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 시대의 증언자 쁘리모 레비를 찾아서

인간

왜 아우슈비츠의 생존자가 '인간이라는 수치'에 시달려야 했을까? 수치스러움을 모르는 가해자의 수치까지도 피해자가 고스란히 받아서 시달려야 하는, 이 부조리한 전도가 일어나는 것은 왜일까?
 그것은 그가 '너의 원수를 사랑하라'는 교의를 실천하는 고덕(高德)한 성인이기 때문이 아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유대인은 인간 이하'라는 사상에 희생된 까닭에, 그 사상을 '인간은 모두 평등하다'는 사상으로 대치해야 하는 입장에 있기 때문이다. '독일인'도 물론 '인간'에서 예외는 아니다. 한번 파괴된 '인간'이라는 척도를 재건하려고 하는 한, '인간'이 저지른 죄는 어김없이 그들 자신이 짊어져야 하는 것이다.

(......)

 나찌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유럽인이나 아메리카 대륙의 백인 입장에서 보면, 아프리카인, 아메리카 원주민, 아시아인, 오스트레일리아의 애보리저니(Aborigine), 뉴질랜드의 마오리 등 세계 각지의 원주민은 인간 이하인 존재였다. 일본인의 입장에서 보면, 조선인, 중국인, 류우뀨우(琉球) 민족, 아이누 민족, 타이완 원주민, 남양제도의 사람 등이 바로 인간 이하인 존재였다.
 이런 사상의 희생자들은 멸시당하고, 굴욕적인 대우를 받고, 들볶이고, 노예로 혹사당하다 못해 아예 살육되었다. 그 각각의 장면에서 그들은 '같은 인간인데 왜?'라고 낮은 목소리로 신음했던 것이다. 근원적인 물음이다. 굴욕이나 고통과 함께 몸 안에 새겨진 이 근원적인 물음이 그들을 움직였고, '같은 인간'이라는 척도를 재건하는 어려운 위치로 그들을 내몰았다.
 차별하는 자에게 '같은 인간'이라는 관념은 그냥 단순한 표어 정도로 처리할 수 있는 것이지만, 차별받는 자에게는 자신의 육체나 정신을 지키는 투쟁의 근거이며 무기이기도 하다. 그 때문에 피해자 측은 언제나 가해자를 포함한 새로운 보편성의 틀을 재구축하는 역할을 짊어지게 된다. 그것이 인류의 역사를 관통하는 변증법이다. (181-18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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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식의 글을 썩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이 책은 인상적이다. 아무튼, 올해가 가기 전 쁘리모 레비의 책을 읽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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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꼬 2007-11-29 1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경식 선생님 글은 문장의 진지함이 (저에겐) 좀 과해서 좀 숨이 막힐 때가 있어요. -_- (어쩐지 이런 말 하면 안 될 것 같지만 어쨌든.) 그래서 읽으려면 늘 심호흡을 하고 시작해야 하는 어려움은 있지만 다 읽고 나면 기특하다, 싶기도 하죠. (그런 의미에서 비교적 소품인 <<소년의 눈물>>이 저는 참 좋았습니다.) 쁘리모 레비를 찾아서, 저도 좋아요. 그 책 나오고 어느 자리에선가 강연하시는 걸 들었는데 감동이 거센 파도로 밀려오더군요. 디아스포라로서 자신과 쁘리모레비를 동일시하면서도 냉정함을 잃지 않는 대목에서, 문장 때문에 가졌던 거리감을 확 좁혔답니다.

: )

urblue 2007-11-29 17:08   좋아요 0 | URL
진지함이 과하다는 말씀에 동감. 저 위에 썩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 이유가 그겁니다. 예민한 건 알겠는데 과하게 징징거린다는 느낌이구요. (이런 식으로 표현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지만서도. ^^;)
그래도 꾸준히 읽게 되는 건 역시 들을 만한 말씀을 하시기 때문이겠지요.

