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우익 근대사 완전정복
이영채.한홍구 지음 / 창비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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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대학 시절, 내가 다니던 학교에는 '발전사회학'이라는 과목이 있었다. 사회학과 수업이었는데, 그당시 필수 과목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때 내 주변에는 사회학과 전공자들이 매우 많았었는데-정작 나는 사회학과와 아무 관련 없는 사람이었지만-다들 이 수업을 들으러 가기 싫어했다. 수업이 끝나고 나면 지친 얼굴이거나 질린 얼굴이거나 짜증이 난 얼굴이거나 화가 난 얼굴로 돌아왔다. 물론 수업을 듣는 것은 보통 지치는 일이지만, 그런 '지친 얼굴'과는 사뭇 다른 느낌의, 회의감에 가득 찬 표정들로 돌아오던 주변 사람들 얼굴이 지금도 떠오른다.


처음 수강신청을 할 때부터 이 수업을 듣기 싫어하기에, 아무것도 모르는 나는 수업 이름만 보고 물어봤었다. "발전사회학이 뭐야? 사회학의 발전 뭐 이런거야? 아니면 뭐 사회가 발전되는 과정 같은 거야?" 어찌보면 참 무식한 질문이지만 '발전'이라는 말이 수업 이름에 들어간다는 것조차 생경하게 느꼈던 나는 이 정도의 질문밖에 할 수 없었다. 그때 함께 있던 세 사람 중, 한 사람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래, 사회가 발전됐다는 거야. 일제강점기에서 사회가 발전됐다, 이걸 공부하는 과목 같은 거야." 


응? 이제 막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2년 정도밖에 되지 않은데다가, 중등학교 때까지 역사시간마다 '일제는 우리 민족을 괴롭히고 수탈하고 못살게 굴었다'라는 배움만 반복적으로 들어왔던 내게 저 설명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일제강점기에서 사회가 발전했다면 당연히 일본사회가 발전한 걸텐데 그걸 사회학과에서 왜 배우지? 눈알을 굴리다가 다시 물었다. 식민지근대화론 같은 거야? 뭐 그렇게 볼 수도 있지. 그러면 식민지근대화론이 틀리다는 걸 배우는 거야? 아니지 그 반대지. 응? 일제강점기에서 조선이 발전했다는 거라니까. 응?


물론 그것이 발전사회학의 전부가 아니라는 걸 지금은 안다. 하지만 어쨌든 그당시 내 주위 사람들이 들었던 발전사회학 '수업'은 그걸 공부하는 시간이 맞았고, 그래서 내 주변 사람들은 매번 스트레스를 받아 돌아오곤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내가 한국의 '우익'을 간접적으로나마 처음 만난 때가 아닐까 싶다. 지금은 당연히 자신의 이익을 위해 저 주장에 동조하는 사람들도 많고, 실리적인 목적 때문이 아니라 진심으로 그렇게 믿고 있는 사람들도 많다는 걸 알고 있다만, 그때의 내게는 '일제강점기 하에서 조선 사회가 발전됐다'는 개념 자체가 너무 낯설고 놀라운 것이었다. 그 정도로 나는 일본에 대해, 일본의 '지배층'에 대해, 그들의 생각에 대해 아는 게 없었다.


그뿐만인가. 떠올려 보면 광복절 날마다 야스쿠니 신사의 이름을 들어놓고도, 그곳에 일본 정치인이 참배하는 건 '엄청 나쁜 일'이라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왜 나쁜지, 왜 그곳에 가는 게 문제가 되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 정치인들은 왜 그곳을 광복절에 찾는 것인지 아주 오랫동안 몰랐다. 그냥 맹목적으로 나쁘다고 외워버렸다. 그건 하면 안되는 건데 일본인들이 하고 있으니 하지 말라고 해야 하는 것인가보다 했다. 그 이상의 관심을 더 두지 않았다. 이렇게나 무지하고 관심이 없었다.


