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라캉 입문서만 들입다 파다가 배운 것

 

 

1

 

타인의 욕망이 필요하다.

 

 

 

2

 

요즘처럼 이래저래 생각이 많은 날들이 지나고 나면, 조금쯤은 변해 있곤 했다. 소소하고 시시한 변화들이지만, 어쨌든 그런 시간들이 한 움큼씩 모이고 쌓여 천천히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거라고 생각했다. 순진하게도. 참 어리고 어리석을 적 이야기다.

 


 

3

 

어제보다 오늘, 오늘보다 내일, 그저 딱 한 뼘만 더 자라고 싶다는 고백 속에 들어있는 작은 욕심은 참 순박하고 귀여워, 만나면 머리를 쓱쓱 쓰다듬거나 어깨를 도닥여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너는 아직 훌륭하구나, 너는 아직 단단하구나, 너는 아직 반짝반짝하구나.

 

 

 

4

 

하지만 그게 너의 말이 아니라 나의 말이 되면 나는 그저 아슴아슴할 뿐이다. 좋은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확인할 방법이 그저 좋은 사람이 된 것 같다는 느낌밖에 없다면, 얼마나 무서운 일일까?

 

내가 계단을 오를 때 내 눈도 거길 함께 오르는 법이다. 어제보다 오늘의 내가 더 나은 사람이 아닐까 싶을 때, 나는 네 가지 가능성을 생각한다. 비유하자면, 하나, 내 눈은 한 뼘 나아갔고 내 발은 두 뼘 나아갔다. , 내 눈은 멈춰있고 내 발이 한 뼘 나아갔다. , 내 발은 멈춰 있는데 내 눈이 한 뼘 물러났다. 그리고 최악의 경우, , 내 발이 한 뼘 물러났는데 내 눈은 두 뼘 물러났다. 하나이거나 하다못해 둘만 되도 좋겠는데, 알고 보면 셋일 수도 있고, 심지어 넷이 아니라는 법도 없잖아.

 

 

 

5

 

라캉이 인간은 타인의 욕망을 욕망한다는 말을 했다고 알려져 있다. 실제로는 그저 타인이라고 하지 않고 대타자/대문자 타자라고 했던 것이 후려쳐 퍼져 있는 건데, 그 뜻을 새겨 생각하는 것이 점점 의미를 더해가는 것 같다. 오늘의 짧은 앎일 뿐이라 언제든 정정할 일이 생길지도 모르겠지만, 오늘의 입장에서 단언컨대, 저 말은 결코 그러므로 남의 시선이 강요하는 것들에서 벗어나 진짜 내가 바라는 것을 찾고 추구하자로 바꿔쓸 수 있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인간은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는 것이 (그나마) 정상적이고(그 경우 신경증에 걸려있다), 그렇지 않으면 망한다(그 경우 정신병이나 도착증에 걸린다).

 

세상의 어떤 도 태어나면서부터 우주비행사가 되고 싶은 욕망을 가지고 태어나지 않는다. 아기 때 주어진 다양한 장난감들(타인의 욕망이다) 중에 우주선 장난감(타인의 욕망이다)에 유독 흥미를 가진다. 낮보다 밤이 좋고(타인의 욕망이다) 밤이면 아버지와 함께 하늘을 보며(타인의 욕망이다) 별자리(타인의 욕망이다)를 가리키고 그 속에 숨어 있는 이야기(타인의 욕망이다)를 듣는 것을 좋아했다. 각종 발사체(타인의 욕망이다)가 우주로 쏘아 올려지는(타인의 욕망이다) 장면에 심장이 뛰고, 우주를 다녀온 사람(타인의 욕망이다)의 인생에 관한 책(타인의 욕망이다), 우주에 대한 지식(타인의 욕망이다)이 들어 있는 책(타인의 욕망이다)을 읽느라 잠 못 이루는 밤이 이어진다. 그리고 어느 날 생각한다, 나는 우주인이 될 거야. 그게 내 꿈(꿈이라는 용어, 꿈을 가져야 한다는 관념조차 타인의 욕망이다)이야. 미안한데 아이야, 그건 타인의 욕망이란다.

