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뒤뜰이라고 부르기도 뻘쭘한 자그만 땅뙈기에 키 작은 매실나무 하나를 심고 길렀는데 올해도 얼마간의 매실이 달렸다. 구름 낀 날 골라 엄마와 둘이서 다 땄다. 매실나무가 따끔한 녀석이라는 걸 처음 알았다. 가시라고 하긴 조촐하지만 가시가 아니라고 하긴 또 억울할 만큼은 뾰족한 잔가지 들의 공세가 있었다. 따서 씻고 말려보니 광주리 하나를 겨우 덮을 만했다. 바퀴달린 장바구니를 끌고 나가 설탕을 잔뜩 사서 돌아왔다. 술 담글 때 쓴다는 플라스틱 독에 매실을 깔고 설탕을 깔고 매실을 깔고 설탕을 깔았다. 그리도 그 위로 매실을 깔고 설탕을 깔았다. 몇 번을 반복했다. 이게 뭐가 될까?

 

사흘이 지나 들여다보니 설탕은 보이질 않고 진득하고 진한 갈색 물 위로 쪼글쪼글한 매실들이 단내를 풍기며 동동 떠 있다. 긴 주걱을 넣고 휘젓는데 바닥에 깔렸던 덜 녹은 설탕들이 밀물 맞은 바다모래와 썰물 지나간 펄의 가운데쯤 되는 몸짓으로 주걱에 척척 감긴다. 색까지 닮았다. 노 젓는 사공처럼 열심히 저었다. 매실의 작은 몸들이 휘휘 돌아나갔다. 그 위로 달큰하게 퍼지는 갈색 냄새. 냄새만 맡아도 배가 부를 것만 같아서 밥벌이 하는 일꾼처럼 자꾸만 젓고 또 젓는다.

 

적어도 반년은 묵혀 두라고 한다. 열심히 노 저어 갈색 바다를 건너뒀으니 내년에는 매실차를 마시겠다.

 


 비 오는 거리에 서 있어 본 사람이면

 누구나 안다꽃은어느 봄날의 꽃이든

 어두컴컴한 빈 방에 덩그마니 매달린 의자다,

 의자엔 죽음이 걸터앉아 엉덩이를 들썩이며

 비가를 부른다앞뒤로 일렁이며 삶의 비가를,

 노래를 입안으로 흘려 넣으며그래 그렇게

 흔들리며 달이 고개를 돌릴 때까지

 잠시 이런저런 빛깔로 아픔을 노래해 보는 거다

김재혁비가〉 부분


  사람에게 있어서 문장은 풀이나 나무로 보면 아름다운 꽃과 같다나무를 심는 사람은 나무를 심을 때 그 뿌리를 북돋아주어 나무의 줄기가 안정되게만 해줄 뿐이다그렇게 하고 나면 나무에 진액이 오르고 가지와 잎사귀가 돋아나면 그때에야 꽃도 피어난다꽃을 급히 피어나게 할 수는 없다정성스러운 뜻과 바른 마음으로 그 뿌리를 북돋아주고독실하게 행하고 몸을 잘 닦듯이 줄기를 안정되게 해주어야 한다경전과 예를 궁리하고 연구하여 진액이 오르도록 하고넓게 배우고 들으며 예능에 노닐어 가지나 잎이 돋아나게 해야 한다.

  이렇게 해서 그 깨달은 것을 유추하여 쌓아두고 그 쌓아둔 것을 펼쳐내면 글이 이루어진다그것을 보는 사람들이 문장이 되었다고 인정하게 되니이것을 문장이라고 하는 것이다그러니 문장이란 급하게 완성될 수는 없다.

정약용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2

 

실패를 쌓아나가는 것,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가능성이 줄어드는 일이 아니다. 그간 과대평가했던 자신을 똑바로 들여다볼 줄 알게 되는 일에 가깝다. 냉정한 눈을 갖추고, 보폭을 정교하게 재어보고, 거울의 배율을 조정하고, 더 이상의 공수표를 받아주지 않고. 돌아보면, 실제로는 이것을 하면서 저것도 할 수 있는 인간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오해가 길었다. 독이었다. 자기 중독. 증상을 유발하는 맹독이다.

 

욕심이다. 좁게 읽어야 한다. 적게 읽어야 한다. 누구보다 내가 가장 잘 알고 있다. 많은 걸 읽으면 많은 걸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실은 읽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그래왔다.

 


집착하지 않고가장 격렬한 순간에도 자신을 객관화할 수 있고놓아야 할 때에는 홀연히 놓아버릴 수 있는삶에 적절한 거리를 둘 수 있는 그런 태도랄까그렇다고 아무런 열망도 감정도 없이 죽어 있는 심장도 아닌데 그 뜨거움을 스스로 갈무리할 줄 아는 사람상처받기 싫어서 애써 강한 척하는 것이 아니라원래 삶이란 내 손에 잡히지 않은 채 잠시 스쳐가는 것들로 이루어졌지만 그래도 순간순간 눈부시게 반짝인다는 것을 알기에 너그러워질 수 있는 사람그런 사람이 아주 드물다는 건 어린 시절에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기에 동경할 수밖에 없었던 것 아닐까.

문유석쾌락독서


지식인의 지성은 타자의 결점을 지적하는 날카로운 혀에서 나온다고 오해하는 사람이 많습니다만그렇지 않습니다지성은 자기가 범한 죄과와 실패의 유래를또한 그 진행 과정을 명쾌하게 설명할 수 있는지에 따라 판정됩니다어느 지식인이 자신의 실패를 명확하고 분명한 언어로 설명할 수 있다면 그의 지성은 다른 문제에서도 적절하게 기능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강상중우치다 타츠루위험하지 않은 몰락 

 

사이렌의 유혹이 가진 가장 강력한 힘은 실제로 무엇일까요우리는 보통 사이렌의 노래가 너무 아름다워서목소리가 너무 좋아서 저마다 현혹되어 그곳으로 갔다고 생각하는데 카프카는 다른 방식으로 이해합니다사이렌의 노래가 그토록 아름다운 것은 사이렌의 노래 자체가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사이렌에 도전하고 있는즉 신화를 벗어나려고 하는 인간들이 가지고 있는 자만심 때문입니다다시 말하자면 사이렌을 이길 수 있다나는 벗어날 수 있다는 승리를 확신하는 인간들의 도취에 대해 사이렌의 노래는 무엇으로 유혹을 했을까요사이렌은 사람들이 이길 수 있다나는 승자라는 그 자만심을 부추기는 노래를 불러 그 노래를 듣고 따라가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든 것입니다사이렌의 노래는 끊임없이 아양을 떠는 노래입니다그 노래는 인간 속에 숨겨진 자부심숨겨진 승부에 대한 욕망과 같은 것을 자극해인간들이 자기에 스스로 묶여 맹목적으로 사이렌의 섬으로 나아가게 만듭니다인간이 사이렌의 노래를 이길 수 없는 것은 바로 자기가 신화의 세계를 깨고 나올 수 있다는 합리성에 대한 자만심 때문입니다누구도 그러한 자만심을 이길 수 없습니다.

김진영희망은 과거에서 온다

 

 

--- 읽은 ---

+ 고통은 나눌 수 있는가 / 엄기호 : 223 ~ 302

+ 딴 생각 / 김재혁 : 48 ~ 123

+ 아무튼, 요가 / 박상아 : ~ 149

 

 

--- 읽는 ---

= 회계 기초 탈출기 15일 플랜 / 장홍석, 장원희 : ~ 136

= 독일사 산책 / 닐 맥그리거 : ~ 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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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행열반인 2019-06-30 07: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씨(시안화수소?가 거기 많다니) 빼고 쪼개서 설탕에 재고 매실이 너무 물러지기 전에 건져내면 살을 오독거리는 장아찌로도 해 먹을 수 있어요. 큰 꼬맹이가 반찬으로는 매실장아찌만 먹고 맨날 매실차 타달라고 조르고...8할을 매실로 키웠더니 애가 매실만 해.

syo 2019-06-30 08:56   좋아요 1 | URL
어흑 귀엽겠다 매실둥이ㅎㅎ

열반인님 생활의 지혜조차 확보하고 계시는군요. 과연......

