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망이와 눈동자

 

아버지라는 인간은 살아생전에 가족 속을 많이 썩이는 인간이긴 했다. 그래도 완전 개차반까지는 아니라는 인식이 있었기에, 한 번씩 깽판을 쳐대도 며칠 지나면 웃으면서 아버지를 볼 수 있게 되곤 했다. 그날도 그랬다. 어디서 화가 나서 술을 쳐드시고 들어와서는 어김없이 살림살이를 내던지고 있었다. 엄마는 물건들이 개박살날 때마다 울며 비명을 지르고, 아직 초등학교도 들어가지 못한 동생은 작은 방에 피신, 이제 갓 고등학생이 된 아들은 아버지 하지 마세요, 아버지 하지 마세요를 외치며 술에 쩐 몸뚱이를 붙들고 매달렸다. 놔라, 가장을 개떡같이 아는 이놈의 집구석, 내가 다 박살을 내놓고 말지, 아버지는 말 같지도 않은 말을 반복하며 손에 잡히는 대로 집기를 던졌다. 그때 엄마가 소리쳤다. 경찰에 신고해라. 그건 엄마가 평생 처음 해본 말이었다. 당시 우리 옆집에서도 이런 일이 종종 벌어졌는데, 마침 그 전날도 그랬고, 그래서 그날 아침 옆집 아주머니와 엄마의 대화 속에 경찰, 신고, 이런 단어들이 들어있었던 것이라고 나중에 엄마는 설명했다. 하여튼 엄마의 입에서 평생 처음 나온 말이었으니, 아버지도 평생 처음 들은 말이었을 것이다. 뭐라고! 아버지의 손이 높이 쳐들리더니 그대로 엄마의 뺨을 후려쳤다. 엄마는 집기처럼 날아갔다.

 

우리는 모두 놀랐다. 살림살이 개박살 이벤트야 많을 땐 한 주에 한 번 꼴로도 벌어지는 일이었지만, 엄마 몸에 손을 댄 것은 그게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엄마는 놀라 울음도 멈춘 채 아버지를 올려다보았다. 더 놀란 것은 아버지 당신이었다. 손을 내리친 자세 그대로 굳어 한참을 서 있었다. 제일 먼저 정신을 차린 건 아들이었다. 에이, 씨발 진짜 더는 이렇게는 안 되겠다. 아들은 동생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방문을 열고 들어가 야구방망이를 꺼내들었다. 오빠야, 하지 마라, 동생이 벌벌 떨며 외치는 소리를 귓등으로 들으며 다시 안방으로 쳐들어갔다. 시간이 멈춘 것처럼, 아버지와 어머니는 같은 자세로 그렇게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 어쩌면 그냥 그렇게 멈춰있을 뿐, 실제로 아무것도 보지 않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한 번 더 해봐. 등 뒤에서 아들이 외쳤다. 아들은 이상하리만큼 용기가 났다. 하나도 떨리지 않았다. 떨고 있는 것은 아버지였다. 돌아서기 전부터 떨고 있었고, 돌아서 아들의 손에 쥐인 방망이를 보았다고 더 크게 떤 것도 아니었다. 아버지는 휘청거리는 걸음으로 아들의 어깨를 스치듯 지나쳐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일주일 쯤 뒤, 아버지는 조용히 돌아왔다. 그리고 그날 이후 모든 게 끝났다. 엄마의 몸에 손을 대는 일도, 살림살이를 집어던지는 일도 없었다. 평소처럼 화가 잔뜩 나서 술에 취해 들어와서는 기어를 잔뜩 올리다가도, 어느 순간 알아서 브레이크를 밟는 모습이 보였다.

 

어릴 때는 방망이가 그 폭력의 오랜 역사를 끊어낸 거라고 생각했었다. 살며 고쳐 생각하게 되었다. 나 역시 타인의 마음에 상처가 될 말이나 행동을 할 때가 많았고, 그러는 중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것처럼 오로지 상처 주는 데만 집중하곤 했다. 그러다 어떤 눈물, 마음의 비명, 너무도 약하여 자신의 고통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따로 없는 지렁이들의 마지막 꿈틀거림 같은 것들을 마주하는 순간마다, 그날의 아버지가 떠올랐다. 지금 내 손을 흔드는 이 떨림이, 그날 엄마의 뺨을 후려친 손을 덮친 바로 그 떨림이었다. 항거불능의 죄책감. 정신을 차려보니 이미 넘은 지 한참 되어 등 뒤 멀리에 그려져 있는 가는 선. 내가 내 생각 이상의 쓰레기였고, 그걸 눈치 채기 위해서 타인의 눈물이 필요하고, 그렇다는 것은 앞으로도 내가 쓰레기로 살아갈 확률도 높으며, 상대방의 인내와 배려의 크기에 따라서는 영영 내 몸에서 나는 쓰레기 냄새를 맡지도 못하고 혼자 썩어갈 수도 있다는 사실. 그런 것들 위에 서 있는 스스로를 발견할 때 발밑이 꺼지는 것처럼 아득해지곤 한다. 그리고 그날을 다시 생각한다. 두려운 것은 아들의 방망이가 아니라 엄마의 눈빛이다. 두 번째 만나면 어둡고 깊은 심연으로 떨어져 다시는 인간으로 돌아올 수 없을 것 같은 아픔의 결정 같은 것이다. 두 번은 돌아오지 못할 길, 그런 두려움이 많은 국면에서 나를 그나마 사람으로 만들어주었다. 아버지가 남긴 유산이다.


 

 

그제야 나는 거울은 언제나 거기 그대로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거울 속에 늙은 얼굴이 있다고 해서 그 거울이 그를 늙게 만들었다고는 볼 수 없다이 세계는 그 거울과 같다세계는 늘 그대로 거기 있다나빠지는 게 있다면 그 세계에 비친 나의 모습일 것이다.

김연수시절일기

 

길고 어두운 길을 따라 길고 어두운 밤을 지나 길고 어두운 마음에 도착하면너의 낯빛을 맑게 물들이는 오랜 단념이 있었다창문을 조금만 열어줄 수 있습니까불빛을 조금만 낮춰줄 수 있습니까주어 없는 문장 문장마다 너의 그림자가 베여 있었다구원받지 못한다는 사실이 슬프게 기뻤다.

이제니너는 오래도록 길고 어두웠다〉 부분

 

진실에 다친 마음이라고 해서 빨리 아무는 것은 아니다오히려 진실에 다친 마음은 거짓에 다친 마음과 달리 돌아가 의탁할 곳이 없다진실에 등을 돌려야 하니까.

김정선나는 왜 이렇게 우울한 것일까

 

--- 읽은 ---

+ 사진을 읽어 드립니다 / 김경훈 : 177 ~ 347

+ 시절일기 / 김연수 : 152 ~ 333

+ 주경철의 유럽인 이야기 1 / 주경철 : 222 ~ 339

+ 기분이 없는 기분 / 구정인 : ~ 203



--- 읽는 ---

= 만화로 보는 맨큐의 경제학 / 그레고리 맨큐 : ~ 77

= 인포메이션 / 제임스 글릭 : ~ 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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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즘메이커 2019-07-23 0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yo님의 글속에는 제가 담겨있군요. 좋은 글을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syo 2019-07-23 10:07   좋아요 0 | URL
저마다 아팠고, 저마다의 방식으로 극복하거나 극복중인 저마다의 기억들이겠으나,
카테고리로 보면 꽤 다수가 공유하는 기억인 것도 같습니다.

비극이네요.

독서괭 2019-07-23 05: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경찰신고보다 훨씬 효과적인 브레이크가 되었지만, 온가족 마음에 남았을 상처가 안타깝네요.. 그래도 한번 넘은 선은 두번 넘기도 쉬운 법인데, 그러지 않으셨다니 참 다행입니다.
가장이라는 말 싫어하는데, 의무가 아니라 권리로 휘둘러질 때가 많아서요.

syo 2019-07-23 10:09   좋아요 1 | URL
그래도 한번 선을 넘을 때 치명적인 상처를 주는 것 자체도 용서될 만한 일은 아닌 것 같아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상처 안 주고도 상처 받을 수 있다는 걸 재빨리 눈치채는 사람이요.

