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은 없다
한수경 지음 / 문이당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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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어려운 소설을 한권 읽었다. 한 대학의 총학생회 선거를 전후로 하여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을 사회 전체로 확대 해석하게 만드는 풍자 기법을 통해 우리 사회에서 벌어졌고 또 지금 벌어지고 있는 여러가지 대립과 갈등을 떠올리게 만드는 소설이다.



1인칭 소설로서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사람은 공탁이라는 이름의 신문기자다. 책은 공탁이 유력 국회의원 후보인 안녹사와 만나서 대화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야기를 바로 이들의 대학시절로 돌아간다. 공탁은 유정민의 제안으로 데일리스팟이라는 신문동아리에 가입하여 대학의 공식 언론기관인 학보사와 대립구도를 갖게 된다. 안녹사는 공탁의 기숙사 룸메이트로서 컴퓨터를 전공하는 괴팍한 성격의 선배였다.


한편 공탁이 입학한 세계대학은 왕회장이 세계 10위권의 대학으로 만들기 위해 설립한 대학이다. 하지만 왕회장은 애매한 유언을 남김으로써 그의 11번째 아들인 왕주몽에게 물려줄 것처럼 해석하게 만든다. 대학 당국의 협조 하에 주몽은 총학생회장 후보로 나서게 되고 이에 대항하기 위해 나영웅이라는 학생이 출마한다. 나영웅은 왕주몽에 비해 외모적으로나 실력으로나 보잘 것 없는 인물이었지만 데일리스팟과 인터넷을 이끄는 군중의 힘으로 예비선거에서 주몽을 누르고 근소한 차로 승리하게 된다. 이에 주몽은 후보를 포기하고 부회장 선임으로 담합하지만 영웅측에 배신을 하게 된다.


이야기는 이처럼 학교 내부의 갈등과 대립에 관한 이야기로 흐르는 듯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도 일반 대중들의 힘으로 누군가를 영웅으로 만드는 일을 희화한 듯 한 인상을 준다. 특히 안녹사가 나영웅을 분신 자살하게 유도하는 과정에서 나누는 대화는 섬뜻하기까지 하다.


"그래서 국면전환이 필요한 거야. 수구꼴통을 까부술 특단의 대책. 목숨을 내놓는 방법. 그거 아니고는 안돼."  - p.287


"대중이 외면하면 절대로 영웅이 될 수 없거든. 히틀러가 세계를 정복하고도 2년밖에 지배하지 못한 이유가 뭔 줄 알아? 결국 대중이 등을 돌렸기 때문이야."  - p.292


결국 이들에게 사람의 목숨은 국면전환 용도에 불과한 것이었다. 대중들의 생각을 움직이고 왜곡하는 방법을 통해 만들어진 영웅은 권력을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갑론을박을 통해 언젠가 자정되고 명확한 정보로 다듬어질 것이라는 군중심리와 집단지성이 100% 옳다고 믿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느끼게 되는 대목이다. 정보과잉의 시대이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무엇이 사실에 기반한 정보인지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이 어느때보다 더 중요한 시대를 살고 있다. 이를 지적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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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작
표윤명 지음 / 새문사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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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급 문화재를 포함하여 기존에 진작(眞作)으로 감정받았던 많은 고서화들이 위작(僞作)일 가능성이 많으며, 위작을 진작으로 둔갑시켜 비싼 값에 팔고 업계의 위상을 유지하는 것이 고서화계의 관행이라는 음모론을 근간으로 조선시대와 현대를 오가며 흥미진진하게 추리해 나가는 소설이다.



주인공인 지환은 고서화점인 탐묵서림을 운영하는 탐매 송계하로부터 고서화계에 난무하는 비리에 관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한편 지환은 고서화 전문가인 박찬석 교수에게 지도를 받는 과정에서 탐매가 언급한 그 비리를 짐작하게 만드는 사건을 목도한다. 업계에 난무하는 비리를 폭로하고 바로잡고자 다짐하는 지환에게 탐매도 도움을 주기로 약속한다.