반유행열반인 2019-06-30 10:36   좋아요 1 | URL
진실은...저는 매실 배꼽만 따고 나머지는 엄마가 다 했...

다락방 2019-06-30 07: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 참 좋네요, 쇼님 :)

syo 2019-06-30 08:57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 좋은 주말 보내세요 다락방님

수이 2019-06-30 0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꾸 딴 책을 읽게 하시면 어떻게 하시나요_ 근데 회계 기초;;; 저건 읽고 싶지 않네요;;;

syo 2019-06-30 12:00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 뜻밖에 재미가 없지는 않네요. 뉴비의 철없는 즐거움이랄까요...

무식쟁이 2019-07-01 2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매실청을 뱃사공처럼 저으시다가.. 어머님께 등짝스매싱 맞으신건 아니시죠? ㅋㅋ
왠지 매실청 단지는 그대로 가만히 놔둬야 할것 같아서. 신성한 단지처럼. 아주 소듕히.
그런데 아주 씩씩하게 잘 저으셨다고 해서.
글 분위기 안맞게 또 혼자 뽁 터졌어요. 😅

syo 2019-07-01 22:21   좋아요 0 | URL
엄마가 시켜서 저은 노라서 제 등짝의 안보는 튼튼합니다.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ㅎㅎㅎ
 

 

제 아니 오르고 산만 높다 하더라


 

1

 

공무원 시험 공부한다는 새끼의 책상 꼬라지.


사진은 왜 뒤집어져 올라가는지 모르겠다



 

2

 


알라딘이 사진을 멋대로 뒤집길래 일부러 뒤집어서 올렸더니 이번에는 또 그냥 올린대로 올려준다. 대체 이건 뭐하는 새.....



얼핏 책처럼 보이시겠지만 사실 저건 산이다. 요즘 운동을 너무 못하다보니 등산이나 하면 괜찮겠다 싶어서 책상 위에 산책삼아 오르기 좋은 아담한 산을 한번 쌓아 보았다.

 

우공이산이라고, 매일 조금씩 갉아대다 보면 산 하나를 통째로 옮길 수 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아무나 하는 짓은 아니다. 우공밖에 못했으니까 우고 이름표 달고 사자성어로 남은 것이다.

 

결국은 저 중 과반을 포기하고 고스란히 반납하게 되겠지. 그러니까 사실 syo는 책이 아니라 가불받은 포기로 산을 쌓아 놓은 것이다. 어쩌겠어. 그냥 그렇게 읽는 수밖에.




삶에 질식하는 인간에게 구원이란 있는지 묻는다사랑이예술이종교가 인간의 구원일 수 있는지 묻는다자신이 아닌 다른 존재에게 구원을 맡긴다면 그는 그 존재가 흔들릴 때마다 나락으로 추락하거나 어떻게든 그 존재를 구원자로 남겨두기 위해 어리석은 일을 할 것이다그렇다면 인간은 무엇을 바랄 수 있는가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마도 매일의 삶을 기꺼이 살아내는 것절망 속에서 절망을 나의 일부로 만들어버리는 것그래서 단계를 거치며 기어이 조금씩 나아가는 것이지 않을까.

김겨울활자 안에서 유영하기 

 

 

 

3

 

"나는 당연히 내가 옳고 다른 사람들이 내 편을 들어줄 거라고 생각했어요그게 명확했기 때문에 그전까지는 내가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를 돌아볼 필요가 전혀 없었죠." 자기를 돌아보는 것은 선아에게 완전히 새로운 경험이었다. "부끄럽게도 난 나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더라고요다들 사춘기 때 그런 걸 한다고 하는데그때 난 그저 친구들과 노는 게 좋았어요맛있는 거 먹고 놀러 다니는 걸로 만족하며 살았던 것 같아요화가 나면 그냥 화를 내고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살았죠그러다가 처음으로 내가 나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한 거예요."

엄기호고통은 나눌 수 있는가


오래 생각하면 알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생각하는 시간이 부족했던 건지 생각하는 사람이 부족했던 건지, 나는 여전히 내가 제일 궁금하다. 대답 없는 나.

 

세상에서 가장 큰 오해는 끝내 아무것도 오해하지 않았다는 신념이다.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큰 이해는 끝내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다는 단념이다. 세상의 말과 내 말의 결맞음이 흐트러지는 일이 잦아지면서, 신념을 단념하는 법을 틈틈이 배워야만 했다. 나란 놈은 오해하기 딱 좋고 이해하기 너무 어려운 자식이었다는 날카로운 진실에 깎여나가다 보니 어떻게 겨우 어른 흉내를 내게 되었다. 맞닥뜨린 문제들을 틀릴 때마다 처음부터 이럴 줄 알았던 것처럼 별 수 있나요, 저란 놈이 그렇죠.” 하는 변명 반 질책 반의 쓴맛 나는 대사를 입에 올렸지만, 실제로는 누구보다 내가 제일 놀랐다. 아니, 정말 내가 이 지경이란 말이야? 운과 때가 맞아 작은 답이라도 찾아내면 최대한 솔직하게 운이 좋았어요. 정말이에요.” 하며 머쓱하게 웃는 방식으로 대응했지만 실제로는 역시 이 순간에도 깜짝 놀라기만 했다. 아니, 정말 내가 이걸?

 

나는 내가 가장 신기하다. 내가 망쳐 놓은 큰 것들과 이루어 놓은 작은 것들이 다 의아하다. 커서 뭐가 될지도 모르겠는데 일단 여기서 더 클지 말지도 모르는 판이다. 자주 생각해보는데, 정말 자주 생각해보는데, 모르려고 태어난 사람처럼 점점 더 모르기만 한다.


 

 누구나 '내가 보는 세상만이 진실하고네가 보는 건 환상이다'라고 생각하게 마련입니다속으로 생각하는 것은 어쩔 수 없어요하지만 그걸 입 밖으로 꺼내느냐 마느냐는 또 다른 문제입니다. '모름지기 인간은 이래야 한다', '인간 사회는 이래야 한다'는 말을 자제해야 합니다경계는 아슬아슬하게 '인간으로써해야만 하는 일 정도까지라고 생각합니다.

강상중우치다 타츠루위험하지 않은 몰락

 

 살짝 고개를 수그리는 음성들얌전해질 수 없는 여름 햇살에 도로를 기어가는 자동차 소리가 납작해진다오른쪽 창문이 약간 물러서며 이끼 서린 도시의 햇살을 피한다싸게 팔아 버린 어제가 뒤를 돌아보는 오후햇살에 눌린 소리들이 연실 굽신거린다생도 약간 허리를 굽혀 시간 속으로 젖어든다시간의 문은 거인도 지날 만큼 높지만 누구나 허리를 굽힐 수밖에 없는 생이다오후의 소리들조차도 머리를 숙이니 저마다 허리 뒤로 드리워진 건 그림자들 때문이다.

김재혁오후》 전문 

 

 


4

 

하루란 무엇인가. 12시 땡 하는 순간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시간이 하루의 끝인 동시에 시작이라는 이 기막힌 모순에 동의할 수가 없다. 하루의 끝은 잠드는 순간이고, 하루의 시작은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이다.

 

한 달이란 무엇인가. 31, 혹은 30일에서 1일로 넘어가는 순간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시간이 한 달의 끝인 동시에 시작이라는 이 기막힌 모순에 동의할 수가 없다. 사람에 따라 한 달의 끝은 어느 일요일, 시작은 어느 월요일일 수 있다. 혹은 월급날이 한 달의 시작이거나 끝인 사람도 있을 것이다. syo에게는? syo6월은 16일부터 시작이었다. 15일까지의 syosyo가 아니라 공시 보는 공syo였고, 16일부터 진정한 6월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syo의 한달은 16일부터 다음 달 15일까지다. 그런 이유로 성의 변증법은 7월 중순까지 계속 읽는 걸로.....

 

이것 참 면목 없습니다요.

 

이러려면 책을 저렇게 쌓아놓지나 말 것이지.....


