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목의 성장
이내옥 지음 / 민음사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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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목의 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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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직업은 박물관 큐레이터이다. 우연한 기회로 일하게 된 박물관에서 34년이라는 시간을 보내게 됐지만, 처음엔 아름다움의 가치를 잘 느끼지 못했다고 한다. 작품을 보는 대선배의 안목과는 다르게, 머리로는 이해했지만 가슴으로는 선뜻 와 닿지 않았던 것이다. 이렇듯 미적 안목이 전제되지 않으니 박물관은 그저 삭막한 사무실로만 느껴졌다고 한다. 그러던 와중에 처음 인연을 맺게 된 정준 디자이너와 더불어 그 주위 지인들과의 만남으로 인해 아름다움에 대한 식견이 점차 넓힐 수 있었다고 한다. 

  

박물관을 근무하게 되면서 문화재를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고심하게 되었고, 서양 박물관의 유물 관리 수칙과 규정과 다르게 명확한 기준이 명시되어 있지 않은 우리나라의 현 박물관 상황에 대해 날카롭게 지적하기도 하며, 조명의 중요성, 수집가들의 못 말리는 수집 욕구와 기증에 대한 이야기, 동양 문화의 아름다움, 아는 이들만 찾는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풀꽃 갤러리 아소에 대한 이야기,  종교와 역사, 정치, 미술, 일본문화, 고향에 대한 이야기 등 새삼 곳곳에 간직되고 있었던 아름다움과 그 가치에 대해 놀라웠고, 감사하게 느껴졌다.

  

'안목의 성장'이라는 제목에 이끌려 처음엔 단순히 아름다움을 바라보는, 이를 올바른 가치로 판단할 수 있는 안목을 기를 수 있도록 어떠한 노하우나 방법을 얻어가려는 요령으로 읽기 시작했었다. 

  

허나, 사실 이 에세이는 오랫동안 박물관 큐레이터로 일하며 저자의 생활 즉, 삶 그 자체로 스며든 문화 예술 역사 등 자연히 태어났고, 자연히 성장한 저자만의 안목에 대한 이야기이자 지난 시간들에 대한 회고록이었기에, 잘못된 독법으로 접근한 것 같아 아차 싶었다.

  

굳이 안목에 대해 얻은 결론을 정의해보자면, 그저 끊임없이 관심을 두고 오래 응시하며 시간의 지혜가 전해주는 대로 자연히 길러지길 바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고보니 마치 여러 분야의 역사 강의를 들은 기분이었다. 특히 동양권 문화에 대해서. 머릿속에 얼핏 인식은 하고 있었으나, 잘 알지 못하였고 큰 관심을 두지 않았던 우리나라 문화재의 아름다움에 대해, 이 책이 아니었다면 영영 몰랐을 풀꽃 갤러리에 대해 신기하고 뿌듯한 마음으로 읽을 수 있어 좋았다. 아소는 자연광이 스며드는 공간이 너무 매력적인 곳이었다. 가만히 바라보는, 응시하는 데서 얻어지는 기쁨도 있을 것만 같다.

  

한 가지 아쉬움이라면 정말 중요한 부분이라고 여겨지는 곳에서는 사진이나 그림 한 장 정도는 실어주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것이었다. 물론 여러 여건들이 전제되어야 했던 것이었지만, 저자의 감상과 다르게 나는 어떻게 느낄 수 있을지에 대한 여백이 부족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에, 뻔한 구성일지 몰라도 어쩌면 아예 무지한 영역에서는 이미지만큼 효과적인 게 또 없다는 생각 때문에 이런 아쉬움이 남겨졌는지도 모른다. 저자의 느낌과 애정 어린 감탄에 함께 동조하고 싶은데 상상만으로는 부족한 지점이 있어 읽는 도중에 검색을 많이 해봤던 것 같다. 

  

저자에게 많은 영감을 준 듯한 도연명과 화엄경의 거대한 세계에 궁금증이 일었고, 윤두서의 그림을 찾아보고 그 멋을 조금이나마 느껴볼 수 있었다. 다양한 도시에서 고유의 문화와 역사를 경험했고, 좋은 인연들을 통하여 겪고, 느낄 수 있던 것들에 대한 부러움도 들었다. 하나의 길로 향하지만, 사실 여러 방향으로 그 뿌리가 뻗어져 나가 있는 저자의 삶의 시간들에 대한 경외감도 들었고, 멈춰있는 시간처럼 느껴지는 지금이 헛헛하고 쓸쓸하게 느껴졌지만, 아직 갈길이 멀기도 하니까, 구절에 인용된 누군가의 말처럼 삶은 눈부시다고 하니, 이 빛이 사그라들지 않도록 더욱 발을 굴려야 겠다는 생각으로 안목은 없고 고집만 있는 독자의 부족한 리뷰를 마무리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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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아름다움을 보는 눈

  


살아오면서 얻은 깨달음이란 가는 것도 아니고 오는 것도 아니었다. 진실은 여기에 존재한다. 그러니 우주의 운행에 자신을 맡긴다는 옛 성현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면서, 봄날 뜰 안의 나무와 풀꽃의 새싹을 보며 우주 생명의 신비를 경외하고, 따뜻한 봄볕에 자신을 맡겨 겨우내 움츠렸던 몸과 마음을 녹일 뿐이다. 23쪽

  

 

어떤 분석도 끼어들 틈이 없다. 모든 존재에는 완벽한 아름다움이 내재하기 때문이다. 33쪽

  

그런데 안목이란 단순히 유물에 국한되지 않고, 모든 사물의 아름다움을 보는 눈을 포괄한다. 이러한 점에서 돌아보건대 내가 안목을 틔우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그러한 눈을 가진 사람들과의 만남이었다. 35쪽

  

  

골동에 관한 얘기이지만, 인간사 또한 먼저 자신을 속여야 남을 속일 수 있고, 남을 속이다가 결국 남에게 속아 넘어가는 것이 진리이다. 51쪽

  

우리 모두는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고귀한 존재이다. 그렇기에 진정으로 가치와 품위를 가지고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 이를 생각하며, 흔적도 없이 사라진 조선의 아름다운 유풍을 그리워한다. 76쪽

  

모든 관계를 떠나니 무한한 고독과 대면한다. 천 길 낭떠러지에 서서 한 걸음 앞으로 내딛는 순간에 열리는 새로운 세계이다. 아마 우리 인간의 죽음도 흰 눈에 덮인 겨울의 호수 풍경처럼 아름다울 것이다. 82쪽

  


2부 알아본다는 것

  

모란이 상징하는 아름다움은 그것이 너무나 짧고 무상하기에 더욱 아름답고 또한 슬프다.  109쪽



3부 시골에 집을 마련하다

  


(…) 건축은 자연처럼 스스로 존재할 수 잇는 힘을 지닐 때 화려함으로 승화되는데, 그것이 인문적이고 예술적인 힘을 가진다는 것. 그런 집이야말로 ‘삶의 무대이자 피안으로, 삶을 살되 삶을 잊게 하는 집’으로서 우리 삶을 확장시킨다. 188쪽

  

우리는 자유 의지와 상관없이 이 세상에 던져진 존재이니, 우리 생의 본질은 능동적일 수 없으며, 타락적이다. 그저 주어진 삶을 살아가다가 생명이 다하면 먼지로 돌아갈 뿐이다.  272쪽






(이 리뷰는 민음북클럽의 서평 프로그램 '첫 번째 독자'를 통해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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