2007-12-04 14: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12-04 14: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12-04 18: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12-07 12: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Bialetti(비알레띠) 얼룩 무카 익스프레스 2컵 - 얼룩무늬 색상
Bialetti(비알레띠)
평점 :
절판


모님의 커피 중독 이야기 때문일까, 알라딘에 입점한 커피전문샵 때문일까. 벌써 몇 년 동안 인스턴트만 애용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신선한 커피가 마시고 싶어졌다.

커피를 마시려면 도구가 필요하다. 예전에 끼고 살던 커피메이커는 인스턴트 커피를 마시는 동안 먼지 쓰고 씽크대 안에 박혀 있다 이사하면서 버려졌다. 신랑이 쓰던 커피여과기가 있긴한데 써 본 적이 없다. 뭐 커피여과기 쓰는 방법이 어려운 것도 아니고 시도해볼 수도 있을 테지만, 사실은 마음이 다른 데 있으니 별로 내키질 않는다. 며칠 동안 커피에 관계된 도구들을 이것저것 찾아보다 모카포트를 사고 싶어졌던 것.

처음이니 싼 걸 살까, 크레마까지 생긴다는 좋은 걸 살까, 고민하다 결국 고른 건 카푸치노와 카페라떼까지 만들 수 있다는 이 제품, 비알레띠 무카 익스프레스다. 

다른 쇼핑몰에서 얼룩무늬를 주문했다가 재고가 떨어졌다는 전화를 받고 당장 취소해버렸다. 실버가 더 고급스럽다고는 하는데 얼룩무늬에 이미 꽂혔으니 어쩔 수 없다.

막상 받고 보니 얼룩무늬가 별로 예뻐 보이지 않는다. 흰색인 줄 알았는데 실제로는 노란색에 가깝기 때문. 이걸 교환을 해야 하나 어쩌나 고민하다 일단 집에 들고 왔다. 응? 씻어서 다시 보니 색이 다르다. 회사에서 봤던 것처럼 노랗지 않고 진한 우유색같다. 귀여워!

물과 커피와 우유를 담아 가스렌지에 올려 놓고 몇 분 기다리면 커피 끓어오르는 소리가 들린다. 15초 정도면 되는데, 한 30초 놔뒀더니 에스프레소의 거품이 다 사라져버린다. 카푸치노는 더 두어도 괜찮다. 처음이라 그렇겠지만 이 과정이 즐겁다. 전기 에스프레소 머신이 아니라 이걸 구입한 이유도 그것 때문.  

모카포트로 뽑아낸 카푸치노는 물론 콩다방 별다방에서 마시는 것과는 다르다. 그렇게 미세하고 부드러운 거품이 아니라 굵고 거친 거품이다. 따를 때 숟가락으로 거품을 함께 내려줘야 한다. 처음에 커피를 좀 적게 넣었는지 우유가 너무 많이 들어간 느끼한 맛이었는데, 커피를 늘리고 우유를 줄이니 배합이 맞는다. 우유를 조금 적게 넣으면 거품이 밖으로 넘치지도 않는다.

커피메이커에 비하면 커피는 조금 헤픈 편이다. 2인용에 10g이나 그보다 좀 더 넣어줘야 한다. 200g짜리 원두를 사도 한 달을 채 못 마신다는 얘기.

일단 에스프레소잔과 커피 200g을 함께 주문했다. 커피도 이거저거 마구 사고 싶고, 시나몬 파우더랑 먹지도 않는 시럽마저 사고 싶다. 큰일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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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07-11-15 1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 이거 저도 필이 확 꽂혔었는데 가격때문에 망설였단 말예요. ㅠ.ㅠ
집에서 카푸치노를.... 진짜 땡기네요. ㅎㅎ

urblue 2007-11-15 12:45   좋아요 0 | URL
핫핫, 저도 가격 때문에 망설이다 이왕 사는 거 맘에 드는 걸루 하자고 큰 맘 먹었습니다.

조선인 2007-11-15 1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오 얼룩무늬라구요, 이런 건 소장해줘야 되는데 말이죠. 가계부가 원망스럽습니다. 언젠가는 꼭! @,@

urblue 2007-11-15 14:54   좋아요 0 | URL
언젠가는 꼭! 장만하시기를. ^^

라주미힌 2007-11-15 14: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싸다 ㅡ..ㅡ;;;;;

urblue 2007-11-15 14:55   좋아요 0 | URL
넵, 비싼 게 흠입니다.

