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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저녁에 자기랑 놀아달라고 와 주저앉아서 하는 얘기가 너무 웃기면서 재미있고 한편으로는 철학적이었다


엄마, 나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해.


뭐.


타임머신이 왜 불가능할까? 지금보다 과학이 훨씬 발전하면, 그러면 그때는 지금으로선 불가능하다 혹은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것들이 너무 당연한 현실이 될 수도 있잖아 과거에 지금 누리는 것들이 아예 불가능한 것 혹은 꿈꿔본 적도 없는 것들이었을텐데 지금 우리에겐 너무 당연한건데. 그것처럼 타임머신을 이용한 시간여행도 언젠가는 가능하지 않을까.


아니야 그건 아닐 것 같아.


왜?


왜냐하면 그건 자연의 법칙에 어긋나니까.

시간이라는 건 선형적으로 흐르는 건데(사실 이 말을 하면서 뭔가 내 얘기 자체가 오류가 있는 느낌이었지만 그냥 밀어붙임)

타임머신이라는 건 그 시간을 역행해서 다시 과거로 돌아간다는 거고. 그렇다면 시간은 흐른다는 대전제 자체가 뒤집히는 건데 그건 좀 불가능하지 않나. 시간여행이라는 논쟁 자체는 평행우주가 존재한다는 가설이 실제여야만 성립할 수 있다고 생각해. (이쯤되니 밑천이 바닥나서 더이상 이런 주제로 대화를 하기가 불가능한 건 아닐까 하는 불안이 엄습함...)


평행우주가 뭔데


아 그건. 쉽게 설명하면 이런 거. 지금 이 순간 졸려서 놀자는 너를 무시하고 자러가는 엄마가 있는 세계가 있고, 지금 여기서 네 말을 계속 경청하는 엄마가 있는 세계가 있고. 말하자면 내가 어떤 선택을 할 때마다 그 선택을 한 나와 하지않은 내가 존재하는 평행세계가 존재한다고 생각하는거지.


그게 존재할 수도 있잖아?


아니 나는 그렇게 생각 안해. 그건 그냥 인간의 발상일 뿐이지



엄마 그럼 그건 그렇다고 해

근데 이런 생각도 해.

지금 내가 살고있는 이 세계가 진짜일까? 아주 정교하게 세팅된, 그런 건 아닐까

내가 현실이라고 믿고 있는 어떤 가상의 세계에 살고있는거 그니까 꿈 같은 건 아닐까 그런 생각.


현대판 장자라고 하고싶은 거냐 지금.


그게뭔데


아 어제 너랑 아빠랑 얘기했던 호접지몽. 그게 장자 얘기야.


아.


근데 엄마도 옛날에 그런 생각 했어. 매트릭스를 열심히 봐서 그런가.


무슨?


그러니까 이 현실은 사실 아주 잘 설계된 가상의 세계. 뇌속에서 시뮬레이션되고 있는 세계이고 의식만 그 세계속에서 떠다니고 있고 몸은 어딘가에 고정돼 있는데 마치 살아있고 내가 움직이고 모든 것을 직접 하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거지. 그런 거 말야.


아 나도 알아. 그렇지만 지금 여기서 그걸 체험하고. 느끼고 생각하는 내가 있는 걸 보면 현실이구나 생각해.

근데 한편으론 이런 것 같기도 해. 이것마저도 내 자신이 아니라, 아까 엄마가 얘기한 것처럼 인간을 시뮬레이션 도구로 쓰면서 뭔가 실험하는 외계인들이, 인간의 머릿속을 프로그래밍하는거지, 어 얘네가 어째선지 우리의 낌새를 눈치챈것 같아. 그럼 이렇게 우리가 잠든 시간에 구리구리 통통통, 하면서 다시 세뇌를 시키는거지. 우리가 무슨 얘기를 했는지는 완전히 까먹도록. 아니면, 이 대화 자체가 걔들이 이런 이야기를 나눠라~ 하면서 우리한테 이미 주입한 것일수도 있어!


그럴수도 있겠네.


