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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송의 달인 호모 큐라스
고미숙 지음 / 북드라망

"잃어버린 지혜, 낭송을 되찾을 때"
책을 읽다가 내용이 잘 들어오지 않거나 집중력이 흐트러질 때면 소리 내어 문장을 읽곤 한다. 고비를 넘기고 자세를 바로 잡는 데에 큰 도움이 된다. 18세기 전후 묵독 문화가 자리 잡기 시작하면서 책과 소리가 멀어졌지만, 인간의 몸은 여전히 낭독의 힘을 기억하는 게 아닐까. 고전평론가 고미숙은 책과 소리가, 소리와 몸이, 그리하여 책을 몸에 새기는 낭송을 강조하며 새로운 기획을 제안한다.

<낭송의 달인 호모 큐라스>는 전작 <공부의 달인 호모 쿵푸스>의 다음 버전이라 하겠다. 공부의 재미와 의미를 한껏 강조했으니 구체적인 방법론을 알려줄 때도 되었다 싶다. 낭송을 하려면 우선 외워야 한다. 암기와는 달리 텍스트를 뼈에 새겨 텍스트와 몸을 모두 자유롭게 만드는 게 낭송이다. 낭송은 지식을 이해하고 품는 걸 넘어 호흡과 휴식에도 맞닿는다. 소리와 파동으로 몸과 우주가 감응하게 하고, 그 울림으로 몸과 마음이 평안해진다. 고미숙은 당연히 '고전' 낭독을 강조한다. 고전이야말로 낭독으로 얻을 수 있는 수많은 좋음을 오랜 기간 품어온 텍스트이기 때문이다. 이 책에 이어 낭송Q 시리즈로 낭송하기 좋은 고전을 차례로 소개한다 하니, 고전 읽는 소리가 서로 겹치며 여기저기서 울려퍼질 날을 기대해도 좋겠다.
- 인문 MD 박태근

책속에서 :
 인류는 수천 년간 책을 소리로 터득했다. 구술과 낭독, 암송과 낭송 등등으로. 소리 내어 읽는 순간 몸 전체가 그 소리의 파동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내용을 이해하고 못하고는 부차적인 문제다. 중요한 건 그 파동과 기를 몸이 기억하게 된다는 것. 그래서 쿵푸다! 하지만 지금은 오로지 묵독만이 책읽기라는 편견에 빠져 있다.(9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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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동정원
최영미 지음 / 은행나무

"청동과 꽃의 나날, 최영미의 청춘 시대"
4월의 어느 날, 속에서 반란이 시작되었다. 저녁 귀가가 늦고, 술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고, 남학생들과 수련회에 가고, 치마보다 바지를 즐겨입게 된 젊은 날. 전경이 상주하는 청동의 교정에도 봄은 왔다. <서른, 잔치는 끝났다>로 사랑과 혁명의 불꽃이 지나간 자리를 돌아보는 탁월한 감각으로 뜨겁던 날을 위로하던 최영미가 '그 시대'에 관한 소설을 완성했다. 26년 만이다.

앞에서 싸우지도, 멀찍이 물러나 모른 척을 하지도 않았던, 쇠와 살이 부딪치던 청동시대를 개인으로 통과해야 했던 한 사람. 주인공 '이애린'의 영혼에 각인된 흉터와 무늬까지 소설은 성실하게 그려낸다. 모든 것이 가능해 보였으나 아무 것도 이뤄지지 않았던 1980년의 봄. 동서추리문고의 'Y의 비극'에 열광하며 광주의 비극에 눈을 감았던 날들. 그야말로 전쟁 같던 사랑이 할퀴고 간 흔적을 소설은 담담히 돌아본다. 모든 것을 통과한 뒤에도 여전히 '검은 밑줄이 그어진 나의 변명'을 찾길 원하는 개인들에게 최영미가 건네는 청춘의 인사.
- 소설 MD 김효선

책속에서 :
 "우리, 헤어지자."
불의의 습격을 당한 동혁의 표정이 일그러지더니 주먹이 내게 날아왔다. 타격이 가해질 때마다 내 몸이 중심을 잃고 휘청거렸다. 매서운 주먹을 이리저리 피하지만 숨을 곳이 없다. 맞는 부위를 최소화하려고 몸을 웅크리고 얼굴을 가렸다. 그래도 눈이 찢어지고 머리털이 뽑히고 입술이 화끈거린다.

