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미엥에서의 주장

루이 알튀세르 지음 / 솔출판사 / 1991



넓고 깊은 알라딘 세상. 뭐 이 정도 책 가지고 엄살이지, 하시는 분들 분명 계시겠지만, 읽다 중간에 서른 번 정도 포기하고 싶었다. 평소의 syo라면 분명 그랬을 것이다. 그러나 <철학 듣는 밤>에서 이르기를, 이 책이 알튀세르 책 중에 제일 쉽다고 했는데, 이번에도 포기하면 syo는 사람 아니다, 배추다, 배추. 그런 마음으로 서른 번을 꾹 참고 읽어나갔다! 거의 다 읽었다! 마침내 마지막 논문인 <아미엥에서의 주장>이 나타났을 때, 서른한 번째로 포기하고 싶었고, 마침내 불굴의 의지로 포기했다. 그래서 여러분, 안녕하세요, 배추입니다.




어제의 무와 오늘의 배추


 

<철학 듣는 밤>에서 알튀세르의 저작 가운데 <아미엥에서의 주장>이 처음으로 읽을 만하다고 추천한 뜻은 알 것 같다. 이 책이 알튀세르가 자신의 철학을 포괄적으로 설명하는 저작이기 때문이겠지. 그러나 당신들처럼 철학에 기본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그게 먹히겠지만, 배추 같은 문외한에게는 포괄적이니 읽어보란 말은, 구름 떴으니 뜬구름 잡아보라는 말과 같다. 배추라면 이 책을 권하지 않을 것이다. 더 친절하고도 알차게 뽑힌 책 <루이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를 권하겠다.



루이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

루크 페레터 지음, 심세광 옮김 / 앨피 / 2014


그러나 서른 번을 참으면서 <이데올로기와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를 읽어낸 것은 확실히 소득이다. 마르크스도 이데올로기 이야기를 하긴 하지만, 이데올로기 하면 알튀세르지. 구구절절 감동 받았다. 내용이 알고 싶으신 분들께 다시 한 번 입문서인 <루이 알튀세르의 이데올로>를 권한다. 우린 일반사람이잖아요. 둘 다 읽어보니, 최소한 이데올로기에 관해서는 그 책 정도면 충분하고 충실합니다. 배추 올림.

 

 



우리는 모두 저자가 되어야 한다

한기호 지음 / 북바이북 / 2017


 

그렇다, 우리는 모두 저자가 되고 싶다! 그렇지만 실상 누군가 저자가 되는 사이 누군가는 독자가 된다. 도대체 왜, 왜 나는 안 되고 저 사람들은 되는 건데. 뭐가 그리 잘나서. 사실 읽어 보면 잘났다. 반드시 어디 한 군데라도 잘난 구석이 있다. 책 역시 하나의 상품인데, 이놈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저 영리한 자본가들이 안 나가겠다 싶은 상품을 내 놓겠냐고. 결과적으로 잘 팔리는 데는 하늘의 뜻이 조금은 필요하지만, 시장에 나온 책은 최소 한끝은 있다. 배추한테 부족한 그 한끝. 아니다 두끝. 잘 생각해보니 세끝.....네끝? , 뭐 부족한 게 계속 나와. 아무리 배추라지만, 있는 건 부족하고 부족한 것만 있나.

 

저 자가 저자가 되는 비결. 한기호 선생님이 알려드립니다. 그 비결도 막 던지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여럿 저자로 만들면서(만들고 나서) 깨우친 아주 뜨끈뜨끈한 고급 정보. 그러나 막상 읽어보면, 저자가 된 저 자들이 원래부터 보통 사람이 아니었다는 의혹을 감출 수 없고, 양자리 A형 무지렁이 배추는 읽는 내내 무지렁무지렁 수심만 가득해진다. 그렇게 울기 직전까지 갈 때쯤 그 모든 것을 이미 예측했다는 듯 한기호 선생님이 던져주는 7가지 고급진 알짜 정보. 이 자리에서 배추가 알려드리진 않을 거예요. 나 혼자 다 먹고 나 혼자 용 될 거야. 배추용. 추드래곤.

 

 



글 잘쓰는 독종이 살아남는다

사이토 다카시 지음, 장현주 옮김 / 더모던 / 2016


 

안녕하세요. 알라딘 공인 사이토 다카시 까는 남자, sy....아니지 배추가 돌아왔습니다.

 

, 시종일관 읽는 사람을 고려하여 쓰라고 하는데, 그건 정말 예쁜 헛소리다. 모두가 이미 알고 있다. 사람은 서로 도와가며 살아야 하고, 상대를 배려해야 하고, 차별은 하면 안 되고, 해는 동쪽에서 뜨고, 누나는 나보다 연상이고..... 또 뭐가 있지?

 

중요한 건 읽는 사람을 얼마나”, “어떻게고려하여 쓰는가이다.

 

다시 말하면 글쓰기의 제 1원칙은 3자가 읽었을 때 어떻게 생각할까를 늘 생각하는 것이다바로 읽는 사람의 시점으로 글을 쓰는 것이다. (12)

 

이게 왜 의미없는 말인지 증명해 볼까? 사이토 다카시가 과연 이 글을 읽는 배추의 머릿속에 뭐야, 이 공장에서 찍어낸 듯한 매력도 특징도 없는 공산품 같은 문장은. 이런 글 아니면 못 읽는다고 생각하나? 배추 개무시하네?” 하는 생각이 들었다는 사실을 예측할 수 있었을까? , 알고 일부러 이렇게 쓴 거면, 인정.

 

물론, 글은 독자가 읽을 수 있게는 써야 한다. 그렇다고 독자가 읽을 수 있게만 쓰면 되는 건 아니다. 그건 그냥 당연한 말이고 기본 조건이다. 내가 맘에 안 드는 것은, 그렇게 글 잘 쓰는 법을 설명하는 당신의 문장이다. 당신의 방법을 열심히 따랐을 때 우리가 도달할 수 있는 경지라는 것이 기껏해야 당신의 수십 권 책 속에 일관적으로 들어있는 이 무미건조하고 복사기로 찍어냈대도 믿을법한 양산형 문장들일 뿐이라면, 당신은 최소 글쓰기 책을 낼 자격은 없다. 그러니까, 선생님이나 잘 하시라구요.

 

나의 경우는 실제 글을 쓸 때 이것을 염두에 두고 쓰면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겠구나하고 독자들의 읽기를 의식하며 시작된다. (16)

 

시작된다? 어휴..... 제발 번역자의 실수길, 당신의 경우 실제 글을 쓸 때 그 읽기를 의식했다는 독자들이 저 어색한 문장에도 이상함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멍청한 사람들은 아니었길 빈다. 빡치니까.

 

 

그나저나 배추가 요즘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는 문장론.

 



문장을 쓰는 비결은 바로 문장을 쓰지 않는 것이다-이렇게 말해봐야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어렵겠지만요컨대 '지나치게 쓰지 말라'는 뜻이다.


문장이란 것은, '이제 쓰자.'고 해서 마음대로 써지는 것이 아니다우선 '무엇을 쓸 것인가'하는 내용이 필요하고, '어떤 식으로 쓸 것인가'하는 스타일이 필요하다.


그런데 젊은 시절부터 자신에게 어울리는 내용이나 스타일을 찾을 수 있는가 하면그건 천재가 아닌 한 힘든 일이다그래서 어딘가에 이미 있는 내용이나 스타일을 빌려와 적당히 헤쳐나가게 된다.


이미 있는 것은 다른 사람들도 받아들이기 쉬운 법이라재주가 있는 사람 같으면 주위에서 "제법인데"라는 등의 소리를 심심찮게 듣게 된다당사자도 그런 기분에 젖는다그러나 좀더 칭찬을 들으려다가 영 그르친 사람을 난 몇 명이나 보았다분명 문장이란 많이 쓰면 능숙해지기는 한다그러나 스스로에게 분명한 방향감각이 없는 한그 능숙함의 대부분은 그냥 '재주'로 끝나고 만다.


