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걸 4년째 하고 있군요. 2017년 처음 결산을 할 때는 아무 생각이 없었는데, 2018년 두 번째로 결산을 할 때쯤 내가 뭐라고 이런 거창한 짓을 하고 있나 싶더라구요. 2019년 결산을 하면서는, 그래, 내가 뭐라고 아이고 내가 뭐라고 징징징- 하고 있지 말고 차라리 힘을 모아서 진짜 뭐라도 되어 보자 했는데, 오늘 결산을 하며 되돌아보니 뭣도 되지 못한 2020년이었습니다. 서글픔.

 

먼저, 2019년 말까지 백수였다가 올해 13일 자로 직장인이 되었는데, 지금은 다시 백수입니다. 직장 같은 직장은 처음 다녀봤는데, 그냥 그랬어요. 원래 끈기가 없는 인간인 탓도 있지만, 빈번히 불행하더라구요. 좋은 사람들이 그렇게 많았는데도 자주 불행해서 깜짝 놀랐습니다. 행복하지 않은 삶은 아무렇지도 않게 잘 견디는데 불행한 삶에는 면역이 없었습니다. 저도 이번에 알았네요.

 

엄마는 상태가 엉망입니다. 암이라는 게 참 알 수 없네요. 의사도 최악의 상황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장은 아니지만, 한동안 대구에 내려가 있어야겠네요.

 

2019, 35년짜리 백수 생활도 이제 신물이 나고 10년짜리 연애는 결국 파투가 났던 2019, 환자들 앓는 소리로 귀 마를 새가 없던 병실 간이침대에서 쪽잠을 자면서 아, 올해는 좀 힘들구나, 올해는 확실히 힘들었다고 말하고 다녀도 뻔뻔하다 소리 들을 일은 없겠구나, 최악이구나, 생각했었는데요. 아무래도 2021년은 그 이상이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앓는 엄마와 없는 엄마 중 그래도 뭐가 더 나은지는 선명하니까요.


 


*


책 이야기를 해야지요. 북플이 알려주는 바에 따르면, 올해는 이렇습니다.


 

01: 18

02: 11

03: 05

04: 05

05: 08

06: 34

07: 11

08: 25

09: 46

10: 38

11: 27

12: 30

---------

2020 : 258

---------

2019 : 411

2018 : 500

2017 : 689

---------

2017-2020 : 1,858

 

딱 보니까 이런 상황이네요.

 

1(18) : 인재개발원 연수라 그래도 여유가 좀 있었다.

2(11) : 구청 발령 받았지만 멋모르고 어영부영 3일에 한 권은 읽었다.

3(5) : 9급 함부로 발로 까지 마라, 생각보다 만만치 않은 직종이었다.

4(5) : 이놈의 코로나 때문에 업무량이 두 배라네요, 와 신발, 적같이 신난다 내 인생! 으하하하하!

5(8) : 여긴 어디? 나는 누구?

6(34) : 이렇게는 도저히 못 살겠다 엎어보자.

7(11) : 언제 관둔다고 말하지? -> 관두기로 했으니까 하던 일은 마무리해야지 으아아아.

8(25) : 살맛 난다.

9(46) : syo가 돌아왔다.

10(38) : 그래도 먹고 살긴 해야 할 텐데…….

11(27) : 할 공부는 있지만 그래도 백수가 하루에 한 권은 읽어줘야 사람 대접 받지 않을까?

12(30) : 에라, 모르겠다. 내년에 더 빡세게 구르면 되겠지…….

 

일을 하면서 읽는 건 정말 마음 같지 않았습니다. 일도 일 나름이겠고 체력 부족 짬 부족 탓도 있겠지만, 허허허, 세상 만만한 게 없더라구요. 그래서 그냥 마음을 비웠습니다. 추세로 보면 2021년에는 150권 언저리 나오겠고, 무릎 시리기 전에 만 권 찍어보리라는 부질없는 꿈은 먼지가 되어 날아가는군요.




*

 

올해는 별로 실하게 읽지도 못해서 인상 깊게 읽었던 책이랍시고 목록 올리기도 뭣하네요. 내년에는 좀 더 실하고 두껍한 애들로…….

 

 

 

<>



사랑을 위한 되풀이 / 황인찬

제주에서 혼자 살고 술은 약해요 / 이원하

북항 / 안도현

최선은 그런 것이에요 / 이규리

 

 

 

<에세이>



어떤 양형 이유 / 박주영

맨 얼라이브 / 토머스 페이지 맥긴

우물에서 하늘 보기 / 황현산

길 잃기 안내서 / 리베카 솔닛

언젠가, 아마도 / 김연수

보통의 언어들 / 김이나

 

 

 

<한국 소설>



일곱 해의 마지막 / 김연수

마음의 빌라 / 백수린

복자에게 / 김금희

체공녀 강주룡 / 박서련

시절과 기분 / 김봉곤

경애의 마음 / 김금희

 


 

<외국 소설>



스포츠와 여가 / 제임스 설터

어젯밤 / 제임스 설터

아우스터리츠 / W. G. 제발트

그 후 / 나쓰메 소세키

 

 


<희곡>



밤으로의 긴 여로 / 유진 오닐

 

 


<철학>



왜 칸트인가 / 김상환

프로이트 패러다임 / 맹정현

성의 역사 1 / 미셸 푸코

 

 

 

<젠더 / 페미니즘>



섹슈얼리티의 매춘화 / 캐슬린 배리

흑인 페미니즘 사상 / 패트리샤 힐 콜린스

모니크 위티그의 스트레이트 마인드 / 모니크 위티그

 

 

 

<만화>



사브리나 / 닉 드르나소

마주 보기 / 장 자크 상뻬

 

 


* 

 

위기의 2020을 지나온 것도, 첩첩산중 2021을 지나갈 것도, 사랑하는 사람들의 힘이 없었으면 어려웠겠고 어렵겠습니다.

 

더덕단 친구들 감사합니다. 처음 결성될 때는 이 정도까지 든든한 단체가 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는데요. syo 인생의 3보험, 암보험 실손보험 더덕보험 사랑합니다.

 

안아주는 일 하나조차 최선을 다해야만 하는데도 겁 없이 늘 최선을 다해 안아주는 사람, 사랑합니다. 덕분에 버텼던 시간들 하나도 보답해주지 못했는데 또다시 덕분에 버팁니다. 누군가를 위해 어떤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 같은 거, 다신 하지 않을 거라고 짐작했었는데요.

 

2020, 코로나 없이는 아무것도 설명할 수 없는 2020년인데도 개인적으로는 코로나 이슈가 전혀 없었네요. 주변에 확진 난 사람도 하나 없고, 어차피 출근도 퇴근도 없는 인생이라 감염 위험도 낮습니다. 심지어 코로나 덕을 본 경우까지 있었네요. 허허. 다들 어떠셨는지. 우리 알라딘 작은 마을 이웃 여러분들, 격랑은 한해가 저무는 밤에 죄다 가라앉고 건강과 평안이 가득한 2021년 맞이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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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20-12-31 18: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보다 더 힘든 한 해 보내셨습니다. ㅠ
올해는 저만 무척 힘든 줄 알았습니다. ㅠㅠ
‘이 또한 지나가리!’를 외치면 더 나은 내년을 기대해 봅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syo 2021-01-01 11:00   좋아요 1 | URL
공무원들 복무신조 비슷한 거더라구요. ‘이 또한 지나가리라‘ 일하던 중에는 그걸 외울 일이 별로 없었는데, 2021년에는 어떻게 될까요...