 

특히 어려운 글을 써야 할 때마다 내가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있다일단 화장실에 들어가 타일 사이의 줄눈을 벅벅 닦는다티끌 하나 없이 깨끗한 화장실을 원해서도 아니고아무 생각 없이 하는 노동이 창의적인 사고를 자극하기 때문도 아니다그저 줄눈을 닦고 있는 한 나를 괴롭히는 글쓰기 자체에 손을 대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결국 한 인간이 할 수 있는 건 딱 그 정도 아닌가.

앤드루 산델라미루기의 천재들


 

 

--- 읽은 ---

돈이 보이는 손가락 회계 김상현 : ~ 196

+ 나는 오늘 모리셔스의 바닷가를 달린다 / 안정은 : ~246

 


--- 읽는 ---

딴생각 김재혁 : ~ 47

= 고통은 나눌 수 있는가 / 엄기호 : 127 ~ 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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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29 02:1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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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29 07:3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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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9-06-29 0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빵터졌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러니까 성의 변증법을 다 못읽었다, 는 페이퍼인거죠, 이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syo 2019-06-29 07:34   좋아요 0 | URL
왜 눈치 빨라요? ㅋㅋㅋㅋㅋ

단발머리 2019-07-02 15: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무래도 그런 것 같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syo 2019-06-29 07:35   좋아요 0 | URL
아니라고는 하지 않겠습니다만ㅋㅋㅋㅋㅋ큐ㅠㅠㅠ

단발머리 2019-06-29 07:40   좋아요 0 | URL
나도 아직 많이 남았는뎅... 남았다고 해야하나요 빨리 읽겠다고 해야하나요 아님 나한테도 6월은 16일부터라고 해야하나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참고로 나한테도 <오늘은 6월 15일이다>이런 문장으로 끝나는 페이퍼도 있다고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syo 2019-06-29 07:44   좋아요 0 | URL
역시 6월은 16일부터였어. 나만 그런 게 아니었어. 어쩐지 그렇더라니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반유행열반인 2019-06-29 09: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서분류번호 다양한 거 봐... 세상이 전부 다 너무 너무 궁금해 죽겠다!! 하는 주인 책상이 근데 의외로 엄청 깔끔하네요.

syo 2019-06-29 09:33   좋아요 1 | URL
그런 타입 있잖아요, 뭐 좀 제대로 보기전에 책상 정리 열심히 하고, 책상 정리 열심히 하고, 책상 정리 열심히 하는...... 으하하하.

2019-06-29 09: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6-29 10: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6-29 10: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6-29 10: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감은빛 2019-06-29 1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데 어떻게 저렇게 많은 책을 도서관에서 빌리신거죠? 혹시 사설 도서관을 소유하고 계신다거나, 도서관에서 거주하신다거나 그런거 아닌가요?

syo 2019-06-29 13:50   좋아요 0 | URL
사설 도서관이라니 너무 꿈같다ㅎㅎㅎㅎ 이모티콘이나 ‘ㅋ‘ ‘ㅎ‘ 하나 없는 농담이라 더 재밌었어요. 대구는 카드 한 장으로 시립도서관마다 10권, 도합 20권 대출이 가능해서요. 두 군데 가서 10권씩 떼오면 저렇게 됩니다....

감은빛 2019-06-29 13:46   좋아요 1 | URL
와! 한번에 10권씩이나 빌릴수 있군요. 제 기억에 우리동네는 4권 혹은 5권이었던 것 같아요.

제가 평소에 ‘ㅋ‘, ‘ㅎ‘를 쓰는 습관을 들이지 못했어요. 그래도 알라딘에서 댓글 쓰면서 ‘ㅎ‘는 가끔 쓰기 시작했어요. ㅎㅎ

stella.K 2019-06-29 14: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나날과 달월이 때로 지루하기도 하지만
어떤 땐 그 일상도 안온하고 감사할 때가 있더라구요.
좋은 일이 일어나 주면 좋은데 생각지도 못한 악재가 발발하면
악몽같고 이 꿈은 언제깨나 그럴 때가 있지요.
물론 그것도 흔치않아서 다행이긴 하지만.

책 빨리 읽는 사람 부러워요.
난 왤케 느리 읽는지. 덕분에 요즘엔 아무리 신간이 읽고 싶어도 안 사고 있습니다.
이 속도로 책을 읽는다면 지금까지 사놓은 책만으로도 평생은 걸릴 것 같은데
책은 사 뭐하겠습니까?
그래도 2주 안에 책을 사야합니다.
알라딘에서 약발 떨어지는 적립금있다고 빨리 사라고 나참...ㅠ

syo 2019-06-29 18:28   좋아요 1 | URL
스텔라님의 안온한 일상을 응원합니다. 안온한 일상을 누리시느라 알라딘에 잘 안 오시는 거라고 생각할게요.

빨리 읽으나 마나 어차피 죽을 때까지 읽어도 세상 모든 책에 비하면 눈곱만도 못한 분량 읽고 죽을 판인데, 그냥 자기한테 맞고 자기한테 필요한 속도로 읽다 가면 장땡이지 않을까요.....

무식쟁이 2019-07-01 2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쇼님글 복습중..
짬짬이 알라딘 들르면 쇼님글 먼저 찾아봐요.
저는 그간 이뤄 놓은 게 작은 건지 큰건지는 모르겠지만. 소중한 건 그 크기랑 상관없는 것 같아요.

syo 2019-07-02 20:51   좋아요 0 | URL
복습 그런 거 하고 그러지 마세요. 시간 낭비.....
세상에 좋은 책 많으니 얼른 거기에 투자하세요ㅎㅎㅎ
 

 

제 얘기 들리시나요, 들리시면 say ho.....

 

 

1

 

유전자만큼 신묘한 게 없다. 90년대 초까지는 엄마 손잡고 나가면 즈그 어마이 쏙 뺐다는 말을 듣고, 아빠 손잡고 나가면 영판 즈그 아부지네소리를 듣던 어린 syo가 살았다. 심지어 우리 엄마랑 아빠는 입심 드러운 상놈과 세상물정 모르는 훈장님 네 막내딸처럼 달라도 너무 달랐는데! 부부는 닮아간다는 속설에 빅엿을 멕이고, 끝까지 다른 얼굴로, 스무 몇 해를 사실상 남남 같은 부부와 사실상 부부 같은 남남으로 살았던 우리 엄마 아빠. 그런 그들이었기에 syosyo의 동생은 그들이 부부라는 최소한의 미학적 증거인 셈이었다.

 

 

 

2

 

유전자만큼 신묘한 게 없다. 어린 날에는 엄마와 아빠 사이의 기막힌 그라데이션과도 같았던 자식의 얼굴은, 어느 시점부터 급속도로 균형이 붕괴하여 누구 한 사람 쪽으로 대차게 수렴한다. syosyo의 동생은 어느덧 아빠를 닮아있다. , 아빠를 닮은 얼굴을 한 syo의 동생은 아빠를 닮은 syo를 오빠라고 부른다. 망했구나. 어흑, 불쌍한 것.