2019-07-23 07: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7-23 10: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7-23 11: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7-24 21: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7-24 01: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7-24 21: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자본가의 탄생

그레그 스타인메츠 지음 / 노승영 옮김 / 부키 / 2018

 

농담. 자본가를 식별할 수 있는 21세기적 방법 : 당신은 자본가가 훌륭하다고 생각하세요? 라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변한 사람 가운데 진심인 사람.

 

자본가의 이미지를 둘러싼 전투는 그친 적이 없다. 자본은 정말 가치를 생산하는가? 그들은 노동자의 고혈을 빨아 먹는가? 그들은 정말 그런 어마어마한 대접을 받을 만한 생산성과 창의성을 갖추었는가? 그렇지만 자본가를 옹호하건 비난하건 간에, 그들이 비윤리적 수단 없이 순수한 노력으로 자신의 부를 유지한다고 믿는 순진한 사람이 아직 남아 있을까? 그 부가 거대하면 거대할수록 혐의는 짙다. 이게 다 자본가에 대한 음모라고? 자본가에 대한 경험이겠지. 그리고 그런 경험은 600년 전에도 가능했다고 이 책은 말한다.

 

야코프 푸거라는 거물이 있었다. 쌓아올린 부와 그 부를 헐어 쌓은(혹은 무너뜨린) 것들의 스케일에 비해 덜 알려진 인물인 푸거는, 자본가의 아들로 태어나 자본가로 살다 자본가인 조카에게 자본을 물려주고 자본의 성전에 자본가의 표본으로 이름을 올렸다. 그는 아주 명쾌한 사람이었다. 돈으로 가는 길에 늘 해답이 있었다. 광산? 독점하면 되지. 파업? 자르거나 억압하면 되지. 고리대? 성서해석 바꾸게 하면 되지, 돈으로. 황제? 교황? 만들면 되지, 돈으로. 종교개혁? 아니 그럼 어떡해, 대주교 하나 만드는데 돈이 얼마나 들어가는데. 루턴가 루튼가 하는 수도사 나부랭이가 그걸 아냔 말이야. 투자금 회수할 수 있게 된다는데 교회가 면죄부를 팔든 면사포를 팔든 내가 알 바냐고 지금.

 

어쩌면 역사의 계보에 신의 시대, 인간의 시대, 과학의 시대 같은 건 사실 찾아온 적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돈이 인간과 인간의 사이를 매개하기 시작한 시점부터 지어진 모든 시대가 돈의 시대였던 걸까. “The Richest Man Who Ever Lived”라는 원제를 버리고 자본가의 탄생이라는 제목을 선택한 한국어판의 과감성은, 야코프 푸거를 어느 한 시대의 숨은 주역으로 보기보다 모든 시대를 관통하는 자본가라는 이미지의 원형으로 보려는 의도에서 나온 게 아닐까 한다. 15-16세기를 살던 어느 아우크스부르크의 돈 많은 남자 이야기를 오늘날에도 읽어 볼만한 이유 역시 거기에 있다.

 

중세 유럽의 왕위 계승 방식, 용맹공, 미남왕, 대머리왕, 광녀(…….) 등등의 별명으로 겨우 구분 가능한 루이, 샤를(카를), 필리프 몇 세 몇 세, 뭐 그런 인간들 때문에 복잡하게 꼬인 영국, 프랑스, 스페인, 신성로마제국 지도층의 막장드라마 급 가정사에 대한 사전 지식이 있다면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습니다. 알려진 역사의 이면 같은 걸 다룬 책이니까요. , 대항해시대나 종교 개혁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뭐든 알면 좋죠. 그렇다고 필수는 아닙니다. 몰라도 잘 읽힙니다. 기본적으로 이야기책이거든요.

 


 

모스에서 잡스까지 

동흔 지음 / 뜨인돌 / 2018

 

전화기를 발명한 벨은 사실 전화로 메시지보다는 노래를 전달하고 싶었다고 한다. 가수가 송화기에 대고 노래를 부르면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곳의 관객이 수화기에 귀를 대고 그 노래를 듣는 것, 그것이 벨이 생각한 자기 발명품의 참된 쓰임새였다. 반면 에디슨은 자신이 발명한 축음기를 음악 듣는데 쓸 생각이 전혀 없었다. 에디슨은 축음기를 음성 편지를 보내는 물건으로 계획했다. 그러니까 LP판 같은데 하고 싶은 말을 담아서 택배로 보내면 받는 이가 그걸 턴테이블에 올리고……. 오늘날 전화기와 축음기의 후예들이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를 생각해보면, 벨이나 에디슨이나 참 재미있는 양반들이 아닐 수 없다.

 

철학책을 읽다 보면, 특히 전공자가 자기가 전공한 철학자의 사상을 개설하는 책 속에서 자주 만나는 주장이 있다. 이 철학자가 등장함으로써 역사는 그 물길을 틀었다, 이 철학자 이후는 결코 그 이전과 같을 수가 없다, 이 철학자가 없었더라면 오늘날의 우리 삶의 모습은 지금과는 많이 달랐을 것이다 운운.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썩 납득이 쉬운 것도 아니다. 물론 곰이 쑥과 마늘을 먹으며 100일을 버티지 않았으면 단군할아버지가 없었겠고, 그럼 갤럭시s10도 없었겠지. 그렇다고 갤럭시를 쑥과 마늘로 만든 건 아니잖아, 뭐 이런 심정이 되곤 했으니. 하지만 과학이나 기술의 역사를 다룬 책들 속에서, 과학이나 기술은 자기네들이 세상을 어떻게 바꾸었는지를 정말 압도적인 설득력으로 설명한다. 보통의 독자 입장에서는 어차피 철학이나 과학이나 남의 나라 말 같긴 매한가지고, 그렇다면 피부에 와 닿는 결과물을 들이미는 쪽이 더 재미난 것이다.

 

모쓰에서 잡쓰까지, 쩌는 라임의 제목을 단 이 책은 전신에서 시작해 스마트폰까지 이어지는 20-21세기 통신혁명의 역사를 개괄한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통신이라는 말이 너무 좁은 것 같아서 백스페이스를 자꾸 기웃거릴 정도로, 통신혁명은 곧 생활과 인간의 혁명이다. 그 혁명의 기본토대는 어쩔 수 없이 딱딱하고 건조한 과학기술이겠지만, 표면이 우리의 생활과 직접 맞닿아 있기 때문에 그리 먼 이야기로만 느껴지진 않았다. , 이런 장르의 책을 읽겠다고 손을 내밀면 이상하게 N극과 N극처럼 자꾸 미끄러지는 분들께 희소식, 저자 신동흔 선생님은 문과입니다…….

 

파동과 전자기파에 관한 첫 페이지 급 기초지식이 있으면 수월합니다.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대항해시대의 탄생

송동훈 지음 / 시공사 / 2019

 

삼국지를 이미 읽은 syo에게 진짜 삼국지를 가르쳐준 것은 게임 삼국지였다. 일목요연하게도 가르쳤다. 마찬가지로 대항해시대가 어떤 시대인지를 제대로 가르쳐준 것은 책이 아니라 게임 대항해시대였다. 방향타를 돌리는 대신 키보드와 마우스를 돌린 것인 만큼 소소하고 쬐끄만 짝퉁스케일이었지만, 어쨌든 제 발로 희망봉을 돌아보고 신대륙을 발견하는 희열을 느꼈다. 동남아에서 후추를 잔뜩 실어와 유럽의 항구에 내다팔며, 옛다 고기에 후추 처먹어라 미개한 르네상스 유럽 것들아, syo 없으면 대체 어쩌려고 그러니 늬들은, 하며 내면으로 위세 부릴 수도 있었다. 모니터 속 2D syo는 거친 파도를 헤치며 지도의 빈 공간을 채워나가는 위대한 항해사였다. 각 대륙 주요 항구의 경도와 위도를 반자동으로 외우고, 지역 특산품의 시세를 간파하여 무역로를 짜고, 삼각돛과 사각돛의 차이를 몸으로 이해했다. 이건, 책은 줄 수 없는 배움이다.

