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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타이거
페넬로피 라이블리 지음, 김선형 옮김 / 솔출판사 / 2011년 4월
평점 :
절판


부커상 수상작이다. 1987년 수상작. 그런데 국내엔 초역된 듯 하다. 문타이거와 관련된 정보를 찾아보았지만, 찾기가 쉽지 않았다. 왜일까. 노벨문학상, 공쿠르상과 함께 세계 3대문학상이라고 하는 부커상을 수상한 소설인데. 14년이란 세월이 흘러 이제야 소개되다니, 알 수 없는 일이다.

주인공 클라우디아 햄프턴은 임종을 눈 앞에 두고 있다. 소설에서 그녀의 첫 마디는 이렇다. “세계의 역사를 쓰고 있어요.” 병원 침대에 누워 거동도 못하는 사람이 할 말은 아니다. 하지만 완전히 틀린 말도 아니다.

E.H.카는 ‘가위와 풀의 역사’라는 말을 했다. 역사는 역사가의 역사이다. 객관적으로 서술된 역사는 없으며, 역사는 역사가에 의해 활자화되며 비로소 역사가 된다. 클라우디아는 지극히 개인적인 관점에서의 세계사를 쓰려고 했다. 자신의 유년시절부터 현재에 이르는 일생에 관한 역사. 사실 그것이 한 인간에겐 세계사가 아닐까.

문 타이거라는 제목이 상당히 생소했다. 번역하면 ‘달 호랑이’정도로 할 수 있을까. 알고보니 이것은 둥글게 타들어가는 모기향이라고 한다. 모기향에 이렇게 동양적이고 신선한 이름이 붙어 있을 줄은 알지 못했다. 이 소설의 이야기는 모기향처럼 중심을 향해 서서히 타들어간다.

그 중심엔 한 남성과의 사랑이 있다. 이집트에서의 짧은 사랑. 그것은 클라우디아의 인생에 있어서 중심점을 이룬다. 그녀는 임종의 순간까지 그 찰나의 사랑을 붙들고 슬퍼한다. 세계사의 추동에 휩쓸려 결국 이루어지지 못하고 말아버린 그 사랑은 그 시간에 굳어져버리고 홀로 늙어버린 클라우디아는 젊은 시절의 톰을 회상하고 추억한다.

집중하지 못하고 읽은 소설이었다. 많은 사건들이 있고, 한 장면을 여러 시각을 통해 다시 보여주기도 하는 등, 결코 정물화되지 못하는 역사를 끊임 없이 상기시킨다. 등장인물도 개성적이다. 지독한 나르시시즘으로 인해 자신과 가장 닮은 형제를 사랑하게 되는 수위가 얕은 근친상간은 자극적이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계속 소설 근처에서 맴돌 뿐, 끝내 소설 속으론 들어가지 못했다. 문체의 문제인지 번역의 문제인지는 잘 모르겠다. 소설 자체를 탐독하기보다는, 그냥 활자를 읽어내었다는 느낌 뿐이었다.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사랑하는 애인을 잃고, 혹은 자신의 아버지를 잃은 사람이라면 더 절절이 가슴아파 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클라우디아 햄프턴은 그 한 가운데 있는 사람이므로. 하지만 나는 솔직히 공감하지 못했다.

더군다나, 이건 편집상의 문제인데, 이야기의 몰입이 힘듬에도 주석까지 책의 맨 뒤에 달아놔서 더욱 방해가 되었다. 그 주석이란게 읽지 않아도 무리가 가지 않는 거라면 상관이 없지만, 소설 속엔 외국어가 그대로 실린 경우가 많이 있었다. 무슨 말인지 알기 위해선 자연히 책의 맨 뒷장을 펼쳐야 했다. 원래 원본이 그렇게 편집 되어 있고, 출판사는 그것을 따른 것일 뿐이라면 할 말이 없지만 개인적으론 불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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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분야의 주목할만한 신간 도서를 보내주세요