 

어색하게 읽힌다면, 그것은 철학적 용어인 라캉의 대타자를 일상용어인 타인으로 무지막지하게 치환했기 때문에 벌어진 현상이다. 실제 대타자는 내게 특정 생각을 강요하는 타인이나, 다수가 유익하다고 믿는 단 하나의 가치관을 의미하는 용어가 아닌 것 같다(물론 그것들을 다 포함하고 있음에도). 라캉에 대한 긴 이야기는 하고 싶지도 않고 할 자격도 없어서 멈추겠으나, 어쨌든 라캉의 저 말을 진짜로 네가 바라는 걸 하라는 단순한 자기계발적 조언으로 치환하는 것은 굉장한 기만이고, 그 자체가 누군가의 욕망이다. 나의 욕망은 나의 것이라는 이유만으로(실제로 그렇지도 않다) 올바르고 자연스러운 것, 남의 욕망을 나쁘고 억지스러운 것으로 치환하는 이분법적 사고다. 네 욕망을 결코 너 혼자 만들 수 없다는 말을 어떻게 저렇게 땡겨 쓰나. 그냥 라캉이 그랬다는 말 같은 거 하지 않고 네가 바라는 일을 하라라고 주장하면 충분할 것을, 왜 전문가의 권위를 빌려오려고(타인의 욕망이다), 전문가의 말을(전문가의 욕망이다) 마음대로 조리(이게 당신의 욕망인가)하는 것일까.

 

그리고 무분별한 의 강조는 나는 나라는 생각을 불필요할 정도로 강화한다. 나는 내가 가장 잘 안다는 미친 생각을 머릿속에 심어 넣는다. 나는 결코 나를 속속들이 알 수가 없다. 나 말고는 누구도 모르는 내가 분명히 존재하지만, 세상 모든 사람은 다 알아도 나이기 때문에 결코 나만큼은 알 수 없는 나도 있다. 그래서 우리는 거울이 필요하다. 내 마음 바깥에 있는 거울이 필요하다. 우리가 조심해야 할 것이 있다면, 그건 그저 모든 거울이 거울을 대주는 사람의 욕망을 포함한다는 피치 못할 사실이다. 그들은 그들의 욕망에 따라 거울의 각도와 곡면, 조명의 조도를 조절하여 나를 비춘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그 거울을 결코 버릴 수 없는 것도 욕망 때문이다. 나 역시 내 이미지를 받아들면 나의 욕망(이라고 믿고 있는 또 다른 타인의 욕망)에 따라 부지불식간에 포토샵을 가동한다. 사실 자아포토샵은 의식의 부팅과 동시에 자동으로 실행되며 심지어 '종료하기'메뉴도 없는 아주 괴랄한 어플리케이션이다.....

 

 

 

6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욕심은 좌절을 수반할수록 건강해지는 것 같다. 아직 괜찮은 사람이 되지 못해서 짐작만 할 뿐이지만, 괜찮은 사람일수록 자기가 진짜 괜찮은 사람이라고 느끼기가 어렵지는 않을까? 이성적인 사람일수록 자기 이성을 미친 듯이 의심하고, 합리적인 사람일수록 나야말로 합리성의 기준이라는 생각이 얼마나 비합리적인 것인지 잘 인식하는 것처럼. 내가 어제보다 조금 더 망한 것 같다고 느끼는 경험을 가끔씩이나마 하지 않고, 그저 순탄하게 앞으로 나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면, 주변 풍경을 둘러봐야 한다. 내가 주조할 수 있는 모든 나의 욕망이 실제로는 이런 저런 타인의 욕망을 용광로에 넣고 녹여 만들어 낸 작품의 카탈로그 안에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 타인을 더 많이, 더 넓게, 더 깊은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야말로 내 욕망을 내 욕망답게 만드는 일임을 알게 된다.

 

 


7

 

대체 왜 글이 이런 식으로 마무리되는지 모르겠다.....  촉촉갬성으로 쓰기 시작했는데 어째서 분노로 끝나는가.