북다님께는 ˝멈추어라, 너 참 아름답구나˝ 하실 2021년이 되시길 기원합니다^-^

북다이제스터 2021-01-01 19:42   좋아요 0 | URL
‘이 또한 지나가리’란 말은 저도 잘 안 쓰는 말인데, 정말 어쩔 수 없을 때, 세상이 정말 무엇인지 모를 때, 만사가 내 맘 같지 않을 때 최후에 떠오르는 말인 것 같습니다.
제 느낌의 표현이 아직 짧은 것 같습니다. ㅠ

독서괭 2020-12-30 23: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늘 syo님 이 글을 오전에 읽고서 일단 좋아요만 눌러놨는데 지금 잠들려 하는 이 시간까지 틈틈이 계속 떠올랐어요. 한해에 한 사람에게 모두 일어나기 힘든 일들을 겪으셨네요. 부디 새해에는 “다사”는 있더라도 “다난”은 없기를...

syo 2021-01-01 10:58   좋아요 0 | URL
독서괭님도 2020년 어떻게 보내셨는지 모르겠지만 2021년은 그와 비교도 안 되게 행복하고 아름다운 한 해 만드실 거예요.
무플방지위원회 1호 위원님 늘 감사합니다^-^

AgalmA 2020-12-31 0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힘들다 힘들다 하시면서 이 독서양은 무엇이죠! 저도 힘들었는데 님에 비하면 앓는 소리 말아야 할 것 같은ㅜㅜ
어머님 병세가 괴롭게 진전되지 않았으면 싶고... 기운내시길, syo 님

syo 2021-01-01 10:57   좋아요 1 | URL
많은 분들이 응원해주셔서 희망 가져봅니다 ㅎㅎㅎㅎ 아갈마님 늘 감사해요^-^

2021년도 잘 부탁드립니다 ㅎㅎ

91 2020-12-31 16: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yo님 대단해요.. 항상 syo님의 글을 보며 읽어갈 책들을 하나하나 추가하고 있답니다. 표현은 안했지만 항상 감사해요. 저는 올 한 해 코로나라는 핑계로 책은 뒷전이었네요... 그래도 syo님 덕에 좋은 책 많이 알아갔으니 그걸로 만족한답니다 ㅎㅎ 내년에 읽으면 되니까요! 여튼 덕분에 감사한 2020년이었습니다. 2021년도 부탁해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syo 2021-01-01 10:56   좋아요 0 | URL
알라딘 참 좋은 곳이죠? 읽을 책이 무한 증식한다 ㅎㅎㅎㅎ

2020년 마무리하며 91님이 가슴에 품으신 계획이나 바람들이 모두 이루어지는 2021년 되시기를 기원할게요. 제가 자주 등장하지는 않지만, 자주 만나요 ㅎㅎ

나무처럼 2020-12-31 19: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yo님
올 한 해 수고하셨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syo 2021-01-01 10:54   좋아요 0 | URL
2020년 참 감사했습니다.
건강 잘 챙기시고, 힘차게 2021 열어나가시길 기원합니다^-^

scott 2020-12-31 22:3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가족을 잃어본 사람으로서 말씀드리지만 곁에 계실때 최대한 좋은 기억을 많이 만드세요
전 한국에 없을때 돌아가셔서 몇년뒤에 빈자리로 슬픔이 밀려와서 힘들었네요.
마음이 많이 무겁지만 쇼님 힘내세요.

천권을 가슴에 세기 신 쇼님
2021년 쇼님에게 행운과 사랑이 가득하시길 바라는 마음으로
연하장 놓고 갑니다.

새해 행복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2021년 신축년
┏━━━┓
┃※☆※ ┃🐮★
┗━━━┛
힘내세요

syo 2021-01-01 10:54   좋아요 1 | URL
저런 귀여운 표정이나 트리, 연하장 이런 것들은 스캇님이 발명하시는 건가요 ㅋㅋㅋㅋ 맘에 쏙 듭니다.

힘이 되는 말씀 꼭 품고 2021도 열심히 살아야지. 스캇님도 행복 폭발 2021되세요^-^

2020-12-31 23: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1-01 10: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초딩 2020-12-31 23: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새해 복 많이 받으세여~~
올 한 해 감사했습니다 :-) 파이팅 한 해 기원합니다

syo 2021-01-01 10:51   좋아요 2 | URL
창밖이 어제랑 똑같은데 새해라네요.....
작년이 초딩님께 어떤 한해였든, 올해는 훨씬 더 행복한 1년이 되실 거예요^-^

페크pek0501 2021-01-01 13:2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님을 독서광으로 임명합니다.
알라딘에서 가장 기억하기 쉬운 이미지를 쓰시는 분으로도 임명합니다.
글을 맛있게 쓰는 분으로도 임명합니다. (누구 맘대로? 페트 맘대로...)


한 해 동안 감사했습니다.
님이 뜻하는 대로 일이 술술 풀리는 행복한 새해가 되길 바랍니다. ★ ★ ★

syo 2021-01-02 13:32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ㅎ 임명왕 페크님으로 임명합니다. 1댓3임명 하셨네요.

페크님께서도 올해 많이 읽고 쓰시고, 또 한 권 내시길 ㅎㅎ

2021-01-04 11: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1-04 13: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고양이라디오 2021-01-14 17: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에 찾아뵙습니다. syo님. 2020년 많은 일들이 있으셨군요. 그동안 안녕하셨냐는 뻔한 인삿말을 드릴려고 했는데ㅠ

21년에는 좋은 일들 있으시길 기원하겠습니다. 어머님 부디 좋아지시길.

syo 2021-01-14 23:23   좋아요 1 | URL
ㅎㅎㅎㅎ 고라님 오랜만입니다. 잘 사시지요? 요즘 다시 부쩍 활동량을 늘리신 것 같던데, 반갑습니다!
많은 좋은 분들이 좋은 말씀 많이 해주셔서 좋은 일 있을 거라고 좋게 좋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고라님께서도 찬란한 21년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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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방향으로


 

비가 새벽을 훑고 지나가면서 지나간 몸짓들을 던져 놓았어. 빗소리만 들으면 언제고 자꾸만 커피를 내리고 싶어지는 것도 어쩌면 그런 몸짓들 가운데 어느 하나가 새겨놓은 주름일까. 빗방울이 바람의 발자국처럼 뚜벅뚜벅 골목을 적시며 걸어 나간다. 이럴 때 책은 덮어도 되는 거지. 이런 날이면 그간 이해할 수 없었던 몸짓들을 하나씩 떠올려보는 게 차라리 남는 일이지. 돌아보건대 사실은 아무래도 결국 좋았고 이해하지 못한대도 역시 좋고 마는 그것들. 배부른 표정을 하고 찰박찰박 그것들 위를 지나가고 나면, 파문처럼 한 번 일렁였다가 잠잠해지고 나면, 그것은 그냥 그것으로 남고 나는 그냥 나의 얼굴로 나서는 거지. 빗소리를 들으며 커피잔을 빙글빙글 돌리는 것은 그런 것이지. 흔들려라 흔들려라, 섞이고 섞여라, 돌고 돌아라. 돌아오지 못할 것들은 이미 돌아온 것으로 하고, 잊지 못하겠다는 말도 까맣게 잊고, 믿지 못하겠다는 말만은 끝내 믿지 말고, 울지 않겠다고 말하는 이는 최선을 다해 울리지 않고. 얼굴을 모르는 신께 올리는 아침 기도처럼, 내 이야기인 줄도 모른 채 처음 듣는 낯선 친숙한 이야기처럼, 웃다 보면 차마 웃게 되는 마음처럼, 속삭임 같은 속살을 맞대고 속살같이 속삭이던 수많은 낮과 밤처럼. , 비가 다 지나간다.

