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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월은, 개인적으로, 나쁜 일이 너무 많은 한 달이었다. 그리고 그 일들 중 거의 대부분은 새해가 된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러다 보니 신간페이퍼를 쓰려고 노트북을 펼쳤을 때까지만 해도 마음이 개운치 않았...지만, 새로 출간된 책의 표지와 제목을 훑어 보고 있으니 아주 조금은 기분이 나아지는 것도 같다. 어쨌든간 보기 좋은 것들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조금이나마 좋아지는 게 사람이니까. 12월의 소설 신간으로는 어떤 것이 선정될지 궁금해하며, 내가 꼽아보는 신간 리스트.



1. 헬로, 미스터 디킨스 - 한국 작가 9인의 찰스 디킨스 테마 소설집


애정하는 승열오라버니가 진행하시는 EBS 영미문학관에서 작년 12월, 찰스 디킨스의 탄생 200주년을 기념하며 디킨스의 작품을 읽어 주었다. 그 때 어떤 청취자께서 서점에 갔다가 이 책을 보셨다며 사연을 보내셨는데, 참여한 작가들이 워낙 쟁쟁해서+_+ 기억해두었었다. 이번에 생각나 검색해 보았더니 바로 나오는구나, <헬로, 미스터 디킨스>. 


디킨스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세 작품, <두 도시 이야기>와 <크리스마스 캐럴> 그리고 <올리버 트위스트>를 테마로 김중혁, 백가흠, 배명훈, 최제훈, 김경욱, 윤성희 등 '믿을 만한' 작가들이 써낸 소설들이 엮여 있다고 한다. <크리스마스 캐럴>이나 <올리버 트위스트>도 좋은 소설이지만 어릴 때 <두 도시 이야기>를 꽤 감명 깊게 읽은 기억이 있어 꼭 읽어 보고 싶은 책이다. 특히 광주와 아테네를 배경으로 펼쳐진다는 백가흠의 소설 <수도원 오르는 길-더 송The Song 4>와 윤성희 버전의 크리스마스 캐럴, <날씨 이야기>에 관심이 간다. 부산과 서울에 대한 소설이라는 김중혁의 <픽포켓>은 내용 자체보다 김중혁이라는 이름 때문에 끌리고. 부산과 서울이라니, 음, 좀, 음, 뻔하다는 생각이 드는 게 사실이긴 하지만 그래도 김중혁 작가의 단편소설은 해가 갈수록 점점 더 매력적이어지고 있으니까!! 기대감 상승!!!!



2. 사랑과 욕망의 변주곡 - 안톤 체호프의 에로티시즘 단편선


솔직히 책 제목도, 책 표지도, 개인적인 취향과는 거리가 멀지만(ㅠㅠㅠ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리스트의 두 번째에 올려놓은 것은 오직, 단지, Only, 안톤 체호프라는 작가의 이름 때문이다. (사실 '에로티시즘 단편선'도 별 매력 없기는 마찬가지...하아;;;;)


<바다에서>부터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까지 열 여섯 편이 실려 있다는데,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 말고는 다 처음 보는 소설이다. 체호프 단편의 그 씁쓸하면서도 짜릿한 맛을 꽤 좋아하는 편이라 우리 나라에 소개된 체호프 소설은 꾸준히 찾아봤던 독자로서 안 찾아 읽을 수 없는 책이다. 아무리 책 제목과 부제와 표지가 맘에 들지 않는다고 하여도...하아;;;;;;


그래도 이 책에서 마음에 드는 부분은(체호프의 작품을 읽을 수 있다는 것 빼고) 작품이 발표 연도 순서대로 배열되어 있다는 것. 출판사의 책 소개에 쓰인 구절처럼 '여자들에 대한 체호프의 시선이 어떻게 바뀌어 가는지를 자연스럽게 느끼'는 데 관심이 많아서라기보다는 원래 내가 책 읽는 방식이 발표 순서대로 좌라락 찾아 읽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물론 보통 '고전'이라 불리는 작품들은 작가의 대표작 중심으로 읽게 되는 터라 거의 그렇게 읽지 못앴고, 나와 동시대를 살고 있는 작가들의 작품은 거의 그런 방식으로 읽고 있는데, 이번 책에서는 내게 '고전'인 체호프의 소설을 그가 쓴 시간 순서대로 읽을 수 있다는 게 꽤 매력적이다. 어떤 작품에서 체호프 특유의 아릿한 쌉쌀함을 느낄 수 있을지, 궁금하다.



