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저벨 
이영수(듀나)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2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계간 [자음과 모음]에 연재되었을 때부터, 단행본으로 나오기를 기대한 책이었습니다. 드디어 나왔군요!


 
 
 
셜록홈즈 : 실크 하우스의 비밀 
앤터니 호로비츠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가지 / 2011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이 리뷰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그렇다. 저기 그가 파이프를 손에 들고 서 있다. 그가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그러고는 미소를 짓는다. “사냥이 시작되었네…….””(17쪽)

 

 

셜록 홈즈가 돌아왔다. 이미 작가가 죽은 지 오래인데 어떻게 새 소설이 출간될 수 있는가? [셜록 홈즈 – 실크 하우스의 비밀]은 물론 코난 도일이 쓴 셜록 홈즈 시리즈가 아니다. 다른 작가가 쓴 ‘셜록 홈즈’다. 이런 종류의 소설들은 워낙 많이 출간되었다. 그러나 이 소설이 기존에 다른 셜록 홈즈 팬픽들과의 차이점은 바로 코난 도일 재단에서 처음으로 공식 인정한 소설이라는 점이다. 작가인 앤터니 호로비츠는 국내에는 잘 소개되지 않아 낯설지만 현지에서는 2007년 영국 출판업계 시상식에서 올해의 작가로 선정된 소설가이자 각본가라고 한다.
대표작 「알렉스 라이더 시리즈」는 전 세계적으로 1200만부나 팔렸다고 하니, 얼마나 유명한 작가인지 알 수 있다. 그런 앤터니 호로비츠가 쓴 [셜록 홈즈 – 실크 하우스의 비밀]은 결코 가볍게 쓴 작품이 아니다. 작가의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작가는 무려 8년 동안 자료조사와 인터뷰를 통해 작품을 준비했다.

 

 

“지금 쓰고 있는 이야기의 배경인 1890년도에는 런던 광역시 자치구라 불리는 4만 7000여 평의 지역에 약 550만 명의 주민들이 거주했고, 늘 그래왔듯 부유층과 빈곤층이라는 영원한 이웃이 아슬아슬하게 나란히 살고 있었다.”(107쪽)

 

 

코난 도일 재단이 공식 인정한 소설이라고 해서 마치 코난 도일이 되살아나서 쓴 듯한 ‘셜록 홈즈’ 시리즈를 기대한다면 실망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작품은 설정부터 원작을 이어쓴 작품이 아니라, 원작을 존경하면서 새롭게 쓴 오마쥬한 작품임을 드러내고 있다. 즉, 코난 도일이 쓴 원작과 함께 꽂아놓을 만큼 완벽히 같은 작품이라는 느낌보다는 코난 도일을 존경하는 후세의 작가가 썼다는 사실을 처음부터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이 소설의 얼개는 ‘납작 모자를 쓴 사나이’와 ‘실크 하우스’ 두 개의 사건이 섞인 장편인데, 이 소설의 허구적 설정 안에서는 사건 당시에 발표하지 않았다. 두 개의 사건이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에 개별적으로 발표할 수 없었으며, 워낙 충격적인 사건이기 때문에 사회 분위기상 출간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왓슨은 말한다.

 

 

“내가 그만한 여력이 될지 모르겠지만 집필이 끝나면 원고를 봉투에 넣어 채링 크로스에 있는 콕스 사로 보내 내 개인적인 서류를 보관한 금고에 넣어 달라고 할 것이다. 향후 100년 동안 봉투를 개봉하면 안 된다는 당부 사항도 첨부할 것이다. 100년 뒤에는 세상이 어떤 모습이고 얼마만큼 발전했을지 상상이 안 되지만, 미래의 독자들은 현재의 독자들에 비해 추문과 타락상에 좀 더 면역이 되어 있을지 모른다. 나는 그들에게 지금까지 본 적 없는 관점에서 그린 셜록 홈즈의 마지막 초상을 유품으로 남긴다.”(16~17쪽)

 

 