_무라카미 하루키 『발렌타인데이의 무말랭이』


 

 


언어 공부

롬브 커토 지음, 신견식 옮김 / 바다출판사 / 2017


 

배추는 여기서 말하는 언어가 외국어인줄 알고 책을 펼쳤는데, 그리고 그건 외국어가 맞는데, 책을 덮고 나면 희한하게도 언어가 아니라 개그를 배웠다는 생각이 든다. 배추는 내용이나 문장도 따지지만, 빵 터뜨리거나 엉엉 울리면 무조건 별 다섯 개 매기는데, 세상에 도서관 열람실에서 빵 터져서 얻어터질 뻔 했다. 외국어 책이 이러면 곤란한데. 긴 설명 필요 없고, 예문 몇 개를 제시합니다.


확실하고 고통없이 독일어를 배우려면 독일인으로 태어나는 수밖에 없다. 음, 그러기엔 조금 늦었다. 어떤 사람은 10년, 어떤 사람은 20년이나 30년 정도 늦었는데, 어쨌거나 우리 모두 일생일대의 기회를 놓친 것이다. (51)


따분한 말동무는 외국어로 말할 때도 재미가 없다. 내가 일본에 갔을 때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적은 적이 있는데 일본인들 모두가 나와 영어를 연습하려 하다 보니 내가 일본어로 한 질문에 아무리 일본어로 대답을 들으려고 해도 들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결국에는 어떤 사람이 나를 안타까이 여기고는 이런 슬픈 처지를 이해해줄 사람으로 마쓰모토 씨를 추천했다. 나와 일본어로 대화하려고 오후에 기꺼이 짬을 내준 사람이었다.

마쓰모토씨는 알고 보니 불교 승려였다. 진심으로 일본어로 이야기를 나눌 준비가 된 사람이었지만 안타깝게도 그 사람의 유일한 얘깃거리는 불교였다. 특히 불교의 12개 종파 중에 11개 종파는 완전히 잘못된 시각을 갖고 있으며, 그가 따르는 종파만이 진실하다고 했다. 그 사람이 법화 사상의 유일하고도 올바른 해석이 무엇인지를 세 시간째 설명할 때 나는 자리를 뜨고 말았다. (74 75)


발음은 어휘와 문법지식이 상당하지 않다면 별다른 값어치가 없을지라도 처음 입을 열 때는 지식 판단의 기준이 된다. 이것은 외모와 비슷하다. 첫 선을 보일 때는 예쁜 외모가 정답이다. 나중애 알고 보니 멍청하고 따분히고 심지어 못된 성격일지라도. 어쨌거나 첫 싸움은 이긴 것이다.(106)


수십 년 전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벌어진 전투의 세세한 내용까지 기억하는 할아버지를 만나는 일은 드물지 않다. 그분이 유일하게 잊어버리는 것은 반 시간 전에 그 얘기를 했다는 사실 뿐이다.(214)


어떠십니까. 별거 아닌 것 같으시다구요. 으하하하, 얘네들은 에이스가 아니라는 거. 이 책에서 제일 웃긴 글을 10이라고 했을 때 0.023에서 2.175 사이의 애들로 한번 소소하게 준비해 보았습니다. 진짜 아롱사태는 251쪽부터 시작되는 외국어와 함께 여행을챕터에 수록되어 있으니, 궁금하면 직접 읽어보세요. 배추는 지금 바쁩니다. 아까 잃어버린 배꼽을 찾아야 돼서요.


마지막으로 언어 공부에 힘쓰는 이웃분들께 배추가 저자의 따뜻한 충고 한 마디를 전합니다. 꼭 언어 공부에만 해당되는 이야기겠습니까.


스스로를 언어 천재라고 믿어라. 실은 그 반대라는 게 드러난다면 통달하려는 그 성가신 언어나 여러분의 사전들 혹은 이 책에 불만을 쌓아두라. 스스로를 탓하지 마라. (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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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renown 2017-10-13 19: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yo님은 언어천재인거 같아요.. 어쩜 이리 맛깔나게 글을 잘 쓰시는지? 게다가 자본론도 열심히 읽으시고... 자본론 리뷰는 언제 올라올려나 기대됩니다. 쪼꼼만 읽었더라도.. 님의 리뷰를 기대하면서 북플만 누르고, 기다리는 알라디너를 위해서라도..

syo 2017-10-13 20:28   좋아요 0 | URL
안 믿어요 그런 말씀ㅎㅎㅎ

그리고 sprenown님께서 그렇게 기대하실만한 퀄리티의 글이 올라오지 않아요. 기대하지 마시라고 제목에 ˝꼬꼬마˝라고 붙여놓은 건데.....

별로 내용도 없는데 생각보다 분량이 많아져서 내일 올려야겠다 하고 있었습니다^^

cyrus 2017-10-13 2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음 글에 나올 채소는 당근인가요? ^^

syo 2017-10-13 20:29   좋아요 0 | URL
모르겠어요.....
쓰다 보니 저렇게 된 거지, 식단표가 나와 있는 것은 아니랍니다ㅠ

독서괭 2017-10-13 2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에 이어 배추까지 ㅋㅋㅋㅋㅋ 총각네 야채가게 차리실 기세네요ㅋㅋㅋ 빵 터뜨리게 하면 별 다섯개- 그렇다면 syo님 글도 별 다섯개!!

syo 2017-10-13 21:05   좋아요 0 | URL
막상 syo는 자기 글 보면 입꼬리도 올라가지 않으니 별 세개.... 내일은 또 뭐가 될려나요.

sprenown 2017-10-13 2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이,기본 퀄리티는 되잖아요? 저는 자본론 서문도 제대로 읽어보지 못했는데..이번기회에 님의 리뷰를 읽으면서 워밍업 하려던 참이었어요. 추워서 목욕재계는 못하겠지만, 이번달 안으로는 첫 빠따 기대하겠습니다!

syo 2017-10-13 21:06   좋아요 0 | URL
서문이 열라 어렵습니다.... 서문만 읽었는데 이래저래 후비적거리다보니 A4 네 바닥이네요...

psyche 2017-10-13 2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양자리 a형 무지렁이라고 하셔서 절 부르시는줄 ㅋ 그건 그렇고 ‘언어공부‘이거 땡기네요. 0.023에서 2.175 사이의 아이들인데도 이렇단 말이죠!

syo 2017-10-14 09:14   좋아요 0 | URL
그러나 막상 언어 공부에는 큰 도움 될지 의문이에요....

단발머리 2017-10-13 2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It‘s syo time!!
바야흐로 syo님 시대가 열렸어요.
아니 배추님, 아니 배추용님 ㅎㅎㅎㅎㅎ
재미있게 잘 읽고 가요.
언어공부, 빨리 읽어야지 결심하면서^^

syo 2017-10-14 09:15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syo의 시대라니, 암담한 시대가 열리고 말았네요.... 이런.

잠자냥 2017-10-14 1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어공부>는 선물용으로 샀는데 인용하신 빵터지는 문장을 보니, 저도 한 번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재미난 할머니네요. ㅎㅎ

syo 2017-10-14 11:46   좋아요 0 | URL
16개 언어를 하는 웃긴 할머니셨습니다. 역자도 15개 정도 한다는군요.

페크pek0501 2017-10-14 18: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유익한 책기록이구나, 하고 읽었습니다.

syo 2017-10-14 18:40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피식 웃기는 책기록이 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했는데, 유익할 거라고는 예상치 못했습니다.
 


집 나간 책

서민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5

 

어느 햇살 좋은 날, 읽는 거 양으로 치면 나도 어디서 꿀리진 않는다는 오만과, 많이 읽으면 알아서 잘 쓰게 될 거라는 편견이 만났다. 오만과 편견은 첫 눈에 서로가 떨어지려야 떨어질 수가 없는 운명임을 감지했고, 온 세상이 그 결합 반댈세를 외치는데도 못들은 척 고집스럽게 서로의 사랑을 키워나가다 마침내 아무도 찾지 않는 어두운 골방에서 뜨거운 사랑을 나누었다. 그 사랑의 결과로 syo가 태어났다. 30권을 읽어도 3권을 읽은 것보다 아는 게 없는 허망한 독서인. 30권을 읽어도 1개의 리뷰를 채 못 쓰는 실속 없는 독서인. syo. 독서계의 속빈 강정, 바람 든 무.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뭅니다. 무예요.





