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염 소나타

 

 

1

 

뜻밖에 장염을 맞아 모처럼 이틀 연속 집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누워있지만. 사르르 급이라도 지속적으로 배는 아프고, 물을 마시고 그 물을 싸는 것으로 소중한 시간을 탕진하고 있다. 그런데도 정신적 육체적 고통의 총량을 비교해 보면, 엄마 있는 병원의 병실이나 엄마 없는 집의 안방이나 도찐개찐이다.

 

 

 

2

 

병원에서 밤을 보내면 합계 한 시간은 넘고 두 시간은 못 되는 수준으로 잘 수 있다. 합계다. 결국 30시간쯤 제대로 못 잔 상태에서 집으로 돌아오면 대충 되는 대로 입에 집어넣는다. 입에 집어넣으면서 자게 된다. 많이 자면 12시간도 잔다. 분명 8시에 침대에 올라갔는데 눈 떠보니 750분이면 살짝 어리둥절하다. 어쨌든 일어나면 한참을 뒹굴거리며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의 고마움을 음미하다가, 칼로리고 나발이고 정말 먹고 싶은 거 하나 시켜놓고 씻는다. 먹고 책 좀 읽는 동안 시간은 뚜벅뚜벅 저 혼자 잘도 가고, 그럼 나도 시간새끼 따라 병원에 가야 한다.

 

이런 삶이 반복되던 중이었다.

 

 

 

3

 

그래도 하루에 200쪽은 읽었고, 쓰려면 쓸 수도 있었다. 쓸 게 없어서 그렇지. 아니다. 쓸 것도 많았다. 하루에도 몇 번씩 엄마가 되었다가 애기가 되었다가 하는 엄마를 돌보고 있노라면 하고 싶은 말, 쓰고 싶은 이야기가 무진장 샘솟았다. 그러나 따져보니 그 모든 이야기가 결국 징징대는 소리로 귀결될 것이 자명했다. 위로하는 사람들 입장도 생각해야지. 허구한 날 그런 글을 읽으면 아무리 다정한 사람도 지치는 법이잖아? 나는 알라딘에 슬픔과 피로를 뿌려대는 스프링클러가 되고 싶진 않거든- 하는 논리를 시작으로 쓰지 않아야 할 이유들이 줄줄이 꿰어져 나왔다. , 이거 내가 쓰기 싫은 거구나. 내가 지금 안 쓰고 싶어서 명분 까는 중이구나.

 

그랬다고 합니다.

 

 

 

4

 

그러던 중 내 장이 꿈에도 생각 못했던 장염과 우연히 만나 심오하고도 따가운 대화를 나누게 된 것이다. 몸의 주인은 침대에 누워 그들의 회담이 무사히 끝나기만을 기다리고 있는데, 생각보다 협상이 수월하게 진도를 빼는 듯, 키보드 두드릴 여력이 생겨 이렇게 노트북 앞에 앉게 되었다. 이 한 바닥의 글을 다 채우는 동안 화장실에 몇 번 갔다 오는지 세어봐야겠다. 벌써 손가락은 접혀 있다.

 

 

5



하나뿐인 이단 우산은 제대로 펴지지 않았다성격 급한 할아버지는 이미 저만치 걸어가고 있었다버튼을 누르면 자동으로 펴지는 우산이었지만 버튼도 듣지 않았고 수동으로 펴지지도 않았다비는 굵은 방울로 떨어져 내렸다이런 날씨에 우산 하나 제대로 챙겨오지 않은 할아버지에게 화가 났다골목 끝에 편의점이 있었지만나에게는 우산을 살만 한 돈이 없었다.

  할아버지는 빠른 걸음으로 걸어가다가 뒤를 보더니 손을 흔들며 괜히 웃었다나는 고장 난 우산을 들고 할아버지에게 뛰어갔다울음을 겨우겨우 참으면서할아버지 앞에서 눈물을 보여서는 안 된다고 다짐하면서나는 할아버지에게 우산을 건넸다.

  "이딴 거 필요 없다비가 많이 오는 것도 아닌데왜 울고 그래?"

  나는 할아버지에게서 다시 우산을 뺏어서 우산을 펴려고 낑낑댔다.

  "우산이우산이 펴지질 않잖아저번만 해도 잘 됐는데꼭 필요하면 이래."

  "눈물도 쌨다이리 줘."

  할아버지가 우산을 조금 만지자 꼼짝도 않던 우산대가 활짝 펴졌다할아버지는 허허 웃으면서 나에게 우산을 씌워줬다할아버지가 쓰고 가라고 해도 막무가내였다비는 점점 더 거세졌다정류장까지라도 같이 가자고 하니 할아버지는 괜찮다고그냥 이대로 가겠다고 말했다그 말을 하는 할아버지의 눈이 빨개졌다울고 싶으니까 그냥 풀어달라는 눈빛이었다나는 할아버지의 손을 놓았다할아버지는 뒤도 한 번 돌아보지 않고 곧장 앞으로 걸어갔다.

최은영쇼코의 미소

 

실컷 마음을 두들겨 맞고 잉잉거리면서 덮은 것은 최은영의 책이지만, 결국엔 늘 김금희의 손을 들어주는 이유는 선명하다. 문장 때문이다. 오로지 이야기에만 복무하는 최은영의 문장. 이야기를 싣고 가기에 문장이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기 때문에 이야기는 담백하고 선명하지만, 문장 그 자체로 빛나는 구절이 적은 최은영의 글쓰기. 그래서 최은영의 작품을 옮겨 적을 때면 늘 문장이 아니라 문단을 옮겨야 한다. syo에겐 그렇게 통째로 옮겨야 하는 작가가 또 있다. 줌파 라히리가 그렇다. 그런 이유로 syo는 이들을 너무 사랑하지만, 역시 그런 이유로 가장 좋아하는 작가를 꼽아보라고 하면 최은영과 줌파 라히리를 그 안에 집어넣지 않는 데 조금의 망설임도 없다. 결국 최후의 한 자리는 감정도 취향도 모두 만족시킬 수 있는 이를 위해 남겨두는 것인데.

 

최근에 읽은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의 김초엽도 syo에겐 그런 작가군의 한 사람이다. 김초엽은 아마도 최은영과 싸워야 할 것이다. 지금과 같은 글을 줄곧 쓰기로 한다면, 최은영을 이겨내지 못하고서는 김초엽은 멀리 가지 못할 것 같다. , 그리고 문장도.


 

김초엽의 문장은 아쉬운 데가 있기까지 했다. 접속사나 조사를 고를 때, 좀 더 다양한 선택지를 열어두고 생각했다면 좋지 않았을까? 같은 음절이 부주의하게 반복되는 문장은 입 안으로 몇 번 더 궁굴려 보고 썼다면 좋지 않았을까? 읽으면서 저런 생각을 꽤 했다. 어떨 때는 김초엽이 쓴 문장에 글자나 획 하나 더하고 빼지 않고서 그저 단어의 배열만 바꾸어 훨씬 더 맛있는 문장을 syo가 직접 만들어내 보기도 했다. 물론 취향이 작용했겠고, 다들 나처럼 생각하진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syo 입장에서도 소설을 읽으면서 이런 식으로 즉각 더 나은(낫다고 내가 생각하는) 문장이 떠오르는 경우는 정말 드물다.

 

이 타이밍에 화장실을 다녀왔는데, 한 번 물러났다 돌아와서 보니 내가 갑자기 왜 김초엽을 까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아무래도 장과 염의 회담이 답답하게 꽉 막힌 상태라 영향을 받은 듯하다. 얼른 답보상태가 끝나고 시원하게 뚫렸으면 좋겠다. 뚫린 내 장처럼…….

 

 

 

6



시몬 드 보부아르는 가르치고읽고쓰는 일을 계속하느라 정치에는 여전히 신경 쓰지 않았다그녀는 독일에 포로로 잡혀 있는 사르트르를 그리워했다아침에는 로댕 미술관 옆에 있는 뒤리 고등학교에서 가르치고오후에는 리슐리외 거리에 있는 국립도서관에서 헤겔을 공부하고저녁에는 따뜻한 카페에서 지칠 줄 모르고 첫 소설을 교정했다그녀는 이 소설에 초대받은 여자라는 제목을 붙이기로 했다삼각관계에 관한 이야기였다밤 시간은 신중하게 계획했다일주일에 이틀 밤은 샤를랭 호텔에 묵고 있는 제자 나탈리 소로킨과 함께 보냈고토요일 밤은 부상에서 회복하여 파리로 돌아와 몽마르트르 푸아리에 호텔에서 숙박하는 자크 로랑 보스트와 보냈다보스트는 토요일을 제외하면 코자케비치 자매 중 한 명인 새 애인 올가와 함께 샤를랭 호텔에서 지냈다이 같은 성적 문란에는 호텔 안팎의 맹추위도 부분적으로 기여했다고 할 수 있다보부아르는 힘껏 일해서 젊은 세 여성과 보스트를 금전적으로 도와주었다.

아녜스 푸아리에사랑예술정치의 실험 파리 좌안 1940~50

 

멋있다. 진심 멋쟁이. 저것보다 더 멋진 사람이 되는 일이 과연 가능한 걸까? 뭘 더 하면 그게 될까?

 

뭔지는 몰라도 일단 그게 장염은 아닌 것 같다. 화장실에 자꾸 들락날락거리는 건 아무래도 멋이 없다…….

 

 

 

7

 

급 ㄸ, 급 마무리…….

