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려봐야 뒤흔들 수 있다



살다 보면 참으로 많은 바람이 분다. 한겨울에 몰아치는 삭풍(朔風)과 북풍(北風)이 있고 한여름에 무서운 기세로 다가오는 비바람도 있다. 아무리 세찬 바람이 불어와도 줄기와 가지가 휘어지고 때로는 꺾일지언정 뿌리로 버티는 나무나 들풀처럼 우리도 혼탁한 바람에 짓눌리지 않고 중심을 잡아야 삶이 무너지지 않는다. 중심은 흔들리면서 잡힌다. 흔들려보지 않은 사람은 삶의 중심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 중심이라고 잡아서 안심하고 있는 찰나 생각지도 못한 바람이 불어와 뿌리째 흔들려봐야 진짜 내 삶의 중심을 알 수 있다. 중심은 흔들리면서 서서히 잡히는 내 삶의 핵심이다. 바람이 심하게 불수록 흔들어 깨워야 할 우리의 뿌리가 무엇인지를 반성하고 점검해보는 것이다.


많이 흔들려본 사람만이 세상을 남다르게 뒤흔들 수 있다. 흔들린다는 것은 내 삶의 중심을 흔들어본다는 것이다. 나무의 중심은 뿌리다. 흔들어서 뿌리가 잘 버티고 있는지를 점검해보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나무의 중심이 얼마나 튼튼하게 자리 잡고 있는지 알 길이 없다. 따라서 흔들리는 일은 나무를 더 강하게 성장시키는 원동력인 셈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다양한 상황에서 여러 가지 일로 흔들려본 사람일수록 어지간한 흔들림은 이겨낸다. 흔들려보지 않고서는 자신의 중심을 똑바로 세울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삶의 진한 체험적 깨달음으로 다른 사람을 뒤흔들 수도 없다. 숱한 개념에 나의 체험적 신념이 추가되지 않으면 관념의 파편으로 전락해 호소력이 없게 된다.


풍경은 바람이 불지 않으면 소리 내지 않는다. 바람이 불어야만 비로소 그윽한 소리를 낸다. 인생도 무사평온하다면 즐거움이 뭔지 알지 못한다. 힘든 일이 있기에 즐거움을 알게 된다. 이는 《채근담》에 나오는 말이다. 시냇물도 돌부리가 있어야 노래를 부른다. 걸리는 돌이 있어서 부딪히면서 소리가 나는 것이다. 바람이 불지 않는 인생은 가슴이 뛰지 않는 삶이다. 어제와 다른 불확실한 바람이 불어야 어제와 다른 방법으로 내일을 준비한다. 내일 어떤 바람이 불어올지를 기다리지 말고 바람이 불어오는 쪽으로 정면 도전해야 한다. 미국의 작가이자 강사였던 데일 카네기Dale Carnegie도 말하지 않았던가. 바람이 불지 않을 때 바람개비를 돌리는 방법은 앞으로 달려가는 것이라고.


영화 〈최종병기 활〉에 “바람은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극복하는 것이다.”라는 말이 나온다. 불어오는 바람의 강도나 방향을 너무 오랫동안 고민하며 계산하려다 오히려 바람에 밀려 사라질 수 있다. 다양한 각도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맞부딪혀 보는 경험이 많을수록 바람에 맞서 싸울 수 있는 내공이 깊어지는 법이다. 머리로 계산해서 바람을 이해하는 게 아니라 몸으로 바람을 맞이해본 경험이 있어야 바람을 느낄 수 있다. 불어오는 바람의 존재는 확실하지만 그 바람의 실체와 본질에 대해서 사전에 알 길은 없다. 즉, 바람이 불어온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바람의 성격이나 방향은 몸으로 부딪혀보지 않고서는 확실히 알 길이 없다.



이런 점에서 “타자는 존재론적으로 확실하고 인식론적으로 모호하다.”는 말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바람이 분다는 사실, 그리고 그 바람으로 내가 흔들린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하지만 바람으로 인해 흔들리는 내가 무엇을 느끼는지는 알 수 없다. 오직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만이 알고 있을 뿐이다. 내가 알 수 있는 사실은 바람으로 인해 나무가 흔들리고 있다는 것뿐이다. 그 흔들림으로 나무가 어떤 생각을 하면서 무슨 대응 논리를 구상하고 있는지는 알 길이 없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누군가 아프다고 하면, 그의 고통은 존재론적으로 확실하다. 하지만 그 고통의 의미를 나는 잘 알지 못한다. 확실한 고통의 존재를 인식론적으로 불완전하게 알 뿐이다. 김훈의 단편소설 〈화장〉에 이런 말이 있다.


“나는 아내의 고통을 알 수 없었다. 나는 다만 아내의 고통을 바라보는 나 자신의 고통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우리는 나무가 얼마나 많은 세월 동안 힘들게 흔들리며 살아왔는지 알 수 없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모든 나무는 흔들리면서 성장한다는 점이다. 흔들리지 않는 나무는 죽은 나무밖에 없다. 그래서 흔들림은 살아 있음의 증거다. 사람도 살아가면서 흔들려본 경험이 있을 것이며, 그때마다 저마다의 사연과 배경이 있을 것이다. 돌이켜 보면 심하게 흔들렸을 때일수록 더 심하게 안간힘을 쓰면서 삶의 중심을 잡아보려 애썼던 것 같다.


나의 의지는 의지할 데가 없다는 생각이 들 때 더욱 빛나기 시작한다. 흔들려도 누구에게 의지하지 않는 나무처럼 결국 나의 의지로 흔들리는 난국을 극복해야 한다. 위대한 성취는 위로 속에서 탄생하지 않는다. 남다른 성취는 사무치게 외로운 고독 속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창조적으로 승화시킨 사람에게 주는 선물이다.


“의지(依支)의 강도가 약할수록 의지意志의 강도는 강해진다.”


의지(依支)하는 사람은 의존적인 사람이고 의지(意志)를 불태우는 사람은 독립적인 사람이다. 나무야말로 세상에 의지(依支)하지 않고 독립적인 삶을 살아가는 의지意志가 강한 생명체다. 반대로 인간은 지구상에서 다른 생명체에게 가장 많이 의지하면서 살아가는 의존적인 생명체다. 사람은 어린 시절에 누군가에게 의지하다 점차 어른이 되면서 자신의 의지(意志)로 독립적인 삶을 살아간다. 의지가 생기려면 우선 내가 의존하고 있는 사람으로부터 독립적으로 살기 시작해야 한다. 의지하지 않고 자기 힘으로 살아가는 나무의 의지를 생각하면서 미래를 지향하는 나의 의지를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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