 


 

  

 

--- 읽은 ---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 / 박준 지음

나의 사랑, 매기 / 김금희 지음

지하에서 쓴 수기 /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 김근식 옮김

푸코 & 하버마스 : 광기의 시대, 소통의 이성 / 하상복 지음

 

 

--- 읽는 ---

푸코, 바르트, 레비스트로스, 라캉 쉽게 읽기 / 우치다 타츠루 지음 / 이경덕 옮김

흐름으로 읽는 프랑스 현대사상사 / 오카모토 유이치로 지음 / 차은정 옮김

How to read 푸코 / 요하나 옥살라 지음 / 홍은영 옮김

수학의 감각 / 박병하 지음

캘리번과 마녀 / 실비아 페데리치 지음 / 황성원, 김민철 옮김

자기 앞의 생 / 에밀 아자르 지음 / 마누엘레 피오르 그림 / 용경식 옮김

오래된 연장통 / 전중환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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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물고기 2019-02-16 17: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라캉 에크리가 나왔는데 가격이 무시무시하지만 주석이 없다고 하니 더 무서워서 고민중이네요 ㅎ

syo 2019-02-16 18:02   좋아요 0 | URL
저 같은 경우는, 제 비루한 지력으로는 어차피 죽을 때까지 에크리를 읽을 수 없다는 것을 이미 파악하였기 때문에 가격이건 주석이건 전혀 고민거리가 되지 않았어요 ㅎㅎㅎㅎㅎ 안사안봐 랄지요.....

카알벨루치 2019-02-16 2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철학적 감수성, 감수성적 철학의 분위기... 자아포토샵 이란 말이 멋지네요

syo 2019-02-16 20:48   좋아요 1 | URL
보들보들한 걸 쓰려고 시작했는데 왜 저렇게 성토 분위기가 되어버렸는지 모르겠네요, 아아 ㅎㅎㅎ

AgalmA 2019-02-17 18: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주비행사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닐 암스트롱은 그런 대타자 욕망이 없었어요. 어려서부터 비행기 장난감을 좋아했다고 하더군요. 부모님이 인형이나 리본을 사줬으면 달랐을거다 해야 하나요ㅎ? 머리가 좋았고 엔지니어 일을 하다보니 비행기 조종사도 되었고 그게 또 당시 추진중인 우주 비행 일로까지 엮이게 된. 그가 하던 일들은 대부분 초창기라 대타자 모델이 없었죠. 내성적인 성격으로 치밀하고 냉정한 사고를 했는데 강한 내적 통제력이 그가 성공적인 우주비행사가 된 역할이 컸더군요.
그러니까 환경적인 여러 요인과 그의 성격이 그 사람을 이끈 것이기도 합니다.


정신분석에서 ‘타인‘을 끌어들여 너무 이분법적 분석만 하는 것도 문제입니다. 인간이 인간 사이에 있으니 그게 가장 큰 요인이긴 합니다만. 프로이트도 그런 한계를 느껴 말년에 문명, 원형(에로스와 타나토스) 같은 것도 고민한 것이었죠.
안 그래도 라캉 <에크리> 번역이 나와서 궁금이 요동쳐서 곧 살 거 같긴한데 이러한 제반의 한계를 그 책을 통해 알 수 있었음 싶네요.

syo 2019-02-17 18:04   좋아요 0 | URL
사실 제가 이런 글을 쓸만큼 대타자라는 것에 대해 똑바로 알고 있지는 않다보니, 잘은 모르겠지만요. ˝우주비행사˝라는 자리 자체가 어떤 국가/사회/과학계의 커다란 욕망의 소산이라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요?

닐 암스트롱이 처음부터는 아니더라도 어느 시점부터는 ‘그렇다면 우주비행사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품었다면, 그 생각의 근거나 이유, 그로 하여금 최종적으로 우주비행사가 되고 싶다는 마음이 들도록 만든 ‘우주비행사‘라는 자리의 이상적인 형상, 우주비행사가 되면 누릴 수 있는 경험에 대한 예측 같은 것들을 형성하는데 대타자의 개입이 없다고 할 수 있으려나요.

그나저나 저는 에크리를 읽고 에크리를 더 모르게 될까봐 읽지를 못하겠어요.....

