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체 슈룹 x 파투,『페미니즘의 작은 역사』를 읽다.

수잔 앨리스 왓킨스, 『하룻밤의 지식여행 : 페미니즘』이 옆에 있길래 같이 읽다.

야론 베이커스,『그래픽 평전 스피노자』를 읽다. 만화에 아주 맛들였다.

이동진 x 김중혁,『질문하는 책들』을 또 읽다.

장-다비드 나지오,『정신분석의 근본 개념 7가지』를 읽다.

마리아 미즈,『가부장제와 자본주의』에 재도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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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글이 똥이라도, 제대로 똥을 싸는 일 역시 그렇듯이, 글쓰기는 에너지 소모량이 만만치 않다. 금요일에서 토요일로 넘어가는 밤, 앉은 자리에서 3시간 30분을 쏟아넣어 겨우 A4 세 장 반짜리 글을 지어 올려 놓고는 그 길로 멘탈이 탈탈탈탈탈곡 되어 주말 내내 책이고 북플이고 거들떠도 안 보고 엎어졌다. 엎어진 김에 공부를 좀 했는데 얼쑤 잘 되었다. 하다하다 이제 읽고 쓰다 지쳐 공부로 한숨 돌리는 주객전도의 지경에 이르렀다. 잠깐만, 이거 괜찮은데?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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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인지 독후감인지 소설인지 회고록인지 뭔지 모를 글을 쓰고 나서, 한 편의 글 안에 부어 넣어야 할 상상의 적당한 함량에 대해 오래 생각했다. 이야기와 관계한다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 될 수 있다. 이야기를 기록하는 사람은 먼저 기억의 뼈대를 곧게 세우고, 그 위로 아름다움이나 유쾌함, 혹은 추함과 불쾌함을 자아내는 상상의 겉옷을 입힌다. 그리고 이야기를 지어내는 사람은 상상의 너른 마당 위에 디테일의 꽃을 피우기 위해 기억의 씨앗을 뿌린다. 그러나 이야기를 만지는 사람이 기록자든 창작자든 그와는 무관하게, 상상과 기억은 하나의 글 안에서 몸을 부딪는 가운데 종종 서로의 체액을 교환하여 물들고 변질된다. 슬픈 기억이 상상의 조각을 품고 더 슬픈 모습으로 치환되어 당당히 기억의 자리에 뿌리를 내린다. 상상은 기억이 걸어놓은 목줄 때문에 한없이 자유로웠을 자신의 갈 길로 날아가지 못하고 비틀거리지만 제 몸이 불구가 되었는지도 깨닫지 못한다. 그래서 글은 위험하다. 상상하는 자에게 기억이 무겁고, 기억하는 자에게 상상이 무서우므로, 한 편의 글을 쓰고 나면, 그 글을 통해 우리는 기억과 상상을 모두 다친다. 아팠던 것보다 아팠던 기억이 더 커지면 자신이 더 불쌍해진다. 자신에게 불쌍한 사람의 멍에를 씌우고 나면 상상은 더 검어진다. 글을 쓰면 쓸수록, 나는 그 악순환의 늪에 점점 더 깊이 몸을 담그는 꼴이 되는 것이다. 한 편의 글을 마치고 나면, 그 글의 가치와 함량에 무관하게, 나는 그 글을 쓰기 전의 나와는 다른 사람이다.




3


연말에 상경할 예정이다. 고시는 아니지만 준고시 정도로는 쳐 주는 공부를 시작했는데, 기왕 그럴거면 이미 다 죽어가지만 그래도 여전히 고시의 성지인 신림으로 가야겠다는 희한한 의무감이 생겼다. 바득바득 긁어 모으고 손 벌려도 미워하지 않을 이들에게만 손을 좀 벌리면 작은 원룸 하나 전세로 얻는 일은 어려운 일 아니겠으나, 그냥 고시원이 좋겠다. 좁은 방에 쳐박혀 묵묵히 공부하는 사람의 자리로 돌아가는 것도 오랜만이라 반갑다. 그 공간이야말로 syo를 지금의 syo로 배양해 준 요람이었다. 뭐 그때나 지금이나 별볼일 없긴 매한가지지만.


