 추세가 강화될 수 있는 제도적 토대가 마련된 것이다. 또한 기존의 은행지주회사가 금융지주회사로 전환할 수 있게 됨으로써 미국금융자본의 권력은 이전보다 훨씬 커질 수 있다. 금융지주회사가 미국금융자본의 핵심세력으로 자리 잡을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 것이다. (마지막으로 남은 장벽이 금산분리이다. 추가적으로 은행과 상공업 분리원칙마저 무너진다면 산업과 금융 두 영역 모두를 동시에 지배하는 거대권력이 출현하게 될 것이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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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5대 투자은행이 상업은행에게 인수되거나(베어스턴스, 메릴린치), 은행지주회사로 전환(골드만삭스, 모건스탠리)한 것을 두고 투자은행 모델의 몰락이라고 평가하기는 힘들다. 미국 금융의 역사적 맥락에서 보면 1980년대 이후 투자은행과 상업은행의 경계가 약화되기 시작했고 1999년의 금융서비스현대화법으로 결정적인 장벽이 제거되었다. 이번 금융위기로 인해 독립적인 투자은행이 한꺼번에 사라지기는 했지만 이미 다양한 기관에서 수행하고 있는 업무는 금융지주회사의 자회사에서 존속될 것이다. 오히려 이번 위기를 기회로 삼아 싼 값으로 거대 투자은행을 인수한 금융자본의 권력이 강화되면서 금융지주회사가 금융자본의 새로운 지도자로 등장할 지도 모른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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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00억 달러의 구제금융, 금융자본에게 다시 한 번 기회를?<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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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뒤늦게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한 미국 정부는 구제금융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이미 베어스턴스를 구제하기 위해서 29억 달러의 부실증권을 인수했고, 2,000억 달러를 들여 패니메이와 프래디맥을 국유화했다. 또 850억 달러를 들여 AIG의 지분 80%를 인수했다. 그리고 마침내 연준 위원장 버냉키와 재무부 장관 폴슨은 미국 시민들의 세금 7,000억 달러를 구제금융으로 금융자본의 부실자산을 대부분 사들이겠다고 제안했다. 또 동시에 미국 정부는 3조 5,000억 달러에 달하는 '머니마켓펀드(MMF)' 예금으로 위기가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 이에 대해서 지급보장을 하겠다고 발표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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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재무부 장관 헨리 폴슨은 서브프라임 사태의 원인을 제공한 세계 1위의 투자은행이었던 골드만삭스의 전직 CEO 출신이다. 그런데 지금 폴슨(또는 골드만삭스?)이 이러한 구제금융을 완전히 통제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폴슨의 구제금융안에는 정부가 어떤 증권을 구매할 것인지, 어떤 기업이 이러한 보장을 받을 것인지, 증권의 가격은 어떻게 매길 것인지에 대한 아무런 기준도 담고 있지 않다. 오직 정부와 의회가 폴슨에게 7,000억 달러에 대한 처분권을 위임해 줄 것을 요구할 뿐이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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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구제금융을 통한 부실증권 매입은 미국정부로서도 매우 곤혹스러운 결정이다. 어떤 자산을 어떤 가격으로 사야하는지 결정하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부실 금융기관들이 매각하는 자산의 가치가 현재의 시장가치보다 낮을 경우에 다시 그 금융기관의 부실로 이어지고, 금융경색 현상도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반면 부실자산을 시장가치보다 높게 사들일 경우 정부의 재정적자는 과대해질 것이고, 대선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 시민들의 부정적인 여론을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금융자산에 대한 적정 가치를 측정하는 문제 자체가 현재의 위기가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너무나 불확실하다는 점이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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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폴슨은 구제금융 절차를 자신에게 위임해 줄 것을 요구하면서, 구제 과정을 사유화하려고 한다. 폴슨이 고용한 월스트리트의 기업이 부실자산의 가격을 결정하면, 정부는 시민들의 세금으로 월스트리트 기업의 부실자산을 구매해야 한다. 한편 이 월스트리트 기업은 수억 달러를 금융서비스의 대가로 받을 것이다. 게다가 폴슨과 버냉키는 시간이 지체되면 세계 금융시장이 붕괴할 것이라고 협박하면서 자신들의 구제금융안을 의회가 신속하게 통과시킬 것을 요구하고 있다. 미 의회가 이 안을 그대로 통과시킨다면 한 사람에게 미국 금융 시스템에 대한 결정적인 권한을 주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은 마치 부시 대통령이 이라크 전쟁을 승인 받기 위해 했던 일과 유사하다.) 또 놀랍게도 폴슨의 구제금융안에는 금융자본에 대한 처벌이나 유사한 사태를 막기 위한 규제방안이 없다. 그러나 민주당이 제기하는 부실금융기관 경영자에 대한 보수 제한조치도 실질적인 문제 해결과는 무관한 파퓰리즘에 불과할 뿐이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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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슨은 2007년 봄에만 해도 미국이 금융에 대한 과도한 규제로 인해서 세계 금융시장에서 우위를 빼앗기고 있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정부는 금융시장에서 완전히 손을 떼야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는 지금 정반대의 태도를 취하고 있다. 폴슨은 '금융제국'의 대리인이자 건설자로서 이러한 금융 위기를 만든 인물이다. 그런데 그는 금융자본과 자신과 같은 금융엘리트들이 만든 현재의 위기를 시민들의 돈과 책임으로 떠넘기려고 하고 있다. 그리고 그 처리 과정의 결정권을 자신의 수중에서 통제해서 7,000억 달러를 사용하려고 한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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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능성이 그리 높아 보이지는 않지만 7,000억 달러를 들여 미국의 금융위기를 현 상황에서 제어한다면 금융자본과 미국 지배세력에게는 좋은 결과일 것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독점적인 권리를 통해 권력을 재승인 받는 금융엘리트와 금융자본은 새로운 금융권력을 형성하려고 할 것이다. 9월 25일 미국에서는 사회운동네트워크인 평화정의연합(United for Peace and Justice, UFPJ) 주최로 월스트리트를 위한 자금 지원에 반대하는 집회가 열렸다. 이미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침공에 8,000억 달러 이상을 쓴 미국 정부가 월스트리트를 위해 7,000억 달러를 쓰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는 항의의 표시였다. 미국 경제의 금융화는 미국 내 소득 격차를 축소하기는커녕 더욱 확대했다. 즉 금융화의 수혜는 소수 고소득자에게 부를 더욱 집중시켰다. 하지만 금융화 거품이 붕괴하는 순간 그 막대한 회생비용은 결국 다수의 민중이 부담하게 된 것이다. 미국 금융위기는 금융화가 내포하는 계급적 본질을 숨김없이 드러내고 있다.<br />]]></description></item><item><author>바라</author><category>대장정</category><title>직접민주주의?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title><link>http://blog.aladin.co.kr/vara/2223722</link><pubDate>Mon, 04 Aug 2008 01:1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vara/2223722</guid><description><![CDATA[http://www.newscham.net/news/view.php?board=news&amp;id=43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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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1>직접민주주의? 무슨 말인지 모르겠</h1>
<h1>&#160;</h1>
<h1>어</h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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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2>[기획 : 촛불에 미치다] 촛불과 민주주의</h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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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주 기자&#160;www.yyjoo.net / 2008년07월22일 10시28분<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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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은 아직 진행형. 언제 어떻게 끝날까. 청계광장이 열린 첫날부터 지금까지 아무도 단정하지 않는다. 한편에서는 어떻게든 진화(鎭火)하려 한다. 무시하기도 하고 겁을 주기도 하고 공격하기도 한다. 한편에서는 어떻게든 진화(進化)시키려 한다. 진단하기도 하고 기획하기도 하고 물 흐르듯 맡겨두기도 한다. 이렇게 촛불은 계속되고 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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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촛불과 민주주의’에 대한 정의가 가능할까. 이 요란하고 역동적인 국면이 어떤 모양으로 일단락되느냐가 확인되지 않는 한 추정과 예측에, 주관적인 진단이 되기 십상 일지다. 그렇다고 정의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민주주의의 내용과 형식의 문제는 촛불 이전부터, 그리고 촛불이 켜진 이후에도 한시도 관심 밖의 일이 아니었다. 정치에 대한 시민의 관심만큼 촛불과 민주주의에 대한 관심은 지속했다. 이 주제를 놓고 관심을 피력했던 활동가와 연구자의 발언을 쫓아봤다. 정의라기보다는 정리에 가깝겠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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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0;&#160;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 [출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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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선언’(시민인권선언) 만들자?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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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과 거리에서는 직접민주주의 맹아들을 열심히 꽃피우고 있는데, 제 생각으로는 새로운 시민혁명이 진행 중인 것 같다. 이 시민혁명은 권리의 혁명이기도 하다. 대의제 민주주의로는 수렴될 수 없는 새로운 주권자가 광장에서 탄생하고 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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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래군 인권활동가의 말이다. ‘직접민주주의의 맹아’라는 말 속에는 대의제 민주주의에 대한 일정한 불신과 이를 보완하거나 대체할 뭔가의 희망사항이 포함돼 있다. 일단 ‘새로운 주권자’의 등장에 눈을 떼지 않는데.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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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래군 활동가는 이 주권자들이 ‘시민인권선언’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박래군 활동가는 “당장 제도정치로 수렴될 수 없는 급진적인 권리의 내용을 광장에서 서로 제안하고, 토론하고, 합의하여 어느 누구도 침해할 수 없는 인권으로 확고히 선언하자”고 주장한다. 인권활동가다운 고민과 실천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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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에서 확인된 민주주의를 둘러싼 쟁점과 논란, 요구들을 급진적으로 정리하되, 대중의 동의와 감성이 살아있는 ‘선언’을 만들 수 있다면 그 자체로 큰 의미가 있다. 시민이 줄줄 외우는, 외우지 않아도 저절로 읊어지는 그런 짧고 간명한, 그러면서도 인민주권과 인민권력의 의지가 꼿꼿이 살아있는 선언이라면 더할 나위 없겠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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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하게도 대한민국의 시민은 아직 6.29선언을 대체하는 선언을 갖고 있지 않다. 6.29선언에는 20년 전 6월 10일부터 18일간 ‘직선제’를 외쳤던 시민들의 정치적 열망이 오롯이 반영됐다. 선언의 주체는 지배자였고, 지배자의 입을 통한 선언이었지만, 지배자는 대중의 요구를 거두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혁명이었고, 동시에 미완의 혁명이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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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촛불은 6.29선언을 대체하는 ‘촛불선언’ 탄생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다만 ‘촛불선언’이 만들어진다 해도 6.29선언을 획기적으로 넘을 것인지를 장담하기는 어렵다. 더욱이 6.29선언과 같은 방식으로 정리되지도 않을 듯하다. 예상컨대 ‘촛불선언’이 만들어진다면 그건 대의제 민주주의의 밖에서 광장의 실천과 정신을 함축하는 방식이 될 공산이 크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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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이걸 어디에다 써먹을까. 제대로만 만들어진다면, 그러니까 마치 헌법 제1조 처럼 줄줄 외울 수 있는, 광장에서 실천으로 의미가 공유된 그런 ‘촛불선언’이 만들어진다면, 대의제 민주주의의 한계와 공백을 들춰내며 궁극적으로 지향해야 할 민주주의의 그림을 그리는데 유용하게 작용할 수 있을 것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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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2년 안에, 곧, 개헌이 추진되면 글자 한 자 밀어넣기 힘든 상황이 된다. 이럴 때 ‘시민인권선언’을 들이밀고 실갱이를 하고 힘겨루기를 하는 지렛대로 쓸 수도 있을 것이다. 나아가 신자유주의 권력이 시민의 삶에 위협을 가하는 요소요소마다 이 선언을 근간으로 해서 끈질긴 저항을 펼쳐나갈 수 있으면 된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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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의 민주주의’를 대체할 '직접민주주의'는 아직...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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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권리선언’과 유사한 문제의식은 백승욱 교수의 글에서도 확인된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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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욱 교수는 “헌정적 위기의 요소들과 삶의 현장에서의 투쟁을 결합하는 방법”을 고민하되 적어도 세 가지 요소를 담아내야 한다며 “법이데올로기를 의문시하는 효과를 가져야 한다는 점, ‘노동자 시민’이라는 계기를 활성화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는 점, 사상적 자기검열의 벽을 허무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는 점” 등을 짚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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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욱 교수는 이 세 가지 요소와 결합하는 가운데 “하나의 구호가 이 모든 효과들을 한꺼번에 담아낼 것으로 기대할 수는 없고 서로 다른 운동들이 결합되어야 하겠지만, 우리는 &lt;‘나는 이런 세상에 살고 싶다’ 선언자대회&gt; 같은 운동이 아래로부터 조직되어 전국적 파장력을 갖게 되고, 그것이 ‘민중의 권리선언’으로까지 이어지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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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함께 “삶의 공간에서의 변혁을 위한 노력은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정치적 조건들이 없이는 곤란함을 겪을 것이며, 그럼에도 이런 삶의 공간들 속에서의 변혁을 위한 시도가 없다면 대중들을 정치의 주체로 만들려는 인민주권의 시도의 내용을 갖추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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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백승욱 교수는 “어느 누가 집권하던 후퇴시킬 수 없는 대중들의 민주주의의 최저선을 확보하는 것, 그로부터 더 많은 민주주의를 작동시켜 가는 것”에 관심을 집중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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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박래군 활동가의 고민이 멈춰 선 지점은 어딜까. ‘세상을 두드리는 사람’ 7.8월호에서 박래군 활동가는 “인권운동진영이 더 이상 담론에서 밀리지 말고, 적극적으로 시민들의 변화의 열망을 권리선언이든 권리헌장이든 간에 담아내는 과정을 밟아야 하지 않을까요? 거리에서 경찰의 폭력을 감시하는 활동을 넘어서 적극적으로 직접민주주의, 주권자에 의한 직접 정치의 모델을 만드는 일로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요?”라고 말한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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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선언’을 만들고 주권자의 직접 정치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고 하는데, 아직 이 실체는 확인되지 않는다. 박래군 인권활동가가 맞닥뜨리고 있는 지점이다. 직접 정치의 모델, 그것은 아직 추상이다. 시민이 광장으로 쏟아져 나오고 거리의정치가 열리는 것만으로 직접민주주의나 직접 정치가 환원될 수 없는 까닭이다. 