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명의 여자 - 문학사를 바꾼 불꽃의 작가들
리디 살베르 지음, 백선희 옮김 / 뮤진트리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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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해 말에 이 책을 구입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버지니아 울프를 좋아하는 나로선 그녀의 이름과 그녀의 모습이 담긴 이 책을 지나치기 어려웠다. 책에는 아름다운 작가 7명의 이름이 있다. 모두 여자들이다. 19세와 20세기 초반에 나고 자란 그녀들의 세상은 지금 여성들의 삶 보다도 훨씬 벽이 많았을 것이다. 이들 중 내가 아는 이름은 에밀리 브론테, 실비아 플라스, 버지니아 울프 밖에 없었고 다행히 이 세 사람의 책은 집에도 있었다(물론 이건 다 읽었다는 말과는 무관하다.).

 

책을 받고 보니 2015년에 나온 책이 아직도 1쇄였다. 이토록 아름다운 표지와 작가들의 이름들이 담긴 이 책이 왜 1쇄일까? 출판사가 유명하지 않아서일까, 아니면 그저 그들의 이름을 갖다붙인 그저그런 책이기 때문일까? 염려 반 기대 반으로 이 책을 올해 들어 읽는 첫 책으로 골라 읽기 시작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직도 모르겠다. 이렇게 괜찮은 책이 왜 아직 1쇄냔 말이다!!!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에서 에밀리 브론테에 대해 읽은 적이 있다.(사실 에밀리와 샬럿에 대한 부분이 매번 헷갈렸다만 이 책 덕분에 더이상은 헷갈리지 않을 것 같다.) 샬럿에 대해선 다소 비판적이었지만 에밀리에 대해선 찬사를 하던 내용을. 에밀리 브론테가 독자들에게 좋게 인식되기 시작한 데에는 버지니아 울프의 역할이 크다고 하니 역시 멋진사람은 멋진 사람을 알아보는 건가? 잘 안다고 생각했던 에밀리 브론테는 내가 아는 것 이상 고집이 센 멋진 사람이었다. 지금껏 생각하지 못했는데 이 책을 읽다보니 우리가 아는 그 개츠비도 에밀리가 만든 히스클리프를 빼다박았으니 현대의 많은 작가들도 그녀에게 빚이 있을 것이다. 캐서린이 아닌 히스클리프를 더 닮은 그녀를 더 알고 싶은데 우리에겐 그저 [폭풍의 언덕]만 있을 뿐이니 몹시 안타깝다. 그 마저도 우리 집에선 행적이 묘연하다. 한때 여러 판본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왜 하나도 없는가?

 

이후 등장한 주나 반스를 읽으며 이 사람이 분명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에 있어야 할 것 같은데 도무지 떠오르지 않아 찾아보았다.

바로 저 여인, 주인공과 신나게 춤을 추는 저 여인이다. 이 책에서와 달리 영화는 그녀 보단 거트루트 스타인에 더 비중을 두었었지. 아무튼 역사의 한 자락에서도 멋진 여성이었던 주나 반스, 당시 인정받았던 사람들의 그 잣대를 인정하지 않았던 여인, 그러나 우리나라에 아직 번역본이 없는 모양이다. 근 백년을 장수했다는 대목에서 깜짝 놀라기도 했다. 마음 속에 불을 어떻게 90년이나 끌어안고 살았을까? 격렬한 생이다. 

 

실비아 플라스는 유별난 사람은 아니었다. 그저 평범한 사람이었다. 재능이 아니라 그녀가 삶을 대하는 태도가 말이다. 모든 여성은 아이를 낳고 집안일을 하다 보면 도대체 나란 어디에 있는 존재인가,를 고민하고 괴로워한다. 물론 경중의 차이는 있겠고 작가적 감수성이 있는 그녀로선 좀더 중했기에 삶이 쉽지 않았을 테지만 그녀를 유별나다고 볼 수는 없다. 그래서 그녀의 죽음이 더 내 삶에 가깝게 느껴져 안타까웠다. 비교적 최근의 인물이라 그럴지도 모르겠다. 