보통의 독자들은 서민 작가님의 책을 읽으면 촌철살인의 재치와 해학에만 눈길을 빼앗기는 경향이 있는데, 무는 그 뒤에 가려진 그의 피나는 노력을 읽는다. 그는 타고나기를 금 혓바닥을 물고 태어나 입만 열면 침 흐르듯 웃긴 말이 좔좔좔 흐르는 그런 개그천재는 아니다. 뼈를 깎는 노력과, 자기의 사지육신 오장육부(무엇보다도 얼굴)을 다 팔아서라도 웃음을 사려는 그의 욕심이 무의 눈에는 선연히 보인다. 이것은 비록 수준은 뒤처지지만 욕심에서는 뒤지지 않는 무의 동병상련의 정이라 하겠다.

 

그러니까, 이런 말이 하고 싶다. 아는 사람은 아는,


내가 요즘 서민을 읽고 있는데, 느낀 게, 욜로 열심히 안 하면 안 될 것 같애..... 근데 나는 열심히 안하잖아. 난 안될 거야. 아마.”

 




 

시인의 사물들

강정 외 지음, 허정 사진 / 한겨레출판 / 2014

 

어쩐지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무는 한때 시인을 꿈꾼 적이 있다. 애기 무 시절이었다. 애기 무가 매운 법이다. 당시 만나던 사람에게 당차게 , 서른 정도 되면 등단하지 않을까?” 이러면서 미친 호기를 다 부렸더랬다. , 세상에. 충격 고백.

 

서른 애저녁에 지났고 이제 늙은 무가 되어 생각해볼 때, 서른에 시인이 되지는 못했으나 아무래도 시인이 될 수 없겠다는, 세상 다 알고 무만 모르던 냉혹한 진실을 똑바로 깨달은 것도 서른쯤이었던 듯하다. 이만하면, 뭐라도 하나 건진 거나 마찬가지 아닌가.

 

그리하여 무는 시인이 되지 못하고 시집을 읽는 사람이 되어, 한없이 시인을 동경한다. 시인이라 하면, 표절이나 성추행 사건을 일으키지만 않았다면 일단 무조건 빨고 본다. 이제 무보다 어린 시인도 수없이 많다. 처음엔 충격이었지만, 한낱 무 주제에 지가 뭐라고 저보다 어린 시인이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나 싶기도 하다. 그러나 깔끔하게 인정하면 내가 무가 아니지. 그리하여, 어디서 주워들은 풍문, “잘 생기면 오빠다를 변주한 잘 하면 형아다를 기치로 내걸게 되었다. 여기서 하다는 보통 읽다쓰다를 가리키는 바, 그러니까 이 책은 온통 미친 형아 누나들의 대향연이다. 만족. 그런데 어쩐지, 어린 형아 어린 누나들이 선배들보다 더 화려하고 현학적인 글로 촥촥뿜뿜 실력을 뽐내고 있네. 힘도 바짝 들어갔고. 아이고, 시인도 얄짤 없이 사람인 거라.




 

새벽 2시, 페소아를 만나다

김운하 지음 / 필로소픽 / 2016


무는 처음 읽는 작가. 유명한가? 본문에 나는 전작 <카프카의 서재>에서 ......”, “나는 다른 책에서 ....... 한 바 있다.” 이런 글귀들이 계속 눈에 보이네. 전체적으로 잘 쓰는 알라디너 서재를 들여다보고 나온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책이다. 이게 빠는 걸까요, 까는 걸까요.

 

무가 개인적으로 마음에 안 드는 곳 두 군데. 무가 한번 따집니다.

 

첫째,

다른 모든 소설을 읽는 것처럼 개츠비를 읽는다는 건바로 를 만나고 읽는다는 것이다더구나 그 만남이 문학이라는 아름다운 정원에서 이루어지는 만남일면더할 나위 없이 즐거운 만남이 아니겠는가.(19) 


이건 아니라고 무는 생각합니다. 무의 개인적 견해입니다. 우리는 이제 소설을 통해 를 만날 게 아니라 를 만나야 합니다. ‘는 이제 그만 좀 만나야 해요. 우린 지나치게 만 생각하며 살고 있잖아요. 소설 속에서도 닮은 모습을 만나고 읽을 정도로, 아직도 가 부족한가요? 생각해 주세요. ‘만 알고 를 몰라서 벌어지는 아프고 슬픈 일들이 세상에 얼마나 많습니까. ‘’와 만나는 소설 즐길 버릇을 하다 보면, ‘’와 만나는 소설 읽는 법을 잊어버리게 됩니다. 나와 닮지 않은 사람, 나와 닮지 않은 생각, 내가 공감할 수 없는 이야기를 손쉽게 비난하거나 무시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세상에 소설은 무지막지 많고, 나와 닮은 사람의 나와 닮은 생각에 내가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들은 줄을 서서 언제나 우리를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이미 나와 닮은 사람을 소설 속에서 만나면 순간 기쁨을 느낄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그때뿐입니다. 덮고 나면요. 감정은 기억보다 빨리 약해집니다. 나중에는 감정이 아니라 감정의 기억만 남습니다. 굳이 소설을 통해 를 만나고 싶다면, 이미 만들어진 나를 거울처럼 비추어 볼 것이 아니라, 나를 소설 속에 집어넣으며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나를 빚어나가야 합니다. 나라면 저 자식의 뺨을 후려쳤을 텐데. 나라면 아마 벌벌 떨고 있느라 아무 말도 못했을 텐데. 그럴 수도 있는 거였다. 그때 난 그러면 안 되는 거였다. 이렇게 읽는 것이 소설을 읽는 좋은 방법이라고 무는 생각합니다. 어떻게, 시종일관 저런 방식으로 소설을 읽는 좋은 책 두 권 소개해드려요?





솔직히 첫 번째는 그냥 무의 무 같은 견해일 뿐이지만,


둘째, 검색해보니 이미 이 문제를 제기한 분도 있던데, <위대한 개츠비> 끝부분에서 개츠비의 차를 몰다가 사람을 치어 죽인 것은 톰이 아니라 데이지입니다. 개츠비가 그 일로 오해를 사 목숨까지 잃었으니 사소한 사건도 아니고, 거기서 차를 몬 것이 데이지라는 사실은 맥락상 무시할만한 일도 아닌데, 떡하니 톰이 죽였다고 써 놓으시면 어떡합니까. 이 책이 무슨 인생의 책이라도 되는 것 마냥 온몸으로 칭찬하셨잖아요. 개츠비를 읽는다는 건 바로 를 만나고 읽는다는 거라면서요. 이제 무가 그 말을 어떻게 믿겠어요. 챕터 1부터 이런 실수(?)를 하시면, 그 뒷부분은 제가 무슨 마음으로 어떻게 읽어야 되겠어요. 말씀을 좀 해 보시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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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17-10-12 17: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아!!!! 리뷰를 요렇게 재밌어하며 읽어보기도 오랫만. 등단만 안하셨지 작가이신데요^^

syo 2017-10-12 17:30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그렇지만 작가는 무립니다.
syo는 그냥 무입니다^^

라임 쩔었다....(뿌듯)

다락방 2017-10-12 17: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름다운 책 두 권 링크 해주셨네요. 워낙에 아름다운 페이퍼인데 아름다운 책이 두 권 떠억- 얹혀 있으니 아름다움이 극에 달합니다. 아름다움이 절정을 이루는 초특급 아름다운 페이퍼에요, 쇼님.

syo 2017-10-12 17:48   좋아요 0 | URL
저 아름다운 책 두 권을 다 읽고 나면, 이 정도 페이퍼는 껌으로 작성하게 됩니다. 훗.