때문에 촛불의 주체들은 직접민주주의의 구체적인 뭔가를 갈망하지만, 제도 권력과 대의 민주주의의 바깥에서 이루어지는 급진적 인식과 실천이 조우하는 현실은 쉽게 손에 잡히지 않는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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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령 ‘민주주의는 장벽을 넘는다’는 실천은 곧 ‘장벽을 넘은 다음의 민주주의’의 질문 앞에 머뭇하게 된다. 거리의정치 내부의 장벽이라 할 비폭력 논란을 넘고 신자유주의 권력의 상징이라 할 명박산성을 점령할 수 있었지만, ‘절망의 민주주의’를 대체할 ‘직접민주주의’의 실체가 확인된 건 아니다. 단정하자면 ‘거리의정치’에서 시민 참여의 직접성이 제도 권력과 대의 민주주의 안에서의 직접성과 연결되어 있지 않는데, 또 연결되지 않는 데 연유한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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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정치와 거리의정치에 대한 당연하고 한가한 조합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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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0일을 경과하며 ‘촛불 이후’ 대안에 대한 많은 토론이 이루어졌는데, 정당정치와 거리의정치를 주제로 하는 의견이 봇물이 터지듯 하였다. 정당정치의 한계이므로 정당정치를 강화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거나, 정당정치와 거리의 정치가 병행 발전해야 한다는 등의 주장이 제기되었다. 예상치 못한 대중행동(거리의정치)을 목도하면서, 과거 거리의정치가 어떻게 정당정치로, 또는 제도 권력 구조로 수렴되었는가를 비교하는 가운데 전망 논쟁이 펼쳐졌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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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령 이남주 교수는 정당정치의 반성과 거리의정치의 ‘정당’화를 두고 선순환관계를 발전시킬 필요를 제기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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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남주 교수는 “거리의정치가 정치발전에 대한 긍정적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이를 기존에 우리가 가지고 있는 권력구도 내로 흡수하기 보다는 제도정치, 정당정치와 병행하면서 정치와 민주주의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원천으로의 기능에 주목할 필요”를 말하고 “거리의정치가 갖는 해방적 기능을 더욱 적극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해서 정치행위의 새로운 형식과 내용이 만들어질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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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거리의정치를 생활정치로 설명하는 경우는 많으나 현재의 거리의정치가 구체적인 생활공간과의 결합 정도는 매우 낮다”고 진단하기도 했다. 이로부터 이남주 교수는 “현재 거리의정치에 참여하고 있는 다양한 단위들 사이의 의제와 주체의 특성에 맞는 수평적 교류들의 활성화가 가능하지 않을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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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맥락이면 ‘불매운동’을 계기로 한 언소주(언론소비자주권국민캠페인)의 활약이나 소비자주권운동에 주목해볼 수도 있겠다. 언소주는 언론NGO 비영리단체(법인)화를 추진하는 단계로 발전하고 있다. 강남의 학부모들이 지역에서 촛불을 밝히고 교육 문제를 토론하며 네트워크를 한다거나, 과천의 주민들이 광우병 쇠고기 반대 프랭카드 걸기 운동을 하며 지역 주민의 생활과 연결하는 활동 등 촛불의 효과는 분명 작지 않다. 하지만 촛불시위에서 분출된 요구를 5대 의제로 압축해서 본다면, 각 의제에 대한 대안적인 논의와 실천을 전개해온 ‘수평적 교류’ 즉, 의제별 연대활동은 촛불 이전부터 존재했고, 촛불 과정에서도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민주주의’에 대한 새로운 과제를 제기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설득력을 갖는 ‘활성화’ 프로젝트가 제시된다면 모를 일이나, 결합해야 한다는 당위 정도로는 이후 실천 동력에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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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0;&#160;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 [출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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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환제, 직접민주주의 희구 과잉의 산물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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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의 민주주의의 한계를 지적하고 직접민주주의를 실행하자며 제기된 하나의 방안으로 ‘소환제’가 주목된다. 2004년 총선 당시 ‘더 많은 민주주의’를 둘러싸고 운동 진영 내부 논쟁이 벌어진 바 있었고, 주민소환제가 이미 법률적으로 도입되어 있지만 이번 촛불 국면에서 적극적인 대안으로 거론되지는 않는 분위기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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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우석훈 교수가 '주민소환제를 국민소환제로, 주민투표를 국민투표로 강화하자'는 주장을 펴고, 일부 블로거와 네티즌들이 온라인 토론을 펼치면서 이목이 쏠렸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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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석훈 교수는 오세훈 서울시장을 축으로 서울시 한나라당 구청장과 광역의원을 하나의 명부로 해서 소환 서명을 받자고 제안했다. 촛불 망언을 한 김문수를 축으로 경기지역의 한나라당 시장들과 경기 광역의원도 하나의 축으로 추진할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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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구로는 부안 주민투표를 할 때 했던 기구와 비슷한 형태로 각 지역별 주민카페 같은 것이 결합되도록 하고... 우석훈 교수는 “이를 발의하는 것만으로도 한나라당의 힘 절반을 무너뜨리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보았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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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도입되어 있는 주민소환제와 주민투표를 국민소환제와 국민투표로 강화해서 국회와 대통령도 소환 대상으로 삼자는 것이 골자였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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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0을 앞두고 제기한 이 글에서 우석훈 교수는 “6.10 기념제는 이 사건이 워낙 시청에서 광화문 사이에서 벌어진 것이니까 전또깡을 내렸던 사건을 상징적으로 재현한다는 점에서 시청이 맞을 것 같고, 그 다음에는 분산되어서 각 구청장이 있는 구청과 한나라당 당사로, 자신이 사는 동네로 확산되는 것이 더 맞을 것 같다”고 제언하기도 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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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나리오 대로라면 최소한 최근에 서울시의회 의원들의 최악의 뇌물 사건이 터진 데 대해 즉각 소환 운동이 펼쳐지고 있어야 한다. 오세훈 시장과 한나라당 전체에 대한 정치적이고 상징적인 소환보다 범죄가 뚜렷한 서울시의회 의원의 즉각 소환은 명분과 정당성 모두 비교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민주노동당 서울시당이 주민소환 의지를 다소 정치적으로 선언한 것 외에 이렇다할 가시적인 움직임은 포착되지 않았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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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정하기는 어려우나 춧불집회에 나선 시민들이나 추진 주체 공히 ‘소환제’가 많은 비용을 들이고도 과정과 결론을 예측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부담을 갖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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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다음카페 등에서 국민소환제 추진을 위한 서명운동을 펼치고 있는 김옥선 대외협력팀장은 “시장은 서울시민의 10%가, 시의원은 20%가 발의해야 하므로, 쉽지 않은 일이나 법적 절차를 밟아가며 차근차근 준비중”이라고 말했다. 법적 요건을 갖추기 위한 준비와 국민소환제를 추진이 덩치가 큰 일인만큼 실제로 성공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는 설명이다. 김옥선 팀장은 “올해 안에는 발의하게 될 것”이라는 자신감을 덧붙였다. 꼭 그렇게 되었으면 하고, 누구나 힘을 실을 만한 일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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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주민소환제든 국민소환제든 소환제가 주민(국민)이 참여하는 직접행동, 직접민주주의 요소를 갖고 있지만, 그 자체가 민주주의의 내용은 아니다. 국민소환제가 5년단임 직선 대통령제라는 87년헌정체제의 권력제도의 일부를 보완하는 의미를 갖는 건 분명하다. 그러나 이 형식에 누가 어떤 내용을 담을 것인가는 차원이 다른 문제이다. 그러니까 폄하할 일은 아니지만 국민소환제가 곧 직접민주주의인 것처럼 인지되는 것도 위험 요소가 있다는 이야기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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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0;&#160;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 [출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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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민주주의?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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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에 젊은 블로거들과 좌담 자리를 같이 한 적이 있는데, 이들은 직접민주주의에 대한 과대한 기대를 한방에 날려버리는 토론을 펼쳐보였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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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윤형 : 논점을 바꿀 필요가 있는데, 지지율이 떨어지면 뭔가 바뀌어야 정상인데 선거도 없고 할 게 없다. <br />
김현진 : 교육감 선거!<br />
한윤형 : 물가상승률 7%, 경제성장률 4%, 지지율 7%, 그래서 747이라고도 한다. <br />
노정태 : 7.4% 지지율을 7월 안에 달성했다는 해석도 있다.<br />
한윤형 : 이쯤 되면 방도가 있어야 하는데 청와대만 막겠다, 나머지는 너희들 하고 싶은 대로 해라. <br />
김현진 : 세종로 니네 가져 이런 거지.<br />
한윤형 : 그렇다고 혁명을 할 정국도 아니니 사람들한테 뭔가 요구하기도 그렇다. 제도적으로 어떻게 할 방법은 없고, 그래서 직접민주주의 이야기하는데, 근데 직접민주주의라는 말이 좋은 말인지 모르겠다. <br />
김현진 : 나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br />
한윤형 : 굉장히 아련한<br />
노정태 : 꿈 속에 있는<br />
한윤형 : 평생의 이상형 같은. 누군지 모르겠고, 걔가 쌍꺼풀을 했는지 안 했는지 아련한. 대의민주주의가 안 굴러간다고 이야기하는 건 맞는데 어떻게 보완할까를 이야기해야. <br />
완군 : 직접민주주의로 갈 거냐, 국민소환제냐, 대의민주주의냐 이야기하지만 이 에너지가 과연 형질 전환되는 에너지일까.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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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담에 참석한 블로거들은 최소한 촛불시위 현장에서 제기되는 ‘직접민주주의’의 거품을 걷어내는 공감대를 보여준다. 직접민주주의의 구호만 들고 촛불집회에 참석하느니 차라리 대중들이 ‘놀다 가도록’ 해야 한다는 맥락의 ‘습격과 놀이’를 언급하기도 했다. 추상의 직접민주주의 논란 대신 시청에서 비정규직 유인물 나눠주기 등 당장에 할 수 있는 일들을 얼마든지 열거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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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하고 자치할 대안이 없는 민주주의는 무엇?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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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말 경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직접민주주의적 요소를 강화해야 하고, 강화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대의제를 대체하기보다는 보완하게 될 것이다. 국민들도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문제 제기해봐야 한다. 정치권력을 어떻게 선출해야 하는가, 정치권력을 어떻게 재편해야 하는가 하는 고민까지 도달해야 한다”고 짚은 바 있다. 민주노동당이나 진보신당은 무력하고 신뢰받지도 못한다는 진단을 덧붙였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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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찬 대표는 이명박 정권 퇴진 슬로건에 대해서도 “‘정권 퇴진’이라는 표현을 구체적인 정치 프로그램으로 가져가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상황이 무르익지 않았다거나, 대안권력이 없기 때문이 아니다. 현 상황을 이끌고 갈 정치적 응집력이 없다는 점이 문제”라며 회의적이면서도 동시에 비교적 정확한 의견을 피력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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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가 10% 안팎의 지지율 속에 산성을 쌓고 청와대에서 농성(?)을 하는 모양을 하면서도 ‘퇴진’당하지 않을 수 있는 건 5년 단임 권력의 정통성을 인정받은 데 있다. 이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잃어버린 10년의 찬탈자들은 행정권력과 의회권력 장악의 위력에 기대어 촛불 진화의 갖가지 수단을 펼쳐가는 것이다. 광우병 협상에 이은 방송통신심의위의 시사프로그램 '공정성' 심의, YTN 낙하산, KBS 장악, 검찰의 MBC 죽이기 등 언뜻 이해하기 힘든, 비상식적이고 황당하기까지 한 언론사유화 공작이 시사하는 바도 여기에 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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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하고 자치할 대안이 없는 한 ‘민주주의’는 정치적 수사에 불과하다. 얼마나 반동적일 수 있는 지는 현실에서 쉽게 확인된다. 87년헌정체제 안에 녹아있는 민주주의 지배 주체가 바뀌지 않는 한, 87년헌정체제를 바꿔낼 대안 정치가 출현하지 않는 한 ‘거리의정치’ 그 직접민주주의의 한계도 극복되지 않을 것이다. 서울시교육감 선거가 절묘한 시점에 자리잡고 있는데, 이번 선거 결과가 곧 촛불에서 만들어진 직접민주주의의 열망과 실체가 평가되는 바로미터라고 한다면 과연 오버일까.]]></description><image><url>http://www.newscham.net/data/news/photo/10/43818/XXX.jpg</url><link>http://blog.aladin.co.kr/vara/2223722</link></image></item><item><author>바라</author><category>대장정</category><title>누가 신나래 학생을 죽음으로 내몰았는가?(참세상)</title><link>http://blog.aladin.co.kr/vara/2223624</link><pubDate>Mon, 04 Aug 2008 00:1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vara/2223624</guid><description><![CDATA[<br />
