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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디어 대전 - 동서고금의 인문학 지식에서 발견한 42가지 만능 발상법
책읽는원숭이 지음, 지비원 옮김 / 클 / 2017년 12월
평점 :
절판


1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지 않을 바에야 안 읽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겠지만, 사실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안 읽어도 되는 책, 어느 부분을 읽어도 상관없는 책, 내가 필요한 부분만 찾아볼 수 있는 책도 무척 좋다. 대표적인 책으로 사전류나 한 분야를 총괄해 살필 수 있는 기본서, 입문서를 들 수 있을 텐데 이 책도 그런 쪽에 속한다(물론 리뷰를 해야 했기 때문에 다 읽었다...). '아이디어'라는 말에 혹해 샀다가도 도리어 그 말의 무게에 짓눌려 사놓고 안 읽는 사람들도 있을 텐데 그런 분들은 되도록 가벼운 마음이 들 때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2

아, 다 읽지 않아도 괜찮지만 어디를 읽고 어디를 읽지 않아야 하는가를 선택하려면 일단 차례 정도는 다 읽어야 한다. 그래야 자신이 여기서 소개하는 어떤 방법에 끌리고 어떤 방법에 끌리지 않는가 정도는 파악할 수 있으니까. 서문은 이 책의 성격을 잘 설명하고 있지만 굳이 처음에는 읽을 필요는 없다(생각보다 안 읽히는 골치 아픈 부분이 있을 수 있다).

 

3

차례를 다 읽었다면 일단 마음에 드는 방법을 골라서 읽어보기 바란다. 굳이 하나만 콕 집어서 읽지 말고 편안한 마음으로 두세 개 정도 골라서 선택의 여지를 남겨두는 것이 좋다. 왜냐하면 이 책은 읽는 동시에 따라해봐야만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읽기만 해서 아이디어가 퐁퐁 샘솟는다면 참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그런 방법은 여기에서 소개하고 있지 않다. 읽고, 따라해보고, 어떤 방법을 거의 내것으로 만들어 일상이 되는 순간부터 창의력이 나올 만한 바탕이 이루어졌다고 생각하면 된다. 두세 가지라도 마음에 드는 방법이 있다면 성공이다. 이 책에는 쉽게 따라해볼 만한 방법도 있고(일단 쉬지 않고 글을 써내려가며 글쓰기에 대한 두려움을 깨고 새로운 생각을 발견하는 논스톱 글쓰기), 지식의 모든 분야를 섭렵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을 만큼 큰 스케일을 자랑하는 방법도 있다(카유아의 대각선의 과학. 서로 관계없어 보이는 분야에서 유사한 점을 찾아내고 이들을 연결할 만한 논리적인 가설을 세워 새로움을 찾아내는 방법. 때로 지식체계를 재편성하기까지 할 만큼 스케일이 큰 방법이다).

 

4

어떤 방법이든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들고 따라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면 반쯤은 독서 성공이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다른 방법에 눈길이 가기도 할 테고, 그 방법을 시도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이런 책은 한번에 소화하려면 답이 없고(370여 쪽이 읽기 만만한 두께는 아니다) 일단 당장 해보고 싶은 것들은 따라해보고, 곁에 놔두었다가 뭔가 생각이 나면 다시 찾아보는 게 상책이다. 요즘처럼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책이 나오는 시절에 '오래 둘 만한' 가치가 있는지 의심하는 사람도 있을 텐데 나는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5

이 책은 단순히 여기저기서 잘 알려진 아이디어 내는 법을 끌어모아 정리한 책이 아니다. 아이디어가 아니더라도 '생각 잘하는 법' 같은 건 누구나 한번쯤 관심을 보인다. 그런데 이건 현대인들만 그런 것이 아니다. 사고하는 법의 역사는 인간의 역사와 맞물려 있다. 어느 시대든 그 시대 나름의 지적 욕구가 있고 이를 채우려는 다양한 방법이 있었다. 그중에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아직 도움이 될 만한 방법들이 있고, 이 방법들이 나오게 된 배경이나 역사를 살피는 것만으로도 '인문학'이 되기도 한다. 저자는 이를 정확히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다(원숭이를 자처하는데 심각한 겸손이다).

