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내가 생애 최초로 쓴 글은 시였다. 국민학교 3학년 때인지, 초등학교 4학년 때인지 기억은 안 나지만 교내 백일장에 나가 금상을 먹고 공책 일곱 권을 획득했다. 기억 나는 부분은, 시제는 가을이었고, 내가 평생 처음 쓴 글의 첫 구절은 "빨강빨강 산에는/빨강 비가 내렸나" 였다는 것. 4343 리듬에 썩 읽는 맛이 있는 발음이, 지금 보아도 썩 귀여운 도입부라고 하겠다.

 

이 세상 중 2의 사분의 삼은 반드시 시를 쓴다. 시는 중2병의 가장 대중적인 증상이다. "내 안의 흑염룡이 날뛰고 있어" 라는 발언을 현실 세계에서 듣는다면, 아 저 놈이 지금 미쳤거나 시를 읊었거니, 라고 할밖에는 달리 생각할 도리가 없다. 나도 중2에 시를 썼다. 공책이 풍년이었다. 기억할 만한 작품은 하나도 없었으므로 기억은 하나도 나지 않는다. 

 

중2병은 완치되지 않는다. 고 2때쯤에는 네이버 블로그를 열어 본격적으로 시를 올리기 시작했다. 어떻게 알았는지 가끔 친구들이 찾아와 칭찬의 댓글을 달아주곤 했다. 쓴 놈이나 읽은 놈이나 다들 미친 시절이었다. 대학에 들어가도 세상은 어지러웠지만 나는 내 시에 집중하느라 세상에 도통 관심을 두지를 않았다. 말은 바로 해야지. 내 시가 세상보다 더 어지러웠기 때문에 도통 세상에 관심을 둘 여유가 없었다. 쓰는 손보다 읽는 눈이 더 빨리 성장하면서, 내 눈에 내 시는 점차 구려졌다. 구려서 도저히 참고 봐주기가 어려웠다. 때마침 이명박이 대통령이 되었고 때는 이때다 싶었다. 시국에는 장님이었으면서도 마치 시국을 비관하는마냥 재빨리 절필을 선언했다. 아, 이명박이 대통령이 되다니. 밝은 세상이 올 때까지 다시는 붓을 들지 않으리. 그러나 세상은 경제대통령의 출현에 들떠 내 절필에 도통 관심을 두지 않았다. 복수심 때문이랄지 나 또한 경제대통령과 그의 전공이라는 경제에까지 관심을 두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나는 시를 잃고 경제력도 잃었다. 다른 사람들은 그 중 하나를 포기하면 나머지 하나는 얻던데.

 

 

2

 

생각의 전환이 중요했다. 시는 쓰는 게 아니라 읽는 것이야. 그 즉시 스스로의 비루함이 뒤로 물러나고 다채로운 세상이 전면에 모습을 드러냈다. 블로그에는 시의 시절이 가고 일기의 계절이 왔다. 시에 비하면 일기는 의외로 호평이었다. 천직은 일기스트였나, 잠시잠깐 나는 오만하고 방자했으나 얼마 안 가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깨달음은 내부에서 저절로 왔다. 일기는 본시 자신을 돌아보는 글이므로, 제대로 쓰기만 한다면 쓰면 쓸수록 자신을 더 잘 알게 된다. 그리고 별 생각없이 쓰다가도 생각하게 된다. 오늘은 짜장면을 먹었다->짜장면은 맛있다->내 입에 맛있는 것만 좋아하지 마라->인종차별은 나쁘다(!?) 이런 개똥논리라도 일단 쓰고 나면 인종차별에서 최소 한 뼘은 더 멀어지는 그런 놀라운 매커니즘이 일기에는 숨어있다. 그야말로 매직이었다. 물론 일기에 써 놓은 그만큼의 좋은 사람이 되지는 못했지만, 쓰지 않았더라면 말도 못하게 답 없는 인간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마침내 내게 쓰기란, 가끔씩 세상이 투척하는 똥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골프우산과 섬유탈취제가 된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아직 선명하게 드러나지는 않지만, 조금씩 나의, 나만의 언어를 만들어 갈 것이다.