http://www.newscham.net/news/view.php?board=news&amp;nid=49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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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1>누가 신나래 학생을 죽음으로 내몰</h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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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1>았는가?</h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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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2>[기고] 근조 - 어느 촛불소녀의 죽음</h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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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인&#160;liebe_kim@hanmail.net / 2008년08월01일 15시16분<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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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소녀' 신나래 학생의 죽음<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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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7월 5일 서울시청에서 '미친소 수입반대! 고시철회! 백만 촛불대행진'이 있던 날이었다. 안양 A여자정보고등학교를 다니는 신나래 학생은 백만 촛불문화제에 참가하고 귀가하던 중, 안양에 위치한 모 아파트 15층에서 투신자살하였다. 그녀의 가방에는 손 피켓 뒷면에 적힌 유서가 남아있었다. 신나래 학생의 자살이 알려졌을 때, 많은 시민들은 '촛불소녀의 죽음'이라며 애도하였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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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신나래 학생의 유서에는 이명박 대통령을 비난하는 내용과 담임 선생님에 대한 원망 등 개인의 복잡한 심정이 드러나 있었다. 유족 측이 조사한 바이 따르면, 신나래 학생의 죽음은 광우병 시위와는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다만, 평소 신나래 학생은 친구들에게 자주 "광우병 반대 촛불문화제에 가고 싶다"고 말했다고 한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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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래 학생의 부모는 강남에서 떡볶이, 순대를 팔며 생계를 이어가는 노점상이며, 아버지 신동직 씨는 1급 장애인이다. 또한 나래 학생의 가족은 기초생활 수급 대상자이다. 가족은 10년째 지하 단칸방에서 살다가 얼마 전 임대아파트를 얻어 이사하였다. 나래 학생은 죽기 전 임대아파트에 살게 된 것을 매우 좋아했다고 한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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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래 학생은 집안의 첫째 딸이고, 밑에는 중학교 다니는 남동생과 초등학교 다니는 여동생이 있다. 부모는 오후에 장사를 나가면 새벽 늦게 들어오기 때문에, 나래 학생이 집안일이며 동생들 돌보는 것을 도맡아서 해왔다고 한다. 그녀는 대학 진학이 예정되어 있었고, 대학 진학 후 인터넷 쇼핑몰사업 구상을 계획하고 있었다. 나래 학생은 비록 가난하였지만 꿈 많고 행복했던 소녀였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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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나래 학생을 죽음으로 내몰았나?<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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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하지만 행복했던 나래, 하지만 그녀는 죽음을 선택했다. 누가 그녀를 죽음으로 내 몰았나? 유족 측 조사에 따르면, 나래 학생이 다니는 학교는 상습적인 체벌, 성추행, 가난한 학생에게 가해지는 인격모독이 심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그녀도 억압적인 학교 분위기와 일부 교사의 폭력으로 인해 많은 고통을 호소했다고 한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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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4월경, 나래 학생의 담임교사는 학급 학생들에게 '기초생활수급자들은 일어나라'고 강요했다. 그 학급의 6명의 기초생활수급자 중 5명이 일어났는데 나래 학생은 끝내 일어나지 않았다. 다시금 담임이 호통을 쳐도 그녀는 일어나지 않았다. 결국 담임은 기초생활수급자 자녀 명단을 불러버렸다. 그 날, 나래는 집에 와서 내내 울었다고 한다. 그 교사는 수업료를 내지 못한 학생들을 낼 때까지 자주 학교에 남겼다고 한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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뿐만 아니라 나래 학생의 담임교사는 소지품 검사를 한다며, 반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여러 차례 여학생들의 가방을 뒤지고, 가방 속 생리대를 빼내 낱개 포장된 생리대 패드를 직접 뜯어보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또 그녀의 담임교사는 매사 학생들에게 "너희는 상품이고 상품으로서 가치가 없어지면 너희는 끝이다"는 내용을 수시로 말하며 인격적으로 모독을 주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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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 교사 K씨는 여학생 체벌 시 치마를 양손으로 잡아서 앞으로 당기게 한 후 엉덩이를 체벌하는데 이 때, 여학생의 속옷이 보이기도 해 학생들에게 수치심을 주고, 발로 차기도 하고, 욕설도 하면서 '교육청에 신고하려면 해보라'는 식으로 학생들을 윽박질렀다고 한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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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수학교사 K씨는 수학시간에 문제를 못 푼다는 이유로 잦은 체벌을 했는데, 일례로 딴 짓을 한 여학생을 엎드려뻗쳐 시킨 후 빗자루로 엉덩이를 38대나 때리는 등 과잉체벌을 했고, 문제를 못 풀면 풀 때까지 체벌을 하는 등 학생들을 비인격적으로 대우하고 과잉 체벌을 일삼아 왔다고 한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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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래는 자살하기 전, 강압적인 수업 분위기와 친구들에 대한 공개적인 체벌장면을 자주 목격하면서 심리적인 압박과 걱정을 가족과 친구들에게 많이 표현하였다고 한다. 아무래도 어린 나래가 혼자 감당하기에는 잘못된 학교교육 현실이 너무 버거웠던 것으로 보인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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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제2, 제3의 나래를 만들지 마라<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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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교육청은 유족의 처절한 외침을 외면하였고 책임회피에 급급하였다. 7월 10일, 유족측은 책임자 징계와 자살예방대책 등을 요구하며 경기도교육청에 진정서를 제출하였다. 경기도교육청은 생활 장학사 2명을 파견하여 책임교사를 조사하고 답변서를 보내왔다. 그러나 경기도교육청은 단 한차례 해당교사와 면담하고 모르쇠로 일관, "자신들에게는 조사권한이 없다"며 "사법기관에서 조사해야한다"며 책임회피에 급급하였다. 이에 분노한 유족측은 경기도교육감과의 면담요청서를 제출하였지만 경기도교육청은 유족 측과의 면담을 거부하였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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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신나래 학생의 모교인 안양 A여자정보고등학교는 학생들에게 '신문사나 TV와 인터뷰를 절대 하지 말라', '누가 신나래 관련 이야기를 물어보면 응하지 말라'라는 식으로 학생들을 통제하고 있는 상황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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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4일, 빈민, 진보정당, 인권단체, 청소년단체를 중심으로 '촛불소녀 고 신나래 양 사건 진상규명과 책임자처벌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를 구성하였다. 공대위는 26일 청소년단체 주관으로 추모제를 개최하였고, 28일부터 학교 앞에서 1인시위에 들어갔다. 매주 화, 수요일에는 범계역과 수 수원역에서 각각 촛불문화제를 개최한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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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자살로 공대위가 꾸려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한 해 109명에 이르는 청소년들이 자살을 하지만 언제나 그들의 죽음은 개인적인 문제로 치부되어 왔다. 많은 청소년들이 입시, 체벌, 성추행, 차별교육 등의 문제로 죽음을 선택하지만, 교육당국은 '신변비관', '가정환경' 때문이라며 구체적인 청소년자살 예방대책을 내놓지 않고 책임회피에만 급급해 왔다. 더욱이 우려스러운 것은 이명박 정부의 시장화 교육정책으로 인해 더 많은 청소년들이 죽음으로 내몰리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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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대위는 신나래 학생의 죽음이 '사회적 타살'이며 교육당국과 학교에 책임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공대위는 신나래 양의 죽음뿐만 아니라, 청소년을 자살로 내모는 교육현실을 고발하고자 한다. 교육당국은 더 이상 제2, 제3의 나래 학생이 발생하지 않도록, 시장화 교육정책을 중단하고 청소년들을 살리는 교육정책을 입안해야 할 것이다.]]></description></item><item><author>바라</author><category>대장정</category><title>민주주의의 운명을 결정지을 한 달(박래군)</title><link>http://blog.aladin.co.kr/vara/2116401</link><pubDate>Sat, 31 May 2008 00:0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vara/2116401</guid><description><![CDATA[<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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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1>민주주의의 운명을 결정지을 한 달</h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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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2>[인권오름]'인권'이 거리에서 살아 숨쉬며 꿈</h2>
<h2>&nbsp;</h2>
<h2>틀대고 있다</h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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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래군(인권운동사랑방)&#160; / 2008년05월28일 17시04분<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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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시위가 ‘변질되어’ 번지고 있다. 5월 초부터 청계광장에 모여 촛불을 들고 광우병 의심 미국산 쇠고기 전면 수입 반대를 외치던 이들은 이제 광장을 넘어 거리로 나가기 시작했다. 10대들이 시작한 촛불시위를 이제는 20대, 30대, 40대가 이어받았다. 시민들은 이제 미국산 쇠고기 반대만 주장하지 않는다. 이명박 정부의 교육정책, 대운하를 비롯한 거의 모든 정책에 반대한다. 주동자도 없고, 거리에서 즉석으로 행진방향을 정하고, 오히려 국민대책회의가 시위 종료와 해산을 ‘고시’해도 동이 틀 때까지 게릴라성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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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을 넘어 거리로<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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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촛불집회와 거리시위를 중단시키기 위한 정부의 노력은 대체로 아무런 성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10대들을 협박하여 광장에 오지 못하도록 만들었지만, 10대들이 열어놓은 민주주의의 광장을 다른 세대들이 이어받았다. 5공 시절의 공안기관대책회의를 부활시키면서 국정원까지 참석시켰지만, 거리시위를 강경 진압하는 외에 다른 대책을 내놓지 못한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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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진실과 과학적 주장들에 대해 정부는 계속 ‘괴담’이라고 우기면서, 이 ‘괴담’의 확산을 차단하려 하지만 그럴수록 성난 민심에 기름을 붓는 꼴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지만 오히려 국민들의 무지와 몰이해를 탓하는 아전인수식 해명은 더 큰 반발을 불러왔다.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 이후 시민들은 거리로 뛰어나가는 길을 선택하지 않았나.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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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눈치를 보느라고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하겠다는 장관 고시를 계속 미루어 왔다. 고시가 불러올 반발에 대한 우려와, 미국과의 약속을 지키고 한미FTA를 한시라도 빨리 체결하려는 조급함 사이에서 정부는 갈팡질팡하고 있다. 아마도 그들은 여기서 밀리면 다른 정책들도 밀릴 수밖에 없고, 출범 석 달째를 맞는 정부가 큰 정치적 타격을 입을 것이라는 정치적 고려를 하면서 장고 끝에 악수를 선택하는 길로 가고 있는 듯하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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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는 이제 공안기관들을 총동원하여 ‘평화적인 촛불시위’와 ‘불법적인 거리시위’를 분리하고 후자에 대한 강제진압과 시위자 연행 등 사법적인 처리로 방향을 틀었다. 지금으로서는 정부와 국민들 사이에 화해할 길은 없는 듯하다. 이 싸움에서 ‘거리의 정치’가 이길 것인지, 아니면 공권력에 진압당할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그렇지만 이 국면은 새 정부의 실체를 고스란히 드러내면서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와 인권에 대한 열망을 표출하고 있다. 이명박 정권이 지우려고 애쓰는 그간의 민주화운동의 성과, 인권운동의 성과는 이미 국민들의 의식 속에 탄탄히 자리 잡고 있음이 구체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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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아고라를 비롯한 인터넷 카페들에서는 미국산 쇠고기 반대에 대한 토론,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는 토론이 끝없이 이어진다. 이명박 대통령 탄핵 서명은 130만 명을 넘어섰다. 이 토론의 장에서는 누구나 평등하게 제안하고 토론하다. 자연스럽게 흐름이 만들어지고 네티즌들은 그 흐름에 따라 촛불광장에도 나오고, 거리시위에도 참여한다. 시민들은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보수 언론들을 ‘찌라시’, ‘쓰레기’로 비난하면서 스스로의 언론을 만들어간다. 현장에서 찍은 동영상도 각자 편집해서 올리고, 아예 현장중계까지 한다. 경찰이 연행하려고 하면 거리의 모든 사람들이 일제히 경찰을 디카와 핸드폰 카메라로 찍으면서 감시활동을 벌인다. 거대 언론으로부터 소외된 민중들이 직접 언론활동을 하면서 여론을 형성한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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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과 경찰은 이 새로운 집회와 시위 양식에 대해서 때로는 배후가 있고, ‘치밀한 계획’이 있다고 몰아세우면서도 이들을 처벌할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거리에서 공권력을 무력화시켜가면서 민주주의와 인권을 확장해가는 흐름은 거대한 항쟁으로 발전할 징후를 내비치고 있다. 인권이 실정법에 우선한다는 진리를 이처럼 생생하게 역설하는 사례가 어디 있을까.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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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제 불능의 국회가 온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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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대 국회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2004년 노무현 탄핵에 대한 국민적 반발을 등에 업고 국회 의석 과반수를 차지했던 열린우리당(현재 대통합민주당)은 소수 야당으로 전락했다. 자유주의 정치세력의 몰락은 필연이었고, 18대 총선에서 총선에 참여한 46%의 유권자들은 한나라당을 다수당으로 만들어주었다. 한나라당과 선진한국당을 비롯한 보수진영이 전체 의석의 3분의 2를 넘는 보수국회가 5월 30일부터 임기를 시작하고, 6월 5일 개원국회를 열게 된다. 이미 알고 있듯이 민주노동당은 겨우 5석을 차지하였을 뿐이다. 민주노동당이 연대할 수 있는 가장 가까운 정당으로 보였던 창조한국당은 이회창의 선진한국당과 손잡고 교섭단체를 구성했다. 자유주의자 문국현의 이미지는 이제는 보수주의자로 채색될 판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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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국회에서 민주주의와 인권을 후퇴시킬 법률들이 참으로 많이 개악될 공산이 크다. 우선은 집회·시위를 한층 억압하기 위해서 복면금지, 소음 규제 강화, 양해각서 등을 법으로 보장받으려고 한다. 경찰관직무집행법을 고쳐서 불심검문을 강제화하려고도 하고, 국정원법을 개악하여 국정원을 강화하려고도 한다. 테러방지법과 북한인권법도 제정할 것으로 보인다. 통신비밀보호법을 비롯해 인터넷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는 법률들도 개악될 예정이다. 그 외 경제관련 법률들을 보면 금산분리 완화와 출자총액제한제도의 폐지라는 입장에서 기업의 자유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개악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필수업무유지제도의 확대를 통해 공익사업장에서 노조의 파업권을 무력화하는 등 ‘노동규제개혁’라는 새로운 로드맵을 향해 치닫고 있다. 나아가 한나라당 일각에서는 내년까지 개헌을 마무리해야 한다는 구상도 발표되고 있다. 그들이 원하는 개헌이라는 것은 권력구조의 변경 문제만이 아니라 기본권을 대대적으로 후퇴시키고, 경제민주주의 조항(헌법 제119조)과 같은 조항을 삭제하여 신자유주의 경제제도를 헌법으로 보장 받으려는 것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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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모든 법률들이 개악될 때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18대 국회는 국회의원들을 모아 법안을 발의하거나 개악을 늦추기 위한 싸움의 여지가 거의 없다. 법치를 포기한 인치가 아니라 실질적인 인치(人治)를 포기한 형식적인 법치(法治)를 통해 인권억압체계가 본격화될 수 있다. 자유주의 정치세력이 몰락한 국회에서 최소한의 입법운동은 크게 그 방향을 수정해야 한다. 입법을 통해 권리의 진지를 다지는 것은 당분간 먼 나라의 얘기가 될 수도 있다. 결국 입법기관이 기득권 세력의 입맛대로 입법을 하지 못하도록 거리의 정치, 민중에 의한 직접정치가 강화될 수밖에 없다. 지금 이명박 정부의 민주주의의 후퇴를 촛불시위와 거리시위로 지연시키고 있듯이 말이다. 통제 불능의 입법기관을 통제할 힘의 형성, 그것은 사회운동의 활성화이고, 사회운동이 구체적인 힘을 확보할 전략을 마련하는 일이며, 그것은 지금부터 구체적인 준비에 착수할 일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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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할 수 없는 대결이 될 6월<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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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은 한층 역동적인 한 달이 될 전망이다. 