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문 테이크아웃 10
최진영 지음, 변영근 그림 / 미메시스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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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을 먼저 읽은 친구가 내가 읽어보며 좋겠다며 선물로 책을 보내주었다. 다른 친구들이 아닌 왜 내게 이 소설을 읽어보라고 했을까 싶어 펼쳤는데... 첫 문장을 읽으니 친구의 마음을 알 것 같았다. 신우처럼 내게도 더 이상 나이를 먹지 않는 동생이 있으니까... 영원히 서른아홉 살의 모습으로 기억될 가족이 있으니까... 동생 신우를 잃은 화자처럼 나도 어떤 이유든 찾아내어 그것이 납득이 되어야만 더는 누구도 원망하지 않을 테니까...

 

짧은 한 편의 소설이라 한숨에 읽어내려 갔다. 읽는 동안에는 그냥 내가 소설을 읽고 있다는 무덤덤한 자각 정도만 들었을 뿐이다. 옥상에서 뛰어내린 신우에게도 동생이 왜 죽었는지 몰라 방황하는 형에게도 내 감정을 쉽게 교차시킬 수 없었다. 그저 작가의 문장이 예사롭지 않구나, 이 작가가 세계를, 삶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알 것 같기도 하다 정도의 감상만 들었다. 그런데 소설을 읽고 잠들려고 누운 그 밤 이후로, 형이 자살한 신우에게 품게 된 의문과 미움, 죄책감과 원망 등이 뒤섞인 소용돌이의 진동이 내 가슴에도 파문이 되어 밀려오는 게 아닌가. 동생을 저세상으로 보내고도 덤덤하게 잘 지내고 있다고 믿었는데... 그렇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다.

 

왜 그랬을까. 우리 가족이 짐작하는 그 이유 때문이었을까. 정말로 그게 다 인걸까. 너는 신우보다도 더 가족이 많은데 신우네와는 다르게 너는 가족들과 사이도 좋았는데 그 순간에 가족들 생각은 정녕 떠오르지 않은 걸까. 왜 네가 마지막으로 통화한 사람이 가족 중 한 사람이 아니라 친구였을까. 너에게 부모는, 형제자매는, 남편은, 아이들은 아무것도 아니었던 걸까. 도대체 우리가 무얼 놓친 걸까. 너를 놓치기 전에 알아채야했던 건 뭘까. 한번 묻기 시작한 질문은 끝이 없다. 대답해줄 사람은 정작 아무 말도 할 수 없는데도... 남겨진 사람들은 서로에게 묻는 것조차 상대에게(그게 가족이라 할지라도) 상처가 될까봐 그저 각자 스스로에게 묻고 스스로가 답하며 그렇게 미련 없이 떠난 너를 조금이라도 이해해보려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자살이 어때서. 자기를 죽이는 게 뭐 어때서. 다들 조금씩은 자기를 죽이면서 살지 않나? 자기 인격과 자존심과 진심을 파괴하고 때로는 없는 사람처럼, 죽은 사람처럼, 그러지 않나? 그렇게 사는 게 죽는 것보다 끔찍할 수 있다. 그럼 죽을 수 있지. 죽는 게 뭐 이상해. 자살이라고 달라? 남을 위해 죽을 수 있다면 자기를 위해 죽을 수도 있지. 자기를 구원하는 방법이 죽음뿐인 사람도 있지. _p.48

 

신우를 미워하지 않기 위해 신우의 자살을 이해하려는 것인지도 모른다. 미워하고 싶지 않다. 욕이라도 해주고 싶다. 죽지 말았어야 했다. _p.54

 