 

죄송합니다.


생활도, 필력도, 제자리를 찾으려면 아무래도 약간의 시간은 필요한 것 같다.

 

 


--- 읽은 ---

+ 잊기 좋은 이름 / 김애란 : 149 ~ 303

+ 세상에서 가장 쉬운 통계학 입문 / 고지마 히로유키 : 147 ~ 238

+ 소소한 일상의 물리학 / 제임스 카칼리오스 : 53 ~ 278

+ 동의 해신 서의 창해 / 오노 후유미 : 215 ~ 355

 

 

--- 읽는 ---

= 한 문장으로 시작하는 경제학수업 / 박홍순 : ~ 158

= 다시, 책으로 / 매리언 울프 : ~ 72

= 사랑, 예술, 정치의 실험 : 파리 좌안 1940-50 / 아녜스 푸아리에 : ~ 111

= 쇼코의 미소 / 최은영 : ~ 181

=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를 모르고 / 이제니 : ~ 83

= 인문학 개념정원 / 서영채 : ~ 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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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9-09-20 1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서 최은영의 작품을 옮겨 적을 때면 늘 문장이 아니라 문단을 옮겨야 한다‘

이제야 쇼님이 왜 최은영보다 김금희가 좋다고 하는건지, 그게 무슨 말인지 확실히 알았어요. 이거였어. 문장이 아니라 문단을 옮겨야 한다는 거. 크- 명징하네요.

몸조리 잘해요, 쇼님.

syo 2019-09-20 14:05   좋아요 0 | URL
살짜쿵 온 장염이라 괜찮습니다. 약 먹고 했더니 이제 아픈 것도 거의 없고요.
김초엽 까놓고 다른 글 읽다 보니, 김초엽 칭찬하는 글과 그 글에 달려 있는 다락방님의 댓글을 발견하게 되었어요.
비록 나는 깠지만 하여튼 신기한 기분 ㅎㅎㅎㅎ

다락방 2019-09-20 14:22   좋아요 0 | URL
거기가 어딘지, 그 댓글이 뭔지 알겠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2019-09-20 14: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9-20 14: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9-20 14: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9-20 14: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단발머리 2019-09-20 14: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전 최은영이 더 좋아요. 왜냐면, 김금희는 딱 한 작품만 읽어봤거든요. 그래서, 최은영이 더 좋아요, 나는요.

많이 나아지셨다니 다행입니다. 잘 알고 계시겠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장염 걸렸을 때는 물도 벌컥벌컥 안 마시는 거 아시지요? 물을 꼭꼭 씹어먹습니다, 장염 환자는요^^

syo 2019-09-20 14:13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 감사합니다. 지금까지는 벌컥벌컥 먹었지만 지금부터는 꼭꼭 씹어먹을게요.
처음부터 그리 쎈 놈은 아니었어서, 그냥 컨디션 나빠서 생긴 해프닝쯤으로 취급하고 있어요.

최은영 vs 김금희는 사실 투표로 해보자면 좀 싱거운 싸움이죠.
저도 두 사람 책을 각각 한 권씩만 읽었을 때까지는 압도적으로 최은영 파였거든요ㅎㅎ

반유행열반인 2019-09-20 14:17   좋아요 0 | URL
저는 최은영은 두 권 읽고 김금희는 한 권 읽었는데 김금희 쪽 손 번쩍 들고 사 둔 김금희 두 권은 아끼는 중이에요.

다락방 2019-09-20 14:19   좋아요 1 | URL
저는 김금희 세 권 읽고 좋아졌지만 두 권 읽은 최은영이 더 좋아요.

반유행열반인 2019-09-20 14:20   좋아요 0 | URL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만큼 빅타이틀 매치군요.

단발머리 2019-09-20 14:21   좋아요 1 | URL
휴우~~~~~~ 다행이에요. 이러다가 전략적으로 김금희 싫어할 뻔 했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님 댓글을 최은영이 좋아합니다.
syo님, 반유행열반인님의 댓글은 김금희가 좋아합니다.

다락방 2019-09-20 14:22   좋아요 1 | URL
김금희랑 최은영은 좋을것 같아요. 누군가가 자신들의 작품을 읽고 이쪽이 더 좋아 저쪽이 더 좋아 하고 있으니 말예요. 이 얼마나 흐뭇한 일입니까!

syo 2019-09-20 14:23   좋아요 0 | URL
전 두 사람 실제로 만나면 어떤 사이인지가 궁금할 때가 있고 그래요 ㅋㅋㅋㅋㅋ

반유행열반인 2019-09-20 14:31   좋아요 1 | URL
https://mobile.twitter.com/aladinbook/status/1017675812496027648
폭풍 검색으로 알라딘이 ‘두 작가가 서로의 작품을 읽고, 서로에게 건넨 이야기까지!’ 하는 부분을 찾아 syo님의 궁금증을 다소 해소해 보려 했으나!(나도 궁금했다) 종료 행사라면서 링크가 깨져있네요. 알라딘...내놔라 얼른...

stella.K 2019-09-20 15: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며칠 안 나타나서 걱정했습니다. 그런데 장염소나타라니...
그쪽으로는 걱정을 안 했던지라 뜨악하네요.
그래도 어쨌든 나아지는 것 같으니 다행입니다.
아프면 새롭게 보이는 것들이 있지요. 스요님 스프링클러는 끕이 좀 다르잖아요.
나중에 기회있으면 쫘~악 뿌려보시길.ㅋ
저는 김영하나 김연수, 김중혁 정도는 알겠는데 요즘 작가들은 하나도 모르겠더군요.
3김이 자신의 이름을 알린 땐 90년대 말, 2천년 초인데(물론 지금도 왕성하긴 하지만) 요즘 작가들 생각하면
내가 소설을 안 읽어도 너무 안 읽는구나 찔리네요.
김초엽이나 최은영이 이 페이퍼를 읽으면 좋을텐데.
어느 독자가 자신의 작품에 대해 이렇게 자세히 쓰겠습니까? 거의 문학평론이네요.

어머니는 어떠신지, 빨리 나으셔야 할 텐데...
그래도 스요님 잘 지내는 것 같아 다행이란 생각이 듭니다. 멘탈이 좋은네요. 이거 칭찬입니다.ㅋㅋ

syo 2019-09-20 15:28   좋아요 0 | URL
3김이요? ㅋㅋㅋㅋㅋㅋㅋㅋ
김영하 김연수 김중혁이 문학판 3김이었단 말입니까! 충격적인 네이밍이네요 ㅋㅋ

그럴 일은 없겠지만, 김초엽 작가님이나 최은영 작가님이 이런 글은 안 봤으면 좋겠습니다.
그냥 개인적인 취향과 문장관(?)을 드러낸 것일 뿐이잖아요 ㅎ

스텔라님도 젊은이들의 소설에 재미 한 번 붙여보세요.
어쨌든 새 시대는 오는 거잖아요. 어렵고 성미에 안 맞아도 피하기만 할 수는 없는 듯.

어머니의 고통은 하루하루 경감되고 있지만, 막상 퇴원의 날이 언제가 될지는 미지수네요.
걱정과 염려 감사합니다. 제가 원래 멘탈 쪽으로 좀 특출난 데가 있습니다 ㅋㅋㅋㅋ


책읽는나무 2019-09-20 15: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궁 장염!!
장염엔 물도 미지근하게 조금만 마셔야할 판인데 음식을 시켜 먹었다는 건?? 그거 아니죠???
흰 쌀로만 된 죽을 먹어야할 때인 것 같은 증상으로 보입니다.???
병원약 잘 챙겨 드시고 하루는 죽 드세요.
신경 쓰이는 일이 많아 장염까지 가신게로군요?언능 회복하시어 돌아오세요^^

저는 글과 댓글을 읽고 있자니...나는 최은영인가?김금희인가?또 골똘히 생각을 하게 되었네요.
딱 정확히 아직은 화살표를 표시하진 못하겠으나....저는 살짝 최은영 작가쪽이랄까요?^^
최은영의 <쇼코의 미소> 첫 책이 가장 강렬하여 콩깍지가 씌어....ㅋㅋ
최은영은 편안하고 김금희는 이뻐요.
내가 느끼는 소설은 그렇네요.
몇 권을 안읽어 앞으로 더 많이 읽어야겠지만요.
아...전 옛날부터 김애란 빠순이라서 더욱 최은영 작가와 김금희 작가들에게 맘을 덜 주려고 애쓰는지도??ㅋㅋㅋ
무튼 두 작가님들 열렬한 팬들이 많아 기분 좋으시겠습니다^^



syo 2019-09-20 15:31   좋아요 0 | URL
네. 아닙니다.
그렇게 시켜 먹고 살던 요즘이다.
그리고 어제는 장염에 걸렸다.

이런 두 줄 짜리입니다 ㅎㅎㅎㅎ 제 문장이 후져서 오해를 양산했군요.

최은영은 편안하고 김금희는 이쁘다는 말씀이 어떤 뜻인지 와닿는 바가 있어요.
그리고 김애란 작가님 때문에 두 작가에게 맘을 덜 주려하신다는 말씀도 와닿는 바가 있구요.
저 같은 경우는 황정은 작가님이 등판하면 상황 종료....