짜라투스트라 2017-10-12 18: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역시 재미있어요 ㅎㅎㅎ

syo 2017-10-12 18:38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ㅎㅎㅎㅎ 맨 아래 두 권 추천이요.

독서괭 2017-10-12 19: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정말 납득하기 어려운 실수네요. 어떻게 책을 만드는 전 과정에서 아무도 그걸 잡아내지 못했을까요? 저자와 책에 대한 신뢰를 확 떨어뜨리는군요.
무 사진 올려주신 거에 빵 터졌습니다ㅋㅋ

syo 2017-10-12 19:23   좋아요 0 | URL
고르고 고른 무입니다. 독서괭님이 만족하셨다니, 저도 만족스럽네요.

프리즘메이커 2017-10-12 2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먹기 좋은 syo 북카페에 오신 걸 스스로 환영하겠습니다 ㅎㅎ

syo 2017-10-12 21:38   좋아요 0 | URL
막상 먹을라치면 먹을 거 없어서 입맛만 다시고 돌아서야 하는 syo 북카페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ㅎㅎ

psyche 2017-10-13 04: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쏙쏙 내 맘에 들어오는 글을 쓰시는 분이 무라니요... 진짜 바람 든 무는 어쩌라고.

syo 2017-10-13 06:43   좋아요 1 | URL
무 이미지를 검색하다 알게 된 건데, 바람든 무로 만들 수 있는 것도 많더라구요. 거대한 희망을 얻었습니다.
 




여혐, 여자가 뭘 어쨌다고

서민 지음 / 다시봄 / 2017


"syo는 페미니스트는 아니지만" 이라는 말로 시작할까 하는데, 이것은 많은 여성들이 겪는 불편함, 그러니까 과거에는 "나는 페미니스트는 아니지만," 이었고 요즘은 "나는 메갈은 아니지만,"으로 운을 떼야 하는 그녀들의 고충과 상관 없는 일임을 미리 밝혀 본다. 언젠가 당당하게 "나도 페미니스트다 이 양반들아" 외칠 수 있는 날이 오리라 생각하지만, 아직은 그만한 깜냥이 되지 않아 사리는 것 뿐이다. 이를테면, 유치원이나 학교나 기능이 대동소이해도 유치원 다니는 애들을 학생이라 부르지 않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까.


그럼 약속대로, syo는 페미니스트는 아니지만 어디가서 행세하는 건 또 좋아하는 값싼 성격이라, 깨친 남자가 되려고 애를 꽤 쓰는 편이다. 그러나 인생행로가 박복하고 하늘의 뜻이 모질어, 주변에 여자라고는 가족이랑 여친 말고는 정말 1도 없는 퍽퍽한 삶을 오래도 견뎌왔다. 그 결과, 막상 깨친 남자 행세를 할라쳐도 주변 인물군상이 죄 남자 뿐이라 영 애로사항이 많은 것이다. 편견이라 하시면 반론하지는 않겠지만, 최소 syo의 주변을 표본으로 놓고 보면 과연 대구 놈들이 제일 문제라, 그야말로 맨 오브 맨, 가부장의 가부장들을 상대하자니 나의 얄팍한 깨침으로는 도통 이빨이 박히지를 않는다. 얼마나 막막하냐면, 야 그거 차별인데, 야 그거 혐오발언인데, 이렇게 지적하면 아니 syo야, 도대체 그런 재미있는 농담을 더 하고, 어디 농담 학원에라도 다니는 거니, 하는 식으로 파하하하 웃고 땡이다. 뭐 발끈이라도 해야 되는 거 아냐? 도대체가...... 그러니 syo는 눈알 하나 달린 도깨비들 마을에서 저 혼자 눈알 둘 달고 사는 도깨비가 된 기분이 든다.  


그러나 막상 눈알 하나 달린 도깨비들이 떼로 들고 일어나, 눈알 둘 달린 놈들 찾아서 하나를 뽑아 놓겠다고 으름장을 놓으면, 그때도 syo가 당당하게 내 눈알이 두 개요 하며 행세할 수 있을까? 그 지점에서 저자는 존경스럽다. "남자 페미니스트"라는 무시무시한 칭호가 표지에 떡하니 박혀 있는 저 책을 열어보면, 실제로 저자가 겪어야 했던 고난들이 눈물을 자아낼 듯 말 듯 아슬아슬한 지경에까지 와 있다. 이미 명망이 떠르르한 저자의 유머도 여전히 살아 있는데, 그게 또 아슬아슬하다. 함량은 확실히 여자 페미니스트들 성에 찰 만큼은 아닌 것 같고, 솔직히 머릿말의 기생충 이야기에 좀 뜨악한 것도 있었지만, 그래도 응원한다. syo는 아직 "syo는 페미니스트는 아니지만" 같은 말을 써붙어야 하는 꼬꼬마고, 저자는 스스로 페미니즘을 응원하는 모든 남성들의 총알받이가 되었으므로, syo가 저자에게 줄 것은 결국 사랑 말고는 없겠다. 그리고 사랑은 마침내 구매로 이어지리라. 






칼 마르크스 - 그의 생애와 시대 / 이사야 벌린 지음, 안규남 옮김 / 미다스북스 / 2012

마르크스 평전 / 프랜시스 윈 지음, 정영목 옮김 / 푸른숲 / 2001

마르크스 평전 / 자카 아탈리 지음, 이효숙 옮김 / 예담 / 2006


우리말로 번역된 마르크스 평전은 좀 더 있긴 하지만, 실제로 사람들은 이 세 권을 꼽는다. 그러니까 마르크스 평전계의 태희, 혜교, 지현이는 이사야 벌린, 프랜시스 윈, 자크 아탈리 되시겠다. 보시다시피 표지가 다들 어떻게든 빨갛다. 그래야 한다고 느꼈을 것이다. 편견이라면 편견이겠지만, 솔직히 나는 좋다. 마르크스를 좋아하기 전부터 빨간색을 가장 좋아했는데, 운명이란 그런 거지.


왕년에 세 권을 다 읽었었는데, 너무 왕년이라 가물가물 하지만, 이사야 벌린은 차가우면서 고급졌고, 프랜시스 윈은 깊으면서도 유머러스했으며, 자크 아탈리는 정열적이고 선동적이었다. 태혜지와의 매칭은 각자의 손에 맡기겠지만, 그녀들 중 누구 하나 빠지는 사람 없듯, 저 책들도 세 권이 제각기 다 괜찮다. 


하나씩 다시 읽는 중이고, 어제 이사야 벌린을 마쳤는데, 저 양반, 정말 엄청난 사람이다. 저 책은 그의 나이 28세에 쓴 것으로 그의 첫 작품이라는데, 세상에, syo한테는 28년이 아니라 56년, 94년을 줘도 저런 책을 쓰지 못할 것이라는 확실한 절망감이 엄습한다. 가끔 문장이 너무 좋아서 원문은 어떤가 읽어보면, 영언데 더 좋다. 희한하다. syo는 영어도 잘 못하는데, 암만 영어를 못해도 그 글 좋은 줄은 알 수 있게, 그렇게 쓴다, 저 사람이.