3. 인질의 낭독회/ 오가와 요코


오가와 요코의 <박사가 사랑한 수식>을 워낙 행복하게 읽었다. 사람의 감정선을 아무렇지 않게 툭, 건드리는 류의 일본 영화나 소설을 꽤 좋아하는 편인데 <박사가 사랑한 수식>이 나에겐 그런 소설 중 하나였다. 보들보들하고 순정 만화 같은 거, 나도 울테니까 너도 같이 울자, 뭐 이런 거 말고, 덤덤하고 소박하고 어떨 땐 무뚝뚝하면서도 약간은 짓궂은 거, 자기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을 짓고 있으면서 남을 팍 울려버리는, 그런 거 말이다.


어쩌다 보니 <박사가 사랑한 수식> 이후로 그녀의 소설을 한 권도 읽지 못했던 내게 <인질의 낭독회>는 꽤 호기심을 불러 일으킬만한 책이다. 오가와 요코와 인질? 너무 안 어울리는데? 싶었는데,  관광객 납치 사건의 인질 여덟 명이 낭독회를 벌인다니. 영화나 TV에서 본 '인질 납치 사건'을 떠올리자면 경찰과 납치범들의 총질과 고함이 오가야 할 것 같은데.


만약 인질들이 엄청나게 독특한 사람들이었다면 이제까지 나열한 이유만으로도 특별한 흥미가 안 생겼을지 모른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마음이 동한 것은, 이 책의 인질들이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었다는 이유 때문이다. 조숙한 안경집 아들, 남편을 잃은 여자, 정리정돈에 꽂힌 할머니, 불량품 알파벳 비스킷을 좋아하는 여자, 눈이 하나뿐인 인형을 만드는 노인 등등. 글로 쓰면 뭔가 사연을 갖고 있을 것 같지만, 사실 내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평범한 인물들 아닌가. 평범하다는 건 어떤 의미에서 '일반적으고 보편적인 정도의' 상실감과 패배감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걸 테고. 그들의 슬픔을, 눈물이 묻어있는 목소리를, 읽어 보고 싶다. 지금의 내게는 그런 독서가 좀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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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평가단이 되고 처음 수행하는 미션. 11월에 나온 소설 중 눈에 띄는 것 다섯 편을 골라 보았다. 의도적으로 그런 건 아니었는데; 고르다보니 묘하게도 한국/일본/외국 소설이 골고루 섞였...다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또다시 목록을 살펴 보니 역시 한국 소설이 많구나-_- <능력자>라든지 <노랑무늬영원><불을 지피다> <당분간 영원>, 아멜리 노통브나 우타노 쇼고의 신간 등 흥미로운 책들이 많이 나왔던 10월에 비해 눈에 띄는 책들이 많지 않은 건 사실이었지만-뭐 연말이고 12월 대선도 있으니 그럴 만 하다 싶다. 12월은 새로 나온 책을 사다 읽기보다는 한 해 동안 사놓고 못 읽은 책을 한 해 가기 전에 읽는 달일 테니까. 하하하.


여튼간! 올해를 보내기 전에 읽고 싶은 책 다섯 권, 리스트업 :)



1. 모피아 - 우석훈 지음, 김영사


첫 번째로 꼽은 책은 '올해의 다작 작가' 우석훈 씨의 <모피아>. 도대체 우석훈은 올해 몇 권의 책을 내는가...싶어 검색해 봤더니 공저가 아닌 책만 네 권. <1인분 인생>, , <시민의 정부 시민의 경제>, 그리고 이 책 <모피아>. 앞의 두 권은 읽었고ㅋ <시민의 정부 시민의 경제>는 아직 못 읽었는데, 그보다 <모피아>를 먼저 읽게 되지 않을까 싶다. 아무래도 소설이니까 더 금방 읽히지 않을까? 게다가 본인 스스로 나꼽살에서 재미있다고 여러 번 얘기하기도 했고ㅎㅎ 


줄거리를 살펴보니 주인공들의 직업 자체가 보통이 아니다. 한국은행 조사팀장, 펜타곤 소속 동아시아 담당 무기상, 청와대 경제특보, 재정경제부 고위공무원들 등등...아마도 책을 읽다 보면 현존하는 '그분'들을 목격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특히나 '이현도'라는 모피아 인물은, 너무 당연하게도 '이헌*'와 연결되지 않는가.


몇년 전까지만 해도 정치경제에 관심이 높은 사람들이나 알고 있는 용어였던 '모피아'가 이제는 누구나 아는 단어처럼 널리 쓰이고 있는 지금, 유력한 대선 후보이신 유신공주님께서는 국민대통합을 이루겠다며 악세사리처럼 달고 다니던 김종인을 걷어차 버렸고, 경제민주화라는 허울도 벗어던진지 오래다. 이런 때에, 정말로 경제민주화를 이루려 하는 정부가 이 땅에 들어선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 그 끝은 희망인가 파국일까. 궁금해진다. 표지가 더 매력적이었다면 좋았을 텐데.



