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리언 반스의 아주 사적인 미술 산책
줄리언 반스 지음, 공진호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1

 

한때 이런저런 명화들을 갖다가 카톡 프로필 사진으로 박아놓던 때가 있었다. 어찌나 부지런을 떨었던지 매일매일 새 그림을 찾아내어 성실하게 프사를 바꿔댔다. 처음에는 알려진 화가의 알려진 그림을 택했지만 그런 그림은 얼마 못가 고갈되었다. 그래서 알려진 작가의 알려지지 않은 그림이나 알려지지 않은 작가의 알려진 그림, 심지어 알려지지 않은 작가의 알려지지 않은 그림까지 꽤 의욕적으로 찾아다녔던 기억이다. 카톡 세상에서는 syo가 프사를 뭘로 바꾸건 얼마마다 바꾸건 그딴 건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지만, 막상 오프라인에서 만나면 전혀 뜻밖의 인물이 관심을 표하는 경우가 많아서 놀랐다. 형 때문에 새로운 그림을 알게 된다니까? 그래? 난 지금 새로운 널 알게 되는 것 같아……. 무엇보다도 잘난 척하기에 아주 그만이었다. , 그 눈깔 한개 달린 그 그림 그거 뭐냐? 은근 좋던데? , 또 우리 고객님 또 그런 그림 좋아하시는구나? 아유 안목 좋으시다, 그 그림 그게 또 인상파 애들 한참 인상 쓰고 어깨에 힘 빡 주고 다니던 시기에도 또 꿋꿋이 독고다이 상징주의 외길 걸으신 선생님의 작품으로써 말입니다잉?

 

 

 

2

 

그런 정황 속에서도 프사로 삼지 못한 그림이 하나 있었다. 받아는 놓았으나 늘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돌아서야 했던, 관심받기는 물론 잘난 척 하고 싶은 불같은 욕망조차 그 앞에만 서면 고개를 들지 못하게 만드는 어마무시한 녀석이. 분명히 유명 작가의 유명 그림인데도, 이 그림을 카톡 프사에 올림으로써 내가 하고 있다고 오해받을지도 모를 어떤 주장의 무게와 쓸데없이 감당해야 할 통념의 공격력을 예상해보니 도무지 엄두가 나지 않는 그림. 이런 그림을 병인양요 시절에 머스킷으로 시민들 탕탕 쏘아대는 나라에서 그릴 수 있었다니, 정말 전 당신께 존경밖에 드릴 게 없잖아요, 쿠르베 선생님…….


그랬는데 syo가 한때 그렇게 사랑했던 쿠선생님은 알고 보니 이런 분이셨다고.

 

 쿠르베는 취미로 주식거래에 손을 대던 사회주의자(대개 마르크스주의로 나아가는 특징을 지닌 이들로 여겨지는)였으며 땅에 대한 욕심이 남달랐다마찬가지로 이상향을 향한 신념이 있었는데도그가 여성을 대하는 태도는 사창가와 정부분별없는 청년들의 향락으로 특징지어지는 그 시대와 계층의 냄새를 물씬 풍겼다그런 까닭에 그는 "여자는 딴생각 말고 양배춧국이나 끓이고 살림살이나 신경 써야 한다"고 보았다그런가 하면그 같은 감상을 조금 더 드높여 기개 있는 금언을 만들었다. "숙녀의 임무는 남자의 사색적 합리성을 감정으로 교정하는 것이다." 그는 이따금씩 예술을 하느라 결혼할 시간이 없다고 공공연히 말하면서도 또한 이따금씩 결혼하려고 애를 썼다. 1872그는 같은 프랑슈콩테 지역 출신의 젊은 여자를 배우자로 점찍은 뒤 중매쟁이에게 편지를 보내 자기나 자기 집안은 여자 쪽과 사회적 배경의 차이가 있어도 신경 쓰지 않는다며 거만하게 말하고는 분별없게도 다음과 같이 늘어놓았다.

 

 촌사람들이 어리석은 조언을 할지도 모르지만그렇다고 해서 레옹턴 양이 내가 주려는 화려한 지위를 거절하리란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레옹턴 양은 의심할 여지없이 모든 프랑스 여자들의 부러움을 살 것이며열 번 죽었다 깨어나도 이런 자리를 얻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내가 마음만 먹으면 어떤 프랑스 여자라도 아내로 맞을 수 있으니까요. 

 

 자만의 응보를 믿는 사람이나잘 만든 일일 연속극을 좋아하는 사람이나 똑같이레옹턴 양이 프랑스 여자들이 가장 부러워하는 신부가 되기를 거절했다는 사실을 알면 만족스러워 할 것이다쿠르베는 자기를 밀어낸 시골의 어느 경쟁자와 "지능은 그들이 키우는 소 정도 되지만 돈으로 치면 소만큼의 가치도 안 되는 뻔뻔한 촌뜨기들"에 대한 분을 이기지 못하고 씩씩거렸다. (97-98)

 

 

 

3

 

동네 인근에 쫄쫄쫄 흐르는 도랑을 산책할 때도 쿠션 살아있는 운동화를 골라 신는 법인데, 하물며 미술이라는 거대한 흐름을 산책할 때 아무런 준비 없이 덤벼서는 될 일이 없다. 아무리 그 산책이 사적인 미술 산책이라 하더라도. 그런데 우리는 미술을 너무 모른다. 학교를 졸업하면 미적을 까먹듯이 미술을 까먹는다. 미술가는 잘 몰라도 무식한 사람이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다들 잘 모르니까.


대화 1

Q. 고흐?

A. 알지. 나보다 더 불행하게 살다간 고호란 사나이도 있었는데.

Q. 고갱?

A. …… 고흐 동생인가 그렇지? , 아니다, 형이다 형.

 

대화 2

Q. 레오나르도 다 빈치?

A. 모나리자.

Q. 미켈란젤로?

A. 천지창조.

Q. 라파엘로

A. , 알았는데, 걔 유명한데…….

Q. 도나텔로

A. …… 닌자 거북이?

 

대화 3

Q. 풀밭 위의 점심식사?

A. ……마네?

Q. 올랭피아?

A. ……모네?

Q. 수련?

A. ……마네?

Q. 피리부는 소년?

A. ……모네?

Q. 건초더미?

A. ……마네?

Q. 너 지금 순서대로 대답하냐?

A. ……모네?

 

이것들 중 딱 하나는 정말 실제로 벌어진 대화를 소름 끼치도록 사실적으로 묘사한 것이온데…….

 

 


4

 

이토록 평범한 인간 syo에게 미술 근처를 사적으로 산책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일은, 요원하지만 포기하기도 어려운 멋진 꿈이다. 이 책은 우리에게 미술에 대해 알려준다기보다는 미술을 산책하는 신뢰할만한 방법에 대해 알려주는 쪽에 가깝다. 그러니까 나라별 시대별 미술 사조를 좌르르 꿴다거나, 알려진 화가의 알려지지 않은 작품이나 알려지지 않은 화가의 알려진 작품에 숨겨져 있는 스토리들을 파헤친다거나(알려지지 않은 작가의 알려지지 않은 작품까지 신나게 통달했다면 셋 중 하나일 공산이 크다. 업자, 수집가, 아니면 그림변태), 지식 프레젠테이션 용으로 몇 개의 그럴싸한 그림 해석을 암기해놓는 그런 방식 말고, 하나의 작품과 그 작품을 만든 미술가의 삶에서 오늘 이곳에서의 내 관심사와 맞물리는 소소하고 개인적인 접점들을 찾아내는 방식을 잘 보여주는 책이라고 할까. 그러니까 이렇게 써도 결국 이렇게 쓰지는 못하겠지만 어쨌든 이렇게 쓰긴 해야겠다는 느낌. 저곳에 도착하지는 못하더라도 저곳을 향해 가면 되겠구나 하는 생각. 북극성을 따라간다고 북극성까지는 못가겠지만 그래도 북극까지는 가서 북극곰하고 콜라 한잔 하고 올 수는 있겠다는 마음.

 

 

 

5

 

미술가의 삶은 미술가의 작품만큼이나 놀랍거나 아름답거나 기이하거나 경탄을 자아내거나 한다. 미술가의 작품이 예술이듯이 미술가의 삶 또한 하나의 예술로 독자에게 다가오는 법이다. 비약해서 다시 말하면, 작품을 우리에게 선사하는 이가 예술가이듯이 그들의 삶을 우리에게 선사하는 사람 또한 예술가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 작업을 맡길 사람으로 줄리언 반스 정도의 거장을 데려오셨다면, 아 이놈의 무지렁이는 그냥 믿고 앞으로 앞으로 가는 것입니다요.




댓글(11) 먼댓글(0) 좋아요(7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락방 2019-12-03 15: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나도 읽어야겠다. 너무 좋다. 나도 읽을래요. 다른 것에 있어서도 그렇지만 그림에 있어서도 무식한 저는 이 책을 읽으면 너무 좋을것 같아요. 그리고 줄리언 반스 잖아요? 리뷰도 재미있고 책도 막 관심 생긴다. 훈늉한 리뷰입니당!!

땡투땡투~

syo 2019-12-03 15:51   좋아요 0 | URL
어쨌든 줄리언 반스니까요.
그거 하나면 뭐 일단 손해 날 일은 없다.