이사야 벌린은 서문에서 어떤 범죄를 아주 능청맞게 고발하고 있다. "애초에 써 놓은 원고는 이 책의 두 배가 넘는 분량이었다. 그러나 <홈 유니버시티 라이브러리> 편집자들의 엄격한 요구로, 철학적, 경제학적, 사회학적 쟁점들에 대한 논의는 대부분 빼버리고 대신에 주로 지적 전기에 중점을 둘 수밖에 없었다." 이런 천인공노할 <홈 유니버시티 라이브러리> 편집자 놈들아! 여봐라, 개작두를 대령하라..... 그대들은 "가장 훌륭한 마르크스 평전"이 될 뻔한 글을 "가장 훌륭한 마르크스 평전들 중 하나"로 만드는 역사의 대죄를 저질렀으므로, 불지옥에서 그 죄를 태워 없애야 할 것이다. 그대들은 아무리 뜨거워도 십 년에 한 번만 몸을 뒤집을 수 있고, 영원토록 삼겹살만 지급될 것이며......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박준 지음 / 문학동네 / 2012


 슬픔은 자랑이 될 수 있다 / 박준


 철봉에 오래 매달리는 일은

 이제 자랑이 되지 않는다


 폐가 아픈 일도

 이제 자랑이 되지 않는다


 눈이 작은 일도

 눈물이 많은 일도

 자랑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작은 눈에서

 그 많은 눈물을 흘렸던

 당신의 슬픔은 아직 자랑이 될 수 있다


 나는 좋지 않은 세상에서

 당신의 슬픔을 생각한다


 좋지 않은 세상에서

 당신의 슬픔을 생각하는 것은


 땅이 집을 잃어가고

 집이 사람을 잃어가는 일처럼

 아득하다


 나는 이제

 철봉에 매달리지 않아도

 이를 악물어야 한다


 이를 악물고

 당신을 오래 생각하면


 비 마중 나오듯

 서리서리 모여드는


 당신 눈동자의 맺음새가

 좋기도 하였다



모든 것은 눈에서 시작된다. 누군가의 말처럼, 오래 보아야 어여쁘다. 어여쁜 것들을 꾸짖고 넘어뜨리는 것들이 밉다. 미운 것 역시 오래 보아야 미운 셈이다. 어여쁘고 미운 것들이 시를 짓는다. 그 시는 눈 닿는 세상의 모든 구석에 꿀처럼 술처럼 묻어 있다. 여기저기 고여 있다. 시인의 손가락이 시를 푸욱 찍어 입으로 가져간다. 달고 쓰고 맵고 시고 온갖 맛이 난다. "아, 달고 쓰고 맵고 시구나." 그러구나, 시구나. 맞다. 그러면 시다. 시인의 그 말이 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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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7-09-29 07: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줄 것은 사랑밖에 없다니! ❤️

syo 2017-09-29 07:23   좋아요 0 | URL
ㅎㅎㅎ syo는 그런 남자인 것임니다.

단발머리 2017-09-29 09: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칼 마르크스, 빨간 책 세권 완전 멋지네요~~~
저는 하나만 고르라면, syo님이 극찬하신 이사야 벌린의 책을 읽어야겠어요.
syo님도 자세히 보니, 분노의 빨간 포도알갱이인데요^^

syo 2017-09-29 09:30   좋아요 0 | URL
그렇습니다. 바로 보셨어요. syo가 바로 분노의 ˝빨간˝ 포도알갱이가 맞지요.

근데, 혹시 처음 마르크스 평전을 보시는 거라면 가운데 있는 놈을 권합니다.

단발머리 2017-09-29 09:32   좋아요 0 | URL
혹시 처음 마르크스 평전을 보려고 하는 1인이거든요.
근데, syo님이 영어문장도 좋다~~ 하시어서 전, 이샤야 쪽으로 마음이 가고 있었는데...
초심자에겐 무리일까요? 너무 두꺼운가요? ㅎㅎㅎㅎ

syo 2017-09-29 09:58   좋아요 0 | URL
아뇨, 얇은데, 단순히 페이지 수로 보면 세 권 중 제일 얇긴 한데, 되게 옛날 책이기도 하구요. 진짜 ˝철학적, 경제학적, 사회학적 쟁점˝들은 툭툭 던지고 지나가는 느낌이거든요. 물론 그 툭툭 던진 게 집채만하가는 하지만....

뭐랄까, 마르크스를 잘 알게 된다기 보다는 마르크스를 평하는 모습을 통해 이사야 벌린을 알게 된다는 느낌도 좀 있어서요. 평전은 처음이시지만 마르크스에 대해 좀 아신다면 거리낌 없이 권하겠으나, 그런 게 아니시라면 처음 읽기에는 프랜시스 윈이 제일 낫지 않나 해요. 윈도 문장 괜찮아요. 그리고 믿고 읽는 정영목 선생님 번역.

2017-09-29 10: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단발머리 2017-09-29 10:04   좋아요 0 | URL
아하... 그렇군요. 고구마 사이즈 정도만 던지셔도 전 날아갑니다.
두번째 책은 자세히 안 봐서 몰랐어요. 믿고 읽는 정영목 선생님 번역이면 아무렴요, 시작은 <마르크스 평전>으로 해야겠네요.
심장이 두근두근 하네요. ㅎㅎㅎㅎㅎ

2017-09-29 10: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독서괭 2017-09-29 1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은 ˝나는 메갈은 아니지만,˝으로 운을 떼야 하는 그녀들의 고충 - 이 말에 십분 공감합니다. 메갈이 이슈화 되면서 페미니즘을 공격하는 자들의 기세가 더 등등해진 건 아닌지... / 그동안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남성 페미니스트로 사는 것도 참 많은 고난이 따르겠군요.
마르크스-예쁜 빨강빨강이네요! 가을엔 마르크스!인가요ㅎ

syo 2017-09-29 10:21   좋아요 0 | URL
그렇습니다! 무릇 가을에는 빨강빨강이 제맛이지요. 단풍과 잘 어울리잖아요. 비록 ˝내장산 마르크스 축제˝ 이런 건 없지만....

독서괭 2017-09-29 10:53   좋아요 1 | URL
내장산 마르크스 축제라니 ㅋㅋㅋㅋㅋㅋㅋ 아무리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려해도 망삘인걸요ㅋㅋㅋㅋㅋ
 
내 인생 최고의 책
앤 후드 지음, 권가비 옮김 / 책세상 / 2017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아이고, 우리 자매님 바쁘신 중인가 보다, 으음, 다른 게 아니라, 오늘 이렇게 우리 자매님께 좋은 말씀, 귀한 말씀 하나 전하려 하는데, 어떻게 우리 자매님, 주일마다 나가시는 서점이...... 아, 없으시구나, 그렇죠, 요즘 사는 거 너무 바쁘고 힘들어서 일주일에 딱 하루, 주일날 서점 가서 책느님 좋은 말씀 듣고 올 만한 여유도 다들 없으시더라구요, 그래서 오늘 이렇게 저희가, 귀한 말씀 전하려 자매님 댁으로 직접 이렇게 발걸음을 한 거랍니다. 네, 네, 자매님, 그럼요, 저희 뭐 팔려고 이러는 거 절대 아니구요, 아유, 그럼 벌 받죠, 책느님이 다 지켜보고 계신데, 저희가 어떻게, 네, 네, 그럼 말씀 좀 전해 볼까요?


우리 자매님, 한 달에 책느님 몇 권 영접하시는지 혹시 여쭤봐도? 두 권! 오, 우리 자매님 신앙이 아주 깊으시네요! 한 달에 두 권이면 일 년에 스물 네 권! 와, 우리 자매님, 할렐루야, 천국의 문이 이미 자매님 눈 앞에 열려 있어요, 이제 자매님, 그 문 안으로 들어가시기만 하면 되는데, 그쵸, 어떻게 그 안에 들어가실지 잘 모르시겠죠, 그러니까요, 그래서 저희가 오늘 이렇게 그 방법 알려 드리려 자매님께 온 겁니다, 우리 자매님, 좋은 말씀, 귀한 축복의 말씀 들으시기 전에, 같이 잠시 기도하실까요, 눈 감으시구요......