2007-11-15 23: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urblue 2007-11-16 09:12   좋아요 0 | URL
반갑네요!
히힛, 사실 처음에 커피를 살살 조금씩 넣었거든요.
그게 좀 약했더라구요.
그래서 꽉 채워 넣었다는 얘기죠 뭐. ^^;
카푸치노에도 설탕은 안 넣어 마시는데, 설탕과 시나몬이 섞여 있으면 어떨라나 궁금하네요.
가게 쭉 둘러보고 이거저거 사야겠어요.
고맙습니다. ^^
 
차가운 피부 일루저니스트 illusionist 세계의 작가 1
알베르트 산체스 피뇰 지음, 유혜경 옮김 / 들녘 / 2007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동서양을 막론하고 학자나 교수가 쓴 소설은 재미없는 경우가 많다. (물론 내가 읽은 범위 내에서다.) 학식을 드러내지 않는 방법은 미처 배우지 못했는지 현학적이거나, 꼬리를 무는 사유를 떨치지 못해 난삽하거나, 주제를 지나치게 강조해 막상 다의적으로 해석될 여지를 놓치기도 한다. 학자 출신 작가의 소설을 읽다가 “당신은 문학 말고 학문만 하셔!” 라고 진심으로 충고하고 싶어질 때도 있다. 허구의 이야기를 통해 인생의 진실을 드러낸다는 소설의 특징에서 방점은 ‘인생의 진실’뿐 아니라 ‘이야기’에도 찍힌다. 이야기만 난무하는 소설은 의미 없고 가볍다고 짜증내지만 끝까지 읽기는 한다. 반면 스토리텔링을 무시한 채 의미만 강조한다면 아예 읽어나가는 것 자체가 고역이다. 결국 다 읽지 못하고 집어 던진 책이 몇 권 된다. 하지만 어디에나 예외는 있다. 모든 학자들이 재미없는 소설만 써댔다면 ‘학자’라는 꼬리표가 달린 작가에게 출판의 기회가 돌아갈 리 만무하다. 문화인류학자로서 [차가운 피부]가 첫 소설이라는 알베르트 산체스 피뇰 역시 예외에 속한다.

어려서부터 아일랜드의 독립을 위해 싸우면서 (실제로는 무기를 든 게 아니라 공급했을 뿐이지만) 친구의 희생을 지켜봐야 했던 남자는 독립 이후에도 분열과 대립이 사라지지 않는 현실에 좌절하고 조국을 떠나 무인도 행을 자청한다.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의 형제가 영국군이 떠난 자리에서 서로 각을 세우며 각자의 이상을 찾으려 할 때, 남자는 어느 한 편에 서는 대신 모두를 버리고 버림받는다. 같은 목표를 위해 누군가는 목숨을 던졌고 누군가는 그 목숨에 빚져 살아남았고, 마침내 목표를 이뤄냈는데, 그러고도 서로를 이해하기는커녕 폭력만 일삼는 ‘인간’이라는 존재에 환멸을 느낀 탓이다. 아무도 없는 땅에서 쉴 수 있기를, 그리하여 인간으로부터 입은 상처가 아물기를 바랐을 것이다.

하지만 무인도에서 그를 맞은 것은 소통을 거부하는 전임자(바티스)와 소통이 불가능한 괴물들이다. 밤마다 덤벼드는 괴물들로부터 목숨을 부지하는 것이 유일한 삶의 이유이자 목적이 되어버린 아이러니한 상황 속에서 바티스는 어떤 이해도 감정의 공유도 거부한 채 혼자만의 세계에서 헤어나려 하지 않는다. 괴물들로부터 자신을 지키고 살아남아야 한다는 공통의 목표가 있음에도 둘 사이를 이어줄 연대감 따윈 찾아볼 수 없다. 소통의 부재는 바티스의 개인적인 성격에서 비롯된 것처럼 보인다. 정말 그럴까?