재미 없으면 내가 무식해서 재미 없는 거다. 근데 재미가.... 하하하. 재미있다 재미있다. 하하하. 하하. 하... 이런 식으로라도 보게 됩니다. 그리고 실제로 재미 있어요. 재미 있단 말이에요. 하하하. 하하. 하.

잠자냥 2019-12-03 17: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제가 줄리언 반스를 좋아하면서도 이 책은 패스하려고 했었는데, 이 글 때문에 읽어보기로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syo 2019-12-03 21:46   좋아요 0 | URL
정말요?? 가뜩이나 읽을 책 많은 세상에 제가 괜히 안 읽으셔도 될 책 읽으시도록 뽐뿌넣은 건 아닐까 우려도 되지만, 뭐 잠자냥님도 잘 아시다시피 줄리언 반스니까요 ㅎㅎㅎ 즐거운 독서 되시기를 바랍니다^-^

blanca 2019-12-03 2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리뷰는 정말 훌륭합니다. 짝짝짝.

syo 2019-12-03 21:47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ㅎㅎㅎㅎ 헤헤 칭찬 받았다.

반유행열반인 2019-12-04 0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술은 하나도 모르는데요. 며칠 전 그냥 딱 생각나서 폰 잠금화면을 저장되어 있던 고흐 그림으로 착 바꿨어요. 별이 막 떠 있고 그 아래 두 사람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그나저나 못 걸어둔 쿠르베 그림 궁금하다...이참에 프사도 바꾸시고 여기도 하나 척 첨부해주시(거나 저한테 따로 아 왜 궁금하)죠? 야, 그 눈깔 한개 달린 그 그림 그거 뭐냐

syo 2019-12-04 07:58   좋아요 2 | URL
쿠 선생님의 그 그림은 알라딘이나 북플처럼 프사가 작게 보이는 공간에 올리면 더 사진처럼 보이는 바람에 아주 심각한 결과를 불러일으킬 수 있답니다..... 미친 놈 아니면 뭔가 주장하는 놈이 되는 건데, 전 아직 충분히 미치지도 못했고 딱히 주장하고 싶은 것도 없어서요 ㅎㅎㅎㅎ 한 번 검색해 보시고 나면 아차 하실 거예요. 병인양요는 1866년입니다.

반유행열반인 2019-12-04 11:11   좋아요 1 | URL
아아...무식한 제가 검색이라도 부지런할 것을...저도 아는 그 그림이군요ㅋㅋㅋsyo님 예술 감각과 유머에 부합하지 못한 채 본의 아니게 결례가 많았습니다. 프사는 역시 분노의 포도알갱이죠....(숨는다...딴청...)

추풍오장원 2019-12-04 1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쿠르베 그림은 혹시 라캉 집에 있는 그림인가요 ㅎㅎ
syo님 덕분에 좋은 책 하나 더 알고 갑니다.

syo 2019-12-04 11:00   좋아요 1 | URL
바로 그렇습니다 ㅎㅎㅎ 역시 Comandante님의 식견은!!
저는 그 사실을 이 책에서 읽고 알게 되었답니다.
 

 

뜬금없는 이름의 역사

 

 

1

 

처음 좋아했던 사람은 syo아저씨라고 불렀다(이쪽에서는 아가씨라고 불렀던 것으로 기억한다). 고작 스물한 살이었고, 그 배에 조금 못 미치는 세월을 열심히 늙어가면서 연애하는 동안 누구도 다시는 syo를 그렇게 부르지 않았다는 점에 아이러니가 있다(이후에는 주로 귀염둥이 취급을 당해왔다). 든든하고 기댈만한 존재가 되어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그런 별명을 붙이지 않았는가 생각해 본다. 그녀는 나를 버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남자친구가 생겼으며 몇 년 후에는 결혼 소식도 들려왔다. 차이고 난 후, 한참 그녀의 미니홈피를 들락날락하며 찌질대던 시기에 발견한 그 남자는 언뜻 봐도 대놓고 아저씨였기에 나는 이별을 깔끔하게 납득할 수 있었다(비겁한 변명 1). 그러나 다시는 미니홈피에 발을 들이지 않게 된 계기는 조금 더 극적이긴 했다. 미니홈피 대문 사진은 신입생 환영회던가 신입생 대면식이던가 하여튼 그런 이름의 행사 사진으로써, 그 안에 우연히(혹은 운명처럼) 마주 앉은 그녀와 그가 찍혀 있었다. 아무래도 두 사람의 첫 만남이었던 듯. 그리고 그 아래 이때부터 나는 우리가 운명일 줄 알았다 운운하는 글귀도 쓰여 있었다. , 그때부터 너희는 운명이었구나. 명목상이지만 어쨌든 나랑 만나는 중에, 너는 그 사람과 운명일 줄 벌써 알고 있었구나. 와하하, 내가 그걸 몰랐구나, 이거 참 미안하네? 환승녀 안녕……. 그러고 나니 딱 감정이 정리되면서, 다시는 그 홈피에 들어가지 않게 되더라. 그리고 그때 받은 환승 트라우마 때문에 syo 역시 종종 환승 형식으로 사랑을 마무리하게 되는데(비겁한 변명 2)…….

 

그 다음 사랑했던 사람에게는 오빠를 베이스로 하여 꽤 다양한 방식으로 불렸던 기억이다. 창의적이고 발랄한 사람이라 그때그때 기발한 방식으로 별명을 지어줬는데, 키위, 쫑이, , 뭐 이런 것들이 아직 생각난다.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 막 혼란스럽고 정신없던 시기다. 결국 어떤 사람도 되지를 못했다. 그리고 그 다음 이는 이름 끝자를 다정하고도 정중한 방식으로 부르기를 좋아했는데, 그렇게 부르지 않을 때는 대체로 너구리라고 불렀다. 다크서클 때문에 생긴 별명이었는데, 너구리라고 불리면 자꾸 너구리가 되는 기분이었다. 동물원에 가서 함께 너구리를 보는 등, 너구리는 어떤 동물일까를 연구하는 데 시간을 많이 투자했다. 나잇값 못하고 자꾸 귀염을 떠는 것이 아마 이즈음부터가 아니었을까.

 

최장기 집권한 별명은 두말할 필요 없이 파이리. 연애 초였고, 자취방에 놀러가서 하루 종일 꽁냥대는 것이 일과의 전부였던 시기였다. 일단 집에 들어가면 편한 옷으로 갈아입어야 하는 법이다. 그녀가 장롱을 열고 뒤죽박죽된 옷 더미 사이에서 꺼내 준 것이 찐한 주황색 반팔 박스 티셔츠로, 기장이 길어 입고 있으면 어쩐지 상체가 길고 하체가 짧은 공룡종족처럼 보이는 옷이었다. syo를 유심히 쳐다보던 그녀가 말했다. “파이린데?” 그날 이후 10년을 파이리로 살았다. 썩 달가운 별명이었다. 이미 귀여운 것은 마다하지 않는 성품이 되어 있었다.

 

 

사람들은 왜 대부분 자고 일어나면 얼굴이 조금 강아지 같아지는 걸까오늘 아침 내 옆에서 자는 이 애는 조금 발발이 같이 생겼다어제는 차우차우같이 생겼었는데얘가 보기에 내 얼굴은 어떤 동물을 닮아있을까침실 밖에서 이 사람에 대해 이야기할 때에는 ''라고 부르지만 침실 안에서는 ''라고 부르게 된다내 침대의 사이즈는 고작 슈퍼싱글이라 서로를 걔라고 말하기엔 너무 간격이 좁기 때문이다.

이슬아일간 이슬아 수필집


 

 

2

 

연인 사이의 별명이 어떤 희망과 요청을 함축하고 있는 것이라면, 친구들 사이의 별명은 정말 놀랍도록 근본 없다.

 

박곰돌씨는 예측대로다. 박씨고, 몸뚱이가 곰이다. 박곰이 아니라 박곰돌인 이유는 야유에 가깝다. 이 양반은 고 2때까지만 해도 잘 생긴 외모에 날렵한 몸, 강인한 빠워로 동생 친구들을 이유 없이 억압하는 폭군 형아였다. 우리는 그보다 두 살이 어렸고, 그 나이 때 그건 감히 역모를 꾀할 수 없을 천부권력이었다. 우리에겐 굴종과 억압의 인생만이 있는 것인가- 하고 포기하려던 차에, 갑자기 그는 곰이 되었다. 하루가 다르게 곰이 되어가더니, 어어 하는 사이에 완벽한 곰이 되었다. 그리고 때맞춰 우리도 발육이 시작되었고, 절대 권력은 하루아침에 허망하게 무너져갔다. 그는 이제 한낱 곰, 그것도 손쉬운 곰돌이에 불과한 것이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박곰돌씨다. 길게 부르기 귀찮을 때 박곰 박곰 부르다가, 요즘은 박곰돌이 박곰돌았나하는 식으로 변형해서 사용하고 있다.

 

의 탄생은 한층 더 유치하다. 중학교 때쯤 우리는 이 세상에 벙어리 삼룡이라는 존재가 있다는 사실을 접했다. 그게 다였다. 의 본명이, ‘ㅅ용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는 삼룡이가 되었다. 그 나이 때 별명이라는 것은 대충 이런 식으로 탄생하는 법이다. 누군가의 입으로부터 배삼룡이라는 유명인사의 존재가 언급된 이후로는 배삼이라고 불리기 시작했다. 이쯤 되면 근본상실인 것이, 그의 이름과 배삼은 겹치는 글자가 하나도 없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것조차 귀찮아했다. 그래서 그는 결국은 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으로 표기하기 시작한 이유는 그냥 내 마음이다. 어느 날 syo의 핸드폰에 북플을 깔고, 로그인을 강제한 다음, 닉네임을 으로 바꿨다. . 어차피 활동을 안 할 생각이었고 그 생각대로 안 하고 있어서,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것 같다. 어쨌든 그날 이후로 그는 알라딘의 이다. 빼박.

