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차피 결혼이라는 것이 불구덩이니까, 그래서 니들이 나한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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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부시게 망하고 은퇴를 선언했음에도, 또 들어오는 축가 요청. 형식은 ‘사회를 보든가 축가를 하든가, 니가 뭐 하나는 해줘’였으나, ‘사회’라는 단어는 거의 ‘ㅅ흐‘로 들린 반면 ‘축가’는 ‘츅!가아아아아’ 쯤 되는 어감이었으므로 이거 실질은 축가 요청인 걸로 봐야지. 생각이 복잡해졌다.
한 번뿐인(거라고 추측되는) 결혼식에 자꾸자꾸 민폐를 끼치는 것이 미안하여 은퇴를 선언하긴 했으나, 고별무대를 생각해보면 와, 정말 그딴 망작으로 내 축가 역사를 매조지하는 것이 과연 바른 일인지, 늘상 입맛이 쓰긴 했어. 그리고 같이 다니는 다른 애들 결혼할 때는 해주고 얘한테만 안 해주면 그것도 좀 이상하잖아. 심지어는 내가 망하는 한 장면 한 장면을 얘도 싹 다 봤잖아, 같이 갔으니까. 그렇다는 건, 이 친구 역시 굉장한 각오를 가지고 이 자리에 나왔다는 게 아닐까?
뭐 이런 이유로 은퇴 선언을 번복하고, 마지막으로 굿바이 스페셜 무대를 가지기로 하였습니다. 도대체 이놈들은 왜 굳이 나한테 축가를 요청해 제 앞길에 스스로 가시밭을 까는 건지 모르겠지만, syo는 불 보듯 뻔한 실패에 몸 날리는 불나방들을 아낌없이 사랑하는 가슴 뜨거운 사나이니까, 꺾었던 마이크를 다시 잡기로 하지. 으하하......
그리고 뭐, 안가고 남은 친구도 더는 없다. 이 그룹에서 미혼자는 딱 두 명 남았다. 근데 그 두 명이 나하고 내 여친이야...... 와, 나하고 여친하고 사귄다는 폭탄발언을 처음 이 그룹에 투하했을 때, 그때 쟤네는 죄다 솔로부대 소속이거나(혹은 그때 만나던 사람은 지금의 배우자가 아니거나, 쉿쉿.), 뭐 그랬는데, 저 애기들이 싸그리 다 장가를 갔네 그려...... 야들아 왜 이렇게 성급들 하냐. 한 10년은 사겨보고 결혼해야 되는 거 아니냐. 10년 그거 금방 가는데. 난 1년만 더 있으면 10년인데..... (이 대목에서 닭똥눈물을 흘린다)
우주는 먼 과거나 먼 미래를 알 필요 없이 자신의 바로 앞에 놓인 관계만을 생각하면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간다. 우주는 심지어 앞과 뒤도 구분하지 않는다. 단지 자신과 시간적으로 인접한 두 지점의 관계만을 생각한다. 인접한 두 지점은 나와 다르지만 무한히 가까운 장소이다. 우주는 그냥 성실히, 아니, 어찌 보면 바보같이 이웃과의 관계만을 생각할 뿐이지만, 그 결과로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만들어간다.
사람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나와 맞닿은 사람들의 관계를 하나씩 확인하고 공고히 해나갈 때, 먼 미래나 과거가 아니라 바로 앞의 일을 향해 법칙을 따르듯 가야 할 곳으로 정확히 한 걸음 내디딜 때 우리는 우주의 방식대로 살아가는 것이다.
_ 김상욱, 『김상욱의 과학공부』
기자 : 종로 사거리에 30분 동안만 서서 가고 오는 청년 남녀들을 보면 얼굴 빛깔이 거칠고 기분이 우울하여 다니는 이가 대부분입니다. 또 몸가짐이 느릿느릿하여 물 찬 제비 같은 스마트한 점을 발견하기 어려운 이가 대부분입니다. 이렇게 우울하고 퇴색된 빛깔에 잠긴 청년들을 알아보면 대개가 결혼 아니 한 남녀들입니다. 결혼하여야 할 연령에 처하여 있으면서도 독신으로 지내는 이 불행한 남녀, 이분들을 다소라도 건져 줄 도리가 없을까요? 먼저 어째서 현대의 청년들이 결혼을 아니 하는가요, 또는 못 하고 있는가요?
이광수 : 여자들 생각은 잘 모르겠으나 남자들로 말하면 첫째 저 혼자 살기도 어려운 세상에 아내까지 얻어가지고는 생활을 도무지 하여나갈 도리가 생기지 않으니 대개 '금년이나 내년이나'하고 해마다 늦추다가 그만 혼기를 잃고 마는 이들일걸요.