 

 

 

3

 

그러나 망했기로 치면 syo도 크게 꿇리진 않는다. 사내놈이 아버지 닮는 게 뭐 별일 아닐 수 있지만, 21세기의 대한민국은 우리 아버지 닮은 syo보다 엄마 닮은 syo에게 훨씬 더 호의적인 시공간이다. 엄마가 아빠한테 늘 져줬듯이 엄마 유전자가 아빠 유전자한테 져주는 바람에 syo는 세상으로부터 다정한 대접을 받기 위해 별도의 이런저런 기술들을 익혀야 했다. 노멀 상태의 눈매가 굉장히 싸가지 없어 보이는 편이라 평상시에도 부러 눈을 동그랗게 뜨고 다닌다. 이미 똥그래져 있다 보니 어지간히 놀라운 이야기를 들어도 표정의 변화가 미미해서, 뜻밖에 사이코패스 같다고 빈축을 사기도 한다. 좀 더 선량해 보이기 위해 눈웃음 웃는 연습을 오래 했는데, 그러다 젠장, 눈으로 안 웃는 법을 까먹어 버린 거라. 이십 대의 언젠가, 너 닭갈비집 이모한테 눈웃음 살살 치더라? 그래서 그 이모가 계산할 때 사이다 빼 준거 아니야? 하는 말을 여친에게 들은 후 다시 오랫동안 눈은 안 웃는 연습을 해야 했다


그걸로 끝도 아니다. 3때 별명은 비버였다. 범인은 앞니. 친구들이 자꾸만 댐을 만들어 달라고 했다. 3이 고입 준비하기 바빠 죽겠는데 댐 만들 시간이 어딨어. 비버는 입을 닫고 웃는 법을 연습했고, 고등학교 때쯤은 그야말로 불교학교 학생 답게 자비로운 미소 스킬을 마스터, 밀려드는 건축 의뢰를 은은한 입웃음으로 원천봉쇄하고 정석 풀이에 몰두할 수가 있었다. syo비버 이제 장사 안한대. 입 닫았대. 운운. 어쨌든 후천적인 노력으로 얼굴 이곳저곳에 붙어 있는 아빠발 실점 포인트들을 만족할 만한 수준까지 솎아낼 수 있었다. 이제 딱 하나, 최고의 적수가 남았다. 그것은 바로 수염.

 

 

 

4

 

syo의 수염은 정말 최악의 형태로 자란다. 일단 수염이 하루 종일 균일한 속도로 자라는 게 아니다. 얘네가 기지개를 쎄게 펴는 타이밍이 있다. 이게 10시에서 11시 사이다. 3시간만 일렀어도 아침 세면시 면도로 상당부분 해결할 수 있었을 것을. syo10시 반에 가장 많이 듣는 말은 면도 안했냐?”. 했다, 했어! 열라 열심히 했다고! 9시 55분에 면도를 해도 10시를 통과하면 이렇다고! 내가 진짜 면도를 안 하고 나왔으면 면도 안했냐?”가 아니라 면도 안하냐?”라고 물어볼 수밖에 없었을걸! 이라고 내면의 아우성을 지르는 일이 많았다.

 

그렇다고 수염이 되게 폼나게 자라는 것도 아니다. 고시원 생활 하던 시절 눈 딱 감고 한 번 일주일을 길러보았는데, 이틀에서 사흘째 되는 지점에서 더 자라나지 않았다. 조금만 더 자라주면 일부러 기른다는 느낌을 주는 길이가 되는데, 거기까지만 가면 살짝 다듬구 나서 "취존 좀요" 이러면서 우겨 볼 수도 있겠는데, , 이건 정말 누가 봐도 귀찮아서 면도 안한 거지 절대로 뜻을 품고서 이따위 기장으로 길렀다고는 생각할 수 없는 딱 그런 조잡한 길이까지만 수염이 자라더라.....

 

게다가 이놈의 수염이 굵어서 안 밀어주면 모공에 꽉 들어차 피지의 자연스러운 배출을 억압하는 것 같다. 자꾸 뭐가 난다. 나면 면도할 때 긁힌다. 아프고 입주변이 너구리처럼 얼룩덜룩해진다. 수염을 기르면 검게 얼룩덜룩, 수염을 깎으면 붉게 얼룩덜룩이다. 단순히 내 취향이 빨강색이라서 면도하는 수준이다. 어차피 하나 안하나 내 입가는 화개장터다.

 

 

 

5

 

, 다른 건 몰라도 정말 수염만큼은 A/S 받고 싶다. 불효아들놈 엿 먹으라고 이런 걸 주고 가셨나요. 차라리 똥을 남기셨다면 냉큼 치워버리기라도 하지...... 가만히 계시지 말고 뭐라고 말씀 좀 해 보시라구요......

 

 

 

한 줄 요약.

 

모공에 자꾸 뾰루지가 나서 아팠쪄요, 징징징.

 

 

 

--- 읽은 ---

+ 활자 안에서 유영하기 / 김겨울 : 133 ~ 244

+ 위험하지 않은 몰락 / 강상중, 우치다 타츠루 : 110 ~ 303

 

 

--- 읽는 ---

= 쾌락독서 / 문유석 : ~ 108

= 고통은 나눌 수 있는가 / 엄기호 : ~ 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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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19-06-27 2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ay ho~~~~~~
클렌징~~~~~~~ ㅎㅎㅎㅎㅎㅎㅎ

syo 2019-06-27 23:27   좋아요 0 | URL
수도 없이 바꿔가며 시도해 보았지만 큰 효과를 보지 못했다고 합니다. 얼굴을 새 걸로 사는 게 답인 것 같은데요....

반유행열반인 2019-06-27 2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기 얼굴로 디스하는 건...그래도 이 정도는 귀여운 수준의 패드립이네요ㅋㅋ 저도 부모님께 반품하고 싶은 부분 많습니다. 아프로곱슬, 대문 앞니, 건성 피부, 단신, 안 사요, 다 가져가세요! 하고.(진짜 불효새끼다 나...)

syo 2019-06-27 23:29   좋아요 1 | URL
그것 말고 좋은 거 뭐라도 물려주신 게 있었으면 저도 이렇게까지 후레자식놀음은 하지 않았을 텐데 말이에요..... 지랄같은 성격과 좁아터진 마음, 골수에 스민 귀차니즘 같은 것들이 전부 부계 혈통의 특성이라 이건 도무지 분노하지 않을 길이 없다!!

반유행열반인 2019-06-28 07:33   좋아요 0 | URL
진짜 나쁜 건 왜 다 아빠가 준 걸까요 저도 물려 받은 거 중에 제일 나쁜 건 역시 겉으로 안 보이는 것들인 듯...그래도 엄마가 좋은 걸 조금은 줘서 사람 시늉?은 하고 사는 거니 남은 분께 감사하고 효도해야겠죠...

syo 2019-06-28 09:01   좋아요 1 | URL
자꾸 닮아가서 문제입니다. 말투랄지, 짜증내는 스타일이랄지 이런 드러운 것까지 너무 비슷해서 저도 깜짝깜짝 놀라고 그러거든요 ㅎㅎㅎㅎ

이생망 이생망 신나는 노래.....

반유행열반인 2019-06-28 09:47   좋아요 0 | URL
그래도 나름 극뽁하기 위한 눈웃음, 자비로운 미소 등의 노력에 긍지를 가지셔도...유성생식의 신비!덕에 닮기도 1/2만 닮았잖아요. 후대에는 1/4, 1/8...하다보면 개선의 여지도...나쁜 닮은 부분을 인정하고 의식하고 자중하니까 이번 생도 인류의 미래?도 완전 망한 건 아닐 거에요.(하, 이거 왠지 나 자신을 다독이는 소리 같다?)

2019-06-28 00: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6-28 09: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감은빛 2019-06-28 15: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염을 한 달 이상 길러보시면 또 다를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는 오래전에 한 달 반 가량 길러봤습니다. 그때 적어도 내 눈에는 꽤 멋있어 보였죠.
당시 저를 만난 지인들 중 대다수가 (아마도 인사 치레였겠지만) 멋있다고 했었죠.
그래서 계속 수염을 길러보려고 마음을 먹었지만, 관리하는게 훨씬 더 힘들더라구요.

나중에 아이들이 좀 더 자라서 고정 지출이 줄어들면 급여 받는 일을 그만둘 생각인데,
그때쯤 되어서는 다시 수염을 길러볼 생각입니다.

syo 2019-06-28 21:54   좋아요 0 | URL
저는 수염이 어울리지도 않고 취향도 아니라서, 레이져 같은 걸로 아주 아작을 내 버리고 싶은 마음 간절합니다. 다만 그게 너무 아프대요..... 아픈 게 너무 싫어서 못한다는 ㅠㅠ

북다이제스터 2019-06-28 2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항상 듣고 있습니다.
say ho...^^ㅎㅎ

syo 2019-06-28 23:33   좋아요 0 | URL
ㅎㅎㅎ 많은 분들이 say ho를 해주시네요. 기쁘게도.
항상 읽어주셔서 감사하구요.

사실 저 say ho는 아버지한테 한 말이었거든요.....