AgalmA 2019-02-17 18:21   좋아요 0 | URL
<퍼스트맨>을 읽어보면 그가 우주비행사가 된 건 그의 유능함이 마침 잘 맞았단 생각이 들더군요. 국가/사회/과학계의 욕망이 그를 원해서 그렇게 된 거다라고 결과론적으로는 말할 수 있지만, 그가 ‘우주비행사 되기‘라는 욕망에 사로잡혀 우주비행사가 됐다고는 보기 어렵더군요. 그 프로젝트 때문에 죽어나간 사람이 수백명이었고 수시로 친구와 동료들이 죽어나가는 걸 보면서 고작 그런 욕망으로 그가 그 일을 한 건 아녔죠. 나는 예외다! 라고 생각한 오만한 인간도 아녔고요. 달 착륙 첫 인간이라는 타이틀을 매우 불편해하며 우주 비행 일 은퇴 이후 각종 스포트라이트와 인터뷰를 피한 것을 보더라도 그에겐 과시적 욕망이 없었어요. 그는 당시 그 일 자체에 굉장히 몰두해 있었어요. 우주비행사가 되는 일이 아니라 그 일을 해나가는 과정을.

syo 2019-02-17 18:48   좋아요 1 | URL
일단 닐 암스트롱에 대해 비난하거나 비판하거나 할 생각이 하나도 없다는 말씀을 드리고 시작해야 할 것 같아요. 전 제 욕망이 타인의 욕망이라는 사실 자체가 비난받거나 계도되어야 할 상태가 아니라고 생각하구요. 닐 암스트롱이 ‘과시적 욕망‘을 가졌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아갈마님께서 지금 생각하시는 ‘욕망‘과 제가 생각하고 있는 ‘욕망‘이 좀 다른 것 같아요. 저는 뭔가 하거나 되거나 가지기를 ‘원하게‘ 되는 정서 자체를 이야기하고 있는데요, 닐 암스트롱이 어떤 동기를 가지고 우주비행사가 되기를 원했는지와 관련없이 ‘우주비행사가 되자‘는 생각을 품은 자체를 욕망이라고 보았어요. 그리고 그가 그 욕망을 품은 시점이 언제부터인지와 무관하게 욕망이 발생한 순간 그 욕망이 대타자의 욕망에 포획되어 있는 상태로 태어났다는 말을 하고 싶은 거구요 ㅎㅎㅎ

국가/사회/과학계가 최종적으로 그를 원한것도 사실이겠지만요, 제가 말한 국가/사회/과학계의 욕망은 이를테면 우주 개발에서 러시아를 이기고 싶어한 미국의 욕망, 인간의 위대함을 확인하고 싶어하는 사회의 욕망, 연구의 영역을 우주로 넓히고 싶어하는 과학계의 욕망 같은 것이었어요. 그런 욕망들이 ‘우주비행사‘가 어떤 일을 해야하며, 어떤 의미이고, 어떠한 차원에서 일종의 ‘위대함‘을 대표하는지 등등, 자기들의 욕망에 부합하도록 우주비행사에 대한 기본적 상을 형성했다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닐 암스트롱이 우주비행사가 되겠다는 마음을 품은 시점에, 우주비행사가 어떤 것일지에 대한 이미지를 형성하는 데 그런 국가/사회/과학의 욕망이 작용한 것이고요.

닐 암스트롱 개인에 대해서 저는 하나도 몰라요. 아무래도 읽어보신 아갈마님의 말씀이 맞겠지요?? 하지만 아갈마님께서 말씀하신 데 제가 100퍼센트 동의한다고 해서 제가 말씀드리는 부분에 대한 결론이 달라질 이유가 없는 것 같아요....

AgalmA 2019-02-17 18: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닐 암스트롱을 옹호하려는 입장에서 글을 쓴 게 아닙니다.
현대사회는 인간이 ‘타인의 욕망‘을 통해 많은 부분 자신을 형성한다는 것에 전면적인 반박을 하긴 어렵죠. 자본주의나 자유주의, 민주주의 그런 것들도 우리가 배운 것에서 비롯된 것이니까요.
제가 말하고 싶은 논지는 외부의 요인으로써만 자아를 결정론적으로 판단할 때 간과할 것에 대해서 말하고 싶은 겁니다. 많은 것을 ‘욕망‘으로 포괄할 때 그게 어찌 보면 인간을 기계론적으로 설명할 위험이 있어서요. 구조주의가 그 때문에 비판당하는 것 아닙니까.