나혜석 : 그러한 점도 있겠지만 묘령의 여성들로 말하면 선배들이 시집가서 사는 것이 대개 행복스럽지 못한 꼴을 많이 구경하고 났으니까 그만 진저리가 쳐서 애당초부터 결혼 생활에 들 생각을 하지 않는 까닭이 많지요. 실상 교양이 높은 신학문 받은 남녀로서 결혼에 들어 행복한 살림을 하는 이가 몇 명이나 되어야지요. 통계로 따져 본다면 행복한 이보다 불행하게 된 이가 더 많지 않은가요.
김억 : 교양의 유무보다 오히려 부부의 성격 차이에 죄가 많겠지요. 대개 신식 결혼 그 물건을 보건대, 결혼 조건으로 드는 것이 '아름다우냐'와 '학식이 있고 없고'와 '돈이 있고 없고'를 생각하여 보지마는 누가 하나 서로 성격의 조화를 염두에 두는 이가 없는 듯싶습니다. 이러니까 맞지 않는 부부가 되어 그 결혼은 몇 날 아니 가서 파탄이 생길 수밖에요.
김기진 : 그렇지요. '선배의 결혼이 나빴으니까 나도 아니하겠노라!' 하는 이유는 당치 않을 줄 알아요. 그야 실패한 사람도 있겠지만 그 반면에 행복스럽게 사는 사람도 어떻게나 많다구요. 그보다도 현재의 적령기에 있는 청년 남녀들이 결혼을 하지 아니하고 있는 까닭은 주위의 사정이 결혼할 생각을 당사자에게서 빼앗는 까닭이지요. 그것은 순전히 경제적 이유지요. 생활할 길을 잃어버린 사람이 늘어 가는 때에 의식주의 보장을 주지 않고 어떻게 만혼의 폐해를 제거하려 들겠습니까. 문제는 늘 근본에 귀착이 되어요.
_ 나혜석, 『나혜석, 글 쓰는 여자의 탄생』
타인의 작은 기쁨에 공감하기는 쉬우나 오히려 큰 기쁨에 공감하기는 어렵다. 때로 그것은 타인의 큰 슬픔에 공감하기보다 어렵다.
_ 류동민, 『시간은 어떻게 돈이 되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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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산책은 이리저리 얽힌 마음의 패턴 속으로 길을 잃고 빠져들 기회다. 이렇게 길을 잃음으로써 우리는 굳이 우주선을 만들지 않고도 우리에게 알려진, 혹은 알려지지 않은 우주 구석구석을 탐험할 수 있다.
_ 로만 무라도프, 『실은 무언가를 하고 있는 고양이처럼』, 26쪽
서울에서는 꽤 걸었는데, 요즘은 뜸하다. 날씨나 코스의 문제도 있겠지만, 사실 걸으러 나가는 문턱을 넘으려면 일정량의 의지가 필요하다. 그 의지는 걷는 데서 나온다. 그래서 걷는 사람이 걷고, 안 걷는 사람이 안 걷는다. 자꾸 안 걷는 사람 쪽으로 가고 있다. 그럼, 내 우주선은 어떡해. 내 우주 구석구석은 어떡해.
다시 좀 걸어야겠다.
3
독자에겐 각자의 독법이 있으므로, 모든 책은 단수가 아니다. 하지만 한 권의 책이 갈라져 읽히는 양태가 다 비슷한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불편한 책은, 많은 사람을 불편하게 하는 책은 과연 몇 갈래짜리 책일까? 크게 두 갈래? 아니면 천 갈래 만 갈래? 아니면 그건 서로 상관이 없는 요소들일까?
대중들이 불편하게 읽더라-고 알려져 있는 책이 별로 불편하지 않은 건, 무심하기 때문일까, 세심하기 때문일까?
-- 읽은 --
최유리, 나인완, 『마구로센세의 본격! 일본어 스터디 초급 1』
앤절라 카터, 『피로 물든 방』
녹색평론 편집부, 『녹색평론 통권 163호』
이종서, 『사무 인간의 모험』
-- 읽는 --
고병권, 『마르크스의 특별한 눈』
조관희, 『루쉰 : 청년들을 위한 사다리』
박이문, 『하나만의 선택』
무코야마 다카히코, 다카시마 데츠오, 『빅팻캣의 영어 수업 : 영어는 안 외우는 것이다』
페르난두 페소아, 『페소아와 페소아들』
고미숙, 『조선에서 백수로 살기』
로만 무라도프, 『실은 무언가를 하고 있는 고양이처럼』
마크 스틸, 『혁명 만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