자매님, 우리 인간이 이 땅에서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인간에게 모든 것을 내 주신 책느님의 한없는 사랑을 아시나요? 우리 인간들이 책느님의 은총 모르고 살았던 어두껌껌한 시대를 한 번 떠올려 보세요. 지식은 이어나가기도 겨우겨우 할 뿐, 농사꾼의 아들은 농사를 짓고, 어부의 아들은 고기를 잡는 것 말고는 다른 무엇도 배울 수도, 익힐 수도 없었던 그 경직된 시대를요. 한 사람이 죽을 때까지 들을 수 있는 재미난 이야기, 신비한 이야기들이 채 스무 개가 되지 못하는 그 무미건조한 시대를요. 늦게나마 인간이 책느님을 영접하지 못했더라면, 지금 자매님,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지 상상이 가시나요? 기도하실게요, 책느님 아버지, 오늘도 우리 마음에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혹시 우리 자매님, 요즘 힘든 일, 잊고 싶은 일, 위로 받고 싶은 일이 있으시죠, 네, 저흰 다 알죠, 책느님이 다 보고 계시고, 저희한테 알려주시니까요, 그래서 자매님, 저희가 오늘 거룩하신 책느님의 기적을 빌려, 자매님의 슬픔을 덜어드리려고 하는데, 어떻게, 마음의 준비는 되셨나요? 네? 아휴, 자매님, 그거 다 이단이에요, 자매님, 따라가시면 큰일 나요, 훠이, 책느님과는 그렇게 교통하는 법이 아니죠, 자매님 상황이나 기분에 맞게 책 권해주는 그 사람들, 신앙인 아니예요, 기술자지, 물러가라 세리야, 바리새인아, 자매님, 그런 대증요법은 근본적인 구원이 될 수 없어요, 다만 아주 잠깐 상처에 약한 마취 주사를 놓는 것 뿐이지요, 여기, 톨스토이복음 안나카레니나편 1장 1절 말씀 좀 보시라구요, "행복한 가정은 모두 엇비슷하게 행복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 그 이유가 다르니라, 하시었다." 보세요, 자매님이 어떻게 슬프신지, 그 슬픔이 어떤 책과 얼마나 비슷해보일지는 모르겠지만, 그건 결코 똑같은 슬픔이 될 수 없다고, 책느님이 말씀하십니다, 슬픔은, 자매님, 그렇게 이겨내는 것이 아니랍니다, 아니오, 슬플 땐 책느님 영접하지 마시라는 말씀이 아니라요, 그러니까, 자, 자, 그러니까 자매님, 그 주먹 펴시고, 인상도 펴시고, 아유, 이러다 잘하면 욕 나오시겠다, 제 말씀 좀 들어보시라니까요, 그러니까 책느님께서 자매님의 슬픔에 관심이 없으신 게 아니라, 오히려 너무, 너어어무 관심이 많으셔서, 더 좋은 방법을 가르쳐 주시려는 거예요, 네,  


그러니까 자매님, 답은, 같이 읽는 거예요, 같이 읽어요. 네, 저희랑 같이 읽으세요. 저희 아니어도 매사에 책느님께 영광 돌리고 하루 하루 책느님의 사랑 아래 충만한 신도분들이라면 누구라도 괜찮으니 몇몇 모이셔서, 같이 읽으세요. 그게 진짜 구원입니다. 그게 유일한 구원이에요. 같이 읽는 책은요, 혼자 읽는 책과는 완전히 다른 책이에요. 인간은 불완전하고, 슬픔에 젖은 인간은 더욱 그렇기 때문에, 내가 원하는 것을 찾고자 하는 목적으로 책을 펼치면, 그 안에서 아무것도 찾아내지 못하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겐 책 읽는 눈과, 책 읽는 마음이 무한히 필요합니다. 네 개의 눈이 두 개의 마음을, 여덟 개의 눈이라면 네 개의 마음을 삽처럼 들고 와 책을 헤집고 당신의 마음을 치료하기 위한 우물을 함께 파 줄겁니다. 그러니까 당신도, 만약 오늘의 당신이 슬프다면, 책을 들고 밖으로 나오세요. 당신의 좁은 방 침대 위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하는 공간, 교차하는 시선들과 따뜻한 손길 사이사이에 씨앗처럼 책을 뿌리세요. 이야기의 물을 주세요. 책은 뭐라도 좋습니다. 당신의 슬픔과 닮았건, 닮지 않았건. 당신이 나눈 책이 자라 커다란 나무가 되었을 때, 당신은 알게 될 겁니다. 우리는 저마다 다른 불행을 지니고 있지만, 손을 뻗어 위로하고 공감할 마음만 있다면 충분히 만질 수 있는 가까운 거리 안에서 저마다 슬퍼하고 있을 뿐이라는 사실을. 나의 슬픔과 닮은 슬픔이 들어 있는 책보다, 나의 슬픔과 닮은 슬픔을 안고 있는 사람이 훨씬 많다는 사실을. 그게 더 큰 위로가 된다는 사실을.


어머, 자매님, 죄송해요, 제가 그만 성령이 충만하여 저도 모르게 또 방언이 터졌나 봐요, 놀라셨어요? 이런 일 종종 있어요, 네, 네, 그러니까 제가 무슨 말을 했는지...... 네, 맞아요, 나오셔서 같이 책느님 영접하는 시간을 가져 보면 좋겠어요, 실제로 그렇게 어마어마한 슬픔을 극복하게 된 분들 많아요, 네, 아, 그러고보니 여기, 그 중 한 분이 간증하신 게 있네요, 제목도 참 좋지, 『내 인생 최고의 책』, 한 번 보시겠어요? 그 분 이야기는 글쎄, 어린 시절 동생이 나무에서 실족사한 이후에 어머니도 뒤이어 자살하셨다는데요, 게다가 남편은 다른 여자를 사랑한다며 바람 나서 집을 나가 버리고, 심지어 딸 아이는 마약에 중독되어 유럽 여기저기를 헤매다가 행방불명 되고...... 지금 그 분, 책느님의 자애로운 인도 아래, 기적같은 일들을 겪으며 굉장히 행복하게 잘 살고 계세요. 아마, 간증록을 다 읽고 나시면 우리 자매님도 그 충격적인 전개에 깜짝 놀라실 걸요? 꼭 읽어 보시고, 다음에 한 번 나오셔서 저희랑 같이 책느님 영접하세요, 네, 여기요, 14800원입니다. 아뇨, 14800원. 네고 없음, 도서정가제. 나 지금 진지함. 이건 방언 아님. 14800원. 알라딘에서 사면 10% 깎아서 13320원.


마일리지 740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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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renown 2017-09-15 2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성령이 충만하셨네요.. 훌륭한 단편소설? 장편소설이네요. 손바닥 장. 믿습니다,아멘!

syo 2017-09-15 20:51   좋아요 0 | URL
아멘! 할렐루얍니다.

닷슈 2017-09-15 2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 ㅋ 너무 재밌군요

syo 2017-09-15 21:18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ㅎㅎㅎ 쓴다고 썼지만..

짜라투스트라 2017-09-15 21: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겨울호랑이 2017-09-15 2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yo님의 재밌는 글을 읽으니 금요일 밤이 더 즐거워지네요^^:

syo 2017-09-15 21:45   좋아요 1 | URL
허허^^ 별 거 안해놓고도 뿌듯하네요.

에그머니 2017-09-15 22: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마일리지 740점 ㅋㅋㅋㅋㅋㅋㅋㅋ
종교적 내공이 장난이 아니신듯.

cyrus 2017-09-15 22: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 기준으로) 알라딘 서재에 글을 재미있게 쓰는 분들이 있습니다. 마태우스님, 곰발님, 붉은돼지님, 그리고 syo님입니다. ^^

syo 2017-09-15 23:04   좋아요 1 | URL
우와, 저분들이랑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되는 날이 오다니, 크- 보람있군요.

곰곰생각하는발 2017-09-16 00:11   좋아요 2 | URL
느닷없이 쇼 님이 출몰하는 바람에 이제 제 글은 인기가 없어졌습니다..

syo 2017-09-16 06:46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 곰발님, 이렇게 재미있는 농담을 하시는데 제가 어떻게 곰발님한테 비비겠어요.

yamoo 2017-09-16 14: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하하 완전 재밌네요..ㅎㅎ 쇼님, 제가 봤을 때....아무래도 문학전공 아니면 문창 전공이신듯...ㅎㅎ

syo 2017-09-16 14:30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야무님, 근데 땡!
syo는 전자통신컴퓨터공학부 졸업자입니다ㅎㅎㅎ

다락방 2017-09-28 09: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헤헤 쇼님 글 진짜 재미있게 잘 쓴다. 이 글 최고!!

syo 2017-09-28 09:36   좋아요 0 | URL
뭘 또 이렇게까지나 ㅎㅎㅎ
 
은유의 힘
장석주 지음 / 다산책방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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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면가왕에서 하현우나 소향이 연승을 달리고 있던 시절, 관련 기사에는 항상 이런 취지의 댓글이 달려 있곤 했다. "한국 사람들, 음악 들을 줄 몰라서 저렇게 고음이나 빽빽 지를 줄 알면 그냥 노래 잘하는 줄 알고, 진짜 음악을 몰라. 저게 무슨 노래야. 기인열전이지. 노래는 감정이야 감정. 曰曰." 