 

한편으로 지식의 범위가 끝도 없이 넓어지는 지금, 한 분야의 방법을 다른 분야에 적용하지 말라는 법이 없다. 경제학자의 사고법이 경제학을 공부하는 사람에게만 도움이 되라는 법이 없고, 예술가의 사고법이 예술을 하는 데만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다. 실제로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많은 방법들이 서로 연관성을 지닌 경우가 많은데 이런 식으로(역사를 살피며 분야를 아우르는) 사고법을 정리하려면 도대체 얼마나 독서를 해야 하는지 감이 안 잡힐 지경이다. 이전에 오카모토 유이치로의 책을 리뷰하면서도 느낀 거지만, 일본어로 된 책은 물론이고 영어로 된 논문까지 온갖 서지사항이 난무하는 가운데 여기서 소개하는 많은 책들이 한국에도 나와 있다. 하지만 나와 있는 게 다가 아니고, 그것들을 소화해서 거대하고 의미 있는 목록을 만들고 그 목록에 나온 지식을 재정리해 전달하는 필자의 중요함을 또 생각해보게 된다. 그렇기에 저자가 과감하게도 '이 책은 실용서이자 인문서'를 표방하겠다고 한 게 아닌가 싶다. 문사철을 다루는 전형적인 의미의 인문서는 아닐지 모르겠으나 다 읽고 나면 '아이디어의 역사' '사고의 역사'라는 말이 반드시 떠오를 거라는 의미에서 이 책은 인문서가 맞다. 물론 따라해볼 가치가 있는 실용서이기도 하다. 꽤 희한하고 별난 책이기는 하지만 위에 말한 대로 일단 한두 개만 내것으로 만들어도 그 가치는 충분하다. 각 방법의 연원과 배경에도 재미있는 읽을거리가 많으니 부담 갖지 말고 일단 옆에 놔둬보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 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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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생산의 기술 - 어떻게 읽고, 어떻게 쓰고,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우메사오 다다오 지음, 김욱 옮김 / 북포스 / 2009년 11월
평점 :
절판


바로 얼마 전 이 책의 개정판이 나왔기에 책장에 오랫동안 꽂혀 있기만 했던 구판을 집어들었다. 당시 이와 같은 종류의 책을 이것저것 비교해본답시고 구입해놓았지만 순서가 밀렸던 탓이다. 개정판이 나온 덕에 다시금 읽어보자는 마음을 먹을 수 있었다.

 

우메사오 다다오는 문화인류학자이지만 아마 일본에서 가장 대중적으로 알려진 저서가 바로 이 책일 것이다. 초판은 1969년에 나왔고 그뒤 정보 기술의 발달에 따라 개정을 얼마나 거듭했는지는 잘 알 수 없지만 기본적인 얼개는 큰 변형 없이 지금도 팔리고 있는 듯하다. 눈부신 산업화가 이루어지고 생활이 윤택해지면서 학교는 물론이고 회사와 가정에서 다양한 '정보 처리'를 해야 할 필요성이 눈에 띄게 커졌고, 아마 당시 '정리의 신'쯤 되는 위치에 있었을 저자의 정리법이 이와 만나면서 큰 인기를 얻지 않았나 싶다.

 

책의 얼개가 크게 변하지 않았다는 것은 1969년에 초판이 발행된 책임에도 현재 사람들에게도 유용할 만한, 변하지 않는 방법이 이 책에 있다는 뜻이다. 한편으로 집집마다 컴퓨터가 있고, 스마트 기기가 없는 사람이 없는 현재, 저자가 아직까지 생존해 있었더라면 어떤 방법들을 제시했을지 상상해보는 재미가 있다. 이는 뒤집어보면 이들 기기의 발달로 글쓰기와 자료 정리가 한결 쉬워진 지금 이런 게 없었던 당시, 그런 기술을 스스로 찾고 만들어가려는 노력을 엿볼 수 있다는 뜻이다.