따라서 소설 속 화자인 왓슨은 서류를 금고에 넣어서 향후 100년 동안 개봉하면 안 된다는 사항을 첨부한다고 밝힌다. 즉, 왓슨이 사건 당시에는 공개할 수 없었던 충격적인 셜록 홈즈 사건 하나를 100년 후에 공개하는 조건으로 금고에 넣은 서류가 바로 독자가 읽게 되는 책인 것이다. 작가는 능청스럽게 100년 뒤에 세상이 어떤 모습이고 얼마만큼 발전했을지 상상이 안 간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추문과 타락상에 좀 더 면역이 되어 있을 것이라고 한다. 확실히 100년 뒤의 지금이기 때문에 작가는 더 충격적인 소재의 셜록 홈즈를 썼으리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작가의 치밀한 조사만큼 원전의 분위기를 잘 살렸다. 그러나 원전과 다른 점도 많이 존재하는데 이것은 이 작품을 쓰는 왓슨의 시점이 원전보다 시간이 지난 뒤라는 설정 때문에 가능하다.

 

 

“둘이서 주로 셜록 홈즈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대도 독자 여러분들은 그러려니 할 텐데, 나는 레스트레이드에게 사과하고 싶은 부분이 두 가지 있었다. 첫째로 나는 책을 쓰면서 그를 이른바 극찬한 적이 한 번도 없다. 지금 생각해도 퍼뜩 떠오르는 표현이 ‘쥐처럼 생겼다’고 한 것과 ‘흰 담비 같다’고 한 것이다. 그런데 잔인한 표현이기는 해도 틀린 말이 아닌 것이, 레스트레이드조차 조물주는 그에게 경찰이 아니라 범죄자의 얼굴을 부여했다고, 그쪽을 직업으로 선택했더라면 훨씬 더 돈을 많이 벌었을지도 모른다고 농담처럼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중략…) 하지만 내가 레스트레이드에게 지적 능력이나 수사력 나부랭이는 아예 있지도 않은 것처럼 간주한 것은 너무한 처사였다.”(94~95쪽)

 

 

작가는 이 설정을 살려서 원전에서 묘사된 허드슨 부인이나, 레스트레이드 경 같은 인물들의 다른 관점을 왓슨을 통해서 드러낸다. 이것은 원전의 느낌이 아니라, 21세기에 읽는 셜록 홈즈라는 것을 물씬 느끼게 한다. 원전을 잘 살린 부분은 작가가 얼마나 많은 조사를 했는지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셜록 홈즈가 상대방이 말하지도 않았는데 말이나 옷차림에서 모든 것을 추리하는 모습이나, 사건의 전개 과정 등에서 원전의 향기를 맡을 수 있어서 특히 좋았다.
차별화된 지점에서는 작가가 자기만의 해석이나 색채를 부여하려고 노력한 점이 또한 좋았다. 원전의 단순한 시각을 후세의 작가가 보완하고 풍성하게 만든 것이다. 셜록 홈즈가 죽고 나서 집필한 왓슨의 유품이라는 설정이 이를 가능케 했다. 원전의 캐릭터들에게 입체감을 부여하며, 이 작품이 셜록 홈즈 시리즈이면서 또 다른 개성과 의의를 지닌 독립적인 작품이 되게 한다. 독자들을 이 작품을 통해 원전에서 단순하게 비친 인물들을 다시 그대로 만나는 게 아니라 앤터니 호로비츠가 재해석한 인물들을 만나면서 원전을 새롭게 보는 시각을 갖게 되는 것이다. 이런 점이 원전이 있는 작품의 매력이 아닐까 싶다. 원전의 분위기를 잇는 것에만 급급한 게 아니라,(어설프게 흉내를 내느니 차라리 새롭게 재해석하는 것이 의미가 있을지 모른다.) 작가가 독자에게 “내 생각에 왓슨이 늙어서 이렇게 후회할 것 같은데 어때?”라며 묻는 듯하다.
작품의 또 다른 기본 설정인 충격적이기 때문에 공개하지 않았다는 점은 이 작품이 원전과 차별점을 가진다. 원전에서는 다루지 않은 충격적인 소재를 사용함으로써 차별화에 성공했고, 독자를 강렬한 이야기 속으로 끌어들인다. 이미 충격적이라는 암시가 있었기 때문에 읽으면서 사건의 내막을 미리 짐작할 수 있다는 점은 아쉬우나, 셜록 홈즈가 이런 사회적으로 심각한 사건에도 끼어들었을 경우에는 어떻게 될 것인가를 잘 풀어냈다는 느낌을 받았다.
물론, 원전의 이미지를 갖고 있는 독자들에게는 맞지 않을 수 있다. 왓슨의 관점 변화나 충격적인 소재 등이 이질감을 줄 수도 있다. 또한, 몇몇 이 작가가 넣은 설정이 재미를 주면서도 개연성을 해치는 지점이 있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예를 들면 소설 중간에 왓슨이 모리아티 교수와 만났다는 설정은 작가의 욕심으로 보이기도 한다.

