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보니 연말과 연시를 잇는 독서로 한 작가의 두 책을 읽게 되었다. 존 가드너의 장편소설가 되기소설의 기술이 그것인데 장편소설가 되기가 장편소설을 쓰기 위한 작가의 기질과 마음가짐 그리고 문예 창작 수업과 워크숍의 효용에 대해 장황하게 다루고 있다고 한다면 소설의 기술은 좀 더 구체적으로 소설 작법에 대해 다루고 있다. 계속해서 읽다보니 써보고 싶고 써보려니 막막하고 그래서 이런 작법이나 창작에 관한 책들 제법 많이 읽어왔는데 읽기만 하고 실천을 하지 않으니 작법서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또 이렇게 소설쓰기에 관한 그것도 장편소설 쓰기에 관한 두 권의 책을 읽어버렸다. 실천하지 않으면 이 독서 또한 무용지물이겠지만.... 심지어 단편도 아닌 장편이라니... 지금의 나라면 연필을 잡는 대신 단편소설 쓰기의 모든 것을 바로 이어 읽게 되지 않을까 싶다. --;;

 

존 가드너는 자신의 두 창작서에서 이 한 가지를 강조한다. 작가는 자신의 글로 독자가 꿀 꿈이 생생하면서 동시에 끊임없이 꾸게 해야 한다는 것. 달리 말하면 중단되지 않는 가상의 꿈을 위해 글쓰기에 정성을 다해야 한다고. 정성이라는 말로 퉁쳤지만 독자의 생생한 꿈을 중단시키지 않기 위해서는 정말 많은 노력과 각오가 필요하다는 걸 존 가드너는 예비 새내기 작가들에게 강조하고 또 강조하고 있다.

 

독학으로 깨우친 작가라면, 책을 읽고 좋은 영화들을 찾아보고, 친구들이나 직장동료들 사이에서 나오는 이야기들을 열심히 경청하면, 정교하고 독창적인 이야기꾼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방법으로는 소박한 작가, 다시 말해 민간 작가로 남을 가능성이 높다. 삶에 대한 진실성만이 아니라 영민함과 작품성으로 독자를 압도하는 대작가가 되기는 어렵다는 뜻이다. _장편소설가 되기중에서

 

아주 좋은 작가들을 비롯해 극소수 작가들만이 작품 활동으로 자기 자신과 가족이 먹고살 만큼의 돈을 버는데, 낮 동안 힘든 육체노동이나 사무직의 긴장을 견뎌내고 나서 다시 정좌하고 소설을 쓰기는 어려운 일이므로, 원하면 일 부담을 조금 줄여서 글쓰기에 시간을 할애할 수 있는 전문직에 필요한 훈련을 해두는 게 현명하다. 파트타임 변호사로 일했던 작가들도 있고(앨버트 레버위츠), 성직자를 겸했던 작가들도 있으며(프레더릭 뷰크너), 의사 일을 겸했던 작가들도 있다(워커 퍼시). 교직을 겸했던 작가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자신이 좋아하고 작가인 당신을 먹여 살려줄, 그러나 시간을 전부 바치지는 않아도 되는 직업을 찾는 게 비결임은 말할 것도 없다.” _장편소설가 되기중에서

 