 

요즘은 인터넷으로 누구나 글을 쓰고 편집할 줄 알고, 이를 체계적으로 분류하고 '태그'를 달아 찾기 쉽게 만든다. 하지만 1969년 당시를 비롯해 저자가 공부를 시작하던 시절에는 당연히 그런 게 없었다. 자료를 찾고, 요약 정리하고, 짤막한 논평을 다는 것까지는 그다지 어렵지 않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것들을 찾아보기 좋게 만들기란 쉽지 않았다. 누구나 사용하는 노트는 기록은 쉽지만 나중에 찾아보기가 불편하다. 찾아보기 좋게 만들려면 차라리 노트를 해체하는 게 낫다. 그렇게 해서 나오게 된 게 카드에 기록한 다음 항목별로, 요즘으로 말하면 태그별로 정리하는 방법이다. 이 방법은 저자가 실천한 이후 모교인 교토대에 퍼졌다고 하며 심지어 저자가 설계한 '교토대학형 카드'는 지금도 팔리고 있을 정도이다. 이 방법을 시작으로 이렇게 모인 카드들을 다시 정리하는 방법, 스크랩북을 효율적으로 만들고 관리하는 방법, 사진 정리법 등을 자세히 소개한다. 문서든 사진이든 영상이든 요즘은 컴퓨터 하나면 끝나고 이를 백업하는 식으로 보관하면 끝이겠지만, 디지털이 아직까지 안정성 면에서는 백퍼센트 신뢰를 받지 못한다는 걸 생각하면 시도해볼 만한 방법들이다. 단, 저자가 사용한 카드 같은 건 어릴 적에는 한국에서도 제법 팔았던 것 같은데 요새는 구하기 힘들다는 게 단점이라면 단점일 수 있겠다.

 

독서법도 재미있다. 내가 가장 감동한 부분은 인류학자인 저자가 책을 읽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고 솔직하게 밝힌 점이다. 좋아하지 않는 일을 할 때야말로 기술과 요령이 빛을 발할 때가 있다. 우메사오 다다오의 독서법은 여기에 속한다. 일단 읽기는 전부 읽어야 한다. 단, 단숨에 읽어치우고, 밑줄을 친다. 밑줄 친 부분을 적을 필요는 없다. 그러면 독서의 속도가 느려지기 때문이다. 그런 다음 읽은 책 목록을 만들고, 밑줄 친 부분만 읽는 식으로 다시 한 번 읽는다. 그리고 감상을 기록하면서 독서가 지적 생산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한다. 글재주가 없어 딱딱하게 요약할 수밖에 없었지만 읽어보면 이렇게 딱딱하지 않고 쉽게 따라갈 수 있다. 그리고 곳곳에서 저자의 위트를 만날 수 있다. 카드 사용법을 권장한 교토대 교수가 그 기원은 함구하고 있다든지, 학문을 직업으로 삼는 이들이 유감스럽게도 '지능은 단순한 편'이라고 말하는 대목이라든가, 전혀 의미를 알 수 없고 말만 늘어진 문장을 보면 화를 낸다는 대목은 근엄한 대학교수와는 거리가 멀다. 그는 학문을 하는 고매한 사람으로서가 아니라 자신의 '기술'을 남들에게 실용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게 하려는 측면에서 이 책을 썼다. 수도 없는 학문의 방법이 있겠지만 이런 태도를 갖춘 학자의 글을 읽으면 늘 존경스럽게 생각하게 된다.

 

2010년 저자의 사거로 지적 생산의 기술을 생산하는 여정이 멈추게 되었다는 것과 자칫 딱딱하고 어려워질 수 있는 정리법, 공부법을 위트 있게 풀어낼 줄 알았던 저자의 글을 다시 만날 수 없다는 게 크게 아쉽다. 사거 당시 한 신문은 제목들을 이렇게 뽑았다. '생애 내내 계속된 지적 생산' '공부는 눈, 발, 머리를 사용해 하는 것' '권위주의 싫어해.' 이 책을 읽고 나면 이들이 우메사오 다다오의 생애를 얼마나 잘 요약하고 있는가를 느끼게 될 것이라 믿는다.

 

덧) 개정판 제목은 '지적 생산'의 기술이다. 지식 생산도 일리가 있지만 넓은 의미에서 '지적 생산'이라는 원서 제목이 더 합당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구판과 차례도 많이 다르다. 개정판이 원서 차례를 그대로 따랐으리라 생각한다. 문장도 조금은 다를 수 있다. 옮긴이는 같지만 편집 방침과 기술에 따라 부득이 내용이 달라지는 면이 있으리라 본다. 이건 뭐라고 할 것도 아니고 어느 것이 낫고 못하다는 뜻이 아니니 참고할 분은 참고하시길. 다만 인명 표기 등이 정확하지 않은 부분들이 있었는데(KJ법을 만든 이는 '가와키타' 지로이고 '가와키다'가 아니다) 개정판에서는 바로잡혔는지 모르겠다.

