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쓴 글이 나라는 사실을 추호도 믿어 의심치 않았던 시절과, 그 시절을 거치며 거칠게 쏟아 내놓은 많은 말들 중 몇몇이 아직도 기억난다. 우연히 마르크스와 라캉을 만나고, 뒤적거리고, 열었다 닫았다 하는 과정을 거치고 나서는, 사회와 언어에 포획된 인간으로서, 내가 살아가는 일이 그저 내 안에다 나를 풀어 놓고 먹여 키우는 과정으로 치환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예컨대, 나의 글을 읽기 위해서는 활자가 된 내 생각덩어리도 있어야겠지만, 언어라는 규약과 규범이 없으면 활자는 그냥 얼룩일 뿐이다. 그렇다면 나의 생각이 저장되는 곳은 내 머릿속이나 내가 써 놓은 글이 아니라 언어라는 큰 망 그 자체는 아닐까? 내가 쓴 글은 언어를 따를 뿐 아니라 언어에 파문을 일으키면서 내 글과 다른 이들의 글과 규약과 규범이 모두 그 위에서 춤을 추는 거대한 언어망 전체를 변화시킬 수 있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마음가짐으로 글을 써야 할까.


어쩌면 인간도 마찬가지일 것 같다. 나는 내 안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내 밖에 있는 내가 내 안의 나와 다르다면 그것은 바깥이 나를 오해한 것으로 치부하고 고집스레 내 안의 나를 주장하고 말 일은 아니다. 바깥은 내가 가진 한 가지 양태를 되비추는 거울이며, 내 안에다 내가 세워 놓은 나 또한 그저 나의 한 가지 양태일 뿐임은 마찬가지다. 바깥이 절대로 알 수 없는 내가 있지만, 내가 나라서 나만은 절대로 알 수 없는 나도 있다. 얼룩덜룩한 덩어리로 뭉쳐진 이 모든 나는, 내 안이 아니라 인간의 망 안에 있다. 내가 누구와도 섞이지 않고 살겠다고, 어떤 말도 글도 밖으로 꺼내놓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산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다면 내 존재는 모든 방식으로 인간의 망에 요동을 일으키고, 인간이라는 개념 전체의 위치를 약간이나마 이동시킬 수 있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아야 할까.



171112-171129 32권



1. 우리 사우나는 JTBC 안 봐요

: 희한하게, 한 권의 책 안에서도 뒤로 갈수록 말이 재치있고 문장이 괜찮아진다. 내용 적당히 있고, 재미 적당히 있는 적당한 소설이다. 사람 사는 게 그렇지, 하고 쓴웃음 한번 싹 짓고 나면 끝나는 소설이다, 라고 처음에는 생각했는데, 오래 남는 진한 끝맛이 있다. 역시 쓴맛이긴 하지만,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는 끝맛.


2. 박이문의 서재

: 선생의 글은 높다. 높이 있는 것은 아름답지만 때로는 손에 잡히지 않아 아득하기도 하다.


3. 헨리 데이비드 소로

: 소로의 전기로 이름 높은 것들이 많은데, 번역 된 것이 없는 듯 하다. 소로 탄생 200주년을 맞아 결정판이라 해도 모자람이 없을 좋은 전기가 한 권 등장했다고 한다. 얼른 번역되었으면 좋겠다. 이 책은 너무 빈약하다.


4. 월든

: 2017년까지 7번. 2018년에 8번째를.




5. 서민 독서

: 대놓고 웃자던 책에서는 그냥 편히 웃을 수 있었는데, 이 문장을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하나 웃어야 하나 헷갈리게 만드는 주제와 엉켜들다보니 결국 이거라고 하기도 애매하고 저거라고 하기도 찝찝스런 좀 허망한 책이 되고 만 것이 아닌지. 여전히 재미있기는 하다.


6. 지그문트 바우만을 읽는 시간

: 서평은 저자들이 각자 다른 책을 다뤘음에도 내용에 중복이 많다. 한 권에 묶일 예정이 없던 각각의 원고를 모아 책을 펴내다보니 그렇게 된 것 같다. 좌담은 바우만에 대해 모르고 보면 그다지 도움이 되지도 않는다. 결국 책의 절반은 모르는 사람을, 나머지 절반은 아는 사람을 타겟으로 하기 때문에 결국 이거라고 하기도 애매하고 저거라고 하기도 찝찝스런 좀 요망한 책이 되고 만 것이 아닌지. 그 와중에 강수미는 여전히 글을 잘 쓴다.


7. 공부할 권리

: 이 책을 '책 읽은 책'으로 읽으면 그저 한 다독가의 다소 섬세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새로울 것도 없는 독서기로 끝나고 만다. 좀 더 가까이 끌어안기 위해 '책 읽는 책'으로 읽을 필요가 있겠다.


8. 시사인 531




9. 눌변

: 간결하다. 저 눌변의 '눌'은 어눌한 게 아니라 '눌'러 담았다는 이야기 같다. 아주 말을 꾹꾹 눌러 담아 길지도 현란하지도 않은 글로 책을 지었다.


10. 일요일의 역사가

: 일요일에도 이 정도면, 이 사람의 월화수목금토에는 도대체 무슨 어마어마한 일이 벌어진단 말인가.


11. 낭비사회를 넘어서

: 내구재 공유. 지나친 물질적 안락의 포기. 공감되는 이야기지만, 계획적 진부화의 악취가 자본의 아가리에서 나오는데, 소비자가 코를 막거나 숨을 참는 것에 앞서 자본을 후려 패는 방법을 찾아야 하지 않는가 싶다.


12. 물건의 탄생

: 턱을 한쪽 손에 딱 괴고, 다른 손으로는 권태롭게 페이지를 띡띡 넘기며 불량한 자세로 아무 생각도 없이 설렁설렁 읽기에 그만인 책이다.




13. 차마 하지 못했던 말

: syo는 저렇게 치열하게 20대를 건너오지 못하였기 때문인지 비루하게 살아가는 형편없는 30대지만, 저 거대한 피로와 희망공백의 파도가 syo를 못 본척 슬쩍 지나가 줄 리가 없기 때문에, 조심스레 함께 아프다.


14. 주진우의 이명박 추격기

: 진짜 빡세게 사는구나, 이 남자. 아, 우리에게 주진우 2호기와 3호기만 있었어도....


15. 보노보노처럼 살다니 다행이야

: syo의 어릴 적 기억 속 보노보노는 도대체 알 수 없는 말들이 오가는 만화, 못된 너구리가 종주먹을 휘두르고 멍청한 주인공 해달놈은 땀방울을 중력 역방향으로 뻘뻘 흘리며 하염없이 얻어터지기만 하는 이유 없는 폭력과 약육강식의 만화였는데, 세상에, 알고 보니 해양생물버전의 어린왕자였구나.


16. 아, 보람 따위 됐으니 야근수당이나 주세요.

: 21세기의 홍길동전이랄까. 21세기라는데 주목하면, 이번에는 우리가 힘을 합쳐 율도국을 한 번 만들 수 있을지도.




17. 좌파 이야기

: 우리 좌파는 저기 가면 중도 보수라더니만, 듣던 대로 본토의 좌파는 독하구만.


18. 타네 씨, 농담하지 마세요

: 프랑스 소설에 처음 관심을 갖게 해 준 고마운 작가가 장폴 뒤부아였다. 지금은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를 지경이지만, 분명 이 사람만의 한칼은 있다. 이건 그의 가장 좋은 책은 아니지만 가장 편한 책이겠다.


19. 내가 세계를 지배한다면

: 처음에는 아이들에게나 권할 만한 만화책이라고 생각했다. 읽고 나서 첫 번째로 깨달은 것은 syo가 아이였다는 것이다. 와, 본격 회춘 조장 만화책. 그렇다고 책 자체가 막 엄청 훌륭한 것은 또 아니다. 그래도 읽고 나서 확실히 깨달은 두 번째 지혜는, 아, 세계 지배도 피곤해서 못 해먹겠다는 것이다. 손이 너어어어어무 많이 가.