장편소설가 되기에서 저 부분들을 읽고는 사실 좀 의기소침해지긴 했다. 문예창작 수업은커녕 사설 센터에서 하는 글쓰기 수업 한 번 들은 적 없고 게다가 하루 종일 격무에 시달려야 하는 직장인인 나는 결국 좋은 글을 쓸 수 없다고 말하고 있으니 말이다. 어쩌면 존 가드너는 글 쓸 조건이 갖추어지지 않은 채 쓰고 싶은 마음만 굴뚝같은 나 같은 사람들에게 현실적인 조언을 해주기 위해 이 책을 낸 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좀 충격이긴 했다. 심사를 통해 등단을 하는데도 왜 문창과 출신의 작가들이 많은지(사실 나는 이 부분에 대해 일간에서 떠도는 끼리끼리 서로에게 도움을 준다는 소문이 어느 정도 맞다고 생각했던 사람이다), 쉽지 않음에도 왜 작가들이 전업작가를 꿈꾸고 또 그렇게 하는지 어느 정도 또 이해를 하게 된 계기이기도 하다. 뭐든 배우면 -그게 창작이라 할지라도-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에 도움이 된다는 것 그리고 온전히 하고자 하는 것에 쓸 시간이 충분하면 어느 정도까지의 경지에는 오를 수 있다는 것! 글쓰기라고 다르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고나 할까. 나는 저 두 가지 조건 모두 충족하지 못하고 있으니 암담한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거겠지. 그리고 존 가드너는 이런 충고도 서슴지 않는다. ‘작가가 창작에 매진할 여건을 만드는 최선의 방법은 그의(또는 그녀의) 배우자에게 얹혀사는 것으로 배우자나 애인에게 기대어 사는 방법은 탁월한 생존전략이라고... 이것 역시 나에게는 불가능하다. ~~~ 참담하다. 참담해. T.T

 

작가가 허구적 꿈에 몰입하지 못하거나 언어적 충동에 융통성 있게 대처하지 못한다면 그 원인은 근본적으로 자기억제나 자기패배적인 심리 상태에 있으며, 이 문제 해소를 위해 자기 억제를 극복하기 위한 모든 전통적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자기최면, 초월명상, 음주나 흡연, 연애 등, 그러나 각고의 노력과 가끔의 성공이 따라주지 않으면 그 어느 것도 효과는 없다. _장편소설가 되기중에서

 

작가 폐색을 돌파하는 세상에서 가장 좋은 방법은 많이 쓰는 것이다. 종이에다 이 말 저 말 지껄이다 보면 갑자기 자기가 지껄이고 있는 게 흥미로운 이야기라도 되는 듯한 착각에 빠져들면서, 신비의 샘이 다시 흐르고 있다는 신호가 온다. 일기 쓰기도 때로 효과를 발휘한다. 일기에는 가장 끌리는 화제에 대한 성취 압박을 받지 않고 자연스럽게 자기 필치를 살려서 쓸 수 있다. 기죽이는 본업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효과가 있을 것이다. _장편소설가 되기중에서

 

작가가 아니니 작가 폐색이니 글쓰기의 침체기니 겪어본 적도 앞으로 겪게 될 것 같지도 않지만 그럼에도 존 가드너의 이 조언들이 마음에 들어 메모해 둔다. 하는 일에 문제가 생겼을 때는 다른 것으로 환기를 돌리던가 아니면 문제를 다른 형태로 파고 들던가. 이는 비단 글쓰기에만 해당하는 조언만은 아닐 것이다. 아무튼 장편소설가 되기에서 존 가드너는 장편소설가-그것도 진짜 소설가, 위대한 소설가-가 되는 것은 무척 고난한 길이고 특별한 각오와 뚝심이 필요하니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할 것을 선배로서 현실적인 충고를 해주고 있다.

 

그러고 보니 단편소설은 재밌었는데 장편소설은 별로였던 몇몇 작가들이 떠오른다. 존 가드너는 단편소설 쓰기와 장편소설 쓰기는 완전 다른 장르라고 말하고 있는데 그 두 장르를 모두 잘 쓰는 작가들이 드문 건 어쩌면 당연한 건지도 모르겠다. 둘 중 뭐라도 잘 쓴다는 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작가에겐 보람이지 않을까 싶다. 둘 다 잘 쓴다면 그건 작가가 정말 대단한 노력을 했다는 확실한 증거일 테고...

 

장편소설가 되기가 개론서에 가깝다면 소설의 기술은 심화학습서에 가깝다. 존 가드너의 소설을 읽은 적 없고 그런 소설가가 존재하는지 최근까지도 몰랐던 내가 이 책의 표지에 실린 존 가드너의 사진을 보고 든 첫느낌은 외골수소설가란 이미지다. 아마도 장편소설가 되기를 읽어서 그런 느낌이 더 강하게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타자기에 손을 떼지 않은 채 입을 꾹 다물고 강렬한 눈빛으로 카메라를 바라보는 모습이 소설 쓰기가 아니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라고 온몸으로 말해주는 것만 같다.

