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틴 에덴 1 - 추앙으로 시작된 사랑의 붕괴
잭 런던 지음, 오수연 옮김 / 녹색광선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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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끌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영끌은 '영혼을 끌어모아'의 줄임말이라고 하는데, 보통 젊은 세대들이 있는 돈 없는 돈을 모두 끌어모아 부동산을 사거나 주식을 사거나 비트 코인 투자를 할 때 쓰는 말이다.


마틴 에덴을 읽다보니 영끌이라는 말이 마틴 에덴에 꼭 맞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워낙 가진 게 없기는 했지만) 단지 돈 뿐 아니라 자신에게 있는 모든 자원 - 시간, 정열, 노동 - 을 끌어모아 글쓰기에 매진했으니 말이다.

<마틴 에덴>은 <위대한 개츠비>와 어떤 면에서 많이 비슷하다. 무엇보다도 상류 계층의 여성을 지향했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물론 이 둘 다 루스와 데이지는 그냥 한 명의 여성은 아니었다. 그 여성이 표상하는 삶의 방식에 대한 열정적인 추구가 아마도 공통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마틴 에덴>이 <위대한 개츠비>보다 16년 먼저 세상에 나왔고 (잡지에 연재되었다 하나로 묶인 소설이다), 마틴 에덴이 배경으로 하는 시대가 바로 도금 시대(Gilded Age)이다. (이 Gilded Age라는 표현은 올해 HBO에서 제작된 드라마이기도 해서, 올해가 되어서야 좀 알려졌다.) 물질주의가 비로소 고개를 쳐든 시대이다. 계급에 대한 처절한 자의식, 가난에 대한 너무나도 사실적인 묘사들은 도금 시대 - 아직 인권의식이 별로 없어서 아동들도 노동에 시달리고 사회보장이라고는 없던 시대이나 부자들이 비로소 하나의 라이프 스타일을 구축하던 시대 - 에 살았던 사람이 아니면 못하는 표현들이 가득하다.


도금 시대와 (위대한 개츠비의 배경인) 재즈 시대 (The Jazz Age)의 공통점이 뭐냐면 비로소 여성이 자본과 결합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이건 무슨 뜻이냐면 '돈을 많이 벌아야 여자를 얻을 수 있다'는 이때부터 시작되었다는 뜻이다. 그 분수령이 된 건 <위대한 개츠비>의 데이지가 맞다. 이 이후로 팜므 파탈들은 돈을 쫓는 꽃뱀이 되었으니까.


무엇보다도 <마틴 에덴>은 쿤스틀러로만(Künstlerroman 예술가 소설)의 전통을 따르고 있다. 즉, 예술가 삶의 이야기 전통에 있는 소설인데, 마틴 에덴의 경우 그 과정이 너무나도 극적이고 압축적이다. 소유와 존재라고 하는 주제와 얽히면서 더더욱 그렇다.


초등학교 중퇴인 갓 스무 살의 마틴 에덴이 책과 글의 세계로 빠져드는 건, 상류 사회 여성인 루스에 대한 열망에서 시작된다. 처음에 마틴은 루스를 '소유'하고자 한다. "그도 그녀를 소유함으로써 당도하게 될 비슷한 미래" (P. 47)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마틴은 루스가 사랑하는 남자가 '되겠다'는 말을 하고 있다. "내가 그 남자가 될 거야. 내가 나를 그 남자로 만들 거야." (p. 141) 즉, 처음에 루스에 대한 열망은 소유하고 싶은 어떤 것으로 시작해서 결국 어떤 존재가 되고 싶다는 수순을 밟는다. 그러나, 이게 마틴 에게는 패착이 된다.


소유가 아니라 존재를 열망하는 순수함은 환멸을 맛보기 쉽다. 마틴은 글을 써서 작가로 성공하면서 결국 자신이 원하던 존재가 된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그는 가슴 아픈 역설을 알게 된다. 좋은 글이 유명해지는 것이 아니라, 유명해서 유명해진다는 것 (사회주의 관련 추문에 휘말리며 신문 1면을 장식하면서 비로소 책이 팔리기 시작한다.), 자신의 글은 이전과 매한가지인데 갑자기 좋다고들 난리를 치는 것을 목도하고, 자신은 이전과 똑같은 사람인데 가난하고 촌스럽다고 거절했던 루스와 그 부모가 그 태도를 바꾸는 일을 겪는다.