혼자이던 언니나 동생과 달리 가족이 있기에 쓰러지신 아버지에게 바로 달려오지 못한 채 울면서 동생이 핸드폰에 적었던 글을 동생이 떠나고 나서야 보게 되었을 때 알았다. 동생은 가족에게 그것도 감사하고 걱정되는 마음조차 말로 표현하지 못하고 혼자 일기장에 적는 사람이라는 걸. 무엇이든 혼자 간직하고 삭히는 사람. 그런 동생이 남편과 아이들과 떨어져 외지로 발령이 났을 때 겪었을 고통을 우리 가족은 너무 안일하게 생각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오죽 했으면 남에게 아쉬운 소리를 죽기보다 싫어하는 동생이 장에게 승진도 필요 없으니 아프신 시아버지와 어린 아이들의 문제가 조금 해결될 때까지 만이라도 몇 년 더 가족과 있을 수 있게 해줄 수 없겠느냐는 글을 올렸을까. 그리고 그 간청이 묵살되고, 추운 겨울날 우리나라에서 제일 춥다는 그 도시에 가서 혼자 지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부임한 직장의 사람들 텃새에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동생은 얼마나 춥고 외롭고 힘들었을까. 그 도시로 간 후 떠나는 그날까지 춥다고 추워서 견딜 수가 없다고 말하는 동생의 그 간절한 외침을 왜 우리 가족들은 알아채지 못했을까. 조금만 견디면 나아질 거라는 모두의 격려와 충고가 동생에겐 죽으라는 말밖에 되지 않았던 거라 생각하면 당장이라도 이 혀를 잘라버리고 싶다. 마지막 통화를 한 친구에게 나만 없어지면 다들 행복할거라던 동생의 말은 사는 내내 우리 가족의 심장에 박혀 있을 것이다. 남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느니 차라리 죽음을 택한 동생의 선택을 곱씹으면서 이해하려 하면서 살아가는 게 남은 가족이 할 수 있는 전부일지도... 화나고 밉고 원망하는 마음을 흘려보내고 불쌍하고 그립고 안타까운 감정만을 남겨놓기 위해서라도 나는 더 열심히 동생의 삶을 생각하려 한다. 이해하려 한다.

 

난 정말 아는 것도 없으면서 사람들이 죽을까 봐 걱정만 한다. 걱정을 진통제처럼 소비한다. _p.64

 

별일 아니다. 어쨌든 죽는다. 부모님도 나도 죽는다. 신우는 조금 일찍 죽었을 뿐이다. _p.48

 

동생이 떠나고 우리 가족에게 남은 후유증은 많고 많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큰 후유증은 서로의 안위에 대한 지나친 걱정이다. 부모님도 나도 막내동생도 뜻밖의 시간에 가족의 전화를 받게 되면 덜컥 겁부터 난다. 이번엔 무슨 일이지? 누구에게 문제가 생긴 거지? 동생의 죽음을 알리던 통화의 충격을 다들 잊지 못한 채 후유증처럼 달고 살고 있다. 수화기 너머로 통곡하던 부모님의 울부짖는 소리를 어떻게 지워낼 수 있을까. 그날 이후로 우리 가족은 아침저녁으로 서로의 안부를 묻는다. 혹여 전화를 받지 않거나 문자메시지에 답장이 없으면 심장이 두근거려 하던 일에 집중을 하지 못할 정도다. 가족이 있는 곳에서도 죽을 수 있었는데 하물며 혼자 있는 자식들에게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른다며 부모님은 하루 종일 걱정을 달고 계신다. 사람은 당연히 죽는 거고 죽는 데는 순서가 없다는 걸 분명히 잘 알고 있는데도 죽음에 대한 공포가 죽음을 통해 더 생생해졌다. 적어도 우리 가족에겐...

 

한국은 세계적으로 자살률 1위 국가라는데 내 주변에 자살한 사람은 내 동생뿐이다. 다들 다치거나 아프거나 늙어서 죽는데 내 동생은…… _p.13

 

2년 전쯤인가 ebs 다큐프라임 <감정시대>에서 방영되었던 너무 이른 작별을 볼 때만 하더라도 자살이란 나와는 거리가 먼 죽음이었다. 아니 죽음 자체가 거리가 멀었다고 하는 게 맞겠다. 유가족이 되는 것도 남의 일처럼 생각되었는데 하물며 내가 자살 유가족이 될 줄이야...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내가 동생을 욕보이고 있는 건 아닐까 조심스럽고 죄책감이 들기도 한다. 친척들은 지금까지도 동생이 사고로 죽은 줄 알고 있다. 나 역시 처음에는 친구들에게 그렇게 동생의 죽음을 알렸다. 장례식에는 우리 가족 외에는 어떤 친척도 부르지 않았다. 그 죽음이 이해가 안 되어 사십구재도 지내지 않았다. 그저 나는 혼자 집에서 108배를 하며 동생의 명복을 빌었다.

