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조금 지쳤다 - 번아웃 심리학
박종석 지음 / 포르체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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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이 부식되는 것 같은 상태. 이 책에서 번아웃으로 인한 우울과 무기력에 시달린 이들이 자기 상태를 묘사할 때 가장 많이 쓴 말이라는데, 공감한다. 영혼이 부식되어 부슬부슬 떨어져 나가는 것 같은 상태이다. 그런데 아프다고 못느껴.

얼마 전 나와 마찬가지로 심하게 번아웃을 겪었던 일잘러와 통화를 하는데, 그분이 그랬다. 우울증에 걸리면 슬퍼하고 그러는 줄 아는데 안그렇다고. 그래서 동의했다. 응, 우울증에 걸리면 슬픔도 못느낀다. 그냥 아.무.것.도.느.껴.지.지.않.아. 그래서 참담했다. 물기하나 없는 끝없는 사막을 걷고 또 걷는 그런 심정이었다.

강해지기 위해 슬픔도 고통도 안 느끼려고 감정들을 죄다 누르고 일만 했는데, 그러다 아무 것도 못느끼게 된 것이 그리 힘들줄은 몰랐다. 살고싶지 않았다. 살려는 그 어떤 꼼지락거림도 느껴지지 않아서.

박종석 선생님의 <우린, 조금 지쳤다>는 번아웃으로 인한 무기력과 우울을 겪는 이들을 위한 책이다. 정확하게는 이 증상으로 사회적 기능이 경계선에 있는 이들을 위한 책.

너무 열심히 살다가 걸리는 병이라는 말이 크게 위로가 되었다. 그리고, 운동을 통해 몸을 움직여 뇌 속의 분비물질을 바꾸어야 한다는데 동의, 또한 매일 같은 일상에 뇌가 ‘상동성’에 갇혀 도파민 분비를 하지 못하게 된거니 일상의 가장 작은 일들부터 바꾸라고- 휴가를 가든가 그게 안되면 하다못해 출근길 경로라도 바꾸라는 말에 동의한다. 그리고 수면에 신경 쓰고, 잠자리를 깨끗하게 하라고.

나 같은 경우, 찜질방가서 세신받는 것, 네일케어 받는 것도 참 좋았다. 난 아무 것도 하기 싫은데 누군가 사부작사부작 내 말단 부위를 정성스레 만져주는 게 작은 힐링이 되었다. 그리고 친구가 맛난 음식을 사주며 썰어주고 먹여주다시피했던 것도 큰 도움이 되었다.

그러다 마침내 울게 되었을 때, 그때부터 치유는 시작되었다. 오랫동안 눌렀던 감정들이 터져나와 몇 주간 끝도 없이 울었던 것 같다. ‘여자야, 뼈와 해골이 달그락거리는 사막으로 가. 뼈와 해골이 다 닳아 모래로 흐르는 사막으로 가. 기억해. 사막도 한때 푸르른 숲이었다는걸. 그 아래 깊이 깊이 묻힌 수맥을 터뜨려. 수맥을 터뜨려 솟아나는 물을 보고 잔뜩 이슬을 머금고 사막에서 돌아 와.’ 이런 메시지를 준 책이 있었다. 그 책을 며칠에 거쳐 읽으며 꺼이꺼이 울었다. 울면서 그렇게 안도감이 느껴진 건 처음이었다. 드디어 울 수 있어서 슬픔을 느끼는 것조차 축복같더라.

모두 나처럼 책을 읽으며 치유를 경험하는 건 아니다. 일단 운동, 일상에서 작은 것 바꾸기, 호흡, 그리고 책이 아니라면 상담을 받아야 한다는 걸 아는게 좋다. 머리로 일단 알아야 하려고 할 수 있으니까. 하고싶지 않은 거 안다.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을 거야. 그럴 땐 바닥 중의 바닥까지 다 떨어졌다고 상상해 봐. 여기가 끝이야,라고 되뇌며 누워서 심연같이 아득한 하늘을 보는 거야. 근데 그러면 무언가 작은 게, 정말 작은 게 꿈틀해. 달팽이 한 마리가 느릿느릿 기어. 살고자 하는 의지가 그 달팽이 한 마리 만큼이라도 느껴지면 살 수 있어. 그 달팽이를 보며 눈물 한 방울이 흐르면 된거야. 터뜨릴 수맥은 그렇게 찾아. 끝까지 떨어진 무기력의 심연에서.