 


 

  무언가 잘 안 되어 생이 다른 쪽으로 돌아갔다면

  모쪼록

  이것도 역설의 방식이라 하면 안 될까

 

  나도 내가 아닌 곳으로 흐른 때가 많았으니

  너무 오래되었다면 그리 두어라

  긴 밤이여 솟구쳐 흘러라

이규리, <역류성 식도염부분


내가 그만두지 않으면 언젠가는 가능한 일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그때나 지금이나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무언가를 계속하는 것뿐이었다.

김봉곤데이 포 나이트


 

 

--- 읽은 ---

 


256. 그림으로 보는 세계문학

야마모토 시로, 오오타케 마모루 지음 / 김영주 옮김 / 내인생의책 / 2016

 

이야기를 줄이는 것, 요체를 둘러싼 먹지 못할 것들을 발라내고 피가 되고 살이 될 것들만 접시 위에 올리는 것, 바쁘게 살다보니 도무지 먹을 여유가 없는 거대한 책들이 생기는데 그런 책들을 아예 먹지 않는 것보다는 도움이 되는, 요즘은 유튜브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는.

 

이야기에는 힘이 있다몇 가지 이야기를 통과한 사람은 세계와 이어지는 힘을 가지게 되고개인의 세계를 깊이 연구한 정신은 다른 사람을 향해 열린다

야마모토 시로오오타케 마모루그림으로 보는 세계문학

 

 

 


257. 맹자를 읽다

양자오 지음 / 김결 옮김 / 유유 / 2016

 

유유에서 양자오 선생님이 읽었노라고 선언한 이런이런 책들을 나도 대부분 읽었지만, 아무래도 선생님처럼 읽을 수는 없었다. 당연한 이야기, 통달한 자들은 입문서란 원전의 요약인 동시에 원전의 해석이므로 경계하라고 말한다. 하지만 원전을 다이렉트로 읽어 가질 수 있는 것이라 해봐야 어차피 원전의 지혜가 아닌 원전에 대한 나의 해석일 따름이라, 별로 다를 게 없다는 게 syo의 생각. 원전에 대한 양자오 선생님의 견해와 syo의 견해가 테이블에 띡 있다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일단 앞에 걸 쥐고 보겠다는 것 역시 syo의 생각.

 

내 것은, 어차피 알아서 자란다. 불가피하다. 내 사견을 빼고 객관적으로 읽어야지 암만 마음을 먹어 봐야, 내 것이 자라는 것을 피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건 마치, 아무 생각도 하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만 잔뜩 할 순 있어도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 일 자체는 결코 불가능한 인간의 한계와 흡사하다.

 

인의仁義로 천하를 평정할 수 있다는 맹자의 웅변은 듣기 좋은 말을 하거나 억지를 쓰지 않고 일관된 논리를 펼칩니다. 이 논리의 전제는 인간이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데 있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서로 공감할 수 있는 감응 관계가 만들어질 수 있으며, 이에 따라 나의 마음으로 타인의 마음을 헤아리고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을 넓혀, 사람들을 보호하고 아끼는 자애로운 은혜를 이룰 수 있습니다. 방향을 바꿔 보자면, 사람은 모두 마음을 가지고 있어 인의를 가진 군왕을 알아보고 선택할 수 있으며, 인의를 가진 군왕을 지지하고 그에게 달려가 의지할 수 있습니다. 민심을 얻어, 백성이 몰려와 의지하는 군주가 어떻게 천하의 왕 노릇을 하지 못하겠습니까?

_ 양자오, 맹자를 읽다

 


 


258. 나의 하루는 430분에 시작된다

김유진 지음 / 토네이도 / 2020

 

꼼꼼히 읽기를 마쳤다. 그리고 나서 이틀 전이었나, 어찌 된 일인지 아침 7시에 잠들어서 오후 1시에 일어나 하루를 시작해버렸다. 도대체가.

 

결국 남들보다 빠른 삶을 산다고 꿈도 더 빨리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그보다는 내가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나에게 주어진 하루를 일찍 시작하는 게 목표를 이루는 진정한 방법이었다.

  꿈을 이루는 데 이르거나 늦은 때는 없다모두에게 동일하게같은 시기에 목표를 달성할 타이밍이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다누군가에게는 다음 주에 문이 열리는가 하면 누군가에게는 몇 년 뒤에야 문이 열린다.

김유진나의 하루는 4시 30분에 시작된다

 

 

 

--- 읽는 ---

인간 루쉰 / 린시엔즈

어른의 맞춤법 / 신선해, 정지영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 / 다나베 세이코

분자 사용 설명서 / 김지환

어쩐지 고전이 읽고 싶더라니 / 김훈종

종이 동물원 / 켄 리우

마흔에 관하여 / 정여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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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북소녀 2020-12-28 1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찍 일어나면 일찍 잠들어버려요ㅠㅠ
전 그냥 이렇게 생각할래요...
다음날 일찍 일어나서 할 일을...
전날 밤~새벽 사이에 해버린다고...
4시 30분에 잠드는 건 가능하지만
일어나는 건 절대 불가능해요... 네버 네버 네버 ㅠㅠ

syo 2020-12-30 00:52   좋아요 0 | URL
저도요 ㅎㅎㅎㅎㅎㅎ
되는 건 책을 안 읽어도 되는 거고 안 되는 건 아무리 책을 읽어도 안 되더라구요....
인생 뭘까요ㅠ_ㅠ

페크pek0501 2020-12-28 1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규리 시인의 시, 최선은 그런 것이에요를 좋아하는 1인입니다.
작년에 아포리즘 책 두 권을 한꺼번에 낸 시인인데 유능하네요. 벌써 이런 시집도 나오고...
누구는 용을 쓰고 젖먹던 힘까지 다 써서 한 권을 뽑아 내기도 어려웠는디...
인간 능력의 차이. 너무 해다...(혼잣말)ㅋ

syo 2020-12-30 00:54   좋아요 0 | URL
아포리즘 책 두 권은 빠르게 나왔지만, 시집과 시집 사이의 간격은 5년이 더 벌어졌으니, 그리 빠른 건 아닌 것 같아요. 이규리 선생님은 더 자주 뵐수록 반가울텐데 ㅎㅎㅎ

페크님 힘내세요.
저는 책 0권이잖아요 ㅎㅎㅎㅎ 인간 능력의 차이, 너무 하네요(혼잣말)

북다이제스터 2020-12-28 19: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빗소리에 반응은 저와 다르세요. 전 커피가 생각나지 않고 빗소리가 지붕에 울리는 포장마차가 생각납니다. ㅎㅎ

syo 2020-12-30 00:55   좋아요 1 | URL
저는 포장마차 경험이 없어서! 드라마나 영화에서나 본 것 같은데ㅎㅎㅎㅎ
본질적으로는 술이냐 커피냐의 차이일까요? ㅎㅎ
 

 

膝瑟

 

 

 

무릎이 아름다워 좋았던 사람을 떠올렸다.