책읽는나무 2019-09-20 15:45   좋아요 0 | URL
아....그렇군요?
늘 오독하여 문장 해독 수준이 딸려 큰일입니다^^

안그래도 요즘 황정은 작가에 꽂혀 행복한 여름을 보낸 장본인입니다.
syo님의 글이 엄청 큰 힘을 실어 주셨어요.다락방님이나 자목련님의 글도 기억에 많이 남았었는데 syo님의 애정하는 문구는 궁금증이 일어 안되겠어서 옛 책을 읽다가 그만 전작을 했었어요.
오호....읽을수록...오호....
기분 좋았어요.
황정은의 소설속에 빠져 지낸 시간들이요.
syo님께 감사하다고 전하고 싶네요^^

이래놓고 전 또 말과 행동이 다르게 김금희 작가님 인스타 들어가서 열심히 ‘좋아요‘누르고 있습니다요ㅋㅋㅋ
얼마전 책 내고 감기 걸려 골골 한다고 인스타 올라왔던데....작가와 독자 두 분 다 골골이네요.
두 분 다 빨리 떨쳐내고 각자 활동 개시 하셔야죠.^^


syo 2019-09-22 20:00   좋아요 0 | URL
전작당하셨군요. 역시 우리의 황작가님, 꽂히면 전작 말고는 탈출 방법이 없지요. 제가 한 게 뭐가 있겠어요. 오히려 책나무님 말씀 덕분에 저도 다시 황작가님 전작을 할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든 걸요. 제가 감사합니다.

장염은 거진 떨쳐낸 것 같습니다. 내일은 다시 엄마 병원에 갈 수 있겠어요^^

hnine 2019-09-20 15: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염을 굳이 장염소나타라고 부르시는 문학 사랑 syo님.
소나타 형식에 의거하여 재현부를 지나 코다단계로, 어서 끝나시길 바라겠습니다.
저는 이디스 워튼의 징구를 읽으면서 이야기는 재미있는데 문장도 그만큼 나를 움직였나 생각했더랬습니다.
얼른 쾌차하세요.

syo 2019-09-22 20:03   좋아요 0 | URL
도대체 장염소나타라는 말이 왜 갑자기 튀어나왔을까 해서 찾아보니까,
김동인의 <광염소나타>라는 작품이 있었더라구요.
이번 세기 초반쯤 학교에서 아마도 이름만 들어본 수준으로 접해본 기억이 있는데 그게 뇌리에 남아서 저런 제목을 뽑아내는군요. 주입식 교육의 은총입니다.

징구는 여기저기서 추천받아서 꼭 읽어보고 싶은 동시에 부담도 있었는데, hnine님의 말씀을 들으니까 부담이 덜어지는 것 같습니다. 들러주시고, 좋은 말씀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비연 2019-09-20 2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른 쾌차하세요! 장염 따위 휙 던져버리고~ 전 최은영은 <쇼코의 미소>만 읽었고 김금희 작품은 심지어 읽어본 적이 없네요. 최은영의 소설은 감동이 아예 없었다는 아니었지만 그냥 너무 평범하다 싶었어요. 근데 위에 인용한 ‘문단’ 만큼은 맘에 남더라구요. 김금희 작품을 한번 읽어는 볼까나.

syo 2019-09-22 20:05   좋아요 1 | URL
장염 따위를 휙 던져버렸습니다. 뼈다귀 해장국을 섭취할 정도로 상태를 회복했지요!
최은영 작가님 작품 속에 인용할 만한 ‘문단‘은 정말 많지만, 그렇게 이야기 전체를 통으로 전달하는 건 예의도 뭣도 아닌 것 같아 늘 고민이 되곤 합니다.

문득, 비연님의 마음을 채울만한 소설은 어떤 녀석들일까 궁금해지네요.
들러주셔서 감사합니다^-^

cyrus 2019-09-21 1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내일 비 오고 날씨가 습해지면 장의 상태가 안 좋아질 수 있어요. 따뜻한 음식과 물을 챙겨 드세요. ^^

syo 2019-09-22 20:06   좋아요 0 | URL
잡아냈습니다. 저는 비가 오면 체력 회복 속도가 빨라지는 타입입니다.
커피를 세 잔 마시거든요. 으하하하.

카알벨루치 2019-09-22 16: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태풍부는데 장염소나타는 연주완결되었나요? 우째 ㅜㅜ

syo 2019-09-22 20:06   좋아요 1 | URL
아, 마지막 악장, <뼈다귀 해장국>을 연주하며 아주 성황리에 공연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염려해주셔서 감사합니당 ㅎㅎㅎ

레삭매냐 2019-09-23 09: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장염의 추억...

오래 전 독서모임에 나가기로 했습니다.
그전날 지인과 족발을 뜯고서는 그만
장염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이건 뭐...
병원에 가서 수액을 맞아야 하는데 도저
히 걸을 수가 없더라구요. 그리하야 독
서모임 주최하시는 분에게 연락을 드렸
죠.

근데 그 분에게 찍히고 말았습니다 -
막판에 약속 깨는 사람이라고 말이죠.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요.

그 사건을 계기로 타인에 대한 이해를
넓혀야겠다 뭐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하고나서 비로소 이해하는 것들

 

 

 

1

 

나는 살면서 수도 없이 물었다. 늘 확신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나는 과연 엄마를 사랑하고 있나?

 

 

 

2

 

아버지라는 사람은 아버지로서는 낙제점을 간신히 면하였으나, 남편으로서는 최악을 바라보는 차악의 수준이었다. 그 결과 말년을 앞두고 병실에 누웠을 때 의례로서가 아니라 진심으로 찾아오는 이는 친구 한 사람밖에 없었으니 그 인생을 성공이라 하기는 어렵겠다. 아들이 보고 인생을 배울 교재로서의 아버지는 참고서라기보다는 오답노트에 가까웠지만, 그럼에도 아버지라는 인간 개인의 태도나 마음, 잘못 고른 것으로 결론 난 낱개의 선택들을 나는 이해할 수가 있다. 그만큼 나는 그 사람과 닮았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엄마를 이해할 수 없었던 것과 똑같은 이유로, 나도 엄마를 이해할 수 없었다. 교복을 입기 시작했을 무렵부터 이미 엄마는 내 이해력의 범위 밖에 있었다. 집에서 입던 옷을 침대 위에 던져놓고 나갔다 돌아오면, 그 옷들은 항상 침대 옆에 있는 옷걸이에 걸려있다. 엄마, 뭐 하러 옷을 걸어놨어, 밖에 나갈 때 입는 옷도 아닌데. , 그렇게 침대 위에 너저분하게 늘어놓았다가 손님이라도 와서 보면 뭐라 하겠어. 니가 나갈 때 좀 걸어놓고 나가면 좋잖아. 그 말은 맞다. 우리 집에 손님이라는 존재가 마지막으로 방문한 지 5년도 더 넘었다는 사실과, 손님이 온다 한들 기어이 저 방문을 열어 안의 정리 상태를 점검할 이유가 없다는 사실과, 그리고 무엇보다, 손님들은 거실 바닥에 깔려 있는 홈쇼핑 책자, 마른 가지가 꽂혀 있는 작은 화분들, 혈압계, 혈압약 봉지, 정리한 거라고 주장하지만 사실 그냥 일렬로 놓여있을 뿐인 휴지와 물티슈 두 통, 알 수 없는 기준으로 주워온 조약돌 여러 개, 등받이가 박살난 고물 의자와 그 아래 놓여 있는 쓰레기통 등등이 너저분하게 흩어져 있는 풍경을 목격한 후에야 방에 들어와 침대 위에 놓인 옷 두 벌을 점검할 수 있다는 사실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엄마의 말은 맞다. 엄마, 거실이 더 엉망이야. 손님들이 저거 보고 뭐라 하겠어. 좀 치우고 정리하면 안 돼? 이제 엄마가 입을 꾹 다물 시간이다.

 

 

 

3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사랑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하며 오래 살았다. 그러나 그 생각은 삶의 영역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을 미워하는 방식으로 실천된다. 그래서 엄마를 이해하려 시도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그 일에 실패했는데, 아버지보다 더 매정하고 공학적이고 되바라진 인간인 내가 성공할 수 있을까? 그래서 하지 않았다. 성공도 실패도 하지 않으려고. 엄마를 그냥 엄마로, 저런 사람인 것으로, 영원히 그 속을 알 수 없지만 굳이 알 필요도 없는 사람의 자리에 가져다 놓고 살았다. 미워하지 않는 대신 사랑하지 않았다. 엄마를 위해서였다. 이기적인 헛소리 같지만, 최소한 내 눈에, 나는 엄마를 미워하면서도 너끈히 살 수 있는 인간인 반면, 엄마는 내게까지 미움 받으면서는 단 하루도 살기 힘든 약하고 불쌍한 사람이라서. 아들이 무뚝뚝하긴 해도 자신을 사랑하지 않을 리가 없다고 확신하며 엄마가 살아가는 동안, 아들은 엄마에 대한 자신의 사랑이 사랑은 사랑일지언정, 통상적으로 사용되는 사랑이라는 단어의 범주 안에 없다고 확신하며 살고 있었다. 한 지붕 아래서, 때론 다른 도시의 다른 지붕 아래에서 잠을 자는 동안, 이렇게 두 사람의 생각이 만나지 않았다.