하기 싫고 몸이 아프고 몸이 아프니까 더 하기싫고 그러면 더 아파지고....이 악순환을 일단 작은 행동 하나, 나가서 그냥 걸어, 이걸로 깨는게 중요해. 번아웃으로 삶이 나락에 떨어지면 그렇게 자신을 건져올려. 2,3년 걸릴거야.

일단 이 책을 읽어. 실용적인 나침반이 되어 줄거야. 왜 우울증에 걸린 이가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다고 하겠어. 그 매운 맛을 느껴보고 그 알싸한 감각이라도 깨워 살고싶은 거거든. (근데 떡볶이는 먹지마 - 탄수화물은 살쪄. 살찌면 더 우울해져. 그리고 그 더부룩함이 더 우울하게 만들어.)

회복된 후에도 이따금 경미하게 저 상태로 돌아가는데, 이젠 내가 어떻게 대처할지 안다. 그래서 깊은 나락으로 굴러떨어지기 전에 이 책에서 말한 무언가를 해서 날 얼른 다시 끌어올린다.

#우린조금지쳤다 #포르체 #박종석 #번아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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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조금 지쳤다 - 번아웃 심리학
박종석 지음 / 포르체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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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아웃으로 헤매는 이를 위한 나침반 같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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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키니아의 작은 말들 - 뒤라스가 펼쳐 보이는 프랑스판 ‘부부의 세계’
마르그리트 뒤라스 지음, 장소미 옮김 / 녹색광선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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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라스의 <타키니아의 작은 말들>은 뒤라스의 마지막 연하의 연인 얀 안드레아가 읽고 반한 후 뒤라스를 추종하다가 연인까지 되게 만든 소설이다.

이 소설은 사랑에 대한 서사이기는 하다. 그러나, 체험으로서의 사랑을 이야기 한다. 역설은 그렇다. 체험된 모든 사랑은 변질되는 바, 변질된 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파트너의 외도를 허용하는 체험이야기이다.

가끔 이런 역학이 아주 재미있기는 하다. 왜 바흐친의 카니발 이론같은 거랄까. 기존의 사회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단 하루만 그 질서를 뒤집어 엎어보는 장을 허용하자, 그러면 다음 날 다시 아랫 것들은 잠잠히 기존 질서 안으로 돌아온다는 그런 역학. 부부 관계도 너무 오래 같이 살다보면 그 관계의 친숙함이 역치를 넘어가 버리고, 그래서 계속 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서로 외도도 괜찮은 역학이 왜 난 수긍이 잘 가는지 모르겠다.

한국에서는 (아직은) 꿈도 못꿀 관계 역학인 것 같다. 한국의 부부 파트너 관계는 개인과 개인이 만난 관계가 아니라서, 어디까지나 나이고 어디까지가 우리이고, 어디까지가 니네 부모와 어디까지가 우리 부모인지, 너무들 들러붙어서 힘들게 고통스러워하면서도 결코 떨어질 줄 모르는 그런 게 있어서.

이 책 주인공들의 말을 빌리자면, 사랑 또한 경험(108)이지만, 사랑에는 휴가가 없다(306)고 한다. 바다 이쪽은 무지 더워 답답해 죽을 것 같고, 바다 건너편은 덜 더워보이는 법이다. 타키니아에는 아름다운 말들이 있다고 하나, 타키니아에 가지 않는다. 저기가 여기가 되면, 저 사랑이 내 사랑이 되면, 또한 변질되기 때문이다.

휴가는 없어도, 쉼표는 찍어도 좋을텐데 싶다. 주인공 사라가 하룻밤 외도를 저지르고, 이미 여러번 외도를 저지른 남편이 상대남과 사라에게 같이 여행갔다와도 좋다고 해도 사라는 가지 않기로 한다. 저기가 여기가 되면, 저기도 여기와 똑같다는 걸 알면, 저기가 저기에 있어서 설레고 아름다움 동안 그냥 아름답게 내버려 두고도 싶은 법이다. 그래서 가보지 않은 타키니아의 말들은 아름답다.

아이디어는 겨울에 더 잘 떠오르지만, 인간의 진정한 본성은 여름에 더 잘 드러난다. 인간의 품행은 겨울보다 여름에 더 의미심장하다. 태양 아래에서, 각자의 성질이 제대로 드러난다. - P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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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키니아의 작은 말들 - 뒤라스가 펼쳐 보이는 프랑스판 ‘부부의 세계’
마르그리트 뒤라스 지음, 장소미 옮김 / 녹색광선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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쉼표에 대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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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리
옥타비아 버틀러 지음, 박설영 옮김 / 프시케의숲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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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파이어 물로 폴리아모리 이슈를 다루는 범죄 스릴러 기발하고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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