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남자고, 페미니스트입니다
최승범 지음 / 생각의힘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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쉼표(,)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고 싶다.


 

되돌아보건대 빨갱이가 되겠노라는 결심이, 그리고 나는 빨갱이라는 선언이, 너무 성급했던 건 아닌가 생각하는 일이 잦다. 자본도 안 읽었으면서, ‘빨간 맛이 뭔지도 잘 몰랐으면서, 도대체 어떤 문장에 반하여 syo는 빨갱이가 되(었다고 믿)었을까. “철학자들은 지금까지 여러 방법으로 세계를 해석하기만 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세계를 변혁하는 것이다.”(포이어바흐 테제) 였을까? 아니면, “잃을 것은 오직 족쇄 뿐, 얻을 것은 온 세계일지니, 만국의 프롤레타리아여 단결하라!”(공산당 선언) 였나? 하여간 죽여주게 멋있었다. 스무 살 남짓의 syo는 그렇게 어쭙잖은 진보뽕을 맞고(빗맞고) 섣불리 마음에 빨강색을 칠했다. 이어폰도 빨강색, 필통도 피처럼 빨강색을 고집했으며, 파스타를 먹어도 오직 토마토만이 혁명적이지, 카르보나라 같은 회색 반동 파스타는 결코 용납할 수가 없었다(그러나 유래로 보자면 카르보나라야말로 노동자의 음식이라는 소오오름 끼치는 반전.) 무지하면 용감한 법. syo에게 빨강이야 말로 세상 짱이라는 것은 자연법칙에 가까웠다. 무지개는 왜 주노초파남보겠어. 후레시맨, 바이오맨, 파워레인져 가릴 것 없이 모든 쫄쫄이-하이바 용사들의 우두머리는 왜 빨간 유니폼을 입겠냐고. 만세, 빨강 만세, 빨갱이 만세..... 이거 원, 별 미친놈을 다 보겠다.

 

빨강이 옳아서 내가 믿은 건지 내가 믿어서 빨강이 옳은 건지 구분이 되지 않는 지점까지 신념은 눈 감고 질주했다. 이럴 때 너라면 어떻게 하겠냐는 모든 질문에 가장 빨간 선택지를 골랐다. 때론 그 질문은 전제 자체가 틀렸다며 빨간 펜을 들고 득달같이 달려드는 일이 있었다. 누군가 약자를 위하여 세상과 맞서 싸우고 있는 자리를 그냥 스쳐 지나갈 때면 목이 꺾여 아무리 용을 써도 땅만 보고 걸을 밖에 도리가 없었다. 스스로의 언행 불일치와 용기 없음을 아프게 인식하면 오래 괴로웠다. 빨간 일을 그렇게 많이 하지는 못했지만 빨간 말을 많이 하고 빨간 글을 썼으며, 꽤 촘촘한 빨간색 안경으로 다른 이의 일과 말과 글을 거를 줄 알게 되었다. 그렇게 막무가내로 빨간색을 바르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 근본 없는 빨갱이, 이론도 실천도 모자란 알라딘의 입빨갱이 syo가 되었다. 좀 더 많이 알고 좀 더 많이 싸웠으면 좋았겠지만, 그랬다면 스스로 내가 조선의 빨갱이다외치는 일이 덜 부끄럽고 민망했겠지만, 그렇다고 30년 동안 겨우 하나 만든 정체성을, 영혼의 빨간 그림자를 부인할 수는 없는 일이다. 다른 관점으로 보자면, 그렇다. 글눈이 트이고도 30년을 더 살았는데, ‘나는 누구요할 수 있는 명함을 이제 겨우 하나 만든 셈이다. 심지어 빨강색을 칠한다고 칠했는데 주황색에 가까운 누리끼리한 명함이 나왔다.....


 