 

 

4

 

그러나 이제는 그런 건 아무래도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엄마는 꼼짝도 못하고 침대에 누워 밤새도록 얼마 나오지도 않는 쓴물을 토해내고, 그걸 토해내느라 온몸을 움찔거리면서 아직 아물지도 않은 수술부위에서 오는 진통에 신음한다. 아들은 보호자용 침대에 누워 눈 감았으나 잠들지 못하고 있다가, 엄마의 숨소리가 흩어지는 순간 벌떡 일어나 봉지를 엄마의 입가에 가져다 댄다. 엄마가 한줌도 안 되는 쓴물을 토하고 나면 아들은 휴지로 엄마의 볼과 머리카락을 닦고, 다시 물티슈를 꺼내 눈가에 고인 눈물을 닦고, 반대쪽으로 접어 입가와 볼을 한 번 더 닦는다. 그쯤 되면 엄마는 다시 짧은 잠을 청하고 있다. 금방 코를 곤다. 아들은 엄마의 머리에 올린 물수건을 뒤집고, 물 한 모금 못 넘기는 엄마를 내려다 보며 물 한 모금 넘겼다가, 침대에 앉았다가, 누웠다가, 잠깐 눈을 감아도 본다. 어차피 10분 뒤면 다시…….

 

그래서 나는 생각한다. 아버지보다 더 매정하고, 공학적이고, 되바라진 나라는 인간이, 아버지의 뼈를 뿌리고 돌아서는 순간부로 30년을 이어오던 친가쪽 모든 친척과의 연을 단칼에 끊어버리고도 일말의 망설임, 후회, 양심의 가책이 없었을 만큼 ‘혈연'을 우습게 여기는 나라는 인간이, 단지 피붙이라는 이유만으로 사랑하지도 않는 사람의 옆에서 이런 새벽을 보낼 수 있는 그런 인간인지를.

 

이해할 수 없는 일을 계속 하고, 아이처럼 고집을 피우고, 입을 꾹 다물고, 멋대로, 하고 싶은 대로, 그냥 아무렇게나 해도 좋으니까, 다시 이 사람이 우리집 거실에 앉아 TV를 보는 모습을, 하나도 재미없는 장면에 혼자 크게 웃으며 박수치는 그 모습을 보고 싶다.

 

 

 

5

 

엄마의 용태가 좋지만은 않다. 수술 자체는 잘 되었다고 하지만, 애초에 나이든 몸에서 신장 하나를 통째로 들어냈기 때문에 남은 신장에 무리가 오지 않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그저께 밤부터 소변이 전혀 나오지 않고 몸은 점점 부어만 갔다. 결국 급성신부전 판정을 받고 내과로 옮긴 엄마는 어제 저녁부터 투석을 시작했다. 예상보다 훨씬 오래 병원 생활을 이어나가야 할 모양이다.

 


새벽의 오한은 어깨로 오고 인후와 편도에 농이 오고 눈두덩이가 부어오고 영은 내 목에 마른 손수건을 매어주고 옆에 눕고 다시 일어나 더운물을 가져와 머리맡에 두고 눕고 이상하게 자신도 목이 아파오는 것 같다고 말하고 아픈 와중에도 그런 것이 어디 있느냐고 웃고 웃다 보면 새벽이 가고 오한이 가고 흘린 땀도 날아갔던 것인데 영은 목이 점점 더 잠기는 것 같다고 하고 아아 목소리를 내어보고 이번에는 왼쪽 가슴께까지 따끔거린다 하고 언제 한번 경주에 다시 가보았으면 좋겠다고 하고 몇 해 전의 일을 영에게 묻는 대신 내가 목에 매어져 있던 손수건을 풀어 찬물에 헹구어 영의 이마에 올려두면 다시 아침이 오고 볕이 들고 그제야 손끝을 맞대고 눈의 힘도 조금 풀고 마음의 핏빛 하나 나란히 내려두고

박준나란히」 전문 


 

 

 

--- 읽은 ---

+ 문학하는 마음 / 김필균 : 165 ~ 345

+ 14가지 테마로 즐기는 서양사 / 정기문 : 277 ~ 455

 

 

--- 읽는 ---

= 동의 해신 서의 창해 / 오노 후유미 : ~ 215

= 세상에서 가장 쉬운 통계학 입문 / 고지마 히로유키 : 55 ~ 147

= 소소한 일상의 물리학 / 제임스 카칼리오스 : ~ 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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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9-09-12 1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yo님, 어머님은 좀 어떠세요.
수술하시고 명절을 맞아서 병원에도 사람이 많지 않을텐데 괜찮은지요.
어려운 수술하시고 결과 좋으셔야 할텐데, 고생하셔서 큰일이네요.
어머님의 쾌유를 기원합니다.


syo 2019-09-12 12:06   좋아요 1 | URL
세상에 아픈 사람이 참 많아서, 명절에도 대학병원은 북적북적 들썩들썩 하네요.
엄마는 하루하루 괴로우시지만, 겉으로 보기에 조금씩 편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신경 써주시는 분들이 많아서 요즘 몸둘 바를 모르겠네요.

서니데이님, 항상 감사합니다. 안온하고 행복한 명절 보내시길 바랄게요^-^

2019-09-12 12: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9-20 13: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bookholic 2019-09-12 1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yo님 어머님께서 빨리 완쾌되시길 한가위 달님에게 빌어보겠습니다....().....

syo 2019-09-20 13:38   좋아요 0 | URL
ㅠㅠ 기도해주셨군요. 그런 사실조차 모르고 벌써 일주일이 더 지났네요. 죄송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북홀릭님.

순오기 2019-09-12 1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애쓰시네요. 사랑은 다양한 형태로 다가오거나 표현되는 듯~어머님이 어여 회복되시기를 빕니다!♡

syo 2019-09-20 13:39   좋아요 0 | URL
힘 보태 주셨는데, 댓글이 늦어서 죄송합니다.
깜냥에 애쓰고 있긴 한데, 부족하지요. 사랑이 부족하여 애씀도 부족한 것이 아니었으면 좋겠습니다.
순오기님 감사합니다^^

2019-09-12 13: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9-20 13: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9-12 15: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9-20 13: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반유행열반인 2019-09-12 16: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곁을 지키고 봉지를 대어주는 존재 덕에 어머님의 큰 고통이 아주아주 조금이나마 덜 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명절이 뭐 특별한 날도 아닌데 같이 있다는 그거면 충분히 제 몫 잘 하고 계신 것 같아요. (저도 그래서 시댁 와서 손 까딱 않고 음식 얻어먹고 설거지만 했습니다 ㅋㅋ)

syo 2019-09-20 13:42   좋아요 0 | URL
이제 봉지 대어주는 스킬이 장난아닙니다. 구역질 하는 모습만 봐도 봉지를 대어야 하는 수준인지 아닌지 즉각 판단이 가능해졌습니다. 그리고 요즘은 기저귀 가는 스킬도 신속하게 향상되고 있는 중입니다.

명절 잘 보내셨다니 다행입니다. 댓글이 늦어서 죄송하구요 ㅎㅎㅎㅎ

수이 2019-09-12 2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님 얼른 쾌차하세요_ 사랑이 가볍지 않다는 걸 알게 되는 순간들이 있어요. syo님 가을 무겁지 않기를 바랍니다.

syo 2019-09-20 13:43   좋아요 0 | URL
병원 생활은 좀 더 길어질 모양이지만, 어떻게 이런 와중에도 또 어떤 평형 상태에 도달하는 것도 같습니다.
덕분에 홀가분한 가을 맞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붕붕툐툐 2019-09-12 2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yo님의 책 목록이 유난히 허전해 보이네요~ 사랑하지 않은 엄마에 대한 글에서 진한 사랑을 느끼고 갑니다. (syo님도 느끼셨을 거 같네요.)
어머님의 쾌유를 빌겠습니다.

syo 2019-09-20 13:44   좋아요 0 | URL
읽는 일이 쉽지가 않더라구요. 한 페이지 읽으면서도 몇 번씩 엄마가 누워있는 침대쪽을 봐야 해서, 나중에는 에라이- 하면서 책을 집어던지게 되었습니다 ㅎㅎㅎㅎㅎ

툐툐님 늘 감사합니다^^

독서괭 2019-09-12 2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당연히 사랑한다고 생각했던 사람을 간병하면서 내 사랑이 요거밖에 안 됐나 회의를 느끼는 경우가 많을 것 같은데, syo님은 반대네요. 어머님 어서 회복하시길 빕니다.

syo 2019-09-20 13:45   좋아요 0 | URL
그건 평상시 기본 상태가 개차반이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ㅋㅋㅋㅋ
병원 생활은 조금 더 길어지긴 하겠지만, 엄마의 고통은 점점 줄고 있습니다. 그게 어딘가 싶어요.

감사합니다, 독서괭님ㅎㅎ

2019-09-12 22: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9-20 13: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9-27 19: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9-27 21: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일곱 시간 반

 

 

1

 

긴 수술이 될 거라고 교수는 말했고 딱 그 말만큼만 긴 수술이었으나, 그 사실을 다 알고 맞닥뜨려도 수술실 앞에서 기다리는 아들의 시간은 길고 마음은 위태롭다. 옆 자리에 앉아 함께 기다려준 에세이를 150쪽도 채 읽지 못했다. 아무래도 나는 특출난 독서가까지는 못 된 듯 보인다.

 

 

 

2

 

엄마는 7일에 입원했다. 동생과 내가 하루씩 번갈아 가며 보호자용 침대에서 자고 돌아온다.