지금은-최소한 그때보다는 더 알고 있다. 이런저런 방송을 찾아 듣기도 하고, 영화를 보기도 하고, 책을 보기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년같이 반일 감정이 휘몰아치던 때, 일본 전체를 적으로 간주하고 혐오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 당연한 일처럼 여겨져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음에도, '왜' 그러면 안되는지 제대로 설명할 수가 없었다. '일본 전체'가 아니라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에 대해 잘 설명할 수 있으려면 더 알아야 했고, 더 배워야 했다. 


이 책은 그 배움에 매우 큰 도움을 주었다.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한일관계의 문제들을 '문재인 정부와 아베 내각이 사이가 나쁘기 때문' 같은 식으로 이해해서는 절대 안 된다는 걸 너무 잘 알려준다. 이 문제들은 종전부터, 어쩌면 일본이 조선을 침략하면서부터, 아니 어쩌면 메이지 유신에 성공한 일본이 대륙으로의 진출을 꿈꾸면서부터 시작된 것인지도 모른다는 걸,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좀더 또렷하게 알 수 있었다. 


특히 많은 도움이 됐던 건 야스쿠니 신사를 다룬 2장의 내용과 재일조선인들의 삶에 대해 다룬 7장의 내용이었다. 하나는 일본 우익들이 어떻게 평화헌법을 집어치우고 자신들이 바라는 '보수국가'로 나아가고 싶어하는지에 대한 내용이고 다른 하나는 종전 이후에도 일본에서 계속 살아온 '조선인'들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왔느냐에 대한 내용이니, 그 둘이 매우 다른 내용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는 이 둘이 모두다 집단을 위한 개인의 희생은 당연한 것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의 폭력성이 빚어낸 결과로 보였다. 고귀한 희생을 치른 것으로 포장되어 신격화되고 있는 야스쿠니 안의 사람들, 고귀한 희생을 요구하던 사회로 인해 고향도 국적도 가족도 잃어야만 했던 재일조선인들, 이 둘은 일그러진 군국주의가 빚어낸 비극의 양면 같다고 생각했다.


한홍구선생의 강의를 책으로 옮긴 것들이 보통 그렇듯이, 가독성이 높고 술술 잘 읽힌다. 하지만 '글자'를 걸리는 데 읽는 시간은 짧을지라도 그 글자의 '의미'를 되새기는 데 걸리는 시간은 꽤 오래 걸릴 거라고 생각한다. 역사를 기억한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내가 알아온 역사란 어쩌면 '내가 살아온 나라의 역사'밖에 없었는지도 모른다. 상대의 역사에 대해서는 제대로 알지조차 못하는데, 무엇을 기억해서 어떻게 현재의 거울로 삼을 수 있겠는가. 


나는 이 책을 자주 읽고, 책 맨 뒤에 실려 있는 '더 깊은 공부를 위한 자료'들도 찾아 읽고, 주변의 친구들에게도 자주 권할 생각이다. 그렇지 않으면 개인의 희생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그들'이 역사의 전면에서 세상의 방향을 거꾸로 흘러가게 할지도 모르니까. 그래서는 안 되니까.




영화 '주전장', '김복동', 그리고 팟캐스트 '그것이 알기 싫다'에서 2019년에 방송된 일본 관련 방송들과 함께 읽고 보고 들으면 훨씬 더 이해가 잘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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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무거운 한숨을 내쉬자, 동감이나 하는 듯 장작도 연기를 내며 한숨을 쉬었다. 그러자 오콩코의 눈이 열리더니, 그는 세상사를 선명히 알게 되었다. 불은 타오른 후 식어, 무기력한 재를 낳는 것이다. (18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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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해보세요! 삶이라는 게 우리가 잘못 쓰면 별 가치가 없는 것이지만, 노력해볼 가치는 있는 거니까요. (50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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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네의 길은 언제나 비뚤어진 길이었고, 지금도 그래. 기운도 없고 목적도 없어. (13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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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노슈는 마음을 성장시켜온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며 존중할 것, 그리고 겸손할 것을 당부한다. (7쪽)

희망은 모든 것이 좋아지리라는 전망이 아니다. 우리가 하는 행동이 ‘차이를 만든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다.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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