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련님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2
나쓰메 소세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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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현암사 소세키 전집에 속한 모든 책들의 뒤표지에는 폰트도 당당하게 백 년이 지난 지금 우리의 이야기라는 글귀가 박혀 있다. 아무리 리뷰라고 각 잡고 써 봐도 쓰고 나서 읽어 보면 어쩐지 다 내 이야기이기 일쑤인 syo의 입장에서는 이것 참 땡큐가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아니, 책이 제 입으로 백 년이 지난 지금 우리 이야기라 그래서 지금 제 이야기를 썼사온데, 왜 당최 리뷰에서 이렇게 책 맛이 안 나고 니 맛만 나냐고 물으시오면......

 


 

2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

김춘수」 전문

 

이 시를 처음 만났던 때가 생생하다. 선생님께서 쓸데없이 무게 잡은 목소리로 이 시를 한 번 읽어주시고는 말씀하셨다. “야들아, 진짜 아름답지 않냐?” 아이들은 영혼이 없어 맑은 목소리로 예에- 하고 대답했고, 선생님은 살풋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시고는 분필을 쥐고 칠판 쪽으로 돌아섰다. 선생님의 집도 아래, 시는 이내 쪼개지고 갈기갈기 찢겼다. 감탄이 묻은 목소리로 아름다움을 말하고, 바로 돌아서서 그 아름다움을 푸줏간에 걸린 고깃덩이처럼 척척 해체하는 선생님이 syo는 무서웠다. 그러나 선생님보다 훨씬 더 무서운 것은, 다름 아닌 저 시였다. 선생님, 그때 예에- 하고 대답했던 아이들 안에 저는 없었어요. 왜냐하면 전 무서웠거든요. 저는 저 이라는 시가, 너무 징그러웠거든요. 하나도 아름답지 않았거든요.

 

내가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도, 그는 그였을 것이다. 그는 스스로 이름이 있었을 것이다. 단지 그 이름을 내가 모를 뿐. 그는 그가 되기 위해 많은 것들을 지나왔을 것이고, 도중에 많이 울고 또 웃었을 것이다. 단지 그가 울음과 웃음 가운데 어느 쪽을 더 많이 모아 여기까지 왔는지 내가 모를 뿐. 그리하여 그는 이미 완성되었거나 아직 완성되고 있는 하나의 몸짓이 되어 마침내 내 앞에 섰을 것이다. 단지 그 몸짓이 오롯이 한 자락 춤이었다는 사실을 내가 모를 뿐.

 

아무것도 모르면서 무례하게 나는 그의 이름을 지어 부른다. 그러자 그는 내가 부른 이름의 칼날에 팔이 잘렸다. 내가 넘겨짚은 의미의 도끼에 다리가 잘렸다. 마침내 춤마저 빼앗겨 내 손안의 피투성이 꽃으로 유배되었다.

 

나는 내가 지금 무엇의 숨통을 끊어놓았는지 전혀 모른다. 몸짓을 잃은 꽃이 보시기에 좋았다. 내가 그에게 베푼 시혜와 은총을 내게도 누군가 가져다주기를 바라며, 그를 거세하며 내 손에 묻은 핏방울과 피냄새를 내 빛깔과 향기라고 착각하며, 목을 길게 내민다. 내 이름을 지어 부를 누군가 찾아오면 이 목을 베어 꽃으로 만들어 가지라고.

 

그리하여 우리는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칼과 도끼를 들고 찾아와 서로의 몸짓을 제 입맛대로 도려내는 오만무도한 정복자가 되고 싶다.

 

 


3


어제 도착했어참 따분한 곳이야다다미 열다섯 장짜리 방에 묵고 있는데여관에 행화를 5엔 줬어안주인이 바닥에 코가 닿을 정도로 인사를 하더군어젯밤에는 잠을 이루지 못했어기요가 조릿대 잎으로 싼 사탕을 조릿대 잎째 먹는 꿈을 꾸었거든내년 여름에는 돌아갈 거야오늘 학교에 가서 여러 선생님들한테 별명을 지어주었어교장은 너구리교감은 빨간 셔츠영어 선생은 끝물호박수학 선생은 산미치광이미술 선생은 알랑쇠야다음에 또 여러 가지 이야기를 써 보낼게잘 있어. (36 37)