 

 

 

3

 

가족 중 누군가 아플 때마다 느낀다. 내 작은 세상은 굉장히 고마운 사람들의 네트워크, 그들이 서로의 팔을 결어 만든 팔 가마위에 올라 앉아 둥둥 떠가는 모습과 비슷하다는 것을. 일상에는 자주 등장하지 않는 이들이 어디선가 나타나 감사할 일 한두 가지씩을 해놓고는 다시 한 걸음 물러나 걱정과 격려를 남긴다. 이 모든 상황이 끝나면 그들은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다시 내 삶의 백그라운드로 돌아가 자신들의 삶을 살 것이다. 환대는 일상의 그늘 속에 몸을 숨기고 있다가 비일상의 순간에 선뜻 나타나 세상의 아름다움이란 눈에 보이는 것뿐만이 아님을 알려주는 역할을 한다. 아무데나 뿌려놓아도 좋은 마음이다. 여기저기 묻히는 만큼 세상이 조용히 아름다워지는 마술이다. 그 신비로운 기술을 나도 익힐 작정이다.

 

 

 

 

--- 읽은 ---

+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 카를로 로벨리 : 136 ~ 229

+ 호젓한 시간의 만에서 / 장석주 : 260 ~ 377

+ 바람의 바다 미궁의 기슭 / 오노 후유미 : 161 ~ 374

 

 

 

--- 읽는 ---

= 문학하는 마음 / 김필균 : ~ 165

= 잊기 좋은 이름 / 김애란 : ~ 149

= 문과생도 이해하는 E=mc² / 고중숙 : ~ 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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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19-09-10 10: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머님 얼른 쾌유하시길 바래요.
보호자 침대에서 밤을 보내는 분들도 식사 잘 챙기시구요~~~

syo 2019-09-10 17:16   좋아요 0 | URL
밥 먹기가 제일 불편하네요 ㅎㅎ 병원에서는 급한 불 끄는 식으로 먹고, 집에가면 한상차림 하고 있습니다. 어제는 보쌈과 불족발을 먹었네요....
단발머리님 1빠 감사합니다!!^-^

다락방 2019-09-10 10:2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어머님의 빠른 쾌유를 기도합니다.
아울러, 쇼님 건강도 챙기시기를요. 동생분도.

syo 2019-09-10 17:15   좋아요 0 | URL
ㅎㅎㅎ 저야 뜻밖에 제 한몸은 잘 간수하는 녀석이지요. 너무 제 한몸만 챙겨서 이렇게 되었네요. 염려 덕분에 수술 경과도 괜찮고, 통증도 평균보다 빨리 가라앉는 중이래요. 감사합니다 다락방님!!

붕붕툐툐 2019-09-10 1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엄마가 아플 때 그동안 얼마나 그녀에게 기대 살아왔던가를 알 수 있었어요. 쇼님의 글이 가슴 절절히 다가오네요~
어머님이 다시 쇼님의 백그라운드로 돌아오시길..간절히...

syo 2019-09-10 17:14   좋아요 0 | URL
툐툐님 말씀이 와닿습니다. 응원 말씀 감사합니다. 여러 이웃분들 따뜻한 마음씀씀이에 올라타고 엄마는 얼른얼른 집으로 돌아가겠지요^-^

북다이제스터 2019-09-10 1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님 쾌차를 기원합니다.
힘 내시구요.

syo 2019-09-10 17:11   좋아요 0 | URL
북다님 감사합니다. 밤에 불 꺼진 병실에서 북다님 글을 읽고 합니다. 그것도 감사합니다 ㅎㅎㅎ

2019-09-10 12: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9-10 17: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반유행열반인 2019-09-10 1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생이 많으십니다. 가족 모두 편안한 일상으로 얼른 돌아오길 기원합니다.

syo 2019-09-10 17:10   좋아요 1 | URL
제가 고생이랄 게 뭐 있겠어요. 환자가 힘들죠. 옆에 앉아 있는 동안 책을 읽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었는데 그게 반쯤은 착각이었다는 게 좀 힘들긴 하네요 ㅎㅎㅎ 반님 감사합니다^^

blanca 2019-09-10 1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마음 알지요. 저는 그럴 때 글도 읽을 수 없다,는 마음이 뭔지 짐작이 갈 정도로 책도 안 읽히더라고요. 어머니의 쾌유를 빕니다.

syo 2019-09-10 17:09   좋아요 0 | URL
글자가 눈동자를 만지고는 금방 도망쳐버리는 느낌이었습니다. 읽은 것도 읽은 게 아닐 것 같아요. 기억이 잘 안 나네요...
응원말씀 감사합니다^-^

페넬로페 2019-09-10 1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마전 쇼님의 글에서
지나친 관심은 좀 그렇다는 표현하셨는데
그래도 표현해야겠어요
어머니 수술 결과 좋으면 좋겠고
빨리 쾌차하시길 바랍니다.
저의 지인분은 최근에 암판정을
받았는데 치료법이 없다고 하네요
그래도 수술 받을수 있어서 다행이예요**

syo 2019-09-10 17:07   좋아요 0 | URL
정말 다행입니다. 수술 날짜도 빨리 잡혀서 무사히 수술을 받을 수 있었어요.
그 글이 응원 말씀 막으려 쓴 글은 아니었지만, 불편하셨을텐데도 이렇게 힘나는 말씀 주셔서 감사합니다. 명절 잘 보내세요, 페넬로페님!!

서니데이 2019-09-10 14: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래 걸리는 수술, 잘 끝나셔서 다행입니다.
좋은 결과 있으시기를 기원합니다.
syo님도 고생많으셨어요.



syo 2019-09-10 17:05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서니데이님^^
얼른 회복 마치고 엄마하고 같이 집에 가면 좋겠네요.

겨울호랑이 2019-09-10 14: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님의 빠른 쾌유를 바랍니다. syo님 고생하셨고, 힘내시기 바랍니다

syo 2019-09-10 17:04   좋아요 1 | URL
호랑이님 감사합니다. 자주는 아니지만 계속 호랑이님 글을 읽으면서 다시 알라딘 일상으로 복귀할 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stella.K 2019-09-10 14: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은 어떠신가요? 어머니가 어디가 편찮으신지 물어봐도 되나요?
고마운 사람의 네트워크. 맞는 말 같습니다.
가족은 군도와 같다고 누군가는 말했죠.
평소 평안할 땐 조용히 지내다가
가족 중 누가 병들거나 힘들어지면 같이 도와주는 존재라더군요.
살면 살수록 실감하게 되죠. 힘들 때 가족이 없는 사람은 얼마나 외로울까를 생각하면
어머니도 스요님을 무척 대견해 하실 겁니다.
고생하시구요, 어머님의 빠른 쾌유를 기원합니다.

syo 2019-09-10 17:04   좋아요 0 | URL
방광암이셨어요. 어제 수술 마치고 지금은 침대에 누워 꼼짝 못하고 계십니다. 많은 분들이 응원해주신 덕에 수술도 잘 마쳤고, 이제 얼른 털고 일어나기를 기다리는 중입니다. 스텔라님 감사합니다^^

2019-09-10 14: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9-10 17: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레삭매냐 2019-09-10 17: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환자분도 환자분이시지만
간호하시는 분들도 건강 유의하셔야
합니다.

시오님 어머님의 쾌차를 기원합니다.

syo 2019-09-12 11:52   좋아요 0 | URL
화장실 다녀올 만한 짬도 잘 안날만큼 붙어 있어야 하다보니 먹기가 쉽지가 않네요.
요령 좀 생기면 나아지겠죠.

레삭매냐님 감사합니다^-^

나와같다면 2019-09-10 19: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로의 곁을 내주고, 마음을 내주는 이런 고마운 사람들의 선한 마음과 환대로 우리의 삶이 유지 될때도 있는것 같습니다.

어머님의 쾌유를 기원합니다.
더불어 syo 님의 평온한 일상도..

syo 2019-09-12 11:53   좋아요 0 | URL
힘내서 똑바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절로 하게 됩니다.
얼른 이 고비 넘기고 더 좋은 사람이 되어야겠어요.

나와같다면 님, 댓글 정말 감사합니다!

목나무 2019-09-10 19: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난 페이퍼에 어머니 입원하셨다는 글 봤는데 수술을 하셨군요.
기다리는 동안 얼마나 애가 탔을까 싶어 제 맘이 다 짠해집니다.
진짜 수술실 앞에서 기다리는 것만큼 피말리는 시간이 없더라구요.
수술은 잘 되었다 하시니 어머니 하루빨리 쾌차하시길 바랄게요.

syo님.... 그냥 불러보고 싶었어요.


syo 2019-09-12 11:54   좋아요 1 | URL
상황이 조금씩 복잡해지고, 입원 기간은 좀 더 길어질 것 같지만
어쨌든 많은 분들의 도움과 응원 덕분에 저희 가족은 잘 해내고 있습니다.