1. 조정래, 황토

조정래 씨의 신작 '황토'다. 이전에 중편 소설로 발표했던 것을 장편으로 개작해서 출간한 소설이다. 시대적 상황 때문에 다 담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새로 소설을 쓰는 마음으로 한 자 한 자 적어나가셨다고 한다. 1974년에 발표된 중편 '황토'는, 조정래 문학의 거대한 맥을 이루는, '아리랑', '태백산맥', '한강'의 본류가 되는 소설이라고 한다. 그의 완전한 신작은 아니지만, 그래도 기대가 된다.







2, 황석영, 낯익은 세상

5월에는 굵직한 작가의 신작이 두 편이나 발표되었다. 어쩌면 참 성향이 비슷한 두 작가인지도 모르겠다. 황석영도 그렇고, 조정래도 그렇고 참여문학의 경향이 있지 않던가. 전작 '강남몽'과 '허수아비춤'도 비슷한 시기에 나와서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나란히 랭크되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이번 작품도 그렇다. 이번 소설에선 그는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사뭇 궁금하다.







3. 캐스린 스토킷, 헬프

5월 출간 도서중, 가장 주목받는 외국 소설이라면 바로 이것이 아닐까. 작품 이력또한 굉장히 화려하다. 출간 직후 아마존과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2년 넘게 베스트 셀러 차트에 머물면서 아마존에서 116주, 뉴욕타임스에서 109주 연속 베스트셀러를 기록. 피부색에 따른, 성별에 따른, 혹은 계급에 따른 차별에 대한 민감한 이야기를 유머와 감동으로 풀어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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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과 쓸개
김숨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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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환상성이나 상징성이 두드러지는 소설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문학 작품을 받아들이고 해석하는 깊이가 얕기 때문일 것이다. 당장 읽어서 머리로 이해되지 않고, 가슴을 울리지 않으면 그 먹먹함이 남아서 숨통을 죈다. 그렇다고 다시 소설의 첫장을 펴서 꼼꼼히 숙독할 의지가 나에겐 조금 부족하다. 내가 남성 작가의 소설을 주로 읽는 것도 그런 맥락일 텐데, 김숨의 소설은 자꾸 나의 그런 치부를 건드렸다. '내가 과연 무슨 이야길 하고 싶어하는 걸까! 말해봐!' 국문학과적 본능으로 그 밑바닥을 파해쳐 보고 싶지만, 역시 나는 무지하기에 노트에 점 몇 개를 찍곤 넘어가곤 했다.


김숨의 소설은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넘나들며 마구 뛰논다. 그 구분은 어렵다. 소설은 익숙한 일상의 한 장면을 제시하면서 시작해, 어느 한 부분에서 갑자기 비논리성의 세계로 뛰어든다. 그 방법은 굉장히 자연스럽고, 주도면밀해서 독자는 자신이 홀린지도 모르고 계속해서 작품을 따라 읽게 된다. 그러다보면 소설이 언제 이런 안개 속에 휩싸인 건지, 애초에 그랬던 것은 아닌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것이다. 술을 사러 나간다며 집을 나서서는 돌아오지 않는 아버지와, 어디선가 걸려온 전화를 붙들고 놓지 않는 어머니. 결국 전화선을 몸에 둘둘 감은 채 잠이 든 어머니를 뒤로하고 홀로 식사를 하는 나. 그런 내 앞에 홀연히 서 있는 노망난 노인(모일, 저녁). 사막여우를 보기 위해 동물원에 가, 직접 우리에 들어가서 구경꾼들이 던져주는 음식물을 받는 나. 혹은 홍학의 사이에 서서 핏물로 얼룩진 듯한 얼굴을 물에 비춰보는 나(사막여우 우리 앞으로). 퇴직한 날로 유통기한이 끝나 버린 아버지의 머리에 새겨진 유통기한을 어머니와 함께 지우고 다시 새기는 작업을 하는 나(럭키슈퍼). 이러한 이야기들은 문학적 효용을 넘어가지 않으며 이야기에 기묘한 매력을 덧붙인다.


