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름뱅이

 

 

날이 춥다. 슬픈 노래 들으면서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 이불 속에 숨어서 귤 까먹고, 침대 위에 흘릴까 조심조심 커피나 홀짝이고 싶다. 책 같은 건 다 집어 던지고는 그저 눈 꼭 감고 누워있고 싶다. 누가 듣지 못하게 방문을 꼭 닫고는, 내가 얼마나 다양한 톤과 표정으로 사랑해하고 말할 수 있는지 세어나 보면서. 얼굴 붉히고 이불이나 쾅쾅 발로 차면서. 세상에서 가장 귀찮은 표정으로 뒹굴고 싶다.

 

그러고 싶지만 그래도 읽은 게 있으니 또 기록은 한다이런 게 다 의미가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정말 그렇다면 언젠가는 그 의미를 알게 되면 좋겠다.


 

 얼마 전 동갑내기 피아니스트와 함께 시와 음악이 있는 콜라보 공연을 했다.

 나 다음 주에 리사이틀인데 아직도 연습을 못 하고 있어.

 차를 마시다가 그 친구가 문득 한숨을 쉬며 말했다.

 매일 치잖아그럼 연습 아니야?

 그건 레슨이고공연에 칠 곡들은 몇 달 전부터 연습해야 해이제는 어느 정도 스킬이나 방법을 알고 있잖아이렇게 저렇게 하면 되겠구나알고 있으니까 요령만 늘어서 더 피할 수 없을 때 할 수 없이 피아노 앞에 앉아예전엔 서툴고 거칠더라도 진심을 담아 피아노를 쳤거든매번 그래야 했거든그런데 그 마음이 한 번씩 사라져.

 나는 창밖으로 쏟아지는 은행잎에 시선을 두고 대답했다.

 모든 걸 쏟아부어도 계속 가난하고 외로우니까.

 우리는 좀 지친 게 아닐까.

손미나는 이렇게 살고 있습니다이상합니까?

 

길었던 하루가 끝나면 침묵할 시간이 필요하다난롯불 앞에서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하듯침묵의 미미한 온기를 향해 굳은 손을 뻗어 펼칠 시간이.

한강

 

삶은 살면서 우리가 쏟은 노력의 헛됨으로 정의된다우주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우리가 하는 모든 일들은 두려울 정도로 아무런 의미가 없다산적한 제약들과 퍼즐을 풀어나가는 것은 단순히 삶의 공허함을 덮으려는 행위가 아니다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텅 비었을 무언가에 온기와 형체를 부여하는 행위다.

로만 무라도프실은 무언가를 하고 있는 고양이처럼

 

 

 

 

-- 읽은 --



마이크 비킹, 그들은 왜 더 행복할까

요한 록스트룀, 마티아스 클룸, 지구 한계의 경계에서

엔도 슈사쿠, 이제 나부터 좋아하기로 했습니다

요조, 오늘도, 무사

 


 

-- 읽는 --



박병상, 어쩌면 가장 중요한 이야기

역사미스터리클럽, 지도로 읽는다 한눈에 꿰뚫는 세계사 명장면

카롤린 엠케, 혐오사회

오은, 왼손은 마음이 아파

정기문, 역사는 재미난 이야기라고 믿는 사람들을 위한 역사책

김정운, 에디톨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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