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번째 파도
최은미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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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을 넘기는 손이 이렇게 떨린 적이 있던가? 책을 읽다가 말고 터져 나온 눈물을 몇 번이나 닦아내야했던 적이 있던가? 책에 실린 지명과 지형과 사건들이 눈앞에 생생하게 그려지는 경험을 한 적이 있던가? 다 읽고 나서 글을 써준 작가에게 고맙다는 말을 몇 번이나 중얼거렸던 적이 있던가? 이 소설은 내게 이런 특별한 경험을 하게 해주었다. 이 소설을 먼저 읽은 친구가 내 고향 삼척을 모델로 한 이야기라고 알려준 것이 한참 전이었음에도 사실 선뜻 읽을 마음이 생기지 않아 눈밖에 둔 책이었다.

 

나고 자라 그곳을 너무 잘 알기에, 부모님과 남동생, 친척들 그리고 내가 아는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그곳에서 살아가고 있기에 삼척은 내게 애증을 느끼게 하는 장소이다. 온전히 사랑할 수도 그렇다고 무턱대고 미워할 수도 없는 곳. 그곳에 내겐 삼척이다. 강원도 영동지방의 한 작은 소도시 척주를 배경으로 한 이 소설은 바로 내 고향 삼척에서 실제 일어났던 사건들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삼척을 고향으로 두지 않았다면 소설 속 일들이 그저 픽션으로만 다가왔겠지만 삼척에서 태어난 70년대 생인 내게는 이 소설이 다큐로 다가왔다. 물론 약왕성도회라는 사이비 종교집단과 마약 밀수라는 사건에 대해서는 들어본 바가 없다. 하지만 그 외에 이야기들은 나 또한 알고 있고 들어 봤으며 겪은 생생한 경험의 이야기들이다.

 

척주에서 자랐지만 서울에서 자리를 잡고 일하던 송인화와 윤태진은 둘 만의 사정으로 각자 척주에 다시 일자리를 잡게 된다. 그리고 송인화가 일하는 보건소에서 공익근무요원으로 일하는, 척주에서 나고 자란 서상화. 이 세 사람의 관계를 중심으로 소설은 크게 세 가지의 이야기를 밀도 있게 끌고 나간다. 하나는 핵발전소 건립을 두고 친핵과 반핵을 지지하는 사람들 간의 갈등이고 다른 하나는 동진시멘트에서 일하지만 원청과 하청으로 나뉜 현장 노동자들의 갈등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약왕성도회라는 사이비 종교집단이 아픈 사람들을 어떻게 이용하는지를 보여준다. 한두 다리만 건너면 서로를 알고 있는 소도시 사람들이 저마다의 입장으로 인해 서로를 어떻게 미워하고 이용하는지를 작가는 실제 사건들을 바탕으로 아주 촘촘하고 탄탄하게 이야기를 직조해 놓았다.

 

척주는 석회석이 많은 지대라 동진시멘트가 시멘트 공장을 운영하면서 척주 사람들을 먹여살리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가 하면 도계와 태백은 오랫동안 탄광촌이었던 곳으로 폐광되기 전까지는 호황을 누리던 곳이다. 하지만 이 두 일이 소도시의 경제를 살렸을지언정 그곳에서 일하던 사람들에게는 많은 상처를 남겼다. 위험한 곳에서 일하다가 죽은 사람도 한둘이 아니며 무사히 살아남았어도 진폐증이며 폐병에 걸린 사람 역시 부지기수다. 게다가 이제는 척주에 핵발전소까지 건립하겠다고 하는 시장으로 인해 척주 사람들은 또 한번 잠정적인 핵이란 위험에 내몰리게 된다.

 

그런데 이런 상황은 소설 속의 꾸며낸 거짓 상황이 아니다. 실제 삼척의 상황이다. 삼척시 하늘에는 여전히 석회 분진이 날아다니고 핵발전소 건립은 더 이상 추진되지 않지만 대신에 화력발전소가 들어서기로 결정된 상태다. 핵의 위험 대신에 미세먼지의 위험이 삼척을 다시 건강 위험 지역으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소설 속에서는 핵발전소가 그렇게 꼭 필요한 거면 척추가 아니라 한강에다가 지으라는 말이 나온다.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 중 한 사람이다. 핵발전소뿐만 아니라 화력발전소도 전기를 제일 많이 쓰는 서울 한강에다가 건립하라고 외치고 싶은 사람이다. 대도시의 전력을 충당하기 위해 지방의 소도시는 핵이며 미세먼지의 불안을 안고 살아야 하고 또 어떤 곳은 송전탑으로 인해 사람들이 초고압송전이 건강에 어떤 해를 끼치지나 않을까 불안에 떨고 있다. 누리는 사람 따로 있고 피해 보는 사람 따로 있다. 그런데 나라에서는 제대로 된 대책도 세우지 않고 피해 보상도 해주지 않는다. 이런 곳에서 평생을 살았던 가난한 사람들이 병 들어서 기댈 것이 무엇이겠는가. 몸의 고통을 덜어주는 약일 수밖에 없지 않을까. 그러니 아픈 사람들을 파고드는 사이비종교의 등장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내 아버지는 삼척의 외곽 촌동네에서 나고 자라 동진시멘트(동양시멘트) 현장직 노동자로 30년 넘게 일하다 은퇴를 하셨다. 삼교대로 일하고 시끄러운 현장에서 오랫동안 일하셨기에 은퇴를 하고 나서는 불면증과 이명에 시달리고 계신다. 그나마 원청 직원으로 일하셨기에 학자금 지원으로 자식 셋 대학을 보내실 수 있었다고 말씀하신다. 내 아버지와 어머니가 그렇듯 삼척 사람들은 자식들이 외지에서 터잡고 살기를 원하신다. 당신들은 이런 곳에서 평생 살았지만 자식들은 이곳에서 터잡지 않기를 바라신다. 윤태진과 송인화가 그러하듯 척주 사람들도조차 척주를 싫어한다. 사랑할 수가 없다.