설해목님 감사합니다. 그냥 한 번 불러 주셔서요 ㅎㅎ

눈꽃 2019-09-10 2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yo 님 글을 읽어보니 제 아버지가 생각납니다. 제 아버지도 폐암 1기 판정을 받은 적이 있어서... 수술은 성공적으로 잘됐고 1년 가까이 건강 관리를 잘 하셔서 지금은 거의 완치에 가까울 정도로 건강이 많이 회복되셨습니다. 정말 남일 같지 않아서 맘이 짠하네요. 어머님의 빠른 쾌차를 기원합니다.

syo 2019-09-12 11:55   좋아요 1 | URL
다행입니다. 눈꽃님도 많이 고생하셨겠어요. 저희 어머니도 수술은 잘 되었다고 하니, 이제 건강 관리가 남았겠지요. 응원 말씀 감사합니다^-^

블랙겟타 2019-09-10 2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니의 쾌유를 기원합니다.
syo님도 건강 챙기면서 보살펴드리시구요. ㅠㅠ

syo 2019-09-12 11:55   좋아요 0 | URL
36시간 못 잤더니 12시간을 자게 되더라구요 ㅋㅋㅋ
인간이 수면 시간은 어떻게든 맞추게 되어 있나 봅니다.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블랙겟타님 ㅎ

2019-09-10 22: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9-12 11: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희선 2019-09-11 0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술 시작하고 끝날 때까지 걱정 많으셨겠네요 수술 잘 마쳐서 다행입니다 어머님 몸 좋아지시기를 바랍니다


희선

syo 2019-09-12 11:57   좋아요 0 | URL
따뜻한 댓글 감사합니다. 엄마 얼른 쾌차해서, 이렇게 신경써주신 분들께 좋은 소식 전해드리면 좋겠어요.

희선님, 고맙습니다^^

책읽는나무 2019-09-11 06: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님 어서 쾌차하시길 기원합니다.
걱정이 많고 힘드시겠지만 간호해 주시는 분들의 웃음이 어머님의 마음을 편하게 해드리지 않을까,싶기도 하네요.
저는 엄마의 수술날 어땠었나?
간병할때 좀 웃어드렸나?
많이 웃어드릴껄!!
그런 생각이 뒤늦게 들곤 하더라구요.
여튼 syo님과 동생분이 힘을 내시길 바랍니다^^

syo 2019-09-12 11:58   좋아요 1 | URL
며칠 더 지나고 나면 많이 웃을 수 있게 될 것 같습니다.
아직 통증이 심해서, 엄마 보고 있는데 도저히 웃음이 안 나더라구요.

그래도 좀 여유가 생기면 책읽는나무님 말씀 꼭 염두에 두고 많이 웃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페크pek0501 2019-09-11 1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친정어머니가 입원하셨을 때 옆에서 환자를 지켜 보는 일을 많이 해 봐서 이 글을 읽으며 짠했어요.
어머님의 빠른 쾌차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syo 2019-09-12 12:00   좋아요 0 | URL
환자 간호하는 경험이 이렇게까지 공유되는 경험일 줄은,
겪어보기 전에는 모르는 일이네요.
세상에 아픈 사람 참 많은 것 같아요.
페크님도 늘 건강 조심하시고, 명절 잘 보내세요^^

비공개 2019-09-11 14: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님 쾌유를 빌게요.
지금 이 시간들이 언젠가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는 추억이 되기를 바랄게요.
간호하시는 분들도 몸과 마음의 건강 잘 챙기시기를.

syo 2019-09-12 12:01   좋아요 0 | URL
열심히 멘탈 부여잡고, 잘 이겨내겠습니다.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jsshin님! 명절 잘 보내세요^-^

카알벨루치 2019-09-11 15: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생많아요 잘먹어야 간호도 잘하죠 잘 먹어요 화이팅 쇼군!

syo 2019-09-12 12:02   좋아요 1 | URL
엄마한테 여유가 좀 생기면 잘 챙겨먹을텐데, 아직은 좀 어렵네요.
요령껏 잘 한 번 해보겠습니다. 카알님께 걱정 끼치면 안 되지요 ㅎㅎㅎㅎ

추석 잘 쇠세요^-^

카알벨루치 2019-09-12 12:32   좋아요 0 | URL
댓글을 스크롤해야 할 정도네 ㅎㅎ힘내요 홧팅하는 분들이 많으니 힘내시고 굿 추석 되어요~^^

독서괭 2019-09-12 0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몇번이나 댓글창을 열었는데 이제야 쓰게 되네요. 위 대댓글 보니 수술 경과가 괜찮은 것 같아 다행입니다. 어머님 건강 어서 회복하시길 빌고, syo님은 후회와 자책으로 너무 힘들어하지 않으시길.. 제가 엄마가 되어보니, 아이가 나를 얼마나 서운하게 했든간에, 그걸로 아이가 후회와 자책으로 힘들어한다면 내 마음이 더 힘들 것 같네요.

syo 2019-09-12 12:05   좋아요 0 | URL
독서괭님 감사합니다.
어머니 마음이야 제가 알 수 없는 부분인데, 이렇게 말씀해 주시니까 더 힘이 납니다.
제 멘탈은 괜찮습니다.
회복도 빠르고 어제의 괴로움은 어제의 일, 오늘은 오늘 괴로워 할 일을 괴로워하자- 하는 주의라서ㅎㅎ^^

독서괭님, 즐거운 추석 명절, 독서도 실컷 할 수 있는 여유 있는 명절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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깃발

 

 

1

 

이놈의 집구석은 생겨먹기를 이상하게 생겨먹어서 건물 옥상으로 가는 길이 301호의 내부에 있다. 옥상을 포기하기로 하면 아쉬울 게 없을 것도 같지만, 인터넷 선이 옥상에서 시작해 건너편 전봇대로 이어지는지라, 어쩌다 선 한 번 끊어지면 301호 아저씨한테 사정사정을 해서 옥상에 올라가야 한다. 301호 아저씨는 택시 운전을 하고 그 집 꺽다리(좀 나눠줘) 아들내미는 고등학생이었나 뭐였나 하여튼 그렇기 때문에 인터넷 기사님이 출동할 수 있는 시간대에 301호는 비어있기 일쑤다. 망하는 거다.

 

태풍이 왔다. 창 너머를 보고 있으면 저 물 저게 지금 낙수인지 분수인지 헷갈린다. 야 너네 지구 중심 방향으로 떨어져야지 지금 뭐하냐중력의 법칙 어디 갔어뉴턴 대체 어디 갔어아니, 설마 내가 지금 천장에 거꾸로 붙어서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는 것인가? , 쟤네 갑자기 또 막 옆으로 가네. 직립보행이네…….

 

이런 anti-자연법칙적 위기상황 속에서, 옥상 쪽에 고정시켜 놓은 매듭이 풀어졌는지 우리 집 인터넷 선이 지금 파도 드센 방파제에 걸어놓은 새마을운동 깃발마냥 펄럭이고 있다. 불안해 죽을 것 같다. , 그야말로 이것은 광케이블의 소리 없는 아우성…… 100Mbps를 향하여 흔드는 영원한 노스탤지어의 손수건…….



다음 주는 연휴고, 월요일 화요일은 엄마 병간호를 하느라 병원에 있을 테니, 저 링링새끼가 인터넷 선을 날름 끊어먹는다면 아, 우리 집은 9월 중순까지 그냥 신석기 시대 되는 거지. 반달돌칼 그거 10만 년 전에 쓰고 나서 어디 놔뒀더라?

 

 

 

2

 

사이러스님과 또 만났다. 그 사람은 참 열정적인 데가 있다. 그 나이 때의 syo와 비교해보면 삶에 대한 확신도 있고 자기가 얻고자 하는 행복의 모양새에 대한 구체적인 청사진도 있는 것 같다. 내부에 단단한 기준을 마련해 두어서, 아닌 것과 맞는 것에 대해 당당히 이야기한다. , 근자에 보기 드문 청년일세.

 



3


그에 비해 syo란 어떤 인간인가.

 

최근 가장 많이 들은 이야기의 골자는 엄마한테 잘하라는 것이다. 어쩐지 다들 그 말을 해왔다. 다 나를 걱정하는 이야기고, 내가 더 좋은 사람이 되라고 하는 이야기인 것은 알지만, syo에게 이런 말을 해주는 또 다른 사람이 있을 거라는 짐작을 시도조차 하지 않는 사람 여덟 명에게 그런 이야기를 듣고 나면, 아홉 번째 비슷한 이야기를 들을 때는 내가 도대체 얼마나 엉망진창으로 살았기에 이 정도까지? 싶다. 그리고 열 번째 이야기를 하는 사람에겐 짜증조차 난다. 그 안에는 심지어 술 먹고 전화해서 형 그렇게 살지 마하는 놈도 있었다. 내가 어떻게 사는지 대체 걔는 어떻게 아는 걸까? 부모님 돌아가시고 나서 후회하면 늦다고 말한 친구는 양친이 버젓이 살아계시는 반면 나는 아버지를 보내봤고 걔도 그걸 안다. 도대체.


며칠 전 꼰대란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하는 친구의 글을 읽으며 정말 꼰대란 어떻게 판명되는가에 대해서 생각해봤다. 사회생활이랄 만한 것을 해본 경험이 거의 없다보니 실제 유통되는 전형적인 꼰대를 한 번도 만나 본 적이 없는 나는 이런 저런 상황을 상상하며 꼰대의 그림을 그려볼 수밖에 없었는데, 그 상상 속에서 나는 늘 나 자신을 꼰대가 아닌 꼰대질 피해자(?)의 위치에 놓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런 포지셔닝은 나는 꼰대가 아니라는 무의식적 확신의 결과물이고, 꼰대의 가장 명백한 속성 중 하나가 자기 인식의 철저한 결여라는 점에서 미루어 보면, 내 안에도 이미 꼰대의 씨앗이 뿌려져 있었던 것이다!