 

소설의 기술을 다시 훑어보니 온통 밑줄이 팍팍 그어져 있다. 뭘 알고 그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나름대로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건 죄다 밑줄을 긋다 보니 책 여기저기 온통 밑줄투성이다. ㅎㅎ;;; 무릇 작법서의 효용이란 글쓰기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좋은 글을 알아보는 데도 도움이 된다는 거다. 독자인 나는 후자에 무게를 싣고 이 책을 읽어나가긴 했지만 그래도 글을 써보고 싶은 미련을 완전히 떨쳐버리지는 못해서 나중에 한 번 더 찬찬히 읽어볼 생각이다.

 

소설의 기술은 사실 소설의 이론과 용어를 잘 모른 채 그리고 인용하는 소설을 읽지 않은 상태에서 읽게 되면 이해하는 데 한계가 있는 건 사실이다. 100% 이해하며 읽기에는 전문적인 이야기들과 또 읽어보지 않은 소설들의 예시가 많아 따라가는 것이 버겁긴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밑줄을 그어가며 별표까지 해가며 읽을 수 있었던 건 소설 쓰기의 기본들을 계속해서 강조해주고 그 가르침들은 어느 정도 소설 쓰기에 관심이 있는 예비 작가 지망생 정도라면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조언들이기 때문이다. 가령 예문을 들자면 이런 것들이다.

 

구체적인 디테일이 요구되는 자리에 불충분한 디테일과 추상적인 말을 사용하는 것은 아마추어 글쓰기에서 흔한-실은 거의 보편적인-일이다. 또다른 잘못은 곧장 이미지로 뛰어들지 않는 것, 즉 관찰자적인 의식을 통해 이미지를 불필요하게 필터링하는 일이다.

 

가장 명확한 유형의 서투름, 기본 스킬 구사의 진정한 실패에는 다음과 같은 실수들, 즉 수동태의 부적절하거나 과도한 사용, 비정형 동사를 포함하는 도입 구절을 사용하는 부적절함, 화법의 변화 혹은 정신을 흩뜨리는 화법의 주기적인 사용, 문장 다양성의 결여, 문장 집중력의 결여, 불완전한 리듬, 돌발적인 라임, 불필요한 설명, 심리적 거리의 부주의한 변화 등이 포함된다.

 

설명하고자 하는 유혹은 늘 언제나 억눌러야만 한다. 훌륭한 작가는 행동과 대화를 통해 어떤 것이든 얻어낼 수가 있다. 작가는 특히나 자신의 캐릭터들의 감정에 대해 말하는 일을 피해야 하며, 혹은 적어도 말하지 말고 보여줘라는 오랜 속담에 함축되어 있는 평범한 거부를 반드시 이해하고 있어야만 한다.

 

완벽하게 집중된 이미지를 보이려면 우리에게 주어지는 신호들은 하나하나 차례차례 주어져 모든 게 매끄러운 논리와 완벽한 필연성에 따라 일어나야 한다.

 

정직한 작가는 꼴사납거나 가짜 같거나 억지스러워 보이는 것들을 절대 용납하지 않으려는 마음에, 초고가 끝나고 나면 계속해서 그것을 몇 번이고 들여다본다. 미숙하게 삽입된 디테일들은 멋진 디테일로 수정되거나 삭제되어야만 한다.

