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만찮은 여자들 - 세상의 룰을 깬 여성 29인의 인생수업
캐런 카보 지음, 박다솜 옮김 / 모멘토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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숀다 라임즈 외엔 모두 백인 여성들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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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의 걸작
오노레 드 발자크 지음, 김호영 옮김 / 녹색광선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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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근법을 처음 배운 순간을 기억한다. 초등2학년 미술 시간, 소풍을 다녀온 후 소풍 장소로 줄지어 가는 아이들을 그렸었다. 선을 나란히 두개 그려 길을 만들고 짝을 지어 줄지어 가고 있는 아이들을 그렸었다. 내가 그린 걸 보더니 담임 선생님이 길을 나란히 평행으로 그리면 안된다면서 점점 좁아지다가 두 선이 만나 소실되는 삼각형으로 길을 고쳐주었다. "길은 나란해요!"라고 우기는 내게 '실제로는 나란하지만 우리 눈에는 그렇게 보이지 않아!"라고 답했다. 하교길에 나는 여우 고개 위에 서서 우리 집까지 가는 길을 한참을 쳐다보고 있었다. 분명 길은 두 개의 선이 나란한테, 내 눈에 점점 좁아지다 지평선 끝에서 두 선이 만나고 있었다.

미술에 대해 잘 모르지만, 미술사에 원근법이 발명된 순간이 있다는 건 안다. 기둥들이 줄줄이 늘어선 회랑을 원근법으로 그린 작품이 아마 원근법을 깨달은 화가가 그린 작품으로 안다. 그렇게 원근법이 발명(?)되었고, 측면의 얼굴에 눈은 정면을 보는 기괴한 평면의 이미지로 수천 년 세월을 뛰어넘는 이집트 벽화나 중요한 것은 크게 그리고 보던 중세 시대 그림에서 서양 미술이 한 걸음 더 나아갔다는 건 얼추 들어서 안다.

그리고 나서는 선과 색에 대한 논란이 이어진 것 같다. 발자크의 <미지의 걸작>은 선과 색, 형태와 내용에 대한 탐구를 치열하게 다루고 있다. 포스트 마던의 아이로 자란 내게, 어떤 수단을 사용해도 대상에 닿을 수 없다고 말하는 포스트 마던 시대의 담론이 당연한지라, 닿을 수 없는 대상에 닿으려고 하는 프렌호퍼의 시도가 왜 무위로 끝났는지는 알 것도 같다. 다만, 프렌호퍼라는 화가를 통한 발자크의 치열한 사유가 있었기에, 대상의 본질에 닿을 수 없다는 진술로 인간들의 인식이 수렴된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은 한다.

글귀 중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선'에 대한 고찰이었다. 자연에 선은 존재하지 않는다면서, 화가가 선을 그리는 순간 대상을 배경에서 떼어내게 된다는 진술은, 재현(representation)이 가진 딜레마를 가장 잘 나타내는 것 같다.

'재현(representation)'에 관한 진술 중 가장 가슴이 뛰는 진술은 사실 성경 창세기에 나온다. 거기서 복수형의 하나님은 그렇게 말한다. '우리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인간을 만들자'라고. (복수형의 하나님이라는 이슈, 단수형의 하나님이라는 이슈 역시 매혹적이나 그건 주제와 무관하므로 패스.) 저 형상이라는 단어가 image이다. 즉 인간은 신의 재현품, 복제품이라는 말을 하고 있다. 그래서 인간이 된다는 것은 끊임없이 본질에 닿으려는 시도를 한다는 거라고 '어숙룩하게' 말할 수도 있겠다. 그리고 재현된 자신들의 현실을 또 재현해 내려는 시도 역시 끝도 없이 한다.