 

이와나미신서 같은 시리즈를 많이 내주는 건 상당히 감사한 일이지만 어떤 책이든 좀더 신경을 쓰면 훨씬 나아지는 법이다. 이게 끝도 없는 노동을 요구한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독자의 눈높이와 끝없는 노동 사이의 적정선을 찾는 것이야말로 출판사가 해야 할 일이다. 그걸 좀더 잘 이해해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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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원하는 말이 쓰여 있지 않다고 해서 노작들에 대해 별점 테러를 하는 짓거리는 좀 그만했으면 좋겠다. 그게 독서인가? 서평인가? 그저 '당신이 내가 원하는 말을 하지 않았다'는 속 좁은 불평에 불과하지 않은가. 왜 저자가 그래야 하나? 저자는 당신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니다.

 

수 틀리면 빵점을 주는 시험관을 아무도 공정하다고 생각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무언가에 대해 평가를 하는 이분법적인 사고방식이 굉장히 널리 퍼져 있는 것 같다. 이거 아니면 저거, 이 사람 아니면 저 사람, 여기 아니면 저기. 세상이 어디 두 가지 색만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도 아니고. 가장 그런 태도를 멀리해야 할 독서인들에게서도 이 경향을 보는 게 정말이지 역겹고 고통스럽다. 

 

별점 제도는 정말 개선의 여지가 없는 것일까? 광고와 비슷한 형식으로 별점을 남발하는 태도도 바람직하지 않겠지만 소위 책을 읽는 사람들이 '테러'를 하는 꼴은 더 봐주지 못하겠다. 우리가 어떤 책을 평가하는 방법이 정말 이런 종류밖에는 없는 것일까? 차라리 서평 숫자나 책 소개 페이지 조회수, 그리고 이건 터무니없을 수도 있는데 서평에 실린 글자 수가 몇 개인가를 세는 게 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면 가장 공정하고 깔끔하게 '판매지수'만 남기든지.

 

물론 이런 어처구니없는 생각만으로는 바뀌는 게 없을 것이다. 하지만 좀더 진지하게 책을 평가하는 방법을 이제 서점들도 고민하고 개발할 시점이 오지 않았나 싶다. 아무리 좋은 제도도 그걸 운용하는 사람들이 엉망이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별점 제도나 서평도 좋은 제도지만 이제는 진부하다 못해 악용되는 경우가 훨씬 많이 띄는 것 같다. 내 마음에 들지 않으니 당신은 별 한개를 받으시오. 이게 논거 없는 혐오발언과 다를 게 뭔가. 이런 걸 적절히 걸러내는 방법이란 없는 걸까. 서평을 볼 때마다 참고가 되고 감동하기는커녕 기분을 잡치는 경우만 늘어난다. 이 상황에 염증을 느끼면 그런 걸 가장 안 볼 수 있는 곳으로 옮겨 가려 하는 마음이 되는 게 당연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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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사회를 읽는 질문 8
오카모토 유이치로 지음, 지비원 옮김 / 글담출판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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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세상이 빠르게 변한다는 사실은 누구도 의심하지 않을 것이다. 이 변화는 언제, 어디서부터 시작되었고, 또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까? 인터넷을 비롯한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온갖 전문적인 지식을 쉽게 접할 수 있게 되었지만, 세상이 점점 혼란스러워지고 그 무엇도 삶을 살아가는 데 절대적인 규범이나 의지가 될 수 없어 불안하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인문학자란 이러한 변화와 불안을 누구보다 앞서 감지하고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 아닐까? 지은이는 우선 그들이 내놓는 대답은 낯설고 난해해 보일지라도 질문 자체는 우리가 막연하게만 느끼고 있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짚어줌으로써 현대사상에 대한 두려움을 크게 줄여준다.