 

나는 무릎을 무너진 흔적이 축적되는 부위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사람의 무릎을 볼 기회가 생기면 꽤 유심히 보았고, 보다 보면 무릎의 주인이 더 좋아지기도 하고 그 반대 마음이 생기기도 했다. 무릎을 보기도 전에 사랑에 빠진 적이 없진 않지만 그럴 때도 들불처럼 끓는 사랑의 손길이 제일 먼저 닿는 곳은 항상 무릎이곤 했다. 무릎의 역사는 깊고 아득하여서 그저 보는 것만으로 전부를 캐어 올릴 수는 없다. 무릎을 만지고, 무릎에 입 맞추고, 무릎을 어루만지는 나를 바라보는 그 눈동자를 샅샅이 들여다보고.

 

무릎의 역사를 발굴하는 일은 그 사람의 무너진 경험을 사랑하는 일이기도 하지만 때로 그 사람과의 사랑이 무너지는 경험이기도 하다. 아름답고 튼튼하던 그 사람의 무릎이 굳고 단단해지는 동안 세상 앞에 무릎 꿇지 않겠다고 우기던 고집스런 사람의 마음은 실은 천만번 꿇어 무릎이 닳은 마음이었고, 우리는 서로가 무너지는 이유임을 끈질기게 외면하면서 서로의 방향으로 끝없이 무너졌다. 그러던 어느 밤, 마침내 그 사람은 내어주는 제 무릎이 부끄러워 돌아누웠고, 어루만지는 것 외엔 할 줄 아는 게 없던 손길이 부끄러워 나 역시 돌아누우면서 우리의 무너짐은 완결되었다. 서로가 서로의 무릎으로 스며들어 지난한 흔적이 되었다. 가끔 무릎을 만지며 환등상처럼 경험하는 무너짐의 흔적. 그 흔한 무너짐의 흔하디흔한 흔적.

 

가끔 무릎이 아프면 이제는 다른 생각을 한다. 아름다운 무릎보다는 아픈 무릎을 만졌으면. 흔적을 가지고 끈질기게 달려온 사람에게 무릎을 만져주는 정도의 사람이 되면 좋겠다.

 

 

 

 

--- 읽은 ---

 


253. 찌질한 인간 김경희

김경희 지음 / 빌리버튼 / 2017

 

무미건조하다는 말은 너무 익숙해서 한 가지 뜻만 품고 있는 것 같지만, 실은 무미와 건조의 합이다. 실제로 잘 들여다보면 세상에는 유미건조한 것도 있고, 무미촉촉한 것도 있다. 이 책은 후자다. 건조하진 않지만 특별한 맛이 없다. 담백하다고 표현해도 괜찮겠지만 밍밍한 맛이라고 말하는 것에도 거리낌이 생기지 않는다. 백수며 퇴사며 다시 백수며, 역시 긴 세월 찌질함을 체화하고 있는 syo, 다니던 회사를 관둔 스물아홉 젊은 청년의 고뇌를 모를 리 없다. 알고 봐도,

 

  누구에게나 찌질한 순간은 있습니다.

  찌질함의 기준이야 저마다 다르겠지만,

  100% 완벽한 사람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으니,

  부디 당신의 찌질함에 작아지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러니 우리 어깨를 쫙 펴고당당하게 살아요.

김경희찌질한 인간 김경희

 

 

 


254. 경애의 마음

김금희 지음 / 창비 / 2018

 

사랑을 하고 했던 사람이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보다 많을 수밖에 없는 게 이치라면 우리는 끝없이 사랑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 이야기가 사랑을 밀어올리도록. 반대로 사랑을 하는 사람보다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이 훨씬 많다면, 우리는 실패와 실패와 실패를 지나 다음 실패가 오기 전까지 지치지 않고 사랑해야 한다. 이번에는 사랑이 사랑 이야기를 밀어 올릴 수 있도록. 왜냐하면, 어떤 사랑 이야기는 진짜 사랑보다 아름답고 더 사랑스럽기 때문이다. 

 

"우리는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이이니까 사랑에 대해 말하고 싶을 때만 이메일을 써야 한다고 생각했어요그래서 그런 얘기를 할 수 있을 때를 기다렸습니다요즘 저는 사랑의 대상이 아니라 그걸 했던 나 자신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합니다그 시간의 의미가 타인에 의해서 판결되는 것이야말로 나 자신에게 가혹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요언니 님은 요즘 어렵게 지내고 계실 것이 분명하고 이메일이 버젓이 돌아다니는 저도 좋은 기분은 아닙니다만우리가 함께 이야기하는 일만은 폐기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금희경애의 마음

 

 

 


255. 당신은 첫눈입니까

이규리 지음 / 문학동네 / 2020

 

무너지고 부서지는 것이 색을 가진다면, 그것은 눈과 같은 색일 것이다. 하얀색. 우리 눈이 잡아챌 수 있는 모든 빛이 들어 있는, 하얗다 하얗다 입에 올리다 보면 어쩐지 글썽이게 되는, 안도 바깥도 없고 왼쪽도 오른쪽도 없으며 오로지 떨어지고 떨어져 내리는 방향으로 흐르는, 말하려다 만 것 같은데 모든 것을 말한 것도 같은. 

 

  우리단단함에 대해 적을 것이 아니라

  하염없이 무너지도록

 

  힘쓸 일이 없도록

  아침엔 토마토를 구워요

 

  당신을 당신 바깥으로 놓아보아요

이규리정말 부드럽다는 건」 부분

 

 

 

 

--- 읽는 ---

경계인의 시선 / 김민섭

나의 하루는 430분에 시작된다 / 김유진

맹자를 읽다 / 양자오

인간 루쉰 / 린시엔즈

에티카, 자유와 긍정의 철학 / 이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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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21 21: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12-28 09: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행복한책읽기 2020-12-21 2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규리 저 시로부터 무릎까지? 아님 그 반대? 암튼 무너짐을 이렇게 엮으시다니. 멋져요~~~^^

syo 2020-12-28 09:36   좋아요 1 | URL
제가 댓글이 늦는동안, 행복한책읽기님은 매일매일 시 읽기를 이어나가셨겠고, 최소 7개의 시를 더 읽으셨겠네요!
좋은 연말 보내세요. 3일 남았네요 ㅎㄷㄷ...