 

그렇지만 책에서만 배울 수 있는 것들도 있다. 어쨌든 게임은 게임이고, 예전에 나온 게임일수록 고증이 약한 법. 무엇보다 syo라는 놈이 종횡무진 세계를 휘젓고 다니는 그런 세상은 실제로 없었잖아. 그래서 이 책을 통해서 뭔가 많이 배웠는가? 하면 아쉽게도 그렇지 못하다고 말해야겠다.

 

주제가 대항해시대에 한정되어 있으므로, 미시사라고까지 할 것은 아니더라도 일반적인 거시 세계사에 비해 더 세세한 내용과 정밀한 관점을 기대하게 된다. 그런 특별한 것은 없었다. 저 시기 유럽사를 다루는 두꺼운 책들에 비해 많은 내용을 담고 있는 것 같지도 않다. 그러니까 왜 이 책이어야 하는지를 이 책 스스로가 설득해내지 못하고 있다.

 

머리말에서 이 책은 스스로의 필요성을 이렇게 설정하고 있다.

 

대항해시대는 왜 중요할까대항해시대를 왜 알아야 할까그 시대가 낳은 결과가 너무나 심대했고아직까지 진행형이기 때문이다이때 역사의 주도권을 차지한 서구 국가들과 그 후예 국가들이 여전히 선진국으로 인류의 문명을 이끌고 있다그들의 도전과 욕망에 희생된 문명들은 대부분 중후진국에 머물고 있다더 중요한 사실은 지금2의 대항해시대가 시작됐다는 것이다대상은 우주다바다와는 비교가 무의미한 광활한 공간이다인류의 미래다.

 

뒤이어, 미국과 중국, 일본, 인도의 우주개발 진도와, 유명 기업가들의 우주관련 사업 전개를 설명하며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 이 나라 현실이 안타깝다며 개탄한다. 현실이야 현실의 몫이고, 이 책의 구실, 대항해시대를 알아야 하는 이유에 우주를 갖다 댄 것은 허망할 정도로 옹색하다. 작가 선생님도 그걸 아는지 우주는 바다와 비교가 무의미하다는 말을 스스로 하고 있긴 하다……. 다 인정하고, 대항해시대의 역사가 우주를 개발해나가는 과정에 지침이 된다고 치자. 그럼에도 이 책은 문제가 있다. 예를 들어,

 

이 책이 콜럼버스의 업적을 설명하는 부분은 그야말로 찬사 일색이다. 선견지명, 추진력, 리더십……. 말년에 망한 것은 총독으로서의 역량 부족으로 치부하고 이내 콜럼버스와 이사벨 여왕과의 만남이 인간의 역사가 지속되는 동안 영원히 회자될 것이라 말하며 꼭지를 닫는다. 그런데 다른 책을 통해 콜럼버스의 개인사를 들여다보면 정말 본받을 데 하나가 없다. 대서양 항로를 예측하기 위해 끊임없이 책을 뒤져보기는 했는데, 일단 된다는 결론을 정해놓고 그걸 옹호하는 데 유리한 자료들만 연구하고 주석을 달았다. 반대의 경우는 스킵. 전형적으로 제 생각에 갇혀 남의 말 듣지 않는 스타일이다. 아니나 다를까 계산이 완전 틀려서, 죽기 직전에 운 좋게 아메리카를 발견해서 겨우 목숨 부지할 수 있었다. 원래 아시아 가려고 출발했던 거니까 우연히(?) 거기에 아메리카가 없었으면 우리 역사는 쪼다의 긴 목록에 또 한 명을 더 추가할 뻔. 갔다 오고 나서는 대놓고 욕망에 불을 켠다. 자기 자리는 물론 지인의 인사까지 청탁. 근데 에스파냐는 얘가 욕심만 많고 깜냥 안 되는 걸 벌써 캐치하고 팽. 그렇게 그의 말년은 허망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주목해야 할 부분은, 그가 원주민과 조우하는 대목이다. 그는 원주민이 자신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것을 보고 그들은 언어가 없다고 단정한다. 그들의 행색이나 천진함을 보고 그들은 유럽으로 데려가 일을 시키기에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결론. 새로 발견한 이 땅의 이 인간인지 뭔지 알 수 없는 동물들은 노예. 그리고 그 놀라운 추진력으로 자신의 생각을 현실화시킨다.

 

우리는 대항해시대의 신민이 아니고 우리가 열어나가야 할 우주도 15세기의 우주가 아니다. 우리가 그 미지의 공간에서 무엇을 발견하든, 그것에 대해 우리가 지녀야 할 태도는 15세기적이어서는 안 된다. 이건 상식이다. 과학과 기술의 발전 속도가 무진장에 이른 지금 우리가 콜럼버스의 행적에서 배워야 할 게 있다면 추진력이랄지 모험심이랄지 하는 것 따위가 아니다. 필요한 것은 콜럼버스가 하지 않은 것들, 콜럼버스가 해서는 안 되었던 것들에 대한 공부다.

 

그런데 이 책은, 이런 것들을 전혀 언급하고 있지 않다. 우주시대를 말하면서, 19~20세기의 제국주의적 시각을 차용하고 있다.

 

그렇다면 더 말하지 않겠다.

 

 


로버트 파우저의 도시 탐구기

로버트 파우저 지음 / 혜화1117 / 2019

 

도시란 무엇인가? 시골의 반대말. 그러면 시골은 뭔데? ……도시의 반대말.

 

, 저러면 이제 망하는 것이다.

 

그런데 가만히 있으면 참 망하기 쉽다. 내가 사는 공간은 마치 공기 같아서, 매일 보는 거리, 매일 걷는 산책로, 매일 사는 물건들, 매일 만나는 사람들이 가득한 이 도시를, 이 도시의 매일 매일을 나는 잘 모르기 십상이다. 오래 살았다고 저절로 알게 되는 것도 아니다. 도시는 다채롭고 중층적인 자신의 단면을 아무에게나 드러내지 않는다. 좋은 눈, 지치지 않는 다리, 그리고 약간의 사랑이 필요하다. 로버트 파우저 선생님이 가진 그것들이.

 

눈과 다리, 사랑 말고 도시를 알아채기 위해 그가 더 가진 것은 무엇인가. 없다. 이 책이 뜻깊은 이유다. 저자 로버트 파우저는 도시 전문가가 아니다. 그저 도시에서 생활을 이어나가는 사람일 뿐. 이 책 역시 도시정책이나 기술적, 경제적 문제를 다루는 마음 아프고 골치 아픈 책이 아니다. 그저 에세이일 뿐이다(이 책에 나오는 모든 도시가 젠트리피케이션을 앓고 있다는 문제를 제기하긴 한다). 그렇다면 저마다 도시생활자인 우리도 꿇릴 게 없다! , 눈을 크게 뜨고 두리번두리번, 밖으로 나가보자구요. 그리고 돌아와 알라딘 서재에다 쓰자구요. 내가 사는 이 도시는 말입니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도합 25년을 넘게 살아도 나는 아직 대구를 잘 모른다. 게다가 오래 살았기 때문에 오히려 모를 수밖에 없는 것들도 있다. 그럴 때도 역시 이 책이 필요하다. syo는 대구가 이렇게 가능성으로 충만한 곳인지 처음 알았다. 읽고도 믿기지 않는다. 그냥 그런가봉가 하는 중이다…….

 

 


새로운 세상을 공부하는 시간

손승현 지음 / 더난출판사 / 2019

 

들어본 만큼 알게 되어 있다면 온 국민이 그에 관한 세세한 것 하나하나까지 줄줄 꿰고 있어야 마땅한 것이 4차 산업혁명이다. 그런데, 그게 뭔지 아시는 분?

