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이야기는 나에게 삶에서 자신이 해야 할 바를 성취하는 인간의 능력에는 한계가 없다는 사실 나이의 한계는 물론이고 을 가르쳐주었다. 이 넓고 복잡한 세상에서 우리 한 사람한 사람의 내부에는 놀랍고도 위대한 잠재력이 자리잡고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결정적인 기회가 오지 않는 한 그 숨겨진 재능이 발휘되는 일은 거의 없다. _ <두 늙은 여자> 서문 중에서

 

나이란 것은 너무나 눈에 띄는 표지여서, 우리는 인생의 후반에 우리 몸과 정신에 일어나는 모든 일을 노화의 결과로 받아들인다. 그래서 노인들이 아주 조금이라도 별난 행동을 하면 그것에 기행 또는 노망이라는 꼬리표를 붙인다. 그들이 평생 동안 그런 행동을 해왔을지라도 말이다. 그렇게 정신을 구속하는 마인드세트를 가지고 있으면 꼭 끼는 갑옷을 입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성장과 유연성, 모험이 불가능하다. 게다가 삶의 질뿐만 아니라 그 길이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 _ <마음챙김> p.130

    

 

최근에 그 제목만으로도 나의 호기심을 자극하던 책 <두 늙은 여자>를 읽었다. 이 책을 먼저 읽은 50대 지인이 강추하기도 했고 젊은보다는 늙은이란 말에 더 민감한 내 나이도 이 책을 선택하는데 한몫 했다. 책은 비교적 얇은 편이라 펼친 그 자리에서 단숨에 다 읽어버렸다. 그리고 이 책을 읽는 동안 얼마 전에 읽은 책인 <마음챙김>이란 책이 자동반사적으로 떠올랐다. 두 책을 엮어보자면, <마음챙김>에서 말하는 이론을 고스란히 경험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 바로 <두 늙은 여자>라 하겠다. 노년과 노인, 나이듦에 대한 강력한 마인드세트로 인해 어쩔 수 없는 두려움을 꼬리표처럼 달고 있던 내게 두 책은 마음의 변화를 일으키는 계기가 되어주었다. 그래서 이렇게 내가 느낀 것을 잊지 않기 위해서라도 간단하게 글로 남겨놓으려고 몇 자 적어본다.

 

<두 늙은 여자>는 제목 그대로 두 늙은 여자의 특별한 생존에 대한 이야기이다. 알래스카 극지방의 유목민인 두 여자는 맹추위가 닥친 어느 해 식량부족으로 인해 이동을 하던 부족의 무리로부터 버림을 받는다. 단지 두 늙은 여자가 부족의 이동 속도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두 늙은 여자 칙디야크와 사는 버림받았을 당시 80세와 75세로, 추운 겨울 부족에게 버림을 받았다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두 사람은 젊은 시절 자신들의 경험과 신체적 장애까지도 극복할 강인한 정신력을 통해 살아남았고 자신들을 버린 부족민들을 도와줄 수 있었다. 그리고 죽는 날까지 부족민들로부터 사랑과 배려를 받았다. 생각건대, 두 사람이 버림받는 일 없이 계속해서 무리 속에 있었다면 그들의 최후는 이야기와는 전혀 달랐을지도 모른다.

 

# 마인드세트를 부술 기회를 갖는다는 것.

 

결과적으로 부족으로부터 버림을 받음으로써 칙디야크와 사는 죽는 날까지 행복할 수 있었다. 그녀들이 버림받는 일 없이 부족에 남아있었더라면 부족민들에게 멸시를 당하다가 비참한 최후를 맞거나 적어도 행복한 죽음을 맞지는 못했을 것이다. 두 사람에게는 죽음의 선고와도 같던 내쳐짐을 다시 한번 스스로를 구해낼 절대절명의 기회로 만들었던 건, 결국 두 사람에게 오랫동안 고정되어 있던 마인드세트를 부수는 것으로 가능했다.