DYDADDY 2019-07-01 08: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Ho~ 저도 유전자 AS 받고 싶어요. ㅋㅋㅋ

syo 2019-07-01 10:12   좋아요 1 | URL
ㅎㅎㅎㅎㅎ 사람 맘 다 똑같나봐요....

뒷북소녀 2019-07-07 20: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세이 호호호호호~~~~~~~~~~~~`
 

23

 

 

1

 

아메리카노와 먹 간 물의 차이를 치열하게 고찰하던 코찔찔이가 있었다. s모라는 작자다. 대학생활의 끝물쯤 되자 그는, 카페인은 내 고독한 인생의 필수품, 에스프레소 한 잔은 내 지친 전두엽을 위로하는 아스피린과도 같지- 따위의 허세(=지랄)도 떨 줄 아는 으른 남자가 되었다. 그렇게 되기까지 그는 자기 자신을 참 치열하게도 속여 왔다. 이게 맛있는 거야. 쓸개즙 맛 같겠지만 이게 고급진 거야. 생각해 봐, 쓸개즙 먹어본 적 있어? 없지? 왜 없을까? 고급지니까! 넌 이걸 마셔야 해. 마실 줄 알아야 해. 여기가 어디야? MAN, 여긴 SEOUL CITY. 모름지기 MAN OF SEOUL라면 AMERICANO정도는 CAN DRINK해야지? GOT IT? 마셔, 들이켜, 익숙해질 때까지 들이 부어! 인상 쓰지 마. 인상 피라고. 저기 저쪽에 앉은 여자가 널 얕잡아 볼 모양이다! 지지 마. 웃어. 힘이 들면 안성기를 떠올려. 그리고 그윽한 표정을 지어. 음미하는 연기를 하란 말이야. 하다 보면 진짜 맛있어진다. 먹다 보면 정말 맛있어진다. 맛있어진다. 맛있어진다.....

 

이렇게 맛있어졌다. 그 결과 오늘날에는 맑으면 두 잔, 비 오면 석 잔을 정량으로 친다. 하루 한 잔도 버거웠던 날들과 일곱 잔씩 들이부었던 날들 사이에서 오르락내리락하다 찾아낸 균형점이다. 근데 이것도 거의 강박이라, 언제였던가, 맑은 서울에서 아침 점심에 한 잔씩 마시고 밤에 대구 내려왔더니 비가 내렸길래 반잔만 꺾어 마신 날도 있었다. 어쩌다 내가 이렇게까지 하는 놈이 된 건지 나도 잘 모르겠지만, 그런 나조차 사랑하기로 하자. 요즘 자기오구오구 주간이다. 그리고 장마의 시작이다. 커피 소비량이 1.5배 증가할 것으로 예측되어 새로이 주문을 넣었다. 대책없이 대량으로. 박스째 올 것이다. 오구오구 잘했어요. 올해 내내 먹을지도. 오구오구 그것도 잘했어요. 괜찮아. 카페인은 내 고독한 인생의 필수품, 하루 세 번 반드시 입 안을 애무하는 치약과도 같지. 오구오구 지랄도 잘했어요.

 

syo(와 그의 친구 )의 아메리카노 적응기는 사실 더 길고 지난한 이야기다. 굴욕과 수난, 뻔뻔함과 시기질투, 스타벅스아이스바닐라라떼투샷얼음빼고주세요가 어우러진 철저한 개인사지만, 동시에 사회 문화의 변동 양상을 잘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번듯한 미시사라고 볼 수도 있는데, 오늘은 오늘 치 커피를 다 마셨기 때문에 차마 쓸 수가 없다. 그리고 앞으로도 웬만하면 쓸 일은 없을 듯하다. 카페인은 물론 알콜의 도움도 상당히 필요하기 때문이다. 참 아쉽다(핵뻔뻔).

 



  사치에는 그렇게 말하며 심호흡을 했다미도리는 진열된 과일을 들고 하나씩 향을 맡았다.

  "도쿄에 있을 때 가끔 고급 슈퍼마켓에서 장을 봤습니다월급을 받은 직후에요구경 온 것 같은 직장 여성들한테 난 당신들하고는 차원이 좀 달라하고 으스대고 싶은 마음이었다고나 할까요지금 생각해 보면 직장 생활을 하는 주부가 장보러 나온 것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았을 텐데 말이죠양상추 한 통 800양배추 600조개관자 몇 개가 1200굉장한 가격이죠머리 한구석으론 '비싸집 근처 채소 가게나 생선 가게에서 사면 몇 분의 일만 줘도 살 텐데생각하면서또 다른 마음은 고급 슈퍼마켓에서 장을 보는 게 우쭐했습니다그러나 그건 그걸로 끝이더군요이곳 시장처럼 장을 봐도 즐겁지가 않았습니다괜히 허세를 부려놓고는 집에 돌아와서 봉지에서 물건들을 꺼내 가격을 보고는 새삼 놀라고 그랬죠그런데 그러면서도 기분은 왠지 나쁘지 않더라는 거죠이상한 반복이었습니다어디가 잘못됐던 걸까요."

  미도리는 여전히 진열된 과일을 손에 들고 킁킁 냄새를 맡았다.

무레 요코카모메 식당


추억이란 게필요 없다고 어디 없던 시간이 되나요기억하고 싶지 않은 공기까지도 기억의 방바닥에 꾸덕꾸덕 눌어붙어 기어코 추억으로 변질되고 마는 것을요잊히기 위해서라도 존재해야 하는 시간들.

김나연모든 동물은 섹스 후 우울해진다

 

 


2

 

열흘쯤 놀다시피 읽었더니 다시 공부가 하고 싶어졌다. 또 열흘쯤 공부하다 보면 읽으면서 놀고 싶겠지. 내가 이따위라서 큰 인물이 못 되고 고작 syo가 된 것이다. syo. 모든 행보가 갈지자인 남자. 망하고 망하고 또 망해도 망할 짓만 골라하는 이 망할 노무 자슥 같으니라고.

 


 

3

 

어차피 못 쓸 거라면 못 써도 나같이 못 쓰고 싶다. 누가 syo 아니랠까봐 열라 syo같이 썼군, 이런 말을 들으면 퍽 좋을 것 같다. 그게 잘 썼다는 뜻이건 못 썼다는 뜻이건 간에, 어쨌든 syo의 글이 syo같기만 하다면, syo가 괜찮아지면 syo의 글도 괜찮아지는 거니까, 글 따로 syo 따로 키울 필요 없이 syo만 키우면 되니까, 얼마나 편해. 왜 글이 그 따위에요- 물어오면, 죄송합니다, 제가 이따위라서 그만- 하고 대답하면 땡이니까, 얼마나 편해.

 

잘하자 인마.


 

독자들은 어떤 작품에 대해 자전적이지 않느냐고 묻는다나의 대답은 이렇다모든 소설은 궁극적으로 자전적이다작가는 여러 권의 책을 통해 한 편의 자서전을 쓴다우리는 우리의 삶을 통해 우리의 이야기를 만들어간다그런 점에서 누구나 작가다.

이승우당신은 이미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목장으로 이사 와서 처음 한두 해는 책을 등한시했다책은 그저 벽을 장식하는 가구였다그런데 이렇게 대번에 옛날 습관으로 돌아가고 있다.

  롤랑 바르트를 읽고 있는데 이런 말이 나온다. "나의 메시지를 정확하게 전하려면(다시 말해 내 미시지의 의미를 정확하게 표현하려면), 다른 말로 바꾸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독창적인 말아무도 쓴 적 없는 말로 바꾸어야 한다."

  어떤 일을 할 때 그 일 자체를 진짜로 하려면 그것을 습관으로 만들어선 안 된다그 일을 통해 경험을 얻었거나 인식을 얻었다면 그 일 자체를 진짜로 한 것이 아니다.

  바르트는 문학에 대해 말하고 있다나는 모든 일에 적용할 수 있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일을 너무 잘하게 되면 그 일이 재미없어진다.

  똑같은 농담을 두 번 연속으로 하기는 어렵다.

  양들이 계속 신비로움을 간직해 주기를.

  언젠가 양들이 전기의 허점을 찾아내는 날이 오기를.

