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초등국어교과모임 회장, 충남 반곡초 교사 박진환 님께서 알라딘으로 보내주신 6월의 좋은 어린이 책, <우리가 걸어가면 길이 됩니다>의 추천글입니다.

 

한국 사회에서 교육을 재조명한 금서 《페다고지_민중교육론》
1980년대 한국 사회에서《페다고지_민중교육론》은 금서였다. 90년대에《억눌린 자들의 교육학》이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발간된 뒤로 파울루 프레이리의 세계관과 교육사상, 민중을 향한 헌신적인 그의 실천은 진보적인 삶을 지향하는 이들의 지표가 돼 주었다. 그러나 이 책 한 권으로 그의 온전한 모습을 만나기에는 조금은 부족했다. 냉전의 시대가 저물고 한국 사회에도 민주화의 흐름이 이어지면서 브라질 출신의 낯선 이방인은 이전보다 풍성하고 깊은 철학과 실천으로 한국을 다시 찾기 시작했다.《프레이리 교사론》(2000)과《희망의 교육학》(2002)이 바로 그것이다. 이들 책은 늘 사회 개혁에서 들러리로 취급돼 존재감이 없었던 교육을 전면에 내세워 실천하고 이론화한 프레이리의 교육사상을 정확하고도 매우 쉽게 풀어냈다.

 

낯선 사상 다른 삶, 프레이리
서양의 주류 교육사상가들과 전혀 다른 삶을 살아온 프레이리의 조국은 브라질이다. 거대한 땅과 풍부한 자원을 가진 나라 브라질. 하지만 그곳은 대다수가 가난하고 소수만이 부를 누리는 사회이기도 했다. 프레이리는 이러한 불평등한 나라와 사회에 근본적인 의문을 던진다. 그는 착취와 억압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문맹자인 노동자들에게 자신들의 삶과 밀접한 글과 문자로 자신들을 둘러싼 사회의 본질을 깨우칠 수 있도록 도왔다. 마침내 그들에게 일하는 사람들의 힘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을 품게 한 프레이리. 이론과 실천의 결합, 즉 프락시스(praxis)를 기반으로 하는 그의 급진적인 사상은 민중적인 결합과 실천으로 오늘까지도 변함없이 우리 사회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지금까지 한국 사회에서 그의 사상은 그리 대중적이지 못했다.

 

간결하고 선명하게 그려낸 그림책
세상 누구보다 일하는 사람들과 함께 했고 부당한 사회 권력에 억눌리고 짓눌린 노동자와 농민의 편에 섰던 프레이리였지만, 우리 사회에서 그의 사상과 실천은 일부 진보적인 학자와 실천가들의 전유물로 머물러 있었다. 그러던 차, 반갑게도 양철북에서 파울루 프레이리라는 인물로 그림책을 만들었다는 소식이 들렸다. 그것도 세계 최초라고 하니 놀랍기도 하고 뜻밖이기도 했다. 그렇게 받아든 그림책 제목은 반갑게도 내가 즐겨 쓰는 그의 문구였다. “우리가 걸어가면 길이 됩니다.” 하지만 오직 투쟁하며 실천하는 삶으로 칠십 중반을 넘겼던 프레이리의 삶을 불과 40여 쪽의 그림책으로 담아내기란 쉽지 않은 일일 터. 그럼에도 작가 강무홍은 마치 대하소설과 같은 프레이리의 삶을 그림책이라는 한정된 공간에 간결하고도 분명하게 풀어낸다.

 

‘억눌린 자’들의 편에 선 프레이리와 그들을 가르치려 하기보다는 ‘대화법’으로 스스로 문맹에서 벗어나도록 돕는 데 더 힘을 쓴 프레이리, 그리하여 민중을 사회의 주인으로 권력 앞에 당당히 맞서게 했던 희망의 교육사상가 프레이리를 작가 강무홍은 그림책 한 권에 무리 없이 잘 소화해 담아내었다. 작가의 글을 감싸는 김효은의 그림은 글과 더불어 더욱 강렬해 보인다. 인물과 풍경을 그려내는 굵은 선은 고통스럽지만 억세고 굳세게 살아온 브라질을 비롯한 남미 민중들 삶의 굳센 뿌리와 줄기를 보여주는 듯했다. 이와 함께 그림책 전체를 뒤엎는 태양과 땅의 느낌을 나타내는 선명한 색은 프레이리와 민중들이 품은 삶에 대한 열정과 꿈을 보여주는 듯 매우 뚜렷했다. 이는 마치 눈부신 빛을 본 뒤 눈을 감은 뒤 오랫동안 머문 잔상과 같았다.

 

‘맞서 싸우는 희망’의 메시지
저명한 일본의 그림책 편집자 마츠이 다다시는 그림책은 ‘어른이 아이들에게 읽어주어야 하는 책’이라는 지론을 폈다. 한편 인생의 후반부에 새롭게 그림책의 가치를 깨달은 일본의 방송작가 아나가다 구나오는 ‘그림책은 어른도 꼭 읽어봐야 할 책’이라 주장했다.


《우리가 걸어가면 길이 됩니다》는 이 둘의 생각을 모두 담아낸 책이다. 어른들은 이 그림책을 통해서 오래됐지만 여전히 새로운 프레이리 사상을 쉽게 만날 수 있고, 아이들은 전혀 다른 세계지만 우리와 같은 시대를 살았던 인물의 삶을 어른들을 통해 듣고 배울 수 있다. 지난 5월 2일은 파울루 프레이리가 세상을 떠난 지 만 16년이 되는 날이었다. 온갖 허위와 가식, 위선이 가득한 불평등한 한국 사회에서 프레이리가 오늘도 유효한 까닭은 그의 사상과 실천이 낳은 ‘맞서 싸우는 희망’이라는 뚜렷한 메시지 때문이다. 그림책 《우리가 걸어가면 길이 됩니다》를 읽는 많은 독자들이 프레이리의 삶에서 드러나는 부당한 권력과 자본에 대한 저항과 희망의 메시지를 부디 놓치지 않기를 바란다. - 박진환(전국초등국어교과모임 회장, 충남 반곡초 교사)

 

 

 

전문가가 선택한 6월의 좋은 어린이 책 이벤트 보러가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