모든 것이 예측 불허다. 이미 유가는 초국적 자본의 투기에 의해서 경유와 휘발유가 모두 리터당 1,800원대를 넘어섰다. 계속되는 국제원자재 가격의 상승은 그렇잖아도 취약한 한국경제를 옭죄고 있다. 수출조차 후퇴하는 기색을 보이고 있다. 물가도 통제하기 어려운 상황이 오고 있다. 벌써부터 공공요금의 대대적인 인상 기미가 보이고 있다. 물가를 비롯한 경제 상황의 악화는 민중들의 생활을 압박하고, 민중들의 인내심은 점점 한계점을 향해 치닫고 있다. 축산업 농민들의 잇따른 자살은 이런 민중들의 생존권 악화를 보여준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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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다가 정부의 공공부문 민영화가 본격화된다. 정부는 공공기관의 장들을 자신들의 충복으로 심어놓는 작업에 착수했다. 정부의 압박에 의해서 공공기관의 장들이 줄지어 사퇴하고 있지 않은가. 법률로 보장된 임기도 포기한 채 말이다. 그런 뒤에 대대적인 민영화가 추진된다. 그 민영화는 사실은 공공기업의 사기업화이고, 이미 확보한 경제·사회·문화적 권리 영역을 시장으로 넘겨주는 것이고, 그것은 결국은 인권의 대대적인 후퇴와 침해로 귀결된다. 수돗물, 철도, 도로, 가스, 전기, 병원 의료보험, 방송 등을 시장으로 넘겨주고 이제 국민들은 사회적 서비스를 비싼 가격에 구입해야 하고, 그 비용을 지불하지 못하면 서비스로부터 배제되는 것이 공공부문 민영화이다. 거기에 4.15 교육정책을 통해서 보는 것처럼 사교육비는 증가하고, 등록금도 인상되어서 결국은 빈부의 신분 구별이 뚜렷한 사회로 가는 길목을 만들 것이 확실하기에 우리는 공공부문의 민영화에 반대할 수밖에 없다. 시장은 인권과 양립할 수 없다는 명제를 인정한다면, 인권의 이름으로 공공부문의 민영화에 반대하는 투쟁의 조직은 당연하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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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마침 6월은 민주노총이 임단투를 집중하기로 한 달이기도 하다. 기륭전자 노동자들의 투쟁이 1천일을 넘어섰고, KTX 승무원들의 투쟁은 8백일, 뉴코아-이랜드 노동자들의 투쟁은 1년을 앞두고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장기투쟁 사업장이 확대되고, 그들의 투쟁을 권력과 자본이 무력화하기 위해 법과 공권력, 용역깡패까지 동원하며 짓이기고 있음에도 질기게 싸워 버텨내고 있다. 다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대량 계약해지가 예고되고 있는 게 6월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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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지금의 촛불집회, 거리시위가 6월까지 이어지고, 그 흐름이 노동운동의 이런 흐름들과 연결된다면, 그 폭발력은 누구도 제어할 수 없다. 한 순간에 민주적 권리를 되돌리려는 반동의 흐름에 맞서 권리를 방어하고 확장하려는 민중들의 피할 수 없는 결전의 한 달이 될 수 있다.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 시민·정치적 권리만이 아니라 경제·사회·문화적 권리를 방어하고 확장하려는 정치투쟁이 바야흐로 거리를 중심으로 일어날 수 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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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정부와 보수 세력들은 손 놓고 지켜만 볼 것인가. 그들은 촛불시위 정국을 통해서 중요한 교훈을 얻고 있을 지도 모른다. 위기의 관리, 저항의 관리 방법을 터득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미 저들은 자신들의 신자유주의 정책, 개발주의 정책의 실행을 단계화하고, 분산하는 방법을 취하고 있다. 대운하에 대한 반대 여론이 높아지자 이것을 우회하기 위해서 하천정비사업으로 수정하고 있지 않은가. 공안기구들을 총동원하여 물리적인 탄압을 가할 것이고, 정규직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를 분할하듯이 진보운동진영과 시민들, 민중들의 정치적 진출을 분할하려는 기도가 치밀하게 진행될 것이다. 거기에 대중들의 경제적 욕망을 자극하면서 공포를 조장하고, 희생양을 찾아 나선다. 그 첫 번째 대상자가 무권리 상태의 이주노동자이고, 민족적 동화를 강요받는 이주자들이다. 보수세력들은 인종주의와 민족주의를 조장하며 치사하고 야비한 방법으로 반동행위에 나설 수 있다. 이런저런 정부와 자본의 음모와 공세에 대응할 방안에 대해서도 충분한 논의가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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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에 닥칠 대변화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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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6월과 7월에 한반도에 대변화가 올 수 있다. 미국이 북한을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해제하고, 부시가 7월초 G8 정상회담을 전후해 북한을 방문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 이런 상황은 한반도와 동북아 정세에 결정적인 변화를 가져온다. 이런 흐름과 국내의 민주주의 수호와 인권의 수호를 위한 투쟁은 어떻게 맞닿을지에 대한 고민도 빼놓을 수 없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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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우리는 어쩌면 몇 년 같은 한 달을 보내야 할지도 모른다. 그 한 달은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와 인권의 운명을 결정짓는 한 달이 될 수 있다. 지금 모든 것이 안개처럼 불투명하지만, 어느 때보다도 격동적인 한 달을 보내야 할 지 모른다.]]></description></item><item><author>바라</author><category>대장정</category><title>한·미 FTA 근본적 재검토 필요하다</title><link>http://blog.aladin.co.kr/vara/2097258</link><pubDate>Mon, 19 May 2008 00:2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vara/2097258</guid><description><![CDATA[
    
        
            [사설]한·미 FTA 근본적 재검토 필요하다<!-- TITLE END -->
        
        
            입력: 2008년 05월 17일 00:37:22
        
        
            &#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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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ODY START -->지난 13, 14일 열린 국회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청문회는 사실상 ‘쇠고기 청문회’였다. FTA의 조기 비준을 위해 양국 정상회담 일정에 맞춰 타결한 쇠고기 협상이 얼마나 부실한 것인지 드러났기 때문이다. 정부·여당은 한·미 FTA와 쇠고기 문제가 별개라며 둘을 연계하지 말 것을 주장하지만 설득력이 없다. 애당초 미국은 쇠고기 시장 개방을 FTA 협상의 전제조건으로 요구해왔다. 이에 따른 협상에서 섣불리 검역주권을 내준 데 대한 여론이 들끓었다. 이렇듯 밀접하게 연결된 양자가 무관하다는 주장은 억지일 수밖에 없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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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TA 비준 동의가 야당의 비협조로 어렵게 되자 정부·여당은 다급해졌다. 한나라당 안상수 원내대표는 국회의장에게 본회의 직권상정을 요구하겠다고 밝혔다.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은 한·미 FTA 발효가 1년간 연기되면 15조원의 손실이 예상된다며 비준 동의를 촉구했다. 또 많은 신문들이 17대 국회가 열흘도 안 남았다며 FTA·쇠고기 연계 불가론을 펴고 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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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냉정해질 필요가 있다. 우리는 처음부터 한·미 FTA 반대 입장을 견지해왔다. 그 이유는 많다. 가령 FTA가 최종 비준되면 광우병특별법 같은 것이 제정되더라도 투자자·국가소송제 때문에 의미가 없어지게 된다. 한신대 이해영 교수에 따르면 여러 의미에서 한·미 FTA는 자유무역협정이라기보다 포괄적 경제통합 협정이다. 한·미간의 쇠고기 수입위생조건 협정은 FTA의 하위 개념인 양해각서에 불과한 데다 그 범주도 비교할 바 없이 작은 것이다. 그런데 이 협상 과정에서조차 ‘번역 실수’ 등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벌어졌다. 협상력 부족, 그리고 본질적으로 저자세를 드러냈다.<br />
            <br />
            우리는 여야가 정략적으로 ‘FTA로 쇠고기를 덮는 것’이나 ‘쇠고기로 FTA를 덮는 것’을 모두 반대한다. 지금 명심할 것은 이 나라 통상주권의 장래다. 설사 한나라당과 통합민주당이 쇠고기 재협상에 합의한다 하더라도 그것이 FTA 비준과 연계된 ‘공모’여서는 곤란하다. FTA 비준 문제는 다음 국회에서 국정조사나 ‘축조청문회’ 등을 통해 처음부터, 치밀하게 재검토해야 한다.<!-- BODY END -->
        
    

경향신문 사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805170037225&amp;code=99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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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Community/mypaper/pimg_725516154371774.jpg</url><link>http://blog.aladin.co.kr/vara/2097258</link></image></item><item><author>바라</author><category>대장정</category><title>촛불집회 </title><link>http://blog.aladin.co.kr/vara/2097215</link><pubDate>Mon, 19 May 2008 00:0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vara/2097215</guid><description><![CDATA[어제는&#160;광우병 촛불집회에 가보았다. 청계광장에는&#160;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몰리지는 않았다. 이명박이 만들어놓은 청계천가에 모인 사람들이&#160;광우병반대를 외쳤다.&#160;사람 수에 비해서 청계광장의 구조가 집회하기에 별로 좋은 공간은 아니다. 조금 늦게 도착했는데 이승환, 김장훈, 윤도현 등의 공연이 주를 이뤄서 과연 촛불'문화제'라는 말이 적절할 것 같다. 무언가 산만하고, 비조직적이고, 어색한 분위기이다. 기존의 집회 문화에서 보자면, 확실히 그렇게 보인다. 그동안 집회에 대해&#160;이야기를 들은 바로는&#160;촛불집회에서는 주로 애국가나 아리랑, 심지어는 오필승코리아나 독도는 우리땅 등의 노래가 불리고, 노무현이나 문국현 지지자들의 수도 상당하다고 했다. 다함께나 민노당,&#160;전국학생행진 등의 단위가 보이기도 했는데, 그 수가 많지는 않았다.&#160;발언들은 대개 수입 관련 재협상 요구와 미친소 수입 반대 정도에 제한된다는 인상을 받았다. 쟁점이 협소화되고 있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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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160;의미에서 요새의 촛불집회는 여러 모로 04년도의 탄핵 정국을 떠올리게 한다. (아주 모호한 말이긴 하지만) 집회에 나온 사람들은 대다수가 '자생적'으로,&#160;특정한 조직의 동원이 아니라 인터넷이나 방송 등을 보고&#160;나온 사람들이고,&#160;이른바 쌩대중이다(가족 단위, 인터넷 카페&#160;회원, 학생들). 일련의 집회들에서 특히 부각되는 것이 중고생들의 두드러진 참여인데, 조중동에서는 전교조가 배후에 있다느니 떠들며 쇼를 하고 있지만, 학생들의 참여가 단순히 배후조종이나 몰지각의 산물이 아님은 명백하다. 415학교자율화 조치, 0교시 부활, 우열반 편성 등이 직접적으로 중고생들을 자극했을 것이고, 쇠고기 문제를 통해 그 불만이 폭발하게 되었다.(대학생의 경우-등록금 문제, 직장인-대운하, 의료보험, 수도, 가스, 전기 등의&#160;공공서비스 민영화 등)&#160;"우리는 이명박 안 뽑았다. 당신들은 왜 이명박 뽑았느냐,&#160;어른들은 왜 우리에게 나쁜 미국산 쇠고기를 먹게 하는가?&#160;왜 아직 살 날도 많이 남은 우리를 죽이려드는가? 우리는 그 과정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가?" 이는 학생들의 이야기이다. 물론 학생들 모두가 이명박 정권과 광우병 문제에 대한 과학적 인식을 토대로 움직이는 것은 아닐 것이다(물론 언론에서 떠드는 것보다 중고생들이 훨씬 똑똑하다). 여러 연예인들의 발언 등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고&#160;연예인들을 통한, 그리고 당연히 학생들&#160;사이에서, 집회&#160;내에서&#160;무수한 '정서들의 모방' 과정이 있었을 것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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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운하니, 의료보험 민영화니 이명박이 대중들을 계속 자극해왔지만 왜 유독 쇠고기 문제가 이토록 폭발적인 대중들의 분노를 일으켰을까? 그것이 생존과 직결되는 먹거리이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만약 이것이 단지 정부에서 주장하는대로 먹기 싫으면 안 먹으면 되는&#160;일이라면 그저 선택하면 될 일이다. 문제는 광우병의 경로가 단지 고기를 먹지 않는 것으로 피할 수 없을 정도로 아주&#160;광범위하게 걸쳐있고(알약, 조미료, 라면스프, 화장품 등등),&#160; 광우병 자체에 대한 연구 자체가 매우 부족하며,&#160;이 병의 치사율은 백프로로 알려져있고 예방약, 치료약 등도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다시 말해 이 문제에 대해 지금 침묵하면, 이제는 이명박이 말하는 소비자로서의 선택이 전혀 작용할 수 없는, 그야말로 속수무책으로 당할 상황이 온다.&#160;광우병 쇠고기를 수입한다면, 그걸 어떤 식으로든 먹을 수 밖에&#160;없다.&#160;그런데, 그래도 된다고 누가 결정했는가? &#160;누가 그 쇠고기를 수입해도 좋다고, 식량에 대한 통제권은 몇몇 관료들에게 있다고&#160;말하는가? 의문과, 더 나아가 분노는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된다. 주권을 가진 자는 누구인가? 누가 그것을 부여했고 행사하는가? 단적으로 말하면, 그것은 민주주의의 허구성에 대한 어떤 감각, 그리고 '더 많은 민주주의에' 대한 요구이다. 그걸 주제적으로 명료하게 의식하고 있든 그렇지 않든, 촛불집회에 나오는 사람들에게는 모두 이러한&#160;이데올로기들 속에 있다. 아마도 이는 그 자체로 하나의 이행 국면일 것이다. 모호하고 양가적인 상태. 더 나아갈 것인가 아니면 다시 뿔뿔이 흩어져 패배할 것인가?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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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서 어떻게 개입이 가능할까?&#160;&#160;무엇보다 위험한 것은 이른바 운동주체와 대중들의 확연한 분리일 것이다.&#160;그리고 문제는 대중들이 기존의 집회문화에 대해 갖는 거부감을 어떻게 넘어설 수 있는가이다. 그런데 실제 최근의 촛불집회에서는 스스로 급진성과 비판성을 지우려는&#160;시도들이 보인다고 한다. 구호를 외치고 노무현정권을 비판하고 '정치적' 구호를 외치는 운동이&#160;억제됨으로써 그 집회의 의미는 그야말로 촛불들고, 침묵하고, 문화제를 관람하는 행사로 축소된다. 운동주체들은 때로 경찰에서 고용한 알바로까지 몰린다고 한다.(폭력 선동,&#160;정치적 구호, 청와대로 나가자는 말을 일삼는 사람들)&#160;이들 소수세력이야말로 순진무구한 대중들을 조종하는 배후이고 폭력집단이고 친북좌익세력이다라는 식으로 분리가 되면, 저들의 공격은 쉬워진다.&#160;하지만 어차피 침묵 시위를 한다고, 발언과 구호를 억제하는 식으로&#160;한다고 해도&#160;경찰이 집회를 억압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이미 경찰은 헌법에 보장된 집회 결사의 자유를 부정하고, 사법처리로 협박하고, 심지어 고등학교에까지 &#160;찾아가 추태를 부리고 있지 않는가? 새롭게 등장한 자발적 대중들과 그러나 그 대중들을 획일적으로 선도하고 하는 것이 아닌 운동의 결합. 집회에 모인 사람들 하나하나가 이명박 정권을 조목조목 비판하고 식량주권, 인민주권을 주장한다면? 이른바 대중들과 운동주체들이&#160;구분될 수 없도록 융합된다면? 쇠고기 수입에 불만을 가진 대중들에게 정치적 언어를 돌려주고 주체화시키는 계기로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단순히 대중들의 단발성 모임을 넘어서&#160;그 열망을 실질적으로 견인하고 관철시킬 수 있는 구체적인 제도와 장치일 것이다. 몇몇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눠보았을 때, 현재의 광우병 정세에 개입하고 이들을 저항주체로 호명하기 위해서는 04년도 총선 때 이야기되었던&#160;국민발의권, 국민소환권&#160;운동이&#160;그 적절한 방식 중 하나일 수 있을 것 같다.&#160;탄핵이 아니라 국민소환, 국회의원이 아닌 국민들의 청문회. FTA에 대한 국민투표. 단순한 쇠고기 수입반대는 어쩌면 부차적이며, 오히려 문제는 현재 대통령만이 발의할 수 있는 국민투표에 대한 권리를 대중들에게 돌려주는 것이다.&#160;물론 이런 생각이 아직은 너무 추상적이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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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지말아야 하고 끝까지 알려나가야 할 것은, 이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 한미FTA의&#160;선결&#160;조건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이다.&#160;안타까운 것은, 이미 노무현 정부 때의 FTA 협상의 일환이&#160;광우병 쇠고기인데, 이 문제가 제대로 쟁점화가 되지 않는 현 상황이다. 지금&#160;촛불집회에서처럼 단순히&#160;안전한 소고기를 먹을 수 있는 조치나 굴욕적이지 않은 재협상을 요구하는데 그친다면 결국 아무 성과도 남기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이미 이전 정부에서 협상을 마무리한 야당은&#160;이명박 정부에&#160;쇠고기 협상을 빌미삼아 대중들의 분노를 정쟁의 수단으로 활용하고&#160;있는 실정이다.&#160;쇠고기는 수입하면 안되지만 FTA는 맞는 것 같다? 쇠고기 수입과 관련해 특별법 등을 제정해 보완해서 사태가 마무리된다고 해도 미국 기업에서는 FTA가&#160;보장하는&#160;투자자-국가&#160;제소와 같은 방식으로 대응할 수 있다. 또 FTA는 공공서비스 민영화를 가속화시킬 것이다. 물, 가스, 전기, 의료, 교육, 교통 등. 