악셀 린덴사랑한다고 했다가 죽이겠다고 했다가

 

 

 

4

 

뭐라도, 짧은 거라도, 매일 찌끄려보는 게 먼 훗날을 위하여 좋으려나 생각하는 중.

 

어차피 사흘에 한 번, 혹은 묵혔다가 일주일에 한 번 쓴다고 해서 뭐 더 봐줄만한 게 나온 건 딱히 아니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면......


 

글을 써도 고통스럽고 글을 안 써도 고통스럽다그러면 쓰는 게 낫다뭐라도 하다 보면 시간이 가니까슬프지만 일을 하고슬픈데도 밥을 먹고슬프니까 글을 쓴다그렇게 하루를 보냈으면 내일도 살 수 있다서툴더라도 자기 말로 고통을 써 본다면 일상을 중단시키는 고통이 다스릴 만한 고통이 될 수는 있다그러므로 우리 뭐든 써보자고 하며 저마다 무언가를 쓰기 시작한다.

은유다가오는 말들


일기는 작품화하지 못한 '잡문'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니다작품으로 담아내지 못한 덜 정제된 재료도 아니다오히려 울프의 일기는 소설과 동등한 지위를 가진 독자적 장르다소설가 울프를 가능하게 만든 삶의 언어가 바로 일기라고 할 수 있다그래서 오히려 그는 일기에서 소설의 형식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마음을 실험했다에세이가 현상에 대한 분석을 전제로하는 것이라면 그의 일기는 형식 자체로부터 자유로워 보인다 한 주제에서 다른 주제로 넘어가는 것도 개의치 않는다생각나는 대로 기술하고 있지만그 기술은 현실의 전개다이 전개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그 무엇도 아닌 울프의 관점이다.

이택광버지니아 울프 북클럽

 

예측할 수 없는 일 가운데서도 가장 이상한 것이 일기를 쓰는 일이다일기에 대해서는 나는 아무것도 예견할 수 없다좋은 것이라고 다 좋은 것이 아니고 나쁜 것이라고 다 나쁜 것이 아니다내면의 가장 풍부한 창고에 빛을 비추더라도 나의 계산대에 올라오는 것은 그저 조잡하고 값싼 재료들 뿐이다하지만 몇 개월이나 몇 년이 지나고 나면 이 혼란스러운 더미 속에서 육로를 통해 가져온 중국의 희귀한 유물이나 인도의 보물이 나올지 모른다마른 사과나 호박을 줄로 이어놓은 듯한 너저분한 것이 나중에는 브라질의 다이아몬드와 코로만델의 진주를 엮어놓은 보물로 밝혀질지 모른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소로의 일기

 

 

--- 읽은 ---

+ 세월 / 아니 에르노 : 188 ~ 309

타자와 욕망 문성원 : 109 ~ 168

해질녘에 아픈 사람 신현림 : ~ 117

+ 과학책은 처음입니다만 / 이정모 : 283 ~ 430

+ 미루기의 천재들 / 앤드루 산델라 : 117 ~ 239

 

 

--- 읽는 ---

현상학 한전숙 : ~ 64

활자 안에서 유영하기 김겨울 : ~ 133

= 희망은 과거에서 온다 / 김진영 : 68 ~ 150

세상을 알라 리하르트 다비트 프레히트 : ~ 52

= 위험하지 않은 몰락 / 강상중, 우치다 타츠루 : ~ 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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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26 22: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6-26 23: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단발머리 2019-06-27 00: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난 그 의견, 찬성이네요.
매일 쓴다 = 매일 올린다 = 매일 알라딘
매일매일매일!!!

syo 2019-06-27 07:13   좋아요 0 | URL
생각해보면 이게 뭐라고 고민까지 하는지 모르겠어요. 오늘은 비가 왔다. 커피를 마셨다. 참 재미있었다. 요렇게 그림일기 스타일로 딱 쓰기만 하면 하루 친데 ㅎㅎㅎㅎ

단발머리 2019-06-27 07:46   좋아요 0 | URL
오늘은 비가 왔다. 커피를 마셨다. 참 재미있었다. 이런 이야기도 누가 풀어가느냐 하는 게 중요한 거 아니겠습니까.
최근에, 아주 급박하게 절실히 바쁜 일 없으시다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렇게 하시는 걸로 하시지요~~~~~~~

단발머리 2019-06-27 07:47   좋아요 0 | URL
추신이요...
시간도 정하면 안 되나요? 오전 10시, 오후 4시... 이런 식으로요^^
from 매일 올라오는 syo님 글 정기 속독할 1인

syo 2019-06-27 12:48   좋아요 0 | URL
앜ㅋㅋㅋㅋㅋㅋ
잠깐 사이에 이분들이 힘을 합쳐서 제 일정을 굉장히 디테일하게 짜고 계시네요.....

2019-06-27 01: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6-27 07: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19-06-27 08: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 매일 올리십시오! (명령. 매우 단호함. 웃는 표정 절대 없음.)

단발머리 2019-06-27 11:03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의 이 단호함을 잘 아는 나로서는.... 흠흠..... syo님 걱정되네요.
글 매일 안 올리면 대구 기차표 끊을 태세입니다.
난 더 이상 권하지 않는 걸로요^^

syo 2019-06-27 12:47   좋아요 0 | URL
아..... 괜한 일을 저지른 것 같아.....

psyche 2019-06-27 08: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다말고 아메리카노 한 잔 뽑아왔네요. 이 글 읽을 때는 꼭 커피를 마셔야만 할 거 같아서... ㅎㅎ 매일 글 올리시면 열심히 읽을 독자 여기 또 있습니다.

다락방 2019-06-27 08:37   좋아요 1 | URL
프시케님, 저도 아메리카노 한 잔 마시고 있어요! 건배!

단발머리 2019-06-27 11:01   좋아요 0 | URL
아이스 라떼도 같이 해도 되죠? 건배!!!

다락방 2019-06-27 11:04   좋아요 0 | URL
모두 건배!

syo 2019-06-27 12:46   좋아요 0 | URL
아니, 여기 왜 이렇게 핫플레이스죠? ㅎ

다들 몰래 몰래 커피에 알코올 한 방울씩 넣으신 것처럼 신나셨어 ㅎㅎㅎ

반유행열반인 2019-06-27 08: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은 꿉꿉하고 꾸물거리는 날씨이니 아메리카노 3잔 드실테고 그러면 적응(중독)기 써 주세요? 네?네? 하면 못 이기는 척 써 주시는 거죠? (히야 큰 그림이었네...난 여기 또 낚이네...) 커피맛보다 글맛이 더 중독적이네요. (키햐 syo뽕에 취한다...여기 한 잔 더! 이런 느낌...)

syo 2019-06-27 12:50   좋아요 0 | URL
이렇게 시끌벅적해질 줄은 몰랐어요.
커피 적응기는 쓰려면 거기에 반드시 등장하게 되어 있는 친구놈의 허락을 받아야합니다.
걔한테 득될 게 없으니 가능할지 모르겠어요.

득될 것 없기로는 syo도 마찬가진데....

반유행열반인 2019-06-27 13:11   좋아요 0 | URL
계속 조금씩 흘리면서 글쎄 가능하려나...사전 허락...득과 실...이러시니 과대광고 내지 거대한 심리전략 광고 아닙니까! 궁금해서 일상생활 불가능 정도니 금단현상을 조만간 해결해주세요. (적응 마친 친구님한테는 뇌물로 커피 바치면 허락이...안 되려나...)

syo 2019-06-27 13:30   좋아요 1 | URL
앗.... 걸렸네 마케팅 전술ㅋㅋㅋㅋ

너무 별 이야기 아니라서 오히려 더 못 쓰겠어요. 어떻게든 뭔가 만들어볼려는 유혹에 넘어가서 MSG 잔뜩 칠 것 같아. 묵혀놨다 언젠가 넌지시 스리슬쩍 풀어놔야겠어요 ㅎㅎㅎㅎ

감은빛 2019-06-27 2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우유와 커피를 못 마셔요. 아메리카노는 가끔 물어보지 않고 사람 수대로 뽑아오는 경우 마시기는 하는데, 내가 먼저 마시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없어요.