이 소설집에서 자주 나타나는 키워드 죽음, 혹은 질서의 유지이다. '간과 쓸개'에서 주인공은 간암 환자이다. 그의 누님은 담석때문에 고생을 하고 있다. 그는 누님을 한 번 만나보려고 하지만, 계속되는 정기검진과 치료로 날짜를 잡지 못한다. 계속해서 병원을 전전하면서 생의 끈을 놓지 않는 그의 모습은 수도 계량기통 안에 가득한 귀뚜라미들과 닮았다.



유독 등이 미끈한 귀뚜라미를 나무 젓가락으로 집어 올리는데, 그 귀뚜라미의 다리들이 가늘게 떨리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귀뚜라미의 더듬이가 내 손가락에 스치는 순간, 나는 하마터면 그 귀뚜라미를 놓칠 뻔했다. 설마 했는데, 그 귀뚜라미는 죽지 않고 살아 있었던 것이다. 죽은 귀뚜라미들 속에서 저 홀로 악착같이 살아 있었을 것을 생각하니, 기특하기도 하고 불쌍하기도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끔찍하다는 생각이 더 컸다. 살아 있다는 것이, 더할 수 없이 구차스럽고 징글징글하기만 하였다. pp. 20~21  


필사에 대한 저항은 기존의 질서에 반하는 행위이기에 처절하고 비참하기만 하다. 그에 대비하여 '북쪽 방(房)'의 곽노는 그 질서에 순응한다. 그는 폐에 문제가 생겨 위도 반절을 잘라내야 했다. 그는 아내에 의해 북쪽 방에 격리된다. 아내는 자신의 삶의 공간에서 그를 떨쳐내 듯이 그를 방에 가두었다. 방에서 점점  육탈하며 죽음에 다가서는 그는 자신의 자리를 받아들인다. '인간이건 짐승이건 식물이건 광물이건, 종국에는 수축을 거듭해 필멸에 이르게 되어 있다.'(p. 134)는 그의 말은 그의 생각을 대변한다. 하지만 그의 그러한 초연함은 결코 위대해 보이진 않는다.


결국 죽음이라 함은 생의 질서인 셈인데, 소설 속의 주인공들은 이 질서 유지에 강박적이다. '룸미러'의 남편은 자신의 아이들이 잠에서 깨는 것을 두려워한다. 두 아이들은 깨어 있으면 서로 싸우기 바빠 정신을 빼놓기 때문이다. 그 아이들로 인하여 평온이 훼손되는 셈이다. 그는 직장에서 돌아올 때도 집에 전화를 하여 아이들이 잠든 것을 확인한다. 소설 속에서 남편과 나는 장례식장에 가는 길인데, 남편은 뒷 좌석에서 잠이 든 아이들을 백미러로 연신 확인한다. 교통이 마비되고, 소실점까지 차들이 가득하여 움직이지 못하는 가운데, 검은 새들이 하늘을 날고, 어떤 새는 차 유리에 머리를 박고 죽어버리는 끔찍한 상황에서도 남편은 아이들이 깰까 노심초사한다. 그리고 내가 결국 참지 못하고 사고의 현장을 확인하는 장면에서도, 결국 작가는 어떤 사고가 났는지 가르쳐 주지 않는다. 다만, 내가 아이가 깨어났을 까봐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만 알려준다. 사고의 경중은 중요한 것이 아니었던 거다. '흑문조'에서는 보일러 배관에서 물이 새, 배관공이 구멍난 배관을 찾기 위해 부엌의 바닥을 온통 뚫어 놓는다. 그 상황에서 내가 걱정하는 것은, 자신이 쉬고 있는 안방마저 그들이 침범해 바닥에 구멍을 낼까 하는 것이다. '육의 시간'에서도 남편이 살아 있는 시체와 같은 기이한 여자를 집에 데려와 같이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인공은 가정의 평온함이 유지되었기에 그것에 신경쓰지 않는다. 발굴단들이 찾아와 집에서 함께 기거할 때도, 그들이 평화를 깨지 않았기에 화자는 신경쓰지 않는다.