2.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 - 하타사와 세이고 & 구도 치나쓰 지음, 추지나 옮김/ 다른


제목과 지은이와 책 표지와 출판사 모두 '마구 땡기는' 건 하나도 아닌데...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두 번째로 올려놓는 것은 이 책이 화제가 됐던 연극을 소설화한 것이라는 점 때문이다. 지난 여름, 동명의 연극이 무대에 올라왔고 여러 언론에서 화제가 됐었다. 당시 손석희의 시선집중 토요일 코너인 '토요일에 만난 사람'에 배우 손숙 씨가 출연해 이 연극에 대해 언급했었는데, 직업이 직업인지라-_- 매우 흥미롭게 들었지만 막상 연극을 보진 못했다. 직장에서 늘 마주치고 느끼는 그 공포를, 굳이 극장에서까지 느끼고 싶지는 않았다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비겁한 변명이겠지.


사실 이 책의 내용은 내게 그리 특별한 것도 아니다. 수많은 아이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자신이 따돌림당하지 않기 위해 또다른 아이들을 따돌리며 피해와 가해를 주고받고 있으니까. 학교 제도 자체를 군대식으로 형성한 일본과 그 일본의 제도를 수혈받아 학교를 만들어 낸 한국에서 이지메/왕때 문제를 없애겠다는 건 학교 제도 자체를 바꾸지 않곤 불가능한 미션이다. 이 책 역시 말끔한 대안이나 명확한 해결책을 제시해주진 못할 거다. 그래서 내게 이 책은 '이미 많이 본 장면'을 글로 확인하는 것에 불과할지 모른다.


결국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사람은, 학교를 졸업한 지 많은 시간이 지난 탓에 지금의 학교가 어떤 모습인지 잘 모르는 '부모님'들이 아닐까 싶다. 내 아이가 이렇게 피해를 입을 수도 있고, 이렇게 가해를 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소설 속 부모들처럼 자신 역시 아이의 위치에 따라 극도로 뻔뻔하고 파렴치하게 변할 수 있을 거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래야 이게 '특별한 몇몇 찐따들'의 문제가 아니라,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우리 모두의 문제로 느껴질 거고, 바뀔 수 있을 테니까.



3. 펭씨네 가족 - 케빈 윌슨 지음/ 오세원 옮김, 은행나무


정형화된 가족이 아닌, 특이하면서도 웃기는 가족 이야기는 대부분 재미있다. 이 책 제목과 표지만 봤을 때는 <네 가족을 믿지 마라> 시리즈가 떠올랐었는데, 줄거리를 읽어 보니 부모보다 아이가 더 특이해 보이는 <네 가족을 믿지 마라>와 달리 아이보다 부모가 더 특이한 인물로 등장하는 모양이다.


등장인물은 펭 씨 부부와 애니 & 버스터 남매. '삶과 예술을 철저히 결합시키는' '극단적인 행위예술가' 부모라니, 함께 살기 녹록친 않겠다ㅋ 예술가 부모의 재능을 물려받은 탓인지 영화배우와 소설가로 성인의 삶을 살아가던 남매가 '실종된 부모 찾기'라는 과제를 수행하며 부모의 세계를 벗어나 자기의 세계를 찾아나서는 이야기라면 성장 소설로서의 모습도 갖고 있을 테고. 사람이 살아가는 '과정'을 다룬 이야기라면 무엇이든지 성장 소설일 수 있다는 게 내 생각이긴 하지만-꼭 '어린아이'나 '부모가 아닌 자식'이 아니더라도!-세상은 나와 달리 주인공의 나이로 성장 소설이란 장르를 구획화하고 싶어하니까.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점은 출판사의 추천사가 너무 많고 화려하다는 점. '천재적' '다른 그 어떤 소설과도 비교 불가능' '철저하게 아름다운 소설'이라니...이렇게 독자들의 기대를 추천사로 부풀리려는 소설일수록 실제 재미는 별볼일 없는 경우가 많다보니  좀 그렇네. 과연 어떨까. 궁금하도다.



4. 이상 소설 전집 - 이상 지음/ 권영민 편집,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00

 

대학 때, 일제 강점기 문학을 전공하셨던, 특히 이상과 이광수의 문학에 조예가 깊으셨던 전공 교수님이 계셨다. <한국 현대 문학의 배경>이라는 수업을 2학년 때 매우 흥미롭게 듣고, 별로 좋은 학점을 받지 못했음에도(B+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냥 그 수업이 듣고 싶어 4학년 때 <한국 근대문학 원전 읽기>라는 교수님의 수업을 신청했다. 


