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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몸에 상처가 안 났는데 자꾸 눈물이 흐르는걸까?

어릴 적에는 내 몸에 상처가 났을 때 많이 운 것 같다. 그리고 싸워서 맞졌을 때 그리고 어머님께 혼나서 운 기억이 있다. 그 때는 마음이 아프거나 시려서 운 적은 거의 없는 것 같다. 그런데 나이가 자꾸 들수록 그리고 어머님의 손등과 얼굴의 검은 버섯을 볼수록 나의 몸에는 상처가 안 났는데도 눈물이 자꾸 흐른다.
온 평생을 가족을 위해 힘쓰시고 온 평생을 아픔을 간직하고 사셨고 온 평생을 눈물을 감추고 사셨을 어머니는 자꾸 작아지시고 자꾸 주름이 늘어가신다. 또한 신체의 하나 하나가 약해지시고 걸음의 폭도 좁아지신다. 왜 자꾸 눈물이 날까. 난 절대 몸에 상처가 안 났는데 왜 자꾸 가슴이 시리고 아파지는 것인지 모르겠다.
추운 겨울에 자식들을 먹이려고 부뜨막에 앉으셔서 매운 연기를 맡으시며 밥을 하셨고
추운 겨울에 자식들을 따뜻하게 하기 위해서 산에서 나무를 하셨고 추운 겨울 자식들을 위해서 남의 빨래도 하셨다. 자식이 없었다면 어머니는 이 세상에 살고자 하는 힘이 없었을 것이고 자식이 없었다면 늘 눈물로만 이 세상을 살았을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자식이 있어서가 아니라 어머님이 있으셔서 우린 자랐고 어머님이 계셔서 우린 지금까지 살아왔다라고 말하고 싶다. 나의 몸에는 상처가 없고 누구에게 맞아서 아픈 것도 아닌데 왜 자꾸 어머니를 생각하면 눈물이 나는 것일까?
살다보면 모든 것이 지치고 힘겨울 때가 있고 모든걸 포기하고 싶을 때가 있다. 하지만 어머니는 그런 것이 인생이라며 자식을 안고 살아 오셨다. 무거운 짐을 들어 허리가 굽고 근육이 줄어 다리에 힘이 없어지고 이가 빠져 맛을 알지 못하셔도 자식을 보면 늘 웃고 계시다. 절대 나의 몸에 상처가 없는데 왜 자꾸 나의 눈에서는 눈물이 나는 것일까!
초등학교 때 학교 갔다 집에 돌아오면 내 입에 항상 붙었던 말이 있다. 대문을 열자마자 엄마..엄마…!!라는 말이다. 집에 안 계신걸 알았을 때는 왠지 모를 두려움이 밀려오고 불안함이 내 곁에 자리 잡는다. 어딘가에서 어머니가 돌아 오시는 기척이 들리면 그제서야 마음이 놓인다. 어머니는 늘 내 곁에 계시리라 생각했다. 그 자리는 누구에게도 주고 싶지 않고 늘 보존하고 싶은 자리이다. 내 나이 서른이 넘어 가면서 어머니의 주름을 볼 때마다 나의 몸에는 결코 상처가 없는데 자꾸 눈에서 눈물이 흐른다. 아직도 어머니의 자리에는 어머니가 계신데 왜 자꾸 눈물이 흐르는지 모르겠다.
부쩍 수척해지신 어머니의 모습이 왠지 멀지 않은 아픔으로 그리고 멀지 않은 슬픔으로 돌아오지 않을가 하는 걱정들이 생긴다. 현실의 삶에 살고 있고 나의 삶에 살아가지만 늘 어머니를 챙기지 못하는 마음이 자꾸 나의 가슴 속에 못으로 남는다. 더욱 많은 시간을 어머님과 보내야 한다고 다짐하면서도 오늘 하루의 삶에 지쳐서 어머님을 생각하지 못하고 하루를 보낸다. 간혹 집에 가면 주름진 어머니의 얼굴에는 함박 웃음이 맺친다. 그 웃음 속에 어머니는 당신이 살아 있을 때 자주 보자고 말씀하시는데 난 절대 내 몸에 상처가 안 나아 있는데도 눈물이 글썽인다. 왜 자꾸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다.
걸음을 걷다가도 길에서 잠시 쉬었다가 걸어야 하는 어머님의 모습이 자꾸 내가 아픔과 슬픔을 준비해야 할 듯한 걱정을 준다. 어머님을 보는 것만으로 즐겁고 행복하지만 그 즐거움과 행복함이 얼마나 지속될지 모르겠다. 갑자기 어머니가 내 곁에서 사라지시는 날에 난 통곡하고 울 것이다. 그리고 늘 어머니의 자리를 보며 눈물 흘릴 것이다.
아…왜 이렇게 가슴이 조여오고 아픈 것일까! 난 절대로 결코 나의 몸에 상처가 없는데도 눈에서 굵은 눈물이 흐르는걸까…
사랑하는 어머니의 온기는 늘 내 곁에 있지만 보고 싶어도 보지 못하는 어머니의 모습은 나에게 눈물로만 화답하리라.
자꾸 눈물이 난다. 사랑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난 늘 보고 싶다.



