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사람 권정생 - 발자취를 따라 쓴 권정생 일대기
이기영 지음 / 단비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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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사람, 권정생

 


                     임길택
 

어느 고을 조그마한 마을에
한 사람 살고 있네.
지붕이 낮아
새들조차도 지나치고야 마는 집에
목소리 작은 사람 하나
살고 있네.

 

이 다음에 다시
토끼며 소며 민들레 들
모두 만나 볼 수 있을까
어머니도 어느 모퉁이 서성이며
기다리고 있을까
이런저런 생각 잠결에 해 보다가
생쥐에게 들키기도 하건만
변명을 안 해도 이해해 주는 동무라
맘이 놓이네.

 

장마가 져야 물소리 생겨나는
마른 개울 옆을 끼고
그 개울 너머 빌뱅이 언덕
해묵은 무덤들 누워 있듯이
숨소리 낮게 쉬며쉬며
한 사람이 살고 있네.

 

온몸에 차오르는 열 어쩌지 못해
물그릇 하나 옆에 두고
몇며칠 혼자 누워 있을 적
한밤중 놀러 왔던 달님
소리 없이 그냥 가다는
뒤돌아보고 또 뒤돌아보고

 

그러나 몸 가누어야지
몸 가누어
온누리 남북 아이들
서로 만나는 발자국 소리 들어야지
서로 나누는 이야기 소리 들어야지.

 

이 조그마한 꿈 하나로
서른 넘기고
마흔 넘기고
쉰 넘기고
예순 마저 훌쩍 건너온 사람.

 

바람 소리 자고 난 뒤에
더 큰 바람 소리 듣고
불 꺼진 잿더미에서
따뜻이 불을 쬐는 사람.

 

눈물이 되어 버린 사람
울림이 되어 버린 사람.

 

어느 사이
그이 사는 좁은 창 틈으로
세상의 슬픔들 가만히 스며들어
꽃이 되네.

 

꽃이 되어
그이 곁에 눕네.

 

 

이 책의 제목이 되기도 한 이 시가 동화작가 임길택이 폐암 투병 중 죽음을 앞둔 두 달 전에 권정생의 환갑에 헌정한 시라는 그 사연을 책의 말미에 읽으며 또한번 울컥했다. 아, 이들은 서로를 참 사랑하였구나!

 

시인의 낭독회에서 한 시인이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글이라며 <권정생의 유언>을 낭독해주었다. 그 일부가 이 책에도 소개되기는 한다만 그때 시인의 목소리로 들은 그 유언은 슬프지 않았고 아름다웠다. 선생님 말씀대로 '용감하게 죽겠다'는 그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이 책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나는 권정생 선생님을 몇 안되는 작품으로만 알고 있을 뿐이지만 그분의 삶으로 걸어들어갈수록 그분을 사랑하지 않으면 안되고, 그분을 존경하지 않으면 안되고, 그분을 그리워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아, 이런 작가가 있었다는 건 우리에게 얼마나 큰 행복인지!

 

40년을 소변 주머니를 몸 바깥으로 차며 곧 죽을 것이라는 선고를 그림자처럼 데리고 살았으나 남은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았던 사람, 농사를 짓고 일을 하는 것을 가장 중한 일로 여기었으나 자신의 몸이 병약하여 그리하지 못해 늘 마음 아팠고 미안해했던 사람,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으로 세상을 바르게 꾸려가고자 했던 사람, 그런 권정생이기에 주변의 사람들이 온몸으로 사랑하고 존경하고 그리워한 것이었을 터이다.

 

책을 읽으며 [강아지똥]을 탄생시킨 그분의 철학인 '거꾸로'에 대하여 깊은 공감을 한다. 똥이 꽃보다 더 아름답고, 가난한 사람이 부자인 사람보다 더 행복하다는 그 말씀을 귀히 여길 수 있는 사람만이 이 세상을 살아갈 가치가 있지 않을까 하는 비약적인 생각도 해 본다. 나는 아직 그 경지에 이르지 못했고 오히려 반대인 지경이라 그 방향으로 살아가도록 스스로를 경계하고 노력해야겠다 싶다. 사실 나와 경험이 다르다는 이유로 그분의 책 중 일부만을 좋아하고 다른 책들은 읽어볼 생각도 하지 않았는데 이 책을 읽고 있자니 책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그의 책을 읽어보는 것은 어쩌면 독서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는 생각이 든다. 사회적 의무같은 느낌마저 드는 것이다.  그러하기에  이오덕, 이원수, 정호경, 이현주와의 인연 그리고 그가 남긴 수많은 작품들을 처음으로 다 알게 된 이 경험이 소중하다.

 

가난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병약한 가운데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았고, 해학적 삶의 태도를 가졌다하니 희망과 중심과 해학이 고스란히 담겼을 그의 작품을 읽고 읽어주고 간직하는 노력을 해 보아야겠다.

 

 

세상 보는 눈을 달리했다는 것은 단순히 세상을 '다르게' 보는 것이 아니다. 그는 세상을 '거꾸로' 보았다. '다르게'는 남들과 같지 않다는 '차이'에 불과하지만 '거꾸로'는 자신의 생각과 주장을 내보이며 기존의 것을 반대로 뒤집는 것이다. 그래서 권정생이 나사로를 알고부터 세상을 '거꾸로' 보게 되었다고 하는 말에는 세상에 대한 강한 '저항정신'이 담긴다. 돈과 권력을 쥔 부자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거지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는 것, 이것이 권정생이 '거꾸로'보는 세상이다. -122쪽

 

전쟁이 '바로 지금' 오늘의 문제가 되었을 때 권정생 동화는 옳고 그름을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는 힘이 되어주었고 사람들의 몸과 마음을 움직이게 하였다. 동화를 읽은 사람들은 거리로 나가 전쟁을 반대하고 세계평화를 외치며 '오늘'의 이야기를 만들어갔다. 이야기는 이야기로 이어지며 새로운 이야기를 낳는다. 어쩌면 산다는 것은 이야기를 만들며 이어가는 것이 아니겠는가. 권정생은 안동 조탑리 작은 마을에 사는 가난하고 착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이어주었다. 어려운 시대를 살아온 그들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위로를 주었고 내일의 아이들에게 희망을 주며 이어지게 될 것이다. - 253,25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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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9-18 19:1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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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9-19 12:0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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