단순히 광우병에 대한&#160;우려와 분노,&#160;특별법&#160;제정을 요구하는 것을 넘어서 FTA 자체에 대한 반대로 급진화될 수 있도록&#160;그리고 그것을 또 넘어서는 권리에 대한 권리를 요구할 수 있도록 하는 문제에 현 정세의 사활이 걸려있는 것 같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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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마 가이드 코멘트 -->]]></description></item><item><author>바라</author><category>대장정</category><title>광우병 10문 10답</title><link>http://blog.aladin.co.kr/vara/2096342</link><pubDate>Sun, 18 May 2008 14:1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vara/2096342</guid><description><![CDATA[http://www.newscham.net/news/view.php?board=news&amp;nid=47667<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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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언론 참세상]<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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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의료단체들, 광우병 '정부괴담' 10문10답 발표<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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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2>"정작 정부가 비과학적 '괴담' 퍼뜨리고 있어" 조목조목 반박</h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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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삼권 기자&#160;quanny@jinbo.net / 2008년05월09일 14시51분<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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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에 결과에 대한 전국민적 저항이 확산되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광우병에 대한 전국민적 우려가 '괴담' 내지 특정 세력들에 의한 '선동'이라고 일축하고 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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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지난 7일 정부는 들끓고 있는 국민적 비판 여론과 관련해 "광우병에 대한 근거 없는 오해와 불안감이 증폭 되고 있다"며 '광우병 괴담 10문 10답'을 발표하기도 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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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등으로 구성된 보건의료단체연합과 수의사들로 구성된 국민건강을위한수의사연대가 정부의 주장을 조목조목 비판하는 '정부의 광우병 10문 10답에 대해 시민사회단체가 밝히는 진실'을 9일 발표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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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의료단체들은 "정부는 인터넷 괴담에 의해 대중이 선동된다고 한지만, 대중이 분노하는 것은 정부가 맺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위생조건이 국민건강을 지켜주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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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이어 "이러한 사실을 애써 무시하고 정부는 '광우병 괴담 10문 10답'을 내놓아 마치 국민들이 괴담에 휩쓸려 이명박 정부에 분노하는 것처럼 사실을 호도하고 있다"며 "정작 정부가 내놓은 광우병 10문 10답은 그 자체가 논리적이지도 않고 과학적이지도 못할 뿐더러 괴담을 퍼뜨리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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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발표한 '10문 10답'과 보건의료단체들이 발표한 '반박 10문 10답' 전문을 싣는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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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1: 소를 이용해 만드는 화장품, 생리대, 기저귀 등 600가지 제품을 사용해도 광우병에 전염된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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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주장: 감염사례가 없고, 과학적 근거도 전혀 없다. 정말 괴담이다. 의약품과 화장품에 사용되는 젤라틴이나 콜라겐은 소가죽 등을 이용해서 생산되는 데 여기에는 광우병 원인물질인 변형프리온이 없다. 동물의 질병과 위생에 관한 권위있는 국제기구인 국제수역사무국(OIE)에서도 이들 제품은 광우병을 옮길 우려가 없는 것으로 인정해 자유롭게 교역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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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체 반박: 생리대, 기저귀가 안전하다는 사실로 다른 모든 소 유래 제품이 안전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괴담이다. 또한 미국 식약청(FDA)은 광우병에 걸린 소나 광우병위험물질(SRM)로 만드는 화장품은 눈이나 피부상처를 통해 광우병을 전염시킬 수 있어 위험하다고 경고하고 있고 젤라틴도 광우병위험물질로부터는 생산을 금지하고 있다. 또한 광우병에 걸린 소나 소의 광우병 위험물질로부터 유래된 식품은 미량이라도 광우병 전염가능성이 있으므로 안전하지 못하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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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조: 식품, 화장품, 의약품, 사료 등을 관리하는 국내법에서도 인간광우병 안전대책의 일환으로 600여 가지의 개별품목에 대한 원료에 대한 규제를 하고 있다. 예를 들면, 화장품에 소의 태반 추출물이 들어가는데 작년에 대만에서 소의 태반 추출물로 만든 주사를 맞고 인간광우병 증상으로 사망한 여성이 있어 논란이 되기도 했다. 현재 한국은 소태반유래 의약품을 금지하고 있다. 소 유래 의약품, 화장품을 사용하면 곧바로 광우병이 걸리는 것은 아니지만 광우병으로 100% 안전한 것은 아니다. 한국은 의약품의 원료로 이미 북아일랜드 등에 대한 소에서부터 유래된 원료물질 수입을 금지했다. 이처럼 광우병 발생국가로부터 소 유래 원료에 대해서는 수입을 금지하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 식품의 경우는 0.001g의 광우병 위험물질이 감염력이 있다는 보고가 있으므로 안전하다고 결코 볼 수 없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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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2: 광우병 쇠고기를 다룬 칼과 도마에 의해 수돗물까지도 오염된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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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주장: 수입되는 미국산 쇠고기는 광우병특정위험물질(SRM)이 제거된 안전한 것으로, 칼과 도마는 물론 수돗물을 통해서 광우병은 전파될 수 없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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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체 반박: ‘칼과 도마로 광우병이 옮겨지지 않는다는 것’을 주장하는 것이 괴담이다. 또한 이를 세척한 물도 위험하다. 물론 수돗물에 의해 광우병이 옮는다는 것은 광우병이 수인성 질환이 아니기 때문에 근거가 희박하다. 정부의 전문가 검토 보고서에서도 나왔듯이 광우병을 전염시킬 수 있는 최소감염량은 0.001g이다.(웰스(Wells)박사의 연구 2007). 미국의 도축장에서도 30개월 이상의 도축할 때 쓰는 도구와 30개월 미만 도축도구를 별도로 사용하도록 하고 있다. 즉 칼과 도마로도 옮길 수 있다는 이야기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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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조: 수입되는 미국산 쇠고기는 SRM이 제거되었다는 정부주장은 미국의 도축장에서는 광우병 위험물질을 100% 제거하지 못하는 심각한 시스템상의 결함이 있다는 점을 간과하는 것이다. 정부는 작년에 우리나라에 수입된 미국산 쇠고기에서도 광우병 위험물질인 등뼈가 2차례가 적발되었고, 일본에서도 최근 광우병 위험물질인 등뼈가 적발되었다는 사실조차 무시하고 있다. 또 차라리 등뼈 같은 큰 물질이면 모르되 눈에 보이지 않는 광우병위험물질은 국내검역으로는 걸러낼 수도 없고 새로운 수입위생조건에 따르면 전수검사도 실시될 수 없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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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3: 미국사람들은 대부분 호주나 뉴질랜드 쇠고기를 먹는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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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주장: 미국에서 생산되는 쇠고기의 95% 정도는 미국 내에서 자체 소비되고 약 5% 정도가 수출된다. 미국은 호주나 뉴질랜드 등으로부터 쇠고기를 수입하고 있으나 이들 대부분 중저가 품질로 햄버거 등 가공식품에 사용된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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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체 반박: 미국에서 생산되는 쇠고기의 90%는 자국 내에서 소비되며, 10%만 수출된다. 하지만 미국에서도 광우병이 발생하지 않은 호주산이나 뉴질랜드산 쇠고기도 수입되고 있으며, 이들 쇠고기가 중저가 품질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미국 정부의 주장일 뿐이다. 미국사람들은 대부분 20개월 미만의 쇠고기만을 먹는다. 이 때문에 미국사람도 안 먹는 고기를 한국에 수출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것이다.(괴담 5,6 '단체 반박' 참조)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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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4: 한국인 95%가 광우병에 취약한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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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주장: 한국인이 유전적으로 광우병에 취약한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고 단정할 수 없으며, 특정한 유전자 하나가 인간이 광우병에 걸릴 가능성을 결정하지 않는다는 것이 과학적인 판단이다. 우리나라 사람의 M/M동일형 비율이 94.3%, 일본 93%와 비슷한 수준이지만, 이 결과를 가지고 반드시 M/M동일형이 인간광우병 위험성이 높다고는 말할 수 없다. 즉, 단일 유전자 하나가 전체질환의 발병을 좌우하지 않는다. 한국사람, 일본사람 등 동양인은 감수성이 비슷하다는 뜻이지만, 외부 관련 요인(SRM 등프리온이 많은 부분)이 통제되면 발병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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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체 반박: 이는 정부보고서에서 나온 학설로 미국정부에게 한국정부가 주장했던 학설이다. 이 주장이 담긴 논문을 펴낸 학자는 김용선 교수팀이다. 김용선 교수는 2007년 9월 12일(화) 정부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위생조건 개정 협의 대비 전문가 회의'에 외부전문가로 참여했다. 정부가 2007년 9월 21일 작성한 '제3차 전문가 회의자료'에도 "골수의 위험성과 뼈를 고아먹는 우리 의식문화와 인간광우병에 유전적으로 민감한 우리 민족의 유전적 특성을 고려할 때 (사골, 골반뼈, 꼬리뼈도) 수입금지"를 검토했다. 그런데 2008년 4월 쇠고기 졸속협상 이후 이 모든 내용을 괴담이라고 하고 있다. 이 주장이 괴담이라면 과연 괴담을 유포시킨 범인은 정부인가, 국민인가?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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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조 : 정부는 괴담을 유포시킨 사람을 전문가 회의에 참석시키고, 그 사람이 센터장으로 있는 한림대 CJD 진단센터에 수십억에 이르는 막대한 국고를 지원했다는 말인가?)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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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5: 미국에서 30개월 이상 된 쇠고기는 강아지, 고양이 사료로도 사용하지 않는다. <br />
괴담6: 미국인이 먹는 쇠고기와 우리나라에 수출하는 쇠고기는 다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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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주장(괴담5): 최근 인터넷에서 유포되고 있는 '30개월 이상 된 쇠고기는 강아지 등 반려동물의 사료로도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미국인들도 30개월 이상 된 쇠고기를 광우병 위험물질 제거 후 먹고 있다. 국제수역사무국에서도 미국과 같이 통제된 위험국가에서 생산된 30개월령 이상 쇠고기는 특정위험물질을 제거하는 경우 안전에 문제가 없다고 밝히고 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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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주장(괴담6): 미국인이 먹는 쇠고기와 우리가 수입하는 쇠고기는 같은 품질의 쇠고기이다. 재미교포 250만 명, 미국인 3억 명이 먹는 것과 똑같은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한다. 또한 미국인들에게 공급되는 쇠고기와 한국에 수입되는 쇠고기 모두 미국 내 도축이나 검사과정에서 엄격한 안전검사를 받게 된다. 한국으로 수입된 쇠고기는 국내에 들어올 때 통관과정에서 철저한 검역과정을 추가로 거치게 된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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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체 반박(괴담5,6): 농림부의 전문가 보고서에서도 미국 내 도축소의 90% 또는 97%는 20개월 미만이고, 현재 우리나라로 수출하는 대규모 도축장에서 도축하는 쇠고기의 99%가 30개월 미만이라고 보고하고 있다. 그렇다면, 미국사람들이 거의 먹지 않는 쇠고기를 한국 사람이 먹도록 수입위생조건을 체결한 셈이 된다. 이런 이유 때문에 미국사람들은 안전한 쇠고기를 먹고 한국 사람들은 위험한 쇠고기를 먹는다는 이야기가 떠돌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모두 정부가 30개월 이상까지 수입하기로 잘못된 협상을 한 때문이다. 또한 미국의 경우 2003년에 광우병 소가 발병하였고 광우병 잠복기는 평균 10년 길면 30-60년까지 걸리므로 2008년에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하지 않았다고 미국이 광우병 안전지대라고 말하는 것은 괴담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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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조 : 미국에서 주로 소비되는 쇠고기는 제일 좋은 PRIME 등급과 주로 가정에서 사먹는 CHOICE 등급, 그리고 SELECT 세 가지 등급이며, 국내에 수입되는 쇠고기는 싼 가격에 많은 이윤을 남기려는 수입업자들의 특성상 내수용으로 크게 선호되지 않고 있는 하위등급인 스탠다드급이 상당수 들어올 것이 예상된다. 게다가 거의 소비되지 않는다는 30개월 이상의 쇠고기까지 나이표시조차도 하지 않고 우리나라에 수입될 예정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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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7: 미국 내 치매환자가 약 500만 명인데 이중 25만~65만 명이 인간광우병으로 추정된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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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주장: 전혀 과학적 근거 없이 유포되는 낭설이며, 치매와 광우병은 증상이 달라서 병원의 진단과정에서 분명히 구분된다. 미국 버지니아주에서 보고된 인간광우병 의심사례의 경우 지난 5월 5일 미국 정부 당국자의 확인에 의하면, 예비조사 결과 인간 광우병이 아닌 것으로 판명됐다. 지난 1997년 이후 소에 대한 동물성 사료 급여 금지 조치 시행, 광우병(BSE)이 발생한 2003년 이후 SRM 제거 등 광우병 위험을 적절히 통제하고 있는 점 등을 고려할 때 현재 미국에서 생산되고 있는 쇠고기는 안전하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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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체 반박: 미국 내 숨겨진 치매로 진단된 인간광우병이 많다는 주장은 서울의대 김상윤 교수가 감수한 "얼굴없는 공포 광우병 그리고 숨겨진 치매"(고려원미디어)에서 주장하는 내용으로 정설이 아니다. 단 미국은 전 국민 의료보장체계가 없고 건강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람이 인구의 15%인 5,000만 명에 달하기 때문에 미국의 치매나 광우병 통계는 믿을 수 없는 통계라는 점은 분명하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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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정부는 이를 반박하면서 1997년의 미국의 사료조치를 안전하다고 했는데 이는 영국에서 교차오염으로 인한 감염을 막을 수 없어 18,000마리의 광우병소가 추가로 발병하여 폐기된 정책임에도 미국의 사료조치가 완벽한 것처럼 괴담을 퍼뜨리고 있다. 국제 전문가 패널, 국제수역사무국, 일본 정부에서도 미국의 이러한 사료정책이 광우병 교차오염을 막기에는 부족하다고 비판했으며, 심지어 우리 정부도국제수역사무국에 제출한 비공개 의견서를 통해 미국의 1997년 사료정책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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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이 정부는 2003년에 미국이 SRM 제거 사료정책을 했다고 이야기하고 있는데 미국은 2003년 입법예고만을 했을 뿐 SRM 제거 사료정책을 시행한바 없다. 2008년 4월 수입위생조건에서의 '강화된 사료정책'의 공표를 근거로 30개월 연령제한을 개방한바 있는데 그 강화된 사료정책이 바로 이 SRM 제거정책에서 후퇴하여 30개월 이상의 뇌와 척수만을 제거한 소를 돼지 닭의 사료로 주지 않겠다는 정책이다. 한국정부는 협상이 끝난 지금까지, 그리고 이러한 논란이 지속되는 지금까지 아직도 미국의 사료정책을 모른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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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8: 살코기만 먹어도 광우병에 걸린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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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주장: 살코기로는 광우병을 유발하는 변형 프리온이 전파되지 않는다. 