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형도를 잃고 나는 쓰네
김태연 지음 / 휴먼앤북스(Human&Books)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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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동아리에 든 이유를 묻는 문항이
가입원서의 첫머리에 있었을거다, 분명히.

물론 거기에 어떤 답을 남겼는지 연이어 나왔을
좋아하는 작가를 묻는 문항에는 어떤 작가를 꼽았었는지
이제는 떠올리려해도 도저히 기억에 남아있지 않다.

소설 속 승구처럼, ‘문학‘동아리에서 내가 배운 것 중에
자신있게 말할 만한 것은 술밖에 없는데,
따지고 보면 문학은 겉멋들려 동아리방을 오다가다 한 것이고,
사람들 좋고 술 좋아서 중도포기없이 버티었다.

당연히 선배들이 주도하던 학습, 집회, 합평에서 읽었던 글이며
당시의 치열함으로 가장됐던 꿀꿀하고 음습한 기억들도
이제는 아련한 편린으로만 남아있다.

기형도는 한세대 전의 요절한 시인으로,
선배들이 먼저 읽고 동방 테이블이나 책장에 꽂아두면
책도둑 회원들에 의해 각자의 집 서가로
암암리에 강제이주의 운명을 맞이하던
인기작가였다.
(그래도 늘 한권 이상은 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만큼 다른 시인들은 얻지 못했던 꾸준한 인기를
사후에야 얻었다.)

이 소설은 세미픽션이라는 장르로 작가가 규정하는데,
소설이라기 보다는 사실에 기반한 회고에 가깝다.
제목에서부터 ‘기형도‘와,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를 이어붙일 만한
자격?을 갖춘 이가 맞았다.
작가는 기형도와 연세문학회에서 함께 활동한 절친인데,
그 덕에 기형도의 시로 유추할 수 없는 기형도의 ‘형도스러움‘을
느껴볼 수 있게되었다.

다시 스무살로 돌아갈 수 있다면
입회원서의 좋아하는 작가에는 기.형.도.라
또박또박 쓰고 싶은 날이다.
강제이주시켰던 그의 시집 혹은, 전집이 어디에 꽂혀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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