첫 번째 정체성이 그렇게 허접하게, 기세에 휩쓸려 어어- 하는 사이에 형성 되서였을까, 좀 신중해졌다. 오래 물색했고, 그 결과 두 번째 명함을 만든다면 거기에 페미니스트라고 새기고 싶어 페미니즘의 주변을 잠시 얼쩡거렸다. 그리 오래지 않은 일이다. 단기간 몰아치듯 많이 듣고, 많이 읽었다. 그러나 지금은 적게 듣고 있고, 읽지 않는다. 무섭기 때문이다. 읽으면 읽을수록 쓰기가 두려웠고, 들으면 들을수록 말하기가 겁났다. 사내놈인 내가 감히,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소개할 수 있는 날이 올까? 그게 가능한 일일까? 만약 그게 된다면, “안녕하세요, 저는 페미니스트입니다.” 라고 말해오는 어떤 여성에게 , 안녕하세요. 페미니스트입니다.” 라고 대답할 수 있는 걸까? 저 말들 속에 들어 있는 페미니스트는 똑같은 두 발음이 과연 라는 조사로 엮일 수 있는 같은 단어일까? 희망은 너무도 작고 두 번째 명함은 요원하기만 했다. 실은 그 작은 희망조차 지금은 차갑게 식어버렸다. 아직 절대 페미니스트라고 자칭하지 못할 syo, 지금껏 읽은 책들, 지금껏 들은 이야기들 앞에서 반성하고 고칠 일이 너무도 많아 더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는데, 세상의 많은 남자 페미니스트들은 어찌나 당차고 멋있는지, 이 괴롭고 부끄러운 절름발이 시절을 헤치고 나가 당당히 페미니스트의 이름표를 단 그들이 존경스럽고 부러울 때가 많았다. 나도 열심히 읽고 쓰면 저렇게 될 수 있을 거야, 하는 기대를 품고 몇몇 이들의 행로를 좇기 시작했다. 그리고 금방 좌절했다. 그들의 빛나는 명함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나는 페미니스트입니다(그러므로 너는 페미니스트가 아니고 니가 말하는 페미니즘은 진짜페미니즘이 아니란다)”

 

작년, 윤김지영 선생님의 대구 강연 자리에서, 몇 안 되는 남성 청중 한 명이 선생님께 여쭸다. 남자 페미니스트(이하 남페미)가 가능하다고 생각하시느냐고. 선생님은 결론적으로 가능하다고 생각하신다면서도, 여자 페미니스트(이하 여페미)와 똑같은 방식으로 기능하진 않을 거라고 말씀하셨다. 곱씹어보건대, 페미니스트로서 두 성별의 기능이 다르다면, 페미니스트라는 이름을 붙이기 위해 넘어야 할 윤리적 허들 역시 같거나 동등할 이유가 없다. 결국 중요한 것은 여페미와 남페미를 같은 페미로 볼 것이냐 아니냐 하는 여러 방법의 해석이 아니라, 여페미와 남페미의 기능과 윤리를 활용해 세계를 변혁하는일이겠다. 그리 보면 세상에는 과연 남페미라고 불려도 손색이 없을 사람들이 명백히 있다. 이 책의 저자가 그렇다. syo가 감별을 하자는 게 아니라(감별은 감별 능력이나 자격을 인증 받은 사람이나 하는 것이다. 그리고 병아리, 보석, 골동품 따위에나 하는 것이다), syo의 하찮은 젠더 감수성에 비추어 볼 때 저자는 정말 닮고 싶다는, ‘만약 내가 저 정도 되면 나도 내가 페미요 떳떳하게 밝히고 다니겠네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그러나 그것보다 실은,


 

쉼표(,)에 관하여 이야기하고 싶다.


 

책 속에 담긴 내용 역시 남자들에게 극히 중요하고 유용하지만, 200쪽을 채우는 문장 전체만큼이나 저는 남자고, 페미니스트입니다라는 한 줄의 제목이, 표지를 넘기면 만날 수 있는 모든 활자의 총량만큼이나 제목 가운데 들어 있는 쉼표 하나가 의미를 가진다고 syo는 생각한다. 페미니즘에 열려 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이 말하는 모든 주장에 동의하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을 수 있다. 이 책이 하지 말자는 일들을 하지 않고, 하자는 일들을 하는 것은 큰 무리가 아니다. ‘또 페미니즘 책이 나왔군. 하여튼 페미니즘은 돈이 된다니까. 이번에도 내가 신나게 까주지와 같은 의도를 품고 이 책을 손에 든 사람을 제외하면(물론 책을 이렇게 읽지 말라는 법은 없다), 이 책은 대체로 모두에게 쉽고 나긋나긋하다. 그렇지만 당신이 이 책의 모든 견해에 동의한다고 해서, 혹은 오히려 이 책이 너무 온건하다고 여긴다고 해서, 곧바로 남페미의 자격을 보장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책을 다 읽고 책장을 덮은 다음, 우리는 제목을 다시 한 번 읽어보아야 한다. 제목이저는 남자고 페미니스트입니다가 아니라, 저는 남자고, 페미니스트입니다인 데는 무시 못 할 이유가 있다.