 

외모에서 출발했다는 점에서 보면, 호밀은 박곰돌과 유사한 방식으로 탄생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진화과정이 조금 더 섬세하다. 처음 그와 마주했을 때, 우리는 그의 동그랗고 크고 광대뼈가 도드라진 귀여운 얼굴이 마냥 익숙했다. 그는 바로 용감한 어린이의 친구 우리 우리 호빵맨과 아주 그냥 영판이었던 것이다! , 얼굴을 갈아 끼울 수도 있을 것만 같이 생겼어. 빵아저씨만 있다면……. 그의 출발지점은 호빵맨이었다. 그러다가 역시 귀차니즘의 공격을 받아 빵맨이가 되었고, 곧이어 빵이혹은 맨이가 되었다. ‘팥맨이로 부르는 친구도 있었다. 그야말로 별명의 춘추전국시대였다. 그러다 천하를 통일한 자가 나타났으니 그것은 바로 빵떡이였다. 순수한 중2 아이들에게 된소리 2연타는 아, 도무지 저항할 수 없는 거대한 매력이었다. 모두가 그를 빵떡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우리의 귀차니즘은 포기하지 않고 우리를 덮쳤다. 그래서 결국…… 이야 되고 만 것이다……. 그렇게 한동안 여기저기서 떡이 되고 다녀도 무던하고 심지 굳은 우리의 호밀이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방실방실 웃을 뿐이었다. 착한 새끼……. 그러다 어느 날, 계기는 알 수 없지만 갑작스레 인권 감수성에 눈을 뜬 syo, 불알친구를 일 년 가까이 이라 부른 스스로를 용서할 수가 없게 된 것이다. 떡이라니…… 그에게 평생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준 것만 같았다. 결국 그는 다시 으로 회귀했다. 여전히 떡이라 부르는 친구들 앞에서 syo가 더 크게 빵빵 거렸고, 정치적 올바름을 결여한 은 결국 도도히 흐르는 시대정신의 흐름에 밀려 사장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빵은 댄스계에 투신, 얼마 지나지 않아 날렵하고 건강한 몸이 되어 우리 앞에 나타났다. 그런 그의 열정을 칭송하기 위해 우리는 고민했고, 옥타비아누스가 아우구스투스로 거듭나듯, 그는 빵에서 저칼로리 호밀빵으로 재탄생하였다. 여기에 다시 귀차니즘 한 스푼 첨가, 오늘날의 호밀이 완성된 것이다.

 

이 친구들이 syo를 부르는 방식은 통일되지 않았다. ‘콩이라 부르는 애, ‘땅콩이라 부르는 애, ‘버꾸라고 부르는 애가 있다. 콩이나 땅콩이라고 불린다는 말을 들으면 사람들은 syo가 쪼꼬미라서 그런 별명이 붙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실제로 만나보면 티내지 않고 조용히 확신하는 듯 보인다. 그러나 틀렸습니다! 이 별명들의 탄생 비화는 이렇다. 1때였다. 국어 시간에 배운 글 속에 아주 얍삽한 인간이 하나 등장했다. 이름이 춘삼이였나 그랬는데, 같이 노는 애들보다 나이가 몇 살 많아서, 순진한 어린이들 등쳐먹으며 낄낄대길 즐기는 녀석이었다. 어느 날 아이들과 함께 불가에 둘러앉아 콩을 볶아 먹던 춘삼이는, 자기는 냠냠하며 먹고 애들보고는 범버꾸범버꾸하면서 먹으라고 시킨다. 순박한 아이들 신나서 범버꾸범버꾸 이러고 있는데, 그러고 먹으니 콩이 씹힐 리가 없잖아. 얍삽한 놈. 그런데 그 수업이 끝나고 쉬는 시간에 짝꿍인 syo를 보더니 대뜸, 범버꾸범버꾸 하는 것이었다. syo는 이 아이가 미친 줄만 알았는데, 갑자기 교실 뒷편 자리에 앉아 있던 호밀이도 다가오면서 함께 범버꾸범버꾸 했다. syo는 그들이 나를 얍삽이라고 규탄하는 것인가 싶어 매우 당황하였는데, 알고 보니 단순히 내 이름 끝 글자가 이라서 그러고 노는 것뿐이었다. 멍청한 놈들. 그들은 아직도 syo가 얍삽이고, 조용히 그러나 충실하게 자기네들을 등쳐먹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다. 쯧쯔. 이러니까 니들이 콩을 못 주워 먹는 거지. 아니나 다를까, 그들은 그 이후 20년 넘게 syo에게 빨대 꽂혀 쭉쭉 빨리며 살고 있다고. 하여간, 그때부터 아이들은 syo범버꾸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버꾸라는 최종 형태는 여기서 파생된 것이다. ‘땅콩은 좀 더 놀라운 방식으로 등장했다. ‘맛동산이라는 과자가 있다. 시장지배력이 지금은 어느 수준인지 모르겠지만, 당시에는 CF까지 할 정도로 회사에서 미는 주력 상품이었다. CM송에 이런 부분이 있었다. ‘땅콩으로 버무린 튀는 과자바로 이 지점이었다. ‘버무린’. 역시 문제는 범이었다. 믿을 수 없겠지만, 정말 저 이유만으로 syo버무리’ ‘버머리가 되었다가 땅콩으로 버무려서 땅콩’, 버무린 것이 맛동산이라서 맛동산이 된 것이다. 결국 저기서 최종적으로 살아남은 것은 땅콩과 그 귀차니즘식 변형물인 이다. 결코 작아서 콩이 된 것이 아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콩이 되고 나니 작은 어른으로 자라나게 되었다. , 이 놀라운 별명의 자기실현성.

 


그러나 세월과 더불어 사람은 크는 법이고 또 이리저리 흘러다니게 되는 법이어서 그 뒤 얼마 안 있어 그 아홉 번이나 골목을 돌아가야만 찾을 수 있었던 그 집을 떠나버렸는데도 나는 언제나 그 조그마한 문간방을 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나는 거기에 나의 청춘이 기록할 수 있던 모든 것을 상형 문자로 기록해버렸고 모든 나의 환상과 나의 꿈을 거기서 소진시켜버렸던 것이다그 뒤부터 나는 여러 집을 옮겨 다니었지만 어쩐 일인지영 산 중턱으로 갈 기회가 없었고 그래서 산 중턱을 향하여 나의 불빛을 방사하며 응답만을 기다리게 되었던 것이다.

김현사라짐맺힘


 

 

- 읽은 -

+ 오늘 참 괜찮은 나를 만났다 / 양창순 : 220 ~ 336

+ 슬프다 할 뻔했다 / 구광렬 : 88 ~ 160

+ 사라짐, 맺힘 / 김현 : 168 ~ 291

+ 반 고흐, 영혼의 편지 / 빈센트 반 고흐 : 188 ~ 312

+ 자본주의 / 제임스 풀처 : 92 ~ 210

 

 

- 읽는 -

- 플라톤 국가 강의 / 이종환 : ~ 130

- 여자와 소인배가 논어를 읽는다고 / 서한겸 : ~ 82

- 나만 잘 살면 왜 안 돼요? / 이치훈, 신방실 : ~ 118

- 선량한 차별주의자 / 김지혜 : ~ 116

- 태고의 시간들 / 올가 토카르추크 : ~ 76

 


댓글(10) 먼댓글(0) 좋아요(5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추풍오장원 2019-11-30 14: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귀요미셨군요^^
‘영혼의 편지‘는 책등이 바랜 예전 책으로 갖고 있는데 꾸준히 잘 팔리나 봅니다. 착한 사람이 쓴 글이라 그런가..

syo 2019-11-30 19:03   좋아요 0 | URL
귀요미라는군요^-^
반 고흐야 원체 매력적인 캐릭터니까요. 아무래도 앞으로도 꾸준히 읽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ㅎㅎ

2019-11-30 14: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1-30 19: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반유행열반인 2019-11-30 14: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버꾸 콩 나오자마자 요람기 예측한 1인ㅋㅋㅋ 그래도 알라딘에선 언제나 syo 쇼 스요 시요 시오 지요.

syo 2019-11-30 19:06   좋아요 1 | URL
반님의 지식에 가끔씩 놀라곤 합니다. 제목이 요람기였었지요. 저도 말씀 듣고 생각이 났습니다.
저 친구들이 언젠가 알라딘에 와서 알라딘의 syo를 보면 굉장히 놀랄 것 같습니다.....