남자의 시점으로 전개되는 소설은 남자의 눈에 비치는 바티스의 모습만 알려줄 뿐이다. 대신 남자의 감정과 사고의 변화는 자세하게 언급된다. 자신을 돌봐주지 않은 바티스에게 분노하다가 함께 싸우면서 동료 의식을 느끼기도 하고, 그와 닿을 수 없음을 뼈저리게 확인하기도 한다. 바티스가 길들인 괴물 암컷과의 수간을 통해 지극한 쾌락과 수치심이라는 양가감정에 동시에 빠져들며 일상적으로 폭력을 휘두르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기도 한다. 그렇게 매일매일이 흘러가고, 어느 날 괴물들을 지켜보며 그가 깨달은 것은 괴물들이 단지 괴물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노래로 의사소통을 하고 다친 동료를 돕기 위해 적의 불길 속으로 뛰어드는 생명체가 어찌 단순한 괴물일 수 있을까. 그때부터 남자는 괴물들과의 소통을 희망한다.

올슨 스콧 카드는 SF 소설 [사자의 대변인]에서 외계인을 네 종류로 구분한다. 첫 번째와 두 번째는 인간이고, 세 번째 ‘라멘’은 인간과 다른 종이지만 사람으로 인정할 수 있는 종족이며, 네 번째 ‘바렐스’는 대화가 불가능한 존재로 모든 동물을 포함한다. 외계에서 처음 만나는 새로운 생명체가 ‘라멘’인지 ‘바렐스’인지 구분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문제이다. ‘라멘’이라면 당장은 의사소통이 불가능할지라도 그들은 ‘사람’이며 언젠가는 대화가 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깨달음은 수천년 동안 숱한 외계 종족을 몰살시킨 이후에야 생겨난 것이다.

남자에게 괴물은 ‘바렐스’였으나 이제 ‘라멘’으로 보인다. 이러한 인식의 전환은 책을 읽는 동안 작위적으로 보였다. 문화인류학자라는 피뇰의 이력을 생각할 때 제 3세계를 바라보는 서구인의 관점을 비판하려고 억지로 끼워 넣은 듯 했기 때문이다. 올슨 스콧 카드가 모든 종은 라멘이 될 수 있다고 말하듯이, 켄 로치가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을 통해 현재의 미국과 영국을 비판하듯이.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좀 다른 느낌이다.

남자는 괴물들과 소통할 수 있기를 바라지만 그의 시도는 미미하고, 바티스는 그의 설명을 들은 척도 하지 않는다. 더 이상 그들에게 총을 쏠 수 없다고 버티는 것도 한 순간뿐이다. 낯선 존재에 대한 자신의 사고 방식을 완전히 바꿨음에도 여전히 소통은 불가능하고 현실은 변하지 않는다. 바티스가 없었다면 상황이 달라졌을까? 글쎄, 그는 바티스와 이해를 나누는 것도 실패하지 않았는가. 결국 괴물에 대한 인식의 전환은 제국주의적 시각에 대한 비판이라기보다 극한에 처해진 한 인간이 변해가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과정인 듯 하다. 길들인 암컷을 데리고 있는 바티스도 비슷한 과정을 겪지 않았을까 싶다. 그렇다면 남자 역시 바티스가 걸었던 길을 고스란히 따를 것인가? 이해와 소통이 불가능한 존재들과의 투쟁 속에서 살다 보면 타인과 소통하는 방법, 함께 사는 방법을 모두 잊어버리게 될까. 아니면 전쟁과 같은 한계 상황에 이를 때 타인과의 공존을 배제하는 인간의 숨겨진 본성이 튀어나오는 것일까. 결말은 당혹스럽기도 하고 끔찍하기도 하다.