행복한책읽기 2020-12-28 10:13   좋아요 0 | URL
댓글 달아주신 덕에 님의 글을 다시 읽고 든 생각은, 저야 독자에 머문다면 님은 이미 시인이시네요.^^

2020-12-21 21: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12-28 09: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Angela 2020-12-22 09: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릎과 감정을 이렇게 표현하시다니. 가던길 멈추게 하는 아름다운 글이네요^^

syo 2020-12-28 09:38   좋아요 1 | URL
안젤라님, 좋은 연말 보내시고, 내년에도 가끔 오셔서 멈췄다 가세요^-^

수이 2020-12-22 15: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규리를 읽지 않으려고 이리 노력을 했건만 여기에서 또 무너져버리고...

syo 2020-12-28 09:38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ㅎㅎ 원래 시집 많이 많이 읽으시잖아요.
제 탓 하지 마시고, 얼른 진입하시기를 ^-^

scott 2020-12-25 2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요님,
메리 메리 크리스마스 이브V
열공하시는 방에 트리 한그루 놓고 갑니다 ㅋㅋㅋ


┼..:..:..:..:..:..:..:..:..:..:..:..:..:..:..:..:..:..┼
│*** Merry ☆ Christmas! ** ★
│       ..:+ +:..        ☆
│     ..:+ +:....:+ +:..      ★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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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
│    ..:+ +:....:+ +:....:+ +:..     ☆
│   ..:+ +:....:+ +:....:+ +:..     ★
│        I I         ☆
│ *** Merry ..:+ +:.. Christmas! ** ★
┼``:``:``:``:``:``:``:``:``:``:``:``:``:``:``:``:``:``┼
건강하고 행복한 메리 메리 크리스마스 ^.~

혹시 외롭거나 심심하실때 쓰담아주라고 루돌프 한마리도 요기 놓고 가여 ㅋㅋㅋ

¥¥ ★☆★☆
^∩∩^ *Merry*
(●) Christmas
-o--¢-☆★☆★-


syo 2020-12-28 09:40   좋아요 1 | URL
제 짧은 알라딘 일생동안, 댓글 앞에 놓고 뭐라고 대답해야 하나 이렇게 고민해본 적이 없었네요 ㅋㅋㅋㅋㅋㅋ
거대하다......

크리스마스 어떻게 보내셨는지 모르겠지만, 분명히 잘 보내셨을거라고 가정하고, 연말연시도 그렇게 보내시기를 기원합니다.
 

 

밤마실

 

 

 

syo는 밤에 글을 쓰는 것이 특별하게 두렵진 않다. 밤에 쓰면 별이니 달이니 별 같은 사랑이니 달 같은 영원이니 하는 간지러운 단어를 남발하기 쉽지만, 뭐왜뭐


글쓰기 책에는 밤에 쓴 글을 해 뜨고 읽었더니 오글오글 손발이 점으로 무한히 수렴하더라는 식의 경험담, 저자인 나도 겪어봤지만 독자인 너도 글깨나 깨작대봤다면 남 일은 아닐 거야- 하는 식의 경험담이 종종 등장한다. 감정 과잉의 글을 경계하라는 취지다. 밤에는 쓰는 게 아니라 싸는 것이다! 겁나 부끄러움만이 남을 뿐이다


그러나 낮에 쓴 글, 이성의 견고한 토대 위에서 절제의 붓질로 태어난 글이라면 부끄럽지 않을 거라는 생각은 오만이다. 시간이 지나고 다시 읽어보면, 과거의 글들은 대체로 부끄럽다. 이성이고 삼성이고 간에 그냥 오그라든다. 몇 년 지나고 다시 읽었는데 그때 쓴 글이 여전히 완벽해 보인다면, , 당신은 망하고 있거나 망하기 위해 추진력을 모으는 중입니다. 물론, , 내가 이런 걸 썼다니, 그것도 서른이 되기도 전에! 이런 생각이 들게 하는 글이 아주 가끔 튀어나오긴 하겠지만, 그래도 추세라는 게 있는 법이다. 그 잘난 글을 중심으로 며칠 사이의 글을 함께 읽어본다면 그럼 그렇지 싶게 마련. 그러니까 결국, 글 쓰는 이의 운명이란 퇴보와 부끄러움의 Y자형 갈림길을 반복적으로 맞닥뜨리는 꼴이 아닌가 싶다


syo의 경우 밤에 썼든 낮에 썼든 옛날에 쓴 글은 전반적으로 쪽팔려서, 오늘도 밤에 글을 쓰지만 그게 특별히두렵진 않은 것. 이러다 가끔 하나 얻어걸리면, 3년쯤 뒤에 다시 읽고 혼자 감탄하면서 이런 대사나 치는 것이다. 그때 난 천재였지. 하지만 그땐 그걸 몰랐고 지금은 명확히 알겠어. 난 더는 천재가 아니라는 걸.

 

사람들은 너무 낮에만 글을 쓴다. 혹은 밤에 쓴 글은 부끄러워 세상에 내놓지 않는다. 그렇지만 밤에 쓴 글을 어느 다른 밤에 읽고 있는 어느 다른 사람이 있어 낮보다도 환한 위안을 얻는 일도 있을 것이다. 영하 10도다. 밤이 길다.

 

근데 생각해보니까 다들 나처럼 새벽 1시까지 깨작댈 수 있는 팔자 좋은 백수는 아니구나. , 출퇴근 멸종했으면. 세상에, 얼마나 됐다고 백수 공무원 적 생각 못 하고. 죄송합니다. 경솔했네요. 이래서 밤에는 글을 안 쓰는 것이었군요…….

 

 

 

--- 읽은 ---

 


251. 다정한 매일매일

백수린 지음 / 작가정신 / 2020

 

syo는 세 가지 유형의 사람을 가장 사랑한다. 무해한 사람, 다정한 사람, 그리고 귀여운 사람. 이 세 가지 미덕은 서로 완전히 격리되거나 하나가 다른 둘을 배제하는 사이는 아니어서, 다정한 사람이 무해하고, 귀여운 사람이 다정하고, 무해한 사람이 귀엽기도 하다. 이 세상에는 심지어 무해하고 다정하고 귀여운 사람조차 존재해주신다. 세상 평화로움과 아름다움은 다 그런 사람들이 암암리에 만들고 있는 것이다. 날숨에 내쉬는 이산화탄소조차 은총인 사람들. , 물론 애기 멍뭉이처럼 생명체가 지나치게 귀여워 버리면 내 심장에 유해하기도 하지만……♡


어, 엄마 그 밑에서 뭐해?

 

하지만 무해한 사람도, 다정하고 귀여운 사람도, 매일매일 한결같이 그러기는 불가능하다고 봐야지. 다정한 매일매일이란, 그런 불가능성 속에서도 최선을 다해 다정한 하루를 꾸려나가겠다는 무해하고 너무 귀여운 다짐이다. 좋아, 씩씩하게 무해하고 뚜벅뚜벅 다정하자. 그럼 완벽하지. 내가 또 귀여운 거 그건 아주 타고났으니까……♡

 

그나저나 2020은 백수린이구나. 여름의 빌라에서 다정한 매일매일을. 