 
 
 

 

1997. 10/28 베를린

s-bhan을 타고 티어가르덴(tiergarden)에 하차 왼쪽으로 난 6월 17일 거리를 총총걸음으 

로 걸어 갔다. 티어가르덴이 제후들이 즐겨찾던 사냥터라 한다. 한국의 왕이나 서양의 제후 

들이나 자신의 위치를 과시함과 동시에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서라면 어느것도 허용된다 

는  식의 철저한 독재성을 갖추고 있는 듯하다. 지금이야 이 곳이 공원으로서 재역할을  

할지 모르나 한 개인의 즐거움을 위해서 이 거대한 부지를 점유해 이용했다니..  

6.17거리를 걸어가다 보면 확 트인 도로 앞에 전승기념탑이 보인다. 1864년 덴마크,  

1866년 오스트리아, 1871년 프랑스에 승리한 기념으로 세운 탑. 빈 벤더슨 감독의 베를린 

 천사의 시에도 등장한 곳.  

이곳을 지나면 베를린 장벽의 아픔과 환호가 들리는 부란데 부르크문이 나타난다.  

지금은 베를린 장벽의 흔적조차 찾아보기 힘든 상황이지만... 11:35에 내가 냉전시대의  

한 정점이자 동서의 기점이였던 브란덴 부르크에 서 있다.  

옛 동독의 땅을 밟는 순간이다. 여러 박물관을 지나 가장 높게 솟은 텔레비전 탑에 도착했 

다. 그런데 왠 날벼락인가 도둑놈이 따로 없다. 텔레비전 탑에 오르려고 힘들게 찾아왔는데 

 프론트에 앉아 있는 여자가 안내원인 줄 알고 올라가는 방법을 물어보니 문서같은 종이를  

내미는게 아닌가. 난 무심결에 탑에 오르기 전 서약서인 줄 알고 대뜸 사인을 했는데 그  

여자는 signature analysis이라 하며 돈을 받는게 아닌가! 내가 사인한 문서가 기계에  

들어 가더니 나의 signature 분석결과와 함께 7M이라는 어마어마한 돈이 청구되었다. 

 왠 날벼락... 결국 TV tower에 오르지 못하고 자본화 된 동독의 분위기를 어쩔수 없이  

느끼고 그곳을 떠나야 했다.  

지금은 베를린 장벽을 구경하기조차 힘들지만 그들이 이 벽을 허물기 위해 희생했던 시간 

과 인내 그리고 노력은 우리가 처한 현실을 더욱 암울하게만 비쳐준다.

13:05 potsdam을 향해... 1945.8.15 미,소,중,영 네나라가 체치리엔호프 궁전에서  

제2차 세계대전의 전후처리 문제를 논의하며 그들의 이권싸움 때문에 우리나라의  

현대사에 큰 비운을 남긴 역사의 도시인 포츠담이다.

오늘 하루도 고된 하루가 되는 듯 하다.  

날씨는 언제나 나를 배반하고 있으며 갈 길은 머니...  

그래도 한국의 성민 잘 해내고 있다. 기차 창가로 보이는 독일의 모습들은 잘 정돈되어 있고

 푸름과 가을의 노랑색이 잘 조화를 이룬 아름다운 곳, 그리고 깨끗한 역과 친절한 사람들.  

지하철에서의 조용한 모습들...

유럽에 와 참 희한하게 본 장면은 자전거를 기차나 버스에 실고 탄다는 점이다.  

그 만큼 자전거가 생활 속에서 유용하게 쓰이고 대중교통 수단으로써 자전거를 위한 시설 

들이 잘 되어 있다는 반증일 것이다.  

오늘 21:32기차로 뮌헨으로 이동하기로 되어 있다.

오늘 하루는 고된 하루였다.  

포츠담의 sanssoucci 궁전을 찾는데 진땀을 뺏고 다시 역을 찾는데는 식은땀을 흘렸다.  

방향치의 눈물겨운 고난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산수시란 휴식의 집이란 뜻으로 프리드리히2세의 여름별궁으로 사용하던 궁전이라 한다.  

넓은 공원과 함께 산수시궁전을 비롯한 6개의 궁전과 극장과 미술관들이 있다.  