 

syo는 스스로의 꼰대화를 방지하기 위한 지침으로 먼저 물어오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길게 말하지 않는다라는 원칙을 세우고 있었는데, 그걸로는 택도 없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래서 어떤 유명한 문장의 힘을 빌려 와 더 세밀한 지침으로 삼으려고 한다. 최소한 알라디너 가운데서는 모를 사람이 전혀 없을 문장을. 그 문장은 나름나름으로 번역되지만, 결국 가정이 행복한 이유는 대충 다들 어슷비슷한 반면 불행한 이유는 독창적인 데가 있다는 내용이다.

 

최소한 가정에 관한 일이라면, 타인의 행복을 격려하고 북돋을 때는 내 행복의 경험을 끌어와 엮어도 좋겠다. 행복한 가정은 서로 닮았으니까. 그러나 다른 가정의 불행한 사연을 만났을 때는, 내가 겪었던 불행한 가정사, 공유재의 형태로 세상에 떠도는 당연하지만 추상적인 격언,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가정의 모습과 그 가정의 구성원이 지녀야 할 자세 같은 것들을 기반으로 타인에게 충고하지 말아야지. 불행한 가정에는 저마다의 이유가 있는 법이니까.

 

그런데 결국 이러면, 아무 말도 하지 말라는 것과 다를 게 하나도 없다. 꼰대가 되지 않는 길이 이리도 어렵다. 결국 위로뿐인가. 그게 맞나? 아니 그냥 포기하고 그냥 꼰대로 살까? 요가가 힘들어서 차라리 이럴 바에 사유를 포기하고 말겠다던 이병창 선생님의 비명소리가 변조되어 들리는 것 같다…….


 

한 사람의 공감 능력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계속 질문하는 중이다여자라서아이를 키워봐서딸이 있어서처럼 저절로 주어지는 것들은 계기가 될 순 있어도 공감의 지속 조건은 될 순 없다배움이 필요하다글쓰기 수업에 오는 어른들도 '느끼는 능력'을 갈구한다남 일에 무관심해하면 더 빨리 더 높게 사회적 성취를 일굴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자신과의 서먹함이나 관계맺기의 무능함으로 인해 삶의 다른 한쪽이 허물어지는 탓이다.

  내가 아는 공감 방법은 듣는 것이다남의 처지와 고통의 서사를 듣는 일은 간단치 않다자기 판단과 가치를 내려놓으면서가령 '왜 이제 말하느냐심판하는 게 아니라 왜 이제 말할 수밖에 없었을까 이해하려 애쓰면서동시에 자기 경험과 아픔을 불러내는 고강도의 정서 작업이다온몸이 귀가 되어야 하는 일얼마 전 본 문장으로 정리하면 이렇다. "당신이 할 말을 생각하는 동안 나는 들을 준비를 할 거예요."

은유다가오는 말들, 128

 

반면세상이 사건의 네트워크라고 생각하면 작동한다아주 간단한 사건이든 아주 복잡한 사건이든 더 단순한 사건들의 조합으로 분해될 수 있다예를 들어전쟁은 사물이 아니라 사건들의 총체이다폭풍우도 사물이 아니라 돌발적인 사건들의 집합이다산 위의 구름도 사물이 아니다공기 중의 습기가 응결된 것을 바람이 산으로 이동시킨 것이다파도도 사물이 아니라 물이 움직이는 것이고이 물은 언제나 다른 모양을 만든다가족도 사물이 아니라 관계와 사건느낌의 총체다그렇다면 인간은 어떨까당연히 사물이 아니다산 위에 걸린 구름처럼 음식정보언어를 비롯한 수많은 것들이 들어가고 나오는 복잡한 프로세스다사회적 관계의 네트워크 속에화학적 프로세스의 네트워크 속에자신과 비슷한 타인들과 교환한 감정의 네트워크 속에 있는 수많은 매듭들이 인간 안에 존재한다.

카를로 로벨리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107-108


그러니

내가 너에게

다가갈 수 있어서

만질 수 있어서 쓰다듬을 수 있어서

그렇게 살아갈 수 있어서

 

사람은 그냥 갈 수 있어서

 

남몰래 혼자 떠나려고 하는 세상에

네가 있지 않아서

 

사람이 꽃이 아니길

참 다행이다

꽃이 스쳐가는 바람과 함께 너에게 갈 때

이사라사람」 부분 

 

 

 

--- 읽은 ---

+ 헤겔 / 피터 싱어 : 101 ~ 202

+ 혐오, 감정의 정치학 / 김종갑 : 96 ~ 200

+ 딱 이만큼의 경제학 / 강준형 : 191 ~ 341

 


--- 읽는 ---

= 바람의 바다 미궁의 기슭 / 오노 후유미 : ~ 161

= 세상에서 가장 쉬운 통계학 입문 / 고지마 히로유키 : ~ 55

= 14가지 테마로 즐기는 서양사 / 정기문 : 180 ~ 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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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쟝쟝 2019-09-07 1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이 먹긴 먹었나봐요, 헤어나올 수 없는 꼰대 자기검열... (그리고 벗어날 수 없는 꼰대의 덫...) 나는 그토록 꼰대에게 당했는 데, 나도 꼰대이고 싶다. 억울하다!!!!!!! -젊은 꼰대 씀-

syo 2019-09-07 11:05   좋아요 0 | URL
슬프다..... 이런 경우에도 위로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네요.
꼰대란 아무래도 진화적으로 불리한 개체이므로 두어 세대 지나면 멸종 위기에 처하지 않겠어요.....

힘내세요, 쟝쟝님 ㅠㅠ

2019-09-07 11: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9-07 11: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반유행열반인 2019-09-07 14: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5살에 동료 대부분이 50대이던 그 때, 절더러 “얘는 말하는 게 인생 다 산 50대야.”하는 걸 자랑스럽게 여겼었는데, 알고보니 그건 네 안에 꼰대있다-하는 꼰대들의 동류의식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직언 조언이랍시고 있는 말 그대로 해서 상관이던 부장님 울린 기억도 납니다... “너희 부모님 뭐하셔? 엄마는 어디 계셔? 아빠는 어디 계셔? 왜 따로 계셔?” 를 백 번은 뻥이고 열 번쯤 묻는 동료에게 상처 받지 않기 위한 나름의 정공법이랍시고 “우리 부모 이혼했어요. 이제 그만 좀 물으실래요.” 하던 날도 생각해보면 그러다 말 것을 그냥 좋게 넘길 것을...(나중에 그 분은 저만 보면 소녀가장 대하듯 커다란 잔슨빌 소시지 같은 걸 쥐어주곤 한...)
단련은 되었지만 너그러워지는 법은 못 익힌 저라서 내년에는 어떻게 새로운 직장 생활(학교를 옮기거든요) 하게 될지 감도 안 오고 걱정도 되요. 그때는 가시를 좀 덜 세우고 조용하고 내성적인 컨셉으로 가볼까 생각중인데...한 번 형성된 꼰대이즘이 어디 안 가겠죠? 이렇게 ‘내가 옛날에 말야~’하는 것도 내 안의 또다른 꼰대이즘인 건 아니겠죠? ㅠㅠ무한루프 도는 건 태풍의 영향권이라 그럴지도...(인터넷 선 뽑혀도 옥상 가지 마시어요 석기 시대에도 잘 살았잖아? 안 쥭을거야...)

syo 2019-09-07 22:54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런 사연을 이제 페이퍼로 쓰는 겁니다. 그러면 syo의 잡글을 씹어드시게 되는 거죠.
새로운 직장도 금방 적응하실거지만, 아무래도 조용하고 내성적인 컨셉은 힘들지 않을까요? 반님의 따꼼날콤한 언어역량이 그렇게 두지 않을 겁니다ㅋㅋ

병원에 다녀와도 인터넷 선은 다행이 무사해서, 그 선에 올라타 이렇게 댓글을 남깁니다.

반유행열반인 2019-09-08 08:06   좋아요 1 | URL
저는 짠돌이라 다른 장르는 안 쓰고 한 장르에만 써 먹을래요. 내성적으로 말로 안 쏟고 글로 쏟을래요. (퍽이나) 태풍을 헤치고 간호 다녀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인터넷선아 너도 안 끊어지느라 고생했어.

cyrus 2019-09-07 16: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yo님 동네에 비가 많이 내렸어요? 제가 사는 동네는 비바람이 많이 불지 않았어요. 비가 오다가 그치다가 햇빛이 살짝 뜨다가 다시 비 오고…‥.

syo님도 청년입니다! 30대도 청년이에요.. ㅎㅎㅎ 우리 나이 차가 크게 나지 않잖아요. syo님이 헤겔을 알기 위해서 여러 권의 개론서를 혼자서 읽는 건 열정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에요. ^^

syo 2019-09-07 22:51   좋아요 0 | URL
네. 여긴 새벽부터 해서 아침에 비가 승천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희한하네요. 대구 제깟놈도 광역시라 이건데.....

청년이긴 청년이죠. 하지만 반올림을 하면 우리의 처지는 완전히 달라지는 것입니다.....
 

 

과학으로부터

 

 

1

 

어떻게 저렇게 말 못하는 사람들이 국회의원이 된 건지 모르겠다. 지난 주 면접 때, 생각했던 것만큼 말을 잘 못하고 온 것 같아서 며칠 시무룩한 데가 있었는데, 한 방에 해소가 되었다. 고마울 지경이다.

 

보통 정치인의 이미지 하면 말만 번지르르하다는 요소가 반드시 포함되지 않나. 물론 잘 정련된 말은 잘 정돈된 팩트에서 나오는 것이겠고, 그러다보니 어떤 한계지점이 있었겠지만, 아 제발 팩트고 나발이고 그 전에 기본적인 언어구사력은 좀 갖췄으면 좋겠다. 비록 저들이 시민의 의사를 대표하는 존재지 시민의 능력을 대표하는 존재는 아니지만, 그래도 기분 나쁜 걸.

