꽈배기의 멋 / 꽈배기의 맛

최민석 지금 / 북스톤 / 2017


초등학교 5학년 때 처음 만나, 지금은 누가 물어봐도 가장 친하다고 대답할 수 있는 20년도 더 먹은 친구 녀석은 아무말에 매우 능하다. 서로 다른 고등학교에 입학한 이후에는 한 달에 한 번 만나기도 어려웠는데, 아니 이놈이 만날 때마다 키가 쑥쑥 자라 사람을 빡치게 만들었다. 나보다 작은 게 너의 유일무이한 매력이었는데. 키 크는 비결을 내놓지 않으면 우리의 우정은 여기 어디쯤에서 먼지가 되어 흩어질 것이라 협박했더니,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한다. 글쎄, 엄마 아빠가 같이 안 살기 시작해서 그런 것 같은데? 야! 나돈데 나는 왜 안 커. 아니 아니 그러니까, 엄마 아빠가 같이 안 살아서 밥 대신 라면을 자주 먹어서 그런 것 같은데? 야! 나 땜에 우리 동네 무파마 멸종 직전이거든? 아니 아니 그러니까, 엄마 아빠가 같이 안 살아서 밥 대신 라면을 자주 먹는데 그러다보니 김치를 많이 먹어서 그런 것 같은데? 야! 나도 김치한테 미안해서 김장이라도 배울까 고민하는 상태거든? 아니 아니 그러니까, 엄마 아빠가 같이 안 살아서 밥 대신 라면을 자주 먹는데 그러다보니 김치를 많이 먹게 되는데 그 김치에 생굴이 잔뜩 들어서......


플라타너스 이파리가 바스라져 바람에 흩날리던 가을의 어느 날, 분명히 그럴 리가 없는데도 자꾸 날이 덥다며 윗도리를 펄럭대는 그 녀석의 복근에 새겨진 선명한 王자를 발견한 syo는 그걸 못 본 척 하는데 최선을 다하는 중이었으나, 점점 더 격렬히 배를 까고 옷을 펄럭이는 녀석의 모습을 보니 아무래도 이쯤에서 언급하지 않으면 배꼽을 내 눈알에 갖다 대기라도 할 기세라 못 버티고 입을 열었다. 야, 장난 아니네 복근. 아아, 이거? 뭐 그렇지. 그게 복싱 다닌 결실이냐? 그러자 녀석인 눈을 반짝이며 대답했다. 아니 아니 그러니까, 요즘 너무 웃긴 시트콤을 보고 있는데, 계속 웃다보니까 배가 이렇게 된 것 같은데? 친구야. 니가 그놈의 복싱 배우는 중만 아니었으면, 그때부터 넌 삼겹살을 앞니로 씹어야 했거나, 네이버에 '임플란트 잘하는 곳' 따위를 검색하고 있거나 그랬을 거야.


여러분의 펀치가 syo의 모니터를 뚫고 날아오지 않는다는 확신, 어금니의 안보는 탄탄하다는 믿음에 힘입어 과장을 보탠 아무말을 하자면, 최민석의 에세이『베를린 일기』를 읽고 났더니만 선명한 복근까지는 아니더라도 윗몸 일으키기가 열다섯 개 늘었어요! 과연 복근 전문 트레이너 최민석 작가. 최신작(이라 쓰지만 묵은 에세이 모음집)『꽈배기의 맛』과『꽈배기의 멋』은 그보다는 좀 약해 일곱 개 반 정도, 레그레이즈 세 개 정도 늘려준다! 한국의 빌 브라이슨이라 불린다는데, 그만큼 웃긴다는 이야기지만 막상 글 자체의 꼴은 빌 브라이슨보다는 무라카미 하루키에 가까워 보인다. 세 스푼 더 웃긴 무라카미.




그리고 덜 웃긴 최민석


  





나의 첫 젠더 수업

김고연주 지음 / 창비 / 2017


여친이 교사라, 교육 정책이나 교육관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일이 많다. 코딩이 교육 체제 안으로 편입되어 자리를 잡으면서 우리는 학교에서 꼭 배웠으면 싶은 것들에 대해 말했다. 여친은 영화나 드라마, 라디오 프로그램과 같은 통합적인 예술 콘텐츠 제작에 관한 프로젝트식 수업을 원하고, syo는 두 과목을 원한다. 노동법과 젠더.