엄마. 어쩜 이럴수도 있지 않을까. 우리가, 이 우주가 어떤 거대한 생물체의 뱃속이나 장기의 한 부분이고, 우리는 우주라고 믿고 있지만 어딘가에 들어있는 뭔가일수도 있잖아. 그런데 우린 그런 걸 모르고 나름 열심히 사는거지.


재밌는 발상이야. 그럴수도 있지.


아 그러면 반대로, 진짜, 우리 몸속의 적혈구나 백혈구들 말야(여기서 피는 부지런해 책을 언급) 걔들도 이렇게 사회를 이뤄서 꼬마 적혈구들을 학교에 보내고, 공부나 하라고 야단도 치고, 집도 짓고, 그렇게 사회를 만들어 살고 있지 않을까? 응?


그럴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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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다리 아저씨 허밍버드 클래식 7
진 웹스터 지음, 한유주 옮김 / 허밍버드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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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다리 아저씨는 한 고아 소녀를 주인공으로 쓴 소설이다. 대학에 들어갈 나이가 된 제루샤 애벗은 고아원을 나와야 한다. 그런데 키다리 아저씨라는 정체 불명의 남자가 제루샤를 후원해 대학에 보내기로 한다.

대학에 들어간 제루샤는 '주디'로 개명을 한다. 키다리 아저씨는 주디가 작가가 되기를 원했고, 그래서 한 달에 한 번씩 편지를 쓰게 한다. 그러나 답장은 해주지 않는다.

주디는 대학 생활을 하며 줄리아 펜들턴과 샐리 맥브라이드와 친해진다. 그리고 함께 방학도 보내고, 같은 방을 쓰며 지낸다.

주디가 졸업하고 나서, 키다리 아저씨를 만나게 된다. 그러나 키다리 아저씨는 줄리아의 친척인 저비 펜들턴이었다.

이 책은 거의 전부 편지 형식이다. 주디가 키다리 아저씨에게 보내는 편지이다. 그냥 글로 되어 있기보다 편지로 된 것이 더 읽기 쉽고 이해도 잘 되었다.

주디도 일반 대학생들과는 조금 다른 것 같다. 모두 드레스를 사고, 무도회와 파티에 놀러다닐 떄, 유의어 사전을 사서 열심히 공부를 했으니 말이다.

책의 내용도 전체적으로 봤을 때 재밌지만, 편지 형식으로 되어 있다는 점이 제일 기억에 남고 인상적이다. 그냥 글로 썼으면 별로일 것 같은데, 편지로 나타네어서 훨씬 오래 기억에 남는 것 같다. 

 

2019년 1월 30일 

 

 

열심히 쓰고 있는데 왜 아카이빙 안 해주냐고 딸한테 한 소리 듣고 밀린 글들을 업데이트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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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룡소의 그림동화 1
레이먼드 브릭스 글.그림, 박상희 옮김 / 비룡소 / 199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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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은 어린아이의 기발한 상상과 곰의 특징들을 자연스레 연결하여 쓴 그림책이다.

주인공 틸리는 외동딸이다. 그래서 늘 곰인형과 함께 잠을 잔다. 어느 날, 틸리보다 몇 배는 큰 북극곰이 창문으로 틸리 방에 들어간다. 북극곰은 틸리와 함께 재미있게 논다. 가끔 사고도 쳐서, 틸리가 난감해지기도 한다.

그러나 틸리의 엄마, 아빠는 북극곰이 바로 옆에 있는데도 보지 못한다. 그 곰은 오직 틸리에게만 보인다.

그러던 어느날, 여느때처럼 북극곰과 함께 잠자리에 들고 나서였다. 틸리가 잠에서 깨어나 보니 북극곰이 사라진 것이다. 곰은 원래 자기의 고향으로 돌아간다.

이 그림책은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내용이 달라지는 걸 느낄 수 있는 것 같다. 나는 곰인형과 곰이 아는 사이여서, 인형의 도움으로 곰이 틸리에게 찾아간 것 같다. 인형은 틸리를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기 때문에 틸리가 분명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한 것 같다.