인간광우병은 광우병에 걸린 소의 뇌, 척수 등 특정위험물질을 먹었을 때 걸리는 것으로 임상증상이 발현되지 않는 건강한 소의 살코기는 안전하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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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체 반박: 소가 나이를 먹으면 살코기에 있는 말초신경에서도 광우병 전달물질인 변형프리온이 발견된다는 논문이 한국 정부 보고서에서도 인용되었고 미국정부에게 주장되었다. 30개월 이상의 소에서는 살코기에서도 광우병전염 프리온이 발견되었다는 것이 과학적 정설이다. 즉 살코기는 무조건 안전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과학적이지 못한 괴담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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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조: 우리 정부는 2005년 국제수역사무국 총회에서 "살코기(골격근육), 혈액제품에 광우병 원인체가 오염되어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음에도 안전제품으로 분류하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의견을 일본 정부, 대만 정부와 함께 제시했다. 또한 이와마루 등의 학자들이 2005년에 발표한 논문에서는 소의 살코기의 말초 신경에서 변형프리온을 검출했다는 연구결과도 보고되었고, 나오코 이와타 등도 2006년에 "일본의 정상 도축 소에서 광우병 감염이 확인된 소 3마리의 조직 내 광우병 변형 프리온의 분포"라는 논문에서 소 살코기의 말초신경에서 변형프리온이 검출되었다는 연구결과를 보고하였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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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정부는 이러한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2006년 국제수역사무국에 공식 제출한 문서에서 "살코기도 안전하다고 볼 수 없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일본 정부는 이러한 보고서 내용을 홈페이지에 공개해 국민들에게 사실을 알리고 있다. 그러므로 살코기만 먹어도 광우병에 걸릴 가능성이 없다고 볼 수 없는 상황이다. 살코기에 존재하는 낮은 농도의 변형프리온이 인간에게 인간광우병을 전염시킬 수 있는 지에 관한 연구는 앞으로 더 연구되어야 할 과제 중의 하나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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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9: 프리온은 600도 이상의 고열에서도 파괴되지 않는 불사의 병원균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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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주장: 광우병의 원인으로 알려진 변형 프리온은 바이러스나 세균과 같은 병원균이 아니고 단백질이 변형된 것이다. 광우병에 걸린 소라도 변형 프리온은 특정위험물질 부위에만 존재하므로, 해당 부위를 제거하면 안전에 이상이 없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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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체 반박: 정부 주장은 두 가지 문장을 연결하여 써놓고 한 문장이 틀리다는 증거를 대면서 두 문장 다 틀렸다고 주장한다. 이는 전형적인 유언비어 만들기다. 프리온은 병원균은 아니라는 것이 정설이다 그러나 프리온의 전염성은 600도 이상의 고열에서도 파괴되지 않고 자외선, X-ray, 심지어 포르말린 처리를 해도 그 전염성이 없어지지 않고 한번 감염되면 치료방법이 없어 100% 사망한다. 또한 변형프리온은 특정위험물질부위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다른 부분에도 존재한다는 과학적 증거가 많이 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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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조 : 광우병의 원인체가 변형프리온 단백질인지, 바이러스인지에 대한 과학적 논란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광우병이나 인간광우병은 아직까지 과학적으로 원인체조차도 명확히 규명하지 못했으며, 예방약이나 치료약도 없다. 광우병에 감염된 동물이나 인간광우병에 감염된 사람은 100% 사망하게 되는 끔찍한 질병이다. 현재 광우병 원인체 중 유력한 가설로 인정받고 있는 변형프리온은 600도 이상의 고열에서도 파괴되지 않는다는 것이 과학적견해이다. 일부 연구에서는 1,000도 이상의 고열에서도 파괴되지 않는다는 보고도 있다. 또한 변형 프리온은 강력한 발암성독극물인 포르말린에 담아두어도 병원성이 사라지지 않고, 암세포를 죽일 수 있는 강한 자외선을 쏘여도 파괴되지 않는다. 죽은 소의 뇌에서도 2년간이나 감염력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땅 속에 파묻어도 최소한 2년간은 안심할 수 없다. 이것은 한국정부나 미국정부도 부인하지 못하는 과학적 사실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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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10: 키스만 해도 광우병이 전염된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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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주장: 전혀 근거 없다. 타액으로 전염이 되지 않는다. 광우병 원인체인 변형 프리온은 침으로 배출되지 않는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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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체 반박: 현재까지 연구결과는 인간 사이에 키스를 통한 인간광우병 전염은 되지 않는 것으로 밝혀져 있다. 그러나 사슴이 걸리는 광우병인 만성소모성질환(CWD)의 경우, 침을 통해서 전염이 이루어진다는 연구결과가 이미 보고되었다. 즉 사슴에서는 변형 프리온은 침으로 배출된다. 사슴의 광우병, 즉 광록병은 동물 접종 실험에서는 인간에게 전염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으나, 시험관 내의 실험에서는 광록병에 걸린 사슴의 변형 프리온 단백질이 인간의 정상적인 프리온 단백질을 변형 프리온 단백질로 바꾸는 것으로 밝혀져서 광록병에 걸린 사슴을 인간이 섭취하지 못하도록 사전예방원칙에 따른 예방조치가 취해졌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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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조 : 만일 사슴 광우병이 종간장벽을 뛰어넘어 인간에게 전염되게 되면 침으로 전염이 가능한 사슴의 변형 프리온이 인간에게 어떤 악영향을 미칠지는 현재로서는 예측하기 힘든 상황이다. 그리고 혈액을 통한 인간광우병 전염사례가 보고되어 현재는 의학계에서 혈액도 인간광우병 전염인자로 인정하고 있다는 사실도 지적해야 한다.) <br />
<!-- 투표하기/포토리뷰/밑줄긋기/마이리스트 --><!-- 투표 기간 -->]]></description></item><item><author>바라</author><category>대장정</category><title>광우병에 맞서 민중의 식량주권을(이슴산)</title><link>http://blog.aladin.co.kr/vara/2096334</link><pubDate>Sun, 18 May 2008 13:5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vara/2096334</guid><description><![CDATA[
    
        
            
            출처 : 월간 사회운동 07년 9월
            광우병에 맞서 민중의 식량주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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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슴산 | 회원
        
        
            
        
        <!-- 본문사진 --><!-- 본문사진 끝-->
        
            미국산 소고기 수입반대 투쟁이 계속되고 있다. 한․미 FTA 체결의 선결과제로 제시된 미국산 소고기 수입이 지난 4월에 재개되었으나, 검역조건에 맞지 않는 뼛조각과 척수가 계속 발견되고 있어 논란이 되고 있다. 한․미 FTA반대 운동은 미국산 소고기가 광우병의 위험이 높다는 사실을 이슈화하고 있다. 반면 정부는 미국산 소고기의 안전성을 장담하면서 국제수역사무국(OIE) 규정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형식 논리로 일관하고 있는데, 수입과 검역에 대한 무원칙한 대응으로 미국의 눈치 보기라는 비판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br />
            미국산 소고기 수입은 국민의 건강권과 농민의 생존권을 좌지우지하는 중요한 문제이다. 하지만 수입만 막으면 되는 것일까? 언제부터인가 먹거리에 대한 불안감은 높아지고, 농민의 삶은 사지로 내몰리고 있다. 광우병은 미국산 소고기 수입이나 한․미 FTA 외에도 많은 문제를 제기하기 때문에, 현안에 매몰되지 않고 다른 시각에서 문제를 바라보는 여유도 필요하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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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농축수산비상대책위원회는 24일 오전 긴급 기자회견을 갖고 '검역 해제'를 일방적으로 발표하는 농림부를 규탄했다.(출처: 참세상)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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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산 소고기만 문제인가?<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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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에서 광우병이 이슈화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00년 말에 광우병의 안전지대라고 생각한 독일, 이탈리아에서 광우병에 감염된 소가 발견되고 프랑스의 까르푸 등 대형유통매장에서 감염된 소고기의 유통 의혹이 번지면서 광우병 문제가 전 유럽을 휩쓸었다. 이때 광우병에 대한 우려가 한국에까지 확산되었다. 당시에 정부는 지금까지 국내에서 광우병이 발생한 적이 없고, 한국은 전통적으로 소의 부산물을 먹었으나 인간 광우병이 보고되지 않았기 때문에 광우병 청정지역이라고 주장했다. 또 정부는 광우병에 대한 공포를 감정적인 것으로 치부하고, 언론과 광고를 통해 국민을 계몽하면 문제가 사라질 것처럼 행동했다. 정말 미국산 소고기 수입을 막으면 국내에서 광우병의 위험은 사라지는 것일까?<br />
            2000년 이후 광우병에 대한 한국 정부의 대응을 살펴보면 국산 소고기도 결코 안전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정부는 2000년 12월과 2001년 1월에 각각 육골분 사료와 남은 음식물 사료를 소, 양과 같은 반추동물에게 먹이는 행위를 금지했다. 영국은 1988년, 미국은 1998년부터 이런 조치를 취했던 것에 비하면 상당히 늦은 것이다. 또 유럽과 일본에서는 모든 동물에게 동물성 사료의 사용을 금지하고 있지만 한국은 반추동물에게 반추동물1)로 만든 동물성 사료를 먹이는 것만 금지하고 있어서 미국과 마찬가지로 교차 오염2)의 위험이 높다. <br />
            국내에는 250만 두 가량의 소가 있는데 2006년에 그 중 6,016 두에 대해서 광우병 검사를 했다. 이를 비율로 따지면 0.24%이다. 전수 검사를 시행하는 일본에는 비교가 되지 않지만 0.1%를 검사하는 미국보다는 나은 것일까? 문제는 검사한 소의 90% 이상이 정상 도축된 건강한 소라는데 있다. 축산 농가들이 의심이 가는 소나 폐사 한 소에 대한 신고를 꺼리기 때문에 건강한 소를 대상으로 광우병 검사를 한 것이다. 정부는 광우병 검사를 실질화 하기 위한 계획 대신에 폐사 한 소를 신고하면 30만원을 준다는 사탕발림 정책을 내놓고 있다.<br />
            실정이 이러하다 보니 정부도 광우병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농림부는 작년에 국제수역사무국에 광우병 등급 신청을 하려다가 신청 직전에 포기하였다. 등급판정을 신청했다가 미국과 같은 2등급(광우병 위험 통제국가)을 받을 경우를 우려한 것이다. 한국의 광우병 위험 수준이 미국과 같은 정도라면 미국산 소고기 수입을 부분적으로나마 제한할 근거를 찾기 어려워 협상에 치명적이었다. 국제수역사무국은 2005년 5월에 등급 판정 기준 중의 하나를 '광우병 검사 마리 수'에서 '광우병 고위험 군에 대한 검사이냐, 정상 도축소에 대한 검사이냐'로 변경했다. 한국과 같은 광우병 관리체계가 좋은 점수를 받기 어려워진 것이다.<br />
            광우병에 걸린 소고기를 인간이 먹었을 때 걸리는 변형 크로이츠펠트 야콥병(인간광우병)이 국내에서 발병했을 가능성도 있다. 국내에는 연간 26명 정도의 산발성 크로이츠펠트 환자가 발생하고 있다. 이 병은 알 수 없는 이유로 100만 명 당 0.5~1명에게 발병하는데 인간광우병과 증상이 유사하여 정확한 진단을 위해서는 부검과 조직검사를 해야 한다. 그 동안 국내에는 전문 부검시설이 없고 유족들이 부검을 반대해 정확한 진단을 할 수가 없었다. 대표적으로 2001년 인간광우병으로 의심이 가는 젊은 환자가 있었지만 부검을 못해서 정확히 진단을 할 수 없었다. 산발성 크로이츠펠트 야콥병은 대부분 50대 이상에서 발생하지만, 변형 크로이츠펠트 야콥병은 환자의 평균 연령이 27세로 젊은 나이에 발생한다. 전문가들도 자인하는 것처럼 한국은 광우병의 안전지대가 아닌 것이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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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광우병은 하나의 현상일 뿐!<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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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황이 이러한데 왜 미국산 소고기 수입만 문제가 됐을까? 우리는 미국산 소고기 수입이 이슈화되고 광우병에 대한 공포가 대중적으로 확산된 과정을 다시 생각해보아야 한다. 사회적 이슈가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대중의 투쟁과 담론의 구성으로 만들어지는 것처럼 '위험'과 '공포'도 사회적으로 형성되고 인지된다. 미국산 소고기 문제가 불거지기 전에도 광우병 위험 요인이 국내에 풍부하게 존재했지만 그것이 사회적인 문제로 제기되고 유통되지 않은 것이다.<br />
            광우병은 대중이 위험을 인지할 수 있는 선정적인 요인을 많이 가지고 있어서 그동안 언론과 운동의 좋은 소재가 되었다. 한․미 FTA 반대 운동도 광우병의 위험을 강조하는 전략을 지속적으로 채택해왔다. 광우병은 초식동물에게 육식을 강제한, 자연 생태계에서는 결코 발생하지 않는 일이 원인이라는 점에서 현대문명(또는 자본주의)의 괴기스러움을 생각하게 한다. 특히 소가 소를 먹는 동종식육은 식인 행위와 유비되어 "문명세계와 문명인"의 공포를 가중시킨다. 파푸아뉴기니에서 식인풍습으로 발생한 쿠루병, 양의 스크래피, 밍크 뇌종 등과 광우병(소해면상뇌증)의 원인과 증상이 유사하기 때문에 광우병에 대한 공포는 과학의 지지를 받는다. 광우병이 인간에게 전염된다는 유력한 근거가 있고, 인간광우병에 걸리면 인간이 "미친소"와 유사한 증상으로 죽기 때문에 공포는 배가된다(고상하게 죽을 수도 없다!). 또 누구나 먹는 소고기를 통해 무차별적으로 전염되고, 병의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고, 치료제도 없고, 치사율이 100%다. 더군다나 잠복기가 길어서 10년 전에 먹은 소고기 때문에 내일 내가 죽을 수도 있다니.<br />
            광우병과 인간광우병에 대한 공포는 그 문제가 충분히 숙고되었고, 실제로 20여 년에 걸쳐 영국 등지에서 발생한 일련의 사건과 관련된 것이기 때문에 합리적이다. 하지만 인간광우병에 감염된 여러 사례에서 보듯이 '더 안전한 소고기'를 먹거나 채식을 하는 것이 대안이 아니라는 것도 분명하다. 광우병은 세계적 식량체계에서 생산된 먹거리가 가지는 문제를 보여주는 한 사례로, 세계적 식량체계의 결과로 이해할 수 있다. 다른 문제와 마찬가지로 광우병 문제를 해결하려면 원인을 제거해야하고, 그러기 위해서 먼저 원인을 제대로 인식해야한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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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축산의 역사와 광우병<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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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것처럼 광우병은 소에게 스크래피에 감염된 양 또는 광우병에 걸린 소의 육골분 사료를 먹인 데서 비롯되었다. 1980년대부터 목축업자들은 상대적으로 비싼 곡물사료를 절약해서 이윤을 보장받기 위해 소에게 육골분 사료를 먹였다. 광우병 발생의 구조를 이해하기 위해서 이 과정을 조금 더 긴 역사적 관점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br />
            광우병과 같은 최근의 전세계적 식품 파동은 20세기에 녹색혁명을 통해 정착된 산업화된 농업과 세계화된 식품생산 및 유통체계에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드러내고 있다. 특히 광우병은 산업화, 공장화된 자본주의 축산의 문제점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20세기 초부터 미국에서 진행된 녹색혁명과 백색혁명(축산에서의 생산성 혁명을 일컫는 말)은 생산성의 측면에서 비약적인 성장을 가능케 했다. 이 미국식 농업․축산 체계가 하나의 모델로 전세계에 확장되었기 때문에 광우병 발생의 구조를 미국 축산의 역사를 통해서 살펴볼 수 있다.<br />
            미국은 농약과 비료를 다량 투입하여 하나의 특화된 작물을 생산하는 단작으로 곡물 생산의 혁명적 증가를 이루어냈다. 트랙터, 탈곡기 등 석유로 작동하는 농업기계를 사용하고 제초제, 살충제, 질소비료 등 화학투입물을 이용하여 자연의 생산력을 자본의 생산력으로 변화시킨 것이다. 하지만 생태적으로는 그동안 한 덩어리로 이루어져 오던 농업, 임업, 축산 사이의 순환성과 연결성이 파괴되었다. 수천 년 동안 유지되어 오던 농산물의 다양성이 불과 몇 개의 작물로 획일화(단작)되면서 농약으로 인한 토양 및 수질오염, 토양 비옥도 저하, 생물 다양성 훼손, 수자원 고갈, 병해충 창궐과 같은 각종 생태적 문제가 야기되었다. 축산도 이제 가축을 가두어 놓고 필요한 사료, 영양제, 항생제를 투입하는 시스템으로 완전히 변모하였다. 예전처럼 집 마당이나 목초지에 소, 돼지, 닭, 염소 몇 마리를 키우던 목가적인 풍경은 사라진지 오래되었고, 공장이나 다름없는 축사에서 움직일 틈도 주지 않고 사육하는 체제로 바뀐 것이다.<br />
            미국은 대공황으로부터 농민을 보호하기 위해 1935년 '농업 조정법'을 개정하여 농산물 수입을 제한하고 국내 농산물 가격을 국제가격보다 높게 지지했다. 농가보호와 녹색혁명의 성공으로 잉여 농산물이 증가했는데 이를 1950년대에는 원조 물자로 해외에 처분했다. 처음에는 무상 원조로 시작했다가 나중에는 상업 가격으로 유통시킨 원조 정책으로 카길 같은 거대 곡물상이 부를 축적하고, 전세계에 미국식 농업관행과 식문화가 이식되었다. 대공황과 녹색혁명은 미국 축산업에도 영향을 미쳤다. 대공황으로 곡물가격이 떨어지자 미국 축산업자들은 저렴한 곡물을 가축에게 먹이기 시작했다. 1950년대 이후에는 값싼 잉여 농산물이 본격적으로 동물의 사료로 전환되었다.<br />
            한편 1950년대 말부터 비육장이 성업하는데 비육장은 점차 교외로 이전한 도축장과 통합되었다. 20세기 전반까지 미국에는 도축장이 도시의 중심에 위치했다. 하지만 도축장에서 발생하는 악취로 환경개선의 요구가 높았고 강력한 정육노조를 무력화하고 값싼 이주노동력을 사용하기 위해서 도축장을 교외로 이전한다. 교외에서는 도축장과 비육장을 지리적으로 결합할 수 있었다. 또 도축장은 정육장과 구분이 불가능해지는데 냉장과 포장 기술의 발전으로 도축한 소를 그 자리에서 부위별로 자르고 포장해서 출하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도축장과 이웃하고 있는 비육장은 도축되기 전에 소의 몸집을 불리는 곳이다. 이곳에서 수소는 보통 3~5개월 동안 집중적으로 1400kg 정도의 곡물사료를 먹고 호르몬제, 항생제를 맞으면서 180kg 가량을 찌운다. 이렇게 되어 1960년대에 비육-도축-정육이 결합된 미국식 축산의 골격이 잡히게 되었다. 송아지를 키우는 전통적인 목축업자의 일과 정육한 소고기를 판매하는 소매업 등 나머지 부문은 1970년대 이후에 통합되기 시작한다.<br />