 

 

“약속 하나 해주십시오, 왓슨 박사님. 오늘 이 만남은 홈즈 씨에게도, 어느 누구에게도 비밀로 하겠다고 소중한 모든 것을 걸고 맹세해 주십시오. 책에다 써서도 안 됩니다. 언급해서도 안 됩니다. 내 이름을 어디에서 접하더라도 처음 듣는 이름인 것처럼, 전혀 모르는 사람인 것처럼 해야 합니다.”(268쪽)

 

 

이는 충분히 팬픽으로서는 재미있는 설정이지만, 원전과 연결해서 생각하면 왓슨이 끝까지 모리아티를 미리 만났다는 사실을 영원한 비밀로 품고 태연한 척을 했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아무리 허구라고 해도 상식에 비추어 일어나기 어려운 일은 독자가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셜록 홈즈 – 실크 하우스의 비밀]은 지금까지 나온 다른 작가가 쓴 셜록 홈즈 소설들과 견주어도 상당히 잘 쓴 작품이다. 원전 그대로의 셜록 홈즈와 왓슨을 만날 수는 없지만, 다른 기반 설정 하에 재해석된 셜록 홈즈와 왓슨을 만날 수 있으며, 이들이 해결하는 새로운 사건이 충분히 독자의 두뇌를 자극한다. 두 개의 사건이 씨줄과 날줄처럼 엮이면서 독자를 혼란케 하고, 속속 밝혀지는 사건의 진상은 독자를 충격에 빠트리며 그 과정에서 홈즈는 누명을 쓰고 구치소에 갇히기도 한다. 추리와 모험이 적절하게 녹아들어 있으며 셜록 홈즈 시리즈 본연의 매력도 잘 깃들어 있다.
‘셜록 홈즈’는 세계에서 가장 많이 영화화된 가공의 인물이며, 탐정의 아이콘이자, 추리소설의 가장 대표적인 시리즈다. 그만큼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지속적으로 사랑받아온 캐릭터라고 할 수 있다. 코난 도일은 이제 없지만 앞으로도 셜록 홈즈 시리즈는 계속 나올 것이다. 그리고 그 중에서 [셜록 홈즈 – 실크 하우스의 비밀]은 원전과 함께 앞으로도 계속 회자될 또 다른 셜록 홈즈로 기억될 듯하다.
최근 영화 [셜록 홈즈 : 그림자 게임]의 개봉이나 BBC 드라마 [셜록] 시즌2의 방영으로 다시 한 번 ‘셜록 홈즈’에 대한 관심이 증폭된 상태에서 ‘셜록 홈즈’의 또 다른 사건 이야기는 셜록 홈즈를 활자로 더 만나고 싶은 독자들에게 좋은 선택이 되리라 생각한다.■



 
 
 



153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한국문학과 천주교
김인섭 지음 / 보고사 / 2002년 4월
11,000원 → 10,450원(5%할인) / 마일리지 320점(3% 적립)
[국내도서 분야 쿠폰] 분야별 3만원 1천5백원 쿠폰
[국내도서 쿠폰] 국내도서 구매시 최대 3천5백원 쿠폰
절판
누구에게나 아무것도 아닌 햄버거의 역사
조현 지음 / 민음사 / 2011년 8월
11,500원 → 10,350원(10%할인) / 마일리지 1,040점(10% 적립)
*지금 주문하면 "2월 6일 출고" 예상(출고후 1~2일 이내 수령)
이상문학상 알라딘 머그컵 증정, 구간 할인쿠폰, 댓글 추첨!