무식쟁이 2019-11-30 18: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힘 하나 안들이고(읽는 입장에선 그렇게 느껴진다는) 참 편안하게 재밌어요.
아무튼, 쇼님 (언젠간......)

syo 2019-11-30 19:07   좋아요 0 | URL
엄청 힘 빡 주고 썼습니다.....
티 안나서 죄송합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lovelyNH 2019-12-07 2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연히 알라딘 메일 타고 들어와 미술이야기부터 읽다가 syo님 글이 다 읽고싶어졌는데, 이 부분에선 정말 댓글을 아니달수가 없네요 ㅎㅎ 혼자서 큭큭 웃었어요!!

syo 2019-12-08 17:14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 읽어주신다니 감사합니다. 게다가 큭큭 웃으시기까지!
그러나 동시에 부질없는 일에 시간을 낭비하셔서는 안 된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어요 ㅎㅎ 세상에 읽을 만한 좋은 책, 좋은 글들이 얼마나 많습니까요....
 


돌아올 것 돌아오지 않을 것

 

 

1

 

생각해야 할 것들을 생각하지 않기 위해 생각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생각한다. 하지만 억압된 모든 기억들이 언젠간 반드시 증상으로 되돌아오듯, 어느 평온한 날, 철없이 유예한 것들이 사나운 표정으로 돌아와 잔잔한 일상을 거세게 휘젓고 말 것도 안다.

 


그렇다다시 돌아올 수 없이우리 삶의 모든 중대한 순간들은 단 한 번뿐다시 돌아오지 않는다이렇게 다시 돌아오지 못함을 완전히 알고 있어야만 인간은 인간일 수 있다속임수를 써서는 안 된다그런 것을 전혀 모르는 척해서도 안 된다.

밀란 쿤데라농담


 

 

2


왜 칸트인가 

김상환 지음 / 21세기북스 / 2019

 

철학 장르 입문서 덕후가 주의해야 할 생선이 있다. 그것은 연어다. 예를 들어 보자.

 

마르크스에 대해서 읽다 보면 헤겔 선생이 자꾸 눈에 밟힌다. 그래서 헤겔을 뒤적거리다 보면 칸트 선생이 자꾸만 사탕 줄게 아저씨 따라 갈래-를 시전한다. 낚여서 쫄래쫄래 따라가다 보면 길모퉁이에서 흄 선생이 고개만 빼꼼 내밀고 까꿍을 시도한다. 재밌어 보이기에 얼른 모퉁이를 돌아보니 데스라 삼형제(데카르트-스피노자-라이프니츠)가 버티고 서서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을 거라고 약속한다. 주섬주섬 떡을 꺼내 차례대로 하나씩 쥐어주었는데 은근슬쩍 누구 하나가 더 끼어들어 손을 내민다. 네 번째 손의 주인은 안 끼는 데가 없다는 아리스토텔레스다. 맛있게 떡을 씹고 있는 아리스토텔레스를 보고 있자니 문득 자동적으로 떠오르는 이가 있어, 너네 스승님은 어디 가셨니? 하고 물어본다. 그러자 아리스토텔레스는 그런 당연한 걸 진지하게 물어보는 사람은 네가 처음이라는 눈빛을 하고는 말없이 손가락을 세워 하늘을 가리킨다. 고개를 들어보니 앗, 은은한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플라톤과 눈을 마주친다. , 플라톤이었어. 난 또, 태양인줄 알았지.

 

거친 강물을 거꾸로 거슬러 오르는 연어들의 도무지 알 수 없는 그들만의 신비한, 뭐 그 비슷한 경로가 입문서 덕후에게도 늘 존재하는 것이다.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역류하는 물길에 휩쓸리지 않도록 단단히 버티고 서지 않으면, 망한다. 다 아는 것처럼 아무것도 알 수 없게 된다.

 

분명히 헤겔을 읽고 있었는데, 잠깐, 아주 잠깐 놓쳤던 정신줄을 다시 붙잡아 보니, 손에는 칸트가 들려 있었다. 화들짝 놀라서 던져놓았다. 어디에? 장바구니에.

 

요 몇 년 사이, 칸트도 정말 훌륭한 입문서를 갖춘 친절한 철학자가 되고 있는 것 같다. syo가 처음 칸트에 손을 대던 그 엄혹한 시절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쉽게 읽는이라는 타이틀이 붙었다고 선뜻 믿으면 나만 호구된다는 사실을, 주어 없는 쉽게는 한탄과 좌절만 부를 뿐이라는 안타까운 진실을 내게 가르쳐 주었던 그 책들…….

 

이제 조만간 칸트 입문서 커리큘럼도 확보할 수 있겠다. 기쁜 소식이 아닐 수 없다.

 

그나저나 이놈의 헤겔 샊이는 정말이지 어떡한담…….

 

 

 

3


어느 칠레 선생님의 물리학 산책

안드레스 곰베로프 지음 / 김유경 옮김, 이기진 감수 / 생각의길 / 2019

 

이 책의 제목에 들어 있는 물리학이라는 단어는 당연하게도 절대 빠질 수 없는 요소이긴 하지만 동시에 사람들의 손길을 뿌리치는 역할도 하겠지 싶다. 과학서적의 아이러니는 대충 그런 데 있다. 드르륵 넘겨보기라도 하면 좋을 테지만, 사실 그런다고 해서 정말 흥미로운 부분이 탁 걸리기도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 이유에서 syo가 여기, 이 책에서 가장 멋졌다고 생각한 부분을 옮겨 본다. 권해야할지 말아야할지는 아직 모르겠으나, 선택은 예비독자들의 몫이므로. 평균값은 아닙니다. 최댓값에 가깝습니다.

 

 “그래좋아.”

 레베카가 말했다.

 그녀가 분명한 목소리로 대답했다레온의 머릿속에는 여전히 이 말이 강한 한 발을 맞은 것처럼 울리고 있다그는 이 대답을 들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그가 그녀에게 전화해 할 수 있는 정확하고 용기 있는 말을 찾는 데 2주나 걸렸다그녀를 다시 만나고 싶어서 여러 상황을 생각해 보고 수십 개의 답변을 준비했다.

 “여보세요?”

 그녀의 달콤한 목소리를 들은 심장이 쿵쾅거렸다.

 그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여보세요레베카나 레온이야이번 주 금요일에 식사 초대를 하고 싶은데……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너도 발파라이소(칠레 발파라이소주의 최대의 항구 도시)에 가보고 싶어할 것 같아서한 번도 안 가봤다고 말했던 거 혹시 기억해해 질녘에 노을 구경도 할 수 있고투리 광장에서 치즈를 넣은 조개 요리랑 와인 한잔하면 좋을 것 같아서근데 시간이 안 된다면 괜찮아이해해…….”

그가 앞뒤가 안 맞는 바보 같은 소리를 하는 것 같았지만놀랍게도 그의 체면과 자존심을 세워주는 대답이 흘러나왔다.

 “그래좋아.”

 레온은 이 행복이 좀 얼떨떨했다그는 이제까지 늘 레베카와 거리를 두고 대화했었다지금도 그녀는 15km 이상 떨어진 먼 곳에 있다그 대답을 들었을 때 느꼈던 감정은 안테나와 실리콘 칩들 덕분에 이루어진 것이다그가 처음 그녀를 봤을 때도 최소 2m 이상 떨어져 있었다그 거리는 원자적 우주에서의 광대함 그 자체였다그렇다면 무엇이 그들을 연결한 걸까외롭던 그가 어떻게 아주 만족스럽게 레베카를 바라볼 수 있었던 걸까?

 이 모든 것의 답은 바로 파동에 있다그의 휴대전화에서 그녀의 휴대전화로 전송된 파동 덕분에 멀리 있어도 레온이 레베카를 식사에 초대할 수 있었다또한첫날 레온이 그녀를 볼 수 있게 해준 것도 바로 이 파동이다그날 오후 태양에서 나온 파동즉 빛은 레베카의 미소에 부딪히고 나서 다시 얼음이 되어 버린 레온의 오른쪽 눈으로 들어왔다또한그가 처음 들었던 그녀의 입에서 나온 말도 파동과 성대에서 나온 공기의 진동이었다그 진동들이 양쪽 귀에 도달한 것이다그가 레베카에 대해서 알게 된 모든 것은 물리적 현상즉 파동(전파소리)에서 시작되었다이런 비물질이 그녀의 이미지를 만들었다그는 이미 잘 알고 있었다적어도 사랑에 빠지기에는 충분하다는 것을. (59-61) 

 

 


4

 

그러니까 우리 이제 마주앉아 가능한 것들을 자꾸 이야기하자. 내일의, 먼 곳의, 아직 나타나지 않은 것들, 그런 것들 말고, 오늘 혼자 뚜벅뚜벅 걸으며 괜스레 추웠을 그 거리와 저녁에 함께 먹을 따뜻한 밥 한 끼를 이야기하자. 오지 않은 것들을 나열하다보면 오지 않을 것들을 믿게 되고, 한 팔로 안아 감을 수 없는 것들을 응시하다간 생채기만 쌓이기 십상이지. 한 입에 베어 물기 적당한 것들로만 적당한 하루를 가능하게 하자. 이야기가 많이 더 많이 필요하겠다.

 


우리 인간은 감정과 생각으로 산다우리는 같은 공간같은 시간에 있을 때 대화를 하고 서로의 눈을 바라보고 피부를 스치면서 감정과 생각을 교환한다이런 만남과 교환의 네트워크를 통해 성장한다하지만 사실 이러한 교환을 위해 굳이 같은 공간과 같은 시간에 있을 필요는 없다서로를 연결하는 생각과 감정들은 바다를 건너는 것도 어렵지 않고 수십 년의 세월을어떤 때는 심지어 수 세기를 건너뛸 수도 있다.