20.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노동의 이유를 묻다

: 포퍼와 함께 맑덕후가 가장 미워하는 사람 중 하나로 손꼽히는 베버. 안 읽고 까는 경우가 다반사지만, 그 정도의 결함은 맑덕후의 과반이 실은『자본론』도 안 읽었다는 공공연한 비밀 앞에서 무색해진다. 청소년용 책이지만, 노명우의 필력이 어디 갈까. 




21. 서툰 감정

: 돈 주고 사서 보지 않은 게 이렇게 다행스러운 것은, 이 책이 필요없을 만큼 syo의 삶이 건강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syo가 건강한 삶을 사는데 아무 도움도 되지 않을 만큼 이 책이 필요없는 책이기 때문일까.


22. 다윈주의 좌파

: 마르크스가 부활하여 오늘날 다시 연구를 시작한다면 분명 150년 전과는 다른 말들을 많이 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인간은 사회관계의 총체라는 그의 말에 따라 내린 결론이다. 나 좌파요, 떳떳히 밝히고 살기 위해 더 넓게 읽어야겠다.


23. 판타스틱 과학 책장

: 목록의 책. 4장까지 다 읽기 힘들거나 귀찮다면, 이정모 소장이 쓴 1장만이라도. 개인적으로는 1장이 반 이상 했다고 생각한다.


24. 기억나지 않음, 형사

: 추리나 스릴러물을 몰입해서 읽지 못하는 편인데도 한 큐에 아작낼 수 있었다. 언제나 그랬듯이 반전 같은 거, 전혀 맞히지 못했다.......




25. 걷기, 두 발로 사유하는 철학

: 과연 프랑스 철학자의 산문이라는 느낌을 팍팍 먹여주는 책. 걷는 것은 왼발이 땅에 닿으면 오른발을 떼서 옮기는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작은 일을 이리 굴리고 저리 굴려 300페이지를 채우는 아름다운 글들을 만들어냈다.


26.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 매력적인 제목과 표지에 끌려 읽었는데, 뇌과학을 살포시 발라 놓은 자기계발서 장르의 책이었다. 요지는 멍 잘 때려야 만사형통.


27. 좌파의 생각은 어떻게 상식이 되었나

: 좌파는 과연 말을 잘 해야 한다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말을 잘 한다는 것은, 이해와 재미를 동시에 안겨주는 사람에게만 붙일 수 있는, 특급 칭찬이야.


28. 칼 포퍼의『열린 사회와 그 적들』읽기

: 그냥 요약서에 불과하다. 불과한데, 사실 원전을 읽더라도 업자가 아닌 이상 이 요약서에 든 내용 이상으로 뭔가를 꺼내서 남은 평생 짊어지고 가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면 어찌 의미가 없다고 할 수 있겠느냔 말이지.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책을 읽다 보니,『열린 사회와 그 적들』은 그냥 입문서 없이 바로 읽어도 슥슥 읽힐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읽어 보신 이웃분들의 조언을 구합니다.




29. 나의 삶은 서서히 진화해왔다

: 이 책만 놓고 보면 다윈은 참 소박하고 평이한 그을 쓰는 사람으로 느껴진다. 겸손하고 고요하다. 자서전치고는 자기 이야기보다 주변 사람 이야기가 더 많은 느낌인데, 이게 더 매력적이다. 그에 관해서 알고 싶은 이들을 위해 2000쪽 짜리 평전도 준비되어 있기 때문에, 조바심을 느낄 필요가 없다. 두려움을 느낄 뿐이지.


30. 에덴의 종말

: 생물종의 관점에서 보면 인간이란 참 못돼쳐먹은 종이다. 깡패도 이런 핵깡패가 없다. 공룡이 이 꼴 볼까봐 무서워서 일찌감치 멸종을 택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다. 농업. 이 모든 걸 가능하게 했거나 최소한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가속화시킨 주범은 농업이다. 사실『사피엔스』가 있으므로 이 책은 그다지 필요가 없을지도 모르겠다.


31. 시사인 532


32. 경제 성장이라는 괴물

: 이런 제목이 붙었길래 경제 책인 줄 알고 빌렸더니 환경책. 뭐 경제랑 환경이랑 둘이 서로 모르는 사이도 아니지만, 그래도 제목을 이렇게 붙이기 있기? 책 자체는 그냥 애들 보기 좋은 딱 그 수준. 역시 syo가 보기에 좋았다. 딱 그 수준.




책 참 많이 줄였다. 그래도 이렇게 읽으면 나, 100퍼센트 망한다. 망하면? 몰라, 망하면 지금처럼 백수로 남은 평생 빈둥빈둥 살면서 죽을 때까지 꾸역꾸역 한 5만권 읽다가 묘비에 "왔노라, 읽었노라, 그렇다고 뭐 별 건 없었노라." 새기고 가는 거지......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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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29 21: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17-11-29 2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제나 그랬듯이 반전 같은 거, 전혀 맞히지 못했다.

아 빵 터졌네요 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syo 2017-11-30 06:57   좋아요 0 | URL
syo의 자랑스런 순진무구함. 반전 뭐죠??

수연 2017-11-29 2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진짜 멋져요 syo님

syo 2017-11-30 06:57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근데 어디가......?

psyche 2017-11-30 0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험공부 시작하신다고 해서 책 읽으신 후기가 덜 올라오겠구나 했는데 여전히 많이 읽으시네요! 분명 시험과 독서 두 개를 다 꽉 잡으실거라 믿습니다

syo 2017-11-30 07:23   좋아요 0 | URL
정말 그랬으면 좋겠어요ㅎㅎ 그런데 두 놈 다 여간 까칠한 놈들이 아니라서...

북다이제스터 2017-11-30 07: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대략 800권 읽는데 15년 걸렸는데요.
죽기 전 5천 권이라도 읽었으면 좋겠습니다. ㅎ ㅎ

syo 2017-11-30 07:49   좋아요 1 | URL
저도 말만 저러는 거예요. 여차하면 만화책도 끼워넣을 심산입니다.....

단발머리 2017-11-30 09: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언제나처럼
소개해주신 책들도 syo님 글도
좋아요~~
좋아요~ 누르다 syo님 좋아할 태세~~~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syo 2017-11-30 09:22   좋아요 0 | URL
그 태세 좋은 태세 ㅋㅋㅋㅋㅋㅋ

2017-11-30 15: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졔졔 2017-11-30 17: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월든 7번.... 우와... 월든 읽는 법(?) 좀 알려주시겠어요? 여러번 시도했으나 소로 선생이 절 받아주지 않아요ㅠ

syo 2017-11-30 18:35   좋아요 1 | URL
허어.... 굉장히 어려운 질문하셨네요. 저와 소로 선생은 첫만남부터 눈이 맞아가지고 백년해로 하기로 한 사이라...

cyrus 2017-11-30 2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윈의 성격이 실제로 겸손하고, 성품이 좋아요. 진화론에 대한 외부 비판을 경청할 줄도 알았어요. 다윈의 아내가 다윈의 연구 작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했고, 다윈도 아내의 공을 인정했어요. 아인슈타인과 많이 비교되요. 아인슈타인은 첫 번째 아내 밀레바의 지적 능력을 무시했어요. 밀레바가 자식들 보살필 때 두 번째 아내가 될 여자와 바람 피우고 다녔어요.

syo 2017-11-30 21:36   좋아요 0 | URL
그랬군요. 조만간 두껍한 펑전을 읽게 될 테니 그 양반 성격 한 번 속속들이 알아보겠습니다.

2017-12-01 22: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2-02 16: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2-02 17: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독서괭 2017-12-04 09: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가 나라서 나만은 절대로 알 수 없는 나도 있다. -에 밑줄!!
언제나 그랬듯이 반전 같은 거 전혀 맞히지 못했다 - 저도 늘 그렇습니다... ㅋㅋㅋ

syo 2017-12-04 11:51   좋아요 0 | URL
제가 맞힐 수 있는 반전이 나오면 그게 저한테는 더 큰 반전처럼 느껴질 것 같아요....

