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 10/28 베를린
s-bhan을 타고 티어가르덴(tiergarden)에 하차 왼쪽으로 난 6월 17일 거리를 총총걸음으
로 걸어 갔다. 티어가르덴이 제후들이 즐겨찾던 사냥터라 한다. 한국의 왕이나 서양의 제후
들이나 자신의 위치를 과시함과 동시에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서라면 어느것도 허용된다
는 식의 철저한 독재성을 갖추고 있는 듯하다. 지금이야 이 곳이 공원으로서 재역할을
할지 모르나 한 개인의 즐거움을 위해서 이 거대한 부지를 점유해 이용했다니..
6.17거리를 걸어가다 보면 확 트인 도로 앞에 전승기념탑이 보인다. 1864년 덴마크,
1866년 오스트리아, 1871년 프랑스에 승리한 기념으로 세운 탑. 빈 벤더슨 감독의 베를린
천사의 시에도 등장한 곳.
이곳을 지나면 베를린 장벽의 아픔과 환호가 들리는 부란데 부르크문이 나타난다.
지금은 베를린 장벽의 흔적조차 찾아보기 힘든 상황이지만... 11:35에 내가 냉전시대의
한 정점이자 동서의 기점이였던 브란덴 부르크에 서 있다.
옛 동독의 땅을 밟는 순간이다. 여러 박물관을 지나 가장 높게 솟은 텔레비전 탑에 도착했
다. 그런데 왠 날벼락인가 도둑놈이 따로 없다. 텔레비전 탑에 오르려고 힘들게 찾아왔는데
프론트에 앉아 있는 여자가 안내원인 줄 알고 올라가는 방법을 물어보니 문서같은 종이를
내미는게 아닌가. 난 무심결에 탑에 오르기 전 서약서인 줄 알고 대뜸 사인을 했는데 그
여자는 signature analysis이라 하며 돈을 받는게 아닌가! 내가 사인한 문서가 기계에
들어 가더니 나의 signature 분석결과와 함께 7M이라는 어마어마한 돈이 청구되었다.
왠 날벼락... 결국 TV tower에 오르지 못하고 자본화 된 동독의 분위기를 어쩔수 없이
느끼고 그곳을 떠나야 했다.
지금은 베를린 장벽을 구경하기조차 힘들지만 그들이 이 벽을 허물기 위해 희생했던 시간
과 인내 그리고 노력은 우리가 처한 현실을 더욱 암울하게만 비쳐준다.
13:05 potsdam을 향해... 1945.8.15 미,소,중,영 네나라가 체치리엔호프 궁전에서
제2차 세계대전의 전후처리 문제를 논의하며 그들의 이권싸움 때문에 우리나라의
현대사에 큰 비운을 남긴 역사의 도시인 포츠담이다.
오늘 하루도 고된 하루가 되는 듯 하다.
날씨는 언제나 나를 배반하고 있으며 갈 길은 머니...
그래도 한국의 성민 잘 해내고 있다. 기차 창가로 보이는 독일의 모습들은 잘 정돈되어 있고
푸름과 가을의 노랑색이 잘 조화를 이룬 아름다운 곳, 그리고 깨끗한 역과 친절한 사람들.
지하철에서의 조용한 모습들...
유럽에 와 참 희한하게 본 장면은 자전거를 기차나 버스에 실고 탄다는 점이다.
그 만큼 자전거가 생활 속에서 유용하게 쓰이고 대중교통 수단으로써 자전거를 위한 시설
들이 잘 되어 있다는 반증일 것이다.
오늘 21:32기차로 뮌헨으로 이동하기로 되어 있다.
오늘 하루는 고된 하루였다.
포츠담의 sanssoucci 궁전을 찾는데 진땀을 뺏고 다시 역을 찾는데는 식은땀을 흘렸다.
방향치의 눈물겨운 고난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산수시란 휴식의 집이란 뜻으로 프리드리히2세의 여름별궁으로 사용하던 궁전이라 한다.
넓은 공원과 함께 산수시궁전을 비롯한 6개의 궁전과 극장과 미술관들이 있다.
한 인간을 위한 타인의 희생이 없었다면 이런 거대하고 아름다운 궁전이 만들어졌을까?
또한 권력이란 이름은 불가능도 가능으로 만들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는 둣하다.
기차에서 새벽잠을 자는 나를 깨우는 경찰관과 역무원들, 순간 나는 악몽을 꾼
정신나간 병자처럼 악! 하고 비명조의 소리를 질러댔다.
긴장과 피로가 쌓여서 빚여진 일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