카를로 로벨리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5

 

그러나저러나, 읽는 것이 더디니 쓰는 일도 퇴일보만 거듭하고 있다. 얼마쯤 굳센 마음이 필요하다.


 

열심히 노력하다가 갑자기 나태해지고잘 참다가 조급해지고희망에 부풀었다가 절망에 빠지는 일을 또다시 반복하고 있다그래도 계속해서 노력하면 수채화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겠지그게 쉬운 일이었다면그 속에서 아무런 즐거움도 얻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계속해서 그림을 그려야겠다.

빈센트 반 고흐반 고흐영혼의 편지


"늘 더 잘 쓰고 싶어요제가 가지고 있는 문장이라든지어떤 평범한 것들을 더 윤을 내서 빛나게 해야 하는데더 잘해야 하는데그런 생각을 계속해요그렇지만 잘하지는 못하고현상을 유지하는 것도 힘에 부쳐서 늘 헉헉거려요더 잘 쓰고 싶고예전에 안 썼던 것도 써보고 싶고요한데 늘 시간에 쫓기고 마감에 쫓기느라.“

김필균문학하는 마음』 中 최은영의 말

 

 

 

- 읽은 -

+ 강의 / 신영복 : 357 ~ 515

+ 혐오의 시대 철학의 응답 / 유민석 : 102 ~ 196

+ 아리스토텔레스 / 조대호 : 222 ~ 331

+ 예측 불가능한 시대에 행복하게 사는 법 / 윤성식 : 146 ~ 299

 

 

- 읽는 -

- 자본주의 / 제임스 풀처 : ~ 92

- 사라짐, 맺힘 / 김현 : 64 ~ 168

- 반 고흐, 영혼의 편지 / 빈센트 반 고흐 : 88 ~ 188

- 슬프다 할 뻔했다 / 구광렬 : ~ 88

- 오늘 참 괜찮은 나를 만났다 / 양창순 : 107 ~ 220

 


댓글(19) 먼댓글(0) 좋아요(6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락방 2019-11-28 1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느 칠레 선생님의 물리학 산책...까지 한국에 있는 쇼님이 읽네요? 좋은 세상이다.
그나저나 레베카 스토리 좋다..
그래 좋아 ♡

syo 2019-11-28 16:45   좋아요 0 | URL
달달하죠? 레온이도 귀엽고....
저렇게 며칠이나 고민하고 궁리하고 예상질문 뽑아 가면서 설레봤던 게 그러니까 구한말쯤이었나.....

반유행열반인 2019-11-28 1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굳세게, 읽고 쓰고 살고! (그런데 나란 놈은 왜 책장 열 쪽을 못 넘기고 이러고 있는가...)

syo 2019-11-28 16:45   좋아요 1 | URL
읽는 것 따위 저리 꺼지라 할 정도로 재밌거나 알차거나 행복하거나 한 뭔가를 하고 계신 게 아닐까요?
그랬으면 좋겠어요 ㅎㅎㅎ

반유행열반인 2019-11-28 19:52   좋아요 0 | URL
빌어주신(추측해주신?) 덕분에 내일도 재밌거나 알차거나 행복하거나 한 하루를 보낼 것 같습니다. 꾸준히 읽는 멋진 syo님, 항상 힘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syo 2019-11-28 23:34   좋아요 1 | URL
제가 엉겁결에 힘 이런 걸 드렸나보네요. 저 하나 감당하기도 벅차서 낑낑대는 아이를 남도 일으켜 세우는 훌륭한 인물로 만들어주시네요. 제가 늘 감사합니다^-^

초록별 2019-11-28 1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열독모습에 감동받습니다...몇칠전부터 프루스트 <잃어버린...>끼고 돌아다녔는데
굼벵이기어가듯~~^^

syo 2019-11-28 16:46   좋아요 0 | URL
아..... 그 책이라면 정말이지 굼벵이가 읽으나 제가 읽으나 속도에 별 차이가 없을 것도 같습니다.
어렵고 보람찬 길 가시네요 초록별님. 응원합니다.

수이 2019-11-28 1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다리고 기다리던 쇼님 페이퍼~ 아리스토텔레스 읽고싶지만 참아야지~

syo 2019-11-28 16:48   좋아요 0 | URL
아리스토텔레스 나쁘지 않던데요?
그리고 책이 예뻐요.... 저 시리즈는 어쩐지 자꾸 뽑아들게 하는 외모예요. 저한테 먹혀요.....

Angela 2019-11-28 19: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syo쌤의 시대별 철학 개론” 뭐 이런거 한번 가시죠!

syo 2019-11-28 23:35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 이름만 들어도 언감생심이네요.

감은빛 2019-11-28 20: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글 읽고 책 두 권 보관함에 담았습니다.
책 읽을 시간은 없건만, 왜 자꾸 책을 보면 사고 싶어지는지 모르겠네요.
아니 읽을 시간을 억지로 만들어서 읽어야 한다고 생각은 하지만,
늘 현실은 일 때문에 들춰보는 책이 아니면 손도 못 대고 있죠.

마르크스에서 플라톤까지 연어 이야기 잘 읽었습니다.
정말 타고난 이야기꾼이세요!
다음에 또 어떤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주실지 기대하겠습니다.

syo 2019-11-28 23:37   좋아요 1 | URL
제가 뭘 채점하고 판단할 만큼 살아보지도 못했지만,
제 생각에는 그렇습니다.
바쁘고 정신없는 와중에도, 언젠가 읽으리라는 생각에 책장을 배불리는 사람은,
어느 날 자기 탓이 아닌 이유로 길을 잃어도, 잠시일 뿐 결국 자기 길을 금방 찾아내는
좋은 사람이다- 저는 그렇게 믿고 있답니다.

감은빛 님 언제나 화이팅입니다 ㅎㅎㅎㅎ

추풍오장원 2019-11-28 2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리스토텔레스도 끌리는군요. 아르테 출판사 책들이 디자인도 잘 되어 나오는 것 같습니다.
쓰신글 즐겁게 읽었어요..^^

syo 2019-11-28 23:38   좋아요 0 | URL
그렇죠? 저 책들 하나하나도 예쁘지만 주욱 꽂아놓아도 서재가 굉장히 예뻐질 것 같습니다.
이제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으로 서재 데코하는 시절은 지나간 것인가요.
Comandante님, 들러주셔서 언제나 감사합니다^-^

짜라투스트라 2019-11-29 1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헤겔 샊이 ㅋㅋ 그러나저러나 제가 칸트 원전이랑 헤겔 입문서를 동시에 읽다 못버티고 한달동안 독서를 멀리한 걸 생각해보면 맞는 ‘샊이‘가 맞는 말이기는 해요^^;;;

syo 2019-11-30 13:19   좋아요 0 | URL
저는 심지어 원전을 읽지도 않습니다 으하하하하하.....

종이달 2022-05-22 2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얘들아 사랑해요

 

 

1

 

호밀, , 박곰돌씨 그리고 syo, 서로를 소위 말하는 불알친구로서 인식하고 있는 사이다. 옛 성현 가라사대, 불알친구라 함은, 물가에서 불알 내놓고 놀아도 부끄러운 줄 모르던 꼬꼬마시절부터의 오랜 친구라는 뜻이라는데, 우리는 처음 만났을 때 불알 이거 함부로 내놓고 놀았다간 큰일 치르기 십상이라는 것 정도는 아는 나이긴 했다. 그럼에도 주말이면 함께 대중탕에 다니며, 우리가 가진 불알의 합계가 그래도 홀수는 아니라니 이것 참 다행이지 암 다행이야, 확인 또 재확인했던 정도는 되는 사이이므로, 불알친구라 칭함에 모자람은 없지 않겠는가 말입니다.

 

 

 

2

 

호밀은 대구 지역에서 알아주는 춤 선생이다. 춤 선생이라는 용어가 또 구수한 가운데 또 구릿한 맛이 있어, 이렇게만 언급하고 지나가면 이 지역 춤판의 패권을 장악하고 있는 호밀의 입지에 타격이 있겠으니 좀 더 상세한 설명이 필요하겠다. 호밀이 운영하는 학원 연습실에는 새벽이 다 가도록 춤 연습에 몰두하는 중학생, 고등학생 아이들이 잔뜩 있다. 더없이 천진한 표정으로 선생님, 저 정말 이번에는 식음을 전폐하고 공부하였지만 중간고사 수학 15점 받았어요- 라는 폭탄고백을 해 오는 귀여운 아이들을 가르치고, 선생님, 우리 애는 공부랑은 잘 안 맞는 것 같아요. 이제 저희에겐 선생님뿐이에요. 라며 희망을 걸어오는 학부모님들을 다독이는, 호밀과 휘하 많은 선생님들은 그런 일을 하고 있다고.

 

하여간, 토요일에는 이제 삼십대도 장렬하게 끝물을 맞이해버린 박곰돌씨의 생일 행사가 있었고, 그의 친동생인 이 모처럼 대구로 내려왔기에 우리 네 사람이 오랜만에 한 자리에 모일 수 있었다. 최근 인생행로가 미친 듯 격렬하게 변모 중인 syo는 그 자리에 투척할 몇 가지 고민거리를 준비해보았는데, 막상 살얼음이 잔뜩 낀 500잔을 앞에 놓고 앉은 세 사람의 표정이 알쏭달쏭하여 투척이 쉽지가 않았다. 그리하여, 목하 너희가 겪고 있는 가장 힘들고 슬픈 일들을 이야기해보아라 요청하였는데, 다들 뭔가 스멀스멀 말하긴 했으나 그들이 고백하는 가장 큰 슬픔이라는 게 겨우 syo가 가진 패 가운데 가장 허름한 사연에 떡발릴 정도였다! ! 알고 보니 이 시끼들은 자기들끼리만 조용히 행복했어! 불알이 뭐 이따위로 야박해! 한 개쯤 없어져도 되겠구만 오늘 확 홀수 만들까 만들어 보까.