그런가하면, 소설에선 '깨우지 않는 남편'도 등장한다. '내 비밀스런 이웃들'에서 화자는 오른 전셋값을 빌리기 위해 아버지에게 전화를 한다. 전화를 받은 어머니는 아버지가 자는 중이라고 하면서 아버지를 깨우지 않으려 한다. 제발 깨워달라는 말에 어머니는 '왜 그래야 하는지 모르겠구나.'라고 대답한다. '럭키 슈퍼'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등장하는데, 나는 잠들어서 깨어나지 않는 아버지가 걱정되어 오빠에게 말한다. 오빠의 대답은 이렇다. '깨운다고 뭐가 달라지냐?' 직장을 잃은 남편은 가정에서 평화를 깨뜨리는 요인이다. '북쪽 방'의 곽노인도 마찬가지이다.


소설 속의 등장인물은 이렇게 질서를 지켜나가지만, 그것은 마냥 즐겁지만은 않다. '럭키슈퍼'에서 어머니는 새벽6시에 슈퍼 문을 열어 저녁 11시에 닫는 생활을 끝까지 지키지만, 새로 들어선 서울슈퍼 때문에 그나마 있던 손님까지 발길을 끊어버린 상태다. 오히려 어머니는 근처 식당에서 일을 하고, 가게엔 새로 물건을 들여오지 않아 있는 물건보다 없는 물건이 많다. 그렇지만 저 규칙은 그대로다. '사막여우 우리 앞으로'에서도 화자의 어머니는 매표소에서 일평생을 살다가 매표소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그녀는 다리를 쓰지 않아 다리가 홍학처럼 가늘어졌다. 자식들이 아무리 매표소에서 끌어내려해도 버텨내었던 그녀의 질서는, 그녀가 원했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화자가 들른 동물원의 유리 부스 안의 직원은 울고 있다. 그녀는 말한다 '내가 우는 건 울 시간이 되었기 때문에 우는 거에요.' 하지만 사람의 눈물이란게 그런 것인가. 눈물은 울 시간이 되었기에 흐르는 것이 아니다. 슬프고 고통스럽기에 흐르는 것이다. 그녀의 말은, 자신의 슬픔과 아픔을 애써 감추기 위해, 자신의 고통을 무디게 만들기 위해 하는 말인 것이다. 그들이 지키고자 하는 질서도 그러한 것일 게다. 질서가 좋기에 그에 대한 강박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삶을 위해 없는 질서를 만들고 그것을 신봉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원래 그런 사람이다, 라며 애써 스스로를 감추는 것일 게다. 그 슬픔을 알고 나면, 그들의 속에 감춰진 진짜 눈물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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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과 게 - 제144회 나오키상 수상작
미치오 슈스케 지음, 김은모 옮김 / 북폴리오 / 2011년 3월
평점 :
절판




'달과 게'의 작가 미치오 슈스케는 제7회 본격미스터리대상 수상, 제62회 일본추리작가협회상 수상, 제12회 오야부 하루히코 상 수상, 제23회 야마모토 슈고로 상을 수상한 화려한 이력의 작가다. '달과 게'로는 2011년 144회 나오키상을 수상했다. 나오키 상이 훌륭한 대중소설에게 주는 상이기도 하고, 작가의 이력을 보면 미스터리, 추리 쪽 수상이 많기 때문에 이 소설도 미스터리나 스릴러의 성향이 있지 않을까 하는 지레짐작을 하게 된다. 하지만 의외로 이 소설은 대중 소설이라고 하기엔 맥이 없을 정도로 이야기의 심도가 얕다. 치밀한 반전이나 긴박한 스릴러를 기대하는 사람이라면 책 구입을 미뤄야 할성 싶다. 다만 이 소설은 대중문학에 적을 두었던 작가가 풀어냈다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본격문학적인 기질을 두루 가지고 있는 작품이었다. 다른 말로 하자면 훌륭한 문학성을 가지고 있었다.