 

사람들은 쉽게 타인의 인생을 실패나 성공으로 요약하고 싶어 한다하지만 좋은 문학 작품은 언제나어떤 인생에 대해서도 실패나 성공으로 함부로 판단할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준다세상은 불확실한 일들로 가득하지만 단 하나 분명한 것은당신과 나는 반드시 실패와 실수를 거듭하고 고독과 외로움 앞에 수없이 굴복하는 삶을 살 것이라는 사실이다하지만 괜찮다그렇더라도당신이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인 채 생을 포기하지 않고 살아가기만 한다면우리가 서로에게 요청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그뿐이다.

백수린다정한 매일매일

 

 

 


252. 성호사설을 읽다

설흔 지음 / 유유 / 2020

 

한국사 외울 때, 저놈의 실학자 패밀리들은 아주 신물 나는 존재였다. 분명히 큰 틀에서 다들 비슷비슷한 이야기를 했으니 한 카테고리에 묶였을 텐데, 그 안에서도 차이점을 부각시켜 누군 중농이고 누군 중상이고 이렇게 구분하는 건 약간 중상모략 같았다. 그리고 그 실학이라는 게 뒷날 보니 선구적이었던 거지, 그 많은 실학자들 가운데 지기 시대에 자기 사상을 접목시켜 경세하고 치용한 사람도, 이용하고 후생한 사람도 거의 없다. 물론 그게 그들 탓은 아니지만, 어쨌든 그들이 그들의 시대에다 해 놓은 건 딱히 없는 것. 그러니까 오늘날 실학의 입장이라는 건 뭐랄까, 주판 시대에 태어나버려서 널리 이용되지 못하고 사장된 286 컴퓨터가 스마트폰 시대에 재조명된 것 같은 모양새가 아닌가. 신박할 땐 묻혔다가 다 낡아 쓸 수도 없을 때야 발견된 지식. 우리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가 이렇게 똑똑한 얼리어답터에 트렌드세터였다는 증거로 밖에는 기능하지 않는 일종의 화석 같은. 잘 모르겠다. 17세기 할아버지가 만든 20세기 초반까지는 먹혔을 생각을 21세기에 읽는 게 그 할아버지 잘났다는 거 깨닫는 것 말고 무슨 의미가 있는지. 오늘을 사는 syo의 눈에는 공자나 이익이나 도낀개낀 아름다운 대목은 아름답고 훌륭한 대목은 훌륭하며, 낡은 대목은 오십보백보로 낡았다. 아니면, 오늘날에도 되새길 만한 어떤 의미를 발견하기 위해서는 설흔 선생님 정도의 도력을 갖춰야 하는 것일까

 

하늘과 땅 사이에서 함께 자라나면서 편벽되거나 완전의 차이만이 있을 뿐인데 사람이 어찌 더 물류를 멀리하여 잊어버려야 되겠는가잊지 않는다면 반드시 그 이름을 다 알아야 할 것이니 한 가족이 아무리 많더라도 다 어루만져 사랑하려면 반드시 먼저 그 이름을 알아야 하는 것과 같다라는 구절참 아름답지 않습니까?

설흔성호사설을 읽다

 

 

 

 

--- 읽는 ---

상상력과 가스통 바슐라르 / 홍명희

Chaeg 2020. 12 / ()(월간지) 편집부

법의 이유 / 홍성수

AI 최강의 수업 / 김진형

경애의 마음 / 김금희

당신은 첫눈입니까 / 이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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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행열반인 2020-12-16 07: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밤에 쓰니까 막 쪼끄만 하트를 여기저기 붙이고... 그런 사람이 있어서 세상이 덜 삭막한 거겠죠? ㅎㅎ밤에 읽고 쓰는 대신 쿨쿨 잔 사람은 힘차게 출근이나 해야지 ㅎㅎㅎ

syo 2020-12-17 08:37   좋아요 1 | URL
큰 하트가 적은 세상보다 쪼끄만 하트가 여기저기 있는 세상이 덜 삭막하겠죠?
오늘도 즐거운 출근(역설)되시길(반어아님)^-^

cyrus 2020-12-16 07: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밤에 책 읽거나 글 쓰는 일이 오히려 집중이 잘 돼서 좋아요. 요즘은 건강을 생각해서 밤에 일찍 자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자마자 글을 써요. 눈 뜨기 시작해서 아침 식사하기 전의 시간이 그리 길지 않지만, 그래도 제겐 소중해요. 자투리 시간에 글을 조금씩 써놓으면 편해요. ^^

syo 2020-12-17 08:38   좋아요 0 | URL
일찍 자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쪽이 건강에 유리한가요? 저는 아무리 하려고 해도 잘 안되더라구요.....
심지어 아침 식사도 안 하니, 우리는 참 사는 모양이 달라요, 그쵸 ㅎㅎㅎㅎ
자투리 시간이 자꾸 나서 사이러스님이 좋은 글 많이많이 써주셨으면 좋겠어요.

cyrus 2020-12-17 09:14   좋아요 0 | URL
저는 본인이 편한 시간대에 글을 쓰는 습관을 유지하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아침에 글쓰기가 힘든 대신에 저녁에 글 쓰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으니까요. 정말 당연한 말이지만, 바쁘시고 귀찮더라도 아침 식사는 꼭 하셔야 돼요. ^^

psyche 2020-12-16 08:1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 사진을 보니 매가 강아지를 채 가다가 무거워서 옆옆집인가에 떨어뜨렸다는 이야기 들은 게 생각나네요. 매가 채 간다니 무섭긴 한데 강아지가 뚱뚱해서 무거워 떨어뜨렸다니 웃기기도 하고.... 역시 뚱뚱한게 좋은 겁니다!

단발머리 2020-12-16 09:21   좋아요 1 | URL
이 댓글을 제가 좋아합니다*^^

scott 2020-12-16 20:29   좋아요 0 | URL
이 댓글 저도 좋아합니다 ^0^

syo 2020-12-17 08:38   좋아요 0 | URL
이 댓글 저라고 안 좋아할 재간이 없네요^-^

레삭매냐 2020-12-16 09: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진이 그것 참.

syo 2020-12-17 08:39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ㅎㅎ 안전하게 구출됩니다. 얼마 못가 떨어뜨리고 주인공이 받아내거든요.

scott 2020-12-16 10: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소요님 밤사랑, 밤을 노래 한다-김연수 ㅋㅋㅋ
소요님, 멍뭉이 내려놔요 ^ㅎ^

syo 2020-12-17 08:39   좋아요 1 | URL
저는 멍뭉이를 잡았다 하면 내려놓을 줄 모르는 집요한 짐승입니다 *ㅂ*

stella.K 2020-12-16 18: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사진 무슨 영화에 나온 모양인데, 그것 참...

syo 2020-12-17 08:40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 저러고 가다가 떨어뜨리는 걸 주인공이 받고, 독수리는 주인공 폰을 대신 채갑니다....
 