여기까지 쓰고 나는 일어선다. 여기는 서울 세검정의 카페. 4월인데도 눈보라가 치는 궂은 날씨 탓인지 손님이 별로 없다. 드디어 그날을 자판으로 건드리고나니, 아랫배가 싸하다. 십 년, 이십 년, 삼십 년 묵힌 응어리를 배설하려 화장실로 간다. 북한산이 보이는 찻집, 깨끗한 화장실에서 오래된 덩어리를 물로 흘려보낸다. 비누로 씻어도 씻어도 없어지지 않는 젊은 날의 얼룩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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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라는 생물
마스다 미리 지음, 권남희 옮김 / 이봄

"마스다 미리의 ‘여자’ 이야기"
2014년 7월 일본에서 출간된 최신작 <여자라는 생물>과 마스다 미리의 초기 화풍을 엿볼 수 있는 사랑 에세이 <나는 사랑을 하고 있어>가 동시 출간되었다. 만화 <수짱 시리즈>를 통해 국내 많은 팬들을 확보한 그녀가 만화 다음으로 선보인 여자 산문집 <어느 날 문득 어른이 되었습니다>는 '여자공감만화가'에서 '여자공감에세이스트'로 확장시킨 책이었다. <여자라는 생물>은 전작에 이어 여자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들을 그녀만의 방식으로 풀어낸다.
 
마스다 미리는 시간이 흘러도 변함없는 여자에 관한 것들, 시간이 흘러 변해버린 여자에 관한 것들을 섬세하게 포착해 자신의 실제 삶의 풍경들에 녹여 담담하게 들려준다. 곳곳에는 짧은 만화가 삽입되어 있어 만화와 에세이를 함께 보는 즐거움은 물론, 저자의 소소한 일상을 엿보는 즐거움까지 더해진다. 무엇보다도 서른을 먼저 경험한 선배언니답게 여자 마음을 진솔하게 보여주어 여성 독자들의 깊은 공감을 이끌어낸다.  
 
- 에세이 MD 송진경

책속에서 : 어른이 되고 싶지 않다. 그런데 어른의 세계로 쭉쭉 끌려가는 자신의 몸. 그리고 지금도 계속 끌려가고 있다. 젊은 시절의 봉긋한 가슴과 이별할 때. 가슴이 처져가는 것은 봉긋해지기 시작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조금 부끄러운 것이란 걸 알았다. 그런데 아직 한동안은 괜찮다. 신주쿠 미쓰코시 백화점에서 모아서 올려주는 브래지어를 세 장이나 세미오더 하고 왔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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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 에어와 여우, 그리고 나
패니 브리트 글, 이자벨 아르스노 그림, 천미나 옮김 / 책과콩나무

"왕따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그래픽 노블"
단 한 명의 친구도 없는 외톨이 소녀 헬레나의 독백으로 이루어진 그래픽 노블. 어디를 가든지 뒤따라다니는 수군거림과 벽마다 휘갈겨 쓴 악의적인 낙서들, 누구도 말을 걸어선 안 된다는 명령. 이유도 모른 채 따돌림을 당하는 소녀가 느끼는 공포. 헬레나는 <제인 에어>의 결말처럼 자신에게도 해피엔딩이 찾아오길 꿈꾼다. 매일매일 괴롭힘을 당해도 아무렇지 않은 척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헬레나는 사실 특별한 존재이다. 엄마가 밤을 새며 손수 지은 원피스를 입어 보고 기뻐하는 아이, 다른 아이들처럼 사랑 받을 자격이 있는 아이,그 누구에게도 따돌림을 당할 이유가 없는 아이다.

타인을 흉보거나 놀리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지 못했다면, 따돌림을 당하는 누군가의 아픔을 나누기보다 가해자의 무리에 속하거나 방관하는 것이 쉬웠다면 이 작은 소녀의 읊조림에 귀 기울여 보면 좋겠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데 어려움을 느끼는 이들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게 구원 받을 수 있다. 쉬운 선택보다는 옳은 선택을 하는 이들로 인해서. 2013년 캐나다 퀘백 주에서 출간된 가장 아름다운 책으로 선정된 작품이다. 
- 어린이 MD 이승혜

책속에서 : 오늘 밤, 음악과 아니타 아줌마와 루스 아줌마의 흥겨운 웃음소리와 주황색 술이 달린 전등이 뿜어내는 빛 속을 어른거리는 유쾌함, 저녁으로 먹은 양고기. 이 모든 게 잊게 해 준다. 내일이 되면 나는 카나와나 호수로 가는 버스에 올라탈 거라는 사실을. 반바지를 입은 마흔 명의 아이들과 함께. 단 한 명의 친구도 없이. 버스에서 나의 전략은 가는 내내 책 읽기. 마치 내 관심사는 오로지 책밖에 없다는 듯이. 캠프장 주차장에서 제각각 무리를 짓는다. 여자아이들끼리, 남자아이들끼리, 괴짜들끼리, 얼뜨기들끼리, 그리고 외톨이들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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