막연히 여러 작가의 여러 작품을 읽겠거니 하고 생각했던 수업의 오리엔테이션 날, 교수님께서는 이상의 소설을 한 학기 동안 읽을 것이라고 하셨다. 나 역시 그전까지는 한국에서 인문계 고등학교를 졸업한 보통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이상=신기한/특이한/이상한 사람, 이상 소설=어렵고 복잡한 소설'이라고 생각해 왔기에, 이번엔 B+보다 더 못한 학점을 받는 거 아냐-_- 싶어 수업을 바꿔야되나 잠시 고민했다. 그렇지만 그 때가 아니라면 이상의 소설을, 그것도 원전으로 읽을 기회란 살면서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것 같았다. 학점을 좀 못 받더라도 그의 소설을 읽어 보고 싶었다. 그리고, 한 학기 동안 그의 소설 12편을 읽었다. 교수님의 흥미로우면서도 날카로운 해석이 수업을 더 풍성하게 해 주었다. 그 때의 강렬한 기억 때문인지, 이상은 내게 대학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아이콘(!) 중 하나이다. 


이상의 소설 전집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00번째 책으로 나왔다. 편집자는 이상 연구의 권위자 중 한 분인 권영민 교수. 게다가 저 표지는 이상의 여러 초상화 중 내가 좋아하는, 구본웅의 작품! 보자마자 오오오!! 라는 탄성을 내지르지 않을 수 없었다. 이상의 전집들 중 표지로서는 가장 괜찮은 것 같다ㅎ 다른 전집을 이미 가지고 있음에도 또 눈독들이게 되는,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판 이상 소설 전집. 땡기지 않을 수 없는 신간이다.



5. 그들이 내 이름을 부를 때 - 방현석 지음, 이야기공작소


오늘 남영동1985를 보고 왔다. 생각보다 관객이 너무 없어 안타까웠는데, 영화를 다 보고 나니 관객이 많지 않은 게 당연하겠다 싶었다. 영화를 본 후 유쾌하거나 신나거나 즐겁기는 커녕 슬프고 비참해지는데, 그런 걸 돈 내고 하라면 몇 사람이나 자진해서 하겠나 싶은 생각이 들어 버리는 거다. 인간이 인간에게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가, 직업적 의무 혹은 책무라는 이름으로 '애국'이라는 허울 뒤에 숨어 거짓을 날조하고 자신을 잃게 하고 삶을 부숴뜨리고......가해자에게 감정 이입하기엔 가해자의 존재가 너무 끔찍하고, 피해자에 감정 이입하기엔 피해자의 고통이 너무 소름끼치고......많은 사람들이 보았으면 좋겠지만, 보라고 강요하기 힘든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고통과 마주하기 힘들어 영화를 보지 못한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는 것이 어떨까. 


방현석 작가가 아주 오랜만에 낸 신작이 고 김근태 의장의 이야기라 하여 신기하다 했는데, 검색을 하다가 김근태 의장이 돌아가셨을 때 방현석 작가가 추도사를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 그래서...라 중얼거리며 추도사 전문을 읽다가, 이 부분에서 스크롤을 멈췄다. 그리고 크게 한숨을 쉬었다. 쉴 수밖에 없더라.


- 우리는 정직과 진실을, 민주주의를 목표로 여긴 반면에 당신은 그것을 이루려면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믿었던 것이었습니다. 당신은 정직과 진실, 민주주의를 위해 싸운 사람이 아닙니다. 당신은 그것을 온전히 살아버린 사람이었습니다. 당신이 옳았습니다. 우리 모두에게 불운은 당신의 '실패'를 통해서만이 당신이 옳았음을 입증할 수 있었다는 역설입니다.


이 책에서 김근태 의장이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서울구치소로 옮겨 왔을 때를 묘사한 부분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고 한다.


- 내가 지켜낸 이름과 지켜 내지 못한 이름, 나를 모욕하고 유린했던 이름, 끝없이 그리운 이름, 이름들. 그들의 이름을 기억하는 안간힘으로, 그들이 불러준 내 이름을 잊지 않으려는 몸부림으로, 그해 겨울 나는 죽지 않았다.


우리가 지금 이렇게 표면적이나마 '자유'랍시고 이런저런 권리들을 누릴 수 있게 된 것이 우리보다 먼저 살았던 이들이 흘린 눈물과 핏물 때문이라는 걸 잊지 않기 위해서는, 알고 공부하고 기억하고 알리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공중파 뉴스에서 '새누리당 김근태 의원'의 사진을 고 김근태 의장의 사진으로 잘못 게재하여 매우 큰 물의를 빚기도 한-_- 때에, 김근태가 누구인지, 군부 독재 정권 하에서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어떤 삶을 살았으며 그로 인해 어떤 핍박과 억압을 당해야만 했는지, 알지 않는다면 역사는 분명 되풀이되겠지, 바로 12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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