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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의 밤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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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정이란 작가에 대해서 알고 있던 것은 아니었다. TV에서 엄청나게 광고를 때렸던 '내 인생의 스프링 캠프'는 읽어본 적이 없었고, 서점 서가의 목 좋은 자리에 항상 꽂혀있던 '내 심장을 쏴라'도 읽어본 적이 없었다. 표지는 알고 있었지만 그다지 관심은 끌지 않는 작가였다. 갑작스럽게 나타난 '세계문학상'이라는 것에 흥미가 동하지 않기도 했다. 이번에 고를 책을 선택하면서도 7년의 밤은 논외에 있었다. 내 선택에 가장 큰 영향을 주었던 것은 표지였다. 외국 서적의 표지를 보는 듯한 촌스러운 표지는, 이 책을 그저 그런 가십류 소설중 하나로 여기게 했다. 내 마음이 약간이나마 움직인 것은, 바로 이 광고 영상 때문이었다.

광고를 보는 순간, 서스펜스에 대한 갈증이 일었다. 오래 전부터 접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엉겁결에 깨닫고나니 갑작스런 갈증이 치고 올라왔다. 스릴러와 추리물 장르는 이미 일본에게 자리를 내준 탓에 국내 본격 문학으로서는 눈에 띄지 않았던 것이다. 어쩌면 서스펜스에 대한 갈증이라기 보다는 '이야기다운 이야기'에 대한 갈증이었는지도 모르겠다. '7년의 밤'을 읽을 목록으로 선택하면서의 나는 굉장히 반가운 마음이었다.

작품을 접하면서 가장 놀랐던 것은 작가의 준비성이었다. 소설에선 잠수부와 야구, 그리고 댐 관리가 가장 중요한 소재로 등장한다. 작가는 그 직업군에 대해서 대단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으며, 관련 용어들을 자유자재로 구사했다. 소설의 초반부서부터 작가에 대한 맹목적의 신뢰가 생겨났다. 이렇게 열심히 준비한 작가의 글이라면 뒷 이야기에 보통의 것이 숨어 있진 않겠구나. 하는 기대심리마저 피어났다. 정유정 작가의 글은 오래 묵은지 같았다. 장독에 꼭꼭 숨겨둔채 기다리다가, 보란듯이 내놓은 그녀의 작품은 깊고 진했다. 싸한 맛이 코를 뚫었다.

작품의 배경이 되는 세령호는 가상의 공간이다. 가상의 마을이지만 이 소설을 다 읽고 난 다음엔 마치 그곳이 실재했던 것 처럼 느껴지곤 한다. 댐으로 물막이를 해서 생겨난 커다란 호수. 그 아래 잠들어있는 과거의 마을. 그 마을 이주민들과 외부인들 사이에 나눠진 커다란 단절과, 그들 사이에 황제처럼 서 있는 세령목장의 주인이자 치과의사인 영제. 이 매력적인 마을의 지도가 책머리에 실려 있다는 사실은 책을 2/3쯤 읽은 뒤에 알게 되었지만, 굳이 지도가 없더라도 마을전체를 머릿속에 그리고 몰입하는 데에는 지장이 없었다.

이 마을의 외부인으로 승환이 들어오고 그 뒤를 따라 현수와 그의 가족이 들어온다. 이들은 경비업체에서 파견된 수문 경비원들이었다. 때마침 마을에선 사건이 일어난다. 영제의 딸이 실종된 것이다. 영제는 자신의 딸과 아내를 물건처럼 부리고 싶어한다. 자신이 생각하는 대로 움직이는 인형처럼 만들길 원한다. 하지만 그들은 인형이 아니었기에 영제는 자신의 뜻대로 그것을 이루지 못했고 폭력이라는 수단을 통해 그들을 '교정'하려고 한다. 그 부분별한 폭력에 희생된 모녀는 결국 가출과 실종이라는 결과로 나타나게 된다. 머지 않아 영제의 딸 세령은 호수에서 익사체로 떠오르게 된다. 그리고 부검 후에, 그녀가 차에 치인 뒤에 강한 힘으로 목이 꺾이고 호수에 버려졌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이야기는 얽히고 섥힌다.