 

그런 분이 있을 리가 없다. 왜냐하면, 사실 그게 몇 차인지조차 합의가 되어 있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세계적으로 명망 떠르르한 사람들은 아직도 싸운다. 그 싸움 속에서 뭔가 생긴다면 그것은 그들의 점점 높아지는 명망뿐, 구름 아래 사는 우리들은 여전히 4차 산업혁명 그게 뭔지는 잘 모르겠는데, 이 뭔지도 모를 것들이 떼로 밀려와 내 일자리를 쓸어갈 것만 같아서 불안하기만 하다. 언론 놈들도 뭔가 제대로 알려주지 않는다. 어느 기사를 보면 법조인이 제일 빨리 없어질 직업 탑 5안에 들었는데, 다른 기사에는 죽어도 안 없어질 5대 직업 안에 그게 들어 있다. 뭐지, 이 혼란의 구렁텅이는? 도대체 세상이 어떻게 되려고 이렇게 되지? 젠장, 뭐라도 해야 할 것 같긴 한데 난 당최 뭘 해야 하지?

 

일단 긴장을 풀라고 이 책은 말한다. 4차 산업혁명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빅 데이터는 굉장히 4차 산업혁명적이다. 그래서 저자는 4차 산업혁명의 실체를 4차 산업혁명적으로 알아보기 위해 구글 트렌드 빅 데이터를 이용한다. 그 결과, 한국인들이 ‘4차 산업혁명92번 검색하는 동안 영국인들은 8, 캐나다인들은 6, 미국인들은 고작 5번 검색했다는 사실을 알아낸다. 뭐야, 얘 우리나라에서만 핫해? 실체 없어?

 

그렇지도 않다. 저자는 이번에 아마존과 교보문고를 검색해 관련 도서가 얼마나 출간되었는지를 살펴본다. 우선 4차 산업혁명(아마존에선 The 4th industrial Revolution)을 때려 넣으니 교보에서 657권의 책이, 아마존에서는 꼴랑 22권의 책이 검색되었다. 사정이 이렇다면 점점 얘가 한국에서만 뜨겁다는 혐의가 짙어진다. 그러나 4차 산업혁명의 핵심 기술로 꼽히는 기술들을 검색창에 때려 넣은 결과는 완전히 다르다. 빅데이터(Big Data)를 검색하자 아마존에서는 3000, 교보에서는 673권이 찾아진다. 인공지능의 경우 아마존에서 2만 권이 잡히는 동안 교보에서는 645권의 책만 찾아볼 수 있다. 로봇은 3000 486, 사물인터넷은 610 321, 3D 프린팅은 557 120이라는 검색결과를 보인다. 즉 우리나라는 이놈의 4차 산업혁명이라는 말 자체가 붐을 일으키자 벌떼같이 책을 내놓은 반면, 그 기반기술에 대한 정보축적량은 현저할 정도로 적다는 이야기다. 이쯤 되면 이 주제는 자기계발서, 힐링 도서를 뒤이은 출판시장의 새로운 먹거리라고 할 수 있겠다.

 

이렇게 4차 산업혁명 시대라는 말의 거품을 걷어낸 다음,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지, 이 책이 드디어 말하기 시작한다. 그게 뭐냐면 바로…….

 

- 끝 -

 

끝이래놓고 덧붙이는 잔잔한 오류. 166쪽에서 18세기 말 19세기 중반의 산업혁명 시대의 인클로저를 이야기하며, 토머스 모어가 양은 온순한 동물이지만 영국에서는 사람을 잡아먹는다는 말로 당시의 상황을 개탄했다고 언급합니다. 그렇지만 토머스 모어는 16세기 사람입니다. 인클로저는 역사를 통틀어 한두 번 띡 벌어지고 끝난 일은 아니었지만, 크게는 두 번으로 보는 듯합니다. 그 중 첫 번째가 토머스 모어가 저 말을 하던 시대였고, 두 번째가 산업혁명 시절이지요. ‘당시의 상황은 마르크스가 지탄할 수는 있어도 토머스 모어가 개탄할 수는 없었겠네요.

 

 


길 위의 독서

전성원 지음 / 뜨란 / 2018

 

진부한 것들은 멸종이 답이라고 외치는 사람들이 어딘가에 반드시 있을 것 같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식상함은 한없이 죄악에 가까워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을 하나의 길로 비유하는 오래된 클리셰가 여전히 생명력을 뽐내는 것은, 길과 인생 사이에 진부함이 도저히 오염시킬 수 없는 거대한 유사성이 있기 때문일까?

 

그렇지만 정말로 이라는 표현을 붙이기가 적합하지 않은 정박의 인생만 살아온 사람도 있다. syo가 그렇다. 인생길이라는 말은 습관적으로 쓰지만, 사실 내가 있는 곳은 늘 거기서 거기였다. 세상이 흔들 때 인생을 걸고 충분히 흔들려봤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세상이 부를 때 응답하면 좋았겠지만 역시 그러지 못했다. 결국 길 위에서 무엇을 만나왔고 무엇이 되어 왔는지를 상상해보면, , 이 빈곤함. 차라리 나는 길을 걸어온 것이 아니라고, 한자리에 가만히 있었다고 생각하는 게 더 낫지 않은가 싶다. 그 빈곤함 속에서도 적지 않은 책들을 읽어왔지만, 나는 내가 길 위의 독서를 했다고 우길 자신이 없다.

 

그래서 내가 부러운 것은 저자의 독서보다 그가 걸은 길이다. 나도 읽었고 그도 읽었다. 하지만 그것이 길 위의 독서임을 당당히 주장할 수 있는 자격은 독서가 아니라 삶에 달렸기 때문에, 우리는 같은 책을 읽어도 같은 독서를 한 것이 아니다. 여기에 이 책의 가치가 있다. 설령 그가 읽고 설명하는 책이 이미 내게 익숙한 책이더라도, 내 길 위의 책이 아니기 때문에 그것은 내가 읽은 책과 다른 책이다. 독서 뿐 아니라 쓰기에서도 그렇다. 생의 밀도가 옅은 사람이 읽다가 불편함을 느낄 정도로 묵직한 글들이 이 책 안에 있다. 그 무게는 표현이 아니라 저자가 걸어온 길이 증명한다.

 

문장의 질량이 발원하는 곳과 독서의 깊이가 발원하는 곳이 같다. 이것은 우리에게 커다란 해답을 준다. 살아내라. 삶에 집중하라. 그러나 이것은 알아도 답안지에 옮겨 쓰기가 쉽지 않은 답이다.

 



가끔은 주목받는 이고 싶다

오규원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4

 

나는 내가 조망하고 싶은 것들을 다 풀어헤친다. 그게 그대로 시다.

나는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참지 않는다. 그게 그대로 시다.

나는 내 말을 내 뜻대로 조탁한다. 그 말과 뜻이 그대로 시다.

나는 시가 뻗어나갈 수 있는 모든 방향으로 형식적 외연을 확장해나가는 실험을 한다. 그러면 그대로 시다.


나는 오규원이다. 시다.

 

 


왜 우리는 불평등을 감수하는가?

지그문트 바우만 지음 / 안규남 옮김 / 동녘 / 2019

 

구조는 무섭다. 아무것도 안한다고 그냥 내버려두는 중립적인 존재가 아니라서 더욱 그렇다. 구조 아래에서는 숨만 쉬어도 구조에 복무하는 일이 벌어질 수가 있다. 우리의 들숨이 누군가에겐 이데올로기고 우리의 날숨이 또 누군가에겐 억압일 수 있다. 그럴 수 있다. 일단 그걸 알아야 한다. 지구는 돈다. 태양 주위를. 엄청난 스피드로. 초속 30km. 전력을 다해 달려도 시속 15km가 나오는 인간의 7200배 스피드. 그러나 우리는 모른다. 구조가 그렇다. 러닝머신처럼, 구조의 반대 방향으로 계속 달리지 않는다면 구조가 우리를 어디론가 데려간다. 그 끝에서 아마도 넘어지겠지.

 

제목에 달린 감수라는 말은 부족하다. 우리는 불평등을 감수할 뿐더러, ‘용인한다. 알게 모르게 그렇게 한다. 이 책은 그 알게 모르게 가운데 모르게알게로 바꾸는 일을 한다. 알면서 감수하거나 용인하는 것은 윤리의 문제다. 진선미 가운데 책의 가장 아픈 손가락이 바로 이다. 책은 윤리에 대해선 수적으로 많을 하지 못한다. 적은 수의 인간을 질적으로 크게 바꿀지는 몰라도. 그러나 자신의 역할이 이라면 책은 당당히 어깨를 편다. 그래서 이 책이 당당하다. 세상을 바꾸는 건 사람의 몫이고, 그 사람을 위해 책이 할일을 한다.