아이들과 시, 사랑과 지저분한 냄비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찾아야 할까? (111쪽)

이 균형의 결과물이 [벨자]라고 하니 꼭 읽어봐야겠다. 

 

지난 주엔 까페꼼마에 들러 차를 마시다 문학동네 세계문학 중에 콜레트의 작품이 있다는 것을 떠올려 [여명]을 구입했다. 사실 당장 사려고 했던 것은 아닌데 첫문장을 읽는데 내가 이 책에서 느꼈던 콜레트가 고스란히 느껴져서 살 수 밖에 없었다. 일곱 명의 여자들 모두 자기 자신을 찾으려고 애썼다는 점이 무척 마음이 아프다. 나 역시도 늘 자기 자신을 놓치지 않으려고 애쓰는데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싸움을 통해 얻어지는 경우가 많다. 지금도 그런데 그녀들이 살았던 시대엔 얼마나 별종으로 보였을 것인가.

 

어느 한 편을 들지 않고 늘 내적 자유를 지키기 위해 애쓴 사람으로는 마리나 츠베타예바만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이쪽이다 싶으면 저쪽으로, 저쪽이다 싶으면 이쪽으로 좀 억지스럽더라도 바깥에 있으려 애썼던 사람이었는데 그녀의 책은 겨우 단편집 속에 한 작품 실려 번역되어 있으니 참 속상하다.(참고하시라 쯔베따예바로 검색해야 나온다. 창비세계문학이므로.) 바깥에 있다는 건, 아무래도 내겐 도통 용기가 나지 않는 일이다. 그녀와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서간집이 있다면 읽어보고 싶어진다. 편지 만큼 개인을 속속들이 알려주는 것도 없을 것이다. 일기도 그렇겠지만.

 

버지니아 울프에 대해선 사실 나머지 사람들보다 많이 알려져 있기에 새로운 내용을 기대하지 않았는데 뜻밖에 그녀에게 인정의 욕구가 강하게 있었다는 것은 새로웠고 그녀가 죽음에 반응하는 속도가 나와 닮아 놀랐다. 리디 살베르가 몇번이고 읽었다던 [올랜도]를 사서 읽어봐야겠다.

 

파울 첼란의 이름보다 덜 유명한 건지 아니면 나만 그녀를 몰랐던 건지 잉에보르크 바흐만은 그래도 국내 번역본이 적지 않은 작가였다. 상반된 두 배경을 품고 살아야했던 그녀에겐 일종의 균형감각이 있지 않았을까 추측해 본다. 그러지 않곤 죄의식 혹은 반항심으로 폭발했을 테니까.

 

작가가 이들 일곱 명의 작가들에게는 그들만의 리듬이 있다고 했다. 그들만의 리듬이 사회적 배경과 어울리지 않았기에 힘들었던 삶을 살았지만 그들의 리듬이 잘못된 것이 아님을 우리는 알고 있다. 한때는 아마 그녀들을 불안의 덩어리로 폄하하고 연약하고 가련한 이미지를 심어주려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 이 여자들을 만나고 나면 그들의 강인함에 감동하게 된다. 그렇게까지 자기 자신을 지키려고 애썼구나, 손쉽게 타협하지 않느라 애썼구나 싶은 생각이 들면 내가 쌈닭이 되는 것쯤이야 해볼 만한 일이 아닌가 싶어 웃음이 나기도 한다. 물론 그런 생각을 갖게 되는 데에는 저자 리디 살베르의 필력도 큰 몫을 한다. 특히 툭툭 튀어나오는 유머가 정말 끝내준다. 이제 내가 할 일은 이 책의 저자들의 책을 골라 모아두고 하나씩 읽는 일이다. 올해 안에 해 보고 싶다. 이 책을 곁에 두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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