소설은 어린아이들이 주요 등장 인물이다. 주인공인 신이치는 암으로 아버지를 잃었다. 사고가 난 배에 탔다가 한 쪽 발이 잘린 할아버지 쇼조와 미망인 스미에가 신이치의 가족이다. 신이치는 외지에서 시골로 이사온 후로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당한다. 그에게 있는 친구란 역시 외지에서 이사온 하루야 뿐이다. 둘은 매일 바닷가에서 신이치가 만든 블랙홀(패트병 머리 부분을 잘라 몸통에 거꾸로 끼워, 들어온 물고기들이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는 일종의 통발과 같은 것)로 물고기를 잡는다. 주로 잡히는 것은 소라게 뿐이다. 그 둘이 하는 소일거리는 그 소라게를 라이타 불로 지져서 빠져나온 소라게를 불태워 죽이는 일 뿐이었다. 둘은 뒷산의 움푹파인 돌에 바닷물을 붓고 소라게를 키우며, 소라게를 불태워 죽이는 일을 반복한다. 그리고 불타 죽은 소라게가 자신의 죽음과 맞바꾸어 자신들의 소원을 들어줄 것이라 믿는다.

   
  "(…) 이런 생각은 안 드나? 그거는 역시 소라검님이 죽었기 때문 아이겠느냐고. 자기가 희생해서 우리 소원을 들어준 거 아이겠느냐고. (…) 그케도 항상 그래 운 좋게 죽어 주지는 않겠제? 요전에는 우연히 죽어뿌서 그리 됐지만, 그런 경우는 적다카이. 그라이까……." pp.122~123  
   

둘은 소라게를 죽이며 서로에게 자신의 은밀한 소원을 고백한다. 그리고 그 행위는 단순히 고백의 차원을 넘어서서 서로의 소원을 들어주는 암묵적인 놀이의 형태로 접어들게 된다. 그리고는 마치 소라게가 자신의 소원을 들어준 듯 행동하게 되는 것이다. 소설은 이러한 두 아이의 심리적 움직임을 잘 읽어내어 전달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소라게의 죽음과 소원 성취의 과정을 은밀히 감추며, 약간의 긴장감을 계속해서 유지시킨다. 그 방법상의 문제가 대단히 교묘해서 독자들은 눈치채지 못한채 그 강약조절의 박자에 맞춰 작가가 이끄는 대로 끌려다니게 된다.


하루야는 자신을 계속해서 폭행하는 아버지와 살아간다. 그리고 신이치의 어머니는 그의 같은 반 학우의 아버지와 은밀한 관계를 가진다. 그 남자는 신이치의 할아버지의 배가 사고가 난 날, 그 배에 타 있다가 죽음을 맞이한 여자의 남편이었다. 자신의 어머니가 아버지가 아닌 다른 남자와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는 사실은, 어린 신이치의 가슴에 무겁게 다가왔다. 그 남자의 딸인 나루미는 자신의 아버지와 사귀는 것으로 짐작되는 여자의 아들에게 접근한다. 정말로 자신의 아버지가 사귀는 여자가 신이치의 어머니가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혹은 자신의 어머니를 죽인 원인이 된 신이치의 할아버지를 용서할 수 있을지 확인하기 위해서. 이런 인간관계는 세 아이의 구도를 미묘하게 섞어내고 있다. 그리고 세 아이들의 관계 속에서도, 나루미에게 신이치과 관심을 가진다던가, 나루미는 오히려 하루야에게 마음을 보인다던가, 신이치는 둘의 사이를 질투하고 하루야에게 적의를 갖는다던가 하는 서로간의 질투와 반목이 세심하게 그려지고 있다.