사실 소설은 가장 중요한 모든 것은 밝히고 시작한다. 소설의 사실상 주인공인 서원의 아버지가 살인자로 잡히면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영제의 딸 세령을 죽이고, 자신의 아내를 살해한 뒤 댐 문을 열어 한 마을을 수장시킨 살인마. 그렇기에 소설은 더이상 살인범을 찾는 게임이 아니다. 사실이 전부는 아니라고(p.25) 말하는 승환의 대사처럼, 소설은 사실 속에 숨어있는 진실을 찾는데 힘을 쏟는다. 사실은 문맥상의 의미를 배재하기 때문이다. 이미 7년 동안 여러 매채를 통해 밝혀지고, 재생산된 한 끔찍한 사건 뒤에 숨어 있는 진실을 찾는 것. 그것이 소설이 우리에게 말하는 방식이다.

   
  나는 내 아버지의 사형 집행인이었다. p.6  
   

소설은 이 강렬한 문장으로 시작된다. 서원은 상상 속에서 수 없이 자신의 아버지를 목매단다. 살인자의 아들이라는 명찰을 달고 한 곳에 안주하지 못한 채 온 세상을 떠돌아다닌 그로서는, 아버지의 저주가 자신에게 들러붙어 있는 느낌일 것이었다. 가는 학교마다 아이들이 그를 따돌리고, 취직을 해도 곧 해고된다. 집을 얻으면 집에서 쫓겨난다. 그렇기에 서원은 가장 사실에 강하게 매여 있는 인물일 것이다. 아버지가 살인범이라는 사실 때문에 세상에서 버려져 생의 근처를 떠돌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 서원이 진실을 알게 된다면. 그 가정을 시작으로 세령호에 숨겨져 있던 비밀이 봇물이 터지듯 밀고 들어온다.

소설의 주인공들은 다들 자신의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가지고 있다. 현수는 항상 술을 마시며, 자신을 폭행하던 '최상사'로서 아버지를 기억한다. 그리고 어떻게든 아버지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려 노력한다. 하지만 그는 결국 아버지에게서 벗어나지 못한 채, 사형장에서 생을 마감한다. 승환은 강에서 시체를 건저올리는 역할을 했던 아버지로부터 벗어나려 한다. 그는 철도 업체에 취직하지만 한 여성이 그의 열차에 뛰어들어 자살한다. 그 시체의 사라진 신체부위를 찾으며, 결국 아버지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는 생각을 한다. 도망치듯 세령호라는 외지로 흘러나오지만, 그곳에서 그는 물질을 하던 중 누군가에게 버림받은 세령의 시체를 보게 된다. 서원도 마찬가지이다. 아버지의 이름을 가슴에 붙인 채로 그는 어떻게든 도망치려한다. 마지막에 쏟아지는 기자들의 쏟아지는 플레쉬 세례에 당당히 서는 그의 모습은 그런 아버지의 그림자에 대항하는 꿋꿋한 자세였을 것이다.

살인사건과 그 범인, 그리고 살해자 아버지의 치열한 복수를 다룬 작품이지만 그렇게만 볼 수는 없었다. 이미 살인자를 밝혀졌기에 치밀한 반전 따위는 있을 수 없었고, 스릴이 강조되기엔 그들이 안고 있는 과거의 무게, 죄의 무게에 많은 분량이 할애됐다. 단순히 아들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으로 읽기에는 아들을 위해 한 마을을 수장시키는 아버지의 비뚤어진 부정이 너무 도드라졌다. 그보다는 어딘가 어긋난 인간들의 초상이 확대경을 쓴 듯 자세히 읽혔던 것 같다. 자신의 세계를 건설하려는 야망을 가진 영제. 최상사로부터 도망치며 자신의 아들에게 모든 것을 쏟아붇는 현수. 쪽방에서 살아가며 '내 집'에 대한 부푼 꿈을 안고 거기에 집착하는 은주 등. 이 소설에 나타나는 인물들이 한 군데씩 괴이한 것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인간 본성의 약점 하나 씩을 드러내어 그것으로 케릭터를 형상화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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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개츠비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7
F.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김영하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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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개츠비'는 이전에 다른 판본으로 구해서 읽었었다. 그 당시에 소설을 읽었을 때는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그저 이야기를 따라가기에 급급했고, 머릿속에서 정리가 잘 되지 않은 부분도 있었다. 당시의 사회상도 잘 그려지지 않았고, 인물들의 개성도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문학동네판 '위대한 개츠비'는 정말로 재미있게 읽어내었다. 그게 내가 나이를 먹은 탓인지, 아니면 번역가의 문제인진 모르겠다.