누가 정했나, 노래는 감정이라고. 누가 정했을까, 이건 진짜 음악이 아니고 저게 진짜 음악이라고. 


늦은 나이에 군대를 가서 힘들고 외로운 순간 순간 소향의 홀리홀리한 노래를 들으며 치유받곤 했다. 간부에 까이고 선임은 깝치고 후임은 깝깝해 하루 종일 빡쳐 있다가도, 소향이 부른 'O Holy Night'를 듣고 나면, 그래 이 먼지 같은 일들에 일일이 분노하는 작은 사람 되지 말자, 세상은 이렇게나 넓고 높고 성스러운 것을- 하고 마음이 활짝 열려, 까이건 깝치건 깝깝하건 간에 우린 모두 하나, we are the world, 하게 되는 것이다. 그 환희의 순간들이, 희열로 가득 찬 하나됨의 기쁨이, 마치 신탁처럼 나를 그 기쁨으로 인도한 노래가, 다 진짜가 아니라고? 솔직히 조금 울기도 했는데?


"나는 이런 건 음악이 아니라고 생각해." 혹은 "나한텐 저런 건 음악이 아니야." 라고는 할 수 있는 문제지만, "이건 음악이 아니야." 라고 할 수는 없는 문제다. 당신의 마음 속 진짜 음악은 오롯이 당신의 것이지만, 그냥 '음악의 정의'는 공공재다. 당신의 일기장에, 당신의 블로그에 당신이 생각하는 음악에 대해 A4 700장 분량의 논문을 쓰는 것은 당신의 자유지만, 위키피디아를 고친다면 쓰고 싶은대로 막 쓰면 될 일이 아닌 것이다. 


시도 마찬가지다.


이런 하찮은 이야기를 서두에다 두서 없이 깔아놓는 이유는, 아마 지금부터 syo는 책 한 권을 깔 것 같은데, 까는 일은 항상 까부는 일이고, 일단 까불다 보면 항상 한없이 까불게 마련이라서다. 설사 이 뒤에 이어지는 글들에서 syo가 공공재인 '시의 정의(定義)'를, 더 나아가 역시 공공재인 '시의 정의(正義)'를 건드리는 듯한 표현을 하게 되더라도, 그것은 다만 syo의 취향과 개인적 정의(定義 & 正義)일 뿐임을 미리 밝히기 위해서이다.


 


2


내가 '은유시인'이라고 부르는 작자들은, 시를 쓰기 위해 은유하는 게 아니라, 은유하기 위해 시를 쓰는 것 같은 무례한 시인들이다. 이름도 대려면 몇 댈 수 있다. 최근에도 한 권 발견했다. 이들의 은유는 '원관념', 그러니까 은유를 통해 빗대어 나타내는 실제의 대상을 독자에게 환기시키지 않는 듯하다. 후려쳐서 말하면, 아무래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이야기고, 더 정확히 말하면, 그 은유가 무슨 말로도 독자에게 다가오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물론 잘 된 은유인데도 독자가 무지하여 원관념을 캐치하지 못할 수 있다. 그러나 제대로 된 은유라면 그런 순간에도, 잘은 모르겠지만 이 시가 뭔가 말을 하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 자체는 가질 수 있게 한다. 독자 똥으로 보지 말자. 시인들이 말하는 것처럼 시가 문자 이전부터 존재해 온 인류 최고(最古)의 서사 양식이라면, 평생 시집 다섯 권 채 못 읽고 무지개 다리 건널 대부분의 평범한 독자들도 호모 사피엔스적 감각만으로 직감할 수 있는 무언가를 던져야 한다. 최소한 내가 무지해서 그렇다는 자책감 정도는 달라는 것이다. 그게 안 되면, 그냥 자신의 언어조작능력을 과시하고 싶어 똥폼을 부리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으니까. 


그러니까, syo는 '은유시인'을 멸칭으로 쓰는 것이다.




3


이 책은 네 가지 요소의 복합체다.


하나, '은유'를 은유하는 무수한 말들.


둘, 시집 뒷꽁무니에서 출몰하곤 하는 시 해설들.


셋, 다독가인 지은이가 여기저기서 읽어 온 지식의 파편들(인간 게놈, 감정은 편도체/단어는 측두엽/시각자극은 후두엽, 은하의 속도는 시속 100만 마일, 세계를 지배하는 여섯가지 수, 기타 등등 굳이 왜 은유를 설명하는 책에 있어야 하는지 알 수 없는 것들이 참 많기도 많다. 이것도 하나의 은유일까?)


넷, 오, 이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은유인가! 아, 저것은 또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것은 또 어떻고! 쪼오오기 저어어쪽 것도.....




4


본문의 한 부분을 따라가 보자. 괄호는 이 부분을 읽던 syo의 마음의 소리다.


시는 언어 놀음이고, 항상 그 놀음 이상이다(좋지 좋아. 그렇고 말고.) 시는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한 말함이고, 이름 붙일 수 없는 불행에 이름을 부여하고 그걸 호명한다(아, 암만, 그래야지. 시가 안 그럼 누가 그러겠어.) 시는 있음과 없음 사이에서 울려나오는 메아리고(음..... 그.....렇지? 없음과 있음 사이..... 음음.) 뇌의 전두엽에 내리꽂히는 우레며(전.....전두엽.....) 모든 물질에 작용하는 메타과학이고(메타....뭐?) 형이하학의 형이상학이다(네? 예?) 시의 본질은 우연성이고, 이것은 무상성에서 확고한 지지를 자아낸다(.......) 그런 맥락에서 시는 만듦이고 낳음이며, 위함이고 이룸이다(....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관자재보살....) 인간 내부의 구멍이고 그 구멍 속에 사는 신이다(제발....이제 그만.....) 시인은 항상 외부 세계, 멀리 있는 다른 우주의 신과 소통한다(살려줘요! 아님 차라리 죽이시든가....) 그래서 시는 때때로 낯선 신의 알아듣기 힘든 방언이기도 하다(아! 맞아! 정말이야! 지금 딱 그래.....)




5


은유를 설명하는 책은 위험할 수 있다. 지은이가 이육사의 <절정>에 들어있는 은유를 풀어내는 대목을 보자. 문제점을 지적하는 데 <절정>의 원문은 필요 없을 것 같다.


"칼날"이 "강철"에 연접하며 날카로움과 강밀도가 높아지는데, 이는 속화된 현실과 단절하려면 단호한 결기와 강단이 필요함을 암시한다.


특히 "겨울"이라는 시련을 딛고 홀연히 피어난 "강철로 된 무지개"는 무릇 정신을 초극하며 높이 솟구친 범상치 않은 경지를 가리킨다.


이육사가 그토록 되고자 하는, 닿고자 했던, 무른 마음과 발 디딘 현실의 속됨을 떨치고 솟구쳐 일어나는 영웅적 품성의 고결함을 가리키는 고원, 매화향기, 백마, 초인 따위와 연접하며 .... (35- 36)


눈 밝은 분들은 지금 이 대목을 보고, 이건 아마 지은이가 십수 년째 지적받고 있는 학교 시 교육의 문제점을 환기하기 위해 교사용 참고서의 일부분을 인용하는 게 아닐까, 하셨을지도 모른다. 그런 거 아닙니다. 이 글은 이 책의 전반에서 펼쳐지고 있는 지은이의 시 해석 양상이다. <절정>이 아무리 다른 방식으로 해석될 여지가 적은 시라고 해도, 이렇게 시 해석을 확정해 버리면 어쩌자는 말일까. 심지어 제도권 교육에서 해석하는 방식과 아무런 차이도 보여주지 않고. 평론집은 평론가가 '자신의 해석'을 드러내는 책이니 또 모를 일이지만, 이 책은 평론집이 아니라 인문서인데? 이러면 이 책은 '은유의 힘'이 아니라 '내 (장석주) 은유의 힘'이 되는데.....