예전에 서점 영업 다닐때 작은 서점 사장님들이 꼭 반드시 믹스 커피 한 잔씩을 타주시는데, 아까 마셔서 안 마시겠다고 해도 그러면 안 된다고 반드시 손에 한 잔을 쥐어줍니다.

하루에 서점 대여섯 군데 돌면 대여섯 잔의 믹스 커피를 마셔야 했어요. 좋아하지도 않고, 몸에도 좋지 않은 믹스 커피.

그때 그런 생각을 했죠. 서점 갈 때마다 꼭 한 잔씩 맥주를 주면 하루에 100군데 들러야해도 좋다고 갈텐데. ㅎㅎ

syo 2019-06-27 21:22   좋아요 0 | URL
네? ㅎㅎㅎㅎ
‘몸에도 좋지 않은‘ 믹스 커피는 대여섯 잔도 안 드시지만
맥주라면 100잔도 드신다구요? ㅎㅎㅎㅎ

감은빛님과 저는 정말 다른 세계의 사람이네요.
전 낮 영업에 유리하고 감은빛 님은 저녁 영업에 유리하신....

북다이제스터 2019-06-28 2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카모메 식당 좋아 하시면 핀란드 꼭 가보셔야 합니다. ㅎㅎ
제가 판란드 갔었다고 예전 말씀 드렸는데,
그때 유치원생들을 유치원에서 뾰족뾰족 돌산에 뛰놀게 하더라구요. 어찌나 제가 놀랐던지...
우리나라면 학부형들이 엄청 큰 항의나 데모할 정도였습니다.
그런 위험한 곳에 놀게 풀어놓고서 얀테의 법칙을 쉽게 풀어 설명해 주더라구요.
얀테의 법칙이 무슨 뜻인지 통역해서 들으니 북유럽 그들 교육 방식과 철학이 이해되더라구요. ^^

syo 2019-06-28 23:36   좋아요 0 | URL
역시 핀란드.....
저는 식견이 짧아 잘은 모르지만 핀란드를 위시하여 그 주변 나라들은 그냥 존경스럽습니다.
그런 게 국민의식만으로 되는 것도 아니고 시스템만 가지고 되는 것도 아니잖아요.

살아보고 싶다.....
 

 

입문천국 불신지옥


1

 

입문서, 개론서, 청소년용으로 조리된 학습서 등등을 입문서로 통칭하기로 하고,,

철학, 사회학, 정치학, 경제학 등등 대체로 머리 빠개지는 사상학문들 철학으로 통칭하기로 하면,

 

 

 

2

 

언젠가 ‘철학 입문서의 아이돌이 되어 버리겠노라는 욕망 같은 게 있었다.

 

비전공자에게 철학은 지나치게 어려운 학문이고, 절대적으로 불필요한 것은 아닌 듯 보이지만 난도나 투입노력에 비해 상대적으로불필요해 보였다. 알음알음 듣기로는 철학자라는 괴물들조차 모든 철학 원전을 다 읽는 것이 불가능하며, 그러다보니 지상이 평화로운 가운데 저 구름 위에서는 그들만의 전쟁이 항시 벌어지는 중이라 했다. 하이데거 하는 모질이들아, 니들이 니체를 똑바로 읽었으면 이렇게 깝치지는 못했을 거다. 놀고 있네, 우리도 니체 다 읽었거든요? 그리고 니가 니체를 읽으면 얼마나 읽는다고 나대냐, 니가 하이데거보다 니체 더 잘 읽냐? 쯧쯔, 저 니체 것들 하이데거 것들 또 싸운다 싸워, 여러분, 우리는 저런 진흙탕에 발 담그지 맙시다, 칸트 공부하는 사람 가오가 있지......

 

이런 실정이므로(허위사실), syo같은 무지렁이(한없이 투명한 사실)는 당초에 어지간하면 원전을 읽지 않기로 다짐하고 신포도 전략을 발동했다. 철학 저거저거, 너무 많이 알면 왕따 당한다.

 

철학하는 사람들은 늘 공포의 대상이었다(‘꺼림존경이 부적절하게 버무려진 느낌인데 이걸 꺼존혹은 존꺼따위로 부를 수 없(지만 부르고 싶다)어서 생각해봤는데 공포가 딱이었다. ‘경외는 이쪽이 너무 작아지는 것 같아서 기분 나빠). 그들과의 대화 국면이 내포하는 가장 큰 문제점은, 당최 뭔 말인지 알아듣기 힘들어서 내면은 찢어지는 비명을 지르고 있는데도, , 지금 저는 너무나도 잘 알아듣고 있사옵니다- 하는 표정 연기를 지속적으로 수행해야 한다는 데 있다. , 맞아요, , 그러네그러네정말그러네 같은 사운드 이펙트를 적재적소에 배치하고 어색하지 않은 톤으로 재생하는 일이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요구하는지 아시나요? , 철학도여, 그대는 진정 나의 당도둑놈, 당신과 만나면 나는 언제나 현기증이 납니다. 제발이지 나와 만날 때는 티라미수를 지참해줘요...... syo는 저런 부담스러운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그런 와중에도 또 잘난 척은 하고 싶었어! 그렇다면? 정답은 입문서.

 

syo는 이런 말을 좀 들었다. 이야, 변증법적 유물론이라는 게 그런 거였구나, 되게 쉽네? syo 너하고 이야기하면 철학이 되게 쉬운 것 같아서 좋아. 그럴 때면 늘, 뭘 또 그런 말까지, 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거리며 syo는 속으로 생각했다. 으하하하, 당연히 쉽지, 열라 후려쳤으니까! 다 깎아먹었으니까! 으하하하하, 내가 아는 건 죄다 껍데기야. 니들도 원숭이 한 권만 읽으면 다 알게 되는 수준이라고, syo같은 무지렁이들아. 으하하하하하! 언제나 지금처럼 우리 함께 무지렁거리자꾸나! 무지렁무지렁 투게더!

 

물론 저렇게까지 생각하는 미친놈은 아니지만(확신할 수 있는지?), 어쨌든 함께 무지렁댈 수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건 언제나 힘이 되는 일이었다.

 


 

3

 

입문서 덕질의 최대 장점은, 통상적으로 비례 관계에 있는 지식깝침사이의 연결고리가 끊어진다는 데 있다.

 

전문가들의 눈에는 하찮아보일지 모르겠지만 입문서를 쓰는 사람 역시 전문가들이다(통상적으로). 다른 전문가들로부터 이딴 걸 써놨네 하는 욕을 들어먹지 않기 위해서라도, 그들은 자신의 입문서에 이것만은 반드시싶은 것들을 빠뜨리지 않고 쑤셔 넣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그 결과, 아무리 입문서라지만 꼼꼼히 읽고 나면 어쨌든 아는 게 생긴다.


그런데 그 아는 것이 원전을 통해 깨달은 게 아니라는 인식은 독자를 조심스럽게 만든다. 말이란 옮겨지면 달라지고 독해는 '독자적인 해석'의 준말이므로(날조다), 누군가를 독해하는 것과 누군가의 독해를 독해하는 것은 결코 같지 않다. 결국 내가 아는 마르크스는 원숭이가 듣고 알려준 마르크스인 것인데, 그 결과, 내가 아는 변증법적 유물론이 마르크스의 바로 그것이라고 말하며 권위를 확보하려는 욕망이 발기하는 순간, 갑자기 머릿속에 마르크스 대신 원숭이 얼굴이 똭! 원숭이가 바나나로 내 양심을 뽝! 슬그머니 입 닥치게 만드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조심하게 된다.

 

실제로 마르크스를 원전으로 읽어도 내가 깨친 것이 똑바로 깨친 것인지를 확신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원전의 아우라를 훔쳐내 원전 읽은 놈이라는 아우라를 풍겨 보겠노라는 욕심은 불가항력에 가깝고 그건 syo같은 무지렁이일수록 더 저항하기 힘든 욕망이다. 따라서 애초에 딱, 입문서까지만 읽고, 깝침을 원천봉쇄하기로 한다.

 

정신승리.