 

어떤 남페미도 쉽게 남페미가 되어서는 안 된다. 많이 읽고, 그래서 많이 알고, 그러다보니 많이 싸워야 한다. 그건 물론이다. 그러나 그 모든 과정을 통과했대도, 우리는 계속 생각해야 한다. 공부로 끝내지 않기를. 실천으로도 만족하지 말기를. ‘내가 남페미인지를 생각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처음으로 되돌아가 내가 과연 남페미여도 되는지를 꾸준히 생각해야 한다. 나도 모르게 내가 무엇을 망칠 수도 있는지, 잊지 않고 자꾸 뒤적여 줘야 한다. 그래야 굳지 않는다. “저는 남자고,” 그리고 그 쉼표에서 되도록 오래 쉬었으면 좋겠다. 그 쉼표 뒤에 페미니스트입니다.”를 어렵지 않게 붙일 수 있는 당신은 멋지다. 아직 그러지 못하는 syo는 당신이 부럽다. 그러나 만약, 당신의 쉼표 뒤에 길고 긴 공백, 괴롭고 묵직한 시간의 켜가 쌓였다면, 오래 묵혀 번민한 끝에 당신이 페미니스트입니다를 가까스로 붙일 수 있었다면, syo는 당신을 존경한다. 당신처럼 되고 싶다. 당신의 목소리가 아무리 작아도 곁에 서서 그 목소리를 듣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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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쟝쟝 2018-06-20 16: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 참 나긋나긋 하지요 ㅎ 스요님 글 재밌어요 ㅎㅎ

syo 2018-06-20 16:45   좋아요 1 | URL
좋은 책이었어요. 이만큼도 되기 어렵겠지만 이만큼만 되면 좋겠다 싶었지요 ㅎㅎ

단발머리 2018-06-20 17:0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난 뭐랄까... syo님 글에서 동지애를 느껴요. 저의 쉼표 뒤에도 길고 긴 공백 그리고 괴롭고 묵직한 시간의 켜가 쌓여있고요. 기혼의 전업주부로서 말이죠.
항상 조심스럽고 그러죠.
페미니즘 책을 읽기 두렵다는 말, 그 말에도 공감되고요.

이런 고민의 시간과 말들이 페미니스트가 되기 전에 필요한 시간은 아닐까 생각해요. 이런 글을, 이렇게 좋은 글을 써준 남자, syo님에게 고맙구요.

그나저나 빨갱이 이야기는 왜 이렇게 재미지나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syo 2018-06-20 18:50   좋아요 1 | URL
저도 페미니즘 책 퍽퍽 읽고 페미니즘 글 뿜뿜 쓰고 막 그러고 싶은데 그게 안 돼요...... 뭘 쓰질 못하겠어요. 그래서 고작 ‘써도 되나?‘ 라는 말만 길게 쓰는 요즘입니다. 희한한 슬럼프야..... 지금이 긴 쉼표를 찍는 중인 걸까요.....

그러나 빨갱이 이야기라면 언제라도 신명나게 쓸 수가 있다!

마! 느그 대장 독일 살제? 마 내가 느그 마르크스랑 임마! 어? 어저께도 밥묵고 사우나도 같이 가고 마 다했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단발머리 2018-06-20 18:51   좋아요 0 | URL
그 이야기 너무 좋아요. 써도 되나? 그런 이야기요. 그 이야기를 길게길게길게길~~~~~~~~~~~게 해 주길요.

근데, 진짜 밥묵고 사우나도 같이 가고 그랬단 말이예요?
(말똥말똥) @@

syo 2018-06-20 18:55   좋아요 2 | URL
..... 그랬으면 제가 어디 syo겠어요? 엥겔스지.....

근데 빨걍이로서, 엥겔스 좀 부럽다. 돈도 뜯기고 남의 애를 자기 애라고 하기도 하고 이래저래 온갖 드러운 꼴도 다 봐야했지만, 그래도 역사상 손꼽히는 ‘성덕‘ 아닐까요.

북다이제스터 2018-06-20 21: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캬~~~ 이런 감칠 맛 나는 글.... 부럽습니다.^^
시요님은 항상 노력하는 빨강쟁이나 페미니스트 일지도 모르지만 하느님이 특별히 사랑하여 점지해 주신 타고난 글쟁이입니다. ^^

syo 2018-06-20 21:43   좋아요 1 | URL
그렇게까지요?? ㅎㅎㅎ 하늘의 사랑은 모르겠으나 북다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는 것 같아 즐겁습니다. 북다님이야말로 알라딘의 빨강대장이시니까요 ㅎㅎㅎㅎ

그나저나 제가 쓰는 ‘빨갱이‘나 ‘빨걍이‘보다 북다님의 ‘빨강쟁이‘가 더 맘에 드는데요....

hellas 2018-06-21 06: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남자고, 페미니스트.. 라는 말에 뱁새눈을 뜨고 50프로 정도 의심했었는데 좋은 리뷰네요. 책이 더 궁금해졌습니다:):)

syo 2018-06-21 21:20   좋아요 1 | URL
그 지점에서 뱁새눈을 뜨실 정도로 크게 열려 계신 분께는 별 소용에 닿지 않는 책일 수 있습니다. 미지근하네 싶으실까요. 그래도 남자들이 보기에는 좋은 책인 것 같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