그리고, 자신이 그토록 열망했던 상류층들에게 말과 글은 그저 액세서리에 불과하다는 것도 알게 된다. 자신이 영혼까지 끌어보아 가 닿으려고 했던 삶의 방식은 그저 겉보기에 금칠을 한 보잘 것 없는 삶에 불과했던 걸 알게 된다.


오히려 소유가 목적이었던 사람들은 이렇게 환멸을 맛보지 않는다. 가지는 것이 목적이었고, 가졌으니까. 다행히도 소유욕은 무한해서 이런 사람들은 늙어서도 변함없이 멈추지 않고 죽기 전까지 페달링을 하기 때문에 환멸이 끼어들 틈도 없다.


하지만 존재가 목적이었던 사람은 소유하게 되었을 때 엄청난 환멸을 맛보게 된다. 더구나 이상적인 여성에 대한 열망은 지극히 낭만주의적인 태도인데, 이런 태도가 도금의 시대에 허물어지는 건 어쩌면 당연하기 않겠나 싶다.


그렇다면 존재를 목적으로 삼으면 안된다고? 아니, 그렇지 않다. 마틴 에덴의 문제는 '소유하면 어떤 존재가 되는 줄' 알알던 데에 있다.


영끌하는 시대에 이 소설이 주는 메시지는 어쩌면, 무엇을 가져서 어떤 존재가 되는 줄 착각하지 말라는 건지도 모르겠다. 허나, 가지는 게 목표인 사람들은 계속 열심히 가지시기를 권한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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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 에덴 1 - 추앙으로 시작된 사랑의 붕괴
잭 런던 지음, 오수연 옮김 / 녹색광선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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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끌해서 꿈을 쫓는 사람이 많은 시대에 산다. 마틴 에덴이야말로 진정한 영끌족이 아닐까 싶다. 다만, 어떤 꿈을 영끌해서 쫓을 것인가를 두고 생각이 많아질 수 있다. 비트코인과 주식으로 영끌해서 소유를 늘리는 꿈인가, 사랑하는 여자를 쫓아 그 여자에 걸맞는 사람이 되는 꿈인가. 소유냐 존재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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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사랑의 얼굴을 가졌고 - 그림으로 사랑을 말하고, 사랑의 그림을 읽다, 문학나눔 도서보급사업 선정도서
김수정 지음 / 포르체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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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여러 얼굴을 잘 포착하는 시선과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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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키7 미키7
에드워드 애슈턴 지음, 배지혜 옮김 / 황금가지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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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론이 아무리 기억을 다운로드 받아도 별개의 존재라는 건 새로울 게 하나 없이 SF계에선 이미 올드 스쿨에 해당하는 주제이다. 


집단 지성체인 외계인이 본체 외에 다른 개체를 부속물이라 부르는 것도 하이브 마인드 (hive-minded) 종족을 그린 건데, 그 역시 SF에서 올드 스쿨이다. 


중복된 존재가 인간 공동체에 가져다 주는 혼돈과, 익스펜더블 (대체 가능한) 이라 불리는 복제 인간을 둘러싼 권력 구조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중복 존재가 인간 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정도가 다른 작품과 구별된다고 하겠다. 


그리고 다른 분 평에서처럼 결말이, 결말이....쿨럭....약해도 약해도 너무 약해. 아, 이게 뭐람...싶고. ㅠ.ㅠ 이게 최선이냐고 울부짖고 싶게 만드는 결말이었다. 


봉 감독은 원작이 어떻든 별개의 베스트 필름을 만들어내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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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키7 미키7
에드워드 애슈턴 지음, 배지혜 옮김 / 황금가지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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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복 존재가 빚어내는 혼란을 그린 작품. 외계인 따위는 중요치 않음. 복제라고 기억을 다운로드하면 별개의 사람이지 절대 동일인물이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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