2017-12-04 19: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2-04 21: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2-04 21: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한때 syo가 응원했던 요즈음 좀 핫한 남자들의 흥망성쇠에 관하여



1. 수도권을 연고지로 하는 어느 야구팀 단장


syo가 응원하는 야구팀은 올해 초만 해도 대권을 노리느니 어쨌느니 깝치다가 이도저도 아닌 성적을 거두었다. 못한 건데, 못한 팀 중에서는 또 제일 잘한 거라. 못 생긴 애들 중에는 니가 제일 잘 생겼어, 우리 팬들은 이런 말을 도저히 칭찬으로 들을 수 없었고, 시즌 중 고집스런 전략을 구사하다 몇 경기를 말아먹은 감독의 경질 이야기가 돌았다. 그런데 뜬금없이 감독이 단장으로 영전하는 일이 벌어졌다. 그때 우리 중 일부는 이미 뭔가 미쳐돌아가고 있음을 예감했다. 그러나 나름 명장으로 이름난 사람을 새 감독으로 영입하면서 여차저차 봉합이 되는 분위기였다. 게다가 십년이 넘게 고질병으로 지적되는 공격력을 보완하기 위해서 올해는 좀 공격적으로 돈을 부어 다른 팀에서 좀 친다 하는 선수들을 반드시 사 오리라는 선언을 함으로써, 팬들로 하여금 설레설레 밤잠을 설치게 만들어 놓았다. 아, 이번엔 뭔가 제대로 되려나보다!


했는데, 의외의 폭탄이 터졌다. 이놈의 단장이, 저 어두컴컴한 시절, 우리 팀의 다른 타자 전원이 한 경기동안 치는 안타의 합이 다른 팀 4번타자 한 명이 치는 안타랑 비슷하던 때에도 저 혼자 꿋꿋이 3번 중 한 번은 때려내어, 저 팀은 쟤 혼자 야구하는구먼, 하는 찬사 아닌 찬사를 듣던 든든한 베테랑 선수를 팀에서 거의 쫓아내다시피 방출한 것이다. 그 선수 뿐 아니라, 가장 안정적으로 2루를 맡아주던 선수를 특별한 대안도 없이 바꿔먹자고 내놓질 않나, 심지어 본인이 감독이던 시절, 얘는 언젠가 반드시 빵빵 터질거라며 남들이 다 말려도 끝끝내 4번에 세워 팬들의 속이나 빵빵 터뜨리던 선수를 자기가 언제 아꼈냐는 듯 툭 털어내는 기이한 행보를 보이니, 마침내 팬들의 분노가 이미 하늘 끝에 닿았도다.


그러나 우리에겐 그래도 희망이 있었다. 바로 다른 팀에서 사오기로 한 선수. 세 명이 물망에 올라 있었다. 우리는 치킨, 피자, 햄버거를 쥐었다 놨다 하며 뭘 먼저 먹을까 고민하는 행복한 여덟살 syo마냥 낭보만 기다리고 있었는데, 아뿔싸, 우물쭈물 하는 사이에 치킨이 자신의 팀에 눌러 앉기로 하고, 심지어 햄버거가 우리 팀이 아니라 치킨이 있는 그 팀으로 가버리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피자는 미국에서 안 돌아오려는 제스처를 취하고 있고, 돌아오더라도 어쩐지 베테랑을 헌신짝처럼 차 버리는 우리 팀에는 오지 않을 거라는 비관적인 전망이 팬들 사이에 돌고 있다. 결국 우리는 특식은 커녕 꾸준히 식탁에서 역할을 다하던 밥도둑 밑반찬도 모두 내버리고 맨밥만 꾸역꾸역 퍼먹어야 되는 상황이 되었다. 그 밥그릇 아래에 우리도 몰랐던 달갈 후라이라도 숨겨져 있기를 기대하면서. 쓰다보니 훌륭한 선수들을 이렇게 음식에다 비유하여 아무리 치킨, 피자, 햄버거, 돈가스를 사대천왕으로 여기는 syo라 해도 죄송하기가 이를 데 없는데, 


본인의 별명은 그야말로 음식(정확히 말하면 식재료)이었던 우리의 전감독 현단장. syo는 한 때 누구보다 그를 믿고 사랑하였으나, 야구 팬들 가운데 끈기로 따지자면 누구의 반대도 없이 세 손가락 안에 안착하리라 단언할 수 있는 우리 팀 팬들조차 단장 퇴진운동을 벌이고 있는 마당이니, 조용히 그를 마음에서 내려놓기로 한다. 그리고 몇 마디 전한다.




마음속에 쌓인 기억이 없고 사물들 속에도 쌓아둔 시간이 없으니, 우리는 날마다 세상을 처음 사는 사람들처럼 살아간다. 오직 앞이 있을 뿐 뒤가 없다. 인간은 재물만 저축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도 저축한다. 그날의 기억밖에 없는 삶은 그날 벌어 그날 먹는 삶보다 더 슬프다. 

_ 황현산,『밤이 선생이다』


 구두처럼 내 몸 전부를 다 받아준 건 없었다
 구두처럼 막다른 어둠까지 질주해준 것도
 한사코 함께 되돌아와준 것도 없었다
 수술실로 들어간 늙은 애인,
 내가 돌아앉아 저리고 미안한 두 발을 주무르노라면
 구두는 새 굽을 신고 어딘가로 또 어질어질 가려 하겠지

 구두를 만류하여 가슴에 품고
_ 이영광,「구두」일부, 『아픈 천국』


모든 해결책들이 실은 서로 다를 바 없고 하나 같이 효과가 없는 것들일 때, 우리를 선택의 홍수에 빠뜨리는 것은 우리에게 진정한 선택권이 없다는 사실을 감추는 방법이 된다.

_ 버텔 올먼,『마르크스와 함께 A학점을』




2. 어느 군소 정당의 군사 전문가 국회의원


그가 의원직에 있기 전부터, 이 사람이 정치판 근처에서 삶을 꾸려나가다 보면 그 입으로 흥하다 언젠가는 한 번은 다시 그 입으로 화를 입겠구나 싶었다. 내용의 옳고 그름만큼이나 그 내용을 퍼나르는 말의 모양새가 정치인에겐 중요하다. 그 말은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이 현명했다. syo는 이 풍파의 9할 가까이는 언론의 짓거리라고 생각하지만, 정치인은, 특히 정당정치판에서의 정치인은 자기가 잘못하지 않은 일도 잘못되면 잘못한 것이다. 작은 당일수록, 급진적인 당일수록 더하다. 뭐라도 하나만 걸려라 하고 어금니를 갈면서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다. 한 방 맞으면 얕은 기반이 휘청휘청한다. 


센 말은 짭짤하다. 센 말을 하는 사람에게 그렇지만, 때론 상대방에게도 그렇다. 그는 조금 더 노회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같은 당에 세상 든든한 멘토가 있다. 천천히, 배우면서, 다독이면서, 함께 가야한다. 또 다시 찾아올 좋은 날을 syo는 기다린다.



좋은 논쟁은 민주주의의 엔진이지만 그렇지 않은 논쟁은 민주주의를 위협한다. 해야 될 논쟁은 누가 더 합리적이고 설득력 있는 대안을 말하는가에 대한 것이고, 하지 말아야 할 논쟁은 선의를 독점하고자 윤리적 언어를 이용하는 것이다.

_ 박상훈,『정치가 우리를 구원할 수 있을까』 


자신은 으뜸이 아니요, 세상의 중심도 아니고 기원도 아니라는 것을 받아들이면서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떠받치고, 자기 자신이나 타자를 위해서가 아니라 각각의 사물, 존재, 순간을 위해서 봉사하는 것이 중요하다. 자아는 헛바람, 허깨비, 기만에 불과하고 타자는 폭군 혹은 환상일 뿐이니까.