문학동네에서 나온 '위대한 개츠비'는 처음 출판됐을 때부터 관심을 가졌었다. 그 이유는 김영하 작가가 번역을 했기 때문이었다. '위대한 개츠비'는 영미소설 중에선 으뜸으로 꼽히는 작품 중에 하나이고, 무라카미 하루키도 극찬을 아끼지 않으며 직접 자신의 언어로 번역을 하기도 했던 작품이다. 작품에 대한 호기심은 커지기만 하는데 이전에 읽었던 판본에선 아무런 느낌을 얻어내지 못했으니. 김영하라는 이름에 기대를 하게 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판본별로 비교를 해보지 않았으니 김영하판 개츠비가 이전의 개츠비와 얼마나 다른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개인적으론 케릭터들의 성격이 좀 더 분명해졌다는 느낌이었다. 특히 대사처리 부분에서 단순히 정보만 전달하지 않으며 케릭터에 맞는 말투를 잘 구사해내었다. 덕분에 소설을 읽는데 있어서 몰입도가 상승했던 것 같다. 신분의 벽을 넘어서 데이지를 사랑하는 개츠비와, 풍요로움을 추구하고 사치스러우며 변덕이 심한 데이지. 정부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데이지의 외도엔 강하게 반발하며, 자신의 이익에 맞춰서 모든 것을 정당화하는 톰. 10년이 넘도록 아내의 바람기를 의심하지 않으며, 제 힘으론 감당하기 힘든 아내를 짊어지고 살다가 끝내 그녀 때문에 파국에 이르는 윌슨 등 여러 인물들이 엮어내는 스토리는 케릭터가 살아났기에 더 분명한 선을 가지게 되었다.

이 소설은 개츠비의 사랑 이야기이다. 하지만 이 사랑이 단순한 삼류 로맨스 소설로 끝나지 않는 이유는, 개츠비의 사랑 방식이 너무나도 일방적이고 희망적이기 때문이다. 개츠비는 5년 전에 사랑했던 데이지와 맺어지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한다. 개츠비와 데이지는 너무나도 다른 세계의 사람이었다. 데이지는 어마어마한 부를 가지고 있는 상류층 사람이었지만, 개츠비는 농부의 자식이었기 때문이었다. 같은 위치에 올라서기 위해 개츠비는 열심히 노력하며, 결국엔 데이지의 저택이 마주보이는 만 건너의 집을 구입하게 된다. 그곳에서 그는 데이지의 눈에 들기 위해 매일 밤 어마어마한 불을 밝히는 파티를 벌인다. 하지만 그 불빛은 데이지에게 닿지 않으며, 파티가 끝난 뒤 개츠비는 멀리 보이는 데이지네 집의 불빛을 그저 바라보기만 한다.

그는 데이지가 자신만을 사랑했다고 계속해서 자신을 세뇌한다. 슬픈 사실은 데이지는 개츠비라는 인간 보다는 그가 가진 재물에 더 관심이 많았다는 것이었다. 결국 데이지는 개츠비가 모은 돈이 정당한 방식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는 톰에게로 돌아간다. 이후 빗나간 운명으로 인해, 윌슨에게 살해를 당하는 개츠비는 수백명의 인원이 매일마다 찾아와 불을 밝히던 파티가 무색하게, 아무도 없는 채로 장례를 치르게 된다. 자수성가를 했지만 사람들은 그의 집에 찾아와 술을 마시면서도 다들 개츠비를 조롱하기에 바빴다.