 

너무 이른 작별다큐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벌써 10년 넘게 자살률 1위인 나라인데 그렇다면 자살 유가족도 상대적으로 많은 나라일 텐데도 유가족들은 자살에 대한 편견 때문에 죄인처럼 조용히 숨어 지내고 있다고 한다. 가족을 지켜내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자살은 오롯이 가족의 책임이라는 편견 뒤에서 온갖 감정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있는 나같은 유가족들이 얼마나 많을지... 엄마 아빠는 결혼 후 평생을 사셨던 동네를 떠나고 싶어 하신다. 친척이며 지인들 모두 사고사로 알고 있는데도 당신들의 죄책감과 절망 때문에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숨고 싶어 하신다. 그러지 말라고 남들의 이목 따위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씀드려도 아직까지는 사람들과 만나 어울리는 것이 힘드신 것 같다. 동기간을 잃은 것과 자식을 잃은 것은 그 아픔과 슬픔의 무게가 다를 테니 그런 부모님을 그저 지켜보는 수밖에...

 

징후도 없었고 유서도 남기지 않았다. 아주 사소한 메모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 남겼는데 알아보지 못하는 걸 수도 있다. 난 동생이 풀던 문제집이나 교과서를 하나도 버리지 않았고 요즘도 자주 들춰 본다. 거기 뭔가가 있을지도 모르니까. 교과서 귀퉁이에 적힌 짧은 메모라도 단서가 될 수 있으니까. 유서조차 남기지 않은 자살이라니. 고통스럽다. 살아 있는 모든 사람에게 복수하는 것만 같다. 우린 죽을 때까지 동생이 남긴 숙제를 풀어야 한다. 언젠가는 답을 알게 될까?_p.11

 

몇 해 전 학교 폭력(왕따) 문제로 자살한 고등학생의 사건을 사무실에서 맡아서 소송을 한 적이 있다. 한 명은 남학생이고 또 한 명은 여학생이었는데 두 사람 모두 남긴 유서가 없어 명확하게 가해자를 가려내고 죽은 이유와 학교폭력과의 관계를 밝히는 게 쉽지만은 않았다. 사건이 일단락된 후 변호사와 그런 말을 나눈 적이 있다. 그렇게 죽을 거면 남은 가족을 위해서라도 유서를 남길 것이지... 이유를 알지 못하는 죽음이, 이해할 수 없는 죽음이 남은 가족들에게 얼마나 큰 고통인지... 죽은 당사자들은 미처 생각 못했을 거다. 그런 생각까지 할 수 있었다면 자살하지 않았을지도... 동생 역시 유서를 남기지 않아 그저 가족들은 짐작만 할 뿐이다. 남겨질 가족에게 어떤 당부라도 해주었더라면 그 뜻을 받들어 좀 덜 죄책감을 느끼며 덜 고통스러워하며 살지 않을까 그런 부질없는 생각도 종종 한다.

 

소설과 함께 실린 변영근의 그림을 찬찬히 보았다. 그림에 쓰인 이 색감을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까. 시퍼렇게 가슴에 멍이 들었다고 할 때의 그 파랑을 떠올리면 된다고 해야 할까. 푸르죽죽하게 변해버린 마음 같다고 할 때의 그 푸름을 떠올리면 된다고 해야 할까. 입술이 파랗게 질려 덜덜 떨고 있던 동생의 마지막 모습을 떠오르게 하는 색이라고 해야 하나. 좋아하던 파랑이 이렇게 차갑고 서늘하고 어둡고 칙칙하고 아프게 느껴질 날이 올 줄 어찌 알았을까.

 

비상문이라는 제목을 곰곰이 생각해 봤다. 신우 인생에 갑작스레 어떤 재난 같은 일이 닥쳤다면 그랬다면 신우는 재난을 피하기 위해 허겁지겁 비상문을 열고 자신에게 닥친 일들을 해결해가며 삶을 이어나갔을까. 죽음을 선택하는 대신... 지하철 2호선을 타고 출퇴근 하는 동안 전철에서 사람들과 매일 부대끼며 드는 생각은, 동생도 이렇게 사람들과 몸과 몸으로 부대끼며 치열하게 살아가는 사람들 틈에서 생활했다면 그랬다면 좀 다른 선택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거다. 너에게 일어난 일은 정말이지 다른 사람들에게는 걱정거리조차 되지 않는 일이라고... 하지만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몫은 저마다 다르다는 걸 모르지 않으니 애써 부질없는 생각을 털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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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17 14:5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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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18 09:32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