_ 피에르 자위,『드러내지 않기, 혹은 사라짐의 기술』


역사의 순간마다 사람들은 이미 구축된 사고와 은유와 서사의 틀 안에서 행동한다. 그리고 이러한 이야기의 틀은 사람들이 스스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인생을 살면서 무엇을 할 수 있다고 믿는지, 그리고 세상이 어떻게 돌아간다고 보는지를 결정한다. 좀 더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현재"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으며 어디에도 그 어떤 추상적인 사회적 현실은 없다. 매 시대, 매 순간마다 문화, 과학, 기술의 영향 아래에서 사람들은 일부 진실은 인정하고 일부 진실은 왜곡하며 사회적 현실을 구성해 나간다. 이러한 틀은 우리가 스스로에게 이득이 된다고 생각하는 것들, 즉 개인적인 측면과 집단적인 측면에서의 사익을 어떻게 추구할지 규정짓는다. 그리고 사회적으로 가능한 일이 무엇인지 정의를 내려 준다.

_ 에릭 리우 외,『민주주의의 정원』 


일에서 받는 스트레스의 대부분은 외부의 평가에서 온다. 나는 '사람 스트레스는 없지만 일 스트레스가 크다'는 말을 믿지 않는다. 일 스트레스라고 하는 것도 결국 과도한 책임감과 압박, 인정 욕구, 경쟁 등 인간관계의 복잡함과 얽혀 있기 때문이다.

_ 유소연,『차마 하지 못했던 말』 




3. 명예군필의 명예를 획득하신 장군님, 기계 혁명을 넘어 정신 혁명을 지도하시는 영도자


아파서 못갔다고 해도 듣는 둥 마는 둥 병역 면탈자라고 그렇게 욕을 욕을 하더니, 페미니즘 까주니까 지들이 예비군 민방위지 무슨 국방부 장관이라도 된 것처럼 명예군필의 광영을 내려주시는 높으신 분들. 보고 있자니 정말로 군필을 페미니즘 공격하는데만 쓴다는 소리가 허튼 소리가 아니었음이 증명되고 있는 것 같은데, 국방의 의무를 마치고 돌아온 것에 자부심을 느끼는 우리 대다수 군필 제하들께서는 저런 일부 '폭도'들의 군필매매 행태에 열 받지 않으십니까? 아직 군복에 땟물도 안빠진 파릇파릇한 예비군 4년차 syo는 빡치는데요!


현재는 일베남신으로 추앙받고 계시다는 그분의 평소 언행을 syo는 좋아했다. 수상소감조차 평범하지 않았다. 작년에는 선제적으로 촛불 혁명의 대열에 참가하기도 했다. 잘 나가는 사람을 아니꼬와하는 이들이 준동하여 저게 다 관심병이고, 주인공병이고, 허세라고 몰아붙였을 때, syo는 혀를 찼다. 세상 속고만 살았나. 군대 안가려고 수 쓴 거라는 말이 돌았을 때쯤에는 syo의 혀는 이제 하도 차여서 혀인지 축구공인지 알 수 없는 지경이었다. 저 사람은 달라. 뭔가 특별해. 말하는 것, 글 쓰는 것 좀 보라지. 달라.


그랬는데, 이번 판에서 그가 보여준 작태가, 내용의 옳고 그름도 문제지만, 그보다 그 형식이 너무나 전형적이었다는 데, 그러니까 하나도 다를 게 없는 지극히 평범한 반응을 보였다는 게, syo를 크게 실망시켰다. 아, 다른 사람이 아니었구나. 이렇게 교과서적이고 특색 없는 멘스플레인조차, 저 정도 권세를 지닌 사람의 입에서 나오면 파급력이 장난이 아니구나. 그는 한 발 한 발 어렵게 나아가던 운동의 한 가운데 빅똥을 쌌다. 그곳에 큰 똥이 있기 때문에, 작은 똥을 싸는 사람들도 무수히 모여, 아, 여기에 똥을 싸도 되는구나- 하며 달려들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syo를 절망에 빠뜨린 것은 따로 있다. 중2병으로는 나도 어디서 절대 꿀리지 않는다는 자신감을 갖고 자아를 꾸준히 비대화하며, 하늘 높은 줄 모르고 syo의 중2병이 쑥쑥 자라고 있었는데, 오늘 덜컥, 하늘에 머리를 찢었다. 아야, 이게 뭐지? 하고 올려다 보았는데, 세상에 syo가 텅 빈 하늘이라 생각했던 그것은 바로 어마어마하게 비대화하여 이미 대류권을 둘러싸고 있는 어떤 남자의 비대한 자아였다. 아. 이래서 손오공은 제깟놈이 암만 구름을 타 봐야 원숭이구나.


"그들의 가난한 영혼을 차마 다 안을 재간이 없어 비통하다. 자연을 글로 옮기는데 가상세계에서 내 영혼이 다칠까 걱정되어 날선 방패를 먼저 세우는 일이 참으로 비참하다. 그럼에도 쓴다. 경향적 어휘와 자극적 이미지를 총알처럼 남발하며 전쟁을 치르는 세상에서 승리의 기쁨에 도취되기에는 내 안의 문학소년이 매우 슬프기 때문이다. 싸운 것이 아니다. 그래서 써왔다. 그래서 쓴다. 피눈물로 당신에게 나를 보낸다. 이것이 내 '글'이고, '나'다. 물리고 뜯기고 찢겨 조각난 채로 이 세계를 부유하는 것들은 글이 아니라 나다."


syo가 졌습니다. 당신이 왕이세요. 저도 한가닥 하는 중2병잔데, 그래도 차마 '내 안의 문학소년이 매우 슬프기 때문'이라고는 못 쓰겠어요. 타인의 영혼을 '가난하다'고 함부로 말하지도 못하겠고, 그걸 다 안아주어야 할만큼 제가 뭐라도 되는 것처럼 쓰지도 못하겠어요. '물리고 뜯기고 찢기고 조각난 채로 세계를 부유하는' 나라니, 대박. 누군가를 물고 뜯고 찢고 조각낸 나는 '내 안의 문학소년'이 슬프지만 않았어도 '승리의 기쁨'에 도취될 수 있었을텐데, 그쵸? 내가 찢어놓은 상처는 승리의 기쁨이고, 내 몸에 난 상처는 피눈물이라니, syo는 아무래도 그렇게는 못 쓰겠어요......




찬찬히 살펴보면, 타자는 아직 인간이 이해하고 설명할 수 없는 영역, 인간적 지평 너머의 잉여 경험을 가리킨다. 이러한 타자는 로고스가 설명하지 못하는, 그러나 거대한 힘을 지닌 괴물의 이미지로 세계에 등장한다. 유명한 신화들은 언제나 괴물을 목격하여 지혜를 얻은 자를 그린다. 오이디푸스와 스핑크스, 테세우스와 미노타우루스, 욥과 레비아탄의 만남이 그렇다. 그들은 괴물을 가두고 자신에 관한 지혜를 얻지만 이때 괴물은 설명되지 않은 채 여전히 어둠 속에 있다.

_ 김은주,『생각하는 여자는 괴물과 함께 잠을 잔다』 


약자는 달리 약자가 아니다. 자기 삶을 설명할 수 있는 언어를 갖지 못할 때 누구나 약자다. 노동자의 심정을 자본가가, 장애인의 입장을 비장애인이, 동성애자의 아픔을 이성애자가 대신 말할 수 없고, 말한다고 해도 불평등한 권력관계를 고착시킬 뿐이다. 

_ 은유,『글쓰기의 최전선』


만약 당신의 그 권위 있는 비평이 우리가 모르는 것를 알려준다면, 왜 세상은 계속 침묵할까요? 왜 우리에게 진실과 돌이킬 수 없는 법을 말해주지 않을까요? 비평이 그것을 안다면 우리에게 길을 제시해주었을 테고, 우리는 우리가 무엇을 해야할지 알았을 겁니다.