이 작품 전체에서 주인공이 일관성 있게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유일한 인물인 기요에게 보내는 첫 번째 편지의 내용이다. 주인공이 울며 겨자 먹기로 시골 학교에 선생으로 부임하여 가장 먼저 한 일은 다른 선생들의 별명을 붙이는 일이다. 어제 도착하여 편지를 쓰는 게 오늘. 주인공은 동료 선생들의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이름을 붙여줄 만한 시간을 충분히 가지고 그들을 꽃으로 만들었을까? 기요를 뺀 모든 사람들을, 심지어 가족들조차 우습게 여기는 주인공 도련님에게 누구보다 경멸스러운 인간들은 시골 사람들이다. 사무라이의 핏줄을 감고 태어나 도쿄에서만 살다 시골로 떨어진 도련님에게 미개한 그들은 결코 서로의 존재를 섞으며 살아가기 어려운 족속들이다. 단지 정복해야 할 적군이었다. 그래서 도련님은 자신이 취할 수 있는 가장 손쉬우면서 동시에 가장 강력한 방법으로 선제공격을 가한 것이다. 도련님이 그들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들은 도련님의 손안에 몸짓 없는 한 송이 꽃으로 들어온다. 꽃은 더 이상 위험하지 않을 것이므로, 주인공은 의기양양하다.

 

그러나 한번 붙은 별명은 주인공의 통제를 벗어나 스스로 거대한 색안경이 되어 주인공에게 되돌아간다. 이제 너구리의 모든 행동은 너구리를 더욱 너구리로 만드는 방식으로만 보인다. 빨간 셔츠는 빨간 셔츠가 된 순간부터 빨간 셔츠가 아닌 순간이 없고, 산미치광이는 내 편일 때나 아닐 때나 시종일관 산미치광이 짓을 한다. 알랑쇠가 입 밖으로 내는 모든 말은 알랑거림 말고 다른 방식으로는 결코 읽히지 않는다. 읽힐 수가 없다. 그렇게 그들이 자기 이름에 붙은 빛깔과 향기를 더 세게 내뿜는 방식으로 해석되는 순간, 그들은 잊고 싶어도 도저히 잊히지 않는 하나의(단 하나의) 의미가 되어 도련님의 일상을 끊임없이 압박한다. 도련님이 던진 칼이 저절로 제 몸을 갈고 돌아와 날카롭게 도련님을 덮친 것이다. 함부로 이름을 붙이는 일은 언제나 이렇듯 제가 갈 길을 스스로 잡는다. 정복자에게 되돌아와 정복자를 정복한다.

 

 


4

재수학원을 다니던 시절의 syo가 꼭 저랬다. 같은 반 교실에 60명의 학생이 있었으나, 그 안에 syo가 아는 이는 고교 동창 단 한 명뿐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나란히 앉아 58명에게 하나하나 이름을 붙였다. 항상 교실의 한 가운데 자리에 앉아 있던 가장 나이 많아 보이는 학생은, 아마 지금의 내 나이쯤 되었던 것 같은데, ‘나마알씨라는 별명을 얻었다. 주기율표의 3주기 상에 일렬로 선 원소 나트륨-마그네슘-알루미늄-규소(Si)’의 두문자로 이미 익숙했던 나마알씨나이 많은 아저씨의 변형으로서 채택된 것이다. 나마알씨와 항상 나란히 앉던 역시 나이가 많아 보이는 여성은 잘 알 수는 없었으나 나마알씨와 사연이 있어 보인다는 이유만으로 와이프가 되었다. 그러다 쉬는 시간에 큰 목소리로 떠들어 학우들의 꿀 같은 쪽잠을 방해하는 행동 패턴이 포착되면서 고성방가로 변신한 그녀는, 얼마 안 가 그들의 자리가 가운데였다는 점에 착안하여(고성방가는 너무 직접적이었으므로) ‘센터방가가 되었고, 언어 경제성의 원리가 동작하면서 센방이 되었는데, 모종의 이유로 이윽고 선빵이 되며 긴 별명 진화의 역사를 매조졌다. 물리 시간에 깨워도 깨워도 계속 자던 어떤 학생은 깨워봤자소용없다는 뜻에서 봐짜로 시작되었다가 추후에 역시 언어 경제성의 원리에 의해 2음절에 묵음처리가 이루어지면서 ()’의 형태로 변형되었다. 이런 식으로 학생 거의 전원의 별명을 짓는데 두 달이 넘는 시간을 소비하였다. 그 시간에 공부를 철저히 했다면 재수를 성공했을까? 그건 아니지. syo의 재수가 폭망한 것은 저런 잡질 때문이 아니라 코인 노래방에 빠져서 오후 수업을 자꾸자꾸 제꼈기 때문이지......