 

초보 작가가 배우는 두 번째 중요한 교훈은 소설이 구조적인 단위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이다. 소설은 단번에 써내려가는 것이 아니다. 모든 스토리는 몇몇 단위들, 즉 묘사에 해당하는 구절, 대화에 해당하는 구절, 사건(레너드가 픽업 트럭을 몰고 마을로 간다), 묘사에 해당하는 또다른 구절, 또다른 대사 등등으로 구성된다. 훌륭한 작가는 각각의 단위들을 개별적으로 다루며 차례대로 발전시켜나간다. 묘사가 완벽하다고 생각되면 그는 스토리의 그다음 단위로 넘어간다. 이런 식으로 생각하고, 단위별로 작업해나가고, 자신의 스토리가 자신에게 무엇을 요구하는지를 늘 유념하되 더 중요한 부분들로 서둘러 넘어가지 않음으로써 작가는 난청 지대와 모호한 부분이 없는 스토리, 우리가 미학적 흥미를 잃지 않게 되는 스토리를 만들어낸다.

 

특히 내가 두 눈 부릅뜨고 정신을 집중해서 읽은 부분은 제7플롯 짜기이다. 단편, 중편, 장편 나아가 플롯이 없는 소설을 포함한 또다른 종류의 소설들의 플롯을 짜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가르쳐주고 있다. 존 가드너는 지속적 흐름을 지니는 플롯을 짤 때 사용하는 세 가지 방법이 구체적으로 소설의 종류에 따라 어떻게 적용되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면 플롯을 짤 때 사용하는 세 가지 방법이라 함은 다음과 같다.

 

1) 어떤 전통적인 스토를 혹은 실제의 사건을 차용

2) 클라이맥스로부터 거슬러올라가는 방식으로 작업

3) 최초의 상황으로부터 앞으로 나아가는 방식으로 작업

 

7장에서도 존 가드너는 예비 작가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팁들을 많이 알려주고 있다. 특히 플롯 짜기에 관한 글이니 만큼 예시-하나의 스토리를 만들어-를 들어 이해도를 높여주고, 단편 중편 장편의 플롯 짜기 차이점을 비교해가며 잘 짚어주고 있기에 나 같은 초짜도 플롯이 어떻게 짜여지는지를 이해하는데 별 어려움이 없다. 소설을 쓰고자 한다면 이 부분을 반복해서 읽으면 어느 정도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장편소설의 플롯은 어떠해야 하는지를 그림으로 보여준 사진을 첨부한다.

 

 

장편의 정서적 발전은 피히테의 곡선으로 나타낼 수 있다. 상승하는 사건 b는 사실상 매끄러운 것이 아니라 점점 더 강렬해지는 일련의 클라이맥스들(장편소설의 에피소드적 리듬)을 통과하는 것으로 엄밀히 말하면 왼쪽 그림이 아니라 오른쪽 그림과 같을 것이라고 존 가드너는 말한다. 장편소설을 읽을 때 이 곡선을 떠올리며 읽으면 좀 더 소설을 재밌게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마지막으로 존 가드너의 수많은 가르침과 그를 뒷받침하는 명언들 중에서 소설 쓰는 사람의 마음가짐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잘 보여 글을 소설의 기술에서 발췌해 옮겨놓는다.

 

가장 고차원적인 의미에서의 솜씨 좋은 글을 쓴다는 말은, 자신의 작품을 읽을 백 명의 독자들 중 한 명은 죽어가고 있거나 혹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죽어가고 있다는 가정에 쓴다는 것을 뜻한다. 내 말은 모든 작가가 자신의 작품이 절망에 빠진 사람에게 읽힐 수도 있고, 혹은 그것을 읽은 사람이 죽으려는 마음을 품거나 살려는 마음을 품게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내 말은 작가들이 자신도 모르게 어떤 피해를 끼칠 수 있을지를 늘 생각해야만 하고, 피해를 끼치지 말아야 한다는 것뿐이다. 진정한 예술가는 절대 돌팔이 외과의가 되려 하지 않는다. 그가 느끼는 예술의 가치와 영예는 예술이-심지어 나쁜 예술도-힘이 세다는 확신에서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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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9-01-05 22: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지난 수요일날 회사에서 들은 최진석 교수
의 강의에 따르면 우리가 글을 읽는 것은
궁극적으로 글을 쓰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이제 그만큼 읽었으면 글을 쓸 때가 된
걸까요? ㅋㅋㅋ

맞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섯갈리네요.

