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랜드


리뷰어: 박여영 편집자




벨린다 바우어의 『블랙랜드』는 특별한 반전이나 장치가 많지 않은 평이한 구조 속에서 심리묘사와 인물을 둘러싼 배경이 주는 정서적 효과를 통해 서서히 긴장을 끌어올리는 이 소설은 황량한 엑스무어 지역에 사는 12살 소년 스티븐 램의 성장기이다. 


19년 전, 스티븐의 삼촌 빌리는 11살의 나이에 아동성애자의 손에 끌려가 살해당했고, 엑스무어 황야 어딘가에 묻혀 있다. 할머니, 어머니, 남동생으로 구성된 스티븐의 가족은 경제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끝없이 암울하다. 스티븐은 삼촌이 살해당한 이야기를 듣고 나서부터 황야에 묻힌 삼촌의 시체를 발견하기 위해 가족 몰래 끝도 없이 땅을 판다. 시신이 묻힌 정확한 장소를 알고 싶었던 소년은 결국 종신형을 받고 형무소에 갇힌 범인 에이버리에게 암호와도 같은 편지를 쓴다. “저는 WP를 찾고 있습니다. 도와주실 수 있나요?” 그리하여 스티븐은 교활한 연쇄살인마이자 아동성애자 에이버리와 위험한 서신교환을 시작하고, 주변 사람들-친구 루이스, 엄마, 할머니-은 서서히 그 파장에 영향을 받기 시작한다. 


『블랙랜드』는 영국인의 정신과 문학에 흐르는 황야(무어)에 대한 사랑으로 이야기를 끌어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석탄질이 섞인 검은 흙, 한 삽만 퍼도 금세 물이 고이는 진 땅, 아름다움과 으스스함을 동시에 주는 식물과 바위, 해가 빛나다가도 금세 안개에 휩싸여 한치 앞을 볼 수 없는 무어 지역의 자연은 소설의 또 다른 주인공이다. 드넓은 황야의 진창을 삽 한 자루 들고 파헤치면서 자신과 거의 같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삼촌의 시신, 어디 묻혀 있는지도 알 수 없는 그 시신을 찾는 소년에게 이 환경은 놀이터이자 적이고, 마지막엔 살인자와 독대하는 숙명의 무대가 된다. 


주인공 스티븐은 우리가 보는 실제 12살 소년이 그러하듯이 어수룩함과 총명함을 동시에 지녔다. 오로지 친구와 뛰노는 것밖에 모르던 남자아이가 책을 통해 살인자의 심리를 공부하고, 연쇄살인범의 마음을 움직이는 편지를 성공적으로 써나가는 과정은 일반 스릴러 소설의 형사-범인 간 심리싸움을 효과적으로 대신한다. 마음 약하지만 주관이 있고, 피폐해진 가족의 애정에 목말라하고, 아직 어린아이다운 생각?프랑켄슈타인 게임-을 고이 간직하고 있는 주인공의 입체적인 모습과 그가 벌이는 싸움은 노동계급 소년의 성장기로서도, 그리고 가족의 결합을 그린 극복기라는 측면에서도 과장 없는 단단한 감동을 준다. 


다만 화려한 반전과 서술에 단련된 현대 스릴러 독자가 읽기엔 다소 심심한 측면이 없지 않다. 일단 스티븐의 적수로 설정된 연쇄살인마 에이버리의 배경이나 심리가 아무런 장치 없이 너무나 스트레이트하게 기술되면서 그의 악마적 범죄에 대한 공포나 깊이가 조성되지 못한 탓이다. 에이버리의 마지막 편지를 스티븐이 받지 못한다는 정도의 소소한 설정을 제외하면, 극의 흐름을 틀어줄 장치 역시 거의 부재한다. 따라서 『블랙랜드』의 마지막 책장을 덮은 독자에게, 잘 쓴 스릴러 소설을 읽고 난 후의 빠른 심박수와 긴장감보다는 여운은 있으나 뭔지 모를 애매함이 남을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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