 

그런 다음 질문의 형식을 빌려 하나씩 짚어나가는 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 사회의 다양한 측면들이다. 집 밖으로 한 걸음만 나가면(심지어는 이런저런 필요 때문에 집 안에서도) 감시 카메라를 볼 수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 뇌의 비밀을 풀면 마음의 비밀도 전부 해명될까? 우리가 의심의 여지없이 믿고 있는 '자유민주주의' 체제는 우리를 정말 자유롭고 평등하게 만드는 체제일까? 디지털 기술이 발달하면서 점점 더 모호해지는 창작과 표절의 경계는 어떻게 봐야 하나? 환경 보호의 궁극적인 목적은 정말로 환경을 보호하기 위한 것일까? 복제 인간이 나타나고 사이보그가 발달하면 과연 '인간'의 범위는 어디까지라고 할 수 있을까? 그리고, 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이러한 질문들은 결코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와 동떨어져 있지 않으며 누구나 한 번쯤은 호기심에서라도 던져봤을 법하다. 지은이는 초등학생도 이해할 수 있을 법한 문장과 예시를 제시하면서도 단숨에 현대사상에서 핵심적인 사상가들의 논의로 건너간다. 각 장들을 읽다 보면 현대 사회가 마주하고 있는 과제들을 자연스럽게 알게 되고, 중요하게 언급되는 사상가들의 논의를 간략하게나마 파악하게 되면서 우리 삶이 현재 어디쯤 위치하고 있는지 자연스럽게 밑그림을 그리게 된다.

 

물론 지은이는 논의를 정리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며 때로는 간략하면서도 핵심적으로 현대 사상가들의 한계를 지적한다. 데리다나 랑시에르, 네그리와 하트의 저작은 한국에서도 많이 번역되고 읽혔지만 그들이 염원하는 '민주주의'의 실체가 모호하다는 사실이 이렇게 간명하게 지적된 적은 거의 없었다. 지은이의 이러한 지적은 위대한 사상가들을 읽고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만이 다가 아니며, 그들의 한계를 파악함으로써 아직 아무도 길을 제시하지 못했음에도 우리가 대면해야만 하는 과제를 눈앞에 드러내 보여주는 작업의 가치를 상기시킨다.

 

또한 과학기술의 발달과 철학적 논제들이 유난히 자주 부딪히는 것도 이 책의 큰 특징이다. 지은이는 '현대는 결정적인 변화를 맞이하고 있는 시대'임을 다른 저서들에서도 주장해왔고, 이 변화가 가장 빠르게 나타나는 분야가 바로 과학 분야이므로 과학의 발달과 그에 따른 세상의 변화를 고민하는 데 좀더 무게를 둘 수밖에 없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이 책에서 다 다루지는 않았지만 법과 제도가 기술의 발달을 미처 따라잡지 못해 생겨나게 되는 다양한 문제에 대한 고민은 이 책을 덮은 다음 우리가 시작해야 할 숙제일지도 모르겠다.

 

끝으로 이 책에서 인용하고 있는 거의 대부분의 책들이 한국에도 번역되어 있다는 사실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물론 번역되어 있다는 사실 자체도 중요하다. 하지만 한 걸음 더 나아가 현대사상 입문용으로 쓴 한 권의 저서 안에서 이들을 전부 언급하고 있는 지은이의 독서 목록에 주목을 해볼 필요가 있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이 있듯이 이 책은 각 저작들을 독립적으로 읽고 해석하기보다 이제는 셀 수 없을 만큼 많아지고 있는 '현대 사회의 고전'들을 어떤 식으로 묶어 읽어야 하는지에 관해 하나의 전범을 보여주는 듯하다. 감히 말하자면 그런 '정리 및 분류'는 이제 일반인이 하기는 힘들어지고 있고 공부를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들이 길잡이가 되어주어야만 한다. 오카모토 유이치로는 기꺼이 그 길잡이가 되기를 자처한다. 현대 사상에 관심이 있지만 가장 먼저 어떤 책을 손에 들어야 할지 망설이고 있는 사람에게 한번쯤 이 길잡이를 따라가보라고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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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광의 모험은 끝나지 않아! 박람강기 프로젝트 9
미카미 엔.구라타 히데유키 지음, 남궁가윤 옮김 / 북스피어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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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은 미모의 헌책방 주인 시오리코와 불행히도 정신적인 문제로 인해 글자를 읽기 어려워하는 점원 다이스케가 책을 매개로 벌어지는 사건을 해결해가는 라이트노벨이다. 한국에도 5권까지 나와 있으며 꽤 많은 팬을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사실 이 소설은 못 읽었고 대신 드라마판으로 보았는데 나쓰메 소세키부터 국내에서는 생소하게 여겨지는 로버트 F. 영의 민들레 소녀까지 저자의 책에 대한 박학함과 이를 바탕으로 을 주인공으로 삼은 솜씨에 놀랐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이라는 작품 자체보다도 작가에 대해 더 알고 싶었고 뭔가 책에 대한 저서가 나오지 않을까 나름 기대하던 차에 만나게 된 것이 이 독서광의 모험은 끝나지 않아!라고도 할 수 있다.