이번에는 슬픔이 따라오지 않았으면 싶다. 이제 벽하고 대화를 주고 받는 일은 별로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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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전차로, 이제 확실히 책을 줄여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 꼬박꼬박 도서관 갈 일도 없고, 서울 도서관은 대구와 달리 야박하게 6권, 7권 요렇게 빌려주므로, 이 참에 두꺼운 놈으로 6권 빌려 3주 내내 읽고 반납하는 깊이 있는 독서의 시간을 가져야겠다. 그래서 뭘 내려 놓고 뭘 그대로 쥐고 있어야 하나 고민을 해 본다. 


아무래도 페미니즘 책들은 포기하기가 어렵겠다. 다정한 책벗과 약속한 것도 있고. 일단 요정도로.



라캉은 좀 읽을 줄 알아야겠다. 라캉 이거 어디 쓰겠노, 했지만 막상 이거 못 알아먹으니까 여기저기서 턱턱 걸린다. 심지어 페미니즘 책 읽을 때도. 요런 것들을 갖추어 놓았다. 하나도 못 읽지만.



철학은 지금처럼 중구난방으로 읽는 습관을 버리고 한 명씩 천천히 해보기로 하자. 스피노자부터 하면 좋겠다. 스피노자는 요런 애들을 들고 있다.




그럼, 잠시만 안녕할 친구들은, 뇌과학 안녕, 진화학 안녕, 루쉰 안녕, 러시아혁명사 안녕, 건축 안녕, 미술사 안녕, 소설 안녕, 정치학 안녕, 그리고 억, 마르.....마르크스 안녕.....어흑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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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괭 2017-12-18 21: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신림동... 조심하세요. 놀거리가 어마어마하게 싼 신림동.. syo님이야 읽고 쓰다 지쳐 공부로 숨돌리시는 분이니 그런 유혹에 빠지시진 않겠지만요^^ 적게 읽으시겠다는 소식이 자못 아쉽지만 그만큼 깊이있는 서평으로 돌아오실 거라 믿쑵니다~~ 화이팅!!

syo 2017-12-18 21:31   좋아요 0 | URL
아니, 그렇단 말입니까 ㅎㅎㅎㅎㅎ
잘 염두에 두겠습니다^^ 후후후..

다락방 2017-12-18 2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설은 안녕 안하면 안될까요 ㅠㅠ

syo 2017-12-18 22:01   좋아요 0 | URL
잠시만 안녕이에요.... 저 오늘 도서관에서 무려 루시 바턴을 애써 무시하고 고개를 돌렸다는ㅠ

다락방 2017-12-18 22:43   좋아요 0 | URL
아 루시 바턴 ㅜㅜ 나도 아직 안샀는데 ㅜㅜ

2017-12-18 23: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2-19 06: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chaeg 2017-12-18 2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상에.. 6권이 야박하다니.. 대구는 몇 권을 빌릴 수 있는 것입니까!?

syo 2017-12-19 06:37   좋아요 0 | URL
도서관마다 10권씩해서 총 20권이요!
인간의 손가락 발가락이 각 10개끽 20개라서 그런 거 아닐까요?!

2017-12-19 11: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2-19 11: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2-19 14: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2-19 16: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2-19 16: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2-19 16: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2-19 23: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AgalmA 2017-12-19 21: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신림동에 알라딘 중고서점 있어요. 앉아서 책 읽기도 좋음요. 도서관 귀찮으심 거기 가세요ㅋ 빨리 읽으시니 syo 님에겐 도서관과 비슷하지 않을까 싶구만요ㅋ

syo 2017-12-19 22:14   좋아요 0 | URL
망삘.....ㅋ
사실은 이미 그 근처의 모든 피자 돈가스 치킨 햄버거 가게의 위치를 검색하면서 알라딘도 함께 위치파악을 마쳤었드랬지요 ㅎㅎ

chaeg 2017-12-19 2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 편의 글을 마치고 나면, 그 글의 가치와 함량에 무관하게, 나는 그 글을 쓰기 전의 나와는 다른 사람이다. - 여운이 남는 구절입니다..

syo 2017-12-20 06:32   좋아요 0 | URL
말은 이래놓고 막상 글은 아무렇게나 씁니다
...

2017-12-20 15:16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