 

우리가 불평등을 용인하는 것은 몇 가지 전제들을 증명도 의심도 없이 당연한 것으로 깔고 가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신자유주의가 봉헌한 그 네 가지 신비로운 공리는 다음과 같다. 하나, 경제성장이 세계의 진보를 보장한다. , 소비가 인간의 행복을 보장한다. , 경쟁은 반드시 필요하며 인류의 발전을 보장한다. , 그 결과 불평등은 피할 수 없으며 피해서도 안 된다. 그리고 저자는 이 신성불가침의 도그마에 한 발 한 발 총알을 박아 넣는다.

 

모든 가치관은 중립적이지 않다. 저자는 저 네 가지 전제가 필수적이지도 않고 옳지도 않다고 말하지만, 사람에 따라서는 저 중 한두 가지, 많게는 저 모두를 거리낌 없이 받아들일 수도 있다. 가치관은 살아온 궤적이 만들어내는 결과물인 동시에 궤적 그 자체이기 때문에, 특별한 사건 없이 한 권의 책을 읽었다는 사실만으로 가치관이 급선회하는 것은 굉장히 드문 일이다. 그래서 이 책은 이미 저자의 주장에 공감하고 있던 사람들을 더 단단하게 만드는 것 이상의 영역에서는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가치관이(그게 무엇이건 간에) 아무도 괴롭히지 않을 거라는 믿음은 달콤한 착각일 뿐이라는 사실만이라도 눈치 챌 수 있다면, 이 얇은 책은 충분히 제 할 몫을 다한 것 같다. 다음 스텝을 기다리는 책은 많고, 현실은 더욱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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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행열반인 2019-07-22 07: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한 권도 못 읽고 있는 동안 8권이나 읽고 이렇게 논리정연하고 비평다운 비평을 쓰시다니. 게다가 한 권만 시집이고 대부분 비문학 신간 골고루 분야 지식 서적...이 더운날 독서력 무엇...
개돌이 중돌이 syo말고 한 명 더 있는 것 같습니다. 오늘은 똑돌이(똑똑똑똑똑똑한 syo돌이) 출동한 덕에 통찰력 샘솟는 글로 한 주를 시작하네요.
길 위의 독서는 아니라 하셔도 syo님이 열심히 읽고 글로 나누는 독서의 길은 갈래도 무궁무진하고 같이 걷는 사람들도 편히 걷도록 잘 다지고 계신 것 같습니다. 저도 그 길 좇아 게으름 그만 피우고 독서에 정진하겠습니다.ㅎㅎ

syo 2019-07-22 16:23   좋아요 1 | URL
무슨 댓글을 syo에 대한 리뷰처럼 쓰셨어요. 그것도 주례사리뷰.....

시간 있는 사람은 읽고 바쁜 사람은 바쁘고 뭐 그런 것이지요. 인생이란.... 이번 주에는 제가 바빠 볼 테니 열반인님께서 팍팍 읽고 퍽퍽 써주세요^-^

반유행열반인 2019-07-22 16:52   좋아요 1 | URL
무플방지위원회 입금 들어왔나보죠... 바람 잡는데 너무 알바 티났나보다..아무도 후속 댓글을 안 달아...다음에는 분량 조절해 보겠습니다. (여기까지 보니 입금 안 들어와서 원수 갚는 듯...)

독서괭 2019-07-24 1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권수는 줄었지만(?) 길고 세세해진 감상평!! 좋아요 좋아~^^

syo 2019-07-24 21:43   좋아요 0 | URL
그렇습니다. 이것이 새로 추구하는 방향성인 것입니다.....
 


조율

 


잘 모르는 어떤 아이가 피아노 치는 영상을 반복해서 보았다. 어찌나 잘 치는지, 겨우 숨 한번 크게 들이쉬었다 내쉬면 끝날 만한 그 짧은 시간 동안에 펼쳐 놓은 악보 속 모든 음표를 예쁜 소리로 바꾸어놓고 얼른 한 쪽을 넘긴다. 소리를 만드는 것은 작은 손이지만, 그 손을 만든 것은 시간일 것이다. 처음에는 건반 위를 뒤뚱뒤뚱 옮겨 다녔을 그 손이 빛나는 날개가 되어 음률 위를 날아다닐 때까지, 아이가 피아노에 주었던 것은 아마도 시간.

 

그런 것들이 있어서 세상은 아름답다. 내가 내준 시간만큼, 딱 그만큼만 내게 내어주는 것들. 속일 수 없고 속이지도 않는 것들.

 

50초 남짓 되는 영상을 500초 동안 보면서, 매일 글 쓰는 일에 대해 생각한다. 누구에게도 결코 쉽지 않을 그 고단한 작업에 대해서. 둘러보면 세상을 아름답게 밝히는 문장들이 저마다 꼿꼿하다. 그렇다면 미루어 짐작건대, 악기를 연주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문장을 연주하는 일 또한 에누리도 덤도 없는 교환이겠다. 한결 나은 연주자가 되는 방법은 어쩌면 간단할지도 모른다. 나보다 더 아름다운 연주를 하는 이들을 시샘하기보다는, 오늘의 나보다 더 많은 시간을 문장에 내어줬을 내일의 나를 부러워하는 것. 내일의 나는 내일에서야 오기 때문에 오늘의 나는 끝내 충분하지 않음을 인정하고, 자꾸 쓰는 것.

 

시간의 공정함을 믿고, 거대한 항아리에 문장을 계속 붓자. 눈을 감고 붓자. 안은 들여다보지 말자.

 

넘치면 젖겠지.

 

 

 

십여 년 전나는 두어 권의 책을 펴낸 삼십대 초반의 젊은 소설가였다그즈음나 역시 내 재능이 모두 타버리고 난 뒤의 그을음을 보고 있었다하지만 서가를 다 뒤져도 그 그을음에 대해 말해주는 책은 없었다그러다가 우연히 노란색 표지의 파리 리뷰 인터뷰라는 책을 발견하게 됐다거기에는 내가 열광했던 소설가들의 인터뷰가 실려 있었다그리고 그들은 육성으로 자기 직업에 대해그리고 스스로 터득한 기술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그들에게서 나는 허세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그들은 마치 매일 아침 작업장으로 나가는 시계 기술자들 같았다늘 실패한다는 사실을 운명처럼 받아들여야만 한다는 점만 다를 뿐그제야 나는 내가 되고자 하는 소설가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됐다단 한 번의 불꽃뒤이은 그을음과 어둠그리고 평생에 걸친 글쓰기라는 헌신만이 나를 소설가로 만든다는 것을그게 바로 소설가의 운명이라는 것을.

김연수시절 일기, 53-54


  연필은 내 밥벌이의 도구다글자는 나의 실핏줄이다연필을 쥐고 글을 쓸 때 나는 내 연필이 구석기 사내의 주먹도끼대장장이의 망치뱃사공의 노를 닮기를 바란다.

  지우개 가루가 책상 위에 눈처럼 쌓이면 내 하루는 다 지나갔다밤에는 글을 쓰지 말자밤에는 밤을 맞자.

김훈연필로 쓰기, 11


글을 써도 고통스럽고 글을 안 써도 고통스럽다그러면 쓰는 게 낫다뭐라도 하다 보면 시간이 가니까슬프지만 일을 하고슬픈데도 밥을 먹고슬프니까 글을 쓴다그렇게 하루를 보냈으면 내일도 살 수 있다서툴더라도 자기 말로 고통을 써 본다면 일상을 중단시키는 고통이 다스릴 만한 고통이 될 수는 있다그러므로 우리 뭐든 써보자고 하며 저마다 무언가를 쓰기 시작한다.