사실 작가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알 수 없다. 그리고 그건 그대로 이 작품의 장점이 된다. 단순한 줄거리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솜씨가 뛰어날 뿐 아니라 사람마다 다양한 의미를 읽어낼 수 있는 열린 구조를 취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소설가로서는 실패한 학자군으로부터 한 발짝 떨어져 있는 셈이다. 이러면 작가로서의 다음 행보가 기대될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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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9. 근대문학의 종언 

 

 

 

 

 오늘은 '근대문학의 종언'에 관해 이야기하겠습니다. 이는 근대문학 이후 예를 들어 포스트모던 문학이 있다는 말도 아니고, 또 문학이 완전히 사라진다는 말도 아닙니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문학이 근대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받았고, 그 때문에 특별한 중요성, 특별한 가치가 있었지만, 그런 것이 이젠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43쪽)

 '종교와 문학'이나 '정치와 문학'이라는 논의는 문학이 단순한 오락에서 승격했기 때문에 생겨난 것입니다.
 일찍이 '종교와 문학'이라는 문제의식에서 '문학'을 옹호하는 논의는, 언뜻 보면 그것이 반종교적으로 보이지만 오히려 (제도화된) 종교보다 더 종교적이고 도덕적인 것을 지시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또 문학은 허구이지만 진실이라고 불리는 것보다도 더 진실을 보여준다는 것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정치와 문학'이라는 논의에서도 문학의 옹호는 대개 문학은 무력하고 무위이고 반정치적으로도 보이지만, (제도화된) 혁명정치보다 더 혁명적인 것을 가리킨다, 또 그것은 허구지만 통상의 인식을 넘어선 인식을 보여준다는 식이었습니다. 그것이 사르트르가 "문학은 영구혁명 중에 있는 사회의 주관성이다"라고 말했을 때의 의미인 것입니다. 사르트르의 말은 칸트 이후 문학(예술)이 놓인 입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그런 문학의 의미부여(옹호)가 불가능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누구도 문학을 비난하거나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회적으로는 가까스로 체면은 세워주고 있지만, 실은 아이들 장난과 비슷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현재는 전혀 그런 논의를 하지 않지만, 30년 정도 전까지는 '정치와 문학'이라는 논의, 예를 들어 문학은 정치로부터 자립해야 한다는 식의 논의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그것은 정치=공산당에 대해 문학가가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하는가라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었습니다. 때문에 공산당의 권위가 없어진다면, 정치와 문학이라는 문제는 사라져 버립니다. 작가는 무엇을 써도 상관없지 않을까? 정치 같은 케케묵은 촌스러운 것을 말하지 말라는 분위기가 됩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리 간단하지 않습니다. 문학의 지위가 높아지는 것과 문학이 도덕적 과제를 짊어지는 것은 같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과제로부터 해방되어 자유롭게 된다면, 문학은 그저 오락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도 좋다면 그것으로 좋은 것입니다. 자, 그렇게 하시기 바랍니다. 더구나 나는 애당초 문학에서 무리하게 윤리적인 것, 정치적인 것을 구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와 동시에 근대문학을 만든 소설이라는 형식은 역사적인 것이어서, 이미 그 역할을 완전히 다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52-53쪽) 

문학으로 사회를 움직일 수 있던 것처럼 보이던 시대가 끝났다고 한다면, 이제 진정한 의미에서 소설을 쓴다는 것도 소설가라는 것도 불가능합니다, 그렇다면 소설가는 그저 직업적 직함에 지나지 않는 것이 됩니다. (64쪽)

나는 작가에게 '문학'을 되찾으라고 말하거나 하지 않습니다. 또 작가가 오락작품을 쓰는 것을 비난하지도 않습니다. 근대소설이 끝났다면, 일본의 역사적 문맥으로 보았을 때 '요미혼(讀本)'이나 '닌죠본(人情本)'이 되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요? 열심히 잘 써서 세계적인 상품을 만들어 주시기 바랍니다. 만화가 그런 것처럼 말입니다. 실제 그것이 가능한 작가는 미스터리계 등에 상당히 있습니다. 한편, 순수문학이라고 칭하고 일본에서만 읽히는 통속적인 작품을 쓰는 작가가 잘난 척을 해서는 안 됩니다. (65쪽)

 