곰 인형은, 틸리에거 북극곰을 만나게 해 준 다음, 때가 되자 북극곰을 고향으로 돌려 보낸 것 같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그림도 예쁜 것 같다. 그냥 봤을 때는 색연필로 그린 것 같은데, 그림이 내용하고 굉장히 잘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하였다.

 

2018년 11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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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히틀러에게 딸이 있다고 가정하여 쓴 소설이다. 주인공은 안나, 트레이시, 벤, 마크라는 오스트레일리아 아이들이다. 어느 날 안나는 친구들에게 이야기를 들려 준다. 

 

 히틀러에게는 하이디라는 딸이 있다. 하이디는 얼굴에 크고 빨간 반점이 있었고, 한 쪽 다리가 짧아 절었다. 히틀러는 딸이 전투를 보지 못하게 하려고 시골집에서 살게 하였다. 학교도 보내지 않고 가정교사를 두어 집에서 공부하게 했다.

히틀러가 딸을 시골집으로 보낸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히틀러는 게르만 민족이 가장 우월하다고 주장하며 환자, 장애인 등 몸이 불편한 사람이 게르만 족의 대를 잇눈다는 것에 대해 몹시 못마땅해 하였다. 그래서 장애인, 환자, 집시를 모두 죽였는데 다리를 절고 얼굴에 반점이 있는 자신의 딸을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없었을 것이다.

안나의 이야기가 다 긑난 후, 눈치가 빠른 마크는 하이디의 손녀가 안나라는 것을 알게 된다. 살면서 아무에게도 하지 못했을 이야기를 가짜처럼 꾸며내 이야기하는 안나를 보고 마크는 미안하다고 한다. 그런 마크를 보고 안나는 어깨를 으쓱한다.

 

 독재자의 딸, 아들로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의미일까? 아마도 먹고 싶은 것 먹고, 놀고 싶으면 놀고, 아랫사람도 많이 거느리며 행복하게 살 것이다. 그러나 조금 더 커서, 자기 부모님이 무슨 일을 하시는지 알게 된다면, 그렇게 계속 살 수 있을까?

물론 딸, 아들이 부모님께 독재를 멈추라고 요구해도 독재자는 멈추지 않았을 것이다. 그만하라고 그만하실 분들이면 처음부터 독재를 시작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시도 정도는 해볼 수 있지 않을까?

나의 작은 노력으로 죽어가는 수많은 생명들을 살릴 수 있다면 그것은 분명 가치있고 중요한 일이다.

 

2018년 11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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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꽃들에게 희망을>은 여러가지 상징적 의미를 담고 있다. 처음 읽었을 때는 저학년이 읽는 동화책인 줄 알았다. 하지만 애벌레, 기둥, 나비, 고치 등등 모든 등장인물이 가지고 있는 상징적 의미를 따져 보면, 이 책이 참 많은 내용을 다루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노랑애벌레는 다른 애벌레들과 달랐다. 다른 애벌레들이 남들을 따라 애벌레 기둥에 오르고 있을 때, 노랑애벌레는 자신의 꿈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 그 결과 고치의 과정을 거쳐 아름다운 나비로 성장한다.

호랑애벌레는 다른 애벌레들처럼 애벌레 기둥에 오르고 싶어한다. 기둥에 오르던 중, 호랑애벌레는 나비가 된 노랑애벌레를 보게 된다. 둘이 서로 말은 안 통하지만, 호랑애벌레는 생각한다. 자기가 다른 애벌레를 밀치고 올라가는 것보다 나비가 되어 하늘을 날아가는 것이 훨씬 의미있는 일이라는 것을 말이다.

 기둥은 무의미한 경쟁을 상징한다. 애벌레들은 자기가 나비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모른 채 쓸데없는 경쟁을 하게 된다. 고치는 성장하기 위한 과정을 상징한다. 나비가 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답게 이야기 속에서 중요한 부분마다 자리잡고 있다.

 

 고치의 과정을 지나 완성된 나비는 진정한 자아를 의미한다. 노랑애벌레는 진짜 자신의 모습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멋진 나비로 성장하게 된다.

 

2018년 11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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