_ 피에로 브루넬로 엮음,『안톤 체호프처럼 글쓰기』 


나는 고급반에 등록하겠다고 말했다. 내 폴란드어 수준을 확인하려는 강사에게 대답해줬다.
"고생하실 거 없어요. 난 폴란드어를 한마디도 못해요."
"그러면 대체 왜 고급반을 들으려고 하세요?"
선생님은 깜짝 놀랐다.

"아무것도 모를 때야말로 맹렬히 돌진할 수 있으니까요.
_ 롬브 커토,『언어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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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17-11-29 18: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재치 넘치는 글이라니!! 인용된 책과 글이 인상적입니다~

근데, 유소연이면...그 토익강사 말하는 건가요? 그녀라면....책을 좀 꾸준히 많이 내는 편이군요. 저는 별루라고 생각하고, 토익시장에서 곧 사라질거라 생각했는데, 아직도 건재하다면, 정말 대단한 면은 있는 듯합니다.

어쨌거나 재밌게 잘 읽고 갑니다욤~^^

syo 2017-11-29 19:04   좋아요 0 | URL
그 사람은 누군지 잘 모르겠으나, 저 사람은 조선일보 기자라네요. ㅎㅎㅎ

cyrus 2017-11-30 2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살구아재가 선수단 정리에 동의했다는 인터뷰를 보고, 양상추를 쉴드치려는 언플이라고 생각했어요. 삼팬인 제가 아는 살구아재는 그런 결정을 할 리가 없거든요.

syo 2017-11-30 21:38   좋아요 0 | URL
지금 돌아가는 꼬라지가 뭐가 될 것 같지 않습니다. 삼성은 내년에는 기대할 만 하겠던데요.
 




아, 보람 따위 됐으니 야근수당이나 주세요

히노 에이타로 지음, 이소담 옮김, 양경수 그림 / 오우아 / 2016


테헤란로에 면한 고시원 작은 방에서 살던 시절, 새벽 2시 부엌에 물을 마시러 들어갔다가 창문 너머로 길 건너편 거대한 빌딩 아직도 불 켜져 있는 사무실들을 마주한 채 꽤 긴 시간 멍하니 섰던 기억이 있다. 아, 나도 야근하고 싶다. 아무리 기다려도 불이 꺼지지 않는 밝은 방들을 바라보며 복잡한 마음으로 몇 가지 짧은 생각이나 조각난 감정들만 머릿속에서 애꿎게 켰다 껐다 반복하고 있었다. 어느 일하는 사람의 공간이 새벽 2시까지 밝듯이, 어느 일하지 않는 사람의 작은 방에도 불은 꺼지지 않았다. 차이라면, 누군가는 그 빛을 떳떳하게 세상 바깥으로 쏟아내고 있었지만, 누군가의 방에는 창문이 없어 그 연약한 빛조차 안으로만 갈무리하고 있었다는 것 정도였다. 밖으로 새어나가는 빛이 앞으로도 결코 꺼지지 않을 것처럼, 안으로 고여 눅눅한 syo의 빛 역시, 아무리 오래 오래 씹어 삼켜도 결코 꺼질 일이 없을 것만 같았다. 그렇게 직업이 있는 사람들과 직업이 없는 사람들이 저마다의 공간에서 매일 새벽을 환하게 밝히고 있었지만, 그 빛을 아무리 그러모아도 세상은 한 뼘도 밝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 빛이 셀수록, 밤은 비웃듯 더욱 깊었다.


지금도 그때와 같아 syo는 여전히 한 움큼도 가진 게 없이 좁은 방에서 새벽을 태우는 처지지만, 기나긴 이 백수 생활 가운데서도 놓지 않으려 애쓰는 마음가짐 하나는 있다. 노동하는 사람들을 부러워하되, 야근 당하는 그들의 불만에 배 부른 소리 하지 말라며 혀를 차지 않는 것. 배가 고파도, 자본이 나를 쳐다보기도 전에 알아서 훌훌 벗고 엎드려 고개를 조아리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다윈주의 좌파

피터 싱어 지음, 최정규 옮김 / 이음 / 2011


자연스러운 것이 옳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른바 '자연주의의 오류'는 웬만큼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초저녁에 타파되어서 이제 자연스러운 섭리 운운하는 말은 syo의 귀에는 "제가 이렇게나 무지몽매한 인간입니다. 아시겠어요?" 하는 말로 자동번역되어 들리기도 한다. 같은 맥락에서 syo는 이것이 인간의 본성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의 그 '이것'이 못마땅하거나 근거가 불충분하다는 생각이 들 뿐, 인간의 본성이 있다는 주장 자체에 대해 조금의 거부감도 갖고 있지 않다. 빨갱이 syo에게 스스로 올바른 행동의 방향을 정하고 그 길을 따라가는 데 있어서 인간의 본성은 중요하면서도 중요하지 않다. 제도와 문화가 만들어지고 운용되는 과정에서 인간 본성을 무시한 데 따른 부작용은 경계해야겠으나, 문화와 제도가 도착해야 할 올바른 목적지를 설정하는 데 인간의 본성이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마지막 가야할 자리가 어디인지는 그렇게 정하는 것이 아니라고 믿는다. 


설령 여성의 본성이 남성에 비해 육아나 양육에 적합하게 구성되어 있다는 주장이 사실이라고 치더라도, 그것은 그냥 사실일 뿐이다. 양육과 육아를 어떻게 감당해야 하는가는 사실의 문제가 아니라 가치의 문제다. 사실이 아무리 축적되어도, 그것이 가치의 영역으로 넘어오는 데는 그저 '효율적인'이나 '자연적인' 따위의 허접한 형용사로 범벅된 것 이상의 근거가 필요하다. 양육과 육아에 관한 본성이 어찌되었건, 그것은 곧바로 여성의 사회진출 비중을 남성에 비해 낮은 상태로 유지하는 일의 근거가 되지 않는다. 행여 그 사실을 가지고 현재의 이 불균형을 설명할 수 있다고 해도, 이 불균형이 올바르거나 타파될 필요가 없다고 설득할 수는 없다. 원래 그래. 본성이니까 그래. 세상에 그만큼 허망한 말은 없다. 이런저런 방식으로 인간 본성의 정의가 변화되어 온 긴긴 역사를 보자. 노동이 노예의 본성이라고 말한 사람은 2500년이 지나도 여전히 최고의 철학자지만 오늘 우리는 누구도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최소한 그렇게 말하면 안 된다는 것은 안다.) 오늘의 우리가 인간의 본성이라고 합의한 물건이 있다고 해도, 그것이 후에 뒤집히지 않으리라는 근거가 어디에 있다고 확신에 차서 원래와 본성을 말할 수 있는지. 귀납적 학문은 언제나 위태롭다. 굳기로 따지면 세상 단단할 것처럼 보이는 물리학도 왕왕 판이 뒤집어진다. 진화심리학은 반짝반짝하기는 한데, 아직 예금 보유량이 많지 않은 자그마한 신생 은행처럼 보인다. 가치 판단의 영역에 자금을 대출해주기보다, 오히려 다양한 영역으로부터 자본을 확보할 필요가 있지 않나.


'사실'과 '가치'를 구분하는 것. 정확히 말하면 '사실 문제'와 '가치 문제'를 구분하는 것은 이제 어디서나 기본적인 자세다.  