이야기는 조선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추사 김정희가 유배 시절에 느즈막하게 거둔 제자인 추재를 비롯하여 석파, 우선 등 그의 제자들과 교류하던 삶과 대화 내용이 언급된다. 흥선대원군(석파 이하응)이 김정희의 제자였다는 이야기가 좀 새롭게 다가온다. 본문중 추사와 추재의 대화 내용이 이어지는 부분에서 추사가 추재에게 '서권기문자향(書卷氣文字香)'라는 문장을 통해 마음으로 정성을 다하여 글씨를 쓰고 그림을 그리라고 당부하는 장면이 소설의 스토리를 떠나 인상적이었다.


붓을 잡는 사람은 항상 책의 기운과 문자의 향기를 갖추고 있어야만 하느니라. 많은 책을 읽어 머리와 가슴 속에 맑은 책의 기운과 문자의 향기를 가득 채워 넣어야지. 그러기 위해서는 수많은 책을 읽고 많은 글을 써 부끄럽지 않게 해야 한다.  - p.118


소설은 중반부로 들어서면서 추사의 제자 추재에게 집중한다. 논문작성을 위해 지도교수의 추천으로 찾은 국립도서관 고문서실을 찾는 지환은 우연히 보게 된 '해동화사(海東畵史)'라는 책에서 추재 윤증후라는 인물을 접하게 된다. 이 인물은 실제 역사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가공의 인물로 풀이된다. 아무튼 추재는 윤증후의 호로서 추사 김정희와 이재 권돈인의 제자였기에 그들의 호에서 한자씩 따다 호를 삼았던 것이다. 하지만 그는 중인이라는 신분상의 한계가 있던 인물이었다.


추재는 유배중이던 추사를 보살피다가 추사의 부탁에 따라 이재 권돈인, 우봉 조희룡 등을 차례로 만나 가르침을 전수받는다. 추사와 이재, 우봉 모두에게 가르침을 받은 추재가 후반부에 인상적인 제의를 받는 과정으로 지지부진했던 이야기의 흐름이 결론을 향해 치닫는다. 그에 앞서 추재를 만난 자리에서 '예(藝)'의 길을 걷기 위해 어떤 마음을 가져야하겠느냐는 추재의 질문에 대한 우봉의 답변 인상적이어서 인용해 본다.,


먼저 자신의 길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 있어야겠지. 이 길에서 나는 반드시 이루고 만다는 신념. 그것이 필요한게야. (중략) 세상이 언젠가는 알아 줄 것이다. 실력을 갖추기만 한다면 하늘은 언젠가는 그 이름을 세상에 드러나게 해 줄 것이다.  - p.162


이런 식으로 추사, 이재, 우봉 모두에게 글씨와 그림 뿐만 아니라 마음가짐에 대해서 가르침을 받은 추재는 자신의 스승들이 모두 세상을 떠나고 비루한 삶을 살다가 자신의 그림을 추사의 것으로 둔갑시켜 팔면 어떻겠냐는 그림상의 제안에 망설이기 시작한다. 사실 중인의 신분으로 자신의 삶에 늘 한계를 느껴왔던 추재에게 이 제안은 큰 고민이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제안을 받아들이는 것으로 결정하게 되었고, 지환은 이 부분까지 읽고고 책(해동화사)을 손에서 놓게 된다.


김정희의 작품을 둘러 싸고 논란이 될 수 밖에 없는 해동화사를 보고 지환은 큰 충격에 빠진다. 하지만 박교수와 도서관의 고문서실장은 이 사실을 은폐하고 지환의 행동에 간섭하기로 한다. 책에서 처음부터 등장했던 보화회라는 비밀결사단체는 결말로 가면서 윤곽을 드러내고 박교수도 보화회의 회원이었음을 밝혀지고, 마지막으로 몇페이지 남지 않은 과정에서 큰 반전이 일어난다. 지환에게도 보화회의 회원으로 등록할 것을 권유하는 의외의 인물이 등장한 것이다.