요컨대, 책의 기획 자체가 아슬아슬하다는 말이다. 물론 지은이가 해석을 독점하고 있다는 것은 아니다. 다른 방식으로 은유를 사고하지 말라는 말은 책 어디에도 없다. 그러나 지은이가 은유의 아름다움을 독자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자뭇 감탄이 섞인 어조로 좋은 시들의 좋은 은유들을 차근차근 풀어헤쳤을 때, 나는 거기서 고등학교 교과서를 보았다. 아름다운 시들을 더 읽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기보다, 암호를 해독하듯이 시의 목을 따고 배를 가르고 뼈와 살을 발라 먹어야 했던 암담한 학창시절이 떠올랐다. 




6


더 큰 문제를 하나 지적하고 싶다. 다소 비약이 있다고 하더라도, 꼭 말하고 싶다. 25쪽이다.


월트 휘트먼은 한 아이가 풀잎을 따와서, 이것이 뭐예요? 라고 물었을 때, "내 기분의 깃발, 희망찬 초록 뭉치들로 직조된 깃발"이라고 말한다. 이 멋진 은유들이라니! (25)


난 이 부분을 보고 월트 휘트먼이 미쳤나 했다. 이 위대한 시인 양반아, 지금 당신 앞에 서 있는 그 불쌍한 아이, 표정 봤어? 아이의 손에 힘이 풀려 팔랑팔랑 떨어지고 있는 그 풀잎이 안 보이냐고. 그리고, 이 마당에 멋진 은유라굽쇼?


나는 나름 마르크스주의자지만, 시인들이 부르주아와 자본주의의 악당 군상들을 문학으로써 처단하고, 프롤레타리아들의 혁명 의식을 고취하기 위한 예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200만이 촛불을 들고 광장에 모여도, 300이 넘는 죄 없는 목숨들이 이유 없이 가라앉았더라도, 자신의 마음이 서정에 움직인다면 서정시를 쓸 수 있다고 생각한다(물론 시인들은 대부분 예민한 감수성의 소유자이므로, 그렇게 하는 것이 오히려 더 어려울 것이다.) 사회가, 세상이 당신을 호명한다고 느끼지 않았다면, 당신은 당신만의 은유를 마음껏 뽐낼 수 있다. 그러나 일단 세상이 당신을 호명했다면, 세상이 아니라 작은 아이 하나라도 당신의 이름을 부르고 당신에게 질문을 던졌다면, 그리고 그 부름과 질문을 당신이 인식했다면, 당신은 거기에 대답해야 시인이다. 


아이는 휘트먼에게 풀잎을 물었다. 그런데 휘트먼은 아이의 질문을 이용해 자신의 기분과 희망을 대답했다. 이것이 아이에게 대답이 된다고 생각한다면, 축하한다, 당신은 위험한 시인이 될 수 있다. 물음을 가볍게 뛰어넘는 자신만의 대답을 준비하는 자들, 누가 무얼 묻든 자신이 대답하고 싶은대로 대답할 수 있는 언어 능력을 보유한 자들, 능력이 권한을 준다고 착각하는 자들, 그리고 그 언어 능력을 지닌 스스로에 감탄하고 자부심을, 나아가 우월감을 느끼는 자들, 그런 자들의 마음 속에 더러운 욕망과 권위의식이 함께 깃들 때, 그들이 은유와 은유를 팔아 쟁취한 문화권력을 동원하여 애꿎은 여성들과 순수한 문청들에게 어떤 일들을 저질렀는지 우리 일반 독자들도 이제 알만큼 안다.


시인이 어떤 종류의 인간인지에 대하여 시인이 가장 잘 말할 수 있는 부분이 물론 있긴 하겠지만, 때로는 시인의 입에서 나왔으므로 시인이 아닌 이들에게는 그저 허튼소리로만 들리는 것들도 있다. "국회의원은 국민 여러분의 뜻을 잘 받들고 국민 여러분을 대신하여......" 라고 말하는 자들은 국회의원과 국회의원 워너비들 뿐이다.


시인은 시인에 대해서 말하는데, 시인이 아닌 사람들은 시인에 대해서 말하지 않는다. 이 별 것 아닌듯 보이는 틈이 우리 사회에서 시의 시간이 저물어 가는 현실과 과연 아무런 관련이 없을까?

  



7


엄청 까 놓고 이런 말로 급 마무리 하기가 웃기긴 해도, 사실 이 책은 좋은 책이다. 


이 책의 장점은, 은유로 밥벌이 할 일이 없는 사람이라면 그가 한 평생 살면서 은유에 관하여 알아야 할 모든 것들을 훌쩍 뛰어넘는 막대한 양의 정보가 함유되어 있다는 것이겠다. 그러나 이 책이 진짜 의미를 발휘하는 곳은 시인의 책장도, 시를 읽지도 쓰지도 않는 이의 책장도 아니라, '시인'은 아니지만 시를 쓰는 사람들, 항상 은유를 궁굴리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고 더 나은 은유를 찾아 시집을 뒤적이는 syo같은 만년 문청의 책상 위가 아닐까 한다.


퀄리티로 별 네 개, 이것저것 지적하면서 한 개 뺐다가, 장석주 작가를 향한 사랑에서 별 한 개가 태어나 결국 네 개로 마무리. 알라딘 세상 제일 공신력 떨어지는 Rotten Syomato 신선도 85%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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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맥(漂麥) 2017-09-08 2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살아 팅팅거리는 글빨~ 즐겁게(?) 읽었습니다. ^^

syo 2017-09-08 22:57   좋아요 0 | URL
^^ 저도 즐겁게 썼는데, 즐겁게 읽어주셨다니 더할 나위가 없네요.

독서괭 2017-09-09 1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별점이 네 개인 걸 보고 나서 읽어내려가는데, 오호! 역시~ 그렇구나! 이책은 읽지 말아야겠구나... 하다가 잠깐, 내가 별점을 잘못 봤나? 하고 다시 확인했습니다ㅋㅋ
교과서가 생각난다는 지적 때문에 역시 안 읽을 것 같네요. 알쓸신잡에서 김영하씨가 우리나라 문학교육의 문제를 지적하며 한 농담이 생각납니다. 상사의 숨은 의중을 파악해야 하는 사회생활에 대비하기 위한 교육이라면 제대로 하고 있는 거라고..

syo 2017-09-09 12:04   좋아요 0 | URL
네 ㅎㅎㅎ 저는 별을 4개 주었으나, 다른 어디 추천하고 싶은 생각은 안 드는 책이네요. 좋아하는 시인의 시집이나 몇 개 읽는 게 더 남는 장사겠습니다.

다락방 2017-09-11 1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응 격렬하게 깠지만 별 네 개 주는 마음, 저도 뭔지 알아요. 마찬가지로 격하게 사랑하지만 별을 네 개밖에 못주는 마음 같은 것도요. 그리고 정말이지 이 글은 씐나게! 읽었습니다. 고백하자면,

4번 읽으면서 ‘그만 읽을까..‘를 고민했고요,
6번 읽으면서 빡침이 몰려왔습니다.

아이가 풀잎을 물었는데 저렇게 대답하면, 아이로서는 읭???????????????? 하게 되는거지요. 자기 기분 표현할 줄만 알지 아이의 기분에 대한 공감은 떨어지는 시인이란 사람... 싫다.......

그런데 쇼님, 리뷰 재미있게 잘쓴다. 진짜 날이갈수록 글 실력이 늘어가네요!! >.<

syo 2017-09-11 11:30   좋아요 0 | URL
글실력이 는 것도 있겠으나, 원래 입진보가 제일 잘하는 게 까는 겁니다. 할줄 아는게 그거 밖에 없는 거 아닌가 싶을 정도지요. 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