 

 

 

2



역사 공부가 힘들다고 생각될 때면 역사의 척추가 되는 중요한 주제들을 정하고그 주제들을 세밀하게 공부하여 기초를 튼튼하게 할 필요가 있다건물을 지을 때 중추 기둥을 튼튼하게 세운 후방을 배치하고 외벽을 칠하듯역사를 공부할 때도 꼭 알아야 하는 핵심 주제를 선정하고 그것들을 깊이 공부한 후거기에 인물이나 사건들로 살을 입혀야 한다.

정기문14가지 테마로 즐기는 서양사, 8 

 

뻔하고 내실없는 방법론 같은 것들이 알고 보니 정말 위대한 지혜였구나, 하고 깨닫는 사건이 가끔씩 터진다. , 이래서 그렇게 국영수 중심 교과서 위주로 공부를 하라고 했던 거구나, 하나마나한 소리의 대표주자, 비결을 감추기 위한 개수작인 줄만 알았더니! 하며 찬탄하는 순간이 드물게나마 오긴 하더라.

 

그렇지만 그런 순간은 마주치기가 쉽지 않다. 지구는 둥글다는 말에 감동하는 사람은 적을 것이다. 그러나 자꾸 걸어 나가서 온 세상 어린이를 다 만나고 온 사람의 입에서 나온 와, 지구는 둥글어! 레알 둥글었어! 하는 감탄사는 지구는 둥글다는 평범한 명제에 찬란한 빛을 불어넣는다. 온 세상 어린이를 다 만난 사람들만 공유할 수 있는 빛을.

 

뻔한 방법론이 어쩐지 막대한 질량으로 다가와 쿵쿵 두드릴 때, 책덕후는 이때 얼른 올라타야 한다. 멀리 갈 수 있다.

 

 

 

3



필요한 것은 개개인이 자신의 양심과 확신에 따라 스스로를 다스려야 한다는 것과 모든 사회적·정치적 제도를 갖춘 현실 세계인 객관적 세계가 합리적으로 조직되지 않는 한자신의 양심에 따라 행동하는 개인은 법과 도덕과 갈등을 빚을 것이다따라서 기존의 법과 도덕은 그들을 억압하고 그들의 자유를 제한할 것이다반면에 객관적 세계가 합리적으로 조직되면 자신의 양심을 따르는 개인은 자유로운 선택에 의해 객관적 세계의 법과 도덕에 맞게 행동할 것이다그러면 주관적 차원과 객관적 차원 둘 다에서 자유가 존재할 것이다자유에 대한 제약은 사라질 것이다개인의 자유로운 선택과 사회 전체의 요구가 완벽히 조화를 이룰 것이기 때문이다자유 개념은 현실이 될 것이며 세계사는 목표를 성취할 것이다.

피터 싱어헤겔, 55-57 

 

이런 게 된다고 생각하는 걸 보면, 저 차갑고 딱딱하게만 보이는 독일 철학자들은 뜻밖에 순진한 이상주의자의 면모가 있다. 마르크스의 독일 이데올로기를 보면 이런 유명한 이야기가 나온다(고 한다). 공산주의 사회가 오면 어부, 사냥꾼, 목동, 비평가가 되지 않더라도 모두들 아침에 낚시하고 오후에 사냥하고 저녁에 목축한 다음 비평을 하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인생을 살 수 있을 거라고. 아코, 하늘 나는 자동차가 타고 싶어떠요? 이런 귀요미. 진지해서 한껏 더 귀요미.

 

요즘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이병창 선생님의 새 번역 『독일 이데올로기』 1, 2권


그 제자에 그 사부인 것인가. 헤겔은 혓바닥이 꼬여서 쉬운 말도 꼬아 하는 눈 세 개 달린 괴물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이것저것 찾아 읽다보니 어쩐지 재미있는 구석도 많고, 왜 그렇게 헤겔, 헤겔 하는지 조금쯤 알 것도 같다. 그렇지만 덕질 리스트에 누구 이름 하나 새로 올리기에 나는 너무 늙어버린 느낌이고, 또 마르크스에 비해 생긴 것도 영 귀염성이 없어놔서 헤겔에 입덕할 기미는 아직 보이지 않는다.

 

 vs 

 마르크스 vs 헤겔 외모대결 마르크스 압승


 

4



시간은 유일하지 않다궤적마다 다른 시간의 기간이 있고장소와 속도에 따라 각각 다른 리듬으로 흐른다방향도 정해져 있지 않다과거와 미래의 차이는 세상의 기본 방정식에서는 존재하지 않으며단지 우리가 세부적인 것들은 간과하고 사물을 바라볼 때 나타나는 우발적인 양상일 뿐이다이러한 관점에서 우주의 과거는 신기하게도 '특별한상태에 있었다. '현재'라는 개념은 효력이 없다광활한 우주에 우리가 합리적으로 '현재'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시간의 간격(기간)을 결정하는 토대는 세상을 이루는 다른 실체들과 다른 독립적인 존재가 아니다그것은 역동적인 장의 한 양상이다이 역동적인 장은 도약하고 요동치며 상호 작용할 때만 구체화되며최소 크기 아래에서는 발견되지 않는다.

카를로 로벨리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98 

 

늘 느낀다. 과학과 인문학의 융합은 인문학에서 과학 쪽으로 건너와서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과학이 인문학을 덮치면서 이루어질 때 훨씬 완성도 있고 인문학적으로도 깊이 있는 울림을 던진다. 어쩌면 이건 이과생으로 살아 온 내 인생 10년 때문에 생긴 편견일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참과 거짓을 명확히(완벽히) 구분할 수 있는 영역에서 닦은 기반을 상대적으로 그렇지 않은 영역으로 확장할 때, 엄밀성을 최대한 보존하며 아름다울 수 있는 것 같다. ‘시간의 간격조차 다른 실체들과의 어우러짐 속에서 결정되고 구체화된다는 이 인문학적 상상력의 결정판 같은 명제가, 과학의 옹립을 받는 진실임을 수식으로써 증명할 수 있는 능력(물론 이 책에는 수식이 등장하지 않는다). 그런 건 그저 우러러볼 수밖에 없다.

 

 

 

 

--- 읽은 ---

+ 달의 그림자 그림자의 바다 / 오노 후유미 : 278 ~ 528

+ 미시경제학 한입에 털어넣기 / 사카이 도요타카 : 73 ~ 198

+ 광대하고 게으르게 / 문소영 : 150 ~ 282

 

  

--- 읽는 ---

= 14가지 테마로 즐기는 서양사 / 정기문 : ~ 180

= 헤겔 / 피터 싱어 : ~ 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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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9-09-06 14: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 저 헤겔 책은 저도 하나 샀습니다.

읽다가 어디에 내팽개쳐 두었나 봅니다.
다시 찾아서 읽어야 하나요 :>

여의도 모처로 출근하시는 분들을 너무
과대평가하시면 안될 것 같습니다.
그래도 자리가 사람을 만드는 것 같진
않아 보이는 건 사실이죠 ㅎㅎㅎ

<마르크스> 개설서는 역시나 도서관
에서 빌리긴 했으나 결국 못 다 읽고
반납... 뭐 그렇네요.

syo 2019-09-06 17:26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ㅎ 레삭매냐님조차도 저처럼 다 못 읽고 반납하는 일을 겪으시는군요!!

여의도 그 사람들, 아.....

반유행열반인 2019-09-06 16: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코, 오늘은 작정하고 책 이야기만 하네요? 작심 몇 일할까 옆에서 팝콘 우걱우걱하면서 세어야겠다. 책에 대한 글도 유익하지만 일상 썰도 가끔 말고 자주 풀어주세요...현기증 난단 말이에요...

syo 2019-09-06 17:27   좋아요 1 | URL
ㅎㅎㅎㅎ 일상에 별일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맨날 쓸 만한 뭔가가 빵빵 터지는 인생을 살았으면 좋긴 하겠습니다..... 현기증 치료에 syo같은 돌팔이를 쓰실 생각이세요? ㄴㄴ ㄴㄴ

북다이제스터 2019-09-06 19: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울 선생님의 아래글보다 syo 님의 글이 더 설득력 있고 아름다운 것 같습니다.
“물리학을 과학이라고만 이해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것은 매우 곤란한 발상이다. 물리학 그 자체를 철학의 현대적 변용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진정으로 세상에 관한 사유를 하기 원한다면 물리학이나 천문학이나 천체 물리학 같은 학문을 공부해야 한다.

이러한 학문을 통해서 과학적 지식을 획득한다고 생각하지 말고 현대화된 철학적 지식을 획득한다고 생각해야 한다. 현재 물리학과는 철학과의 상위개념의 철학과다. 물리학이라는 학문을 통해 우리 주변세계의 원리에 관한 너무도 많은 유용한 정보와 그 정보를 해석할 수 있는 심오한 사유를 배울 수 있다. “

syo 2019-09-07 10:51   좋아요 0 | URL
아이구, 그렇지 않습니다ㅎㅎㅎ

도올 선생님의 말씀이야 오랜 사유를 거쳐서 나온 내실 있는 말씀이고,
syo의 말은 그냥 주관적인 감동에 절어서 스르르 흘러나온 한낱 감탄사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