전체적인 스토리가 과거와 현실을 오가는 과정에서 약간의 혼란이 있기도 했다. 특히나 전체적인 스토리 구성에 큰 관계가 없을 듯한 인문들이 등장한다는 것도 약간 어설픈 측면이 있다. 하지만 이런 약간의 군더더기에도 불구하고 큰 핵심적인 줄거리는 말그대로 탄탄하다. 마지막의 반전도 의외라고 생각되어 놀랍다. 저자의 다음 작품을 기대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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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모른다
카린 지에벨 지음, 이승재 옮김 / 밝은세상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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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달 전 ≪그림자≫를 재미있게 읽고나서 카린 지에벨이라는 작가에 대해서 관심이 생겼는데 이번에 또 새로운 작품이 번역되어 흥미롭게 읽게 되었다. 이미 프랑스에서는 많은 팬들을 거느리고 있고 여러 편의 작품을 출간하였기에 이번 작품도 정말 기대되고 또 앞으로 다른 작품들도 번역 출간되기를 기대해 본다.



≪그림자≫를 워낙 충격적으로 읽어서 그런지 이번 작품은 상대적으로 덜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스티븐 킹의 ≪미저리≫를 청소년용 동화 정도로 전략시킨 무시무시한 소설이라는 아마존 프랑스의 평가처럼 독자들이 느낄 수 있는 스릴과 공포는 ≪그림자≫에서 느낄 수 있는 것과는 좀 다른 양상이다.


유능한 형사였지만 여성 편력이 있었던 브누아 경감이 지하실 철창 속에 갇힌 채로 일어나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한다. 그는 자신이 일어난 곳을 알지 못하고, 왜 이런 곳에 와있는지 궁금했지만 리디아라는 여성을 만나고 나서 기억을 떠올린다. 바로 전날 고속도로에서 자동차 고장으로 서있는 리디아를 만나 그녀의 집까지 갔다가 그 뒤로 기억을 잃은 것이다.


리디아는 자신의 쌍둥이 자매였던 오렐리아의 강간 및 살인범으로 브누아를 지목하고 몇개월간의 뒷조사끝에 그를 납치해온 것이다. 그 뒤로 브누아 경감은 리디아의 고문으로 만신창이가 되어 가지만 오렐리아의 살인범이라고 허위 자백을 할 수는 없었다.


한편 브누아 경감의 아내인 가엘은 남편의 바람끼를 알고 있었지만 남편은 자신만을 사랑하고 있다며 모든 잘못을 용서해주는 스타일이다. 비정상적인 면이 없지 않았고 또 남편이 실종되기 몇일 전에 3000유로를 출금하여 사용한 알리바이를 이야기하지 못해 경찰의 조사를 받게 된다.


≪너는 모른다≫라는 제목에서 '너'는 바로 브누아 경감을 말한다. 결국 브누아는 자신이 왜 이런 곳에 감금되어 고문을 받아야 하는지 알지 못한다. 그점에 끝까지 독자들로하여금 이 책의 마지막 페이지까지 긴장하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리디아가 왜 그런 허위 신고에 의해 브누아를 범인으로 확신할 수 있었고 그 확신이 어떻게 그리 오래 지속될 수 있는지 의문이다.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는 상황이었지만 어느 정도 심각한 증상이었는지에 대한 부연설명이 더 되었더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다.


브누아와 리디아의 지하실 철창을 사이에 둔 대화, 그리고 브누아 경감을 찾기 위한 경찰들과 가엘의 대화, 그 밖에 여러 인물들의 묘사를 통해 스릴러의 묘미를 느끼게 해주는 작품이다. 재미있다. 프랑스에서는 영화로도 제작되었다고 하니 구할 수 있으면 한번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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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세부터 헬로라이프 스토리콜렉터 29
무라카미 류 지음, 윤성원 옮김 / 북로드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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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류의 책이 집에 두세권 있는 것 같은데 직접 읽게 된 것은 이 책이 처음이다. 나는 처음 책을 접하기 전에 그 책이나 작가에 대한 정보를 미리 알려고 하지 않는 편이다. 그래서 이 책을 처음 보았을 때 다섯 개의 섹션으로 나누어진 장편소설인 줄 알았다. 하지만 두번째 편을 읽기 시작하고나서 첫번째 편의 인물과 전혀 다른 인물들이 등장하는 것을 알고나서부터 단편소설집이구나 하는 생각을 떠올르게 되었다.