은유다가오는 말들, 6 

 

 

--- 읽는 ---

= 시절일기 / 김연수 : ~ 152

= 너무 시끄러운 고독 / 보후밀 흐라발 : ~ 49

= 주경철의 유럽인 이야기 1 / 주경철 : 92 ~ 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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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vis 2019-07-20 2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이 너무 아름답네요. 저도 늘 그렇듯이 피아노 세 시간, 오르간 두 시간 쳤습니다. 머릿 속에 있던 것을 이토록 정갈하게 표현하시다니요! 속이 다 후련하네요. 왜 밤에는 아무리 마음을 먹어도 칠 수가 없는지 괴로웠는데, 이제는 못치는게 아니라 안치고, 밤을 맞이하겠습니다.

syo 2019-07-20 23:07   좋아요 0 | URL
다섯 시간을 악기와 같이 보낸 클래비스님이 훨씬 더 아름다운 일을 하셨네요.
저는 이렇게 말해놓고는 고작 몇 분 쓰고 두어 시간 읽고 말았어요.

편안한 밤 보내시고, 해가 뜨면 다시 아름다운 시간을 보내세요^-^

카알벨루치 2019-07-20 2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넘치면 젖는다 overflow....좋아요👍👍👍

syo 2019-07-20 23:59   좋아요 1 | URL
카알님 요즘 뜸하셔.
치열한 일상을 살고 계신가요.
자주 글 써주세요 ㅎ

감은빛 2019-07-21 08: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악기도 글도 그리고 운동도 투자하뉴시간만큼 무조건 잘하게 되는 것은 아니더라구요. 바로 재능이라는 놈과 능률이라는 놈 때문인데요. 재능이 없는 사람이 능률이 떨어지는 상태에서 아무리 노력해도 투자대비 결과를 바라기는 쉽지 않습니다.

오래전 글 쓴다고 골방에 처박혀서 지낸 적이 있었죠. 많은 시간을 투자해 내 기준으로 그럭저럭 읽을만한 글이 나왔는데, 같은 시기에 문창과에 재학중인 어린 분의 글을 읽고 좌절하게 되었어요. 세상은 시간에 있어 공평하지 않구나! 제가 골방을 나온 이유입니다.

syo 2019-07-21 20:29   좋아요 1 | URL
정말 그렇습니다. 세상은 하나도 공평하지 않더라구요.
결국 천재의 한 시간이 범재의 열 시간, 백 시간이더라구요.
그래서 그냥 세상에 눈 감고, 오늘의 나보다 내일의 나는 조금은 더 잘 쓰겠지- 하는 것만 보려구요.
뭐 내가 어차피 글밥 먹는 꿈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자아에 취해서 흥청망청 살아야겠다- 이런 마음도 좀 있고 그렇습니다 ㅎㅎㅎ

독서괭 2019-07-21 1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간의 공정함을 믿고~ 넘치면 젖겠지. 밑줄 쫙입니다!

syo 2019-07-21 20:30   좋아요 0 | URL
글은 이렇게 써놓고 바로 배깔고 드러누워서 네이버 뉴스 뒤짐.....
나라는 인간은....ㅋㅋㅋㅋ
 

 

안될 놈 블루스

 

 

1

 

그저께 밤에는 누웠는데 갑자기 못해도 나방 급은 되는 커다란 벌레가 오른쪽 귓바퀴를 스치는 기분이 들었다! 개섬찟. 급하게 오른손을 들어 셀프 귀싸대기를 날렸는데 그걸 또 맞았는지 이번에는 뭔가 뒷목을 스윽- 긁고 등줄기를 따라 내려가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 뭐지 이 끔찍한 밤은?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는데? 내면은 이렇게 외치고 외면은 으우와와아우와아오아오오오우! 이렇게 외치면서 재빨리 입고 있던 티셔츠를 벗어서 집어던졌다. 그리고 온몸을 탈탈 털었다. 달도 없는 밤의 침대 위 춤추는 오랑우탄 한 마리.

 

그런데 아무리 침대며 벗어놓은 옷가지며 샅샅이 뒤져봐도, 벌레가 발견되지 않았다투명 나방공포는 점점 극단으로 치닫기 시작했다. 그때 다시 나방의 야르르한 날개가 귓볼을 스르르 간지르는 느낌이 났고, syo는 재빨리 화장대 거울 쪽을 바라봤는데…. , syo의 귀를 간질인 것은 다름 아닌 syo의 옆머리였다. 목덜미는 뒷머리가 그랬다. 내가 날린 귀싸대기에 오른쪽 귀는 이미 벌겋게 변해 있었다. , 내가 날 패다니. 이렇게는 안 돼. 맞고는 못 살아.

 

이런 이유로 머리를 훅 잘랐다. 땅에 떨어진 머리카락이 붙어 있는 머리카락보다 많은 듯. 파마syo는 바가지syo가 되었고, 붉은악마 머리띠는 반으로 똑 부러뜨려 쓰레기봉지에 집어넣었다. 물론 그럴 필요까지는 없었지만 오랑우탄은 난폭하지.

 

 

 

2

 

세상이 내게 바라는 것이 있다고 믿던 시절이 생각난다. 그런 믿음은 내가 이 세상을 위해서 뭔가 해내는 큰 사람이 되어야지 하는 마음의 자의식과잉 버전인 동시에, 나 없으면 이노무 세상 굴러가기나 할까 하는 생각보다는 미세하나마 더 제정신이다. 그리고 이따위 망상은 살면서 몇 대 얻어터지다 보면 금방 사라진다. 그러고 나면 세상이 내게 바라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믿는 단계가 찾아온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사는 일은 서글프긴 하지만 일견 자유로운 맛도 있다.

 

저 두 단계 사이를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인간은 세상의 본심에 대해 점점 더 모르게 되는 건 아닌가 싶다. 그냥 내가 원하는 삶을 살자고 자신을 채근하며 앞으로 나아가다가도 내가 원하는 게 정말 내가 원하는 게 맞는지를 자꾸만 의심한다. 장기적으로 봤을 때 내 인생이 불안하고 한치 앞도 모를 때, 하루하루의 행복에 집중하고 살자며 위로한다. 오늘 하고 싶은 것, 오늘 읽고 싶은 책들을 치워 두고 하기 싫은 일들을 잔뜩 하면서는, 장기적으로 더 행복하기 위해 오늘의 행복을 잠시 미루는 거라 또 위로한다. 답을 못 낼 거면 생각이나 하지 말지 괜히 생각만 많아서 될 일도 안 된다고 탓하고, 그러다 망하면 내 생각이 짧았다고 탓한다.

 

그러는 와중에 눈치는 늘어, 사랑 받겠다 싶으면 좁은 틈도 얼른 치고 들어가고, 미움 받겠다 싶으면 재빨리 발을 뺀다. 심한 말을 하지 않으려다보니 심한 생각만 쌓인다. 모두에게 미움 받지 않으려고 용쓰다보니 이것도 저것도 아니라서 눈에 잘 띄지도 않는 인간이 된다. 그런 인간으로 남고 싶지 않은 마음에 다시 기회를 본다. 그러는 와중에 눈치는 늘어, 사랑 받겠다 싶으면 얼른 치고 들어가고…….

 

자존감 낮은 인간을 사랑하면 삶이 피곤하다고 한다. 그래서 syo는 늘 만성피로. 이런 모자란 자신을 쓸데없이 너무 사랑해가지고…….


 

 

 

똥을 닦고 확인해보면 간혹 휴지의 엉뚱한 곳에 똥이 묻어 있을 때가 있다신경 써서 닦은 곳은 깨끗하고터무니없는 부분에 똥이 묻어 있는 것이다그럴 때마다 나는 '똥구멍이 어디에 달려 있는지도 모르고 잘도 삼십 년을 살았구나'하고 생각한다.

내가 좋은 놈일 땐 내가 가장 잘 안다내가 나쁜 놈일 때도 그걸 안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어쩌면 내가 나를 제일 모른다그래서나는 어쩌면 나쁘다이미 지은 죄가 많아 훌륭한 사람이 되기란 글렀을지 모른다하지만 제 몸에 난 뿔도 모르는 괴물이 되고 싶지는 않다적어도 알고는 싶다.

