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무섭고, 짐승에겐 자기가 약하다는 걸 알아채는 오후가 온다

 

처음에는 도덕경이었다. 그 다음은 소로의 월든이었고, 크로포트킨의 만물은 서로 돕는다였다가 이내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처음의 자리와 엇비슷한 장자로 돌아갔다가, 급선회하여 루쉰의 근처를 기웃거리기도 했다. 이것은 20대 젊었던 syo에게 이렇게 살아야지’, 더 정확히는 이렇게 살면 멋있겠어라는 생각을 심어준 책들의 순열이다.

 

30대가 되어 돌아본 20대가 대체로 그렇듯, 그땐 정말 아무 생각이 없었고, 그냥 먹고 마시듯이 읽을 뿐이었다. 먹고 마신 것이 몸을 이루듯 읽은 것들이 꿈과 이상을 구성했고, 그들을 흉내 내며 사는 길 위에 깔렸을 다종다양한 함정이나 벼랑 같은 것들은 보지 못하거나 혹은 보지 못한 척 하며.......나댔다. 노자는 지극한 선은 물을 닮는 것이라고 하는데, syo가 물 닮은 데라고는 끝없이 졸졸거리는 물처럼 상선약수上善若水 상선약수 입으로만 끝없이 졸졸거리는 것밖에 없었다. 번다한 도시를 떠나 숲 속 호숫가에 오두막을 짓고 살기는커녕 세계10대 메트로폴리스라는 데서 흥청망청거리느라 늘 바빴으며, 누구도 돕지 않았고 누구의 불행도 진심으로 내 것처럼 여기지는 않았다. 그러면서 끝없이 상호부조와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같은 이야기에 취했다. 이야기에만 취했다. 물론 그조차 하지 않은 것보다는 몇 뼘쯤 더 좋은 사람이 되긴 했을 것이다.

 

어쨌든 그 시절에는 편했다. 삶의 정당성과 명분을 확보하기가 참 쉬웠다. 먼저 읽고, 그에 따라 정하면 되었으니까. 하지만 좀 더 살고, 배우고, 좌절하고, 포기하고, 조금은 다르게 다시 사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내가 되거나 이룰 수 없겠다 싶은 것들이 늘고 나니, 이제는 먼저 정하고 읽어야 한다. 돌이켜보건대 뭐 엄청 읽어왔던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나마 한 일이라고는 읽기밖에 없어서, syo에게 읽는 일은 거대하고 무겁다. 다른 동아줄이 있었다면 이야기는 다르겠지만, 읽는 일을 통하지 않고 달리 스스로를 만들어 본 적이 딱히 없어서 고심하고 있다. 무얼 읽어야 할지를 정하기 위해, 먼저 뭐가 될지를 정해야 하는데,

 

오늘에 와서는, 어떤 인간이 되어야 할지 잘 모르겠다. 그래서 무슨 책을 읽어야 할지도 역시 모르겠다.

 

 


결국 일정한 나이에 이르면당신이 책에 관해서 가장 먼저 의식하게 되는 것은 책이 가진 힘이고책의 힘이란 결국 생각하게 하는 힘이라는 것이다실제로 당신은 책을 집어 들 때 그 힘을 느낄 수 있다짐작컨대 내가 집에 소장하고 있는 책들은 내가 그 책들을 살까 말까 고민할 때 자신들이 지닌 힘을 내뿜었을 것이다그 책들이 이제 내 서재에 있다최근에 팔고 걸러 냈지만 아직도 수천 권에 달하는 책들 사이를 나는 천천히 어슬렁거렸다오래전에 구입한 책들이 다시 읽어 달라고 애원하는 와중에도 나는 매주 새로운 책들을 쇼핑용 비닐봉지에 한 가득씩 사 들고 왔다미쳤지미쳤어.

클라이브 제임스죽음을 이기는 독서


깨닫기 시작하자 많은 문제가 생겼다깨달음이 그렇다깨닫기 전에는 인생이 편하다하지만 깨닫고 나면 걸리는 게 많아진다깨달았으니까 똑같이 살면 안 되는 것 같다깨닫기 전으로 돌아가려 하면그러고도 네가 사람이냐라는 질문을남에게주로 어른에게 듣던 그 질문을 스스로가 스스로에게 반복하게 된다깨닫고 나면 평온이 찾아올 거 같지만 사실은 아닌 거였다망할.

김영탁곰탕 1


책과 같은 존재

1. 우리는 책과 같은 존재입니다.

2. 사람은 저마다 스토리가 있지만 언뜻 봐서는 그 속내를 알 수 없습니다.

3. 늘 누군가가 발견해주기를 기다리고늘 누군가가 안을 들여다봐 주기를 바랍니다.

4. 인기 있는 것도 있고 없는 것도 있지만 좋은 만남이 있으면 누군가의 일생에 어떤 영향을 줍니다.

5. 좋은 만남이 있으면 누군가와 빛나는 순간을 함께 보낼 수 있습니다.

6. 부피가 늘어나고 무거워집니다불에 약하고 물에도 약합니다금세 빛바래고 구깃구깃해집니다.

7. 물체로서의 한계 수명은 있지만 그 정신은 이어질 수 있습니다.

8. 그리고 아직은 보이지 않는앞으로 나올 새로운 책이 세계를 두텁게 만들어 나갈 것입니다.

9. 그래서 우리는 책을 좋아하는 겁니다.

요시타케 신스케있으려나 서점



 

-- 읽은 책들 --



황현진 지음, 신모래 그림 부산 이후부터

신경림, 사진관집 이층

김서영 외, 어린 왕자, 진짜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아

김사과, N. E. W.

 

 

-- 읽는 책들 --



박규리, 아무튼 딱따구리

프랑수아 아르마네, 무인도의 이상적 도서관

리처드 H. 스미스, 쌤통의 심리학

조너선 울프, 한 권으로 보는 마르크스

다미엥 클레르제-귀르노, 무기력한 날엔 아리스토텔레스

라인하르트 램포트, 물리학자의 은밀한 밤 생활

다카하시 도루, 로봇 시대에 불시착한 문과형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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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18-10-18 2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르크스 책은 생각보다 은근히 많은 것 같습니다. ^^

syo 2018-10-18 21:11   좋아요 1 | URL
제일 많아요. 니체고 나발이고 마르크스가 짱 먹어요.....

북다이제스터 2018-10-18 21:18   좋아요 0 | URL
제가 그동안 관심이 무척 부족했나 봅니다. 반성됩니다. ㅠㅠ
거의 못 보고 지나친 책들이 정말 많습니다.
항상 새롭고 좋은 책 추천 감사합니다. ^^

syo 2018-10-18 21:29   좋아요 0 | URL
아닙니다. 실은 나온지 10년도 더 된 책이에요 ㅎㅎㅎㅎㅎ 새 책들은 저도 못 읽고 있는걸요. 특히 올해는 그 양반 탄신 200주년이라고 책 엄청 쏟아졌는데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