물론 작품들마다 공통점은 있다. 책의 제목처럼 55세는 아니지만 대부분 50대 전후에 은퇴를 하거나 은퇴 후 새로운 일을 시작하려는 사람들의 삶을 그린 소설들이다. 어떤 소설은 마음이 착잡해 지기도 하고 또 다른 소설들은 주인공들에게 응원의 박수를 쳐주고 싶은 내용도 있다. 수록된 다섯편은 단편이라고 하기에는 좀 긴 느낌이고 중편이라고 하기에는 좀 짧은 느낌이다. (마지막 저자후기에서 저자는 중편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먼저 첫번째 작품인 '결혼상담소'는 나카고메 시즈코라는 50대 여성이 남편과 이혼을 하고나서 결혼상담소를 통해 새로운 삶을 함께 할 사람을 찾는 이야기이다. 그러는 와중에 실연에 아파하는 30대 남성을 만나 처음으로 남편 이외의 남자와 잠자리를 갖게 되면서 이후의 삶이 변화를 가져오고 희망을 갖게 된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나에게 주어진 반전의 기회는 무엇일까 생각해 보게 되었다. 소설 내내 얼그레이라는 차 이야기그 계속 나와 입맛을 다시게 했다.


두번째 작품인 '하늘을 나는 꿈을 다시 한번'은 소형 출판사에서 정리해고를 당한 후 공사장에서 교통 정리를 주요 업무로 하는 안전요원으로 일하고 있는 인도 시게오라는 인물의 이야기이다. 그는 노숙자가 되는 것을 두려워 하여 꿈에 나타난 장면들을 노트에 쓰고 또 읽곤 하는 습관이 있다. 어떻게든 노숙자가 되지 않기 위해 일과 건강을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하던 중 허리 통증을 심하게 느끼면서도 일을 계속하게 된다. 일하면서 길에서 우연히 만난 중학교 동창 후쿠다 사다오가 죽음을 향한 길을 함께 걸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30년 동안 만나지 않았던 어머니와 죽음의 순간에 만나는 장면을 보고 내가 마지막까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생각하게 되었다. 앞선 이야기에 비해 다소 암울한 미래를 결말로 제시하고 있다.


세번째 이야기인 '캠핑카'는 회사에서 조기퇴직 후 캠핑카를 구입하여 아내와 여행을 다닐 꿈을 꾸고 있는 토미히로 타로에 관한 이야기이다. 하지만 그는 딸의 조언에 따라 재취업을 결심하지만 곧 58세에 재취업을 한다는 것이 쉽지 않음을 깨닫는다. 예전 회사에 다니면서 인맥을 쌓인 거래처 사람들에게 전화로 재취업을 부탁하는 과정에서 심하게는 이력서를 먼저 보내는 것이 절차가 아니겠느냐는 말까지 듣는다. 사실 퇴직하고나서 최고 수준의 퍼스널 브랜딩이 되어 있지 않은 상황이라면, 즉 명함에서 회사와 직책을 떼버리면 남는 것이 없는 게 현실이 아닐까 싶다. 자녀들이 어린 관계로 적어서 환갑 지나서까지는 경제활동을 해야 하는 나로서는 참 암담해지는 이야기였다. 주인공인 토미히로는 인재 파견회사에서 카운슬링과 상담을 받으면서 '내 인생은 무엇인가?'라는 궁극의 질문에 도달한다. 그 와중에 불면증과 우울증에 시달리면서 친구가 소개하는 한 병원을 찾는다. 의사와의 상담을 통해 자기만의 시간을 가지려는 아내와 새로운 관계설정을 시도할 필요가 있다는 조언을 받으면서 새로운 출발을 준비하게 된다.