난세지략 2
조성기 / 아침나라(둥지) / 1997년 8월
6,500원 → 5,200원(20%할인) / 마일리지 160점(3% 적립)
[국내도서 쿠폰] 국내도서 구매시 최대 3천5백원 쿠폰
구판절판
난세지략 1
조성기 / 아침나라(둥지) / 1997년 8월
6,500원 → 5,650원(13%할인) / 마일리지 170점(3% 적립)
[국내도서 쿠폰] 국내도서 구매시 최대 3천5백원 쿠폰
구판절판


153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별 내리는 산장의 살인 
구라치 준 지음, 김은모 옮김 / 검은숲 / 2011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별 내리는 산장의 살인 : 본격 미스터리의 논리

 

 

 본격 미스터리라는 편협한 장르 속에서 걸작이 탄생하는 것은 기적에 가깝다. 하지만 그 기적이 지금 이렇게 독자의 눈앞에 있다. 이것이 진정한 행복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 니시자와 야스히코(작가)

 

 검은숲에서 구라치 준의 추리 소설 [별 내리는 산장의 살인]이 출간되었다. 국내에 첫 소개되는 작가인데 2001[항아리 속의 천국]이라는 작품으로 제1회 본격 미스터리 대상을 수상한 작가이다. [별 내리는 산장의 살인]1996년에 발표하여 제50회 일본 추리 작가 협회상 장편 부문 후보에 오른 작품이다. 검은숲 브랜드에서는 꾸준히 아직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재미있는 추리소설들은 소개하고 있다. 특히 성분 함량표라고 해서 고전의 반열, 대반전, 속도감, 캐릭터, 논리정연, 선정성 등 6개의 항목의 5점 만점으로 점수를 채점한다는 것이다. 처음 열어보는 색지에 적혀 있는데, 이것은 독자가 이 작품이 어느 지점에 중점을 두고 있다는 것을 미리 알고 읽을 수 있다. 혹은 서점에서 이 성분 함량표를 보고 작품을 살지 말지를 정할 수 있다. 이 작품은 대반전에 4.5점을, 캐릭터에 4, 논리정연에 5점 만점을 넘게 받았다.(무려 물음표로 표기되었는데, 이 성분 함량표는 독자들에게 강력한 추천의 역할도 함을 알 수 있다.) 그만큼 논리적인 해결이 뛰어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SF에서 하드 SF가 과학과 기술에 초점을 맞추고 엄밀한 과학적 이론과 원칙에 입각하여 적힌 가장 SF다운 SF라고 한다면 본격 미스터리는 수수께끼 풀이와 논리에 집중하는, 말 그대로 미스터리의 핵심, 가장 미스터리다운 미스터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작품은 그런 본격 미스터리를 맛볼 수 있는 작품이다. 물론 90년대에 나온 작품인 만큼 기존 본격 미스터리의 영향을 받으면서 또한 다르게 변주한 지점도 분명히 가지고 있다.

 [별 내리는 산장]은 눈 내리는 산장이라는 클로즈드 서클을 소재로 한 본격 미스터리다. 폐쇄된 산장, 그 안에 고립된 아홉 명의 사람들, 바로 전날까지 웃고 이야기하던 사람이 다음날 변사체로 발견되고 연쇄 살인이 일어나고 경찰이 해결해줄 수 없는 상황. 그야말로 추리 소설하면 바로 떠올릴 수 있는 기본적인 설정임에도 불구하고 진부하다거나 뻔하지 않고 오히려 독자를 매혹적으로 끌어들인다. 그만큼 탄탄한 이야기 전개 실력과 이야기를 전개하는 화자의 캐릭터를 친숙하게 그렸기 때문일 것이다.