그렇기에 개츠비의 사랑은 더욱 가슴아프게 막을 내리고 만다. 오직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주인공 닉 캐러웨이만이 그 사실을 알고 위대한 정신을 가졌던 개츠비를 기린다. 이렇게 숭고하고 아름다운 마음을 지녔던 인물이, 기존의 부유한 계층이 아니라 신흥 부자라는 이유로 사람들에게 놀림을 당하고 무시당하는 모습들이 가슴에 닿았다. 흥청망청한 소비의 세계, 환락과 윤락의 세계에서 그들을 지켜보듯 존재하는 개츠비라는 인물이 내내 강한 인상으로 남아 있었던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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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페스트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6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이경식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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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의 희곡 ‘템페스트’에 등장하는 주인공인 푸로스퍼로는 밀라노의 왕위 승계자이다. 그는 자신의 학문적 연구를 위해 동생 앤토니오에게 권력을 위임하는데, 앤토니오는 권력의 맛에 취한 나머지 나폴리의 왕 알론조에게 나라를 바치고 자신의 형 푸로스퍼로와 그의 딸 미랜더를 배에 태워 추방한다. 다행히도 나이든 대신 곤잘로가 푸로스퍼로가 탄 배에 식량과 책 등을 실어, 부녀는 죽지 않고 아무도 살지 않는 무인도에 닿을 수 있었다.

세살배기였던 어린 딸이 처녀로 장성할만큼의 시간이 지나고, 푸로스퍼로는 알론조 왕이 그의 딸과 튀니스 왕의 결혼식에 참석했다가 귀국하는 항해길에 있음을 알게 된다. 그 배에는 자신을 추방시켰던 동생 앤토니오와 알론조 왕의 아들 등이 전부 승선해있었다. 푸로스퍼로의 입장에선 자신을 몰아낸 인물들을 한 번에 처단할 수 있는 기회였을 것이다.

그는 오랫동안 마법을 연구하여 날씨를 맘대로 부릴 수 있었고, 무인도의 원래 주인이었던 마녀에게서 구해낸 정령을 수하로 부렸기에 얼마든지 그들에게 복수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모든 일은 그의 의도대로 흘러가, 태풍에 배는 전복되었고 승선했던 모든 사람들은 산채로 육지에 올라와 있었다. 알론조 왕의 아들 퍼디넌드는 푸로스퍼로의 딸 미랜더와 사랑에 빠지기까지 이른다.

푸로스퍼로는 이렇게 말한다 ‘이제는 나의 모든 원수가 내 자비하에 들어왔다.’ 그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자신의 오랜 숙적들을 절망에 구렁텅이에 빠뜨릴 수 있었다. 그리고 알지 못하는 무인도에 버려진 그들은 이미 스스로 파경의 경지에 이르고 있었다. 앤토니오는 다시 시배스천과 공모하여 알론조를 죽이고 나폴리의 새 왕으로 올라설 계획을 세우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희극의 마지막은 정말로 극적이다. 사람이 사람을 용서한다는 것은 위선적 감정으론 쉬이 행하기 힘든 고차원적 행위다. 게다가 그 앙금이 단순한 다툼이나 싸움이 아닌 경우엔 더욱 그렇다. 그렇기에 나는 이 책을 보면서 푸로스퍼로의 행동에 상당히 반감이 들었다. 정상적인 사고 과정을 가진 인간이라면 몬테크리스토 백작과 같은 이야기가 진행되어야 정상일 터다.

푸로스퍼로의 딸인 미랜더는 극의 마지막에 모두 모인 사람들을 보고는 이렇게 말한다. ‘훌륭한 사람이 여기에 이렇게도 많다니! 인간은 정말 아름답구나! 이런 분들이 존재하다니, 참, 찬란한 신세계로다!’ 미랜더는 철이 들고는 자신의 아버지 이외의 인간을 보지 못하고 자란 존재이다. 그런 그녀에게 인간의 첫인상이란 저런 것이었다. 지금까지의 모든 아픔을 말끔하게 씻어내고 그들에게 용서를 말하는 푸로스퍼로의 행위는 인간의 경지를 뛰어넘은 것이었다. 게다가 자신을 배신하고 그를 죽이러 온 하인 캘리밴을 용서하는 부분에서는 무조건적 용서의 정점을 보여준다. 하지만 어떻게보면 인간의 이성적 행위를 벗어난 이러한 기독교적 감성을, 미랜더는 다시 인간계로 끌어내리고 있다.