 

노인들이 겪는 문제의 많은 부분이 아동기에 내면화된 부정적 고정관념의 결과일 가능성이 있다. 우리는 노화로 인한 쇠퇴중 실제로 유전자에 의해 계획된 것이 얼마나 되는지, 선입견에 기인하는 것이 얼마나 되는지 알지 못한다. 또 평온한 것이든 신나는 것이든 간에 우리가 그 가능성에 마음을 연다면 인생의 후반기에 얼마나 많은 선택이 가능할 것인지도 알지 못한다. _ <마음챙김> p.142

 

긴 세월 동안 우리는 많은 것들을 배웠어. 하지만 노년에 들어서자 우리는 삶에서 우리의 몫을 다했다고 생각했지. 그래서 더 이상 전처럼 일하기를 그만두었어. 우리의 몸은 우리의 예상보다 좀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아직 건강한데도 말이야.” _ <두 늙은 여자> p.44

 

우리는 그들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할 거야! 우리 부족에게, 그리고 죽음에게 그들이 틀렸다는 것을 말이야!” _ <두 늙은 여자> p.44-45

 

죽음이라는 절망을 삶이라는 희망으로 바꾸는 것은 결국 자신밖에는 할 수 없다는 걸 두 여인은 보여주고 있다. 노인은, 늙는다는 건 이런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갖고 있던 두 여자에게 찾아든 버려짐이라는 절망은, 그녀들 스스로를 되돌아보게 하였고 그리고 자신들이 아직까지 일할 수 있을 정도로 건강하다는 것을 자각하게 해주었다. 곰곰 생각해보면 자신을 규정 짓는 건 스스로가 아니라 타인이나 이미 제도화된 시스템, 오래된 관습일 경우가 대부분이다. 오래된 관습과 고정관념으로 인해 스스로를 규정 짓다보니 우리는 우리 안에 어떤 잠재력이 숨어 있는지 찾아볼 기회조차 갖지 않는다. 그리고 스스로를 들여다볼 기회가 왔을 때조차도 자신을 믿기보다는 외부의 잣대로 미리 단정 짓기 일쑤다. 그럼으로써 배울 기회도 성장할 기회도 심지어는 살 기회조차 놓치고 그저 대부분의 남들처럼 살아가는 게 정답이라고 여긴다. ‘내 인생은 나의 것이란 노랫말처럼, ‘사람은 스스로 믿는 대로 된다.’는 체호프의 말처럼, 나를 믿어야 그게 진정한 내 인생이 된다는 걸 보여준다. 두 늙은 여자는...

 

# 우리는 모두 늙는다.

 

두 늙은 여자는 애써 충격을 감추며 모닥불 앞에서 꿋꿋한 자세로 턱을 치켜들고 앉아있었지만, 그들의 모습은 늙고 작아 보였다. 그들은 젊은 시절 아주 늙은 사람들이 뒤에 남겨지는 모습을 본 적이 있었지만, 자신들에게 이런 운명이 닥칠거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_ <두 늙은 여자> p.20

 

우리는 젊을 때 노인에 관한 질문을 받으면 자신은 영원히 늙지 않는다는 전제 아래 그 질문에 대답한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전반적인 능력 저하와 노령 간의 상관관계에 대한 마인드세트를 형성한다. 언젠가 자신이 노인이 되었음을 깨닫는 순간부터 이런 상관관계가 위협적으로 다가오고 두려워지기 시작한다. 노인이 그런 두려움을 가지고 있으면 매사에 소극적이 되고 뭔가에 새로 도전해 볼 의욕도 움츠려들기 쉽다. _ <마음챙김> p.145

 

칙디야크와 사 역시 젊은 시절에는 자신들이 늙어서 버림받을 거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하지만 노인이 된 그녀들은 결국 부족에서 내쳐졌고 그 충격은 꽤 오래 그녀들을 괴롭혔다. 부족민들이 자신들도 결국은 늙는다는 것을 자각하고 있었더라면 두 여인에 대한 처사를 달리 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지하철이나 버스 노약석에 앉은 어르신들을 보면 이런 생각이 들곤 한다. ‘저 나이를 드시기까지 어떠한 어려움들을 겪으셨을까.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는 것도 이렇게 힘들었는데 저분들처럼 끝까지 잘 살아낼 수 있을까.’ 뭐 이런 마음이 드는 거다. 나 역시 늙는다는 것을 자각하며 산다는 건, 좀더 많은 사람들을 이해하고 배려할 여지가 커진다는 것일지도.