* 어제 [근대문학의 종언] 부분을 다시 읽었다. 처음 읽고 나서 근대문학이 역할을 다했다는 가라타니의 선언이, 충격이라기보다는 그저 사실로 느껴져서, 다시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내가 문학에 대해 품고 있던 생각은 가라타니가 언급한 것과 정확히 일치한다. 문학은 허구이지만 삶의 진실, 시대의 진실을 보여준다고 믿어왔다. 실제로 90년대 초까지 나는 소설을 통해 거의 모든 것을 배웠다. 하지만 90년대 중반 이후로 한국 소설을 읽지 않게 되었으며, 요 몇 년 다시 관심을 기울이고는 있지만, 70~80년대 소설에서 보았던 것 같은 '문학의 힘'을 다시 느끼지는 못하고 있다.  

최근 한겨레에서 이 문제에 관한 '지식논쟁'을 벌이고 있는데, 26일자 최원식 교수의 글(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246074.html)은 논점을 빗겨간 것으로 보인다. 문학, 특히 소설의 역할을 뭔가 다른 것으로 본다면 문학 종언론에 대해 달리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가라타니가 말한 문학의 역할을 인정한다면, 한국에서 그와 같은 문학은 더 이상 찾아보기 어렵다는 게 현실 아닐까. 자신을 비롯한 많은 문학 평론가들이 문학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는 이유로 "‘한국문학의 종언’이 풍문에서 부풀려진 일종의 상상에 가깝다"거나 '소동', '왜곡' 등의 표현으로 폄훼할 일이 아니다.

일전에 한 잡지에서 2000년대의 표준적인 독자상을 조사한 적이 있다.(http://www.donga.com/fbin/output?sfrm=1&n=200702230081) 그러니까 책을 가장 많이 읽는 층을 말하는 것인데, 내 예상과는 다르게도, 20대 초반의 여대생이었다. "독서 시간은 잠들기 전 1시간 정도. 인터넷 이용 시간이 훨씬 많고 개봉 영화 무료 시사회를 알뜰히 챙기는 영상 세대지만 재미있는 소설이라면 기꺼이 손에 잡는다"고 한다. 대개 가볍고 재미있는 일본 소설을 읽는다는 말이다. 가라타니가 말한 "그저 오락"으로서의 문학이 대세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도 내가 하고 있으니까 한국 문학은 죽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차라리 한국 문학이 어째서 독자들을 끌어들이지 못하고 있는지를 고민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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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0-31 16: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10-31 17: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11-05 18: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80. 단절

 중국에 대해서는 이런저런 관심을 가지고 있지만, 막상 뭘 읽기에는 뭘 너무 모른다. 90년대 이후 중국사회의 문제점에 대한 책이라길래 선뜻 골랐는데, 재미없다. 소득 불평등, 실업과 샤강(정리해고) 등 사회적 단절을 일으키는 여러 문제에 대해 말하지만 챕터마다 같은 말 반복반복. 선뜻 동의할 수 없는 주장도 있고. 너무 설렁설렁 쓴 거 아니야,라는 오만방자만 느낌만.

 

 

 81. 노던 라이츠

 어쩌다 호시노 미치오 팬이 되었지. 어쩌다보니 올해만 그의 책을 벌써 세 권째 보고 있다. 미문은 아니지만 소박하고 정겨운 글이라는 건 틀림없는 사실이지만.

 

 

 82. 테메레르 2

 어느 분 말씀처럼 3권을 사야하나 심각하게 고민하게 되었다. 1권은 좀 부족하지만 그런대로 호기심을 일으키고 읽는 맛도 있었는데, 2권은 지루하고 식상하다. [퍼언 연대기]와 비교하면 급이 떨어져도 한참 떨어진다. [퍼언 연대기] 3권이나 마저 읽어야지.