 

 


4

 

그런 이유로(?) 오늘도 역시 syo는 입문서 세 권을 읽고 있는데 재미지다.


스피노자에 대해 쓰신 이수영 선생님의 문장은 스피노자를 닮았다. 벤야민을 강의하시는 김진영 선생님의 문장은 벤야민을 닮았다. 그런데 레비나스에 대해 말하시는 문성원 선생님의 문장은 레비나스와 안 닮았다! 이런 불일치는 입문서 덕후의 입장에서 보면 미덕에 가깝다. 일치가 악덕이라는 것은 아니지만. 문성원 선생님의 다른 책을 월초에 조금 읽다가 반납했는데, 그 책에서 선생님의 문체는 이렇지 않았다. 입문서에서는 입문서의 글을 쓴다, 그러면서도 문장의 수준을 포기하지 않는다, 이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몇 쪽 안 읽고 바로 문성원 선생님의 팬이 되었다.

 

그렇게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조금씩 자라던 팬심이 대폭발하는 순간이 있었는데, 이렇다. 대괄호[]syo가 붙였다.

 

정확하게 옮긴 건 아니겠지만언젠가 도올 김용옥 선생이 텔레비전에 나와 이런 식의 말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강준만 교수의 말마따나 도올은 타고난희대希代[](또는 戲臺[])의 엔터테이너 철학자나는 김용옥 선생의 강의를 대부분 재미있게 시청했다[]. 어떤 때는 정확하지 않은 얘기를 너무 자신 있게 해서 듣기에 조마조마 하기도 했지만[], 그것도 보는 재미 중 하나였으니까[]...... 남들이 쉽게 할 수 없는 이야기를 거침없이 내뱉은 시원시원함이[자잘한 부주의와 과도한 자신감이라는 허물을[덮어버리곤 했다자못 심각한 문제까지 무겁지 않게 만들어버리는 풍모[]가 단저미라면 단점이지만어떻든 부러운 재주를 가진 인물이 아닐 수 없다[]. 그 나름의 통찰력과 진지함을[자기도취적 코믹함과 경박함[]이 완전히 감추지는 못한다도올은 근래 펴낸 한 책에서 종교와 관련해 이렇게 말한다.

문성원타자와 욕망, 55


, 독자가 방심하지 못하도록 움켜쥐는 저 절묘한 단짠의 조화를 좀 보라지. 심지어 단짠단짠단짠단짠하면 단조로울까봐 단짠단짠단단짠짠단단짠이라는 신묘한 변칙 패턴 구사까지! 사실은 첫 문장과 마지막 문장 사이에 있는 것들은 그야말로 사족인데도, 이미 선생님의 현란한 드리블에 넋이 나간 syo의 눈에 이제 그런 건 보이지도 않는다.....

 

심지어 저 대목은 하이데거를 비판하기 위해서,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레비나스가 하이데거를 똑바로 읽지 않았다고 비판하는 어느 선배 학자의 견해를 비판하기 위해서 문성원 선생님이 배치해 놓은 대목이다. 저 문단에 이어지는 도올의 말은 하이데거를 아주 대차게 까고 있다. 그러니까 선생님은 자신의 입이 아니라 도올 선생님의 입을 빌려와 차도살인계를 쓰신 것인데...... , 진심 뤼스풱ㅌ.

 

 

 

--- 읽은 ---

+ 하늘이 담긴 손 / 김영래 : ~ 130

+ 우리가 알아야 할 도시재생 이야기 / 윤주 : ~ 184

+ 말하기 힘든 것에 대해 말하기 / 우치다 타츠루 : 124 ~ 371

+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 /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 67 ~ 223

+ 있지도 않은 자유를 있다고 느끼게 하는 거짓자유 / 엄윤진 : 186 ~ 312

 

 

--- 읽는 ---

= 타자와 욕망 / 문성원 : 38 ~ 107

= 서울, 도시의 품격 / 전상현 : ~ 56

= 희망은 과거에서 온다 / 김진영 : ~ 67

= 미루기의 천재들 / 앤드루 산델라 : ~ 117

최무영 교수의 물리학 강의 / 최무영 : ~ 122

= 에티카, 자유와 긍정의 철학 / 이수영 : ~ 130

= 과학책은 처음입니다만 / 이정모 : 155 ~ 283




+ 덧, 혹시나 궁금하실까봐, 앞서 언급된 '원숭이' 삼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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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행열반인 2019-06-25 05: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지렁무지렁...입문서 저자의 목소리가 원전과 닮았다 아니다를 말하는 거 자체가 이미 무지렁이 아니란 말입니다!! 책꽂이에 분명 니체의 위험한 책 어쩌구, 자본을 넘어선 어쩌구 등등 많은 입문서가 꽂혀 있는데 그분들이 그래서 뭐라 그랬는데? 하고 누가 물으면 제 머릿 속은 타블라라싸 하며 응? 몰라..좋은 말씀..하고 하얘지네요. (지금은 스타 사탐강사가 되어 나를 만나주지도 않는 선배 언니가 oo야 막스가 어쩌고저쩌고 하부구조가 어쩌고 그래서 어쩌고지? 묻는 걸 단칼에 아, 몰라요. 했다가 00야 공부 좀 하고 살자, 해서 빈정상하고 연락 씹던 십 여년 전의 부끄러운 회상도...) 입문서라도 꼭꼭 씹어 썰 풀어주는 syo님을 곁에 둔 친구들은 참 좋겠다!

syo 2019-06-25 08:37   좋아요 1 | URL
언급하신 두 책 다 제 책장에도 꽂혀 있네요. syo가 사랑하는 고쌤 이쌤..... 좋지만 쉽진 않은 책들이었던 것으로...

뭐가 부끄러우시다는 건지 잘 모르겠어요. ‘oo좀 하고 살자‘ 드립은 원래 ‘우리 이쯤에서 서로 왕래없이 지내기로 해‘ 라는 말의 우회로 버젼 아니었나요?? 아니었나??

제 친구것들은 저의 소중함을 전혀 모릅니다. 말많아 귀찮은 놈 취급이지요. 산소 같은 친구 syo여.... 없어져봐야 syo 귀한 줄 알지(알까?)

반유행열반인 2019-06-25 08:47   좋아요 0 | URL
고농도 산소 하에 살기 어렵게 진화해서 그렇겠죠...왕잠자리도 공룡도 될 수 있는데! 아마 syo님을 서울에 빼앗?기고 나서야 산소의 소중함을 깨달을 거에요...syo님께 영업 당해서 이번에는 고쌤 이쌤 대신 임쌤을 영접해 보려 합니다...공대생 출신 철학 저자라니 syo님이랑 비슷?하시네요. 낚였네 낚였어...

syo 2019-06-25 08:54   좋아요 1 | URL
고농도 산소 ㅋㅋㅋㅋㅋ 와 이제 사람들한테 syo 또 욕 먹는다 ㅋㅋㅋㅋㅋ 싫어요 버튼이 없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독서괭 2019-06-25 15: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무튼, 입문서 쓰셔야 한다니까요..
이반 데니소비치 읽으신 걸 보니 수용소군도에 도전하실 생각이신가요? ㅁ

syo 2019-06-25 15:38   좋아요 0 | URL
그 두꺼운 책 세트가 구비는 되어 있지만, 시작을 할 수 있을지...... 너무 두렵습니다ㅠㅠ

다락방 2019-06-25 15:39   좋아요 1 | URL
오! 아무튼 입문서 너무 좋은 아이디어에요!!

감은빛 2019-06-27 2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때 저는 저 원숭이 책 욕 좀 하고 다녔습니다. 입문서도 나름의 방식이 있고, 그 나름의 개성이 있는데, 저런 방식은 개인적으로 좀 거부감이 들어서요.

syo 2019-06-27 21:54   좋아요 0 | URL
저도 마르크스를 원숭이로 시작한 게 아니다보니 처음에는 그랬거든요. 함량면에서 상대적으로 약한 것도 사실이구요. 근데 현실적으로 원숭이조차 읽히지 않다보니..... 아예 안 읽는 것보다는 저런 형식이라도, 하는 마음에 아낌 없이 추천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