인간의 악한면, 복수심과 탐욕에 치우친 근래의 독서법을 다시 돌아보게 만드는 극이다. 푸로스퍼로가 이번 일이 끝나면 정령 에어리얼을 자유의 몸으로 풀어주겠다고 약속하는 장면은, 분명히 거짓말일 거라고 생각했다. 헌데 푸로스퍼로는 마지막에 정령을 풀어주는 것은 물론이요, 자신이 평생 연구했던 마법책과 마법봉 등을 모두 바다에 버린다. 인간을 보는 시선, 사유의 방향을 다시 짚어볼 기회를 준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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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문학 2011.04 - Vol 676
현대문학 편집부 엮음 / 현대문학(월간지)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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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문학 4월호엔 신춘문예 당선자들의 소설이 실렸다. 이제 막 문단에 들어선 신인들이 선보이는 첫 번째 작품이니 만큼, 글을 쓰는 당사자들의 부담은 컸을 것이다. 등단을 위해 갈고 닦았던 소설이 아닌, 다른 소설로 평가를 받아야 하는 입장에서 어떤 글을 써야 할지 고민도 컸을 것이고, 문단에서 살아남기 위한 이미지 구축에도 신경을 썼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8편 단편 모두 제각각의 힘이 있었고, 개성이 있었다. 그 중에 눈길을 끌었던 몇 가지 작품에 대해 짧게 말해보고자 한다.


개인적으론 경향신문으로 등단한 백수린의 '감자의 실종'이 가장 좋았다. 주인공이 알고 있는 '감자'라는 단어가 사실은 다른 사람들이 '개'라고 말하고 있었다는 발견으로 시작되는 이 소설은, 과연 내가 의도하는 말이 상대에게 제대로 전달되고 해석되는 가의 문제를 기발한 소재로 풀어나간다. 자신이 알고 있는 단어가 사실은 다른 단어와 뒤바뀐 것이라는 것을 알고 혼란스러워 하는 주인공의 모습은, 소설에선 특별하게 표현되지만 사실 그는 어쩌면 너무도 평범한 인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현경의 '달팽이 의자'는 인상 깊은 작품 중 하나였는데. 주인공과 젊은 할머니와 달팽이, 그리고 주인공에게 의자 리폼을 맞긴 여자가 이끌어나가는 이야기가 굉장히 그로테스트해서 이미지가 강하게 새겨졌다. 달팽이의 점액을 온 몸에 바르며 젊음을 유지하려는 할머니, 손자에게 계속 달팽이 삶은 고기를 먹이는 그녀의 모습이 기괴했는데, 결국 그 이야기의 마지막을 할머니에 대한 사랑확인으로 발전시켜나가는 과정이 개인적으로 아쉬웠다. 특별한 이야기를 흔하게 끝내버린 안타까움이었다.


구성이 가장 특이했던 것은 손보미의 '그들에게 린디합을'이었다. 전혀 있지 않은 인물들과 그가 만든 영화를 실제 있는 것처럼 가장하여, 잡지 기사처럼 꾸며낸 단편은 좋은 시도였다. 허구를 사실처럼 풀어놓는 진지함은 좋았으나 그것이 일정 수준, 그러니까 실험이나 기교 이상으론 나아가지 못하고 있었다.


유일한 남성작가인 천재강의 '카페 몽마르트'는 서민을 바라보는 시선이 좋았던 작품이었다. 가스배달부와 이벤트업체 직원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데, 이런 소시민들이 한 인물에 의해 이용당하나 좌절은 하지 않는 모습이 맘에 들었다. 몽마르트를 사랑한 화가 로트렉의 그림을 배경으로 해서, 거기에 나타나는 댄서나 매춘부를 가스배달부로 치환시켰다. 시종일관 쾌활하게 진행되는 이야기 구조도 좋았다.