 

 

 83. 코끼리에 관한 짧은 우화

 홍대 앞 와우북페스티벌에 갔다가 서해문집 코너에서 횡재했다. 평소 사려고 벼르고 있던 책을 포함해 5권을 20,000원에 구입한 것. 고전 시리즈 몇 권을 더 사고 싶었지만 비도 오는데 무겁기도 하고 해서 일단 참았다. 좋은 책들을 말도 안되게 싼 값에 내 놓은 걸 보니 별로 맘이 좋진 않더라.
 어쨌거나, 그렇게 구입한 것 중 한 권인데. 사실 이걸 사려던 게 아닌데 판매하시는 인상 엄청 좋은 분이 권하길래 나도 모르게 들고 와버렸다. -_-; 내 스타일이 아닌 거 뻔히 알면서. 우화랑 절대 안 친하단 말이지. 아무리 반 룬이라도. 칫.

 

 84. 세계공화국으로

 아, 짜증나. 출근 전에 뭘 들고갈까 고민하고 있으니 신랑이 추천한 건데, 이거저거 궁금하게 만들어서 그 이후에 어째야 좋을지 모르게 되어 버렸다. 칸트가 얘기한 게 그게 맞는지,라는 의문을 가지게 되니까 결국 고전을 처음부터 시작해야 한단 말인가 고민. 서양철학사라도 다시 읽어볼까.
 내용이 그리 어렵다고 느끼지는 않았지만, 세계공화국에 이르기 위한 방법론은 제시되어 있지 않으니, [트랜스크리틱]이랑 다른 저작을 읽어야 하는건지. 
 가라타니가 말하는 소비자운동은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의심스러웠는데, 실제로 그의 아이디어로 시작된 일본의 운동이 실패했다지. 이제 뭘 할 수 있을까, 궁금. 
여튼, 세마리만큼 짜증나.  

 

 85. 판타스틱 10월호

 이것도 이제 슬슬 싫증이 난다고 해야 하나. 좌백의 무협 단편은 괜찮지만 다른 것들은 영. 
앗, 글고보니 정기구독 신청했는데. 쩝.

 

 

 86. 명랑이 너희를 자유케하리라

 9월부터 [88만원 세대]와 [샌드위치 위기론은 허구다]를 거쳐 이 책까지 연달아 보고 있다. 블로그에도 자주 들르고 있는데, 글은 재미있지만 실제로 만나면 엄청 까칠해서 별로 재미없을 듯. 그래도 강연회 신청은 했다. [88만원 세대]가 깔린 것 기준으로 만부쯤 나갔는데, 그 중 거의 절반을 알라딘에서 팔았다 한다. 알라딘은 역시 2%. 

 

 87. 허삼관매혈기

 재미있어서 리뷰 써 볼까 하고 있는 중이지만, 과연.

 

 

 

 88. 니하오 미스터빈

 하진의 [기다림]을 빌려오랬더니 그게 없다고 신랑이 이 책을 빌려왔다. 미스터빈의 좌충우돌 돌격기라고나 할까. 그러고보니 영국의 빈 아저씨랑 비슷한 듯도 하고.

 

 

 

 현재 읽고 있는 책들. 이번 달에 이 두 권 중 한 권을 끝내는 것으로 마무리 되겠다.
10월엔 책을 별로 안 읽고 슬렁슬렁 놀았다고 생각했는데, 세어 보니 좀 되는군. 가벼운 책들만 읽어서 그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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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0-29 22: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urblue 2007-10-30 13:15   좋아요 0 | URL
다,다는 아니구요, 대개가 그렇다는거죠. 쩝. -_-;;
한동안 일본 소설 열심히 읽다가, 출판되는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질려버렸어요.
이제는 중국으로 방향 전환. 또 열심히 읽어보렵니다.
사실, 우리나라 소설이 제일 재미없습니다.
관념적이기도하지만, 무엇보다 취재를 안하고 날로 글 써먹으려는 것 같아서 말이죠.
아님 말고. 헷~

sudan 2007-10-30 0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88만원 세대는 개나 소나 다 읽는다고 생각했는데, 2% 알라딘에서만 그런거였나요?(남들 다 읽어서 읽기 싫다고 생각하고 있는 책 중 하난데. -_-)
위의 책 중 몇 개는 저도 갖고 있는건데, 읽은건 허삼관매혈기밖에 없네요. 읽으면서 웃다 울다했던 소설. ^^

sudan 2007-10-30 0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맞다. 저 지금 판타스틱 창간호 티셔츠 입고 있어요. 하하하.
그렇지만, 아직 창간호도 다 못 읽었다는 거. -_-b

urblue 2007-10-30 13:20   좋아요 0 | URL
88만원 세대는 요즘 제가 가장 추천하는 책인데요, 개나 소나 다 읽진 않아요. ^^
만 부에 출판사랑 저자는 감격하는 모양이던데, 좀 더 많이 팔려도 좋은, 아니 더 많이 팔려야 할 책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수단님도 한 권 구입하시는게...? ㅎㅎ