프렌호퍼가 실패한 지점에서, 문학도였던 나는 사실 희희낙낙했었다. 20대 시절에 인간의 인지의 한계상 인간은 본질에 결코 닿을 수 없다면, 그렇다면 본질에 대한 지향을 포기해야 하는가?하는 질문에 시달렸고, 그때 인류의 역사만큼 오래된 구닥다리, 문학에서 구원을 찾았다. 본질에 가장 에둘러서 가는 것이, 가장 지름길로 가는 것이라 내 마음대로 결론내려 버렸다. 즉, 비유와 상징을 통해 대상을 표현하는 것이, 대상을 있는 그대로 담아내려는 시도들 중 가장 적확하게 대상의 본질에 가서 닿는 방법인데?라고 생각해 버렸다. 가장 먼 길을 택하는 것이 가장 지름길이라고나 해야 할까.

그래서, 가장 오래된 것(stories)에서 상징과 비유를 건져내는 것이, 본질을 파악하는 (영어로 쓴다면 본질을 움켜쥔다는 동사를 쓰겠지만)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 나는 믿는다. 물론, 콘래드가 <라군>에서 말했듯 망망대해에서 진리의 입자(particles)를 건지는 일이지만 말이다.

허나 상징과 비유는 지극히 주관적이고 개인적일 수 있는 여지가 있다. 이걸 사람과 사람 사이로 가져와 전달하는 방법은 자크 리베트가 90년대 초반에 시도한 방법이 맞다. 걸작은 과정 중에 있다고 설득하는 것. 즉, the best is in the making 이라고 주장해 버리는 거다. 그렇다면, 그리는 주체와 그려지는 대상은 영원히 그 인터페이스 안에서 완성이 된다. 심지어 그리는 주체의 '주체성'까지 이 과정 중에서 전도되는 것 - 그려지는 대상이 자신의 주체성을 나타낼 때 대상의 아름다움을 가장 잘 포착한다고 말하는 것, 까지 외려 자크 리베트는 궁구해냈다. 그렇기 때문에 과정인 걸작은 과정에 참여한 자들의 기억 속에만 살아있게 두고, 결과물은 영원히 봉인해버릴 수 밖에 없다. 이건 지극히 90년대다운 결론이다.

그 이전 시대인 발자크는 대상의 본질에 가서 닿을 수 없어서 결국 대상을 그리는 주체가 대상으로 가는 길과 주체인 자신을 모두 불태워버리는 결론을 택할 수 밖에 없었다. 바벨탑으로 상징되는 완전한 언어를 통한 본질에의 지향은 원래 그렇게 무너질 수 밖에 없으니까.

결론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의 한 구절로 맺는다. "Accordingly, the poet should prefer probable impossibilities to improbable possibilities. (따라서 시인은 개연성있는 불가능성을 개연성 없는 가능성보다 선호해야 한다.)” 즉, 예술가는 그럴 듯하나 불가능한 일을 하는 자들이란 뜻이다. 대상의 본질에 가 닿는 건 불가능하다고 애초부터 아리스토텔레스는 말하고 있었다 - 그냥 그럴 듯한 것, 그게 재현의 최대치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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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 책과 혁명에 관한 닷새 밤의 기록
사사키 아타루 지음, 송태욱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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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쓰고 싶다. 아니 쓸 수 있다. 그러나 읽는 이들을 한껏 불편하게 만들고 그 난무할 욕을 감당하겠냐고 출판사 관계자들이 물었다. 아니, 난 감당할 멘탈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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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혐오를 혐오한다
우에노 지즈코 지음, 나일등 옮김 / 은행나무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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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학과 남성학, 이 책에 인용된 담론들, 한국보다 몇 십년 앞선다. 읽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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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제보다 오늘이 좋다 - 옥스퍼드 지식 전도사 써니가 전하는 삶의 지혜
김성희 지음 / 쌤앤파커스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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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처음 소개받았을 때 나이 50에 옥스포드에서 박사를 시작해서 마친 분의 성공 신화라 생각했다. 이미 세상에 넘쳐나는 성공 신화 중 하나라고. 개인적으로 너무 똑똑해서 혹은 필사의 노력과 불굴의 정신력으로 성공을 했다는 이야기는 이젠 익사할 정도로 많아서 구태여 더 보태야 할까하는 생각을 하던 차였다. 그리고 너무도 다행히도, 그리고 더 나아가 행복하게도, 이 책은 그런 기대를 잘도 깨주었다. 