 

One full revolution

 

 


첫 페이지에 벌써 밖은 첫눈이었다. 나리는 것과 나리는 것 사이에서 겨울이 희게 익는 풍경. 겨울의 시작과 한 해의 시작을 맞대어 놓는 이들은 횡단보도를 건너다 아득히 입을 맞춘다. 마음의 어는점 녹는점은 알 수가 없어서 여름에 얼었다 겨울에 녹기도 하는데 그 이치도 아득하다. 눈을 눈으로 완성하는 것은 다름아닌 눈 맞는 이의 마음. 창밖에 하얗게 자맥질치는 저 눈은 완성된 눈일까 완성하는 눈일까. 눈이 어떤 완성이라면 그것은 눈 맞는 이의 마음에 첫눈일까 끝눈일까. 겨울은 멀리 가도 지구가 태양을 도는 거리만큼 가지는 못하고 자꾸만 자꾸만 돌아오겠는데, 눈과 함께 돌아오겠는데, 창밖에도 나리고 창 안에도 나리는, 당신은 첫눈입니까. 

 

  오래 참아서 뼈가 다 부서진 말

  누군가 어렵게 꺼낸다

  끝까지 간 것의 모습은 희고 또 희다

  종내 글썽이는 마음아 너는,

이규리, <당신은 첫눈입니까부분

 

 

 

 

--- 읽은 ---


 

246. 언젠가 설명이 필요한 밤

안녕하신가영 지음 / 빌리버튼 / 2017

 

노래연습장에 정말 노래 연습하러 다니는 사람처럼, 50번 가면 50번 부르는 노래들이 있었다. 우리의 노래방행은 오늘과 그저께가 비슷하거나 달라도 한두 곡이 다른 차이와 반복이었다. 그렇게 50번을 불러도 나는 노래 가사를 모른다. 50번을 부르다 보니 나도 모르게 외워졌는데도 그 노래가 어떤 가사인지 몰라서, 흥얼거리다가 내 입에서 나오는 가사를 내가 듣고 와, 이 노래 가사 쩌는데! 하고 놀라는 일이 잦다. 이러니 한두 번 듣고 지나치는 수많은 노래들 속 가사야 오죽할까.

 

가창력에서 중요한 건 가창이지 이 아니라는 컨셉으로 하는 노래들은 유독 가사가 아름답고 먹먹한데, 가사를 못 듣는 인간은 그런 노래를 충분히 듣지 못하고 서른을 먹었고 곧 마흔 먹게 생겼다. 나이가 드니 이제야 가사가 좀 들린다. 플레이리스트에 안녕하신가영의 곡 몇 개가 안착했다. 노래로 기억할 것이다.

 

당시에는 그 사람에게 바보 같은 얼굴이라며 웃어 넘겼지만어느 날 내가 그 사람과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을 때 비로소 알게 된다나를 참 많이 좋아해줬구나.

  사랑이 가끔 이어달리기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그래도 계속 달려야 하는 거겠지.

안녕하신가영언젠가 설명이 필요한 밤

 

 

 


247. 혼자 있기 좋은 방

우지현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8

 

그림에 대해 절대적으로 과문하긴 하지만 상대적으로 많이 아는 애매하고도 어쩐지 구슬픈 입장의 syo. 이 책의 정체가 그림 에세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속에 든 그림 중 4~6할은 아는 녀석들일 거라고(대체로 그랬으므로) 생각했는데 웬걸, 생전 처음 듣는 이름의 작가가 그린 생전 처음 보는 그림이 잔뜩잔뜩 들어 있어서 놀랐고 신났다. 그리고 다시 다 까먹었다. 으하하하, 이 맛에 책 읽지.

 

꼭지마다 정해진 주제의 에세이와 그에 어울리는 그림들, 그 그림과 그걸 그린 작가들에 대한 이야기가 버무려져 있는데, 어떤 대목은 너무 좋았고 어떤 대목은 밍숭맹숭했다. 지금 내 감정과 그 꼭지 주제의 싱크로율이 어느 정도냐에 따라 감흥의 정도가 달라진 것 같다. 하고보니 당연한 이야기군.

 

에세이 내용과 그림이 얼마나 착 달라붙는지에 대한 평가는 독자마다 다를 수 있겠다. 그렇지만 전체적으로 썩 좋은 책 같았고, 그림 에세이라는 유형의 글쓰기에 도전해보고 싶은 욕심도 생겼다. 그리고 그 욕심조차 다시 다 까먹을 것이다. 으하하하, 이 맛에…….

  

슬픔을 받아들이는 방식에 따라 한 인간의 삶이 결정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세상에는 혼자마음의 방에 머물 때에만 해결될 수 있는 일이 있다구겨진 마음을 펴고슬픔을 처리하고억압으로부터 벗어나는 일내 삶의 가치를 재고하고의미를 묻고또 내면을 견고하게 구축하는 일.

  혼자를 택한다는 건 슬픔을 외면하지 않고 마주하겠다는 용기이다하나의 독립된 인간으로서 내 인생을 책임지겠다는 각오이며스스로를 이해하고 용서하고 사랑하며 살아가겠다는 선언이다혹여 주변인들을 챙기느라 자기 자신을 외롭게 한 것은 아닌지세상의 눈치를 살피느라 정작 나를 불편하게 만든 것은 아닌지 진지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우리에게는 자신의 내면을 탐색하고 지켜야 할 의무가 있다그 과정이 분명하고 뚜렷하지 않을지라도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줄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말고 불안해하지 말고 혼자 있어볼 것삶의 진실은 거기 있으니 말이다모든 사람과 잘 지내는 것보다 나와 잘 지내는 게 중요하다.

우지현혼자 있기 좋은 방

 

 



248. 엄마의 뜰

김살로메 지음 / 문학의문학 / 2020

 

나는 아름다운 문장을 믿는다. 아름다움이란 별처럼 많고 별자리처럼 각자의 이야기가 있으니 나는 많고 각자인 것들을 믿는 셈이다. 김살로메 작가는 주제가 글의 본질이라 하지만 그것들에 수없이 속아 넘어가 본 나는 차라리 아름다움을 믿는다. 사람의 삶이라는 게 많이 다를 것 같으면서도 어슷비슷해서, 우리는 큰 틀에서 다들 비슷하게 살며 비슷하게 울고 웃다가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 해서 톨스토이처럼 말해 보자면, 사연과 경험은 서로 닮았지만 문장은 모두 저마다의 이유로 아름답다. 내가 이 책을 읽고, 나도 나도 했다면 그것은 우리가 닮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나와 닮은 수많은 책 가운데서 이 책이 내게 특별한 울림을 안겼다면 그것은 이 책의 문장이 자기만의 이유로 아름다웠기 때문이겠지.

 

꽃 진 그 시간을 최상의 것으로 추억하기 위해 저마다 길을 냅니다구구절절 말을 잇긴 했지만실상 떨어진 꽃잎은 해석이 필요치 않습니다이해되기 전에 전달되는 그 무엇이기 때문입니다실존의 상처로 단련된 꽃 무덤은 그 자체가 사유의 통로가 됩니다필연으로 떨어져 꽃길을 내고깊이 내려가 진물을 이루는 모든 것은 생의 이면입니다견고한 잉태와 단단한 도약을 위한 전초전입니다절절하게 떨어져 본 꽃잎일수록 절실하게 꽃 피우는 자양분이 됩니다꽃 진 자리는 그렇게 자신을 비추는 거울입니다추락 없는 꽃잎이 어디 있으면 짓무름 없는 성장이 가당키나 할까요.