학교 교육의 실용성에 대한 우스개는 역사도 깊고 판본도 다양하다. 선생님, 전 문과 가고 법대 갈 건데 미적분은 어따 써요? 더 크게는, 계산기가 이렇게 좋은데 수학은 뭐하러 배워요? 같은 질문들에 다양한 대답들이 짝을 맞추어 해피엔딩부터 막장엔딩까지를 골고루 연출한다. 실용성 면에서 보면 노동법만큼 실용적인 과목이 있을까? 이 교실의 서른 명 아이 가운데 스물아홉 명은 장차 한 번은 노동자가 될 운명이다. 노동법은 창인 동시에 방패이며, 비록 그 창은 군데군데 날이 빠지고 방패는 여기저기 구멍이 숭숭 나 있지만, 그래도 맨주먹 맨발로 싸우는 것보다는 낫다.


그렇다면 젠더는 배워서 어디다 써요? 하고 물어온다면 젠더를 배워서 어디다 쓰려는 생각을 한다는 자체가 젠더 교육의 필요성을 드러내는 지점이라고 대답하고 싶다. 젠더. 누군가에게 그것은, 존재한다는 사실은 분명하게 느껴지지만 너무 흐릿하게 보여 명확히 가리켜 짚어내기 어려운 것들을 선명하게 보여주는 안경이고, 어떤 누군가에게는 평생 모르고 살아도 지장이 없는 보기 불편한 것들을 드러내 보여주는 또 다른 안경이기도 하다. 안경이 필요한 사람은 특정한 일을 하기 위해 안경을 쓰는 것이 아니라, 일단 안경을 쓰고 무엇인가를 한다. 어떤 눈은 배우지 않으면 뜨이지 않고, 어떤 배움은 이르지 않으면 이루지 못한다. 나 아닌 사람과 어우렁더우렁 살기 위해 언어와 사회규범을 배우듯, 그리고 그것들은 사용하는 게 아니라 착용하는 쪽에 가깝듯, 우리에겐 학습하기보다 장착해야 하는 과목들이 있다. 



초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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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23 14: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1-23 15: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1-23 14: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성교육’을 ‘젠더 교육’이라는 말로 대체해서 보편화되었으면 좋겠어요. ‘성교육’의 ‘성’이 뜻하는 정의가 고리타분해요.

syo 2018-01-23 15:25   좋아요 0 | URL
성교육과 젠더교육은 지향점 자체부터가 완전히 다른 별개의 교육인 것 같아요. 말을 대체할 게 아니라 교육 유형 자체를 교체해야 할 판이지요.

붉은돼지 2018-01-23 17: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건 뭐 상관없는 이야기입니다만
저는 꿀꽈배기를 즐겨먹는데요
달달하니 소생같은 초딩 입맛에 딱인데, 다만 한가지 혼자 한 봉지 쯤 다먹으면 입천장이 좀 아프다는 ....

syo 2018-01-23 17:48   좋아요 0 | URL
아..... 제가 유서 깊은 맛동산성애자 집안 출신이라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저희 쪽은 주로 과자 본체보다는 땅콩 부스러기에 입천장을 쓸리는 경우지요.

프리즘메이커 2018-01-24 04: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트콤 같은 맛깔나는 글...syo님의 일화만 따로 묶어서 읽고 싶어요

syo 2018-01-24 07:12   좋아요 0 | URL
별 것 없는 소소한 인생입니다.
프메님 오랜만이네요 ㅎ

레삭매냐 2018-01-24 15: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급 작가를 표방하는 최민석 작가가 계속해서
책을 발표하는 게 신기할 따름입니다.

그래도 수요가 있는 모양이네요 :>

초기작들을 읽었는데 신간들은 다른 책들에
치어서리.

syo 2018-01-24 16:13   좋아요 0 | URL
원래 B급이라는 것이 크진 않지만 단단한 수요를 기반으로 하니까요.

막상 전 이 작가의 소설은 한 권도 안 읽어봤습니다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