 

# 한계 짓지 말기!

 

 우리가 한 걸음 한 걸음 걸을 때마다 우리가 가려는 곳에 가까워지는 거야. 오늘 나는 몸이 좋지 않지만, 내 마음은 몸을 이길 힘을 갖고 있어. 내 마음은 우리가 여기서 쉬는 대신 앞으로 나아가기를 원해. 그게 내가 하고 싶은 일이야.” _ <두 늙은 여자> p.69

 

우리는 노년기의 발달은 거기까지, 하는 식으로 자의적인 한계선을 긋지만 그 대부분은 과학적 근거가 전혀 없다. 우리의 노년기는 삶은 다름 아닌 우리 자신이 가진 노년상과 그에 포함된 수백 가지의 작은 선입견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_ <마음챙김> p.150

 

두 책을 통해 내가 확실히 배운 점이 있다면 그건 바로 스스로를 한계 짓는 것이 얼마나 멍청한 짓인가 하는 것이다. 한계를 짓는 순간 신체는 물론 지적 능력 등 내면의 힘까지 그 한계에 갇힐 수밖에 없다는 걸 두 책을 통해 확실히 깨달았다. 타인이나 사회, 제도가 만들어진 한계에도 맞서 싸워야 하겠지만 무엇보다 스스로가 만든 한계에 자신을 가두지 말아야 한다는 걸, 그것이 새로운 나와 만나는 지름길이라는 걸 이번에 확실히 마음에 새겨두었다. 물론 실천의 문제가 남아있지만 결국 내 마음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건 나뿐이라는 걸 잊지 말자!

 

# 세월이 주는 경험과 지혜

 

부족과 두 여인 간의 관계는 점점 더 좋아졌다. 양쪽 모두 고난을 통해 교훈을 얻었고, 그때까지 알지 못했던 사실을 깨달았다. 부족은 자신들이 강하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그들은 나약했다. 그리고 무리 가운데 가장 대책 없고 쓸모없다고 여겨졌던 두 늙은 여인이 실제로는 강한 존재라는 사실이 증명된 것이다. 이제 그들 간에는 암묵적인 이해가 자리잡았다. 부족은 그들이 충고를 구하고 새로운 것들을 배우기 위해 두 여인과의 교류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두 여인이 그렇게 오래 살아온 덕택에 자신들이 예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지식을 갖고 있다는 것을 이제 그들은 알았다. _ <두 늙은 여자> p.153

 

모두 그들의 의견을 높이 산다. 그들 중 특히 똑똑하고 공정한 이는 크나큰 영향력을 행사한다. 몇몇 나이 든 미망인들은 가장 역할을 하는데, 가족들은 그 가장에게 철저히 순종한다. 노인들의 경험은 그 집단에 도움이 된다. 그들은 어떻게 먹을 것을 찾고 집안일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안다. 성문화되어 있지 않은 그들의 법을 다음 세대에 전수하고 그 법을 존중하게 만드는 것도 바로 그들이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모범을 보이고, 필요한 경우에는 나쁜 짓을 하는 사람을 나무라거나 심지어 벌을 주기도 한다. _ S. de Beauvoir, Old Age (London: Andre Deutsch Ltd., 1972) <마음챙김> p.140에서 재인용 (사라진 야드한 부족에서 노인들은 어떤 존재인지를 보여주는 글)

 

고향집에 며칠 머물면서 부모님께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들었다. 배움도 짧고 삼척 이외에는 어디를 가보신 적도 거의 없지만 그 분들이 하시는 이야기에는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지식과 지혜가 넘쳐났다. 대부분은 무언가를 키워내고 또 그것을 음식으로 활용하는 법 등 의식주와 관계된 것들이었다. 도시에서야 돈만 있으면 의식주는 저절로 해결이 가능하지만 만약 전쟁이나 자연재해로 인해 돈으로도 해결이 되지 않은 상황을 만나게 된다면 결국 끝까지 살아남는 건 의식주에 대한 지식이 풍부한 사람들일 것이다. 그리고 그런 지식과 지혜를 갖고 계신 분들은 대부분 의식주를 직접 해결하며 살아온 나이 많은 분들일 테고... 칙디야크와 사 역시 살아온 세월에서 얻은 산 지식과 경험으로 자신들은 물론 무너져가는 부족을 구해냈다. 허투루 나이 들지 않는다는 아버지의 말씀이 새삼 달리 가슴에 와 닿는다.