 

그런 분노를 버무려 내놓은 syo의 슬픈 스토리에 혀를 차며 위로하던(가만, 위로하는 데 혀를 찼다?) 호밀이 뜬금없이 말하길, 자기에겐 오랜 소원이 하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뭔고 하니, 바로 자기가 곡을 만들고(최근에 작곡 공부를 시작했다고 한다), syo가 가사를 붙여(얘들은 내가 글로써 세상을, 세상까지는 아니더라도 읍면동 크기의 영토 하나쯤은 정복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우리 네 사람의 목소리로 노래 몇 곡 뽑는 것, 그리고 그 노래들을 가지고 소규모의 공연을 해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 이 야망 스케일 좀 보소! 과연 대학교 때 댄스 스포츠 교양과목을 들었다가 문득 깨달은 바 있어 불알 두 쪽(짝수)만 차고 투신, 십여 년 만에 이 지역 업계를 평정한 댄스입시계의 나폴레옹답다 하겠다. 그도 그럴 것이, 음악에 관해서라면 우리 네 사람은 현재, 악보 하나 읽을 줄 모르고, 악기 하나 다룰 줄 모르는, , 그야말로 핫바지 오브 핫바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가능이라는 단어가 등재되어 있지 않은 고장 난 사전을 갖고 다닌다는 소문이 헛소문은 아니었던지, 이놈의 호밀레옹은 한 번 말이 나오자 그때부터 끈질기게도, 지금 당장 한 번 연습실에 가서 이야기를 나눠보자, 우리가 다 아는 노래로 재미삼아 녹음 한 번만 해보자, 아니면 곡 선정만 해보자, 파트만 나눠보자, 그야말로 끝도 없이 달겨드는 것이다. 하도 그 이야기를 듣고 있다 보니, 준비해온 슬픔카드들은 귀찮아서 소멸했고, 맥주잔의 살얼음은 온데간데없어졌고, 마침 먹태도 증발했고, 남 슬픈 이야기 할 때는 반쯤 졸고 앉았더니 이야기 끝나자 네이버로 토트넘 스코어나 확인하며 눈을 반짝반짝 빛내는 박곰돌씨도 꼴 뵈기 싫고, 아 모르겠다, 그래 가자 가, 소원이라는데 내가 한 번 가 준다! 이렇게 되고 만 것이다.

 

 

 

3

 

호밀의 거대한 승합차를 타고 연습실로 가는 새벽 두 시의 도로 위에서 syo, 아 내가 진짜 하도 간절하게 바라니까 한 번 해주는 거다, 원래 난 새벽시간에 술까지 먹고는 절대 노래 안하는 사람인 거 다들 알아줬으면 한다, 참 우정이란 이런 것이다, 있는 생색 없는 생색을 내며 친구들을 지루하지 않게 해주느라 분투했다(참 우정). 그러자 핸들을 잡고 있던 호밀이 파안대소하며 20년도 더 지난 추억 한 자락을 소환했다.

 

어릴 적부터 노래라고는 동요와 창작동요밖에 모르던 순수한 어린이가 있었는데 그 이름을 syo라 했다. 그러나 그런 syo에게도 중학교 입학을 앞두자 삼쩜오춘기는 오고, 이내 그는 이런저런 테이프들을 입수해 몰래몰래 가요라는 것을 들으며 어른의 삶과 사랑에 대한 달고도 쓴 지식들을 쭉쭉 빨아들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아니, 사랑이 이런 거였다니. 햇빛 눈이 부신 날에 이별해 봤니비오는 날 보다 더 심하단다작은 표정까지 숨길 수가 없잖아크아이별에 공식이크아죽인다, 이 쌉싸름짭쪼름한 것이 바로 어른의 맛이라는 그것인가해본적도 없는 이별인데 그 공식은 어떻게 또 알 것만 같았나보지, 근의 공식도 모르는 놈이. 하여간, 그렇게 어른이 되(었다고 착각하)면서 또 내가 이미 어른임은 숨기고 싶었던 syo, 학생은 공부를 해야지, 가요 같은 건 대학가서도 부를 수 있어, 뭐 이러면서 끝까지 동요밖에 모르는 척을 했던 모양으로, 6학년 졸업여행지로 가는 버스 안에서 아이들이 전부 HOT 노래를 합창할 때도 나는 핫인지 뭣인지 걔네들 누군지 몰라- 이런 세상 누구도 속지 않을 컨셉을 잡으며 따라 부르기를 거부했던 기억이다. 중학생이 되어 친구들이 노래방에 다니기 시작했을 때에도 syo는 함께 가긴 했지만 너도 노래하라는 말에는 고개만 가로저었고, 마이크를 건네든 말든 한번 낀 팔짱은 음료수 마실 때나 푸는 어이없는 고집쟁이였다.

 

그리고 여기서부터가 호밀의 증언이다. 그러던 중2의 어느 날, 참다 참다 호밀이 말했다고 한다. , 너는 지금 우리랑 노래방 같이 온 게 30번도 넘을 건데, 어떻게 진짜 한 번을 안 부르느냐, 이 독한 새끼야? 이 말했다고 한다. , 우리가 명색이 불알친군데 불알친구랑 노래방에 와서 팔짱만 끼고 앉아 있게 되어 있느냐, 지금 불알을 업신여기는 것이냐, 업신여기는 데만 쓴다면 그 불알 너한테 과연 두 개씩이나 필요하겠느냐, 이 징한 새끼야? 그리고 박곰돌씨가 말했다고 한다. , 가만 냅뒀더니만 고등학생이 만만해 보이느냐, 지금 당장 노래를 부르지 않으면 나의 주먹이 너의 그 쓸모없는 주둥이에 새로운 쓸모를 만들어 주고 말 것이니 목숨이 아깝다면 지금 당장 학교종이땡땡땡이라도 2절 완창 하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 이 콩만 한 새끼야? 상황이 그쯤 되자 드디어 syo의 팔짱은 풀렸던 것이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뚜벅뚜벅 스크린 앞으로 걸어 나갔다. 마이크를 딱 켜더니 아아아, 마이크 테스트, 하나둘하나둘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춘궁기에 모래 섞인 쌀 한 되 부어주며 생색내는 악덕 지주같은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 내가 진짜 하도 간절하게 바라니까 한 곡 불러주는 거다. 원래 어디 가서 노래 부르고, 나 그런 가벼운 사람 아니다. 너희들 쯤 되니까, 그래 우리 쯤 되는 사이니까, 내가 나의 굳은 신념을 깨고 지금부터 노래 한 곡 하려 한다. 그러니까 이런 내 마음, 너희는 알아야 한다. 자 그럼 노래를 시작하겠다. 아아아, 도레미파솔라시도 아아, 흠흠. 그러고 돌아서서 기계에 붙은 번호판을 신중하게 누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syo가 오랜 침묵을 깨고 처음 선택한 곡은, 이후 봇물 터지듯 일주일에 세 번씩 노래방을 다니며 마이크를 놓지 않았던 노래방 쳐돌이 syo가 처음 부른 기념비적인 곡은, 오늘날까지 6명의 결혼식에서 축가를 불렀고, 결혼 못 할 것 같긴 한데 호밀과  박곰돌씨가 기어이 결혼한다면 그때도 축가를 부르게 될 것 같은 syo가, 그 놀라운 여정의 첫 번째 디딤돌로 고른 전설적인 바로 그 곡은,

 

 

한스밴드 선생님 사랑해요


였다고 합니다.

 

아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한스밴드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선생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그리고 아직도 생생히 기억나는 저 노래의 킬링파트는 다름 아닌,

 

나의 첫사랑 너무 소중해

그 사람 나를 어떻게 보실까

내가 바라는 건 단 한번이라도

나 그분 앞에서 여자이고 싶어

 

와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뭐이고싶다고?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죽고싶다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4

 

더는 군소리 없이 호밀을 따라가, 아이들이 밤새도록 춤 연습을 하는 연습공간의 지하층에서 문을 꼭 닫아걸고, 네 시 반까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우리는 노래를 불렀다. 잘 알지도 못하는 노래를. 그때는 말하지 않았지만 얘들아, 호밀의 그 꿈 이야기 때문에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지만 얘들아, 너희들이 이 글을 볼지는 모르겠지만 얘들아,

 

우리, 노래 정말 소름 돋게 못 하더라.

도무지 답이 없더라.

근데 왠지 연습은 또 정말 너무 열심히 하더라……

그래서 더 가열차게 불쌍하더라…….

 

그리고 전신 거울로 봤더니 나 되게 작고 못생겼더라…….

 

근데 니들도 다 고만고만하더라…….

그나마 이 중에서는 내가 제일 나은 것 같더라…….

 

그래서 웃은 거였어.

행복해서 웃은 게 아니라…….

아니지, 이것도 행복이라면 행복이지…….