 

 

 

열심히 잘 쓰려고 노력해야 하지만 그 '열심'이 어떤 가치를 낳는가를 물어야 한다. 밤이고 낮이고 국토를 삽질하는 게 발전은 아니듯, 자신을 속이는 글, 본성을 억압하는 글, 약한 것을 무시하는 글, 진실한 가치를 낳지 못하는 글은 열심히 쓸수록 위험하다. 우리 삶이 불안정해지고 세상이 더 큰 불행으로 나아갈 때 글쓰기는 자꾸만 달아나는 나의 삶에 말 걸고, 사물의 참모습을 붙잡고, 살아 있는 것들을 살게 하고, 인간의 존엄을 사유하는 수단이어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_은유, 『글쓰기의 최전선』

 

 

3

 

 

 옛날, 옛날, 옛날

 (뭐든지 세 번을 부르면, 내 앞에 와 있는 느낌)

 

 어둠을 반으로 가르면

 그게 내 일곱살 때 음부 모양

 정확하고 아름다운 반달이 양쪽에 기대어 있고

 아무도 들어오려 하지 않았지

 아름다운 틈이었으니까

 

 연필을 물고 담배 피우는 흉내를 내다

 등허리를 쩍, 소리 나게 맞았고

 목구멍에 연필이 박혀 죽을 뻔했지 여러번

 살아남은 연필 끝에서 죽은 지렁이들이 튀어나와

 연기처럼 흐르다 박혔고

 그렇게 글자를 배웠지

 

 꿈, 사랑, 희망은 내가 외운 표음문자

 습기, 죄의식, 겨우 되찾은 목소리, 가느다란 시는

 내가 체득한 시간의 성격

 

 나는 종종 큰 보자기에 싸여 버려졌고

 쉽게 들통났고,

 맹랑했지

 (끝내 버려지는 데 실패했으니까)

 

 어느 여름 옥상에서 어떤 감정을 알게 됐는데

 떠난 사람의 길고, 축축한, 잠옷이

 펄럭이는 걸 보았지

 

 사랑이 길어져 극단까지 밀고 가다

 견디지 못하면

 피가 솟구치다 한꺼번에

 증발하는구나

 

 후에 책상 위에서 하는 몽정이 시,라고 생각했다가

 나중엔 그의 얼굴을 감싼 채 그늘로 밀려나는 게

 사랑, 이라고 믿었지만

 

 일곱살 옥상에서 본 펄럭이는 잠옷만큼은

 무엇도 더 슬프지 않았고

 

 그때부터 나는 본격적으로,

 모든 면에서 가난해졌다

 

_ 박연준,「베누스 푸디카」,『베누스 푸디카』

 

시인의 글자를 시라고 하자. 시는 아픔에서 왔다. 시는 꿈, 사랑, 희망이 한낱 소리일 뿐이며 그 의미는 겪어 알 수 없기 때문에 그저 외워야 한다는 진실을 가르쳐 준다. 그 진실은 슬프지 않다. 슬픔은 떠난 사람이 잠옷처럼 남기고 간다. 사랑의 의미자리를 채우기 위해서 피를 다 말렸으나 사랑은 그저 그늘로 밀어내기만 할 뿐이다. 하지만 이미 슬픔을 알았기 때문에 더 슬퍼지지는 않는다. 이미 슬픔을 알아버렸기 때문에 더 알아갈 것이 없다. 가진 슬픔을 헐어내며 살아야 한다. 

 

시인에게 쓴다는 것은 이렇게도 아리는 일일까. 앞으로도 꽤 오랫동안 시를 쓰지 못할 것 같다.

 

 

 

4

 

 

 

 내가 가족이다

 나는 '그러므로'와 화목하다. 어디서든 자세하게 앉는다. 하지만

 

 방파제로 운다

 주문진과 바다 하지는 않았다. 아무도 몰래는 왜 자꾸와 함께 닫혀야 했나

 

 당신의 열린 핸드백처럼

 

 그것은 립스틱과 핸드백에 담긴 한꺼번이었을까. 이제는 더이상 겨울과 걷지 않을 것이다. 겨울과 걷지 않는다

 

 내가 산책이다

 빨리를 당신과 함께 떠나보내야 한다. 아무도 몰래

 

 나는 어떻게 알았나

 

 항구가 모래사장하지 않았다. 햇빛이

 폭풍우와 아니었다. 무작정과 도무지를 당신과 함께 떠나보내야 한다

 

 어떤 자작나무에서 아무도 몰래 쏟아지는 하얗다

 

 당신아, 나는 어떻게 알았다. 그리고와 함께 다시 당신을 만나러 간다.

 

_ 한인준,「종언_없」,『아름다운 그런데』

 

시인은 말을 어지럽히려 쓴다. 읽힐 듯 읽히지 않는 시를 짓는다. 우리가 알아채지 못하는 의미와 의미를 알아채지 못하는 우리가 섞인다. 원래 누구의 말을 다른 누군가 다 알 수는 없다. 서로의 말을 가질 수 있을 거라는 무모한 자신감을 버려야 한다고 시인이 말한다. 나는 당신이 어지럽혀 놓은 자리를 정리해야 하나, 아니면 내 속에 정리되어 있는 당신을 어지럽혀야 하나 고민에 빠진다. 그것은 오래 해야 하는 고민이다. 끝나지 않을 것 같다. 오래 시를 쓰지 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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