 

# 혼자가 아닌 둘 나아가...

 

자신이 포기한다면, 친구 역시 포기하리라는 것을 알 만큼은 오래 살았던 것이다. _ <두 늙은 여자> p.59

 

몸이 음식을 필요로 한다면, 마음은 친구를 필요로 하지. _ <두 늙은 여자> p.84

 

그들이 상대의 힘겨운 과거에 대해 알게 되자 서로에 대한 존중의 마음이 커져갔다. _ <두 늙은 여자> p.87

 

저들이 고통받고 있다는 걸 잊어선 안 돼. 맞아, 저들은 성급하게 우리를 죽음으로 내몰았지. 하지만 이제 우리는 저들이 틀렸다는 걸 증명했어. 만약 저들이 같은 잘못을 저지른다해도 이제는 우리 둘 다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다는 걸 알아.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많은 것을 증명했어. 이제 우리는 자존심은 잠시 내려놓고 저들이 고통받고 있다는 사실을 잘 생각해야 해. 성인들을 위해서 그러고 싶지 않다면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말이야. 당신 사랑하는 손자를 잊을 수 있어?” _ <두 늙은 여자> p.141-142

 

 

혼자가 아닌 둘이였기에 살아남을 수 있었던 칙디야크와 사. 이 두 사람의 이야기는 우정을 뛰어넘어 결국은 공동체로 살아간다는 의미를 되새김질해보게 된다. 두 사람은 살아남아서 생각할 여유를 갖게 되자 부족에게 버림받은 쓰라림으로 괴로워한다. 그리고 부족과 다시 만나게 되었을 때 처음에는 분노와 불신으로 인해 그들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지만 결국은 서로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함께 지내게 된다. 두 사람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건, 두 사람의 강한의지도 있었지만 그들을 위해 칙디야크의 딸과 손주가 남기고 간 요긴한 물건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결국 두 사람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 역시 다른 사람들의 배려와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혼자가 아닌 둘 나아가 공동체를 이룬 사람들이 서로를 배려하고 존중할 때 제대로 살아갈 수 있다는 걸 두 늙은 여자의 이야기로 새삼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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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8-08-08 22: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수년 전에 사서 읽지 못하고 있는 디 브라운
의 <나를 운디드니에 묻어주오>

그리고 사서 읽다만 장 아메리의 <늙어감
에 대하여>가 떠오르네요.

야생에서의 생존이라면, 노인장들의 지혜
를 따라갈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도시인
들은.

설해목 2018-08-09 08:59   좋아요 0 | URL
제 관심이 그래서인가 요근래 노년이나 나이듦에 대한 책들이 자주 눈에 띄더라구요.
저 두책도 찾아봐야겠습니다. ^^

AgalmA 2018-08-11 10: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버지에게 강간 당한 강력한 트라우마를 가지고 패트릭 멜로즈 시리즈를 쓴 에드워드 세인트 오빈은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트라우마는 분열을 초래하며, 기억을 억압하지는 않는다고˝ 하더군요. 기억하고 못 하고의 문제가 아니라, 표현을 제대로 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라는 거죠. 그래서 오빈은 글로 풀어낸 걸 테고요.
쓰신 리뷰의 초점처럼 어릴 적 트라우마나 주변의 제약과 한계를 내면화하지 않고 오픈해서 풀어나가는 게 지혜로운 삶의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설해목 2018-08-11 22:19   좋아요 0 | URL
맞아요. 경험한 것을 어떻게든 밖으로 표출하는 것! 그게 자신을 지키는 하나의 방법이란 생각을 해보게 되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