 본격 미스터리에서 중요한 것은 치밀한 논리로 사건을 해결하는 것이다. 이 작품은 후반부의 뛰어난 논리 전개를 볼 수 있다. 그 전에 이 작품은 [일흔 다섯 마리의 까마귀]라는 쓰즈키 미치오라는 대가가 한 것처럼 각 챕터마다 작가가 독자에게 보내는 말이 적혀 있다. 이 말들은 정확히 사실만을 말하면서 독자를 안내하는 듯이 보이면서 한편으로는 오히려 이런 친절이 독자를 방심하게 만드는 역할도 하고 있다. 다 읽고 나서도 챕터마다 적혀 있는 글들이 모두 사실이며 동시에 그러면서 독자를 혼란케 할 수 있다는 사실에 작가의 능력에 감탄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홉 명이 산장에 갇힌다. 희생자는 두 명이고, 탐정은 한 명이며, 이야기를 관찰하는 주인공은 바로 탐정의 조수이다. 소거법을 적용하면 다섯 명 중에 한 명은 반드시 범인이다. 과연 범인은 누구일까. 본격 미스터리의 장점이라면 독자가 충분한 힌트를 제공받고 탐정보다 먼저 사건을 해결할 수도 있다는 점일 것이다. 정정당당하게 탐정과 혹은 작가와 게임을 하듯 대결을 하는 재미가 있다. 개인적으로는 작가에게 기분좋게 당했고 그 당함 덕분에 더욱 만족스럽고 재미있었던 독서가 되었다. 오랜만에 본격 미스터리를 읽고 본격 미스터리에서만 얻을 수 있는 재미를 느꼈다고 할까. 처음에는 눈 내리는 산장에 아홉 명이 갇히고 그 중 두 명이 연쇄적으로 살인된다는 정보를 접했을 때는, 너무 뻔한 설정에다가 맥없이 범인이 밝혀지는 게 아닐까 싶었지만, 이 소설은 그렇게 만만치 않았으며 놀라운 흡인력을 가지고 있었다. 하루만에 금세 읽어내려 갈 수 있는 소설이었고 논리도 탄탄했고 사건이 해결되는 순간에는 카타르시스를 느낄 만큼 재미있었다. 미스터리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한 번쯤 읽어보기를 추천하는 책이다. 국내에 소개가 안 된 작가인 만큼 과작이라고는 하나 이 작가의 다른 책들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종말 문학 걸작선 2 
제리 올션 외 지음, 존 조지프 애덤스 엮음, 조지훈 옮김 / 황금가지 / 2011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최후의 심판 _ 제리 올션





 1권보다 2권이 더 재미있다는 기대를 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2권의 첫 번째 실렸으며, 시작을 여는 단편으로 나쁘지 않다. 발상 자체가 뛰어나기 때문에 다 읽고 나서도 발상은 잊혀지지 않고 기억에 남는다. 그야말로 SF와 종교를 이렇게 매력적으로 결합시킨 작품들은 시간이 지나도 강렬한 인상이 지워지지 않는 것이다.

 이 소설의 발상은 이렇다. 성서에 나오는 최후의 심판이 이미 지구에 일어났다. 그런데 우주에 나가 있었던 우주인들은 그 최후의 심판, 휴거에 속하지 않았다는데서 이야기가 시작한다. 이 발상만으로도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지구에 돌아 왔는데, 사람은 아무도 없고, 남아있는 신문지상에는 그리스도가 부활해서 휴거가 일어났다는 정황 증거뿐이다. 과연 이 우주인들은 어떻게 될 것인가. 텅 비어버린 지구에 남게 된 사람들의 이야기. 아포칼립스 소설로도 어울리며, 종교적 관점으로도 SF적인 관점으로도 여러모로 상상해볼 여지가 많은 이야기였다. 발상만으로도 이미 완벽한 단편이었다.





음소거 _ 진 울프





 종말 이후, 세상에 남겨진 남매의 이야기다. 버스 운전사가 남매를 아빠의 집이라고 내려준다. 버스는 가버리고 남매는 저택 안으로 들어간다. 저택 안에는 TV가 있지만 음소거 상태라 말은 들리지 않는다. 리모컨은 보이지 않아 음소거를 풀 수 없다. 이미지가 강한 소설이고, 서사보다는 남매가 죽은 아버지의 시체를 발견하고 집을 떠나 다른 곳에 머무는 일련의 과정들을 연극적인 분위기로 묘사하고 있다. 처음에는 상황을 파악하기 힘들어서 제대로 이해하기 힘든 소설이고, 지루하고 재미없는 구석이 존재하나 끝까지 읽으면서 그 형성된 분위기를 즐길 여지가 있다.