인간의 본성이 어떻게 생겨먹었는지 syo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그런 게 있다면 그걸 개무시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가치 기준을 만드는 과정에서 인간의 본성에 반하는 것들을 다 잘라내는 일은 더욱 말도 안 된다. 결국은 0 초과 100 미만의 싸움이다. 그리고 그 싸움은 자체가 가치투쟁이고 관점투쟁이며 헤게모니의 다툼일 뿐, 어느 한쪽이 객관적인 진리를 드러낼 수 있는 다툼이 아닐 것이다. 예를 들면 이런 비유에서,


조각공예가에게 나무 한 토막을 건네주고 그것으로 나무그릇을 하나 만들어달라고 부탁해 보라. 그가 나무토막을 보지도 않고 이미 자신의 머릿속에 그려진 디자인에 따라 나무토막을 깎고 다듬기 시작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는 자신이 작업하게 될 재료를 면밀히 검토하고 나서, 재료의 나뭇결과 재질에 걸맞도록 디자인을 수정한다. 정치 사상가들이나 혁명가들 혹은 이들을 추종하는 사회개혁가들은 너무 쉽게 이상 사회의 상을 만들어내는 반면, 정작 그렇게 만들어질 이상 사회에서 일하고 살아나가며, 또 그 이상 사회를 향한 계획을 추진해나갈 주체인 인간에 대해서는 알고자 하는 노력을 별로 하지 않는다. (69)


피터 싱어의 지적은 정론이다. 그가 비판할만큼 정치 사상가들이나 혁명가들이 인간의 본성에 대해 관심이 없거나 안이하게 생각했던 측면이 있다. 0과 100은 옳지 않다. 그러나 저 비유 자체가 결국 이상 사회의 상을 만들 때 인간의 본성을 '어느 정도' 고려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관점 투쟁이 될 수 밖에 없음을 드러내고 있다. 조각공예가가 나무그릇을 만들 때, 그는 나뭇결과 재질을 면밀히 검토할 것이다. 그러나 그는 나무를 구성하고 있는 분자들이나 탄소 원자들의 결합 구조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결국 논점은 인간의 본성을 '나뭇결과 재질'로 보느냐 '분자나 탄소 원자'로 보느냐, 즉 본성의 위치가 어디이며, 어느 정도로 고려해야 하느냐 하는 정량적인, 그러나 동시에 정성적인 합의점을 찾아나가는 데 있는 게 아닐까.


이렇게 쓰고 나니까 마치 피터 싱어가 무슨 망발이라도 한 것처럼 읽히지만, 전혀 그런 일이 없었습니다. 이 책은 syo에게 상당히 좋은 책이었고, 피터 싱어는 이 책에서 어떤 기록할만한 망발도 하지 않았으며, 단지 소소한 부분에서 고개를 갸웃했을 뿐, 전체적으로 열심히 끄덕거리며 독서를 마쳤다. 요약을 덧붙이지 않으면 syo의 똥글이 이 책에 대한 오해를 만들까봐, 피터 싱어가 주장하는 다윈주의 좌파의 강령을 덧붙인다.


다윈주의 좌파는 

- 인간의 본성을 부정해서도, 인간의 본성이 원래 선한 것이라고 주장해서도, 그리고 인간의 본성이 무한히 변할 수 있다고 주장해서도 안 된다.

- 정치적 혁명에 의해서든 사회적 변화에 의해서든 혹은 보다 나은 교육에 의해서든, 인간들 사이의 모든 갈등과 분쟁이 언젠가는 완전히 없어질 것이라고 기대해서는 안 된다.

- 모든 불평등이 차별, 편견, 억압 혹은 사회적 조건들로부터만 기인한 것이라고 가정해서는 안 된다. 불평등의 일부는 이들로부터 유래했겠지만 모든 경우에 그럴 것이라고 가정해서는 안 된다.


다윈주의 좌파는

- 인간 본성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리하여 정책을 제시할 때에는 그 정책이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에 대한 증거들을 바탕으로 제시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 어떤 것이 '자연적'이기 때문에, 그것이 '옳다'는 식의 추론을 거부해야 한다.

- 어떤 사회적/경제적 시스템 아래에서 살든지, 사람들은 자신의 지위를 상승시키고, 권력을 얻기 위해서, 그리고 그들과 그들의 친족들의 이익을 증대시키기 위해서 경쟁적으로 노력할 것이라고 예상해야 한다.

- 경쟁보다는 협조를 촉진하는 사회구조를 만들고, 경쟁이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목표를 향해 작동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 인간이 아닌 동물들을 착취해도 된다는 새악은 사람과 동물 간의 간극을 과장하는 다윈주의 이전의 유산임을 깨달아야 한다. 그리하여 동물들의 도덕적 지위를 향상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자연에 대한 인간의 지배라는 인간 중심적 사고를 버려야 한다.

- 약자, 빈자, 그리고 억압받는 자의 편에 섬으로써 좌파가 가졌던 전통적 가치를 옹호해야 한다. 하지만 어떤 사회적/경제적 변화가 이들에게 혜택을 가져다줄 수 있는지 곰곰이 연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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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26 23:0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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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27 07:3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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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27 15:4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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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28 16:3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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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얼 먹어도 물을 싸는, 뭐 다소 흔한 질병에 걸렸다. 흔한 질병이긴 하나 그 원리가 참으로 신묘하다 아니 할 수 없다. 대처 방법 또한 그렇다. 물을 많이 배출하므로 물을 많이 먹어라. 당연한 말이긴 해도, 내 몸이 들어온 물을 그대로 내보내는 한 줄기 파이프가 된 것 같아 놀랍고 비참하다. 항쟁의지가 남다른 괄약근의 철벽수비가 아니었다면 훨씬 더 비참했을 것이다. 쓰다듬어 주고 싶다. 미쳤군.


인체의 신비는 경이롭다. 사람의 몸은 샌드위치를 잘못 먹으면 파이프가 된다. 우유를 잘못 먹어도 파이프가 된다. 치즈 잔뜩 뿌린 치킨을 잘못 먹으면 성능 좋은 파이프가 된다. syo는 낙지 볶음을 잘못 먹고 밸브가 고장난 노브레이크 하이패스 PVC 파이프가 된 기억이 있다. 치매가 와도 결코 잊지 않을 아주 흥건한 추억이다. 인체의 신비는 경이롭다. 그러나 그 경이로운 체험은 늘  이런저런 고통을 수반한다. 넓은 호수 표면에 잔잔한 물결을 일으키는 소슬바람 같은 고통에서부터, '말 못할 고통'이라고 아주 간편하게 말할 수 있는 아이러니한 고통까지. syo는 지금 또 한번 소소한 경이를 체험하는 중이다. 


온몸으로 웃으려고 노력 중이다. 그러니까, 다음의 인용문들은 다 원 맥락을 무시한 채, 지금 상황에서 스스로 웃으며 버텨보려는 목적으로 인용하는 것임을 밝힌다. 안 그럼 울 것 같잖아. 지금 syo의 입장에선, 저게 웃긴다. 쓴웃음도 웃음입니다..... 아, 괄약근 너는 빼고. 지금 벌어질 수 있는 것들 중 가장 비극적 상황은, syo는 못 웃는데 괄약근만 지 혼자 박장대소 하는 사태라 할 수 있겠다. 괄 장군에게 구국의 결단을 촉구한다......




어떤 기미를 둘이 거의 동시에 느꼈다. 남매는 나뭇가지를 던져버리고 장난감 같은 차들이 오가는 강변도로를 향해 뛰었다. 기미는 방귀냄새로, 생똥 냄새로 또 독가스 같은 구린내로 순식간에 바뀌어갔다. 그것이 오고 있었다. 남매는 모래밭에서 허우적거렸다. 숨은 적게 들이마시면서 뛰기는 빨리 뛰려는 불가능한 노력을 하는 중이었다. 그러나 걱정은 하지 않았다.

그것은 아무리 늦장을 부려도 결국 흘러가고야 말 것이다. 하류로 내려가서 서해 바다로 빠져나가 버릴 것이다. 한강다리의 교각에 몇 층으로 뚜렷이 그어져 있는 그것의 자취도 언젠가는 말끔히 지워질 것이다. 늘 이렇지는 않을 것이다. 모든 것이 달라질 것이다. 그것을 구경조차 할 수 없는 날이 올 것이다. 그때 그들은 그런 것을 본 적이 있다고 말할 것이다.
_ 오수연,「강변에서」,『이해 없이 당분간』


비참 속에 담긴 비참, 비참에도 질서가 있었고, 그 길은 따라야만 했다.