책으로 글쓰기를 배운 사람의 글은 과연
어떨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인스타에서 키스를 책으로 배운 사람
(오현경)에 대한 짤이 너무 욱겼어요.

뒷북소녀 2019-01-05 22:08   좋아요 1 | URL
키스를 책으로 배운 사람 짤이라니.ㅋ 궁금한걸요

설해목 2019-01-06 00:33   좋아요 0 | URL
최진석 교수가 한 말과 비슷한 말을 저도 어디에선가 들었던 것 같아요. 김영하 작가였나....
읽다 보면 쓰고 싶어지는 건 당연한 건지도 모르겠어요.
자신의 의지와 글쓰기에 대한 집념만 있다면 수업이든 독학이든 문제가 될 것 같지는 않은데
글쎄요. 앗... 김연수 작가가 영문학 전공이긴 하지만 독학으로 문학공부 해서 등단했다는 이야기는 예전에 듣긴 했네요. 그래서인가 김연수 작가는 꾸준히 책읽으며 공부하는 소설가인 것 같아요.

그런 짤이 있다니.... 휴일이 다 가기 전에 찾와봐야겠어요. ㅋㅋ

stella.K 2019-01-06 15:2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설해목님 저는 님께서 언제고 한번쯤은 창작교실을 다녀보시라고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사실 저도 어디를 막 찾아서 다니고 하는 스타일이 아닌데
우연찮게도 다니게 됐는데 생각 보다 아주 좋은 경험이었어요.
워크숍으로 진행되 안 쓰면 안되는 구조속에 나를 집어 넣는 거죠..
뜻을 같이하는 사람과 삶을 나누고, 정보 교환도 하는 경험도 좋았구요.
그러지 않으면 평생 못 쓰더라구요.
물론 창작 교실을 수료하면 옛날의 나로 돌아갈 수 있지만
한 번 글을 써 보고 돌아가는 거랑 한 번도 그런 곳에 발을 담가 보지 않은 거랑은
그게 좀 다르더라구요.
독자를 생각하는 건 둘째 문제고 내가 소설을 써 봤다는 이 경험이 먼저인 것 같더라구요.
그리고 선생님들은 그런 얘기하지요. 자기 본업을 가지고 있고 소설가는 부업으로 생각하라고.
가드너의 말이 맞아요.
전업작가는......미쳐야할 수 있는 거죠.ㅠㅋㅋ

카알벨루치 2019-01-06 15:30   좋아요 2 | URL
미쳐야 쓴다...아!!!

stella.K 2019-01-06 15:39   좋아요 2 | URL
ㅎㅎ 남의 얘기 엿이나 듣고 나빠요, 카알님!ㅋㅋㅋㅋ

카알벨루치 2019-01-06 15:42   좋아요 2 | URL
남의 이야길 엿들은게 아니고 들렸어요 ㅋㅋㅋㅋ쥔장없는 방에서 어지럽히고 도망가야긋다 ㅎㅎㅎ

stella.K 2019-01-06 16:03   좋아요 2 | URL
도망가야긋다.ㅎㅎㅎㅎ
어디 가욧? 이리 오세욧!ㅋㅋㅋㅋ

카알벨루치 2019-01-06 16:56   좋아요 1 | URL
무서워 안도ㅑ~ㅋ

설해목 2019-01-06 21:54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요. 쓸 수밖에 없는 환경에 저를 몰아넣아야 할 것 같긴 하네요.
제 의지만으로는......--;;;;
가드너의 말에 용기를 얻기보다는 꺾이긴 했지만 그래도 뭔가 얻은 건 있는 것 같아요. ^^

설해목 2019-01-06 21:55   좋아요 1 | URL
카알님!!! 왜 이렇게 귀여우셔요. ㅋㅋㅋㅋ

카알벨루치 2019-01-06 22:48   좋아요 0 | URL
도망 멀리가서 먼말인지 안 들리요~헉헉!!! 숨차~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