syo 2019-02-17 19:03   좋아요 1 | URL
그러게요. 구조주의의 함정을 극복하는 방법에 대해서 많이 생각해 보아야겠습니다. 제가 그런다고 뭘 알게 될 것 같진 않지만요 ㅎㅎㅎㅎ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일년 쯤 뒤에 이 글을 다시 보면......ㅎㅎㅎ

반유행열반인 2019-02-17 2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가 욕망하고 있는 것들이 실은 누구의 욕망인지 궁금해지네요.

syo 2019-02-17 20:39   좋아요 1 | URL
제 생각엔 아마도 끝내 그걸 알 수가 없을 것 같아요. 예를 들어 부모가 어릴적부터 강요해서 변호사가 되겠다는 마음을 품고 변호사가 된 사람이 있다고 해도, 그 변호사의 욕망은 단지 부모 욕망의 복제품이 아닐 거예요. 언어, 윤리, 제도, 감정.... 수두룩빽빽한 욕망의 원천들이 총출동해서 내 욕망을 빚는거고, ‘변호사‘라고 후려쳐서 따지면 부모의 욕망이 내 욕망인 것 같지만 기실 그건 언어적 착각이지요.....

그래서 저는 도리어 마음이 편해요ㅎ

반유행열반인 2019-02-17 21:37   좋아요 1 | URL
그쵸...누구 밑에서 어떤 환경에서 자랄지는 순전히 운과 우연이 결정하고 그 외의 것들은 내가 선택하거나 선택하지 않은 결과일테니...그저 짐작만 할 수 있겠죠. (바람들을 계속 집요하게 파고들지 내려 놓을지는 순전히 내 탓!!)

syo 2019-02-17 23:12   좋아요 1 | URL
자유의지랄지, 확고한 자아랄지 이런 것들에 대해 제가 너무 경기하는 걸지도 모르겠어요 ㅎㅎㅎ 아직 더 많이 읽어봐야겠고, 더 많이 살아봐야겠어요. 그래봐야 뭐 크게 깨친 인간이 될 것 같지는 않지만서도....

페크(pek0501) 2019-02-17 2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간은 저를 포함해 이기적인 것 같아요. 인간은 저를 포함해 비합리적이고 어리석은 것 같아요. 인간의 기억력은 저를 포함해 믿을 수가 없어요. 인간은 저를 포함해 자기 자신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 같아요... 등등 이렇게 말하면 되는 거지요?

<지하에서 쓴 수기>는 참신한 작품으로 읽으며 반해 버렸던 경험이 있어서 재독할 책 10위 안에 드는 책입니당~~.

언제나 세상에는 책이 아주 많이 많이 있다는 것을 상기시켜 주시는 syo 님!!!

syo 2019-02-18 09:18   좋아요 0 | URL
잘 모르겠어요. 그냥 저는 언제나 저를 잘 모르겠고, 제 생각이 맞는지도 항상 확신이 없는데, 다른 사람들은 자기 자신에 대해 일정 정도 확신을 갖고 있는 것 같아 보여서 그저 샘이 났던 걸지도요? ㅎㅎㅎㅎ

몇년 전에 열린책들 세계문학전집 판으로 읽었을 때 정말 너무 지루하고 힘들게 읽어냈거든요. 금방 다 까먹었구요. 이번에는 창비로 읽었는데, 다른 번역이라 그런건지 그 사이 제가 좀 더 자란건지, 이번에는 읽을만하더라구요. 페크님의 말씀에 공감할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ㅎㅎㅎㅎ

독서괭 2019-02-18 07: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생각할 거리를 많이 주는 글이네요.
괜찮은 사람일수록 자기가 진짜 괜찮은 사람이라고 느끼기가 어렵다는 말에 매우 공감합니다. 직장에서 보면 진짜 괜찮은 분들은 나는 그렇게 괜찮은 사람이 아니라며 좋은 자리를 마다하고 정작 욕심과 자만만 가득한 사람이 그 자리를 꿰차는 경우가 종종 있어서요..ㅠ

syo 2019-02-18 09:22   좋아요 0 | URL
인간의 일이라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을 수는 없겠지만, 조금이라도 완벽 쪽으로 가까이 가기 위해 처음 변해야 할 것도 역시 인간의 마음에 관한 것이지 않을까 싶어요. 자기에 대한 과도한 확신이나 불신이나 죄다 타인을 더 들여다보면서 고쳐나갈 수 있을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