_ 콜슨 화이트헤드,『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 


"살해당할 거라면? 멍청하긴, 언제라는 거야, 그게? 지금 살해당하고 있는 거 아냐? 아주 조금씩 말이야. 그놈들은 말야, 능숙하다구."

_ 고바야시 다키지,『게 가공선』


오물로 가득한 폐허를 만나지 못힌 자들, 자신이 있는 곳를 폐허로 경험하지 못한 자들은 어떤 것도 창조할 수 없다. 그러하니 창조하려거든 몰락하라. 태어나려거든 흔쾌히 죽어라!

_ 고미숙 외,『루쉰, 길 없는 대지』



2


스타일이 간절히 목마른 때일수록 콘텐츠에 눈을 돌리자. 양식이나 미학이 부족하다는 느낌은 기반이나 근본이 빈곤한 정신에 종종 일어나는 증상이다. 일종의 저혈당쇼크라고 본다면 적절한 해결책은 결국 정신에 양분을 제공하는 일이다. 손은 저절로 움직일 때 가장 아름다운 결과를 빚는다. 손을 어떻게 움직일지를 계산하고 제어하는데 역량을 분산시키면 그만큼 멀리 가지 못하고 높이 닿지 못한다. 그러므로 손은 평소에 쉼없이 놀려야 한다. 손이 저 혼자 놀 수 있도록 하고, 저 혼자 놀아도 마음과 다투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자주 놀고 많이 익힐 것. 자주 쓰고 많이 읽을 것.


알면 뭐 해, 안 되는데. 근래 독서량은 가장 좋은 시절에 비해 1/5 수준이고, 이제 거의 읽는다는 데 의의를 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어제는 닷새만에 뭐라도 써 봤는데, 글이라는게 참 늘 때는 정말 더럽게 더디더니 빠질 때는 KTX급이다. 싸야 할 곳으로는 물을 싸고, 손으로 똥글을 싸고 있다. 그런데도 읽을 시간도 쓸 시간도 없으니 어쩔 수 없이 문워크 하면서 사는 것이 바로 인생이로구나..... 하고 징징거리려는데, 이럴 때마다 다잡아 읽는 우리 선생님들 꽃같은 말씀.



밤에도 잠자는 것보다 일이 우선이었다. 때로 피곤할 때면 옷도 벗지 심지어는 이불도 덮지 않은 채 그대로 침대에 누워 두어 시간 눈을 붙였다. 이렇게 루쉰은 참호 속의 전사처럼 깜빡 잠이 들었다가, 몸을 뒤척이고는 바로 깨어나 담배를 한 대 피우고 진하게 끓인 차를 마신 다음, 과자가 있으면 조금 먹고는 또 글을 쓰기 시작했다. 급한 글이 있을 때면 펜을 놓을 줄 몰랐으며, 대부분 동이 틀 때까지 작업했다. 루쉰은 많은 잡문들을 대부분 이런 상황에서 써냈으며, 많은 소설도 이런 상황에서 써냈다.

_ 왕스징, 『루쉰전』


우리가 학생에서 '직업인'이 되고 '교양'에서 '전문'으로 넘어갈 때, 혹은 청년에서 장년으로 넘어갈 때, 우리의 앎과 독서는 길을 잃고 위기에 처하기 십상이다. 어떤 이는 아예 책을 완전히 손에서 내려 놓기도 한다. 주로는 생계 활동의 고달픔 때문인데, 만흔 한국인들이 한 달에 책한 권도 못 본다. 어찌보면 이는 인생 자체의 행로가 위험해지는 것과 다르지 않은 과정일지 모른다. 우리는 이때 젊은이로서의 열정과 '꿈'을 잃고, 밥벌이과 기성 질서의 노예가 될 수 있다. 그런데 리영희의 말은 그러할 때 책 읽기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가르쳐 준다. 그것은 자기 생과 앎을 소명을 지닌 프로젝트로 만드는 것, 또한 그것을 늘 또럿이 스스로 의식하고, 스스로 설정한 지적 과제를 충일하게 채워 나가는 책 읽기다.

_ 고병권 외, 『리영희 프리즘』


박태순이 내 글을 괴팍하다고 했다고 한다. 괴팍하다니. 나는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썼을 뿐이며, 남들도 다 쓸 수 있는 글들을 쓰는 것을 삼갔을 따름이다.

_ 김현,『행복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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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7-11-20 1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몸조리 잘해요, 쇼님. (토닥토닥)

syo 2017-11-20 14:26   좋아요 0 | URL
어차피 뭘 먹어도 똑같을 거라면 맛있는거 먹자며 돼지고기를.....

단발머리 2017-11-20 1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선생님들 꽃같은 말씀들 장난 아니네요. 일단 <루쉰전> 찜하고...

저같은 경우는.... (경우?) 이럴 때(이럴 때?)는 물을 마시는 것도 사실.... 힘듭니다.
물을 넘 많이 마시지 말구요. 넘 힘들면 링겔 맞으시기 바래요. 회복이 조금 빨라집니다. (토닥토닥)

syo 2017-11-20 14:30   좋아요 1 | URL
사실은 어제 절정으로 고생하고, 오늘은 낫고 있는 상황이었어요.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루쉰전은 괜찮은 것 같아요. 분량 대비 좋은 평전. 신영복 선생님 번역입니당.

얄라알라북사랑 2017-11-20 14: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너무 재미나게 읽고가면서도, 쓰신 분 건강이 안 좋으시다는데...재밌어 하는 독자로서 죄송스럽네요 쾌차하세요

syo 2017-11-20 14:30   좋아요 0 | URL
쾌차의 과정에 있어서 이렇게 뭐라도 쓸 여력이 났어요.

재밌으셨다니 더 빨리 낫겠네요 ㅎㅎ

2017-11-20 14: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1-20 14: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리즘메이커 2017-11-20 19: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라예보에서 또다시 총성이 들린다면...그것은 syo님의 괄약근이 치르는 3차대전을 ... 독서량이 정말 어마어마 하십니다. 1/5로 줄었는데도 이 정도라니..!

syo 2017-11-20 22:45   좋아요 1 | URL
완전 오해십니다. 최근에 읽은 책들 아니고, 지금의 다섯배를 읽던 시절 읽은 책들입니다.....

프리즘메이커 2017-11-21 04:00   좋아요 1 | URL
하하하 오늘도 공통점 하나 발견하고 갑니다 ㅎㅎ

독서괭 2017-11-28 1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더러운 괄약근 얘기를 이렇게 재미나게 쓰시다니.. 괄약근은 syo님에게 감사해야겠어요 ㅋ
재미는 재미고. 고생 많으셨겠어요. 이제 다 나으셨죠?

syo 2017-11-28 13:30   좋아요 0 | URL
물론 깨끗이 완치되어서 지금도 더블치즈와퍼를 쳐넣고 있었답니다.
 




책인시공 / 정수복 지음 / 문학동네 / 2013

서민 독서 / 서민 지음 / 을유문화사 / 2017


syo는 책책을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한다. '책 있어 책', '책 읽은 책' 그리고 '책 읽어 책'. 대체로 '책 있어 책'은 인문서로 분류되는 분위기고, '책 읽은 책'은 에세이 쪽에 밀집해 있다. 그러나 '책 읽어 책'은 자기계발서, 잘 봐줘도 '인문학으로자기계발한번해보자서' 혹은 '넌내가에세인줄알았을거닼ㅋ실은자기계발서지롱' 정도로 대접 받아 종종 서럽다. 그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그 책을 읽는 모든 이의 마음에 감동을, 가슴에 의욕을, 머릿속에 읽을 책 리스트를 집어넣어 마침내 손에 다른 책을 쥐지 않고는 못 배기게 하는 '책 읽어 책'은 존재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독서의욕 고취는 '책 있어 책'이나 '책 읽은 책' 입장에선 그저 부차적 목표이거나 부수적 효과일 뿐이지만, '책 읽어 책'에게는 존재 의미이기 때문에 가슴이 아픈 셈이다. 같은 책을 읽었는데 누구는 무릎을 탁 치고, 누구는 빡치면 저자 입장에서는 그게 또 골치 아픈 일이겠다. 그러나, 그것은 '책 읽어 책' 뿐만이 아니라 모든 책이, 더 넓게 보면 모든 예술이 안고 가야하는 숙명 아닐까. 그래서 혹시나 이 책들이 당신의 마음에 뜨거운 불을 지피지 못하고 미지근한 커피처럼 후루룩 빨려 사라지고 말았대도, 결코 책의 실패가 아님을 말하고 싶다.