유병재블랙코미디

 

욕망은 언제나 공포와 연결되어 있다우리는 실현되지 않을까 봐 두려워하는 어떤 것을 더 많이 욕망한다그때 우리는 그 흐름 사이에서 흔들린다그것은 동전의 양면이다한 사람이 불러일으키는 사랑과 두려움 사이의 균열 때문에 그에 대해 우리가 갖는 정서는 사랑과 미움을 오고 간다어느 날 갑자기 정서는 그 반대로 변화할 수 있다갑자기 사랑이 미움으로 변화될 수 있다(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우리 감정은 그 시작부터 애매모호하다.

발타자르 토마스비참한 날엔 스피노자

 

서울역처럼사람이 많은 곳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다 보면 사람들은 모두 비슷하고 또 비슷하게 살아가는 것 같다키 작은 사람을 기다리면 키 작은 사람들이 많고모자 쓴 사람을 기다리면 모자 쓴 사람들이 많다병원에 가면 세상은 아픈 사람들로 가득 차 있는 것 같고밤의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모든 사람들이 사랑을 잃고 차를 모는 듯한 느낌이 든다결국 세상엔 사람과 사람의 일들로 가득 차 있었고 그것은 어김없이 쓸쓸한 풍경으로 다가왔다.

신용목안희연당신은 우는 것 같다

 

 

--- 읽은 ---

+ 대항해시대의 탄생 / 송동훈 : 122 ~ 363

+ 가끔은 주목받는 생이고 싶다 / 오규원 : 57 ~ 127

+ 왜 우리는 불평등을 감수하는가 / 지그문트 바우만 : 54 ~ 144

 


--- 읽는 ---

= 사진을 읽어드립니다 / 김경훈 : ~ 177

= 후설의 현상학 / 단 자하비 : ~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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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19 15:2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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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19 15:5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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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9-07-19 15: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뭐 그렇다고 자책까지. 그럴 수도 있죠.
근데 스요님 글 읽는데 갑자기 옛날 옛날에
우리 집 욕실 들어가는 문이 좀 어두웠어요.
멋모르고 거기다 옷을 벗어놨는데 그 사이로 그리마라고 하던가?
지네같이 다리 여려 개인 벌레. 그게 숨어든 줄도 모르고 집다가
뭔가 팔뚝이 스멀스멀 간지럽다 했더니 이윽고 기절초풍했었죠.
녀석이 어느 새 내 팔뚝을 기어오르고 있었다능.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녀석이 다리만 많았지 영 똑똑치가 못하더라구요.
나라면 사람 팔뚝에 기어오를 생각은 안했을 텐데.
아, 근데 벌레는 정말 싫습니다.ㅠㅠ

syo 2019-07-19 15:52   좋아요 1 | URL
웃통 벗은 오랑우탄 춤을 목격하셨다면 지금과는 다른 말씀을 하셨겠지만
안 보신 게 정말 다행입니다 ㅋㅋㅋㅋㅋ

저는 벌레를 엄청 싫어하고 그러진 않는데, 나방은 물지도 않는다고 알고 있는데도
내 몸에 붙었다고 생각하니까 등골이 서늘해지더라구요 ㅋㅋㅋ
역시 사람 맘이 마음 같지가 않아요.

2019-07-19 15:3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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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19 15:3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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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19 15:5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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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19 16:1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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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19 16:1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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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빛 2019-07-19 17: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모기 때문에 밤에 몇 번씩 제 뺨이나 목을 때리고 있어요.
이놈의 모기 라는 말을 밤새 몇 번이나 내뱉는지 모릅니다.

자신감과 자괴감 사이에서 늘 흔들리는 저에게는 마치 제 얘기인 것 같은데요.
더운 날씨에 건강 잘 챙기세요.
대구는 얼마나 덥나요?
서울은 도시를 찜통 속에 집어넣고 찌고 있는 느낌입니다.

syo 2019-07-19 18:14   좋아요 0 | URL
이놈의 모기- 로 끝내시니 정말 다행입니다.
저는 아 이 개새끼들이! 라고 소리치는데 모기한테 개의 새끼라는 말은 칭찬은 아니더라도 욕도 또 아닌 것 같은.....

감은빛님께서 정말 건강을 잘 챙기셔야 할 것 같습니다.
대구는 요즘 너무 행복합니다. 저는 살다살다 이렇게 시원한 7월의 대구는 처음입니다.
이제 좀 30도 넘어가보나 싶었는데 다시 비가 오고 있습니다.
미쳤습니다.

감은빛 2019-07-19 20:03   좋아요 1 | URL
아니, 모기한테 개의 자식이라는 말씀을 하시다니! 이거 너무나도 엄청난 왜곡이자 모욕 아닙니까! 양쪽 모두에게.

살면서 대구 날씨가 부러워보긴 처음인 것 같네요. 해가 떨어진 이시간이도 땀을 뻘뻘 흘리고 있어요.

염려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블루베리 요거트

 

 

1

 

syo는 서울말을 한다. 규정이 있다. 이렇다.

 

하나, 지금 이 공간에서 서울말 쓰는 사람의 수가 아닌 사람의 수 이상일 때 서울말을 쓴다.

, 일대일의 대화에서 눈앞에 있는 이가 syo의 대구말을 1년 이상 들어온 지인일 경우를 제외하면 서울말을 쓴다.

, 애인과 단둘이 있을 때는 서울말로 애교떤다.

, 발표, 면접장 등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공적 말하기를 해야 할 때는 서울말로 조진다.

다섯, 가게에선 서울말로 지른다.

여섯, 아가나 멍뭉이를 만나면 서울말로 발광한다.

일곱, 다정한 사람인 척하고 싶을 땐 서울말로 능청넝청.

여덟, 초면엔 서울말로 거리를 잰다.

아홉, 아무렇지 않게 거짓말 할 땐 서울말로 구라친다.

그리고 열, 아무래도 서울말을 쓰고 싶을 땐 그냥 서울말을 쓴다.


거짓말은 아니지만, 사실 다 이 자리에서 지어냈습니다. 그냥 어지간하면 서울말.

 

 

 

2

 

수학 과외로 생명 부지하던 때가 있었다. syo가 평생 벌어본 얼마 안 되는 돈의 95푼이 학부모님들 호주머니에서 나온 셈이니 생명 부지라는 소박한(?) 말은 어폐가 있겠다. 하여간 초중고딩 가리지 않고 막 가르쳐댔는데, 특히 초딩들은 대구말을 재미있어하면서도 잘 못 알아듣거나 잘 못 알아듣는 척 하면서 숙제를 하지 않았다. 그래서 서울말을 쓰기로 했다. 다음 시간부터 내가 서울말을 쓸 거야, 이런 예고도 없이 그 자리에서 바로 시작했다. 그랬구나, 그간 나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였던 것이구나, 그래서 우리 호식이(가명, 12, 서울 송파구 거주)가 숙제를 차마 할 수 없었던 것이었구나, 그 동안 얼마나 숙제가 하고 싶었을까, 내가 참 잘못하였구나, 앞으로는 우리 호식이를 위하여 꼭 서울말로 숙제를 내 줄게, 그런데 호식아 그거 아니? 어차피 아라비아 숫자는 대구말이나 서울말이나 똑같다는 것을? 서울말로 오십오 쪽은 대구말로도 오십오 쪽이란다? 요놈아?

 

그런데 사실 같지가 않다.

 

 

 

3

 

서울에서 중고등대학대학원을 줄줄이 마치고 서울 경기 지역에서 교사의 경력을 쌓다 대구로 내려온 음악교사가 있다. 어느덧 대구 생활도 도합 5년쯤. 그럼에도 그녀의 서울말은 흐트러짐이 없다. 대신 그녀는 대구말을 흐트러트린다. 어디서 자꾸 이상한 말을 배워 와서 제대로 발음하면 어떻게 되는지를 물어온다. 일요일, 수목원을 다녀오는 길에 차에서 물었다. ‘블루베리 요거트해봐. 표준발음규정 제 3항 및 7항에 의거, 당연히 서울말로 발음했다. 블루베리 요거트. 아니 그거 말고. 애들이 자꾸 나한테 블루베리 요거트 해보라 그래서 나도 그렇게 했거든? 그랬더니 애들이 어떻게 그렇게 억양 하나도 없이 발음할 수 있냐는 거야. 애들은 어떻게 하냐면, 어떻게 하더라? syo가 읊었다. 맞았어. 바로 그거야.