노래가 웃겨서 웃기 시작했지만,

마지막까지 웃은 건 얼굴 때문이었어…….

얘들아 미안해…….

 

그래서 같이 다니는 건 아니야, 아니지만,

못생긴 애들 중에 그나마 제일 잘생긴 애라서,

내가 늘 너희들한테 참 많이 미안해…….



 

사람들이 저마다 다르게다채롭게도 못생겼다는 생각이 들었다각자 다른 방식으로 못생긴 사람들이 하나도 즐거울 게 없는 표정으로 거리를 걸어 다니고 영화를 보고 백사장을 걷는 게 축제인가.

박상영패리스 힐튼을 찾습니다


우리는 현실을 쉽게 받아들인다아마도 그것은 그 어느 것도 현실이 아니라는 사실을 직관하기 때문일 것이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죽지 않는 사람」


우리가 저자를 비웃고 있느냐아니면 저자와 함께 웃고 있느냐이 두 질문 사이에는 본질적으로 중요한 차이점이 있다저자의 등 뒤에서 웃고 있는지아니면 마주 보고 웃고 있는지저자의 의도와는 반하게 웃고 있는지아니면 그의 의도에 부합해서 웃고 있는지고민해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비스와바 쉼보르스카읽거나 말거나


기억은 지나간 것에 대한 의식적 접근즉 의식 활동입니다절대로 무의식 활동이 아닙니다하지만 기억을 탈의식적인 것으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아요섬세한 성찰 없이 기억은 상당히 문학적인 개념으로의식은 비문학적인 개념으로 이야기합니다마치 기억을 중요시하는 것은 문학의 영역인 양 말이죠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에 따르면 기억이 결국 '자기방어 시스템'이고 그 목적은 자기 보존에 있습니다현재의 자기를 지키려고 하는 거예요그래서 의식은 객관적이지 않고 현재 자기를 그대로 유지하는 데 방해가 되는 요소를 걸러 내는 필터로 작용합니다언제나 방어기제죠의식 활동으로서 기억은 과거라는 무한한 경험의 저장고에서 현재 자기에게 유리한 것들만 뽑아내는 작업입니다기억을 분석하면 결국 '의도'가 들어 있다고 할 수 있겠죠.

김진영철학자 김진영의 전복적 소설 읽기

 

 

- 읽은 -

+ 마키아벨리 / 김경희 : 173 ~ 291

+ 가능세계 / 백은선 : 150 ~ 243

+ 작가는 어떻게 생각을 시작하는가 / 이응준 : 133 ~ 272

 


- 읽는 -

- 강의 / 신영복 : 250 ~ 357

- 아리스토텔레스 / 조대호 : 117 ~ 222

- 혐오의 시대 철학의 응답 / 유민석 : ~ 102

- 반 고흐, 영혼의 편지 / 빈센트 반 고흐 : ~ 88

- 오늘 참 괜찮은 나를 만났다 / 양창순 : ~ 107

- 예측 불가능한 시대에 행복하게 사는 법 / 윤성식 : ~ 146

 


댓글(19) 먼댓글(0) 좋아요(6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반유행열반인 2019-11-25 06: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하하하 정말 재밌다 금희언니 소설보다 더ㅋㅋㅋ. R.ef H.O.T.(점 중요ㅋㅋ) 한스밴드 들으니까 syo님 같은 세대인데요? 엄청 젊은이 아니었어?! 슬픔카드 왜 이리 많아요. 왜 슬퍼요. 행복하세요.

syo 2019-11-25 08:28   좋아요 1 | URL
졸면서 써서 그런가 아침에 일어나서 보니까 엉망진창이네요. 어젯밤의 나에게 꿀밤을 멕이고 싶습니다.
듣자니 행복은 멀리 있는 게 아니라고 합니다.
안 멀리 당최 어디 있는지를 몰라서 그렇지....

stella.K 2019-11-25 15: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춤추러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오는 줄 몰랐네요.
옛날에 춤 선생하면 지루박이나 가르치는 줄말 알았고
쿠웨이트 박을 떠올리곤 했죠. 스요님 쿠웨이트 박 아시려남요?
한스 밴드 하니까 정말 아련하네요. 그들은 지금 뭐하며 살까요?
가능성 있는 좋은 밴드였는데...ㅠ

cyrus 2019-11-25 20:45   좋아요 0 | URL
현재 한스밴드는 CCM 전문 밴드로 활동하고 있어요. ^^

syo 2019-11-25 22:43   좋아요 1 | URL
진로의 일환으로 춤을 배우는 아이들이 많더라구요. 물론 그게 다 그들의 꿈이겠지만요. 새벽 2시에 연습실에 들어갔는데, 그때 이미 2층에서 연습하던 아이들은 4시 반에도 계속 춤을 추고 있더라구요..... 어른인 제가 한심해지고 막 그랬습니다.

cyrus 2019-11-25 2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선생님 사랑해요’, 그 노래, 요즘에 나오면 대박나지 못할 거예요. 노랫말을 보면 찝찝해요. 미성년 여학생이 남교사에게 사랑 받고 싶은 여자가 되고 싶다니... ^^;;

syo 2019-11-25 22:44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ㅎㅎㅎㅎ 그 당시 그 친구들이 직접 작사 작곡 한 건 아니었나봐요??

stella.K 2019-11-26 15:06   좋아요 0 | URL
헉. 그럼 한스밴드가 지금도 활동하고 있단 말이냐?
CCM 전문 밴드 맞아. 지금은 30대 후반쯤 됐겠다.ㅠ

psyche 2019-11-26 0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yo님 글을 읽으니 연애시절 제 동생과 처음으로 갔던 노래방에서 당시 남자친구였던 남편이 바위고개를 우렁차게 불렀던 생각이 나네요. 그 후 노래방 가면 무조건 바위고개 번호 쳐놓곤 했는데 ㅎㅎ
친구들과 함께 노래하는 거 넘 부러운데요? 잘하고 못하고랑 상관없이 같이 모여 연습하고 뭔가를 만들어 간다는 자체가 소중한 거 같아요. 열심히 해 보시라고 응원합니다!

syo 2019-11-28 11:30   좋아요 0 | URL
호밀레옹은 꿈을 현실로 만들 때까지 친구들을 쥐잡듯 잡을 놈이라서 두렵습니다.....
저러고 노는 것 자체는 즐겁지만, 그래도 그 친구가 정신을 좀 차렸으면 좋겠어요. 우린 노래를 오지게 못한다는 사실을 얼른 알아챘으면..... ㅎㅎㅎㅎ 다른 친구들 반응 역시 미적지근 한 것이, 어쩐지 응원 말씀이 헛될 것 같긴 하지만, 감사합니다!

공쟝쟝 2019-11-27 2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스밴드.. 주주클럽... 영턱스클럽.. 배반의 장미..??...
이상, 갑자기 생각나는 .. 마이마이라는 물건으로 들엇던 노래들입니다... 요즘 카세트테잎이 다시 유행이래요... 하하...

syo 2019-11-28 11:32   좋아요 1 | URL
엄마가 마이마이 안 사줬어요.
그래서 잘 후려치면 사람도 너끈히 죽일 수 있을 것 같이 생긴 거대한 라디오를 방으로 가져와서 노래를 들었다고 합니다.....

공쟝쟝 2019-11-28 19:37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 아깝다 ㅋㅋㅋ 마이마이 엄마가 사줫으면 쇼님 진로가 바꼈을 텐데 ㅋㅋ 아이돌로??

syo 2019-11-28 23:39   좋아요 0 | URL
말씀 듣고 나니까, 엄마가 사람 하나 살렸네요. 와, 사랑합니다 어머니.

감은빛 2019-11-28 2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노래방에서 처음으로 부른 노래를 기억하시다니!
이 글 읽으며 저는 과연 어떤 노래를 맨 처음 불렀을까 떠올려보는데, 도저히 모르겠어요.
신해철이나, 공일오비였을 가능성이 높을 것 같아요.

아, 저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처음 부른 노래가 뭔지는 기억해요.
아주 어렸을 때였는데, 박남정의 [널 그리며]였어요.
여름이면 해마다 아버지 지인 가족들과 대형 버스 한 대를 가득채워 여기저기 놀러다녔는데,
그 버스에선 늘 맨 앞에서부터 맨 뒤 좌석까지 마이크가 돌면서 노래를 강요했죠.
제가 기억하는 한 남들 앞에서 맨 처음 노래를 불렀던 때가 그때였던 것 같아요.

syo 2019-11-28 23:42   좋아요 0 | URL
저도 저런 제목과 가사의 노래를 처음 불러서 어쩐지 부끄럽습니다.
인생의 흑역사란 게 뭐 별거겠습니까.
이렇게 공개하면서 하나씩 탈탈 털고 가는 거지요 으하하하하.....
이후로도 노래나 노래방에 관한 흑역사는 잔뜩잔뜩 있습니다만....

그나저나 박남정의 [널 그리며]라면, 그 손을 볼 옆으로 턱 밑으로 이렇게 이렇게 하는 그 유명한 춤 노래 그건가 보네요. ㅎㅎㅎㅎ 춤은 추셨을지.....