김살로메엄마의 뜰

 

 

 


249. 사랑의 기술

에리히 프롬 지음 / 문예출판사 / 2006

 

왕년에는 이 책 참 좋아했는데 이젠 이걸로 사랑의 기술을 배웠다가는 큰일나겠다.

 

문제 1. 잘 나가다가 핵심에만 도착하면 갑작스레 뜬구름을 잡는다. 사랑을 제외한 다른 이야기들은 콘크리트로 반석을 만들듯이 단단하게 마련해놓고는, 정작 사랑에 대한 이야기는 흐물거려서 결국 콘크리트 위에 쏟아놓은 달걀 같다.

 

문제 2. 이분법적 사고방식에 찌들어서 도무지 헤어나오지를 못한다.

 

문제 3. ‘모성애에 대해 말할라치면 반드시 그 문장 앞에 오오오,’랄지, ‘거룩하도다,’ 를 붙여줘야 할 것만 같은 어투가 된다.

 

문제 4. 이런 대목을 보면,

 

아마도 프로이트의 극단적인 가부장주의 때문에 그는 성욕을 본질적으로 남성적이라고 가정하게 되었고 따라서 독특한 여성의 성욕을 무시하게 되었다.

  그는 <성의 이론에 대한 세 가지 공헌>에서 이 사상을 전개하면서 리비도(libido)는 남성 안에 있는 리비도든 여성 안에 있는 리비도든 관계없이 원칙적으로 '남성적 성격'을 가졌다고 말하기도 한다어린 소년 또한 거세된 '남성적 성격'을 가졌다고 말한다또한 소년은 거세된 남성으로서 여성을 경험하고여성 자신은 남성 성기의 상실에 대해 여러 가지 보상을 구하고 있다는 프로이트의 이론에서도 똑같은 사상이 합리적 형태로 표현되어 있다그러나 여성은 거세된 남성이 아니며 여자의 성욕은 '남성적 성질'을 가진 것이 아니라 여성 특유의 것이다.

  양성 간의 성적 매력은 부분적으로 긴장을 제거하려는 욕구에 그 동기가 있다중요한 것은 이성의 극과 합일하려는 욕구이다사실상 색정적 매력은 결코 성적 매력에 의해서만 표현되지는 않는다. '성적 기능'과 마찬가지로 '성격'에도 남자다움과 여자다움이 있다남성적 성격은 침투지도활동훈련모험이라는 성질을 가진 것으로 정의된다여성적 성격은 생산적인 수용성보호현실주의인내력어머니다움으로 정의된다. (각 개인에게는 두 성격이 혼합되어 있으나 '남성또는 '여성'의 성과 관련된 것이 우위를 차지하고 있을 뿐임을 항상 명심해야 한다.)

에리히 프롬사랑의 기술』 56-57

 

마치 노예제를 주장한 사람은 노예는 거세된 인간이라고 생각했다. 주인들에게만 인간성이 있고 노예는 인간이 아니라고 본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틀렸다. 그는 인종의 차이를 무시한 것이다. 노예는 인간성이 거세된 것이 아니며, 단지 노예성은 어떤 인종이 지닌 특수한 성격일 뿐이다.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는 그 두 성격이 혼합되어 있는 것이다.’ 라는 말을 듣고 있는 것 같다. 표범의 흉폭함을 고발하는 늑대를 보는 기분이다.

 

이 책은 이제 버려도 될 것 같다. 바로 아래에 등장하는 이런 대목을 보면 프롬 역시 그렇게 생각하는 듯하다.

 

실제로 그의 시대에는 프로이트의 이론은 도전적이고 혁명적인 성격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1900년대에 타당한 것이라도 50년 이상이 지난 후에까지 타당한 것일 수는 없다성적인 관습이 매우 변했기 때문에 프로이트의 이론은 서양의 중류 계급에는 이미 충격적인 것이 아니며전통적인 분석가가 오늘날도 프로이트의 성 이론을 옹호하는 것을 용감하게 급진적인 일로 생각한다면이것은 돈키호테적 급진주의에 지나지 않는다.

같은 책, 57-58

 

그러니까 이건 자기실현적 예언 뭐 그런 건가.

 

 

 


250. 성의 역사 1 : 지식의 의지

미셸 푸코 지음 / 이규현 옮김 / 2010

 

아직 12월은 많이 남았고, 내가 무섭게 마음만 먹는다면.

 

내가 제기하려고 하는 물음은 '왜 우리가 억압받는가'가 아니라, '왜 우리가 우리의 가까운 과거와 현재 그리고 우리 자신에 대해 그토록 커다란 열정과 강렬한 원한을 품고서 스스로 억압받고 있다고 말하는가'이다어떤 나선형 경로를 통해 우리는 성을 명확한 말로 표명하고 성의 가장 적나라한 실체를 드러내려 애쓰고 성의 힘과 영향을 적극적으로 확언하면서도성이 부정된다고 단언하고 우리가 성을 감춘다는 것을 보란 듯이 지적하고 우리가 성을 침묵으로 몰아간다고 말하기에 이르렀을까?

미셸 푸코성의 역사1 : 지식의 의지

 

 

 

 

--- 읽는 ---

성호사설을 읽다 / 설흔

물리의 정석: 고전 역학 편 / 레너드 서스킨드, 조지 라보프스키

당신은 첫눈입니까 / 이규리

다정한 매일매일 / 백수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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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행열반인 2020-12-13 22:3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여름에 얼었다 겨울에 녹은 그 마음은 참 좋네요 ㅎㅎㅎ언제 이렇게 많이 읽으신담...

syo 2020-12-13 23:12   좋아요 1 | URL
별로 못 읽어요.... 시무룩.

하나 2020-12-13 22:5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오늘 이규리 시인 계타는 날이네요. 시도 장범준 노래처럼 첫눈연금되면 얼마나 좋아

syo 2020-12-13 23:13   좋아요 3 | URL
그러게요.
오늘 여기저기서 언급된 거 보니까, 같은 시인데도 조금씩 다른 대목이 인용되더라구요. 신기하게도.

단발머리 2020-12-13 22: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규리 시집이 집에 있다는게 너무 뿌듯하고, 우지현 책이 집에 없다는 게 분하다..... 분하군.

syo 2020-12-13 23:14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ㅎ 때마침 눈 와서, 이규리 읽기에 좋았다.

공쟝쟝 2020-12-14 08: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리히프롬....ㅋㅋㅋㅋㅋ 자기실현적 예언ㅋㅋㅋ ㅋㅋㅋ 아 ㅋㅋㅋ 하지만 저책은 표지가 정말 짱 이쁘단 말이지!!

syo 2020-12-14 11:18   좋아요 0 | URL
그러고보니 표지는 이쁘네.... 제가 읽은 책은 실은 저 판이 아니어서, 팔기로 ㅋㅋㅋㅋㅋ

행복한책읽기 2020-12-14 1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겨울이 희게 익는 풍경. 캬. 또 한편의 시네요^^

syo 2020-12-14 11:20   좋아요 0 | URL
책읽기님이 매일 시를 읽으시다보니 눈이 아름다워져서 그렇게 보이시는 것 아닐까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