그런 관계 속에서 신이치는 자신의 속에 일어나는 본성을 조금씩 드러내게 된다. 이를테면 나루미와 친하게 지내는 하루야가 다쳤으면 좋겠다. 라던가 자신의 어머니와 사귀는 남자가 세상에서 없어져 버렸으면 좋겠다 하는. 상상 속에선 누구나 잔혹한 살인마가 된다. 누군가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실제가 아닌 상상 속에선 누구나 사람을 죽이고 토막내어 바다에 던지고 땅에 묻는다. 신이치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자신이 맘에 들어하고 있는 나루미가 하루야에게 마음을 주는 것이 싫었다. 그리고 자신의 어머니를 넘보는 남자에게 불편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가 없어지길 빌었다. 그 바람이 소라검님의 앞에서 내뱉어진 순간, 운명의 시계는 재빠르게 움직였다. 이 상상이 현실로 옮겨가는 찰나의 순간에, 소설은 인간의 악마적 본성을 명백히 드러낸다. 그러면서도 바로 그 본성을 제것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나약함이 튀어나오게 된다.



소설은 심장을 뛰게 하는 서스펜스도, 머리를 치고 지나가는 반전도 없다. 다만 인간군상 속에서 읽혀지는 그들의 심리적 얽힘과, 그 속에서 피어나는 본능적 성질의 질투와 분노, 살의 등이 유기적으로 조직되어 기록된다. 이것은 단순히 소설이 몇몇 아이들의 반복적인 행로만을 그리며 한정된 무대에서 이야기가 진행됨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새롭게 느껴지며 흥미도가 떨어지지 않는 이유이다. 가정폭력의 희생양이 된 아이. 혹은 어머니의 불륜을 목격한 아이. 어찌보면 상투적일 수 있는 두 아이의 속성은 '소원 빌기' 그리고 '그것을 이루어주기'라는 놀이와 만나 전혀 예상치 못한 상승효과를 불러일으켰다. 책 뒷머리의 추천의 말에 적힌 것처럼, 이 소설은 '대중 문학과 순수 문학의 경계를 지운' 소설이라고 볼 수 있겠다. 대중 소설의 것이라곤 볼 수 없는 깊은 주제의식과 심리묘사가 치밀하게 짜인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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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분야의 주목할만한 신간 도서를 보내주세요

1. 고백의 제왕, 이장욱

보지 못하고 지나칠 뻔했던 소설집이다. 내가 보지 못했는지도 모르겠지만 알라딘 주목할만한 신간의 어느부분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이장욱이라면 '변희봉'과 표제작인 '고백의 제왕'으로 이미 전부터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작가였는데. 어딘가에서 이 표지를 보지 못했다면 소설집이 나온지도 모르고 지나갔으리라.

그러고보니 두 작품 다 현대문학상 소설집에 실렸던 작품이었던 것 같다. 각각 2010년 2009년 현대문학상 수상작품집에 실려 있다. 첫 작품집에 실린 작품 중에 두 작품이나 우리나라의 중요 문학상 예선을 통과했다는 것은 이 작가의 저력을 대충이나마 짐작해볼 수 있게 한다.


2. 숨쉬러 나가다, 조지 오웰

조지오웰의 작품중 한국에 처음 소개되는 장편 소설이라고 한다. 우연히 돈을 얻게 된 뚱보 보험영업사원이 20년전 떠나온 고향으로 도피하듯 떠나는 이야기이다. 마치 김승옥의 '무진기행'을 떠올리게 하는 플롯이다. 게다가 고향이 대규모 공업단지로 변해 있었으며, 비밀 연못은 쓰레기 매립장으로 변해 있었다는 설정 또한, 그것과 닮아 있다.

