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성의 고리
W. G. 제발트 지음, 이재영 옮김 / 창비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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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젠가 친한 동료가 내게 깔깔대며 "넌 의외로 무식해!"라고 말했었다. 애가 책은 많이 읽는 것 같은데 자기만큼 아는 작가도 아는 책도 없다는 거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책을 마구 읽기 시작한 것은 대학생 때로 현대문학부터 읽었기에 세계문학이나 한국근대문학에는 바보가 따로 없었다. 그런 현상은 지금까지 이어져 나는 내가 아는 사람만 아는 편협한 독서가라 모두가 다 제발트를 예찬할 때 그저 '이름이 예쁘군.' 따위의 생각만 하게 되는 것이다. [토성의 고리]는 내가 처음으로 읽은 책이다(처음으로 산 책은 [공중전과 문학]인데 집에 고히 모셔져 있다).

 

 화자인지 작가인지 모를 이가 영국으로 도보여행을 떠났다. 그리고 그 여행의 끝자락에선 앓아버린다. 그는 어떤 여행을 한 것인가? 어제 김영하 작가의 [여행의 이유] 출간 기념 낭독회에 다녀왔는데 김영하 작가가 말하길, 우리가 실패했다고 생각한 여행이 실은 성공한 여행이라고 했는데 발길 닿는대로 떠난 화자가 의도하지 않은 곳에서 맞닥뜨린 인간 문명의 잔해들을 발견한 것은 처음의 의도와는 맞지 않지만 그를 앓아눕게 할 정도로 그에게 큰 의미를 만들어줬으니 이는 성공한 여행이리라.  

 

  그러나 그를 따라 인간이 파괴해버린 자연과 잔혹한 행동의 결과물을 함께 보자하니 마음이 불편한 것도 사실이다. 청어잡이를 이야기하며 덧붙인 '하지만 실은 우리는 청어의 감정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73쪽)는 말을 통해 인간의 발전과 개발이 얼마나 이기적인 행위인지에 대해 정곡으로 찔린 느낌이다. 이 문장으로 인해, 제발트가 왜 제발트인지 알게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나는 이 문장에 전율을 느꼈다. 인간이 뭔들 알겠는가? 청어의 감정도 숲의 감정도, 이민족의 감정도 아무것도 모른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자기의 힘을 과시하고자하고 자기의 영역을 넓히고자 했던 모든 사람들은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들이기에 그토록 무책임했던 것이다. 바보같은 것들, 지구를 지배하는 생명체로서 인간이 얼마나 모자란지....

 

  작년 말에 수전 손택의 [타인의 고통]을 읽으며 그녀가 예로 든 많은 전쟁의 실상에 대해 새삼 놀라기도 하고 그때 역시 인간의 모자람에 대해 느낀 바가 많았다. 그런데 제발트의 소설 [토성의 고리]는 소설의 형식을 유지하며 영국 각 지역에 발을 내딛고 머리로는 다른 곳을 떠올리며 우리에게 메시지를 전하는 방식이 이해에는 좀 어려운 게 사실이지만 제발트의 글이란 이런 것인가, 하는 매력을 동시에 느낀다. 아마 이 책을 한 번 더 읽게 될 것이다. 내 이해는 그가 말하는 것에 턱없이 부족하다. 누군가와 같이 읽고 싶은 마음이 있는데 주변에 없어 안타까울 뿐이다.  이번엔 그저 제발트를 만나서 기뻤다고만 할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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