이시은의 '달팽이 행로'는 계간, 사형, 자웅동체인 달팽이, 발가락 옆에 달린 또 하나의 살 덩어리, 사형, 살인 등의 키워드를 버무려내어 강렬하였다. 이 기괴하게 얽힌 이야기는 두 어긋난 연인의 사랑이야기로 읽어야 할지 애매했다.


라유경의 '말리볼트'는 110볼트 다운트렌스된 조명과 음향기기로만 구성된 가게 '밥 말리'라는 장소를 매력적으로 설정했다. 다만 그 매력은 이야기를 진행하는 힘이 약해 맥을 추지 못했다. 여러가지로 나타나는 이야기들이 하나로 수렴되지 못하는 인상이라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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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변마을 - 2011년 제56회 현대문학상 수상소설집
전경린 외 지음 / 현대문학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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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문학상을 수상한 표제작 '강변마을'은 너무나도 기본적인 소설적 형태를 따라가고 있다. 언젠가 겪었던 기억을 떠올리다가 다시 현재로 돌아오는 구성방식은, 어떻게 보면 안정적이라고도 볼 수 있고, 어떻게 보면 무난하고 지루하다고도 볼 수 있겠다. 하지만 소설은 유년기의 시점을 채택하여 자신만의 개성을 만들어내고 있다. 유년기에 잠시 머물렀던 '강변마을'은 이후에 터부시된 공간으로 재형성되며, 새로운 의미로 재창조된다. 울림이 있는 글이란 이런 것일 게다. 잡다한 기술에 연연하지 않고 소설 본래의 모습 그대로 밀고 나가며 감동을 주는. 그런 점에서 흡족했던 대상 작품이었다. 그와 대비되게 수상작가 자선작인 '흰 깃털 하나 떠도네'는 서사성보단 상징성이 두드러져 흥미로웠다.

다만 표제작을 제외하면 후보작들 대부분 뭔가 나사가 하나 빠진 듯한 인상이었다. 권여선의 '끝내 가보지 못한 비자나무 숲'은 모든 것이 불분명하게 처리되어 아쉬웠고, 김숨의 '막차'는 공포감이 드러나는 마지막이 허무했다. 김태용의 '물의 무덤'은 너무 과도하게 사용된 상징성이 어지러웠고, 손홍규의 '증오의 기원'은 대학생들의 인문학적으로 과잉된 정서와 철학적 대사가 남발하여 읽는데 부담스러웠다. 그래도 역시 배울점이 많은 작품들이고 작가마다의 개성이 뚜렷하여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김미월의 '안부를 묻다'가 개인적으론 굉장히 맘에 든 작품이었다. 어린아이의 눈에 비친 서스팬스가 잘 녹아 있었는데, 눈에 보이지만 가지 못하는 금지된 공간에 대해 오싹하게 펼쳐지는 상상의 나래가 즐거웠다. 밤마다 불가해한 구둣소리가 들려오지만, 결국엔 그것에 익숙해지고 게다가 그것때문에 행복해지기까지 하는 비논리적인 등장인물들의 행동양식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해가능한 방식으로 다가와 놀라운 작품이었다. 윤고은의 '해마 날다'는 취중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서비스라는 기발한 소재가 좋았고, 그 내용보단 배설의 행위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며 같은 레파토리를 반복하는 그들의 모습에서 깊은 인상을 받았다.

역대수상작가 최근작엔 이승우, 김인숙, 박성원의 소설이 실렸는데. 문학적으로 급이 다르다는 생각을 하며 읽었다. 문체적인 부분에선 이승우의 '이미, 어디'가 충격적이었는데. 말들이 꼬리에 꼬리를 이어 빙빙 도는 모양새가, 모든 행동이며 사고의 모호함을 보여주는데 그 방식이 독창적이었다. 김인숙은 환상을 근간에 두면서도 그 환상, 포비아에 대한 근본적 원인을 바탕에 깔아둠으로써 인과 관계에 대한 모범적 이야기 짜기를 보여줬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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