'1984'와 '동물농장'과 같은 고전이 되어버린 작품을 남긴 조지 오웰의 작품이기도 하며, 위 두 고전을 쓰기 바로 전의 작품이기도 한 이 소설은, 두 명작으로 이어지는 그의 사상적 글쓰기의 교두보 역할을 충실하게 해낼 것이란 생각이 든다. 두 작품을 재미있게 읽었다면 자연스럽게 이 작품에도 호기심이 일 것이다.


3. 그녀의 집은 어디인가, 장은진

<아무도 편지하지 않다>로 문학동네 작가상을 수상한 장은진 작가의 신작 장편이다. 위 책은 읽어보지 않았고, 장은진이란 작가도 생소했다. 그럼에도 이 책을 선택한 이유는 로드무비와 같은 소설에 등장하는 세 등장인물의 매력 때문이다.

제이는 전기가 흐르는 몸을 타고나 타인과 그 어떤 신체 접촉도 할 수 없으며, 와이는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일찍부터 스스로 생계를 책임져야 했다. 케이는 부유한 가정에서 자랐지만 정서적으로 불안한 상태이다. 와이와 케이, 두 남자가 제이의 집을 찾아 떠나는 행보를 담은 이 소설은, 260페이지 가량의 분량에 어떤 이야기를 담아내었을까 관심이 갔다.

4. 키위새 날다, 구경미

'죽은 엄마를 위로하기 위해 남은 가족들이 8년이 지나서 복수한다는 설정이다. 반복되는 일상의 느슨함과 지루함을 한 가족의 복수극이라는 설정을 통해 경쾌하고 긴장감 있게 그려냈다.' 는 소설의 설명문이 눈길을 끌었다. 다만 피를 부르는 끔찍한 복수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아버지의 요청에 따라 복수의 대상인 국제상사 여사장에게 접근하기 위해 회사에 들어간 두 남매는, 여사장의 인간적인 매력에 흠뻑 빠지게 되고 인간적인 고뇌를 하게 된다.

소회민들의 일상을 소설의 표면에 끌어오면서, 그들의 이야기를 재치있게 풀어나가려는 시도가 보이는 것 같아 읽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5. 꽃 같은 시절, 공선옥

계간지 '창작과 비평'에 연재되었던 작품을 묶어서 내놓은 장편 소설이다. 재개발로 삶의 터전을 잃은 부부가 시골로 내려가 자리를 잡지만, 그곳마저도 불법쇄석공장이 들어선다. 마을 사람들은 소음과 먼지를 참지 못하고 항의하지만 누구도 그들의 목소리엔 관심이 없다. 오랜만에 사회문제를 정면으로 마주한 소설이라는 생각이 든다. 소소한 일상의 문제, 혹은 개인적 감정이나 심리의 문제에 주가 되었던 독서 사이에 이런 책 한 권 쯤 집어넣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한 달이 지나고 그 달동안 나왔던 새 책들 중에 읽을 책을 선별하는 작업은 몹시 고되고 어려운 일인 것 같다. 읽고 싶은 책은 많지만, 모두를 읽기엔 시간과 능력이 부족하므로 한없이 안타까워 지기도 했고, 모든 작품에서 작가의 치열한 노력과 아픔이 느껴졌기에 쉽게 떨치고 내쳐내기 힘들었다.

그동안은 가끔 서점에 들르거나, 인터넷을 돌다가 맘에 드는 작품만 골라 읽었었는데, 그러다보니 눈에 익은 작가만 읽게 되는 단점이 있었다. 계속해서 글을 읽는 스팩트럼은 좁아지기만 하더라. 이렇게 매달 읽을 책을 정리해보니, 한 번도 읽어보지 못한 작가들이 수두룩하다는 데 놀랐고, 그들의 이야기들이 하나같이 매력적이라는 것에 또 다시 놀랐다. 서점의 가판대 위에 올려진 작품만 볼 것이 아니라, 그 달에 나온 작품들을 꼼꼼히 확인하는 정성이 필요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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