이런 절절한 위안의 말로 시작한 것은, 이 두 책이 최적 작용하는 독자층이 심히 다를 것이라고 예상하기 때문이다. syo가 봤을 때,『책인시공』은 책을 많이 읽지 않는 독자들에게 살갗 레벨의 의욕을 때려넣지 못하는 뜬구름처럼 느껴질 수 있고,『서민 독서』는 책을 좀 읽는 독자들에게 하나마나한, 혹은 뭐 이렇게까지 하나 싶을 정도로 자잘한 데가 있다. 두 책을 읽고 양쪽 모두에서 독서욕을 길어 올리셨다면, 당신의 감수성은 폭포, 포용력은 바다급입니다. syo는 어땠을까.『책인시공』을 읽고는 음, 이 책은 나보다 좀 더 많이 읽은 사람들이 좋아하겠구먼, 했고, 『서민 독서』를 읽고는 음, 이 책은 나보다 좀 더 적게 읽은 사람들이 좋아하겠구먼, 했다. 어휴, 또 시작이다, 신이시여, 과연 저는 어디로 가야합니까.....



임마, 여기로


아니면 여기로 가면 되잖아



좀 다른 이야기지만,『책인시공』을 읽고 정수복 선생님이 고고함은 넘어섰고 고루함에는 아직 닿지 않은 어디쯤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올곧고 꼬장꼬장한 선생님 느낌. 그리고 어쩐지 가슴 속에 불이 끓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을 뜨지 못하는 미흡한 것들에 대한 분노. 물론 그런 표현을 쓰시진 않았고 그냥 syo가 그런 느낌을 받았다고. 오해일 확률이 높지만, 어쨌든 syo에게는 별로 좋은 느낌의 책은 아니었다. 어려운 책도 아니었는데, 그저 아름다우나 높은 산이라 길이 잘 나 있지만 오를 맘이 들지 않았다고 해 두자. 그런데, 며칠 전 읽은 다른 책에서 정수복 선생님의 가슴 속에 들끓는 불길의 연료 배관이 어디에 닿아 있는가를 넌지시 짐작할 수 있었다. 몇 군데 보자면, 


여기서


임지현 : 직업적인 사회학자들 사이에서 그런건지, 아니면 일반 지성인들 사이에서의 영향력인지는 따져봐야 할 것 같습니다.


정수복 : 우리나라에서도 이렇게 떠드는데, 미국에서는 바우만의 영향력이 어느 정도인지 모르겠습니다. 프랑스에서는 별로 이야기하지 않거든요. 독일도 모르겠어요. 그리고 우리나라에 번역된 바우만의 글들이 한국적인 적합성이 얼마나 있을까요? 사실은 한국에서 그의 책이 굉장히 오해되서 읽히고 있거든요.


정일준 : 오해라기보다는 수용하는 맥락이 다른 것 같습니다. (이하생략)


그러니까,『지그문트 바우만을 읽는 시간』이라는 책을 만들려고 대담하는 자리에서, 도대체 우리가 바우만을 왜 읽어야 되냐, 외국에서도 별론데, 우리랑 맞지도 않은데, 심지어 똑바로 읽는 놈들도 별로 없는데, 라는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호연지기가 드높으시다. 아, 그럴 수 있지. 바우만은 무조건 빨아야 되나? 그런데, 그 뒤에,


정일준 : 지금은 지구화로 인해 외국 것들이 들어오기도 하지만, 한국 것이 외부로 나가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고려대도 교환학생 프로그램이 많습니다만, 최근에는 외국으로 나가는 학생보다 한국으로 들어오는 학생이 더 많습니다. 학부에 들어오는 학생들은 교환학생을 제외하고 한국으로 완전히 유학오는 학생이 5천 명이 넘습니다. 유럽 여러 국가들과 미국, 캐나다에서도 오고요. .... (중략)


임지현 : 아무래도 한류 영향이 없지 않을 것 같습니다.


정수복 : 한국에 대한 진지한 관심보다는 K-POP이나 한국영화 등 대중문화에 심취해서 유학 오는 학생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K-POP이나 한국영화와 같은 대중문화에 심취해서 오는 것은 한국에 '진지한' 관심이 있어서 오는 것이 아니라는 건데, 아이고, 선생님..... 관심이 진지한지 아닌지가 장르나 학제에 따라 선험적으로 결정이 되어 있는 문제입니까..... 세상에 삘 받은 김에 타국에 가서 4년 대학생활 하고 와야지, 하고 룰루랄라 오는 사람이 어디 있겠으며, 있다고 치더라도, 그게 장르 탓인가요. 한국 정치/역사/철학에 관심이 많았는데 어느 날 김치 안주로 참이슬 후레시 한 잔 걸치며 유투브로 판소리 다섯 마당 듣다가 삘 받은 김에 원서 내고 한국 대학 사회학과에 입학하면, 걘 진지한 놈인가요, 안 진지한 놈인가요.


임지현 : ....(중략).... 폴란드인들의 공범성 혹은 방관자적 지위를 논한 미워시의 시를 둘러싼 논쟁에 대해 쓴 글을 보고 이 사람 글을 참 독특하게 쓴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알고 봤더니 바우만이었던 것입니다. 1987년에 쓴 글이니까 그때만 해도 별로 알려지지 않았을 때였거든요. 물론 요즘 한국에서 그의 인기는 대단합니다.


정수복 : 그 인기에 깊은 뜻이 들어가 있는 것인지는 봐야 할 것 같습니다. 폴란드와 한국 사이에 어떤 정서가 통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네요.


임지현 : 바우만 글의 행간 속에 어떤 코드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정수복 : 그런 정도까지 한국의 번역자들이 번역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이쯤 오면, 정수복 선생님은 세상 모든 것이 미덥지 않은 분 같다는 느낌도 받는다. 물론 전부 다 지적할 수 있는 문제고, 정말 syo 같은 미미한 것 눈에 포착되지 않는 구멍들이 여기저기 깔려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리고 모두 다 정론이지만, 그래도 이러면 너무 답이 없는 것 같잖아. 독자도 문제, 학생도 문제, 바우만도 문제, 번역자도 문제, 인용하지는 않겠지만 뒷쪽에서는 우리 역사학자와 사회학자들도 문제라고 지적하신다. 가뜩이나 갈 길이 구만 리 같은데, 구십만 리를 만들어 놓으시니 맞는 말씀이건 뭐건 고개 돌리고 싶은 삐뚤어진 남자 syo. 그러니까,『책인시공』에서도 이런 느낌을 받았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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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라투스트라 2017-11-19 2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정수복 선생님의 의견을 그렇게 볼수도 있겠네요

syo 2017-11-20 01:24   좋아요 0 | URL
답답해하시는 것 같습니다...

cyrus 2017-11-20 15:1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독자든 서평가든 책과 작가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할 수 있으면 지적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요. 책과 작가의 좋은 점만 보는 시선에 익숙하면, 문제점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줄어들어요. 물론, 문제점을 밝힌 의견도 비판 대상이 되어야 하고, 잘못되면 의견을 수정하거나 철회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