이 책은 성공한 사람이 성공이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책이다. 성공이 중요하지 않다고? 그래, 감히 그렇게 말하고 싶다. 까짓 성공이 뭐 그리 중요한가, 성공을 강요하는 이 망할 사회가 문제인거지. 아이를 대안학교로 옮기러 갔을 때 거기 교장 선생님이 그러셨다. “이 학교는 아이들이 마음껏 실패해볼 수 있는 곳입니다.” 그 말 한 마디에 마음이 놓였다. 그리고 아이를 이제 그만 품에서 놓아주라고 하셔서 눈물이 핑 솟아올라서 쓸데없이 눈물만 뚝뚝 흘리다 왔다. 그래, 사람은 실패해 볼 수 있어야 하는데, 실패하고 다시 일어나보아야 자신의 아픔으로 남의 아픔도 알고 옹골지게 자기 것만 움켜쥐려 하지 않고 정말 부드럽고 강한 사람이 되어서 걸어갈 수 있는데 말이다. 이 책은 그렇게 실패하며 일어나다 보니 성공해버린 분의 이야기이다. 


개인적으로는 이 책을 만나서, 이 책을 쓴 사람이 이 사회에 있어서 정말 기쁘고 다행이었다. 워킹 우먼이라는 50대 언니들을 보면 역할 모델을 도통 찾을 수가 없었다. 대개 너무 잘난 아버지를 두어서 그 힘으로 쉽사리 승승장구한 케이스이거나, 남자들보다 더 독하고 무서운 야심으로 똘똘 뭉쳐서 피도 눈물도 없는 언니들이었다. 그렇게 살아야 성공하는 거라면 난 차라리 성공하고 싶지 않았다. 성공하는 사람들 열 중에 여덟은 결핍이나 열등감을 강력한 동기로 똘똘 뭉쳐서 자신을 모질게도 몰아 부치는 사람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끊임없이 ‘나도 열심히 살았으니, 너도 열심히 살아’라고 말하거나, ‘난 살림에 일에 자녀 양육에 매달 제사 몇 번까지 치러가며 살았는데 엄살 피우지 마!’라며 자신만큼 똑똑하지 않거나 자신처럼 잘나가는 아버지를 두지 않아서 고군분투하는 사람들을 더 달달 볶아만 대는 사람들이 대다수였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는 성공이 중요한 게 아니라 과정이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내가 주인공으로 성취하며 무대에 서는 only one이 되는 삶이 아니라 with you, 즉 다른 사람들과 함께하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고, 성공하기 위해 달려가는 삶이 아니라 인생에 둘 다 있는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을 걸으며 내리막길을 즐거이 걸어갈 수 있는 삶의 자세에 대해 말하고 있다. 젊은이들에게는 젊음을 걸고 무엇을 하고 싶은지 찾아내라 말하고, 넘어지더라도 그 ‘덕분에’ 많은 것을 배우고 보다 나은 사람이 되어서 인생의 여정을 걷는 거라 말하고 있다. 


결과물 중심의 삶은 결코 행복하지 않다, 아니 만족함이 없다. 취업과 한 사람의 경제적 가치에 옥죄여 사는 젊은이에게 이 책을 읽어보라 권하고 싶다. ‘보이스 프롬 옥스포드’의 대표로 숱한 성공한 이들을 인터뷰했던 저자는 성공의 비결을 묻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한 석학의 이야기를 해준다. “인생은 하나의 과정일 뿐이에요. 성공을 논하는 건 거만한 태도입니다.’라고. 그래, 사람은 being 아니라 언제나 becoming의 존재, 즉 이미 된 존재가 아니라 되어가는 존재이다. 행복은 그 되어가는 과정 중에 있다. 당신이 구하는 게 행복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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