마비 _ 낸시 크레스





 국내에 많은 글이 소개되지는 않았으나 잡지 판타스틱에 개제되었던 스페인의 거지들로 많은 호평을 받은 작가의 단편이다. 스페인의 거지들은 휴고상과 네뷸러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이 작품 역시 낸시 크레스 특유의 장점들이 잘 녹아있는 글이다. 발상이나 설정에서 인상적인 부분은 없으나, 차분한 이야기 전개와 상황 설명 등은 바로 앞의 음소거를 비롯해 1권에 실린 다수의 이미지 소설들에 비해 선명하게 상황을 그려내어 독자를 편안하게 만든다. 불친절한 소설들이 많은 종말 문학 걸작선단편들 중에서 이렇게 친절한 단편들이 나오면 반가운 것이다. 마비는 설정도 매우 이해하기 쉬울 정도인데 신체를 손상시키는 전염병을 걸린 사람들이 모인 마을의 이야기다. 곧장 나병촌을 떠올리게 하는 이야기인 것이다. 그러면서도 이 병이 서사를 따라가면서 어떤 식으로 작용하고 나중에는 세계에 어떤 역할을 하는지까지 다다르면 소설이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긴 이야기에도 불구하고 강한 흡인력과 재미를 준다.





그리고 깊고 푸른 바다 _ 엘리자베스 베어





 핵으로 종말을 맞은 세상. 한 여자가 오토바이를 타고 도시를 가로질러 의료품을 배달하는 이야기. 포스트 아포칼립스 소설에 적절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서사가 단순한데 비해 길에서 악마가 나타나서 막기 때문에 이미지가 선명하고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인상에 꽤 남는 편이고 재미있게 읽었다. 초반에 여자에게 의뢰를 맡긴 이는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라고 말한다. 그러자 여자는 악마를 만나면 어떻게 하느냐고 묻는다. 그리고 악마와 마주친 여자의 선택이 이 소설의 끝을 장식한다. 서양에서는 악마가 동양의 귀신들처럼 친숙하고 자주 다루어지는 소재일지는 모르나, 개인적으로는 악마라는 소재가 친숙하지는 않다. 이건 마치 스티븐 킹이 오 헨리 문학상을 탄 검은 정장의 악마를 떠올리게 하는데, 악마와 마주친 이야기를 회고조로 하고 있어 마치 미국 설화를 듣는 기분이었다면, 이 글에서는 미래를 배경으로 초자연적인 존재와의 마주침을 그리고 있어 기묘한 느낌을 주는 글이었다.





말과 소리 _ 옥타비아 E. 버틀러





 올해 야생종으로 국내 SF 독자들에게 많은 찬사를 받은 옥타비아 E. 버틀러의 단편이다. 종말 이후에 말이나 글자가 과연 의미를 가질까. 이 소설은 다른 소설들이 다루지 않은 관점에서 이야기를 차분히 전개해나가며 연이은 무자비한 폭력 속에서 주인공인 여자가 어떻게 살아남고, 또 어떤 인연을 만들어나가는지 다루고 있다. 처음에는 상황을 파악하는데 진입장벽이 있었지만, 그 뒤에는 상당히 몰입해서 이야기를 따라가게 만들고 점점 재미있다. 단편으로서 완성도도 뛰어나고 서사가 강렬하다.





킬러 _ 캐럴 앰슈윌러





 이라크 전쟁이 자국 땅에서 벌어지면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한 발상으로 시작한 소설이다. 전쟁 속 한 여인촌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한 여자를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다루고 있는데, 전쟁터로 떠난 오빠를 찾고 있다. 그러던 중에 사람들을 죽이는 상처입은 적군이 집안으로 피신해 온다. 오빠를 연상케하며 또 남자를 원한 주인공은 그를 마을 안으로 편입시키려고 한다. 이야기는 단순하나 심리묘사에 집중한 소설로 후반으로 갈수록 몰입도가 커지고 결말이 특히 인상적인 작품이다.





지니 스위트힙스의 비행 서커스 _ 닐 바렛 주니어





 세상이 종말을 맞이하고 한 서커스 일행이 황무지를 질주한다. 섹스와 타코, 위험한 약을 파는 지니 스위트힙스. 그녀의 동료는 운전사이자 호객꾼인 델, 사격이 뛰어난 경호원 포섬 다크이다. 이들이 어떻게 사람들에게 사기를 치며 돈을 버는지 비밀이 밝혀지면서 점점 이야기는 흥미로워진다. 설정과 인물들이 흥미로운 소설이다.