 

그래서 일까. 소설의 많은 인물들 중에서도 서상화에게 자꾸만 마음이 갔다. 태어나 자란 곳임에도 나 역시 고향을 온전히 사랑할 수 없는데, 자신에게 아픔과 슬픔을 겪게 한 곳임에도 척주에서 작은 약국을 하나 차려 살고 싶다고 말하는 서상화가 마음을 파고 들었다. 힘든 상황에서도 밝고 열심히 살아가는 서상화를 보면서 마음 한구석이 찡하다 못해 아렸다. 우리 아버지가 서상화 아버지처럼 하청 직원이었다면 서상화 가족이 겪었을 고통이 내 고통이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더더욱 서상화란 인물에 애착이 갔다. 내가 송인화였어도 서상화를 사랑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삶을 긍정하는 서상화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어떤 광채를 송인화도 보았던 것임에 틀림없다. 누군가의 밝음으로 내 어둠을 몰아내는 사랑을 해본 사람이라면 서상화와 송인화의 사랑을 응원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래서 소설 결말에 송인화처럼 나 역시 오열했는지도 모르겠다.

 

삼척 사람이기에 작가가 이 소설을 쓰기 위해 얼마나 꼼꼼하게 취재를 하고 노력을 다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삼척에는 얼마나 자주 다니러 갔을 테며 자료 조사를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을 만났을지 안 봐도 눈에 선하다. 그렇기에 소설은 디테일이 살아 있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삼척에서 나고 자란 나는 알 수 있다. 동진아파트에 목욕탕이 있다는 것하며 중장비에 대한 지식까지... 읽는 내가 이렇게 아플진대 취재하며 플롯을 짜며 이야기에 살을 붙이며 작가는 얼마나 아팠을까. 그 아픔을 짐작하기에 그저 이런 글을 써준 작가에게 한없이 고맙다. 작은 소도시에 일어났던 분쟁과 아픔의 역사를 이렇게라도 남겨둘 수 있어서 그저 작가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2018 책읽는 도시선포 기념으로 삼척시와 삼척교육문화관이 함께하는 행사를 통해 작가와의 만남을 지난 12월에 개최하였다는 소식을 인터넷 뉴스로 봤다. 초대 작가가 김용택 시인과 박범신 작가였다고 한다. 적어도 삼척에서는 이런 행사의 첫 초대 작가로 최은미 작가여야 하지 않았을까. 삼척에 절대 핵발전소가 건립되지 못하게 하겠다는 공약을 걸고 무소속으로 삼척시장에 당선되어 벌써 재선까지 성공한 시장이라면 삼척을 모델로 삼척의 실상을 잘 그려낸 작가를 초빙해 이야기를 들어봐야 하는 건 아닐까.

 

다만 아쉬운 건 제목과 표지이다. 소설을 읽고 나서도 제목이 뜻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고 그저 예쁘장하기만 한 표지가 이 소설과 왜 이리 어울리지 않는지... 소설의 내용과는 상관없이 무조건 예쁘고 말랑말랑한 표지를 선보여 오고 있는 이 출판사가 아니었다면 제목도 표지도 좀 더 소설의 이미지를 대변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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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9-01-13 21: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곳에 가보지 않은 사람은
그곳에 살아 보지 않은 사람은
작가가 재구성하려는 서사의 깊이까지
결국 도달하지 못하는 모양입니다.

울산 사람은 아니지만 울산을 배경으로
서사를 펼치는 작가분의 글을 보고 감
탄한 적이 있습니다.

이래서 한국소설을 읽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삶은 어쩌면 애증의 원천일런지도.

설해목 2019-01-14 09:25   좋아요 1 | URL
그런가봐요. 저도 제 고향 이야기니까 이렇게까지 몰입할 수 있지 않았나 싶어요.
그래서 작가에게 더 고마워요.
다들 남의 일처럼 여기던 걸 끝까지 취재하고 이렇게 글로 남겨주셔서요.

쟝쟝 2019-01-15 12: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너무 이쁘기만 한 표지라 이런 소설이라고는 생각 못했네요. 읽어보고 리뷰다시 읽어볼게요 ^.^

설해목 2019-01-15 14:31   좋아요 1 | URL
네.. 정말이지 표지에 속지 말아야할 무게감 있는 소설인데... 표지가 참 옥의티라고나 할까요. ^^;;

무심이병욱 2019-02-07 2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꼼꼼하고 성실하게 쓴 리뷰가 어디 또 있을까요? 최은미 작가가 부러워지는 순간입니다.

설해목 2019-02-08 09:27   좋아요 0 | URL
별말씀을요. 소설을 애정하다보니 제 마음이 고스란히 드러났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