 

그렇겠지. 맞겠지. 몇 년짜린데 이게.

 

 

 

4


 

대구에 살아본 적은 없어서 교토 사투리를 쓰는 것처럼 대구 사투리를 직접 써볼 기회는 없었다하지만 자주 접하게 되면서 대구 사람들의 고유한 억양과 사투리를 알아들을 때는 무척 즐겁다대구 사투리를 제대로 알아들으려면 단순히 억양이나 말투 등을 이해하는 수준을 넘어서야 한다나는 대구 사람들의 직설적인 표현을 듣는 것이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다말은 솔직하고 농담은 화끈하다말 때문인지 한 번 사귄 친구들과 찐하게’ 지낸다는 느낌도 있고나를 포장하거나 표정을 애써 관리하지 않아도 된다는 편안함이 느껴지기도 한다만약에 내가 감정을 감추려 들거나 표정을 억지로 만들어내려고 하는 순간 대구 사람들은 단박에 알아채고 놀릴 것 같다대구에 내려가서 그들과 대화를 하면 나도 모르게 모든 경계로부터 해방이 되는 것 같다그러다 다시 서울로 돌아오면 속시원하게 말을 하지 못하는 것 같아 답답해지곤 한다그리고 가끔은 대구 사람들처럼 말을 하고 싶어 언젠가 대구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할 때도 있다.

로버트 파우저로버트 파우저의 도시 탐구기, 287

 

오버다. 약간 오리엔탈리즘 같은 느낌도 있고. 두 군데 말을 다 하는 syo는 안다. 그건 그냥 성격이고 입장이에요, 케바케구요. 파우저 선생님.

 

 

5

 

서울말을 한다지만 능숙한 것은 아니라, 알아채는 사람과 못 알아채는 사람이 있고 알아챘는데 못 알아챈 척 하는 사람도 있고 그렇다. 모자란 서울말과 관련된 소소한 사건도 한바닥이다.

 

 

 

--- 읽은 ---

+ 로버트 파우저의 도시 탐구기 / 로버트 파우저 : 79 ~ 342

+ 새로운 세상을 공부하는 시간 / 손승현 : ~ 259

+ 길 위의 독서 / 전성원 : 194 ~ 399

 

 

--- 읽는 ---

= 대항해시대의 탄생 / 송동훈 : ~ 122

= 왜 우리는 불평등을 감수하는가 / 지그문트 바우만 : ~ 54

=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 / 박상영 : ~ 81

= 이렇게 쉬운 통계학 / 혼마루 료 : ~ 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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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겟타 2019-07-17 2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암요 ㅋㅋㅋ 파우저선생님. 그건 그냥 케바케에요...그런게 어딨어요! ㅎㅎ)

syo 2019-07-18 00:02   좋아요 1 | URL
파우저 선생님 한참 나가셨어요 ㅋㅋㅋㅋ 좀 귀여웠다 ㅎ

공쟝쟝 2019-07-17 2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가 참 잘못하였구나...ㅋㅋㅋㅋ

syo 2019-07-18 00:03   좋아요 0 | URL
왜요, 혹시 저의 서울말이 이상한 것인가요?

공쟝쟝 2019-07-18 00:06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 서울말연기가 글에서 느껴저벌인것입니다.. 사투리 쓰는 자의 서울말 연기의 진정성...을 글로 써내다니 참으로 놀라운 것이었던 것이었습니다.

syo 2019-07-18 00:11   좋아요 1 | URL
알아주셨어....ㅜㅠ 신난다 ㅠㅠ

공쟝쟝 2019-07-18 12:36   좋아요 0 | URL
ㅋㅋㅋ 맞췃다!!

무식쟁이 2019-07-18 0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니까.. 그.. 블루베리요거트 라는게.. 음계로 표현하자면 도레미레도미도 인 거죠?..

syo 2019-07-18 10:23   좋아요 0 | URL
꼭 그렇다고는 할 수 없겠으나, 대략적으로는 또 맞는 말 같습니다.
참, 실제로 한번 들으면 끝날 일인데 설명하기가 어렵네요 ㅋㅋㅋ

AgalmA 2019-07-18 0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억양을 숨기기 쉽지 않은데ㅎㅎ 사람도 고유의 걸음걸이가 있잖아요. 중국은 그걸로 범인 색출까지 하두만요.
서울말 내내 억양이 요동치는 사람, 서울말 술술하다 어느 부분에서 삐긋 사투리 억양 나오는 사람. 참 천차만별이죠ㅎ
서울말이든 지방어든 정신만 똑바르면 WINNER~헤헤

syo 2019-07-18 10:27   좋아요 0 | URL
제가 그렇습니다! 억양이 요동치기도 하고 어느 부분에서 삐끗하기도 하고 ㅋㅋㅋㅋ
또 그게 본인한테는 잘 안들린다는 게 신기한 일입니다....

독서괭 2019-07-18 05: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루베리요거트 억양표시 ㅋㅋㅋ
모자란 서울말과 관련된 소소한 사건들 곧 풀어내 주실 거죠~?

syo 2019-07-18 10:28   좋아요 0 | URL
아마도요? ㅎㅎㅎ
이런저런 일들이 너무 많아서 잘 쪼개서 풀겠습니다 ㅎ

2019-07-18 08:3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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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18 10:3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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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18 10:5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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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18 10:5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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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18 10:5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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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18 11:0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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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18 11:1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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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18 11:1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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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18 11:1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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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19-07-18 09: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블루베리 요거트!!
나도 모르게 읊조렸는데,대구 억양 바로 맞춰버렸어요ㅋㅋ
경상어가 다 비슷하다고 해도 저는 25년 전 처음 대구 가서 대구어를 들었을때 무척 생소하고 낯설어 어리둥절 했었거든요(순대를 시켰는데 막장을 안주시고,소금을 던져 주시는데 이건 뭐에 쓰는???하면서 어리둥절 했던 그 어리둥절함이던 듯합니다^^)
앞부분 억양을 강조하는 듯한 느낌이랄까?? 근데 자꾸 듣다 보니 약간 리듬감이 느껴져 재밌고 정겹더군요.이젠 부산 사투리가 좀 쎄게 들리는 것 같더군요.
여튼 호식이의 잔꾀가 귀엽군요ㅋㅋ
그리고 그 호식이를 후려친 서울말ㅋㅋㅋ

syo 2019-07-18 10:32   좋아요 1 | URL
‘경상도 사투리‘라는 범주는 경상도 사람들만이 아는 지역간 차이를 잘 드러내지 못하지요.
저건 부산 사투리야, 저건 대구 사투리야, 저건 창원쯤 되겠는데? 이렇게 구분할 수 있는 건 경상도 사람들만의 특권 ㅋㅋㅋㅋㅋㅋ

그나저나 호식이는 굉장히 호기심이 많은 아이였습니다.

선생님, 연필이 사투리로 뭐예요? 연필.
선생님, 컵은 사투리로 뭐예요? 컵.
선생님, 호식이는 사투리로 뭐예요? 호식이.

이런 허망한 질문들이 무수히 이어졌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저게 다 진도를 지연시키려는 호식이의 기막힌 수작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stella.K 2019-07-18 15: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경상도 사람들 분명 억양있는데 바득바득 우기잖아요.
서울말 한다고. 웃기기도하고 귀엽기도 하고.
근데 말에 의하면 서울말도 표준말은 아니라잖아요.
나랏말싸미가 표준어려니 합니다.ㅋㅋ

거 언제고 음성파일로 페이퍼 작성하면 안 될까요?
스요님 노력은 알겠는데 블루베리 요거트가 어케됐다는 건지
서울말 쓰는 저는 감이 잘 안 오네요.ㅠ

syo 2019-07-18 17:36   좋아요 0 | URL
저는 안 우기는 스타일입니다.
눈치 채셨군요. 죽어주셔야겠습니다. 빵- 하는 스타일이지요.

세상에 공짜 블루베리요거트는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