한 인간을 위한 타인의 희생이 없었다면 이런 거대하고 아름다운 궁전이 만들어졌을까? 

 또한 권력이란 이름은 불가능도 가능으로 만들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는 둣하다.

기차에서 새벽잠을 자는 나를 깨우는 경찰관과 역무원들, 순간 나는 악몽을 꾼  

정신나간 병자처럼 악! 하고 비명조의 소리를 질러댔다.  

긴장과 피로가 쌓여서 빚여진 일이였다.

 




 
 
 

이성이의 성장  


이성이가 벌써 3살이 되었다.  

말을 조금씩 하기 시작하고 엄마, 아빠에게 재롱도 부린다.  

나도 벌써 7살이 되어간다.  

이성이네와 산 지도 벌써 7년. 이성이도 저렇게 성장하는데 나는 7살이 되는데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내가 성장하는 모습을 찾지 못하고 있는 듯 하다.  


시간이 이렇게도 빨리 지나가는지 온 가족이 이성이의 자라는 모습에 온 정신이 집중된다.  

나도 이성이가 없으면 허전하다.  

이성이는 벌써 초등학생이다.  

이미 한글을 알고 셈도 조금은 한다.  

간혹 색종이를 오려서 꽃을 만들고 이성이 엄마에게 자랑도 한다.  


초등학교에 다니게 되니 아침은 늘 바쁘다. 이성이가 늦잠꾸러기라서 매일 아침만 되면  

이성이 엄마가 가만 있지를 못한다. 아침하랴 이성이 깨우랴 정신이 없다.  

이성이는 아침에 일어나는게 싫은지 매일 짜증을 부린다.  

화도 내고 학교도 안 간다고 한다.  

그러다가도 이성이 엄마가 한번 크게 야단을 치면 억지로 일어난다.  

이성이는 아직 어리기에 자기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  

아침에 일어나는 순간부터 학교갈때까지는 이성이 엄마가 이성이 옆에 붙어 있어야 한다.  

이성이는 참 웃기고 귀엽기까지 하다.  

자기도 학생이라고 작은 가방을 등에 업고 학교 가는 모습이 웃기다.  

초등학생이 학교 가서 배워야 얼마나 대단한 걸 배울까도 생각해 본다.  

그냥 학교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기특하기까지 하다.  

이성이가 학교 간 사이는 나에게는 굉장히 지루한 시간이다.  

무엇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나는 그냥 조용히 앉아 있다. 
 

이성이가 오면 그 때부터 나는 이성이와 이야기를 한다.  

이성이가 덥다고 하면 나는 문을 열어주고 이성이가 춥다고 하면 나의 몸을 꼭 닫는다.  

이성이는 학교 갔다 오면 가방을 방에 던져 놓고 마당에 나가 뛰어 논다.  

꽃을 만져 보기도 하고 나무를 안아 보기도 한다.  

하지만 이성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게임이다. 

 컴퓨터 앞에만 앉으면 움직일 생각을 안 한다.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컴퓨터의 세상에 빠져 있다.  

이성이 엄마가 야단을 쳐도 막무가내로 게임에 몰입한다.  

게임이 끝나면 TV속 만화 세상에 빠진다.  

만화 세상은 이성이를 즐겁게 하나 보다. 누가 와도 모른 척 한다.  

그냥 TV속 세상에만 빠져 있다.  

항상 여유로운 시간을 이성이는 자연보다는 TV와 게임에 시간을 보낸다.





 
 
 

직장인들은 재테크에 관심이 많다.  

재테크를 하는 이유는 지금보다 더 풍요롭게 살고 싶고 지금보다는 더 나은 삶을 위해  

돈이 필요하기 때문에 재테크를 한다.  

재테크도 여러가지가 있다.  

자신의 몸값을 올리기 위해서 하는 자신 몸값 올리기 재테크, 금융상품을 사고 팔아서  

올리는 재테크, 부동산을 사서 차익을 올리는 재테크, 부업을 해서 올리는 재테크,  

자식을 잘 키워서 하는 재테크, 그리고 돈을 아껴서 하는 재테크 등등 손으로 나열하기는  

힘들다.  


일반 직장인들은 자기 집 하나 갖기도 힘들다.  

물가는 높고 집값은 천청부지로 올라간 상태고 집을 사려면 기본 억대를 대출받아야  

하는 상황이다.  

억대를 대출 받으면 자신들이 활용할 수 있는 돈이라는 것은 한정될 수 밖에 없다.  

월급을 받아 이자를 내야 하고 아이를 키워야 하고 소비를 해야 하고 돈이 쓰일 곳은 많고 

 월급은 그 쓰임새를 따라가지 못한다. 
 