카알벨루치 2019-11-29 14: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좀 웃기네 ㅋㅋㅋ글도 인용글도 웃겨 쇼군 냄새 막나네요 ㅎㅎㅎㅎ

syo 2019-11-30 13:19   좋아요 0 | URL
제 냄새요? 페브리즈 사와야겠네요ㅎㅎㅎㅎㅎㅎ

종이달 2022-05-22 2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심심교환

 

 

1

 

돈을 벌기 위해 시간을 들이듯, 말을 벌기 위해 마음을 들이붓는다. 하지만 그렇게 벌어들인 말을 녹이고 태워 원하는 건 결국 다시 마음을 덥히는 일. 이렇듯 마음을 엮어 말을 빚고, 그 말을 건네 다른 말을 받고, 받은 말을 풀어 다시 마음을 뜨개질하는 복잡한 방식이 우리의 회계원리라면, 그냥 처음부터 대차대조표를 접어 차변과 대변을 맞붙이면 어떨까. 마음과 마음을 맞대어 윤곽을 맞추고, 다르면 다른 대로, 닮았으면 닮은 대로, 그저 퍼내도 퍼내도 마르지 않는 이 마음이니 필요한 만큼 가져가라 한껏 열어두면 나쁠까.

 

자주 말에 취하지만 가끔은 말이 버겁다.

 

 

 

2



저녁에는 집에 들어와서 서재에 들어갑니다들어가기 전에 나는 종일 입고 있던 진흙과 먼지가 묻은 옷을 벗고 궁정에서 입는 옷을 차려입습니다그렇게 적절히 단장한 뒤 선조들의 궁정에 들어가면 그들이 나를 반깁니다그리고 거기에서 나만의그 때문에 내가 태어난 음식을 먹습니다나는 그들과 이야기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으며 그들의 행적에 대해서 궁금한 것이 있으면 캐묻습니다그들은 친절하게 답변합니다네 시간 동안 거의 지루함을 느끼지 않고모든 근심과 가난의 두려움을 잊습니다죽음도 더는 두렵지 않습니다나 자신을 완전히 선조들에게 맡깁니다.

김경희마키아벨리, 133-134 

 

syo가 마키아벨리 입문서/개론서를 싸그리 다 읽은 것은 아니니까 전부라고는 말하지 못하겠고, 7할 정도라고 말하면 넘치지 않겠군, 하여간 읽었다 하면 튀어나오는 대목이다. 이제 저 대목을 만나지 못하면 소머리국밥집에 가서 눌린 돼지머리를 먹고 나오는 기분 비슷하게 될 지경입니다.

 

 

 

3

 

어제 늦은 밤, 얼마 후면 일을 시작한다고 생각했더니 아득해졌다. 사람들 다 짊어지고 사는 무게인데도,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 정도는 대기압인데도, 한 번도 얹어보지 못한 뭔가를 어깨에 얹는다는 상상은 벌써 무겁다. 해가 아직 동쪽에 있는 하늘을 이고 일터에 가서, 때론 해 없는 밤을 걸어 집으로 돌아오겠지. 마음은 낮에 이미 다 썼고, 텅 빈 그릇이 되어 침대 위에서 덜그럭거리게 될 거야. 책상위에 읽을 책들은 자기들끼리 모여 탑을 쌓고, 그 아래 깔린 부담감이나 죄책감이 비명을 질러도 이틀에 한 번은 귀를 막겠지. 나는 이제 사랑할 체력이 남지 않았으니 사랑 니가 나를 좀 해줬으면 좋겠다, 듣자니 너는 되게 강하다던데- 뭐 이런 생각이나 할지도 모르겠다. 생각 놈이 성큼성큼 잘도 저기까지 미치니, 미치겠다 무섭다 외롭다 징징대고 싶다 안기고 싶다 안기고 싶다 우와 안기고 싶다 정말이다 이렇게 되고 말았다.

 

꼬맹이가 사는 방에 밤은 늘 길기만 하다.

 

 


  "정말이에요?" 그녀가 묻자 그가 도리어 "?" 하고 되물었다. "별도 태어나고 죽는다면서요." "아 그거텔레비전에서 봤어요그러니까 저기 저 별들한테도 마지막이란 게 있단 거예요내일이면 꼴까닥하는 별일지도 모른다는 거죠그러면 우리가 마지막으로 저 별을 본 사람들이고요운이 좋네요." "운이 좋다고요?" "좋죠좋다고 생각해요까짓것."

  한강을 지나는 다리 조명이 소등시간에 맞춰 꺼졌고 그녀는 정말 내일이면 사라질지도 모르는 어떤 세계에 대해 생각했다그건 그녀의 시야를 가리던 옥수수밭으로부터 멀지 않은 세계아주 낯익고 피해 갈 수 없는 어떤 치명적인 상처를 지닌 세계였다꺼져가는 세계였고 죽어가는 세계였다.

김금희우리가 어느 별에서

 

  일과 공부는 병행 끝에 합일되어야 한다.

  일은 공부의 실현이자 새로운 일의 훈련이며 공부는 일의 피와 살과 뼈이자 새로운 공부의 예언이 된다공부는 일의 조건이 아니라 일이고 일은 공부의 결과가 아니라 공부다.

  고독을 이기고 싶으면 공부하라그러나 고독을 이기고 세상과의 전쟁에서 이기고 싶다면공부하면서 일하고 일하는 것이 공부가 되게 자신을 세팅하라.

이응준작가는 어떻게 생각을 시작하는가

 

 

 

4

 

쿤데라의 농담을 오랜만에 읽었다. 처음 읽는 줄 알았다. 시간이 흘러 나도 변하긴 변했나보다.

 

리뷰를 쓸 것.

 

 

 

- 읽은 -

+ 농담 / 밀란 쿤데라 : 372 ~ 532

+ 어느 칠레 선생님의 물리학 산책 / 안드레스 곰베로프 : 131 ~ 264

+ 노예국가 / 힐레어 벨록 : 99 ~ 186

 

 

- 읽는 -

- IFRS 회계원리 / 최창규 외 : ~ 188

- 작가는 어떻게 생각을 시작하는가 / 이응준 : ~ 133

- 강의 / 신영복 : 133 ~ 250

- 아리스토텔레스 / 조대호 : ~ 117

- 장회익의 자연철학 강의 / 장회익 : 77 ~ 193 


댓글(7) 먼댓글(0) 좋아요(5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9-11-21 22: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1-21 22: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나비종 2019-11-21 23:3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1. 심심맞춤했을 때 심심교환이 되면 좋은데 마음이란 게 백혈구처럼 부정형이라 간혹 혈관을 뛰어넘어 덤비는 넘에게 잡아먹히는 경우가 있어서..
저는 말이 버거우면 잘게 잘게 자릅니다. 볶음밥 재료처럼. 소화되기 쉽게..

2. 가끔씩 읽게 되는 syo님의 페이퍼가 그렇습니다. 모든 근심과 두려움을 잊거나 죽음이 두렵지 않지는 않지만, 지루함을 느끼지 않도록 쉼표를 찍어주시거든요.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문체가 제 취향이라..^^

3. 저역시 개인적으로 몇 가지 전환점이 되는 일들이 몇 달 안에 다가올 예정이라 아득한 마음이 뭔지 조금이나마 알 것 같지만, 어떤 말씀을 드려야 감질나게나마 수직항력의 역할을 할까 몇 초 고민하다 겨우 얼마전에 읽었던 책에 나온 문구를 생각해냈는데요. ‘이대로 항해나 계속하게. 그러다 일이 닥치면 그때 맞서 싸워.‘ 음, 다시 읽어보니 망한 것 같습니다.^^;;;

일과 공부 어쩌구~ 는 제 취향은 아닌 문구네요. 스스로의 문장에 취한 인간인 것 같은 느낌이..ㅎ

syo 2019-11-22 10:19   좋아요 1 | URL
번호별로 콕콕 찍어주시는 나비종님의 댓글, 오랜만이네요 ㅎㅎㅎ

1. 마음이라는 것이 또 그런 놈이었군요. 알고 알아도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말이 버거우면 버겁지 않을 때까지 입을 크게 벌리고 턱을 단련하고 위장을 키우려고 합니다. 버거운 말은 쪼개봤자 쪼개진 버거움일 때가 많더라구요.....

2. 나비종님께서 올리시는 시가, 저는 멋있고 부럽습니다.

3. 나비종님께 다가올 예정인 일들이 어떤 것인지 몰라서 저는 조금이라도 나비종님의 마음을 알 길 없겠으나, 제 마음을 조금이나마 아실 것 같다는 말씀에 기대어 생각해보건대, 전해주신 문구가 망하지는 않았다고 대답해드릴 수 있겠습니다 ㅎㅎㅎ

늘 감사합니다^-^

추풍오장원 2019-11-22 2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르테 출판사에서 나온 작가시리즈 저도 관심있는데 읽어보시니 어떠신지요? 피츠제럴드랑 마키아벨리가 특히 관심이 갑니다 ㅎㅎ

syo 2019-11-22 23:47   좋아요 1 | URL
편차가 꽤 있습니다. 피츠제럴드는 아직 읽어보지 못했습니다만, 페소아는 좋았고 니체는 그저 그랬습니다. 아무래도 그 인물에 관한 책이 기존에 얼마나 나와있는지에 따라서 제 평가가 조금 달라지는 것도 같습니다 ㅎㅎ

마키아벨리도 나쁘지는 않았습니다만, 시리즈 자체가 아니라 마키아벨리라는 인간에 흥미가 있으신 거라면 저 책보다는 <여우가 되어라>를 권하고 싶습니다 ㅎㅎㅎ

종이달 2022-05-22 2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