네번째 이야기인 '펫로스(pet loss)'에서는 애완견을 기르며 가족이나 남편으로부터 받지 못한 사랑을 채워나갔던 다카마키 요시코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그녀의 남편은 6년 전에 정년퇴직을 하고 집에서 TV를 보거나 인터넷 블로그에 글을 올리는 것으로 소일하고 있다. 다카마키 요시코는 인터넷을 통해 시바견을 분양받아 '보비'라는 이름을 붙여주었고 행복한 시간을 보냈지만 심장병에 걸려 죽는 바람에 마음에 큰 상처를 받는다. 애완견을 기른 이후로 남편과의 관계가 서먹했지만 죽음 이후에 보비 2세를 계획하면서 새로운 출발을 예상하게 만들고 이야기는 끝을 맺는다.


다섯번째 이야기인 '여행 도우미'도 새로운 출발을 준비하는 이야기로 끝난다. 하지만 그 준비를 하는 과정에 암울한 스토리가 이어진다. 주인공인 시모후사 겐이치는 트럭 운전을 하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트럭 운전으로 물류 업무를 하다가 예순에 퇴직한다. 뜨문뜨문 일을 받아서 하긴 하지만 지금은 책을 읽거나 일본차를 마시는 것이 취미인 그런 사람이다. 우연히 헌책방에서 호리키리 아야코라는 50대 여성을 만나고 나서 새로운 삶이 시작된다. 마쓰모토 세이초의 책을 공통분모로 하여 아홉번의 만남이 즐겁게 이어졌지만 열번째 만남에서 자신은 호스티스로 일하고 있는 여자라며 이별을 통보받고 의아해 한다. 주소를 알아내 찾아간 그녀의 집 앞에서 그는 호리키리의 장애인 남편을 만나게 되고 그녀는 장애인 남편을 간병하게 위해 호스티스로 일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어릴 때 자랐던 어촌으로 가서 장애인 여행 도우미를 만나면서 새로운 일에 대한 희망을 품게 된다.


다섯 편 모두 퇴직을 하고 나서 경제적으로 그다지 풍요롭지 않은 생활을 하는 다섯 명의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저자 후기에서도 저자가 언급했다시피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보통 사람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그 말이 너무나도 슬프다. 나도 역시 보통 사람이라면 이 주인공들처럼 살 수 밖에 없을 것인가. 다행히 다섯명 모두 새로운 희망을 가지고 새출발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소의 위안을 얻게 된다. 다섯번째 이야기인 '여행도우미'에서 등장하는 다음 문장이 마음에 너무나 슬프게 다가와서 인용해 본다.


버블 붕괴 이후밖에 모르는 세대는 이처럼 혹독한 노동 환경을 당연하게 여길지도 모르지만, 고도성장과 버블을 경험한 이들에게는 지옥처럼 느껴진다. 인구는 계속 감소하는 추세인데, 대다수 노동자들은 저임금에 허덕이며 단 20엔이든 10엔이든 저렴한 편의점 도시락을 사먹고, 1엔이라도 싼 선술집을 찾고, 맛있는 식사도 맛있는 술도 애초에 포기하며 살아간다.  - p.313


이제 나에게 십여년 밖에 남지 않은 55세.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 이 책의 주인공들처럼 희망을 가지고 새출발을 하기 위한 최소한의 자원을 좀더 확보해 두기 위해서 지금 무엇을 해야 할까 고민하게 만드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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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을 삼킨 소녀 스토리콜렉터 28
넬레 노이하우스 지음, 전은경 옮김 / 북로드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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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출신의 소설가 넬레 노이하우스의 신작이다. 그녀는 ≪백설공주에게 죽음을≫을 시작으로 국내에서 타우누스 시리즈의 돌풍을 일으켰던 작가다. 하지만 이번 작품은 기존 범죄 스릴러 계통의 장르소설이 아닌 성장소설로 분류될 감성적인 작품이다.