우리가 아는 바 그대로의 종말 _ 데일 베일리





 앞의 단편들이 모두 1권의 아쉬움을 털어줄 만큼 재미있고 잘 읽혔다면, 이후 마지막 세 편은 조금 아쉬운 단편들이었다. 우리가 아는 바 그대로의 종말의 경우, 종말을 맞은 한 사람의 이야기이면서 곁가지로 역사 속 다양한 종말의 상황들을 병행하며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는데, 이게 밀접하게 잘 녹아있다는 느낌보다는 지루하고 붕뜬 느낌을 받았다. 서사가 흥미롭지도, 캐릭터가 인상적이지도 않았고, 문장이 아름다운 작품도 아니었다. 따라서 겨우 읽어내려간 글이었다.





황혼의 노래 _ 데이비드 그리가





 종말 이후에 살아남은 예술가는 어떻게 견딜까. 흥미로운 발상의 단편이었지만, 이야기는 생각보다 재미있지는 않았다. 상황 설명이 불친절하여 이야기를 따라가기 힘들고, 벌어지는 사건은 소소하고 내면 묘사에 집중하여 재미가 덜하다.





에피소드 7: 보라꽃 왕국의 패거리를 향한 마지막 저항 _ 존 랭건





 마지막에 실린 단편이지만, 가장 잘 안 읽히는 글이었다. 앞의 단편들이 재미있는 작품이 많았음에도 이 단편으로 인해 책 전체의 인상이 흐려지는 느낌을 받았다. 상황설명이 불친절하고 몰입도가 떨어진다. 문단이 거의 나누어져 있지 않아 가독성이 떨어지며, 내면 묘사가 잘 와 닿지 않아 지루하고 재미없게 느껴진다. 플롯이 뛰어나거나 인물이 매력적이지도 않고, 배경 세계관이 흥미를 유발시키지도 않는 글이라 읽기가 힘들었다.





리뷰를 마치며





 전체적으로 종말 문학 걸작선1권보다 2권이 더 읽기 편하고 재미있었다. 약간 더 잘 읽힌다고 할까. , 1권만 읽고 실망한 사람이라면 2권을 읽으면 더 나을 것이다. 물론 개인적으로는 후반부의 단편들은 조금 잘 안 읽혔지만 앞부분에 흥미롭게 읽은 단편들이 있었다. 1, 2권을 통틀어서 마음에 든 단편들을 열거해 보자면 1권에서는 폭력의 종말, 모래와 슬래그의 사람들, 절망은 없다, 아티의 천사들이고, 2권에서는 최후의 심판, 마비, 말과 소리, 킬러, 지니 스위트힙스의 비행 서커스이다.

 종말 소설들을 모았기 때문에 SF 작가들의 작품들이 많다. SF 단편선이라고 할 수 있는데, SF만이 할 수 있는 다양한 종말의 양상들과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인간들의 삶을 그려낸 글들을 접할 수 있었다. 22편의 단편이 실려 있으면서도 같은 식으로 전개되는 글은 찾아볼 수 없었다. 각기 다른 방식의 종말을 맞이했거나, 혹은 다른 식으로 진화하고, 다른 삶을 살아갔다. 인간들은 종말 이후에도 삶을 어떻게든 이어나가며, 우리는 거기서 우리와 공통점을 찾는다. 다양한 상상력과 세계를 접할 수 있었다. 물론 종말을 다루었기 때문에 대체적으로 밝은 소설은 적었고 어둡고 답답한 이야기들이 많았다. 종말이라는 단어에서 느껴지는 막막함과 절망이 소설에 녹아 있었다. 그러나 그 안에서 살아가는 것은 똑같은 인간이다. 인간들의 삶은 여전히 지속되며, 우리에게 이야기의 형태로 전해진다. 흥미로운 사고실험이면서 한편으로는 재미와 감동을 느끼게 만드는 단편들이 실려 있었다.

 이렇게 하나의 테마로 엮인 SF 단편집이 앞으로도 꾸준히 출간되기를 바라면서 이만 리뷰를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