그래서 직장인들은 무엇을 해서 자신들의 삶을 물질적으로 윤택하게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한다.  

서점에는 재테크에 대한 책들이 넘쳐난다.  

수없이 많은 책들 속에서 많은 이론들이 오고 가고 하물며 수십억이라는 돈 액수를  

제목으로 집어 넣고 나는 이렇게 재테크해서 돈을 모았다고 선동하기까지 한다.  


그만큼 직장인들에게는 돈을 모으고 싶은 욕망이 많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신을 입지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재테크에 신경을 써야 하는게 현실이다.  

또한 다양한 재테크 서적이 베스트셀러로 등극하는 것을 보면 얼마나 사람들의 마음 속에  

자리잡은 돈에 대한 욕망이 큰가를 볼 수가 있다.  


실질적으로 직장을 다니는 사람들은 자신을 잊고 산다.  

왜냐하면 직장이라는 시스템은 자신을 찾도록 여유 시간을 허용하지 않는다.  

그냥 회사라는 시스템에 자신을 맡기고 그 시스템이 움직이는 것에 맞추어 자신을 맡기기 

를 바랄뿐이다.  

그 시스템이라는 것은 인간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는 돈을 주며 그들이 이  

사회에서 아주 적당히 살아 갈 수 있도록 아주 적당한 돈을 지불한다.  

그 돈은 월마다 사람들의 주머니에 들어가고 그 수치를 보며 그 순간 안도의 한숨을 쉰다. 

 월에 그들의 주머니에 들어오는 돈은 이미 카드비용이나 후 지급해야 하는 비용들을 메꿔 

 주기 때문에 사람들은 안도감을 느끼는 것이다.  

결국 이 시스템은 자신들이 이 사회에서 무엇으로 살아가야 하고 무엇으로 그들의 진정한  

삶을 찾을까라는 의문보다는 자신이 속에 있는 이 사회에 비용 처리를 할 수 있게 도와주는 

 시스템에 길들여지게 되는 것이다.  


시스템을 벗어날 때 직장인들은 가장 두려운 세상이 된다.  

자신들이 누려온 월급의 유혹, 그들이 갖고 있는 명함 및 직함 등 많은 것을 잃게 된다는  

두려움에 사람들은 꼭 그 시스템을 붙들고 싶어한다.  

이 시스템은 정말 사람들이 최소한의 사회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자본주의 사회가 

 경제적 활동을 하도록 하는 시발점 역할을 한다.  


하지만 이 시점에서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이고 자신이 누구인가를 고민해  

봐야 한다.  


삶은 영원하지 않다.  

삶은 유한하기에 소중한 것이다.  

삶이 유한하다는 것은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이 유한하다는 것이다.  

주어진 시간과 유한한 삶 속에 시스템의 흐름에 이끌려 가는 삶은 그리 바람직하지 않은  

듯 하다.  


그럼 이 시스템에서 자신을 찾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그것은 자신의 마음에 있다. 만약 이 시스템이 현실이고 이것을 벗어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이 시스템에서 자신이 나중에라도 활용할 수 있고 자신을 찾을 수 있는 기술을 배우는  

것이고 틈틈히 회사일이 끝났을 때 자신의 노후에 제2의 삶을 찾을 수 있는 분야를  

공부하는 것이다.  

마음에 정답이 있다는 말은 마음에 자신의 제2의 삶을 상상하고 있는가 없는가에 따라  

유한한 삶 속에 자신을 찾을 수 있는 기회를 갖고 사는가 아니면 자신을 그냥 이런 시스템 

 속에 끌려가는 비주도적 삶을 살아가는가를 구분할 수 있다.  

재테크는 경제적 안정을 가지고 온다.  

재테크는 자신의 사회적 입지를 강화시킬 수 있다.  

그러기에 시스템을 벗어날 수 없는 것이라면 그 시스템 속에서 얻을 수 있는 제2의 기술,  

실력, 그리고 자기의 본질을 찾을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  

그곳에 우리가 해야 하는 재테크의 길이 있는 것이다. 아끼고 벌고 그리고 저축하는 것도  

재테크이지만 진정 자신을 찾을 수 있는 길을 꿈꾸는 것도 재테크의 중요한 모습이다.




 
 
 


비에 젖은 푸른 나뭇잎 사이로 하늘이 보인다.  


바람은 나뭇잎을 흔들어댄다.   

 



바람이 내 얼굴에 비를 뿌리고  


비바람에 나는 눈물이 고인다.   

 



저 멀리 비 오는 하늘을 보며  

난 눈물을 흘린다.  

 



눈망울에 고인 너의 빗방울을 그리며  


난 비 오는 하늘을 보며 오늘도 너를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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