판타스틱 재미없으셨나봐요. 저런.
일단 품절되면 다시 안 나올테니까 꾸준히 구입하고는 있는데 말이죠.
점점 재미없어지면 어쩌나 곤란해하고 있어요.

瑚璉 2007-10-30 08: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벼운 책들이 아니지 않소! (버럭)
- 한 달간 놀고 먹은 1인

urblue 2007-10-30 13:21   좋아요 0 | URL
왜 소리는 지르고 그러세욧! (덩달아 버럭)

가볍지 아니한 책들도 가볍게 읽으면 가벼운 책이죠 뭘. :p

mong 2007-10-30 1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어어~진짜 겹치는 책이 한개도 없어요

urblue 2007-10-30 13:21   좋아요 0 | URL
그쵸? 여태 이런 적 없었던 듯도 한데...

사야 2007-10-30 1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아 하진의 기다림이 번역되어 나왔나요?
독일어로 읽은 게 언제적 이야기인데 가까운 한국에 책이 없다는게 신기했었죠.
아참 그때 추천해준 책 다시 알려주세요
어제 돌아와서 처음으로 서점이란 곳을 가서 책을 좀 샀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제목이 생각이 나야말이죠..-_-
일단 교보카드도 만들고 정기적으로 나갈 생각이니 다음에 구입할게요..^^

사야 2007-10-30 1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헉 동시접속. 점심 맛있게 드셨습니까? ㅎㅎ

urblue 2007-10-30 13:39   좋아요 0 | URL
네, 점심은 (좀 매웠지만) 맛있게 먹고 왔습니다. ^^
앗, 근데요, 그때 추천한 책이 뭐였는지 기억이... 안 납니다. 흑흑..
제가 어떤 책을 말씀드렸을까요? ^^;;

사야 2007-10-30 13:44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두 분이 열렬히 추천한 우석훈씨 책입니다..^^

urblue 2007-10-30 13:46   좋아요 0 | URL
핫핫...그렇다면 [88만원 세대]군요. ^^;;;

사야 2007-10-30 13:51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오케이 접수했습니다
참 10월 25일 방송된 세상은 넓다를 다시보기로 좀 봐주세요..ㅎㅎ

urblue 2007-10-30 13:57   좋아요 0 | URL
뭔가 하고 찾아봤더니, 앗, 그렇군요.
꼭 보겠습니다. ^^

2007-10-30 13: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10-30 13: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수단 2007-10-30 17: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판타스틱은 재미가 없었던게 아니고, 잊어먹고 있었던거에요. 재미 있었어요. 싫어할리가 없잖아요. >.<

여기저기 회자되고 있어서 오히려 읽기 싫은 책이 있지 않나요? 88만원세대가 저는 좀 그런데, 얼블루님이 추천하시니 궁금해서 읽어볼래요. ^^
(로긴 안해도 덧글 쓸 수 있어서 좋아요. 알라딘 바뀐 이후로 이거 하나 마음에 드네요.)

urblue 2007-10-31 09:47   좋아요 0 | URL
하하. 신랑은 이제 6월호까지 봤대나 뭐 그런데, 꼭 초등학교 때 학습지 밀리는 기분이라고 하네요. 이제 생각났으니까 다시 읽어봐요. 자꾸 밀리면 재미있던 것도 없어지지 않을까요?

그런 책 많죠, 왜 없겠어요. 그치만 88만원 세대는 '겨우' 만 부밖에 안 팔렸다니까요. 꼭 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