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가, 파주자유학교 前교장 조경숙 님께서 알라딘으로 보내주신 12월의 좋은 어린이 책, <지지고 볶고! : 밥상>의 추천글입니다.

 

아이들에게 맛깔나는 우리말을 더 자주 들려주자.

이번에 길벗어린이 출판사에서 《끼리끼리 재미있는 우리말 사전》시리즈 3번째 권인 『지지고 볶고』가 출간되었다. 이 시리즈의 1, 2권인 『재고 세고』와 『뜨고 지고』가 2008년도에 나오고 나서 5년만이다. 그 사이 앞의 두 권은 나름 유명해져 1~2학년군 국어교과서에도 일부 내용이 실리게 되었지만, 제대로 된 우리말을 아이들이 제대로 익히는 것의 중요성이 갈수록 더 절실한 문제처럼 느껴지는 건 비단 내가 구세대여서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부모인 여러분은 우리말을 잘 알고 있다고 자부하는가? 그렇다면 다음 단어들 중 단맛을 묘사하고 있지 않은 말 하나만을 찾는다면 어느 것일까?


‘달다’, ‘달달하다’, ‘달곰하다’. ‘달짝하다’, ‘들큼하다’, ‘달콤하다’, ‘달크무레하다’

답은 ‘달달하다’이다.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달달하다’는 ‘사람이나 동물의 몸이 추위나 무서움으로 떨리는 상태’를 나타내거나, ‘바퀴가 바닥을 굴러가면서 내는 소리’를 나타낸다고 되어 있어 단맛과는 거리가 멀다. 의외라고 생각할 독자들도 있을지 모르겠다. 왜냐하면 나를 포함해서 요즘 사람들은 영어로 ‘sweet'한 상태를 표현할 때 ’달달하다‘고 말하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인데, 그런 의미에서 ’달달하다‘는 나중에 속어의 하나가 될지는 몰라도 표준말도 방언도 아니다. 게다가 ‘달달하다’는 기본형인 ‘달다’를 뺀 나머지 다섯 단어와 비교했을 때 그다지 맛깔스럽지가 않다. 쉽게 알아듣고 말하기도 쉽기는 한데, 뭔가 심심하고 허전한 느낌이다. 요즘의 신조어 만들기 세태를 보여주는 한 대목이라 할 것이다.

 

그런데 『지지고 볶고』38쪽의, “아이들은 아이스크림처럼 달콤한 맛을 좋아해. 설탕처럼 마냥 단맛보다는 달콤한 맛이 좋지.“라는 문장에서 그냥 ‘단맛’이 아닌 ‘달콤한’ 맛이란 말을 들으면, 입안에 달콤하고 부드러운 아이스크림을 한입 핧기라도 한 것처럼 침이 살짝 고이며 달짝한 맛을 느끼는 착각에 빠진다. 단 하나의 소리가 더해졌는데, 갑자기 말에 생기가 돌고, 그 온기가 상대방에게 전해진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걸까?

 

그건 우리말이 유구한 역사 속에서 꾸려진 삶들에서 나온 말, 우리 민족의 생명력이 배여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옛날에는 사람과 사람 사이 의사소통의 90% 이상이 글자가 아닌 말로 이루어졌다. 구체적이고 섬세한 상황을 제대로 전달하려면 정확한 전달력을 가진 용어들이 필요했다. 그래서 실생활에서 사람들은 무미건조한 어근 중심의 기본형보다는 일종의 변형 용어들을 더 많이 사용했고, 그만큼 우리말은 다양하게 발전되었다.

 

그렇다면 위의 일곱 단어 중 ‘달다’와 ‘달달하다’를 제외하고 나머지 다섯 단어의 단맛의 정도는 각각 어떨까? 사전에 보면 ‘달곰하다’는 ‘입맛이 당길 정도로 알맞게 달다’이고, ‘달짝하다’는 ‘조금 단맛이 있다’이며, ‘들큼하다’는 ‘맛깔스럽지 아니하게 조금 달다’이고, ‘달콤하다’는 ‘감칠맛이 있게 꽤 달다’이며, ‘달크무레하다’는 ‘약간 달큼하다’이다. 

 

이 단어들의 단맛의 정도 순서를 매기는 것은 독자들에게 맡기고, 문제는 기본형에서 한번 변형인 이 단어들조차 지금은 잘 쓰지 않는 경우들이 많다는 것이다. ‘달곰하다’는 처음 들어본 사람들이 대부분일 것이며, ‘달짝하다’나 ‘들큼하다’, ‘달크무레하다’는 표현들도 나이 드신 어른들과 같이 생활하지 않으면 젊은 사람들은 거의 듣지 못한다. 심지어 ‘달콤하다’는 말조차 뜻은 알아도 자녀와의 일상 대화 속에서 자연스럽게 사용하는 젊은 부모들은 많지 않다.

 

요즘 우리는 ‘달짝지근한’ 것이든 ‘달곰새금한’ 것이든, ‘달곰삼삼한’ 것이든 가리지 않고 단 것은 그냥 ‘달다’고 표현하고 만다. 아니면 멋없게 ‘달고 쓰다’고 한다. 아이들 언어에도 ‘화났다’, ‘슬프다’, ‘기쁘다’, ‘신난다’, ‘재미있다’ 같은 기본형 표현들만 있다. 거기다 요즘 아이들은 이른 나이부터 영어를 배운다. 영어는 우리말만큼 다채롭고 다양한 표현이 부족하다. 영어로 달다는 표현은 ‘sweet'이고, 몹시 단 것은 ’very sweet'이며, 달콤새콤하다는 표현은 ‘sweet and sour'이다. 영어는 어미변화나 복합어 형성이 우리말처럼 자연스럽고 다채롭지 않다. 그래서 영어단어의 의미를 우리말로 새겨도 그로 인해 우리말 어휘력이 더 풍성해지지 않는 건 물론이고, 오히려 빈약하고 단조로워진다.

 

어쨌든 지금의 아이들은 이래저래 언어표현력을 키울 기회를 갖지 못하고, 민족의 오랜 역사로 풍성해졌던 우리말 문화도 갈수록 황폐해져가고 있다. 이 점에서 나는 길벗어린이 출판사의 《끼리끼리 재미있는 우리말 사전》시리즈를 아이들에게보다 젊은 부모들에게 먼저 추천하고 싶다. 한 번 훑어보고 아이들더러 읽으라고 던져주지 말고, 두 번 세 번 읽고 이 책들에 나오는 용어들을 시의적절하고 자연스럽게 표현함으로써, 아이들에게 맛깔나는 우리말을 들을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이 책을 가장 잘 사용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언어 표현력이 뛰어난 아이는 관계맺기 능력도 발달하며, 그만큼 문제해결력도 높아진다. 언어 자체가 사회적 교류의 중요 수단인 데다가, 그야말로 감칠맛 나는 우리말은 서로의 감성과 마음까지 물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 조경숙(번역가, 파주자유학교 前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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