            1970년대 초에 미국정부는 국제수지 적자를 타개하기 위해서 농산물 수출을 추진했다. '1973년 농업법'으로 잉여농산물과 가격을 통제하기 위한 생산 제한을 해제하고 수출을 장려했다. 잉여 농산물 정책 변화로 미국이 세계농업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하자 유럽과 미국 간의 시장 쟁탈전이 과열되었다. 이 과정에서 초국적 농기업은 제3 세계 농업 시장 진출을 가속화하고, 수직적 통합으로 농자재 산업과 영농, 유통, 가공, 판매를 장악한다.<br />
            현재 미국의 4대 정육업체인 콘아그라, IBP(타이슨 푸드), 엑셀(카길), 내셔널 비프는 미국 소의 84%를 도살한다. 또 이들은 비육장 운영이나 선계약과 입도선매 방식의 종속적 공급으로 미국에서 사육되는 소의 20%를 관리하고 있다. 카길은 세계 최대의 사료 업체이기도 하다. 농업자금 대출 부문도 초국적 농기업에 통합되고 있는데 농업자금을 대출받기 위해서 농민은 그 기업이 제공하는 송아지와 사료 구입을 약속해야 한다. 목축업자도 농민처럼 초국적 농기업의 자본축적 과정에서 위험성 높은 한두 부문을 떠맡는 일종의 도급 노동자가 되어가고 있다. 이러한 수직적 통합과 독과점으로 자영 목축업자는 소의 가격을 낮추어 팔 수밖에 없어서 수익과 생존에 압박을 받았다. 광우병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던 육골분 사료가 1980년대 초부터 확산된 데에는 이러한 배경이 있다. <br />
            한편 육골분 사료를 생산하는 것은 랜더링 산업(rendering industry)이다. 미국에서 가축의 40%는 고기로 소비되지만 뼈, 머리, 내장, 피 등 나머지 60%는 버려진다. 이것을 재가공하여 동물성 지방과 사료를 생산하는 것을 고상한 용어로 랜더링(우리말로 옮기면 동물부산물가공?)이라고 한다. 랜더링 산업의 원료로는 도축장에서 나오는 가축의 부산물 외에도 소매점, 식당 등에서 버려지는 고기 부산물, 폐기름, 남은 음식물 등이 사용된다. 규제가 강화되기 전에는 병들거나 죽은 가축, 애완동물의 사체 등도 널리 사용되었다. 미국에서 연간 2,000만 톤 정도 발생하는 동물 부산물은 생태적 순환에서 괴리된 대량 육식 문화의 이면이다.<br />
            동물 부산물을 가공하여 유용한 물건을 만든다는 의미의 랜더링 산업은 역사 이전부터 있었지만, 근대적인 랜더링 산업은 19세기 말에 성립되었다. 원래 랜더링 산업의 주요 생산물은 비누제조의 원료로 사용되는 동물성 지방이었다. 1950년에 미국 랜더링 산업은 50만 톤의 동물성 지방을 비누 제조업에 공급했다. 하지만 비누의 원료가 화학 합성물로 대체되면서 동물성 지방의 수요가 급감한다. 랜더링 산업은 새로운 수요를 개척해야했고 이것이 동물성 사료의 개발로 이어졌다. 현재 랜더링 산업에서 동물성 사료의 비중은 생산량 기준으로 약 55%로 530만 톤 가량의 동물성 사료가 매년 생산되고 있다. 만약 미국에서 동물성 사료가 전면 금지된다면 랜더링 산업에게는 큰 재앙일 것이다. 한편 랜더링 과정도 독립적인 사업에서 도축장 옆에 설치된 초국적 농기업의 한 공정으로 대체되는 추세이다. 미국이 동물성 사료를 계속 허용하는 데는 랜더링 산업과 초국적 농기업의 압력이 작용했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br />
            <br />
            대안을 세계화하고 지역화하기 위하여<br />
            <br />
            미국산 소고기 수입을 막는다고 해도 광우병을 낳은 공업적 축산과 초국적 자본이 장악한 세계적 식량체계는 지속될 것이다. 설사 광우병이 사라진다고 해도 조류독감과 같은 새로운 문제가 계속 발생한다. 이번에는 그 장소가 영국이나 미국과 같은 고소득 국가가 아니라 제3 세계나 한국일 수도 있다. 생태적 질병의 형태로 나타나는 농업과 생태의 위기를 치료할 근본적인 대안을 찾지 못하면 광우병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것이다. <br />
            그렇다면 무엇이 대안이 될 수 있을까? 한․미 FTA와 미국산 소고기 수입에 대한 정부의 대안은 한우의 질과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것이다. 그것이 성공하여 유기농 축산까지 가능할지도 모른다. 어떤 사람들은 유기농을, 어떤 사람들은 채식을 선택할 것이다. 하지만 지불하는 돈에 따라 권리가 보장되는 사회에서 그럴 수 없는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동물성 사료로 기른 수입 소고기를 먹고 호르몬이 듬뿍 쳐진 우유를 마실 것이다. 선택할 수 있는 상품의 목록을 늘리는 것은 우리의 대안이 될 수 없다.<br />
            세계를 움직이는 현실적인 힘(신자유주의 세계화)이 생태적 순환을 파괴하는 방향으로 작동하고 있기 때문에 어떤 󰡐생태적 이상 사회󰡑를 상상하거나 실험하는 것을 대안으로 내세울 수도 없다. 농업시장이 전세계적으로 통합되고 있는 상황에서 농업에 대한 민족적 통제를 주장하는 것도 불가능해졌다. 시장개방 반대를 요구하는 것은 위기를 지연시킬 수 있지만 위기가 발생하는 구조는 변화시키지 않는다. 한국도 녹색혁명, 백색혁명을 거치면서 석유와 화학합성물을 고투입하는 농업이 일반화되어 있다.<br />
            광우병과 같은 농업위기, 생태위기에 대한 대안은 초민족 자본에 의해 지배되고 있는 세계적 식량체계를 변혁하는 것이다. 그 방법은 '자본의 세계화'에 '민중의 세계화'로 맞서는 것뿐이다. 최근 남미의 비아 캄페시아(Via Campesina)나, 무토지 농민운동(MST) 등 주변부를 중심으로 초민족 자본의 지배에 저항하는 농민운동이 확산되고 있다. 올해 2월에는 말리 셀링게에서 비아 캄페시나를 비롯한 여러 사회운동 단체들이 '식량주권포럼'을 열고 식량을 위한 국제회의 선언문3)을 채택했다. <br />
            대안세계화 농민운동의 이념으로 제시되고 있는 식량주권은 흔히 오해하는 것처럼 농업에 대한 민족적 통제를 재확립하자는 요구가 아니다. 닐레니 선언은 식량주권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br />
            <br />
            "식량주권은 생태적으로 건전하고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생산된 안전하고, 문화적으로 적합한 식량에 대한 민중들의 권리이며, 또한 민중들이 그들의 고유한 식량과 농업 생산 체계를 결정할 수 있는 권리이다. 식량주권은 식량체계와 정책의 중심을 시장과 기업의 요구가 아니라 생산과 공급, 소비를 하는 사람들을 최우선으로 하며 동시에 다음 세대를 위한 것이다. 식량주권은 현재 초국적 기업이 주도하고 있는 식량체계에 맞서 지역적 생산자들을 중심에 둔 식량, 농업, 소목축업, 어업 체계의 방향과 전략을 제시한다. 식량주권은 지역, 국민경제와 시장을 우선시하고, 독립적인 농민, 어민, 목축인과 환경적․사회적․경제적 지속가능성에 기초한 식량생산, 공급, 소비에 권한을 부여한다. 식량주권은 모든 민중에게 공정한 수입을 보증 할 수 있는 투명한 무역과 소비자가 식량과 영양물을 관리 할 수 있는 권리를 증진시킨다. 식량주권은 우리의 토지, 영토, 물, 종자, 가축, 생물의 다양성을 사용하고 관리하는 권리가 식량 생산자에게 있다는 점을 보증한다. 식량주권은 남녀, 민중, 인종, 사회계급, 세대 사이에 불평등과 억압이 없는 새로운 사회관계를 의미한다."<br />
            <br />
            식량주권은 생물 다양성을 존중하고, 영농 지식과 토지에 대한 농민의 권리를 옹호한다. 또 생태적인 영농과 농민의 경제적 자립을 추구하고, 여성농민의 권리를 옹호한다. 지역적인 먹거리 생산과 소비도 강조하는데 이를 통해 농민뿐 아니라 모든 민중에게 안전한 먹거리를 보장한다.<br />
            광우병을 발생시키는 신자유주의 농업체계를 변혁하고, 미국식 금융세계화를 전면적으로 이식하는 한․미 FTA에 맞서기 위해서 우리는 식량주권의 이념을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실천전략을 마련해야한다. 이것은 수입반대나 정책대안 제시로 환원되지 않는 것으로 차라리 새로운 농민운동, 생태환경운동을 만드는 문제이다. 새로운 운동의 형성, 다른 말로 운동의 혁신은 농업․생태 위기를 방기한 여타 사회운동과 농민운동, 생태환경운동의 반성에서 시작할 수밖에 없다.<br />
            <br />
            <br />
            1) 되새김동물. 위가 4~5개의 방으로 나뉘어져 있고 각 위를 이용하여 먹이를 소화한다. 소과, 사슴과, 낙타과, 기린과 등의 많은 초식동물이 포함된다. 본문으로<br />
            <br />
            2)<br />
            미국과 한국에서는 반추동물에게 반추동물로 만든 육골분 사료를 사용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을 뿐 돼지, 닭의 내장과 뼈, 고기로 만든 사료는 여전히 허용하고 있다. 또 돼지와 닭에게 반추동물의 육골분 사료를 먹이는 것을 허용하고 있다. 교차오염은 우선 반추동물로 만든 육골분 사료를 반추동물에게 먹이는 경우에 발생한다. 법적으로는 금지되어 있으나 쉽게 구할 수 있고 값싼 돼지, 닭의 사료를 소의 사료로 사용할 수 있고, 사료 생산과정이나 축산과정에서 반추동물 육골분 사료가 다른 사료에 미량이라도 섞일 수 있기 때문이다. 또 교차오염은 광우병과 유사한 질병에 걸린 가축(이 가축은 광우병에 감염된 소의 육골분 사료를 먹었을 것이다)을 사료로 만들어 소에게 먹일 경우에 발생할 수 있다. 영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한 원인이 스크래피에 걸린 양의 육골분 사료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한다. 국제수역사무국 과학위원회도 "미국 정부가 광우병 감염 가능성이 있는 원료를 동물용 사료로 이용하는 한 교차오염의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한바 있다. 미국뿐 아니라 동물성 사료를 허용하는 국가는 모두 교차오염의 위험이 있다.본문으로<br />
            <br />
            3)<br />
            닐레니(Nyeleni) 선언, 번역 전문은 사회진보연대 자료실 1039번 참고.본문으로<br />
            
        
    
]]></description></item><item><author>바라</author><category>대장정</category><title>스머프의 웃고 울었던 삼백일의 기록</title><link>http://blog.aladin.co.kr/vara/2070242</link><pubDate>Wed, 30 Apr 2008 02:2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vara/2070242</guid><description><![CDATA[<br />
참세상 펌. 내일 430 문화제는 상암에서 열린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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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1>&#160;</h1>
<h1>스머프의 웃고 울었던 삼백일의 기</h1>
<h1>&#160;</h1>
<h1>록</h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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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2>뜨거웠던 이랜드 집회 일곱 시간 참관기</h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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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도엽(작가)&#160; / 2008년04월21일 4시38분<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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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주&gt; 이 글은 이랜드 삼백일 문화제에서 낭송된 황선영 조합원의 편지를 글쓴이가 재구성하여 쓴 집회 참관기입니다. 따옴표의 인용문을 제외하고는 황선영 조합원과 관련 없음을 밝힙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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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선영 씨는 하늘색 반팔 티셔츠를 서랍장 깊숙한 곳에서 꺼냈다. 봄인가 싶으면 여름이다. 아직 4월인데, 봄 햇살이 아니라 따가운 햇볕이다. 오늘은 &lt;이랜드 투쟁 승리를 위한 300일 결의대회 및 문화제&gt;가 있는 날이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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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선영 씨는 4월 19일에 굵은 동그라미를 그려두었다. 홈에버 월드컵점에 가는 날이다. 일을 하러 가지 않는다. 물론 쇼핑은 더더구나 아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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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선영 씨는 애칭으로 ‘스머프 티’라고 부르는 반팔 티셔츠를 입었다. 스머프 티는 이랜드 투쟁의 상징이다. 홈에버 노동자들이 자신의 일터에서 무자비하게 끌려갈 때 입은 스머프 티. 꺼내는 순간 지난 300일이 눈시울을 젖게 한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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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여름 이 푸른 스머프 티를 벗어놓을 때만 해도 다시 입게 되리라고는 꿈에도 몰랐습니다. 오늘 서랍장을 뒤져 다시 꺼내 입는다는 것이 너무도 고통스럽고 두렵습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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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3시, 지하철 6호선 월드컵경기장역 1번 출구 앞. 학생들과 노동자들이 모여 이랜드 승리를 염원하는 집회가 한창이다. 스머프 티를 입은 황선영 씨는 따가운 햇볕을 모자를 깊숙이 눌러쓰고 가렸다. 힘찬 팔뚝질을 하며 ‘비정규직 철폐가’를 부른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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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설기만 했던 투쟁가, 그리고 어색하기만 했던 팔뚝질. 이제는 거리낌 없다. 이제 팔뚝질로 눈물을 물리치고, 투쟁가로 힘을 얻는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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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0;&#160;이꽃맘 기자 <!-- [출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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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00일 동안 용역경비가 폭력을 휘두를 때 방패막이 되어주었고, 경찰이 쏜 물대포에 맞아 휘청거릴 때 버팀목이 되어주었던 이들이 조합원을 감싸고 자리를 채워주고 있다. 황선영 씨는 이들을 ‘동지’라고 부른다. 자신보다 나이어린 학생에게도, 흰머리가 가득한 늙은 택시노동자에게도 ‘동지’라고 부른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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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혹의 나이가 훌쩍 넘도록 황선영 씨는 동지라는 말이 자신의 입에서 써야하는 말이라고는 떠올려본 적도 없다. 스스럼없이 입에서 나올 때 황선영 씨도 뜨끔해진다. 그리고 가슴이 설렌다. 마치 ‘사랑’이라는 말처럼 열여덟 처녀로 돌아가 가슴이 울렁인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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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시 30분. 사회자가 자리에서 일어나라고 한다. 우리의 일터인 매장에 들어가자고 한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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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합원이 일터에 들어가는 것은 정당한 일입니다. 고객에 피해를 절대 주지 않겠습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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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미 매장은 경찰차 수십대로 꽁꽁 막혀있습니다. 고객들이 미로 찾기를 하듯 매장에 들어가던 일부 통로마저 조합원들이 다가서자 방패로 가로 막습니다. 구호도 노래도 외치지 않고, 그저 삼삼오오 걸어갔는데. 누군가 ‘우리도 고객이다’고 외칩니다. 분에 겨워 나이든 조합원이 ‘우리 다 포기해 버렸다. 이제 잡아가라’며 울부짖습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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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0;&#160;이꽃맘 기자 <!-- [출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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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백 날이 흘렀는데 어찌 마음의 갈등이 없었겠는가. 황선영 씨도 포기하고 싶었던 날이 있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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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농성으로 바쁜 날이었다. 큰아이가 문자를 보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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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뎌 전기가 끈어졌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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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회가 끝나고 회의가 밤늦게까지 이어지도록 황선영 씨는 아이에게 문자의 답을 해주지 못했다. 전기가 끊겼다는데 무슨 답을 할 수 있단 말인가.<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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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정이 다 되어 집 현관문을 열고 들어섰다. 집은 사라지고 없다. 어둠, 칠흑 같은 어둠뿐이다. 저 멀리 희미한 불꽃이 출렁인다. 발끝으로 바닥을 더듬으며 불꽃을 찾아 조심히 발걸음을 옮겼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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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아이의 뒷모습이다. 촛불을 켜놓고 무엇인가를 열심히 적고 있다. 황선영 씨는 아이를 부르지 못했다. 인기척을 느꼈을 아이도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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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황선영 씨는 밤새 베개를 적시며 새벽을 맞이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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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 나와 우리 가족이 처해 있는 전기마저 끊긴 이 참혹한 현실 속에서 지금의 선택이 과연 옳은가. 지금 당장 먹을거리가 없고 기본적인 삶도 살지 못하는데……. 이런 가족들의 고통을 뒤로 하고 길바닥에 앉아 투쟁만을 외치는 내 모습이……, 진정, 진정 우리 아이들의 엄마의 모습인가.”<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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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십 분 넘게 일터를 들어가게 해달라고 울부짖었지만 경찰의 방패는 꿈적하지 않는다. 경찰 뒤쪽에는 흰 와이셔츠를 입은 용역경비들이 헤죽헤죽 웃으며 바라보고 있다. 황선영 씨는 흰 와이셔츠만 봐도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이 되었다. 