 

이 책은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의 작가인 미카미 엔과 그에 뒤지지 않을 만큼 독서광이자 애니메이션 구성작가, 소설가로 활동하고 있는 구라타 히데유키의 대담집이다. 책을 읽기 전에 짐작하기는 했지만 이들이 대담에서 다루고 있는 책들은 소위 미스터리나 호러 등의 장르문학으로 분류되는 것이 대부분이라는 점이 좀 아쉬웠다. 이는 역으로 말하자면 장르문학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번쯤은 관심을 갖게 될지도 모른다는 점에서 장점이기도 하다.

 

장르문학을 무척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자신 같은 사람을 만나 밤새도록 이 책은 이래서 재미있고 저 책은 저래서 재미있고, 작가 창작 당시에는 이런저런 에피소드가 있었으며, 책을 모으다 보니 본의 아니게 희귀본이 되어버린 책도 있고, 다시는 나오지 않는 절판본을 구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였다는 식의 이야기를 해보고 싶어할 것이다. 이 책은 책이나 작품에 대한 심도 있는 대담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정확히 그런 이야기에 해당한다. 보고 있으면 왠지 읽는 사람도 고개를 끄덕거리다가 아, 그런 사실이 있었나, 라고 놀라기도 하고 결국에는 나도 이 작품 좋아하는데!’ ‘나도 이러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는데!’라며 끼어들고 싶어지는 그런 책 이야기이다.

 

두 사람의 대담은 마치 어려서부터 한동네에 살아온 친구처럼 친근한 분위기이다. 나이 차이도 많지 않고 같은 장르를 좋아하면서 같은 직업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들이니만큼 같은 책을 읽고 자란 또래의 대화라는 성격이 강하다. 물론 이들은 보통 사람은 잘 모르는 작가나 작품도 당연히 많이 읽은 이들일 테지만 대담은 매우 유명한 작품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이것은 두 가지 효과를 노린 것이라고 볼 수 있는데 첫번째로는 이 책이 저자들의 팬(대체로 라이트노벨의 독자이며 십대에서 이십대)을 타깃으로 삼고 있음을 짐작하게 한다. 그 증거로 한국에서도 웬만한 미스터리 팬이라면 알고 있을 법한 에도가와 란포나 요코미조 세이시 같은 대작가, 스티븐 킹, 스탠리 큐브릭 등에도 각주가 달려 있는 것을 보면 일본에서 이 책의 타깃은 라이트노벨을 읽는 청소년까지 내려가 있음이 명백하다. 두번째로는 저자들과 비슷한 또래 독자들에게는 어린 시절과 청년기를 거치며 읽었던 책에 대한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책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런 측면에서는 저자 또래만이 경험했을 법한 독서 체험(에도가와 란포나 요코미조 세이시는 태평양전쟁 전부터 활동한 작가이므로 이들이 사용하는 단어가 어린 시절의 저자들이 읽기에는 어려웠다든가, 장르문학에서 다루어지는 폭력과 성 묘사 등을 보며 뭔지는 잘 모르겠으나 본격적으로 어른의 세계에 입문하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되었다는 것)을 이야기하되, 한편으로 일반적인 독자들은 잘 몰랐을 법한 흥미로운 사실들을 요소요소에 집어넣어 단순한 추억담에 그치지 않도록 하고 있다.

 

저자들이 나누는 책 구입, 책 정리, 독서의 미래 등에 대한 이야기도 평범하기는 하지만 참고할 만한 부분들이 있다. 아마 장르문학 독자라면 이들의 책 구입과 정리에 솔깃해할 것이다. 끊임없이 늘어나는 책에 비명을 지르면서도 안 살 수 없다! 안 읽을 수 없다!’를 외치는 장르문학 독자라면 한번쯤 읽어보면 재미있어 할 확률이 꽤 높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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