 

그렇다면 저런 악독한 나치 독일식 별명 독재 행위를 자행하고도 syo는 아무런 페널티를 받지 않았는가? 이미 고등학교 때 이름짓기의 폐단을 소스라치며 느꼈음에도 불구하고 저런 짓을 하였는데? 있었다. 두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외로움이었고, 다른 하나는 두려움이었다.

 

결국 syo의 재수는 성과도 인간관계도 얻지 못한 명실상부 인생 낭비로 마무리되었다. 졸렬하기 짝이 없는 마음으로 쓰레기 같은 이름을 붙였으므로, 그리고 이름 붙은 이들의 행동은 이름을 따라가는 방향으로만 포착되었으므로, syo는 그들 중 누구에게도 먼저 마음을 열지 못하게 되었다. 분명 syo에게 먼저 손길을 내민 이들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같은 이유로 syo는 그 손을 잡지 않았거나 살며시 잡았다가 쉽게 놓치기도 했다. syo는 말이 많은 아이였는데도 학원에서 입을 뗄 기회가 별로 없게 되었다. 외로웠다. 학원이 싫어졌다. 결국 이틀에 한 번, 사흘에 한 번 하는 식으로 학원을 멀리하다가 D-30부터는 아예 학원을 나가지 않았다. 실은 두렵기도 했다. 교실에 친구가 없었으므로, 다른 학생들은 syo의 이름을 모를 거고, 그렇다면 syo를 지칭하기 위해, 그들은 syo에게 어떻게든 별명을 붙였을 것이라는 데까지 생각이 미친 것이다. 그때부터, 가끔씩 눈길을 스치는 다른 학생들의 얼굴에서 내 별명의 실마리를 찾으려 했다. 아니, 오히려 찾아질까 봐 무서웠다. 저들은 나를 뭐라고 부르고 있을까, 병신? 머저리? 아웃사이더? 음소거? 제가만든칼날에결국제목이따인병신머저리아웃사이더언어장애자? 등골이 서늘하거나, 사람을 피하고 싶을 만큼 무섭진 않았다. 풀어야 할 문제집이 산이었고, 노래 부르는 데 써야 할 동전이 바다였으므로, syo는 괜찮았다. 재수는 망했지만, syo는 괜찮았다. 그러고보면 저건 어쩌면 두려움이 아니라 쪽팔림이었을 수도 있겠다. 정확히 말하면 쪽팔리는 놈일까 봐 두려웠던 것 같다.

 

 

 

5

주인공 역시 책이 끝날 때까지 이름이 나오지 않는다. 그저 도련님, 선생님, 자네, 와 같이 불릴 뿐이다. 그리고 그 이름들은 죄다 부르는 입장에서 붙여진 것들이다. 이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있다.

 

 

 

6

이름의 칼날을 만드는 데 필요한 것은 기껏해야 공기, 시선, 마음같이 구하기 쉽고 가벼운 것들뿐이라 부지런한 생산자라면 하루에도 몇 개씩 이 무기를 만들어 타인을 베어나갈 수 있다. 그리고 세상에는 너무도 잘 만들어져 나 아닌 다른 인간의 인생 따위 하찮은 것들은 양심의 가책도 없이 덜컥 베어버릴 수 있는 혐오의 이름들이 이미 차고 넘친다. 내 이익을 위해, 우리 집단의 유대를 위해, 심지어는 그냥 거품처럼 사라질 한 순간 웃음을 위해, 굳이 타인을 찌르고 싶은 마음이 없어도 쉽게 주울 수 있는 칼말들이다. 모든 인간을 죽이고도 거뜬히 남아 저 혼자 제 새끼를 낳을 것만 같은 끔찍한 종양들이고, 언젠가 우리가 모두 치워야 할 병원균들이다.

 

칼을 가는 자의 손도 반드시 베고야 마는 독한 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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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27 22:5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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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27 23:47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