저 흰 빛깔에 지난 삼백 날 동안 당한 고통을 생각하면 미치지 않고 살아있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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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경찰에 막힌 조합원들과 황선영 씨가 동지라고 부르는 학생과 노동자들은 다시 집회장으로 돌아왔다. 6시부터 있을 문화제를 위해 저녁도 먹고 잠시 쉬기 위해서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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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회 신고를 받은 장소에서 합법적인 집회를 하고 있는데 경찰과 이랜드 자본은 끊임없이 집회에 참가한 이들의 얼굴을 기다란 망원렌즈가 달린 사진기로 찍고 있다. 공포감을 주어 집회를 방해하려는 행위에 조합원들이 항의를 하였다. 하지만 아랑곳도하지 않는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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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욱 이랜드일반노조위원장이 갑자기 마이크를 잡았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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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히 문화제를 시작하려 했는데, 안되겠습니다. 합법 집회를 방해하는 행위에 일침을 놓읍시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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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합원을 다시 일어서게 합니다. 김경욱 위원장이 달리기 시작하니 집회 참가자도 함께 뜁니다. 영화관이 있는 출입문을 통하여 2층 홈에버 입구로 달려갔다. 매장에 대기하고 있던 경찰들이 허겁지겁 막아섰다. 조합원들은 죽을힘을 쓰며 일터로 들어가려고 경찰의 방패에 몸을 던집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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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수라장이 되고 드디어 매장 안으로 열 걸음을 들어갔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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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0;&#160;19일, 이랜드 노동자들은 매장으로 들어가려고 했지만 경찰의 봉쇄로 들어가지 못했다./이꽃맘 기자 <!-- [출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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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선영 씨는 동료들의 사이에 끼여 숨을 쉬지 못할 지경이다. 하지만 숨이 멈춘다 해도 저 방패너머 일터로 들어가야 한다. 작은아이의 급식비를 위해서라도.<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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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이다. 작은아이가 황선영 씨의 전화기에 문자를 남겼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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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식비를 못 내서 점심 못 먹으면 운동장 수돗가 물이나 먹지 뭐.’<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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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 급식비를 달라는 말보다 몇 십 배의 고통으로 황선영 씨의 가슴을 짓눌렀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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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덩이가 자신을 향해 소나기 붓듯 쏟아져 온몸을 때리는 것 같았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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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문자를 보내려 마음먹고 한자 한자 찍어 내려갔을 때 작은 아이의 마음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생각만 해도 가슴이 무너졌습니다. 삼백일 간 나름 강한 결의로 싸워왔지만 그 순간들만큼은 의지만으로 극복하기가 참 어려웠습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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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걸음을 매장 안으로 밀고 들어갔지만 조합원 앞뒤로 경찰병력이 숱하게 밀려들어왔다. 결국 철수를 했다. 당장 경찰과 부딪치는 것이 목적은 아니었기 때문이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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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회장으로 돌아왔다. 이제 문화제 시작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매장 진입 싸움을 하고 온 터라 황선영 씨의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난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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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백일 동안 질리게 먹어온 김밥 한 줄이 오늘 저녁밥이라고 황선영 씨는 생각했다. 그런데 이게 뭔 일인가. 오늘만은 뜨뜻한 국밥을 준비했다고 한다. 사회자가 예상보다 많은 분들이 와서 부족할지 모르겠다는 말을 남긴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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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수록 집회장의 사람들이 많아졌다. 이백 명이 조금 넘었던 사람들이 이제는 오백에 가까워졌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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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0;&#160;이꽃맘 기자 <!-- [출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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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족할지 모른다는 말에 이랜드 조합원들은 연대온 사람들이 식사를 다 할 때까지 기다렸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국밥을 한 손에 들고 집회장 곳곳에 흩어져 앉아 숟가락을 바쁘게 움직인다. 돼지고기를 넣은 김치국밥이다. 먹는 것을 보니 황선영 씨의 뱃속에서 더욱 요란한 신호를 보낸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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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이랜드 조합원들이 밥을 주는 곳에 갔을 때는 국밥은 다 떨어졌다. 사발면에 밥 반 주걱을 담아서 내준다. 국밥에 대한 미련이 사무친다. 그래도 맛있다. 사발면에 흰 쌀밥이 담긴 게 어딘가, 황선영 씨는 게 눈 감추듯 비운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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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제는 그야말로 감동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사람들이 밀물처럼 밀려든다. 앉을 자리가 없어 집회장 밖에, 지하철 입구 계단에 서있는 사람도 무지 많다. 보통 집회가 길어지고 밤이 늦어지면 곳곳에 빈자리가 듬성듬성 생기기 마련인데 오늘은 정반대다. 황선영 씨는 그간의 고통이 싹 가시고 힘이 부쩍 솟아오른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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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전기 끊긴 열흘 동안 촛불 밑에서 공부를 하니 집중도 잘 되고, 책도 열권이나 읽었어.”<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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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아이의 목소리처럼.<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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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급식 먹을 때 절대 잔반 남기지 않고 다 먹어. 싫어하는 반찬이 나와도 싹싹 긁어 먹는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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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아이의 말처럼.<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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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한 푼 받지 않고 음향에 노래에 춤에 시까지. 그리고 열정. 모두 ‘동지’의 사랑으로 문화제는 진행되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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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신당의 심상정 의원도 오고, 민주노동당의 홍희덕 의원 당선자도 왔다. 서비스연맹 위원장도 왔다. 마이크를 잡고 격려를 해줬다. 격려사가 끝나자마자 서둘러 다른 곳으로 갔다. 모두들 이랜드 싸움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말하고, 승리할 때까지 끝까지 함께 싸우겠다고 약속을 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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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문화제는 이들 말고는 연설을 하지 않은 게 너무 좋았다. 연설이 없으니 빨리 발길을 돌리는 사람도 없다. 앞에 나와 말하는 사람들도 고마운 동지지만, 앞에 나서지 않고 여덟 시간 동안 집회를 함께 해준 이들, 이들은 정말 정말 고맙다는 생각을 한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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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선영 씨가 나와서 편지글을 읽었다. 다시 스머프 티를 꺼낸 이야기로 시작해 아이들 이야기를 했다. 황선영 씨도, 이를 듣는 참가자들도 모두 울어야 했다. 취재를 하며 끊임없이 지키려고 했던 기자와 집회 사이의 ‘거리’가 이 순간에 무너졌다. 저 눈물들을 찍어야 하는데, 차마 저 눈물 앞에 사진기를 들이대는 것이 두려웠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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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0;&#160;이꽃맘 기자 <!-- [출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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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마이크를 잡은 홍윤경 노조 사무장도 울먹이며 다음 순서를 진행했다. 사람을 날려버리는 물대포를 맞으며, 일터에서 경찰에게 사지 질질 끌려 나가며, 용역경비에게 주먹질과 욕설을 먹으며, 여름이 가고 가을 겨울 지나 봄. 그리고 여름옷을 꺼내야하는 그 시간 앞에 더는 할 말들을 잃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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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바다 집회장 위로 보름달이 누렇게 떴다. 달빛이 환희 웃으며 조합원들 마음 마음을 쓰다듬어 준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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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을 흘리다 웃는다. 웃다 눈물을 흘린다. 문화제도 끝이 났다. 삼백일 투쟁 영상이 흘러나오고 있다. 울 일만 있었다면 이 자리에 남아있을 사람이 없을 것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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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열시. 사회자가 마지막으로 주위 사람을 꼭 껴안아주자고 제안한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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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선영 씨의 눈에 숱한 얼굴들이 스쳐지나간다. 지금 황선영 씨와 같은 자리에 있는 얼굴도 있고, 지금은 다른 자리에 있는 얼굴도 있다. 어디에 있든 비정규직법의 희생자 이랜드 노동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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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1>점거는 끝나지 않았다</h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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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2>[기고] 이랜드뉴코아 투쟁 300일에 부쳐</h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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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경동(시인)&#160; / 2008년04월20일 18시00분<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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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0;&#160;참세상 자료사진 <!-- [출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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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어느 날 불쑥<br />
당신들이 내 가슴 깊은 곳을 점거해 왔다<br />
막무가내로 밀고 들어오는 당신들에게 나는 속수무책 당해야 했다<br />
내 얼굴은 화가 나 벌겋게 타올랐지만 소용없었다<br />
당신들은 나를 점거하고<br />
내 마음 깊은 곳에 아무도 몰래 숨겨둔<br />
나의 진면목을 하나하나 까발렸다<br />
너 가슴 속에 시커멓게 도사린 이것은 무엇이냐고 <br />
너 가슴 속에 쌓아둔 이렇게 많은 소유는 모두 누구의 것이냐고<br />
너의 가슴 속에는 기실 너밖에 없는 것 아니냐고<br />
너는 왜 너의 본 얼굴을 이 깊은 곳에 숨겨두고 있냐고<br />
내 비겁과 두려움과 자만과 더러움을 들쑤셨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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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더욱 당신들은 <br />
우리 시대 운동의 중심을 점거했다<br />
전체의 해방보다 자신의 실현이 중심이 되가는 운동<br />
관념으로 똘똘 뭉친 가분수 머리들이 <br />
생활 속의 손발들 위에 군림하는 운동<br />
정규직대공장남성사업장 노동자들 운동이라는 저들의 이데올로기 공세 앞에서<br />
무장해제당한 채 출구를 뚫지 못하는 운동<br />
올라와도 밟아버리는 운동<br />
무엇보다 더 이상 맑고 투명한 눈물을 흘리지 않는 운동<br />
더 이상 부끄러워하지 않고 겸허해지지 않는 운동<br />
모두가 주체여서 연대가 필요치 않은 운동 <br />
그런 운동의 중심을 어느 순간 당신들이 점거해 버렸다<br />
아무런 계획도 욕심도 없이, 어떤 정파적 이해관계도 없이<br />
순진하게, 순박하게, 당당하게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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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아가 당신들은 우리 시대의<br />
한복판을 점거해 들어갔다<br />
한국사회 민주주의는 완성되었는지도 모른다는 헛소문<br />
이 정도면 살기 좋아졌다는 배부른 이들의 헛소리<br />
이젠 문화의 시대라는 편안한 말들 속을 <br />
헐벗은 몸으로 가식없는 말들로 점거해 갔다<br />
860만 비정규인생들의 죽음을 먹고 사는 자본의 심장을 점거했고<br />
말장난으로 날이 뜨고 새는 국회를 압도했다<br />
창백한 언론과 지식인들의 복잡한 논리를 단순하게 제압하고<br />
뚫고 들어갈 필요도 없이 공권력의 중심에 놓였다<br />
가장 평범한 이들이 가장 민주적이며<br />
가장 억압받는 이들이 가장 진실에 가까우며<br />
가장 단순하고 소박한 꿈이 가장 혁명적이라는<br />
역사의 희망을 진실을 지켜주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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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은 이렇게 이 시대 잠자고 있던<br />
모든 이들의 양심 속을 점거했다<br />
더 이상은 월급 80만원 최저임금에 목멘 비정규인생으로 살아가지 않겠다고<br />
역사의 정규 페이지에 분명하게 쓰고 읽었다<br />
그리곤 불안에 떠는 저들의 모든 거점을 점거했다<br />
그 점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br />
오늘도 당신들의 벗인 GM대우 비정규동지들이<br />
110일째 저 하늘을 점거하고 있고, 1000일째 기륭동지들이<br />
공장 앞을 지키고 있고, 코스콤과 재능교육 동지들이 <br />
민주주의의 거리를 사수하고 있다<br />
이제 당신들을 따라 우리 모두가 나서는 점거투쟁이<br />
이 사회 곳곳에서 다시 벌어질 것이다<br />
본래 우리 모두의 것인 자연과 가치를 독점하고 있는<br />
저 자본의 불법점거를 민중의 공동소유로 만들기 위한<br />
위대한 투쟁이 다시 시작될 것이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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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길에 나도 따라 나설 때까지<br />
이랜드 뉴코아 동지들이여<br />
모든 투쟁하는 동지들이여<br />
나의 진정한 지도부들이여<br />
내 가슴 속에 친 점거를 풀지 말아 주세요<br />
우린 이미 모든 진실을 밝혔다는 기쁨과 희망과 존엄을 잃지 마세요<br />
]]></description><image><url>http://www.newscham.net/data/news/photo/5/42933/sIMGP6743.jpg</url><link>http://blog.aladin.co.kr/vara/2070242</link></image></item></channel></rs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