책의 주인공인 10대 소녀 셰리든 소피아 쿠퍼는 어린 나이에 부모가 모두 죽고 그랜트 가에 입양되어 셰리든 그랜트로 이름을 바꾸게 되었다. 양부모와 네명의 양오빠와 한 가족이 되어 지냈지만 주민이 1500명 밖에 안되는 작은 마을인 페어필드에서 사는 것이 그녀에게는 늘 불만이었다. 특히 그의 양어머니인 레이첼 그랜트는 그녀를 사사건건 간섭하고 모욕을 주었고 사소한 잘못에도 '더러운 피는 언제고 드러나는 법이니까. 최고의 가정 교육도 소용없다고(p.28)'라며 악담을 퍼부었다. 그런 그녀가 생각하는 소망은 빨리 성인이 되어 이 지긋지긋한 페어필드를 떠나 자유를 얻는 것이었다.


나도 10대 시절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고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고 자만한 적이 있었다. 어른들이 그 사실을 몰라주고 간섭하고 지시하는 것이 정말 싫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한해 두해 나이를 먹어 40대 초반의 지금 나이에 그 시절을 생각해 보니 정말 어린아이같은 심리상태가 아니었나 돌이키게 된다. 그래서인지 셰리든의 생각과 행동에 공감이 가면서도 그녀가 처한 상황에 안쓰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자신이 처한 모든 상황이 불만스럽고 뭔가 새로와보이는 모든 것이 신기하기만 했던 시절, 그녀는 처음으로 제리라는 이름의 남자친구와 성관계를 갖는다. 하지만 제리는 떠났고 곧 그녀의 기억속에 잊혀지면서 또 다른 남자들이 그녀의 주변을 스쳐 지나간다. 그녀는 책을 좋아하고 음악에 재능을 가져 절대음감을 가지고 있으면서 작곡과 노래를 하여 교내 축제에서 뮤지컬 공연을 주도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녀의 양어머니는 그녀의 끼가 못마땅한 듯 공연을 방해하고 훼방을 놓는다.


시간이 지나 그녀가 점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자신의 친부모가 누구였는지, 그리고 어떤 경위로 그랜트가에 입양이 되었는지에 대해서다. 부모가 사고로 죽었다고 알고 있었지만 그 궁금증은 날이 갈수록 더해져만 갔다. 결국 우연한 기회에 그녀의 입양 당시 서류를 입수하게 되었고 자신의 친부모에 대한 조사를 시작해 나간다. 그러는 와중에도 양어머니에게 여전히 구박을 당했고, 크리스토퍼 핀치라는 유부남에게 매력을 느껴 몇주간 매일같이 동침을 하기도 한다. 게다가 한 경찰에게 성폭행을 당한 뒤 임신을 해 낙태수술을 받기도 한다.


자신의 출생과 입양의 비밀을 같이 알아가며 사랑을 꿈꿨던 40대 초반의 니컬라스 워커는 떠났고, 마을 교회에 새로 부임한 서른 세살의 유부남인 호레이쇼 버넷 목사와 다시 사랑에 빠진다. 결국 그녀의 친부모가 누구였는지, 어떤 경위로 입양이 되었는지 모든 사실을 밝혀낸 셰리든은 큰 충격이 빠지게 되고 소설은 결말에 이르게 된다.


책을 읽는 내내 '여름을 삼켰다'는 것이 무엇을 말하고자 함인지 생각하게 되었다. 책은 첫번째 여름부터 세번째인 마지막 여름을 지나 겨울에 이르는 2년 여 간의 시간을 셰리든이 어떤 시각으로 어떤 생각을 하며 지냈는지 셰리든의 1인칭 시점으로 묘사한다. 가장 많은 일이 일어났고 책의 분량도 가장 많았던(약 170페이지) 두번째 여름을 읽다보면 여름을 삼킨다는 표현의 의미가 어렴풋이 스쳐간다. 사랑과 증오, 자기연민과 죄책감, 복수, 욕망과 절제 등 10대 소녀가 경험하기 힘든 것들을 그녀는 여름 한철에 모두 경험했다. 치열했던 여름을 삼켜버리고 페어필드를 떠난 셰리든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궁금하지만 다음 후속작품은 기대하지 않겠다. 열린 결말의 여운을 느끼고 싶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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