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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주의 맨얼굴의 철학 당당한 인문학 - 지승호가 묻고 강신주가 답하다
강신주.지승호 지음 / 시대의창 / 2013년 5월
평점 :
품절
적잖이 읽기는 했다. <철학이 필요한 시간>, <철학적 시읽기의 괴로움>, <장자, 차이를 횡단하는 즐거운 모험> 그리고 <강신주의 맨얼굴의 철학 당당한 인문학>. 저자의 열성적인 출간의 속도에는 턱없이 미치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전혀 낯선 사람은 아니라는 말이다. 다만,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내게 그리 큰 감동을 주지는 못했던 것 같다. 다만 대중적 철학자라는 타이틀만 알고는 관심 반 거부감 반을 막연히 가지고 있었다. 그의 책이 주는 감흥은 사실 이 책이 처음이다. 하지만 이 책은 강신주의 책인가? 나는 아니라고 본다. 이 책은 강신주에 대한 지승호의 책이다. 인터뷰어가 인터뷰이에게 끌어낼 수 있는 모든 것을 끌어내고 있다는 생각을 책을 읽으며 내내 했다. 지승호의 능력이 그저 놀라웠다. 4500시간동안 수다스러운 철학자와 앉아서 필요한 질문들을 짧게 하고 그것을 귀담아 듣고 정리한 그 노력이 정말 감동적이었다. 그러니 사실 이 책 또한 강신주의 책으로 감동받은 것이 아니라 지승호의 책으로서 감동받은 셈이다. 하지만 어쨌거나 이 책은 강신주의 모든 것을 담고 있다. 강신주의 과거 저작 활동과 철학사에서의 위치, 현재 세상과 인간을 바라보는 시선, 그가 인정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작품들, 앞으로의 계획까지 강신주에 대한 모든 것이 이 책에 들어있다. 강신주도 이 책이 현재 자신에게 정리의 시간이라고 했듯이 강신주에 대해 호기심을 가지거나 관심 또는 반감을 가진 모든 사람들이 이 책을 읽어보면 그를 사랑하거나 혹은 사랑하지 않거나 마음을 정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로 말하자면, 사랑하는 것으로 마음이 바뀌었다.
자신의 책 중에서 <철학 VS 철학>, <김수영을 위하여>에 대한 자신감이 대단했다. 그 자신감의 근원은 철학에 대한 사랑 그리고 김수영에 대한 더 깊은 사랑 때문이었고 그 사랑은 그의 인터뷰에서 충분히 공감력이 있었다. 특정 대상을 이토록 깊이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을 읽을 때마다 사랑이라는 감정에 너무나 인색해져버린 나를 떠올리게 되었다. 누군가에게 잔인해지는 사람만이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다는 말(150쪽)이 어느 젊은 날 뜨거웠던 사랑의 대상을 떠올리게 했다. 사랑하면 그렇게 되는 게 맞는 거다 싶어졌다. 그런 나의 감정은 어디로 사라진 걸까? 사라진 사랑은 철학의 부재와 같은 말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을 세우지 못하고 비겁하게 뒤로 숨어버리는 일, 그저 어영부영 삶을 살아가버리는 모습들이 몹시 부끄러워졌다. 내 삶을 심화시키지 못하고 타인의 눈으로 자기 검열에 앞장서는 내 모습이 못마땅하면서도 그렇게 해 왔던 것이 떠올랐다.
어찌 비단 나만의 일일까 싶다. 지난 5년간 철학이 없는 대통령을 그럭저럭 봐줘가며 살아왔던 우리들이었다. 그는 분명 나라와 국민을 사랑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를 이어 또다른 대통령이 비슷한 모습으로 서 있다. 개인으로서 철학이 없는, 당당하지 못한 사람을 대통령으로 둔 것에 속상해만 하는 우리와는 달리 강신주는 성군을 바라는 과거 유교적 사상을 가지고 민주주의를 기대하는 국민들의 우둔함을 지적한다. 답은 직접 민주주의라는 것이다. 국민 하나하나가 정치적 권리를 가지는 직접 민주주의. 사실 우리가 - 우리가 라는 말이 거부감이 생긴다면 그냥 내가- 직접 민주주의를 크게 고려하지 않은 가장 큰 원인은 게으름이다. 공동체 속에서 그저 남이 정해주는 룰에 따르면 그냥 머리 아프지 않고 편했기 때문이다. 강신주의 말처럼 어쩌면 답은 직접 민주주의일런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개개인의 이 게으른 습성은 어찌하면 좋을까? 하루에도 서너차례 강연을 하며 코피를 쏟는 그의 삶은 읽기만 해도 따라하고 싶어지지 않은데, 힘들어 죽겠다는 그의 삶처럼 긴박하고 괴롭고 싶지는 않은데, 이런 개개인의 습성을 고치기란 여간 어려워보이지 않는다. 그리하여 다만 강신주의 의견에 동의하되 실천하기에 살짝 망설여진다. 아, 나란 인간 참 하찮다.
개인이 당당하기 위해서는 사실 인문학이나 철학이 필요하다. 주변에 봐도 책을 별로 읽지 않고 회사 시스템에 그대로 따라가는 사람들을 보면 한다는 생각 자체가 자신의 생각이 아닌 회사의 생각, 주변의 생각인 경우가 많다. 그런 면에서 인문학과 철학의 대중적 보급은 필요하다. 그런 위치에서 강신주는 독보적이다. 그런 강신주의 위치를 마뜩찮아 하는 시선이 많다. 나 역시도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그랬다. 하지만 그가 얼마나 열성적이고 애정이 깊은 사람인지 이 책을 통해 알고 나니 마뜩찮아 하는 시선 대신 애틋한 마음이 들었다. 일면 고맙기도 했다. 어쩌면 당신은 그리도 애를 쓰는지, 대통령도 아니면서 하는 고마운 마음 말이다. 어쨌든 그로 인해 학생들부터 노인들까지 인문학적 사고를 하게 하고 개인으로서 당당하게 서게 된다면 미래를 조금은 더 밝게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혼자의 힘으로는 부족할 것 같다. 그리고 한 방향은 위험할 것 같다. 대중적 철학가가 여러 사람 있으면 좋겠다. 너무 독보적이지 않게 다양한 사고를 심어줄 수 있게 말이다.
인문학은 화장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게 아니라 정직하려는 데 도움이 되는 거(586쪽)라고 강신주는 말한다. 그것이 김수영의 정신이라고. 그 말에 또 한 꺼풀 화장을 벗어낼 수 있을 것 같다. 나를 채찍질하고 다그치지 말고 내 감정에 솔직해질 것, 그리하여 맨얼굴의 나를 드러내고 스스로 당당할 것에 대한 주문을 기억해야겠다. 남에 의해 내가 오락가락하는 일이 없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